• 최종편집 2023-11-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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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친구
    제목 : 나쁜 친구 - 앙꼬 작가 : 앙꼬 출판 : 창비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마다 삶의 밀도는 다르다. 얼마나 핍진하게 시간의 결을 살아왔는가 가늠하는건 쉽지 않지만, 밀도가 높을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순도 또한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삶을 구성하는 ‘밀도’와 ‘순도’는 무엇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당하고, 청년일 때 혁명가였지만, 그는 사형 직전에 황제의 명령으로 목숨을 건졌고, 나이 들어 도박중독자가 되었다. 빚더미에 앉아 평생 빚독촉을 받으며 써내려간 소설은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남았다. 그가 사형 직전 살아남았을 때, 그의 삶은 강한 밀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고흐, 카프카, 천재 이상을 비롯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은 짧지만 강렬하다. 그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외부 환경과 내면의 욕망이 갈등을 빚으며 천재성을 드러냈다. 백살을 살아도 평범하게 살다 죽는 사람과, 30년을 살아도 역사에 남는 예술작품을 남기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지 천재적 재능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의 내면에서 발산하고픈 강렬한 욕망을 표출하고, 여러 삶의 방식을 포기하며,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찾고 싶거나, 만들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스스로에게 묻을 때, 자신의 존재는 구체적 모습을 갖춰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앙꼬의 ‘나쁜 친구’는 청소년 시기 짧은 몇 년을 남다르게 보낸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면서, 과거 자신의 삶이 어떠한가를 객관의 눈으로 담담하게 바라본다. 그 과거의 시간은 평범하지 않았고, 짧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새겨졌다. 그 시간은 돌아갈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지나간 삶이지만, 그 짧은 시간이 주인공 진주에게는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갈 자양분이 되었다. 앙꼬는 그의 책 ‘열아홉’의 표제작 ‘열아홉’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고등학생 경진이는 기성세대가 규정하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비행청소년’이다. 이 단어로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력인가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진짜 문제 집단이 누구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관습과 이해의 틀 안에서 청소년을 규정한다. 분류하고, 꼬리표를 달고, 인격을 재단하고, 품성을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한다. 기성세대가 정상 또는 합격으로 평가한 청소년은 시험성적이 좋고, 부모와 교사의 말을 잘 듣고,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관습과 제도를 내면화한 사람들이다. [나쁜 친구]는 세 편의 단편으로 묶은 옴니버스 연작만화다. ‘열아홉’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20대가 된 주인공 진주는 새벽 고요한 어둠 속에서 과거를 들여다본다. 진주(‘열아홉’에서는 경진)는 중학생 때 ‘노는 아이들’ 가운데 하나인 정애와 친구가 된다. 정애는 여학교에서 ‘일진’이었으며, 술과 담배, 고등학생 남자 친구를 사귀는 ‘날라리’, ‘양아치’였다. 그들은 평범한 학생들을 괴롭히고, 때리고, 돈을 뜯고, 밤에는 빈집에 모여 술을 마시며 논다. 그들은 자기의 행동에 죄책감이 없다. 진주와 정애에게 ‘왜?’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는 건, 왜 숨을 쉬고, 왜 밥을 먹으며, 왜 화장실에 가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자신의 삶을 방기한 진주, 정애 같은 청소년을 올바로 이끌지 못한 사회와 구조와 기성세대에게 있는 데, (그 안에 가정과 부모도 있다) 정작 기성세대는 자신의 무능과 가부장적, 제도적 폭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모든 책임을 진주나 정애에게 뒤집어씌운다. (진주와 정애가 후배들에게 휘두른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일들’은 진주와 정애가 만나고, 술, 담배를 하며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던 두 소녀가 가출해 술집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나이를 속이고 술집에 취직하는 이야기다. 진주는 아버지에게 맞아서 머리가 찢어지고, 몸에 멍이 들고, 팔다리도 상처투성이다. 정애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시달리고, 엄마는 가출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부모의 보살핌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이 모두 그렇지 않지만, 정애는 나이보다 일찍 세상에 눈뜬다. 두 소녀는 가출해 여관을 숙소로 삼고, 술집에 취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가혹했으며 난폭했다. 술집에 오는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성적으로 소비했으며, 미성년자라는 걸 알면서도 술집 주인은 소녀들을 돈벌이에 써먹었다. 학교에서는 ‘일진’이었지만, 세상에 나오자 그들은 힘없는 미성년 여자아이들이었고, 돈과 권력 아래 놓인 희생양이었다. 그걸 깨닫는 건 금방이었고, 아버지의 폭력을 감수하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은, 그들이 학교의 담장 안쪽과 바깥쪽의 공기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심각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애’에서는 학교로 돌아온 진주와는 다르게 정애는 어딘가로 사라진다. 중학교 졸업식 사진에 얼굴이 없는 정애의 삶과 진주의 삶을 돌아보며, 똑같이 자기를 때리는 아버지가 있어도, 진주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엇나간 자식을 체벌하는 것이고, 정애의 아버지는 이유 없는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이 달랐다고 말한다. 진주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아니 더 심하게 학교생활을 방기하고, ‘비행청소년’이 되었다. 더 많이 아버지에게 맞고, 학교에서도 선생에게 맞는다. 그러면서도 진주는 자기가 마음 내키는대로 살았다. ‘정애와 나’는 돌아오지 못한 정애를 기억하며, 진주가 정애에게 갖는 죄책감을 그리고 있다.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친 정애를 발견하고 말을 건네지 못하는 진주는 친구를 두고 자기 혼자만 어둠에서 빠져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작가는 청소년 시기의 모습을 돌아보며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행동과 그 결과까지가 모두 자신의 온전한 모습이라는 걸 인정한다. 작가도 고백하듯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똑같은 처지에 놓였던 정애와 달리 자신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자기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와 형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직간접 경험과 상상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조합해서 보여줄 때 설득력을 갖는다. 앙꼬의 만화 ‘나쁜 친구’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상상력으로 창작한 것보다 더 묵직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건, 이 이야기가 과거를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주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가의 크기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머리가 찢어지고, 선생에게 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어 학교에 경찰이 출동할 정도가 되어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덤덤함은 그가 일부러 가지려는 태도가 아니라, 그의 내면 세계가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앙꼬’는 작품 속에서 드러내지 않지만, 학교 생활에서는 일탈하면서도 그가 진짜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는 숨 쉬는 것처럼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손에서 연필을 놓지 않고, 청소년 시기를 거치면서 매우 높은 밀도로 그림을 그렸다. 20대의 ‘앙꼬’가 그린 그림은 긴 시간 그림을 그린 노인의 선처럼 노련하고, 깊이가 느껴진다. ‘앙꼬’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그려 보여주고, 자신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 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혼란하고 불투명한 청소년 시기를 겪으면서 ‘앙꼬’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연필과 노트는 그의 삶을 지탱한 유일한 희망이자 힘이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이 작품으로 앙굴렘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받은 것은 이야기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작가주의 만화, 그래픽 노블로 분류할 수 있는 하나의 장르에서도 리얼리즘의 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준 앙꼬의 만화는 작가의 경험과 세계관을 세계의 독자가 공감했음을 확인했다. 형식과 내용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는 젊은 작가가 진화하는 모습을 보는 건 독자로서 행운이기도 하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제시이야기
    제목 : 제시이야기 작가 : 박건웅 출판 : 우리나비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귀한 자료를 박건웅 작가가 만화로 그렸다. 독립운동은 우리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1919년 3.1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중국에 임시정부를 설립하면서 본격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하는 독립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이어나가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에게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어도 여전히 독립한 국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임시정부 활동은 꼭 필요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양우조, 최선화가 그들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훌륭한 인물들이 많지만, 이 젋은 부부는 임시정부에서도 가장 젊은 사람에 속했고, 아기를 출산해 육아를 하면서 임시정부의 일도 함께 하던 흔치 않은 경우였다. 젊은 부부가 첫번째 아이인 '제시'를 낳은 것이 1938년이었고, 이때부터 조국이 광복되어 중국에서 부산에 도착할 때인 1945년까지의 육아 기록이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나라를 빼앗겨 외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가 중국에서도 내전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부가 함께 육아일기를 썼다는 점이다. 결혼도 김구 선생님의 주례로 조촐하게 했으니, 이들 부부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부부임에 틀림없다. 임시정부는 중국의 항주에서 시작해 가홍, 상해, 진강, 남경, 장사, 광주, 유주, 기강, 중경까지 옮겨가는데, 중국의 동쪽 끝에서 서쪽 깊숙한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대륙을 전전한다. 그것도 그냥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폭격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파괴되는 공포의 상황에서 갓난아이를 보살피며 물도, 음식도, 풍토도 맞지 않는 중국 대륙을 전전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설움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참혹한 전쟁이 벌어진 와중에도 아이는 태어나고 자란다. 세계의 역사는 지금까지 한 세대 이상 평온한 때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간다. 조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지만, 살아가는 일상은 별다를 게 없다. 혁명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은 혁명가들은 많았지만, 마르크스도, 레닌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었다. 조선의 혁명가들도 인간이고, 조국의 운명이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살아갈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에서는 어린 제시를 아끼는 젊은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아이와 함께 중국 대륙을 전전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겪고 있는 중일전쟁의 참혹함과 중국 민중의 삶도 보인다.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민중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하물며 나라를 빼앗기고 다른 나라를 전전하는 독립운동가들은 어떨까. 그래도 이렇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남긴 기록이 있어 우리의 어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던가를 알 수 있으니 기쁘고 반갑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제목 :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작가 : 쥘리 다셸, 카롤린 출판 : 이숲 마그리뜨는 자신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애인도 있고, 직장생활도 하지만, 날마다 일상을 꾸려가는 일이 힘겹다. 20대 후반의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은 매우 단조롭고 규칙적이어서 건조하게 보이지만, 정작 마그리뜨에게는 가장 편안한 삶의 방식이다. 직장에서, 애인과, 이웃과의 소통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자각한 마그리뜨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자폐와 관련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증상이 아스퍼거 증후군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고는 정식으로 의사와 상담하고 진료를 통해 아스퍼거 자폐인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언어 지체나 지적 장애가 없는 가벼운 자폐의 일종이라고 정의한다. 1944년 오스트리아의 정신과의사 한스 아스퍼거가 처음 보고 했다는데, 한국에서는 2005년이 되어서야 이 증상이 자폐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관련해 '나무위키'의 내용을 보면, 정신과의사 아스퍼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를 지지하는 의사였고, 정신병자는 물론 유대인, 집시 등 당시 독일의 극우정당이 인종청소를 하려는 정책을 지원했다는 의심을 강력하게 받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명명한 사람은 정작 아스퍼거 본인이 아니라 영국 의사 로나 윙이었는데, 198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보고했으며, 로나 윙이 인용한 '칼 융'의 정형화를 비판하면서 미셸 푸코의 책 '정신의학의 권력'으로 이어지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아스퍼거 자폐인은 일상 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폐 스펙트럼의 약한 쪽에 속해 있으며, 그동안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좀 별난 사람이라거나,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 정도로 취급 받는 사람이 검진을 통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판정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은 글을 쓴 작가 본인이 아스퍼거 자폐인으로 판정을 받기 전과 받은 이후의 삶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묘사하고 있다. 아스퍼거 자폐인으로 판정 받기 전의 주인공은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고통받는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찾기 시작하고, 상담과 진찰을 통해 아스퍼거 자폐인 판정을 받은 이후부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작가의 경험을 다룬 것이라는 전제로 본다면, 퍽 부러운 부분이 많다. 주인공 마그리뜨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자신이 아스퍼거 자폐인 판정을 받고, 장애인 등록을 한 다음에도 회사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이니까 자신이 업무를 잘 볼 수 있도록 회사의 환경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프랑스에서도 아스퍼거 자폐인 판정을 받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임을 말하고 있지만, 일단 장애인 판정을 받으면 사회구성원들이 그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편견을 갖지 않고 바라본다는 점은 선진국 문화의 장점이다. 아스퍼거 장애인의 경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차라리 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당사자도 좋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도 확실한 구분이 되어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만, 장애와 정상의 경계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나 않을까 생각한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거인의 역사
    제목 : 거인의 역사 작가 : 맷 킨트 출판 : 세미콜론 원제목은 '3Story'다. 세 개의 이야기인데, 한 남자의 삶을 두고 세 명의 여자-엄마, 아내, 딸-가 바라본 기록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아이의 엄마 마지는 전쟁-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편에게 독백한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마지의 남편은 전쟁에 참전했고, 그는 전쟁터에서 죽는다. 아이와 둘만 남은 젊은 엄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애를 쓰지만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아이에게 냉담하다. 아이는 해가 다르게 키가 거지고, 비정상적으로 커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지역신문에 알려질 정도로 키가 커져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엄마는 그렇게 우울한 삶을 살다 요양원에서 죽고, 키가 계속 커지는 크레이그는 그 특이한 신체적 특징 덕분에 대학에 입학하고,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대학을 다닌다. 그곳에서 여자를 만나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키가 너무 커져 입고, 먹고, 자야 할 곳이 남달라야 하는 상태에서 곤란을 겪던 크레이그에게 CIA가 접근한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대 배경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인데, 이때는 미국이 쏘련과 냉전 상태에 있었던 시기였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했으며, 쿠바에 쏘련 미사일이 들어와 미국의 코밑을 노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와 쏘련 사이의 첩보전쟁이 격렬했던 시기였기도 했다. 미국중앙정보부는 주인공 크레이그에게 접근해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조건은 미국중앙정보부를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던 크레이그는 미국중앙정보부의 제안에 동의하고, 그의 아내 조가 설계한 거대한 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세계여행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서 구경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거대한 인간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미국중앙정보부는 겉으로 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사를 치르면서 뒤로는 공작을 한다. 하지만 거인의 존재가 더 이상 미국중앙정보부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크레이그의 귀에 폭탄을 설치하고 행사장에서 그를 쓰러뜨린다. 설상가상으로 크레이그의 아내 조도 거대한 인간인 남편과의 생활에 날이 갈수록 고통스러워 한다. 그녀는 크레이그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고, 자기 만의 집을 만들어 숨기도 하지만 더 이상 거대한 인간 크레이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낀다. 크레이그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면서, 또 자신이 계속 커지고 있으며, 이 상태로는 모두에게 짐이 될 뿐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떠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 크레이그의 딸이 거대한 인간인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가 숨을 거둔 자리를 찾아나선다. 이미 20여년이 지났기에 거인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여전히 곳곳에 거인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거인이 살던 시카고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이어진 흔적은 미국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정작 거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발견하지 못한다. 이 작품이 독특한 점은, 거대한 거인이 등장하는 사회를 미국의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과, 거인 자신의 발언이 아닌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세 명의 여성-엄마, 아내, 딸-의 증언으로 구성한 점이다. 거대한 인간은 '미국'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대한 나라임에 틀림없고,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세계의 경찰임을 자처한, 그 존재만으로 위협적인 깡패국가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자신의 조국이 '세계의 깡패'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약소국가에 살고 있고, 미국의 직접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우리나라는 거대한 국가 미국을 깡패국가로 인식한다. 거인이 직접 발언하지 않는 것은, 미국 자신이 발언하는 것은 상황을 객관으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자기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미 편견과 왜곡이 전제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주변 사람이 바라본 거인을 판단하도록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거인에게 접근한 것이 미국중앙정보부라는 것은 미국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정보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고, 미국중앙정보부는 남미의 여러나라에서 진보적 성향의 정부를 뒤집어 엎고,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거인이 쓰러지는 사건도 미국중앙정보부의 의도였으며, 쓸모가 없으면 가차없이 버리는 냉정하고 냉혹한 태도는 정보전쟁의 특성이자, 미국이 역사적으로 정보전쟁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전쟁을 유발하고, 군사쿠데타를 지원했어도 미국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졌고,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결국 거인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다. 미국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영향력, 정치력, 군사력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패권국가로서의 영향도 줄어들었다. 미국은 여전히 강한 국가지만, 단 한번도 존경을 받는 나라였던 적은 없었다. 오로지 힘으로만 최고의 자리를 유지해왔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미국의 태도는 세계 모든 나라에게 두려움은 주었을지언정 '친구'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었다. 그런 과거의 존재를 찾아봐야 세계 여러나라에 미친 흔적들만 있을 뿐, 미국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는 은유를 발견할 수 있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그림자 소묘
    제목 : 그림자 소묘 작가 : 김 인 출판 : 새만화책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집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출판한 작품인데,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대학에서 언어학과 회화를 공부했고, 서울애니메이션만화가 전문 과정을 수료했고, 2003년 제작지원공모에 당선되어 이 작품이 나왔다. 그는 만화가가 될 생각이 어려서는 없었지만, 김혜린의 '비천무'를 읽고 만화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20대 초반에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첫 작품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성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보통의 만화와 다르다. 만화의 대부분은 잉크와 펜으로 먹선을 그리는데, 이 작품은 콘테와 붓으로 그렸다. 작가는 2년 동안 이 작품을 그렸는데, 그래서인지 한컷 한컷이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그래픽노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가를 따진다면, 당연 그림이다. '그래픽'+'노블'이란 말처럼, 그래픽이 노블에 선행한다. 아주 단순한 예만 들어도 알 수 있는데, 그래픽노블 가운데 '도착'이라는 작품이 있다. '숀 텐'이 그린 작품인데, 여기에는 문자가 없다. '이야기'는 있지만, '문자'가 없고, 오로지 그림으로만 완성되는 작품도 그래픽노블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은 그래픽노블을 보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그림은 뚜렷한 개성을 보인다. 그래픽노블에서 흑백 그림은 무수히 많은데, 흑백 그림이라도 다 같은 흑백이 아니라는 걸 이 그림은 보여준다. 연필로만 그린 그래픽노블도 많다. 연필의 검은 선이 명암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잉크의 먹이 완전한 검은색이라면, 같은 검은색이라도 붓으로 표현하는 검은색의 농담은 연한 회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단계의 무채색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콘테의 질감이 흑백의 단조로움을 상쇄하며 깊은 흑백의 명암을 표현하고, 붓선의 자유로움과 붓으로 그린 먹선의 다양함이 흑백의 멋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흑백이지만 이 작품은 '빛'을 그리고 있다. 즉 깊거나 얕은 어둠을 드러내는 방식은 곧 빛의 밝기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작품에서도 '빛은 이미 그림자를 포함하고 있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화실에서 정물화를 그릴 때, 그림자가 없는 그림은 깊이가 없다는 화실 선생님의 말이다. 이야기는 두 편의 단편이지만, 두 편은 독립된 이야기면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시골에 살던 주희는 이모와 함께 서울에 살게 된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주희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 서울에서 공부하며 그림 공부도 함께 하고 싶다. 큰 길에 있는 크고 유명한 화실을 마다하고 골목에 있는 작은 화실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 화실 앞에 해바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의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살던 주희는 서울의 복잡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길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길을 잃곤 한다. 자기만의 그림 지도를 그려 길을 잃지 않게 되고, 그 그림은 거리에 있는 나무와 화분과 담장의 나무와 꽃을 그린 것이다. 살아 있는 식물을 그림으로 그려 지도를 만든 주희의 마음은 도시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거리를 고향에서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주인공은 따돌림을 당한다기보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다. 점심 때 도시락도 같이 먹자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하고, 체육시간에는 다른 친구들이 상대를 하지 않아 외톨이가 된다. 친구도 없고, 늘 혼자 다닌다. 그러다 교실에서 전학 온 주희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전편에서 주희가 길거리에서 자동차와 부딪칠 뻔한 일이 있는데, 그때 스케치북에서 그림 한 장이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고, 그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주희는 그 아이를 눈여겨 보았고, 교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주희는 그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고, 주인공은 주희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자신에게만 그림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주희를 만남으로써 자신에게도 그림자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다. 두 여학생의 만남은 도시적이지 않다. 주희가 갖고 있는 풍요로운 감성과 따뜻한 마음은 삭막한 도시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는 도시의 삭막함과 다른 시골의 정서를 표현한다. 그림자가 없고,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던 주인공도 주희를 만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우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똑똑, 리틀맨
    제목 : 똑똑, 리틀맨 작가 : 체스터 브라운 출판 : 미메시스 작가의 초기 작품을 모은 단편집. 여기 실린 작품들은 작가의 나이 20-35살 사이에 그린 작품들이다. 모두 27편의 짧은 만화가 실렸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독특한 시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만화는 거의 모두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집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적 발언을 한 내용이 있다. '반 검열 선전'의 작품은 예술 작품의 검열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여기 등장하는 두 사람은 캐나다 총리와 그의 부하인데, 두 사람의 모습이 기괴하다. 총리는 남자의 모습인데 가슴은 여성의 가슴을 하고 있고, 그의 부하도 여성의 가슴에 남성 성기를 길게 꼬리처럼 끌고다닌다. 이들은 벌거벗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화는 아래 내용이다. -교회 단체에서 포르노그래피를 금지시켜 달라는 편지를 몇 통 받았습니다. -잠깐, 사전 좀 찾아보고...'포르노그래피...주로 성적 욕구를 유발하기 위한 문학, 회화 등. -이게 뭐 어때서? 성적 욕구를 일으키는게 잘못됐다는 말인가? -신의 법에 어긋난다는 거죠. -그들의 종교가 그런 법을 규정한다...이 나라에서 종교는 개인 문제 아닌가. 만일 자신의 종교가 포르노그래피를 금한다면 자기만 그걸 사지 않으면 되잖아. -그걸 보는 애들에게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하는 거죠. -그 자들이 걱정하는 건 뭔지 알겠어. 만일 애들이 포르노그래피를 사지 못하게 하는 법령 같은 걸 자네가 만든다면, 그렇게 크게 벌어질 일은 아닐 거야. -포르노의 생산 자체를 금해달라는 뜻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미성년자 성희롱이나 성행위는 이미 불법아닌가. 게다가 성적 자각이 사춘기나 그 이전에 시작된다는 걸 모른 척할 순 없는 문제라고. -포르노그래피가 남자들이 여자들을 강간하게 만든다는 말도 하더군요. -사진이 없고, 문맹이 들끓던 시절에도 강간은 있었네. 영화나 잡지를 봤다고 강간범이 되는 건 아니잖나. 사람들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행동한다면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같은 영화는 개봉도 못했을 걸세. -그렇게 단단히 답할 수 업슨 게 지금으로썬 큰 문제랍니다. -그래, 강간범을 잡는 건 어렵지만, 미디어의 성적인 요소를 이유로 출판사나 화가, 영화 제작자를 잡아들이는 건 지나치게 쉽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이면 대중에게 우리가 여자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겁니다. -비록 실상은 예술가 나부랭이들이나 괴롭힐 뿐이겠지만 말이야! 젠장 레이! 이게 바로 언론을 쥐고 흔드는 방법이야! 얼른 뛰어가서 반포르노 법령을 빨리 써내! 결국 창작행위를 검열하는 법령이라는 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예술가를 괴롭히고, 자신들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걸 작가는 정치가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작가는 오래 전 그린 이 만화의 내용이 유치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는데, '창작의 자유'와 '검열'의 대립을 두고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여전히 한심한 수준인 만큼, 검열을 하려는 자들-권력을 가진 자들-의 멍청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은 더 날카로워져야 한다고 본다. 나중에 나온 체스터 브라운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퍽 온건하고 현실적인 내용인데, 작가 특유의 냉소적 태도는 이 작품집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작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화의 세계를 넓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너 좋아한 적 없어
    제목 : 너 좋아한 적 없어 작가 : 체스터 브라운 출판 : 미메시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청소년들의 미묘하고 까다로운 심리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체스터는 어릴 때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욕설 때문에 엄마한테 심하게 야단 맞는다. 그리고 그 뒤로 학교에서 욕설을 하지 않는 아이로 소문이 난다. 어릴 때는 대개 별 생각 없이 욕을 한다. 친구들은 체스터에게 욕을 해보라고 놀린다. 욕을 참는 것이 자존심과 연결되면서 체스터는 욕을 하지 않고, 친구들은 욕을 하라고 놀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체스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체스터를 옹호하고, 그들 가운데 여학생 캐리는 체스터를 좋아하지만 정작 체스터는 캐리의 친구 스카이를 좋아한다. 체스터는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캐리를 보면서 부담스러워 하지만, 그렇다고 싫은 내색도 하지 않는다. 캐리의 언니 코니와는 친구로 지내고, 숨박꼭질을 할 때는 둘이 들판에 누워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체스터는 처음으로 스카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고백을 하고도 체스터의 마음은 복잡하다. 스카이도 고백을 한 체스터가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으니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의심한다. 체스터가 자기의 친구 스카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캐리는 체스터에게 화가 나서 '너 좋아한 적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일들이 체스터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 그의 엄마는 정신과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사망한다.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체스터가 잔디를 깎고 있을 때, 스카이가 찾아와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지만 체스터는 거절한다. 청소년 시기는 불안정한 상태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가족과 원만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고, 학교의 친구들이나 이웃과 어려움 없이 지낸다면 불안정한 청소년 시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체스터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야했는데, 원하지 않고, 믿지도 않는 신을 찬양하기 위해 일요일의 행복한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건 몹시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체스터는 교회에 마지못해 나가고, 학교 생활도 묵묵히 해나간다. 체스터는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는 열정적으로 반항하기 보다는,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친구들이 놀려도 상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상대에게도 열렬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런 냉소적 태도는 주인공의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고, 그가 자란 환경의 영향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엄마가 정신병으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은 그 전부터 집안에 우울함이 가득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물론 이 작품은 창작이므로 논픽션으로 생각하는게 이상하지만, 적어도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고, 이야기를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아서 담담하고 심심하다. 마치 자기 이야기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무심하고, 냉소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하비비
    제목 : 하비비 작가 : 크레이그 톰슨 출판 : 미메시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전작 '담요'에 이어 이 책이 나오기 중간에 '만화가의 여행'이라는 여행 일기를 낸 크레이그 톰슨이 7년 동안 공을 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그래픽노블로 이만한 두께로 출판한 것은 보기 드물다. 무려 670쪽이나 되는 이 두툼하고 묵직한 책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이 들게 만든다. 이렇게 할 말이 많다는 건, 작가가 수다장이거나, 진정 하고픈 말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렇게 두꺼운 책은 잘못 고르면 종이와 잉크, 독자의 시간 낭비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선택하게 된다. 이 책이 크레이그 톰슨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선뜻 믿고 구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놀라운 점은, 장편 서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과 함께 작가가 직접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이슬람의 문양을 그렸다는 점이다. 첫페이지부터 작가는 이슬람 전통 문양을 꼼꼼하고 섬세하게 그리는데, 이 문양을 직접 그렸다고 생각하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크레이그 톰슨이 그래픽노블의 대가라고 말하는 것이 이 작품을 보면서 수긍될 정도로 한 페이지마다 들인 공력이 대단하다. 그런 면에서, 활자로 이루어진 소설과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그래픽노블의 차이와 의미를 이 작품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소설로도 이 작품을 묘사할 수 있지만, 그래픽노블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풍부한 정보와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일부러 밝혔듯, 이 작품은 순수한 창작이다. 작품의 무대는 이슬람 국가지만, 특정한 지역이나 국가가 아니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시간의 흐름은 약 16년 정도라고 하는데, 독자가 느끼는 시간은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길고도 오래된 이야기다. 작가는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인공으로 어린 여자와 흑인 아기를 내세웠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독립적 존재가 아닐 정도로 천대받는 존재다. 이슬람의 율법에는 여성을 존중하라는 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는데, 이슬람의 현실은 율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여성의 차별과 억압이 항상 존재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서는 여성의 위치가 더욱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어린 여자 주인공 도돌라는 가난한 집안에서 가족들의 식량을 구입하려는 이유만으로 낯선 남자에게 팔려간다.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듯한 남자는 필경사였고, 다행히 도돌라를 학대하지는 않지만 딸보다 어린 도돌라와 섹스를 하고, 도돌라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필경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죽고, 도돌라는 노예시장으로 팔려간다. 그곳에서 갓난아이 '잠'을 만나고, 잠의 엄마도 다른 곳에 노예로 팔려나가자 도돌라는 잠을 데리고 사막으로 도망친다. 도돌라는 누나처럼, 엄마처럼 잠을 돌본다. 그들은 사막에 버려진 배에서 무려 9년 동안 숨어서 생활하는데, 도돌라는 먹고 살기 위해 사막을 횡단하는 상단에게 몸을 팔고, 음식을 얻는다. 잠이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점차 소년으로 자라면서 도돌라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내면에 성적 욕망이 들끓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 도돌라가 식량을 구하려고 배를 떠날 때, 잠이 몰래 뒤를 밟는다. 도돌라는 자신의 몸을 팔아 식량을 얻고, 잠은 처음 그 장면을 보면서 크게 충격받는다. 어느날, 식량을 구하러 나간 도돌라는 궁에서 나온 병사들에게 납치당해 술탄의 후궁이 된다. 갑자기 헤어진 잠을 걱정하면서, 술탄의 아이를 출산하지만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를 외면하고, 헤어진 잠만을 생각한다. 그러다 아이가 3살이 되던 어느 날, 도돌라는 아이의 존재를 깨닫고 모성애가 발현하는 걸 느끼는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사라진다. 경쟁자 후궁들 가운데 누군가 아이를 납치해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와 애착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를 잃어버린 도돌라는 삶의 희망이 사라진다. 이 무렵 '잠'은 사라진 도돌라를 찾아 도시로 들어오고 거세한 남자들의 집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도 성기를 거세하고 그들과 함께 돈과 음식을 구걸하며 다니다 왕궁에 잡혀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도돌라를 발견하고, 이제 가치가 사라진 도돌라를 죽이라는 술탄의 명령으로 그들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간 다음, '잠'은 도돌라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두 사람은 술탄의 성 바깥쪽 빈민가의 하수구에서 어부에게 발견되고, 도돌라는 자신을 살린 사람이 '잠'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어부의 보살핌으로 몸을 추스린 두 사람은 옛날의 그 사막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사막은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살기 위해 도시로 들어가 '잠'은 노동자가 되고, 폐허가 된 빌딩의 한 칸에 도돌라는 살림을 차리고 둘이 생활한다. 도돌라와의 관계에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잠'은 자살할 결심을 하지만, 그는 마음을 바꿔 도돌라에게 돌아온다. 숨어지내던 건물이 다시 공사를 시작하고, 두 사람은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는데, 시장에서 노예처럼 팔리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그 아이와 셋이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은 신화와 현실이 뒤섞여 있다. 도돌라가 돈에 팔려 필경사 남자를 만나고, 그에게서 글을 배우게 되는 것, 나중에 도돌라가 '잠'을 데리고 탈출해 잠과 함께 지낼 때도 잠에게 글을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이 서사가 신화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화에서 여신은 인간을 돕는다. 어린 '잠'은 인간의 상징이고, 자연에서 연약한 인간은 늘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여신이 그를 보호한다. 물과 음식을 주고, 말과 글을 알려주며, 모성의 사랑을 나눠준다. 작품에서는 도돌라가 술탄의 후궁이 되고, 다시 술탄의 미움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도돌라를 살리는 건 '잠'이다. 잠은 신이자 어머니, 누나이기도 한 도돌라를 잃고 고난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자신의 남성성을 스스로 거세하고(하지만 완벽한 거세가 아닌 걸로 보인다), 다시 만난 도돌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려 한다. 도돌라가 '잠'에 집착하는 건 어린 아이를 자기가 직접 키웠기 때문인데, 자신이 임신해서 낳은 아이에게는 오히려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건, 그 아이가 술탄의 아이이기는 해도 자신이 원치 않았던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도돌라는 나중에 자신의 냉담함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는다. 도돌라와 잠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의 시간은 16년이지만, 이 작품에서 시간의 흐름은 두 사람의 나이보다는 사막이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하고, 작은 마을이 거대한 도시로 바뀌며, 고층 빌딩이 무수하게 들어서는 문명의 변화로 느낄 수 있다. 신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결국 도시에서도 빈민이자 노숙자의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그나마 '잠'이 노동자로 일해 번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데,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를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다. 이 작품이 놀라운 점은, 서사의 독특함과 함께 작가가 자신의 그림에 인위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만화를 그릴 때 패턴, 배경, 효과 등을 위해 많은 만화가들이 톤을 쓰는데, 크레이그 톰슨은 오로지 펜과 붓선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섬세한 문양과 패턴이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어서 이것을 오로지 펜과 붓으로만 그리려면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작가는 끈기 있게 자신의 손으로만 작업을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더욱 돋보인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만화가의 여행
    제목 : 만화가의 여행 작가 : 크레이그 톰슨 출판 : 미메시스 크레이그 톰슨이 2004년 3월 5일부터 5월 14일까지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작가의 정식 작품이 아닌, 새 작품이 나올 때까지 독자들을 위해 만든 '간식' 같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여행기는 훌륭하다. 작가 자신의 사사로운 기록이지만, 그가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경험한 이야기는 보편성을 갖는다. 작가는 그의 작품 '담요'가 크게 성공하면서 유럽의 출판사에서 출판이 이루어지고, 출판사의 초대를 받아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게 된다. 그 가운데서 주요 무대인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에서 지낸 나날을 그림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그림은 작가가 온전히 기억에 의존해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즉 카메라를 가자고 다니지 않았다는 말인데, 이 작품의 그림을 보면 그 장면, 구도, 묘사가 기억만으로 그린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고 뛰어나다. 작가는 프랑스에서 며칠 머물며 신문과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고, 사인회를 한 다음 그가 가보고 싶었던 모로코로 가서 약 한달 정도를 머문다. 모로코에서 있었던 일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그는 열린 마음으로 모로코의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모로코는 가난한 나라여서 외국인 여행자에게 어린이들이 달려들어 구걸을 하거나, 가이드를 해준다면서 쇼핑을 강요하거나 공공연히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혼자 왔지만 모로코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 함께 지내기도 하고, 유럽에서 온 다른 여행객들과도-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친하게 지낸다. 작가는 날마다 스케치북에 풍경과 사람을 그리고, 일기처럼 기록을 남긴다.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을 하고, 자기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작가는 어지간하면 이런 부탁을 들어주지만 이미 손에 관절염이 생겨 오래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작가는 모로코에서 약 한달 가까이 지내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작가가 만나는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하는-그래픽 노블-작가들이나 출판사 관계자들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에서도 유명한 그래픽노블 작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크레이그 톰슨이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도 큰 재미가 될 것이다. 프랑스에서 싸인회, 인터뷰, 출판기념회 등을 하면서 친구와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편안하고 따뜻한 나날을 지내던 작가는 스페인으로 간다. 그곳에서도 작가의 작품 '담요'가 번역 출판되어 만화박람회에 참석하게 되는데, 역시 싸인회, 인터뷰 일정이 여럿 잡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페인에서의 추억을 특별하게 그리는데, 가우디의 사그라다 피말리아를 비롯해 가우디의 건축물들과 바르셀로나의 공원, 시내를 돌아다니고, 박화박람회에서 만난 동료 만화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작가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데, 우연히 만난 여성과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경험한다. 이런 내용은 만화적 장치일 수도 있지만 그의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은 사실적이다. 이 작품이 주는 의미는,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날마다 그림 일기를 꾸준히, 성실하게 그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이 남다르다는 걸 느끼는 데 있다. 작가는 분명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훌륭한 작가일수록 그런 남다른 시각은 독특하고 개성 있게 표현한다. 크레이그 톰슨 역시 평범한 나날의 일기를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작품이 되도록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 진정한 '프로'임을 입증한다고 본다. 작가가 그린 그림을 보면, 밑그림을 하지 않고 곧바로 붓펜으로 선을 그려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밑그림 없이 한번에 그린 그림이라면 그 공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작가가 줄곧 손의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불과 30대의 청년이 펜으로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렸으면 관절염까지 오게 될까를 생각하면, 뛰어난 작가가 된다는 건 타고난 재능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노력과 훈련이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 문화
    • 만화
    2021-11-18
  • 담요
    제목 : 담요 작가 : 크레이그 톰슨 출판 : 미메시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 작가의 가족, 종교, 학교, 친구들 그리고 우연히 만났지만 주인공의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었던 레이나와의 만남까지를 사실적으로 그린다. 처음 이 만화를 보고 느낀 감정은 주인공의 이기적 태도에 약간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주인공의 태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그렇게 행동하기까지 그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의지와 전혀 관련 없이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주었다. 이 만화에서도 그렇듯, 어린이가 종교의 일방적 세례를 받으면 정서적으로 피폐하며, 잘못된 생각을 주입당해 밝고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지 못한다. 어린이를 종교의 굴레를 씌워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키우려는 부모의 어리석음과 무지는 결국 가족 모두에게 불행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학교에서도 힘센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학교도, 집도 편안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학대를 당하며 자란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는 엄격하긴 해도 육체적 학대를 하지는 않았고, 학교에서도 힘센 아이들이 괴롭히긴 했어도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랜동안 종교의 특정한 이념에 노출되었고, 종교에서 말하는 '죄악'의 개념 때문에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겼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 재미 없는 학교에 다니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고, 알 수 없는 죄의식과 답답한 나날을 이어가던 주인공은 여름 성경캠프에서 여학생 레이나를 만난다. 캠프에서 알게 된 둘은 캠프에서 돌아와 서로 편지를 나누고, 전화도 하면서 서로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모의 허락을 받고 레이나의 집에서 두 주일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부모님의 차를 타고 위스콘신과 미시간주의 경계에서 만난다. 위스콘신과 미시간 사이에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미시간 호수가 있다. 작가도 어린 시절 미시간주의 트래버스시티에서 태어났으니 미시간과 인연이 있었다. 주인공은 레이나의 집에 도착하고, 레이나의 가족과 인사를 나눈다. 레이나의 부모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어서 집안이 어수선하다. 레이나의 언니는 일찍 결혼해 집 근처에서 따로 살고 있고, 집에는 레이나의 오빠와 언니가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입양을 했는데 장애를 가졌다. 이 작품은 3분의 2는 레이나의 집에서 지낼 때의 추억을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부모의 종교적 편견 때문에 어린 시절을 죄의식과 공포, 두려움 속에서 자란 두 사람 모두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았다. 레이나의 부모는 아직 법적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레이나의 아버지는 따로 나가서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날마다 장애가 있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역시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목재소에서 일을 한다. 레이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애가 있는 언니를 돌봐야 하고, 일을 하는 어머니 대신 집안 일도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과 레이나는 짧은 시간을 내서 데이트를 하고, 산책을 하고, 눈쌓인 산에 올라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시기가 마침 겨울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위스콘신과 미시간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을은 항상 눈이 쌓였고, 눈도 자주 내렸다.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는데, 이건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어쩌면 의도했던-은유이기도 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의미한다. 순수한 청년들의 마음, 순수한 사랑, 그들 둘만의 순수한 시간, 시끄럽고 불안하며, 일상의 시끄러움과 더러움으로부터 떨어져 깨끗하고 순수하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공간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두 주일동안 함께 지내면서 친구이자 연인으로 가깝게 지내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처럼 덤덤한 시간들도 보낸다. 크레이크는 레이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도 레이나와 둘이 집에 있을 때와 밖에 나와서 카페에 갔을 때나 집에서도 레이나가 집안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사뭇 다른 것을 느낀다. 크레이그는 레이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레이나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어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고,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도 낮고, 미래가 불투명하며, 집안의 형편이 복잡하고 가난해서 삶이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다. 레이나는 특히 장애가 있는 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하다. 크레이그와 레이나가 함께 한 두 주일이 지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두 사람은 전화로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고, 크레이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레이나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든다. 레이나에게 전화해 이제 인연을 끝내자고 말한 것도 크레이그였다. 레이나의 보이지 않는다. 레이나도 아마 예상하고 있었을까. 레이나의 반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크레이그의 태도가 이기적으로 보인다. 크레이그는 스무 살이 될 무렵 집에서 나와 독립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집에 들르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는 집의 다락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담요를 발견한다. 그 담요는 크레이그와 레이나가 처음 만났을 때, 레이나가 크레이그를 위해 미리 준비한 선물이었다. 레이나가 여러 천을 짜집기해서 만든 담요는 정성을 많이 들인, 아름다운 담요였다. 레이나와의 추억이 담긴 모든 물건을 불태웠지만 담요만은 보관하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집을 떠나 도시(뉴욕)에서 생활하며 스무 살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교회에서 금기했던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크레이그는 동생 필의 결혼식 때문에 집을 방문하고, 다시 몇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때까지 온전하게 가족들은 잘 살고 있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때, 그는 혼자 눈 내리는 집 주변을 산책하며 과거의 삶을 돌아본다. 물론 레이나와의 특별한 추억도 함께.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작가의 다음 작품인 '만화가의 여행'에서, 옛날 여자친구와 통화했다는 내용이 가끔 나온다. 그 여자친구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레이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 문화
    • 만화
    2021-11-15
  • 수중용접공
    제목 : 수중용접공 작가 : 제프 르미어 출판 : 미메시스 잭은 수중용접공이다. 그의 아내는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로, 잭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특수용접을 해야 하는 현실을 걱정한다. 잭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늘 해오던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일하러 나간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바다 위에 세운 구조물(시추선)의 물속 기둥에 균열이 생기면 용접공이 들어가 보수작업을 하는데, 물속에서 하는 용접은 특수용접이고, 산소통을 메고 헬맷을 쓰고 하는 일이라 육체적으로 몹시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수중용접에는 건식과 습식이 있는데, 잭이 하는 수중용접은 습식으로 건식에 비해 간편하고 설비비가 싸며, 응급처치를 할 때 활용한다. 수중 아크용접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일이 위험해서 임금이 높다. 한국에서는 하루 임금이 100만원에 가까울 정도라고 한다. 잭이 수중용접공으로 일하는 것도 임금이 높기 때문이고, 일을 적게 하고 아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위험해도 잭은 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잭은 용접을 하다 갑자기 어디선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는 회중시계를 발견하고 그걸 집으려다 정신을 잃는다. 잭이 눈을 뜨자 그의 동료들이 그를 걱정스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가 고장나서 산소 공급이 끊겼고, 잭은 질식해서 기절한 것이다. 다행히 그의 동료가 일찍 발견해 끌어올렸다. 의사는 잭에게 정밀검사를 받고 당분간 일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지만 잭은 당장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결국 잭은 집으로 돌아오고, 임신한 아내는 안심하지만, 잭은 목욕을 하다 환각을 본다. 피곤했던 잭은 아내와 잠이 들고, 그는 꿈을 꾼다. 어린 잭은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바닷가로 간다. 아버지는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 개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의 꿈은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찾는 것이다. 잭이 10살이던 때, 아버지는 잭을 데리고 바다로 나와 보물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나이 33살이었고, 시간이 흘러 잭이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잭은 엄마를 만나보러 가고, 만삭의 아내는 오후에 잭과 함께 조산사를 방문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엄마를 만난 잭은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그가 찾는 회중시계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다, 바닷가에 앉아 잠깐 과거를 회상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잭은 화난 아내에게 심한 비난을 받자 편지를 쓴 뒤 집을 나가 시추선으로 돌아간다. 그는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 회중시계를 발견하고 다시 시추선으로 올라오지만, 시추선은 망가져 있고,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그는 현재의 자신과 어린 시절의 모습을 오가며 현실과 과거의 기억이 뒤섞이며 혼란을 일으킨다. 그는 단골 술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잭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잭은 아내가 사라진 걸 발견하고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시추선으로 돌아가 바다 밑으로 들어간다. 그가 깊은 바다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자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버지가 건네주는 회중시계를 받아들고 아버지와 진심으로 화해한다.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는데, 누군가 잭을 구하러 내려온다. 잭은 물속에서 정신을 잃어가며 앞에서 발생한 모든 일들을 환각으로 본 것이고, 그가 환각 속에서 만난 아버지와 엄마, 아내 수지와의 대화와 갈등은 잭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마음의 번뇌였다. 이 작품은 한번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해는 하지만, 잭의 갈등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찬찬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잭의 행동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출산을 앞둔 아내를 지켜줘야 하지만, 잭은 자꾸 바다로 들어가려고만 하고, 이미 오래 전 죽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집착한다. 잭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자. 잭이 열 살 때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 따로 살면서 일주일에 한번 잭을 만나러 왔다.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가 받은 충격을 잭의 부모는 알지 못했고, 공감하거나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잭은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스스로 끌어안고 살아야 했으며, 쌀쌀한 엄마와 다정하지만 알콜중독자 아버지 사이에서 마음을 편하게 내려 놓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어른이 된 잭은 수지를 만났고, 수지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잭은 임신한 수지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기의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자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고, 아버지라면, 열 살 때, 보물을 찾으러 바다로 들어간 알콜중독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 인해 잭은 깊은 상실감을 갖게 되고, 트라우마가 되었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아들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잭 자신도 어린 아들을 두고 어디론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다. 잭은 아버지가 된다는 현실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에 사라진 아버지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이혼으로 갈라진 부모, 사랑이 없었던 어린 시절,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등이 혼재된 그의 내면은 분열적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든 감정이 수중용접을 하다 사고가 발생하고,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질식해 가는 상태에서 환각과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동료에게 구조된 잭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고, 막 출산한 아내와 아기를 본다.
    • 문화
    • 만화
    2021-10-31
  • 내 가족의 역사
    제목 : 내 가족의 역사작가 : 리쿤우출판 : 북멘토 중국 만화가 리쿤우의 작품.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중국의 그래픽노블이 한국에 소개된 경우가 적어서 유럽의 그래픽노블보다는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작품은 한 중국인이 발견한 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의 잔학함과 중국인의 희생이 얼마나 참담했던가를 밝히는 내용이다.작가 리쿤우는 (나는 잘 모르지만) 중국에서 유명한 만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리쿤우는 1955년에 태어나 중국군으로 복무한 다음, 신문사에 입사해 디자이너,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지금은 만화창작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골동품 시장을 둘러본다. 그러다 어떤 골동품 장사와 손님이 다투는 장면을 보게 되고, 골동품 장사가 말다춤을 하는 가운데 '애국주의 국보'라는 말을 한 것을 주인공이 듣고는 골동품 장사에게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이냐고 물어본다. 골동품 장사는 '청일전쟁'에 관한 그림 자료라고 말하고, 주인공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물건을 보관한 창고로 데려가 그 자료를 보여준다. 청일전쟁 관련 자료는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1894년에 만든 한 장짜리 화첩이었다. 주인공이 그 자료를 구입하려 하지만 너무 비싸게 불러 구입하지 못하게 되고, 대신 골동품 장사는 그 자료를 주인공에게 돈을 얼마간 받고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빌린 화첩을 주인공은 컬러 스캔으로 복사를 하고 돌려준다. 그러면서 골동품 장사에게 사실대로 말을 하고, 나중에 원본을 비싸게 부른 값을 다 주고 사겠다고 말한다.골동품 장사는 그 자료보다 훨씬 더 귀한 자료가 있다고 주인공에게 말하고, 그 사진 자료를 보여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그가 말한 자료가 어떤 자료인지 궁금해서 날짜를 정해 두 사람은 마을 외각의 빈민가로 향한다. 그곳에는 골동품 장사의 스승이 살고 있는데, 옥탑방에서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는 노인을 찾아간 주인공은 골동품 장사가 어렵게 꺼내온 화보집을 보고는 몹시 놀란다. 그 자료는 일본군이 '중일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으로, 일본군이 중국에서 활약한 내용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사진집이었다. 주인공은 당장 그 자리에서 카메라로 화보집을 찍고, 찍은 사진을 일본어를 잘 아는 후배에게 보낸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정리한 사진을 보며 화보에 찍힌 사진의 의미를 살핀다. 그가 찍은 화보를 소유한 노인은 죽어도 그 화보를 팔지 않겠다고 했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장소에 간 주인공은 빈민촌이었던 마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 빌딩이 들어선 것을 알고는 난감해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자료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발견한 화보집은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이라는 제목의 화집인데, 1939년에 발행한 책이다. 1937년에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중국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그것을 자신들의 승리의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어서 화보로 만들어 홍보했다.중국에서 '중일전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만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주인공이 발견한 화보집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정도를 넘어서는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이 강했다. 주인공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말한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은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다.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홍보하기 위해 중국 뿐아니라 당시 조선에서도 같은 화보집을 출판했는데, 주인공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대단한 자료를 발견한 것처럼 생각한다. 1939년에 부산일보사에서 발행한 자료로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이 있다. 이 만화에서 대단한 자료로 언급한 바로 그 화보집이다. 그러니 이 만화에서 언급한 자료의 가치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물론 그들 중국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수 있다-생각이 들었다.이 만화가 기대 이하였던 것은, 주인공이 발견한 자료의 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만화의 절반 이상을 이 화보의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자료가 역사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 사진을 그대로 만화에 실었다고 생각하지만, 만화의 절반 이상을 사진으로 채우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이 작품을 그린 작가 리쿤우가 중국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위상이 높은 작가인지 알 수 없지만, 만일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즉,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절반 이상을 사진으로 채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면-나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작가의 안일하고 무능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을 것이다.솔직히 말해서, 이따위를 만화로 그리고 있는지 한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화보 사진을 만화의 절반 이상 그대로 싣고는 그걸 자기 작품이라고 출판하는 태도가 용인되고, 또 그것이 마치 훌륭한 작품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예술 수준이 어떤가를 알 수 있고, 중국의 그래픽노블 수준의 천박함을 알 수 있다.작가는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만화는 만화도 아니고, 작품은 더더욱 아니며, 추천할 만한 책도 아니고, 만화의 수준도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이 만화가 의미는 있겠지만, '그래픽노블'로서의 작품성은 인정하기 어렵다.
    • 문화
    • 만화
    2021-10-31
  • 엄마들
    제목 : 엄마들 작가 : 마영신 출판 : 휴머니스트 표지가 기막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의도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하고 좋은 방법은 표지 그림인데,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한국적'인 표지그림은 이 작품이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표지 그림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엄마들'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엄마'라는 따뜻하고 편안하며 행복한 이미지의 추상이지만, 그 아래 두 중년 여성이 서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악을 쓰는 모습은 '엄마'라는 기존의 추상적 이미지를 산산히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바탕의 빨강색은 중년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알려졌는데, 빨강의 강렬한 색감과 흑백의 인물이 강조되면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드라마틱한 사연을 풀어놓을 거라는 기대를 준다. 이 만화를 그린 작가 마영신은 엄마의 생활을 지켜보다 엄마에게 노트와 펜을 주고 엄마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자기와 친구 이야기를 솔직하게 썼고, 작가는 엄마가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니 스토리 작가는 마영신 작가의 엄마인 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소연이다. 중년의 여성이고, 아직 독립하지 않은 아들과 함께 사는데, 자기 이름으로 남은 유일한 재산은 연립주택 가운데 한 채다. 소연은 스무살에 중매로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셋이나 낳아 길렀지만 남편이 도박에 빠져 집안을 망치고 빚만 늘어나자 소연은 빚을 갚기 위해 평생 가난과 노동에 허덕였다. 그러다 결국 이혼을 하고 지금은 건물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소연에게는 애인 종석이 있는데 술집 웨이터로 일하는 남자다. 종석의 아내는 다단계에 빠져 빚이 많은데다 종석의 동창하고 불륜 관계여서 사실상 이혼한 상태로 생각하고 있다. 소연의 친구인 연순, 경아, 연정, 명옥이 등장학고, 이들은 각자 나름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연순은 남자가 자주 바뀌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간, 쓸개를 다 빼주는 속없는 여자라고 친구들에게 욕을 먹지만, 연순은 순정이 있는 여자다. 연정은 남편이 성불구여서 늘 불만이 가득한데, 애인을 쉽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는 알고 보니 게이였다. 소연은 애인인 종석이 3년 전부터 꽃집 여자를 만난다는 말을 듣고는 종석에게 욕을 하며 헤어지지만 이들의 삼각관계는 이어진다. 꽃집 여자 명희는 소연에게 종석과 헤어지라고 말하고, 소연은 '내 남자와 연락하지 말라'고 카톡을 하다 새벽에 길거리에서 만나 육탄전을 벌인다. 작품 속 엄마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자들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엄마'라는 이름에 가려진 그녀들의 모습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사회적 약자,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체제 속에서 억눌린 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피억압자의 모습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대개 부자도 아니지만 많이 배우지 못한 여성들이어서 자기들의 삶이 왜, 어떻게 망가져 왔는지 깊은 성찰을 할 능력은 없다. 남자(남편을 포함한 애인까지)들이 저지른 일을 뒤치닥거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면서도 자신보다 남자, 자식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던 여성이 바로 '엄마'다. 하지만 '엄마'도 나이 들면서 자기 욕망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오랜 시간 너무나 많이 참았고, 남자와 아이들에게 시달렸고, 자신의 행복을 유예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춤을 배우고, 나이트클럽과 콜라텍에서 낯선 남자들과 춤을 추고, 애인을 사귀고, 삼각관계에서 질투와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들'의 다른 모습은 '여성노동자'다. 그것도 비정규직의 불안한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한다. 소연은 빌딩 청소를 하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는 소연과 비슷한 나이와 처지에 있는 여성들이 함께 일하고 있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용역업체의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빌딩에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사무실에는 책상에 앉아 일하는 정규직 사무노동자들이 있지만, 빌딩 청소를 하는 중년의 여성노동자들은 그들에게 거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용역업체에서 나온 관리자의 눈치도 봐야 하고, 같은 처지에 있지만 '반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동료 노동자의 눈치도 봐야 하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여성노동자들도 모두 '엄마'들이다. 이들은 밥도 화장실에서 먹어야 하고, 편히 쉴 장소가 없어 계단이나 비품창고 같은 구석에서 쉬어야 한다.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해 달라고 소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한 옥자언니는 성추행을 당하고 해고된다. 옥자언니는 여성가족부도 찾아가고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도 찾아가지만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용역업체 소장은 반장을 시켜 어용노조를 만들도록 하고, 16명 가운데 12명이 어용노조에 가입하고, 4명이 된 소연과 동료들은 따돌림을 당한다. 소연은 라디오 방송에 나가 일하는 회사에서 부당 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고발한다. 라디오 방송의 파급 효과가 있어 소장은 소연을 비롯해 모두 해고될 거라고 협박하지만 결과는 용역업체와 소장이 바뀌고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남았는데, 소연과 연정언니는 해고된다. 소연은 옥자언니와 다른 업체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 예전 업체에서 반장을 했던 사람이 들어온다. 떡값을 빼돌리다 들통나서 해고되자 우연히 소연이 일하는 곳으로 취업한 것이다. 소연은 삼각관계였던 명희와 친구가 되고, 연순은 만남 어플로 연하의 남자를 만나고, 명옥이는 기자 애인과 계속 만나고, 연정은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고, 경아의 남편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모두들 여전히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50대와 60대 가난한 여성의 삶은 그렇게 구질구질하면서도 끈끈하고, 현실에 충실한 나날을 보낸다.
    • 문화
    • 만화
    2021-10-31
  • 빨간약
    제목 : 빨간약 작가 : 권용득,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마영신, 한수자 출판 : 보리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는 만화가들의 단편 모음집. 한국에서 '작가주의 만화'는 곧 그래픽노블을 뜻한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을 보면, 그동안 작가 자신과 사회에 관한 발언(작품)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기획부터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관해 만화가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분위기를 표현해 보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 부패, 악의적 왜곡, 탐욕과 사리사욕으로 뭉친 권력의 남용,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착취와 폭력에 관해 언론, 방송, 지식인들이 말과 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렇게 만화가들이 작품으로 발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 현실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작가들이 많을수록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커질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집은 모두 여섯 명의 작가가 그린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_ 김성희 나의 전교조 선생님_ 김수박 일베는 우리 동무_ 마영신 두 할머니_ 한수자 진짜 간첩_ 김홍모 최선의 선택_ 권용득 김성희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작가보는 세상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부모(기성세대)와 생각이 달라서 갈등을 빚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저지투쟁, 용산 철거민 침탈 사건, 종북몰이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약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 많은 사건들과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독단과 탐욕 때문이다. 박근혜의 당선 뒤에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독재를 한 박정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고, 독재의 권력 뒤에는 자본의 악랄함이 마치 일란성 쌍동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수박의 '나의 전교조 선생님'은 작가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김동순 선생님을 회고하고 있다. 작가는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강연도 하는데, 마침 교사들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김동순 선생님은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교조 선생님이었고, 전교조가 불법이라는 정부의 결정으로 교단에서 쫓겨난 김동순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과 친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잔잔하게 말하고 있다. 마영신의 '일베는 우리 동무'는 작가가 일베 사이트를 폭파하기 위해 만화를 연재하려다 실패한 이야기와 함께, 일베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소수 의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주장한다. 이 만화집의 주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니까, 불편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당연한데, 일베의 성격을 너무 온건하고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작가의 날카로움이 부족한 느낌이다. 일베는 이해나 동정의 여지를 갖고 바라볼 대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일베에서 패륜을 저지르는 자들이 중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교화의 대상일 뿐, 이해와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일베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물론 그 전에도 패륜아들은 존재했지만-패륜을 부추기고, 조장한 권력의 탓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법의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일베충들에 대한 패륜은 아직도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혐오를 조장하고, 패륜을 저지르는 자들의 반사회, 반민주주의 행위는 강력한 처벌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수자의 '두 할머니'는 김전숙, 이명신 할머니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두 분은 전쟁 직후 북한에서 내려왔다가 붙잡혀 간첩죄로 감옥에서 10여년을 복역하고 나왔고, 이후 6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 해방된 나라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겪어야 했던 그 고난의 세월과 감옥에서 견딘 10여년 그리고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시간은 두 분에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단호하고 묵묵히 자본주의 체제를 견디고 있다. 김홍모의 '진짜 간첩'은 34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남파간첩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1959년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서울에서 조직책임자였던 자의 배신으로 곧바로 정보기관에 잡혔고, 감옥 안에서는 전향공작으로 참혹한 고문을 견뎠다. 남한 정권에서는 '간첩'이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고, 반제, 반일 활동을 한 애국자였으며, 많은 애국자들이 '간첩'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용득의 '최선의 선택'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불법 요소가 있다는 의심을 하는 작가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그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고, 불법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그런 의심을 검증할 제도나 권력이 시민에게 없었기 때문에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결국 탄핵당했다.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선택해야 하는 두 가지 색깔의 약 가운데 하나다. 빨간약과 파란약. 파란약을 먹으면 현실에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고, 빨간약을 먹으면 '진짜 현실'을 알게 되며 그렇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고난에 대해서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진실의 약이다.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약을 내밀면서 선택하라고 하면 '빨간약'을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문화
    • 만화
    2021-10-31
  • 달리
    제목 : 달리 작가 : 애드몽 보두앵 출판 : 미메시스 스페인의 '천재' 화가로 알려진 살바도르 달리의 일대기를 그린 그래픽노블. 프랑스의 작가 애드몽 보두앵이 그렸다. 그의 그림이 달리의 삶을 표현하는데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초현실주의자 달리의 작품을 모티브로, 작가 보두앵은 달리의 삶을 초현실주의의 작품처럼 표현하고 있다. 달리는 피카소와 함께 스페인이 배출한 현대의 천재 예술가인데, 피카소와는 또 다른 달리만의 특징은, 그가 '미술' 또는 '회화'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영화, 연극(무대), 백화점 디스플레이, 책, 디자인, 광고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전천후 인물이라는 점이다. 달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알고 있었고, 스스로를 '천재'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학생일 때부터 이미 전시회를 열면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그가 보통의 작가들처럼 한 가지 분야 즉, '회화'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형식과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동기는 한두 가지 사건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어릴 때 여자가 되고 싶어했고, 스스로 아름답다는 나르시즘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어릴 때 세상을 떠난 형의 죽음에 집착했다. 청소년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청년기에 피카소를 만났다. 그는 무정부주의자, 무신론자를 자처했으며, 한때는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 달리는 예술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초현실주의자가 된 것을 당연한 결과로도 여겼다. 달리는 예술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당대 과학과 철학의 흐름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04년에 태어난 달리는 제1차 세계대전을 어려서 겪었기에 그 참상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에 휩싸인 유럽의 어둡고 비참한 분위기는 그의 정서에 영향을 끼쳤다. 달리는 왕립미술학교에 다니며 큰 어려움 없이 학교 생활을 했고, 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데, 루이스 부뉴엘 같은 영화감독이 그의 친구였다. 나중에 달리는 부뉴엘과 함께 영화 '안달루이사의 개'를 만들기도 한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할 때, 달리는 그의 연인 갈라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는 이미 미국에서도 달리는 유명한 작가로 알려졌고, 그는 미국에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다. 달리의 일대기를 그린 보두앵은 달리의 업적보다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달리가 어릴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증거들은 많은데, 그가 여장을 한다거나, 청소년기에 또래의 여성 앞에서 나체로 있었다거나, 수음을 자주 했다거나, 기억도 하지 못하는 형의 죽픔에 집착하거나, 죽음의 공포에 민감한 정서 등이 그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모습들이었고, 보두앵은 달리의 잠재의식과 무의식, 어릴 때 겪었던 정신적 충격 등을 초현실적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두앵의 그림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또한 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문화
    • 만화
    2021-10-31
  • 좁은 방
    제목 : 좁은 방 작가 : 김홍모 출판 : 보리 잠자기 전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생각했다가 끝까지 보게 된 만화. 예전에 작가가 웹툰으로 연재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주인공 용민은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갇힌다. 그가 재판을 받고 풀려날 때까지 약 8개월 동안의 구치소 생활을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은 시대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용민이 대학생이던 90년대 중반의 상황은 분명 문민정부 시대였다.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3당 야합이 있었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을 처벌하는데 실패했다. 용민(이자 작가 자신)이 활동하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학생운동은 활발했다. 작품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와 경찰백골단의 격렬한 대립으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산화한 학생 열사들도 많았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용민이 구치소에 갇혀 감방 동료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선택이긴 하지만, 감옥 생활이 약간 낭만적으로 묘사된 것은 감안하고 봐야 한다. 주인공 용민은 학생운동권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총학생회 부회장이어서 처벌도 더 엄하게 받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용민의 경험으로만 보면, 학생이 경찰에 잡혀와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은 것은 퍽 의례적이다. 90년대 중반의 사회상황이 80년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이한열 최루탄치사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 경찰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80년대와 그 이전 시기의 민주화운동, 감옥 생활을 잘 그린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다'와 '짐승의 시간'이다. 두 작품 모두 박건웅 작가의 작품으로, 비전향장기수, 김근태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이 작품에서 경찰은 잡혀온 학생들을 폭행하거나 고문하지 않는다. 주인공 용민만 겪은 예외적인 상황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용민과 그의 친구들이 구치소 안에서 생활 개선 투쟁을 벌일 때도 교도관들은 학생들을 달래기만 할 뿐,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용민이 깨닫는 건, 그들의 힘이 더 강하고, 정부가 학생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시민들의 여론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정부가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용민은 '사상범'으로 분류되었지만, 강력범들 가운데서도 전과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 용민이 관찰하는 조폭들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몸에 문신과 흉터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용민이 생활하는 8개월 내내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오히려 범죄자라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구치소 생활개선 투쟁을 할 때도 함께 하는 등 학생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용민도 대학에 들어와서 광주항쟁에 관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바탕에는 그의 아버지 역할도 컸다. 자식이 어렵게-무려 3수를 하면서-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시위만 하고 다니고, 수배자가 되어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우리의 부모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 정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용민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을 믿고, 반대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으로, 구치소의 경험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처럼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 경험을 그래픽노블로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은 매우 드문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홍모 작가의 그림이 참 좋다.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의 그림이 퍽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문화
    • 만화
    2021-09-26
  •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제목 : 저 하늘에도 슬픔이작가 : 이희재출판 : 청년사 이윤복은 대략 1951에서 1953년 사이에 태어났다. 한창 한국전쟁이던 시기에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 역시 몹시 가난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윤복의 동생은 모두 세 명으로, 순나, 윤식, 태순이가 있다. 윤복이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가난이 너무 힘에 겨워서였거나, 남편이 폭력적이었거나 두 가지 모두가 원인이었거나 하겠지만, 시간이 흘러 윤복이 쓴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윤복이 신문에 등장하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영화로 유명해지면서 집을 나갔던 엄마와도 연락이 되는 걸로 알려졌다. 윤복의 바로 아래 동생인 순나도 돈을 벌겠다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집을 나갔는데, 윤복의 일기가 책으로 나오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윤복이 국민학교 4학년이던 당시는 1960년대 중반이다. 95%의 사람들이 빈민이어서 가난은 당연하고,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집도 드물었다. 설령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쌀밥이 아닌, 잡곡, 밀가루, 죽 같은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고, 김치를 많이 넣고 끓인 쌀죽이나 수제비, 양이 많은 국수 등을 먹었다.모두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윤복의 집은 특히 더 가난했다. 그의 가족은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거나 이틀, 사흘씩 끼니를 굶을 때도 있었으니 아이들의 배고픔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매우 안쓰럽다.윤복은 집안의 장남으로 소년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목수였으나 몸이 아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가 집을 나가 사라진 상황이라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윤복은 거리에서 껌을 팔아 푼돈을 벌어 끼니를 해결하거나, 돈이 없을 때는 동생 윤식과 함께 집집을 다니며 밥과 쌀을 구걸해 먹었다.다행히 그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선생님이나 급우들은 윤복의 처지를 알고 도와주었다. 특히 김동식 선생님이 윤복의 처지를 알고는 경제적 도움은 물론, 친구 기자에게 윤복이의 삶을 보도하도록 소재를 제공하고, 윤복이 쓴 일기를 보고 책으로 내는 일에 도움을 주는 등 윤복의 삶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윤복이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덕분에 윤복의 가정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윤복 자신에게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다. 윤복은 39세에 병을 얻어 사망하는데,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려서 헤어졌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 함께 살았다. 짧고도 기구한 삶이었지만, 이윤복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일기를 썼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의식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다. 더구나 윤복의 처지는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음에도 그가 글을 꾸준히 썼다는 것이 다른 어린이들과 달랐고, 그 일기의 내용이 솔직하고 절절한 자기 감정과 생각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남다른 점이었다. 누가 윤복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을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일기는 윤복의 자발적 의지에 따랐을 거라고 생각한다.윤복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가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이윤복과는 약 10년 정도의 터울이 지는데, 윤복의 경험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우리집도 매우 가난했고, 가끔 밥을 굶었으며,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벌을 받거나 집으로 돌려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친구와 신문을 떼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신문을 팔아본 적도 있고,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해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에서 믈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아버지가 무능한 것도 같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일을 해 우리 가족을 먹여살렸다.윤복의 삶을 들여다보면, 나는 고생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모두들 사는 것이 고생이었고,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을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윤복의 가족은 빈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사실 빈곤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리라.이 만화를 그린 이희재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인 이윤복과 동년배다. 작가가 어린시절에 우연히 이윤복의 일기를 읽게 되었고, 자기와 같은 나이의 윤복이 겪은 가난의 설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이희재 작가는 퍽 좋아하는 작가인데, 우선 그의 그림이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그림에서 먼저 빛이 난다. 주인공들의 생생한 모습이 살아 있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의 선은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는 느낌이다.이제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한국이지만, 우리의 이웃들 가운데 극소수는 여전히 윤복이의 가족처럼 힘겹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 언론에도 보도되는 것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있고, 가난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다수가 굶주림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문제가 절대절명의 상황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늘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이리라.
    • 문화
    • 만화
    2021-09-26
  • 수상한 연립주택
    제목 : 수상한 연립주택작가 : 오영진출판 : 창비 서울 변두리 마을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는 모두 여섯 가구가 살고 있다. 건물 주인이 바뀌어 새 주인이 이사를 오는데, 세입자들은 건물주인을 우습게 생각한다. 연립주택에서 가까운 곳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집주인 남자이고, 여자는 부잣집 딸로, 남편의 병원을 친정아버지가 차려주었다고 남편을 우습게 아는 여자다.옥탑방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청산유수로 하는 청년이 사는데, 고시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그냥 백수다. 옥찹 아래 4층에 주인 내외가 살고, 3층에는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박사장 가족, 2층에는 아내가 회사 다니고, 남편인 오공식은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고, 1층이자 반지하에는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면서 유흥업소에서 밴드 마스터로 일하는 남자 강씨와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장씨 할머니가 있다.이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소시민의 삶이 대개 거기서 거기라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잘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집주인은 이 연립주택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지으려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힘으로 밀어부치던 집주인은, 조물주보다 위라는 건물주의 위세가 전혀 먹히지 않자, 세입자를 회유해 '문화통치'를 시도한다.그 와중에 집주인 여자는 옥탑방 청년과 바람이 나고, 어느날 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발표되면서, 집주인이자 '항문외과' 원장인 의사는 마침내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도 잠시, 연립주택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사는 비둘기가 희귀한 종이어서 그 지역이 재개발지역에서 제외된다는 구청직원의 말을 듣고, 집주인 의사는 특단의 조치를 마련한다. 그것은 새를 잡아먹는 뱀을 몰래 들여와 나무에 풀어놓자는 계획인데, 그 계획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이야기는 좀 황당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옥탑방에 사는 남자는 고시공부를 하지만 그는 이미 7년째 시험에서 떨어졌고, 앞으로도 시험에 붙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는 백수다. 하지만 외모가 번듯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은 좋다. 시험에 합격하진 못했어도 그동안 읽은 책이 있어 법에 관해 잡다한 지식이 많다. 그래서 집주인이 하는 말을 법률적으로 반박하기 때문에 집주인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집주인 여자가 이 청년에게 반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연하의 남자이고, 외모도 잘 생겼으며, 말도 청산유수로, 교양 있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집주인 여자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그 여자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옥탑방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고3 학생 강희인데, 유흥업소 밴드마스터로 일하는 강씨의 딸이다. 모두들 사연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반지하에 사는 장씨 할머니다. 장씨 할머니의 아들이 이 연립주택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고, 그 보상으로 반지하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씨 할머니는 집주인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낡은 연립주택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헐리게 되어 있다.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마침내 그때가 오고, 연립주택은 재개발로 인해 헐리게 된다. 한 건물에 살며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오던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집주인 남자만 행방불명이 되고,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남긴 채 끝난다.오영진은 이전에도 독특한 소재로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그의 그림은 개성 있다. 그의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퍽 아쉬운데, 작가에 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함께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실성과 유머, 공감을 함께 보여주는 내용이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6
  • 사랑은 혈투
    제목 : 사랑은 혈투작가 : 바스티앙 비베스출판 : 미메시스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 그래픽노블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사, 지문이 거의 없고, 빠르게 그린 듯한 데셍과 거칠지만 적절한 색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판 제목은 '사랑의 혈투'지만 원제목은 '도살'이라고 한다. 제목이 잔혹하지만, 내용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오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수많은 나날을 함께 지내면서 때로는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즐겁고, 기쁘게 지내는 연애의 과정을 단순한 그림이지만 생생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연애 초기, 연인은 헤어지기 아쉽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애틋한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뒤를 이어 곧바로 수송기에서 낙하하기 직전의 군인 모습이 보이고, 낙하(연애)가 처음인 신병에게 선임병이 말한다. 저 아래(연애의 세계)에 '엄청난 살육'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충고한다.청년은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두 사람은 왈츠를 추는데, 이 춤이 곧 연애를 상징한다. 두 사람이 서로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것은, 사랑하는 관계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오해가 일어나고, 한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일은 연애 기간이 지속되면서 가끔 일어나고, 두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육체에 상처를 입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남성이 여성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 여성이 남성의 어깨를 칼로 찌르는 장면은 오해와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몸을 다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두 사람은 결국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이별 음식'을 선택하는데, 그들이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의 애틋함과 다정함은 이별의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어정쩡하게 헤어지고,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자, 연인이었던 남자는 여성에게 달려가 사랑을 구걸한다. 여자 역시 예전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새로 만난 남자를 버리고 달려가지만,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실망하고, 담담하게 헤어진다.사랑과 연애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험이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는 스무살, 서른살이 되어도 연애를 못해본 사람들이 있다는데, '모태 솔로'라고 자조하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청년 시기에 사랑과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보면, 일부이긴 해도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찌질함과 위험한 모습이 보이는데,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을 스토킹하거나,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거나, 그걸로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협박하는 걸 보면서 연애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삶에 큰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남녀의 사랑은 자신과 가장 유전인자가 먼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한다. 즉, 유전적 친화관계가 멀수록 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로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는 호르몬 분비를 통해 자신과 가장 다른 사람(이성)을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다른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면,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2세가 태어나 유전자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유전적으로 멀다고 해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애정의 깊이에 거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감성, 지성에 따라 상대를 선택한다. 즉, 유전자와 사람의 이성이 복합적으로 상대방을 선택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정신병동 이야기
    제목 : 정신병동 이야기작가 : 대릴 커닝엄출판 : 이숲 작가는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정신병이 비슷하지만 다 다르고,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정신병'의 공통점은 모두 '뇌'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뇌에 관한 생물학, 유전학적 분석은 깊지 않지만, 상식으로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꽤 도움이 되겠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약 700만년)에 걸쳐 느리게 진화하다 지금부터 약 20만년 전부터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생하던 시기에 인류는 서서히 수렵 채취에서 정착, 농경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육식의 비율이 높아지고, 불을 이용한 화식이 늘면서 인류의 육체는 커지고 뇌 발달도 빠르게 진행했다.문제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갖게 되면서 시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추상하며, 언어를 구사하는 복잡한 뇌 구조로 진화하면서 그만큼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졌다. 복잡한 뇌기능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유전적 영향 등 선척적인 원인은 물론, 후천적 환경에 노출되면서도 쉽게 영향을 받아 이상이 발생한다. 정신병의 많은 부분은 선천적 원인에 있다고 하지만, 현대의 정신병은 후천적 요인의 비율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알고 있다.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그가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부르주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자본의 노예로 생존하는 자체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것부터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데, 여기에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고,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육체와 정신이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물질숭배 사회에서 인간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관계는 맺기 어려운 세상이 되면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스스로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충격을 주지만, 받아들이는 뇌에서는 뉴런, 스냅스, 호르몬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물리적 자극을 통해 뇌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뇌의 활동의 결과를 마치 '나'라는 존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와 '뇌 기능'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이성적 의지'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류에게 '뇌'의 문제는 진화와 관련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소년의 마음 - 소복이
    제목 : 소년의 마음작가 : 소복이출판 : 사계절 소복이의 그림과 글을 퍽 좋아하는 나는, 소복이가 그린 책을 찾아 읽는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소년의 마음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나도 소년처럼 울었다.가족과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 부모의 불화 속에서 늘 우울하고 외롭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때로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더 많이 혼자 철둑길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어린이에게 집과 부모는 세계의 모든 것이고, 절대적이었는데, 그 세계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온 존재가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소복이는 이런 어린 소년의 마음을 잘 읽고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을 귀여워하고 사랑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년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 힘으로 소년은 현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딘다.세상에 홀로 남겨졌다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소년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있고, 다행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지낸 사람은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 들어도 원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가난하고 조금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심하지는 않아도, 가끔 꿈속에서 나는 슬프고 외롭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이를 돌봐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보편성을 얻는 것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 문화
    • 만화
    2021-09-24
  • 풀 - 김금숙
    제목 : 풀 작가 : 김금숙 출판 : 보리 김금숙 작가 작품. 그래픽노블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렇게 과거의 기록을 남길 때다. 구술사의 경우,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구술자의 말을 글로 기록하게 되는데, 기록의 생생함을 글로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글은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되지만, 독자의 상상은 독자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인해 제한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래픽노블처럼 글과 그림이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독자의 상상력을 확대하고, 고증의 완벽성이 관건이긴 하지만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글만 읽을 때의 어려움을 그림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 내용의 이해를 도우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픽노블을 단순히 만화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그림은 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글의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원래의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이 작품은 일본군 성노예로 붙잡혔던 이옥선 할머니를 작가가 직접 인터뷰해서 그리고 쓴 작품이다. 이럴 때,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갖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므로, 똑같은 소재라 해도 남성 작가가 접근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작가는 그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붓과 먹을 이용한 흑백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흑백은 과거의 시간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며, 붓과 먹은 우리의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의 역사를 전통의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작가의 그림은 한국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시간에 채색을 하는 것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잔인한 과거의 흔적을 묘사하는데 흑백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가는 일본군의 만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마음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것은 이 역사적 사건에서 피해자가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를 가해자 중심으로 놓고 보면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간단한 예로, 박정희 정권에서 희생당한 인혁당 사건의 주인공들을 그릴 때도, 박정희 정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과 인혁당 피해자와 가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하고 엄연하게 다르다. 역사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는 역사를 누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와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는 역사의 시각과 관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일본군 성노예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틀릴 수밖에 없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도는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단지 포주와 창녀의 돈벌이로 왜곡, 격하시키는 발상은 일본이 늘 주장하고 바라는 관점이다. 이옥선 할머니의 경우, 당시 조선의 가난한 민중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일본의 수탈, 조선의 지배계급의 무능과 부패, 강대국에 침탈당하는 약소국의 비애, 식민지를 확대, 강화하는 제국주의의 발현 등 당시 역사의 총체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와 편견, 왜곡된 지식으로 친일파가 되어버린 인간들의 역겨운 인식이 날뛰는 꼴을 볼 수 있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으로 오멸 감독의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창작한 '지슬'이 있다. '지슬' 역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제주4.3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작가는 붓과 먹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흑과 백이라는 단순함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함께 주제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일수록 컬러보다는 흑백이 어울리는 이유는, 다채로운 색으로 분산되는 독자의 시선을 작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금숙 작가의 이 작품과 '지슬'도 그렇고, 박건웅 작가의 일련의 작품 - 짐승의 시간, 노근리 이야기 등 -도 흑백으로 창작되었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 주제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고,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에서는 공통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이 전쟁범죄는 인권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고, 특히 여성의 성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세계여성운동과도 밀접하다. '풀'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성을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영국 '가디언'의 2019 최고 그래픽노블,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특별상,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9 올해 최고의 만화 등으로 선정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 성노예 범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과 김금숙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일본군의 성범죄에 대한 증언을 외면하고 왜곡한다. 일본이 아무리 오리발을 내밀어도, 역사는 분명하게 진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세계의 상식은 일본의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김금숙 작가의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고, 전쟁 범죄의 잔혹함을 증명하며,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서 더욱 뜻깊다. 한국의 만화가들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의 노래 김금숙 작가 작품.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태어난 1970년의 농촌 마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지배하던 시기였지만 전통적으로 조선의 농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시골이다. 농촌 마을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를 겪고, 곧 이어 전쟁까지 겪으면서 격렬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농업의 근간을 잃지 않은 뿌리깊은 전통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는 농사를 하는 부모님과 아홉 형제의 막내로 자란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가족 사이에서 자란 것을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부모가 농사를 포기하고 서울로 이주하기로 작정한 것은, 70년대의 커다란 흐름과 관계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이후 경공업의 활성화와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농업 위주의 나라에서 산업국가로 이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자본가들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값싼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었으며, 여기에 10대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 투입되었다. 이들은 가난한 시골의 여성들로, 학교는 국민학교 졸업 또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여성들로, 집안의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한 어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심지어는 철야로 일을 하며 노동력을 값싸게 공급했고, 자본가는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 시골의 젊은이를 도시로 불러오도록 하는 정책은 농촌을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방식이었으며, 가장 핵심은 쌀값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낮은 쌀값은 농민의 생계를 위협했고, 농민 특히 대지주가 아닌 빈농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부모님도 농업만으로는 먹고 살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식들의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 거의 전부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취업은 곧 집안을 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낸다고 '우골탑'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작가의 부모님은 이미 서울에 살고 있던 작가의 큰외삼촌(엄마의 남동생)에게 땅 판 돈을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지만 외삼촌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작가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도시 이주와 관련해 수많은 비슷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가족의 배신으로 고통을 겪는건 언제나 분노를 일으킨다. 작가의 부모는 과일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힘들고 고생이 많은 나날이지만 대가족을 이루고 있던 작가의 가족은 서로 힘을 합해 어려움을 이겨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미 어른이 된 오빠와 언니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다. 어지간한 집안에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막내였던 작가는 부모와 형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고,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발생하는 괴리로 인해 정신적으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불만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을 살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작가가 한국을 떠나는 것은 가족과의 연대를 끊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는 성장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고, 애틋하고 안쓰러운 가족의 아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그늘지지 않고 밝고 쾌활하게 자랐음을 알 수 있는데, 가난해도 부모의 깊은 애정과 형제들의 우애가 이들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자살도
    자살도 '홀리랜드'의 작가 코우지 모리의 작품. 열일곱 권으로 완간. 한국에서는 '아일랜드'로 번역 출판. 전작인 '홀리랜드'도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과 배경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사회에서 일탈된 '비정상'의 인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 개개인이 비정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발생하고, '홀리랜드'나 이 만화의 주인공들도 사회의 경쟁과 구조 속에서 발생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홀리랜드'에서는 주로 학교의 불량배들과 따돌림과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등장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불량배'들은 도태된 인간들을 말한다. 학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고,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불량품'이라고 낙인찍힌다. 즉, 청소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감성은 억압당하고, 획일화된 프로그램 안에 갇히게 됨으로써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큰 그림으로 보면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억압기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탈하거나 폭발하는 것인데, 가해자는 자신들보다 더 약한 존재를 괴롭힘으로써 억압의 스트레스 강도를 낮추려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받으며 억압의 강도가 커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던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자살도'에서는 수많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살던 사회는 경쟁과 억압이 일상화된 사회이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짓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짓밟혀 가라앉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일방 폭력(가정폭력,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심각한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이라 일방적 피해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가해자들의 논리에 시달린다. 자살도에 버려진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 생존의 이유도, 생존의 열정도 없다는 점에서, 그들이 살아있다는 건 오히려 불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자살미수자들을 무인도에 버리는데, 그곳에서 자살을 하든, 서로를 죽이든, 아니면 섬에서 굶어죽든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무인도에 유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자살자들은 섬에 내리는 즉시 모두 자살을 해야 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자살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섬에 버려진 사람들은 무정부 상태에 놓여진 무리이고, 그들은 스스로 처음부터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누군가 앞장서야 하고, 각자 역할을 해야하며,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살은 혼자 결정하면 되지만, 살기 위해서는 협동하고, 의논하고, 노동하고,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적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예상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섬에 버려지는 상황을 그린 작품은 '배틀로얄'이나 '파리대왕'처럼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지만, 이 만화는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 '세이'는 작가의 전작인 '홀리랜드'에서 주인공 '유우'와 비슷하다. 세이도 어떤 이유에선지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데, '유우'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세이'처럼 되었을 것이다. 세이는 의지도 약하고, 마음도 여린 사람인데, '자살도'에 들어와 오히려 삶의 의지가 강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유우'가 스스로 연습한 복싱을 통해 집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결국 강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다. '자살도'에서는 크게 두 집단이 대립하는데, 이는 인류의 발전단계에서 씨족-부족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전투와 약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투와 약탈은 식량과 노예의 확보가 목적이다. 무인도에 버려진 이들도 인류의 초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들의 대립은 일정한 생산성이 확보될 때까지 계속된다. 초기에는 식량 확보에 급급했던 자살자들은 조금씩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관한 해답을 얻는다. 그것은 알고보면 매우 쉬운 내용이지만, 그들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었고,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홀리랜드
    홀리랜드 코우지 모리의 데뷔작이자 출세작. 한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열여덟 권으로 완간했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개성이 있고, 일본 주류 만화와 다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히트작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은 걸로 안다. 이 만화를 그린 코우지 모리가 한동안 방황하면서 겪었던 사건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 꽤 생생한 느낌이 드는 '거리의 싸움꾼' 만화다. 주인공은 카미시로 유우라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중학교 때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학교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학교도 자주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하지 않으며 방안에서만 지내던 히키코모리였다. 그러던 그가 '아프지 않게 맞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 복싱 교본을 보고 따라하기를 하면서였다. 그는 하루에 5천번씩 스트레이트 연습을 할 정도로 집중하는데, 그가 밤에 길거리에서 '불량배 사냥꾼'이 된 것은 그의 내면에 응어리진 분노때문이다. 유우는 독학으로 배운 복싱 기술로 불량배를 몇 명 때려눕히지만, 그의 앞에 나타나는 강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 만화는 그래서 영웅설화의 과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영웅은 좌절하는 인간이며, 고통과 고난의 과정을 겪고 무사히 귀환하거나 누군가를 살린다. 유우는 시대에 버림받고, 민중에게 버림받은 영웅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자 애를 쓰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적은 너무 많고, 강하기 때문이다. 이때 영웅을 돕는 인물이 등장한다. 카네다 신이치가 그의 정신적 동반자라면 이자와 마사키는 유우의 성장을 돕는 멘토이자 앞서가는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우는 이자와 마사키를 만난 이후 늘 그를 동경하고 존경한다. 그의 롤모델이 된 것이다. 이자와 마사키 역시 유우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던 사이지만,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유우는 자신이 싸워 이기거나 진 상대를 찾아가 그들의 장점을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이 진짜 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인데, 유우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유우의 친구인 카네다나 이자와는 유우의 내면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유우가 중학생 때 따돌림을 당하고, 동급생이나 상급생들에게 얻어 맞고 돈을 빼앗긴 것은 그가 육체적으로 약하다기 보다는 폭력에 대응할 마음의 자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자와 마사키도 마찬가지여서, 전국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복싱선수였던 이자와였지만, 규칙이 없는 길거리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유우는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불량배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본격 길거리 싸움꾼의 삶을 만들어간다. 학교에서 불량배라 해도 길거리에서 1대 1로 싸움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우는 여러 학교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일진들을 상대로 1대 1로 싸워 그들을 때려눕힌다. 그가 배운 것은 복싱이지만 레슬링, 공수도, 복싱, 검도 등 여러 분야의 강자들을 상대하면서 성장한다. 소재는 거리의 싸움이지만 당연히 성장만화이고, 약자, 패배자였던 한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작가인 코우지 모리는 키 183센티미터, 몸무게 85킬로그램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이다. 그가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일시적으로 방황하던 때, 길거리 싸움을 경험했고,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만화가인 미우라 켄타로가 코우지 모리에게 힘들었던 시기를 만화로 그려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이 만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는 선량하고 유약한 청소년이지만, 워낙 괴롭힘을 심하게 당해서 스스로 히키코모리가 되고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복싱의 기본을 배우게 되면서 길거리로 나오고, 불량배를 때려눕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데,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는 발전적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유우의 가족들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주인공과 가족 사이가 여전히 소원하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 부모는 의외로 잔소리도 하지 않고, 염려하는 마음이지만 유우의 생활에 참견하지 않는다. 즉 상당히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유우에게는 부모가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유우가 스스로 밤거리로 나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쳑하게 된 것도 가족의 방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는데, 불꽃같이 타올랐던 유우와 그의 친구들의 밤거리 생활도 학교를 졸업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게 되고, 유우를 비롯해 몇몇은 여전히 거리의 전설로 회자된다. 학교를 졸업한-어쩌면 졸업하지 못한-유우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적어도 그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히키코모리의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수많은 거리의 불량배들을 때려눕힌 실력자이며, 스스로 강자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했다. 그러니 과거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스트리트 페인터
    스트리트 페인터 [3그램]의 작가인 수신지 작가의 작품. 작가의 자전적 작품으로,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던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림체가 동글동글 귀엽다. [3그램]도 그렇고 이 만화도 표지만 봤을 때는 외국 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국 작가라는 걸 알았다. 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초상화나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만화에도 그런 천태만상이 드러나지만, 사람은 많은 경우 상식적이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 때문에 사회는 흙탕물이 된다. 옛말처럼,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을 흐린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자신의 안위를 가장 먼저 살핀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기심을 조금씩 누르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존확률을 높이고, 자손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생존률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은 미대에 다니는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 삼아 거리 화가에 지원한다. 구청에서 마련한 장소에서 비교적 편하게 자리를 잡지만 경험이 없어서 다른 거리 화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들의 얼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보여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퍽 다채롭다. 시각을 조금 달리해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나 캐리커쳐를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화가의 시선이 아닌, 일반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비록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지만 그들의 재능을 높이 산다는 것이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같은 '거리의 화가'라 해도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몽마르뜨의 화가'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도 프랑스 여행 때 몽마르뜨 언덕에서 그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을 지켜봤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신의 삶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몽마르뜨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거리의 화가'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더 자유롭게 자리잡고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림 뿐아니라 음악도 그렇고, 판토마임이나 연극, 춤, 노래도 그렇다. 모든 예술행위를 하는 예술가들이 거리에서, 공연장에서 보다 활발하고 자유롭고, 마음 놓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따로 민주주의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일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3그램
    3그램 미메시스 그래픽 노블. 작가가 경험한 암 투병기를 그리고 있다. 20대 여성으로 난소암을 발견하고 투병 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말한다. 물론 정작 작가는 그 시기를 결코 담담하게 보낼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완치되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만화를 보는 독자는 안심하고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다. 암투병과 관련해 감동적인 만화는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를 들 수 있다. 그에 비해 이 만화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고 편안하다. 작가가 자신의 암 투병 과정을 과장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암이라는 병은 여전히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이미지다. 주인공은 퍽 운이 좋아서 암이 3기였지만 전이가 안 된 상태로 수술을 할 수 있었고, 현대의학이 암을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 수준으로 낮추는 훌륭한 성과를 이뤘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암'은 현대의학에서 가장 위험한 병으로 알려졌다. '암'은 세포가 비정상으로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체의 세포들이 적절한 통제를 통해 세포의 생성과 성장, 소멸의 과정이 이뤄지는데, '암'은 세포의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재생산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으로, 신체의 통제에서 벗어난 활동이다. '암'은 유전적 요소도 있지만 후천적 환경에 의해 발병할 확률이 더 높으며, 음식과 공기, 생활습관이 암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인체의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암세포가 줄어들 확률은 커지고, 육식보다는 채식, 발효음식을 먹는 것이 암을 예방, 치료하는데 좋다고 알려졌다. 내가 아는 사람은 대장암 3기였는데, 몇 년의 암치료를 통해 완치했다. 그는 암이 발생하기 전에는 술과 담배, 육식을 날마다 했고, 그렇게 수 십년의 시간이 흐르자 암이 발생했다. 그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어서 삶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그는 암치료를 하면서 마치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거쳤다. 술, 담배는 물론 고기도 거의 먹지 않았고,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하면서 시골로 이사해 하루 종일 산을 걸어다녔으며, 미역국과 물김치, 채소샐러드만을 먹었다. 그 과정에서 살도 많이 빠졌고, 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물론 가장 큰 항암의 요소는 병원의 치료였지만, 그에 걸맞는 운동, 음식, 체질개선 등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기 때문에 건강을 찾을수 있었다. 유전적 요인 때문에 암에 걸리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더 많은 경우가 현대생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고 있으니 '암'을 현대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은 자연식이 아닌, 공장제품일 경우가 더 많고, 육식의 비중이 평균치인 15%-이것은 인간의 치아를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보다 높기 때문에 과대한 육식은 건강에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유기농 제품만을 먹자는 말은 아니다. 공장제품은 적게 먹을수록 좋지만 유기농만을 고집하는 것도 지나친 태도다. 암은 초기에 발견할수록 완치 확률이 높아지고, 암의 발병률이 높은 것은, 암을 진단하는 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암'은 현대의학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까지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암'으로 죽는다해도 그것은 자신의 삶이 만든 결과이므로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말자.
    • 문화
    • 만화
    2021-09-24
  • 자꾸 생각나
    자꾸 생각나 미메시스의 그래픽 노블. 만화책을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만화가 예전과는 다른 갈래가 나왔다는 것을 말한다. 만화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며 창작물이지만, 그동안은 수준이 낮은 장르로 여겨왔다. 이것은 만화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소설도 흔히 삼류소설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준이 낮은 모든 창작물은 비주류로 묶여 천대받아왔다. 그러던 만화가 언젠가부터 '그래픽 노블'로 분류되면서 당당하게 고급한 예술작품으로 팔리고 있다. 같은 만화임에 분명하지만 소위 말하는 '대본소 만화'나 '공장 만화'가 아니라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래픽 노블은 특히 유럽에서 창작이 활발하다. 미국여행 때, 서점에 들러서 그래픽 노블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기대보다' 종류가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유럽과 한국, 중동,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의 그래픽 노블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어서, 나처럼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아닐까 한다. 그래픽 노블의 장점은 소설과 만화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이야기)의 구조와 만화(그림)의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수준이 낮으면 그래픽 노블의 자격을 잃게 된다. 모든 만화가 다 '그래픽 노블'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야기와 그림의 수준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에서 핵심은 '그래픽' 즉 그림이다. 그림과 이야기가 모두 훌륭해야 하지만, 그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 말이 필요없다. 그래픽 노블 작가는 만화가와 소설가를 섞어 놓은 듯한, 그 둘의 장점을 모두 갖춘 부러운 존재들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래픽 노블 작가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들의 능력이 퍽 부럽다. 이 만화는 송아람 작가의 장편 그래픽 노블이다. 웹툰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그래서인지 만화의 특징인 네모칸이 없다. 게다가 무려 6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만화지만 읽기가 만만찮다. 내용은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주인공들이 만화가들이어서 자전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 만화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고 진지한 시간들이겠지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독자인 내 눈에는 찌질해 보인다. 청춘의 찌질함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리려 했다. 생각해보면, 청춘의 지난 날은 아름답기 보다는 찌질했다. 자의식 과잉과 편견, 심각한 자기애, 오해와 독단 등의 감정이 분출되었고, 감정적으로 미숙했던 시기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우습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인다. 즉 솔직한 감정 표현들이 민망하고 불편하지만 그런 감정과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춘들에게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포르투갈
    포르투갈 잘 만든 양장본에 두툼한 두께의 이 그래픽 노블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이자 장점인 그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그래픽 노블을 선택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림이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이 수준 이하라면 보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내용은 별로인데 그림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래픽 노블에서 최우선 요소는 역시 그림이다. 지은이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고, 이후 만화가로 전업하면서 유명한 만화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책만 봐도 말할 필요 없이 최고의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삼부작으로 구성되었고, 주인공 시몽 뮈샤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만화가지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고, 삼대로 이어지는 집안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시몽은 만화가로 작품집도 발표한 작가지만 심각한 슬럼프 상태에 있다. 그는 애인과의 사이도 벌어지고, 세상 일이 심드렁하고, 삶의 의지도 박약한 상태로 침체되어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열린 작은 만화축제에 참가한 다음, 포르투갈과 자신의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왔던 시몽에게 포르투갈에 자신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할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포르투갈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사실로 다가오고, 마음이 끌리는 걸 느끼게 된다. 그동안 가족들과도 소원하게 지내온 주인공은 사촌의 결혼식을 계기로 프랑스를 벗어나 포르투갈에서 한동안 지낼 생각을 하게 되고,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포르투갈은 프랑스에서 멀지 않지만, 중간에 스페인이라는 큰 나라가 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처럼 보인다. 포르투갈도 중세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기에는 강력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유럽에서는 힘이 많이 빠진 중진국이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쇠퇴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여건이야 어떻든 이 만화에서는 포르투갈의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진국 수준이지만 이들은 소박하고 낙천적인 성향으로 낯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 시몽은 자신의 할아버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집안의 역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사촌들과도 쉽게 한 식구처럼 가까워진다. 이런 현상은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따뜻한 환대와 열린 마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 덕분이기도 한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한 분위기가 시몽의 태도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시몽의 할아버지는 형제가 프랑스로 취업 이민을 위해 고향 포르투갈을 떠났고,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시몽의 할아버지인 아벨은 프랑스에서 사망한다. 아벨의 동생이자 시몽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인 마뉴엘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고, 두 집안은 그때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주인공 집안인 무샤의 집안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알려주는 전설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전쟁을 하던 시기에 포르투갈의 한 마을에 스페인 기사들이 찾아오고, 한 아이를 재워달라고 부탁하고 기사들은 떠나간다. 그 아이는 혼자 남게 되고, 그 마을에서 자라 농부가 되는데, 그가 바로 '무샤' 집안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로만 본다면 '무샤'집안의 뿌리는 스페인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마지막 이야기는 퍽 낭만적이고 애틋해서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감동이 더하는 이 그래픽 노블은 여러 번을 봐도 좋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유료 서비스
    유료 서비스 이 만화는 '성매매'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선진국인 캐나다에서는 이런 '성매매'가 많은 부분 합법이어서 우리 사회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성매매'는 남성이나 여성-거의 대부분은 여성-의 성착취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합리화할 수 없다. 작가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인 채스터 브라운의 주장대로 '성매매의 합법화', '성매매의 자유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성을 파는 사람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발상은 순진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성매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섹스 없이 한 집에서 살던 여자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가 같은 집에서 동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낀 이후였다. 작가의 동료들이 그 점을 지적하면서 '너의 내면에 여성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쌓여 있다'고 말하지만 작가(주인공)는 이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고, 평온한 심리 상태이며, 여성에 대한 어떠한 분노나 환멸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의식에 자리잡은 감정까지 사람이 알 수는 없다. 트라우마가 왜 생기겠는가. '성매매'를 시작하는 과정을 보면 주인공이 아무리 자신의 처지를 부정해도 '여성에 대한 환멸과 분노'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화의 내용은 철저하게 남성 주인공의 입장과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며,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당하고 평가된다. 즉, 여성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인식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여성을 존중하는 평균 이상의 지식인이라 해도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틀 안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지만, 그 여성들이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솔직하게 말했을까는 알 수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성매매가 아무리 합법이라 해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책을 두고 수 많은 매체와 인물들이 이 책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작가이자 주인공의 경험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만화는 한 남성의 성매매 경험담이므로, 남성의 시각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주인공의 경험과 시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성매매 여성의 입장에서 수 많은 성매매 남성들의 태도를 바라보는 만화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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