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체스코 교황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에 매우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9일까지니까, 지금부터 꼭 6개월 남았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공개했다.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시도한 바 있으며, 이때 미국과 중국이 반대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현재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전’과 관련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종전 선언’을 해도 남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종전’은 남북한 관계에 상징적 의미와 함께 평화 협정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종전 선언’과 관련해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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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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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선언’의 효과 두 가지는, 1) 남북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고, 2)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임기 말까지 지속되어 레임덕 현상이 사라지는 것, 3) 종전과 북한 문제에 관한 프레임을 민주당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1)의 경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관한 깊은 논의를 한 바 있고, 남북한의 기본 인식을 확인했다. 즉, 남북한은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남북한 교류의 필요성을 공감했으며, 남북한이 평화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문재인·김정은 두 수뇌의 회담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것은 미국 국내의 정치 상황 변화 –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실패 – 와 미국 매파의 강경한 대북 입장의 고수, 한국 내부의 보수 진영에서 일어나는 반발 그리고 일본의 악의적이고 끈질긴 남북한 대화, 교류 반대 로비 등으로 지금까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많이 늦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지금까지 남북문제의 연속선에서 중요한 화두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고, 실질적 효과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차기 정부-이재명 정부-에서 ‘종전 선언’ 카드를 이어받아 실질적 결실을 맺도록 포석을 까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의 경우, ‘종전 선언’ 카드가 아니어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확률이 매우 높다. ‘종전 선언’은 레임덕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영향이 크고 효과 있는 대외 정책이다. 현 정부에서 ‘종전 선언’의 토대를 착실하게 다지는 것은, 다음 민주당 정부(이재명 정부)가 대북 정책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3)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남북문제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 북한과 관련한 의제, 논의, 협의, 선언, 뉴스 등이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로 북한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북한이 ‘한민족’이고, 함께 살아야 할 겨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노인 세대는 북한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고, 청년 세대는 북한에 무관심하거나 막연히 싫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북한에 관해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 정부에서 북한과 관련한 사업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는 ‘북한 바로 알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할 때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한 국민이 직접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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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정리하면 큰틀에서 다음과 같다.     

1) 문재인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그 지지집단과 지지자들, 2) 반공 이념에 사로잡혀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도 반대하는 반공주의 강경파들, 3) ‘종전 선언’을 결사반대하는 일본과 일본을 지지하는 국내 친일매국노들, 4) 무조건 북한을 찬양하면서 북한의 무력을 신봉하는 정신나간 NL 멍청이들.     

여기에서 1), 2), 3)의 집단은 교집합이 많아서 대부분 중복된 집단과 개체들이다. 즉, ‘국민의힘’은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함께 북한과의 대립, 갈등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비밀로 접촉해 북한 쪽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는 음모를 꾸몄는데, 권력을 차지하려 그들이 규정한 ‘적’과 내통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악랄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국민의힘’은 통일과 남북 교류를 반대하고, 북한과의 갈등과 긴장이 유지되길 바라는 반통일세력으로, ‘종전 선언’ 역시 악착같이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은 50대 이후의 구세대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 시대에 짙은 향수를 품고 있는 집단이며, 전쟁의 공포, 보릿고개, 새마을운동 같은 전근대 국민국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세대로, 이성과 논리, 합리성에 근거해 남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보다는 감정, 감성, 경험적 판단으로 북한과의 접점을 거부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이들 가운데는 전쟁(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하며, 설령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전쟁에 준하는 공포와 고통을 겪은 세대여서, 북한에 대한 근원적, 원초적 공포와 증오를 품고 있다. 여기에 1960년, 4.19혁명 이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공포정치를 한 것도 이들이 북한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다.

전후 20년 사이(1951-1971) 태어난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에 관한 이념을 주입 당했으며, 북한을 괴물로 만들어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키우도록 교육받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이하에 불과했고,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 노동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산화 이후라고 할 정도로 박정희 독재의 폭력은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짓눌렀다.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의 주역들 역시 지식인 사회에서 시작했으며,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운동도 지식인들이 현장으로 뛰어들면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즉, 절대다수의 민중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폭압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생존을 위해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은 독재 권력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북한을 증오하는 교육만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50대 이후 세대는 북한의 실체를 모른 채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앞서 있었고, 이런 자신감으로 한국을 깔보고, 무장, 고정 간첩을 자주 내려보냈다. 북한은 무장 부대를 한국에 침투시켜 남한 사회를 교란하고, 박정희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며, ‘무력 통일’에 관한 희망을 70년대까지 버리지 않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로 ‘반공’을 더욱 강하게 부르짖었고, ‘평화의 댐’ 같은 사기를 공공연히 벌인다.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은 외환 위기를 겪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지만, 이 어려움을 빠르게 극복하고 2000년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시민 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박정희에게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했고, 경제력으로만 보면, 1980년대 이후 한국은 비록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라는 정치적 한계 속에서도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무렵 세계 경제 흐름이 전반적으로 호황이었고, 수출주도 경제체제를 가진 한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기반으로 수출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70년대의 빈곤과 낙후함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바로 직전의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에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안타깝게 불발된 것에 이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특징과,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남북한의 미래에 관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무려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다.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역대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은 모두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국민의힘’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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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집단 가운데는 ‘개신교’ 집단도 있다. 이들은 철저한 반공 이념을 내세우며, 남북통일을 반대하고, 북한과 교류하는 것도 가로막는 수구 집단이다. 이들의 행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바탕이며, 한국 ‘보수’집단의 원천이자, 반개혁, 반민주주의 집단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다.

한국개신교의 뿌리는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로 시작한다고 봐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전파되는 경로와 과정을 보면, 평양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한말 이후 개신교는 주로 교육 사업을 통해 선교 활동을 한다. 초기 개신교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친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망해가는 국가가 할 수 없는 복지 사업을 펼쳤다. 19세기에 들어온 구교(카톨릭)가 조선 정부에 의해 강하게 박해당한 것과 비교하면, 개신교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의 주류 세력은 친일을 선택했고, 극히 일부 개신교도가 독립운동에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북쪽으로 쏘련군이 진주하고,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해 서로 다른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북쪽의 개신교 집단은 쏘련군과 김일성이 주도하는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북쪽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은 자신을 핍박한 쏘련군과 김일성 체제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고, ‘한국전쟁’은 개신교도들이 ‘반공’을 신념화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도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이 남한의 좌익,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고, 때려잡는데 가장 앞장섰다는 사실만 봐도, 북한 개신교도 집단이 품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도 ‘제주4.3항쟁’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고, 제주도민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주체였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이념 대립이 격렬해지고,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개신교 집단은 ‘기독교 정신’과는 반대로 국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집단이다.

지금까지도 개신교 단체는 한국전쟁 전후에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 만행에 관해 단 한 마디의 사죄를 한 적이 없는 것을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이때 대통령인 이승만도 개신교도였고, 경무부장 조병옥도 개신교도였다. 

이들 극우 개신교 집단은 이후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독재정권을 미화, 찬양했고, 전두환 군부쿠데타를 지지하고 찬양했다. 또한 서울시와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공공연하게 천명한 이명박과 황교안도 개신교도였다.

지금 광화문에서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의 앞장에는 개신교 목사가 있고, 개신교도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50대 이후의 노인들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들쥐들처럼 쫓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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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자생적 북한 추종자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 대결이 격렬할수록 그에 반대하면서, 북한을 미화하고, 김일성을 우상으로 섬기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있었는데,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민족해방(NL)’그룹으로 표출되었다.

북한과 김일성을 추종하는 개인, 집단은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나갔고, 한국(남한)에서는 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과 평등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또한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인권 탄압, 노동자, 학생의 민주주의 운동을 폭력으로 짓밟은 행위, 북한을 그대로 따라 한 ‘새마을운동’ 같은 사이비 사회운동, 일부 자본가, 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이로운 경제 개발 계획 등 박정희에 대한 반감, 분노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는 반정부 투쟁의 한 방법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김일성의 존재를 우상화하는 방식은 공포의 존재(박정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대상(김일성)을 찾아 이상화하는 사회적, 집단 정신병의 하나다.

건강한 시민이라면,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피를 흘리며 싸울지라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북한(김일성)을 찬양하는 자는 자기가 사는 사회(남한)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다가갈 수 없는(이상적 사회) 북한과 김일성을 이상화하는 것으로 자기의 불안과 공포, 분노를 정당화한다.

북한을 찬양하는 자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전쟁에서 패한 이후, 남로당 계열의 공산주의자를 ‘미제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씌워 김일성이 모두 숙청했을 때도, 김일성이 옳다고 박수를 쳤다.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폐기하고, ‘주체사상’을 내걸었을 때도, 북한이 정통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봉건주의 국가로 퇴화하는 걸 보면서도, 무비판으로 북한을 찬양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무조건적 신앙’을 요구하는 종교의 신도와 같다. 종교, 신앙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신은 절대적 권위와 힘을 가진 존재이며, 아무 근거 없이 신의 말을 믿고, 신의 권위에 복종한다.

북한(김일성)을 추종하는 자들은 맹목의 종교 미신을 믿는 자들과 똑같은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군사력은 세계6위, 국가경제력은 세계10위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북한이 한국(남한)을 무력으로 해방 시킬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 선언’이 의미 없다고 주장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이미 실질적 ‘종전’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군사력으로 28위에 불과해 재래식 무기로 한국군과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준이다. 남북한의 경제, 군사력 수준을 객관으로 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지한 인간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것이다.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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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은 남북한의 뿌리 깊은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었던 ‘한국전쟁’을 끝내는 상징적 행위다. ‘한국전쟁’도 단지 남북한의 이념 문제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하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쏘련과 중국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 팽팽하게 대립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쟁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충돌 지점이자, ‘냉전’이 실제 전쟁으로 표출한 이념 전쟁이기도 했다.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쏘련, 중국, 일본과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명백히 강대국의 대리전쟁이자 동북아 패권 전쟁이었으며, 자칫 3차 세계전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심각한 전쟁이었다. 실제 미군을 포함해 UN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는 무려 25개국에 이른다. 

‘한국전쟁’ 발발 원인은, 김일성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게 발단이었지만,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쏘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나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고,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다.

김일성은 남한을 공격하면 남한 내부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해 남한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북한군과 협력하여 남한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이승만은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지식인, 학생, 시민을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시켰고, 전쟁이 한창일 때, 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이때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에 이른다.

1951년부터 ‘휴전 협정’이 시작되었지만, 정작 한국은 휴전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전쟁은 한국에서 벌어졌는데, 휴전 협정에는 북한, 중국, 미국이 테이블에 앉아 회담을 했고, 주인공인 한국은 배제되었다. 이것은 이승만이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양도한 것에 따른 결과로, 이때 이미 한국은 미국에 복속된 존재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0년이 넘었다. 전쟁 직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군사력 세계 6위의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다. 너무 가난했던 과거 한국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한국은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휴전 협정’은 미국, 중국, 북한의 사령관이 합의했다면, ‘종전 선언’은 남북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가능하다. ‘종전 선언’을 둘러싸고 한국의 주변국이 보일 태도에 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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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2차 세계전쟁의 패전국이고, 핵폭탄을 맞은 유일한 국가다. 나라가 초토화되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급속한 경제 회복,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국의 애완견이 되어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한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15세기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과 교역했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년, 정유년 전쟁’ 이전에 포르투갈로부터 화승총을 구입하고, 화승총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무력에서 조선을 앞서기 시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호족들, 지방 토호 세력을 통일하면서, 내부의 불만을 바깥으로 표출시켜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과 당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일본으로 몰려와 항구를 개방하고 교역을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으면서, 가장 가까운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미 ‘임진년 전쟁’ 이전부터 일본 남부의 바닷가에 살던 토호 세력들 가운데 조선의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와 노략질하는 일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국가 단위의 전쟁은 ‘임진년 전쟁’이 최초였다. 일본은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고, 당연히 조선 조정은 일본의 요구에 반대했다.

7년에 걸친 전쟁에서, 일본은 초기 전투에서 기세를 올렸으나, 곧 조선의 반격에 밀리기 시작하며 전쟁은 혼전 상태가 된다. 임진, 정유년 전쟁의 결과, 조선도 지배 계급의 몰락, 경제, 사회의 급격한 변화, 계급 구조의 약화 등 17세기에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원시적 태동과 상인 계급의 출현, 신분제 사회 구조의 변화 등을 겪지만, 조선 왕조는 끊이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 내부의 토호 세력들도 기세가 급격히 꺾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과의 전쟁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렀으며, 쇼군들의 권력 투쟁으로 일본 사회는 몹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은, 독일과 영국을 모델 삼아 근대국가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첨단 기술을, 영국에서는 정치와 사회 제도를 받아들여 일본 특유의 ‘천황제’에 근간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데, ‘천황제’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의 변형이며, 내각제를 바탕으로 한 수상이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하는 건, 독일의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 일본이 곧바로 군국주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바탕에는 독일의 ‘철의 수상’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의 존재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폭력으로 점령하기 시작했고,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재화를 통해 일본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는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남미 등의 국가를 침략해 식민지 침략으로 ‘원시적 자본’을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국가의 부를 축적한 일본은 더욱 야망을 키워 중국과 러시아까지 침공하게 된다.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된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한국과 북한의 이념 대립과 갈등 상황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는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저렴한 상품으로 수출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중에 한국 등 후발주자이자 제3 국가의 성장 모델이 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조선, 대한제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어떻게든 침략하거나 정치, 경제적으로 식민지 상태로 지배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물리적, 지정학적 위치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본능이 있으며, 그 본능의 밑바닥에는 일본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진, 화산으로 심각한 자연재해의 피해를 본 경험이 누적된 것도 있다.

한국과 북한이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곧바로 평화,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것도 일본에게는 불안하지만, 남북한이 경제공동체로 엮이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이 한국에게 추월당하고,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뒤처지게 되는 현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과 북한이 긴장과 갈등으로 군비 경쟁을 지속하면서, 나라의 재화를 낭비하고, 내부 문제에 신경 쓰느라 국제 관계에 소홀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일본에게는 가장 좋은 상황이다. 남북한이 전쟁하면, 일본은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오조의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선 선언’을 가장 반대하고, 싫어하고, 훼방을 놓을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할 것이며,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가동해 ‘종전 선언 반대’ 전략을 펼칠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우파, 매파, 한국의 수구, 친일매국 집단 – 정당, 언론, 학계 등 –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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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보수, 우파, 매파 진영에서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무기 자본의 로비를 받는 매파 집단은 남북한 ‘종전 선언’을 극렬 반대하며, 북한과의 대화, 협상, 협의도 거부한 상태다. 미국은 과거 쿠바에게 했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북한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으며, 북한을 말려 죽이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이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이 사라진다. 이것은 미국에게 두 가지 이유에서 나쁜 징조인데, 1) 중국을 견제하는 완충지대로써 한국의 지형적 위치가 의미를 잃는 것, 2)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유지할 때 얻게 되는 무기 판매와 미군 주둔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사라진다.

과거 중국은 인구만 많을 뿐, 경제, 군사 분야에서는 미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스운 상대였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고, 경제력도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뤘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역시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 되었는데, 군사 분야, 핵폭탄 보유, 과학 기술 분야 등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온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동맹으로 일본을 키웠고, 한국을 먹잇감으로 내놓는 것이 전략이었는데, 일본은 경제, 군사 분야에서 한국에 따라잡히고, 한국은 스스로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동북아시아 동맹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고,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미국이 바라는 그림은 아니지만, 한국이 자주적 전략을 펼칠 때, 강력하게 반대, 제재할 명분과 수단이 마땅치 않다. 

과거에는 미국이 한국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경제(수입, 수출, 금융)적 압력을 썼지만, 한국의 수출 다변화 정책으로 미국과의 무역은 14.5%에 불과해서 예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은 중국과 홍콩, 대만을 합해 약 35%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입김은 약할 수밖에 없고, ‘종전 선언’을 반대할 명분도, 설득력도 약하다.     


8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이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유지하지만, 경제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국과 한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군사적 대립이나 긴장 관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중국과 북한은 ‘혈맹’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북한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중국이다.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 교류가 쉽고, 지린성(길림성)은 조선족 자치주여서 중국과 남북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중국공산당은 혁명 과정에서 한국(그때는 남북한 구분이 없었다) 공산당의 지원을 받았고, 한국 공산당원들은 중국 혁명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중국공산당은 ‘인민해방군’을 파병했으며, 김일성을 적극 후원했다.

1990년 이후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하면서, 중국은 거대한 경제시장이자 무역 상대국으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주창한 ‘흑묘백묘론’을 토대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원시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공장’, ‘세계의 굴뚝’이라는 말을 들으며, 중국 인민을 저임금 노동자로 경제시장에 방출했다.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중국에 어떤 형식으로든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불편하게 여기는 건, 미국이 남한(한국)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는 것이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압박 때문인데,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 쏘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 했을 때, 미국이 온통 발칵 뒤집혔던 사건을 돌이켜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턱밑에 있는 한국에 미국의 미사일 기지가 생기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종전 선언’이 한편에서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남북한이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가 사라지고, 이것은 곧 미국의 패권이 직접 작용할 원인이 제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한 ‘종전 선언’에 적극 찬성하지 않아도,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9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사회주의자로, 쏘련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레닌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쏘련 영토로 이주했던 한국인들을 연해주로 강제 이주한 것과 대한항공 007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처럼 분명히 한국과 한국 국민에게 잘못한 점도 있었다.

한국은 러시아와 1990년에 국가간 수교를 맺었으며, 이후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구 쏘련 체제가 무너지면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쏘비에트 연방’이었을 때보다는 국력이 훨씬 약해진 상태다. 1990년 이전까지 러시아는 ‘쏘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국가였고, 한국은 해방 이후 1990년 무렵까지 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한러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은 러시아에 30억 달러를 빌려주는 등 경제 협력을 이어 나갔다.

러시아는 구 쏘련 시절 보유한 군사 무기 기술과 항공 우주 기술의 노하우를 한국에 제공하는 등 한국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면서 미국, 중국과는 또 다른 의미의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시베리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를 한국까지 연결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한국에서 출발하는 막대한 수출 컨테이너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오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남북한 종전 선언’이 남북한 경제 교류 확대는 물론, 러시아에게도 직접 이익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데, 충분히 근거 있다고 본다.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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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이 확정되면, 남북한은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며,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에서 놓여나게 된다. 70년 동안 남북한을 내리누르던 폭력과 증오의 먹구름이 걷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남북한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고, 국내적으로는 독재정권이 분단 상황을 정권 유지에 악용한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주변 국가-미국, 중국, 쏘련, 일본-의 압력으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은 더 이상 무력, 폭력에 의한 상호 침략이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가능한 대화를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을 천명했다. 2000년 이후 남북한은 사실상 종전 상태였으나, 국제법에 따른 종전은 아니었고, 여전히 주변국의 견제와 참견으로 ‘종전 선언’은 명문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종전 선언’으로 남북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겠으나, 빠르게 변화할 부문이 있고, 남북한 정권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의 요구가 남북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바꿔놓을 수 있다는 예상도 할 수 있다.

‘종전’은 곧바로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70년 동안 남북한이 견원지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독재정권이 만든 이 악법은 민주정부에서는 사문화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포정치의 잔재로 남아 있다.

한국은 현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운용하고 있으며, 북한과 다양한 경로와 형태로 접촉할 수 있고, 남북한 주민의 직접 교류도 가능하다. ‘종전’이 되면, 보다 적극적인 남북교류 법령이 개정, 제정되어 남북한을 오가는 장벽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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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도로, 통신, 방송의 회복

‘종전’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나는 구체적 효과는 막혔던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미 개성공단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로 복구는 빠르게 이뤄질 것이고, 철도는 남북한의 표준 규격이 맞지 않아, 현재 한국 기술자들이 북한에서 철도 규격을 통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곧바로 시베리아 철도, 만주 철도, 몽골 철도의 연결로 이어지며, 물류의 획기적 변화를 뜻한다. 수출입 물동량이 화물선이 아닌, 기차를 통해 이동하면, 물류 기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실이다.

북한 역시 한국에서 오가는 철도 물동량의 통관비만 받아도 막대한 수입이 되며, 이후 남북한 인적 교류가 시작하면, 한국 관광객이 북한은 물론 시베리아, 만주, 몽골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가면서 지불하는 통관비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과 시베리아 철도까지 이어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럽행 기차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보다 위도가 아래쪽인 아시아 나라들은 유럽으로 가는 길이 여객선이나 여객기뿐이다. 기차를 타고 유럽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거쳐 러시아의 광활한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여행길이 열린다면, 남북한은 물론 러시아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줄 것이다. 반대로, 유럽인들도 아시아로 오는 길이 기차를 타고 오갈 수 있다면, 비행기로 이동할 때 누릴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어 매력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남북한)은 이렇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심 국가, 포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지형적 조건을 갖춘 나라여서, 경제 성장은 물론, 지금 한국의 문화, 예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물류, 여행 역시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시작했고,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한국의 정보통신망 기술이 북한에 빠르게 설치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시골 구석까지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그때는 예산 낭비라고 야당의 비난을 받았지만, 이 정보통신 인프라가 결국 한국을 정보통신, IT산업의 첨단 국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것처럼,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북한의 시골 구석까지 꼼꼼하게 광케이블을 설치할 것이고,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면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정보의 격차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토목 공사 실력과 수준 역시 세계 최고인 한국 기업들은 북한의 모든 도로를 한국의 도로처럼 깨끗하고 안전하게 시공하고, 동서남북의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때 북한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통신망과 도로가 개설되면, 역시 세계 최고의 물류 산업인 택배가 북한 전 지역으로 흘러가면서 몸에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르는 것처럼, 북한 경제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우리는 북한 방송을 거의 못 보거나 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를 자주 본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문화가 수준 낮다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 예술적 완성도 등을 볼 때, 한국(남한) 문화가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전’ 이후 남북한 주민의 교류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방송(라디오, TV)을 개방하는 과정이 필연이라고 본다. 즉, 남북한 주민 누구든 남한과 북한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원하는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경우, 인터넷이 개방되면, 인터넷으로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의 동화 과정은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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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광의 시작

‘종전’ 이후 한국에서 가장 큰 기대 효과는,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금강산 관광’처럼 초기에는 제한적 공간만 여행할 수 있겠지만,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당장 떠오르는 장소는 금강산, 개성, 백두산, 원산, 함흥 등 유명한 도시로 시작해, 동해안의 해수욕장을 개방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DMZ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이곳을 세계적 환경 지역으로 만들어, 입장료 수입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은 남북한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 보호구역, 생태 탐방 지역으로 알려진다.

한국의 기업은 북한에 인프라 투자를 하고, 호텔, 리조트 같은 대규모 시설을 짓는다. 이렇게 관광, 여행, 위락 시설이 생기면, 북한 주민들을 고용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생성된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지점은, 한국(남한)의 자본이 북한을 잠식하고, 북한은 노동력만 제공하고,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력은 매우 심한 편차라서 북한과의 경제 교류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한국(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여행할 때도, 과거 동남아시아에서 보인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은 2등 국민도 아니며,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경제력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우리가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되는 한민족이다.

초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발생할 것이고, 상호 오해가 생겨서 티격태격할 경우도 있겠으나, 큰틀에서 한민족인 남북한은 자연스럽게 동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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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국민의 상호 왕래

‘종전’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남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과정이 생긴다. 남북한 주민은 각자 여권을 가지고 국경을 통과할 수 있으며, 상대 국가에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미 방송과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에는 제약이 거의 없다. 이때는 이미 남북 이산가족은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하고 있고, 남북한 정치체제만 다를 뿐, 사실상 통일에 가까운 상태로 남북한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한다.     

‘종전’은 남북한이 가야 할 필연적 과정이며, 한민족 역사의 회복이자, 분열과 고통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상징적 행위다. ‘종전’은 한민족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바탕으로 화합, 성장하는 계기가 되며, 한국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종전’을 반대하는 집단과 개인은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고 멍청한 존재이거나 악랄한 의도를 가진 내부의 적이며, 외부 세력이라면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반대하는 적대 세력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호혜, 협력한다는 기본 전제에 동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다음 정부인 이재명 정부에서는 ‘종전’ 이후 북한과 공동 사업을 구체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게 된다.

남북한 상호 교류는 두 나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국방, 내수 산업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주변 국가의 반응을 살피지 말고, 남북한이 적극 상호 이익을 위해 ‘종전’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남북한 ‘종전’ 발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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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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