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제목 : 좁은 방

작가 : 김홍모

출판 : 보리


잠자기 전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생각했다가 끝까지 보게 된 만화. 예전에 작가가 웹툰으로 연재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주인공 용민은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갇힌다. 그가 재판을 받고 풀려날 때까지 약 8개월 동안의 구치소 생활을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은 시대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용민이 대학생이던 90년대 중반의 상황은 분명 문민정부 시대였다.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3당 야합이 있었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을 처벌하는데 실패했다.

용민(이자 작가 자신)이 활동하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학생운동은 활발했다. 작품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와 경찰백골단의 격렬한 대립으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산화한 학생 열사들도 많았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용민이 구치소에 갇혀 감방 동료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선택이긴 하지만, 감옥 생활이 약간 낭만적으로 묘사된 것은 감안하고 봐야 한다. 주인공 용민은 학생운동권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총학생회 부회장이어서 처벌도 더 엄하게 받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용민의 경험으로만 보면, 학생이 경찰에 잡혀와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은 것은 퍽 의례적이다. 90년대 중반의 사회상황이 80년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이한열 최루탄치사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 경찰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80년대와 그 이전 시기의 민주화운동, 감옥 생활을 잘 그린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다'와 '짐승의 시간'이다. 두 작품 모두 박건웅 작가의 작품으로, 비전향장기수, 김근태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이 작품에서 경찰은 잡혀온 학생들을 폭행하거나 고문하지 않는다. 주인공 용민만 겪은 예외적인 상황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용민과 그의 친구들이 구치소 안에서 생활 개선 투쟁을 벌일 때도 교도관들은 학생들을 달래기만 할 뿐,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용민이 깨닫는 건, 그들의 힘이 더 강하고, 정부가 학생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시민들의 여론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정부가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용민은 '사상범'으로 분류되었지만, 강력범들 가운데서도 전과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 용민이 관찰하는 조폭들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몸에 문신과 흉터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용민이 생활하는 8개월 내내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오히려 범죄자라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구치소 생활개선 투쟁을 할 때도 함께 하는 등 학생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용민도 대학에 들어와서 광주항쟁에 관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바탕에는 그의 아버지 역할도 컸다. 자식이 어렵게-무려 3수를 하면서-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시위만 하고 다니고, 수배자가 되어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우리의 부모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 정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용민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을 믿고, 반대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으로, 구치소의 경험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처럼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 경험을 그래픽노블로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은 매우 드문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홍모 작가의 그림이 참 좋다.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의 그림이 퍽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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