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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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내전
    [책] 스페인 내전 - 갈라파고스 많은 경우,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은 마치 하나의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으며 연쇄적으로 퍼져나간다.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나온 '스페인 내전'을 읽으면서 다른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알라딘 서점에서 '스페인 내전'으로 검색하면 쓸만한 책은 앤서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교양인)과 갈라파고스에서 출판한 '스페인 내전'이 있을 뿐이다. 애덤 호크실드가 쓴 '스페인 내전'은 앤서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과는 각도가 약간 다르다. 앤서니 비버가 '통사적'으로 접근했다면 애덤 호크실드는 미국 출신의 자원병들에 관해 보다 깊이 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미국인으로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한 국제주의자들 가운데 생존자를 만나거나 그의 친구, 가족,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그들이 남긴 자서전, 회고록, 전기를 비롯한 출판물들을 찾아서 미국인들이 스페인 내전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싸우다 죽었는지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이 조금 더 일찍 시도되었다면 보다 생생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을 다룬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최근의 수작들은 물론이고 이미 70년대부터 헐리우드에서는 수 많은 전쟁영화를 만들면서 미국 군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영웅적으로 싸웠는가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한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곳에 가서 공화파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 하다. 그나마 헤밍웨이가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를 써서 널리 알린 것이 거의 유일할 정도로 미국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진보적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몰려 온 국제여단 사람들의 구성은 출신이나 신분에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막 세계경제공황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자본의 악랄함과 잔인함을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본의 힘도 강력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던 때, 스페인 내전은 제국주의화 하는 독일로 대표되는 자본과 파시즘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동양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고(중일전쟁),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며,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를 침략해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촉발한 경제공황으로 자본의 수탈로 인한 노동계급의 착취가 극심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미국언론에서는 '사람들이 빌딩에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범이 바로 '자본(가)'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언론과 권력은 숨기고 있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배한 독일과 주변 승전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전후 보상금 문제를 비롯한 승전국의 요구에 독일 국민은 파시즘의 출현으로 대답했다. 유대인과 관련한 사안이 파시즘의 대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 전역에서 당시 유대인을 핍박한 것은 단지 히틀러 정권만이 아니었고, 유럽인 대부분이 유대인에 대한 경멸과 분노의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현대 사회에서 최초의 '이념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페인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왕당파를 비롯한 수구집단-왕정 옹호론자, 가톨릭 집단, 자본가, 군부, 부르주아 등-은 공화파와의 권력 다툼에서 근소한 차이로 진다. 수구집단은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는데, 이미 수십 차례의 쿠데타가 실패한 상황에서,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쫓겨나 모로코에 있다가 군대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킨다. 프랑코를 지원하는 세력은 스페인 내부의 수구집단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등 주변 국가도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코 군부를 지원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는 것을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던 1936년 무렵에 이미 히틀러는 독일을 장악하고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자기들의 새로운 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많은 무기와 군인을 지원했으며, 이 시기를 통해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불간섭 원칙을 지켰는데, 그 이유가 미국 내부의 보수집단-자본가, 가톨릭 세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불간섭 원칙이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의 패배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 쏘련 역시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았는데,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등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스탈린의 의도는 자신의 집권 초기 쏘련 내부에서 정적들을 굴복시키고 숙청을 감행해 자신의 권력 기초를 다지기 위한 계산이 내포되어 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전선은 이런 세계적 정세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수구집단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패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자원한 국제여단 참전군인은 약 7천 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약 2천5백 명 정도에 이른다. 내전에서 패배한 인민전선은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공산당과 무정부주의자 그룹, 마르크스통일노동자당(POUM) 등 주요 세력들이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구사하고, 일사분란한 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각 정파들이 이념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세우고, 갈등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스페인 공산당은 쏘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탈린의 요구를 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무정부주의 집단에게는 심각한 폭력이었다. 스페인 정부의 공식 권력은 인민전선, 무정부주의 집단에서 가지고 있었지만 스페인 공산당은 조직되어 있고, 쏘련과의 연계로 내전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쏘련의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스페인 공화파 내부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결국 세계 정세도 파시즘이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스탈린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공산주의의 국제화 전략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가 패배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세계 모든 나라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지만, 내전에 참가한 인민전선과 국제여단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빛바래지 않는 기록으로 남았다.
    • 문화
    • 독서
    2022-02-26
  • 100디스커버리
    [책] 100 디스커버리 나는 과학책 읽기를 좋아한다. 과학과 수학을 다루는 책들은 어지간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책을 본격 읽기 시작하던 70년대 중반부터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나의 책읽기도 변했는데, 초기에는 소설과 기초 교양(철학)이 전부였다면 8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과학 책들을 많이 읽었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과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본업이 글을 쓰는 것이라 문학과 관련한 책은 시대와 관계 없이 꾸준히 읽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과학책 읽기에 쓰고 있다. 과학과 수학과 역사를 다루는 책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관념적이고 혹세무민하는 세상 속에서 이성의 불빛을 꺼지지 않도록 하는 연료는 다른 어떤 것보다 과학의 신선한 이론들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으로 기존의 이론을 뒤엎고, 보다 날카롭고, 보다 정교한 이론으로 탈바꿈한다. 그 과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화의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최근에 읽은 책들도 거의 과학책인데, 그 가운데서 이 책은 앞부분을 읽다 중단했다. 앞부분에서 '도예술의 발달'이라는 제목으로 도자기의 역사가 나오는데, 지은이는 도자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일본 죠몬 시대의 토기가 가장 오래 되었으며 기원전 1만1천년 전에 일본에서 토기의 역사가 인류 최초로 시작되었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직감으로 이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요즘은 어지간한 내용이라면 아주 간단하게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검색을 해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 죠몬토기(縄文土器) 일본도자의 역사는 세계 최고(最古)의 토기라고 일컫는 죠몬토기(縄文土器) 에서 시작된다. 죠몬토기의 이름은 오모리카이즈카(大森貝塚)의 발굴로 알려진 E.S.모스가 사용한 Cord marked pottery에서 유래된다. 방사성탄소(C14) 측정에 의하면 최고(最古)의 것은 약 1만2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만년이상 계속된 죠몬토기는 그 기형의 변화에 의해 크게 6개의 시기구분(초 창・조기・전기・중기・후기・만기)으로 나눠지고,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상세하게 편년되어 있으며 한마디로 죠몬토기라고 해도 그 실체는 가지각색이다. 초창기의 두채문토기(豆粒文土器)와 융선문토기(隆線文土器), 중기의 화염형토기(火焰形土器), 후기의 카메가오카식토기(亀ヶ岡式土器), 거기에 중기부터 만기에 걸쳐서 토우(土偶)등이 대표적이다. 죠몬토기는 일반적으로 흙타래를 쌓아 올려 만드는 방법이 채용되어 있으며, 가마를 구축하지 않은 노천가마에 의한 번조방법으로 800~900도 전후에서 구워졌다. 이 내용만 보면, 죠몬토기가 세계 최초의 토기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도자기의 역사는 중국이 최초다. 중국도자의 시점 중국 도자기는 1만년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8,000-15,430년 전. 원뿔형 솥. 중국 호남성 옥섬암 동굴에서 발굴된 고대의 토기 파편들이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솥은 두께가 아주 두꺼운데, 발이 거칠고 부드러운 흙으로 빚어져 낮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졌다. 토기의 흙에는 작은 자갈도 꽤 많이 섞여 있었다.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하면 이런 파편들이 18,000-15,430년 전 것으로 밝혀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16,000년 전의 토기보다 더 앞선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양사오仰韶문화기에는 채도(표면에 색깔을 넣어 구운 도자기), 홍도紅陶, 백도白陶가 제작되었고, 용산龍山문화기에는 흑도黒陶가 번성하였습니다. 상商왕조에는 원시청자라고도 불리는 회유도灰釉陶가 등장합니다. 춘추전국시대 말부터 전국시대에는 인문경도(印文硬陶,도장같은 걸로 무늬를 찍어서 나타낸후 질이 딱딱한 도기) 와 회유도가 제작되었습니다. 중국도자기의 역사가 '인류 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도 세계 4대 문명발상지 가운데 하나이니 토기의 역사 역시 인류 최초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다른 지역일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러면 왜 저자는 일본의 죠몬토기를 인류 최초의 토기라고 단정하고 글을 썼을까. 그것은 그가 본 자료가 그렇기 때문이다. 죠몬토기를 세계 최고의 토기라고 했던 사람은 일본 학자가 아니라 미국 학자 모스가 주장한 것이다. 영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모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여 일본의 죠몬시대 토기가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일본 죠몬 시기에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주장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인류의 이동이 중국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토기의 역사 역시 인류의 이동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일본에서 토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앞부분에서 과학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주장을 하는 내용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물론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제외하고 다 맞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자 다른 것들도 의심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번역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았고, 편집한 출판사 역시 이 내용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서의 내용을 충실하게 옮기는 것은 좋지만, 출판사 차원에서 이런 오류는 바로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문화
    • 독서
    2022-02-26
  • 사소한 것들의 과학
    [책] 사소한 것들의 과학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기계공학과 교수인 마크 미오도닉의 저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공학자답게 재료에 관한 이야기를 과학, 역사, 문화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 있다. 재료공학은 현대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재료의 다양성과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개발, 재료의 활용에 있어 재료공학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분야지만 인류의 문명을 개척, 개발하는 선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재료공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쉽게 쓴 재료공학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 교양과학분야에 해당하므로 책의 내용이 전문적이거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상식을 배우고 이해하기에는 적절한 수준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모두 열 개의 재료를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재료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1장 불굴의: 강철steel 2장 미더운: 종이paper 3장 기초적인: 콘크리트concrete 4장 맛있는: 초콜릿chocolate 5장 경탄할 만한: 거품foam 6장 상상력이 풍부한: 플라스틱plastic 7장 보이지 않는: 유리glass 8장 부서지지 않는: 흑연graphite 9장 세련된: 자기porcelain 10장 불멸의: 생체재료implant 다행히 여기서 설명하는 재료들 가운데 서너 가지를 빼고는 재료의 역사나 재료의 문화사적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각 재료들의 과학적 분석은 흥미롭게 읽었다. 미오도닉은 과학자답게 모든 재료의 기본 구성은 '원자'라고 전제하고 설명을 시작한다. 재료의 변화는 원자 배열의 변화이며, 재료를 가공하면 원자의 구조와 배열이 바뀌게 되고, 서로 다른 재료들의 결합 역시 원자와 원자의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원자 단위의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만지고 사용하고, 활용하는 모든 물성에는 원자 단위의 작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비이성적인 생각을 조금은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은 나노 단위의 사업 분야가 눈에 많이 보이는데, 나노는 원자보다 10배나 큰 단위지만 여전히 분자보다는 훨씬 작은 단위다. 지구에서 발견한 원소들 가운데 약 98% 이상을 차지하는 원소는 불과 8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극미량만 존재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극적으로 드라마틱하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강철의 역사에서도 가장 최근에 발명한 재료로,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숟가락, 젓가락부터 매우 많은 재료들이 스테인레스 스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개발되었지만 비용 때문에 상업화되지 못한 유용한 재료로 '에어로겔'이라는 게 있는데, 최첨단의 과학분야에서만 활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매우 강력한 단열, 방탄 효과를 가지고 있는 이 재료는 대체제가 많이 개발되는 바람에 우리의 일상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최첨단의 단열, 방탄 재료들이 일반 건축재료로 쓰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재료의 본질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지만, 글의 내용과 수준이 조금은 들쭉날쭉해서 어떤 부분은 훌륭하지만 어떤 부분은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아마도 대중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여러 모로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조금 더 전문적으로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문화
    • 독서
    2022-02-26
  • 기나긴 이별
    [책] 기나긴 이별 모처럼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소설 뿐 아니라 인문학, 과학 책도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후기 장편소설 '기나긴 이별'은 그의 첫 장편 '빅 슬립'에 비해 훨씬 신파적이다. 필립 말로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생만 한다. 그에게 있어 '긴 이별'은 좋아했던 친구일 수도, 좋아했던 여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가 살아왔던 쓸쓸하고 우울했던 과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은, 지극히 남성적이면서 미국적이다. 그가 영국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는 해도 주인공 필립 말로가 살고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다. 게다가 이 작품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자적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그의 일대기를 이해하면 이 소설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필립 말로가 우연히 알게 된 한 사내는 갑부의 딸과 결혼했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말로는 그 사내와 가끔 바에서 술을 마시는 정도로 알고 지내다 어느 날, 그 사내의 부탁으로 멕시코 국경 너머로 태워다준다. 그리고 그 사내의 아내가 사체로 발견되고, 그 사내 역시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린다. 평범해 보이는 시작과 달리, 사건은 점차 미궁으로 빠지는 듯 보이면서, 감추어진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를 찾았던 사람들이 차례로 자살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유명인, 부자들의 죽음이 발생하면서 삼류 언론의 먹잇감이 되지만, 진실은 십여년 전의 전쟁 당시(제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거의 마지막 장편소설이기도 하고, 그의 작품 가운데서 '빅 슬립'과 함께 최고의 작품이기도 하다. 길고 긴 이야기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 챈들러의 글쓰기는 독백, 만연체로 현대의 글쓰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야기의 핍진함은 탁월하다. 그것은 주인공 필립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마치 실제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세부적인 묘사 덕분이다. 등장 인물들도 그 지역에서 실제 살고 있는 인물들처럼 등장과 퇴장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부르주아들의 추악한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그들 사이의 범죄가 많은 부분 돈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치정 살인이 주된 내용이지만 딸의 추잡한 사생활을 감추기 위해 보이지 않는 힘을 쓰는 것이 결국 돈의 힘이라는 것도, 지극히 미국적인 해결 방식이자 돈이 곧 권력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독자를 충격으로 몰고 간다. 주인공 필립 말로는 자신의 친구가 멕시코로 도주하고, 그의 아내가 살해당한 시점부터 꽤 오랜 기간 경찰과 폭력조직 사이에서 시달림을 당하며 고생을 하지만 오로지 혼자서 꿋꿋하게 견딘다.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두 사람이 더 죽고, 마침내 사건이 종결되고 자유의 몸이 된 필립 말로를 찾아온 낯선 사내. 독자는 그를 반갑게 맞이할까, 증오할까.
    • 문화
    • 독서
    2022-02-26
  • 암퇘지
    [책] 암퇘지 프랑스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의 데뷔작. 첫 작품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대화가 거의 없는 독백체라는 것과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방식이다. 한 여성이 점차 돼지로 변해간다는 줄거리인데, 인간이 동물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꽤 많다. 늑대인간이 그렇고, 벌레로 변하거나, 심지어 진짜 돼지로 변하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경우도 있다. '붉은 돼지'에서도 주인공은 어느 순간 돼지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개인)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자의적인 선택(붉은 돼지)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카프카의 '변신') 어느날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선택일 경우라도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적, 공간적 원인 때문이므로 순수하게 자발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하나, 인간의 모습에서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고 싶거나 변해 버리는 경우, 그 이유가 긍정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즉 자신의 현재 모습(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외면하고 싶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변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자의적 선택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변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라고 하겠다. 여성이 '돼지'로 변신하는 과정은 여성이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와 존재의 의미를 상징한다. 사회가 여성을 '돼지'로 바라보고 있고, 돼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묻는 것이다. 즉 그런 시선은 온전히 남성의 시각이며, 가부장제와 마초이즘이 원하고 바라는 여성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향수가게 남성 지배인이 성추행을 해도 참아야만 하는 처지라면, 노동 외에 먹고 살 수 없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수치와 모욕을 감내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인권 선진국에서도 여성의 처지는 약자 가운데 약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돼지로 변한 상태에서 호텔의 아랍인 관리인의 도움을 받는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주인공을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아랍인은 그러나 불법체류자로 경찰에 잡혀가 추방당한다. 부르주아들은 이너써클의 난잡한 섹스 파티를 열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남성이 대통령이 된다. 이곳에서도 여성들은 노리개로만 등장한다. 여성들의 존엄성과 자존감이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돼지의 변신으로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여성의 존재에 관한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 소설의 형식이나 줄거리가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소설과 비교할 수 있는 비슷한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두 소설이 '변신'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변신의 과정을 두고 주인공이 드러내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암퇘지'의 주인공은 자기가 왜 '돼지'로 변했는지에 관한 자기성찰이 없다. 오히려 돼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그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반면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가 한 마리 벌레로 변한 것을 깨달은 다음,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주의 깊게 돌아본다. 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의미를 두고 볼 때,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의 본질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고, '암퇘지'는 시대를 풍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번역으로 읽은 내용이지만 두 소설에서 문장, 묘사, 의미 등에서 '변신'이 훨씬 뛰어남을 느끼게 된다. '암퇘지'도 사회의 모순과 현상을 풍자하고 있어 재미있지만 깊이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 문화
    • 독서
    2022-02-26
  • 대장정
    소설 대장정 오랫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이 책(다섯권짜리다)을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망설임없이 구입한 것은 출판사 이름 때문이었다. 중국공산당 홍군의 대장정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었으므로 내심 대단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전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선입견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책을 덮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홍군의 대장정이고, 그 결과가 이미 알려져 있어 흥미가 반감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이 소설을 쓴 작가 웨이웨이는 중국 인민을 대상으로 창작을 했으므로 인민들이 '대장정'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대장정'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소설이 그다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대장정'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알아두면 좋겠다. ('대장정'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소설 자체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대장정'의 실제 코스를 세 번이나 답사를 했다고 한다. 거리만으로도 무려 1만2천km나 되는 엄청난 거리이며, 그 길이 하나같이 험난하고 척박한 땅을 지나가고 있어서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고 해도 힘든 길이었는데, 당시 홍군은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그 길을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결코 평온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남부에 자치정부인 소비에트를 구축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지만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최대 군벌 장제스(장개석)에 의해 공격을 받아 쫓기게 된다. 당 지도부는 궤멸 직전의 당을 이끌고 남부 내륙에서 북쪽 연안까지 탈출을 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중국공산당 노농홍군 대장정'이다. 장제스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초기 공산당원의 약 80%를 학살했다. 장제스를 비롯한 중국 군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군사조직이었으며, 중국공산당은 중국 전체 인민의 약 90%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치조직이었다. 이 소설은 '대장정'의 과정인 약 1년(368일)간의 시간을 압축했으며 거리는 약 1만km에 이르는 공간을 그렸다. 중국공산당의 상징 인물들인 마오쩌둥(모택동)은 물론이고 저우언라이(주은래), 주더(주덕), 펑더화이(팽덕회), 덩샤오핑(등소평), 린뱌오(임표) 등 공산당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홍군의 중간 간부들은 물론 일반 병사까지 고르게 등장한다. 중국공산당은 혁명집단으로, 노동자와 농민, 소수민족의 정치적 해방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모든 인민의 모범이 된다. 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이 나이 어린 병사를 대하는 태도는 극진하다. 홍군에서 일방적 명령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동등한 동지로서 단지 직위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기본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동학'이 보여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과 매우 비슷하다. '동학'도 서양의 침략에 맞서 힘없는 백성들이 뭉쳐 새로운 세상(개벽)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실패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대장정을 통해 약 8만 명의 홍군이 목적지인 연안에 도착했을 때는 90%의 병력을 잃고 불과 7천명만이 남게 되었지만 이 병력으로 마침내 10년의 투쟁 끝에 중국 전체를 해방하는 혁명을 성공하게 된다. 작가는 '성공한 역사'인 '대장정'을 그리면서 크나큰 자부심과 자긍심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 삐딱하게 본다면 중국공산당을 미화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대장정'을 미화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이 당시의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에 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고, 인민의 해방을 위한 모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고결한 품성은 마르크스-레닌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해방의 이론이 혁명의 과정에서 실천적으로 드러날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상징하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대장정' 과정에서 홍군은 90%의 병사들이 낙오하거나 국민당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길 위에서 죽어갔다. 전투로 죽은 병사들이 가장 많지만 포로로 잡혀서 죽은 병사들도 몇 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의 혁명 과정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진정한 영웅들이다. 마오쩌둥도 대장정을 마치고 대장정 과정에서 죽은 모든 홍군 병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소설만큼이나 훌륭한 그림이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있다는 것이다. 그림은 션야오이가 그렸는데, 한컷 한컷에 온 정성을 들여 그 자체로 작품이다. 그림은 아름답고 선명하게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서, 소설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똑같이 닮은 얼굴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홍군의 '대장정'은 중국의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에 견줄 수 있다. 실제 소설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대장정을 삼국지와 비교하기도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삼국지'는 단지 소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인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중국을 낮춰보고 때로 비하하기도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소수의 인원이 결집해 농민과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 결국 혁명에 성공한 뛰어난 힘을 가진 나라이고, 저력이 있는 나라다. 이제는 정치체제는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라는 조금은 이상한 형태의 나라로 변했지만, 그들이 현대사에서 보여 준 혁명의 과정은 여전히 빛바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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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2022-02-06
  •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내용이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던 감정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작가로서 박정애 작가의 이 소설은 ‘가족’의 의미,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집단 속에서 개별 존재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의 처지를 지극히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족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년의 부모와 청소년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고민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그런 시도를 하는 소설들은 많지만, 대개 교훈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에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비껴가는 결말은 당장의 슬픔과 아픔을 외면하는 당의정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다. 중년의 부부와 청소년의 아들과 딸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아마도 비슷한 세대에서 공감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아들 민수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또한 민수의 아버지 용규의 깊은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한다. 결국 정란과 용규는 아들 민수의 꿈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데, 나 역시 이 소설의 내용을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민수가 자신의 삶을 이미 일찍부터 결정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나도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삶의 일부분과 비슷하게 살았거나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변에서 드문 경우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제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학력, 혈연, 지연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삶이 아니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민수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찌감치 시골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민수의 아버지 용규 역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지만, 퇴직을 하고 치매가 시작되는 아버지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농촌에 적응하겠다는 태도도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자식들을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다그치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자식을 재단하는 것이다. 부모의 불안과 자식에 대한 불신은 부모 세대 스스로가 만든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마땅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들어야 안심하는 부모는, 세상을 경쟁과 투쟁의 전쟁터로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병기를 길러내는 폭력적인 부모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자기 생각이 있고, 청소년이 되면 부모보다 더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니 아이들을 믿고, 오로지 격려하고, 응원을 보내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따뜻한 밥 먹여주고, 때 맞춰 옷 사주고, 아이들이 원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좋은 음악이나 책을 권하고(강요하지는 말고), 그저 느긋하게 바라만 봐주면 아이들은 잘 자란다. 이 소설은 아이들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학교에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세지다. 2016년 객주문학과 창작관에서 박정애 선생님과 보낸 짧지만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애틋한 작품이 그곳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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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2022-02-06
  • 뜻밖의 생 - 김주영
    뜻밖의 생 여든의 현역 작가는 드물다. 물리적으로도 여든의 나이는 창작을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여건임에 틀림없다. 김주영 작가는 비교적 늦게 문단에 데뷔했고, 데뷔한 이후 곧바로 줄기차게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단편이었고, 내용은 풍자와 우화였다. 그리고 몇 편의 통속 장편소설을 쓰고 나서, 작가는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길 작품 '객주'를 집필하고, 그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물론 작가가 아끼는 작품이 꼭 '객주'가 아닐 수는 있다. 그가 쓴 역사소설은 '객주' 말고도 '화척', '활빈도', '야정'과 같은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들은 모두 기존의 역사소설을 뛰어넘는 작품들이었으니 말이다. 70년대 말부터 쓰기 시작한 역사소설은 '객주'를 이어 한동안 계속되었고, '야정'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호흡이 길고, 묵직한 주제와 민중의 언어로 기록된 문학이 흔치 않은 한국문학계에서 김주영 작가의 역사소설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놀라운 결과물이다. 대하 역사소설 이후 김주영 작가의 작품들은 다시 문학의 초기 세계로 돌아가는 듯 하다. '아라리 난장'을 비롯해 그가 쓴 2000년대 이후 일련의 소설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는데, '엄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엄마'를 읽으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실제의 삶과 똑같지는 않지만, '문학적'으로 채색한 그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 '뜻밖의 생' 역시, 작가의 삶에서 얻은 경험과 흔적이 많이 묻어난다.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어릴 적 기억, 박복한 떠돌이의 삶, 외롭고 슬픈 인생, 늘 밑바닥을 전전하는 풍천노숙의 생활, '행복'이 무엇인지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나날들, 학대와 비참함으로 가득한 공간.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도 결국 삶에서 일정하게 해탈하는 경지에 이른다. 아무 것도 가져 본 적이 없고, 배운 적 없는 한 사람이 오로지 시간과 경험만을 통해 뼈저린 각성을 한다는 것은 흔치 않지만,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소설만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젊은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에 묶여 있으며,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드라마틱 하지도 않고, 회상으로 일관하는 빛바랜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주인공 박호구는 어릴 때와 이십 대의 과거 외에는 그 이후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박호구와 만나게 되는 여성 최윤서의 삶 역시 드러나는 것은 거의 없다. 그가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의 신산한 삶에 관한 자세한 묘사는 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박호구와 함께 어울렸던 개 칠칠이를 말한다. 칠칠이가 보여 준 박호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잊지 못하고,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박호구는 칠칠이를 찾아 전국을 떠돈다. 그가 찾는 것은 실체로서의 '칠칠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일 것이다. 불교에서도 '소를 찾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구도의 길임을 뜻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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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2022-02-06
  • 소송-프란츠 카프카
    소송-프란츠 카프카 은행의 업무대리인 요제프K는 어느날 '체포 당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살아가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그는 소송을 해야 하고, 법정에도 출두해야 한다. 소송은 실체가 없지만, 그의 삶을 지배하고, 그는 삼촌의 소개로 변호사를 만나고,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법원의 판사에게 도움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법원의 실체는 모호하고, 법정은 빈민촌의 다락방에 존재한다.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가 역겹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송'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한다. 그리고 어느날,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 예전에 한 번 읽었고,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전자책으로 나온 것을 다시 읽었다. 새삼 느낀 것은, 카프카의 작품은 여전히 난해하고 몽환적이라는 느낌이다.카프카의 작품 역시 다른 작가들과 같이 '개인의 체험'에 바탕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학적 표현 방식이 여느 작가와 많이 다른 것은, 그의 감수성이 남다르기 때문일 게다.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소송'을 읽다보면 마치 꿈, 그것도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환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둠 속, 그림자, 분명하지 않은 윤곽, 모호한 대화, 독백, 무표정한 사람들, 알 수 없는 시간, 밤과 새벽의 경계 등 작품에서 묘사되는 장면이나 풍경, 시간,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모호하다.카프카는 문학을 추구했지만, 그의 집안에서는 줄곧 문학을 반대했고, 카프카의 결혼도 결국 문학과 결혼 사이의 갈등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하게 된다.카프카는 철저하게 문학 속에서 살았고, 작가를 꿈꿨으며, 작가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는 가족의 기대와 현실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했으며, 그 때문에 요절하게 된다.'소송' 역시 그가 겪었던 갈등과 방황의 결과물이며, 카프카의 약혼과 파혼이 여러 번 거듭되면서, '소송'과 '법정'이라는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다.건조한 문장, 난해한 설명, 불명확한 이미지, 진심을 알 수 없는 대화와 독백, 의심스러운 태도와 적의를 가진 이웃들 등 카프카의 작품은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카프카의 작품은 삶의 본질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드는 무서움이 있다. 그의 난해함 속에 감추어진 삶의 본질, 인간의 본질은 대개 적대적이고, 쓸쓸하며, 외로운 존재들이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중요한 정체성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문화
    • 독서
    2022-02-06
  • 낭비와 욕망 - 쓰레기의 사회사
    낭비와 욕망 대도시에 가끔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물질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물질이 이제는 필요 이상을 넘어서 사람의 삶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과잉'을 주제로 글을 쓰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 책이 지은이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사회를 읽었다면, 나는 '물질의 과잉'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했다. '물질의 과잉'은 필연으로 '쓰레기'를 발생한다. 즉 '과잉 생산'과 '쓰레기'는 분리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이며, 지금 인류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잉여'의 생산물은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고, 곡물을 재배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생산력이 높아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즉 한 단위의 씨족이 먹고 남을 정도의 식량이 생산되고, 가축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남을 정도가 되면서 비로소 인간은 잉여의 생산물을 바탕으로 '교환경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화폐로는 조개껍질, 돌 등이 있는데, 초기에는 단순한 물물교환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를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인류는 18세기까지 '과잉'이나 '쓰레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즉 봉건제 사회까지의 생산력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음을 뜻한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호화한 생활을 하고, 풍성한 식탁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겠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서민은 직접 농사 지은 쌀과 밀, 감자, 옥수수 등을 주식으로 삼았으며 육식의 비율 역시 매우 낮았다. 육식의 경우,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남아 있는 인간의 치아를 보면, 약 15%만이 육식과 관련 있는 치아라고 하니, 인류의 육식 섭취율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잉여 생산물'은 기술의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17세기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한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는 그 이전부터 전세계를 상대로 유럽의 여러 국가가 달려 든 '원시 자본축적'에 이어 점차 봉건제에서 농노로 살았던 민중을 임금노동자, 임금노예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마르크스의 '자본'에도 나와 있듯이, '자본'은 이윤을 발생할 때만 존재의 의의가 있기 때문에, 이윤의 발생을 위해 '자본'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하게 된다. 여기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다룰 수는 없으니 생략하고, 자본이 '상품'을 과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 '경쟁'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만을 말해 두자. '자본'은 원자재와 기계(및 건물) 그리고 노동자의 노동을 결합해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한다. 따라서 자본의 이윤추구는 무제한이며, 경쟁 또한 무제한이다. 문제는 자본이 사용하는 원자재가 주로 자연에서 가져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고, 자본의 무제한 경쟁과 상품생산은 자연 환경을 필연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옛날에는 쓰레기가 아닌 것들이 오늘날에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는 매우 많다. 물자가 귀할 때는 아껴쓰고, 재활용으로 쓰고, 고쳐 쓰고, 나눠 쓰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단지 디자인이 바뀌어서, 유행이 지나서, 싫증나서, 더 좋은 제품으로 바꿔서 쓰지 않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은 일부 재활용이 되지만 곧바로 쓰레기로 변해 버려지게 된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하필 생산력이 급증하던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 지구 자원을 낭비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과잉 생산하고,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게 된 것인지는 따로 연구해야 할 과제지만, 분명한 것은 물질의 과잉, 자원의 낭비, 쓰레기의 과다 처리는 분명 자본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일회용품을 쓰고 있고, 한 번 쓰고 버리면서 별다른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요즘에는 심지어 한 번 입고 버리는 종이옷까지 나왔다고 한다. 많은 생활용품들이 일회용으로 바뀌고, 그만큼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은, 어디선가 그만큼의 원재료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입고 쓰는 물건이 과연 얼마나 될까. 꼭 필요한 만큼이라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많은 '과잉'의 세상에서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은 공상주의자이고, 잠꼬대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면서 존재한다. 생산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면 자본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지나친 소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체제 역시 옳지 않음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환경운동이니 지구살리기 운동 따위의 구호를 부르짖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물론 그들의 구호가 자본주의 체제에 경고를 줄 수는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근본의 운동은 되기 어렵다. 모든 (상식적인) 시민사회운동-체제를 옹호하는 일부 시민운동을 제외하고-이 올바른 성과를 내려면 자본주의 체제로는 더 이상 바뀔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빈부의 격차는 물질의 과잉, 쓰레기의 대량 배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빈부의 격차가 클수록 물질의 과잉 현상과 쓰레기의 대량 배출은 커지게 마련이다. 부자는 1인당 물질의 소비가 가난한 사람 1인당 물질 소비보다 적게는 수 십배에서 많게는 수 천만 배까지 늘어난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나타나는데, 지구 전체에서 상위 0.2%의 사람이 가진 부가 전세계 인구 40%가 가진 부와 같다고 한다. 물질 과잉의 사회라지만, 또 한쪽에서는 여전히 궁핍과 빈곤에 시달리며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연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가 굶어죽는 숫자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경제선진국에서 비만으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는 반면, 가난한 나라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이 생기는 이유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원인이다. '이윤'과 '경쟁'을 바탕으로 존립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한다.
    • 문화
    • 독서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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