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의 '생존자'
이 그림만 보고는 어떤 작가가 그렸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나도 꽤 안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때, 약간 충격 받았다.
이 작품은 보자마자 느낀 생각이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였다. 하지만 다시 보고, 조금 더 생각하니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품이었다.
피카소는 두 편의 '학살' 관련 작품을 그렸는데, 하나는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다.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는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프랑코는 독일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했고, 히틀러는 폭격기를 보내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곳이 바로 '게르니카'였다.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는 독일 폭격기에서 쏟아부은 폭탄으로 소멸했고,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이때 학살당했다.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던 작은 시골 마을에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최신 무기를 실험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히틀러와 프랑코의 만행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당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스페인 정부(인민전선)는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진 학살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고, 이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하겠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게르니카'가 되었다.
또 한 작품은 '한국전쟁'과 관련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한다.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이다.
1937년 '게르니카'를 그릴 때 피카소는 공산당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고 공산당원이 된 피카소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반전을 주제로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이 작품이 '미군이 한국인을 학살'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카소도 후기 작품이 '초현실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피카소의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의 변화는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도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데, 두 사람의 작품의 변화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비슷한 면이 있다.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모두 공산당원이었으며,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공산당원이자 예술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이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고, 예술의 독창성, 작가의 자유로운 작품 세계, 제한 없는 창작의 영역과 시도를 그 어떤 작가보다 강렬하게 추구했다.
'반제 반파시즘'과 '일당 독재(스탈린)'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던 사람이 조지 오웰이었고, 그가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뛰어난 소설로 독재와 반지성을 비판했다면,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방식으로 현대(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작품은 'The Survivor', '생존자'라는 제목이다. 만약 이 그림에 제목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그림에서 어떤 걸 발견하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창작물에서 '제목'은 또 하나의 '상징'이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그 자체로 철학과 언어학의 주제가 되었다. 미셸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이 작품은 1950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전시회를 위해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이 전시되면서 평론가와 관객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배경은 벽이다. 그것도 어느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 또는 안방 같은 공간이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는 전실일 수도 있다. 위쪽으로는 꽃무늬 벽지가 가지런하고 단아하게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는 양각한 나무 판자가 매우 엄격한 문양으로 반복하고 있다.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는 총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오른쪽에 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개머리판이 있는 바닥은 원목마루가 깔려 있고, 총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마루에 흥건히 젖어들고 있다.
이 그림만 보면, '초현실주의'가 아닌, '리얼리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초현실'로 보이는 대상 또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얼'한 작품에서 '초현실'을 느끼게 되는 요인은 무엇이고 왜일까. 우선, 평범한 일상-가정집의 벽면-에 비현실적 요소-피묻은 총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이 곧 '초현실'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런 장면을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그림 또는 사진 또는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의 재현이며, 따라서 현실의 초월한다.
또 하나, '생존자'는 누구인가. 관객은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작품 제목이 하나의 '상징'인 이유가 여기 있다. 관객은 작가가 부여한 작품 제목을 받아들이게 되고, 제목의 영향을 받아 자의적 해석을 한다.
'생존자'는 누구인가. 이 총 자체가 '생존자'인가, 아니면 이 총을 가져온 어떤 사람이 생존자인가. 이 총은 사람을 상징하는 '의인화'한 대상은 아닌가. 저 피는 누구의 피일까. 이처럼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르네 마그리트는 자기 작품에 상징을 부여하는 걸 경계하고 경고했다. 즉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초현실주의'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호기심을 갖고, 현실에 관해 의문을 던지고, 질문하는 것은 관객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1차, 2차 세계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다 자살한 불우한 과거가 있지만, 좋은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나이 들면서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해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할만큼 진보적 태도를 가졌다.
그의 작품 세계에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작품 '생존자'는 세계 전쟁을 겪은 뒤 그가 가졌던 감정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