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18(목)
 

제목 : 빨간약

작가 : 권용득,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마영신, 한수자

출판 : 보리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는 만화가들의 단편 모음집. 한국에서 '작가주의 만화'는 곧 그래픽노블을 뜻한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을 보면, 그동안 작가 자신과 사회에 관한 발언(작품)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기획부터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관해 만화가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분위기를 표현해 보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 부패, 악의적 왜곡, 탐욕과 사리사욕으로 뭉친 권력의 남용,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착취와 폭력에 관해 언론, 방송, 지식인들이 말과 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렇게 만화가들이 작품으로 발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회 현실에 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작가들이 많을수록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커질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집은 모두 여섯 명의 작가가 그린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_ 김성희

나의 전교조 선생님_ 김수박

일베는 우리 동무_ 마영신

두 할머니_ 한수자

진짜 간첩_ 김홍모

최선의 선택_ 권용득


김성희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작가보는 세상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부모(기성세대)와 생각이 달라서 갈등을 빚고,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저지투쟁, 용산 철거민 침탈 사건, 종북몰이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약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그리고 있다. 그 많은 사건들과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독단과 탐욕 때문이다. 박근혜의 당선 뒤에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독재를 한 박정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고, 독재의 권력 뒤에는 자본의 악랄함이 마치 일란성 쌍동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수박의 '나의 전교조 선생님'은 작가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김동순 선생님을 회고하고 있다. 작가는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강연도 하는데, 마침 교사들 앞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김동순 선생님은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교조 선생님이었고, 전교조가 불법이라는 정부의 결정으로 교단에서 쫓겨난 김동순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과 친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잔잔하게 말하고 있다.

마영신의 '일베는 우리 동무'는 작가가 일베 사이트를 폭파하기 위해 만화를 연재하려다 실패한 이야기와 함께, 일베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소수 의견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주장한다. 이 만화집의 주제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니까, 불편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당연한데, 일베의 성격을 너무 온건하고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작가의 날카로움이 부족한 느낌이다. 일베는 이해나 동정의 여지를 갖고 바라볼 대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일베에서 패륜을 저지르는 자들이 중학생이든, 초등학생이든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교화의 대상일 뿐, 이해와 연민의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일베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야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물론 그 전에도 패륜아들은 존재했지만-패륜을 부추기고, 조장한 권력의 탓이 가장 큰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법의 처벌을 받게 되겠지만, 일베충들에 대한 패륜은 아직도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혐오를 조장하고, 패륜을 저지르는 자들의 반사회, 반민주주의 행위는 강력한 처벌만이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수자의 '두 할머니'는 김전숙, 이명신 할머니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두 분은 전쟁 직후 북한에서 내려왔다가 붙잡혀 간첩죄로 감옥에서 10여년을 복역하고 나왔고, 이후 6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 해방된 나라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겪어야 했던 그 고난의 세월과 감옥에서 견딘 10여년 그리고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시간은 두 분에게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단호하고 묵묵히 자본주의 체제를 견디고 있다.

김홍모의 '진짜 간첩'은 34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남파간첩 비전향 장기수 박종린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그는 1959년 남한으로 내려왔다가 서울에서 조직책임자였던 자의 배신으로 곧바로 정보기관에 잡혔고, 감옥 안에서는 전향공작으로 참혹한 고문을 견뎠다. 남한 정권에서는 '간첩'이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고, 반제, 반일 활동을 한 애국자였으며, 많은 애국자들이 '간첩'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권용득의 '최선의 선택'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불법 요소가 있다는 의심을 하는 작가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그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고, 불법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그런 의심을 검증할 제도나 권력이 시민에게 없었기 때문에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결국 탄핵당했다.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이 선택해야 하는 두 가지 색깔의 약 가운데 하나다. 빨간약과 파란약. 파란약을 먹으면 현실에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고, 빨간약을 먹으면 '진짜 현실'을 알게 되며 그렇게 되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고난에 대해서는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진실의 약이다. 사람들에게 이 두 가지 약을 내밀면서 선택하라고 하면 '빨간약'을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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