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18(목)
 

제목 : 담요

작가 : 크레이그 톰슨

출판 : 미메시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 작가의 가족, 종교, 학교, 친구들 그리고 우연히 만났지만 주인공의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었던 레이나와의 만남까지를 사실적으로 그린다.

처음 이 만화를 보고 느낀 감정은 주인공의 이기적 태도에 약간 짜증이 났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주인공의 태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그렇게 행동하기까지 그의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의지와 전혀 관련 없이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고, 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주었다. 이 만화에서도 그렇듯, 어린이가 종교의 일방적 세례를 받으면 정서적으로 피폐하며, 잘못된 생각을 주입당해 밝고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지 못한다. 어린이를 종교의 굴레를 씌워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키우려는 부모의 어리석음과 무지는 결국 가족 모두에게 불행하다는 걸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학교에서도 힘센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학교도, 집도 편안한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학대를 당하며 자란 것은 아니다. 그의 부모는 엄격하긴 해도 육체적 학대를 하지는 않았고, 학교에서도 힘센 아이들이 괴롭히긴 했어도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랜동안 종교의 특정한 이념에 노출되었고, 종교에서 말하는 '죄악'의 개념 때문에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겼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생활에 변화가 없었다. 재미 없는 학교에 다니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고, 알 수 없는 죄의식과 답답한 나날을 이어가던 주인공은 여름 성경캠프에서 여학생 레이나를 만난다. 캠프에서 알게 된 둘은 캠프에서 돌아와 서로 편지를 나누고, 전화도 하면서 서로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부모의 허락을 받고 레이나의 집에서 두 주일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부모님의 차를 타고 위스콘신과 미시간주의 경계에서 만난다. 위스콘신과 미시간 사이에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미시간 호수가 있다. 작가도 어린 시절 미시간주의 트래버스시티에서 태어났으니 미시간과 인연이 있었다. 주인공은 레이나의 집에 도착하고, 레이나의 가족과 인사를 나눈다. 

레이나의 부모는 이혼을 준비하고 있어서 집안이 어수선하다. 레이나의 언니는 일찍 결혼해 집 근처에서 따로 살고 있고, 집에는 레이나의 오빠와 언니가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입양을 했는데 장애를 가졌다. 이 작품은 3분의 2는 레이나의 집에서 지낼 때의 추억을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부모의 종교적 편견 때문에 어린 시절을 죄의식과 공포, 두려움 속에서 자란 두 사람 모두 종교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도 같았다.

레이나의 부모는 아직 법적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레이나의 아버지는 따로 나가서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날마다 장애가 있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역시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목재소에서 일을 한다. 레이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장애가 있는 언니를 돌봐야 하고, 일을 하는 어머니 대신 집안 일도 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과 레이나는 짧은 시간을 내서 데이트를 하고, 산책을 하고, 눈쌓인 산에 올라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시기가 마침 겨울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위스콘신과 미시간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을은 항상 눈이 쌓였고, 눈도 자주 내렸다.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였는데, 이건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어쩌면 의도했던-은유이기도 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그들의 관계를 의미한다. 순수한 청년들의 마음, 순수한 사랑, 그들 둘만의 순수한 시간, 시끄럽고 불안하며, 일상의 시끄러움과 더러움으로부터 떨어져 깨끗하고 순수하게 둘만의 시간을 갖는 공간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두 주일동안 함께 지내면서 친구이자 연인으로 가깝게 지내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처럼 덤덤한 시간들도 보낸다. 크레이크는 레이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도 레이나와 둘이 집에 있을 때와 밖에 나와서 카페에 갔을 때나 집에서도 레이나가 집안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사뭇 다른 것을 느낀다. 

크레이그는 레이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레이나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이어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고,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도 낮고, 미래가 불투명하며, 집안의 형편이 복잡하고 가난해서 삶이 힘들고 괴로운 현실이다. 레이나는 특히 장애가 있는 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하다.

크레이그와 레이나가 함께 한 두 주일이 지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두 사람은 전화로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고, 크레이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레이나와 함께 했던 모든 추억을 불에 태워 재로 만든다. 레이나에게 전화해 이제 인연을 끝내자고 말한 것도 크레이그였다. 레이나의 보이지 않는다. 레이나도 아마 예상하고 있었을까. 레이나의 반응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크레이그의 태도가 이기적으로 보인다.

크레이그는 스무 살이 될 무렵 집에서 나와 독립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집에 들르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는 집의 다락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담요를 발견한다. 그 담요는 크레이그와 레이나가 처음 만났을 때, 레이나가 크레이그를 위해 미리 준비한 선물이었다. 레이나가 여러 천을 짜집기해서 만든 담요는 정성을 많이 들인, 아름다운 담요였다. 레이나와의 추억이 담긴 모든 물건을 불태웠지만 담요만은 보관하고 있었다. 크레이그는 집을 떠나 도시(뉴욕)에서 생활하며 스무 살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교회에서 금기했던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크레이그는 동생 필의 결혼식 때문에 집을 방문하고, 다시 몇 년이 지나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때까지 온전하게 가족들은 잘 살고 있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때, 그는 혼자 눈 내리는 집 주변을 산책하며 과거의 삶을 돌아본다. 물론 레이나와의 특별한 추억도 함께.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작가의 다음 작품인 '만화가의 여행'에서, 옛날 여자친구와 통화했다는 내용이 가끔 나온다. 그 여자친구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레이나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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