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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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좁은 방
    제목 : 좁은 방 작가 : 김홍모 출판 : 보리 잠자기 전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생각했다가 끝까지 보게 된 만화. 예전에 작가가 웹툰으로 연재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주인공 용민은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갇힌다. 그가 재판을 받고 풀려날 때까지 약 8개월 동안의 구치소 생활을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은 시대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용민이 대학생이던 90년대 중반의 상황은 분명 문민정부 시대였다.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3당 야합이 있었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을 처벌하는데 실패했다. 용민(이자 작가 자신)이 활동하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학생운동은 활발했다. 작품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와 경찰백골단의 격렬한 대립으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산화한 학생 열사들도 많았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용민이 구치소에 갇혀 감방 동료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선택이긴 하지만, 감옥 생활이 약간 낭만적으로 묘사된 것은 감안하고 봐야 한다. 주인공 용민은 학생운동권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총학생회 부회장이어서 처벌도 더 엄하게 받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용민의 경험으로만 보면, 학생이 경찰에 잡혀와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은 것은 퍽 의례적이다. 90년대 중반의 사회상황이 80년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이한열 최루탄치사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 경찰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80년대와 그 이전 시기의 민주화운동, 감옥 생활을 잘 그린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다'와 '짐승의 시간'이다. 두 작품 모두 박건웅 작가의 작품으로, 비전향장기수, 김근태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이 작품에서 경찰은 잡혀온 학생들을 폭행하거나 고문하지 않는다. 주인공 용민만 겪은 예외적인 상황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용민과 그의 친구들이 구치소 안에서 생활 개선 투쟁을 벌일 때도 교도관들은 학생들을 달래기만 할 뿐,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용민이 깨닫는 건, 그들의 힘이 더 강하고, 정부가 학생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시민들의 여론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정부가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용민은 '사상범'으로 분류되었지만, 강력범들 가운데서도 전과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 용민이 관찰하는 조폭들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몸에 문신과 흉터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용민이 생활하는 8개월 내내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오히려 범죄자라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구치소 생활개선 투쟁을 할 때도 함께 하는 등 학생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용민도 대학에 들어와서 광주항쟁에 관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바탕에는 그의 아버지 역할도 컸다. 자식이 어렵게-무려 3수를 하면서-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시위만 하고 다니고, 수배자가 되어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우리의 부모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 정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용민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을 믿고, 반대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으로, 구치소의 경험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처럼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 경험을 그래픽노블로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은 매우 드문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홍모 작가의 그림이 참 좋다.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의 그림이 퍽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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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6
  •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제목 : 저 하늘에도 슬픔이작가 : 이희재출판 : 청년사 이윤복은 대략 1951에서 1953년 사이에 태어났다. 한창 한국전쟁이던 시기에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 역시 몹시 가난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윤복의 동생은 모두 세 명으로, 순나, 윤식, 태순이가 있다. 윤복이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가난이 너무 힘에 겨워서였거나, 남편이 폭력적이었거나 두 가지 모두가 원인이었거나 하겠지만, 시간이 흘러 윤복이 쓴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윤복이 신문에 등장하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영화로 유명해지면서 집을 나갔던 엄마와도 연락이 되는 걸로 알려졌다. 윤복의 바로 아래 동생인 순나도 돈을 벌겠다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집을 나갔는데, 윤복의 일기가 책으로 나오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윤복이 국민학교 4학년이던 당시는 1960년대 중반이다. 95%의 사람들이 빈민이어서 가난은 당연하고,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집도 드물었다. 설령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쌀밥이 아닌, 잡곡, 밀가루, 죽 같은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고, 김치를 많이 넣고 끓인 쌀죽이나 수제비, 양이 많은 국수 등을 먹었다.모두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윤복의 집은 특히 더 가난했다. 그의 가족은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거나 이틀, 사흘씩 끼니를 굶을 때도 있었으니 아이들의 배고픔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매우 안쓰럽다.윤복은 집안의 장남으로 소년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목수였으나 몸이 아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가 집을 나가 사라진 상황이라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윤복은 거리에서 껌을 팔아 푼돈을 벌어 끼니를 해결하거나, 돈이 없을 때는 동생 윤식과 함께 집집을 다니며 밥과 쌀을 구걸해 먹었다.다행히 그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선생님이나 급우들은 윤복의 처지를 알고 도와주었다. 특히 김동식 선생님이 윤복의 처지를 알고는 경제적 도움은 물론, 친구 기자에게 윤복이의 삶을 보도하도록 소재를 제공하고, 윤복이 쓴 일기를 보고 책으로 내는 일에 도움을 주는 등 윤복의 삶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윤복이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덕분에 윤복의 가정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윤복 자신에게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다. 윤복은 39세에 병을 얻어 사망하는데,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려서 헤어졌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 함께 살았다. 짧고도 기구한 삶이었지만, 이윤복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일기를 썼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의식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다. 더구나 윤복의 처지는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음에도 그가 글을 꾸준히 썼다는 것이 다른 어린이들과 달랐고, 그 일기의 내용이 솔직하고 절절한 자기 감정과 생각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남다른 점이었다. 누가 윤복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을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일기는 윤복의 자발적 의지에 따랐을 거라고 생각한다.윤복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가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이윤복과는 약 10년 정도의 터울이 지는데, 윤복의 경험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우리집도 매우 가난했고, 가끔 밥을 굶었으며,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벌을 받거나 집으로 돌려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친구와 신문을 떼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신문을 팔아본 적도 있고,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해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에서 믈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아버지가 무능한 것도 같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일을 해 우리 가족을 먹여살렸다.윤복의 삶을 들여다보면, 나는 고생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모두들 사는 것이 고생이었고,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을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윤복의 가족은 빈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사실 빈곤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리라.이 만화를 그린 이희재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인 이윤복과 동년배다. 작가가 어린시절에 우연히 이윤복의 일기를 읽게 되었고, 자기와 같은 나이의 윤복이 겪은 가난의 설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이희재 작가는 퍽 좋아하는 작가인데, 우선 그의 그림이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그림에서 먼저 빛이 난다. 주인공들의 생생한 모습이 살아 있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의 선은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는 느낌이다.이제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한국이지만, 우리의 이웃들 가운데 극소수는 여전히 윤복이의 가족처럼 힘겹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 언론에도 보도되는 것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있고, 가난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다수가 굶주림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문제가 절대절명의 상황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늘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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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6
  • 수상한 연립주택
    제목 : 수상한 연립주택작가 : 오영진출판 : 창비 서울 변두리 마을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는 모두 여섯 가구가 살고 있다. 건물 주인이 바뀌어 새 주인이 이사를 오는데, 세입자들은 건물주인을 우습게 생각한다. 연립주택에서 가까운 곳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집주인 남자이고, 여자는 부잣집 딸로, 남편의 병원을 친정아버지가 차려주었다고 남편을 우습게 아는 여자다.옥탑방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청산유수로 하는 청년이 사는데, 고시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그냥 백수다. 옥찹 아래 4층에 주인 내외가 살고, 3층에는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박사장 가족, 2층에는 아내가 회사 다니고, 남편인 오공식은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고, 1층이자 반지하에는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면서 유흥업소에서 밴드 마스터로 일하는 남자 강씨와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장씨 할머니가 있다.이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소시민의 삶이 대개 거기서 거기라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잘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집주인은 이 연립주택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지으려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힘으로 밀어부치던 집주인은, 조물주보다 위라는 건물주의 위세가 전혀 먹히지 않자, 세입자를 회유해 '문화통치'를 시도한다.그 와중에 집주인 여자는 옥탑방 청년과 바람이 나고, 어느날 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발표되면서, 집주인이자 '항문외과' 원장인 의사는 마침내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도 잠시, 연립주택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사는 비둘기가 희귀한 종이어서 그 지역이 재개발지역에서 제외된다는 구청직원의 말을 듣고, 집주인 의사는 특단의 조치를 마련한다. 그것은 새를 잡아먹는 뱀을 몰래 들여와 나무에 풀어놓자는 계획인데, 그 계획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이야기는 좀 황당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옥탑방에 사는 남자는 고시공부를 하지만 그는 이미 7년째 시험에서 떨어졌고, 앞으로도 시험에 붙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는 백수다. 하지만 외모가 번듯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은 좋다. 시험에 합격하진 못했어도 그동안 읽은 책이 있어 법에 관해 잡다한 지식이 많다. 그래서 집주인이 하는 말을 법률적으로 반박하기 때문에 집주인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집주인 여자가 이 청년에게 반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연하의 남자이고, 외모도 잘 생겼으며, 말도 청산유수로, 교양 있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집주인 여자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그 여자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옥탑방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고3 학생 강희인데, 유흥업소 밴드마스터로 일하는 강씨의 딸이다. 모두들 사연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반지하에 사는 장씨 할머니다. 장씨 할머니의 아들이 이 연립주택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고, 그 보상으로 반지하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씨 할머니는 집주인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낡은 연립주택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헐리게 되어 있다.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마침내 그때가 오고, 연립주택은 재개발로 인해 헐리게 된다. 한 건물에 살며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오던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집주인 남자만 행방불명이 되고,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남긴 채 끝난다.오영진은 이전에도 독특한 소재로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그의 그림은 개성 있다. 그의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퍽 아쉬운데, 작가에 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함께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실성과 유머, 공감을 함께 보여주는 내용이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6
  • 사랑은 혈투
    제목 : 사랑은 혈투작가 : 바스티앙 비베스출판 : 미메시스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 그래픽노블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사, 지문이 거의 없고, 빠르게 그린 듯한 데셍과 거칠지만 적절한 색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판 제목은 '사랑의 혈투'지만 원제목은 '도살'이라고 한다. 제목이 잔혹하지만, 내용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오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수많은 나날을 함께 지내면서 때로는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즐겁고, 기쁘게 지내는 연애의 과정을 단순한 그림이지만 생생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연애 초기, 연인은 헤어지기 아쉽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애틋한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뒤를 이어 곧바로 수송기에서 낙하하기 직전의 군인 모습이 보이고, 낙하(연애)가 처음인 신병에게 선임병이 말한다. 저 아래(연애의 세계)에 '엄청난 살육'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충고한다.청년은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두 사람은 왈츠를 추는데, 이 춤이 곧 연애를 상징한다. 두 사람이 서로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것은, 사랑하는 관계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오해가 일어나고, 한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일은 연애 기간이 지속되면서 가끔 일어나고, 두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육체에 상처를 입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남성이 여성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 여성이 남성의 어깨를 칼로 찌르는 장면은 오해와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몸을 다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두 사람은 결국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이별 음식'을 선택하는데, 그들이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의 애틋함과 다정함은 이별의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어정쩡하게 헤어지고,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자, 연인이었던 남자는 여성에게 달려가 사랑을 구걸한다. 여자 역시 예전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새로 만난 남자를 버리고 달려가지만,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실망하고, 담담하게 헤어진다.사랑과 연애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험이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는 스무살, 서른살이 되어도 연애를 못해본 사람들이 있다는데, '모태 솔로'라고 자조하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청년 시기에 사랑과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보면, 일부이긴 해도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찌질함과 위험한 모습이 보이는데,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을 스토킹하거나,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거나, 그걸로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협박하는 걸 보면서 연애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삶에 큰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남녀의 사랑은 자신과 가장 유전인자가 먼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한다. 즉, 유전적 친화관계가 멀수록 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로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는 호르몬 분비를 통해 자신과 가장 다른 사람(이성)을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다른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면,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2세가 태어나 유전자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유전적으로 멀다고 해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애정의 깊이에 거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감성, 지성에 따라 상대를 선택한다. 즉, 유전자와 사람의 이성이 복합적으로 상대방을 선택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정신병동 이야기
    제목 : 정신병동 이야기작가 : 대릴 커닝엄출판 : 이숲 작가는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정신병이 비슷하지만 다 다르고,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정신병'의 공통점은 모두 '뇌'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뇌에 관한 생물학, 유전학적 분석은 깊지 않지만, 상식으로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꽤 도움이 되겠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약 700만년)에 걸쳐 느리게 진화하다 지금부터 약 20만년 전부터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생하던 시기에 인류는 서서히 수렵 채취에서 정착, 농경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육식의 비율이 높아지고, 불을 이용한 화식이 늘면서 인류의 육체는 커지고 뇌 발달도 빠르게 진행했다.문제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갖게 되면서 시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추상하며, 언어를 구사하는 복잡한 뇌 구조로 진화하면서 그만큼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졌다. 복잡한 뇌기능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유전적 영향 등 선척적인 원인은 물론, 후천적 환경에 노출되면서도 쉽게 영향을 받아 이상이 발생한다. 정신병의 많은 부분은 선천적 원인에 있다고 하지만, 현대의 정신병은 후천적 요인의 비율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알고 있다.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그가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부르주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자본의 노예로 생존하는 자체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것부터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데, 여기에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고,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육체와 정신이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물질숭배 사회에서 인간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관계는 맺기 어려운 세상이 되면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스스로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충격을 주지만, 받아들이는 뇌에서는 뉴런, 스냅스, 호르몬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물리적 자극을 통해 뇌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뇌의 활동의 결과를 마치 '나'라는 존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와 '뇌 기능'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이성적 의지'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류에게 '뇌'의 문제는 진화와 관련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소년의 마음 - 소복이
    제목 : 소년의 마음작가 : 소복이출판 : 사계절 소복이의 그림과 글을 퍽 좋아하는 나는, 소복이가 그린 책을 찾아 읽는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소년의 마음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나도 소년처럼 울었다.가족과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 부모의 불화 속에서 늘 우울하고 외롭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때로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더 많이 혼자 철둑길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어린이에게 집과 부모는 세계의 모든 것이고, 절대적이었는데, 그 세계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온 존재가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소복이는 이런 어린 소년의 마음을 잘 읽고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을 귀여워하고 사랑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년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 힘으로 소년은 현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딘다.세상에 홀로 남겨졌다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소년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있고, 다행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지낸 사람은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 들어도 원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가난하고 조금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심하지는 않아도, 가끔 꿈속에서 나는 슬프고 외롭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이를 돌봐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보편성을 얻는 것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 문화
    • 만화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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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좁은 방
    제목 : 좁은 방 작가 : 김홍모 출판 : 보리 잠자기 전에 조금만 읽고 자야지, 생각했다가 끝까지 보게 된 만화. 예전에 작가가 웹툰으로 연재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주인공 용민은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갇힌다. 그가 재판을 받고 풀려날 때까지 약 8개월 동안의 구치소 생활을 그린 작품인데, 이 작품은 시대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용민이 대학생이던 90년대 중반의 상황은 분명 문민정부 시대였다.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3당 야합이 있었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을 처벌하는데 실패했다. 용민(이자 작가 자신)이 활동하던 90년대 중반만 해도 학생운동은 활발했다. 작품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시위와 경찰백골단의 격렬한 대립으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산화한 학생 열사들도 많았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용민이 구치소에 갇혀 감방 동료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선택이긴 하지만, 감옥 생활이 약간 낭만적으로 묘사된 것은 감안하고 봐야 한다. 주인공 용민은 학생운동권에서도 핵심에 속하는 총학생회 부회장이어서 처벌도 더 엄하게 받을 걸로 예상하고 있었다. 용민의 경험으로만 보면, 학생이 경찰에 잡혀와서 폭행이나 고문을 당하지 않은 것은 퍽 의례적이다. 90년대 중반의 사회상황이 80년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이한열 최루탄치사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 경찰은 잔인하고, 악랄했다. 80년대와 그 이전 시기의 민주화운동, 감옥 생활을 잘 그린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다'와 '짐승의 시간'이다. 두 작품 모두 박건웅 작가의 작품으로, 비전향장기수, 김근태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경찰과 정보기관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이 작품에서 경찰은 잡혀온 학생들을 폭행하거나 고문하지 않는다. 주인공 용민만 겪은 예외적인 상황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용민과 그의 친구들이 구치소 안에서 생활 개선 투쟁을 벌일 때도 교도관들은 학생들을 달래기만 할 뿐,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용민이 깨닫는 건, 그들의 힘이 더 강하고, 정부가 학생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시민들의 여론도 학생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여서 정부가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용민은 '사상범'으로 분류되었지만, 강력범들 가운데서도 전과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방에서 생활한다. 용민이 관찰하는 조폭들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몸에 문신과 흉터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용민이 생활하는 8개월 내내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오히려 범죄자라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구치소 생활개선 투쟁을 할 때도 함께 하는 등 학생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용민도 대학에 들어와서 광주항쟁에 관해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바탕에는 그의 아버지 역할도 컸다. 자식이 어렵게-무려 3수를 하면서-대학에 들어갔는데,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시위만 하고 다니고, 수배자가 되어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많은 우리의 부모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자 정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권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용민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이 하는 말과 행동을 믿고, 반대하지 않았으며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으로, 구치소의 경험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 특별한 작품이다. 한국처럼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하는 나라는 많지만, 그 경험을 그래픽노블로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은 매우 드문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홍모 작가의 그림이 참 좋다.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한 걸로 아는데, 나는 그의 그림이 퍽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문화
    • 만화
    2021-09-26
  •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제목 : 저 하늘에도 슬픔이작가 : 이희재출판 : 청년사 이윤복은 대략 1951에서 1953년 사이에 태어났다. 한창 한국전쟁이던 시기에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 역시 몹시 가난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윤복의 동생은 모두 세 명으로, 순나, 윤식, 태순이가 있다. 윤복이 어려서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가난이 너무 힘에 겨워서였거나, 남편이 폭력적이었거나 두 가지 모두가 원인이었거나 하겠지만, 시간이 흘러 윤복이 쓴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윤복이 신문에 등장하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영화로 유명해지면서 집을 나갔던 엄마와도 연락이 되는 걸로 알려졌다. 윤복의 바로 아래 동생인 순나도 돈을 벌겠다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집을 나갔는데, 윤복의 일기가 책으로 나오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윤복이 국민학교 4학년이던 당시는 1960년대 중반이다. 95%의 사람들이 빈민이어서 가난은 당연하고, 하루 세끼를 다 먹는 집도 드물었다. 설령 끼니를 해결한다 해도 쌀밥이 아닌, 잡곡, 밀가루, 죽 같은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고, 김치를 많이 넣고 끓인 쌀죽이나 수제비, 양이 많은 국수 등을 먹었다.모두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윤복의 집은 특히 더 가난했다. 그의 가족은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먹거나 이틀, 사흘씩 끼니를 굶을 때도 있었으니 아이들의 배고픔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매우 안쓰럽다.윤복은 집안의 장남으로 소년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목수였으나 몸이 아파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가 집을 나가 사라진 상황이라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윤복은 거리에서 껌을 팔아 푼돈을 벌어 끼니를 해결하거나, 돈이 없을 때는 동생 윤식과 함께 집집을 다니며 밥과 쌀을 구걸해 먹었다.다행히 그는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선생님이나 급우들은 윤복의 처지를 알고 도와주었다. 특히 김동식 선생님이 윤복의 처지를 알고는 경제적 도움은 물론, 친구 기자에게 윤복이의 삶을 보도하도록 소재를 제공하고, 윤복이 쓴 일기를 보고 책으로 내는 일에 도움을 주는 등 윤복의 삶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윤복이의 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덕분에 윤복의 가정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윤복 자신에게도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한다. 윤복은 39세에 병을 얻어 사망하는데,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려서 헤어졌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나 함께 살았다. 짧고도 기구한 삶이었지만, 이윤복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일기를 썼다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건 의식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다. 더구나 윤복의 처지는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음에도 그가 글을 꾸준히 썼다는 것이 다른 어린이들과 달랐고, 그 일기의 내용이 솔직하고 절절한 자기 감정과 생각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남다른 점이었다. 누가 윤복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 사람이 있을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일기는 윤복의 자발적 의지에 따랐을 거라고 생각한다.윤복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가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는 6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이윤복과는 약 10년 정도의 터울이 지는데, 윤복의 경험과 많은 부분이 겹친다. 우리집도 매우 가난했고, 가끔 밥을 굶었으며,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벌을 받거나 집으로 돌려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친구와 신문을 떼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신문을 팔아본 적도 있고, 점심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해 운동장에 있는 수돗가에서 믈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아버지가 무능한 것도 같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엄마가 있었고, 엄마가 일을 해 우리 가족을 먹여살렸다.윤복의 삶을 들여다보면, 나는 고생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모두들 사는 것이 고생이었고,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을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윤복의 가족은 빈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사실 빈곤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으리라.이 만화를 그린 이희재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인 이윤복과 동년배다. 작가가 어린시절에 우연히 이윤복의 일기를 읽게 되었고, 자기와 같은 나이의 윤복이 겪은 가난의 설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고 회고했다. 이희재 작가는 퍽 좋아하는 작가인데, 우선 그의 그림이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그림에서 먼저 빛이 난다. 주인공들의 생생한 모습이 살아 있고, 따뜻하고 다정한 그의 선은 슬프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주는 느낌이다.이제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한국이지만, 우리의 이웃들 가운데 극소수는 여전히 윤복이의 가족처럼 힘겹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 언론에도 보도되는 것처럼, 굶어죽는 사람이 있고, 가난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는 다수가 굶주림에서 벗어나 먹고 사는 문제가 절대절명의 상황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고, 그늘에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이리라.
    • 문화
    • 만화
    2021-09-26
  • 수상한 연립주택
    제목 : 수상한 연립주택작가 : 오영진출판 : 창비 서울 변두리 마을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는 모두 여섯 가구가 살고 있다. 건물 주인이 바뀌어 새 주인이 이사를 오는데, 세입자들은 건물주인을 우습게 생각한다. 연립주택에서 가까운 곳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집주인 남자이고, 여자는 부잣집 딸로, 남편의 병원을 친정아버지가 차려주었다고 남편을 우습게 아는 여자다.옥탑방에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청산유수로 하는 청년이 사는데, 고시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그냥 백수다. 옥찹 아래 4층에 주인 내외가 살고, 3층에는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박사장 가족, 2층에는 아내가 회사 다니고, 남편인 오공식은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하고, 1층이자 반지하에는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면서 유흥업소에서 밴드 마스터로 일하는 남자 강씨와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장씨 할머니가 있다.이들은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소시민의 삶이 대개 거기서 거기라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잘 참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집주인은 이 연립주택을 허물고 새로 건물을 지으려 한다. 집주인과 세입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힘으로 밀어부치던 집주인은, 조물주보다 위라는 건물주의 위세가 전혀 먹히지 않자, 세입자를 회유해 '문화통치'를 시도한다.그 와중에 집주인 여자는 옥탑방 청년과 바람이 나고, 어느날 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발표되면서, 집주인이자 '항문외과' 원장인 의사는 마침내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도 잠시, 연립주택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사는 비둘기가 희귀한 종이어서 그 지역이 재개발지역에서 제외된다는 구청직원의 말을 듣고, 집주인 의사는 특단의 조치를 마련한다. 그것은 새를 잡아먹는 뱀을 몰래 들여와 나무에 풀어놓자는 계획인데, 그 계획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이야기는 좀 황당하지만, 집주인과 세입자들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옥탑방에 사는 남자는 고시공부를 하지만 그는 이미 7년째 시험에서 떨어졌고, 앞으로도 시험에 붙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는 백수다. 하지만 외모가 번듯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은 좋다. 시험에 합격하진 못했어도 그동안 읽은 책이 있어 법에 관해 잡다한 지식이 많다. 그래서 집주인이 하는 말을 법률적으로 반박하기 때문에 집주인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집주인 여자가 이 청년에게 반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연하의 남자이고, 외모도 잘 생겼으며, 말도 청산유수로, 교양 있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청년은 집주인 여자를 누님이라고 부르고, 그 여자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옥탑방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고3 학생 강희인데, 유흥업소 밴드마스터로 일하는 강씨의 딸이다. 모두들 사연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인 사연의 주인공은 반지하에 사는 장씨 할머니다. 장씨 할머니의 아들이 이 연립주택을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고, 그 보상으로 반지하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씨 할머니는 집주인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낡은 연립주택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헐리게 되어 있다.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마침내 그때가 오고, 연립주택은 재개발로 인해 헐리게 된다. 한 건물에 살며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오던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집주인 남자만 행방불명이 되고,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남긴 채 끝난다.오영진은 이전에도 독특한 소재로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그의 그림은 개성 있다. 그의 작품이 그래픽노블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퍽 아쉬운데, 작가에 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경험과 함께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사실성과 유머, 공감을 함께 보여주는 내용이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6
  • 사랑은 혈투
    제목 : 사랑은 혈투작가 : 바스티앙 비베스출판 : 미메시스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 그래픽노블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사, 지문이 거의 없고, 빠르게 그린 듯한 데셍과 거칠지만 적절한 색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판 제목은 '사랑의 혈투'지만 원제목은 '도살'이라고 한다. 제목이 잔혹하지만, 내용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오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수많은 나날을 함께 지내면서 때로는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즐겁고, 기쁘게 지내는 연애의 과정을 단순한 그림이지만 생생한 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연애 초기, 연인은 헤어지기 아쉽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애틋한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뒤를 이어 곧바로 수송기에서 낙하하기 직전의 군인 모습이 보이고, 낙하(연애)가 처음인 신병에게 선임병이 말한다. 저 아래(연애의 세계)에 '엄청난 살육'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충고한다.청년은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 두 사람은 왈츠를 추는데, 이 춤이 곧 연애를 상징한다. 두 사람이 서로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것은, 사랑하는 관계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오해가 일어나고, 한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일은 연애 기간이 지속되면서 가끔 일어나고, 두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육체에 상처를 입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남성이 여성을 몽둥이로 때리는 장면, 여성이 남성의 어깨를 칼로 찌르는 장면은 오해와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몸을 다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두 사람은 결국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이별 음식'을 선택하는데, 그들이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의 애틋함과 다정함은 이별의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어정쩡하게 헤어지고,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를 만나자, 연인이었던 남자는 여성에게 달려가 사랑을 구걸한다. 여자 역시 예전 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새로 만난 남자를 버리고 달려가지만,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실망하고, 담담하게 헤어진다.사랑과 연애는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험이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는 스무살, 서른살이 되어도 연애를 못해본 사람들이 있다는데, '모태 솔로'라고 자조하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청년 시기에 사랑과 연애를 많이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숙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보면, 일부이긴 해도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찌질함과 위험한 모습이 보이는데, 연애하다 헤어진 사람을 스토킹하거나, 연애할 때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거나, 그걸로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협박하는 걸 보면서 연애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삶에 큰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남녀의 사랑은 자신과 가장 유전인자가 먼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한다. 즉, 유전적 친화관계가 멀수록 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로 대를 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는 호르몬 분비를 통해 자신과 가장 다른 사람(이성)을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다른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들면,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 2세가 태어나 유전자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유전적으로 멀다고 해서, 두 사람의 성격이나 애정의 깊이에 거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유전자가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감성, 지성에 따라 상대를 선택한다. 즉, 유전자와 사람의 이성이 복합적으로 상대방을 선택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정신병동 이야기
    제목 : 정신병동 이야기작가 : 대릴 커닝엄출판 : 이숲 작가는 정신병동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정신병이 비슷하지만 다 다르고, 복잡한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정신병'의 공통점은 모두 '뇌'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뇌에 관한 생물학, 유전학적 분석은 깊지 않지만, 상식으로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꽤 도움이 되겠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 년(약 700만년)에 걸쳐 느리게 진화하다 지금부터 약 20만년 전부터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공생하던 시기에 인류는 서서히 수렵 채취에서 정착, 농경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육식의 비율이 높아지고, 불을 이용한 화식이 늘면서 인류의 육체는 커지고 뇌 발달도 빠르게 진행했다.문제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갖게 되면서 시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추상하며, 언어를 구사하는 복잡한 뇌 구조로 진화하면서 그만큼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졌다. 복잡한 뇌기능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유전적 영향 등 선척적인 원인은 물론, 후천적 환경에 노출되면서도 쉽게 영향을 받아 이상이 발생한다. 정신병의 많은 부분은 선천적 원인에 있다고 하지만, 현대의 정신병은 후천적 요인의 비율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알고 있다.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그가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부르주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자본의 노예로 생존하는 자체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것부터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데, 여기에 수많은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야 하고,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육체와 정신이 늘 긴장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면역계가 파괴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물질숭배 사회에서 인간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관계는 맺기 어려운 세상이 되면서, 개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스스로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충격을 주지만, 받아들이는 뇌에서는 뉴런, 스냅스, 호르몬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물리적 자극을 통해 뇌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완벽하지 않은 것은 뇌의 활동의 결과를 마치 '나'라는 존재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아'와 '뇌 기능'의 관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이성적 의지'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인류에게 '뇌'의 문제는 진화와 관련해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소년의 마음 - 소복이
    제목 : 소년의 마음작가 : 소복이출판 : 사계절 소복이의 그림과 글을 퍽 좋아하는 나는, 소복이가 그린 책을 찾아 읽는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소년의 마음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나도 소년처럼 울었다.가족과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았던 시절, 부모의 불화 속에서 늘 우울하고 외롭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때로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더 많이 혼자 철둑길의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어린이에게 집과 부모는 세계의 모든 것이고, 절대적이었는데, 그 세계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온 존재가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소복이는 이런 어린 소년의 마음을 잘 읽고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자신을 귀여워하고 사랑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상상의 세계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년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 힘으로 소년은 현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딘다.세상에 홀로 남겨졌다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힘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소년에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있고, 다행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지낸 사람은 부러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 들어도 원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가난하고 조금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심하지는 않아도, 가끔 꿈속에서 나는 슬프고 외롭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이를 돌봐야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년의 모습이 보편성을 얻는 것은,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 문화
    • 만화
    2021-09-24
  • 풀 - 김금숙
    제목 : 풀 작가 : 김금숙 출판 : 보리 김금숙 작가 작품. 그래픽노블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렇게 과거의 기록을 남길 때다. 구술사의 경우,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구술자의 말을 글로 기록하게 되는데, 기록의 생생함을 글로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글은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되지만, 독자의 상상은 독자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인해 제한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래픽노블처럼 글과 그림이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독자의 상상력을 확대하고, 고증의 완벽성이 관건이긴 하지만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글만 읽을 때의 어려움을 그림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 내용의 이해를 도우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픽노블을 단순히 만화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그림은 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글의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원래의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이 작품은 일본군 성노예로 붙잡혔던 이옥선 할머니를 작가가 직접 인터뷰해서 그리고 쓴 작품이다. 이럴 때,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갖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므로, 똑같은 소재라 해도 남성 작가가 접근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작가는 그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붓과 먹을 이용한 흑백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흑백은 과거의 시간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며, 붓과 먹은 우리의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의 역사를 전통의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작가의 그림은 한국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시간에 채색을 하는 것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잔인한 과거의 흔적을 묘사하는데 흑백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가는 일본군의 만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마음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것은 이 역사적 사건에서 피해자가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를 가해자 중심으로 놓고 보면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간단한 예로, 박정희 정권에서 희생당한 인혁당 사건의 주인공들을 그릴 때도, 박정희 정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과 인혁당 피해자와 가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하고 엄연하게 다르다. 역사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는 역사를 누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와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는 역사의 시각과 관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일본군 성노예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틀릴 수밖에 없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도는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단지 포주와 창녀의 돈벌이로 왜곡, 격하시키는 발상은 일본이 늘 주장하고 바라는 관점이다. 이옥선 할머니의 경우, 당시 조선의 가난한 민중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일본의 수탈, 조선의 지배계급의 무능과 부패, 강대국에 침탈당하는 약소국의 비애, 식민지를 확대, 강화하는 제국주의의 발현 등 당시 역사의 총체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와 편견, 왜곡된 지식으로 친일파가 되어버린 인간들의 역겨운 인식이 날뛰는 꼴을 볼 수 있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으로 오멸 감독의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창작한 '지슬'이 있다. '지슬' 역시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제주4.3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작가는 붓과 먹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흑과 백이라는 단순함은 이미지의 강렬함과 함께 주제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일수록 컬러보다는 흑백이 어울리는 이유는, 다채로운 색으로 분산되는 독자의 시선을 작가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금숙 작가의 이 작품과 '지슬'도 그렇고, 박건웅 작가의 일련의 작품 - 짐승의 시간, 노근리 이야기 등 -도 흑백으로 창작되었다. 김금숙 작가의 작품 주제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고,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했던 나라에서는 공통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이 전쟁범죄는 인권과 가장 깊은 관계가 있고, 특히 여성의 성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세계여성운동과도 밀접하다. '풀'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성을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영국 '가디언'의 2019 최고 그래픽노블, 프랑스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특별상,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9 올해 최고의 만화 등으로 선정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 성노예 범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과 김금숙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일본군의 성범죄에 대한 증언을 외면하고 왜곡한다. 일본이 아무리 오리발을 내밀어도, 역사는 분명하게 진실을 증언하고 있으며, 세계의 상식은 일본의 범죄를 규탄하고 있다. 김금숙 작가의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고, 전쟁 범죄의 잔혹함을 증명하며,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서 더욱 뜻깊다. 한국의 만화가들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아버지의 노래
    아버지의 노래 김금숙 작가 작품.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태어난 1970년의 농촌 마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지배하던 시기였지만 전통적으로 조선의 농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시골이다. 농촌 마을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를 겪고, 곧 이어 전쟁까지 겪으면서 격렬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농업의 근간을 잃지 않은 뿌리깊은 전통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는 농사를 하는 부모님과 아홉 형제의 막내로 자란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가족 사이에서 자란 것을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부모가 농사를 포기하고 서울로 이주하기로 작정한 것은, 70년대의 커다란 흐름과 관계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이후 경공업의 활성화와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농업 위주의 나라에서 산업국가로 이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자본가들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값싼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었으며, 여기에 10대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 투입되었다. 이들은 가난한 시골의 여성들로, 학교는 국민학교 졸업 또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여성들로, 집안의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한 어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심지어는 철야로 일을 하며 노동력을 값싸게 공급했고, 자본가는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 시골의 젊은이를 도시로 불러오도록 하는 정책은 농촌을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방식이었으며, 가장 핵심은 쌀값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낮은 쌀값은 농민의 생계를 위협했고, 농민 특히 대지주가 아닌 빈농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부모님도 농업만으로는 먹고 살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식들의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 거의 전부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취업은 곧 집안을 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낸다고 '우골탑'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작가의 부모님은 이미 서울에 살고 있던 작가의 큰외삼촌(엄마의 남동생)에게 땅 판 돈을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지만 외삼촌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작가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도시 이주와 관련해 수많은 비슷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가족의 배신으로 고통을 겪는건 언제나 분노를 일으킨다. 작가의 부모는 과일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힘들고 고생이 많은 나날이지만 대가족을 이루고 있던 작가의 가족은 서로 힘을 합해 어려움을 이겨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미 어른이 된 오빠와 언니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다. 어지간한 집안에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막내였던 작가는 부모와 형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고,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발생하는 괴리로 인해 정신적으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불만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을 살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작가가 한국을 떠나는 것은 가족과의 연대를 끊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는 성장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고, 애틋하고 안쓰러운 가족의 아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그늘지지 않고 밝고 쾌활하게 자랐음을 알 수 있는데, 가난해도 부모의 깊은 애정과 형제들의 우애가 이들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자살도
    자살도 '홀리랜드'의 작가 코우지 모리의 작품. 열일곱 권으로 완간. 한국에서는 '아일랜드'로 번역 출판. 전작인 '홀리랜드'도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과 배경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사회에서 일탈된 '비정상'의 인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 개개인이 비정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발생하고, '홀리랜드'나 이 만화의 주인공들도 사회의 경쟁과 구조 속에서 발생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홀리랜드'에서는 주로 학교의 불량배들과 따돌림과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등장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불량배'들은 도태된 인간들을 말한다. 학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고,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불량품'이라고 낙인찍힌다. 즉, 청소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감성은 억압당하고, 획일화된 프로그램 안에 갇히게 됨으로써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큰 그림으로 보면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억압기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탈하거나 폭발하는 것인데, 가해자는 자신들보다 더 약한 존재를 괴롭힘으로써 억압의 스트레스 강도를 낮추려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받으며 억압의 강도가 커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던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자살도'에서는 수많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살던 사회는 경쟁과 억압이 일상화된 사회이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짓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짓밟혀 가라앉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일방 폭력(가정폭력,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심각한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이라 일방적 피해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가해자들의 논리에 시달린다. 자살도에 버려진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 생존의 이유도, 생존의 열정도 없다는 점에서, 그들이 살아있다는 건 오히려 불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자살미수자들을 무인도에 버리는데, 그곳에서 자살을 하든, 서로를 죽이든, 아니면 섬에서 굶어죽든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무인도에 유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자살자들은 섬에 내리는 즉시 모두 자살을 해야 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자살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섬에 버려진 사람들은 무정부 상태에 놓여진 무리이고, 그들은 스스로 처음부터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누군가 앞장서야 하고, 각자 역할을 해야하며,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살은 혼자 결정하면 되지만, 살기 위해서는 협동하고, 의논하고, 노동하고,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적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예상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섬에 버려지는 상황을 그린 작품은 '배틀로얄'이나 '파리대왕'처럼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지만, 이 만화는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 '세이'는 작가의 전작인 '홀리랜드'에서 주인공 '유우'와 비슷하다. 세이도 어떤 이유에선지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데, '유우'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세이'처럼 되었을 것이다. 세이는 의지도 약하고, 마음도 여린 사람인데, '자살도'에 들어와 오히려 삶의 의지가 강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유우'가 스스로 연습한 복싱을 통해 집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결국 강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다. '자살도'에서는 크게 두 집단이 대립하는데, 이는 인류의 발전단계에서 씨족-부족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전투와 약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투와 약탈은 식량과 노예의 확보가 목적이다. 무인도에 버려진 이들도 인류의 초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들의 대립은 일정한 생산성이 확보될 때까지 계속된다. 초기에는 식량 확보에 급급했던 자살자들은 조금씩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관한 해답을 얻는다. 그것은 알고보면 매우 쉬운 내용이지만, 그들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었고,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홀리랜드
    홀리랜드 코우지 모리의 데뷔작이자 출세작. 한국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열여덟 권으로 완간했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개성이 있고, 일본 주류 만화와 다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히트작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은 걸로 안다. 이 만화를 그린 코우지 모리가 한동안 방황하면서 겪었던 사건을 바탕에 깔고 있어서 꽤 생생한 느낌이 드는 '거리의 싸움꾼' 만화다. 주인공은 카미시로 유우라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중학교 때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고, 학교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학교도 자주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가족과 대화하지 않으며 방안에서만 지내던 히키코모리였다. 그러던 그가 '아프지 않게 맞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 복싱 교본을 보고 따라하기를 하면서였다. 그는 하루에 5천번씩 스트레이트 연습을 할 정도로 집중하는데, 그가 밤에 길거리에서 '불량배 사냥꾼'이 된 것은 그의 내면에 응어리진 분노때문이다. 유우는 독학으로 배운 복싱 기술로 불량배를 몇 명 때려눕히지만, 그의 앞에 나타나는 강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 만화는 그래서 영웅설화의 과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영웅은 좌절하는 인간이며, 고통과 고난의 과정을 겪고 무사히 귀환하거나 누군가를 살린다. 유우는 시대에 버림받고, 민중에게 버림받은 영웅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자 애를 쓰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적은 너무 많고, 강하기 때문이다. 이때 영웅을 돕는 인물이 등장한다. 카네다 신이치가 그의 정신적 동반자라면 이자와 마사키는 유우의 성장을 돕는 멘토이자 앞서가는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우는 이자와 마사키를 만난 이후 늘 그를 동경하고 존경한다. 그의 롤모델이 된 것이다. 이자와 마사키 역시 유우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던 사이지만,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유우는 자신이 싸워 이기거나 진 상대를 찾아가 그들의 장점을 배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이 진짜 강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인데, 유우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유우의 친구인 카네다나 이자와는 유우의 내면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유우가 중학생 때 따돌림을 당하고, 동급생이나 상급생들에게 얻어 맞고 돈을 빼앗긴 것은 그가 육체적으로 약하다기 보다는 폭력에 대응할 마음의 자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자와 마사키도 마찬가지여서, 전국대회에 나갈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복싱선수였던 이자와였지만, 규칙이 없는 길거리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유우는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불량배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본격 길거리 싸움꾼의 삶을 만들어간다. 학교에서 불량배라 해도 길거리에서 1대 1로 싸움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우는 여러 학교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일진들을 상대로 1대 1로 싸워 그들을 때려눕힌다. 그가 배운 것은 복싱이지만 레슬링, 공수도, 복싱, 검도 등 여러 분야의 강자들을 상대하면서 성장한다. 소재는 거리의 싸움이지만 당연히 성장만화이고, 약자, 패배자였던 한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작가인 코우지 모리는 키 183센티미터, 몸무게 85킬로그램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이다. 그가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일시적으로 방황하던 때, 길거리 싸움을 경험했고, 그의 친구이자 유명한 만화가인 미우라 켄타로가 코우지 모리에게 힘들었던 시기를 만화로 그려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이 만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는 선량하고 유약한 청소년이지만, 워낙 괴롭힘을 심하게 당해서 스스로 히키코모리가 되고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복싱의 기본을 배우게 되면서 길거리로 나오고, 불량배를 때려눕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는데,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는 발전적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유우의 가족들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주인공과 가족 사이가 여전히 소원하고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짐작한다. 부모는 의외로 잔소리도 하지 않고, 염려하는 마음이지만 유우의 생활에 참견하지 않는다. 즉 상당히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유우에게는 부모가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래도 유우가 스스로 밤거리로 나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쳑하게 된 것도 가족의 방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는데, 불꽃같이 타올랐던 유우와 그의 친구들의 밤거리 생활도 학교를 졸업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게 되고, 유우를 비롯해 몇몇은 여전히 거리의 전설로 회자된다. 학교를 졸업한-어쩌면 졸업하지 못한-유우의 삶은 어떻게 될까. 적어도 그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히키코모리의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수많은 거리의 불량배들을 때려눕힌 실력자이며, 스스로 강자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했다. 그러니 과거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자기의 길을 걸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 문화
    • 만화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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