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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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조선일보' 칼럼을 읽고
유현준의 '조선일보' 칼럼을 읽고 유현준이 조선일보에 쓴 칼럼을 읽고, 칼럼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이런 글에 학식 있는 분들은 관심을 가질 이유도, 수준도 안 되기에, 나 같은 삼류 작가가 관심을 갖고 짚어주어야 한다. 나는 비록 삼류지만, 그동안 유현준의 글을 열심히 읽은 독자들이나, 유현준의 글이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잘 몰랐던 분, 나보다 지식이 얕은 분이라면 지금부터 내 글이 도움이 될 걸로 본다. 유현준이 쓴 본문은 일부러 찾아 읽을 가치가 없으므로 권하지 않는다. 나는 본문을 다 읽고, 그 본문의 일부를 인용하겠지만, 독자께서는 '조선일보'를 찾아가서 조회 수를 올려주지 않았으면 한다. 유현준은 '건축에서는 그것을 어려운 말로 '컨텍스트'를 고려한다고 말한다'고 썼다. 아하, 건축 분야에서는 '컨텍스트'라는 단어가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니까, 유현준 자신은 건축 분야에서 어려운 단어를 쓸 수 있는 꽤 박식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부터 '어필'하고 있다. '컨텍스트'는 '맥락'이다. 이게 어려운 말인가? 모든 상황에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어려운 말인가? '맥락'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이걸 굳이 '컨텍스트'라고 쓰면서 심지어 건축 분야에서는 '어려운 말'이란다. 시작부터 웃긴다. 유현준은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위상의 변화가 '배경의 변화'라고 말하면서 '국내 사건의 의미를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이후 그가 주장하는 모든 한국에서의 문제점의 원인이 중국에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에서 주52시간제와 워라벨의 흐름을 두고 '중국 공산당이 가장 좋아할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반 분야에서 노동시간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창의적 기술 분야에서는 없어져야 할 법이다'라고도 말한다. 유현준은 '주52시간제'를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다. 이것부터 잘못인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창의적 기술분야'에서는 '주52시간제'를 없애고 더 많은 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봤다. 미국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에서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이 채 안 된다. 2024년 10월 미국 민간 비농업 일자리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의 평균 근무 시간은 34.3시간으로 시장 예상치인 34.2시간을 약간 상회했습니다. 제조업에서 평균 근무 시간은 39.9시간으로 거의 변동이 없었고, 초과 근무 시간은 0.1시간 감소하여 2.8시간이었습니다.<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자료> 유현준처럼 단 한 번도 노동자로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은 '노동시간'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는 지금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걸로 아는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주 몇 시간 노동을 하는지는 알고 있을까? 그리고 노동하는 시간에 합당한 임금과 처우는 올바르게 지불하고 있을까? 유현준의 사고방식은 당연히 '자본가'의 사고방식이고, 그는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람이다. 그 자신,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길고, 임금은 적게 주는 사회를 '가장 좋은' 사회로 인식하고 있는 건 자연스럽다. 지금 한국은 '주52시간제'가 아니라 '주40시간제' 또는 '주4일제', '주32시간제'를 사회적 의제로 내놓고 토론해야 하는 사회다. 유현준의 사고방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이겠지만, 한국의 생산성은 이미 선진국에 이르렀으며, 국가와 사회가 만든 '부의 총량'을 얼마나 공평하고 현명하게 나누는가를 고민하는 나라가 되었다. 무조건 오래 일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사회라는 전근대적, 독재적 발상을 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고, 유현준 역시 그런 70년대식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인다. 유현준은 노동시간을 말하다 갑자기 투표권으로 말을 바꾼다. 2005년부터 영주권을 획득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거주를 3년 이상 하면 지방선거에 투표할 권리를 준다는 내용을 두고, '국내 외국인의 80%가 중국인이다. 이 역시 중국 공산당이 제일 좋아할 법안이다'라고 말한다. 영주권을 획득하고도 3년이 지난 외국인이 지방선거 투표를 하는 게 '중국 공산당이 좋아할 법안'이라는 주장은 대체 어떻게 성립하는 것인지 황당하고 놀랍다. 그런데, 유현준의 이 말도 사실이 아니다. 유현준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썼거나, 의도적으로 또는 악의적으로 가짜 내용을 썼다. 경향신문에서 2024년 10월 24일 보도한 내용을 보자. 국내 거주 외국인주민 수 246만명···총인구 4.8%로 '역대 최다' 주요 국적별 구성비는 중국(한국계) 27.5%, 베트남 12.8%, 중국 11.4%, 태국 9.9% 순이다. 베트남 국적자의 비율은 2022년(약 21만명·11.9%)보다 1%p 가까이 늘어 중국 국적자 비율을 앞섰다. 외국인주민 중 한국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은 193만5150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8만2804명(10.4%) 증가했다. 주요 국적별 구성비는 중국(한국계) 27.5%, 베트남 12.8%, 중국 11.4%, 태국 9.9% 순이다. 베트남 국적자의 비율은 2022년(약 21만명·11.9%)보다 1%p 가까이 늘어 중국 국적자 비율을 앞섰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1만681명(4.8%) 증가한 23만4506명이다. 출신 국가별로는 중국(한국계) 10만1995명(43.5%), 베트남 5만4696명(23.3%), 중국 4만2513명(18.1%), 필리핀 1만543명(4.5%), 캄보디아 5252명(2.3%) 순이다.<경향신문 2024년 10월 24일자 내용> 유현준이 말한대로 '국내 외국인의 80%가 중국인'이라는 말은 거짓이다. 순수 중국인은 11.4%에 불과하고, 조선족을 합해도 39%에 불과하다. 유현준은 중국 공산당을 강조하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검색을 하지 않고 엉터리 글을 쓴 것이다. 이 정도면 '칼럼'이 아니라 사기에 가깝다. 유현준은 또 멋대로 논리를 건너 뛰어, 반일 감정을 갖는 것이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하면서 항상 일제강점기 이야기만 한다. 그러면서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주로 만든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블록에 남아 있으려면 극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둘을 갈라지게 하는 것 역시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좋아하는 일이다.'(유현준) 유현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게 좋다는 의미인지, 나쁘다는 의미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블록에 남아 있는 것과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한 것이 어떻게 등치되는 논리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이 재무장해서 대한민국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도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건지,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들어 온갖 국가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인지, 유현준의 글쓰기는 모호해서 읽는 사람에게 짜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면서 결국 일본과 한국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유현준의 앞의 글이 갖는 의미는, 한국이 일본을 너무 비난하지 말고, 일본과 한국이 극동아시아에서 사이 좋게 지내는 게 필요하고, 일본과 한국이 사이 좋게 지내면, 중국 공산당과 북한이 '나빠할 일'이니까, 한국은 일본과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가해자(일본)가 사과도 하지 않는데, 피해자(한국)이 먼저 가서 손내밀고 친하게 지내자는 건 속도 없는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유현준은 어디가서 한 대 맞으면 때린 사람에게 먼저 가서 손 내밀고 '내가 맞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봐도 좋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가까이 위치한 남미 국가들이 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CIA(중앙정보국)를 동원해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 노력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자가 된 중국 공산당이 넘치는 돈과 많은 인구를 이용해 가장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에 그런 일을 안 할까?(유현준) 유현준은 중국을 비난하려고 미국의 국가범죄를 끌어들인다. 오호, 그러고 보니 유현준이 '반미주의자'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이것도 CIA에 유현준을 신고해야 할 내용이니 유현준은 앞으로 미국 갈 생각은 버려야겠다. 2차 세계전쟁 이후 '냉전'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으로 대표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쏘련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세계 곳곳에서 충돌했다. 1950년 한국전쟁 역시 이런 '냉전'의 한 과정에서 벌어진 세계사적 사건이었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벌어졌던 수 많은 군부 쿠데타와 혁명, 반혁명 사태들의 이면에는 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쏘련의 힘이 작용했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유현준은 미국이 세계 약소국을 상대로 친미 정권을 만들면서 벌였던 그 잔혹하고 끔찍한 국가범죄를 중국공산당이 한국을 대상으로 '공산화'를 위한 전략, 전술을 구사할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즉,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고,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을 마치 일어날 것처럼 호도하는 것이다. 이건 유현준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정치체제만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이 한국을 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기에 저렇게까지 호들갑과 오두방정을 떨면서 중국 공산당을 무서워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에는 그런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아서 정책을 만들고 사회운동을 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좀먹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간첩 행위라고 부른다. 물론 겉으로는 민주, 인권, 약자 보호, 워라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다.(유현준) 유현준은 이제 선 넘는 발언을 한다. 국내에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간첩이 있다고 말한다. 유현준은 이 말에 책임져야 한다. 유현준은 그러면서 '민주, 인권, 약자 보호, 워라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지금 한국에서 민주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약자 보호를 말하고, 워라벨을 말하는 사람이 결국 중국과 북한의 지원을 받는 간첩이라는 뜻인데, 유현준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명확하게 책임져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윤석열도 이와 거의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유현준의 말은 윤석열이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이고, 윤석열과 비슷한 사고구조를 가졌다고 봐도 좋다. 유현준의 말은 1970년대 독재 체제에서나 나올 법한, 전근대적이고, 독재적이며, 매우 폭력적인 발언이다. 유현준의 사고방식은, 독재체제에서 독재자가 마음대로 사람을 체포하고, 사살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나 끌고가서 사살해도 좋은,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란다. 민주주의, 인권, 약자 보호와 같은 개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법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는 개념이다. 약자는 사회의 제도로 보호받고, 누구나 평등한 법에 의해 보호받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데, 유현준은 그런 민주, 인권, 약자 보호를 공산주의 체제와 동일시 하며, 공산주의가 곧 절대악이므로, 민주, 인권, 약자 보호도 절대악이라는 나찌의 이분법식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정치는 적을 만들어야 시작된다. 건국 초기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적은 북한이었다. 수십 년 지나자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서 싸웠다. 정치가들은 그것으로 먹고살았다. 1990년대 들어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싸우는 구도로 바뀌었다.(유현준) 유현준은 역사의 흐름에서 본질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미국으로 대표하는 체제와 소련, 중국으로 대표하는 체제가 남북한의 분단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와 목적 때문이라고 하자.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서 싸웠다는 표현은, 두 지역이 자발적으로 서로 감정을 갖고 싸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쓰면 안 된다. 두 지역이 갈등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여론 조작을 한 당사자가 바로 박정희라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는가. 즉, 지역 갈등은 박정희와 집권 세력이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분열을 획책, 조장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지, 경상도, 전라도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고, 그래서 서로 싸웠다고 말하는 건, 본질을 호도하는 악의적 주장이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싸우는 구도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엉터리 주장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곧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를 상징하는 단어다. 자본주의 체제를 운용하는 나라들은 처음부터 자본가와 프롤레탈리아가 대립,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그 갈등의 정도가 아주 적게 나타날 수도 있고, 격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게 자본주의 체제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이자 한계이기 때문이다. 유현준은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와 과정을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일개 건축사인 주제에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발언하려고 하는 태도는 꼴같잖다. 자기가 하는 건축 분야 일도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주제에 세상 모든 사안에 대해, 더군다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조차 왜곡하며 어설픈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이런 '칼럼'을 쓰는 유현준의 수준은 물론, 이런 '칼럼'을 싣는 '조선일보'의 수준이 얼마나 천박하고 한심한가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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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어제 교수님 블로그에 올리신 '나는 왜 윤석열 후보를 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론이자, 공개 편지입니다. 서술의 근거는 교수님의 글을 기본으로 하고, 제가 가진 생각을 더해 주장을 개진하겠습니다. 공개 편지인 만큼 형식과 내용은 자유롭고 편한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은 물론,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보수' 진영에 계신 분들도 읽어보시길 희망합니다. 1 '존경하는 최교수님께'라고 쓴 인사말은 의례적 수식어가 아닙니다. 이웃 사는 저는 평소 최교수님을 자주 뵙고, 함께 식사도 하고, 산행도 하는 '동무'라서 교수님을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정치 성향은 '보수'가 틀림없습니다만,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셨고, 탄핵에 찬성하신 분입니다. 최교수님은 박근혜를 선택했지만, 박근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셨습니다. 최교수님은 스스로 노력해 많은 어려움을 딛고 대학교수가 되셨고, 정년퇴직하신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성실하고 겸손하며, 사회의 규범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로 대학교수가 되셨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2년을 복무했으며, 개신교도로 신앙생활도 신실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측은지심을 가지셨으며, 자신에게 향하는 쓴소리,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넓은 이해의 마음을 가진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최교수님 수준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분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보수'라면 좌우의 날개를 함께 펴고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면 '극우'에 가깝고, 과거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미치광이 수준입니다. '보수' 집회에 참가하면서 일장기를 들고, 일본을 찬양하면서 우리나라가 망해야 한다는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식 있는 시민들이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비웃고, 비난, 비판하는 근거는,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선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은 '정보'로 흘러넘치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편향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개신교 신자로서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하셨습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특정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신앙 때문에 정치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정치인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일 뿐이고, 그래야 합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일반화하려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나 있었던 미개한 폭력입니다. 자신의 신앙(종교)과 정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한 교수님과 ‘보수’의 안목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3 교수님은 글에서 '이승만은 반공, 박정희는 경제, 김영삼은 민주화, 김대중은 개방'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승만이 '반공'을 한 것은 맞습니다만, 이승만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와 패악에 관해서 침묵하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입니다만,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여준 행보, 말과 행동은 친일매국노이자 한국 정치와 사회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의 전형이었습니다. 1948년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정치 상황은 남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만, 남북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던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현실 정치인들을 암살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만들어 과거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가입시킨 다음, 전쟁이 한창일 때 국군특무대를 중심으로 보도연맹원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진짜 빨갱이'들이 아니었고, 한때 좌익이었거나,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배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설령 과거에 '좌익'이었다 해도, 단지 과거의 전력만을 보고 학살한다는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이승만은 이들이 최소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이 학살당하는 걸 묵인했습니다.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했고, 대통령을 영구집권하려는 망상을 가졌으며, 3.15부정선거의 당사자입니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과거 친일매국노를 관직에 앉히는 등 친일파를 옹호하고, '반민특위'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국이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친일매국노를 처단하라고 주장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반대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4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합니다. 박정희가 가난했던 한국을 구제했고, 보릿고개를 없앴으며,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합니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를 생각해 보면,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가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봅니다. 즉,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이 불쾌하고 마땅치 않은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인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젊었을 때 흘렸던 땀과 눈물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훌륭합니다. 그들은 굳이 박정희를 들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한국 사회를 일으킨 주역이며, 한국 사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그러니 박정희를 우상화하지 않아도 '보수'의 애국과 땀의 결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정체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원이었으며, 그의 형 박상희는 '보수'들이 말하는 '진짜 빨갱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상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당시 좌익,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는 대개 지식인이 많았고, 일제강점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 방법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역시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고,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보수'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저주를 퍼붓는 '빨갱이'가 바로 박정희와 그의 형 박상희입니다. 박정희가 전향했으니 그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박정희는 남로당원인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자 자신의 조직과 동료를 고발하는 대가로 살아남았습니다.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는 변절자, 배신자인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경력을 지우려고 더욱 강하게 '반공'을 부르짖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좌익, 공산주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지식인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수'만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보수'의 특징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지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없고, 올바른 역사관이 없으므로 눈앞의 현상만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역사의 물줄기, 역사에서 정의, 민주주의, 민중의 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지배자의 말을 믿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던 1960년을 전후해서, 제3세계-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군부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즉,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는 그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진 이 세계적 사건 가운데 '성공한 쿠데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쿠데타 자체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쿠데타는 성공했어도, 그 주역들이 시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쿠데타 세력의 종말이 모두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군부 쿠데타는 불법이며, 역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범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 의해 사살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재규가 역모를 한 것으로 치부하면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일본군가를 부르며 그걸 즐겼던 친일매국노였습니다. 일본과 일본군에 대한 향수를 끝까지 갖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한때 만주군에서 독립운동가를 '토벌'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걸 부끄럽거나 죄스러워하기는 커녕, 친일매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겠습니까. 박정희가 죽을 때도 주색잡기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무려 200여 명의 여성을 비밀 안가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채홍사 노릇을 한 부하가 직접 증언했고, 박정희의 마지막 순간에도 두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소위 '보수'에서는 이런 박정희를 두고 '남자라면'이라거나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라'거나, '대통령이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려 합니다. 대통령이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걸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그걸 옹호하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그건 최소한의 인간도 못 되는 되먹지 못한 양아치일 뿐입니다. 5 교수님께서는 이명박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택을 이제는 후회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죠. 이명박은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그가 개신교도에 교회의 장로라는 타이틀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교수님께서도 이제는 아셨을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교인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형교회의 목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습을 통해 철저한 자본주의의 물질만능 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보여주어야 할 선행과 이타심은 이미 사라졌고, 교회는 비즈니스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개신교가 얼마나 부패했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었는가는 개신교 전체가 보여주는 악행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과 역할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개신교 내부에서도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실한 목회자와 신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같은 사기꾼, 범죄자가 단지 '개신교도'라는 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이 되도록 한 수많은 개신교도들은 이제 자기 발등을 찍어야 합니다. 그런 통절한 자기반성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제 다시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를 선택하고, 다시 윤석열을 선택한다는 건,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에서 아무런 비판과 반성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직업별 성범죄 1위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매우 불명예스럽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공식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던가요? 말로는 사회의 소금이 되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나쁜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목사가 존재하는 '개신교'는 한국 사회 발전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이명박은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써먹은 악질 가운데서도 악질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32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사라졌고,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또 20조 원의 세금을 탕진했습니다. 이 국민의 돈은 이명박 측근에게 돌아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들여 환경을 망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고, 환경감수성이 무딘 것 또한 '보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6 교수님께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까닭은,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에서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인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찾아보시는 정보의 대부분을 소위 '보수언론'에서 얻고 있는데, 이런 편향이 정보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조선일보는 폐간시켜야 하는 대상입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친일, 매국을 했으며 ‘천황폐하 만세’,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른 반역자들입니다. 보수가 친일매국, 반공을 용인한다면 그것이 애국자이고 ‘보수’입니까? 윤석열을 두고도 객관의 사실을 외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 단지 문재인정부가 싫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간을 지지한다는 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윤석열은 그 자신도 이미 심각한 범죄혐의가 있고, 그의 아내도 논문 표절 문제와 경력 위조, 주가 조작 혐의 등 온갖 파렴치한 범죄혐의가 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장모는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법의 처벌을 받고 감옥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조국 교수의 가족에게 적용해 본다면, ‘보수’의 입장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악의적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조국 교수의 아내가 윤석열 아내와 같은 혐의를 가졌다면,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조국 교수의 장모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분통을 터트리겠습니까? 윤석열은 조국 교수와 그 가족을 멸문할 정도로 잔혹하게 학살한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을 객관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 내용을 보니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의 당원에게 큰 지지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심리를 살펴보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자 박정희와 육영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신들의 딸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심리적 동기화가 있었기에,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어도, 박근혜가 무능하고 불법을 저질러 탄핵당해 감옥에 갔어도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60대 이상 세대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이성적, 지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닌, 감정과 감성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반드시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나라의 미래를 넓고 멀리 바라본다면 이런 감정적 대응과 근시안적 판단은 분명 우리 사회, 성장하는 청년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7 교수님께서는 이재명 후보를 두고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안타까워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과거 대통령을 선택하신 것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안목-최소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그 증거이고, 교수님의 정치적 눈높이가 낮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몹시 가난한 화전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도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고, 국민학교를 마치고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어릴 적, 이재명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셨으니 이재명 후보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실 걸로 압니다. 반면 윤석열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줄곧 금수저로 자랐습니다. 사회학에서 '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부자와 지배자의 논리를 옹호)하는가'를 두고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오로지 먹고사느라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올바른 역사, 정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지한 상태에 머물 확률이 매우 높고, 무지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도 대학에 들어가 깨우치기 전까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광주5.18민주화투쟁'을 보고는 사회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서거'했다고 슬퍼하며 일기장에 쓴 걸 기억합니다. 그때 제 나이 불과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공장 노동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웅변을 듣고 인권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한 사람의 눈물겨운 생존의 분투기이자, 무지에서 각성으로 이어지는 올바른 역사 속 인간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엄격한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보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스스로 엄격하고, 부끄럼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삶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보수'보다는 '진보'가 교수님과 더 잘 어울립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돈과 권력을 향해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내용과 성남시장으로 당선되어 행정을 펼친 것, 경기도지사로 경기도의 행정을 펼친 것을 객관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시고 평가해 보시길 권합니다. 과거 성남시장이었던 자들과 경기도지사가 벌인 짓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를 망치고, 개인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뇌물을 받아 먹은 것은 현 '국민의힘' 쪽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객관적 증거와 자료를 외면하면서까지 훌륭한 행정을 펼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보수'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면,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루합니까. 8 이제 윤석열과 이재명의 실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사회를 개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고, 대통령의 실력과 능력이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이고, 대통령을 둘러싼, 즉 대통령이 임명한 가까운 인재들이 대통령의 행정 목표를 위해 실무를 집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한 나라의 틀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실질적 요소입니다. 윤석열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그 뒤로 약 26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회를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윤석열은 기본 상식과 지식,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이 거의 없는, 무지와 무식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 혼자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뽑아 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있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지 ‘권력’ 그 자체를 탐욕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갖습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가장 큰 차이는,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재명은 ‘권력’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마구 휘두를 생각만 하는 윤석열은 전두환, ‘광주민주화운동’ 발언 등을 종합할 때, 그 자신이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좌우의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자로, 오로지 한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역할을 엉터리로 했다면 지금 전국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윤석열 후보는 조국, 추미애 장관에게 항명하고, 검찰을 사조직화해서 징계를 받게 되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기존 정치인에게 식상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만큼 ‘보수’ 진영에는 능력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검사 26년의 경력말고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이나 정치력, 정치, 행정철학에 관해 최교수님께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윤석열을 객관적으로 검증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도 윤석열은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만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미 박근혜가 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될 때도 이명박과 경쟁하면서 이명박에게 졌고, 박근혜의 실력이 아닌,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불쌍한 자식’ 코스프레로 노인 세대의 감성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지한 박근혜는 최순실의 수렴청정의 허수아비, 괴뢰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고, 지금 감옥에 갔습니다. 윤석열은 그런 박근혜의 무지, 무식과 윤석열의 아내의 수렴청정, 전두환의 폭력적 독재가 결합해 박근혜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지지하시겠습니까? 9 최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보수’의 개념은 ‘건강한 애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보수’의 행태를 잘 보시면, ‘건강한 애국’이 아닌, 극우 파시즘과 천박한 양아치가 결합한 망나니의 모습인 걸 아실 겁니다. 교수님이 그런 집단을 지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보수’는 무엇보다 상식과 합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걸로 압니다.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성조기와 일장기, 이스라엘국기를 흔들며 문재인정부 타도를 외칩니다. 오로지 문재인정부가 싫다는 이유로 친일매국도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입니까? 대형교회 목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정부를 비난하고 직접 정치에 개입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들이 문재인정부를 ‘빨갱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건 아무 근거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부익부빈익빈, 강자독식, 권력과 금력이 결합한 강자카르텔, 부패카르텔을 형성해 사회의 부를 독식하려는 자들이 깨끗하고 합리적인 정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지하는 ‘보수’ 집단인 ‘국민의힘’의 역사적 태동과 성장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면 결코 그들을 지지하지 않으실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이미 어릴 때부터 개신교도로 성장하신 것이 교수님의 정체성을 구성했으므로, 그걸 부인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브로락사스의 알’처럼, 진정한 자기 개혁은 미몽의 세계에서 깨어나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합니다. 이승만 이후부터 박근혜까지 이어온 ‘국민의힘’의 과거는 독재, 쿠데타, 무능의 정부였습니다. 이건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런 정당의 후보로,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을 다시 공포와 독재,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함량 미달의 천박한 후보입니다. 교수님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성장, 발전시킨 집단이 누구입니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흐름이 ‘국민의힘’ 쪽 흐름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의 확대, 경제 성장, 인권, 환경, 복지, 예술의 성장을 이끌어 갈 적임자가 바로 이재명 후보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면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고,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면 미래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올바른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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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을 따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 1 오늘은 하루 온종일 쉰다. 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쉰다. '쉰다'는 '쉬다'의 현재형으로, 무언가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쉬는 날'은 일하지 않는 날을 뜻하며, '쉬는 곳'은 편하게 있는 장소를 말한다. '쉴 틈이 없다'는 매우 바빠서 한가한 틈이 없다는 말이고, '편히 쉬세요'는 몸으로 움직이는 행동(일, 노동) 뿐아니라 복잡한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기운을 부드럽게 다스리라는 뜻이다. 반면, '밥이 쉰다', '음식이 쉰다'처럼 음식이 부패하는 과정의 단계를 뜻하기도 하며, 소리를 많이 지르거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거칠거나 잘 나오지 않는 걸 '목이 쉬다'고 한다. 무엇보다, '쉬다'는 '숨을 쉬다'로 완결한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쉬는 것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며, 숨을 쉬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생명체의 정체성을 잃는다. 나도 지금 숨을 쉬고 있어,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생각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숨을 쉬는 건 살아가는 근원의 활동이지만, 한편 음식이 상하는 과정처럼, 생명 활동의 노화가 진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쉬다'의 활용이 생명 활동과 음식물이 상하는 과정을 함께 보고 있다는 점에서 선조의 지혜가 놀랍다. 2 페이스북에도, 대형 커뮤니티에도 온통 보기 싫은 내용만 올라온다. 크게 두 가지다. 굥, 콜걸, 그 일당이 저지르는 온갖 악다구니와 파렴치와 야비와 뻔뻔함이 그것이고, 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틀린 페미니스트의 갑질과 개혁을 비웃고 자기 개인의 출세와 영리만을 추구하는 양아치들이 벌이는 극도의 혐오스러운 행위가 그것이다. 그들의 욕망과 욕구와 탐욕과 이기와 질투와 비루함의 결과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들이 처참하게 (정치, 사법적으로) 학살당했고, 이제 개혁을 주장하는 최강욱 의원을 살해하고 있다. 실력도, 능력도, 상식도 없는 비루한 것들이 얄팍한 권력을 잡자 동료를 학살하고, 적들과 손을 잡고 개혁을 질식시키고 있다. 너무 혐오스러워 구역질이 나온다. 무능한 자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마치 어린아이가 총알이 든 총을 가진 것처럼, 자기 제어, 통제를 하지 못한다. 비로 직전의 정부가 많은 부분 잘 했고, 또 많은 부분 잘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악하거나 야비하거나 천박하지는 않았다. 지금 권력을 잡은 자들은 무능하고, 멍청하며, 사악하고, 야비하고, 천박하다. 올바른 역사관, 정치관, 세계관이 없으니 국가를 올바르게 운영할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하고, 주변 강대국의 전술에 휘둘리며 국가의 이익을 뺐기기만 할 뿐이다. 무능하고 멍청한 권력자에게서 권력을 뺐어야 한다. 마치 총을 든 어린아이에게서 총을 뺐는 게 당연하듯. 3 백수가 이렇게 피곤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힘든 나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하던 글쓰기 강의도 하나가 끝나고, 이제 마지막 강의만 남겨두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도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나, 참여하는 자체로도 신경 쓸 일이 있고, 즐거운 한편 힘들기도 하다. 여기에 끝이 없는 집안 일과 안팎으로 소소하게 신경써야 하는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런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간다. 이럴 때 부르주아가 부럽다. 돈이 많으면 돈으로 사람을 사서 내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나 자랐으니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해서, 자본가, 부르주아 아니면 노동자 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고, 확률통계상 90%에 해당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일테다. 내가 만약 10%에 속하는 자본가, 부르주아였다면 여기서 이런 한심한 말이나 늘어놓고 있지 않을텐데. 이상적 사회주의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루 4시간 사회를 위해 노동하고, 나머지는 나 자신의 창조적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 모두가 고르게 평등하고, 빈부가 사라지고, 문화, 예술이 꽃피우고, 자본주의 폐해인 경쟁, 이기, 착취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에서 연애, 오락방송이 아닌,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와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즐거운 토론으로 격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라면. 4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옳고 그름의 가치가 뒤섞이며, 상식과 윤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세상이다. 과거에도 그랬다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지금이 가장 심각하다. 경제 성장으로 나라와 개인의 부가 증가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산하고, 과거에는 무심코 넘어가던 인권의 문제가 매우 세부적으로 나뉘면서, 각 세대, 집단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건 바람직하고 당연한 역사의 발전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편협, 악의, 이기, 무지한 자들의 선동과 만행으로 고결한 가치가 훼손되고, 더럽혀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소수자 인권, 페미니즘이 약자의 무기로 작동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해치는 흉기가 되는 꼴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축소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옥석을 가려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사람이 너무 많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정확히 인지해야 하며, 그 방해물을 빠르게 제거하는 것도 개혁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5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세상이 역겨울 정도로 참담하고 한심할 때, 나는 조용히 침잠한다. 책 읽고, 영화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세상으로 난 문을 닫는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존재 의의가 있지만, 그 사회가 추잡하고, 역겨울 때는 잠시 몸을 숨길 필요가 있다. 다만, 몸을 숨길 수 없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힘들과 괴로운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카타르시스 방법이 있을 걸로 믿는다. 일상을 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건 지독한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집안 정리, 청소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당연하면서 치유의 시간이다. 마음 통하는 가족, 친구, 이웃과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수다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시간 외에 그저 조용히 침잠하는 나날이지 않을까. 정치가 개인의 삶을 옥죄고, 불행하게 만들 때, 과거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졌지만, 지금은 모두 두더쥐처럼 땅속으로 숨는다. 그런 비겁이 권력의 만행을 부추기고, 악행을 용인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는 이기적 인간들이 싫다. 다른 사람의 피와 땀에 기생하는 자들, 열매만 따먹으려는 이기적이고 야비한 자들이 싫다. 그런 자들을 위해 내 피와 땀을 흘리기도 싫다. 6 누리호 2차 발사를 생중계로 봤다. 누리호가 힘차게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에게는 우주가 있다.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살고 있는 미미한 존재다. 무엇보다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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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생존자'
르네 마그리트의 '생존자' 이 그림만 보고는 어떤 작가가 그렸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나도 꽤 안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때, 약간 충격 받았다. 이 작품은 보자마자 느낀 생각이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였다. 하지만 다시 보고, 조금 더 생각하니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품이었다. 피카소는 두 편의 '학살' 관련 작품을 그렸는데, 하나는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다.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는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프랑코는 독일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했고, 히틀러는 폭격기를 보내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곳이 바로 '게르니카'였다.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는 독일 폭격기에서 쏟아부은 폭탄으로 소멸했고,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이때 학살당했다.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던 작은 시골 마을에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최신 무기를 실험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히틀러와 프랑코의 만행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당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스페인 정부(인민전선)는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진 학살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고, 이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하겠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게르니카'가 되었다. 또 한 작품은 '한국전쟁'과 관련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한다.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이다. 1937년 '게르니카'를 그릴 때 피카소는 공산당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고 공산당원이 된 피카소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반전을 주제로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이 작품이 '미군이 한국인을 학살'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카소도 후기 작품이 '초현실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피카소의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의 변화는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도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데, 두 사람의 작품의 변화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비슷한 면이 있다.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모두 공산당원이었으며,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공산당원이자 예술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이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고, 예술의 독창성, 작가의 자유로운 작품 세계, 제한 없는 창작의 영역과 시도를 그 어떤 작가보다 강렬하게 추구했다. '반제 반파시즘'과 '일당 독재(스탈린)'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던 사람이 조지 오웰이었고, 그가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뛰어난 소설로 독재와 반지성을 비판했다면,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방식으로 현대(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작품은 'The Survivor', '생존자'라는 제목이다. 만약 이 그림에 제목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그림에서 어떤 걸 발견하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창작물에서 '제목'은 또 하나의 '상징'이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그 자체로 철학과 언어학의 주제가 되었다. 미셸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이 작품은 1950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전시회를 위해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이 전시되면서 평론가와 관객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배경은 벽이다. 그것도 어느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 또는 안방 같은 공간이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는 전실일 수도 있다. 위쪽으로는 꽃무늬 벽지가 가지런하고 단아하게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는 양각한 나무 판자가 매우 엄격한 문양으로 반복하고 있다.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는 총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오른쪽에 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개머리판이 있는 바닥은 원목마루가 깔려 있고, 총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마루에 흥건히 젖어들고 있다. 이 그림만 보면, '초현실주의'가 아닌, '리얼리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초현실'로 보이는 대상 또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얼'한 작품에서 '초현실'을 느끼게 되는 요인은 무엇이고 왜일까. 우선, 평범한 일상-가정집의 벽면-에 비현실적 요소-피묻은 총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이 곧 '초현실'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런 장면을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그림 또는 사진 또는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의 재현이며, 따라서 현실의 초월한다. 또 하나, '생존자'는 누구인가. 관객은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작품 제목이 하나의 '상징'인 이유가 여기 있다. 관객은 작가가 부여한 작품 제목을 받아들이게 되고, 제목의 영향을 받아 자의적 해석을 한다. '생존자'는 누구인가. 이 총 자체가 '생존자'인가, 아니면 이 총을 가져온 어떤 사람이 생존자인가. 이 총은 사람을 상징하는 '의인화'한 대상은 아닌가. 저 피는 누구의 피일까. 이처럼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르네 마그리트는 자기 작품에 상징을 부여하는 걸 경계하고 경고했다. 즉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초현실주의'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호기심을 갖고, 현실에 관해 의문을 던지고, 질문하는 것은 관객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1차, 2차 세계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다 자살한 불우한 과거가 있지만, 좋은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나이 들면서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해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할만큼 진보적 태도를 가졌다. 그의 작품 세계에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작품 '생존자'는 세계 전쟁을 겪은 뒤 그가 가졌던 감정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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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대통령의 인식과 주관은 뚜렷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룬 공과 과를 잘 알고 있었고, 훌륭한 성과가 묻힌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걸 느꼈다. 원칙주의자이자 합리적 보수의 인식을 가진 대통령은 한편으로 주관적 확신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주길 바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당한 이후, 그 과정과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노무현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한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이명박은 대통령 재임시절 분명히 범죄(뇌물, 횡령)를 저질렀고, 지금 죄값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보다 더 나쁜 것들이 일부 정치검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할 때,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비열하게 웃던 검사들을 보면서, 저들이 대통령을 발가락의 때처럼 여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그런 정치 검찰을 때려잡고, 속시원하게 검찰 개혁을 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할 때, 비로소 검찰 개혁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상관인 법무부장관을 살해하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침묵할 때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했고, 특히 K-시리즈로 이어지는 팝, 영화, 춤, 패션, 음식 등 한국 문화 전반의 눈부신 성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 정치와 개혁 과제는 미진했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촛불정부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국정과제는 '개혁'이었다. 그것도 강력하고 단호한 개혁이었다. 가장 먼저 검찰을 개혁하고, 언론을 개혁하는 것을 촛불시민은 바랐다. 진심으로 바랐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정치 검찰과 그들의 개들에게 난도질 당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뒷전에서 침묵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다. 분명 무언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한 차원 높은 수순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갈갈이 찢기는 와중에, 촛불시민들이 안타까움과 분노로 치를 떨며 다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고, '조국'을 지키는 것이 곧 검찰 개혁이라는, '조국'이 개혁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본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재인을 과대평가했거나, 내가 가진 프레임에 맞춰 생각했거나, 나의 개혁의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사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점잖은 사람이고, 보수적 인물이며, 지극히 합리적 인물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증오에 가까운 복수심과 뿌리를 뽑아야 하는 개혁의 의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몰랐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노회찬 의원이 자살당하고, 박원순 시장이 자살당하는 걸 보면서, 적들에게도 똑같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해주길 바랐다. 자신의 오른팔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터이고, 검찰과 언론의 발호를 막을 계획을 세웠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오른팔이던 장군이 전장에 나가 적진도 아닌, 아군의 진영에서 무수한 배신자들에게 난자당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면, 그게 훌륭한 지도자일까.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는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노무현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도 외면했고, 자기의 오른팔이던 조국 민정수석,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의 정치적 살해도 외면했다. 자신이 아무리 '원칙주의자'이고, '법치주의자'라고 강변해도, 우리 촛불시민이 바란 건, 그런 '원칙'과 '법치'가 아니었다. 칼을 든 범죄자 앞에서 '원칙'과 '법치'만 말하고, 당장 살해당하는 자기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믿고 따르거나,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촛불시민이 대통령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인 '대통령'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바란건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러 날카롭고 확실한 개혁을 하길 바랐다. 경제, 외교, 문화를 잘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경제, 외교, 문화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반목과 불신과 증오와 폭력이 난무했다는 걸로 기억한다. 정치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했고, 노회찬 의원을 살해했으며, 박원순 시장을 살해했다. 그리고 이제 그 피묻은 칼날은 점잖기만 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그때,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탄핵했던 시민들이 과연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줄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저렇게 난도질당할 때 침묵했던 문재인 대통령, 억울하게 살해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원한을 갚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정치검찰과 쓰레기 언론을 개혁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 나는 더 이상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할 마음이 없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퇴임 후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자신을 믿고 따르던 장수들을 모른체 하는, 그런 대통령이 문재인이었다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존경의 마음을 철회한다.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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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백스테이크
아웃백스테이크-011121 살아오는 동안 날마다 음식을 먹지만, 그것을 카메라로 찍어 기록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내 경우는 2004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카메라나 스마트폰이 없기도 했고, 필름카메라로 기록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나의 경우도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음식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2001년 4월달이다. 그때만 해도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고, 여행을 가도 여행지 사진은 찍었지만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었다. 요즘은 음식사진을 자주 찍고 있어서, 언제 그동안의 음식 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에 이렇게 한 곳에 모으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한 다음 찍은 음식 사진 가운데 가장 먼저 올릴 만한 사진은 2001년 11월 21일에 외식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때는 우리가 부천 중동신도시에 살 때여서 근처에는 음식점도 많았고 백화점과 대형할인매장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음식점이 줄지어 있을 때였다. 게다가 주말이면 거의 외식을 할 때여서 사진을 찍으려 마음 먹었다면 꽤 많은 음식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그나마 음식 사진으로 볼 만한 것은 공항가는 길에 있는 아웃백 스테이크에서 찍은 것으로, 디지털카메라 성능이 썩 좋지 않아서인지 화질도 떨어지고 해상도도 낮다. 그래도 이런 사진이 있으니 오래 전에 우리가 어디에서 무얼 먹었는지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식구(어머니가 계셨으니)가 주말 외식을 하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항가는 길에 있던 아웃백스테이크는 한국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곳으로 유명하다. 이때 이후에 몇 번 가보고는 아웃백스테이크와는 영영 이별을 하고 말았다. 아웃백스테이크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스테이크보다는 양파튀김과 빵이었다. 빵이 참 맛있었고, 무한 리필까지 되었으며, 따로 판매를 해서 개당 1천원씩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스테이크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맛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보다는 못했다. 가족들이나 친구, 소규모 회식 등의 모임을 할 때 패밀리레스토랑인 아웃백스테이크는 인기가 있었다. 아웃백스테이크는 지금도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으니 언제 기회가 되면 아주 오랜만에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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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에서 한정식을 먹다
양평에서 한정식을 먹다 저녁밥을 먹으러 옥천에 있는 생선구이 전문점으로 갔으나, 마침 수요일은 휴일이라고 해서 바로 그 앞에 있는 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우리가 간 한정식 식당은 개업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깨끗한 건물이다. 옥천 용천리에 있는 이곳은 바로 앞에 개울이 흐르는데, 그 개울 이름이 '사탄천'이다. 개울의 발원은 용문산이고, 사나사 계곡을 통해 흘러 내리고 있다. 옥천 용천리를 흐르고 있는 개울 이름이 '사탄천'. 뭔가 아스트랄하다. 새로 문을 연 이 한정식 식당은 메뉴가 단 한 가지. 그냥 한정식이다. 식당 안에는 메뉴도 없고, 가격표도 없다. 고민할 필요 없으니 좋은 점도 있지만 가격표가 없는 건 좀 아쉬웠다. 식사를 주문하자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채소 샐러드와 해파리냉채. 샐러드의 소스는 새콤한 맛이어서 입맛을 돋우고, 해파리냉채 역시 새콤하고 코를 톡 쏘는 겨자맛이다. 뒤이어 나온 것은 해물파전과 생선강정. 세번째로 나온 것은 메밀전병. 김치속이 들어 있어 매콤하면서 맛있다. 밑반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치가 슴슴하게 맛있었다. 달걀찜도 괜찮았고, 버섯무침과 멸치볶음도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간은 싱거운 편이었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거나, 아주 적게 쓰는 듯 했다. 밥은 솥밥으로, 누룽지가 생겼고,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어 먹으면 구수하고 훌륭한 맛이다. 밥은 흰쌀이고 고구마가 세 조각쯤 들어 있다. 식사를 마치면 수정과가 후식으로 나온다. 1만5천원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가격표와 한정식 차림의 사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제 시작이라 준비를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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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을 어떻게 먹을까
매실을 어떻게 먹을까 매실을 발효액으로 담가 먹는 것은 퍽 좋은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매실을 먹기도 하지만, 발효액으로 만든다는 것은 '발효'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매실 액기스'라고 하는 건, 매실과 설탕을 1대1로 섞어 약 100일을 발효하면 액기스가 생기고, 그 액기스를 물에 타 마시거나, 원액을 천연양념으로 쓰기도 합니다. 또한 매실은 과육을 벗겨 장아찌로 먹기도 하고, 매실 씨는 베개 속에 넣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루 쓰임이 많은 매실을 담그는 방법은 거의 천편일률인데, 아마 아래와 같은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을까 합니다.1. 매실을 깨끗이 씻어 말린다.2. 꼭지를 뗀다-이쑤시개를 쓰거나 바늘을 쓴다.3. 잘 마른 매실에 소주를 스프레이 한다. 스프레이 건에 소주를 넣고 매실 위에 뿌린다.(이 단계는 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겁니다.)4. 매실과 설탕을 1대1로 넣고 버무린다. 이때, 버무리지 않고 그냥 매실을 넣고 그 위에 설탕을 붓는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5. 매실을 담는 용기는 플라스틱통, 유리병, 항아리 등을 이용한다.6. 매실 한 켜, 설탕 한 켜, 매실 한 켜, 설탕 한 켜로 올리고, 마지막에 설탕으로 덮는다.이렇게 해서 뚜껑을 봉하고 약 100일 정도를 그냥 두는 경우도 있겠지만, 가끔 통을 휘저어 가라앉은 설탕과 매실을 잘 섞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잘 섞어주는 방법을 선택합니다.이제, 약 100일이 지나고 매실 알맹이를 꺼내는 사람이 있겠습니다. 꺼낸 매실 알맹이는 과육과 씨를 분리해서 과육은 장아찌로 만들어 먹고, 씨는 잘 말려서 베개 속으로 쓰면 되겠죠?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지금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매실 발효액 담그기'라고 하면 통상 위에 적은 내용에 따라 만들었을 것입니다. 저도 물론 그랬구요.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르게 담을 생각입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구요?1번부터 3번까지를 하지 않습니다. 즉, 매실을 물로 씻지 않고, 꼭지도 떼지 않고, 소주로 스프레이도 하지 않습니다.또한, 100일이 지나서도 매실과 액기스를 분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3개월이 지나 꼭 마셔야 한다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매실 발효액'을 담가 드시면 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오래 놔두는 방법을 선택해도 됩니다.어떤 설탕을 넣을 것인가?매실 발효액은 물론이고, 설탕을 넣는 모든 발효액은 설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설탕은 메이저인 제일제당과 삼양의 설탕이 있고, 국내 업체에서 유통하는 유기농 설탕이 일부 있으며, 최근 쿠바와 브라질 등에서 수입하는 유기농 설탕이 있습니다.또한, 설탕보다는 덜 달지만 몸에는 더 좋다는 '원당'이 태국에서 수입되고 있기도 합니다.어떤 설탕을 넣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담가 먹는 경우에 따라 들어가는 설탕의 종류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일반적으로 100일 동안 발효를 해서 먹는 매실 발효액의 경우, 즉, 발효 시간이 짧을수록 좋은 설탕을 써야 합니다. 발효가 100일 정도 진행되었다면 '충분한 발효'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즉, 매실 액기스 안에는 여전히 설탕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매실 액기스를 먹는다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설탕을 함께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설탕의 성분이 중요한 것입니다.짧은 기간-약 100일-에 먹는 매실액이라면 유기농 설탕이나 원당을 쓰는 것을 권하고, 장기간 발효를 한다면, 일반 백설탕을 써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설탕은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의 먹이이기 때문에 설탕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당이 분해되면서 단당으로 바뀌게 되면, 처음 넣은 설탕은 화학적 반응을 통해 우리 몸에 해로운 성분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만드는 것이 '진짜 매실 발효액'일까 설탕이 완전히 분해되어 포도당으로 변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효소학'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다당->이당->단당으로 바뀌는 과정이 '발효'인데, 이 과정에서 '당'은 완전히 분해되어 몸에 이로운 '포도당'으로 바뀌게 됩니다.그러면 매실은 어떻게 될까요? 담가서 100일 정도된 매실은 좀 쪼그라들긴 하지만 그래도 과육은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실 과육을 먹을 게 아니라면 오래 그냥 놔두는 것을 추천합니다.발효의 초기 단계에서 매실과 설탕은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매실 과육의 수분이 빠져나오게 됩니다. 100일이 되면 매실의 과육에서 수분이 충분히 빠져나왔다고 보는 건데, 많은 사람들이 매실 씨에는 독 성분이 있어서 너무 오래두면 안된다고 하는데,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100일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 '역삼투압 현상'이 나타납니다. 즉, 매실에 있던 수분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시기가 끝나면, 반대로 밖에 있던 매실 액기스들이 매실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즉, 좋은 성분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흠...이거 고급 정본데... 따라서 빨리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 않았다면, 매실을 오래 묵힐수록 좋은 발효 액기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래 묵힐 매실 발효액이라면 설탕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사용해도 됩니다. 물론, 유기농 설탕을 쓰면 더 좋겠지만, 굳이 유기농 설탕이 아니어도, 모든 설탕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어 '단당'으로 바뀌기 때문에 우리 몸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검증된 이론입니다. 설탕의 역할은 '효소의 먹이'입니다. 발효 과정에서 효소들이 먹을 먹이가 필요한데, 설탕이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발효 기간이 짧을수록 좋은 설탕이 필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기간이 길어지면 설탕의 종류는 관계없게 됩니다.매실과 설탕의 비율은 계절, 날씨, 온도, 습도, 빛의 농담 정도에 따라 상당히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설명하면, 봄, 가을에는 1대1로 맞추고, 여름에는 매실1에 설탕 1.2가 적당하고, 겨울에는 매실1에 설탕0.7이 맞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절대적인 이론은 아닙니다.또한, 여름처럼 온도가 높을 때는 설탕을 한꺼번에 많이 넣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절반을, 그리고 발효되는 상황을 보면서 설탕을 몇 번에 나눠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렇게 하려면 발효에 관한 지식이 좀 있어야 하니까, 이런 방법이 어려운 사람은 그냥 한꺼번에 넣어도 됩니다.작년에 담근 매실 원액을 가져간 가족이 맛있다고 해서 올해도 좀 많이 담가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매실 맛있게 담가드시기 바랍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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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시간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시리즈. 엄청난 작품. 강력 추천. 고작 4부작이지만, 시나리오, 연출, 배우들의 연기 모두 완벽할 뿐 아니라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도 신선하다. 4부작이면서 한 편마다 독립적 서사가 있고, 완결성을 갖추면서 네 편 전체에 흐르는 거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맞춰진다. 열세 살 소년 제이미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게 체포된다. 완전무장한 경찰기동대가 문을 부수고, 총을 겨냥한 채 가족들을 엎드리라고 소리치고, 소년의 방으로 들어가 체포하는데, 소년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싼다. 경찰은 매우 심각한 상황처럼 행동하는데, 고작 소년 한 명을 잡으려고 자동소총에 중무장을 한 기동대가 출동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지나쳐 보인다. 1편은 소년이 체포되는 장면부터 경찰서에 연행되어 필요한 조사를 받고 임시 구금되는 과정까지를 그린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매 순간과 과정이 핍진하고 치밀해서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장면이 이어진다. 경찰은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범죄자를 대하는 메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게 드러나고, 소년을 체포한 이후 경찰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미성년이면서 범죄용의자인 소년을 대한다. 경찰은 강력범죄 용의자로 제이미를 체포했지만, 그가 미성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곧바로 보호자를 붙여주고, 아버지가 모든 조사에 참석하도록 한다. 그리고 간호사와 변호사를 불러 제이미에게서 채혈하고, 변호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과장 없이 건조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보여지는 영국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경찰과 이런 문화를 만든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면으로 보면, 영국 경찰이 한 행동은 지나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고작 열세 살 소년을 체포하려고 경찰기동대까지 투입하는 건 누가 봐도 지나쳐 보인다. 그저 사복 경찰 두 명이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소년은 안심시키면서 경찰서로 데리고 와도 아무 문제 없을 걸로 보이는데, 너무 매뉴얼에 얽매여 행동하는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미성년이라고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강력범죄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가 일관하지 않게 되고, 매뉴얼에 따르지 않는 체포 절차는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제이미의 가족은 국선변호사를 선택한다. 가족변호사가 없다는 걸 확인한 경찰이 제이미의 가족에게 제안하고, 가족이 받아들이면서 국선변호사가 오는데, 발 빠르게 도착한 국선변호사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제이미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입회해 도움말을 준다. 이때 국선변호사가 제이미의 가족에게 하는 말 가운데, 아무리 강력범죄 용의자라 해도 미성년자에게는 채혈이나 지문 채취, 신체 검사 등을 다 하지는 않는데, 이런 검사를 다 하는 걸 보면 경찰이 강력한 증거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경험 많은 국선변호사는 제이미가 미성년자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잘 알고, 그가 받는 조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이미 알고 있다. 제이미는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부인하는데, 경찰은 구체적 증거를 하나씩 보이면서 제이미가 자백하도록 만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오고간 제이미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과 댓글들, 사건이 발생한 날 CCTV에 찍힌 제이미의 동선과 장면들이 하나같이 제이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제이미는 끝까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경찰은 CCTV에서 확보한 동영상을 제이미와 변호사, 동석한 제이미의 아버지 앞에서 공개한다. 그 영상은 충격적이면서 제이미가 자기 행동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제이미는 끝까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제이미의 아버지, 국선변호사는 그 장면을 보고 제이미가 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라는 걸 분명하게 인지한다. 그럼에도 제이미가 범행에 쓴 흉기인 칼이 발견되지 않았고, 제이미가 '친구'라고 보이는 케이티를 살해한 '동기'를 알 수 없는 경찰은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다. 제이미는 경찰서 유치장에 일시 갇히게 되는데, 제이미는 가족과 멀어지면서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감정은 제이미의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부모와 누나는 큰 충격을 받고, 불과 열세 살 아이가 '살인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2편은 수사 담당 경찰인 배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가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구체적 물증을 확보했지만, 범행에 쓴 흉기인 칼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칼의 행방과 제이미가 저지른 범행의 동기를 알아보려고 학교를 방문한 두 경찰은 학교의 도움으로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제이미의 학급이나 친구들에게서는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다. 2편에서 두 명의 경찰이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단지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나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제이미는 지역의 공립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나고, 학생들(청소년)은 끊임없이 떠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선생들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학생들을 윽박지른다. 이런 모습이 마치 편집되지 않은 필름처럼, 롱테이크로 이어지며 학교 건물 곳곳을 끊이지 않고 움직이며 보이고, 선생과 어른에게 대들고, 모욕하는 한편 자기들끼리로 패거리를 지어 약해 보이는 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인다. 청소년들은 어른을 믿지 않는다. 선생도 어른이고, 부모도 어른이지만 그들 모두 청소년들의 시각에서는 자기들을 짓밟고, 억누르고, 억압하는 나쁜 존재들로 비친다. 학교에서 따돌림은 당연한 일상이고,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은 누구에게도 이런 고통을 말하지 못한다. 그런 내용을 어른들 - 선생님, 부모님 등 - 에게 말하면, 그 다음에는 더 큰 괴롭힘과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배스컴 경위의 아들 애덤도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지만 학년은 두 학년이 높아서 제이미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애덤 역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였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못)는다. 배스컴 경위와 애덤의 에피소드는 2편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 배스컴에게 애덤은 친자식이 아니었고, 청소년인 애덤과 친밀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부자 사이였지만 늘 어색한 사이였던 배스컴과 애덤은 제이미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배스컴이 학교에서 제이미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하지만 실패하는데, 그건 배스컴을 비롯한 어른들이 청소년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애덤이 배스컴을 따로 불러 청소년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애덤이 알려주는 청소년 또래 문화는 제이미 부모들도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고, 배스컴도 애덤이 알려줘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애덤의 이야기를 듣고 배스컴은 자신이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자식인 애덤에게 얼마나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고, 무관심했는가를 깨닫는다. 배스컴이 하교하는 애덤을 기다려 함께 밥 먹자고 하는 장면, 애덤이 '중국집에 가, 거기 맛있는 바비큐 소스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늘 성장하고, 그 자체로 훌륭하다. 다만 부모, 어른들이 아이들의 진심을,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청소년 시기는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목적 없이 질주하는 때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도 호르몬 작용이 왕성하고,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중간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시기라는 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3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노드라마다. 제이미는 '청소년 보호훈련센터'에서 지내고, 체포된 지 7개월이 지났다. 교도소는 아니지만 미성년 범죄자들이나 여러 검사를 통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을 수용해 상담과 교화를 하는 곳인데, 제이미는 이 곳을 '정신병원'으로 인식한다. 제이미는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는데, 상담사는 임상 심리학자가 맡고, 상담 내용은 재판에서 판사에게 제출되어 판결의 근거로 쓰인다. 따라서 제이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매우 중요하고, 임상 심리학자는 제이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제이미를 찾은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이미 제이미를 네 번 만났고, 이제 다섯 번째 만남이다. 애리스턴은 제이미가 좋아하는 핫초코와 치즈샌드위치를 건네며 우호적으로 대한다. 애리스턴이 묻고, 제이미가 대답하는 형식이지만, 애리스턴이 하는 질문은 제이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이미는 여전히 자기가 케이티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는데, 그건 제이미가 자신이 한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게 두렵고 끔찍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애리스턴은 질문을 던지면서 제이미가 케이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제이미가 생각하는 여성의 의미, 이성을 대하는 태도, 제이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데,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제이미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버지와 관계가 어떤지, 아버지의 취미, 친구들과 지내는 일상까지. 청소년인 제이미가 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이성이 있는지, 데이트는 했는지, 성 지식은 있는지, 이성과 성적 접촉은 어디까지 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묻는다. 제이미는 이런 질문들이 낯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당황하기도 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나 자기가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에 짜증을 폭발하기도 한다.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보통 체구의 여성으로, 제이미가 위협적인 행동을 할 때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지만, 제이미의 돌발행동과 위협을 보고 느끼면서, 제이미가 또래 여자에게 느꼈던 감정과 심리 상태를 미루어 짐작한다. 즉 평소에는 온순하고 평범한 소년이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폭발하는 청소년의 이상 심리상태를 보이고, 제이미에게는 그런 과잉 심리를 자극한 계기가 있었다는 걸 대화를 통해 알아낸다. 2편에서 배스컴 경위가 아들 애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낸 것처럼, 제이미가 말하는 학교에서 따돌림 특히 이성(여성) 사이에서 80대 20의 법칙이 작동하고, 한 번 배제된 남자 청소년은 그 집단에서 영원히 배제된다는 그들 사이의 따돌림 문화와 제이미의 잘못된 판단이 결합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제이미는 집에서나 학교에서 조용한 학생이고, 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지만, 그의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과 욕구, 불안한 정서, 집단 속에서 소외당하는 괴로움과 이성(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못 생겼다는 가스라이팅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제이미 내면에서 자라는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태도, 폭력에 의지하려는 강압적 태도 등이 범행을 저지른 또 다른 동기라는 걸 상담을 통해 드러낸다. 제이미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제이미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제이미의 아버지에 관해 질문할 때부터 불편한 모습을 보인 제이미의 심리를 읽는다. 제이미가 드러내는 폭력성은 그가 보고 자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으로 알 수 있다. 제이미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가족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지만, 자주 화를 내고, 기물을 부수는 행동을 통해 폭력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폭력에 위축된 상태였고, 학교에서는 무시당하고, 이성에게는 배제되는 존재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복합적 심리 상태에서 자기를 무시하고 집단 따돌림을 주도한 케이티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돌아오는 건 냉정하고 모욕적인 비웃음 뿐이었다. 4편은 제이미 가족의 이야기다. 다시 몇 달이 흐르고, 제이미는 곧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 생일날이고, 에디의 아내 만다는 에디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에디의 차에 누군가 페인트로 '강감법'이라고 써 놓았고, 가족의 평온은 깨진다. 세 식구는 철물점으로 가서 페인트를 구입해 차에 쓴 낙서를 지우는데, 이때 철물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에디에게 제이미와 가족을 응원한다며 힘내라고 말한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제이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이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 청년들로, 이들은 '인셀' 문화가 80대 20의 법칙을 통해 80%의 남성들은 여성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여성들이 집단으로 남성을 따돌리는 문화에 분노하고 있다. 제이미는 그런 남성으로, 자신을 대신해 여성을 응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제이미를 옹호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만다는 차라리 여기를 떠나 리버풀로 돌아가자고 에디에게 말하지만, 에디는 돌아가면 오히려 더 힘들고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에디의 생일을 축하하려던 하루는 불쾌하게 시작하지만 가족들은 철물점을 다녀오는 차안에서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제이미가 전화해 유죄를 인정하겠다는 말을 한다. 운전하며 스피커폰으로 가족 모두가 듣는 제이미와의 통화는 곤혹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제이미였는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제이미가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면 - 인정하지 않더라도 - 최소한 몇십 년에서 최고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눈앞에 있다. 에디, 만다, 사라는 저마다 비통한 심정이지만 일상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할 계획이었지만 포기한다. 에디와 만다는 제이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자기만의 벽을 만들고, 자신의 세계에 부모가 간섭하거나 침입하는 걸 경계하며 분노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에디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으며 자랐다고 말한다. 심지어 허리띠로 채찍처럼 맞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더욱 자신이 아이를 낳으면 절대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에디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다의 눈에 에디는 제이미의 우상이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아들의 우상이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이 바라는 그런 멋진 모습이 아니었을 때,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이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걸 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아이라서, 설명할 수도 없을 때, 아버지도 절망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말하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른다. 아버지가 되는 것도 처음이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것도 처음이기에,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또는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에디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는 노력했고, 애썼지만 아들 제이미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었다. 에디는 스스로 부끄럽다. 잘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은 당연했고, 자신은 더 나은 아버지, 가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영국의 중하층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에디는 배관공이 되었고, 나름 성실하게 살고 있다. 그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가장이 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는 사람이다. 딸은 이제 대학에 들어갔고, 아들은 중학교에 다니고, 먹고 살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무난한 일상을 영위하는 에디의 가족이었지만, 아들 제이미가 살인을 저지르고 어쩌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에디는 아들 제이미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한다. 더 다정하게, 더 따뜻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놀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걸 후회한다. 그가 울음을 삼키며 흘리는 눈물에는 아들을 향한 진한 사랑과 통한의 피가 섞여 있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특히 아버지라면 이 드라마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몰입하게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봤다. 내가 지금도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과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 내가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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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2
배심원 #2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2024년 11월 개봉이니 최신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고전 걸작 영화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두 영화 모두 법정 영화이면서 12명의 배심원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유죄라고 판단했던 용의자에 대한 판단이 한 사람의 배심원이 제기한 의문으로 시작해 판단이 달라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데, 영화의 알레고리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는 배심원 가운데 누구도 용의자와 관련 있는 인물은 없다. 다만, 배심원 가운데 8번 배심원이 처음부터 용의자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유죄를 의심한다. '배심원 #2'에서는 제목처럼 2번 배심원이 유죄 평결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에 개봉한 흑백 영화이고, '배심원 #2'는 2024년에 개봉한 영화로 무려 67년의 간극이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등장하는 12명의 배심원은 모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걸 볼 수 있는데, 1950대 미국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반면 '배심원 #2'에는 오히려 백인 남성이 소수자로 등장한다. 여성, 흑인, 아시아인이 고르게 등장하고, 배심원장도 경험이 많은 여성이 맡는다.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 형식을 보여주지만, 주제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배심원이 고민하는 단 한 가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결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로 정의할 수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는 18살 멕시코인 청년이다. 즉, 백인 주류 사회에서 백인들이 유색인종이자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을 단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18살 청년은 죽거나 살거나를 선택당하게 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인 청년은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 그의 존재는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만 그려지고, 다른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배심원 #2'에서 피고인은 비가 내리는 늦은 밤, 술집에서 싸우고 먼저 나간 여자 친구를 뒤따라가 살해한 남자 친구이면서, 과거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품행이 나쁜 청년으로 그려진다. '배심원 #2'에서 배심원들은 재판에 참여하며 피고인의 과거를 듣는다. 담당 검사는 다가온 선거를 통해 다시 선출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검사는 피고인이 여자 친구를 살해한 정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술집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싸우고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았고, 어떤 손님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놓은 증거가 있어, 유죄의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고의 변호인(국선변호인이다)은 검찰이 구체적, 물적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며,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를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한다.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법정에서 물적 증거가 없이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물증 없이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범죄를 판결하고 유죄를 선고한 재판이 있었는데, 그때의 정황은 '상식'을 가진 평범한 시민이라면 100%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정황 증거라서 가능했다. 반면 '배심원 #2'에서의 정황 증거는 매우 모호하다. 폭우가 퍼붓는 저녁 시간에 비를 맞으며 술집에서 나간 여성이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고,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이틀 뒤 도로 옆 개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또한 그 여성이 술집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남자 친구가 여성을 따라 나가는 걸 많은 사람이 보았고, 밖에서 두 남녀가 싸우는 장면, 여성이 길을 따라 걷는 장면, 남성 역시 그 뒤를 따라가는 장면이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정황만으로도 검사는 피고인을 살인범으로 단정한다. 배심원 모두 물적 증거가 없어도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배심원 #2'가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다른 지점은 배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이는 내용이 있어서다. 2번 배심원 '저스틴'은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출산을 며칠 남기지 않은 만삭의 임산부 아내와 살고 있다. 그는 한때 알콜중독 상태였고, 중독에서 벗어나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가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건이 일어난 날, 같은 장소의 술집에서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주문하고 앉아 있었으며, 여성과 남성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술집을 나와 빗속을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 그는 운전하다 둔탁한 충격을 받고 차를 멈추지만, 사슴과 부딪쳤다고 생각하며 찌그러진 자동차를 수리한다. 그의 아내에게도 사슴과 부닥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스틴'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기 차에 부닥친 '무엇'인가가 사슴이 아니라, 술집에서 먼저 나간 여성이 아닐까 의심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기 눈으로 여성이 차에 치었거나, 자기가 여성을 쳤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에, 의심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저스틴'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평균 또는 그 이상이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고,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변호사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고 법적 조언을 얻는다. 배심원의 평결 논의에서는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데, 저스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물적 증거의 불충분한 조건 등을 내세워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스틴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이며, 배심원으로 올바른 태도로 보인다. 다만, 저스틴의 태도는 복합적 층위를 갖는데, 자기의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 진짜 범인은 피고인도, 자신도 아닌 제3자일 수 있다는 판단, 자기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모순적 태도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배심원단이 평결을 쉽게 내리지 못하면서, 재판은 기일이 늘어나고, 지방 검사 선거가 촉박한 상태에서 검사는 최대한 빨리 평결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배심원단은 예외적으로 범행 장소를 답사하고, 배심원단 가운데 형사로 퇴직한 사람은 따로 증거를 수집하면서, 이 살인 사건이 사람 대 사람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차에 치인 뒤 유기된 사건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수집된 증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알게 된 저스틴은 갈등한다. 하지만 물적 증거들이 있어도, 그 증거들이 결정적으로 저스틴이 뺑소니를 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으며,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과정으로 죽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고인은 검사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여자 친구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피고인의 태도를 보는 관객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감옥에 갇힌 피고인이 여성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을 살해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감옥에 있는 용의자가 1순위이며, 배심원인 저스틴은 자기가 경험한 사건 당일의 경험에 근거해 자신의 범죄를 의심하는 상황이고,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 즉 여성의 살해 사건에서 경우의 수는 세 가지가 되며, 지금 누구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배심원이 해야 할 결정은 사건과 직접 관련 있는 용의자에 국한하므로, 두 가지의 경우 - 저스틴과 전혀 알 수 없는 사건이 있을 거라는 상황 - 는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결국 증거의 헛점을 찾아 용의자가 무죄라는 걸 입증하면서 배심원 사이의 날카로운 공방을 마무리하는 반면, '배심원 #2'에서는 배심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오가면서도 결국 평결에는 합의한다. 여기서 배심원 저스틴이 갖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와 함께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함께 드러낸다. 피고인이 유죄 평결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그가 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완벽한 증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과거의 행동이 원인이 된다. 즉, 어떤 범죄 용의자가 중요한 사건에서 범인으로 체포되고, 용의자로 지목되었을 때, 그 사건의 직접 증거가 없을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이 그의 현재를 규정하게 된다. '배심원 #2'에서도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되고, 그가 반사회적 태도와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적개심을 갖는다. 이건 실제 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배심원의 평결에 결정적 단서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모두 묵인하면서도 인정한다. 우리가 '저스틴'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저스틴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범죄가 일어났던 그날 밤에 있었던 사고를 자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용의자는 피해 여성의 남자 친구와 저스틴 두 사람이 될 것이고, 사건은 보다 폭 넓은 시각으로 전개되어, 사건의 실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스틴은 오늘 내일 출산할 아내가 있고, 그 전에 이미 저스틴 부부는 쌍동이 아이를 잃었다. 부부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과거가 있고, 지금 새로 태어날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 부부의 지난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누구도 저스틴에게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경찰에게 자백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저스틴은 스스로 자백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지금 체포되어 재판받는 살해 또는 사고로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가 범인으로 확정되어 평생(무기징역)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모든 상황은 딜레마다. 피고인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누구도 믿지 않고, 저스틴은 그날 밤 차에 무언가 부닥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물체가 죽은 여성이었는지, 사슴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백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심지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기소한 검사까지도 마지막 평결에서 전혀 기뻐하지 않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검사가 판단하기에도 물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황 증거로만 살인 범죄의 범인을 확정했다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죄책감으로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드러낸다. 사건의 실체가 모호하고 객관적 증거가 없을 때, 양심은 찔리지만 앙금을 남기며 현실을 외면해야 하는 경우는 누구나 겪는다. 평범한 사람도 하루에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때 거짓말은 의도했거나 악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통의 방법으로써의 거짓말이다. 즉, 가족, 동료, 이웃, 지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태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저스틴이 겪는 갈등은 어쩌면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진짜 범인은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이며,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자기가 한 행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사건이 일어난 날,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괴롭고 두려울 수 있다. 그건 피고인이 만에 하나, 진짜 범인이 아닐 때, 죄도 없이 억울하게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교도소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온전히 누명으로 수 년,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통계가 있고,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도 많다. 현대의 형사 재판에 모순이 많다는 건 당연하고, 모든 나라에서 인종 차별, 성 차별, 돈과 권력의 여부에 따라 범죄의 유무, 형량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세상이기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찰, 검사, 판사 모두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다는 사실을 안다. 배심원들도 그 사실을 알지만, '때론 진실이 정의가 아니라는 걸 안다'고 말하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정의'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심지어 '정의'를 외면하고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선택하는 일도 발생한다.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누군가 '개인'은 무고한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처럼, 16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며 마침내 탈옥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배심원 #2'에서 저스틴의 집을 찾아온 검사의 얼굴 표정과 저스틴의 표정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지난 사건의 재판, 재판의 종결은 모두 하나의 과정이며,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아주 짧은 장면이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진실은 알 수 없고, 정의는 구현되지 않을 것이며,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수의 판단이 옳을 수도, 그릇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억울하게 죽어갈 수도 있다. 세상의 모순을 합리화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모순과 불합리에서 우리가 애써 노력해야 할 객관적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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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 - FURY
<영화> 퓨리 - FURY 2015년에 본 첫 영화. 별 네 개. 브래드 피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홍보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는 그동안의 전쟁 영화들 가운데서도 걸작의 반열에 들 듯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린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즉, 뛰어난 리얼리티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지 '전쟁영화'를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 즉,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무리 미화해도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지나치게 과장해도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와 참혹함은 지나치지 않는다.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전쟁영화를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든 과장, 미화, 왜곡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심지어 다큐멘터리도 왜곡을 한다-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수준의 과장, 미화, 왜곡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 뿐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연합군이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런 영화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완전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고,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상황에서 기갑부대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탱크'라는 물체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함께 기거하는 집이자, 무기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즉, 탱크라는 공간과 물체를 통해 심리적 위안, 가족애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워대디' 돈 컬리어 중사는 탱크 FURY를 움직이는 지휘자이자, 동승한 대원의 부모 노릇을 한다. 그리고 네 명의 병사는 '워대디'를 믿고 따르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이것은 가족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전우의 관계는 가족처럼 혈연 이상의 결속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게된다. 탱크의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다. 영화의 장면 속에서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다.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뒹굴고,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구덩이에 시체들이 파묻힌다. 신참 병사 노먼이 처음 전투병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피묻은 전차 내부를 닦다 발견한 전우의 사체를 보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평상의 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도의 혐오와 잔인함이 전쟁터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병사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과장 없이 그려낸 영화. 전쟁 영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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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고양이 - 마츠모토 타이요
루브르의 고양이 - 마츠모토 타이요 천재작가 마츠모토 타이요는 그의 최근 작품 '루브르의 고양이'로 두 번째 '아이스너상'을 받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사는 고양이들과 그곳에서 일하는 가이드, 학예사, 복원사, 경비원 등의 인물이 서로 인연을 맺으며 그림과 개인의 삶이 깊은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이 종종 의인화 하는 장면을 보면, 이 작품은 주인공 고양이 '눈송이'의 성장 드라마이면서, 헤어진 가족에 대한 신화적 해석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회화가 등장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하지 않는 그림이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다. '루브르의 고양이' 책 앞부분에 두 페이지로 원화를 사진으로 옮겼는데, 이 그림은 여느 그림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사랑의 신의 죽음'이고, 작가는 '앙리 르랑베르'인데, 또 다른 이름이 등장한다. 이 그림에 개입한 또 한 명의 작가는 '앙뚜안 카롱'이다. 하나의 작품에 두 명의 작가가 개입되어 있다는 건 어딘가 석연치 않다. 만화에서 세실은 루브르 박문관 가이드로 일한다. 가장 인기 많은 '모나리자'를 비롯 많은 작품을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일인데, 그는 아버지가 갑작스레 병을 앓게 되면서 아버지를 간호하려고 다니던 학교(보자르 : 프랑스 국립미술학교)를 마치지 못한다. 이후 세실은 학업을 마치지 못한 걸로 보인다. 그는 미술 분야를 공부해 대학에 남거나, 미술관, 박물관 등에서 학예사로 일하거나 그림 복원사로 일하는 등 계획이 있었겠지만, 그는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로 일한다. 세실의 내면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있겠으나 현실을 차분하게 살아간다. 세실은 루브르 박물관을 떠나 규모는 작지만 전문적인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고, 그는 약간의 실망감을 간직하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셀은 무려 50년을 근무한 노인으로, 그의 증조할아버지도 루브르에서 복원 목수로 일했던, 루브르와 인연이 깊은 노인이다. 마르셀은 어릴 때부터 간직한 비밀이 있는데,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비밀을 세실에게 털어 놓는다. 자기 누나 아리에타가 어릴 때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마르셀의 이야기는 누구도 믿기 어려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세실은 마르셀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루브르가 소장한 모든 회화를 담은 도록을 마르셀에게 건넨다. 그동안 마르셀이 누나가 들어간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던 건, 그 그림이 전시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은 도록에 실려 있었고, 그림 제목은 '사랑의 신의 죽음'이었다. 세실은 이 그림의 행방을 사무실에 문의했고, 그림은 복원 작업을 하려고 복원사 샤를 드 몽바롱의 작업실에 있다는 걸 알아냈다. 세실은 샤를 드 몽바롱의 작업실을 찾아간다. 몹시 까다로운 성격의 몽바롱은 약속 없이 찾아온 세실을 예외적으로 만나는데, 알고보니 예전 '보자르'에서 몽바롱이 교수로 회화 복원 강의를 할 때 세실이 학생이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세실은 '사랑의 신의 죽음'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루브르의 야간 경비원 마르셀의 사연을 몽바롱에게 들려준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서 핀잔을 들을 걸로 생각했던 세실은 몽바롱에게 뜻밖의 말을 듣는다. 몽바롱 역시 오래 전에 루브르에서 '그림출입자'의 존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으며, 그들은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세실이 마르셀에게 누나 아리에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온전히 믿지 않았지만, 몽바롱이 마르셀의 이야기를 인정하면서, 마르셀의 환상, 착각으로 여겼던 이야기는 이제 현실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몽바롱은 세실을 '사랑의 신의 죽음'이 보관된 곳으로 안내하고, 그림을 보여준다. 세실은 데리고 온 고양이 '눈송이'를 그곳에 내려 놓고 나와 문을 닫고 조용히 '눈송이'를 지켜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사랑의 신의 죽음' 앞에서 그림을 바라보던 '눈송이'는 어느 순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듯 보이면서 사라진다. '눈송이'는 그림 속 세상으로 들어가고, 천사의 안내를 받아 아리에타를 만난다. 루브르 박물관 건물 꼭대기 다락방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공간에 고양이들은 거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간다. 고양이들이 사는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은 야간경비원 마르셀이 유일하다. 고양이들도 마르셀이 오는 걸 환영한다. 마르셀은 고양이 먹이를 가져오고, 대를 이어 살아오는 고양이들을 보살핀다. 프랑스에서 건물 꼭대기나 지붕에 사는 고양이는 '프랑스혁명'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단턴이 쓴 '고양이 대학살'을 보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빠리의 인쇄업자와 인쇄노동자들의 일상에서 인쇄노동자들의 형편 없는 노동 조건과 천대받는 일상이 있었고, 부르주아들이 기르는 고양이와 떠돌이 고양이들이 밤새 울어대면서 잠을 못 잔 노동자들이 고양이를 잡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부르주아가 기르는 고양이를 학살하면서, 노동자들은 자본가, 부르주아의 악행을 응징하려는 감정이 쌓이고, 개돼지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던 노동자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된다. 루브르 박물관 옥탑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설정인데, 고양이는 세계 여러 대륙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갖는다. 고양이는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고, 매우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사람이 사는 공간과 자연을 오가며 생활하며,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의심을 받고, 지옥의 전령이라는 상징이 있으며, 마녀의 심부름꾼이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동물로 알려졌다. 이 만화에서 고양이들은 자주 '의인화' 한다. 고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건, 사람을 고양이로 바꿨다는 말과 상통한다. 이때 사람이 되는 고양이나, 고양이가 되는 사람은 외모만 다를 뿐, 그들이 놓인 사회적 위치는 동일하다. 고양이들이 옥탑에 사는 건, 가난한 도시빈민을 상징한다. 옥탑방 고양이는 도시빈민이면서 가족이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탈락된 고양이(사람)들이고, 모르는 고양이(사람)들이 모여 유사 가족을 이룬다. 고양이의 세계나 사람의 세계나 주류에서 밀려나 사회에서 도태, 탈락되어 변방으로 밀려나는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무리를 이룬다. 루브르 박물관 옥탑에 사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막내 '눈송이'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건 50년 전,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마르셀의 누나 아리에타도 마찬가지였다. 성장하지 않는 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에 사는 걸 부정하는 상징적 태도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서 주인공 오스카가 성장을 멈추는 것도 추악한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눈송이나 아리에타는 모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들이며,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인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걸 인지하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절망한다. 눈송이도 어릴 때 버림받았고, 아리에타의 가족사는 나오지 않지만, 루브르 박물관과 인연이 깊은 마르셀의 집안이라서 그의 증조할아버지부터 줄곧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는 부모를 따라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많다. 아리에타가 가진 신비한 능력은 '그림 출입자'라는 존재인데, 그림과 대화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복원사 몽바롱도 전해 들어 알고 있다. 세실은 '그림 출입자'의 존재를 몰랐지만, 마르셀의 말을 들은 이후 그의 누나 아리에타가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믿고, 마르셀이 기억하는 그림을 찾는다. 그 그림이 바로 '사랑의 신의 죽음'이었고, 그 작품을 복원하려는 몽바롱을 찾아가는 길에 쇠약해진 눈송이를 데려간다. 이건 세실이 의도한 것으로, 마르셀이 하는 말을 듣고 문득 마르셀의 누나 아리에타와 고양이 눈송이의 모습이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는 몸집, 날이갈수록 야위어가는 모습에서 어쩌면 눈송이가 '그림 출입자'의 능력을 가진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세실의 예상대로 몽바롱의 복원 작업실에서 눈송이는 갑자기 날뛰는데, 몽바롱과 세실이 '사랑의 신의 죽음'이 보관된 창고에 눈송이를 들여보내고, 세실은 조용히 눈송이를 지켜본다. 눈송이는 오래도록 그림을 바라보다 마침내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서 사라진다. 그림 속으로 들어간 눈송이는 사람으로 바뀌고, 그곳에서 아리에타를 만난다. 아리에타는 오래 전부터 눈송이를 불렀고, 눈송이는 어디선가 들리는 그 목소리 주인공을 마침내 만난다. 아리에타는 눈송이에게 말한다. '이곳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과 같은 곳이라고. 그는 눈송이를 만나기 전까지 잊고 있었던 동생 마르셀을 기억한다. 그림 속에서 아리에타는 행복하고, 과거를 모두 잊었으며, 산들거리는 바람과 맛있는 음식과 천사들의 노래를 들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간다. 눈송이도 이곳이 행복과 즐거움만 있는 곳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눈송이는 자기를 살려주고 대신 죽은 '톱날'을 만나고, 영원히 함께 살자는 아리에타의 말에도 '춥고 냄새나는 그곳'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리에타도 함께 그림 밖 세계로 가자고 말하지만, 아리에타는 끝내 그곳에 남겠다며 목에 차고 있던 회중시계를 눈송이에게 건낸다. 동생 마르셀에게 전해 달라고. 눈송이는 루브르 박물관 야간경비원 마르셀의 어릴 때 기억을 현실(현재)로 끌어내는 존재다. 그는 마르셀의 누나 아리에타가 준 회중시계를 목에 걸로 그림 밖으로 나왔으며, 전설처럼 떠돌던 '그림 출입자'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켰다. 현실과 마법이 혼재되는 상황에서, 마르셀의 기억은 마법으로 존재했지만, 눈송이로 인해 현실(현재)이 된다. 그 결정적 물증은 아리에타가 가지고 있던 회중시계였고, 마르셀은 그 시계를 가슴에 품으며 회환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아리에타는 끝내 밖으로 나오길 포기한다. 아리에타에게 현실은 사랑하는 동생 마르셀을 만나는 것보다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리에타는 동생 마르셀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지만 동생 마르셀이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었어도 아리에타는 그림 속에서 여전히 어린 아리에타로 살아간다. 아리에타는 '피터팬 컴플렉스'가 있었던 걸까. 성장을 스스로 멈추는 사람은 외부의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장 안온한 상태에 머무르고 싶어하지만, 외부의 시련을 겪으며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점차 인격을 완성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장하기를 포기한 아리에타를 비난할 수는 없다. '피터팬 컴플렉스'를 가진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고통이 있을 것이고, 외부의 압박과 압력에 짓눌린 상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너는 왜 그러냐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누구도 아리에타나 오스카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리에타는 눈송이를 통해 자기가 가졌던 회중시계를 동생 마르셀에게 보낸다. 누나 아리에타가 마르셀을 잊지 않았다고,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50년이 지난 회중시계는 초침이 움직이고, 잘 작동한다. 이 회중시계는 마르셀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가족의 핏줄을 상징한다. 마르셀은 어릴 때 누나가 사라지면서 가족(핏줄)이 끊겼다고 생각했고, 평생 외로움에 시달렸다. 이제 노인이 된 마르셀은 누나가 지녔던 회중시계를 되찾고, 시계의 초침을 통해 아리에타와 연결되며, 다시 핏줄이 이어지는 걸 느끼고는 감격한다. 마르셀은 누나 아리에타가 어떤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고 기억하고 있었으며, 누구도 믿지 못할 이야기를 세실에게 털어 놓았다. 세실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축제 행렬처럼 보이고, 어린이들이 즐겁게 행진하는' 그림을 찾기 시작한다. 사무실 직원들의 도움과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 도록을 통해 마침내 '사랑의 신의 죽음'이 마르셀이 말한 작품이라는 걸 알아낸 세실은 도록 속 그림을 마르셀에게 보여주고, 마르셀도 바로 그 그림이라고 확인한다. '사랑의 신의 죽음'은 널리 알려진 작품도 아니고, 그림을 그린 작가 역시 유명한 작가들이 아니었다.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가 두 사람이라는 데 있다. 하나의 그림에 작가가 두 사람이라면, 공동 창작이거나 협업의 형태였을 걸로 예상하는데, 두 사람은 나이 차가 약 30년 가까이 나서 한 세대가 다른 작가다.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16세기, 1550년에 프랑스에서 앙리 르람베르가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예술가 가문이었고, 아버지 루이 르람베르는 조각가, 석공이었고, 형제들인 루이1세 르람베르와 피에르 르람베르도 조각가로 활동했다. 앙리 르람베르가 화가로 활동한 시기는 발견된 기록으로 1568년에서 1570년 사이로 보이는데, 퐁텐블로 성에서 발견한 그의 작품이 근거로 남아 있다. 이때 앙리 르람베르는 불과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이었다. 퐁텐블로 성은 빠리 근교에 있는 궁전으로 역대 프랑스 왕들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주변에 있는 퐁텐블로 숲은 12세기부터 프랑스 왕들의 사냥터로 쓰였으며, 16세기 초까지 왕들의 별장이었던 곳에 프랑수아 1세가 별장을 헐고 지금의 궁전을 지었다. 이 궁전을 지을 때,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초빙한 걸로 알려졌다. 앙리 르람베르가 이 궁전에 작품을 남겼다면, 궁전을 짓는 과정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앙리 르람베르의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는 걸 알 수 있는 증거는 그가 20대인 1573에서 1576년 사이에 '거장 화가'로 임명되었다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빠리 외곽에 살던 그는 '거장 화가'가 된 이후 1586년에 빠리로 이주했고, 1588년에 결혼했다. '사랑의 신의 죽음'은 앙리 르람베르가 서른 살이던 1580년 완성했는데, 이 그림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 1566년에 디안 드 푸아티에(1499-1566)가 사망한다.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난 디안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갖춘 재원이었는데,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자기보다 무려 서른아홉 살이 많은 영주 루이 드 브레제와 결혼했다. 결혼하고 16년이 지나서 루이 드 브레제가 사망하자 디안은 서른한 살에 과부가 되었다. 남편이 죽고나서 디안은 검은색과 흰색 옷만 입었는데, 디안의 미모가 출중해 정숙하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디안'은 '다이나', '다이애나'와 같은 이름이어서 이후 많은 화가들이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를 그릴 때, '디안'의 외모를 모델로 삼았다. '디안'은 왕실로 들어가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의 시녀로 일했는데, 시녀라는 말이 낮은 계급으로 보여도, 귀족 여성만이 일할 수 있는 특권 직업이었다. '디안'은 왕실 여성들의 시녀로 일하는 한편, 어린 '앙리 2세(1519-1559)'의 교육도 맡았는데, '디안'과 '앙리 2세'의 나이 차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앙리 2세'는 1533년에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와 결혼하는데, 5년 뒤인 1538년 무렵부터 '앙리 2세'와 '디안'이 왕과 왕의 정부(情婦, 情夫)로 위치가 바뀌었다. 정식 왕비는 카트린이었지만, 실제 왕비의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디안'이라고 할 정도로 왕인 '앙리 2세'에게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심지어 왕비 카트린이 낳은 아이의 교육도 '디안'이 했을 정도였다. '앙리 2세'가 사망하면서 디안의 권력도 모두 바람처럼 사라지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큰 고생을 하지 않고 편안한 말년을 보내다 사망했다. '디안'의 죽음이 '사랑의 신의 죽음'의 모티프가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이 이야기를 시로 쓴 사람이 '피에르 드 몽사르(1524-1585)'인데, 시인 그룹 '플레야드파'의 리더이기도 한 그는 여러 권의 시집을 냈고, 특히 사랑과 연애를 다룬 시가 뛰어났다. 피에르 드 롱사르의 시 가운데 '앙리 2세'와 '디안'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 있는데, 앙리 르람베르는 피에르 드 롱사르의 시와 '디안'의 죽음을 모티프로 '사랑의 신의 죽음'을 그렸을 거라고 추측한다. 앙리 르람베르가 서른 살 무렵에 그린 이 작품에 '앙투안 카론'이라는 또 한 명의 작가가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앙투안 카론은 1521년에 태어나 앙리 르람베르보다 스물아홉 살이 많다. 앙투안 카론은 20대 때인 1540년대에 퐁텐블로 궁전에서 스승 프리마티초 밑에서 일했다. 나중에 '앙리 2세'의 부인인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앙리 2세'와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직접 모신 화가였다. 카트린이 이탈리아의 명문 귀족인 '메디치' 가문이라는 건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왕족, 귀족의 혼인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앙투안 카론은 60세 무렵에 '사랑의 신의 죽음'을 그리는데, 이때 이미 원작을 그린 '앙리 르람베르'의 작품이 있었을 걸로 추측한다. 앙리 르람베르가 이 그림을 그린 때가 서른 살 무렵인 1580년이고, 앙투안 카론은 60세 무렵이었으니 두 사람은 퐁텐블로에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걸로 보인다. 나이는 앙투안 카론이 아버지뻘이었으니 당연히 어른이었지만, 앙리 르람베르의 재능이 탁월하다는 걸 앙투안 카론이 알아봤을 것이다. 현대의 분류에서는 두 사람이 공동 창작한 것으로 기록하는데,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루브르의 고양이'에서는 그림 뒷면에 Attribue a Henri Lerambert, collaborateur Antoine Caron 이라고 기록했다. 즉, '앙리 르람베르'가 그렸고, '앙투안 카론'이 협력, 협업자로 함께 했다는 말이다. 이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전시를 거의 하지 않았거나 아주 드물게 했을 걸로 보인다. 만화에서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인 세실도 이 그림의 존재를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건 '사랑의 신의 죽음'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았다는 걸 뜻하고, 박물관 가이드인 세실도 모를 만큼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츠모토 타이요는 왜 '사랑의 신의 죽음'을 '루브르의 고양이'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끌어온 걸까. 이 그림은 르네상스 회화에서도 독특한 장면이다. '사랑의 신' 즉 큐피드가 죽었고, 큐피드의 장례 행렬이라는 설정에서, '신'을 죽이거나, '신'이 죽었다는 설정은 그동안 중세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림을 보자. 잘 다져진 흙길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비스듬히 올라가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건물을 배치했다. 이 건물은 원근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그림은 2차원 평면이지만 마치 3차원 공간처럼 입체감을 갖는다. 왼쪽 건물은 그림 전체에서 약 1/3 정도를 차지하는 큰 건물이고, 건물의 끝부분만 보인다. 2층에는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귀족들, 주로 귀족 여성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남성 집단이 장례 행렬을 뒤따르고 있다. 건물은 보이지 않지만, 왼쪽으로 긴 회랑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지금 장례 행렬은 건물의 긴 회랑을 막 빠져나왔다. 장례 행렬을 따르는 남성들 역시 귀족들이며 가장 앞장 선 노인은 머리에 면류관을 썼고 이 장례를 주관하는 인물로 보인다. 장례 행렬을 이루는 무리는 모두 어린 천사들이고, 등에 날개가 달린 걸 볼 수 있다. 앞장 선 아기 천사들은 손에 긴 봉을 들었는데, 이 기다란 막대기 끝에 폭죽이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아기 천사들은 자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다. 이들의 표정을 보면 이 행렬이 장례식이 아니라 마치 축제처럼 보인다. 행렬의 끝에 네 명의 어린 천사들이 관을 메고 가는데, 큐피드는 관 안에 있지 않고, 관 위에 누워 있다. 아리에타는 이 행렬에서 큐피드가 사실은 죽지 않았고, 죽은 척 할 뿐이라고 눈송이에게 말한다. 이 장면은 장례식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실제로는 축제라는 말이다. 그걸 알 수 있는 건 장례 행렬 양 옆으로 구경을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다. 사람들은 행렬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손짓을 하는데,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기 천사는 물론, 행렬 옆에 있는 아이들 모두 발가벗었다. 발가벗은 아이는 천진난만함, 순진무구함을 상징하며, 죄를 짓지 않은 순결한 영혼을 의미한다. 이 행렬이 향하는 곳은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인데,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행렬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건물 꼭대기에 등신상으로 천사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 동상은 왼쪽 하늘에 수레에 탄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제우스 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에도 '제우스는 날개 달린 말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벼락을 던지고'라는 문장이 있듯, 제우스는 황금 수레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이 황금 수레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끈으로 연결되어 끄는 형태인데, 비둘기는 순결함을 상징하며, '생명의 재생을 상징하는 새'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비둘기는 큐피드가 '페리스테라'라는 요정을 비둘기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그림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제우스 수레를 끌고 있다는 건 '사랑의 신의 죽음'이라는 주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신'이 죽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이 그림의 핵심 주제인데, 그래서 영어 작품 제목에는 'Allegory'가 추가되었다. 이 작품(사랑의 신의 죽음) 전체가 하나의 우화이자 풍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의 설명처럼 '디안 드 푸아티에'의 죽음을 풍자했을 수 있고, 르네상스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정신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을 빌려와 루브르 박물관 옥탑에 사는 고양이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그림 침입자'의 존재를 등장시켜 한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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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으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 작가지만, 참으로 부럽고, 대단한 작가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에도시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떠돌다 정착한다. 사무라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진검이 아닌 대나무검. 진검이자 보검인 쿠니후사는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의 살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노릇을 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세노 소이치로는 잠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연쇄 살인이 발생하면서 도읍은 긴장감이 흐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한국에 번역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반드시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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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와 만화
부조리와 만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 [괴물들] 예술은 현실의 부조리를 어떻게 표현하며, 어느 수준까지 담아낼 수 있고, 얼마나 강력하게 발언할 수 있을까. 수 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의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고, 작품을 통해 발언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 같은 작품은 작가의 신념과 작품의 사실성이 직접 드러난 경우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 한국에서 크게 일어났던 '민중문학', '민중미술', '민중음악'이 같은 사례에 든다. 이 시기-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참여 예술은 문학, 미술, 음악 등 전방위에 걸쳐 펼쳐졌으며 그때만 해도 '민중만화'라는 규정은 없었으나 만화의 형태로 현실을 반영, 고발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어느 사회든 정치적 억압이 강한 독재 정권일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같은 크기로 일어난다. 1970년대 칠레에서 군부독재가 철권 통치를 하면서 수많은 학생, 노동자, 지식인을 살해할 때,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던 빅토르 하라는 군부독재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청년, 노동자, 지식인들이 감옥으로 끌려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투쟁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때 예술가들이 쓰고, 그리고, 불렀던 예술 작품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진전하면서 점차 '독재 시기의 특성'으로 남게 되었고, 오늘날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예술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1980년대에 활약했던 민중 예술가들의 작품을 1세대라고 한다면, 90년대를 지나 현재의 예술가들은 2세대, 3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제3세계'로 불리던 나라들은 대개 비슷한 민주주의 경로를 걷고 있는데, 군부독재의 출현과 몰락 역시 비슷하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의 부조리는 민주주의의 직접적 파괴-쿠데타, 독재-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하고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왜곡된 정치와 '신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로 불리는 자본주의의 첨단 기법이 국민을 얼마나 심하게 착취하고 있는지, 부의 극단적 편중과 빈익빈 부익부의 편차로 인한 사회 갈등, 민족과 인종, 종교가 달라서 오는 갈등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만화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작가가 '조 사코'와 ‘박건웅’이다.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근현대사의 비극, 가해자의 논리로 위장되어 있는 진실을 탐구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만화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 박건웅 작가는 일관성 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 속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다. '괴물'은 박건웅 작가의 신작이다. 그가 오랜 시간 그렸던 단편을 모았다.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외국의 작가들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높다. 그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데, 한국현대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격동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격렬한 과정을 겪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대개 70년대, 80년대에 태어나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있었으며,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부패, 권력자의 오만과 폭력을 눈으로 보며 자랐다. 여기에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사회에 나와 시민운동을 경험하면서 정치의식이 발달하고, 민주주의 학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작가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작가의 경험은 작품세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특히 그래픽노블이 갖는 장르적 특성은 작가의 자기 서사가 강하고 깊다는 데 있는데, 박건웅을 비롯해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한국현대사와 자기 서사를 일치하는 경향이 많다. 이건 퍽 우연이지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노블 작가는 강하고 깊은 자기 서사와 함께 개성 있는 그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자나 기호보다는 이미지가 그래픽노블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가 핵심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건웅 작가의 그림은 다른 그래픽노블 작가들과 분명한 변별을 보여준다. 강렬한 흑백의 이미지와 판화 같은 날카로운 선이 있는가 하면, '바람이 불 때'처럼 무채색 유화의 분위기가 나는 그림도 있다. 전체적으로 흑백의 강렬함 속에서 날카로운 풍자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의 형식이 완벽하게 결합한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박건웅 작가가 소재로 삼는 작품들 가운데는 읽기 불편하고, 힘든 작품이 꽤 많다. 이건 물론 작가의 책임이 아니라, 한국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참혹하고, 잔악하며, 끔찍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 작가는 그런 역사의 비극을 이미지로 그려야 하므로, 독자보다 오히려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보는데, 그래서 독자는 박건웅의 작품을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작품 '문신'은 단편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고통스럽다. 한 칸, 한 칸의 이미지가 마치 칼날처럼 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일본군이 조선의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은 인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범죄였다. 이런 내용을 심각한 논문이 아닌, 그래픽노블로 본다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작품집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작품과 관련해 그린 것과, 당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 보면서 만든 작품을 모았다. 단편이지만, 마치 연작처럼 작품의 내용과 수준이 일관되고,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만화비평지 [지금, 만화] 12호에 실린 저의 만화비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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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팔로우하고 있는 '재수의 연습장' 작가가 어제 올린 그림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잊어버렸다. 오늘 보니, 이 그림을 두고 엄청난 반응이 쏟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 그림 아래 달린 댓글과 오늘 작가가 다시 올린 해명과 그 글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가능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해봤다.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두 컷으로 나뉜 그림은 대사가 없는 윗 그림과 대사가 있는 아래 그림으로 나뉜다. 상황은 딱 한 가지가 달라졌다. 윗 그림에서 작가 부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이 아래 그림에서 얼굴과 상반신이 약간 돌아간 상태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마스크를 한 채 뛰고 있다. 이들이 이미 한참 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근거는, 아래 그림에서 독자의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온 여성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숨이 내뱉고 있음을 보여주는 입김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반팔 티셔츠에 바지는 어두운 계열의 운동복을 입었는데, 이 하의가 요즘 여성들이 많이 입는 '레깅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복이 편해야 하므로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를 입는 것이 상식으로는 맞다. 따라서 여기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이 입은 옷, 특히 하의는 어느 정도 몸에 붙는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라고 전제하자. 아래 그림에서 대사를 하는 사람은 작가 부부다. 행위(몸을 움직이고 시선이 바뀌는 행위)는 중년 남성(개저씨 또는 할저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단어의 선택은 명백히 의도된 것으로, 혐오를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남성들이 된장녀, 김치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이 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한 것은 작가 부부다. 이때, 우리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제3의 주체에 관해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해석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달리기를 하는 두 명의 여성이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은 주위 사람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거나, 알고 있어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젊은 여성이고, 몸의 굴곡이 보이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뭇남성의 시선을 받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는 것도 오늘 처음이 아닐 것이고, 이미 한국에서 젊은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물적,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초, 매순간마다 그것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큰틀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분명 사회적 문제라는 명제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 순간,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서 작가 앞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두 여성은 앞에서 다가오는 중년 남성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그 남성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그 남성 뒤에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우산을 쓰고 따라오고 있어서 신변에 위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자연스럽게 중년 남성과 작가 부부의 옆을 달리면서 지나간다. 이때 작가 부부 앞에 있던 중년 남성의 시선이 달리던 두 여성을 향해 움직인다. 중년 남성은 '객체'다. 즉, '주체'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고, 본래의 의지 - 여기서는 앞으로 쭉 걸어가는 것이 중년 남성의 본래 의지다 - 와는 상관 없는 행동을 하게 되므로, 중년 남성은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반응하는 '객체'로써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스트루프 효과'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1)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의도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2)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이며 의도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있는데, 이것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려는 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 중년 남성은 왜 '스트루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여성(남성)을 바라보면 자동으로 시선이 돌아가는 이유와 원리는 무엇인가? 단순히 남성(여성)들이 여성(남성)을 '성적 대상화'하기 때문일까?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분석을 하기 전에 먼저, 아래 그림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중년 남성은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을 따라가며 보고 있다. 이 남성의 시선으로 보자면, 저기 앞쪽에서 두 여성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때부터 줄곧 두 여성을 보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20미터 앞쪽에서부터는 여성들의 몸매가 보이기 시작할테니 적어도 중년 남성이 고개를 돌리기 몇 초 전부터 여성들을 보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후 두 여성이 중년 남성의 곁을 지나쳐 갈 때 중년 남성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여성을 쫓아갔고, 그래서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이해할 것이다. 이제 중년 남성의 '행위'를 두고 해석 가능한 주장을 펼쳐보면 아래와 같다. 1.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남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사람은 1번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고, 단지 시선이 머물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혐오하는 것 자체가 남성혐오, 세대혐오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번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자리에 상반되는 인물을 놓아봄으로써 우선 '상식'의 선에서 이 문제의 반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즉, 명제를 아래처럼 바꿔보면 이렇다. 1. 중년 여성이 젊은 남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여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앞에서 1번에 동의한 사람이라면 이 명제에서도 당연히 1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2번에 동의한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2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1.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2.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20대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위의 명제에서 중년 여성과 20대 여성은 정우성을 '시선강간'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며 '성추행'을 한 것인가?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중년 남성의 시선을 '시선강간' 또는 '성추행'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체'나 '객체'가 아닌 '제3의 주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순간, '주체'와 '객체'는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낙인 찍힌다.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을 보면, '객체'의 행위만으로 '객체'의 존재를 비난한다. 근거는 오직 '객체'의 시선이 움직이는 '행위'뿐이다. 과연 '제3의 주체'는 '객체'의 행위만으로 그를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객체'가 동성애자라면? '객체'가 지나가는 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은 전적으로 '제3의 주체'의 심리적 반응이고, 그것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중년 남성' 일반 또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에 대한 적대적 고정 관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3의 주체' 가운데 남성은 이 그림의 작가로 보여지는데, 아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동조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1)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는 것과 2)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내의 말을 존중하기 때문에 동의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작가(남성이다)는 아내의 발화 내용 또는 아내의 일방적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왜곡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있거나, 왜곡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아내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비주체적 인물이다. 이제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내용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는 '중년 남성'이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상황으로 특정되어 있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은 곧잘 고개를 옆으로 돌려 - 각도의 차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5도, 10도, 15도...180도까지 -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시선을 '시선강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달리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내 딸하고 나이가 비슷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마스크를 하고 달리려면 숨쉬기가 힘들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도 극렬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만든 용어로, 남성들의 시선이 불쾌함을 넘어 '눈으로 하는 강간'이라는 매우 폭력적 표현으로 '남성 시선'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 '시선강간'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지속성(시간), 표현(특정 부위, 위, 아래로 훑는 듯한 시선)인가에 따라 '시선희롱', '시선추행', '시선강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여성이 남성을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사람(특히 남성)이 사람(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심리적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 남성은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2) 성적인 독점욕을 가지고 있으며, 3) 젊고 건강한 이성을 선택하려 하고, 4)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로 규정할 수 있다.[D. 시먼스, <섹슈얼리티의 진화>] 남성은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독점하고 싶어하는 경향'과 함께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욕구도 있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근거로 아래 그림의 '객체'인 중년 남성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리 상태나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분명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단지 고개를 돌려 달리는 여성들을 바라본 행위만으로 잠재적 또는 실질적 성범죄 가해자로 예단하는 '제3의 주체'의 발화 내용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내용-진화심리학 이론-을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알고 있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개가 돌아갔을 수 있다. 그렇게 '180도' 고개를 꺾어 뛰어가는 여성을 보는 남성이 반드시 그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보통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가서 바라본 대상은 그만큼 빨리 잊혀지기 때문인데, 우리가 보통 '성적 대상화'라고 할 때,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왜곡이고 비틀린 주장이다. 누군가가 '성적 대상'이 되려면 시선을 포함한 물리적 접촉과 함께 '성적 행위'의 매개 또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진화심리학의 4)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가 곧 모든 것이 '성', '섹스'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단계에서 남성은 주로 수렵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1), 2), 3)의 내용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내용은 앞의 맥락이 삭제되어 있고, '객체'인 중년 남성의 의도가 배제되어 있으며, '제3의 주체'가 가진 명백한 확증편향과 선입견, 예단 그리고 중년 남성에 대한 편견으로 혐오 발언을 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직 '시선강간'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는 만큼이나 못 생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간과 기회도 많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즉, 남성은 꼭 아름다운 여성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못 생긴 여성도 여성이니까 '성적 대상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건 그냥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짐작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시선강간'을 하려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극히, 매우 극히 드물게 그런 변태 남성도 있겠지만, 대부분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고 곧바로 자기가 갈 길을 가며, 자기가 바라본 여성에 대해서도 곧바로 잊는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두 컷 만화는 특히 '중년 남성'의 시선으로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성추행'이라는 뉘앙스로 남성 혐오 발언을 하고 있고, 이것은 명백하게 '제3의 주체'가 주관적 판단 오류 내지는 악의적 왜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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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제목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작가 : 조 사코 출판 : 글논그림밭 만화책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이 만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중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 무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접점이 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하게 미국과 유럽 쪽 역사에 편향된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동 뿐이랴. 아프리카의 역사는 어떤가. 우리가 수단이나 나미비아,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자의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 편향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도 우리는 미국의 '백인'들이 기록한 역사를 읽고, 판단한다. 미국인-주로 백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책으로 꼽는 것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인데, 미국인의 주류인 백인들도 '미국민중사'에서 말하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렇듯, 어느 나라의 역사든 기록은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어떤가. 심지어 자기나라의 역사조차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려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사라니. 결국 이런 역사 공부를 하려면 혼자 책을 찾아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는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배우지 않거나, 잘못 배우면, 그 위에 쌓는 지식은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 만화책에서 작가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에서 멀어진 1956년의 학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남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인데, 이런 처참한 학살 행위가 UN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오늘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나라들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돕지 못하거나, 않는 이유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권층이 존재하는 나라는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고, '반미, 반유럽'을 외치는 나라들은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낙인 찍히고 미군의 침략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운명을 갖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미시적 역사 기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떨까.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저항하다 죽는 것과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 오로지 그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당신은.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슬람 패권주의,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미국 사이에 벌어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이집트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긴장, 범 이슬람 진영과 범 친미 진영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업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뺐긴 것도 억울한데,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자 지구로 들어온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치 한국에서 남북한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땅에서 거지처럼 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 재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맨손으로 가자 지구로 들어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마져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학살로 인한 공포 속에서 늘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11월 2일 가자 지구를 침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아무 이유 없이 집단 학살을 시작했고,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 생존자의 증언, 생존자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 학살당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의 증언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한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이 지금 서울 면적에 한국인 5천만 명을 집어 넣고, 서울 외곽 경계에 높은 담장을 두르고, 서울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검문, 검색을 하며, 아무런 통지 없이 출입문을 닫아 걸고 몇날 며칠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필품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는 엄청나게 높고, 경제 활동이랄 것도 없어서 거의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빈곤층이 90%에 이르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거의 원시상태에 가까운 삶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고,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사회 즉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몸부림을 '테러'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분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현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폭행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으며,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왜곡,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유대 민족처럼 '국가'가 없고,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민족이어서 지금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해자 이스라엘의 악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현실은 실재하는 지옥이라고 해야 한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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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 짧은 버전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 - 짧은 버전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시간이 흘렀어도 호기심 생기는 책이 가끔 있다. 이 책 '포스트식민주의란 무엇인가'를 보고, 꽤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읽어보니 역시 읽는 즐거움이 있다. 90년대 초에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세계 정세는 '쏘련'이 붕괴하면서 제국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 세계 질서가 '팍스아메리카'로 재편되던 시기였다. 이때 공산주의 제국 쏘련의 해체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정의한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비판이나 반체제적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있었다 해도 극히 미미했을 정도라고 봐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존 서구 문명에 대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비판적 관점이라는 점에서, 서구 사회를 분석했던 이론적 틀로 쓰인 '구조주의' 역시 비판 대상이었고, '포스트구조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즉, 서구 사회가 쌓았던 근현대 문명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포스트구조주의'가 있다면, 제1세계(중세 이후 현대까지 제국을 이룬 국가들)를 제외한 국가들이 제1국가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 모든 영역을 장악당하고 피압박 상태에서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억압, 착취, 강제당했던 상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이다. 이때 분석의 주체는 당연히 '피압박자'가 된다. 하지만 '피압박자(피해자)'가 과연 압박의 주체(가해자)를 온전히 해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데, 이 문제를 다룬 '가야트리 스피박'은 '하위 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에서 '하위 주체' 즉 억압된 주체는 그람시가 주장한 '종속 계급'이자 통상적으로 '열등한 계층'이라고 정의하고, 이들이 가해 집단의 행위와 작동 원리를 완벽하게 분석, 해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식민의 경험을 가진 국가와 국민은 '포스트식민성'을 통해 자신들이 겪었던 억압의 본질에 관해 분석,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프란츠 파농'과 '간디'를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다. 물론 간디의 '비폭력' 운동은 실패했고, 그가 가진 한계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프란츠 파농'은 안타깝게 일찍 사망했지만, 그가 정신과 의사로, 국가 또는 민족 단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분석했다.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보편적 용어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휴머니즘'이 인류 보편적 '인류애'라고 해석하지만, 식민 상태에 놓인 민중과 노예(흑인 노예가 대표적이다)의 시각에서 '휴머니즘'은 폭력의 주체가 말하는 그들만의 '인류애'일 뿐이다. 결국 포스트식민주의는 기본 담론으로 보면 자본주의 비판 이론과 교집합한다. 제1세계가 착취하는 대상은 국가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자본주의는 개별 단위에서는 자본가-노동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착취이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면서 국가 단위의 착취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포스트식민주의 자본주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로 볼 수 있다. 한국도 세계의 자본 흐름으로 볼 때,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주권을 뺐긴 경험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통상조약'이라는 이름은 외세가 침략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협약을 의미하며,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자본에 포획되어 서구 자본을 적극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들의 힘을 키워 주변 국가를 침략했다.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80년이다. 우리는 해방 두 3년 동안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고, 뒤이어 민족끼리 갈라져 전쟁을 했으며, 수백 만 명의 국민이 죽었고, 국토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에서 불과 8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은 인류 역사에서 한국이 유일하며, 앞으로도 나오기 거의 불가능한 역사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독재 권력이 30년 가까이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내부의 '포스트식민성'에 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이 되었어도 여전히 지배 권력은 식민지배국이었던 일본을 위해 일했던 자들이어서 식민성에 관한 비판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식민성이 유지, 강화되는 측면이 있었다. 식민의 경험은 집단의 의식 속에 깊게 자리 잡았고, 지식인들이 식민성을 해체, 분석, 비판하는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식민성의 부당함을 널리 알려야 했음에도, 한국에서는 식민성에 대한 비판이 약하게 작동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런 포스트식민성 즉 식민지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로 세계 최고 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세계 최고'의 의미는 단지 경제적 발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한국 문화 전체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K로 시작하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가 경제적 성과를 이루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국민의 삶이 극적으로 향상된 것에서 시작한다. 경제적 풍요는 우리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다른 나라들과 대등하다는 인식이 집단(국민)에 자신감을 주었다. 앞뒤가 바뀌어 나타나기도 하는 현상으로, '한글'의 우수성에 관한 이야기가 K 즉 '한류'와 함께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K-한류를 누리는 바탕에는 '한글'이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외국에서 '한글'의 존재와 의미를 알기 어려운데, 우리 경제가 성장하고, 90년대부터 꾸준히 K 문화가 한국 바깥으로 퍼져나가면서 점차 '한글'의 존재와 의미를 외국 사람들도 알기 시작했다. 그건 한국이 1997년 외환 위기를 겪고,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김대중 정부에서 광케이블을 전국에 실핏줄처럼 설치하자 PC방이 생기고, 마침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나오면서 한국이 '스타크래프트'의 최대 활성국이면서 수혜국이 되었다. 그렇게 인터넷의 발달, 민주정부의 지원, 코로나 팬데믹 때 세계적 OTT 넷플릭스를 타고 전세계에 퍼져나간 한국 드라마, 음악, 영화들이 K 문화가 세계에 파도처럼 밀어닥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포스트식민성'에 관한 논의를 진지하게 집단으로 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적극적 활성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엄청난 문화 잠재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자연스럽게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했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창의성, 예술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고, 우리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었던 걸로 생각한다. 우리(제3세계)가 스스로를 '오리엔탈리즘'으로 바라보는 게 바로 '포스트식민주의'에서 주체가 스스로를 '대상화' 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분명 피해자인데, 가해자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봤던 것이다. 돌아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제외하고 -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정부에서 한국은 꾸준한 경제 성장과 함께 K 문화 전반이 매우 가파르게 성장했다.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이 세계 1위를 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 해 세계의 모든 영화상을 휩쓸었던 건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을 확인했다. 한국이 K-방산, K-조선, K-항공우주 같은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불균등과 불균형한 발전을 하고 있고, 불안한 요소가 많이 보인다. 한국은 불과 80년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선진국으로 급성장하면서 부작용도 많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사실에 매우 자부심을 갖는다. 이건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가 겪은 식민지의 기억과 불행을 자식 세대에서 훌륭하게 극복했다는 뜻이다. 수 많은 제3세계는 지금도 '포스트식민주의'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고, 시간이 흘렀어도 '포스트식민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라도 많다. 한국은 '포스트식민주의'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분단 체제'다. 남북 분단의 직접 원인은 2차 세계전쟁 이후 발생한 '냉전'의 결과로, 미국과 쏘련의 이념 전쟁을 대리한 국지전의 성격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족과 나라가 궤멸하고, 분단 체제로 오랜 시간 적대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가 겪지 못하는 '포스트식민성'을 한국은 특별한 형태로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사건들, 권력과 엘리트 집단의 범죄, 왜곡된 사교육 문제, 특정 종교 집단의 부패와 반지성 행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이 나타나는 건 우리가 '포스트식민성'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한 증거라고 본다. 과거 독재 정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드러냈지만, 이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확보된 다음에는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반응을 보였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예가 대표적인데, 이후 박근혜, 윤석열을 선출한 건 우리가 가진 '포스트식민성'이 최악의 형태로 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한편으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최악의 '포스트식민성'을 드러내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데, '포스트식민성'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 뿌리에서 자란 전근대적 피식민주의자들이 친미, 친일을 부르짖는 집단과 개인이고, 권력을 사유화 하고, 독재의 향수에 집착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려면 이런 집단을 온전히 해체하고, 소멸시켜야 한다. 우리가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온전히 민중(국민, 백성, 민초, 인민, 시민 등 어떤 단어를 써도 좋다)의 역량을 바탕으로 스스로 극복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포스트식민성'의 잔재는 기득권 세력, 권력 집단, 부르주아 엘리트 계층의 발생과 유지 과정에서 그들이 친일, 친미 집단으로 자발적으로 변신하고, 권력과 부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엘리트 계층은 '포스트식민성'을 유지하는 게 그들에게 이익이 됐지만, 기층 민중에게는 '포스트식민성'이 족쇄로 작동하고 있었기에, 기득권 세력과 갈등, 대립, 투쟁하면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했다는 객관적, 물적 조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현상은 억압자(가해자)였던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각종 통계 수치에서 여전히 세계 5위권의 선진강대국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 일본과 현재 일본은 사뭇 다른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한때 아시아 국가 전체 GDP의 약 60%를 차지한 때가 있었다. 또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60년에서 70년대에 가장 큰 경제적 격차가 있었고, 이때 일본은 경제 지표에서 한국보다 약 40배 이상 앞서 있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는 일본이었고, 일본은 경제 대국은 물론 문화 산업에서도 서구에 널리 알려졌다. 일본은 2차 세계전쟁에서 패전국이었지만 같은 패전국인 독일처럼 많은 걸 잃지 않았고, 미국의 지원으로 빠르게 성장했으며, 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은 전쟁 특수로 경제 호황의 발판을 만들고, 도쿄올림픽 이후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룬다. 일본은 16세기 이후 서구 국가들에 의한 개방과 교류로 발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었고, 두 번의 결정적 판단 - 16세기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통한 무기 수입 및 교역, 19세기의 유신 - 을 통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 국가로 발전했고, 이후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국가를 정복했다. 당연한 결과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발전했으며, 다른 제국주의와는 다르게 '군국주의'이면서 '제국주의'인 국가로 변신하는데, 이는 일본의 역사에서 무사 집단이 지배 집단이었던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지역 방위의 전초기지로 여기고, 최대의 미군 기지와 함께 일본을 공산주의 국가와 대결하는 동맹, 파트너로 대우했다. 일본은 몇 가지 조건 - 1억 명 이상의 인구, 태평양에 인접한 국토, 천황 중심의 지배구조 등 - 에서 미국이 아시아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기 좋은 조건을 갖췄고, 일본은 미국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가파르게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80년대까지 초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마침내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이때 일본은 미국 GDP의 68%까지 도달하는 거대한 몸집이 되었다. 미국은 턱밑까지 쫓아온 일본을 견제하려고 미국 달러와 엔화의 환율을 조정하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의 가치를 낮추고, 엔화의 가치를 높이는 협상을 했다. '플라자 합의'에 참여한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다섯 나라였다. 이 협상을 통해 엔화 가치는 두 배(250엔에서 120엔)로 커졌고,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수출 경쟁력이 낮아지는 한편, 국내에서는 '엔고 시대'를 맞이하면서 경제를 살리는 방안으로 '양적 완화' 즉 돈을 많이 풀어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주로 부동산, 주식 등으로 몰리면서 일본의 부동산 자산이 급등하고 90년대 이후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거의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졌지만, 높은 교육열, 저임금 노동-경공업에서 중공업-첨단 산업으로 이행, 외래 문화의 수입에서 자기 문화를 생산하는 문화 생산국으로 변신 등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독재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만드는 방법과 과정을 스스로 터득했으며, 배고픔과 가난의 고통을 겪은 부모 세대와 풍요로운 중산층의 삶으로 시작한 청년 세대가 공존한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경제 성장, 문화 발전을 이룬 밑바탕에는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문맹율이 0%대에 수렴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글'은 그만큼 배우기 쉽고, '한글'로 쓴 글은 누구나 읽을 수 있다. 한국의 산업 발전에서 고급 노동자를 생산하는 과정에 '한글'이 필수적 요소였다는 사실은 대부분 간과한다. 일본이 미국의 기술 하청국가로 출발한 것처럼, 한국도 처음에는 일본의 기술 하청국가로 시작했지만, 점차 독자적 기술을 확보하면서 일본과 기술 경쟁을 할 정도에 이르렀다. 자동차를 비롯한 조선, 항공, 중공업 분야 등 실물 경제의 발전도 놀랍지만, 한국이 가진 '소프트 파워' 즉 문화 산업의 힘은 오히려 실물 경제보다 더 파장이 크고 오래 간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대중 정부 때, 일본 문화 시장을 개방한다는 정부 발표에 반대 여론이 훨씬 많고 강했다. 그때까지 미국, 유럽 등의 대중 문화를 수입하는 건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일본 대중 문화는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그건 일본 제국주의와 우리의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정부는 일본 문화를 개방했고, 결과는 싱겁게 드러났다. 일본 문화에 빠져 허우적거릴 줄 알았던 한국인은 오히려 일본 문화에 관심이 적었고, 일부 분야(애니메이션 등)에서 취미를 갖게 되는 사례가 있을 뿐이었다. 반대로, 한국의 대중 문화가 일본으로 스며들면서, 일본은 그동안 전혀 몰랐던 한국의 대중 문화를 보고,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 '한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이 2002년에 방송된 '겨울연가'인데, 그 전에 1995년에 '신바람 이박사'가 일본 소니뮤직을 통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엄청나게 성공한다.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 여성의 트라우마를 건드렸고, 중년 여성들이 한국 대중 문화 특히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기 시작하면서 '한류'는 점차 일본에서 서서히 확산한다. 지금 일본 기성세대가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사건은, 한국 대중 문화가 일본에 깊게 스며든다는 정도가 아니라, 일본 청소년,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열풍이 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성세대는 한국을 여전히 가난한 나라, 못 사는 나라, 일본에게 지배당한 나라로 기억하지만, 30대 이하는 그런 우월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90년대 이후 한국은 잘 사는 나라, 다양한 문화 산업이 성공한 나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 청년들이 '한글'을 자발적으로 배우려는 건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없는 정서적, 문화적 풍요로움과 고급함, 세련된 이미지가 한국에는 있다. '문화'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기에 한국에서도 일본 문화를 받아들여 누리는 건 당연하듯이,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스며드는 현상은 일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타났다. 이건 한국이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한 뚜렷한 증거가 된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대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는 문화강국의 꿈을 지금 우리가 이루고 있다.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는 건 경제를 필두로 국방, 스포츠 등 다양하지만 가장 큰 힘은 역시 문화의 힘이다. 한국 문화가 세계에 널리 퍼질수록, 특히 우리를 강압으로 지배한 일본에 한국 문화가 깊게 스며들수록, 우리는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고,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스스로 '포스트식민성'을 극복하고, 경제, 문화, 예술의 독립을 이룬 보기 드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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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파는 집 - 스티븐 킹
욕망을 파는 집 - 스티븐 킹 장편소설. 1천 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스티븐 킹의 특징이자 장점인 인물 개개인에 대한 서사의 핍진성은 여전히 놀라운데, 작품을 관통하는 서사는 빈약한 편이다. 소설 앞부분에 릴런드 곤트가 등장하고, 그가 잡화점을 시작하면서 이 서사의 끝부분이 보이는 건 나만의 관찰력은 아닐 것이다.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모든 종류의 부정적 감정이 주인공이다. 탐욕, 이기심, 경쟁심, 질투, 시기, 분노, 차별, 불만 같은 부정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런 감정은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언더 더 돔'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체스터밀이 거대한 투명 돔으로 갇히면서 발생하는 마을 주민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그린 소설인데, 양상이 조금 다를 뿐, 캐슬록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폭력은 근본에서 같다. 캐슬록은 작은 시골 마을로 사람들이 조금씩은 알고 지낸다. 시골에 살면 한다리 건너 누구네 집에 사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도시처럼 익명으로 살기 어렵다. 마을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친하게 지내면 밥도 같이 먹게 된다. 차라리 도시처럼 철저히 익명으로 살아가면 상대에 관해 모르고, 알고 싶지 않고 관심을 끊고 살면 사건이 발생할 확률도 낮아진다. 대신 도시에서의 삶은 고립되어 외롭고 쓸쓸한 삶이 될 확률이 높다. 어느 쪽 삶을 선택하는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핵심은, 사람과 가까워지면 감정을 나누게 되고, 그 감정의 교류가 꼭 좋은 쪽으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게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필연적으로 경쟁, 질투, 이기심 같은 감정이 나타났다. 이건 한 개체가 생존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며, 부정적 감정이지만 반드시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쟁, 질투, 이기심 등의 감정은 다른 개체보다 내가 더 노력하고,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건 곧 경쟁하는 동성들 사이에서 우수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걸 의미한다. 즉,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에서 경쟁, 질투, 이기심, 욕망, 시기의 감정이 발생하는 배경과 원인을 말할 때, 개체 또는 집단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그런 감정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개체(인간)가 좋은 쪽으로만 발현하거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개체와 집단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경쟁'의 경우는 꼭 부정적이지 않지만, '경쟁'하려는 의지와 행동에서 시기, 질투, 이기심 같은 부수적 감정이 나타나고, 이 바탕에 보다 본질적인 '탐욕'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슬록 마을에 어느 날 영업을 시작한 작은 상점 '니드풀 씽스(needful things)'가 사람들 눈에 띈다. 작은 마을이어서, 거리에 가게가 문을 열면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본다. 어떤 상품을 파는지, 누가 주인인지, 주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그 가게를 드나드는지 등등.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그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구경하는데, 신기하게도 꼭 자기가 갖고 싶었던, 원하던 물건이 눈에 띈다.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욕망하는 물건을 찾아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가게 주인 릴런드 곤트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다. 여름 한 철 관광객이 잠시 머물다 가는 시골 마을에 외지에서 온 사람이 가게를 열었다는 자체도 뉴스거리가 되고, 그 사람이 파는 물건이 새 제품도 아닌, 골동품이라는 것도 신기한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가게에 별 생각 없이 들렀다 깜짝 놀란다. 마음이 설레고, 심장이 뛸 정도로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물건이라는 게 너무 소박하고 값싼 것들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우습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애착을 갖는 물건이 꼭 비싼 건 아니다. 소소하고 값싼 물건이라도 특히 집착하거나 애정을 듬뿍 담아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경우가 더 많다. '니드풀 씽스'에서 사람들은 그런 물건을 발견한다.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 그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물건을 보여준다. 즉, 사람들은 자기의 호기심, 욕망을 충족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며, 그런 사람의 말을 따른다고 반대로 해석할 수 있다. 작품에서도, 릴런드 곤트에게 물건을 싸게 산 사람들은 릴런드 곤트가 물건을 싸게 주는 대신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이때 '가벼운 장난'은 물건을 산 사람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아 릴런드 곤트의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사람이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개구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것처럼, 누군가 '가벼운 장난'으로 한 짓이, 어떤 사람에게는 목숨을 거는 행위라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가볍게 생각한다. 릴런드 곤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쟁, 이기심, 질투, 분노, 시기, 탐욕 같은 감정을 통제한다. 악마는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사기꾼은 99%의 진실을 말하며, 악마는 친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등학생 브라이언 러스크는 귀한 야구카드를 '니드풀 씽스'에서 싼값에 산다. 그리고 릴런드 곤트에게 '가벼운 장난'을 하나 해주면 야구카드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이의 영혼까지도 아무런 가책없이 잡아먹는 악마라는 사실을 캐슬록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쪽지, 편지, 애완견 살해, 돌멩이로 창문 깨기 같은,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장난'이 오해와 불신과 질투와 욕망에 사로 잡힌 사람들 사이에서 뇌관이 터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 폭발하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결과를 드러낸다. 그렇게 캐슬록 사람들은 미쳐날뛰고, 마을 행정위원장 댄포스 키턴은 아내를 살해하고, 공사장에 보관하던 다이너마이트를 곳곳에 설치해 장례식장, 시청 건물, 다리를 폭파한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에 타고, 미쳐 날뛰는 사람들로 캐슬록은 아비규환, 지옥이 된다. 마을 하나를 완전히 궤멸시키고 사라지는 릴런드 곤트의 정체는 독자가 상상하는 그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어느 정도 읽은 독자라면 작품 초반에 이미 정체를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관 앨런 팽본은 최초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니드풀 씽스'의 주인 릴런드 곤트를 눈여겨 본다. 소설의 마지막은 앨런 팽본과 릴런드 곤트의 대결이 하이라이트지만, 인간 사이에 스며들어 인간을 파멸시키는 악마의 정체가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악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가, 아니면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 그 자체인가.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을 오해하고, 불신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목숨을 대신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사소한 가짜 편지 한 장으로 그 사람을 증오하는 감정이 든다면, 그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인간의 감정은 너무 쉽고 빠르게 바뀔 수 있으며, 대부분의 인간은 어리석어서 외부의 작은 자극만으로도 사랑이 증오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이런 감정의 기복과 변화를 알아채고, 그 감정의 뿌리를 냉정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릴런드 곤트가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을 충동해 폭력을 일으키지만, 외부의 개입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가족, 이웃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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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소설을 나름 읽었고, 그의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말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 원문이 아니어서, 그의 농담과 재치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말로 번역한 소설만으로도 스티븐 킹의 속내는 어지간히 알아서 짐작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글쓰기'에 관해 꽤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의 다른 소설과 달리 '스티븐 킹의 글쓰기'라는 형식에 관해서 특히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들에서 소설의 내용 즉 '서사'와 인물에 흥미와 관심을 두었다면, 이 소설은 작가의 글쓰기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작품에서 스티븐 킹은 주인공 빌리가 해야 하는 살인청부 암살, 암살 준비 과정에서 위장을 위한 작가의 삶, 작가 흉내를 내려다 진짜 작가처럼 글을 쓰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빌리, 우연한 사건으로 알게 된 앨리스와의 만남, 암살 이후 벌어지는 진짜 이야기 등 모두 다섯 가지 에피소드를 순차적으로 하나로 묶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예전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거나, 약하게 느낀 정도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스티븐 킹이 소설의 얼개를 짜는 방식이 눈에 훤하게 보였다. 그건 나를 포함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이 작품의 얼개는 다른 작품보다 인위적이고,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빌리는 우연히 살인청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지만, 그가 매우 탁월한 솜씨를 보이면서 점차 몸값이 비싸진다. 그는 이제 살인청부의 세계에서 은퇴를 할 생각이었으나 일감을 주는 닉을 통해 이번 한 번만 하고 은퇴하라는 말을 듣는다. 마지막 한 번이고, 금액이 매우 커서 빌리는 내키지 않지만 일을 맡기로 결정한다. 빌리가 노리는 타겟이 법원 계단에 나타날 때까지 몇 달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빌리는 그 주변에서 평범한 이웃들과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사무용 건물 한 칸을 임대해 그곳에서 글을 쓰고, 먹고 자는 집을 임대해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생활인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스티븐 킹은 왜 빌리가 '작가'로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빌리가 '작가'의 모습으로 위장하게 되는 과정과 내용은 어쩌면 필연으로 보인다. 법원이 보이는 사무용 건물을 써야 하는데, 그 빌딩에 입주한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할 때, 빌리가 다른 전문직으로 일한 적이 없으므로, 가장 만만한 직업이 '작가'라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빌리를 '작가'로 위장한 다음, 스티븐 킹은 빌리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쓰도록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 빌리가 스스로 쓰는 자전적 이야기를 읽는다. 즉, 작가인 스티븐 킹이 빌리의 과거를 말하지 않고, 작중 인물인 빌리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형식이다. 빌리는 책은 꾸준히 읽는 사람이지만, 글은 한번도 써본 적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득히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쓰기는 정신 치료에서 매우 긍정적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은 여럿 있지만, 글쓰기의 힘은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빌리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글을 쓰지만, 그는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즉, 스티븐 킹은 주인공 빌리를 통해 빌리가 스스로 글을 쓰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하고, 그건 성공한다. 빌리의 과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행했다. 빌리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데, 그건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과 같다. 엄마는 남자 친구를 자주 바꾸고, 품성이 나쁜 남자 친구를 만나 삶이 시궁창 같으면서도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빌리의 여동생 캐시가 엄마의 남자 친구에게 맞아 죽는 장면을 보았고, 그가 불과 아홉 살에 여동생을 죽인 남자를 총으로 쏴죽인다. 엄마는 술을 마시고, 질 나쁜 남자를 만나 결국 마약가지 하면서, 빌리는 위탁 가정에 맡겨지고, 그는 그곳에서 줄곧 생활하다 해병대 입대한다. 빌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고, 불행한 기억만이 남았으며, 가족과의 행복, 즐거운 추억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빌리의 자전적 소설은 작품이 거의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가 쓴 소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며, 다만 실존하는 인물의 이름을 바꿨을 뿐이다. 빌리가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이해하지만, 글을 써본 적 없는 빌리가 꽤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빌리는 학교도 거의 다니지 않았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가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늘 책을 갖고 다니며, 시간을 내서 책을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책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었다. 이 책은 박찬욱 감독이 '박쥐'를 만들 때 모티프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빌리가 작품 속에서 자전적 소설을 쓸 때, 그 문장은 스티븐 킹의 문장이 아니라 빌리의 문장이므로 당연히 어설프고 미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앨리스는 빌리가 쓴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말하고, 좋아한다. 그건 적어도 빌리가 자기의 지난 삶을 거짓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장력이 부족해도 진솔함이 보이는 문장이라면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책은 400페이지 두 권인데, 1권에서 암살 사건이 끝나면서, 진짜 이야기는 암살이 아니라는 걸 독자는 알게 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2권에서는 암살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것도 짐작한다. 빌리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자전적 이야기는 1권에서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에 이어 해병대 입대, 이라크 파병과 전투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가 저격수로 발탁되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2권에서는 이라크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서 전우들이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빌리는 어릴 때는 물론, 전쟁 트라우마까지 겪으면서 용케 사회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우연한 사건으로 스무 살 아가씨 앨리스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서사이자, 빌리의 삶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빌리는 앨리스가 성폭행을 당하고 죽기 직전에 그녀를 구하는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앨리스가 참혹하게 죽은 여동생 캐시와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앨리스를 지키는 것이 죽은 여동생 캐시를 지키지 못한 자기의 나약함에 대한 보상이라고 무의식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계획한대로 암살은 성공했지만, 빌리는 자기에게 일감을 준 사람들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혼자만의 탈출 계획을 만들어 탈출한다. 빌리가 암살한 사람은 범죄자로, '죽어 마땅한' 놈이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빌리 역시 다른 암살자와 조직의 타겟이 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자기 목에 6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래선을 추적해 누가, 왜 자기를 죽이려는지 알아내는 것이 2권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때 이 모든 과정을 우연히 만난 앨리스와 함께 하면서, 빌리와 앨리스의 우정은 깊어지고, 앨리스를 지키려는 빌리의 마음은 오빠나 아버지 같은 심정이 된다. 책 표지에 '하드보일드 누아르 스릴러'라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살인청부를 하는 빌리는 '나쁜 놈만 죽인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누아르'라고 할 만한 내용은 빌리가 죽인 범죄자와 관련 있는 언론 재벌 클라크와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 뿐이다. 빌리는 '하드보일드'하지도 않고, 작품의 내용은 '스릴러'하고도 거리가 있다. 빌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과거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 스티븐 킹이 가장 잘 하는 묘사인데, 그가 우연히 만난 앨리스에게 자기의 모든 걸 주는 과정에서, 스티븐 킹이 늘 보여주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입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빌리는 아동성폭행, 아동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에 관해서는 일말의 용서가 없다. 그의 작품에서 이런 내용이 나오면 반드시 철저하게 응징, 복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불행한 여성이 자기의 현실을 극복하고, 용기를 갖게 되는 장면, 여성이지만,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독립하려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빌리는 자기의 과거를 스스로 지움으로써, 앨리스가 새롭게 출발하는 삶을 응원한다. 빌리가 쓴 자전적 소설은 빌리의 부재(不在)를 대신하는 그의 실체이며, 앨리스는 빌리가 쓴 소설을 이어받아 자기 이야기를 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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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 리처드 바크만
로드워크 – 리처드 바크만 이제 막 마흔 살이 지난 도스는 세탁물 공장의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백인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았다. 스무 살에 아내 매리를 만나 결혼했고, 부부 사이는 원만하며, 도시 외곽에 ‘내 집’을 갖고 있는 백인 중산층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사는 배경은 1973년과 1974년으로, 이때 미국은 몇 가지 중요한 외부적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시끄러운 상황이다. 이미 베트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었고, 의미 없는 전쟁에 미국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개죽음을 시킨다는 비판 여론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런 시국에 1972년 11월 7일, 미국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닉슨이 선거에서 이겨 미국대통령이 되었다. 이때 닉슨은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재선이었으며, 1974년 8월 9일 대통령 자리에서 자진 사임하는 것으로 불명예 퇴진한다. ‘워터게이트’로 알려진 이 사건은 닉슨의 측근들이 꾸민 ‘재선 공작’의 일부가 들통나면서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정치 사건이었다. 또한 1973년에서 1974년 기간에 중동에서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적으로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이 전쟁은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뺐긴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되찾는 전쟁이었지만 결론은 다시 이스라엘이 이긴 전쟁이 되었다.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이 있었고,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중동 국가들(이집트, 시리아) 뒤에는 쏘련, 북한, 동독, 파키스탄, 레바논 등이 지원했다. 전쟁의 수단 가운데 하나로, 원유 가격을 인상하고, 원유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중동 국가들(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가입 국가)의 결의로 오일 쇼크가 시작되었고, 원유 가격은 약 3배 정도 폭등했다. ‘오일 쇼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미국과 유럽이었으며, 이 작품에서도 미국 사회에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내용이 나온다. 도스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그가 사는 마을이 새로 공사하는 고속도로에 편입되면서 사라질 처지가 되면서다. 주 정부는 동쪽에서 서쪽을 잇는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면서 도스가 사는 마을,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의 크지 않은 마을을 밀어버리고, 그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도록 설계했다. 이미 마을 주민 대부분은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났으며, 도스를 포함해 몇 집만 남았고, 그들도 곧 마을을 떠날 예정이었다. 오직 도스만이 마을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스의 아내는 당연히 보상금을 받고 다른 마을에 집을 매입해 떠나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도스는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속인다. 고속도로 신설 공사는 도스의 마을은 물론 그가 다니는 직장까지 영향을 끼치는데, 세탁 공장도 고속도로 공사 범위에 있어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스는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부지를 알아보고, 매입 결정을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공장부지 매입 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결국 스스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20년을 애정을 갖고 다닌 회사를 스스로 떠난다. 이 소설은 나에게 매우 ‘개인적인’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장치가 있는데, 도스가 자기 집에 집착하면서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심리, 자기 집이 철거회사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고 시에서 파견한 용역들에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보면서 느낀 슬픔과 분노가 되살아났다. 도스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다. 그는 보상금을 받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며, 다니던 직장에서도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부지를 매입해 중간관리자로 일하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도스의 내면에서 그를 파멸로 이끄는 힘이 있었고, 그 정체가 정확히 무언지 알지 못하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앞으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는다. 도스는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의 삶에 발목을 잡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도스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 것도, 그가 지키고 싶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과거의 추억이 된 슬픔과 아픔이지만. 도스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도스와 매리 부부지만, 그들의 과거에는 자식을 잃은 깊은 슬픔과 아픔이 있었다. 도스의 행동이 때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도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의 내면이 붕괴되는 과정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도스의 일방적 행동으로 삶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매리는 도스를 떠나고, 결국 이혼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도스가 계획한 일련의 과정이라고 본다. 매리는 아직 삼십대 후반의 매력있는 여성이고,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도스는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떠나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도스는 매리를 실망시키고, 매리가 자기를 떠나도록 ‘연기’한다. 물론, 도스는 매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지만, 도스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 만큼, 매리를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는 갈등을 감수한다. 집을 철거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공사업체에서 보낸 변호사가 최후 통첩을 하러 방문한다. 도스는 보상금을 받겠다고 말하고, 그 돈을 받아 절반은 이혼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 매리에게 보내고, 절반은 자선 단체와 그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젊은 여성 올리비아에게 보낸다. 도스가 스스로 파멸을 선택한 심리적 배경에는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말고도, 그가 20년을 일한 회사가 주인이 바뀌면서 달라진 환경에도 있었다. 도스는 스무 살 무렵부터 이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고, 그때는 이 세탁 공장이 가족기업으로, 사장인 타킹턴 씨가 운영했으며, 나중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회사를 운영했다. 도스는 이 회사에 다니며, 회사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했고,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회사에 복귀해서 관리자가 되었다. 도스에게 이 회사는 단순한 ‘직장’의 의미를 넘어, 하나의 ‘가족’으로 여겨지는 존재였다. 도스의 마음을 흔든 또 하나의 사건은, 그와 오래 함께 일한 조지 워커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좋은 동료를 잃은 슬픔도 깊었지만, 조지 워커의 형도 자살하고 말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우연이지만, 도스가 쇼핑몰에서 본 한 여성이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눈앞에서 사망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도스가 파멸을 선택하는데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즉, 도스의 마지막 행동까지는 매우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행동을 이끌어낸 계기들은 어린 아들의 죽음, 아들과 추억이 얽힌 집의 철거, 서로 인사하며 지내던 이웃과 헤어짐, 회사의 이주와 경영진의 냉정함, 형제처럼 친한 동료의 죽음 등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다. 이 소설은 공포, 호러, 스릴러 장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도스의 내면에서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가 도스의 분열적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도스의 정신은 멀쩡하고, 자신이 지금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도스가 파멸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공포이며, 평범한 한 사람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삶의 과정에서 겪는 슬픔과 고통이 바로 공포라는 걸 소설은 말하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옳지 않은 일을 보면서 모른체하며 넘어갈 수도 있지만, 도스처럼 옳지 않은 일을 바로 잡으려 자기 목숨을 던지는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 도스는 마을을 파괴하고 지나가는 고속도로 현장을 테러한다. 화염병을 만들어 장비와 컨테이너에 불을 지르고, 자기 집에 폭탄을 설치하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 한다. 이런 시도는 성공하고,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지만,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고속도로를 만들기로 결정한 건 주 정부였고, 국가(주 정부)권력은 늘 개인을 압도하고, 개인의 삶을 파괴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소설을 쓴 작가 리처드 바크만은 미국 소설가로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는데, 미국 문단과 독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 서점 직원 스티브 브라운이 스티븐 킹의 소설 Voives와 리처드 바크만의 소설 Thinner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리처드 바크만’이 ‘스티븐 킹’일 거라는 강한 의심을 한다. 스티브는 리처드 바크만과 스티븐 킹의 저작권 대리인 같다는 걸 확인하고 리처드 바크만의 책을 펴낸 출판사에 확인해 결국 리처드 바크만이 스티븐 킹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밝힌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73년, 1974년은 스티븐 킹의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던 때와 같아서, 스티븐 킹은 ‘인간의 고통’, ‘개인의 고통’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였고, 이런 생각을 구현한 작품이 ‘로드워크’다. 스티븐 킹 소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며 정밀한 묘사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표현하는 심리 묘사가 그것이다. 이 두 방식은 픽션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현실감을 증폭하며,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한다. 마치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사실성, 인물이 가진 개성과 자연스러운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고 긍정하는 힘을 갖게 하는 심리 묘사에서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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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 스티븐 킹
나중에 - 스티븐 킹 혼령을 보고, 혼령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어떤 경험을 할까. 스티븐 킹은 이런 질문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 제이미는 서너 살 때 이미 혼령을 보기 시작한다. 그는 너무 어려서 사람과 혼령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를 실제와 똑같이 보고, 대화까지 할 수 있다. 이 능력을 엄마인 티아가 알게 된 건 제이미가 여섯 살 무렵이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작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아들의 능력을 인정한다. 제이미 엄마 티아는 저작권 대리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는 업체여서 넉넉한 생활을 한다. 외삼촌(제이미 엄마의 오빠)이 하던 저작권 대리 사업을 물려받아 꾸준히 성과를 내며 넉넉한 삶을 살던 티아와 제이미는 그러나 투자 사기를 당하면서 가진 재산을 모두 잃게 되고 한동안 어려운 생활을 한다. 제이미의 엄마 티아는 리즈와 연인 사이다. 엄마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제이미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리즈는 경찰이지만 마약 운반을 하는 부패한 경찰이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티아나 리즈 모두 2008년 모기지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고, 티아보다 리즈의 가족이 더 큰 피해를 당해 리즈가 경찰이면서도 마약을 운반하는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계기가 된다. 제이미는 혼령을 보는 특별한 재능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건에 말려들면서 끔찍한 경험을 한다. 물론 엄마를 위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작가의 혼령을 만나 쓰다 만 소설의 내용을 받아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끔찍한 경험을 더 많이 한다. 더구나 엄마의 연인이었던 경찰 리즈에게 납치당하면서 생명이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하는데, 기지를 발휘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다. 제이미의 도움으로 엄마 티아는 저작권 대리업이 다시 좋아지고, 수입이 많아지면서 다시 안정적 생활을 하게 된다. 제이미의 외삼촌이자 엄마의 오빠인 해리가 요양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요양원에 간 제이미는 혼령 해리를 만난다. 그리고 묻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한다. 삼촌, 내 아빠가 누군지 아세요? 이 소설은 제이미의 성장소설이다. 제이미의 독백으로 진행하고, 제이미가 여섯 살 무렵부터 막 성년이 되는 열 여덟 살까지의 이야기 가운데 삶에서 중요한 경험을 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제이미는 이 이야기를 '공포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어린 제이미가 외부모인 엄마와 둘이 살면서 겪은 인생 이야기이면서 결코 바라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제이미의 슬픈 탄생과 성장의 이야기다. 제이미는 엄마와 비교적 넉넉하고 행복한 삶을 살며 성장하지만, 그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즉,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놓인 딜레마와 같은, 결코 돌이킬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낙인을 가슴에 찍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제이미는 테리올트의 혼령이 사라지지 않고 자기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게 된다. 폭탄을 건물에 설치해 많은 사람을 해치던 폭파범 테리올트는 정체가 드러나면서 자살하는데, 제이미는 형사 리즈의 강압으로 테리올트의 혼령을 보게 되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설치한 폭탄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했지만, 정작 테리올트의 혼령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제이미의 뒤를 따라다니며 괴롭히자 제이미는 존경하는 버켓 교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는다. 제이미는 테리올트의 혼령이 나타나자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가 그 혼령을 끌어안는다. 혼령을 지배하는 힘은 실체가 없었지만 마치 지구 밖 멀고 먼 외계에서 온 존재로 여겨진다. 그동안 제이미가 봤던 혼령들은 제이미가 묻는 말에 진실을 말했으며, 공격적이지 않고, 일주일쯤이면 혼령의 존재가 사라지지만, 테리올트의 혼령 내부에 또 다른 무언가 존재하고 있어 테리올트는 시간이 많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았다. 제이미가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달려들자 그 존재는 오히려 겁을 먹고 도망한다. 제이미는 그 존재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제이미가 부를 때면 언제든 나타나기로 약속한다. 버켓 교수는 제이미에게 말하길,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존재를 다시 불러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존재는 무얼까. 단순히 외계에서 온 불가항력의 존재일까. 그건 제이미의 정신 세계로 읽힌다. 아버지 없이 자란 제이미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없는 정신적 허기를 느낀다. 아이에게 엄마는 하나의 우주, 절대 세계이면서 온전한 존재다. 그런 엄마가 로즈라는 동성의 연인과 사귀고, 사랑을 할 때, 제이미는 질투, 공포, 외로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제이미는 성장 과정에서 느낀 이 부정적 감정에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가 온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접어드는 질풍노도의 시기, 정신적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면서도 쉽지 않은, 부모를 뛰어넘어 자기의 정체성과 자아의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시기가 닥치고, 제이미가 겪은 혼령과의 대화나 보이지 않는 끔찍한 존재와의 사투는 제이미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독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제이미가 알게된 출생의 비밀로 이 소설은 공포에서 잔혹극으로 변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의 삶과 존재를 규정하거나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다. 제이미가 알게 된 비밀은 더욱 그 자신은 물론,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심각한 비밀이었고, 그걸 아는 순간 제이미의 삶은 근본에서 흔들린다. 그가 혼령을 보고, 혼령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그의 삶을 뒤흔든 것처럼. 그 둘은 결국 같은 의미이며, 자기 정체성을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