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18(목)
 

제목 : 그림자 소묘

작가 : 김 인

출판 : 새만화책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집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제작지원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출판한 작품인데,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대학에서 언어학과 회화를 공부했고, 서울애니메이션만화가 전문 과정을 수료했고, 2003년 제작지원공모에 당선되어 이 작품이 나왔다. 그는 만화가가 될 생각이 어려서는 없었지만, 김혜린의 '비천무'를 읽고 만화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20대 초반에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첫 작품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성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보통의 만화와 다르다. 만화의 대부분은 잉크와 펜으로 먹선을 그리는데, 이 작품은 콘테와 붓으로 그렸다. 작가는 2년 동안 이 작품을 그렸는데, 그래서인지 한컷 한컷이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그래픽노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가를 따진다면, 당연 그림이다. '그래픽'+'노블'이란 말처럼, 그래픽이 노블에 선행한다. 아주 단순한 예만 들어도 알 수 있는데, 그래픽노블 가운데 '도착'이라는 작품이 있다. '숀 텐'이 그린 작품인데, 여기에는 문자가 없다. '이야기'는 있지만, '문자'가 없고, 오로지 그림으로만 완성되는 작품도 그래픽노블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은 그래픽노블을 보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그림은 뚜렷한 개성을 보인다. 그래픽노블에서 흑백 그림은 무수히 많은데, 흑백 그림이라도 다 같은 흑백이 아니라는 걸 이 그림은 보여준다. 연필로만 그린 그래픽노블도 많다. 연필의 검은 선이 명암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잉크의 먹이 완전한 검은색이라면, 같은 검은색이라도 붓으로 표현하는 검은색의 농담은 연한 회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단계의 무채색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콘테의 질감이 흑백의 단조로움을 상쇄하며 깊은 흑백의 명암을 표현하고, 붓선의 자유로움과 붓으로 그린 먹선의 다양함이 흑백의 멋을 잘 드러내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흑백이지만 이 작품은 '빛'을 그리고 있다. 즉 깊거나 얕은 어둠을 드러내는 방식은 곧 빛의 밝기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작품에서도 '빛은 이미 그림자를 포함하고 있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화실에서 정물화를 그릴 때, 그림자가 없는 그림은 깊이가 없다는 화실 선생님의 말이다.

이야기는 두 편의 단편이지만, 두 편은 독립된 이야기면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시골에 살던 주희는 이모와 함께 서울에 살게 된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주희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 서울에서 공부하며 그림 공부도 함께 하고 싶다. 큰 길에 있는 크고 유명한 화실을 마다하고 골목에 있는 작은 화실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 화실 앞에 해바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의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살던 주희는 서울의 복잡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길거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길을 잃곤 한다. 자기만의 그림 지도를 그려 길을 잃지 않게 되고, 그 그림은 거리에 있는 나무와 화분과 담장의 나무와 꽃을 그린 것이다. 살아 있는 식물을 그림으로 그려 지도를 만든 주희의 마음은 도시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거리를 고향에서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주인공은 따돌림을 당한다기보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다. 점심 때 도시락도 같이 먹자는 친구들의 말을 거절하고, 체육시간에는 다른 친구들이 상대를 하지 않아 외톨이가 된다. 친구도 없고, 늘 혼자 다닌다. 그러다 교실에서 전학 온 주희를 발견하고,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전편에서 주희가 길거리에서 자동차와 부딪칠 뻔한 일이 있는데, 그때 스케치북에서 그림 한 장이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고, 그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본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주희는 그 아이를 눈여겨 보았고, 교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주희는 그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고, 주인공은 주희가 자신을 알아본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자신에게만 그림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주희를 만남으로써 자신에게도 그림자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다.

두 여학생의 만남은 도시적이지 않다. 주희가 갖고 있는 풍요로운 감성과 따뜻한 마음은 삭막한 도시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의 구수한 사투리는 도시의 삭막함과 다른 시골의 정서를 표현한다. 그림자가 없고,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던 주인공도 주희를 만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우정은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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