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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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층간 소음 한국은 독특한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나라다. 집단 주거시설인 아파트와 공동주택이 전체 주택의 77%에 이를 정도로 공동주택의 비율이 높다. 아파트 비중이 높은 이유는 1) 인구의 도시 집중화, 2) 주거 공간의 협소화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데, 여기에 한국에서 유독 특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자산 증식 가치'로써의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고 심각한 현상이며, 부동산 가격의 폭등, 폭락은 집권 여당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힐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한국에서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부동산은 단 한 번도 가치가 하락한 적 없는 유일한 자산 가치여서 '부동산 신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부는 물가 인상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은 통제하는데 실패했다. 물가 인상과 임금 인상율보다 훨씬 높은 상승율로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면서, 주택 특히 '아파트'는 재산 증식 수단 가운데 가장 독보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주택 공급 공약은 모든 정부에서 핵심 공약으로 자리잡았고, 1990년 이후 해마다 10만 가구 이상 아파트를 공급했지만, 여전히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만 해도 몇억 원은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건,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아파트) 정책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렇게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높은 경쟁을 통해 겨우 입주한 사람들의 주거 만족도가 입주 전보다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가족이라면 당연히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겠지만, 아파트의 여러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부가 서비스 등의 기능은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주지만, 그런 모든 장점을 한번에 상쇄하는 것이 바로 '층간 소음'이다. 층간 소음은 두 가지 심각한 사회 현상을 드러낸다. 실제 층간 소음으로 인해 아파트 주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과, 층간 소음을 해결하지 못한 부실 시공이 그것이다. 결론부터 보면, 층간 소음은 부실 시공의 결과다. 그 결과로 인해 입주민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고, 갈등이 심각해지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전국에 있는 수백만 채의 아파트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층간 소음 문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적어도 한번 이상은 겪어 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점이다. 평당 1천만 원부터 5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 소음으로 전전긍긍하고, 늘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다녀야 하며, 어린 자녀가 마음 놓고 걷지도 못하게 막아야 하는 불안함으로 생활하는 걸 참고만 있다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 그러다 아래, 위층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기라도 하면 사소한 다툼이 점차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오해와 보복 심리가 발동하면서, 단지 아파트 분양을 받거나 매입하거나, 전월세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일 뿐이 이웃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만다. 층간 소음이 발생하도록 시공한 건설업체의 부실 시공도 문제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부의 방임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아파트를 짓는 업체의 시공 과정을 꼼꼼히 감리, 감시하고, 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건축 규격을 엄격하게 만들어, 건설회사가 그 규격을 지키도록 했다면 수많은 아파트 입주민이 고통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층간 소음은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이윤 추구의 극대화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따라서 층간 소음 문제는 아파트 입주민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파트 사는 이웃끼리 얼굴 붉히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층간 소음의 본질적 문제에 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다루는 기관, 단체가 거의 없는 것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원인이다. 층간 소음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경우도 있고, 신축 아파트들은 과거 아파트보다는 층간 소음을 없애려는 정부의 규제와 과학적 방법을 도입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하다. 층간 소음을 확실하게 없애려면 기존의 아파트 구조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바로 건축 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건설회사의 이윤이 줄어들게 되므로 건설회사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신공법을 빠르게 도입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각 층의 바닥(천정) 두께를 2005년부터 210mm로 의무화하고 있지만, 층간 소음을 보다 확실히 잡으려면 두께가 300mm는 되어야 하며, 여기에 별도로 완충재를 설치해야 한다. 완충재 위에 다시 기포 콘크리트 40mm가 깔리고, 그 위에 온수 파이프 배관과 몰탈 마감, 원목 바닥 마감재로 마무리한다. 오래 된 아파트는 바닥(천정) 콘크리트 두께도 얇고, 완충재도 설치하지 않아 층간 소음이 더 심한데, 이때 천정에서 흡음재를 설치해 층간 소음을 줄이는 기술도 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힘을 모아 정부와 건설회사를 압박할 때, 층간 소음 문제는 보다 빨리 해결될 것이다. 층간 소음은 구조적 문제지만, 당장 아래, 위층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날마다 부닥치는 심각한 일상이다. 정부의 해당 부처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건설회사와 함께 층간 소음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2-02-06
  • '생수'의 상품화 문제
    '생수'의 상품화 문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어리석은 양반을 놀리는 풍자의 재미라도 있지만, 인류 공동의 소유물인 지하수를 특정 기업이 뽑아 올려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이윤을 가져간다는 사실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능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상품화'는 자본의 유전자와 같은 것이고, '상품화'의 목적은 '이윤'에 있다. 즉, 자본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 - 물질, 서비스, 추상적 가치 등 - 을 '상품'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말은, 봉건제가 끝장난 원인도 기술의 발달에 있다는 뜻이다. 즉,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탄생하면서 그동안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던 섬유 가공 산업이 기계를 활용한 반자동화, 대량 가공화하면서부터 본격 '자본주의 체제'를 갖췄다고 경제학자들은 설명한다. 수공업 노동자들은 '길드'를 만들어 자영업자의 시작이 되고, 농촌에서 귀족 영주의 땅에 농사를 지어먹거나 양을 치던 농부 가족들은 '강제로' 도시로 이주해 공장노동자가 된다. 귀족 영주들은 더 많은 양을 키워 양털을 판매하는 한편, 스스로 면직 공장을 지어 섬유를 생산하는 자본가로 변신한다. '자본주의'는 몇 가지 현상이 이상적으로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발생한 특이한 현상인데,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관찰하면서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으로 발생하는 사회 체제라고 규정했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18세기는 유럽 뿐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19세기 시작 단계에서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이었지만 불과 100년 만에 두 배인 20억 명이 된다. 이것은 과거 1천 년 즉, 서기 1000년에서 서기 1800년 사이에 증가한 인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많은 숫자였다. 인구 증가가 갖는 의미는 거주 집단의 밀집, 대형화, 소비의 대량화로 특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거나 상업이 활발한 장소로 모이는데,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면 마치 원심력을 가진 것처럼, 도시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렇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 마침 '증기 기관'이 발명된 것이다. 기계, 기술의 발달은 18세기 이전부터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으나, '증기 기관'의 발명과 실용화는 '질적 전환'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다. 같은 시기에, 석탄이 주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탄광 개발과 탄광 노동자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증기 기관의 발명, 석탄의 주 연료화 같은 중요한 사회 현상이 우연히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기술 문명의 발달은 아주 조금씩 누적되어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도약하게 되는데, 증기 기관의 발명이 자본주의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전부터 자본주의 맹아는 싹 트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근원적 질문으로 돌아가서, '석탄'도 인류 공동의 자원인데 왜 소수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주고 캐낸 석탄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독차지하는 것일까, 질문할 수 있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적 폭력 - 전쟁, 식민지, 약탈, 노예 매매 등 - 으로 자본을 축적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나면 제조, 교역, 상업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이때 자본(가)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데, 유럽에서 봉건제 당시에 이미 왕족과 귀족, 종교 집단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으나,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문명이 충분히 열리지 않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개화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자본의 구성과 함께 '인신의 자유'가 있었다. 즉, 농노로 묶여 있던 민중의 처지가 자유로워지면서 '노동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는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전이었고, 자본가의 출현은 귀족, 부르주아, 길드의 자영업자, 상인 등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자본'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책을 썼다. '노동 시간'에서 이윤이 창출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때는 이미 수많은 자본가들이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한편,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경쟁자인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봉건왕조의 소멸과 근대국가의 탄생 사이에서 '자본가'가 출현하고, 이들은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먹고, 입고, 자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물론이고, 석탄, 기차, 선박, 도로 같은 국가 기간 산업에 해당하는 분야에서도 '자본'은 눈부시게 활약했다. '자본'은 국가와 다르게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며, 생산성이 높았고, 자체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상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양면성은 인류의 삶을 빠르게 향상시켰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있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지구 자원을 파괴하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추구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가 본격 가동하고 200여년 만에 지구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20세기 끝까지, 자본은 무한 경쟁,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최선이라고 주장했고, 대중 역시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혜택을 생활에서 느끼며, 밀려드는 상품의 물결을 환영했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빠르게 뿌리내리고,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강력한 동력은 '욕망의 자유'와 '경쟁의 보편화'라는 혁명적 시대 상황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자본주의의 선봉에 선 부르주아는 봉건제를 깨뜨리고, 농노를 해방하며, 경제 체제를 바꾼 혁명적 역할을 했다고 마르크스는 이들 부르주아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쏘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거나 경제 분야만큼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고도화하지 못한 상태 즉 봉건적 환경과 낮은 생산성,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제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려면 내적 모순이 폭발하기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 혁명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모순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봉건제 내부에서 발아해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봉건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면서 본격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에 불과하다. 인류가 하나의 체제를 뛰어 넘는 시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짧아지고 있지만, 봉건제 1천년에 비하면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한동안 인류를 지배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다시 '생수'로 돌아와서, 자본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기준은 '이윤'에 있다. 물과 공기처럼 인류 생존의 절대 요소를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아무리 물질의 화신인 자본이라 해도 정도를 넘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식수'를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근대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해야 할 의무다. 정부는 국민의 의식주를 기본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국가는 부여된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다.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제약이 있기도 하고,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정부와 자본(가) 집단의 힘겨루기 또는 담합의 결과에 따라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동차 도로를 건설할 때 정부는 국가예산만으로 하지 않고 민간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민간자본이 들어간 자동차 도로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통행료'를 부여하게 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그 도로를 다니면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예산을 적게 들이면서 도로 건설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민간자본의 투입을 허용하는 것인데, 그로 인해 지분을 투자한 민간자본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보장받게 된다. 어느 단계에서는 이렇게 정부와 민간자본이 함께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민간자본 참여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정부(권력)와 자본의 결탁일 확률이 높다. 생수의 판매도 같은 논리로 볼 수 있다. 식수가 매우 부족한 나라에서는 정부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 국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때 모든 가정에 식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일정 기간 대량으로 물을 공급하는 관정을 만들어 그 물을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생수'의 상품화는 식수의 오염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건 다시 정부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함에도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국민이 충분히 믿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안)하면서 불신을 자아낸다. 자본은 정부의 무능 또는 국민의 불신을 파고 들면서 생존의 절대요소인 '물'을 상품화한다. 이와 똑같은 논리로 '공기'도 상품화했다. 상식 있는 정부라면 자본이 획책하는 '물의 상품화'를 승인하지 않겠지만, 자본(가)은 한 국가의 체제를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의 총체여서 국가(정부)라 해도 자본의 공격을 방어하기 힘겨운데, 대개의 국가(정부)는 '자본위원회'(마르크스)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 권력은 자본(가)에 의해 장악된 경우가 많아 '상품화'의 파상적 공세를 막기 어렵다. '상품화'는 자본의 일방적 행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을 구매, 수용하는 소비자 대중이 존재하고, 그들이 '상품'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품화'는 완결된다. 이때 자본(기업)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마케팅'을 통해 대중에게 접근한다. 자본(기업)의 마케팅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국가권력이 인민을 향해 선전, 선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마케팅하고, 국가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선전, 선동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세계 생수 시장은 100조원이 넘었으며, 물의 양은 3,857억 리터가 넘는다. 자본(기업)은 물이 부족한 나라, 상수도 시설이 미약한 나라 등으로 진출하는 한편, 상수도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정부에서도 상수도와 차별화 전략을 통해 '건강한 물', '안전한 물'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자본(기업)은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의무를 가로 채, 생존의 절대요소이자 공공재인 '물'을 상품화함으로써,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것은 물론, 물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의 과다한 발생으로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민(대중)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싸고 품질 좋은 식수를 마시지 않고, 훨씬 비싼 금액을 지불하며 '생수'를 사 먹게 되면서 필요하지 않은 지출이 발생하고, '생수'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가해자가 된다. '생수'의 상품화는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 인정되어야 하며, 당위성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거의 대부분 '생수'가 아닌, 정부가 공급하는 상수도를 마실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자, 지구 환경을 지키는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본(기업)이 물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올리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상황이며, 오직 자본(가)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위일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12-31
  • 손석희를 떠나보내며
    손석희를 떠나보내며 한동안 칩거했던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오늘 MBC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앞으로도 '사장'에 준하는 직책으로 '순회특파원'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다고 하니, '특파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를 두루 돌아볼 예정으로 보인다. 오랜 동안 한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손꼽히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손석희는 과거 MBC의 언론노조에서 언론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의 선두에 섰던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손석희 씨를 알게 된 이후-1990년 무렵부터-줄곧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의 언론활동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는 '시선집중',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진행자였으며, 언론인의 귀감이자, 모범이고, 전범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손석희가 MBC를 떠나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그의 이적을 두고 사람들은 설왕설래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훌륭하게 JTBC에서 뉴스는 성공적이었고, 보도 내용도 중립을 유지하며, 바람직한 언론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끝날 때까지, 손석희와 JTBC는 한국의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서 그나마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손석희와 JTBC는 촛불시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손석희 개인도 크고 작은 스캔들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그때문인지 JTBC의 보도 내용도 점차 우려스러운 형태로 변질되어갔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되, 어떻게 변하는지, 중심을 잃지 않았는지, 시류에 영합하거나, 영혼이 타락했는지, 고루하거나 보수적으로 바뀌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하며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론인 손석희'를 그동안 봤을 뿐이고, '개인 손석희'에 관해서는 거의 모른다. '개인 손석희'는 후배 언론인과 술을 마시다 싸우고, 성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의 협박을 받고 돈을 송금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손석희가 과거와 달리 수구 꼴통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손석희라는 강력한 사회적 힘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영향력을 사회와 정의, 진보를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에 결정적 한방을 날렸지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당하는 박해와 수모에 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오히려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물결 위에 잠시 나타나는 물방울'일 수도 있고, 물결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가 끝나면 영웅도, 물방울도, 나뭇잎도 사라지게 된다. 손석희는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과 함께 타올랐다 사라지는 존재였다. 거기까지가 손석희의 사회적, 역사적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손석희는 여전히 JTBC에 몸담고 있으며, 월급을 받으며 세계여행을 할 것이고, 돌아와서 책을 쓰고, 대학강단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손석희는 어쩌면 '유시민'을 롤모델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유시민도 강하면 부러진다는 생각을 나이들면서 하게 된 사람이다. 유시민 같은 강성 운동권이었던 사람도,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손석희도 과거에는 언론 민주화 투쟁을 가열차게 했으나, 이제는 한국사회의 1% 기득권이 되었고, 세상이 더 이상 변하지 않아도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보수화한 것이다. 그런 손석희를 이제는 떠나보낸다. 그가 살았던 시대,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기였고, 민주화투쟁의 시기였으며, 경제가 발전하고,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경제적 발전이 중요하던 시기였다. 손석희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었으나 언론인이었고,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이름을 얻었으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그가 얻었던 크고 강한 이름을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쓰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깝지만,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마땅히 이해하게 된다. 이제 '개인' 손석희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시기 바란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체스코 교황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에 매우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9일까지니까, 지금부터 꼭 6개월 남았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공개했다.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시도한 바 있으며, 이때 미국과 중국이 반대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현재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전’과 관련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종전 선언’을 해도 남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종전’은 남북한 관계에 상징적 의미와 함께 평화 협정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종전 선언’과 관련해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 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1 ‘종전 선언’의 효과 두 가지는, 1) 남북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고, 2)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임기 말까지 지속되어 레임덕 현상이 사라지는 것, 3) 종전과 북한 문제에 관한 프레임을 민주당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1)의 경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관한 깊은 논의를 한 바 있고, 남북한의 기본 인식을 확인했다. 즉, 남북한은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남북한 교류의 필요성을 공감했으며, 남북한이 평화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문재인·김정은 두 수뇌의 회담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것은 미국 국내의 정치 상황 변화 –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실패 – 와 미국 매파의 강경한 대북 입장의 고수, 한국 내부의 보수 진영에서 일어나는 반발 그리고 일본의 악의적이고 끈질긴 남북한 대화, 교류 반대 로비 등으로 지금까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많이 늦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지금까지 남북문제의 연속선에서 중요한 화두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고, 실질적 효과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차기 정부-이재명 정부-에서 ‘종전 선언’ 카드를 이어받아 실질적 결실을 맺도록 포석을 까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의 경우, ‘종전 선언’ 카드가 아니어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확률이 매우 높다. ‘종전 선언’은 레임덕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영향이 크고 효과 있는 대외 정책이다. 현 정부에서 ‘종전 선언’의 토대를 착실하게 다지는 것은, 다음 민주당 정부(이재명 정부)가 대북 정책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3)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남북문제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 북한과 관련한 의제, 논의, 협의, 선언, 뉴스 등이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로 북한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북한이 ‘한민족’이고, 함께 살아야 할 겨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노인 세대는 북한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고, 청년 세대는 북한에 무관심하거나 막연히 싫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북한에 관해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 정부에서 북한과 관련한 사업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는 ‘북한 바로 알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할 때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한 국민이 직접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2 ‘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정리하면 큰틀에서 다음과 같다. 1) 문재인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그 지지집단과 지지자들, 2) 반공 이념에 사로잡혀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도 반대하는 반공주의 강경파들, 3) ‘종전 선언’을 결사반대하는 일본과 일본을 지지하는 국내 친일매국노들, 4) 무조건 북한을 찬양하면서 북한의 무력을 신봉하는 정신나간 NL 멍청이들. 여기에서 1), 2), 3)의 집단은 교집합이 많아서 대부분 중복된 집단과 개체들이다. 즉, ‘국민의힘’은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함께 북한과의 대립, 갈등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비밀로 접촉해 북한 쪽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는 음모를 꾸몄는데, 권력을 차지하려 그들이 규정한 ‘적’과 내통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악랄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국민의힘’은 통일과 남북 교류를 반대하고, 북한과의 갈등과 긴장이 유지되길 바라는 반통일세력으로, ‘종전 선언’ 역시 악착같이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은 50대 이후의 구세대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 시대에 짙은 향수를 품고 있는 집단이며, 전쟁의 공포, 보릿고개, 새마을운동 같은 전근대 국민국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세대로, 이성과 논리, 합리성에 근거해 남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보다는 감정, 감성, 경험적 판단으로 북한과의 접점을 거부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이들 가운데는 전쟁(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하며, 설령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전쟁에 준하는 공포와 고통을 겪은 세대여서, 북한에 대한 근원적, 원초적 공포와 증오를 품고 있다. 여기에 1960년, 4.19혁명 이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공포정치를 한 것도 이들이 북한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다. 전후 20년 사이(1951-1971) 태어난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에 관한 이념을 주입 당했으며, 북한을 괴물로 만들어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키우도록 교육받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이하에 불과했고,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 노동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산화 이후라고 할 정도로 박정희 독재의 폭력은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짓눌렀다.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의 주역들 역시 지식인 사회에서 시작했으며,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운동도 지식인들이 현장으로 뛰어들면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즉, 절대다수의 민중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폭압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생존을 위해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은 독재 권력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북한을 증오하는 교육만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50대 이후 세대는 북한의 실체를 모른 채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앞서 있었고, 이런 자신감으로 한국을 깔보고, 무장, 고정 간첩을 자주 내려보냈다. 북한은 무장 부대를 한국에 침투시켜 남한 사회를 교란하고, 박정희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며, ‘무력 통일’에 관한 희망을 70년대까지 버리지 않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로 ‘반공’을 더욱 강하게 부르짖었고, ‘평화의 댐’ 같은 사기를 공공연히 벌인다.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은 외환 위기를 겪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지만, 이 어려움을 빠르게 극복하고 2000년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시민 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박정희에게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했고, 경제력으로만 보면, 1980년대 이후 한국은 비록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라는 정치적 한계 속에서도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무렵 세계 경제 흐름이 전반적으로 호황이었고, 수출주도 경제체제를 가진 한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기반으로 수출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70년대의 빈곤과 낙후함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바로 직전의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에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안타깝게 불발된 것에 이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특징과,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남북한의 미래에 관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무려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다.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역대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은 모두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국민의힘’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집단 가운데는 ‘개신교’ 집단도 있다. 이들은 철저한 반공 이념을 내세우며, 남북통일을 반대하고, 북한과 교류하는 것도 가로막는 수구 집단이다. 이들의 행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바탕이며, 한국 ‘보수’집단의 원천이자, 반개혁, 반민주주의 집단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다. 한국개신교의 뿌리는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로 시작한다고 봐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전파되는 경로와 과정을 보면, 평양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한말 이후 개신교는 주로 교육 사업을 통해 선교 활동을 한다. 초기 개신교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친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망해가는 국가가 할 수 없는 복지 사업을 펼쳤다. 19세기에 들어온 구교(카톨릭)가 조선 정부에 의해 강하게 박해당한 것과 비교하면, 개신교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의 주류 세력은 친일을 선택했고, 극히 일부 개신교도가 독립운동에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북쪽으로 쏘련군이 진주하고,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해 서로 다른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북쪽의 개신교 집단은 쏘련군과 김일성이 주도하는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북쪽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은 자신을 핍박한 쏘련군과 김일성 체제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고, ‘한국전쟁’은 개신교도들이 ‘반공’을 신념화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도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이 남한의 좌익,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고, 때려잡는데 가장 앞장섰다는 사실만 봐도, 북한 개신교도 집단이 품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도 ‘제주4.3항쟁’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고, 제주도민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주체였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이념 대립이 격렬해지고,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개신교 집단은 ‘기독교 정신’과는 반대로 국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집단이다. 지금까지도 개신교 단체는 한국전쟁 전후에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 만행에 관해 단 한 마디의 사죄를 한 적이 없는 것을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이때 대통령인 이승만도 개신교도였고, 경무부장 조병옥도 개신교도였다. 이들 극우 개신교 집단은 이후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독재정권을 미화, 찬양했고, 전두환 군부쿠데타를 지지하고 찬양했다. 또한 서울시와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공공연하게 천명한 이명박과 황교안도 개신교도였다. 지금 광화문에서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의 앞장에는 개신교 목사가 있고, 개신교도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50대 이후의 노인들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들쥐들처럼 쫓아다니고 있다. 4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자생적 북한 추종자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 대결이 격렬할수록 그에 반대하면서, 북한을 미화하고, 김일성을 우상으로 섬기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있었는데,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민족해방(NL)’그룹으로 표출되었다. 북한과 김일성을 추종하는 개인, 집단은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나갔고, 한국(남한)에서는 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과 평등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또한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인권 탄압, 노동자, 학생의 민주주의 운동을 폭력으로 짓밟은 행위, 북한을 그대로 따라 한 ‘새마을운동’ 같은 사이비 사회운동, 일부 자본가, 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이로운 경제 개발 계획 등 박정희에 대한 반감, 분노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는 반정부 투쟁의 한 방법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김일성의 존재를 우상화하는 방식은 공포의 존재(박정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대상(김일성)을 찾아 이상화하는 사회적, 집단 정신병의 하나다. 건강한 시민이라면,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피를 흘리며 싸울지라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북한(김일성)을 찬양하는 자는 자기가 사는 사회(남한)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다가갈 수 없는(이상적 사회) 북한과 김일성을 이상화하는 것으로 자기의 불안과 공포, 분노를 정당화한다. 북한을 찬양하는 자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전쟁에서 패한 이후, 남로당 계열의 공산주의자를 ‘미제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씌워 김일성이 모두 숙청했을 때도, 김일성이 옳다고 박수를 쳤다.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폐기하고, ‘주체사상’을 내걸었을 때도, 북한이 정통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봉건주의 국가로 퇴화하는 걸 보면서도, 무비판으로 북한을 찬양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무조건적 신앙’을 요구하는 종교의 신도와 같다. 종교, 신앙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신은 절대적 권위와 힘을 가진 존재이며, 아무 근거 없이 신의 말을 믿고, 신의 권위에 복종한다. 북한(김일성)을 추종하는 자들은 맹목의 종교 미신을 믿는 자들과 똑같은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군사력은 세계6위, 국가경제력은 세계10위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북한이 한국(남한)을 무력으로 해방 시킬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 선언’이 의미 없다고 주장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이미 실질적 ‘종전’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군사력으로 28위에 불과해 재래식 무기로 한국군과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준이다. 남북한의 경제, 군사력 수준을 객관으로 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지한 인간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것이다.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5 ‘종전’은 남북한의 뿌리 깊은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었던 ‘한국전쟁’을 끝내는 상징적 행위다. ‘한국전쟁’도 단지 남북한의 이념 문제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하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쏘련과 중국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 팽팽하게 대립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쟁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충돌 지점이자, ‘냉전’이 실제 전쟁으로 표출한 이념 전쟁이기도 했다.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쏘련, 중국, 일본과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명백히 강대국의 대리전쟁이자 동북아 패권 전쟁이었으며, 자칫 3차 세계전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심각한 전쟁이었다. 실제 미군을 포함해 UN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는 무려 25개국에 이른다. ‘한국전쟁’ 발발 원인은, 김일성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게 발단이었지만,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쏘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나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고,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다. 김일성은 남한을 공격하면 남한 내부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해 남한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북한군과 협력하여 남한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이승만은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지식인, 학생, 시민을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시켰고, 전쟁이 한창일 때, 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이때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에 이른다. 1951년부터 ‘휴전 협정’이 시작되었지만, 정작 한국은 휴전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전쟁은 한국에서 벌어졌는데, 휴전 협정에는 북한, 중국, 미국이 테이블에 앉아 회담을 했고, 주인공인 한국은 배제되었다. 이것은 이승만이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양도한 것에 따른 결과로, 이때 이미 한국은 미국에 복속된 존재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0년이 넘었다. 전쟁 직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군사력 세계 6위의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다. 너무 가난했던 과거 한국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한국은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휴전 협정’은 미국, 중국, 북한의 사령관이 합의했다면, ‘종전 선언’은 남북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가능하다. ‘종전 선언’을 둘러싸고 한국의 주변국이 보일 태도에 관해서 알아보자. 6 일본은 2차 세계전쟁의 패전국이고, 핵폭탄을 맞은 유일한 국가다. 나라가 초토화되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급속한 경제 회복,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국의 애완견이 되어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한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15세기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과 교역했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년, 정유년 전쟁’ 이전에 포르투갈로부터 화승총을 구입하고, 화승총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무력에서 조선을 앞서기 시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호족들, 지방 토호 세력을 통일하면서, 내부의 불만을 바깥으로 표출시켜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과 당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일본으로 몰려와 항구를 개방하고 교역을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으면서, 가장 가까운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미 ‘임진년 전쟁’ 이전부터 일본 남부의 바닷가에 살던 토호 세력들 가운데 조선의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와 노략질하는 일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국가 단위의 전쟁은 ‘임진년 전쟁’이 최초였다. 일본은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고, 당연히 조선 조정은 일본의 요구에 반대했다. 7년에 걸친 전쟁에서, 일본은 초기 전투에서 기세를 올렸으나, 곧 조선의 반격에 밀리기 시작하며 전쟁은 혼전 상태가 된다. 임진, 정유년 전쟁의 결과, 조선도 지배 계급의 몰락, 경제, 사회의 급격한 변화, 계급 구조의 약화 등 17세기에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원시적 태동과 상인 계급의 출현, 신분제 사회 구조의 변화 등을 겪지만, 조선 왕조는 끊이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 내부의 토호 세력들도 기세가 급격히 꺾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과의 전쟁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렀으며, 쇼군들의 권력 투쟁으로 일본 사회는 몹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은, 독일과 영국을 모델 삼아 근대국가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첨단 기술을, 영국에서는 정치와 사회 제도를 받아들여 일본 특유의 ‘천황제’에 근간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데, ‘천황제’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의 변형이며, 내각제를 바탕으로 한 수상이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하는 건, 독일의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 일본이 곧바로 군국주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바탕에는 독일의 ‘철의 수상’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의 존재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폭력으로 점령하기 시작했고,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재화를 통해 일본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는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남미 등의 국가를 침략해 식민지 침략으로 ‘원시적 자본’을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국가의 부를 축적한 일본은 더욱 야망을 키워 중국과 러시아까지 침공하게 된다.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된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한국과 북한의 이념 대립과 갈등 상황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는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저렴한 상품으로 수출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중에 한국 등 후발주자이자 제3 국가의 성장 모델이 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조선, 대한제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어떻게든 침략하거나 정치, 경제적으로 식민지 상태로 지배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물리적, 지정학적 위치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본능이 있으며, 그 본능의 밑바닥에는 일본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진, 화산으로 심각한 자연재해의 피해를 본 경험이 누적된 것도 있다. 한국과 북한이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곧바로 평화,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것도 일본에게는 불안하지만, 남북한이 경제공동체로 엮이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이 한국에게 추월당하고,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뒤처지게 되는 현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과 북한이 긴장과 갈등으로 군비 경쟁을 지속하면서, 나라의 재화를 낭비하고, 내부 문제에 신경 쓰느라 국제 관계에 소홀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일본에게는 가장 좋은 상황이다. 남북한이 전쟁하면, 일본은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오조의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선 선언’을 가장 반대하고, 싫어하고, 훼방을 놓을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할 것이며,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가동해 ‘종전 선언 반대’ 전략을 펼칠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우파, 매파, 한국의 수구, 친일매국 집단 – 정당, 언론, 학계 등 –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7 미국은 보수, 우파, 매파 진영에서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무기 자본의 로비를 받는 매파 집단은 남북한 ‘종전 선언’을 극렬 반대하며, 북한과의 대화, 협상, 협의도 거부한 상태다. 미국은 과거 쿠바에게 했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북한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으며, 북한을 말려 죽이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이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이 사라진다. 이것은 미국에게 두 가지 이유에서 나쁜 징조인데, 1) 중국을 견제하는 완충지대로써 한국의 지형적 위치가 의미를 잃는 것, 2)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유지할 때 얻게 되는 무기 판매와 미군 주둔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사라진다. 과거 중국은 인구만 많을 뿐, 경제, 군사 분야에서는 미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스운 상대였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고, 경제력도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뤘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역시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 되었는데, 군사 분야, 핵폭탄 보유, 과학 기술 분야 등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온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동맹으로 일본을 키웠고, 한국을 먹잇감으로 내놓는 것이 전략이었는데, 일본은 경제, 군사 분야에서 한국에 따라잡히고, 한국은 스스로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동북아시아 동맹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고,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미국이 바라는 그림은 아니지만, 한국이 자주적 전략을 펼칠 때, 강력하게 반대, 제재할 명분과 수단이 마땅치 않다. 과거에는 미국이 한국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경제(수입, 수출, 금융)적 압력을 썼지만, 한국의 수출 다변화 정책으로 미국과의 무역은 14.5%에 불과해서 예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은 중국과 홍콩, 대만을 합해 약 35%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입김은 약할 수밖에 없고, ‘종전 선언’을 반대할 명분도, 설득력도 약하다. 8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이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유지하지만, 경제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국과 한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군사적 대립이나 긴장 관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중국과 북한은 ‘혈맹’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북한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중국이다.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 교류가 쉽고, 지린성(길림성)은 조선족 자치주여서 중국과 남북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중국공산당은 혁명 과정에서 한국(그때는 남북한 구분이 없었다) 공산당의 지원을 받았고, 한국 공산당원들은 중국 혁명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중국공산당은 ‘인민해방군’을 파병했으며, 김일성을 적극 후원했다. 1990년 이후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하면서, 중국은 거대한 경제시장이자 무역 상대국으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주창한 ‘흑묘백묘론’을 토대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원시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공장’, ‘세계의 굴뚝’이라는 말을 들으며, 중국 인민을 저임금 노동자로 경제시장에 방출했다.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중국에 어떤 형식으로든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불편하게 여기는 건, 미국이 남한(한국)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는 것이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압박 때문인데,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 쏘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 했을 때, 미국이 온통 발칵 뒤집혔던 사건을 돌이켜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턱밑에 있는 한국에 미국의 미사일 기지가 생기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종전 선언’이 한편에서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남북한이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가 사라지고, 이것은 곧 미국의 패권이 직접 작용할 원인이 제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한 ‘종전 선언’에 적극 찬성하지 않아도,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9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사회주의자로, 쏘련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레닌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쏘련 영토로 이주했던 한국인들을 연해주로 강제 이주한 것과 대한항공 007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처럼 분명히 한국과 한국 국민에게 잘못한 점도 있었다. 한국은 러시아와 1990년에 국가간 수교를 맺었으며, 이후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구 쏘련 체제가 무너지면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쏘비에트 연방’이었을 때보다는 국력이 훨씬 약해진 상태다. 1990년 이전까지 러시아는 ‘쏘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국가였고, 한국은 해방 이후 1990년 무렵까지 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한러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은 러시아에 30억 달러를 빌려주는 등 경제 협력을 이어 나갔다. 러시아는 구 쏘련 시절 보유한 군사 무기 기술과 항공 우주 기술의 노하우를 한국에 제공하는 등 한국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면서 미국, 중국과는 또 다른 의미의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시베리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를 한국까지 연결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한국에서 출발하는 막대한 수출 컨테이너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오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남북한 종전 선언’이 남북한 경제 교류 확대는 물론, 러시아에게도 직접 이익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데, 충분히 근거 있다고 본다.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10 ‘종전’이 확정되면, 남북한은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며,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에서 놓여나게 된다. 70년 동안 남북한을 내리누르던 폭력과 증오의 먹구름이 걷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남북한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고, 국내적으로는 독재정권이 분단 상황을 정권 유지에 악용한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주변 국가-미국, 중국, 쏘련, 일본-의 압력으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은 더 이상 무력, 폭력에 의한 상호 침략이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가능한 대화를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을 천명했다. 2000년 이후 남북한은 사실상 종전 상태였으나, 국제법에 따른 종전은 아니었고, 여전히 주변국의 견제와 참견으로 ‘종전 선언’은 명문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종전 선언’으로 남북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겠으나, 빠르게 변화할 부문이 있고, 남북한 정권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의 요구가 남북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바꿔놓을 수 있다는 예상도 할 수 있다. ‘종전’은 곧바로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70년 동안 남북한이 견원지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독재정권이 만든 이 악법은 민주정부에서는 사문화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포정치의 잔재로 남아 있다. 한국은 현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운용하고 있으며, 북한과 다양한 경로와 형태로 접촉할 수 있고, 남북한 주민의 직접 교류도 가능하다. ‘종전’이 되면, 보다 적극적인 남북교류 법령이 개정, 제정되어 남북한을 오가는 장벽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11 철도와 도로, 통신, 방송의 회복 ‘종전’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나는 구체적 효과는 막혔던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미 개성공단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로 복구는 빠르게 이뤄질 것이고, 철도는 남북한의 표준 규격이 맞지 않아, 현재 한국 기술자들이 북한에서 철도 규격을 통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곧바로 시베리아 철도, 만주 철도, 몽골 철도의 연결로 이어지며, 물류의 획기적 변화를 뜻한다. 수출입 물동량이 화물선이 아닌, 기차를 통해 이동하면, 물류 기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실이다. 북한 역시 한국에서 오가는 철도 물동량의 통관비만 받아도 막대한 수입이 되며, 이후 남북한 인적 교류가 시작하면, 한국 관광객이 북한은 물론 시베리아, 만주, 몽골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가면서 지불하는 통관비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과 시베리아 철도까지 이어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럽행 기차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보다 위도가 아래쪽인 아시아 나라들은 유럽으로 가는 길이 여객선이나 여객기뿐이다. 기차를 타고 유럽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거쳐 러시아의 광활한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여행길이 열린다면, 남북한은 물론 러시아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줄 것이다. 반대로, 유럽인들도 아시아로 오는 길이 기차를 타고 오갈 수 있다면, 비행기로 이동할 때 누릴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어 매력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남북한)은 이렇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심 국가, 포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지형적 조건을 갖춘 나라여서, 경제 성장은 물론, 지금 한국의 문화, 예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물류, 여행 역시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시작했고,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한국의 정보통신망 기술이 북한에 빠르게 설치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시골 구석까지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그때는 예산 낭비라고 야당의 비난을 받았지만, 이 정보통신 인프라가 결국 한국을 정보통신, IT산업의 첨단 국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것처럼,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북한의 시골 구석까지 꼼꼼하게 광케이블을 설치할 것이고,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면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정보의 격차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토목 공사 실력과 수준 역시 세계 최고인 한국 기업들은 북한의 모든 도로를 한국의 도로처럼 깨끗하고 안전하게 시공하고, 동서남북의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때 북한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통신망과 도로가 개설되면, 역시 세계 최고의 물류 산업인 택배가 북한 전 지역으로 흘러가면서 몸에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르는 것처럼, 북한 경제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우리는 북한 방송을 거의 못 보거나 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를 자주 본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문화가 수준 낮다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 예술적 완성도 등을 볼 때, 한국(남한) 문화가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전’ 이후 남북한 주민의 교류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방송(라디오, TV)을 개방하는 과정이 필연이라고 본다. 즉, 남북한 주민 누구든 남한과 북한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원하는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경우, 인터넷이 개방되면, 인터넷으로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의 동화 과정은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본다. 12 여행, 관광의 시작 ‘종전’ 이후 한국에서 가장 큰 기대 효과는,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금강산 관광’처럼 초기에는 제한적 공간만 여행할 수 있겠지만,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당장 떠오르는 장소는 금강산, 개성, 백두산, 원산, 함흥 등 유명한 도시로 시작해, 동해안의 해수욕장을 개방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DMZ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이곳을 세계적 환경 지역으로 만들어, 입장료 수입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은 남북한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 보호구역, 생태 탐방 지역으로 알려진다. 한국의 기업은 북한에 인프라 투자를 하고, 호텔, 리조트 같은 대규모 시설을 짓는다. 이렇게 관광, 여행, 위락 시설이 생기면, 북한 주민들을 고용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생성된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지점은, 한국(남한)의 자본이 북한을 잠식하고, 북한은 노동력만 제공하고,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력은 매우 심한 편차라서 북한과의 경제 교류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한국(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여행할 때도, 과거 동남아시아에서 보인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은 2등 국민도 아니며,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경제력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우리가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되는 한민족이다. 초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발생할 것이고, 상호 오해가 생겨서 티격태격할 경우도 있겠으나, 큰틀에서 한민족인 남북한은 자연스럽게 동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13 남북한 국민의 상호 왕래 ‘종전’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남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과정이 생긴다. 남북한 주민은 각자 여권을 가지고 국경을 통과할 수 있으며, 상대 국가에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미 방송과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에는 제약이 거의 없다. 이때는 이미 남북 이산가족은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하고 있고, 남북한 정치체제만 다를 뿐, 사실상 통일에 가까운 상태로 남북한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한다. ‘종전’은 남북한이 가야 할 필연적 과정이며, 한민족 역사의 회복이자, 분열과 고통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상징적 행위다. ‘종전’은 한민족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바탕으로 화합, 성장하는 계기가 되며, 한국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종전’을 반대하는 집단과 개인은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고 멍청한 존재이거나 악랄한 의도를 가진 내부의 적이며, 외부 세력이라면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반대하는 적대 세력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호혜, 협력한다는 기본 전제에 동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다음 정부인 이재명 정부에서는 ‘종전’ 이후 북한과 공동 사업을 구체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게 된다. 남북한 상호 교류는 두 나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국방, 내수 산업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주변 국가의 반응을 살피지 말고, 남북한이 적극 상호 이익을 위해 ‘종전’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남북한 ‘종전’ 발표를 기다린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어제 교수님 블로그에 올리신 '나는 왜 윤석열 후보를 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론이자, 공개 편지입니다. 서술의 근거는 교수님의 글을 기본으로 하고, 제가 가진 생각을 더해 주장을 개진하겠습니다. 공개 편지인 만큼 형식과 내용은 자유롭고 편한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은 물론,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보수' 진영에 계신 분들도 읽어보시길 희망합니다. 1 '존경하는 최교수님께'라고 쓴 인사말은 의례적 수식어가 아닙니다. 이웃 사는 저는 평소 최교수님을 자주 뵙고, 함께 식사도 하고, 산행도 하는 '동무'라서 교수님을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정치 성향은 '보수'가 틀림없습니다만,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셨고, 탄핵에 찬성하신 분입니다. 최교수님은 박근혜를 선택했지만, 박근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셨습니다. 최교수님은 스스로 노력해 많은 어려움을 딛고 대학교수가 되셨고, 정년퇴직하신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성실하고 겸손하며, 사회의 규범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로 대학교수가 되셨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2년을 복무했으며, 개신교도로 신앙생활도 신실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측은지심을 가지셨으며, 자신에게 향하는 쓴소리,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넓은 이해의 마음을 가진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최교수님 수준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분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보수'라면 좌우의 날개를 함께 펴고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면 '극우'에 가깝고, 과거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미치광이 수준입니다. '보수' 집회에 참가하면서 일장기를 들고, 일본을 찬양하면서 우리나라가 망해야 한다는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식 있는 시민들이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비웃고, 비난, 비판하는 근거는,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선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은 '정보'로 흘러넘치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편향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개신교 신자로서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하셨습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특정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신앙 때문에 정치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정치인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일 뿐이고, 그래야 합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일반화하려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나 있었던 미개한 폭력입니다. 자신의 신앙(종교)과 정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한 교수님과 ‘보수’의 안목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3 교수님은 글에서 '이승만은 반공, 박정희는 경제, 김영삼은 민주화, 김대중은 개방'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승만이 '반공'을 한 것은 맞습니다만, 이승만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와 패악에 관해서 침묵하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입니다만,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여준 행보, 말과 행동은 친일매국노이자 한국 정치와 사회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의 전형이었습니다. 1948년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정치 상황은 남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만, 남북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던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현실 정치인들을 암살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만들어 과거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가입시킨 다음, 전쟁이 한창일 때 국군특무대를 중심으로 보도연맹원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진짜 빨갱이'들이 아니었고, 한때 좌익이었거나,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배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설령 과거에 '좌익'이었다 해도, 단지 과거의 전력만을 보고 학살한다는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이승만은 이들이 최소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이 학살당하는 걸 묵인했습니다.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했고, 대통령을 영구집권하려는 망상을 가졌으며, 3.15부정선거의 당사자입니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과거 친일매국노를 관직에 앉히는 등 친일파를 옹호하고, '반민특위'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국이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친일매국노를 처단하라고 주장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반대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4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합니다. 박정희가 가난했던 한국을 구제했고, 보릿고개를 없앴으며,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합니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를 생각해 보면,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가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봅니다. 즉,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이 불쾌하고 마땅치 않은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인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젊었을 때 흘렸던 땀과 눈물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훌륭합니다. 그들은 굳이 박정희를 들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한국 사회를 일으킨 주역이며, 한국 사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그러니 박정희를 우상화하지 않아도 '보수'의 애국과 땀의 결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정체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원이었으며, 그의 형 박상희는 '보수'들이 말하는 '진짜 빨갱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상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당시 좌익,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는 대개 지식인이 많았고, 일제강점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 방법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역시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고,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보수'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저주를 퍼붓는 '빨갱이'가 바로 박정희와 그의 형 박상희입니다. 박정희가 전향했으니 그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박정희는 남로당원인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자 자신의 조직과 동료를 고발하는 대가로 살아남았습니다.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는 변절자, 배신자인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경력을 지우려고 더욱 강하게 '반공'을 부르짖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좌익, 공산주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지식인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수'만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보수'의 특징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지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없고, 올바른 역사관이 없으므로 눈앞의 현상만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역사의 물줄기, 역사에서 정의, 민주주의, 민중의 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지배자의 말을 믿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던 1960년을 전후해서, 제3세계-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군부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즉,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는 그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진 이 세계적 사건 가운데 '성공한 쿠데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쿠데타 자체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쿠데타는 성공했어도, 그 주역들이 시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쿠데타 세력의 종말이 모두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군부 쿠데타는 불법이며, 역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범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 의해 사살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재규가 역모를 한 것으로 치부하면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일본군가를 부르며 그걸 즐겼던 친일매국노였습니다. 일본과 일본군에 대한 향수를 끝까지 갖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한때 만주군에서 독립운동가를 '토벌'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걸 부끄럽거나 죄스러워하기는 커녕, 친일매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겠습니까. 박정희가 죽을 때도 주색잡기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무려 200여 명의 여성을 비밀 안가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채홍사 노릇을 한 부하가 직접 증언했고, 박정희의 마지막 순간에도 두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소위 '보수'에서는 이런 박정희를 두고 '남자라면'이라거나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라'거나, '대통령이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려 합니다. 대통령이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걸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그걸 옹호하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그건 최소한의 인간도 못 되는 되먹지 못한 양아치일 뿐입니다. 5 교수님께서는 이명박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택을 이제는 후회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죠. 이명박은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그가 개신교도에 교회의 장로라는 타이틀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교수님께서도 이제는 아셨을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교인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형교회의 목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습을 통해 철저한 자본주의의 물질만능 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보여주어야 할 선행과 이타심은 이미 사라졌고, 교회는 비즈니스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개신교가 얼마나 부패했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었는가는 개신교 전체가 보여주는 악행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과 역할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개신교 내부에서도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실한 목회자와 신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같은 사기꾼, 범죄자가 단지 '개신교도'라는 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이 되도록 한 수많은 개신교도들은 이제 자기 발등을 찍어야 합니다. 그런 통절한 자기반성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제 다시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를 선택하고, 다시 윤석열을 선택한다는 건,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에서 아무런 비판과 반성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직업별 성범죄 1위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매우 불명예스럽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공식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던가요? 말로는 사회의 소금이 되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나쁜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목사가 존재하는 '개신교'는 한국 사회 발전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이명박은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써먹은 악질 가운데서도 악질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32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사라졌고,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또 20조 원의 세금을 탕진했습니다. 이 국민의 돈은 이명박 측근에게 돌아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들여 환경을 망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고, 환경감수성이 무딘 것 또한 '보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6 교수님께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까닭은,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에서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인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찾아보시는 정보의 대부분을 소위 '보수언론'에서 얻고 있는데, 이런 편향이 정보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조선일보는 폐간시켜야 하는 대상입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친일, 매국을 했으며 ‘천황폐하 만세’,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른 반역자들입니다. 보수가 친일매국, 반공을 용인한다면 그것이 애국자이고 ‘보수’입니까? 윤석열을 두고도 객관의 사실을 외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 단지 문재인정부가 싫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간을 지지한다는 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윤석열은 그 자신도 이미 심각한 범죄혐의가 있고, 그의 아내도 논문 표절 문제와 경력 위조, 주가 조작 혐의 등 온갖 파렴치한 범죄혐의가 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장모는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법의 처벌을 받고 감옥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조국 교수의 가족에게 적용해 본다면, ‘보수’의 입장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악의적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조국 교수의 아내가 윤석열 아내와 같은 혐의를 가졌다면,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조국 교수의 장모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분통을 터트리겠습니까? 윤석열은 조국 교수와 그 가족을 멸문할 정도로 잔혹하게 학살한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을 객관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 내용을 보니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의 당원에게 큰 지지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심리를 살펴보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자 박정희와 육영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신들의 딸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심리적 동기화가 있었기에,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어도, 박근혜가 무능하고 불법을 저질러 탄핵당해 감옥에 갔어도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60대 이상 세대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이성적, 지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닌, 감정과 감성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반드시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나라의 미래를 넓고 멀리 바라본다면 이런 감정적 대응과 근시안적 판단은 분명 우리 사회, 성장하는 청년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7 교수님께서는 이재명 후보를 두고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안타까워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과거 대통령을 선택하신 것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안목-최소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그 증거이고, 교수님의 정치적 눈높이가 낮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몹시 가난한 화전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도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고, 국민학교를 마치고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어릴 적, 이재명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셨으니 이재명 후보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실 걸로 압니다. 반면 윤석열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줄곧 금수저로 자랐습니다. 사회학에서 '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부자와 지배자의 논리를 옹호)하는가'를 두고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오로지 먹고사느라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올바른 역사, 정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지한 상태에 머물 확률이 매우 높고, 무지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도 대학에 들어가 깨우치기 전까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광주5.18민주화투쟁'을 보고는 사회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서거'했다고 슬퍼하며 일기장에 쓴 걸 기억합니다. 그때 제 나이 불과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공장 노동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웅변을 듣고 인권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한 사람의 눈물겨운 생존의 분투기이자, 무지에서 각성으로 이어지는 올바른 역사 속 인간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엄격한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보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스스로 엄격하고, 부끄럼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삶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보수'보다는 '진보'가 교수님과 더 잘 어울립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돈과 권력을 향해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내용과 성남시장으로 당선되어 행정을 펼친 것, 경기도지사로 경기도의 행정을 펼친 것을 객관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시고 평가해 보시길 권합니다. 과거 성남시장이었던 자들과 경기도지사가 벌인 짓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를 망치고, 개인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뇌물을 받아 먹은 것은 현 '국민의힘' 쪽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객관적 증거와 자료를 외면하면서까지 훌륭한 행정을 펼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보수'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면,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루합니까. 8 이제 윤석열과 이재명의 실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사회를 개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고, 대통령의 실력과 능력이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이고, 대통령을 둘러싼, 즉 대통령이 임명한 가까운 인재들이 대통령의 행정 목표를 위해 실무를 집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한 나라의 틀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실질적 요소입니다. 윤석열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그 뒤로 약 26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회를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윤석열은 기본 상식과 지식,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이 거의 없는, 무지와 무식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 혼자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뽑아 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있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지 ‘권력’ 그 자체를 탐욕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갖습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가장 큰 차이는,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재명은 ‘권력’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마구 휘두를 생각만 하는 윤석열은 전두환, ‘광주민주화운동’ 발언 등을 종합할 때, 그 자신이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좌우의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자로, 오로지 한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역할을 엉터리로 했다면 지금 전국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윤석열 후보는 조국, 추미애 장관에게 항명하고, 검찰을 사조직화해서 징계를 받게 되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기존 정치인에게 식상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만큼 ‘보수’ 진영에는 능력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검사 26년의 경력말고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이나 정치력, 정치, 행정철학에 관해 최교수님께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윤석열을 객관적으로 검증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도 윤석열은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만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미 박근혜가 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될 때도 이명박과 경쟁하면서 이명박에게 졌고, 박근혜의 실력이 아닌,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불쌍한 자식’ 코스프레로 노인 세대의 감성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지한 박근혜는 최순실의 수렴청정의 허수아비, 괴뢰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고, 지금 감옥에 갔습니다. 윤석열은 그런 박근혜의 무지, 무식과 윤석열의 아내의 수렴청정, 전두환의 폭력적 독재가 결합해 박근혜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지지하시겠습니까? 9 최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보수’의 개념은 ‘건강한 애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보수’의 행태를 잘 보시면, ‘건강한 애국’이 아닌, 극우 파시즘과 천박한 양아치가 결합한 망나니의 모습인 걸 아실 겁니다. 교수님이 그런 집단을 지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보수’는 무엇보다 상식과 합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걸로 압니다.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성조기와 일장기, 이스라엘국기를 흔들며 문재인정부 타도를 외칩니다. 오로지 문재인정부가 싫다는 이유로 친일매국도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입니까? 대형교회 목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정부를 비난하고 직접 정치에 개입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들이 문재인정부를 ‘빨갱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건 아무 근거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부익부빈익빈, 강자독식, 권력과 금력이 결합한 강자카르텔, 부패카르텔을 형성해 사회의 부를 독식하려는 자들이 깨끗하고 합리적인 정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지하는 ‘보수’ 집단인 ‘국민의힘’의 역사적 태동과 성장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면 결코 그들을 지지하지 않으실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이미 어릴 때부터 개신교도로 성장하신 것이 교수님의 정체성을 구성했으므로, 그걸 부인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브로락사스의 알’처럼, 진정한 자기 개혁은 미몽의 세계에서 깨어나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합니다. 이승만 이후부터 박근혜까지 이어온 ‘국민의힘’의 과거는 독재, 쿠데타, 무능의 정부였습니다. 이건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런 정당의 후보로,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을 다시 공포와 독재,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함량 미달의 천박한 후보입니다. 교수님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성장, 발전시킨 집단이 누구입니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흐름이 ‘국민의힘’ 쪽 흐름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의 확대, 경제 성장, 인권, 환경, 복지, 예술의 성장을 이끌어 갈 적임자가 바로 이재명 후보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면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고,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면 미래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올바른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건강일기_007
    건강일기_007 석달 동안 7kg을 감량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게 감량했지만, 3개월 기간으로 보면 무리하지 않은, 정상적 감량에 해당한다. 처음 몸무게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76.5kg이었는데, 오늘 아침 몸무게는 69.5kg이었으니 60kg대로 내려온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하면 확실히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차이가 크다. 아직 의학적 검사를 하지 않아서 정확한 결과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체중이 빠지면서 뱃살이 조금 들어가고, 혈압이 조금 내려간 걸 느낀다. 뱃살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혈압은 가끔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러 가서 잰 기록을 보고 알게 된 것으로, 예전 몸무게로는 고혈압 판정을 받을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상 범주로 내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운동과 함께 음식도 나름 조심하면서 먹었는데, 과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점심 한 끼도 잡곡밥 위주로 먹고,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도, 어려움도 없었으며 가장 지키고 싶었던 원칙은 저녁7시 이후에는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음식물을 먹지 않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다만, 7kg을 감량했어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 뱃살은 여전히 나와 있고, 겉으로 보기에 많이 달라보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 특히 나이 들면서 체중 조절을 하지 못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음식을 적게 먹을 것, 꾸준히 운동할 것,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흡연을 하지 말 것,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 것 등 기본 상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건강한 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원칙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고, 체중 관리와 음식 조절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운동과 체중 조절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그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지금 건강이 나빠진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엊그제 냉장고 액정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냉동 기능이 안 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침내 고장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잘 썼지'라고 수긍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우리집에서 쓰고 있는 가전제품은 집을 짓고 모두 새 물건으로 장만한 것으로, 이제 17년째 쓰고 있다. 가전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지(LG)전자 제품이다. 나는 엘지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가전제품은 엘지전자가 가장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엘지 제품을 추천하는데,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엘지 제품이 17년만에 고장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우선 냉장고를 앞으로 조금 끌어낸 다음, 전기 콘센트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서 다시 끼웠더니 액정의 에러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상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정상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온라인 접수에서는 가까운 날짜가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가 8월 20일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신청을 해두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서비스 기사가 전화를 했다. 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의 상태를 물었고, 냉동실 안쪽 벽면에 성애가 끼었다면, 그 성애 때문에 냉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냉동실을 비우고, 하루 정도 말리면 냉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비스 기사의 말대로 하면 기사가 우리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기사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법이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서비스 기사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회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 기사에게,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해 달라고 했다. 냉장고는 다시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신청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공식적으로는 무려 10일 뒤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우리집을 방문한 기사는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 냉장고(냉동실)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고, 성애 때문도 아니고, 문이 약간 덜 닫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는 냉장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세탁기의 배수 장치를 확인해 주었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엘지전자 제품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없이 쓰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출장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기꺼이 출장비를 지불했다. 1만8천원. 어떤 사람은 이 돈도 비싸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출장비가 싸다고 생각한다. 1만8천원을 지불하면, 최고의 기술자가 산골까지 찾아와 고장난 제품을 고쳐준다. 지난번 에어컨(이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아니었다)이 고장났을 때는 몹시 급한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개인 수리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양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인 수리업자는 우리집에 와서 몇천 원 하는 센서 부품을 교체하고 5만원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엘지전자의 출장 서비스 기사도 개인사업자에게 위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서비스 기사가 엘지전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위탁회사가 있던지, 아니면 개인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최대한 많이 집집을 방문해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출장비와 부품비를 청구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며, 그 와중에 '친절함'에 관한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전자제품의 출장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출장비 받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늦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마구 항의를 하거나 크레임을 걸어서 서비스 기사를 못 살게 굴고,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 이건 음식 배달을 하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권위적이고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서비스 노동자를 괴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기술자, 전문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의 가치가 적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대우 역시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중요성, 노동의 역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합리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기술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전문직 기술자, 노동자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주로 '사'로 끝나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종을 높은 가치로 여기도록 학습하고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의 모든 직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은 곧 자기의 직업, 업무를 뜻한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객의 요구가 모두 달라서, 그 요구에 맞춰야 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나 직종이라 해도 그 일 자체가 하찮거나 쓸모가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 직종이 사회에서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는 사회적 지위나 대중의 직업 인식에서는 하위에 속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라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서 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도 역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발생하는 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수고를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노동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도록 가르치고,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대중 매체의 드라마나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천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노동' 그 자체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이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력, 경제적 부와 관계 없이 인성이 비뚤어진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이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일정 비율로 싸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건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노동자가 부당하게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신성하려면, 노동의 결과가 그만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대우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뿐이다. 즉, 노동의 의미도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성과 윤리, 도덕성마져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런 예의 하나인데, 물질만능, 화폐숭배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를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 정글의 논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많은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노동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다.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6
    건강일기-006 운동 방식을 바꾸다 6월 7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40일 정도를 매일 3,000개 이상 줄넘기를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줄이고, 밀가루와 튀긴 음식, 간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그 사이에 약 6kg이 줄어서 다이어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30일이 지나면서 몸무게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운동과 음식도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하거나, 근육 운동을 그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판단을 했다. 줄넘기는 유산소 운동이고, 복부의 내장 지방과 몸무게를 줄이려면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근력 운동에 관해 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들은 혼자 연구해서-물론,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봤겠지만-다이어트를 성공한 경험이 있어서 운동에 관해서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이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알려준 근력 운동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런지 25회 양 다리 2. 푸쉬업 적당히 가능한 만큼 (10 ~ 30회 중 선택) 3. 스쿼트 25회 4. 플랭크 1분 5. 복부운동 30회 이게 1 루틴. 루틴 하나를 1~2회 하면 됨 아들이 알려준 운동은 요즘 많이 하는 '홈트레이닝'의 여러 과정 가운데 근력 운동 부분이고, 여기에다 트레드밀에서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위의 과정에다 '풀업(턱걸이)'도 하려고 문틀 턱걸이를 주문했다. '풀업'은 최근 조국 교수가 SNS에 동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지지의 릴레이 풀업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팔 근육 운동에도 도움이 많이 될 듯 하고, 전체 근육 운동에서 비어 있는 부분 같아서 '풀업'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8일부터 줄넘기는 중단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준대로 런지, 푸시업, 스쿼트, 플랭크, 복부운동 순서로 했는데,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줄넘기 3천 번 한 것 만큼, 아니 그 이상 힘들었다. 줄넘기를 하면 숨이 차고 땀을 많이 흘리지만 샤워를 하고나면 몸이 개운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면, 이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처음 근육 운동을 해서 그런 듯 한데, 힘도 많이 들고, 근육을 더 많이 움직이는 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이 많이 나고, 숨이 차는 것도 줄넘기할 때 못지 않았다. 그만큼 근육 운동이 힘들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증거겠다. 이 운동이 좋은 점은 아주 덥거나 추운 날에도 집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넘기만 해도 늘 바깥에서 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어렵고 또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못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집안에서 근육 운동을 해보니 충분히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석달을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데, 두달 동안 나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운동했다. 7월 18일부터 근력운동을 했으니 오늘(8월 7일)까지 21일 동안 근력운동을 했다. 아래 식단표를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이 보이는데, 운동을 마치고 배가 많이 고파서 참외를 두 개 또는 작은 참외는 세 개를 먹었다. 다른 과일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참외를 가장 좋아하고, 참외를 먹으면 소화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있고, 참외는 칼로리가 낮아서 두 개, 세 개를 먹어도 칼로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점심은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었다. 다만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설탕과 당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 공장에서 만든 음식은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니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매우 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국수 종류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두 달 동안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먹었고, 튀긴 음식은 더욱 적게 먹었다. 하루 기초대사량이 대략 1600kcal 정도라면, 하루 두 끼를 먹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칼로리가 적은 음식과 소화가 잘 되고,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관건인데, 이런 음식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채소, 생선, 과일이다. 여기에 육류도 빼놓을 수 없는데, 고기를 먹더라도 구워서 먹는 것보다는 삶아서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근력운동을 시작한 7월 18일부터 8월 7일까지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운동량과 음식의 칼로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판단했다.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는 61kg 정도인데, 그럴려면 9kg을 더 감량해야 한다. 8월 말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4-5kg 정도를 감량할 계획인데, 그러자면 조금 더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저녁 6시 이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빈속으로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많이 나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이 그만큼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탐하려는 유혹을 얼마나 잘 견디는가와 근력운동을 비롯한 운동량과 시간을 좀 더 늘리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바깥 온도가 높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야외 활동이나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실내에서 근력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내부의 계급 이익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주로 수구 반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 은 특정한 정당 또는 후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비난하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큰틀은 크게 세 가지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윤석열과 최재형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면서, 현재 정부의 관료들이 가진 가치관,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으며, 자기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자들이 모인 정당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라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당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윤석열과 최재형은 그들이 속했던 관료 집단에서 수장을 했던 자들로, 그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즉, 한국의 관료집단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보수화, 수구화, 과거지향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표를 내고 뛰쳐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재부의 홍남기 같은 자 역시 수구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관료들의 사상적 기반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철저하게 '자본종속적'이라는 데 있다. 재정을 직접 다루는 홍남기의 경우, 그가 결사적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고, 끝까지 차등 지급을 고수하는 것은 정부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재정과 운용에 관해서는 이미 최배근, 정균승 교수 등 학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논파당했기 때문에 홍남기는 반론을 제기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은 홍남기류의 인간들이 정부 내부에서 문재인정부에 타격을 입히려는 정치행위인 것이다. 이들 무능하고 퇴행적 관료들과 국민의힘이 반개혁적, 반동적 행위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이 있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정부'를 싫어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의 형성과 축적 과정을 보면, 자본은 '착취'와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착취'와 '경쟁'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자본의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 즉,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자본'은 먹거리가 많아지고, 이윤을 축적하기 쉽다. 선진복지 국가의 좋은 예로 드는 북유럽 국가들도 '자본'이 존재하는데, 그러면 북유럽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민도가 높은 나라는 국민과 정부, 자본의 합의와 견제에 의해 '자본'이 '비교적 깨끗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자본'도 이윤추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한다. 즉,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자본'에 의한 범죄는 억제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지만, 과거 반민주, 반노동, 반인권 제도와 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30% 남짓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상징적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을 두고 정당끼리의 권력투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의힘은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뿌리이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열매이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인간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잎사귀들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가장 먼저 부정부패의 뿌리이자 과거 반민주, 쿠데타, 친일매국 세력인 국민의힘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최재형 같은 구체제 신봉자들이 집결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은 뒤에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의 힘이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국민의힘이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겨우 30% 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시민의 단결한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고위 관료 출신의 윤석열, 최재형은 국민의힘을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 것은 다행이며, 전선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적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자들이 있다.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같은 자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을 뿐, 국민의힘에 있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촛불시민은 민주당을 진보적 영역으로 견인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고 앞장 서 민주당의 개혁성을 이끌고 있고, 젊은 의원들이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이 사는 길은 국민의힘으로 대표하는 앙시앙 레짐, 수구반동, 자본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들과 싸워 피를 흘릴수록 촛불시민은 더욱 강하게 민주당을 지원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여전히 상당수 '수박'들이 존재한다. 이들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를 걸러내고,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민주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한국에는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다.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 같은 '진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데,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역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반자본주의 투쟁을 이끌 집단은 한국사회 내부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개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문재인정부가 최선이다. '문재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민주적 테제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뒤를 이을 정부는 반드시 문재인정부의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그보다 한발 앞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대통령은 몹시 신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라 적과의 싸움에서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다음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개혁과제 가운데 다음 정권에서는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바로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부동산개혁, 노동개혁이다. 이 과제는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다음 대통령은 온몸에 피칠갑을 할 각오를 하고 앞장서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도 안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내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그럴 정도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이재명이라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5
    건강일기-005 운동 시작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그나마 조심한 건 과식, 야식, 술이었다. 술은 체질이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지만, 아주 드물게 한 잔 마실 때가 있었다. 모임이나 집에서도 저녁에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전부인데, 간경변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내 오랜 식습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 것인데, 중간에 간식을 항상 먹었다. 계속 살이 찌는 원인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먹는 칼로리가 많기 때문인 건 상식이다. 먹는 것 이상으로 움직여서 칼로리를 소모하면 살은 찌지 않는다. 이런 상식을 알면서도 생활에서는 실행이 어려운데, 내 경우도 그렇다. 그나마 몸무게가 75-76kg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 신체 조건에서 적당한 몸무게는 60-65kg 정도인데, 최소 10kg에서 많게는 15kg을 줄여야 했다.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두 달 동안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불규칙하게 걷기를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식탐도 줄어들 줄 알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충분히 포만할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거지만, 그동안 나는 매 끼의 음식량이 많았고,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하지만 그 사이와 저녁에 간식을 먹는 것 때문에 절대 살이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끼를 먹을 때도 음식의 내용과 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싱겁게 먹고, 간식, 야식을 먹지 말고, 국물 음식도 가능한 먹지 말고, 밀가루 음식, 흰쌀밥도 가능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이 상황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건 내 의지가 약하기도 했고, 지금 약을 먹고 있으니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도 간 상태가 좋아지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다만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의식을 하면서 먹었다. 매일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데, 점심과 저녁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병원에서 두 달치 약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 기간 동안에 먹었던 음식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식과 야식이 줄어들긴 했다. 4월 말부터는 참외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참외를 퍽 좋아하는데, 해마다 참외가 나오기 시작하면 10kg짜리 참외를 주문한다. 단, 참외값이 비싸므로 '흠과'를 주문하는데, 이 '흠과'의 종류도 참외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뉜다. 나는 '대과'를 주문해서 먹는데, 기간에 따라 참외값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4월 말에 참외 10kg 흠과의 가격은 약 3만8천원이지만 가격은 점차 내려간다. 2만6천원이 되었다가 7월이 되면 1만6천원까지 내려가는데, 참외가 한창 많이 나올 때라서 똑같은 참외라도 값이 싸진다. 참외는 거의 나 혼자 먹는데, 작년(2020년)에는 여름 한철에 내가 먹은 참외가 60kg이었다. 4월에서 6월까지도 참외를 먹었다. 참외는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며, 포만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어서 밥을 좀 적게 먹을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가졌다. 몸의 변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체중을 확인하는 것이다.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따로 몸무게를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5월 말에 아산병원에서 채혈하고, 일주일 뒤인 6월 7일,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은 피 검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두 달 사이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처럼 들렸고,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의사선생님은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두 달 사이 내가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것이 없다는 건 분명했고, 그래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의사선생님은 다시 똑같은 약을 3개월치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활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자각을 했고, 운동과 절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운동은 줄넘기였다. 그 전까지는 주로 걷거나 트레드밀에서 뛰는 운동이 전부였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6월 8일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운동 목표는 하루 3,000개. 왜 3천 개를 해야 하는지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정도는 해야 운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 무조건 하기로 다짐했다. 첫날 줄넘기는 2,000번을 했는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몸이라 첫날 줄넘기는 엉망이었다. 한번에 넘는 횟수도 열 번을 넘기지 못했고, 무릎 안쪽, 허벅지, 종아리, 발 전체가 다 아팠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줄넘기를 할 때 요령도 몰랐고, 어떤 곳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몰랐다. 줄넘기를 하는 장소는 처음에 풀밭, 데크 등에서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집앞 도로가 아스팔트여서 그곳에서 줄넘기가 비교적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줄넘기를 할 때 복장과 신발도 어떤 것이 좋은지 몰라서 고생했다. 처음에는 달리기용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해봤는데, 자꾸 발에 줄이 걸려서 멈췄다. 그러다 바닥이 평평하고 운전할 때 신기 편한 가벼운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하자 줄이 걸리지 않고 좋았다. 줄넘기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첫 날은 2,000개를 하고, 둘째날부터는 계속 3,000개 이상을 했다. 일주일 동안 무릎 안쪽, 허벅지 등이 아팠지만, 처음 작정한 것처럼, 핑계 대지 않고 날마다 줄넘기를 했다. 운동하는 첫날 몸무게를 쟀을 때, 76.5kg이 나갔다. 몸은 무겁고, 배는 출렁거리고, 다리는 아팠지만, 나 자신에게 다시 실망하는 것보는 아픈 것이 나았다. 처음 줄넘기를 할 때는 열 개, 스무 개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차츰 발에 걸리지 않고 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백 번을 넘길 때는 감격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 스무날이 지나면서 줄넘기는 백 번, 이백 번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줄넘기 운동 시간도 처음에는 3천 번을 하려면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 약 80분 정도를 해야 마칠 수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단축되어 한 달 뒤에는 3천 번 줄넘기 시간이 약 40분대로 줄어들었다. 줄넘기와 함께 음식도 가능한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매일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아침에 운동을 하면 몸무게와 줄넘기 횟수를 기록했다. 점심은 여느 때와 똑같이 먹었고, 간식과 야식을 먹지 않았으며, 저녁은 적게 먹었다. 저녁을 적게 먹고 잠을 자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을 먹기 전까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흰쌀밥 대신 잡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밥은 늘 잡곡밥을 먹고, 배가 많이 고프면 참외 한 개를 먹거나, 참외로 저녁밥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줄넘기를 3천 개씩 하고, 잡곡밥을 먹고, 밀가루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인스탄트 음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도 거의 먹지 않으며, 저녁은 간단하게 먹으면서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하니 처음 며칠은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76.5kg에서 꼭 한 달이 지난 7월 7일에는 70.9kg으로 약 6kg이 줄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병원에 갈 동안인 3개월 사이에 몸무게를 적어도 10kg 이상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고, 목표 체중은 63kg으로 설정했다. 한 달이 지나서 6kg 정도를 줄였으니 3개월이면 이론적으로 18kg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몸무게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행인건, 내가 운동과 절식을 시작할 때, 가족 모두 나처럼 운동과 절식을 함께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에 동의하고, 점심은 잡곡밥을 중심으로 고기도 먹고, 저녁은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먹을 샐러드 재료를 구상했다. 양상추, 새싹, 방울토마토, 피망, 오이 등 채소를 준비하고, 단백질은 닭가슴살을 준비했다. 샐러드용 소스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인바디 체중계'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 날마다 체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체 지수를 측정하는데, 우리집 거실에는 체중계 두 개가 나란히 있어서, 체중계에 각각 올라가 몸무게의 변화를 확인한다. 몸무게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적게 나가는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몸무게 변화는 많게는 2kg까지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몸무게가 6kg쯤 빠졌지만 70kg 초반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정체기가 시작되었다.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4
    건강일기-004 두 달의 시간 채혈, 위내시경, CT 촬영을 하고 일주일 뒤에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에 긴장감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도 걱정이 되어 함께 왔는데, 나는 의사 앞 빈 의자에 앉았고, 아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앉아 있는 책상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고, 거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했다. 간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이미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간에 결절도 여러 개 보이는데, 이미지로만 보면 상태가 조금 나빠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약으로 치료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때까지 의사선생님은 간 상태에 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만 궁금했다. '간암은 아닌 거죠?'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간암은 아니고 간경변입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 삶에서 변곡점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와 다음 진료 일정을 잡았다. 두 달. 간경변 치료제 두 달치 처방전을 받아 나오면서,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는 '다행이다'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고, 오늘 검사 결과를 알기까지의 지난 일주일 동안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졸렬하게 살아왔는가를 반성했다. 나는 이기적으로 살았다. 내 존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부모에게 불효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큰 미련이 없었고, 죽음은 언제든 가까이 있으며, 가족에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들은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아무 존재감 없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약 60년을 살아오면서 남긴 것은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내와 아들은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가 둘이나 있고,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건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내 건강을 깊이 염려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은 만약 내가 간암이라면 자기 간을 이식할 거라고, 엄마에게만 몰래 말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지만, 가족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은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기 보다는 무심하게 대한다. 심지어 부모는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거나 반항한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미운 감정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서로를 끌어 안고, 단단하게 뭉친다. 내가 간경변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삶은 무난한 삶이었다. 내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까지 내 삶이 거친 황야를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결혼한 다음부터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한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건 아내 덕이었고, 나는 그걸 늘 기억하며 살아왔다. 결혼 초기에 직장 생활을 몇 년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이후 나는 줄곧 지역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했다. 지역에서 일한다는 건 봉사를 한다는 뜻이다. 돈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내 돈을 쓰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의 일이다. 나는 '주민자치위원'으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도 하고, 지역의 몇몇 단체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군 단위 전체 인구가 불과 12만 명에 불과하고, 내가 사는 면 인구도 1만 명인 작은 지역에서 일하는 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든든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럽게 생각한다. 나는 백수가 분명하지만, 시골에 정착하면서 늘 바빴다. 대부분은 내가 사서 고생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지만, 지방으로 내려온 이후 나 스스로 가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병설유치원, 시골의 분교를 거치고, 청년이 될 때까지 나는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진 별 것 아닌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골에서 한 20년쯤 사니 이제서야 지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사람들과도 낯설지 않게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보낸 시간은 지역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의욕이 앞서서 지역의 상황에 맞지 않는 제안이나 주장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보람된 일을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어서 그간의 시간이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면 단위 주민자치 소식지를 최초로 기획, 편집, 제작해서 지금도 발행하고 있고, 마을 홈페이지, 면 단위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어 자료를 올려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당시만 해도 너무 앞서나가서인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사라졌고, 현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내 본업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시골에 정착하고 소설을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 몇 달 동안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으로 작정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편의 장편을 쓴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써놓기만 하고 그만이었다. 스스로 삼류 작가라고 생각해서, 어디에서 '작가'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고, 누가 나를 작가라고 알아봐 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나마 2010년부터 시작한 페이스북이 밖으로 향한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 일주일 전,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던 날도 돌아오면서 쌀국수를 먹었다. 일주일 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면, 이번에는 안심하는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두 달치 약을 받았고, 내 일상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약을 전혀 먹지 않고 살았다. 퍽 건강한 편이었고, 내가 건강한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고 감사하며 살았다. 어머니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나는 네 살까지 어머니 젖을 먹었다고 했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니, 아마도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퍽 건강하게 살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마다 고맙다고 혼잣말을 한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예전처럼 일상을 보냈다. 다음 병원갈 때까지 두 달의 시간이 있었고, 그때가 4월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음식은 싱겁게 먹고, 운동하고, 체중을 좀 줄이고...'라고 했지만, 나는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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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3
    건강일기-003 아산병원 병원에 올 때까지 일주일 동안 늘 해오던 일상이 이어졌다. 가능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내가 이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를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오로지 내 책임이 맞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검사를 하는 날에도 혼자 가려했지만, 아내가 휴가를 내고 동행했다. 아산병원은 인연이 있는 병원이다. 병동도 낯익고, 우리 가족이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라 마음은 편했다. 오전9시에 도착해 진료 접수를 하고, 마을 내과에서 받은 진료의뢰서와 초음파화면을 담은 CD를 제출하고 '간담도센터'로 갔다. 담당의사 선생님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 면담을 할 때, 의사는 이미 내가 제출한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B형 바이러스 보균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20대라고 했고, 건강검진을 언제 했느냐는 질문에 꽤 오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화면에 보이는 작은 점과 흰색 띠를 짚어가며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면담 시간은 짧았고,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에게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줄곧 금식을 하고 있었고,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곧바로 원하는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검사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채혈은 오전에, 위내시경과 CT촬영은 오후에 하기로 했다. 곧바로 채혈실로 가서 채혈을 했다. 열흘 사이에 피검사를 세 번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키와 몸무게를 쟀고, 피를 뽑았다. 며칠 사이에 세 번 피를 뽑으면서 느낀 건,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주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곳도 비교적 아프지 않게 채혈했지만, 아산병원 간호사의 채혈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채혈하고 위내시경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남아서 병원 바깥의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마침 벚꽃이 활짝 피었고,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봄이 한창일 때, 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나처럼 뜻밖의 소식을 듣고 황망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이 흐린 하늘처럼 우울했다. 나와 아내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위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았다 떠나가고, 점심 무렵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 군대 동기 모임을 했다. 내년이면 만40년이 되는 군대 동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다섯 명이 모인다. 그 가운데 세 명이 양평에 살고 있어서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다. 평택에 살고 있는 동기가 내년이면 정년 퇴직을 하고, 올해는 휴식년을 보내고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삽교천에서 꽃게찜과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고, 당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당구를 치고,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전화한 동기는 내가 병원에 검사하러 온 걸 알고 있었고,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 동기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동기들 모두 건강했으나 최근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위내시경 검사하는 곳에 접수하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과정에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사람들도 많고, 필요한 처치를 해야 하고, 의료진이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으니 그만큼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팔에 주사를 맞았다. 위 운동을 둔하게 하는 약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던 곳에서는 이런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그만큼 큰 병원이 갖는 장점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료진이 시키는대로 했다. 먼저 입을 벌리면 입안에 뿌리는 마취제를 뿌렸다. 그리고 침상에 비스듬히 누우면 되는데, 나는 이번에도 '비진정 내시경'을 선택했다. 몹시 괴로운 건 알지만 수면내시경보다 시간이 짧고, 곧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시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이 나왔지만, 그 뒤로는 참을만 했다. 이것 역시 지난 건강검진 때보다 부드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십이지장까지 내시경이 내려갔는데, 처치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옆에서 설명해주면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구역질은 한번만 했고, 참을만 했다. 그렇게 위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CT촬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CT는 태어나서 처음 찍는다. 찍을 일이 없다는 건 운이 좋다는 뜻이었고, 지금 CT를 찍는 건 그 운이 다했다는 뜻이다. CT를 찍기 전에 조영제를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손등에 주사기를 꼽는다. CT를 찍는 문 앞에는 조영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CT를 찍기 전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순서를 기다리다 촬영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을 말하고-이 과정은 모든 처치 과정에서 항상 반복했다-기계의 침상에 누웠다. 헤드폰을 씌워주었는데, 그곳에서 CT를 조작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촬영을 하는 중간에 조영제를 주입했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CT를 찍을 때도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참고를 반복했다. 약 10분 정도 누워서 CT촬영을 하고 나오니 이날 해야 할 검사를 모두 마쳤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왼손 손등에는 주사바늘을 뽑아 지혈을 한 탈지면을 붙이고, 오른쪽 손목에는 검사를 받는 환자의 코드가 찍힌 팔찌를 낀 채 병원을 나왔다. 오후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서울의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 오늘 오후까지 만24시간이 넘도록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오늘 아산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퍽 운이 좋아서(?) 오늘 필요한 검사를 다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 들러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조금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병원에서 오후3시 무렵 올림픽대로를 따라 집으로 오는데, 서울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평일 아침 출근길보다 훨씬 많아서 도로가 차로 막혔다. 우리가 가는 길도 차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막히지 않고 잘 빠져나갔는데, 서종IC를 빠져나와 문호리 쪽으로 들어서자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현상이다. 이 행렬은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양방향으로 계속되었다. 벚꽃이 피어서일까.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이번 주말이 절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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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2
    건강일기-002 발병 오랜동안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다. 10대 중후반에 편도선염으로 몇 차례 몹시 고생했는데, 그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편도선염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편도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 심하게 오르고 목으로 물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럽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염증 부위를 찢은 다음 고름을 빼내고 약을 발라주었는데, 그렇게만 해도 곧바로 열이 가라앉고 살 것 같았다. 20대 이후로는 편도선염이 발생하지 않았고, 병원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 몸에 B형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은 젊었을 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B형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간경변으로, 간암으로 발전한다는 상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해서 약 6년 직장생활을 할 때, 건강검진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B형 바이러스 항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더욱 그 뒤로 안심하고 지냈다. 문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지금까지 중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내가 자발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는 많았으나 딱히 의심할 만한 증상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2021년 3월 25일, 건강검진을 받았다. 강남에 있는 KMI에서 했는데, 건강검진의 순서가 그렇듯 키, 몸무게, 혈압, 체지방 등을 확인하고, 피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순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복부초음파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던 중, 검사를 하던 분이 잠시 나갔다 다른 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분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나에게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간은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내 간은 울퉁불퉁하게 보였고, 곳곳에 하얀 점과 긴 크랙이 보였다. 이걸 '결절'이라고 했다. 검사를 하는 분이 신중하게 말했다.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 가능한 빨리 내과에 가보시라. 건강검진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위내시경할 때다. 보통 수면내시경을 하는데, 나는 비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비수면내시경의 괴로운 경험이 떠오르는 걸 보니 과거에도 이런 방식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입안에 마취제를 뿌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내시경이 목을 통해 위로 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매우 괴로운 시간이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해야 하고, 검사를 받고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그렇게 12시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고 말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가벼운 정도가 아니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분이 하는 말의 뉘앙스를 들어보면 간경변의 상태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하는 날, 오전과 오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 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이 굳어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태평하게 살았다. 그러다 검진을 통해 간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플라톤주의를 떠올린다. 나는 오전이나 오후나 변하지 않은 존재지만, 나의 의식은 오전과 오후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실재하는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아무 걱정 없던 오전의 나, 병변이 발견되어 온통 근심과 걱정,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나는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극명하게 나뉘는 존재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건 얄팍한 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은 길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매 순간 흔들리고, 출렁거리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람의 본성,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아내와 점심은 맛있게 먹었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은 KMI는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그 중간에 한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갈치조림을 먹었다. 오후에는 내내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 책을 고르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점에서 4시간 정도 책구경을 하고, 나와서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걸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사람도 많았고, 도로는 차로 가득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전동킥보드를 탄 사람들이 마구 질주했다. 걷다가 역삼역 근처에서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서울에 나오면 우리 마을에서는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 더 걸어가니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그냥 갈까 하다 매장에 들러 햄버거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로봇이 햄버거가 든 봉투를 싣고 와서는 주문번호를 번쩍거리며 알려준다. 기계에서 주문하고, 로봇이 가져다 주는 햄버거를 받아보니, 사람의 노동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저녁은 서울에서 구입한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노브랜드 햄버거를 먹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밤에 인터넷에서 '간경변'과 '간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서 읽었다. 단순한 '간경변'이라면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간암'은 차원이 달랐다.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하니, 다른 암과 비교해도 확률이 낮은 편이다. 3월 26일. 오전에 양평읍내 있는 내과를 찾아갔다. 우리 가족이 다 찾는 내과여서 의사선생님도 안면이 있다. 시골 읍내의 병원은 오전에 사람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 어제 건강검진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다시 피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B형 바이러스 보균자인지, 술담배를 하는지, 건강검진을 언제 했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면서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간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에는 깨끗하지 않은 표면이 보였고, 약간 하얗게 보이는 작은 점과 역시 하얀 긴 띠가 보였다. 그 화면은 내게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보였고, 백남준의 설치미술에서 보이는 작은 모니터의 전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속의 장기가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은 내 육체의 탈아날로그 이미지였으며, 그 화면에서 발견하는 병변은 육체를 좀 먹는 세포의 활동이었다. 그 세포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내 몸에서 태어나 자란 세포였다. 최초에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싸우던 세포들이 어느 순간 내 몸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초음파검사의 결과를 본 의사는 어두운 얼굴로 '간경변이 온 건 확실하고, 그보다 예후가 더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간경변인지, 간암인지 알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빨리 아산병원으로 연결해 줄테니 가보시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일어서서 나오는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의 말과 표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쁘다면 간암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에게 아산병원에 예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아산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아주었다. 4월 2일. 아산병원 가는 날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여전히 건강했고, 내 몸속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부조리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아침에 걷기를 했지만, 이제는 병변을 알았으니 게을러지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내 생각, 느낌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 내리는 길을 걸었다. 일요일이지만 비 내리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은 관념의 바다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 같은 것이어서, 방울이 튀어올랐다 다시 떨어져 형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도 무수히 튀어올랐다 사라진다. 나의 불성실한 태도로 건강을 잃었다. 앞으로 어려운 나날이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지극히 '현대적 인간'이자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리얼리즘'의 전형적 인물로 본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거대한 서사의 격랑에 휩쓸리며 신과 자연과 자신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존재라면, 카뮈의 인물들은 외부의 힘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데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개인)의 의지일 뿐이다. 그런 태도는 불교적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결과)은 과거에 내가 했던 행위들의 집적(원인)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총체적 삶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말처럼, 삶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조리한 삶이다. 카뮈는 그런 인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부조리한 삶을 살았고, 뫼르소의 감정에 완벽하게 동화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뒷집 사시는 어르신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이 그 병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였음에도.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선배가 작년에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내 나이였으며, 예후도 없이 갑자기 발병했고, 스스로 죽음을 판단했다. 두 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담담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의지의 표현인가를 알게 된다. 봄비는 뭇생명을 깨우고, 자연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생명 또한 의연하고 겸손한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1
    건강일기-001 들어가는 글 이 글은 수많은 투병환자가 쓴 투병기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서도 간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학적 변화와 함께 심정적 변화를 기록한 투병기다. 모든 사람은 '개별성'의 존재라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확률은 0%와 100%일 뿐이다. 나는 0%(건강한 사람)에서 '갑자기', '느닷없이' 100%(건강하지 못한 사람)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나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과 며칠 전, 병원에서 '간경변 환자'로 확진되었으며,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아서 '간암'의 확률을 예상해야 하는 '환자'다. 이제 막 병변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이 기록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기억이 생생할 때부터 기록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약물을 투여하며, 심각하면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정상'이었을 때의 기대수명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은 확실해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인 76세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지금도 날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나 자신을 객관으로 기술하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감정에 치우지지 않도록 노력하되, 나의 주관,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변화를 기록할 생각이다. 본격 투병을 하게 되면 글을 쓰지 못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글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발병부터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과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는 이렇게 완치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섣부른 희망이나, '투병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아는 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것이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 감정을 충실하게 기록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도 이 글(연재)이 길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최근 내가 겪은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이 글이 짧아질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한 분은 아흔 두 살의 어르신으로, 췌장암을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다른 한 분은 작년, 내 나이(60세)에 말기암이 발견되어 약 4개월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연세 많은 어르신의 단호한 결심은 존경스럽고, 갑자기 말기암으로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선배와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선배 역시 자신의 투병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만, 돌아가신 두 분처럼 단호하고 담백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렇게 지저분한 변명을 남기고 있다. 그건 어쩌면 마음 속에서 생존을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두렵다. 건강할 때도 '죽음'은 막연한 공포였지만, 건강을 돌보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죽음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를 가진 존재로 내 앞에 서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낭떠러지를 걷는 듯한 긴장과 매 순간의 절박함이다. 그 처절함은 어떤 말이나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며, 누구나 실제 눈앞에 닥칠 때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다고 병을 발견하고 투병을 하는 기간이 내내 죽음과 맞닥뜨리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일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으로 과거가 현재를 밀고 가는 시간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중첩하면서 투병하는 사람의 감정은 공포, 절망, 비관, 슬픔, 고통와 같은 비극의 감정과 눈 앞에 있는 현실에서 반응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 감정을 갖게 된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소견을 듣고, 처치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감정으로 괴롭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투병하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하면 슬그머니 희망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죽음까지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죽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게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일수록 살아야 할 나날이 많아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제 60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회에 조금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충격, 절망, 좌절, 슬픔 같은 감정이 밀려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쉽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걸 느꼈다. 이 뒤섞인 감정의 변화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경변 결과를 알기 전에 3회까지 써 놓은 글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현대판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의 시간]이 현재 판매 20만부, 인쇄 30만부를 넘어섰는데,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지 못한 분이 많아서 실질 판매부수는 오늘까지 이미 30만부가 넘은 것으로 보인다. (고일석 기자의 글 참조) 출판사는 종이 구하랴, 인쇄소 확보하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나는 예약판매를 구입했음에도 1판2쇄를 받았고, 어제 다시 추가 구입한 책은 1판 23쇄였다. 불과 열흘도 안 되어 23쇄였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쇄를 찍어내고 있으니 신기록을 쓰고 있다. 출판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표인 김언호 선생)는 이럴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조금 쓴소리를 한다면, 이럴줄 몰랐다면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과 기류를 올바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고, 촛불시민의 뜨거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니 좀 서운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이런 부족한 대응이 오히려 [조국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증폭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니 오히려 좋은 결과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도 [조국의 시간]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책이 초기에 많이 팔리고 관심이 줄어들기 보다는, 꾸준히 판매되어 베스트셀러는 물론, 스터디셀러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적들'은 [조국의 시간]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온갖 시비와 더러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을 비난, 조롱하는 것은 결국 조국 전 장관을 향한 것이므로, 이들의 비난, 조롱, 폄훼 같은 것들은 이미 짐작했던 바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대붕'이 등장한다. 대붕의 한쪽 날개만으로도 바다를 가릴 정도로 크고, 온힘을 다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조국 전 장관을 두고 벌어지는 '멸문지화'의 능욕은 '대붕'을 잡으려는 잡새떼의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사냥꾼 '검찰새'는 온갖 무기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공격했다. 그것들이 사용한 무기는 비유하자면 화살, 창, 도끼, 칼 같은 것들이고, 이것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붕의 날개를 찢으려 했다. 여기에 '기자새'들이 가세해, 한꺼번에 수십, 수백, 수천개의 펜촉을 날리는 공격으로 무려 100만 개의 펜촉을 날려 대붕의 날개를 꺾으려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당새'들은 '검찰새', '기자새'와 내통하면서 대붕이 가는 길을 알려주고, 곳곳에 함정을 파두었다. 그렇게 '적들'의 공격을 받은 대붕은 피를 흘리며, 날개가 꺾일 수도 있는 절망의 순간도 있었으나, 그들보다 더 많은 촛불이 바다로 향하는 길에 빛을 밝히며 대붕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대붕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촛불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적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들'은 악랄하고, 저열하며, 천박하고, 야비하다. 그들의 심성은 일찍이 비뚤어졌고, 오로지 세속의 돈과 권력을 탐하느라 눈이 멀었다. 그들은 시궁창에서 살며, 썩은 음식을 먹고, 죽은 쥐와 오물덩어리 사이에서 잠을 잔다.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를 죽이고, 폭행하고, 가진 것을 빼앗고, 뒤돌아서면 뒤통수를 때린다. '적들'은 대붕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귀하고, 깨끗한 대붕이 하늘을 날아가는 순간, 시궁창에 사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고, 더럽게 보이며, 참을 수 없이 비참하고,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온갖 더러운 오물 사이에 사느라 질병에 시달리고, 기괴하게 변형된 '적들'은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는 것이 비참하다. '검찰새'는 권력을 가졌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기자새'는 사실을 밝혀야 하지만 돈을 좇느라 눈이 멀고, '야당새'는 오래 전부터 사악한 집단에서 나온 것들이라 근본이 더럽고 야비하고 타락한 존재들이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권력도, 돈도 없었지만, 오로지 깨끗한 마음, 하늘을 날아오르는 대붕의 뜻에 공감하는 마음, '적들'에게 공격당하는 대붕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 하나는 약하지만,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은 어두운 밤을 밝히고, '적들'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런 촛불시민들이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면서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조국의 시간] 한 권은 하나의 촛불이다.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는 것은 한 조각의 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의 정의가 모여 정의로운 탑이 되고, 그 탑은 거대한 촛불처럼 불길이 타오르며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우리가 구입하는 한 권의 [조국의 시간]은 단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적폐', '적의 무리'를 짓밟아 올바른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책은 조국 교수가 썼으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촛불시민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박준영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박준영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그동안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막연하지만 답답했던 느낌을 방금 올라온 그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을 읽고서야 뚜렷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왕이면 같은 변호사인 분이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논리적으로 비판해주면 좋겠는데, 우선 내가 참을 수 없는 부분만이라도 언급하려 한다. 박준영 변호사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은 조금 긴 글인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만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김학의는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다. -피해 여성들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음에도 변명도 못했다. -긴급 출금 자체가 불법이다. -김학의는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부각'의 목적에 쓰여지는 '병약한 개'다.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김학의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형당했다. 이 내용 외에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몇 가지 적당하지 않거나 잘못된 예를 들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신영복의 '담론'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사례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김학의 주변 사람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 미안한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한 김학의 -별장 접대는 15년 전,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지탄, 실추된 명예, 가족과 주변 사람의 고통,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형사책임보다 가볍지 않다 -헌법재판관 조승형의 의견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 사회적 살인을 당한 김학의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이 갖가지 목적으로 김학의를 이용 -김학의의 1심 최종진술 박준영 변호사(이하 '박준영')의 글은 크게 두 가자로 구분할 수 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시각과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건 다시 '법 논리'의 시각과 '감성'의 시각으로 치환해도 동일한데, 이것이 박준영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몰역사적이며 감정에 치우쳐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박준영은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위의 정리한 내용에 모두 들어 있다. 먼저, 박준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법조항'에서 '공소시효'에 관해 말해보자. '공소시효'란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의 소추권 및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재판의 공정성', '처벌의 필요성', '공적 비용', '형벌권의 소멸시효' 같은 이론들이 이를 뒷받침 한다. 공소시효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존재하거나 사라지고, 기간도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등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박준영은 '공소시효'가 절대 기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그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직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소시효는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독일에서는 전쟁범죄자를 추적하고 처벌하는데 지금도 전담 부서를 두고 맹렬히 전범자의 뒤를 쫓고 있다. 이미 1천 명이 넘는 전범자들을 추적해 체포, 처벌했거나 그 과정에서 고령으로 사망하는 전범자들이 나오고 있다.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건 박준영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범죄에 준하는 인륜의 파괴하는 범죄는 한국에서도 공소시효를 없애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것 역시 박준영이 모를 리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소시효'를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옹색할 뿐 아니라 비겁한 태도인 것이다. 김학의가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결과를 원인에 꿰어 맞추는 견강부회의 논리다. 김학의는 '범죄자'다.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고, 구체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공직자의 윤리를 훼손한 비윤리적 공직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명확하게 법의 처벌은 물론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지탄도 함께 받아야 한다. 박준영이 말하듯, 김학의가 다른 조직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당하는 존재라는 건,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비논리적 연결이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다른 어떤 조직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이용하든 그걸 두고 김학의의 범죄를 변호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준영의 긴 글에서 법적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감정'이다. 변호사가 법적 논리로 김학의를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는 감정에 호소한다. 김학의가 '약자'라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포괄적 의미에서 '약자'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김학의는 학생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검사였고, 한국의 1% 안에 드는 최고 엘리트 계층이며, 고위 공직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다. 그런 김학의가 범죄를 저지른 이후 갑자기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니, 그 말이 과연 합리적인가? 박준영이 예로 들은 내용들은 적절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신영복이나 조승형의 글을 인용한다고 해서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가 가벼워지거나 사라지는가? 더구나 박준영은 김학의의 처지를 감정적, 감성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실추된 명예, 사회적 지탄, 사회적 살인 같은 문장으로 김학의의 처지를 옹호하고 있는데, 보자, 대체 이 모든 결과들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 원인이 어디에서 왔고, 원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김학의가 지금 놓여 있는 범죄자, 사회적 지탄, 실추한 명예는 과연 누가 한 행위의 결과인가? 박준영은 계속 결과론으로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주제에 관한 논거와 주장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김학의는 범죄를 저질렀고,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처벌받았으며,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고, 얼굴을 감추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도망다니듯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받은 사회적 지탄과 실추된 명예가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한 건 박준영이다. 누가 김학의를 사회적으로 살인했는가? 김학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당한 사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그것은 김학의가 과거 가졌던 막강한 검찰 권력의 비호 때문이었으며, 지금도 검찰은 선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박준영도 잘 알 것이다. 박준영은 '재심 변호사'로 알려졌고, 누구보다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나 역시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김학의와 관련해서 박준영은 경주마처럼 시야를 가린 채 뛰고 있는 '법 기술자'로서의 변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전제는 옳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에 의해 매우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김학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쪽에 서 있는 권력자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특정한 계급, 계층의 이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옳지만, 김학의보다 더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정의나 윤리나 도덕, 법률은 동시에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학의 같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보다는-김학의는 스스로 돈과 권력이 있으므로 알아서 잘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인권'을 더 챙기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박준영이 쓴 '인간의 존엄성 3'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전문 지식에 빠져 맹목이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낀다. 박준영은 분명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을 만들었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크메르 루즈가 자기 국민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준영은 '권력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인 '법'으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법'은 '법조문'만이 전부라고 판단하고 해석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다. '법'은 인류의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도구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이면서 인류의 양심과 정의, 도덕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든 하나의 '규칙'이며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가해자들을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과 신변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과정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를 우선 보호하고, 배려하고, 그의 입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 법의 정신에도 옳바르다. 피해자들이 과거의 폭력과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심할 정도의 사회적 배려가 있은 다음에,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숨어 지내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가해자인 김학의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을 박준영을 정말 모르는 걸까. 그 피해자들이 김학의에 대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학의가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살인'을 당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박준영은 가해자에게 실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폭력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은 '왜곡과 과장' 때문에 그들의 인권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닌가? 혹시, 박준영 자신이 김학의가 가진 권력에 과몰입해 '대리 권력자'로 감정 이입한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당연히 박준영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그가 한국의 '남성'이고 '변호사'인 것은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나는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그가 지금 김학의 사건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법'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일수도 있겠으나, 지금 가해자인 김학의를 옹호하는 주장은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한겨레신문의 천박하고 야비한 행태
    한겨레신문의 천박하고 야비한 행태 어지간하면 그냥 못본 척하고 지나가려 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할 때의 정신을 완전히 잃고, 이제는 수많은 '기레기'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것처럼, '가난한 조중동'인 '한겨레'를 두고 쓴소리를 해봤자 내 입만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한겨레' 논설위원 권혁철이 ['모병제는 진보' 도그마 경계해야]라는 논설을 읽고는 우선 한숨부터 나왔다. 한겨레 논설위원 수준이 이따위니까 그 밑에 기자들 수준은 말할 것도 없는 걸 알게 된다. 권혁철은 '모병제'가 진보진영이 찬성하고, 징병제는 보수 쪽에서 유지하기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우선 한국에 '보수'가 있는지부터 물어볼 일이다. 여기에 권혁철은 '모병제'가 '병역의 시장화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은 물, 전기, 가스,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시장논리를 반대하면서 왜 병역의 시장화 정책인 '모병제'에는 찬성하느냐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권혁철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논리를 비튼다. 한국의 '신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시장화'했다. 전기, 가스, 교육, 통신 등이 이미 사유화 즉 '시장화'했는데,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권혁철이 똑바로 말을 하려면, '모병제'의 시장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화'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현실을 비판하고,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를 다시 원래의 공공재, 공공서비스로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선이다. 권혁철은 '모병제'를 반대하는 논리로 현재의 '징병제'는 [재벌 아들, 장관 아들, 국회의원 아들, 골목 가게 주인 아들, 비정규직 노동자 아들 구분 없이 모두 죽거나 다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징병제'는 '무조건 평등하다'는 비현실적 전제를 들이댄 것이다. 권혁철은 한국의 '징병제'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진짜 모르는 걸까? 모른다면 신문사 논설위원씩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알고도 이런 말을 한다면 아주 악랄하고 야비한 인간이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 본인과 그 자식들의 병역 현황, 재벌들 본인과 그 자식들의 병역 현황을 살펴봐라. 평범한 서민과 그 자식들이 군복무를 한 것과 국회의원, 재벌과 그 자식들이 군복무한 통계를 보면,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온다. 권혁철은 마치 '징병제'가 '평등한 사회'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처럼 말하고 있는데, 징병제인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평등한 징병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을 할까. 아, 법으로는 평등하다고? 법이 평등하니까 평등한 거라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판사의 범죄는? 검사의 범죄는? 사실보도를 하지 않는 기자 쓰레기들의 범죄는 대체 뭐라고 변명을 할지 참 궁금하다. 여기에, 지금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 - 찾아봐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라가 있다 -은 그러면 전부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가? 아, 한국은 분단과 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서 징병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논리인가? 그렇다면 권혁철은 '북한'을 한국의 '주적'으로 보고 있는 건가? 그건 수구집단이나 하는 짓인데? 심지어 국방부에서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에서 제외했고, 한국의 국방에서 현재 '주적' 개념은 사라졌는데도 '징병제'를 해야 한다고? 게다가 한국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특히 어린이, 청년 인구 감소율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국방부에서는 군인의 숫자보다는 무기 체계를 자동화, 기계화하는 방향으로 편성하고 있어서 군인의 숫자가 과거 60만 명을 웃돌던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권혁철은 군인의 숫자가 50만 명이 넘어야 하는 이유를 들면서 미국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들이댄다. '1994년 여름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석달 내 국군 사상자를 49만 명으로 시뮬레이션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발표나 한국 보수(극우) 집단의 남북한 전쟁 비교는 당연히 편향되어 있다. 이런 일방적 자료를 근거로 들이대는건 쓰레기 언론들이나 하는 짓인데, 한겨레의 논설위원이 따라하고 있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한심할 뿐이다.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보다 단순비교로도 30배가 넘는다. 국방력은 다르다고? 무기의 숫자나 군인의 숫자는 북한이 더 많다고? 알리의 주먹 한 방과 어린이의 주먹 100개를 비교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권혁철의 수준 이하의 '논설'을 읽고서도 못 본 척했다. 그러다 오늘 백기철 칼럼 '그 반성문이 어색했던 이유'를 읽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백기철의 글도 일부러 찾아본 것이 아니고,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공유했기에 읽었다. 백기철의 글은 고등학생의 독후감 수준도 안 되는 천박하고 너절한 글인데, 왜 그런지 보자. 백기철은 글에서 '조국 사태'라고 단정한다. '조국 사태'라니? 대체 조국 전 장관이 뭘, 어떻게 했는데 '사태'라고 하는 건가? 백기철이 말하는 '사태'의 내용은 이렇다. '자녀들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 등은 형사 법정에서 면책된다 해도 도덕적, 역사적 책임에서까지 자유로울 순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든 개인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뿐이다. 자녀들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라니? 그게 대체 뭔 개 풀뜯어 먹는 소리인가? 자칭 언론인이라는 백기철은 명확한 근거도 없이 '무리수'라는 단어로 조국 전 장관을 비난하고 있는데,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게다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니? 대체 어떤 처신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막연하고 두루뭉수리하게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말하면, 백기철은 언론인으로서 무리수를 두거나 부적절한 처신을 한다고 비판하면 뭐라고 대꾸할텐가? 백기철은 양비론을 들이댄다. '아마도 조국도 틀렸고, 윤석열도 틀렸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되먹지도 않은 양비론 따위를 들먹이면 자칭 진보적이고 균형잡힌 언론인으로 보이고 싶기는 한가보다. 윤석열 편은 들고 싶은데, 너무 노골적으로 편을 들면 안되니까 둘 다 비판하는 척 하면서 조국 전 장관을 떠 '까는' 거겠지.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에게 '결자해지'를 하라고 말한다. 조국 전 장관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결자해지를 하라는 건가? 백기철의 이 문장을 받아서 조국 전 장관은 지난 2019년 8월 25일 '장관후보자 대국민 사과문'과 2019년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 내용, 2019년 9월 6일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을 통해 이미 충분하고도 넘치게 사과했다. 백기철은 조국 전 장관의 이런 사과의 내용을 알면서도 계속 추궁하고 비난하는 거라면 아주 저열하고 악랄한 인간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능한 기레기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나는 창간주주였지만, 한겨레신문과 인연을 끊었고, 무엇보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던 선배 기자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는 현재의 한겨레신문 구성원들의 면면이 더 없이 너절하고 역겹기만 하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악의적인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끊없는 괴롭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비상식적, 비법률적, 비인간적 행위임에도, 자칭 언론인이라는 것들은 검찰과 한몸이 되어 조국 전 장관과 가족들 죽이기에 앞장섰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언론사에서 언론쓰레기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추악한 게이트로 남게 될 것을 장담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2021 보궐 선거의 의미
    2021 보궐 선거의 의미 투표가 끝나고, 결과는 참담했다. 반민족, 반민주, 매국정당의 후보가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지자체의 시군의원도 15군데에서 13군데를 국민의힘에서 차지했다. 이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이 좋거나, 처음부터 지지했던 사람들이 투표한 것보다는 현 정권을 심판한다는 의미가 더 큰 걸로 보인다. 선거 결과에 관해 많은 사람들의 분석과 의미 부여가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해서 몇 가지 현상을 주목하며 이번 선거가 곧 있을 대통령 선거는 물론, 앞으로 한국사회에 끼칠 영향까지를 염두에 두고 정리했다. 1 민주당 민주당(열린민주당)의 초재선 의원 가운데는 꽤 훌륭한 재목이 있다. 당장 꼽아봐도 최강욱, 박주민, 고민정, 이재정, 김용민, 김종민, 손혜원, 백혜련 등이 있는데, 이들은 민주당에서도 유능하고 진보적 태도를 지니고 있어서 미래의 민주당을 끌어갈 인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 외에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의 요구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무려 180석을 몰아준 시민들은 민주당원이 아니거나, 민주당이 마냥 예뻐서 투표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 정치에서 아주 나쁜 놈보다는 덜 나쁜 놈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 뿐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왜곡된 양당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는 명백히 '미국식 민주주의'를 모방한 것이며, 이 모방은 애초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의 정치 간섭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양당제-다당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양당제-는 여당과 야당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완벽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적어도 '양당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공동의 이해 관계에 있으며, 이 체제의 수혜자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한편, 양당제를 깨뜨리기 위한 군소 정당, 진보 정당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인 기득권 두 정당에 부딪쳐 아직까지 한국정치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군소 정당이 정치판을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물적, 인적 자원의 뚜렷한 한계와 공고한 기득권의 제도적 틈을 뚫을 만한 무기(조직, 정책, 인물 등)가 부족한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군소 정당의 탄생과 소멸을 보면, 외부적 조건의 영향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스스로 붕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양당제'를 비판하면서도 그 양당제를 깨뜨릴만한 동력이 유지되었는가를 보면, 대표적으로 지금 '정의당'이 보여주는 비관적 현실처럼, 특히 진보정당에서조차 부르주아 정당인 민주당보다 덜 개혁적이고 시민의 요구와 역사적 과제를 잃어버린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양당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얻은 결과에 만족하며 촛불 시민의 개혁 요구를 꾸준히 묵살해왔다.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무려 180석을 밀어주었던 촛불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오로지 개혁, 개혁만이 우리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박병석, 이낙연, 김종인 같은 인물들이 당의 지도부에서 개혁을 가로 막고 있었고,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일부 초선의원을 제외하고 침묵하거나 암묵적 동의로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했다. 이들 반개혁 민주당 의원들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의원들로, 촛불 시민의 개혁 요구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한국사회의 기득권 -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의 기득권 -을 유지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이다. 이들 반개혁 민주당 의원들은 본질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나라의 정의, 진보, 개혁, 보편적 복지 같은 촛불 시민의 시대적 요구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특권을 누리려는 지극히 부르주아적 이해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진보 성향의 촛불 시민은 딜레마에 놓여 있다. 민주당의 반개혁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그렇다고 매국정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는 없으며, 군소 정당 가운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이 있는가를 찾아보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즉, 개혁의 대안이 되는 정당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깝고 답답하다. 개혁의 대안이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에서, 민주당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계속 패한다 해도,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릴 것이며, 의석 숫자가 줄어들 뿐, 이들이 누리는 특혜는 변하지 않는다. 즉, 민주당 다수 의원들은 세상이 반동으로 변하든 말든 자기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기 때문에 촛불 시민이 그렇게 목이 쉬고, 피눈물이 나도록 외치는 개혁의 목소리를 어디서 개가 짖는냐고 딴청하는 것이다. 2 욕망의 부활 이번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서울과 부산에서 우연히 '성'과 관련한 문제로 시장이 자진 사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때문에 치뤄졌다. 부산시장 오거돈은 자신이 성추행했음을 명백히 밝히고 사퇴했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추행 혐의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두 시장이 모두 '성' 추문으로 물러났다고 공격하고, 그 공격은 일정 부분 대중에게 먹혔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결정적 패인은 '부동산' 문제였다. LH공사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빼돌려 개발 지역에서 땅투기를 하고,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본 것에 대해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부가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막으려는 정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자 이에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의 총공격이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인 부동산 정책을 집권 초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추진했어야함에도 미적거렸고, 그나마도 어정쩡한 상태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대중의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는 선거 과정을 통해 상당한 범죄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것은 과거 이명박이 전과14범이라는 타이틀을 갖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개혁 정부였던 노무현 정부가 반동, 수구, 기득권 세력의 공세에 밀려 개혁의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신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다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있었던 두 인물이 바로 이번에 서울시장,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오세훈과 박형준이다. 이들은 이명박의 휘하에서 이명박이 출세하도록 적극 도운 사람이다. 두 사람의 거짓말은 이명박의 태도와 매우 흡사한데, 일부러 배우지는 않았겠지만, 세 사람은 서로의 심리가 '동기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심리적 동기화'는 자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고,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인지부조화 상태를 의식하면서 욕망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자아를 분리해서 욕망을 좇는 자아를 키우고, 정직한 자아를 말려 죽이는 행위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천박하고, 저열하며, 교활하고, 악랄하고, 야비하며, 음흉하고, 포악하며, 신의가 없는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돈'이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이며, 주변의 인간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오, 박 두 사람 역시 이명박과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연인으로의 개인이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쌓인 친일, 친미, 매국, 매판, 사대, 천민자본주의의 아이콘이다. 이명박이 그 아이콘의 핵심이며, 두 사람은 이명박의 변형된 아이콘이다. 이명박, 박근혜가 감옥에 갇히고, 새 정부가 들어선지 불과 4년만에 대중은 이명박의 욕망을 다시 선택했다.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망을 채우기에 몰두했고, 부패한 관료, 언론이 그 욕망의 단맛을 즐겼으며, 무엇보다 이윤추구에 충실한 자본(가)이 이들을 끌어안았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장밋빛 미래를 화려하게 늘어놓으며,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고, 사교육으로 일류대학에 진학하며, 모두들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미래를 찬송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여서 이들 가진자, 기득권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사회는 상위 1%의 강남 부자들과 그의 자식들에게나 해당하는 청사진일 뿐, '비강남'에 사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도 볼 수 없는 암담한 미래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대중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거짓말이라도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말을 들으려 한다. 교육공무원이 대중을 개, 돼지라고 말해도 그 말이 옳다고 판사가 판결하고, 대중은 이제 당연하게 개, 돼지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개, 돼지라도 오로지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끝없는 욕망의 추구와 무한 경쟁으로 내가 잘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못 사는 걸 보는 것이 낫다는 악에 바친 경쟁의 증오심으로, 남이 잘못되는 꼴을 보면서 기뻐하는 야비하고 악의에 찬 타락한 인간이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번 선거였다. 3 오염된 미래 이번 선거가 개혁으로 가는 길에서 일시적 반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그렇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명박, 박근혜를 겪었고, 그 시기에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더욱 심각한 건 가치관의 타락이었다. 즉,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얼마든지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으며, 자라나는 세대는 이명박, 박근혜의 집권을 보면서 민주주의, 정의, 예의, 상식, 도덕, 평등, 배려, 공동체, 복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버리고 거짓말, 사기, 범죄, 욕망, 배신, 탐욕, 이기심, 배금주의, 물질만능, 돈, 부동산, 아파트 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하게 여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천박하고 역겨운 욕망의 추구가 이명박에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불과 몇 년만에 이명박의 아바타인 오, 박 두 사람이 서울과 부산 시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이명박의 욕망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의미하며, 오와 박이 시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과 부산은 다시 천박한 욕망의 도시로 타락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젊은 세대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기회를 잃는 것을 뜻하며,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협잡, 사기, 거짓말 같은 타락한 정신이라는 걸 말하고, 시대 정신이 오염되어 이 시기의 청년들 사상과 정신이 썩어가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올바른 매국노 청산을 하지 못했다. 일본 앞잡이로 부역했던 매국노들이 권력을 잡았고, 그들은 일본을 모방했으며, 일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승만은 친일매국노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했고, 박정희는 그 자신 일본군으로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였으며, 군사반란을 일으킨 반역자였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까지 군사반란으로 이어진 기간을 보면 1948년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는 1993년까지 무려 45의 역사가 친일, 친미 매국 반동 세력이 한국을 지배했다. 그나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가 과거를 청산하려 노력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외환금융위기(IMF사태)로 한국의 경제는 '신자본주의' 체제에 포획되어 그때부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깊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단기직 노동자, 불안전 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곧바로 자본의 이윤으로 귀결된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은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고, 노동시장의 경쟁을 격렬하게 하는 원인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가난한 노동자, 서민이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추종하고, 그들의 권력 의지를 지지하는 것은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해당한다. 피해자인 노동자, 서민은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배를 불리는 자본가, 권력자, 부르주아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것은 명백히 멍청하고 어리석은 행위가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서민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더 잘 살게 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또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노동자, 서민보다 더 교육을 많이 받고, 세상을 잘 이해하며, 더 똑똑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배계급(자본가, 권력자, 기득권 집단(언론 등))의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은 입법을 통해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다. 노동자, 서민의 고통과 투쟁은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계급 갈등, 계급 투쟁,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착취, 권력과 자본이 벌이는 온갖 불법과 탈법, 범죄 행위는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자본의 논리 - 이윤추구 - 에 충실한 기득권 세력(자본가, 부르주아, 권력자, 언론)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카르텔을 만들며 지배 집단으로 공고한 세력을 구축한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가졌다. 돈, 권력, 스피커까지. 이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90%의 대중은 개돼지로 취급한다. 기득권 세력은 대중의 욕망을 부추기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인 이기심과 경쟁을 사회의 기본 멘탈리티로 구조화한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부동산과 일류대학과 대기업 취업과 의사, 판사와 같은 '사'짜 직업군으로의 진출이다. 모든 방송의 드라마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운 청춘남녀로 등장하고, 강남 출신의 연예인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으며, 강남이 한국을 대표하고, 이들이 지니고 다니는 사치품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다. 가난한 청년들은 자신의 현실보다는 손에 잡을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인 이들 돈과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 청년을 롤모델로 삼는다. 현실은 시궁창이면서 욕망은 강남 부르주아를 꿈꾸는 이들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더욱 욕망으로 타락하고 오염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지금 오와 박의 당선으로 드러난 것이다. 4 혁신의 아이콘 문재인 정부 말기로 들어오면서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개혁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촛불 시민의 개혁 의지를 이어받아 탄생한 정권이었지만, 촛불 시민이 바라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무려 180석이나 몰아주었지만, 개혁 입법은 극히 미미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드러내지도 못했다. 이것은 명백히 촛불 시민의 요구를 무시했거나 무능해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 의지가 높았다고 보는데, 대통령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의 몫이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개혁 의지가 부족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민주당 내부에는 반개혁 인물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고 판단하는데, 그건 민주당의 원래 속성인 '부르주아 정당'의 뚜렷한 한계이기도 하다. 현 시점 - 서울시장, 부산시장의 패배 - 에서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두 도시 시장 선거의 승리로 '국민의힘'은 강력한 동력을 얻었으며,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빌미를 준 것은 민주당의 무능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민주당을 욕하거나, 실의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에서 가장 개혁적 인물을 다음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지난 4년 동안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던 무능과 게으름과 어리석음의 역풍이었던 것이 분명한 만큼,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가장 개혁적인 인물을 앞으로 내세워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서 가장 개혁적 인물은 단연코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과거를 살펴보면 그는 단 한번도 개혁의 전면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토하는 세력이 있고, 이재명을 시기, 질투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은 민주당 내부에서 세력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이며, 민주당의 계보에도 들어 있지 않다. 그가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성남시장으로 성공적인 행정가를 증명해 보였으며, 그 결과 현재 경기도지사로 훌륭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는 것은 좋지만, 그들 내부의 더러운 권력투쟁으로 진정한 개혁가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토하거나 다음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은 더럽고 파렴치한 정당으로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을 경고한다. 지금 민주당이 실패한 부동산 정책, 주거 안정 정책, 일자리 정책, 기본 소득을 비롯한 경제, 복지 정책들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인물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유일한다. 지금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중의 타락한 욕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 지도자가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이재명 경기도지사라는 점은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다. 나라의 근본인 정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 등을 올바르게 구현할 수 있는 경험과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이재명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개혁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만이 더러운 욕망으로 타락한 한국사회를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페르소나
    페르소나 페르소나의 존재를 쉽게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분야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는 송강호 배우,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페르소나는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는 하정우, 박찬욱 감독의 페르소나는 최민식, 송강호, 스티븐 스필버그의 페르소나는 톰 행크스처럼 감독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감독의 분신처럼 표현하는 배우를 말한다. 페르소나의 본래 의미는 '가면'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배우들은 가면에 극중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얼굴 표정을 그리고, 목소리의 확산을 위해 고깔을 붙였다. 가면은 썼다 벗을 수 있으므로, 실제 자신의 정체성과 드라마의 속의 인물을 연기할 때의 인물은 분명히 구분되지만, 어떤 경우에 이 분리가 실패하면서 개인의 실제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이 구분되지 않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지킬박사와 하이드' 또는 '배트맨'을 보면, 지킬박사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하이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배트맨의 부르스 웨인은 억만장자이면서 박쥐 옷을 입고 고담시티의 범죄자를 찾아 없애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이때 지킬박사와 부르스 웨인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 모두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창조한 '하이드'와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순간 이들은 개인의 정체성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도 모두 의심받기 시작한다.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두 인물을 동시에 살아간다는 점에서 분열성을 내재하고 있는 반면, 서로 인격이 다른 두 사람일 경우에는 권력 관계의 서열에 따라 권력이 강한 자를 대리하는 페르소나가 탄생한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되는데, 이때 마이클은 자연인 마이클의 모습이 아니라 조직폭력집단의 두목인 아버지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가는 아버지의 페르소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권력집단 내부에서는 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모습을 동경하거나 스스로 동기화해서 자신을 권력자와 동일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특히 이익집단에서 이런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국가의 행정수반으로 국민의 이익을 가장 우선해야 할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마치 사기업을 운영해 이윤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명박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명박은 한국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인물로, 그의 삶 자체가 탐욕으로 뭉친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인데, 이런 유형은 그의 내면에 무의식으로 자리잡은 강력한 컴플렉스와 대리 욕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명박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가족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 유대, 행복, 연민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으며, 이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마침 그 때 '욕망의 시기'를 건너고 있었으며, 어리석은 대중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당연히 불편하다. 독재자가 나서서 일방 밀어부치는 정치에 익숙했던 기성세대는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사회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여겼고, 여기에 기득권 세력-자본가, 수구 언론, 수구 반동 정치집단 등-이 민주주의 세력인 노무현 정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는 결국 좌초하게 된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좌초는 그 자체로 사라지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민주주의를 위한 뿌리를 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떻든, 이명박이 '신자본주의'의 기치를 들고, 대중의 욕망을 선동하며 나타난 이후, 국가는 이들 권력을 가진 이익집단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간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으로 대표하는 토목사업을 시작으로 '자원외교'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활동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부를 빼돌린다. 이명박이 집권하던 당시 오세훈, 박형준은 그 밑에서 '시다바리'를 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오세훈이나 박형준이나 그 전에는 진보지식인, 진보적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변신은 과거 김문수, 이재오처럼 노동운동을 격렬하게 하다 극우로 돌아선 것과는 다르게, 이미 상부 기득권 엘리트로서 진보적 태도를 유지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사회적 존재의 이익과 합치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성장 과정에서 결핍되어 있었던 여러 요건들로 인해 물질적 탐욕을 추구하는 기괴하게 비틀린 인간이었지만, 오세훈, 박형준은 그보다는 오히려 '탐욕' 그 자체에 매몰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오세훈이나 박형준의 성장 과정에서도 그런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잠재된 무의식과 현실적 욕망의 결합으로 더욱 단단한 욕망이 탄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이 보여 준 강력한 집착-오로지 '돈', '부의 축적'-을 가까이서 지켜봤을 두 사람은 이명박이 온갖 거짓말과 야비한 행동을 하면서도 오히려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배운 도덕, 양심 같은 기존의 관습과 개념이 아무 쓸모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즉, 우리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 양심, 질서, 비폭력, 배려, 정의 같은 단어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약한 자에게 주입하는 세뇌였으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범죄자, 조직폭력배, 깡패, 양아치들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즉, 도둑질, 강도, 폭력, 사기, 살인 등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함으로써 크게 두 가지 효과를 드러내게 된다.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에서 격리되어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은 곧, 사회를 구축한 기존 기득권 세력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다수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것도 교집합으로 성립한다. 기득권 세력은 다수 국민이 이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범죄는 그 자체로 분명 나쁘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범죄자 개인이 저지르는 사소한(?) 범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 그리고 그런 범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는 것이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이명박은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였으며, 그 아래서 '시다바리'를 하던 오세훈, 박형준은 욕망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명박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감옥에 갇혔지만, 오세훈, 박형준은 이미 이명박에게서 배울 것을 다 배우고, 이명박의 페르소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오세훈, 박형준이 이명박의 페르소나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건 좁은 의미에서의 페르소나였을 뿐, 이명박, 오세훈, 박형준은 보이지 않는 실체인 '욕망'의 페르소나라는 점에서는 헤어날 길 없는 존재들이다. 페르소나는 누군가의 대역이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존재다. 누군가의 페르소나인 인물은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하며 살아간다고 확신하지만, 그 확신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착각이다. 이명박은 자신이 결코 알 수 없었던 트라우마와 결핍을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물질에 집착했으며, 오세훈, 박형준은 좁게는 이명박의 페르소나로, 크게는 욕망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한국사회가 만든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던 운 좋은 인물이었으며, 그 시스템의 내부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즉, 오세훈과 박형준을 만든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는 이명박을 지지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던 사회였으며, 지금 그 두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명박을 지지했던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물질, 재화를 축적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의 기생충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일본이 가난해지는 원인
    일본이 가난해지는 원인 한 나라의 전체 부(재화)의 총량을 나타내는 지표가 '국내총생산'이다. 이는 나라에서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뜻한다. 1조 달러 이상인 나라는 16개 국가이고, 한국은 10위를 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국내총생산이 6조 2천억 달러로 최대치로 올라갔다가 2015년에 4조 3천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2018년에 4조 9천억 달러로 조금 올랐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총생산으로만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3배 많은데, 1인당 실질구매력으로보면 몇년 전부터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 한 해 예산만으로 보면 일본의 2021년 예산은 1,160조원이고, 한국은 558조원이다. 예산으로는 일본이 2배 규모로 크다. 여기에 인구를 대비하면 일본은 1억 2천만 명이고, 한국은 5천 2백만 명으로 일본이 2배 규모다. 단순한 비교로만 보면 일본은 국내총생산이 3배일 뿐, 인구수 대비로는 한국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제력이다. 여기에 중요 변수가 국가부채인데,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37%로 세계 모든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채 비율이 높다. 반면 한국은 37.9%에 불과하다. 일본은 국가채무로 인한 부채 상환에 쓰이는 예산이 한해 예산에서 20%가 넘는다. 일본 정부는 한해 예산을 정해 놓고, 정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한해 예산에서 그만큼을 떼야 한다. 인구 대비로 같은 금액의 예산이면서, 일본은 정부 부채가 많아서 국민 1인당 돌아가는 예산액이 한국보다 적은 것이 확실하다. 나라의 부는 국민 모두가 노력해서 키워나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나라의 부를 키워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극소수는 나라를 좀먹고 나라의 부를 축내기도 하지만, 한국은 큰 기복 없이 전쟁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 재해가 적은 것도 큰 몫을 했다. 반면 일본은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등 온갖 자연 재해가 자주 발생해서 나라의 부를 깎아 먹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 이 현상을 조금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1년에 1억 원의 수입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단독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월급을 받아서 기본 생활 - 의식주 -을 영위해야 하는데 들어가는 절대 필수 비용이 있다. 이 비용을 1억원의 30%인 3천만원으로 보자. 그리고 문화, 예술, 레포츠, 여행 등 여가 비용으로 20%인 2천만원을 쓴다고 하자. 이제 5천만원의 잉여금액이 남는데, 이 돈의 일부는 단독주택을 소소하게 수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20%는 건강을 위한 비용으로 따로 떼어둔다. 그러면 순수한 잉여금은 3천만원이 남는데, 이 돈으로 주택을 수리하거나 가전제품을 새로 구입하거나 집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천재지변이 잦아서 폭우가 쏟아져 집에 물이 새고,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슬고, 보일러가 고장나서 바꿔야 하고, 전기 설비에 문제가 생겨 수리해야 하고, 집이 점점 낡아가면서 단열, 방수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자. 여기에 전혀 예상하지 않게 지진이 나서 벽이 갈라지고, 심지어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집을 수리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써야 하는데, 2천만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게 된다. 지금 일본이 놓여 있는 상황이 위에 단순하게 비유한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 속하며, 피해 규모 또한 커서 나라(국민)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질 확률이 높은 나라다. 즉 일본에서 지진이 한번 발생할 때마다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조 원까지 가지고 있는 돈을 써야 한다고 할 때, 한국에서는 그만큼의 돈이 계속 축적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모아놓은 돈을 쓰게 되므로 나라의 경제는 궁핍해지게 된다. 극단적인 예로, 2011년 후쿠시마 지진 사태 때 동일본 전체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95년 발생한 한신대지진 때 일본의 경제적 피해는 GDP의 2.5%인 10조엔, 우리돈 120조원으로 추산했는데, 2011년 후쿠시마 지진 사태는 한신대지진보다 훨씬 강력하고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했으므로 보수적으로 잡아도 2배 이상이다. 2배만 해도 GDP의 5%, 20조엔이며, 우리돈으로 240조원이나 된다. 일본 정부의 추정 피해 금액은 31조엔으로 우리돈 370조원이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피해 비용은 들어가지도 않았다. 핵발전소 피해는 수십년, 수백년 이어지는 심각한 피해로,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일본의 자연재해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즉, 일본은 단지 집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370조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피해가 앞으로도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마다 일본은 천문학적 숫자의 비용을 들여 집을 수리해야만 한다. 이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할 수 있거나, 견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을 수리하는 비용은 결국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돈을 써야 하는 것이고, 이 돈은 국민의 삶과 복지, 건강, 교육 등 삶의 기본을 위해 필요한 돈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집수리에 쏟아붓게 되면 국민 개인의 삶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수리에 신경을 쓰다보면 다른 일 - 생산, 개발, 수출, 투자 등 -에 쏟을 여력이 부족하고, 그러면 수입이 줄어들어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일본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형적 단점으로 강제로 지불해야 하는 손실비용이 늘어나면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잃게 되고, 꾸준히 가지고 있는 부를 소모하게 된다. 일본은 2차 세계전쟁 이후 패전국으로 미국 앞에 납작 업드려, 미국의 도움과 한국전쟁의 특수로 이후 세계 경제 순위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고,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정점에 있던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은 해마다 추락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내적 모순을 지닌 채 경제가 성장한 기형적 구조를 가진 나라였으며, 후진적 정치제도와 자만, 경쟁국가-특히 한국-의 눈부신 성장 등으로 위기에 놓였는데, 결정적으로 일본을 무너뜨린건 일본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였다. 일본은 주기적으로 지진, 화산 폭발, 태풍이 발생하는데,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천문학적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이것은 '생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어서, 장사로 말하면 월 매출에서 상가임대료로 12%가 먼저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어 저축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투자도 해서 한동안은 버틸 수 있지만, 공룡이 쓰러지면 더 빠르게, 더 큰 충격으로 넘어지듯, 일본이라는 경제 공룡이 쓰러지는 건 생각보다 빠르고 강한 충격으로 쓰러질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세계 최고령 사회여서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인구 감소는 자연스럽게 경제 규모의 축소로 이어지게 되고,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심각한 나라는 복구비용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반면 한국은 북한, 중국, 동유럽에 있는 동포들을 흡수해 인구를 자연스럽게 늘리고, 경제 규모, 시장의 확보 등 대안을 마련할 여지가 많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지금 한진중공업의 크레인에 올라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글이 화제다. 먼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께 마음 깊이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설날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세시봉과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우리 세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들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인물 일게다. 나도 모처럼 70년대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김진숙 위원은 이들 ‘세시봉과 친구들’의 공연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무도,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이야기다. 물론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세시봉’ 시대를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본 글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이 그만큼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노동계급의 입장을 말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김진숙 위원을 좇아 ‘세시봉’ 시대와 당시를 살았던 사람으로, 노동자의 삶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세시봉’ 프로그램을 즐겁고 재미있게 봤다. 보면서 얼핏 70년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70년대의 그림자를 지웠다. 70년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시기의 엄혹했던 분위기, 힘겨운 나날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유쾌한 마음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지운다고, 머리에서 잊는다고 사라질 기억은 아니었다. ‘세시봉’을 보는 순간만큼은 좋은 기억들만 추억하고 싶었다. 진보 진영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으로 침잠한 강박이 있는 듯하다. 시대 상황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 시대의 아픔과 계급의 고통을 ‘개인화’, ‘내재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진보 진영이 계급적으로 뛰어나며, 도덕적으로 차별화를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늘 역사를 의식하고, 나와 계급을 일체화하며, 개인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증폭하는 일은 ‘유물론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항목이다. 특히 한국(남한)처럼 불행한 현대사를 가진 나라에서 소위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현대사와 자신의 삶 전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80년대 이후 소위 ‘학출’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 사회주의’가 마치 우리의 미래인 것처럼 왜곡된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지도’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노동계급의 조직과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세시봉’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존재한 음악다방이지만 김진숙 위원은 당시의 ‘순수’했던 청년문화 전체를 비판하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라는 말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고, 개인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으며, 무비판적인 사고방식, 체제순응적인 태도 등을 아우르는 상당히 모욕적인 단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운동’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순수’라는 단어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진숙 위원은 ‘세시봉’으로 표현되는 ‘순수의 시대’에 대한 경멸을 말하는 것일테다. 특히 70년대 노동자는 마치 불가촉천민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 70년, 전태일 선배의 분신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노동자의 처지에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노동현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텔레비전, 라디오는 연속극과 쇼쇼쇼와 사랑타령으로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사상계는 폐간하고, 씨알의 소리와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진보 진영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노동계급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70년대를 고통과 시련의 시기로 기억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70년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보화의 혜택을 노동자들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적은 차이겠지만, 근본에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만, 진보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경직성’ 만큼은 털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삶의 원칙과 경직성은 다르다. 우리는 변함없이 진보적 태도를 유지하고, 실천해야 하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만으로 일관된 삶은 스스로도, 주위 사람도 피곤하게 만든다. ‘운동’이든 ‘변혁’이든, 심지어 ‘혁명’이라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지 않는 한, 진보적인 삶은 결국 평생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생활’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 정태춘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태춘 씨는 초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많이 받았으나 점차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시작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받아주지 않게 되고, 주로 집회나 소극장 공연을 통해 노래했다. 정태춘 씨는 자신의 초기 노래가 ‘순수’했다고 말하면서, 그 노래를 평가절하 했는데, 정작 ‘현장’에 있던 나는 그 초기의 아름다운 노랫말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1970년대부터 노래한 정태춘의 노래 ‘촛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관념론자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70년대가 노동자에게 고통과 시련의 시기였기 때문에 ‘순수’한 노래를 부르고 즐긴 사람들을 ‘부르주아’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혁명가에게도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의 순간이 있는 것이고, 인간인 이상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순수의 시대’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을 뿐, 우리는 시대의 낭만과 역사적 과제를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판사 무용론
    판사 무용론 최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있는 직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미래가 불과 30년 이내라고 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요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대부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자동화에 기인한다.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측면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어떤 면에서는 인간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는 세계 전체의 바람직한 합의가 없는 한,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체제-지구 자원의 낭비와 인간 노동력의 착취-로 인한 파괴는 계속될 것이고, 그만큼 인류의 종말은 가까워질 것이다. 인간의 직업 역시 자동화, 기계화에 의해 무수히 사라지게 될 터인데, 그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없어져도 좋고,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직업이 바로 ‘판사'다. ‘판사'라는 직업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위를 ‘심판’ 하는 역할인데, 이 직업이 아직까지 유효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권위 있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 수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해 매우 미개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엊그제 뉴스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이 중국의 프로바둑 기사와 대국을 한 결과가 나왔는데, 인공지능이 프로바둑기사를 이긴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이 개발한 것이므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인간 두뇌의 특정한 활동-바둑-을 이기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도한 두뇌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어도, 미래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특정한 능력-바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프로그램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지능을 높여 나가는 방식인데, 인류의 상위 0.000000001%도 안 되는 초고도 두뇌를 가진 프로바둑기사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은 매우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인공지능이 그렇듯, 지능을 생성하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해당 분야-바둑, 법률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률은 바둑보다 훨씬 단순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도 쉬운 분야여서,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판사를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법체계에서 경찰과 검사는 필요하겠지만 판사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것은, 판사의 역할이 매우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해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결과를 내놓는 것은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인간 판사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편견과 부족한 지식, 무능으로 인한 오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권력자의 입김이 반영되는 경우에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언론이나 권력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판사는 보수적이고, 보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며,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게 판결을 받다니! 하면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률 자체가 매우 딱딱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오히려 합리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든 판례를 분석해 내놓는 인공지능의 결과가 훨씬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논리적이다. ‘심판관’은 고대 제사장의 역할에서 시작되었으며, 제사장은 무당이었다. 그들의 출현은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 잉여생산물이 확보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잉여생산으로 다양한 기능의 직업군이 생길 수 있었고, 신과 가장 가까운 무당은 제사장이 되어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판사’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법률을 토대로 인간의 행위를 판단한다. 법률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 사회질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보수적인 내용을 규정한 것이고, 법률에 규정하지 않은 모든 행위는 자유롭고, 처벌받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법률이 복잡하고, 사회의 구성원을 얽매는 내용이 많을수록 판사의 역할은 중요해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인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합하는 기재가 되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인민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진짜 감옥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왜곡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은 단순하고 적을수록 좋지만,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럴 가능성은 적어졌다. 복잡한 법률을 판단하는 데 있어 인간 판사의 능력보다는 인공지능의 판단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컴퓨터는 인간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큰 데이터에서 나오는 분석과 결과는 인간 판사가 내리는 결론보다 당연히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판사가 사라진 법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조서는 컴퓨터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고, 판결은 컴퓨터가 출력한 문서로 받아보게 될 것이다. 판사의 권위 따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어야 한다. * 2016년에 쓴 글입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안철수 당대표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충고합니다. 정치는 자기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오기를 부리며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정치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찾아보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몇 년 사이 안철수 대표에게 보내는 글 세 편을 썼습니다. 2015년에 쓴 글 (https://brunch.co.kr/@marupress/142)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안철수 대표에 대해 안쓰런 마음과 함께,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에 의문을 갖는다는 글을 썼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진정어린 마음은 믿지만, 함께 정치하는 사람들 속에서 안철수 정치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 진보적 테제와 개혁의 화두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러 2020년, 안철수 대표가 발표한 '특별 기자회견문'을 듣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https://brunch.co.kr/@marupress/852) 이때도 안철수 대표가 보여준 행보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전혀 개혁적, 진보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구태 정치인의 행보를 답습하는 걸 보면서 매우 실망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안대표님의 말과 행동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미숙하거나 어리석었습니다'라고 비판했는데, 이 말은 아직까지 고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안철수 대표가 깔끔하고 담백하게 물러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1월에 쓴 글(https://brunch.co.kr/@marupress/863)에서는 제목부터 '안철수 씨, 정치 그만두시죠'라고 썼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안철수 씨는 행정 경험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는 '문외한'입니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도 마찬가지죠.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면, 정치와 행정에서 오래 경험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 씨는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죠. 그런데도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일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욕심이며, 망상입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나온 지금,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 다시 안철수 대표에게 글을 쓰는 이유는,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국민의당' 김윤이 하는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김윤은 매우 악의적이고 야비한 말로 현 정부의 정책과 전 서울시장 박원순 씨를 모욕했습니다. 김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쌍욕이 나왔습니다. 대중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식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말을 가려 하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의 태도이고, 그런 교양과 품위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더욱 조심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대중이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김윤은 없는 사실을 단정하거나,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말하고, 고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더군요.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 대표로서, 당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교양과 품위를 내던지고 천박한 말과 근거 없는 왜곡, 과장된 내용을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민의당' 당원들이 집권당인 민주당을 공격해서 민주당의 지지도를 낮출 수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당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권력을 쟁취하려고 하는 조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보다 나은 정책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고, 선거를 통해 지지를 얻어 국회, 지자체의 자리를 확보해서 자신들이 만든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렇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정당에서 김윤 같은 천박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 방송에서 다른 정당을 야비하게 공격하고, 고인을 모욕한다면, 그 개인의 잘못만 지적하는 게 타당할까요? 아니면 그가 속한 정당의 수준과 내용을 비난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반대로, 민주당에서 만약 어떤 당원 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다른 정당을 야비하게 공격하고, 천박한 말투를 사용하며, 고인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면, '국민의당'에서는 그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민주당' 전체의 잘못으로 비난할까요? 당연히 정당 정치인은 누구라도 그 정당을 대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방송을 들은 시민들은 '김윤'이라는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김윤이 속한 '국민의당'도 함께 비난하며, 그 당 대표인 안철수 씨도 싸잡아 비판, 비난하게 됩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1년, 전 서울시장 오세훈이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하며 서울시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가 너무도 당연하게 서울시장에서 탈락한 이후, 안철수, 박원순 등이 급격하게 서울시장 후보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씨는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서울시장은 물론 대통령 후보로서의 대중적 인기와 전국적 지명도, 지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의 행보를 보면, 안철수 씨는 한마디로 오락가락, 갈팡질팡, 횡설수설 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자기 중심을 세우고, 자기의 정치철학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단단하고 뿌리 깊은 정치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위의 노회하거나 어리석거나 개인적 욕망에 불타오르는 덜 떨어지고 천박한 정치낭인들의 숲에서 자기 중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안철수 씨가 '정치인'으로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자기 중심조차 갖지 못해 타인의 욕망에 휩쓸린 것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안철수 씨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돌아와서 2013년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민주당 계열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가 되었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다시 '국민의당'을 창당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국이 움직이지 않고, 안철수 지지 역시 미미하게되면서 2018년 하반기에 독일로 출국합니다. 자기 처지가 조금만 불안하면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서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렸다 돌아오는 모습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2019년에 다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으나 역시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안철수 대표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철수 대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안철수 씨의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안철수 씨는 모든 선거에서 패했습니다. 딱 한번, '노원 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뿐입니다. 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대중에게 존경받고, 사회 활동도 다채롭게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치인' 안철수를 보면,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당한 온갖 상처, 모욕, 불쾌함, 모멸감, 꺽인 자존심과 망가진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오기를 부리며 정치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라고요? 본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그런 의심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돈과 권력, 명예가 있다고 누구나 정치인이 되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아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개인의 사적 욕구와 욕망을 위해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태입니다.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철학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자신의 포지션을 놓고 '중도진보', '중도', '중도보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중심이 없는 정치가의 불안정한 모습을 국민이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사회의 약자들 -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임시직, 특별고용직, 아르바이트 등 노동자들과 여성, 어린이, 노약자, 성소수자 등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발언을 한 적이 있던가요?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책을 내 놓은 적이 있나요? 외교 문제에 대해 전략적 깊이를 보여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던가요? 한국의 농어민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까? 안철수 씨는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자기의 의지가 아니었고, 정치를 하려는 의지도, 목표나 목적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대개 철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해도, 정치를 시작한 이후에도 안철수 씨는 정치가 국민을 위한 철저한 봉사라는 것,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오로지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 안철수 씨의 정치행보와 '국민의힘' 소속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거의 다르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즉, 안철수 씨는 자신이 '중도'라고 외치지만, 한국사회에서 수구반동 집단과 차별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굳이 안철수 씨까지 나서서 한국의 정치를 극우로 몰아가려는 행동을 할 까닭이 있을까요? 그러고 싶은 겁니까? 앞에서 쓴 세 개의 글에서 저는 내내 안철수 씨의 역할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개혁만이 대안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사회는 매우 폭넓게 썩었습니다. 정치, 언론, 검찰, 사법, 재계 등 부패하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국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들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면, 지금은 오히려 국민이 정치와 정치가를 걱정하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고, 반동, 매국 언론과 검찰, 사법이 정상 국가를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화가 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씨는 어떤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이 정부가 잘 하는 정책은 모른 척 하고, 꼬투리를 잡아서 침소봉대해 비난하는 것만 즐겨하는, 막말로 양아치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로 있는 당의 당원이 시중잡배 같은, '양아치'처럼 말하는 걸 보면서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안철수 씨가 대표로 있는 당의 정체성과 당 대표의 인성까지도 같은 종류로 판단하게 될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안철수 씨가 정치에 입문할 때 받았던 그 높은 지지도-약 60%-가 10년이 지난 지금 왜 형편없이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정부와 척을 지고, 비난하는 행동, 수구반동 집단과 비슷한 정치적 언행, 말과 행동의 불일치, 천박하고 야비한 당원의 행태 등이 안철수 씨와 '국민의당'을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안철수 씨를 응원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최소한의 희망도 갖지 않습니다. 안철수 씨는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의 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한번씩 낙선을 했던 경험이 있고, 국민은 더 이상 안철수 씨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걸 알기 바랍니다.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은 지난 10년 동안 안철수 씨가 보여준 행동에 있고, 국민은 그런 안철수 씨와 '국민의당'을 심판한 것입니다. 깨끗하게 승복하고 포기할 줄 아는 것도 군자의 품위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입니다. 서울시장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욕망은 서울시장이 되어서 서울시민의 삶을 향상시키겠다는 행정가로서의 의욕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픈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분명하지 않던가요? 서울시정 조차 잘 알지 못하고, 비전과 전략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불행의 구렁으로 몰아가는 매우 반국가적 태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경원 같은 사람이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것 -만약 나온다면 - 역시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앞에서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뒤돌아 서는 것이 현명한 태도입니다. 정치인으로 자질도, 능력도 안 되는 인물이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망상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첩경입니다. 돈이 있으니 오기를 부려가며 정치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점점 더 비참해질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정치인들의 말로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기 욕망과 욕구를 위해 정치한 결과, 국민에게 비난, 조롱, 외면당하고 역사에서 더러운 이름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안철수라는 이름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나처럼 단순한 사람을 위한 정리
    나처럼 단순한 사람을 위한 정리 사회 현상을 이해할 때, 세부 항목을 모두 기억하거나, 기록해서 분석하는 건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나처럼 평범한 서민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높지 않으며, 설령 있다 해도 피상적이고 개념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건 여러 종류의 선거철에 대중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중은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인물론'이나 '정당론' 등의 여론에 따라 선택하는 후보가 달라진다. 물론 큰 줄기에서 옳고 그름이 판명되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거짓 정보와 미세한 차이로 갈리는 여론전 속에서 나처럼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옳고 그름, 지지와 반대를 가르는 기준을 두고 혼란할 수 있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단순하게 현재 상황을 정리해 봤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고,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한 것이므로 세부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큰 줄기에서 동의하는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적은 누구인가? 정치에서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를 보면, 현재 '국민의 힘'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적폐 세력이자, 반민족, 반민주, 친일매국노 집단이다. 즉, 어떤 명분이든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건 반민족, 친일매국노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독재와 매국에 뿌리를 두고 거둔 부와 권력으로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했으며, 학계, 언론과 카르텔을 형성해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승만과 매국노, 매국경찰에 의해 정당한 법집행이 좌절되어 오늘날 매국, 독재의 뿌리가 자란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극우반동 집단인 '국민의 힘'과 그 카르텔을 박살내는 것이 민주시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것은 오로지 투표와 함께 현 집권 여당을 감시, 지지하는 한편, 시민의 여론으로 압력을 가해서 민주당이 개혁 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떤가. 민주당도 기득권 부르주아 세력임에 틀림없지만 '국민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수정당'이다. 민주당은 보수정당이지만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한국에 좌파정당이 없는 현실에서 민주당이 그나마 대안이며,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진보운동세력, 학생운동, 활동가들 일부는 민주당으로 들어가 개혁을 시도했다. 민주당 내부에는 극우에 가까운 인물부터 좌파에 가까운 인물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서 일방으로 비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지만, 진보세력, 진보성향의 시민이라면 민주당이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실질적 힘(정당 의석 수, 조직력, 당원 수 등)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인정하고, 좌파 진보정당이 없는 한국현실에서 민주당을 압박하는 한편, 온건한 개혁부터 민생의 구체적 사업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을 견인하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이다. 종교에서 기독교 주류는 정치의 '국민의 힘'과 같은 무리다. 이들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의 친일기독교로 거슬러 올라가며,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제주도민 학살사건의 주범이기도 하다. 한경직 목사가 스스로 밝혔듯, 서북청년단의 모체는 평안도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에서 내려온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이들이 제주4.3에서 군인, 경찰과 함께 제주도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이다. 이후, 이들 기독교 세력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하며 세를 키웠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기독교도가 나라를 망치는 데 앞장섰다. 대표 인물이 이승만, 이명박이다. 같은 기독교라 해도, 가톨릭은 조금 다르다. 한국현대사에서 가톨릭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민주화 투쟁을 하는 청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현 문재인 대통령도 종교가 가톨릭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개신교에서는 엄청난 확진자가 나오고, 사회를 혼란시켰지만, 가톨릭은 확진자도 거의 나오지 않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성범죄자 가운데 목사가 가장 많다는 보도(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11월까지 성폭력 범죄로 검거된 전문직이 5,261명이고 이 중 종교인이 681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중에서도 성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전문직 직업군 1위가 바로 개신교 목회자였다. - 가스펠투데이)를 보면, 개신교가 얼마나 썩었나를 알 수 있다. 가톨릭도 미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가톨릭 신부들이 성범죄-동성 아동 성착취-를 저지른 사례가 드러나고 있으니 개신교만 비난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사례에서는 가톨릭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악랄하다. 사실, 개신교의 목사나 교회를 일방 비난하기 어렵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나 도덕적 비난이 반복되는 것은, 그럼에도 꾸준히 그런 목사나 교회를 지지하는 신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회가 타락하는 원인에는 어리석고 무지하며, 멍청한 개신교도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이는 놈이 더 나쁘지만, 속는 놈도 결국 한통속이라는 뜻이다. 주류 언론은 거의 대부분 '자본'의 노예라고 봐도 좋다. 공생관계라고 말하지만, 재벌, 대기업이 광고를 하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긴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자본'은 이 사회의 주류이며, 정치와 경제를 양손에 잡고 흔드는 핵심 세력이다. 따라서 '자본'의 말을 거역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삼성 장충기에게 문자를 보낸 언론사 간부들, 판사들의 면면이 까발려진 적이 있다. 언론가 간부, 판사들도 장충기에게는 애완견에 불과한 것이다. 수구 반동들이나 '자본'이 부패한 권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부패하면 뜯어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때 기업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그때 권력자들과 그 주변의 하이에나들, 언론은 떡고물을 꽤 넉넉하게 얻어 먹었다. 지금 주류 언론이 민주당 정부를 공격하는 유일한 이유는, 떡고물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하이에나와 들개들이 몰려 다니며, 호랑이가 사냥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 정부를 흠집내고, 권력을 빼앗아 수구 반동 세력이 가져가면, 그들끼리 서로 부패한 열매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악랄하게 민주당 정부를 물어뜯고, 민주당 정부에서 개혁적인 인물 - 조국, 추미애 등 - 을 인정사정 없이 물어뜯는 것이다. 사교육 시스템 - 정부의 입시 정책,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사설학원 -이 붕괴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의 보수적 정책과 사교육 시장의 이익이 같고, 여기에 천박한 시민들의 경쟁적 욕망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철폐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교육은 학생의 목을 조르고, 결국 한국의 미래를 질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핀란드처럼, 교육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걸 주도할 정부가 없으며,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두고 서로 눈치만 볼 뿐이다. 기본적으로 수구 반동 세력에서는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을 옹호, 지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걸림돌이고, 민주당도 보수적이긴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고, 끊임 없이 경쟁하도록 만들어 결국 수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인간들은 전부 수구 반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서열화, 입시 학원화, 취업 학원화 하는 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현재의 공교육과 사교육은 아이들을 말려죽이고, 학교폭력을 조장하며, 어린이, 청소년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획일화된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70년대 초반에 핑크 프로이드의 'The Wall'에서 노예를 만드는 학교 교육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다. 교육 시스템을 혁명하지 않으면,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이 왜곡될 것이고, 사교육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며, 부모들은 경쟁 교육의 달리기에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 검찰총장 윤석렬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쿨했다'는 표현으로, 검찰의 본질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한국 검찰만큼의 권력을 가진 검찰이 없다. 검찰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검찰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정부를 지지한다. 즉, 검찰에게 최대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정부(권력)와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 현 문재인정부와 검찰이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민주정부가 검찰의 권력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검찰은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뺐긴다고 판단해 강력하게 반발하는데, 민주정부의 통제에 반발한다는 것만으로도 검찰은 개혁 대상이다. 그동안 검찰은 독재정권과 부패정부에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충실한 머슴 또는 사냥개 노릇을 해왔다. 검찰로서는 적당히 부패하고, 권력과 돈, 인맥으로 얽힌 기득권 집단에서 권력을 누리고, 향유하며 즐기다 변호사가 되어 전관예우로 몇 달 사이에 수십억 원의 돈을 벌 수 있었던 과거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 부패정권의 잘못을 끊어내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검찰로 만들기 위함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도 검찰 개혁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검찰에게 칼을 맞고 노무현 대통령이 참담한 죽음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노무현 정부를 잇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개혁은 단순한 개혁 과제가 아니라, 정권의 운명을 건 필사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법원의 상징은 판사다. 모든 법적 분쟁을 판결하는 위치에 있는 판사는 절대 독립과 중립의 원칙을 부여받고 있지만, 양승태 사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법원(판사)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삼성의 장충기에게 충성 문자를 보낸 판사도 있다. 판사도 진급에 신경을 쓰고, 평가를 받으며, 더 높은 직급의 관리에게 인사고과에 따른 불이익을 당한다. 그런 점에서 판사도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는 수직 명령체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판사들 대부분이 문서에 있는 법조항과 현실의 법감정이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는 '유전무죄'가 적용되어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걸 시민들은 알고 있고, 사법부는 스스로 권위를 타락시키고, 돈과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 공평, 평등하지 않은 사회는 기본이 무너진 사회다. 한국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에 가깝지만, 검찰, 사법, 언론 등은 매우 후진 시스템이어서, 시민의 평균 상식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떤 죄를 짓든 결과는 형량으로 나타나는데, 수천 억원을 사기 친 범죄자, 살인을 한 범죄자와 라면을 몇 개 훔친 사람의 형량이 같다면, 그런 법을 과연 누가 믿을까. 돈과 권력에 자발적으로 굴종해 재벌의 사장에게 충성문자를 보내는 판사가 건재한 사회라면, 그런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과연 중립과 원칙을 지킬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법부가 돈과 권력의 자발적 노예로 전락해 기득권 집단의 범죄와 부정, 부패, 비리를 눈감아 주는 일이 계속되면, 그들에게는 좋은 세상일지 모르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결국 그들 - 부패의 카르텔 - 모두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흑과 백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옳고 그름은 있고, 아군과 적은 구분된다. 우리는 시민민주주의와 봉건 잔재가 뒤섞인 상황에서 매국노(친일, 친미)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를 짓밟은 나라를 찬양하고,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는 매국노다. 시민이 만든 민주 정부를 부정하고, 독재(박정희, 전두환)와 부패(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자는 우리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려는 민족반역자들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하는지 잘 들어보라. 적은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전태일과 체 게바라
    전태일과 체 게바라 -전태일을 모욕하는 자는 누구인가 어제(11월 13일) 많은 사람이 '전태일'을 언급했다. 그 무수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전태일'에 관한 말들이 내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기득권이며, '전태일'을 팔아서 호의호식 하려는 인간들이었다. 정작 '전태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 분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sns에 쏟아지는 '전태일'에 관한 글을 보면서, 그 말을 하는 자들의 면면이 야비하고, 천박하며, 가식과 파렴치,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좋은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전태일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분들도 있다. 극소수지만.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일으켰으며, 쿠바의 자본주의 체제를 뒤집고, 쿠바 사회주의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명백히 사회주의자이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혁명 활동을 하다 적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회주의자 체 게바라가 어느 때부터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착취에 반대하던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체 게바라의 혁명성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를 아이콘화 했다. 체 게바라는 분명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사회주의 혁명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아이콘으로, 선전선동의 대표 인물로 선정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착취에 저항하는 민중들 역시 성공한 혁명의 대표적 인물인 혁명가 체 게바라를 뜨거운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시간이 흘러 체 게바라는 티셔츠, 모자, 노트, 신발, 후드티 등에 새겨졌고, 젊은이들 사이에 '쿨한'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밥 말리처럼. 비틀즈를 소비하던 60년대, 70년대 세대에게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퀸, 핑크 프로이드와 같은 개념으로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가 '대중화'되었다. 이제 체 게바라는 멋진 베레모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잘 생긴 배우가 되었고, 그가 남긴 일기는 멋진 오토바이 여행으로 기록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혁명가의 삶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고, 대중은 그런 혁명가를 소비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태일'은 한국에서 금기였다. 그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전태일'은 '빨갱이'와 같은 이름이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독재정권에서 가장 강한 탄압을 받았으며,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았다. '전태일'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다. 그는 개인이었지만, 노동자 전체였으며, 노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무수한 '전태일'이 공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손발이 잘리고, 불구가 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었다. 전태일 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는 것은, 정권을 타도하자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독재정권과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떠올리는 것도, 이름을 말하는 것도 금지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역시 인간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아들의 뜻이 올바르고, 그 뜻을 따르는 무수한 '전태일'이 살아서 어머니를 따르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 등장하는 '어머니'처럼,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는 어머니가 된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고 50년이 지났다. 엄혹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전태일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대학생 친구'가 되고자 노동자들 곁으로 몰려들었다. 노동자, 학생, 시민, 농민 등 기층 민중은 반독재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을 통해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를 확보했으며, 독재정권을 몰아냈다. 하지만 그 열매는 여전히 부르주아 우파 정권이 차지했고, 노동자는 지금도 소외당한 채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정규직,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실업자)로 경쟁시켜 분열을 조장하며, 노동자끼리 싸우도록 만들고 있다. 젊은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전태일'이 누구인지,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 모른 채, 비정규직으로, 임시직 노동자로,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살아간다. '전태일'을 소비하는 건 오히려 부르주아와 자본이다. '전태일' 이름을 팔아 마치 노동자와 노동조건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대중을 기만하고, '전태일'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 하며, '전태일' 이름을 팔아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나는 1988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상을 받은 이후 나는 더 이상 노동자로 살지 않았거나 못했다. 임금을 받거나 자유기고로 근근히 생활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였으나, 노동자라는 인식은 약해졌다. 그래서 더욱 노동운동에 관해 입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노동자로 일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도시빈민으로 자랐다. 나는 소년 노동자로 세상에 나왔으며, 사회주의를 공부했고, 적어도 '멍청한 노동자'로 남지 않았다. 나이 들어 임금노동자의 위치에서는 벗어났지만, 나는 계급적 자각과 계급의식은 여전히 노동자로 남아 있다. 현재 수많은 노동자는 자신이 임금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계급', '계급의식'이 없는 멍청한 임금노예로 살아간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멍청한 상태에 있도록 집요하게 방해한다.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계급의식에 눈뜨도록 하는 모든 활동은 국가와 기업의 물리적 폭력과 경쟁, 세뇌를 통해 저지한다. 전태일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대학생 친구'들은 반독재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왔다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지고, 더 나타나지 않았다. 전태일의 친구인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더 어리석고 멍청하게 퇴보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연예인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거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고,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걸 꿈꾸는 자본주의 욕망의 추종자로 변했다.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무식한 인간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가 노동자라는 자각도 하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자본가의 노예로 살다가 죽는다. 전태일이 바라던 세상은 노동자의 권리가 최소한으로 지켜지는, '근로기준법'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사회였다. 50년이 지났지만, 전태일이 바라는 세상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전태일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인간들은 늘어났지만, 그들에게 전태일은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는 외투에 불과할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는 오히려 전태일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것이 한국 노동계의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아티스트, 나훈아
    아티스트, 나훈아 올해 한가위는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나훈아 공연이 가장 큰 화제였다. 무려 160분 공연을 나훈아 혼자 이끌었고, 시청률은 30%에서 순간 최대 70%까지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번 공연은 나훈아 씨가 무려 15년 만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으로, 그에게나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훈아 씨는 출연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방송에서 광고를 내보내지 않았고, 공연 기획, 무대, 조명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지휘로 직접 준비했다. 예전에 부천의 한 체육관에서 그의 공연을 직접 본 이후, 그가 단지 노래만 하는 가수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으로 나훈아 씨는 기존의 팬들보다 훨씬 많은 대중에게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냈다. 이번 공중파 공연은 모두 3부로 구성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나훈아의 히트곡들이 앞쪽에 배치되었고, 2부와 3부에서 그의 신곡 가운데 몇 곡이 들어갔다. 나훈아 콘서트는 화려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무대 뒤에 수십 명의 합창단은 기본이고, 타악, 국악, 댄스, 사물놀이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활용해 관객의 귀와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여기에 절묘하게 꺾이는 나훈아의 창법과 상남자의 외모에서 나오는 간드러진 노래, 외모와는 다른 조금은 푼수같은 멘트 등이 대중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1970년대부터 나훈아, 남진의 경쟁구도를 만든 것은 연예계와 언론이었는데, 대중가요계에서는 투탑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이때의 나훈아는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노래를 잘 하는 가수'로 인기가 많고, 팬덤이 형성된 대중가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70년대는 정치, 사회적으로 엄혹한 시기였다. 독재자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노리고 있었고,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청년들은 청바지, 통기타, 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를 만들어가면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르가 새롭게 나타났다. 한대수, 김민기, 조영남, 송창식, 김도향,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양희은 등 당시 통기타 세대는 청년 문화의 바람을 일으켰고, 정부는 이런 청년 문화를 불순한 것으로 규정해 억압했다. 이들 1세대 통기타 가수들 가운데 한대수, 김민기는 '아티스트'다. '가수'와 '예술가(아티스트)'를 구분하는 것은, 주어진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작사,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대중 앞에서 부르는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기교만 있으면 되지만,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 소설가나 시인이 글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라면, 영화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연출해 만든 영화로 발언한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그렇다. 음악 역시 작사, 작곡, 노래를 자신이 직접 할 때 비로소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대수, 신중현, 김민기, 정태춘, 송창식 등은 수많은 가수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들이다. 70년대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 가수들의 노래는 주로 미국의 팝송을 가져와 번안해서 불렀고, 당대 한국의 현실이나 민중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한대수가 갑자기 나타났다. 한국 가요계는 한대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한대수의 등장은 한국가요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사, 작곡, 노래를 직접 하는 가수의 등장은 곧바로 그 시대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한대수 이후 자기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특징은 미국에서 생활하며 직접 영향을 받았거나(한대수), 미군부대에서 연주, 노래를 하거나(신중현), 당시 독재정권의 집권 상황에서 친일문화와 급격히 들어오는 외래문화(주로 미국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민중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삶과 노래를 일치하려는 노력(김민기, 정태춘, 송창식)이 만든 결실이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 장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트로트가 일본 가요인 '엔카'의 영향을 직접 받은 왜색이 짙은 노래라고 비판했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해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청년문화에 직접 영향을 끼친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은 적었다. 그럴 것이, 미국에서 일어난 팝, 락음악은 당시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표현 도구로 쓰였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청년문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밥 딜런, 존 디아즈가 통기타 음악의 상징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비틀즈를 비롯해 수 많은 그룹이 기존 음악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세대를 열고 있었으며, 이 물결은 한대수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고, 한대수의 뒤를 따라 물밀듯이 미국 대중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나훈아는 '트로트 가수'로 출발해 '예술가'가 된 드문 경우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무수한 가수가 노래했고, 인기를 얻었으며, 스타가 되었지만, 그들 가운데 '예술가'로 불린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나훈아는 1968년에 데뷔한 이후, 오래지 않아 동료 가수 남진과 라이벌로 불리며 인기가 절정에 이른다. 라이벌 구도를 만든 것은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당시 방송과 언론이 인기가 많은 남진과 나훈아를 라이벌로 엮어 보다 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이었고, 대중은 이런 라이벌 구도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호응했다. 나훈아가 '예술가'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건 그가 데뷔하고 10년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드러난다. 1981년, KBS에서 나훈아 100분쇼 스페셜을 방송했는데, 이때 나훈아는 자신의 노래는 물론, 전통 트로트를 부르는 한편, 우리 민요(양산도, 사발가, 닐리리야)를 구성지게 부른다. 100분 동안 혼자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말하며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고, 무엇보다 노래를 맛깔나게 불러 보는 사람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훈아가 민요를 부르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어려서 엄마를 따라 국악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고, 직접 민요를 배우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외항선 선원으로 집에 거의 없었고, 엄마는 나훈아의 손을 잡고 주로 국악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나훈아도 그때 국악을 배워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는 것을 엄마가 보면서 매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나훈아는 어려서 음악의 기초를 국악으로 쌓아왔다. 나훈아가 가수로 데뷔한 것도 우연한 기회였고, 그는 공부를 잘 하는 수재였다. 나훈아의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나 판사가 되기를 강력히 바랐고, 가수가 된 나훈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는 나훈아는 목청이 이미 타고난 가수였으며, 그는 한때 성악을 할 생각도 진지하게 가졌다고 했다. 나훈아가 부르는 트로트에서 특유의 '꺾기'는 트로트 창법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꺾기와는 조금 다른데, 나훈아 스스로 밝혔듯, 트로트와 민요를 결합한 창법이 나훈아 창법이다. 성량이 풍부하고, 국악을 일찍부터 배워 트로트를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 것이 지금의 창법이 된 것이다. 국악으로 시작해 스타가 된 경우가 또 있는데, 경연대회를 거치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송가인이 그렇다. 송가인도 엄마가 소리를 하는 분이고, 어려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스스로 트로트를 독학으로 배워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타가 되었다. 송가인 역시 어떤 노래든 잘 부르고 폭넓은 성량을 자랑하는 것은 타고난 면도 있지만, 판소리로 기초를 탄탄히 다졌기 때문이다. 나훈아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 시기는 데뷔 이후 1980년대 말까지였다. 그는 이 시기에 텔레비전 가요 방송에서 '10대 가수', '최고 가수상' 등을 모두 받았으며, 단독 공연을 비롯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70년대 라이벌이었던 남진이 가수협회장을 하고, 방송에 자주 출연해 대중에게 모습을 보인 반면, 나훈아는 텔레비전 출연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그는 전국의 공연장을 돌며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때부터 나훈아는 텔레비전에서 소비되는 대중가수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면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함이 사라지고, 상품으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그 사이에 나훈아 개인의 삶은 밝지 않았다. 공연을 하는 도중, 괴한에게 테러를 당해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결혼, 이혼, 결혼의 과정이 있었으며 콘서트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배우 김지미 씨와 결혼한 이후 김지미 씨에게 서예와 그림을 배웠는데, 나훈아 개인의 인격과 내적 성숙이 이 시기에 많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89년, KBS에서 방송한 나훈아 쇼특급에서는 이전보다 발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훨씬 많은 합창단과 무용팀이 나오고, 나훈아는 공연 끝부분에서 남북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1990년 '나훈아 스페셜'에서는 노래와 춤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서 그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를 '아티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번 KBS에서 방송한 '2020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이 결정적이다. 이미 2000년 이후 나훈아는 수 많은 콘서트를 통해 아티스트의 면모를 충분히 보였고, 그에게 '가황'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도 팬들이었다. 콘서트에서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기대나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국악, 국악기, 무용, 합창, 연주 등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동원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그가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작곡과 편곡은 전문 작곡가와 편곡가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작품의 내용과 수준에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발언하며, 그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건 대중의 판단과 선택에 있다. 나훈아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이후 '엄니'라는 노래를 만들어 광주시민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2020년 신곡 앨범에 들어갔다. 노래를 들어보면, 저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노랫말과 음악이 애절하다. 가사에서는 광주민주항쟁에 관한 내용이 직접 들어 있지 않지만, 나훈아가 처음으로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를 부른 것, 엄니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누구나 이 노래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것임을 알 수 있다.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이 부른 '마지막 일기'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가 쓴 일기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가사에 넣지 않아도 대중은 상징과 은유를 충분히 해석하고 공감하게 된다. 엄니 엄니 워째서 울어쌌소 나 여그 있는디 왜 운당가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뭐 땀시 날 낳았소 한 많은 이 세상 어째 낳았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엄니 엄니 워째서 불러쌌소 눈앞에 나 있는디 어째 날 찾소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무등산 꽃 피거든 한 아름 망월동에 심어주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엄니 엄니 워째서 잠 못 자요 잠자야 꿈속에서 날 만나제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나 잠들고 싶은디 잠들게 자장가나 불러주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인자 그만 울지 말랑께 이 가사에서 '무등산 꽃피거든 한아름 망월동에 심어주소', '나 잠들고 싶은디 잠들게 자장가나 불러주소'는 아직도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가해자 전두환 일당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뜻하고 있으며, 전두환 일당을 처단하고, 광주항쟁을 역사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때, 광주항쟁의 희생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나훈아가 '예술가'로 인정받는 사건 가운데 한 재벌 회장이 불렀을 때, 오히려 자기 공연장에 와서 들으라고 말한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가수라면 그 재벌 회장의 생일에 초청받아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겠지만, 나훈아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만큼 나훈아는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의 직업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결코 돈에 팔려다니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예술가나 작가, 지식인이 돈에 팔려다닌다면 그건 이미 예술가, 작가, 지식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중가수는 노래로 인기를 얻는데, 노래는 가사와 음악으로 구성한다. 음악은 가사를 표현하는 동시에 멜로디 자체의 힘을 지니고 있다. 가사가 없어도 음악은 성립하고, 음악이 없어도 음악이 된다. 클래식 음악도 음악이고, 판소리도 음악이다. 대중가요는 가사와 음악이 대중의 정서에 호소하고,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중가요를 낮춰 말하는 사람은 클래식 음악이 더 '고급'하다고 믿는다. 이건 어처구니 없는 사대주의다.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쵸네도 대중가요다. 오페라는 당대의 대중이 즐기던 대중을 위한 공연이었다. 해학과 풍자, 은유를 내포한 작품을 만들 정도의 가수라면, 그 가수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신중현, 한대수, 정태춘 같은 가수를 예술가라고 부를 때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제 나훈아도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걸 말할 때가 되었다. 이번 '2020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노래 '테스형'은 그가 예술가의 반열에 확실히 올랐음을 증명한다. 어느 예술 장르든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미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 상징미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음악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표피적인 내용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는 불가능하다.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생명이 매우 짧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가사에서 '테스형' 즉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 하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파격이지만, 가사에서 백미는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와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다. 이 가사는 50대 이하와 그 이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다를 것으로 안다. 흔히 유행가 가사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면 그건 내 이야기라고 한다. 50대 이상에서는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고, 눈물 많은 나에게 세상이 아픈' 것은 바로 내 이야기라서 공감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은, 대단한 철학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도 사실 알고보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걸 말한다. 위대한 사람의 삶이나 평범한 사람의 삶이나 모든 삶은 비슷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삶은 희노애락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인생은 고행이지만, 그 고행을 알되, 삶은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불교적 관점을 말하고 있다. '턱 빠지게 웃다'가도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 것은 나이 든 사람이라면 절절하게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노래가 훌륭한 건, 노래 전체를 뒤집는 상징이 있다는 데 있다. '테스형'의 진짜 모습은 아버지였다. 즉 나훈아는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 앞에서, 힘들고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아버지에게 하소연 하는 내용인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하면서, 힘들고 외로운 내 처지를 아버지에게 넋두리 하면서, 정작 부르는 대상은 '테스형'인 것은, 그가 풍자와 해학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나이 들면서 꾸준히 발전, 진화하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 졸업 후 얻은 직장에서, 직책에서 수십 년 변하지 않으면서 점점 퇴화하는 것과는 달리, 늘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하며 삶의 지평을 확장해 온 태도만으로도 나훈아는 충분히 훌륭한 인물이다. 이번 KBS 공연도 그렇지만, 그는 콘서트를 할 때, 무대 기획부터 소품까지 스스로 꼼꼼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사람이다. 91년 한 방송에서 나훈아와 이상벽 씨가 같이 나와 대담을 하는 가운데, 이상벽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나훈아 씨가 얼마나 완벽주의자인가를 알 수 있다. 그건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대의 완벽주의자라면 조용필을 떠올릴 수 있는데, 나훈아, 조용필 같은 최고의 스타들이 보여주는 결벽에 가까운 완성도에 대한 집착은, 그들이 성공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데뷔하고 이제 50년 넘는 세월을 무대에서 노래한 나훈아는 한국가요계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한국가요의 지평을 확장하고, '대중가수'에서 '예술가'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교과서 같은 인물이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멋지지만, 그는 여전히 청년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더욱 빛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설공사장에서 만난 두 형
    003-건설공사장에서 만난 두 형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매형을 따라 건설공사장에 처음 나간 날, 1976년 2월 6일.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에서 내려 여의도까지 샛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다. 공사장은 아침 7시에 작업을 시작하고, 저녁 7시에 작업이 끝났다. 하루 12시간 노동이다. 여기에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 정도.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고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여러 곳의 영세한 공장을 다니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았다. 가내수공업으로 낚시대 만드는 공장, 압핀공장, 유리병공장 등을 다녔고, 건설공사장을 다니기 직전에는 청량리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일했다. 음식 배달도 하고, 청소, 서빙, 냉면 내리기 등 식당의 잡일은 모두 했다. 월급은 거의 없었고, 유일한 장점이자 즐거움은 음식을 배불리,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식당은 백반, 순대국, 냉면 따위를 다 만드는 일종의 음식백화점 같은 곳이어서 식재료가 항상 풍성했다. 그때 함께 일하던 형이 있었는데, 둘이 다락방을 썼다. 다락방은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했으며, 요강에서는 항상 지린내가 났다. 식당이 영업을 마친 저녁에 우리는 순대를 길게 끊어서 다락방에서 먹었다. 하지만 식당 일도 오래 하지 못했고, 결국 일당이 조금 많은 건설공사장으로 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이미 매형이 배관공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 편하게 건설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일 시작하면서 받은 일당은 600원, 조금씩 올라서 800원이 되었고, 몇 달 지나서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일하러 갈 기회가 생겼다. 지방 공사는 그동안 좁은 울타리에만 살았던 내게 새로운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길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이 사라졌고, 더 많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으며, 일도 한결 편했다. 여기에 일당이 서울에서 다닐 때보다 더 많았다. 우리 팀은 주로 연초제조창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광주연초제조창, 신탄진연초제조창에서 일할 때의 기억이 특별하다. 일하러 다닌 곳도 광주, 마산, 창원, 울산 등 그때 처음 생기기 시작한 공업단지의 기숙사 건물이 많았고, 설악산 아래 설악동을 처음 지을 때는 한겨울에 따뜻한 물이 없어 찬물로 머리를 감아야 했다. 그렇게 지방을 전전하며 공사장에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 팀의 사장은 공사장 근처에 하숙집을 잡아서 묵게 해주었는데, 하루 세 끼의 식사가 마냥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고, 하루 12시간 일과만 마치면 자유시간이 많았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팀원 가운데 두 명의 형이 내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우연히 그 두 사람은 모두 서울토박이였고, 나도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우리는 동질감을 갖고 있었다. 원범이 형은 유한공고를 졸업하고 잠시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신탄진 하숙집 아주머니가 중매를 서 신탄진에서 결혼을 했다. 나는 어릴 때 노동자가 된 이후, 배운 것이 없었다. 삼중당문고는 꾸준히 읽었지만, 세상 물정도 몰랐고,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사회생활의 기본을 알려준 사람이 두 형이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르쳐 준 형과, 다정다감하고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 준 다른 형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성장 배경이 사뭇 달랐지만, 내게는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때 바느질도 배우고, 기타 치는 법도 배웠으며,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요령을 배웠다. 그때 공사장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지 않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들보다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는 분명했다. 나는 술, 담배를 배우지 않았고, 체질도 맞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건설노동자의 대부분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내게 영향을 준 두 형 모두 술과 담배를 하지 않거나 아주 적게 한 것도 분명 영향이 있었다. 그렇게 좋은 영향을 끼친 두 형과도 시나브로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선화예고 공사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있었는데, 그 전후로 독서회를 알게 되었다. 독서회를 만나게 된 것은 내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사건이었고, 두 형과도 이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내 친구
    002-내 친구 친구는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이럴 만큼 가까운 친구가 내 삶에 있었던가를 물어본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은 어려서 헤어졌고, 학교에서는 한 반에 68명이나 되어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국민학교 5학년일 때, 우리 학급에 한 아이가 전학왔다. 그 아이는 키가 컸고, 골격과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는 우리집에 놀러와 엄마가 만들어 준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의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도화동 꼭대기였고, 우리집은 같은 도화동이었지만 학교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놀았고, 서로 의지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마포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그 무렵 유래 없는 홍수에 우리집이 물에 잠겨 결국 누나가 살고 있던 시흥으로 이사하면서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이사하고 곧바로 나와 동생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14살부터 소년노동자로 살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가기는 했어도 한달에 한두번은 만났다. 친구는 학생으로, 나는 노동자로 삶의 배경이 달라지고, 물리적 거리도 멀어지면서 우리는 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내가 공장노동자에서 건설노동자로 전국을 떠돌며 현장 생활을 할 때,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대우그룹 계열사에 취업을 한 다음 아주대학교를 다녔다. 아주대학교가 당시 대우그룹 계열이어서 대우의 노동자들은 야간에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나는 그 무렵, 지방을 전전하며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고, 서울 현장에서 일하다, 운좋게 독서회를 알게 되었다. 독서회는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계기였다. 그곳에서 훌륭한 선배들을 만났고, 검정고시를 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도 그 선배들을 통해서였다. 우리가 가는 길은 국민학교 졸업 이후 갈라졌지만, 우리는 서로 소식을 끊지 않았고, 주로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직장에 얼마간 다니다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때 공군 사병은 36개월 근무였고, 나 역시 현역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복무했다. 그때 공군 현역병이던 친구가 일부러 화천까지 면회를 오기도 했다. 그는 군복무가 끝나고 다시 원래 다니던 회사에 다니며 대학 공부도 계속했다. 그 사이 나도 1984년에 군복무를 마치고 당장 일을 해야 해서 구로공단에 있는 공장엘 다녔다. 그 무렵에는 독서회도 가끔 나갔고, 대학 다니는 선배들과 함께 사회과학 공부도 했다. 잡지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글쓰고 책만드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공장은 열네 살 때 잠깐 다니고, 절대 다시는 공장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결국 노동조합은 만들지 못했고, 나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공장을 나왔다. 독서회에서 알게 된 형이 출판사를 차렸고, 나는 그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무렵 산본 신도시 아파트의 공모 청약에서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당첨되었다. 내 친구가 사는 곳도 산본이어서 꽤 기분 좋았지만, 1990년, 어느 날, 친구가 기숙사 창문으로 들어가려다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상 못한 충격이어서 지금도 그때가 생생한데, 나는 그때 친구와 함께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 추락사로 처리되었고, 시골의 어느 땅에 묻혔다. 우리 둘은 전역하고 강화도를 2박3일 동안 걸었다. 텐트 하나와 배낭만 가지고, 강화도를 크게 한바퀴 걸으며 잠은 길가에 텐트를 치거나 교회 안에서 잤다. 우연이지만, 사고가 나기 전, 그는 나에게 자기 고민을 이야기했다. 썩 마음데 들지 않는 여성이 있다고. 어떻게 끝을 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제 그 친구의 나이만큼을 더 살았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땅벌의 침에 여러 번 쏘여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어떤 느낌인지 분명히 느꼈다. 살면서 여러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지만, 내 친구의 죽음은 첫 번째 죽음이자 가장 강렬한 죽음이었다. 내 삶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그가 세상을 떠나고, 이후 그만큼 가까운 친구는 군대 동기 뿐이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최고의 공격이 최상의 수비다
    최고의 공격이 최상의 수비다 -적폐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 많은 분이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이제서야 분명하게 깨달았다. 조국, 추미애 장관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검찰과 언론, 수구반동야당의 행태를 보면서, 이 사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제로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조국, 추미애 장관일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법무부장관'이다. 조국 전장관은 장관 임명 전부터 검찰과 언론, 수구야당이 떼로 몰려들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장관 임명 이후 며칠만에 사퇴했다. 조국 장관이 물러난 이후에도 검찰과 언론은 1년이 지나도록 조국 장관과 그의 가족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있고, 어떻게든 피를 봐야겠다는 폭력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정작 조국, 추미애 장관 개인에게서 비리를 발견하지 못하자, 그의 가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조국 장관의 부모님, 아내, 아들, 딸, 동생까지 끊임 없는 별건수사를 만들어 어떻게든 범죄의 고리로 옭아매려는 의도가 확연하다. 추미애 장관에게서도 개인 비리를 발견할 수 없자, 그의 아들 군복무에서 병가 처리한 부분을 들먹이며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이들의 수법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갈 때와 거의 같은 패턴을 보인다. '논두렁 고급 시계', '호화요트', '아방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민주정부에 적대적인 언론을 통해 소나기가 퍼붓든 기사를 쏟아내는 것이다. 문재인대통령을 공격할 때도 시골집 건축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조국, 추미애 장관에게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이들-검찰, 언론쓰레기, 수구반동야당-은 결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한가를 너무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이 공격을 멈추는 순간, 곧바로 멸망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 검찰, 언론쓰레기, 수구반동야당이 마치 미치광이가 칼을 들고 휘두르는 것처럼 분별 없이 날뛰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필사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을 좌절시키고, 개혁, 진보적 인물인 조국, 추미애 장관을 내쫓아 자기들의 목적인 현상태 유지를 강력하게 바라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절대권력과 기득권의 이익을 눈꼽만큼도 양보할 수 없다는 처절하면서도 악의에 가득 찬 몸부림인 것이다. 이 공격에는 검찰이 최선봉에 서 있고, 그들의 하수인이자 머슴, 공생관계에 있는 언론쓰레기들이 검찰이 주는 소스를 가지고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측면에서는 수구반동야당이 문재인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양동작전을 펴고 있으며,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부패한 권력을 유지하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수구반동들이 권력을 쟁취한 이후 벌어진 사건들을 보면,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뚜렷이 알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수구반동 권력은 자신이 찬탈한 권력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투표로 위임된 권력을 갖고도 오로지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노골적이고 파렴치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이명박은 4대강,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수십 조, 수백 조의 국민세금을 갈취했으며, 이 사건은 지금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근혜는 대통령으로 매우 무지하고 멍청한 인간이었고, 최순실의 아바타였다. 최순실은 대기업들에게 돈을 뜯어냈고, 재벌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돈을 상납하면서, 자기들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속내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이들의 수법은, 가장 개혁적 인물을 저격해 쓰러뜨림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사기를 꺾고, 덜 개혁적인 인물이 장관 자리에 앉으면 자신들의 의도대로 정책 방향을 돌리기 수월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조국, 추미애 장관이다. 수구반동, 부패집단의 총공격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살펴보면 일관하는 특징이 보인다. 그것은 검찰, 쓰레기언론, 수구반동야당, 여기에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잡것들의 부화뇌동까지 겹치면서 포화가 한 곳으로 집중하면서 대상이 옮겨 가고 있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아래와 같다. 조국 장관과 그 가족 꼭 1년 전에 시작한 이 악랄하고 야비한 공격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으나, 저들의 공격이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오히려 조국 장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천천히, 따박따박' 저 반동 무리들의 거짓, 왜곡, 음해에 대응하는 조국 장관의 모습을 보면서, 그와 함께하는 우리 촛불시민들은 정의가 반드시 구현될 것임을 믿고, 응원하고 있다. 의대생 사태 의사의 숫자를 단계적으로 늘리자는 정부의 발표를 두고, 의대생, 의사 집단이 마치 꼬리에 불이 붙은 강아지처럼 미쳐날뛰고 있다. 정부는 과거 정부에서 추진했던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할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고, 실제 OECD 국가 가운데 10만 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의사 증원은 어느 정부에서든 해야 할 일이며, 이는 결국 국민의 복지 혜택과 맞물린 필연적 행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 의사집단은 문재인 정부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정부의 일정을 비토, 방해하고 있다. 이 사태도 이제는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의대생, 의사집단의 비열하고 이기적이며 악의에 찬 행동을 본 국민의 시선은, 의사를 존경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만 매달리는 천박한 돈벌레들이라는 정체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추미애 장관 아들 음해 사건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것이 전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추 장관 아들이 자기의 몸이 아프고 불편함에도 끝까지 군복무를 성실하게 했다는 증거가 되어 미담이 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안다. 전혀 불법이 아닌, 휴가 전화통보라는 지엽적 문제를 가지고 마치 국방부와 추 장관이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사건을 은폐하는 거라고 악을 써대는 언론쓰레기와 그것을 범죄로 엮으려고 국방부 압수수색을 한 검찰, 군대도 가지 않은 수구반동야당의 일부 의원들이 내뱉는 무식한 발언들이 쓰레기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그대로 반사해서 야당 의원들의 군복무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황교안의 의심스러운 군면제 사건, 전두환의 사위 윤상현의 1일 군면제 사건, 수구반동야당 의원들의 군면제 사건을 전부 다시 들여다보고, 비리를 밝혀야 한다.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음해 사건 박원순 시장이 간단한 유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비서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기 직전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나타나지 않고, 그 여성 비서의 변호사가 전면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성추행 고소 사건은 증거도 없고, 정체가 모호한 상태이며, 여성 비서의 변호사도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초기에 수세에 몰렸던 박 시장의 측근들이 언론인터뷰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박 시장이 결코 성추행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보이고 있다. 여성 비서의 변호사 김재련은 박 시장과 그 여성 비서 사이에서 성추행이 일어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먼저 검찰과 전화통화를 했고, 성추행 사건으로 일방 터뜨렸다. 이것은 엄연히 정치적 책략이며, 박원순 시장을 공격해 그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짓이다. 왜 이렇게 악랄하게 물고 늘어질까. 검찰, 쓰레기언론, 수구반동야당이 좀비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유는, 1) 문재인 정부를 공격해 개혁 인사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 2)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흠집을 내어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한 것, 3) 다음 정권을 탈환하기 위한 수구반동들의 결집 효과, 4) 검찰, 쓰레기언론, 수구반동야당이 저지른 범죄와 은폐해야 할 사건들을 막기 위한 발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최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말은 이들에게도 통하는 것이다. 검찰의 타격 대상은 명확하다. 조국, 추미애 장관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며, 그들의 지상과제다. 따라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이 가진 권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과 같은 목적을 가진 쓰레기언론이 스피커가 되어 악랄한 음해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 쓰레기언론 가운데는 한때 '진보'라고 불리던 것들도 있는데, 이들은 검찰의 목적과 단일하지는 않지만, 권력은 무조건 비판한다는 맹동주의에 빠져 민주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언론'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보도준칙, 기준 따위도 무시하고, 사실 관계를 따지지도 않으며, 현재 권력을 가진 집단과 개인을 향해 혐오와 비아냥, 왜곡의 확대재생산을 하며, 적들을 돕고 있는 상황이다. 수구반동야당은 검찰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므로, 현 정부를 공격하고, 현 정부의 진보적 인사, 개혁을 하려는 인물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어뜯고 있다. 검찰, 언론, 수구반동 야당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검찰은 지금처럼 권력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에, 검찰 개혁을 하려는 현 정부와 법무부장관을 죽이기 위해 어떠한 파렴치한 범죄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이것은 정당한 검찰의 법 집행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미친 칼부림이며, 권력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떠는 최후의 발악이기도 하다. 검찰은 자기들이 가진 권력의 크기와 강도가 얼마나 센가를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검찰 조직 주위로 쓰레기언론, 수구반동야당을 끌어들여 방어막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힘을 모아 현 정부를 공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쓰레기언론은 검찰과 수구반동야당, 일부 재벌를 배경으로, 그들과 공생하는 관계이며, 악어새처럼, 악어의 이빨을 청소하며 찌꺼기를 얻어 먹는 존재다. 이들은 마치 현존 권력인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의 자세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뒤로는 기업의 광고와 촌지를 받아먹으며, 온라인 기사의 클릭수를 늘리기 위한 천박하고 저열한 목적으로 자발적 반동 스피커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이들 언론 역시 '언론개혁'이라는 절대 당위와 명제 앞에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뺏기지 않으려 발악하고 있다. 수구반동야당은 어떻게든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현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필연이다. 수구반동야당이 집권하면서 저지른 온갖 범죄와 탈법, 악행, 비리, 부패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도 없이, 그들은 한국사회를 과거로 회기시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가 지배했던 그 폭력과 부패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수구반동야당은 집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범죄도 저지를 수 있는 집단이다. 북한에 돈을 주고 남한 쪽으로 총을 쏴달라는 '총풍사건'부터 수백억원의 검은 돈을 트럭으로 받는 범죄집단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면, 극소수 재벌, 부자들에게는 큰 혜택이 돌아가지만, 서민은 더욱 고혈을 빨리는 죽음의 사회가 될 것이다. 정부와 촛불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은 단순하다.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즉,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은 '적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조국 장관 따님의 표창장, 추미애 장관 아들의 복귀 처럼, 미세한 부분을 끊임없이 다투게 되면, 적의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서, 정부, 민주당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 언론 개혁의 당위와 필요성, 수구반동야당 의원들의 개별적 비리를 강하게 드러내야 한다. 지금 적들은 '최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으로 가능하다'는 명제에 따라, 집단과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적의 공격에 방어만 하고 있는 것은 하염없이 적의 공격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고, 일방 당할 뿐이다. 오히려 수류탄을 적의 진영에 터뜨려 공격해야 한다. 정부가 갖고 있는 권력은 마음껏 휘두르라고 촛불시민이 위임한 것이다. 여당 180석도 촛불시민이 모아 준 강력한 화력이다. 이걸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능하고 어리석은 집단일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검찰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고, 쓰레기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사 대표와 기자를 상대로 고발, 고소를 진행해야 하며, 수구반동야당의 의원 가운데 비리 혐의가 있는 의원을 상대로 사실 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정부, 여당이 품속의 칼을 꺼내지 않는 것은, 정치 난투극으로 번질 경우, 국민을 위한 서비스, 복지, 사회경제에 끼치는 영향 등을 걱정하기 때문인데, 지금 촛불시민은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강한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벌어진 조국, 추미애 장관 상황에서 촛불시민이 전면에 나서 막아주고, 뒤에서 밀어주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는 훨씬 심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싸움은 촛불시민이 하겠지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정부와 여당이 적들의 발호에 강력하게 나서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후, 현재 이낙연 당대표가 대통령 후보 1순위에 오르겠지만, 이낙연 대표가 얼마나 개혁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다 개혁적 인물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물망에 오를 가능성이 많다. 부패와 탐욕으로 뭉친 기득권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적폐세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촛불시민이 아무리 전면에 나서 싸운다해도, 법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지만, 적폐세력들은 할 수만 있다면 총칼로 우리 민주정부와 촛불시민을 학살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적들은 우리를 '개, 돼지'라고 공공연히 부르고 있다. 우리는 촛불시민이지만, 저들에게는 '개, 돼지'일 뿐이며, 그런 개, 돼지는 언제든 죽여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를 개, 돼지로 보는 저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기도 하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잊지 못할 동네 후배
    잊지 못할 동네 후배 001-동네 후배 1970년대 중반까지 마포에 살았다. 공덕동, 지금 한겨레신문사 맞은 편 언덕의 어느 골목집에서 태어났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번역가이자 작가 안정효 선생이 살던 바로 옆집이었다. 자라면서는 도화동, 그러니까 지금 마포 네거리, 4호선, 5호선 공덕역이 있는 그 네거리 바로 옆 우체국 뒷담에 붙은 무허가 판자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철둑도 다 헐려서 시야가 트였지만, 철둑이 있던 오래 전에는 그 철둑 아래로 지나는 굴이 세 개 있었고, 하나는 온전히 개천이 흐르고, 가운데는 비가 많이 오면 개천이 되지만 바닥을 띄운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번째 굴은 통행로의 절반을 판자로 막아 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낮에도 어두운 그 굴집들은 항상 불이 켜져 있었고, 습한 냄새가 났다. 우리집도 무허가여서 형편은 좋지 않았지만 우체국 뒷담을 끼고 있었고, 바로 앞으로 개천이 흘렀다. 개천 위로 가설한 통행로를 놓아서 마치 긴 회랑처럼 다닐 수 있었고, 여러 집이 잇대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누나의 손을 잡고 마포국민학교에 입학한 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때가 아마 1968년 무렵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함께 전차를 타고 창경원에 갔던 기억도 있다. 나는 전차를 탄 마지막 세대인 셈이다.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은 몇 개의 조각인데, 내 기억으로는 두 번 집을 잃었던 때가 있었다. 집을 떠나 철둑에서 서강 쪽을 바라보며 갔는데,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고, 나는 경찰 짚차를 타고 집앞까지 와서 경찰이 어머니에게 나를 인계하던 기억이 난다. 짚차는 하얀색이었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니 여섯, 일곱살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철둑, 경찰 짚차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집 바로 앞이 개천이라 나는 동무들과 함께 그 개천에서 물놀이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가 더 이상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몸에 이상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국민학교 고학년 무렵에는 친구들과 개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는데, 우리집에서 철둑 굴다리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개천 위로 모두 집을 지어 자연스럽게 굴처럼 보였다. 개천은 그리 깊지 않았지만 몹시 더러웠다. 우리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 나오는 소년들처럼 호기심이 이끄는대로 어둡고 깊은 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보면 안 되는 것들을 봤다. 우리는 베이비 붐 세대여서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다. 거의 방치하다시피 내놓고 키웠고,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고물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푼돈을 벌어 군것질도 하고, 만화가게에서 만화도 봤으며, 버스를 타고 세검정까지 가서 맑고 시원한 물속에 뛰어들어 시원한 여름을 즐기기도 했다. 불과 열 두어살의 어린이들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일을 찾아서 했고, 언제나 바빴으며, 신나게 놀았다. 못된 형들이 싸움을 붙이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를 하다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그건 극히 드문 사건이었고, 보통은 마을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비석치기, 다방구 같은 놀이들로 시간을 보냈고, 나는 만화가게에 가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이라, 돈을 받고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집이 있었는데, 하루 저녁에 10원이었다. 나중에는 만화가게에서도 돈을 받고 텔레비전을 보여주었다. 보통 2시간 정도를 볼 수 있었는데, 초저녁에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가 가장 큰 인기였다. 그때 '타이거마스크',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 '밀림의 왕자 레오' 같은, 일본만화를 더빙한 만화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문을 나서면 긴 회랑의 가설 골목이 있고, 그 길의 끝 양쪽에 주막이 있었으며, 그 주막이 있는 작은 네거리에서 왼쪽은 개천을 건너는 다리, 정면은 굴다리, 오른쪽으로 나가면 공동수도가 있고, 우체국 후문이 있었다. 우체국 바로 앞이 큰길이고, 그 길을 건너면 바로 '마포극장'이 있었다. 마포극장의 포스터는 늘 멋있었다. 마포극장을 지나 골목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경보극장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 등에 업히거나 따라서 극장에 자주 갔는데, 영화를 상영하는 중간에 연예인들이 나와 '쇼'를 했다. 영화 상영은 보통 두 편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일한 오락거리이기도 했다. 경보극장을 지나 골목을 따라 약간 오르막 길을 올라가면 마포국민학교가 있었다. 내가 다닐 때, 학교에 커다란 지하공간이 발견되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만든 방공호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육성회비를 제 때 납부하지 못해 수업시간에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다. 울면서 떼를 써봐야 없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학교는 다녔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던 학교였다. 마을에는 또래 아이들이 많았는데, 학년에 따른 위계가 분명했다. 고학년은 고학년끼리, 저학년은 저학년끼리 놀았다. 고학년은 철둑을 따라 용산 청과시장에 가서 길거리에 버린 깨진 수박을 먹기도 하고, 말린 고구마를 싣고 가는 기차를 따라 서강을 지나 당인리까지 가기도 했다. 고학년, 저학년이 함께 놀 때도 많았는데, 고학년들은 책임감을 갖고 저학년 동생들을 돌봐주었다. 물론 우리는 가부장사회의 자식들이었고,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독재사회에서 자랐기에 어지간한 폭력은 폭력으로 생각지도 않을 정도였다. 내 아버지는 우리를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었지만, 우리 동네에서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친구들은 많았다. 주로 '노가다'를 다니는 아버지들은 저녁에 술을 한 잔 걸치면, 자식들 머리통도 쥐어박거나, 손발로 아이들 몸뚱아리를 멍들게 하기도 했다. 그때는 사회의 대부분이었던 도시빈민의 자식들이었지만, 어린이들은 건강했다. 머리에 부스럼이 생기고, 코를 빨아 먹으며, 쓰레기를 뒤지고 다녀도 대개 건강하게 자랐다. 그러다 가끔 앓기도 하고, 열병을 앓거나,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넘겼다. 동네에는 장애가 있는 아이도 있었다. 나보다 한 학년 아래 아이였는데,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다.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가 옳지 못할 뿐 아니라 범죄라는 생각이 상식이지만, 70년대만 해도 공공시설 내부, 버스, 술집, 다방에서 남자들은 담배를 피웠고, 장애인은 마치 불가촉천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갈고리가 달린 의수를 한 장애인이 망태를 짊어지고 다니며 종이를 주웠고, 버스 안에서는 장애인이 종이를 나눠주며 갱생을 도와달라고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다시피 위협하기도 했다. 목발을 짚거나, 다리를 절거나, 맹인이거나, 농인들은 으레 조롱과 비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대는 봉건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았고, 독재는 민주주의와 개인의 인권, 자유를 혐오했기에, 차별과 혐오를 조장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자랐기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나도, 다른 친구들도 한 살 어린 그 아이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기 보다 별명을 만들어 불렀다. 그 아이가 다리를 전다고 '찐따'라는 별명을 불렀고, 백인 혼혈인 아이는 '튀기'라고 불렀다. 우리는 야만의 사회에서 정글의 생존경쟁을 하는 동물들이나 다름없었다. 그 많던 동네 친구들도 지금은 어디 사는지 알 수 없고, 이름도 모두 잊었지만 다리를 절던 그 한 살 어린 후배는 지금도 생각난다. 너무도 미안하고, 나 자신이 부끄럽다. 철없던 어린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부끄러운 기억이고, 그 후배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조국 전 장관의 지난 1년
    조국 전 장관의 지난 1년 아래 글모음은 지난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직전부터 검찰과 언론의 악의적 음훼가 벌어지는 상황을 2019년 연말까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때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떤가. 검찰은 궁지에 몰린 쥐가 되었고, 언론은 수십만 건의 기사를 삭제했다. 과연 검찰과 언론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들에게 죄가 있다는 걸 밝혔는가? 언론은 사실을 보도했나?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조국 전 장관을 비난했던 그 수많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검찰, 언론, 천박한 '지식인'들이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비난하고, 범죄자로 몰아갈 때, 촛불시민은 끝까지 조국 전 장관을 지켰다. 서초동에서 촛불집회를 열었고, 온라인에서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고, 그 결과를 '조국백서'로 펴냈다. 이제, 죄 없는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을 범죄자로 몰았던 집단과 개인은 자신들이 함부로 놀린 주둥아리와 펜대의 무게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이 감옥이든, 재정적 부담이든, 조국 전 장관은 '천천히, 따박따박' 결코 지치지 않고 진행할 것이다. 우리 촛불시민들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너희들, 적들의 몰락을 기꺼이 지켜볼 것이다. -----------------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와 관련해 며칠 언론, SNS가 시끌벅적했다. 내 타임라인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국 후보를 두고 응원, 지지, 비판, 비난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들의 면면을 보니,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청문회가 열리지도 않았고, 조국 후보의 답변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유당이나 조중동 기타 기레기들이 하는 발언과 보도를 보고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노란리본을 단 사람도 있고, 촛불을 든 사람도 있었다.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을 하던 진보적인 사람도 있었다. 자유당이나 조중동 쓰레기는 차치하고, 조국 후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수구꼴통이나 일베충이나 돈받고 댓글을 다는 쓰레기들이다. 자기가 멀쩡한데, 조국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적 판단력이나 지적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며칠 지나면서, 조국 후보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은 모두 거짓말, 왜곡, 과장보도, 의도적 부풀리기, 악의적 보도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조국 후보를 '까는' 언론 쓰레기나 자유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조국 후보는 당연히 법무부장관이 되어야 한다. 조국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매국집단과 매국노에 동조하는 사람이거나 그들의 주장에 비판할 줄 모르고 동조하는 멍청이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조국 후보를 끌어내려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집단과 개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오는데, 그런 기초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정치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 좋은 일이다. 세상에는 멍청한 인간이 많다. 조국 후보가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를 둘러싼 상황은 갑작스러운 검찰의 개입으로 변곡점에 도달했다. 윤석렬(발음할 때는 윤서결로 해야 한다) 검찰총장의 지시로 특수부에서 이루어진 이번 긴급 압수수색과 출국금지명령은 그동안 야당과 언론에서 일방 비난, 비판한 의혹제기를 법적으로 가릴 기회이기도 한데, 검찰의 개입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검찰의 독자적 개입으로 조국 후보와 관련한 위법 사실을 밝혀낸다면 당연히 조국 후보는 법무부장관이 될 수 없을 것이고, 문재인정권은 그때부터 몰락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와 반대로, 검찰이 조국 후보의 범법을 발견하지 못할 경우, 조국 법무부장관은 사법개혁을 근본에서 시작할 것이므로 지금의 검찰은 당연히 타격을 입게 된다. 검찰이 갑자기 개입한 의도를 들여다보면, 사법개혁의 의지가 강력한 조국 후보에게 불리한 면이 많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윤석렬 검찰총창은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것은 정권과는 아무 관계없이, 검찰의 독립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확인이었다. 검찰이 오로지 올바른 법집행을 하겠다면, 지금 야당의원들이 저지른 온갖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조국 후보만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수사해야 한다. 검찰의 개입으로 설왕설래하지만 섣부른 단정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겠지만, 그 결론이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오로지 검찰의 몫이고, 그들의 운명이다. 조국 후보의 사법적 판단을 지켜본다. 그리고 윤석렬 검찰총장의 진심도 지켜본다. 과연 촛불시민의 판단이 옳기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와 직접 관련한 일도 아니고, 세상이 끝장날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 불편하니 소화도 안 되고, 가슴도 답답하다.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를 둘러싼 적들의 공격은 집요하고 악랄하며, 야비하다. 조국을 거꾸러뜨리면, 누구에게 이익일까. 토착왜구, 매국노, 언론쓰레기, 거대자본, 수구집단, 검찰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반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시민은 불행하게 된다.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법개혁이 좌절된다면, 문재인정부는 적들에게 무릎을 꿇게 되고, 산 채로 하이에나에게 뜯겨 먹힐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10년을 인간 이하의 악랄하고 야비하며, 천박하고, 역겨운 인간들이 지배한 세상에 살았다. 국가가 망하기 직전에 가서야 촛불혁명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는데, 지금 사법개혁이 좌절되면, 다시 그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쳐 날뛰는 적들의 야만에 맞서 촛불시민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까, 아니면 화염병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답답하고, 울화가 복받치는 심정으로 청문회를 보고 나서, '자유한국당' 자유게시판에 쓴 글을 읽고 힐링한다. 자유당 지지자들도 보는 눈은 그리 다르지 않아서, 자기편이라도 멍청하고 실력 없다는 건 알아챘나보다. 특히 나경원을 쫓아내라는 주장이 많았는데, 나경원이 청문회 합의를 해주어서 자유당이 망신만 당하고,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더 빛나 보였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렇다. 진실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지금 120만 건에 달하는 기자쓰레기들이 쓴 글들이 삭제되고 있다. 자기들이 써놓고도 정당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촛불시민과 함께 하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임명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지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기자쓰레기들의 정체와 민낯은 드러났고, 자유당의 무능과 멍청함도 생중계로 알려졌다. 남은 것은 사법개혁이고, 사학재단의 비리를 끝까지 캐내는 것이며, 기자쓰레기들을 양산하는 쓰레기같은 언론사들을 때려잡는 것이다. 세상에는 보통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훌륭한 사람이 있다. 보통의 사람은 그런 위인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시기하거나 질투한다. 그런데, 너무 뛰어난 인물이 있다면, 보통의 사람이 갖는 시기, 질투, 부러움 따위의 감정 조차 들지 않게 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영웅'으로 부른다. 문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삼국지에서 '관우'와 '장비', '조운'은 죽어서 신이 되었다. 그들은 너무 뛰어난 사람이라, 나같은 평민은 감히 평가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위대한 인물이다. 조 국 법무부장관 내정자를 헐뜯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지만, 그건 미물들이나 하는 짓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 국 내정자는 그의 집안, 그 자신, 그의 딸까지,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인물이다. 이걸 인정하기 싫다면, 수구꼴통, 토착왜국, 매국노, 일베충인 것이다. 조 국의 훌륭함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나의 비루함과 천박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냥 탁월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잘 생긴 외모, 명석한 두뇌, 올곧은 품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지금 이 시대에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일이지, 결코 흠잡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 국과 그의 딸이 하드웨어(외모)와 소프트웨어(머리), 중앙정보처리(심장)까지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라면, 그들이 조국(한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도록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걸 반대하는 자들은 분명코 평범한 시민들의 적이다. First Man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은 한국전쟁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비행사가 되고 싶었고, 그 목표를 향해 꾸준히 공부했다. 닐은 탁월한 비행사로 경력을 쌓고,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는다. 닐 이전에 달에 가려던 그룹의 동료 우주비행사들이 사고로 죽으면서, 닐과 그의 동료들도 충격을 받고, 쏘련과 우주 경쟁을 벌이던 미국 정부를 향해 미국인들의 반대도 격렬했다. 게다가 이 시기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켜, 미국 청년들이 베트남에서 죽어나가던 시기였고, 반전 시위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였다. 미국 정부는 쏘련과의 과학 경쟁, 국내의 반전 시위, 국가예산을 쓸데없는 곳에 쓴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달나라 프로젝트를 어렵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닐은 달에 첫 발을 내딛기 몇 년 전에 사랑하는 딸을 잃는다. 너무 어려서 세상을 떠난 딸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던 닐은 달 표면에 내려서 딸의 유품을 달의 계곡에 던지며 딸을 마음에 담는다. 닐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함께 훈련받던 동료도 잃었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교수로 평생 안정된 직장과 인기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개혁을 앞장서려 하고 있다. 그 세상에는 온갖 하이에나와 들개떼들이 그를 물어뜯으려 작심하고 있고, 그의 편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오로지 벌거숭이로 광야에 나섰으며, 그가 든 깃발은 반동의 칼바람에 찢겨지고, 깃발에 새겨진 '사법개혁'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적들은 사방에서 덤벼들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지금, 그에게 천군만마의 힘이 되어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는 반동과 반역의 폭풍 속에서, 개혁의 고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가고 있다.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고, 하이에나와 들개떼들이 몰려들고, 그의 가족을 납치해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미개한 인류에게 불을 선사하는 신이 될 것이고, 그가 들고 있는 찢어진 깃발에 꽂힌 깃대에는 관우가 들었던 청룡언월도가 숨겨져 있다. 그가 분노하는 순간, 그를 둘러싼 하이에나와 들개떼들의 모가지는 선혈이 낭자하게 잘리워 광야에 흩어질 것이다. 적들은 피맛을 볼 것이고, 그들의 모가지는 두 동강이 날 것이며, 우리 시민은 그가 가져온 불로 새로운 세상을 맞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새롭게 열며 앞으로 나아가는 First Man, 조 국이다. 태풍, 지나가다 미쳐 날뛰던 바람이 꼬리를 감추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거대한 먹구름은 바람에 떠밀려 빠르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간간이 비를 흩뿌렸다. 그 사이, 우리 사회에 불었던 반개혁, 특권의 발호와 반격의 광풍이 마침내 조 국 법무부장관 내정자를 물어뜯었고, 그의 가족까지 잔인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광풍은 거리의 간판과 나무를 쓰러뜨렸고, 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심장을 물어뜯었으며, 무엇보다 조 국 내정자와 그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바람이 잦아들고, 광풍이 지나갔지만, 거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당당했으며, 대지에 뿌리를 내린 신념으로 단단한 몸과 강인한 정신으로 비난의 광풍을 견뎠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나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부드럽게 흐느적거리며 자신을 지킨다. 11시간의 광풍도, 15시간의 미친 바람도 모두 견딘 영웅은,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로 자신을 지켰다. 그의 내면에서 폭발하는 반동과 반역 세력에 대한 적의는 그의 차가운 이성과 냉정한 판단으로 바뀌었다. 적들은 야비하지만, 그는 당당하고, 적들은 천박하지만, 그는 품위가 있다. 광풍은 쓰레기를 날리지만, 뿌리깊은 바위는 흔들지 못하듯, 어리석고 천박하고 야비한 인간들은 진정한 영웅을 쓰러드릴 수 없다. 그는 촛불시민의 열망을 품은 대리인이자 현현이며, 시대의 개혁을 앞장 서서 밀고 나가는 프로메테우스다. 태풍이 지나가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다. 조 국 법무부장관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내정자 지명을 받은 이후, 토착왜구, 매국노 집단의 추잡한 공격에 시달리고, 가족까지 참담한 상황에 놓였음에도 장관님은 꿋꿋이 견디셨습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역사의 소명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조 국 개인이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장관님의 우국충정을 미련한 저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장관이 되신 이후에도 적들의 더럽고, 역겨운 공격을 계속 되겠지만, 오로지 사법개혁과 정의가 물결치는 한국이 되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벽에다 대고라도 말해야 한다는 김대중대통령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다행히 요즘은 SNS가 있어서 내가 하고픈 말을 쓰면 누군가는 읽어준다. 요즘 정말 마음이 답답하다. 이런 증상은 지난 이명박 개새끼 때와 박근혜 쌍년이 지배하던 정국에서 느끼던 것과 비슷하다. 물론 지금은 문재인대통령님이 계시고, 조 국 법무부장관이 있어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검찰 쿠데타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여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문재인정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자유당 것들의 더럽고, 역겨운 행태까지 겹쳐서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설상가상 기자쓰레기와 그 쓰레기들을 키우는 매국언론들이 문재인정부를 비토하고, 훼방하며, 악의적으로 왜곡, 선동하는 꼴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새삼 느낀다. 예전 박정희, 전두환 때는 무조건 경찰, 군대 동원해서 쓸어버리면 됐지만, 지금은 촛불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민주주의 정권이 아닌가. 그러니 폭력은 감히 상상도 못하고, 오로지 법치로만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데, 그걸 아는 저 인간쓰레기들이 온갖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나부터 자아비판을 할 것이 있다. 나는 문재인대통령께서 검찰총장으로 윤석렬을 지명했을 때, 잘 하셨다고 지지했다. 그리고 윤석렬이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윤석렬이 검찰 쿠데타를 일으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임명권자인 문재인대통령을 믿었고, 윤석렬이 기개있는 검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런 나의 잘못된 믿음을 스스로 비판하고 잘못을 인정한다. 윤석렬이 이끄는 현재 검찰은 토착왜구, 매국노 집단의 이익을 위해 뛰는 충성스런 개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의 개혁을 가로막는 적폐집단이다. 이제 믿을 것은, 검찰 개혁의 선두에 서 있는 조 국 법무부장관과 촛불시민 뿐이다. 오늘 마을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며 점심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오늘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모이는 촛불시민의 마음과 함께 있었다. 오늘 내내 컴퓨터에 접속하지 못하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아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벗들은 모두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있었고, 촛불의 물결을 보면서 마음이 감동으로 울컥한다. 얼마만인가. 우리가 그 추웠던 시간에 광화문 앞에 모이기 시작해 백만명이 넘는 촛불이 모여 결국 무능하고 타락한 대통령을 탄핵한 그 위대한 촛불이 다시 모인 것이다. 촛불시민은 명령하고 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한 정치검찰은 스스로 떠나고, 검찰개혁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촛불시민의 명령을 거부하면, 그 끝은 검찰의 비참한 몰골만 남을 것이고, 끝내 검찰개혁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조국 법무부장관과 문재인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우리 촛불시민은 서로를 믿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비록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있지 않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고, 온라인에서 항상 촛불시민과 함께 행동할 것이다. 우리 한국 촛불시민의 위대함이 다시 역사를 바꾸고, 만들고 있다. 세계사에 빛나는 촛불의 역사다. 어제 촛불시민의 위대한 행동에 감격하며 꿀잠을 자고 일어나 타임라인을 보니, 내 타임라인은 역시 훌륭하다. 페친들 대부분 99%는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하신 분들이고, 참여하지 못해도 이 집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분들이다. 사실, 페친을 맺을 때 그 사람의 정치성향을 알기는 어렵다. 가능한 그 분이 쓴 글을 쭉 읽고 페친 수락 여부를 결정하는데,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페친 끊기를 했는데, 촛불집회에 관심이 없다는 분이었다. '비정치적 성향'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은 필연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지지하게 마련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촛불시민들이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고 있는 동안, 멀리서 구경이나 하다가 달콤한 민주주의 열매만 먹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또 한 명, 좌파지식인으로 알려진 김세균 교수가 쓴 글을 읽고, 아, 이 분도 지금의 정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정의당의 입장에서 쓴 글이지만, 조국 법무부장관이 그만두어야 한다거나, 청와대가 조국 장관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 촛불시민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관념적 진보론자의 태도, 그것이었다. 나는 정의당이 '진보정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정당 가운데 상대적으로 진보적 테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문서일뿐, 그들이 보여주는-심지어 당대표부터-태도는 부루주아좌파 정도일 뿐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에서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과 관련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정략적 이해만을 따지는 것을 보면서, 진보정당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촛불을 든 시민들은 문재인정부의 한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국 장관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려는 뜻은, 정파나 정당을 떠나 범진보적 사회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마음이고, 토착왜고, 매국정당인 자유당을 절멸시켜야 하며, 한국에 자발적 매국노들이 들끓는 것을 모두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검찰개혁이 최우선 과제이며,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주역으로 조국 장관이 적격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국 장관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하는 -자유당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 진보정당이나 인물들이 누구든, 그들은 촛불시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조국 장관은 스스로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칼이 되겠다고 했고, 촛불시민은 그런 조국 장관을 믿고 강력하게 지지하며 응원하고, 조국 장관을 지키려는 것이다. 지금 그 반대쪽에 윤석렬 검찰총장과 검찰이 있고, 그 뒤에 자유당과 토착왜구, 거대자본, 매국노들이 검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촛불시민은 숫자가 많지만, 돈과 권력은 없다. 오로지 올바른 양심과 떳떳한 정의로움만으로 뭉친 것이다. 이 싸움에서 돈과 권력이 이긴다면, 한국사회는 철저한 노예국가로 전락할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 이제 촛불시민도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배수의 진을 치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대통령님, 지금 검사들이 대통령의 명령을 듣지 않고, 항명하는 상태입니다. 항명죄로 검사 전체를 파면하고, 검사를 기존 변호사들 가운데서 새롭게 임명하시길 바랍니다. 행정부 일개 공무원에 불과한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검사 개인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악용하고 있는 현 상황은 매우 엄중한 사태이며, 대통령의 인사권을 적극 사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수처 설치는 당연하고, 파면한 검사는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파면한 모든 검사의 비위를 조사해서 범죄행위를 낱낱이 파헤쳐야 합니다. 조 국 장관과 가족에 대한 압수수색을 무려 70회 넘게 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검사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압수수색도 한 사람마다 최소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일개 공무원에 불과한 검사가 통수권자이자 인사권자인 법무부장관과 대통령 알기를 마치 자기 발가락의 때처럼 여기고, 대가리를 빳빳하게 세워 대드는 꼴을 국민인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모든 검사를 파면하시고, 훌륭한 검사는 선별해서 재임용하고, 비리가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검사는 몇 년이 지나더라도 범죄행위를 밝혀 엄벌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왜 조국이냐고, 조국이 아니면 안 되냐고, 조국을 버리라고 말하는 먹물들은 반동이다. 그들은 촛불시민의 동력에 찬물을 끼얹고,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반시대적 반동들이며, 문재인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하거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들이다. 지금 악랄하고 야비한 검찰이 조국 장관을 그렇게 털어도 조국 장관에게서 아무런 불법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의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조국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인물도 검찰의 집단 발호와 항명, 쿠데타를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고 하는데, 조국이 아닌 누가 조국처럼 이를 악물고 견디겠는가. 조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먹물은 대안을 제시하던가, 입을 좀 닥치고 있어라. 조국이 '사회주의노동자연맹'과 관련이 있다고, 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반공매국노들의 공격은 악의적 마타도어다. 이미 30년이 훨씬 넘은, 그래서 사람의 사상과 생각은 변하고, 사회도 바뀌었다. 조국을 비난하는 자들은, 30년 전과 지금의 사상과 생각과 이념이 전혀 변하지 않았는가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라. 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히려 기괴한 것이다. 그런 인간은 괴물이다. 조국이 '강남좌파'여서 안 된다고, 부르주아라고, 상류층이라고, 돈이 많아서 안 된다고 말하는 자들은 두 부류다. 부르주아라면, 조국 장관을 배신자로 여기기 때문이고, 가난한 자라면 멍청하거나 열등감 때문이다. 왜 좌파는 부자여서는 안 되는가. 좌파는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누가 제시했으며,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좌파도 부유하게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좌파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어야 한다? 왜 수구매국노들은 불법과 범죄를 밥 먹듯 저질러도 비난하지 않고, 좌파의 티끌 하나는 부풀려서 악의적으로 비난하는가 말이다. 그게 공평한 잣대인가. 나도 자칭 '좌파'에 속하지만, 가끔 자동차 신호도 위반하고, 범죄까지는 아니어도 욕 먹을 짓도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거나 경범죄를 할 수도 있다. 수구매국노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목록을 먼저 뒤져서 그들을 비난하라. 그리고도 할 일이 없을 때, 그때 조국 같은 사람을 비난할 빌미를 찾아라. 나는 조국을 믿는다. 그의 개혁 의지를 믿으며, 그가 지금 문재인정부에서 검찰개혁의 최적임자라는 것을 믿는다. 조국을 비난하는 자는, 나같은 시민을 비난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기사는 그동안 조국 법무부장관과 관련한 기사에서 기자쓰레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런 중앙에서 윤석렬을 옹호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이 기사가 과연 윤석렬을 옹호하는 기사로 읽히는지는 의문이다. 윤석렬이 건설업자에게 접대를 받든, 받지 않았든 그걸 떠나서, 윤석렬의 이 발언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말이다. 기자가 직접 윤석렬에게 들은 것도 아니고, 어떤 검찰에게(여기서는 '복수'라고 했으니 최소 두 명 이상을 말하지만 그건 알 수 없다) 듣고 쓴 기사인데, 윤석렬이 '대충 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면 그건 그간 윤석렬이 말한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법을 악용하면 깡패지 검사냐'와 같은 말과 같은 맥이라고 본다. 윤석렬이 '대충 살지 않았다'고 말했다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은 대충 살았다는 말로도 들린다. 즉, 검찰에는 윤석렬 자신만큼 검사로서 치열하게 산 사람이 없거나, 거의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인데, 과연 윤석렬이 털어서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인물인지는 나중에 따져볼 일이다. 그에게 걸린 '의혹'은 이미 장모와 관련한 의혹이 있고, 그의 부인과 관련한 의혹도 있다. 윤석렬은 장모나 부인이 자신의 검사 경력이나 부패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고 청문회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제 이런 정황을 가지고 조국 법무부장관과 비교해보자. 조국 장관은 대충 살았나? 이 말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증거를 대라. 윤석렬이 말한 것처럼, 조국 자신이 아닌 가족의 문제는 모두 제외하고, 조국에게 티끌을 찾을 수 있다면 조국은 이미 오래 전에 장관후보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윤석렬이 '대충 살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가족 문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조국 관련 검찰 수사는 원천에서 부당하며, 악의적이다. 조국 장관을 수사하려면, 윤석렬 가족도 탈탈 털어야 한다. 그게 공평하다. 또한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검사들도 검사 자신 뿐아니라 그 가족들의 범죄혐의까지도 탈탈 털어야 하는 것이 공평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중앙의 이 기사는 윤석렬을 옹호하기 위해 쓴 것이지만, 검찰 개혁을 바라는 많은 시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검찰 개혁의 당위를 확신하게 만들며, 더 빨리 검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다. 기자쓰레기가 옹호하는 대상이라면, 개혁을 바라는 시민에게는 분명 의혹의 대상이고,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겨레21'의 하어영이 말한 것처럼, 윤석렬이 건축업자 별장에서 '대접'을 받았다거나, 그래서 윤석렬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또 다른 상황의 전개일 뿐이고, 하어영이 이 소스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어떤 의도로 기사화했는지는 밝혀져야 한다. 다만, 윤석렬의 이 발언은, 조국 장관과 비교할 때, 어처구니 없을 뿐 아니라, 매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소아병적 주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왜 안 그러겠어요.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장관도 때려잡고, 그의 아내도 때려잡고, 그의 딸과 아들도 때려잡아서 한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고, 사회적 매장을 시켰으니 검사의 권력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셨잖아요. 참 대단하세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백만명 넘는 촛불시민이 모여서 검찰개혁을 외쳐도 어디서 개돼지가 짖느냐고 눈도 깜짝하지 않는 그 통큰 기개와 배짱, 시민을 개돼지로 보는 그 도덕적 우월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삼성에서 검사님들께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떡값'을 전달한 사건도 흐지부지 넘어갔잖아요? 감히 누가 검사를 건드리나요. 그렇게 뇌물을 처먹어도 검사님은 아무도 잡혀가지 않았으니 정말 대단해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가 스폰서에게 돈과 성(섹스) 접대를 받으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국가공무원이 뇌물과 성접대를 받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검사님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부산지방검찰청, 부산고등검찰청 검사님 약 40여 명에게 촌지와 성접대를 했다는 사실을 언론이 밝혔어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잖아요. 역시 검사가 최고에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요즘은 검사가 피의자와 성관계도 하는군요. 서울동부지검검찰청에서 초임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검찰청 내부조사실, 모텔에서 성관계를 했네요. 이 검사님은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한양대학교 로스쿨을 나온 로스쿨1기라고 하네요. 검사님이 참 멋져요. 그런데 성폭력이 아니라 뇌물수수 혐의라면서요? 검사끼리는 눈물나게 감싸주시는 그 애틋한 정이 참 보기좋아요. '섹검'이라는 별명도 참 '섹시'하네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은 주먹질도 참 잘 하시나봐요. 서울지검에서 조폭 피의자를 밤새 고문하고 폭행하다 결국 한 명을 때려죽였잖아요. 검사 말 안 들으면 때려죽이는 정도는 당연하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조폭이든 시민이든 주먹으로 때려죽이시길 바라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들은 돈봉투 돌리는 걸 참 좋아하시나봐요. 2017년 4월 21일 이영렬과 안태근이 한 음식점에서 동석한 검찰 특별수사본부 간부 6명과 검찰국 1, 2과장에게 돈봉투를 줬네요. 아, 당연히 검사에게 돈봉투를 주는 건 격려 차원이겠죠. 그런데 그 돈은 어디서 난 걸까요? 그거 국민 세금 아니죠? 당연히 이영렬과 안태근의 개인돈이겠죠? 감찰반에서는 대통령이 지시해도 피의자와 밥 먹으면서 조사했다면서요? 참, 훌륭해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 김광준이 10억원의 뇌물을 받고 구속되기도 했네요. 유진그룹에서 5억 9천만원,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측근에게 2억7천만원, 전 국가정보원 직원 부인에게 8천만원, KTF 임원에게 2천만원을 받았네요. 역시 검사님은 참 통이 커요. 10억 단위가 아니면 돈도 아니잖아요? 얼마나 많은 검사님들이 돈을 받아 먹는지 감찰을 하면 좋겠지만, 그건 깨끗하고 청렴한 검사님을 의심하는 거니까 절대 안 되죠.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김학의 법무부차관도 전직 검사님인데, 별장에서 성폭행,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몇 번을 조사해도 무혐의가 나왔네요. 동영상에 선명하게 찍혀 있어도 검사님은 그 사람이 김학의가 아니라고 하셨죠? 아마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겠죠? 시민들은 아주 똑똑히 알아보고, 정확히 전직 대전고등검찰청 고검장이었다가 법무부차관인 그 김학의로 알아보던데, 시민은 전부 개돼지니까 잘못 알고 있는 거겠죠?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은 길거리에서 공연음란행위도 참 잘 하시나봐요? 제주지검장이 2014년 8월 12일에 길거리에서 자위-우리같은 개돼지는 그냥 딸따리라고 해요-를 하다 여학생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는데,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군요. 검사가 아닌, 우리같은 개돼지가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법을 잘 아시는 검사님들은 돈도 참 잘 벌어서 좋겠어요. 홍만표, 진경준 같은 검사님들은 온갖 불법, 탈법, 비리를 저지르면서 돈을 긁어모으잖아요. 검사 출신 변호사니까 당연히 전관예우와 내부커넥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같은 개돼지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건 그냥 검사님들 실력이 좋아서잖아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은 범죄자를 잘 다루잖아요? 그래서 후배 검사도 그렇게 폭언, 폭행을 해서 자살하도록 만들고요. 김대현 부장검사의 폭언, 폭행을 해서 초임검사인 김홍영 검사가 자살하도록 만들었네요. 후배 검사를 위해 욕설을 하고, 인신모욕을 하고, 서류를 찢어 던지고, 술자리에서 술시중하라고 시키고 했다면서요? 김대현 검사님은 그 전부터 지위가 낮거나 후배 검사들에게 폭언, 폭행을 일삼았다고 악명이 높더군요. 역시 검사님보다 위대한 인물은 없으니까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김형준 부장검사 사건은 PD수첩에서도 방송했는데, 검사가 사기혐의 피의자에게 돈을 받고, 술집에서 접대받고, 심지어 술집여자게에 오피스텔을 얻어줘서 내연관계를 맺었다는군요. 스폰서 김씨의 말에 따르면 매달 수천만원을 썼다고 하네요. 너무 훌륭한 검사님이라 눈에 보이는 게 없나봐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도 같은 검사끼리 성추행도 잘 하시나봐요? 안태근 검사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네요.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이 바로 옆에 앉았는데 안태근 검사님은 사람들이 애도하는 장례식도, 바로 옆에 앉은 법무부장관도 전부 개돼지로 보였나봐요? 아, 원래 검사들이 자기들만 빼고는 전부 개돼지로 보기는 하잖아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은 표창장 한 장하고 어마무시한 마약하고 비교하면 표창장이 더 나쁘다고 보시나봐요? 역시 독특하고 권위적인 검사님의 안목이니 우리같은 개돼지가 뭘 알겠어요. 마약을 가지고 공항에 들어와도 집행유예가 되고, 표창장을 받아도 그게 국가를 전복할 만큼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라고 판단하시잖아요? 검사님, 요즘 기분 좋으시죠? 많이 행복하실 거에요. 검사님, 검사님 권력은 당연하고,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새끼'는 겨우 5년 동안 있다가 물러날테니 대통령이 뭐라고 하든, 법무부장관 '새끼'가 뭐라고 하든 그냥 생까고 있다가 자유당이 집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그러니 그때까지 그냥 '너는 떠들어라, 나는 검사다'라고 쌩까고 있으시면 되요. 촛불시민은 개돼지잖아요. 언제나 검사님의 건승을 기원해요.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평등하지 않은 시간
    평등하지 않은 시간 엊그제 우연히 유튜브에서 고급 음식점에 다니는 사람이 올린 동영상을 봤다. 태어나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고급 음식점들은 한 끼 밥값이 저녁기준으로 적게는 15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에 이르는데, 여기에 예약손님이 너무 많아 예약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영상에서 보이는 그 고급하고 화려하며, 신선한 음식들은 분명 서민들의 식탁에서는 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일류 요리사들이 비싼 식재료로 요리해 유명 브랜드의 그릇에 담겨 나오는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었다. 한 끼 밥값으로 부르주아는 5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도 푼돈처럼 쓸 수 있다. 서민은 한 끼 밥값을 계산하며, 어쩌다 외식을 할 때도 밥값이 너무 비싼 곳은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누구나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했을 때, 그 세 끼의 질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다. 부르주아는 음식을 미식으로 먹지만,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거라면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야 한다. 전철에서, 공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가방에서 컵라면과 빵이 나왔을 때, 그것은 수백 마디의 슬픈 말보다 더 강렬하게 계급의 슬픔을 상징하고 있었다. 19세기의 자본가는 1달러도 아니고, 100달러 지폐에 담배를 말아피웠다고 한다.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이던 시기에. 이런 사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자본가가 될 수 있지만, 자본가는 단지 '자본'의 현현일 뿐이다. 즉,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부자, 가난한 자 가리지 않고 평등한 것은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진다. 계급의 구분은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두고 드러난다. 부르주아는 24시간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쓸 수 있다. 즉, 시간을 통제할 권력이 있다. 누군가에게 강제당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는 24시간 가운데 최소 8시간을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 이 8시간 노동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맑스는 '자본'에서 자본가가 이윤을 착취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핵심이 바로 '시간'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후불로 구입한다. 자본가는 토지, 공장, 설비, 재료를 갖추고, 노동자로 하여금 '상품'을 만들게 한다. 이때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 상품의 제조량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격차(시간당 상품 생산량=잉여생산량)가 자본가의 이윤으로 돌아간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이 명확한 사회체제이므로, '인간'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를 갖는다. 즉, 과거의 노예제 사회와 마찬가지로, 노예와 노예주가 있듯,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분한 사회는 근본부터 불평등하다. 인간의 하루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8시간의 잠, 8시간의 노동, 8시간의 휴식이다. 이 가운데 가장 평등한 것은 8시간의 잠이지만, 8시간을 충분히 자는 사람은 부르주아뿐이다. 16시간에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는 절반이 넘는 시간을 노동과 노동에 필요한 준비 시간으로 써야 한다. 그 시간은 오로지 생존에 필요한 노동이므로 온전한 '개인의 삶'이라고 하기 어렵다. 반면, 부르주아는 16시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 부르주아가 누리는 시간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시간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영화 '인 타임'은 시간과 자본, 권력의 관계를 잘 묘사한 내용이다. 인간이 영원히 산다는 가정 속에, 주어진 시간을 모두 쓰면 수명도 끝난다는 설정은, 필연적으로 돈과 권력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지금 우리에게 유일하게 평등한 것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다. 그 평등함 때문에 인간은 그나마 지금의 차별과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무조건 견디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200년에 불과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전지구적 현상으로 번졌고, 자본이 침투한 곳은 자연이 황폐하게 망가지고, 인간들은 경쟁과 이기심, 황금숭배의 노예로 전락해 서로를 물어뜯고, 잡아먹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람보다 돈이 더 귀하고, 돈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을 쓰레기 취급하며, 선량한 사람의 뒤통수를 때려 강도짓을 하면서 떵떵거리고 사는 자들이 대접 받는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반드시 철폐해야 하며, 그렇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을 얼마나 빨리 앞당기는가는 우리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자본가 하나의 재산이 수조,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고, 노동자는 한달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굶어죽어가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는 반드시 뒤집혀야 한다. 자본가, 부르주아가 자기의 24시간을 자기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노동자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누구는 먹고 살기 위해 피땀흘려 일하면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누구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피땀을 마시며 부유하게 사는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자본가, 부르주아는 한줌에 불과하지만, 이들을 몰아내지 못하는 건 체제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은 체제를 유지, 옹호하는 사람들로 정부를 만들고, 정부는 자본의 이윤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자본(가)에 봉사한다. 자본(가)을 유지, 옹호하는 정부는 폭력기관-경찰, 군대-을 운영하며, 자본(가)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 프롤레타리아 민중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용산 철거민 사태, 쌍용자동차 노동자 파업 파괴 등이 대표적 케이스다. 또한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소위 '중산층'이라는 어중간한 계층이 체제의 안정을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본(가)은 이들 중산층에게 당근(정규직, 고연봉, 사무직)을 주고, 자영업자들도 자신이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계급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어 그들의 편에 선다. 이들 중산층(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노동자들이다)과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를 분리하는 것이 자본(가)의 기본 전략이며, '신자유주의' 이후 이 전술은 더 교활해져 '노동자-노동자'의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의 차별로 시작했고, 곧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으로 노동자끼리의 경쟁을 강화하고, 세대 사이의 경쟁을 만들었다.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일자리와 복지를 놓고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한다. 실업 문제, 취업 문제, 복지, 기본소득, 출산, 육아, 동일노동 동일임금, 남녀 성별에 따른 차별 등 자본은 끊임 없이 갈등의 소재를 던지고, 청년 예비 노동자, 실업예비군, 노동자들은 자본(가)이 던진 갈등을 받아들고 서로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작 힘을 합해 목을 쳐야 할 대상은 단 하나, 자본(가)일 뿐인데, 노동자 대중 대부분은 어리석고 멍청하기 때문에 자본(가)의 전략과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다. 물론 '자본'의 힘은 단지 '폭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기술문명을 적극 도입해 첨단 제품을 만들어 내면서, 대중은 자본이 만드는 '상품'에 환호하고, '상품'의 (자발적)노예가 된다. '애플'을 비롯해 유명 대기업 제품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소비 행위는 매우 계급적이면서 정치적이다. '상품'은 상위 1%가 소비하는 것부터 모든 사람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것까지 미세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가방 하나에 수천만 원을 하는 것은, 소비를 통해 계급을 구분하려는 '자본'의 전술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자가 자본가와 부르주아들이 소유한 '상품'을 소유하면 자신도 그 계급에 속할 거라는 '욕망'을 충족시킨다. 물론 이때 '욕망'은 허구이고, 허위의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당장 '폭력혁명'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에는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도 거의 없고, 이들이 조직화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며, 설령 있다해도 이들이 노동자 대중을 지도할 권력이나 능력, 조직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뒤집을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온건한 개혁의 과정이거나, 대중 - 노동자, 농민, 중소자영업자, 예술가, 청년학생 등 - 의 각성에 의한 진보 정권의 수립과 진보적 정책의 입법, 실행 등이 있다.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이 바로 이와 같은 진보적 개혁 과정인데, 이 과정은 매우 더디다. 그럼에도 한국이 놓여 있는 정치 상황, 국제 관계를 보면, 내부 혁명은 결코 쉽지 않으며, 부르주아 개혁을 견인하는 대중의 압력이 과거와 현재보다 조금 더 왼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 반동의 발호와 저항이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 수구 언론과 정당, 검찰과 법조계 - 이 과정을 극복해야만 대중의 삶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무력, 폭력 혁명 없이 대중이 원하는 사회 - 주4일 노동, 하루 6시간 노동, 보편적 복지 확립, 기본소득, 비경쟁 교육, 모든 주택의 공공영구임대 등 - 를 만드는 과정은 자본(가)과 부르주아의 반격으로 쉽지 않지만, 내부의 갈등과 각 계층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도 쉽지 않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큰줄기에서 결정하는 기본 원칙을 세우고, 세부 원칙들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윤을 독차지하는 '자본가'는 도태될 것이고, 빈인빅, 부익부의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자본의 독점을 폐지하고, 노동자들이 기업의 주인이 되는 제도를 갖추게 되며, 국민 모두가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 생존권을 보장받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은 24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계급이 오로지 자본가와 부르주아 뿐이지만, 모든 국민은 '노동의 의무'가 있고, 그 노동의 의무를 다 하면, 누구나 원하는 휴가를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시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화폐를 평등하게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독학의 시작
    독학의 시작 1975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폭우와 홍수가 마을을 덮쳤다. 허름한 판잣집은 물에 잠겼고, 홍수가 끝나자 철거되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했고, 나와 동생은 곧바로 소년노동자가 되었다. 열네 살, 열한 살의 형제는 공장을 전전하며 밥벌이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차비를 아끼려고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걸었으며, 빈민을 위한 급식소에서 하루 한끼 국수를 사 먹으며 살았다. 열여섯 살, 건설노동자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다행히 좋은 형들을 만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고, 열여덟 살에 중학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치렀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고등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치렀고, 스승님의 도움으로 잡지사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세대는 대학진학률이 27%에 불과했다. 나는 여건이 더 나빠서, 국민학교 이후는 진학할 수 없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공부해서 검정고시로 최소한의 학력을 유지했다. 그렇게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잡지사, 공장, 출판사, 자유기고가 등을 하며 살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독학과 학력은 관련이 없고, 학력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대학공부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열여섯 살 무렵부터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내게 공부는 오로지 책을 읽는 것이 유일했다. 다행히 독서의 욕구와 열망은 높아서, 눈에 띄는 책, 손에 잡히는 책을 읽다가 삼중당문고를 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의 초반은 주로 소설이었고, 가벼운 에세이, 교양입문서 등이었다. 배경 지식, 기초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어려운 책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군 복무를 할 때 특히 책을 많이 읽었다. 운이 좋아서 행정병으로 근무했고, 하루 몇 시간은 책을 읽을 여건이 되었다. 꾸준한 책읽기는 정신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86년,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생 선배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이때 본격 사회과학과 철학, 경제학을 배웠다. 여전히 대학 진학하기 어려운 가난한 상태였고,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처음 체계적 독서를 시작했다. 역사, 철학, 경제학, 사회과학의 커리큘럼에 맞춰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토론을 하는 모임은 정규 학교를 다닌 적 없는 내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1988년, 사회는 민주화운동으로 격변하고 있을 때, 나는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다. 내가 글쓰기에 약간의 재능이 있다면 그건 온전히 책을 열심히 읽은 덕이다. 나는 더욱 책을 열심히 읽었고, 책읽기의 범위는 넓어지고, 조금씩 깊어졌다. 1993년,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성실하게 공부하지 못했다. 학교 공부와 사회생활은 병행하기 힘들었고, 이후 결혼하고, 회사에 취업해 직장생활을 성실하게 유지하는 한편, 태어난 아이의 육아도 직장 다니는 아내와 함께 하느라 공부가 쉽지 않았다. 결국 방송통신대학의 학부 생활은 몇 번의 등록, 재등록을 거치며 중단되었고, 그사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이주해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책읽기는 더욱 열심히 했다. 아이가 자라서 군복무를 하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2020년, 다시 방송통신대학교에 재입학을 신청했다. 이미 60세가 되어가는 나이였지만, 학력과는 상관없이, 시작한 공부를 마치고, 죽을 때까지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만화평론으로 상을 받았고, 나의 책읽기를 통한 독학은 약 40여 년을 이어왔다. 몇 년 단위로 스스로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교육 과정을 정상으로 밟아 중, 고, 대학교를 다니고, 전공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보다는 부족하지만, 나는 스스로 공부했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웠다. 배움에는 형식이나 지름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한문 공부는 신문-옛날 신문은 한문이 많이 섞여 있었다-을 읽으면서 터득했고, 외국어(영어)는 쉬운 영어책과 영화를 보면서 배웠다. 나는 어리석음을 깨치기 위해 공부했으며, 책을 읽었다. 컴퓨터-하드웨어, 소프트웨어-도 1989년부터 스스로 밤을 새워가며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하며 혼자 배웠고,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배운 배관, 설비, 용접 기술로 군대에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시골에 사는 지금은 그때 배운 기술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자양분이 되고,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우려는 마음은 겸손하고, 스스로를 낮추게 되는 장점이 있다. '날마다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씀은 지금도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안철수 씨는 정치 그만두시죠.
    안철수 씨는 정치 그만두시죠. 과거의 인연이 있어 험한 말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요 며칠 페이스북에서 안철수 씨가 한 발언을 보면서, 안철수 씨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정치를 할 사람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자신의 오랜 고민이나 철학에 기반한 것이 아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내린 결론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소위 '대통령 꿈'에 젖어 있던 안철수 씨는 오랜 시간 정치적 단련을 이겨내고 성공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같은 깊은 내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IT 기업인으로 성공했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안철수 씨에 대한 인간적 호감이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그것은 안철수 씨에게 큰 자산이었습니다. 그런 귀한 자산을 바탕으로, 한국의 부패하고 수준 낮은 정치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믿는 시민들의 바람을 안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계에 발을 디딘 이후 안철수 씨가 보여준 행보는 기존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행적에 관해서는 거두절미하고, 최근 며칠 사이에 안철수 씨가 발언한 내용만으로, 안철수 씨가 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지난 4월 9일, <포퓰리즘 반대 및 긴급재난구조 기조에 대한 특별성명문>을 발표했습니다. 성명문에서 안철수 씨는 세 가지를 주장했습니다. 1) 포퓰리즘을 배격하자, 2) 긴급재난지원금(기본소득) 대상을 제한하자, 3) 코로나19 이후를 위한 전략회의를 제안한다, 입니다. 포퓰리즘을 배격하자는 배경은 '재난지원금'을 국민 모두에게 빠짐없이 주자는 여당, 야당, 이재명 지사의 주장에 대한 반박입니다. 그러면서 재벌이나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에게 지원하는 것을 명백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원대상에서 '공무원, 공공기관 근로자, 교사, 직업군인, 안정적인 대기업 근로자'는 제외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제외하면 지급대상자가 2,750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안철수 씨. 이런 주장이 얼마나 심각하게 국민을 분열하고, 감정 상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인지 혹시 진짜 모르는 건가요? 긴급재난기본소득을 차별 지급한다는 발상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경제 체제의 문제나 민주주의, 독재 같은 정치 체제의 문제를 떠나 상식적으로도 옳지 않고, 국민의 감정을 대단히 불쾌하게 만드는 발언입니다. 안철수 씨 주위에 제대로 된 상식을 가진 참모도 없거나, 모두 안철수 씨가 주장한 것과 같은 생각을 하는 참모들만 있다면, 안철수 씨는 매우 불행한 정치인입니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있고, 국가부채 역시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국민 한 사람마다 긴급재난기본소득으로 100만원을 지급해도 충분한 여력이 있습니다. 국민 모두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 마치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들은 두 부류입니다. 1) 무조건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려는 멍청한 인간들, 2) 한국 경제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들이 그들입니다. 재난기본소득을 국민 모두에게 100만원씩 지급한 이후, 이것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내 모두 소진하도록 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연말에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이 높은 사람에 대한 지원은 다시 세금으로 환수하면 됩니다. 매우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국가재정을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재난기본소득을 일부에게만 준다면, 그 대상을 분류하고, 조사하고, 지급하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인력과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정부가 국민을 차별한다는 인식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은 모두 국민의 4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왜 재난기본소득에서는 차별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기도 싫습니다. 오히려 안철수 씨에게 묻습니다. 왜 국민을 차별합니까? '공무원, 공공기관 근로자, 교사, 직업군인, 안정적인 대기업 근로자'를 제외하자는 그 발상의 이유는 단지 그들-모두 노동자들입니다-이 수입이 많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왜 건물주인, 의사, 변호사, 변리사 같은 고소득자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재난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진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언급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사람들을 재난기본소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그 발언의 본심은,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부자를 보호하고, 노동자에게 위기를 떠넘기는 매우 악랄한 자본가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안철수 씨는 경제에 관한 기본 개념도 없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가진자, 부자, 권력자의 시각으로 국민을 대하고 있으니, 만일 안철수 씨가 대통령이 되면, 정책을 펼 때도 부자, 권력자를 위한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을 당연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철수 씨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어제(4월 10일) 안철수 씨는 '배달의 민족'이 갑자기 수수료를 정액제에서 일회당 5.8%로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한 후, 여론과 언론, 이재명 지사의 발언 이후 자신들의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발표에 관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배달의 민족'이 보인 독점의 횡포를 막기 위해 '배달 공공앱'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시장의 영역을 침법하는 것이며 인기영합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시장만능 논리'는 자본주의자들이 늘 하는 말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식상하고 짜증날 정도죠. 안철수 씨에게 묻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금융위기 사태가 터졌을 때, '시티뱅크'를 비롯해 미국 금융권에 무려 7천억 달러(770조원)의 자금을 미국정부가 미국시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한 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한국에서도 지난 IMF 때, 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빌려 기업에 195억 달러(23조원)를 투입해 기업을 살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할 돈이었습니다. 자본주의자들이나 안철수 씨의 논리라면, 미국은 이미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자본주의자들은 경제가 순탄하고, 돈을 잘 벌 때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경제가 악화하고 자신들이 돈을 벌지 못하면 정부가 왜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절대 명제를 자기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바로 자본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안철수 씨는 경제 정책에 관한 자기 중심이나 철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널리 알려진 자본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되풀이 하는 수준에 그치는 걸 보면, 안철수 씨는 경제를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재명 지사가 말하는 '배달 공공앱'은 경기도가 직접 '배달 공공앱'을 개발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재명 지사는 안철수 씨의 비판에 대해 자세하게 반론하고 있습니다. 그 반론 읽어보셨나요? '경기도가 추진하는 공공배달앱은 경기도가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화폐망 등 공적 자산들을 활용하되 민간 기술과 경영노하우를 활용해 설립운영하므로 반시장적이라고 비난하거나 실패의 저주를 할 이유가 없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공공앱은 군산의 배달의 명수가 자리잡아 가는 것처럼 100% 독점배달앱에 대항해 독점횡포를 저지하고 시장질서를 회복시키는 순기능을 할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정치에 발을 들인 이후, 안철수 씨가 하는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죠? 그럼에도 여전히 안철수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을 알 수 있는 여론조사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후보 지지도, 이번 총선에서 안철수 씨가 만든 '국민의당' 지지도를 보시면, 안철수 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안철수 씨가 정치를 그만두고, 자선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본가이자 부르주아인 안철수 씨는, 정치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빌 게이츠처럼 정치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안철수 씨도 정치를 하는 일부 국회의원처럼 친일매국노, 반역자가 되고 싶지는 않겠죠? 게다가 이명박이나 박근혜처럼 권력을 차지해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무능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꼭둑각시가 되는 것도 원치 않으시죠?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가장 올바른 태도입니다. 앞으로 안철수 씨가 계속 정치를 할수록 안철수 씨의 말과 행동은 비웃음과 비난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정당지지도로 '국민의당'은 6%가 나왔습니다.(2020년 4월 10일 '미디어오늘 기사) 이 숫자라면 아마 비례 의원으로 2-3명 정도의 의원이 나올텐데, 앞으로 안철수 씨의 정치행보에 과연 도움이 될까요? 이런 참혹한 결과가 나온 것은 과연 누구 탓일까요? 더구나 비례대표 4번인 김근태는 말과 행동이 극단적이고 악랄한 인물인데, 이런 사람을 쓰겠다는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묻습니다. 다음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는 이낙연, 이재명, 황교안, 안철수(이상 한국갤럽 조사 순위)의 지지도는 이낙연 26%, 이재명 11%, 황교안 8%, 안철수 5%로 나왔습니다. 지금 지지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언제든 역전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그런 자기 확신이 나락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도 그러면 알고 계시겠지요? 안철수 씨는 행정 경험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는 '문외한'입니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도 마찬가지죠.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면, 정치와 행정에서 오래 경험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 씨는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죠. 그런데도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일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욕심이며, 망상입니다. 과거 안철수연구소(안랩)에 있을 때, 안철수 씨는 행복했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한 이후, 안철수 씨는 눈빛이 달라졌고, 늘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자주 웃는 모습을 보던 저로서는 그런 안철수 씨의 모습이 몹시 낯설고 기이합니다. 왜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씨는 자신을 희생해 국민의 삶에 기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국민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꼭 정치를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사회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쓰는 것은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 국토달리기도 그저 쇼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으실 걸로 압니다. '국민의당'도 후보를 내지 못하고, 정당비례후보만 낸 상태이고, 그것마저도 성과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꿈은 이미 안철수 씨가 기간 보여준 행보만으로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깨끗하게 정치와 결별하고, 행복한 개인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텔레그램 n번방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텔레그램 n번방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이 무슨 '종족주의' 어쩌구 하는 책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란다. 이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아, 그래, 바로 이게 이들의 공통점이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친일매국노는 다양한 형태를 띈다. 한국최대 야당 집단이 있고, 개독 집단이 있으며, 일베충 집단이 있고, 광화문에 태극기, 일본국기, 미국국기, 이스라엘국기 등을 들고 나와 데모하는 틀딱늙은이 집단이 있고, 나랏돈을 자기돈처럼 쓰는 어린이집, 유치원 원장 일부 집단이 있고, 의사 일부 집단이 있고, '종족주의' 어쩌구 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지식인 집단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도 피해자 학생과 그 부모, 가족을 비난한 것도 바로 이런 친일매국노 집단이었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집단 성폭행 사건을 보는 시각도 친일매국노들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말한다. 즉, 여성들이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당한 것이다,라는 논리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일제의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었던 피해자를 향해 이 친일매국노들이 '자발적 매춘부'라고 비난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다. 그러면, 이 친일매국노들은 왜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들은 비겁하다. 강한 자에게는 납작 업드려 복종하고, 약한자에게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뜯어 먹는 약육강식의 본능으로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문명적으로, 정신적으로 진화가 덜 된 '종족'인 것이다. 설마, 이들 가운데는 의사도 있고, 판사, 검사도 있고, 학자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반문하겠지만, 그런 사회적 직업과 본성은 다르게 봐야 한다.즉, 책을 달달 외워서 시험보는 머리와, 사회적 진화 단계, 정신적 성숙도, 공동체에서의 협력, 협응, 우애의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원시적 충동을 내재한 채 문명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원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싶지만, 사회적 규범이 있으므로 충동적으로 살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충동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바로 피해자 즉 힘없고 약한 사람을 물어뜨는 방식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지금의 문재인정부를 증오한다. 그것은 이들 친일매국노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주로 독재정권에서 권력에 빌붙어 약한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형태로 존재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마치 흡혈귀나 좀비처럼, 숙주가 있어야 한다. 그 숙주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었고, 독재의 폭력은 더욱 백성을 짓누르는 상태였으니, 강한자에게 복종하고, 약한자를 짓밟는 친일매국노의 성향에 딱 맞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정부로, 모든 것이 공개되고, 폭력도 쓰지 않으며, 약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해 서로를 돕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되니 과거의 독재폭력과 억압, 야만에 적응했던 친일매국노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 좀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이유로 이들 친일매국노들은 세상을 일차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즉, 결과만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가령 이렇다. 코로나19로 사람이 죽었을 때, 이 친일매국노들은 죽은 사람을 비난한다. 앞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 사람(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는 '하나님이 그 사람(죽은 사람)을 하늘나라에서 쓰시기 위해 불렀다'고 말한다. 혹은 '그 사람(죽은 사람)은 그럴만 하니까(죽을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죽었다'고 말한다. 즉,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 없이, 자의적으로, 자기가 편하고, 말하기 쉬운대로, 생각하는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개독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태풍이 불어 피해가 발생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태풍이 태평양에서 발생할 때, 바닷물의 온도가 상승하고, 저기압 상태에서 다량의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거대한 구름이 생기고, 이런 물리적 변화가 점차 변증법적으로 태풍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의 예로 돌아가서, 텔레그램 n번방 성폭행 사건을 두고, 피해자인 여성을 '단속'하겠다는 발상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비난받아야 한다는 의식, 무의식의 발현이다. 저 '종족주의' 저자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가해자 처벌은 별개로' 어쩌구 써놨지만, 그건 그냥 변명일 뿐이다. 핵심은 '내 딸(여성)을 단속하겠다'는 것에 있다. 나는 이 인간에게 묻고 싶다. 네 딸이 그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할까? 네 딸을 데려다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했다고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 두드려 팰 것인지, 아니면 여자가 그따위로 몸가짐을 하고 다녀서 성폭행을 당했으니 어쩔 수 없고, 당해도 싸다,라고 말할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이미 성폭행을 당한 수 많은 여성이 존재하는데, 거기다 대고 '내 딸이라면 단속하겠다'는 따위의 되먹지 못한 말을 하는 자가 '종족주의' 어쩌구라는 책을 쓰는 건 필연적 결과다. 즉, 가해자의 논리에 길들여진 노예이자, 약한자를 물어뜨는 하이에나같은 친일매국노들의 본성이 매우 잘 드러난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20002 형, 반가워.
    20002 형, 반가워.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가평 별장에 있었네? 별장 안에서 젊은 여성들이 시중들어 주고, 형은 참 좋겠어. 근데, 망원경으로 밖은 왜 쳐다봐? 밖에서 형 좇아다니는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려는거야? 아니면 형 별장 앞에 모여서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자의반, 타의반 들어간 자식들, 남편, 아내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가족들 보려고 그러는 거야?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형을 '살아 있는 예수'라고 한다며? 그리고 형은 '영생 불멸'한다며? 다 좋은데, 형 모습을 보니까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 같던데? 걷는 것도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걷고, 형 얼굴을 보니까 합죽이처럼 보이던데, 형 틀니했지? 형 영생한다면서? 이도 다 빠지고, 잘 걷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영생할 거야? 그렇지만, 형이 부럽긴 하다. 한국에서 몇 대 없다는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잖아. 그거 거니형 정도나 되어야 타고 다닐 수 있는 건데, 형은 가뿐하게 소나타 타고 다니듯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는 걸 보니 역시 사기를 치든, 도둑질을 하든 무조건 돈만 벌면 장땡인가봐, 그렇지? 형도 옛날에 형이 믿던 사이비종교 집단에 들어갔다가 전재산 날렸잖아. 그거 신문기사로 요즘도 돌아다니더라. 그때 형 기분이 어땠어? 사기치는 새끼들 다 감옥에 잡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아니면, 나도 당했으니 너희들도 당해봐라, 뭐 이런 심정으로 형도 이 바닥에 뛰어든 거야? 이유야 어떻든 형은 성공했네. 가평 북한강 바로 옆에 거대한 별장을 짓고, 마이바흐를 타고 세상 부러울 게 없겠어. 그런데, 형은 참 안목은 별로인가봐. 별장이라고 지어 놓은 건물 디자인이 너무 구려. 요즘 그렇게 건축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어딨어. 엄청 촌스럽고 구리거든. 형이 오늘 진짜 넓은 마음으로 언론 카메라 앞에 나와서 기자회견했잖아. 영생한다는 형이 마스크 쓰고 나와서 말하는 걸 보니 진짜 웃기더라. 형 영생한다면서? 그리고 말은 왜 그렇게 못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아니면 원래 말하는 모습이 그런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다듣지 못하겠어. 뭐, 말은 잘 못할 수 있지. 그래도 형이 좋은 음식에다 건강에 좋다는 약을 꾸준히, 열심히 먹나봐. 하긴 영생하는 사람이 나이를 먹는 건 의미 없잖아. 형처럼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은 하루 몇 끼나 먹어? 한 이십하고도 새끼를 더 먹나? 돈 많으니까 끼니마다 쇠고기 먹겠네? 그건 참 부럽다. 나는 쇠고기 먹은 기억이 가물가물해. 형은 하루에 한 이십하고도 새끼를 더 먹을 수 있으니 역시 형은 영생하겠어. 그런데, 오늘 형이 왼쪽 손목에 찬 시계, 그거 사람들이 엄청 관심이 많던데, 그거 파텍 필립 아냐? 왜 있잖아, 시계 하나에 1억이 넘는 최고급 시계 말이야. 시계가 막 번쩍거리던데. 아냐? 누가 그러던데 그네누나 시계라고 하던데? 그네누나 시계는 어떻게 구한 거야? 지금 그네누나 국립호텔에 들어가서 국가가 건강관리 해주고 있잖아. 형하고 그네누나하고 인연이 깊어? 아, 그렇구나. 그러면 이번 기회에 형도 그네누나 옆으로 가면 어떨까? 형도 국가가 운영하는 호텔에 들어가서 국가가 잘 관리해주고, 하루 이십새끼는 아니어도, 새끼는 꼬박꼬박 잘 챙겨 주고, 건강관리도 잘 해주고,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잖아. 형을 구원자, 영생자, 예수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꽤 많다면서? 그런데 장로교나 침례교 같은 기성 개신교에서는 형을 보고 사이비종교 지도자니, 사기꾼이니, 배워먹지 못한 놈이라고 욕하던데, 형이 그걸 참는 거 보면서, 형은 역시 대인배구나 하고 생각했어. 아니면 저런 놈들하고는 상종도 하기 싫거나,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거나겠지. 왜? 형은 살아 있는 예수니까. 원래 예수도 자기 고향에서나, 살아 있을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욕을 실컷 얻어먹고, 사람들이 막 침도 뱉고, 돌멩이도 던지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형도 사람들이 형을 보고 사이비니, 개독이니, 사기꾼이니 비난해도 그건 다 형이 '살아 있는 예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다 좋은데 형이 '살아 있는 예수'로 자칭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 일단 외모부터가 너무 다르잖아. 예수 그림 좀 봐봐. 미끈하게 잘 생긴 서양 백인 남성이잖아. 머리칼도 금발로 길게 기르고, 눈동자도 파랗고, 얼굴은 알랑 드롱보다 더 잘 생겼잖아. 근데 형은 뭐야, 다 쭈그렁 늙은이에, 이빨도 다 빠지고, 피부는 갈색에, 얼굴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넙데데하고...이건 뭐 예수하고는 전혀 코드가 안 맞잖아. 그래서 말인데, 형, 우리 수술 좀 하자. 요즘 성형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알지? 형이 진정한 예수도 태어나려면 외모를 싹 뜯어고쳐야 해. 주름을 없애려면 보톡스를 넣고, 피부도 하얗게 박피를 하고, 머리칼도 길게 길러서 황금빛으로 염색하고, 옷도 예수시대에 입던 '토가'를 입고, 가죽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다니는 거야. 그러면 누가봐도 형은 '진짜 예수'처럼 보이잖아. 어때? 근데, 다 좋은데 형이 말하는 거, 그건 정말 어떻게 안 될까. 예수처럼 아람어나, 히브리어나, 코이네 그리스어를 섞어서 써야 멋있는데, 형은 아직도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는 떠벌이처럼 말하잖아. 그건 참 보기 안 좋아. 사람들이 왜 형을 영생 불멸한다고 믿을까. 그런 걸 보면 형이 참 재주가 좋아. 나는 형이 참 촌스럽고 여러 면에서 수준 이하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봐? 어쨌든 형이 운영하는 특수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온나라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녀서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잖아. 지금은 정부가 방역하고, 치료하지만 나중에 형이 나라와 국민에게 입힌 피해를 배상해야 할 걸. 그거 돈으로 환산하면 형이 가진 재산 다 팔아도 택도 없어. 형이 한순간에 거지가 될 수도 있다 이거지. 오늘 텔레비전에 나와서 큰절을 했지만, 그게 쇼라는 건 모두 알잖아. 그러니, 형이 가진 명단하고 재산 다 내놓고 국립호텔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는 게 어때? 내가 진지하게 조언하는 거야. 다 형을 위해서.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신천지와 다단계
    신천지와 다단계 오래 전, 다단계에 엮일 뻔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친구가 있는데 - 그 친구가 먼저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 어느 날, 2박3일 여행을 가자며 연락했다. 여행 경비도 자기가 낼테니 준비만 해서 만나자고 했다. 평소 다단계에 관해서는 전혀 말한 적도 없고, 나 역시 그 친구가 다단계에 빠졌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나는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다만, 그 친구가 만나자고 한 장소가 의외였다. 녀석은 압구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보자고 했는데, 그곳은 당시 우리가 살던 마을-금천구 시흥동-에서도 매우 멀었지만, 우리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곳에 나갔다. 녀석은 나를 어느 카페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 선배를 잠깐 만나자고 했다. 잠시 뒤 어떤 남자가 들어왔고, '문화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나는 '문화운동' 쪽에서 일하고 있었고, 지금은 돌아가신 박인배 형과 함께 일했다. 그 낯선 사람도 '문화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때 '운동'을 하던 사람은 연대의식이 있어서 일단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다시 모르는 여성이 등장했다.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문화운동'을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고 했고, 어떤 곳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내가 아는 '문화운동'에 관해 아는 척하고, 어디론가 함께 가자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들이 다단계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들, 다단계 아니냐'고 물었고, 그들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이들이 분명 다단계라고 확신했다. 내가 카페에서 일어나 나오자, 그들도 따라 나왔고, 나를 끌고서라도 어디론가 데려갈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압구정 네거리-지금도 넓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단계로 나를 끌어들이려면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친구였던 그 녀석에게도 쌍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떴고, 그 뒤로 꽤 오래 그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서, 그 녀석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자기가 귀신에 홀렸는지, 다단계에 빠졌으며 돈을 꽤 날리고 빠져나왔다고. 그런 녀석이 몇 년 전에 내가 부르주아라면서 페이스북을 차단하고, 친구로서도 인연을 끊었다. 오래 전, 10대 때 잠깐 가까운 형을 따라 순복음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가서 찬송가도 불렀고, 성경도 읽었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뭔가를 열성적으로 하지 못하는데, 그때는 먹고 사는 일에 쫓겨 교회를 다니는 것도 사치였다. 그러다 군복무를 하고 사회과학 공부를 하면서, 종교는 내 삶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사회과학 공부를 한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때 팀을 꾸렸던 대학생 형들이 있는데, 그들과는 삶의 궤적이 달라졌지만, 처음 그들에게서 정치경제학,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와 레닌을 배우면서 나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계급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초를 갖게 되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을 보면, 그 과정이 다단계와 99% 똑같다. 인간적 호의와 친밀감으로 접근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세뇌를 통해 자신들의 이론이 옳다고 믿게 만든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세뇌된다. 한번 세뇌당하면 스스로 벗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인간의 정신은 의외로 나약해서, 강력한 외부의 힘에 쉽게 조종당한다. 그래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이고, 교육의 핵심이 그것이어야 한다. 현 체제의 교육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그런 기초교육의 틈새를 파고 들어가며, 인간의 나약하고 부족한 정신을 건드려 불안감을 증폭하고, 공포를 조장하며, 가능성 없는 미래와 희망을 불어넣어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추종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완벽한 사기이며 거짓말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믿고 싶어'한다. 그것이 나약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종교 뿐 아니라, 사회에서 사기를 치는 사기범들도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매우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건드리고,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주입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의 능력과 노력보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중요한 것을 쉽게 얻으려는 사람은 이런 사기꾼에게 쉽게 넘어가고, 그들의 노예가 된다. 사기를 치는 놈이 가장 악질이지만, 그런 사기꾼에게 넘어가 가족과 친구를 버리고, 가족과 친구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치면서 사기꾼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단지 '피해자'가 아닌, 사기꾼에게 동조하는 공범이자 가해자가 된다. 무지와 어리석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기도 하다. 내가 종교를 혐오하는 이유는, 반이성, 반지성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현대사회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고대의 미신을 믿는 어리석고 멍청한 행위이며, 발달한 인류의 지성과 과학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신천지 교주 20002도 사이비 종교에 뛰어들었다가 교주에게 사기를 당해 교주를 고소했던 사람이다. 그 자신이 사이비 종교의 피해자였다가 '나만 당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마이바흐를 끌고 다닐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신천지를 믿는 사람들의 롤모델이 20002라면, 그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사치를 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미래의 잠재 사이비 교주들이며, 예비 사기꾼들이다. 국가에서 사법권을 발동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범죄 집단과 범죄자를 미리 찾아내고, 격리하기 위한 것인데, 과연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눈에 보이는 사이비 범죄집단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신정일치 사회를 꿈꾸는 그들
    신정일치 사회를 꿈꾸는 그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 이미 불을 발견했고, 수렵채집경제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들과 산에서 자라는 곡식을 가져와 벌판에 심고, 개량해 추수하고, 산과 들, 숲에서 나오는 온갖 과일, 채소, 식용 풀과 버섯, 꿀 등을 먹고, 사냥을 위해 덫을 만들거나 새끼를 데려와 길들여 가축으로 기르면서 인류의 먹거리는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이 과정에서 잉여농산물이 발생하고, 동시에 노동하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 등장했다. 이들은 씨족이나 부족 가운데 연장자로 씨족장, 부족장을 겸하고 있는 노인으로, 경험이 많아 지혜로운 사람으로 불렸다. 이들과 함께 '무당', '주술사' 역할을 하던 사람도 노동하지 않는 특별한 사람에 포함되었다. 이들은 '의사' 역할도 했는데, 부족 가운데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악령을 퇴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부족장이나 주술사는 부족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잉여 농산물의 일부를 받아 생활했는데, 잉여 생산물은 주로 부족의 노인과 어린이 등 노동력이 없는 사람에게 분배되었다. 씨족과 부족 단위의 공동체는 침략과 전쟁을 통해 통합되었고, 공동체 규모는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동력도 커지고, 잉여생산물도 커졌다. 전투와 전쟁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을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고, 잉여생산물의 대부분은 승리한 부족의 지도자 그룹이 가져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도시국가가 탄생하고, 국가, 제국이 탄생했다. 이들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체제를 구축했고, 지배그룹은 종교와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들은 초기에 부족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제사장을 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력과 제사장, 종교지도자는 분리되어 두 영역으로 나뉘지만, 두 그룹은 강력한 연대를 통해 지배권력을 강화했다. 종교는 초기 인류가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했다. 토테미즘을 거쳐 각종 미신과 다신이 등장하고, 인류의 모습을 담은 인격신이 나타난 다음, 인간의 욕망과 소망을 해결하기 위한 '절대신', '유일신'이 등장했다. 신과 종교는 인류의 욕망에 의해 진화했으며, 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의 미개함을 합리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종교는 인민을 정신적으로 지배했고, 정치권력과 함께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았다. 중세까지 신정일치의 사회는 인민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유지되었고, 인민은 오로지 왕과 교황의 지배에 순종하며 노예로, 농노로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산업혁명 이후 봉건왕조는 몰락했지만, 종교는 살아남았다. 자본가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를 교육할 필요를 느꼈고, 교육을 받기 시작한 노동자는 종교가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식계층에서 노동계급의 입장에 서려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자본가, 부르주아, 교회가 담합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회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각성한 노동자와 지식계층은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 부르주아, 교회 권력을 타도하고 계급이 사라진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일부 성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자는 자본의 착취 아래 놓여 있으며, 자본과 부르주아의 이익에 봉사하는 종교 대리인, 교회의 목사와 신부, 절의 중이 하는 말을 믿고 따른다. 노동자는 이중의 모순에서 깨지 못한 채, 임금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자본에 의한 착취의 모순과 종교가 강요하는 미신의 모순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권력과 종교집단은 강력한 연대를 유지하며 노동자, 자영업자, 학생, 서민, 어린이, 노인 등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가능한 많은 사람을 무지와 정신적 노예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이성은 날카롭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다수의 인민은 정신적으로 미개하거나 미숙한 상태에 놓여 있다. 현대는 과학기술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다수 인민의 이성과 지성은 중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증거는 종교가 여전히 활발하게 성장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2천년 전의 미신을 진실이라고 믿는 미개함은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더디게 발달하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교회권력은 그런 미개한 사람들에게 협박과 거짓, 공포를 주입하는 한편,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개인의 인정욕구와 자신감을 불어 넣고, 조직 안에서 절대자를 섬기며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세뇌한다. 종교권력은 수많은 개인들이 자의반, 타의반 제공한-노동력과 교환한 가치인-화폐를 모아 거대한 부를 쌓고, 소수의 교회지배자는 노동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결합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이것은 정치권력과 교회권력 모두에게 이롭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교회권력은 필연적으로 보수적이며 자본과 부르주아의 이익과 한편이기에, 인민-노동자, 농민, 서민, 자영업자 등-의 이익과는 반대되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이들은 혁명, 개혁, 변혁,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하며, 현 체제를 옹호, 유지하려 한다. 씨알-인민, 민중, 백성, 시민, 국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서민, 자영업자, 학생, 실업자 등 모든 형태의 피지배 계급과 계층-이 깨어나지 않으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은 끊임없이 씨알의 피를 빨아먹을 것이고, 그들은 배를 불리고, 이 세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피를 빨리는 씨알은 그렇게 말라죽을 것이고, 세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금고에 금괴와 무기명양도증서와 채권과 현금다발을 쌓아 놓고, 수십억, 수백억 저택에 살며, 한 끼 밥값으로 노동자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쓰며,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일 때,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피우는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삶을 동경하며 살 것인가, 그들이 자긴 모든 금괴와 무기명양도증서와 채권과 현금은 씨알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임에도 자기의 피땀을 빨아먹는 저 악귀같은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발 아래 엎드려 굽신거리며 말라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목을 졸라 가지고 있는 것을 뱉어내도록 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오로지, 우리의 행동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 총칼을 들 것인가, 도끼와 낫을 들 것인가, 아니면 투표를 할 것인가. 우리는 촛불을 들어 세상을 바꿨다. 촛불의 힘도 강력했지만, 투표는 더 강력한 무기다. 우리가 당장 총칼과 도끼와 낫을 들 수 없다면, 차선책은 투표가 유일하다. 하지만, 투표로는 정치권력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정작 인민을 정신적 노예로 만드는 것은 종교권력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인민의 정신을 썩게 만드는 독극물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많은 인민은 어리석고, 멍청하며, 한심하도록 멍청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며, 노예의 상태에 있을 때 안심하고, 행복하며,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다. 이런 좀비같은 정신적 노예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 역시 올바른 교육,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깨어 있는 씨알의 투쟁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안철수 대표님
    안철수 대표님 '특별 기자회견문' 잘 읽었습니다. 대표님하고는 같은 회사에서 일한 인연이 있어 가능한 모진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간 안철수'는 올바르고 선량하며 따뜻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기에, 몇 년 전, 정치를 하신다고 했을 때도 부디 원하시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님이 선택한 정치는 '혁신', '개혁', '진보', '민주'와는 거리가 있는 구태 정치, 낡은 정치여서 저는 몹시 실망했습니다. 기존의 부르주아 정당정치, 기득권 속에서 패를 나눠 파이를 더 가져가려는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안 대표님이 정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의 노회한 정치기술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안 대표님에게 기대를 걸었고, 그래서 무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하도록 표를 주었으며, 새정치연합,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다시 무소속으로, 그리고 '국민의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 행보에도 여전히 기대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 대표님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안 대표님이나 한국 정치에서 달라진 것이 있는지 묻습니다. 안 대표님이 그렇게 힘주어 말하는 정치개혁은 이루어졌나요? 아니, 정치개혁을 이루려는 노력은 있었나요? 안 대표님은 기존 기득권 정치세력의 벽이 두텁고 높아서 그렇다고 말하겠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변명입니다. 그런 현실을 모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현실 감각이 없는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고,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정치개혁에 게을렀다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안 대표님이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전략에 관해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안 대표님 주변에 훌륭한 참모들이 많을 것이고, 뛰어난 전략을 제시할 인재가 많다고 생각해서 저같이 시골 변방에 사는 사람은 감히 조언할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은,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당시는 새정치연합, 새정치민주연합)보다 훨씬 진보적인 테제를 내걸고 정치의 패러다임을 주도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수구정당인 새누리당은 아예 제쳐놓고, 상대적으로 진보 정당인 민주당보다는 훨씬 진보적 정책을 내걸어야만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대통령 선거를 할 때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기본소득, 주4일 근무, IT기반의 농어촌 활성화, 지방도시의 활성화, 노인 인구의 능동적 활용, 저출산 문제의 적극적 해결 방안, 내수 시장의 확대 정책, 학력과 학벌 폐기, 기술 인력의 우대 등 안 대표님이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의 정책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그 어떤 정당에서도 내놓지 못한 진보적이며 혁신적인 정책들이어서 안 대표님의 리더십이 세상에 빠르게 알려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 대표님은 기존 정치인들의 숲에 싸여서 그들의 조언을 듣고, 그들의 방식대로 움직였습니다. 그것은 기존 정치체제의 내부에서 그들의 패러다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선되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는 7백만 표도 얻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1백만 표도 얻지 못해 참담한 결과였는데, 안 대표님은 언론에서 마치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안 대표님의 말과 행동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미숙하거나 어리석었습니다. 안 대표님이 아무리 부인하고, 믿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 대표님을 무조건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비판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겠지만,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 안 대표님을 진정 생각하는 사람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나쁠 것은 없을 걸로 생각합니다. 이제 안 대표님은 '참신한' 정치인이 아니라, '구태'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안 대표님은 이번 '기자회견문'에서 이런 말도 했더군요. 첫째, 현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막는 것입니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현 정권은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경고를 보내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묻습니다. 현 문재인 정부가 '무능'하다는 증거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폭주'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폭주'했는지 역시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들이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대서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묻는 내용에 합리적 설명과 근거가 제시되어, 제가 수긍한다면, 저는 안 대표님을 위해 총선이든, 대선이든 온몸을 다해 뛰어다니며 봉사하겠습니다. 저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민주당 앞잡이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존경하는 분이지만, 인간 문재인과 대통령 문재인은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가 문재인 정부로 경도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겠습니다. 저는 안 대표님이 정치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했습니다. 정치는 안 대표님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 대표님은 심사숙고한 결과,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때부터 이제 약 8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안 대표님의 참신함은 사라졌고, 정치권을 개혁할 의지도, 명분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다음,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독일과 미국 등에서 생활하다 다시 돌아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주변 참모와 측근의 조언에 따른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안 대표님의 오기도 작용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물러설 수 없다는 결기는 훌륭하지만, 억지로 이룰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탑을 오르려 애쓰는 모습은 안쓰럽기만 합니다. 안 대표님처럼 재정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분이라면, 지금 만들어 놓은 동그라미 재단을 통해 사회에 더 유익한 일을 많이,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도 말했습니다. '정치가는 절대 안 할 것이다. 재단의 일만으로도 정치가가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정치가가 되어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뜻은 가상하지만,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정치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빌 게이츠처럼 직접 사회에 필요한 일, 직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안 대표님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 지역 후보는 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 내겠다는 것은 온전한 정당이 아니라 '기생 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도 안 된 정당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고 우습게 보는 것 아닐까요? 깔끔하고, 담백하게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처럼 정치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흙탕물이 더 묻고, 허우적거리다 비참한 모습으로 퇴장하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른 사람 흉내를 내는 것같은 지금의 '정치가' 안철수가 아닌, 편안하고 따뜻한 '인간' 안철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건승하길 빕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여성의 몸-주체적인가 성의 상품화인가
    여성의 몸-주체적인가 성의 상품화인가 결론을 내리고 쓰는 글이 아니라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이 주제는 나의 개인적인 과제이기도 하고, 많은 남성들이 겪는 애매함에 대한 일종의 '질문'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먼저,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현상을 몇 가지 살펴보자. 여성 아이돌들의 의상은 거의 벌거벗은 상태다. 그들의 노출은 자발적인가? 아니라면 그런 노출에 대한 여성 아이돌의 생각은 어떨까? 가수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 동영상을 보면 노출이 심하다. 비욘세의 노출은 자발적인가? 아니라면 비욘세의 생각은 어떨까? 심하게 노출이 된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여성 가수들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생각은 어떨까? 어린 여성 아이돌이든, 비욘세 같은 세계적인 가수든 바라보는 여성들은 노출에 대한 시선이 불편한가? 아니면 당당하고 주체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남자 가수, 연예인들은 무대에 오를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는가? 여성들이 남자들의 노출을 싫어하기 때문에? 남성 가수나 연예인들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아프리카, 유튜브 등-에서 지나친 노출과 선정적 몸짓을 통해 남성 시청자들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주체적인가, 성의 상품화인가. 이런 논의를 하기 전에 전제해야 할 명제가 있다.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나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분명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여성의 성착취와 성상품화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성상품화’도 넓은 의미에서 ‘성착취’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의 ‘성’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은 성(젠더)을 구분하지 않는다. 자본의 속성은 ‘이윤’에 있기 때문에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인 윤리와 도덕은 인류의 문명이 존속하기 위한 사회진화적 선택일 뿐, 체제의 이념과는 원리적으로, 합목적적 인과관계가 없다. 따라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과 압력에 의해 개인의 선택은 자율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제된다. 자본의 압력은 ‘노동자에게는 굶어 죽을 자유만 있을 뿐’이라는 명제로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노예제와 봉건제에서 묶여 있던 개인을 해방시킨 진보적 체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해방된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판매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자본-토지, 생산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개인(프롤레타리아, 룸펜프롤레타리아)은 자본의 통제 아래에서 노동-육체노동, 지식노동-을 제공하고 그 보상으로 임금을 받는다. 같은 이유로, ‘성’을 판매하는 것도 ‘노동’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노동을 판매할 수 없거나, 노동하는 것보다 더 큰 보상을 받기 원할 때, 그것이 ‘성’이라면, 자신의 ‘성’을 판매하려는 개인이 등장한다. 성을 판매하는 성 판매자 가운데 특히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성을 구매하려는 구매자가 압도적으로 남성이기 때문이지만, 여성이 사회의 약자이고 소수자인 원인도 크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고, 자본주의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남성우월주의, 남성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남성에 의한 성착취가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여성의 성착취를 노골화하는 이유는 당연히 ‘불평등 구조’에 있다. 여성은 같은 조건에서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상적 불이익을 당한다.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평등한 위치에 있다면 여성의 성착취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은 자발적 행위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 자본의 착취, 사회적 압력-생존 압력-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극히 일부, 여성이 자신의 ‘성’을 자발적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즉 건전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고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성’을 판매해서 얻는 수익이 훨씬 클 경우,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하려는 여성이 나타난다. 이때 ‘자발성’은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닌, 체제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거나 더 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회적 압력에 굴복해 자신을 강제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여성이 자신의 몸이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복합적 이유가 있다. 인간의 행위는 체제와 이념에 의해 규정되지만 개인의 욕망을 발현하는 것은 체제나 이념이 다룰 수 없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므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다. '성 판매'와 다르게 '성 상품화'는 합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성을 매매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규제하지 않는다. 자본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다면 '성'은 물론 인간의 육체를 부위별로, 장기별로 구분해서 팔 정도로 상품화를 추구한다. 성 상품화가 자본의 강제로 발생하는 것은 정치경제학으로 분석할 수 있지만, 인간의 자발적 심리가 개입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면 평범한 노동자로 사는 것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개인은 그것이 비록 체제의 압력이긴해도 그런 상황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노력한다. 즉 자발적 성 상품화를 하며, 성 상품화의 목적은 경제적 이익과 함께 대중에게 주목받고자 하는 인정 욕구가 발동한다. 인간이 상대적으로 주체적 동물임은 분명하고,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진화이론에 근거하며, 사회적으로는 인정욕구에 기인한다. 별다른 재능이 없어도 인터넷의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보통의 노동자들이 노동을 해서 버는 재화보다 훨씬 큰 재화를 벌어들인다면, 그 유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바라보려는 남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가로 재화를 교환한다는 정당한 거래라고 판단하면 성 상품화는 불법이 아닌데다 생산성이 높은 재화가 될 수 있다. 성 상품화에 자본이 개입하게 되면 개인의 재능을 결합한 형태로 성 상품화가 이뤄진다. 어린 여성을 여러 명 묶어 '아이돌'로 훈련시켜 시장에 내보낸다. 이때 '아이돌'은 자본의 상품이자 개인으로는 자신의 재능과 욕망을 발현하는 주체가 된다. 자본의 상품으로 '아이돌'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서서 노래와 춤을 춰야 하며, 팬덤이 형성되면 팬을 위한 서비스를 감당해야 한다. 상품으로의 '아이돌'과 개인의 존재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존재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이 자본의 상품으로 재능과 성적 매력을 판매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대중의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되고, 사회적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재화를 축적할 수 있다는 욕망과 욕구의 충족이 개인의 내적 갈등을 억누르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상품으로의 '아이돌'은 상품성의 순도에 따라 판매가 지속되거나 중단된다. 이런 판단은 오로지 자본의 의지에 따른 것이며, 자본의 의지는 '이윤'이라는 척도로 결정된다. 상품으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대중의 인기를 얻었던 '아이돌'이라해도 대중 앞에 서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예전과 같은 재화를 가져갈 수 없게 된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개별적으로 성공하는 '아이돌'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다. 성 상품화는 자본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원칙에 의해 거래되며, 성을 상품으로 내놓은 개인의 존재가 더 이상 상품으로 가치가 사라지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를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고, 그것은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성 상품화를 부추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누가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가
    누가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가 문재인대통령은 지지하지만 민주당은 제한적으로 지지한다.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싶지만 한국에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어서 역시 제한적으로 정의당을 지지한다. 정의당에서도 심상정 대표는 지지하지 않지만, 지역에 있는 정의당은 지지한다. 이런 전제로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것들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자유당과 그 지지자. 이들을 보면,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자유당과 그 지지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학살자를 지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앞선 권력자의 범죄행위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한다. 시대가 그랬기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그래도 경제발전은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통계는 독재자가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의 지표가 민주정부-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시기보다 낮고, 설령 지표가 높다해도 권력의 정책보다는 외부의 영향 때문인 것이 드러났다. 자유당과 그 지지자들이 현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건 정책의 다름이나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 독재로 회귀해 극소수의 권력집단만이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 때문이다. 여기에 수준 낮고 멍청하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자유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공부하지 않고, 사실을 알려 하지 않으며,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객관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적 활동에 몹시 게으르며,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지 않았거나, 역사와 사회의 발전을 시민의 눈으로 보지 않고, 지배자의 눈으로 보려한다. 이들은 도덕성, 윤리보다는 경제적 이익, 욕망에 더 충실하다. 이들에게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범죄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른바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의 대부분이 독재권력의 대를 이은 정당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이론을 증명한다. 자유당과 그 지지자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자유'는 '마음대로, 내키는대로, 꼴리는대로' 하는 것을 뜻한다. 즉, 자기의 욕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계약이라는 뜻이 뭔지,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 왜 그런지, 개인의 헌신과 노력, 정의와 평화, 공정과 자율과 같은 단어가 왜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당과 그 지지자들이 부끄러움, 수치심, 염치, 도덕성, 윤리성이 거의 없거나 부족한 것은 그들이 탐욕과 욕망에만 충실할 뿐, 사회가 다양한 계층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인다는 기본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나 조직은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짓밟고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이타적 심리를 억제하거나, 처음부터 그런 감정이 없는 쏘시오패스들이다. 하지만 진화론을 바탕으로 이런 탐욕스러운 집단이나 개인은 결국 도태하게 되어 있다. 생물학적 유전자는 물론이고, 사회적 유전자도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협력과 협업을 하는 유전자가 더 오래 생존한다는 실험 결과가 이미 나와 있고, 실제 그런 조직이나 개인이 오래 살아남는다. 따라서 자유당과 그 지지자는 미성숙했던-야만적이고 폭력적인-근현대사에서 우월한 듯 보였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생존 가능성은 낮아진다. 얼치기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 여기저기 '진보'를 붙이며 돌아다니는 글을 보면서, 코웃음만 난다. 극우는 아예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기에 논외로 하지만, '진보'가 붙으면 그래도 우리 사회를 보다 '좋은 쪽'으로 발전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이라 기대를 하게 되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과연 있기는 한지 의문이다. 진보를 기치로 내건 정의당, 노동당, 민중당 따위의 소수 정당이 내놓는 논평이라는 걸 보면 대학생 동아리에서 하는 말보다 수준이 낮고, 논점 자체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위 '진보'를 부르짖는 단체나 개인들의 수준이 보수야당인 민주당보다 낮다는 건, 한국에 진정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있다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고, 옳지 않은 현실이지만, 한국사회를 자본의 착취에서 해방시키자는 말을 왜 못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주의를 주장한다는 정당과 정파 조차도 현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인식 수준이 형편없이 비현실적이다. 적과 아군도 구분하지 못하거나,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도 모호하면서 오로지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는 현재의 정부, 여당에서 제시하는 각종 정책을 비난하기만 할 뿐, 그 정책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제를 만들고, 체제의 프레임을 바꿀 획기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보수정당인 민주당과 정부를 공격하는 건 적폐세력인 자유당과 결론에서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들이 민중의 삶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은 현재의 구조 속에서 기득권의 일부를 나눠먹는 것이 목표일 뿐, 민중의 삶에 부응하는 정치, 제도와 프레임을 바꾸는 진보적 정책의 개발과 실현에 뜻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걸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유당처럼 분명한 '공공의 적'은 아니므로 민주당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정치를 하겠지만,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얼치기 노동운동 단체와 그 지지자. 노동조합의 운동은 기본적으로 조합(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조합주의에 매몰된 사람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지극히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이다. 빼앗길 것은 착취의 쇠사슬밖에 없다는 노동자가 자기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노예로 사는 걸 받아들이고, 견디며 살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현실은 결코 나아질 수 없다. 경제가 발전한 공로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피와 땀에 있지만, 그 열매는 대부분 자본가가 가져간다. 그럼에도 한국은 최빈국에서 70년만에 세계 10위의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진 노동자는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도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는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당연히 자본주의를 끝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것은 역사가 부여한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개량주의는 노동자를 체제순응적 인간으로 만들고, 현실과 타협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비하는 인간으로 살도록 만드는 가장 나쁜 상태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기업과 결탁해 자기 자식이나 친인척을 취업하도록 만드는 것은 노동운동을 사리사욕의 도구로 쓰는 범죄이자, 노동운동을 부패시킨 배신이며, 노동자의 이름을 더럽힌 악랄한 기만행위다. 이런 조합이나 노동자가 현 대통령과 여당을 비난하는 건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보고 짖는 것과 다름 없다. 노동조합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보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무엇보다 노동조합, 노동운동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파렴치한 범죄행위부터 청소해야 하는 내부정화가 필요하다. 단위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원 교육도 거의 하지 않고, 노동자는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으며, 퇴근하면 몰려다니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스스로 공부하는 노동자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이 여론을 형성하고, 진보적 프레임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같은 노동자에게 갑질을 하는 걸 보면서, 더 이상 노동운동에 대한 기대를 접은지 오래지만, 진보 운운하기 전에 기본 상식을 갖춘 인간이 먼져되어야 한다. 여당인 민주당은 보수정당이다. 이들은 현 체제를 유지하며 그 안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물론 그들은 재벌이나 대기업, 부르주아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생각하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보수정당이 갖는 한계는 뚜렷하기에,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개인은 민주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사회를 더 왼쪽으로 이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하지 않거나 못하는 건, 진보 세력의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의 수준보다 낮은 상태에서 올바른 테제를 만들지 못하고,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정당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나는 소위 '진보' 운운하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위선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역시 극우들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진보'의 껍데기를 쓰고 있을 뿐, 진심으로 사회진보를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극우와 극좌는 분명 하나로 통하며 본질에서 같다. 이재오, 김문수 같은 자들은 한때 극좌였다가 지금은 극우다. 또 한때 진보쪽에 발을 딛고 있다가, 자기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어느새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민주당에서 진득하게 서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있는 젊은 국회의원들이 훨씬 더 진보적이다. 한국에 올바른 진보세력이 없다는 건 퍽 안타깝다. 진보세력이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촛불시민의 행동에서 보듯, 시민 대부분은 오히려 진보적이고 정의롭다.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은 촛불시민의 의식수준보다 낮다는 것이 이명박그네 정부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제 한국사회를 이끄는 강한 세력은 촛불시민이 분명하다. 시민은 정당도 아니고, 단체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거대한 세력이며, 힘이다. 대통령도, 민주당도 촛불시민의 명령을 무겁게 생각하고 있다. 진보세력이 살아남을 길은 촛불시민과 함께 한발짝 앞서 나가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송가인, 트로트의 부활과 스타 탄생
    송가인, 트로트의 부활과 스타 탄생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 수많은 경선 프로그램이 있고, 우승자도 많지만, '내일은 미스 트롯' 우승자 송가인의 탄생은 남다르고 특별하다. 기존의 경연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스 트롯'은 한국가요에서도 이제 변방으로 밀려난 '트로트' 장르를 부르는 여성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이어서 딱히 도드라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고등부, 대학부, 마미부, 걸그룹부, 현역부A, B, C그룹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여성 트로트 가수들이 경연을 통해 최종 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첫 방송 시청률은 5.9%였다. 종편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으로는 높은 편이었고, 이후 시청률이 빠르게 상승했다. 모두 10회 경연 방송에서 결승전은 16.6%로 종편 최고였으며, 공중파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시청률을 보여주었다. 이 경연에서 우승한 사람은 현역부에서 진출한 송가인이었다. 트로트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송가인'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었을 것이다. 송가인은 '내일은 미스 트롯'에서 1위를 하며 하룻밤 사이에 스타로 등극했는데, 송가인과 '미스 트롯'은 변증법적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미스 트롯' 제작진은 프로그램 기획을 통해 마당을 펼쳤다면, '미스 트롯'에 출연해 경연을 펼친 경쟁자들의 재능이 프로그램을 견인했다. 이 가운데 특히 송가인은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경연참가자들 사이에서 유독 송가인의 존재를 알아챈 시청자들은 그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 관한 여러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자. '미스 트롯'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한 내용도 있고, 심사위원의 선정과 자질 문제, 출연자 여성의 성상품화 논란도 있었다. 이런 논란에서도 송가인의 가창력은 모두의 눈에 띄어 '미스 트롯'으로 선정되었고, 송가인은 무명 가수에서 일약 톱스타로 도약했다. '미스 트롯'은 진 송가인을 비롯해 선 정미애, 미 홍자가 탄생했고, 본선에 진출한 12명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가장 주목 받은 사람은 송가인이었다. '미스 트롯'의 진(1위)이라는 프리미엄과 어드밴티지가 있다고 해도, 송가인 열풍은 남다른 면이 있다. 그 남다른 면이 송가인 현상의 요인이고, '미스 트롯'보다 송가인 개인을 대중이 선호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탁월한 가창력 송가인은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공부했다. 영화 '서편제'로도 알려졌지만, 판소리는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의 유파가 있는데 송가인은 서편제에 가까운 소리를 한다. 서편제의 특징은 계면조의 애절함과 화려하고 감칠만 나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나중에 송가인이 정통 트로트를 부르는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송가인은 중학생 때 판소리를 시작해 광주예술고등학교, 중앙대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명창 박금희(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9-4) 선생에게 수궁가와 춘향가를 전수받은 정통 판소리꾼이다. 판소리로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며 대상인 장관상울 연속 2회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의 유망주, 미래의 명창 조은심(송가인의 본명)을 잃은 것은 애석하고 안타깝다. 이런 탄탄한 기본기와 실력을 지닌 채 송가인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 판소리에서 트로트로 전향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송가인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진도지역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연말 결선까지 진출해 우수상을 받는다. 이미 이때부터 송가인의 트로트는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며, 작곡가가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고, 앨범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트로트 가수로 전업했다고 한다. 이후 앨범을 내고 '전국노래자랑' 초대가수,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미스 트롯'에 출연하기 전까지 약 8년 동안 무명가수로 생활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미스 트롯'은 송가인의 가창력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무대이자 기회였고, 송가인은 이 기회를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무명의 오랜 시간을 견뎌낸 집념의 승리였고,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존재 증명이기도 했다. '미스 트롯'에 출연한 많은 가수들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관객은 본능적으로 송가인의 노래를 알아챘다. 오래 단련한 판소리 공부에서 나온 내공은 분명 달랐다. 송가인의 탁성은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맑고 깨끗한 소리로 변하는데, 저음과 고음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기교는 판소리에서 터득한 것이다. 송가인은 트로트 가수가 되는 과정에서 따로 교육을 받거나, 트로트 공부를 전문가에게 배우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는데, 노래 하나를 배울 때는 너무 많이 불러서 구역질이 날 때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트로트의 특징은 흔히 '꺾기'라고, 목소리를 떨거나 음계를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교를 부려야 하는데, 이 기교는 판소리 형식과도 닮은 점이 많아서 송가인에게 유리하다. 송가인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로 다져진 그의 실력은 판소리를 배우지 않은 가수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송가인이 '미스 트롯'으로 돋보이긴 했으나, 프로그램과 다른 참가자들을 압도하며, 자신의 카리스마를 드러낸 것은 오로지 그의 탁월한 가창력에 있다. 전라남도 진도 송가인의 고향이 진도라는 것, 판소리를 공부했다는 것은 오늘의 송가인을 만든 원천이자 밑거름이다. 가수 활동과 출신지역이 직접 관련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많은 예술가에게 고향은 그의 작품 활동과 예술성에 깊은 영감을 주고, 창작과 재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특히 송가인은 예술의 고향인 남도의 땅 진도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진도씻김굿 전수조교였고, 그 자신 판소리를 공부했다. 남도-여기서는 전라남도를 뜻한다-가 예술의 고향이 된 것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양반(벼슬한 양반)이 남도 쪽으로 귀양을 온 것과 관련이 있다. 왕은 신하가 잘못하면 서울에서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데, 거리가 멀수록 죄가 크다는 뜻이다. 북쪽 끝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유배생활이었고, 남쪽 끝에서도 섬으로 들어갈수록 유배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유배지로 내려온 양반은 소일거리를 찾아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유배자들이 만든 예술작품은 '유배문학'으로도 남았고, 글과 그림 역시 남도에는 많이 남아 있다. 남도의 모든 정자에는 그때 유배왔던 양반들이 남긴 시를 담은 편액이 걸려 있고, 서민의 집에도 글과 그림이 한편 이상 걸려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이 남도다. 판소리는 민중의 노래지만, 여기에도 양반(지식인)의 지식이 개입한 흔적이 많다. 17세기 이후 판소리를 채집, 정리한 것은 판소리를 사랑한 양반 신재효였고,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가사에도 양반들의 언어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판소리가 특히 남도에서 발흥한 것은 지리적 특성과 함께 유배온 양반의 개입, 세습무의 영향 등이 복합 작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 가장 크고 넓은 곡창지대는 남도였다. 조선인의 주식인 쌀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다 강,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어 해산물, 생선도 풍부했고, 기후가 따뜻해 발효음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한 지역이다. 진도는 섬이어서 육지로 오가기가 불편하고,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남쪽 끝이어서 조선의 양반들 가운데 유배를 온 유명한 관료들이 많다. 무오사화의 이주, 홍언필, 기모사화의 김정, 김안로, 기사환국 김수항, 신축옥사 조태채, 을사사화 노수신은 무려 19년을 진도에서 유배를 살았는데, 그는 진도 주민을 가르쳐 진도를 개화한 시조라는 말을 듣는다. 유배 온 양반에게서 지식을 전수받은 지역민은 지식을 습득하면서 맹목에서 벗어나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지금도 남도 사람들의 언어에는 '문자'가 많은데, 이것은 조선 지식인의 흔적이다. 주로 어려운 한자를 섞어 쓰는 언어생활이 일상이며, 서화를 가깝게 두고 보는 것도 지식인 취향인데, 이들이 단지 양반 문화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내재화하고 체화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에는 여러 지역에서 '아리랑'이 탄생했는데, 아리랑의 최초 기원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정선아리랑(아라리),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이 있으나 진도아리랑이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일 정도로 진도는 음악의 발원지로도 유명하다. 송가인이 이런 진도에서 태어나 예술가인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은 그가 판소리든, 트로트 가수든 성공할 재능을 물려 받은 것은 분명하고, 노력과 기회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판소리와 씻김굿 판소리를 공부한 송가인의 어머니 송순단은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송가인이 '미스 트롯'으로 스타가 되자, 그의 어머니가 만신(무당)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씻김굿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전통 예술이다. 씻김굿으로 일가를 이룬 송순단은 딸에게 판소리 배울 것을 권유하고, 재능이 있던 송가인은 판소리로 훌륭한 성과를 이룬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판소리는 대학(중앙대학교)에서도 전공을 할 정도로 꾸준히 이어졌는데, 2010년, 송가인은 판소리를 포기하고 트로트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판소리와 씻김굿은 전통예술이고, 오늘날 전통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매우 낮다. 전통예술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그 보유자와 전승자를 지원하지만, 그들에 대한 지원의 수준이 낮아서 전통예술을 지켜나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인심이 바뀌면서 우리의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서양문화가 중심이고, 대세인 우리 사회에서 전통예술가에 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고, 이들은 생활을 위해 재능과 자부심을 포기할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송가인이 판소리를 포기하고 트로트 가수의 길로 접어든 것도 이런 사회의 무관심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 때문 아닐까. 송가인은 현재 판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보이지만,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면서 오히려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성공한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는 우리 전통음악의 높은 예술성을 입증하는 것이고, 나이 많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청년 세대에게는 잘 모르던 우리 예술을 발견할 기회를 주었다. 송가인의 트로트에는 판소리의 기교와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그의 호소력 짙은 창법과 묵직하면서도 꽉 찬 발성은 단전에서 올라와 긴 호흡과 큰 폐활량을 통해 놀라운 표현력으로 발산한다. 씻김굿과 판소리는 음악에서 공통점이 많은 분야로, 본질에서는 같다. 씻김굿은 무속의 한 분야로, 세상을 떠난, 망자의 영혼을 달래주는 무가형식이지만, 그 굿을 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 망자의 가족이 대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의 슬픔을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한다. 판소리도 '판'을 벌려 부르는 소리로, 민중이 모일 만한 장소-주로 장터, 잔치마당, 마을의 정자 등-에서 창을 부르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 두 사람이 사설(아니리)과 창으로 대중을 휘어잡는다. 씻김굿도, 판소리도 즉흥성이 생명이어서, 공연을 하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가사와 내용을 적절하게 바꾼다. 민중의 바람과 함께 성장하는 예술이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민중의 사랑을 받는 전통예술이다. 송가인과 가족 '미스 트롯'을 통해 트로트 스타가 탄생했지만, 그것은 새로운 가수의 등장이고, 가수 한 사람의 성공을 집중해서 조명하게 마련이지만, 송가인의 경우는 가족 특히 부모가 돋보이면서 송가인의 인기는 물론 그의 가족 모두가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송가인이 스타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은 여느 가수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송가인의 어머니가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력도 신선했고, 부모님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토리 캐릭터로 등장하면서, 송가인의 대중 이미지는 훨씬 친근하고 가까운 이웃으로 여기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오락, 연예 방송의 많은 부분은 연출된 이미지를 내보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러 방송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출연하는 송가인과 그의 가족을 보면, 연출해서 보여주는 장면과 실제 인성이 드러나는 장면을 알 수 있다. 송가인은 자기 매니저도 아닌 회사 매니저에게 먼저 다가가 치아 치료를 권하고, 자기가 치료비를 지불하기도 하고, 송가인 팀은 행사가 끝나면 모두 회식을 하고 헤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화합을 중요하게 여긴다. 송가인도 사람들과 밥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는 함께 일하는 사람을 '식구'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송가인의 태도는 오랜 무명생활에서 겪었던 설움을 통해 배운 것도 있지만, 그의 인성이 그의 부모에게서 온 것임을 가족을 촬영한 영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송가인의 부모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송가인이 '미스 트롯' 진이 되고, 송가인이 주목 받으면서 그의 부모가 사는 진도에서의 생활을 세미 다큐로 방송하면서인데, 어머니는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로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평범한 시골 아저씨를 비추는 순간, 평범했던 시골 아저씨는 여느 개그맨보다 재미있는 캐릭터로 시청자를 휘어잡았다. 진도에서 농사를 짓는 60대 노인이지만, 그의 외모는 출중했고,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혼자서도 오디오, 비디오를 꽉 채우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송가인의 재능이 어머니 쪽에서 받았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재능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청년이었을 때, 기차를 치며 노래하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아버지는 지금도 혼자 농사일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기량이 남다르다. 송가인의 본명은 조은심인데, 아버지 쪽 친척들 가운데 판소리를 하는 사람, 무형문화재,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이런 걸 보면, 엄마의 재능과 함께 아버지 쪽 재능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송가인 부모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하루 1,000명이나 될 정도로 송가인의 인기가 치솟고 있을 때, 송가인 부모는 막내 송가인이 성공하고, 인기를 얻는 것이 모두 팬들의 덕분이라고 여기며, 기꺼이 번거로움과 수고를 감수한다. 진도까지 먼 길을 온 팬을 위해 음료수, 옥수수, 감자 등을 대접하는데, 유명한 가수의 집을 찾는 팬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송가인 부모의 일상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시청자가 알게 되는 사실은, 송가인 부모의 넉넉한 인심은 물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매력과 평범한 시골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뛰어난 음식 솜씨로 가족과 이웃, 손님을 대접하고, 농사부터 온갖 집안일까지 '조가이버'라는 별명을 듣는 아버지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부의 모습이다. 부부의 모습은 한국의 전통적 가정과 생활의 평균을 보는 듯하다. 우리 부모 세대는 지금도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산업사회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가족과 이웃, 마을을 아우르는 공동체가 여전히 시골에서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한국은 지금 산업사회와 전통사회가 공존하는 마지막 단계에 있으며, 우리의 부모 세대가 가족과 이웃, 마을의 공동체를 보여주는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송가인 부모를 통해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송가인의 인기가 높아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송가인의 개성과 태도 '미스 트롯' 진으로 오랜 무명의 시간에서 탈출해 일약 스타가 된 송가인은 무명시절의 서러움을 이야기할 때, 담담하지만 마음 아픈 순간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지금도 무명 가수들이 지방의 행사를 다니면서, 언젠가 스타가 될 날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 트롯'에 출연한 많은 가수들도 진이 되었다면 보여지고, 드러나는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송가인은 특유의 개성이 돋보인다. 그는 광주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교를 다니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의도적으로 표준말을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것도 보기 좋은데, 서울과 서울 말씨에 대한 열등감이 없음을 알 수 있으며, 한편으로 자신의 고향말인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한때 전라도 사투리는 방송에서 천대당하는 지방말이었으며, 권력자들의 지역차별의 희생양이 남도지역이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극우, 패륜집단에서는 전라도 지역말을 비웃고 혐오하지만, 송가인이 자연스럽게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시청자는 전라도 말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송가인은 자신이 무명에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자신의 위치가 신데렐라처럼 주목받는 존재가 된 것도 알지만, 자신의 성공이 대중의 사랑과 응원 덕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송가인의 팬덤은 아이돌보다 더 단단하고 조직적이다. 아무래도 트로트 팬층은 중년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팬들의 선물도 굴비, 낙지, 홍삼 같은 건강음식이 주류를 이루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팬들이 많아 경제적 지원에서도 다른 가수들을 압도한다. 이런 대중의 사랑을 받는 송가인은 외모와 태도에서 호감을 얻는 요소가 많다. 외모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송가인의 외모는 그가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돋보이고 있다. 둥그런 얼굴에 늘 웃는 눈, 복스러운 코는 어른들이 보기에 복 많은 맏며느리상이다. 송가인의 겸손한 태도는 그가 대중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겸손한 태도를 몸에 익혀 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스타가 된 이후에도 무명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했던 비녀 만드는 작업을 한동안 이어갔다. 그가 직접 재료를 구입해 비녀 완성품을 만들어 발송했다. 송가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자만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조금 보수적이며, 무대에서도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지 않고, 단정하고, 단아한 무대의상을 선택하며,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송가인은 무명으로 활동하던 약 7-8년의 시기에 작은 행사장 무대에 오르거나 지방 방송국의 리포터로 활동하거나 부업을 하며 생활을 꾸렸다. 무명의 설움을 겪었기에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스타와는 다른 마음가짐이었을테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단련했기에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었어도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의 송가인이 있기까지 부모의 뒷바라지가 지극정성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가족의 믿음과 응원이 지금의 송가인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트로트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부르는 노래로 인식되고, 구시대의 유물 쯤으로 여겨지는 장르지만, 주현미, 장윤정, 홍진영 등이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널리 알린 이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넓은 팬층을 모으고 있는 여성트로트 가수는 송가인이 최초다. 또한 이전의 트로트 가수와는 다르게, 송가인의 팬덤은 송가인의 압도적이고 탁월한 가창력과 인성이 결합해 더욱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송가인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거의 다 찾아봤고, 송가인의 부모님이 출연한 프로그램도 거의 다 찾아 봤다. 송가인의 가창력은 놀라웠고, 구수한 사투리는 정겨웠고, 부모님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은 부러웠고, 진도는 아름다웠다. 송가인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노래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대중이 존재하고, 훌륭한 가수가 등장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한동안 대중의 즐거움은 유지될 걸로 보인다. 다만, 송가인이 스타로 탄생하면서 급격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인기가 치솟으면서 부르는 곳이 많으니 대중가수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초기의 관심과 열풍이 지나치면 식상함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스타 탄생, 인기 상승, 인기 유지, 인기 하락으로 이어지는 대중가수의 운명은 송가인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는 대중 예술인의 숙명이기도 하다. 다만, 그 시간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가, 인기가 오래 유지되는가는 대중예술인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다.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고, 그 노래가 널리 알려져야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송가인의 탁월한 가창력이 그를 든든하게 잡아주리라 믿으면서, 송가인을 둘러싼 음악 환경이 그의 운명을 결정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송가인이 주체적으로 활동하고픈 열망과는 또 다른 것으로, 자신이 음악을 작사, 작곡하지 않는 한, 다른 작곡가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지속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송가인은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이 시대에 대중이 원하는 가수로 등장했다. 그의 미래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송가인과 그의 팬들이 행복한 것은 틀림없다. 이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하길 바란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주택문제와 결혼, 출산을 생각하며
    주택문제와 결혼, 출산을 생각하며 한국은 신자유주의 폭탄을 맞은 자본주의 국가다. 그 전에는 국가주도 경제성장 즉, 군부독재에 의한 일방적 경제정책으로 수출 위주의 정책을 설정했고, 그 기저에는 한국이 분단국가이자 미국의 주변국가로, 제국주의의 경제부문에 기여하는 제3세계 국가의 하나였으며, 저임금 노동력으로 원자재 수출, 제품임가공, 조립 같은 단순노동으로 시작해 점자 경공업, 중공업으로 이행하는 경제 단계를 거쳐왔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군부독재권력과 결탁해 특혜를 받으며 성장했다. 자본은 금융과 노동 양쪽에서 엄청난 특혜를 받았으며, 반대로 노동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했다. 물적 토대가 취약했던 한국의 경제는 노동자를 착취해 경제를 일으켰으나, 그 열매는 오로지 자본과 권력이 가져갔고, 노동자, 서민에게는 극히 적은 몫이 주어졌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현재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 여러나라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자본이 취약한 저개발국가는 값싼 노동력이 최대 무기였고, 국가(정부)는 폭력(독재국가의 법은 그 자체가 폭력이며, 물리적 폭력도 포함한다)으로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한국의 경제가 활성화하고, 소득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후 꾸준히 지속되었지만, 특히 전두환 군부독재시절이던 1980년대 이후 양적,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물론 전두환 정부의 능력이 아닌, 당시 세계 경제가 이례 없을 정도로 활황이었다는 점, 한국사람의 특징인 높은 교육열의 결과로 생성된 고학력자들이 베이비붐 세대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단순, 저임금 노동에서 지식, 고임금 노동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경제구조의 변화, 군부독재에 저항하면서 높아진 민주주의와 시민의식 등이 한국 경제가 발전하게 된 여러 요소들이다. 짧은 기간에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이런 압축성장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본'은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체제여서 그 자체는 감정이 없지만, 한국은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을 듣고 있다. 자본주의 자체가 착취에 기반한 체제이므로 형식이야 어떻든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야 할 체제지만, 북유럽 국가들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사회주의 정책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입하느냐에 따라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착취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불평등 역시 착취만큼이나 심각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삶의 질은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 지표는 국민총생산, 국민1인당 소득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은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 지표는 상당히 과장, 왜곡된 숫자라고 생각한다. 1억원을 버는 사람과 1천만원을 버는 사람의 소득을 통계내면 5천5백만원이 된다. 통계 숫자는 한국인 평균 소득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오히려 불평등 구조를 감추는 장치이기도 하다. 불평등 구조는 어느 체제든 존재한다. 공산주의 체제라 해도 완벽한 평등은 있을 수 없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듯, 하는 일과 역할, 능력에 따라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차별의 정도가 사회구성원이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합의에 따른 차별의 범주여야 한다. 불평등 구조는 경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소득의 차별 역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제한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은, 이윤추구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본'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는 경쟁업체나 제품에 대해 규제를 해야 한다거나,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서는 범죄행위로 규정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자본'이 윤리나 사회적 합의, 법과 같은 질서보다는 이윤추구가 최고의 목적이자 가치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많이 추구하는 것이 '자본'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올바른 정부라면 미쳐 날뛰는 짐승을 길들이는 것처럼, '자본'의 폭력을 제재하고, 사회의 기본윤리 안에 어울리도록 길들이며, 소수의 이익이 아닌, 집단-여기서는 국가-구성원의 공동 이익에 기여하도록 해야 하지만, '자본'은 태생적으로 국경이 없기 때문에, 폭주하는 자본을 통제하기 어렵다. 경제의 불평등구조는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를 발생하고, 집단 내부에서 긴장과 갈등을 증폭한다. 인구의 10%에 불과한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전체 부의 80%를 독점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는 자는 자본의 착취, 불평등을 옹호하는 것이고, 그들은 불평등 구조의 아래쪽에 있는 80% 사람들과는 적이다. 마르크스는 국가의 정부를 일컬어 '자본가위원회'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정부)는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구이며,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인물들 역시 자본가, 부르주아들이어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자본가가 대통령이 되자 곧바로 토목건설에 22조 원을 투입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자본가가 자기의 이윤추구를 위해 골프장을 지을 때도 정부(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개인의 땅을 강제수용하는데, 골프장 건설이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전통적 의미에서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를 말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자본은 착취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공장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금융자본, 부동산자본은 똑같이 이윤을 추구해도 방식이 다르다. 또한 '자본가'가 아니어도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연예인, 스포츠스타, 학원강사, 방송인(유튜버 포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판매해 부를 축적한 경우여서, 노동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한 고전적 자본가와는 다른 종류의 부르주아들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사례이기도 한 이들은, 자유주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번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능 있는 사람을 대우하는 시스템에서 이미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단지 경쟁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감추려하거나 모르기 때문에 대체로 자유 경쟁 논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에서 불평등구조를 드러내는 핵심은 아파트다. 부동산은 불패라는 속설처럼, 7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은 임금상승률보다 몇십 배부터 몇천 배까지 뛰었다. 땅이나 아파트를 소유하면, 노동으로 버는 돈보다 훨씬 큰 돈을 벌게 되면서, 노동이 천시당하고 투기가 당연한 기술로 인정받으며 사회가 부패하게 된다. 불로소득에 대한 잉여자산을 세금으로 정당하게 환수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아파트 분양권을 매입하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 힘겨운 이자를 내가면서 아파트를 소유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아파트 가격이 상승해서 막대한 차익이 발생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을 심어주고, 실제로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드물게 제공하는 것도 자본의 논리다. 아파트를 소유하는 과정은 치열한 경쟁을 통하거나, 막대한 이자를 감당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모두 소득 상승을 바라는 서민들 끼리의 경쟁이며, 자본은 금융을 통해, 부동산 건설을 통해 이윤을 집적한다. 한국은 독특하게 선분양 후입주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자본이 취약하던 건설사를 위해 아파트 매입자들이 공사 전에 미리 주택가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미리 납부해 왔던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지만, 건설자본에게는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제도이므로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해마다 추정 재산이 늘어나는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익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자신의 아파트를 팔고 다른 아파트를 매입할 때는 의미가 사라진다. 차익을 수익으로 환원하려면 자신의 아파트에서 발생한 차익보다 값싼 아파트로 옮겨야 하는데, 비슷한 지역에서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므로 평수를 줄이거나 아파트 가격이 낮은 곳으로 옮겨야 한다. 결국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건 부동산 가격이 낮은 시골로 옮기거나, '주택연금' 같은 정부의 복지서비스를 이용할 때 도움이 될 뿐, 비슷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파트 가격 상승은 실질 이익이 거의 없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나 폭등은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사람에게도 부담이지만, 전세나 월세를 사는 세입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된다. 아파트 매입자는 은행 대출을 받아 주인이 되고, 전세입자도 은행 대출을 받아야 아파트 전세라도 얻을 수 있게 된다. 가게부채에서 금융비용은 수입 대비 지출에서 큰몫을 차지하고, 이것은 삶의 질이 낮아지는 원인이 된다. 부동산의 벽이 높아지면서,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세대의 좌절과 절망이 커진다. 청년취업 문제는 청년세대의 결혼율, 출산율이 모두 낮아지는 원인이며, 이 원인의 핵심은 부동산 정책에 있다. 청년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완전히는 아니어도 청년의 취업, 결혼, 출산 문제가 많은 부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주택정책의 대안을 제시한다. 청년을 위한 집단거주 주택을 마련하자 청년세대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게 된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비참한 상황은 없다. 사실 청년세대의 문제는 세대간 갈등이나 인구비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자본의 착취에 있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최저임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청년세대는 자신들이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려야 함에도,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려 하지 않고,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청년세대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규모 집단거주 주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기임대 아파트를 많이 지어 청년에게 임대하고, 청년이 결혼하면 이 임대아파트를 장기임대로 전환해서 주거문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장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다가구, 빌라, 소규모 아파트, 단독주택 등을 청년 주거주택으로 개발해 싼 임대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청년의 주거문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공유주택도 있고, 공유오피스도 있어서 청년들이 자신의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지자체)가 정책으로 펼치는 것만큼의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신혼(결혼 10년까지)부부를 위한 장기임대 아파트를 제공하자 싱가폴은 신혼부부에게 주택(아파트)를 우선 제공한다. 결혼하면 집(아파트)이 생기기 때문에 싱가폴의 결혼 연령은 20대 초중반이다. 싱가폴의 주택개발청은 신혼부부에게 특히 집값의 80% 이상을 장기저리로 대출해 주고, 임대아파트를 우선 분양한다. 싱가폴의 주택정책을 보면, '생애 최초로 집 마련하는 부부', '첫 자녀 출산 예정이거나 16세 이하 자녀가 있는 부부', '부모 거주 지역 근처에 분양받는 부부'에게는 신규 아파트 분양에서 우선권을 준다. 싱가폴은 임대아파트를 꾸준히 짓고 있으며, 장기저리 융자는 25년 상환이어서 부담이 적다. 한국에서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정부와 자자체가 직접 장기임대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는 정책이 매우 필요하다. 궁극으로는 아파트 건설이 민간부문이 아닌, 공공부문의 임대아파트로 이행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외국에서 성공한 정책은 도입 검토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 싱가폴의 청년주택 정책처럼, 청년에게 실질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정부(지자체)의 의무이기도 하다. 공공임대 아파트는 대도시 외곽에 지어 분양한다. 토지 가격과 청년 세대가 주로 대도시에서 일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도시 외곽일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아파트를 건설하면 자연스럽게 그 주위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등이 생기고, 음식점 등 상권이 형성된다. 전월세 부담이 적어지고, 주거가 안정되면서 청년 세대는 문화와 오락에 비용을 투자할 수 있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자 지금도 공교육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어린이집, 유아원, 유치원,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을 무상교육으로 지원하는 것은 청년세대와 그 이후 세대를 위한 투자다. 특히 인구절벽이니 인구감소니 하면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기성세대에게 이 정도 무상교육 투자는 당연하다. 무상교육이나 공공임대 아파트 정책을 펼치면 정부가 무슨 돈이 많아서 전부 공짜로 해주느냐고 하겠지만, 정부는 세금 정책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펼쳐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 전문인 등 고소득자에 대한 부문만 확실하게 해도 세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의료보험, 연금 등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면 반발도 적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의료, 연금이다. 이것을 정부가 책임진다면 사교육, 사보험, 사연금으로 들어가는 개인의 지출이 줄어들고 오히려 가게지출이 줄어들게 된다. 의료보험을 강화, 확대하자 비단 청년세대 뿐아니라 국민 모두는 의료보험과 연금에서 고통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연금은 기본소득제로 대체할 수 있으니 정부, 시민단체 등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의료보험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기본 조건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지금도 훌륭한 편이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의료보험이 마땅치 않을 것이지만, 그들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가 할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을 사회주의 정책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다. 이것을 자본주의 정부는 '복지정책'이라고 말한다. 정부의 공공의료보험이 없다면, 미국처럼 사보험에 의존해야 하고, 사보험은 개인의 건강보다는 보험회사의 이윤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건강권이 존중받을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청년세대의 결혼, 육아 과정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교육, 의료가 중요하다. 세금은 개별적으로 세세하게 구분하고, 복지는 보편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본소득을 실시하자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청년 세대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당연히 국민세금으로 지급하는 복지제도의 하나이며,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복지정책이다. 한 국가의 국민은 누구나 '주민세'를 내는데, 이것은 한 나라의 국민임을 인정하는 세금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은 극렬한 소득불균형을 줄이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도록 하는 중요한 장치다. 한편으로 이런 정책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온존하도록 만드는 당의정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든 복지정책은 다수의 노동자, 농민, 서민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들이며, 자본(가)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의 요구를 듣거나, 새로운 복지정책을 내놓아야 했다. 기본소득 역시 위기에 몰린 자본(가)이 하나의 대안으로 마련한 정책이자, 그동안 끈질기게 복지의 확대를 요구한 서민의 권리가 제도화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시행은 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이며, 자본주의는 계속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변화할 것이다. 주5일 노동은 주4일 노동으로 바뀌고, 복지정책은 확대할 것이며, 기술과 도구의 발달로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단순노동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생길 것이다. 기본소득은 자본의 발톱이 아주 조금 무뎌지는 것을 의미하며, 시민의 승리이기도 하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20대 국회의원 300명 분석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내용 -20대 국회의원 300명 분석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물리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말은 정보통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많는 말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폐기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직접 민주주의가 훨씬 구현하기 쉽고, 정확하고 빠른 방식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수렴하는 세상에서, 유독 오프라인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시민의 대리자를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국회의원'이라는 국민의 대리자도 필요 없으며, 곧바로 모든 국민이 직접 자기 의사를 온라인을 통해 밝힐 수 있다. 이제, 현재 국회의원 성분을 보면서 이들의 구성과 성분이 국민의 민의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국회의원들이 악랄하게 행동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이 국민의 뜻을 전혀 받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국회의원을 뽑은 국민이 멍청한 것이고, 국민이 멍청하니까 노예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이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입법 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어려우면 21대 국회의원은 적어도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사람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평균 나이 - 55.5세 70대 - 5명 60대 - 81명 50대 - 161명 40대 - 50명 30대 - 2명 20대 - 1명 한국 인구가 노령화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지만, 위의 분포는 매우 심각하게 인구 비례를 왜곡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청년 국회의원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순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고,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이따위로 뽑아놓고, 청년실업이며 청년취업, 청년창업, 청년복지 정책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건, 욕이나 처먹어야 한다는 걸 좀 알아야 한다. 나는 늘 주장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70세부터는 퇴직해야 한다. 70세가 넘어서도 어떤 일이든 하려는 건,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뺐는 것이고, 그건 탐욕이다. 국회의원 다선 순위 6선 - 7명 5선 - 17명 4선 - 34명 3선 - 46명 2선 - 71명 국민의 투표로 선출하는 자리인데, 왜 국회의원만 제한이 없을까. 대통령도 단 한 번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국회의원은 최대 3선까지만 하는 법을 만들어 제한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3선 이상하면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국회 정치가 오염되기 마련이다. 항상 새로운 피를 공급해야 하며, 가능한 젊은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 국회의원 평균 재산 평균 재산 - 41역 400만원 최고, 최저 제외한 평균 재산 - 26억 7800만원 국회의원 재산을 보라. 지금 26억원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부자들을 뽑아놓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만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 짓인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려면, 우리처럼 서민들, 돈 없고, 전세나 월세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 법을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조국 법무부장관처럼, 강남 좌파라도 정의롭고 공평한 법정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매우 매우 희귀한 경우이므로,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려면, 당연히 자신과 같은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거울을 좀 봐라. 국회의원 전공 분야 법학 전공 - 62명 행정학 전공 - 31명 정치외교 전공 - 31명 경제학 전공 - 22명 경영학 전공 - 19명 무역학 전공 - 6명 토목공학 전공 - 6명 물리학 전공 - 5명 건축학 전공 - 3명 기계공학 전공 - 2명 전자공학 전공 - 2명 화학공학 전공 - 1명 환경공학 전공 - 1명 천문학 전공 - 1명 전자계산 전공 - 1명 사회확과 전공 - 11명 국문학과 전공 - 11명 철학 전공 - 8명 사학 전공 - 6명 독문학 전공 - 5명 불문학 전공 - 4명 영문학 전공 - 2명 역사교육 전공 - 3명 영어교육 전공 - 2명 체육교육 전공 - 2명 수학교육 전공 - 2명 국회의원이 반드시 법이나 행정, 정치, 외교를 전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국회의원이 하는 일은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반영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지역구 주민이 어떤 정책을 원하는가 귀기울여 듣고, 그것을 잘 다듬어 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의원을 상전으로 모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이 주민을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온갖 특혜를 누리며 주민을 무시하고, 깔보고 있다. 대학 진학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70% 아래로 낮아질 것이며, 지금도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이 30% 정도다. 그렇다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 중졸, 초졸, 무학의 국회의원들도 나와야 하지 않은가.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니냐 말이다. 국회의원이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 우리 이웃집 사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고, 정책을 만들고, 우리 사회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정치 아니겠는가. 국회의원 직업(중복 있음) 정치인 - 220명(73.3%) 교육자 - 49명(대학교수 포함) 변호사 - 16명 법조인 - 49명 경찰 - 8명 군인 - 5명 의료 - 10명 기획재정부 - 9명 고위공무원 - 4명 과학정보통신 - 7명 문화예술체육 - 4명 언론인 - 12명 노동 - 9명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월급을 받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가 1천만 명을 넘는다. 이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불과 9명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자들을 국회의원으로 앉혀 놓고, 자기들끼리의 리그를 즐기고 누리도록 하고 있으니, 정작 서민들의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투표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반영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 부자를 위한 정당의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건, 스스로 멍청한 바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약 30%의 멍청하고 덜떨어진 한심한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한국사회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청년을 비롯한 70%의 다수 국민이 자기 선택을 하지 않거나,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면, 그 소수의 30%가 원하는 미치광이 세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날마다 보고 있는 현상이다. 대통령 한 명만 바뀌었을 뿐, 세상은 수구반동매국집단의 발호로 나라가 망가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촛불집회와 매국집회의 차이
    촛불집회와 매국집회의 차이 지난 9월 28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7차 촛불집회에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사건이 벌어졌고, 위대한 민주주의 집회를 조직한 경험이 많은-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얼마나 신나게 했던가-시민들은 역시 매우 훌륭한 집회 문화를 보여주었다. 이 집회를 보고 수구반동 매국노들은 부러움, 시기, 질투의 감정이 뒤섞인 위기의식과 패배감으로 이 국면을 만회하려는 회심의 집회를 조직하게 된다. 그들-패륜, 수구, 반동, 매국노-은 정당의 지역조직과 교회의 신도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했지만, 10월 3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들의 숫자는 서초동 촛불시민보다 적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폭력을 휘둘렀다. 수구, 반동, 패륜 집단의 폭력 시위를 본 촛불시민은 다시 10월 5일, 제8차 촛불집회를 열었고, 제7차보다 두 배나 많은 시민이 모여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집회와 시위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입증하듯, 서초동 일대의 편의점은 물론, 토요일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는 음식점들도 모두 문을 열고 장사해서 돈을 벌었다. 식당과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는 사람들이고, 그들도-비록 강남에서 음식점이나 술집을 한다해도-약자들이다. 편의점, 음식점, 술집의 주인들이 설령 보수적 성향이라 해도, 이번 기회를 통해, 촛불시민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한번쯤 생각해 볼 것이고,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촛불시민의 높은 시민의식과 태도를 높게 평가할 것이다. 반면 광화문에 모였던 매국 집단의 시위는 폭력이 난무하고, 거짓말, 악의적 왜곡, 증오와 악의가 뿜어져 나오는 부정적이고 악랄한 집회였다. 그곳에서 발언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폭력을 조장하며, 자기의 이익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과 정부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매국 집단의 지도부가 그런 것처럼,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거의 대부분 노인들-은 일당 2만원부터 7만원까지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다수였고-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도 드물게 있었지만-이들의 얼굴은 불만과 피로로 일그러져 있었다. 촛불집회와 매국집회의 가장 큰 차이는 평화와 폭력이다. 촛불집회는 축제처럼 즐겁고, 재미있고, 흥겹게 진행된 반면, 매국집회는 증오와 폭력, 일그러진 분노로 진행되었다. 촛불집회의 핵심도 충분히 분노할 내용이지만, 촛불시민은 결코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인내와 자제를 보여주며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으로 행동했다. 반면 매국집회는 정당하지 않은 주장, 억지 주장, 악의적으로 왜곡한 내용을 통해 대중을 선동했으며, 그들은 그곳에 동원된 사람들을 동등한 시민이 아닌, 한번 쓰고 버리는 도구로 여겼다. 촛불집회가 끝난 자리는 작은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깨끗했지만, 매국집회의 끝에는 온갖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주변의 편의점, 음식점, 술집, 상가에서는 매국집회 참가자들이 보여준 불쾌한 모습 때문에 진저리를 쳤다. 집회의 의미를 숫자로 비교하려는 어리석고 멍청하며 유치한 매국집단의 의도를 알고 있지만, 촛불시민은 집회 참석인원이든, 집회의 성격이든, 집회의 내용에서든 매국집회를 압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 집회의 의미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며, 두 집회를 보도하는 언론-심지어 수구, 보수언론까지도-의 태도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정치검찰을 개혁하고, 사법개혁을 통해 사법기관, 권력기관이 시민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시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중대한 변화의 변곡점에 있다. 촛불시민은 검찰과 법원에 명령하고 있다. 공수처를 비롯한 검찰개혁에 순순히 무릎 꿇고 받아들이라는 것이고, 끝까지 권력을 조직의 이익을 위해 휘두를 때, 그 최후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징적 인물이 바로 문재인대통령과 조 국 법무부장관이다. 촛불시민은 문재인대통령과 조 국 법무부장관을 보호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보위하며, 이 개혁이 결국 시민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촛불시민의 의지에 거스르는 매국집단의 집회는 타도되어야 하며, 그것을 기획하고 실행한 매국집회 지도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끝까지, 촛불시민은 목적을 이룰 때까지 흥겹고, 즐겁고, 재미있게 촛불집회를 이끌 것이고,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2002년 월드컵 응원,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통해 스스로 체득한 성숙한 민주주의의 집회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검찰개혁, 사법개혁,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룰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19금 선녀와 나무꾼
    19금 선녀와 나무꾼 6년을 기다렸다. 그 긴 시간동안 나는 산속 오두막에 갇혀 나무꾼 새끼에게 끊임없이 성폭행을 당했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새끼. 나는 줄곧 탈출할 기회를 노렸고, 셋째 아이 돐이 지나자 나무꾼 새끼가 나를 감시하는 눈길이 조금 약해졌다. 이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겠지. 그 전에는 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방문을 걸어잠구고 나무를 하러 갔다 왔고, 집에 있을 때는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나를 감시했다. 6년 전, 나는 천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잠깐 땅으로 나들이를 했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흰색과 분홍색이 섞인 천사의 날개옷을 화려하게 펼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온 우리는, 인간의 발길이 없는 깊은 계곡에서 옷을 모두 벗고 목욕을 했다. 천상에서 인간이 사는 땅으로 내려올 기회는 흔치 않았다. 우리처럼 영원히 사는 천사들도 몇백 년에 한 번 내려올까 말까할 정도였으니, 우리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하늘에는 하얀 달이 둥그렇게 떠 있어 세상이 은빛을 뿌린 듯 환하게 빛나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는 새소리, 동물들 움직이는 소리, 물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사위는 고요했다. 넓은 웅덩이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고 깨끗했고, 우리는 날개옷을 훌훌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살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상쾌함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천상에서는 이렇게 차갑고 상쾌한 물이 없기 때문에, 땅으로 내려오는 건 우리들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원한 계곡 웅덩이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달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새벽이 머지 않았을 때, 우리는 다시 천계로 올라가려고 옷을 입었다. 하지만, 내 옷만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옷을 갖춰 입었고, 옷을 찾지 못한 나 때문에 몹시 난감한 표정들이었다. 새벽빛이 밝을 때까지 천계로 올라가지 못하면 벌을 받게 되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기 어렵게 된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말했다. 내 옷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친구들을 곤란하게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혼자 덩그라니 있으니, 불안이 몰려왔다. 그때, 숲속에서 검은 물체가 나타났고, 그는 나무꾼이었다. 나는 벌거벗은 몸을 감추려고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물에서 끌어내 성폭행했다. 그후 그에게 끌려 그의 오두막으로 갔고, 지금까지 갇혀 살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그리고 어제, 6살 아이가 자기 아버지인 나무꾼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랑 어떻게 만났어? 눈동자가 흔들리는 나무꾼을 바라보았다. 그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응, 엄마하고는 산에서 만났는데, 엄마가 물건을 잃어버린 걸 내가 찾아줬어. 나무꾼은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왔다. 개새끼. 와, 멋지다. 아빠가 좋은 일 했네. 그런데, 어떤 물건이야? 보석? 돈? 아이는 좋아하며 물었다. 나무꾼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으응, 엄마가 가지고 다니던 옷이야. 나무꾼은 아이와 내 눈치를 보며 어물거렸다. 엄마 옷? 그럼 엄마가 갖고 있겠네? 엄마, 어떤 옷인지 보여줘. 나는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잘 간직하고 있어. 아빠에게 물어봐. 아이는 다시 나무꾼에게 말했고, 졸라대는 아이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옷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6년만에 보는 내 옷이었다. 와, 엄마 옷이다. 엄마, 이 옷 입어봐. 얼마나 예쁜가 보게. 나무꾼은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주었다.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야, 지금은 못 입어. 옷이 작거든. 조금 더 있다 살이 빠지면 입어볼께. 내 말을 듣고 나무꾼은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나무꾼을 보며 웃어주었다. 그에게 처음 보이는 웃음이었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죽지 못해 살았고, 날마다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나무꾼은 내가 웃는 모습을 보이자,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을 옆방에 재우고, 나는 나무꾼과 함께였다. 그동안 나무꾼에게 수없이 강간, 성폭행을 당했고, 그건 오로지 내 옷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제 옷이 돌아왔고, 더 이상 짐승에게 당할 수는 없었다. 나무꾼은 내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벌써부터 옷을 벗고 덤벼들었다. 나는 그에게 못이기는 척하며, 바닥에 누우라고 했고, 그의 배에 걸터 앉았다. 나무꾼은 흥분해서 콧바람을 불었고, 내 몸을 더듬었다. 나는 머리칼 사이에 숨겨둔 은장도를 꺼내 나무꾼의 목에 깊숙이 박았다. 이어서 손톱 기른 손가락을 그의 두 눈에 박았다. 잘린 동맥에서 피가 솟구치고, 뽑힌 눈알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무꾼의 비명이 터지기 전, 걸레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무꾼은 방문을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허공을 더듬으며 밖으로 나왔고, 나는 그를 숲속으로 유인했다. 그곳에는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무꾼의 몸뚱아리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무꾼이 살던 오두막을 떠나 세 아이와 함께 읍내로 나와 살았다. 바느질 삯으로 아이를 키우며.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9월의 시작
    9월의 시작 말복을 지나면서 더위가 한풀 꺾이더니, 처서가 되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시나브로 9월이 도착하고, 바람은 한낮에도 시원하다. 따가운 햇살을 지나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가을이 새삼 애틋하다. 문을 조금 열어 놓은 창밖으로 곤충들의 우는, 아니 노래하는 소리가 정겹다. 그저 여치나 귀뚜라미인줄만 알았더니, 베짱이도 여러 종류가 울고, 귀뚜라미도 한두 녀석이 아니다. 여기에 방울벌레며 풀종다리까지 마당의 잔디 속에서, 나무 위에서, 뒷마당 풀숲에서, 옆집 우거진 나무숲에서 끊이지 않고 노래한다. 곤충의 울음, 아니 노래소리는 백색소음이어서 듣기에 거슬리지 않는다. 아침부터 밖에서 떠드는 늙은 여자의 새된 목소리에는 짜증이 솟구치지만, 곤충의 노래는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있나보다. 며칠 게으름을 부리다보니,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상'은 우리가 이어나가는 리듬인데, 리듬이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경제력이다.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이 있어야 한 가족, 가정을 유지할 수 있고, 가족 구성원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개별적 생존'에 있다. 즉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을 해서 이긴 자가 부를 독점하고, 도태되는 자는 빈민의 구덩이에서 허덕거리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의 원리를 명명백백하게 해부했고, 소수에 의한 다수의 착취가 역사법칙의 하나이며, 역사는 질적 변화를 통해 뒤바뀐다고 예언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종교화하는 사람들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거의 절반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을 받아들인 혼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체제가 위협을 받을 때마다 개혁(개선)을 통해 민중의 저항을 무마해 왔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의료보험, 복지그물망 같은 것들은 모두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8시간 노동,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주5일 근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나처럼 50대 이상인 사람은 토요일 오전근무를 하거나, 토요일까지 주6일은 물론, 연장 근로, 야간 근로를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잘 안다. 지금도 그런 노동현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주4일 근무, 하루6시간 노동. 1년에 한달은 무조건 유급휴가. 이런 것들은 지금의 경제 조건에서 충분히 가능하지만, 자본은 마지막 순간까지 완강하게 거부한다. 기본소득제도 반드시 필요한데, 자본은 거부하고 있다. 오로지 육체노동(사무직도 육체노동자다)을 통해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들은 해고되면 당장 수입이 사라진다. 영세자영업자도 사업이 망하면 수입이 사라지고, 빚더미에 앉는다. 약간의 은행 잔고가 있다고 해도 부자가 아닌 다음에는 몇 달 버티지 못한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추락하는 노동계급을 받아주는 안전한 복지 그물망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소한의 복지가 기본소득제다. 여기에 '연금'을 포함하면, 퇴직한 노동자가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제도가 되는 것이다. 일상은 어쩌면 너무 단조로워서 소중함을 잊게 된다. 밤이면 돌아와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고, 하루 두 끼, 세 끼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철마다 한두 벌의 옷을 사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귀하고 소중하다. 이런 일상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은 노동을 한 대가로 받는다.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고, 자신의 재능이나 하고픈 일을 선택하는 것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우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재능과 꿈을 추구하는 사회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추구해야 한다. 인간이 소모품으로 쓰이다 죽는 지금의 사회는 인류의 역사 이래 본질이 변하지 않은 계급사회의 연장이고, 인간이 '해방'된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9월의 첫 날을 맞아, 아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소박하게 밥상을 차리고, 작은 케잌도 잘라 나눠 먹었다. 평범한 일상은 우리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길 것이다. 육체는 늙어가고, 정신은 흐려질 것이고,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한여름의 폭발하는 생명도 가을이면 시들어가듯, 사람도 시들어 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기꺼워할 때, 우리의 일상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청년들께, 꼰대가
    청년들께, 꼰대가 물리적 나이가 많다고 해서 더 많은 지식이 있거나, 능력이 있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옛날의 청년에 비해 더 현명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있으며, 더 많은 지식과 열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청년들을 상대로 글을 쓰는 이유는 있습니다. 어느 세대나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은 있거든요. 제가 속한 세대인 50대는 약 70% 정도가 '보수적'이라고 통계가 말합니다. '보수적'이라고 해서 '수구꼴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수구꼴통은 세대에 따라서 10%에서 40% 사이에 존재하는데, 이들 평균이 약 20%쯤 됩니다. 이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과 비슷하죠. 아니, 정치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바라보는 청년들의 모습에 관해 몇 가지 하고픈 말이 있어서 두서 없지만 편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편하게 말한다해도 50대의 중늙은이가 말하는 건 언제나 꼰대의 잔소리일 뿐이겠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중늙은이의 말 가운데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요. 멘토는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목사, 중, 신부 같은 종교와 관련된 사람들이 자칭, 타칭 '멘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럴 듯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물론 그들의 말 가운데 극히 일부는 좋은 말도 있습니다. 모든 사기꾼이 100% 거짓말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진실을 말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사기꾼은 거짓말을 합니다. 멘토를 찾지 말고,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선생님, 선배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 널렸습니다.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좋은 책을 한 권 더 읽는 것이 청년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럼, 좋은 책은 어떻게 찾아 읽느냐고요?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추천하는 도서목록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공인된 도서목록에서 자신에게 맞는 책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책은 한두 분야만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읽어서 지식과 교양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습니다. 문학, 역사, 과학, 철학, 여성(페미니즘), 환경 관련 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겠지요. 자기계발 책은 읽지 마세요. 청년들이 '자기계발'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비판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취업 문제가 특히 심각해서, 자기계발은 곧 대학, 취업 등과 같은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을 하라고 말하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먼저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스스로도 계발하지 못하는 자들이 조잡한 책을 써서 '자기계발'을 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읽을 시간에 스스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 취미를 갖거나,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계발'은 '자기계발'을 떠드는 책을 읽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저절로 계발되는 것입니다. 종교를 갖지 마세요. 종교는 개인의 자유와 생각을 억압합니다. 종교는 현대과학문명을 부정하고 미신을 믿는 미개한 문화입니다. 종교를 믿는 것은, 인류의 미개함이 지속되는 것에 동조하는 것이며, 본인 스스로도 미개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번성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어리석고, 천박하며,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중세 이후 종교는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착취하는 지배자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기대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합리화하는 것보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깨우치고 좋은 책을 골라 읽거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역사와 과학을 꼭 배우세요.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올바른 판단력과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청년 시기에는 반드시 역사와 과학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하고, 학습하기를 권합니다. 우리가 비난하는 수구꼴통 집단, 태극기부대, 일베충들은 역사와 과학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 집단입니다. 비뚤어진 사회인식을 갖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죽는 것은 목적이 없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개돼지나 마찬가지로 미개하게 살다 죽게 됩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인성과 인격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역사, 과학, 철학이 그런 토대에 해당합니다. 이런 공부를 하지 않고 수능시험만 잘 받으면, 서울대에 가서도 일베충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인성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기성세대에 저항하세요. 청년세대는 지금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그들의 정책과 행정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비판을 잘 하려면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춰야 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결국 청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청년들이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대학등록금을 낮추자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본의 착취를 멈추도록 저항해야 합니다. 늙은 부모 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적 비용이 크지 않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합니다. 막대한 분단비용을 줄이고, 자본이 독식하는 이윤을 사회화하고, 남녀평등 구조를 만들고,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협동과 협력을 통한 사회기업을 확산하는 등의 노력은 청년세대만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폭력도 써야 합니다. 80년대 청년들이 화염병을 들었던 것처럼,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단이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해야 합니다. 청년세대가 건강하게 사회에 자리 잡아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보장됩니다. 청년이 좌절하는 사회는 불행한 미래만 있을 뿐입니다. 청년은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하고,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면, 청년세대 뿐아니라 모든 세대가 행복합니다. 기성세대는 이미 정신이 늙고 병들었으니, 청년들이 낡은 것을 부수고,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개혁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물론 기성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것입니다. 청년의 기개를 널리 펼치길 간절히 바랍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LG전자, 세계1위
    LG전자, 세계1위 LG전자 형, 축하해. 가전분야 세계 1위라니! 내가 얼마나 오랜동안 형을 응원했는지 모를 거야. 형이 금성사 '골드스타'로 라디오 만들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니까. 형이 '별셋'이 한테 매일 얻어터지고, 구박을 당해도 나는 꿋꿋하게 형을 응원했다고. '별셋'이는 일본 기술 빌려오고, 박정희 빽으로 한창 잘 나갔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형이 '별셋'이 뺨을 후려 갈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국내에서는 '별셋'이 한테 당하고, 외국에 나가면 쏘니를 비롯해 일본의 가전제품 회사들이 거대한 산맥처럼 늘어서 있고, 미제는 왜 또 그렇게 물건을 잘 만드는지, 형이 주눅 들어서 하마터면 가전분야를 포기할 뻔 했잖아. 그래도 우리 민족이 또 끈기의 민족이잖아. 형이 그렇게 코피 흘리면서 처음에는 일본제품 베끼다가-괜찮아, 다들 그렇게 하잖아-어느새 일본 제품보다 뛰어난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잖아. 그게 90년대부터지. 형,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전제품은 전부 형이 만든 것만 써왔어. 이건 진심이야. 내 주변에도 가전제품은 언제나 금성, 골드스타만 쓰라고 늘 말했어. 내가 형을 좋아하는건, '별셋'이가 양아치처럼 굴기 때문에, 형이 좀 안쓰러워서 그런 마음도 있었지. 그런데, 솔직히, 형이 만든 물건이 '별셋'보다 더 낫더라. 그건 내 주변 가족, 친척, 지인들도 다 인정해. 그러니까, 형이 코피 터져가면서 만든 물건이 상당히 훌륭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서 쓰는 거라고.세계 1위였던 미제 '월풀'을 앞섰으니, 이제 형은 국내에서는 '별셋'이 뺨을 후려치고, 일본 애들 소니, 미쯔비시, 도시바, 히다치 같은 애들도 무릎 꿇리고, 양코백이 월풀과 에디슨이 만든 제너럴 일렉트릭도 저만치 따돌렸잖아. 이건 정말 기분 좋은 사건이야.형, 그런데, 나는 좀 불만이 있어. 내가 형이 만든 물건 쓴다고 했잖아. 내가 집을 짓고 가전제품은 전부 형이 만든 '금성사', '골드스타'로 들여놨거든. 그리고 16년이 되었는데, 왜 고장이 안 나는 거야? 고장이 나야 신제품을 살 거 아냐? 게다가 조금 문제가 있어서 서비스 신청을 하면, 기사님은 왜 그렇게 빨리 와서 후딱 고쳐주고, 왜 그렇게 친절하고 싸게 고쳐주는 거지? 뭐 고칠 것도 거의 없었지만, 우리집 냉장고, 김치냉장고, 세탁기, 식기건조기, 광파오븐...입 아프다...대체 왜? 고장이 안 나는 거야?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면 형은 물건을 더 많이 팔 수 없어서 가난해야 할텐데, 이상하게 왜 매출은 자꾸 늘어나고, 영업이익도 비례해서 막 늘어나는 걸까? 난 정말 신기해.하여간 형, 구인회 아저씨가 '금성사'로 시작해서 오늘날 세계 1위의 최고 가전제품 회사가 된 건 형의 끊임없는 연구개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더 축하해. 아, 그런데, 형네 회사 홍보실 직원들은 좀 맞아야겠더라. 물건을 잘 만들어놓고 왜 홍보를 안 하지? 형네 제품 쓰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물건 좋다고 막 떠들고 다니잖아. 홍보실은 제품이 좋은데도 오히려 감추느라 쉬쉬하던데? 그게 전략이라고? 와, 진심, 형네 홍보실 고단수네. 형이 만든 제품을 쓰는 건, 세계 1위 제품을 쓰는 거잖아. 내가 괜히 기분이 좋고 자랑하고 싶어진다. 한국 1위가 세계 1위인 거잖아. 나 국뽕 싫은데, 형은 진짜 칭찬해. 한 가지만 부탁할께. 형네 물건 만드는 노동자들 많잖아? 그리고 제품은 노동자의 손에서 나오는 거잖아? 기술개발, 디자인 전부 다. 그러니까 형네 회사 노동자들에게 월급도, 보너스도 좀 많이 주고, 돈 벌어서 이윤이 남으면 그 사람들 복지도 좀 신경 써주고 그러면 좋겠어. 그러면 나같은 사람들이 더 신나게 형이 만든 제품을 쓸 거야. 형, 진심으로 세계 1위 축하해. 앞으로 쭉 세계 1위를 유지하도록 응원할께. 아, 노트북도 형이 만든 '그램'을 써. 나 잘했지?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19금 토끼와 거북이
    19금 토끼와 거북이 야, 거북이 존만아. 너 오늘 백미터는 걸었냐? 크크크크크. 토끼 저 새끼는 오늘도 나를 놀린다. 땅바닥에 붙어 엉금거리며 걷는 나와 달리 토끼는 날렵하게 뛰어 빠르게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놀린다. 개새...아니 토새끼. 내가 150년을 사는 동안, 저 토끼 애새끼의 애비와 할애비도 나에게 똑같이 말했다. 저 새끼들은 할 말이 그것 밖에 없나보다. 나는 짐짓 화가 난 척 인상을 쓰고 짜증난 것처럼 말했다. 그래봐야 너는 나한테 지게 되어있어, 임마. 토끼가 눈을 동그랗게-가뜩이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비웃었다. 왜? 너는 네가 달리기를 잘 한다고, 빠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멍청이. 나는 토끼가 열받을 것을 기대하며 도발했다. 아니, 사실을 말했다. 내 할아버지-450년 전이다-가 저 토끼의 10대조 할아버지와 달리기 내기를 했을 때, 내 할아버지가 이겼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중간에 토끼가 낮잠을 잤다고 하는데, 이제와서 밝히는 사실이지만, 내 할아버지는 시합을 하기 전에 중간 쯤 나무 아래 당근을 여러 개 놓아두었다. 그건 당연히 토끼의 눈에 띄었고, 토끼는 당근을 맛있게 먹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당근 속에 수면제를 넣은 것은 비밀로 하자. 토끼는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심판을 본 호랑이가 단호하게 거북이 손을 들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병신새끼, 거북이가 너를 속였다고 화를 내면, 거북이가 너보다 천 배도 느리게 걷는다는 걸 알면서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한 건, 신사다운 행동이냐? 너는 더 나쁜 새끼야. 토끼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토끼는 거북이에게 원한을 가졌다. 달리기 시합을 하자는 말은 못하지만, 토끼는 늘 우리 부모, 내 옆을 지나면서 백 미터는 걸었냐고 놀렸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마다 내가 토끼를 놀리자, 토끼는 화가 치밀었다. 그때는 우리 할아버지가 낮잠을 자서 그런 거거든. 이번에는 진짜 시합을 하자. 내가 지면 평생 네 하인이 되어서 먹이를 구해다 바칠께. 토끼가 화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하지만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웃기고 있네. 들판에서 그냥 달리면 말할 필요가 없잖아.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멍청아? 토끼는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그래, 좋아. 그러면 네가 제안해. 어떤 방법이든 동의할테니까. 달리기 코스 중간에 호수를 헤엄쳐 건너는 걸 넣으면 나도 동의하지. 나는 아무래도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조금 짜증을 내며 말했다. 토끼는 동의했고, 우리는 호수가에서 가까운 느티나무 아래서 출발했다. 심판은 여우가 했는데, 그가 손을 내리기도 전에 토끼는 이미 호수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아무리 빨리 걸어도 엉금엉금 거릴 뿐이었다. 토끼는 이미 호수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가 호수 절반 가까이 갔을 때서야 나는 겨우 호수의 물가에 다다랐다.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육지에서는 엉금거리지만, 물에 들어가면 땅에서와는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모르는 동물과 사람이 많다. 토끼가 아무리 빨라도 물에서는 나보다 느리다. 속도는 역전되었고, 나는 곧 토끼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토끼는 내가 바로 뒤에 붙은 줄 모른 채 신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나는 토끼의 왼쪽 발을 물었다. 순간 토끼는 깜짝 놀랐고, 헤엄을 칠 수 없게 되자 놀라서 앞다리를 휘저으며 물을 마셨다. 나는 천천히 토끼의 뒷발을 물고 호수 아래로 들어갔다. 토끼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발버둥을 쳤다. 그는 몰랐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관상
    관상 나는 관상을 믿는 편이다. 관상을 바탕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것이 비과학적일 수 있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외모와 사람의 됨됨이가 경험치로 쌓여 사회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근거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풍수설도 비슷하다. 관상은 단지 외모만 말하는 건 아니다. 중국에서 오랜동안 관료를 선출할 때 기준이 되었던 '신언서판'은 조선에서도 그대로 적용했다. 지배계급에 속한 양반, 관료는 단지 '관상'에 그치지 않고, '신언서판'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 판단했는데, '관상'은 대중이 선택한 낮은 차원의 인물 평가기준이다. 조선에서 관료를 선출할 때 썼던 '신언서판'을 현대에 적용하면 임용직 공무원의 많은 부분, 선출직 공무원과 국회의원 등의 대부분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한다. 그런 점에서, 대의민주주의로 투표를 해서 시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은 인물의 됨됨이를 보고 선출하는 조선보다 차원이나 수준에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조선에서도 그렇게 엄격한 기준으로 사람을 선출해도 당쟁과 간신이 속출하는 걸 보면, 그 평가가 대단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투표를 통해 선출한 자들이 보여주는 부패, 비리, 야비하고 역겨운 인성, 후안무치, 천박함, 악랄함 등은 조선의 관료들 뺨을 수백 대는 후려치고도 남을 정도로 쓰레기 같은 인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드러나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범죄자가 된 사진을 보면, 그들의 관상이 하나같이 더럽고, 역겹게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범죄를 저질러서 관상이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범죄를 저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심리의 결과가 외모, 관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최근 국회의원 자리를 잃게 된 몇몇 인간의 관상을 보면, 처음 드는 생각이, '더럽고 역겹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사람의 외모가 갖는 저마다의 개성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풍기는 느낌이 '역겹고 더럽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사람이 수십 년을 살다보면,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예술가, 사업가, 기술자 등등 전문으로 배우고 일하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의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갖지 않으면서 권력을 잡은 자들은 권력을 개인의 영달과 재화를 취득하려는 도구로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결국 법의 심판을 받고 전과자가 된다. 마흔 이후의 얼굴에는 살아 온 사람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한다. 정우성처럼 잘 생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에게 물려받은 외모에서 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결과들이 얼굴에 새겨지는 것이다. 눈빛, 표정, 주름, 말투, 입가의 처짐 등 얼굴이 변형되면서 달라지는 외모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 세계관, 가치관 등을 드러낸다. 부정적인 사람의 얼굴은 낯빛이 어둡고, 찡그리고 있으며, 입가가 처지고, 피부색이 어둡다. 얼굴이 지저분하고 매일 씻어도 더러워 보이며, 불결한 느낌이 드는 사람은 그의 내면도 그렇다. 말이 많은데 거의 쓸모 없는 말만 내뱉는 사람, 욕설을 하는 사람,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만 하는 사람, 비아냥거리는 말만 하는 사람, 항상 비난이나 비판하는 말을 하는 사람,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 교양이 없는 사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등은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집단이 있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집단은 교육수준으로만 보면 소위 일류대학 출신이 많은데, 관상을 보면 염천교 아래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더럽고 역겨운 자들이 많다. 옷은 비싼 양복을 입고 다니지만, 그 껍데기에 감춘 내면은 비루하고, 추접하며, 야비한 근성을 가진 자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권력을 찬탈하고, 국민의 대표라고 몰려나와 온갖 패악질과 야료를 부리고, 그들 개개인은 범죄와 비리를 저질러 사리사욕을 취하다 범죄자가 되고, 전과자가 된다. 그들의 관상을 보면, 나라를 망하게 할 상이며, 패가망신할 관상을 지니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인간의 스펙트럼
    인간의 스펙트럼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했던 기억은 소년노동자로 일할 때였다. 우리집은 물난리로 쫄딱 망해서 누나가 살고 있는 산비탈 판자촌으로 이사했고, 나는 그곳에서 몇몇 공장을 전전하다 건설일용직노동자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세상물정은 전혀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변두리 동네에서 여의도, 잠실의 아파트 공사를 하러 다니려면 하루 서너 시간도 못 자고 출근과 퇴근에 서너 시간을 보내고-그때는 전철도 없었고, 버스를 서너번씩 갈아타고도 걸어다녀야 했다-하루 12시간의 노동을 해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코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편도가 심하게 부어 침도 삼키지 못하게 되면, 동네 의원에서 마취도 하지 않고 의사가 메스로 곪은 부위를 찢어 피고름을 빼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방 공사를 하러 갔을 때, 그때의 그 기쁨은 이루 표현하기 어렵다. 공사현장에서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얻어 출퇴근을 했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하숙집은 내 집처럼 편안했고, 하루 세 끼의 식사는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고 푸짐하게 먹은 적이 처음이었다.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빨래를 하고, 바느질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기타도 배우고, 책도 읽을 수 있었다. 무려 책이라니. 나는 삼중당문고를 한 권씩 사모으며 지방 공사를 할 때마다 꾸준히 읽었고, 나중에는 삼중당문고에서 발행한 문고본은 거의 다 읽을 정도가 되었다. 지방 공사에 내려간 동료-라고하기에는 전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형들이었다. 하지만 경력은 내가 조금 앞서 있었다-형들은 서울 공사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형들이었는데, 오야지가 같아서 지방에도 함께 내려와 생활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내게는 운명적인 우연이었던 것이, 그 두 명의 형들은 모두 서울이 고향이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지금은 생활이 어려워 공사장에서 일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집에서 살았던 형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천둥벌거숭이로 세상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상식도 없었으며, 예절도 몰랐다. 두 명의 형들은 내게 형이자 부모의 롤모델이 되었다. 한 명은 아버지, 한 명은 엄마의 모델이었는데, 두 형의 성격이 또한 그랬다.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형은 유한공고-지금의 유한공전-자동차과를 졸업한, 스마트한 형이었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은 부잣집 아들이어서 자유롭고 편안한 성격이었다. ‘노가다’ 현장에서 이런 형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바느질도 배우고, 기타 치는 요령도 배웠으며, 사회성을 익힐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두 형은 부잣집 아들들이 아니었지만, 너그럽고, 따뜻한 인성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나는 두 형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따뜻한 인성을 지닐 수 있을까, 궁금했고 신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나이들면서 두 형처럼 따뜻한 인성을 지닌 인간이 되지 못했다. 나는 몹시 강퍅하고, 성마르며, 날카롭고, 독단이 심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 되었다. 이제 생각하면, 어린 내가 왜 그렇게 공격적인 들개처럼 살았는가 짐작하는 면이 있다. 내 부모는 한국전쟁이 만든 기형적 가족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북쪽에서 내려왔고, 어머니는 남쪽에서 올라왔다. 서울은 복마전이었고, 아내가 있었던 아버지는 아내를 -이유를 알 수 없지만-버리고, 어머니는 남편의 외도로 남편과 딸 하나를 버리고 따로 떨어져 나왔다가 누군가의 주선으로 만났다. 12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림을 차렸고, 나와 내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는 도시빈민으로 살았고, 평생을 고생한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육성회비는 늘 낼 수 없었고,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부모는 부부싸움을 했고, 아버지는 집을 나갔으며, 엄마는 방에 연탄불을 피우고 다같이 죽자고 협박했다. 어린 나와 동생은 겁에 질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소년기가 지나가지도 못하고 소년노동자가 되었다.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은 폭력이 일상이었다. 공장이든, 공사장이든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입에 쌍욕을 달고 다녔다. 그들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었지만,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지방 공사장을 떠돌다보면 깨끗한 하숙집에서 생활할 때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는 공사장 안에 허름한 숙소를 짓고, 단체 생활을 할 때가 있다. 수십 명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면 사람들의 면면이 보이는데, 선데이서울이라도 책을 읽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는 것보다 찾기 어려웠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바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숙소 한쪽에 몰려서 도박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들에게서는 배울 점이 전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담배와 술이 끌리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끝까지 배우지 않은 건, 내 의지라기 보다는, 그냥 체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도 늘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과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것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나는 학교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거의 매일 삼중당문고를 읽었고, 일기를 썼다. 저녁마다 벌어지는 도박판에 끼지 않았고-딱 한 번 도박 자리에 끼었다가 형에게 혼나고 나서는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았다- 기타를 배웠으며, 아침, 저녁으로 음악(팝송)을 들었다. 약 4년 정도, 나는 전국의 공사장을 전전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아주 드물게 훌륭한 인성을 지난 형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99%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노가다꾼’들이었다. 그들은 돈이 생기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을 했다. 자기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공사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독서회에서 만난 사람에게서였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지하철 풍경
    지하철 풍경 -누가 기생충인가 출퇴근을 지하철로 한다.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로 계급을 분류하는 ‘박사장'의 말을 들은 뒤로, 한국 사람의 약 70% 가량이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을 할텐데, 그 냄새가 부르주아에게는 ‘피하고 싶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지저분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라는 걸 알고는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사회든 다수에 속하는 것이 유리하고 편하다. 소수는 양쪽-가장 위, 가장 아래-에 포진해 있으며 증오와 동정의 대상으로 나뉜다. 가장 아래 속하는 소수자는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가장 등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증오의 대상은 ‘박사장' 같은 사람들이다. 박사장은 똑똑한 벤처기업가로, 정직하게 돈을 벌었는데, 왜? 그가 증오의 대상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겠다. 그 사람은 선량하고 성실한 ‘개인'일 수 있지만, 그가 ‘자본가'가 되는 순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존재가 갖는 원죄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사장'을 ‘스티브 잡스'로 바꿔도 좋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었다. 그는 공학적 기능이 전혀 없었고,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모든 제품은 스티븐 워즈니악이 다 만들었지만, 세상의 찬사는 스티브 잡스가 차지했다.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었다고 그가 선지자이자 앞서가는 벤처기업가로 칭송만 받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가 애플을 진두지휘할 때도 이미 중국의 애플 공장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가 심각했고, 자살하는 노동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이런 노동 문제를 제기할 때,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나는 가방을 아래로 내려 손으로 잡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거의 모두-98% 정도-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무언가를 검색하고, SNS의 내용을 읽고, 문자나 카톡을 보내고, 게임을 한다. ‘문명의 이기는 활용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을 나는 70년대 중반, 같이 일하던 형에게 들었다. 그때 ‘문명의 이기'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정도였다. 지금 사람들은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은 기계를 백만 원을 들여 구입하고, 그 기계를 쓰는 대가를 매월 지불하고 있다. 기계값, 통신비 등의 명목으로 적게는 2-3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에 이르는 돈을 대기업 통신사에 지불한다. 권력을 가진 자(소수 집단)가 가장 바라는 것은 파편화된 개인들이다. 70년대 박정희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거리에서 서너 명만 모여 있어도 경찰이 사람들을 쫓아버리곤 했다. 게다가 북한처럼 5호 담당제를 두어 한 사람이 다섯 가구를 감시하고, 밀고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뭉치는 것이 독재자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분리 정책'은 식민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개인의 파편화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성공하고 있다. 60-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바뀌었고, 기술문명의 결과로 핵가족은 다시 1인 가족으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한 가족-4인 기준-에서 가장(아버지 또는 엄마)이 혼자 벌어도 네 명이 먹고 살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명목과 여성들 스스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커지고, 일자리도 많아지면서 노동시장은 남성중심 노동이 여성노동자와 경쟁하는 모습이 되었다. 자본은 여성노동자를 남성노동자에 비해 낮은 생산성을 보인다고해서 상대적으로 임금을 낮게 책정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법적 강제는 거의 사문화되었고, 여성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저임금과 낮은 지위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자본이 바라는 이상적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출산은 인공수정을 통해 적정한 인구를 유지하도록 하고, 공장은 가능한 한 모두 자동화하며,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저임금을 유지, 고착하고, 산업예비군(실업자)는 일정 비율 존재하도록 강제해 노동자들이 자본에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고요하게 앉거나 서 있는 ‘지하철 냄새 나는' 나를 포함한 저 많은 사람들은, 대자본이 만든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을 들고, 역시 대기업 포털이 제공하는 뉴스나 드라마나, 동영상이나 게임을 보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거의 로봇처럼 움직이고, 현실보다는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더 많이 관심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드라마 주인공들의 비현실적 사랑과, 게임 캐릭터에 몰입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본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자본가는 더 부자가 된다. 그렇다고 ‘지하철 냄새 나는' 우리가 자본이 바라는대로 마냥 파편화되거나, 개인화, 개별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멍청하고 역겨운 허수아비 대통령을 쫓아냈고, 연인원 1천6백만 명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것 역시 대자본이 만들어 파는 비싼 스마트폰을 통해 퍼져나갔고, 파편화된 사람들은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 뭉쳤다. 자본이 바라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바로 ‘시민의 역동성'이다. 많은 부분은 자본이 바라는 세상이다. 70% 넘는 시민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고, 일자리를 잃을까 늘 전전긍긍하고, 저임금에 시달리고,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성년 노동자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노동시장의 경쟁은 너무 치열해서 사교육비를 많이 투입해 유명한 대학에 입학해도 취업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학은 취업학원처럼 바뀌었고, 대학을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처럼 운영하며, 심지어 대기업이 대학을 인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자본은 권력도 매수하거나 협조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평소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지만,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자본이 제공한 첨단 기기는 시민들이 단결하고 뭉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변한다. 우리가 믿을 것은 ‘시민의 역동성'이다. 잔잔해 보여도, 쓰나미는 거대한 높이로 저 멀리서 다가온다. 자본이 착취의 단맛을 즐기는 동안, 시민의 저항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날이 머지 않으리라.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배움의 사유화
    이윤의 사유화, 권력의 사유화, 배움의 사유화 3 배움의 사유화 지식은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개인의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많으므로, 한 집단을 구성하는 무리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문자를 발명하기 전의 인류는 경험과 지혜가 많은 노인을 존경하고 따랐다. 오래도록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가 많은 위험을 겪었음에도 살아남았음을 말하는 것이고, 오래 생존하는 능력은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노인은 무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의 지식, 경험, 지혜를 모두 후손에게 가르쳤다. 문자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구전을 통해 대를 이어 같은 정보를 전달했고, 구전은 곧 노래가 되었고, 시가 되었다. 그리고 문자를 발명하고 그 노래와 시는 점토판, 거북껍질, 대나무, 갈대잎 등에 새겨졌다. 초기 문자는 지배자의 언어로 기록되었고, 문자는 소수 지배그룹의 전유물이었다. 문자를 쓰고 해독하는 것은 특권이었으며, 지배계급은 문자를 독점하고, 민중은 문자에서 소외되었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던 오랜 시기-고대 이전까지의 인류-와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지만, 일부 지배세력만 특권으로 사용하던 시기-점토문자부터 활판 인쇄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합리성은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의심 그리고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로 단정할 수 없는 많은 요소-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불 이용, 집단화, 유아화 등-들의 결합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수만 년 전 인류가 깬석기에서 간석기로 발전한 것만을 두고 봐도 그것은 혁명적 변화, 발전이었다. 돌과 돌을 부딪쳐 깨뜨려 날카로운 면을 쓰던 인류가 돌을 갈아서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날카롭고, 작은 도구를 만들게 되면서 식량 채집, 수렵이 더 쉬우면서 많이 수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발견, 발명한 소수의 인류는 자기가 알게 된 정보를 곧바로 같은 무리에게 전파했다. 이런 이타적 행위는 작은 단위의 무리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존해야 자신도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배움은 누구도 사유화를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평등하게 나누던 시기였다. 지식의 사유화는 ‘지식의 전문화’, ‘지식의 세분화’와 관련 있다. 잉여생산물의 발생으로 모든 사람이 일하지 않고도 일부-무리의 우두머리 그룹-는 잉여생산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식량 생산에 모든 사람이 투입되지 않고, 일부는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권력의 발생, 계급의 분화, 지식의 전문화는 식량으로 대표하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발생했고, 권력자와 지식인은 지배계급으로 분리되어 특권을 누리기 시작했다. 권력에 부역하는 지식인을 ‘어용’이라고 칭한 것은, 그들의 존재가 민중의 이익보다는 권력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주의 이전 시기까지 지식인은 거의 모두 ‘어용’이었다. 민주주의-다수 민중이 주인인 체제-개념이 없던 때의 민중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다중’에 불과했으며,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낮은 수준과 차원의 군중에 불과했다. 지식과 정보의 보편화를 두고 두 가지 시각이 있는데, 하나는 지배자의 시각이고, 하나는 민중의 시각이다. 세계 최초의 목판과 활판은 모두 고려에서 나왔다. 이 시기 인쇄술의 발달은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데 그쳤다. 어느 시기에 새로운 문물이 발견, 발명되었을 때, 역사가는 그 시대를 통치하던 지배 권력의 능력이거나 그의 지도력이거나, 그의 선한 의지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지배계급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역사다. 반면, 그 시기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기층 민중의 역량이 성장하면서 분출하는 시대적 필연성으로 해석하는 민중의 시각이 있다. 이 양쪽의 극단에서 변증법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두 계급-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해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사회는 변화, 발전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에서 지배 문자는 중국에서 도입한 ‘한문’이었다. 그보다 훨씬 전, 삼국시대 이전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한문이 도입되었고, 이후 향찰과 이두가 쓰였으나 공식 문서와 경전은 순수한 한문으로만 기록했다. 문자의 예속은 곧 정신과 사상의 예속을 필연으로 드러낸다. 지식인은 집단이 축적한 경험과 지식, 지혜의 열매를 먹고 자란 사람이다. 그가 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노력도 분명 있지만, 사회적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집단이든 수백, 수천년의 축적되어 온 그 집단의 지식과 경험이 사회 체제를 구성하고 있고, 개인은 그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장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능력이 만든 물건을 감사하며 사용한다. 적어도 중세까지 ‘장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들인 숙련과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본주의가 본격화하면서 포드 시스템이 도입되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서 ‘장인’의 존재는 축소되었고, 사회적 인정도 약해졌다. 대부분의 노동은 단순, 반복, 일부에 국한되었고, 기계가 인간 노동의 영역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는 일차적으로 노동에서 소외된 이후 이제 그 노동의 효용성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인은 공장노동자와 달리 지식을 체득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중세의 ‘장인’이 도제 방식으로 십 년, 그 이상의 시간을 철저한 훈련을 통해 ‘마이스터’로 성장하는 것처럼, 지식인의 성장 역시 일종의 도제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이미 2천년 전에도 학문을 하려는 사람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유명한 스승 아래로 들어가 스승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피타고라스가 그랬으며 공자가 그러했다. 이런 도제 방식은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 ‘장인’이 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 속에서 정신과 마음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교육 체계를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지식인이 탄생하는 과정은 학문을 시작한 본인이 재능과 노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지식인을 키워내는 사회의 지원과 누적한 학문의 결과물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결과인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독점하는 방식인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식인 교육은 교육의 결과물을 사유화하도록 강요한다. 어느 시대나 비슷하지만, 근대의 교육은 사회주의의 경우 체제에 복무하도록 하는 이념적 성격이 강하고, 자본주의는 자본의 이윤에 복무하는 적정한 지식을 배우도록 설계되었다. 즉 우리가 배우는 초중고대학교의 커리큘럼은 그 체제를 살아가는 시민이 알아야 할 기본 교양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지식은 체제 유지를 위해 선택된 정보를 가공한 것으로, 권력과 자본의 의도가 개입된 것임을 전제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는 권력과 결탁해 자본의 이익에 복무할 수 있는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교육한다. 다만 교육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자본의 본질을 파헤치고 드러내 비판하는 학문을 배울 수 있지만, 그것으로 생존하는 지식인은 극히 드물다. 유치원부터 체제와 자본의 논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성장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체제를 공기처럼 흡입하고 몸에 익숙하게 된다. 대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내재한 심각한 결함과 부정적 요소들은 교묘히 은폐되는데, 대부분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이며,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해도, 체제와 자본의 강력한 권력 앞에서 개인은 무기력하다. 체제 순응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을 갖고 노동자가 되며, 일부가 지식인으로 편입한다. 지식인의 과정은 사무직 노동자가 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식인의 대우 역시 사무직 노동자보다 나아야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사무직, 전문직 노동자들도 재벌,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빠르게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지식인 또는 지식노동자는 더 이상 도제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고, 공교육과 사교육 제도에서 대량 생산되기 때문에 가치가 낮아진다. 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이 지식인이 되는 과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대학원은 취업준비생의 경력쌓기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학문에 전념하려는 예비 지식인이라도 경쟁이 치열해 이 과정을 마치고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식노동자는 자신이 배운 지식을 일정한 가격으로 환산해 판매한다. 지식도 하나의 상품이므로 화페와 교환, 판매할 수 있다. 이때 지식 시장에서 수요가 많으면 비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지만, 경쟁자가 많으면 지식 상품의 가격은 낮아진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효용가치 분포와 같은 곡선을 그린다. 한국처럼 제도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집단에서는 지식인이 아니면서도 권한 이상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방식은 정규교육이 체제와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 한꺼번에 여러 개의 사다리를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있는 제도도 갖고 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최근까지 ‘사법시험’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 시험은 학력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런 제도는 한편으로 평등한 정책으로 옹호할 수 있으나, 책만 읽고 외워서 합격하면 평생 우월한 지위와 특권을 누리고 산다는 점에서 과정의 불합리를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이 사유화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식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개인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근대국가는 국민을 위해 공교육 제도를 마련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와 자본이 서로의 이해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정부가 개인에게 학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은 복지 서비스의 하나로, 자본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정 과정-한국에서는 최근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었다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바뀐다-의 학습이 필요한 것은, 노동 시장으로 진출하는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일하면서 기본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육만으로는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노동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단위 가족은 학생에게 사교육비를 투입한다. 사교육 시장은 연간 20조에 이를 만큼 거대하고, 사교육이 공교육에 직접 영향을 끼칠 만큼 위협이 되었지만, 공교육은 사교육 시장에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다. 사교육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고, 막대한 이윤이 오가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또는 사이비 지식인-이 갖는 두 가지 착각은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들인 노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교수가 되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투입한 막대한 교육비-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자기의 부모가 모두 부담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두 가지의 추론을 통해 지식인이 된 자신의 입지는 오로지 자신만이 누려야 할 권리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자본주의가 바라는 바는 가족의 해체, 공동체의 파괴, 개인의 파편화, 노동의 소외, 이윤의 독점이다. 자본이 이런 현상을 원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만든다기 보다는, 자본의 속성이 이런 필연을 만든다고 봐야 한다. 즉,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개인을 최대한 착취하려 하고, 착취를 위한 작동기제가 가족의 해체, 파편화, 실업예비군(실업자)의 일정 비율 유지 등이다. 따라서 노동 시장은 매우 격렬한 경쟁이 유지되고, 이 경쟁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사교육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더 빨리 쌓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밟아 전문가, 지식인이 되거나 권력을 갖게 된 개인은 자신의 ‘자본’-지식-을 사유화한다. 즉, 자신의 지식으로 얻게 되는 이익을 독점하려 하는 것이다. 대학교수, 화가, 작가, 기자, 의사, 검사, 판사 등 전문직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상품으로 보유하며 높은 값으로 판매하는데,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의를 하거나, 작품을 만들거나, 책을 쓰거나, 사회적 특권이 보장되는 직업-판사, 검사, 의사, 교수 등-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거나 활용해서 이익을 가져간다. 전문직 지식인이라 해도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고 교육한 경우-국립교육기관에서 장학생으로-그렇게 탄생하는 전문직 지식인은 국가가 지정하는 공공서비스에서 일정 기간 복무해야 한다. 쿠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럴 경우 전문직 지식인은 영리 활동을 하지 못하므로 큰돈을 벌 수는 없지만, 국민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한다는 보람을 갖는다. 대학교수, 변호사, 검사, 판사, 의사, 기자 같은 전문직 지식인이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정당하다거나 옳다는 말은 아니다. 형식은 다르지만, 환경미화원이나 가정주부도 전문직 지식인 못지않은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런 효용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뿐이다. 전문직 지식인이 되면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이 상류층으로 향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들은 경쟁에서 앞선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으므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의-라고 말하지만, 권력과 자본의 담합과 시장 경쟁의 원리-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환경미화원과 가정주부에게 더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 역시 사회적 합의로 가능하다. 많은 정치인 가운데 전문직 지식인이 많은 것은 그들이 정치계에 진입하는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며, 정치가로 변신하면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회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즉 신분 이동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확대하려는 이들의 의도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 지식을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사유화하는 지식인을 더 이상 만들지 않으려면 배움의 과정을 공공화해야 한다. 모든 교육은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하고-곧, 국민이 낸 세금이다-고등학교 이상의 고급 교육을 희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정 기간-10년 이상-정부가 지정한 곳에서 자신이 받은 혜택-교육비와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으로, 고급 교육-대학 이상-을 받지 않은 다수의 청년들이 받는 임금과 고급 교육을 받은 지식인의 임금 격차가 최대 3배 이상을 넘지 않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의 기본이 되는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법률이 존재하는데 왠 규칙이냐고 하겠지만, 법률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임금이 최대 10배 이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주인인 세상이고, 자본가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만든다. 그리고 그 법을 만드는 자들이 바로 지식인들이고, 지식인은 자본가가 나눠주는 이윤의 일부를 가져가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다. 모든 단위 사업장의 노동조합과 산별노조에서 자본가와 협상해 자본가와 노동자의 임금이 최대 10배를 넘지 못한다는 규칙을 만들지 않는 이상, 미국처럼 파산 직전에 있는 기업이라도 회장은 일년에 천억원의 돈을 가져가고, 노동자는 5천만원을 가져가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에도 어떤 항공사 회장이 불법을 저지르고도 퇴직하면서 최대 5천억원의 퇴직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회사의 노동자는 심각한 직업병에 시달리면서도 연봉이 몇천만 원에 불과했다. 의사는 한 달 월급이 어지간한 중소기업 노동자의 일년치 연봉에 해당한다. 판사나 검사로 일하다 변호사가 되면, 자문료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일억 원씩 받는 세상이다. 그들은 분명 전문지식인들이고, 자기가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는가는 명확하다. 전문지식인은 자신이 배운 지식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유화하기도 하지만, 자본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정권은 몇 년마다 바뀌지만, 자본가는 망하지 않는 한, 자본가가 죽기까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은 대를 이어 세습할 수 있으며, 자본의 세습에 대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 강해질수록, 자본은 사회의 상층부-지식인 계층, 부르주아-를 매수한다. 지식을 사유화한 전문지식인은 이런 자본의 매수에 쉽게 넘어가고, 그들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 우리는 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비틀린 현상을 바로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체제는 공고하고, 사람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으며, 무엇보다 ‘자본’과 ‘지식’과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장악한 자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권력의 사유화
    2 권력의 사유화 권력은 집단에서 나온다. 초기의 권력은 동물처럼 살아가던 시기의 물리적 폭력이었다. 힘이 강한 자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동물의 진화와 생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류가 동물의 단계를 벗어나면서, 권력은 ‘지혜’를 가진 자에게로 옮겨갔다. 한 무리의 씨족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자, 무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먹이를 쉽고 많이 구할 수 있으며, 무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자는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그들은 수렵, 채집 경제에서 무리가 모아 온 식량을 재분배할 권한을 가졌고, 무리가 이동할 때 가장 앞장섰으며, 천적의 공격을 예상해 길을 돌아가거나, 천적과 마주쳤을 때 무리가 힘을 모아 방어할 수 있는 지혜를 내놓았다. 무리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우두머리를 존경하고 그의 지도에 따랐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지은 농산물에서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게 되고, 무리의 우두머리는 농사를 짓지 않고 잉여생산물의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가져갔다. 우두머리는 농사와 전쟁, 질병에서 무리를 구하는 제사장으로 변신하고, 불가사의한 자연의 변화와 무리의 죽음을 설명하는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무리에게 말한다. 그렇게 한 무리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은 잉여생산물의 발생과 시작을 함께 한다. 오늘날 권력은 대의민주주의에서 나오지만, 권력을 가진 자의 대부분은 권력을 사유화한다. 권력의 독점은 최근까지 지속되었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것은 자본주의의 시작과 함께 한다. 봉건제와 왕정의 폐지에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신흥 부르주아였으며,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다.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동시에 탄생했지만, 역사는 ‘자본주의’와 ‘자본가’를 주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본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항하는 필연적 계급이지만 권력의 관계는 이전 체제-노예제, 농노제, 봉건제-와 다르지 않다. 앞선 체제에서도 권력의 독점은 집단의 10%가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이 소유한 폭력집단(군대)이 체제를 보호하고 유지했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도 권력을 장악한 소수의 무리는 합법의 틀이라는 명목으로 강력한 폭력집단-경찰, 군대-을 운용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형식적으로 삼권 분립의 형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삼권을 장악한 권력은 서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부여했지만, 내부적으로 권력의 유지와 독점, 권력을 사용한 사적 이익의 추구를 공유한다. 이 명제가 절대적이지는 않고, 어떤 성향의 그룹이 권력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사유화가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하고 명백한 사실은, 권력을 장악하는 그룹(정당)의 목적은 ‘권력의 쟁취’ 자체가 목적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관심이다. 그들이 지지자 그룹-다수의 시민-을 위한 많은 복지 정책과 경제, 사회, 문화 정책을 펼치는 것은 두 가지 목표가 합치하기 때문이다. 즉, 대 국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면 그 집단이 자신들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므로, 국민에게는 편익을, 자신의 그룹에게는 권력의 지속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는 것이다. 반면 소수 그룹이 권력을 장악한 다음, 대 국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함께 하는 소수의 지배그룹-여기서는 재벌, 대기업이라고 하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경우가 바로 권력의 사유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사유화는 거의 대부분 경제적 이익과 깊은 관련이 있고, 권력과 재물은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 그룹은 사회적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혼인을 통해 혈연으로 연결되어 권력과 금력을 공고하게 유지한다. 한국현대사에서 권력의 사유화는 드라마틱하게 드러났으며, 세계의 다양한 징후들을 시기별로 목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해당한다. 해방 이후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의 탈을 쓰고 외국에서 귀국해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는 이미 임시정부에서 대통령을 했지만, 그때 탄핵되었고, 그의 독립운동 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 임시정부와 많은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승만은 유창한 영어와 미국과의 인연으로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이 민주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망각하고,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처럼 행동했다. 그는 가장 먼저 정치적 경쟁자인 김구, 여운형, 김성수 등을 암살했고, 친일매국노를 처벌하려는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를 매국경찰(일제강점기 시기 경찰이었던 조선인)을 앞세워 폭력으로 해산했다. 이승만의 뒤에는 언제나 미군정이 있었고, 미군정은 미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미국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었으니, 이승만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장 먼저 대전으로 도망했고, 심지어 일본으로 망명해 그곳에 망명정부를 꾸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승만은 자신은 몰래 도망하면서 서울 시민에게는 끝까지 사수하라는 방송을 내보내고, 한강 철교를 폭격해 수많은 민중이 아군의 폭탄에 죽도록 만들었다. 보도연맹,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수십만 명에서 백만 명 이상의 청년을 학살하거나 굶겨 죽인 것도 이승만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권력을 오만하게 누리다 결국 4.19혁명으로 자리에서 쫓겨나 하와이에서 죽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3세계에서는 빈번하게 군부쿠데타가 발생했다. 이 현상은 마치 연쇄 폭발처럼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동사다발로 발생했는데, 군부쿠데타의 발생 원인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저개발국가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쿠데타를 일으킨 대부분 세력은 미국의 이익에 복무했고, 그들 뒤에는 미국의 정보기관 CIA가 있었다. 제3세계 나라의 장교들 일부는 미국의 군사기지로 유학을 와서 훈련을 받았고,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했고, 미국처럼 잘 사는 나라는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믿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1961년, 박정희 소장은 쿠데타를 모의하고, 권력을 잡고 있던 민주당을 폭력으로 제압해 권력을 찬탈한다. 박정희는 쿠데타가 실패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쿠데타를 일으킨 명분을 만들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가고, 민주당이 집권했으나 정세는 불안하고, 경제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정희는 집권당이 무능하다고 공격했고, 폭력을 동원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몇몇 정책을 실행에 옮긴다. 겉으로는 부랑아, 깡패를 단속하고 치안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들과 함께 진보적 인사들, 쿠데타를 비판하는 사람들, 노동조합원, 사회주의자, 지식인 등을 억압하고 격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비판 세력을 압살한 다음, 북한의 김일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자신의 위치를 만회하기 위해 북한의 정책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우월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념과 체제,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남한을 앞서 있었다. 박정희는 불법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새마을운동(북한의 천리마운동의 복사판)을 추진했으며,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농촌에 있던 청년을 도시로 유입시키고, 쌀 가격을 낮게 유지해 노동자의 저임금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가져갔다. 당시 인구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던 농촌 인구 가운데 청년들은 도시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버는 수입이 농사를 지어 버는 수입보다 많았으므로,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공장과 서비스업으로 진출했다. 이로 인해 도시는 팽창하고, 도시 외곽으로 농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2000년대까지 도시의 외곽에 존재한 판자촌은 도시빈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이는 지금도 제3세계-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박정희는 절대 권력을 추구했고, 자신의 권력의 임기를 제한 없이 누리기 위한 초법적 조치를 강행했지만, 결국 측근의 총에 맞아 죽었다. 박정희는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미국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했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비참하게 죽었다. 권력의 사유화가 드러내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바로 ‘독재자의 주검’이다. 이는 역사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히틀러, 무솔리니, 카다피, 후세인, 이디 아민, 차우셰스쿠를 비롯한 독재자들의 주검이 보여주는 비참한 모습이 증명한다.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권력 공백이 생긴 틈을 노려 전두환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쿠데타를 두 번 일으키는데, 첫 번은 12월 12일 군부를 동원해 무력으로 정부를 뒤엎은 쿠데타고, 두 번째는 5월 18일, 광주에서 광주시민을 학살, 살육한 것이다.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일당은 전국에서 군사반란 세력에 저항하는 시위가 계속되자 끔찍한 내란 음모를 기획한다. 전두환은 경상도와 전라도 가운데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를 제외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인 목포에서 내란을 일으키도록 기획하려 했지만, 목포는 인구가 너무 적어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전라남도의 중심인 광주를 선택한다. 이 내란 기획은 전두환 일당이 자신들의 폭력, 반란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이었으며, 전두환은 광주 시민을 학살하려는 기획안에 ‘굿 아이디어’라고 싸인을 했다. 전두환은 베트남 참전을 했고, 베트남에서도 교전했던 북베트남 민주공화국 군인은 물론, 일반 베트남 국민들도 잔인하게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자였다. 전두환은 광주시민도 베트남 국민을 잔혹하게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의 손으로 대장 진급을 하고, 마침내 체육관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집권하던 7년은 박정희 정권 18년에서 이어지는 군부독재 25년이었으며, 전두환은 권력을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써먹었다. 전두환은 재벌에게 돈을 뜯어내는 한편, 특혜를 주었고, 자본이 권력에 종속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은 피해자 행세를 했지만, 전두환 일당에게 돈을 바치고 그보다 더 큰 이익과 특혜를 가져갔다. 전두환은 자신과 그의 일당의 이익을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권력을 찬탈했으며, 광주민중을 학살하고, 이후 권력을 휘둘러 막대한 금전적 이익을 챙겼다. 철저한 권력의 사유화 사례다. 박정희,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찬탈, 사유화했다면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우는 형식적 민주주의 결과에 따른 민간 독재의 사례다. 이명박은 사기 전과 14범의 범죄자였지만, 그는 이미지 세탁을 통해 서울시장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이명박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만들었다. 정부가 해야 하는 많은 대국민 서비스 가운데 국민의 복지를 축소하고, 토건과 건설 비중을 높여 세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이도록 만들고, 그 돈의 일부를 빼돌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외국투자를 가장해 국민 세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결국 이명박은 감옥으로 갔고, 그는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할 범죄를 저질렀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으로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권력을 알고 지내는 최순실에게 위임해서 국민 투표로 선출하지 않은 개인이 권력을 사유화하도록 만들었다. 박근혜는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멍청이였지만, 그의 권력을 대리한 최순실은 박근혜의 권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써먹었다. 결국 박근혜도, 최순실도 감옥에 갔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자신의 고유한 권리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것이 오만함에 근거했든, 멍청해서 그렇든, 평균 이하의 인격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권력의 사유화 목적은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데 있다. 권력을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무수한 미사여구를 내뱉지만, 그들의 결론은 물질적 부를 획득하려는 데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이윤의 사유화
    이윤의 사유화, 권력의 사유화, 배움의 사유화 1 이윤의 사유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땅, 공장, 기계, 재료를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주고 상품을 생산한다. 노동자는 시간당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렇게 생산한 '상품'은 시장에서 판매된다. 자본가가 투자한 땅, 공장, 기계, 재료에다 노동자의 '노동력'이 결합해 상품이 완성되고, '이윤'은 노동자가 투입하는 시간에서 발생한다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즉, 상품 가격이 1만원이라면, 자본가는 생산단가를 7천원에 만들어 3천원의 이윤을 갖는다. 생산단가 7천원에는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땅, 공장, 기계, 재료비와 기회비용, 감가상각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노동자의 임금-의료보혐료,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이 포함되었거나 또는 포함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도 들어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주어야 할 임금에서 자신의 이윤을 가져간다. 즉,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설명은 마르크스의 '자본'에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윤의 사유화-자본가가 모든 이윤을 독점하는-는 자본주의 체제를 이루는 두 개의 기둥-착취와 이윤-가운데 하나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 노력하고, 경쟁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제도가 자본주의이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평등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무능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유능한 사람들만 고생하는 것이 공산주의라고. 그들은 정확히 틀렸다.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절대 공정하지 않으면, 소수의 자본가가 발생하는 이윤의 90% 이상을 가져가는 구조로 짜여졌다. 이런 사실은 이미 200년 이상의 통계와 빈익빈, 부익부의 집중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일 때, 몇몇 자본가는 100달러짜리 지폐에 불을 붙여 시가 담배를 피웠다. 그 돈이면 100명의 노동자가 1달러씩을 더 받을 수 있지만, 자본가는 돈을 불에 태워 버릴지언정 노동자에게는 임금을 많이 주려 하지 않았다. 19세기까지도 영국에서는 아동노동이 심각했다. 불과 8살짜리 어린이가 하루 14시간을 햇빛이 들지 않는 탄광에서 석탄 캐는 일을 했고, 그들의 수명은 스무 살을 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80년대까지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하루 18시간 이상 노동했고, 전태일 열사의 일기에는 여성 노동자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자본주의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말한다면, 왜 자본가는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협박하고, 린치하고, 살해하는가. 미국의 노동조합이 처절하게 깨져나간 이유는, 자본가들이 마피아와 조직폭력단을 동원해 노동조합 조합원과 지도자를 린치를 하고, 살해했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고생하거나 죽었을 때, 그 기업의 대표가 잘못을 인정하고 충분한 보상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 그 전에,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장의 환경을 만들기는 했던가. 공사장에서도 노동자들이 추락하거나 부상을 당해 죽어가고 있다. 노동자는 단지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부속품으로 쓰일 뿐,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지금은 주5일, 하루 8시간 노동제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과거에는 노동시간이 보통 12시간, 많으면 14시간에서 16시간이었다. 12시간 맞교대(주야간) 노동도 일상이었고, 그런 삶을 사는 노동자는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이윤의 사유화는 그래서 악마의 제도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자는 딱 세 부류다. 자신이 자본가여서, 이 체제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와 그런 자본가의 똥구멍을 핥아주면서 먹고 사는 사이비 지식인들, 그리고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들이 그들이다. 하지만,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을 마냥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자본(가)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파편화시킨다. 노동자는 노동에서 소외되고, 대가족은 핵가족으로 분열하며, 핵가족은 1인 가족으로 쪼개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며,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도록 만들고,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자본주의의 본질 즉 착취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 단계를 지나,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한 가족(가정)의 가장 혼자 노동을 해서도 가족 모두가 먹고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1950년대 미국의 (백인)가정은 평균 가족 수가 4-5명일 때, 가장(주로 남성, 아버지, 남편)이 직장에 다니며 받은 월급으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고, 포드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동계급이었지만 자신들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주 짧은 시기, 이런 현상이 있었다. 가장이 혼자 벌어서 가족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임금이 높아서라기 보다는 4-5명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에 물가가 비교적 쌌기 때문이다. 물가를 통제하는 것은 정부인데, 정부는 자본가의 이해를 대리하거나 그들과 공생하므로 가장 먼저 농수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해서 노동자들의 식생활을 보장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가)은 노동의 수요가 증가하자 여성노동자의 고용을 적극 활용한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대한 열망이 결합하면서 여성 노동자의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저임금 구조는 고착한다. 더구나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으며 차별당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진급에 불이익을 받는다. 여성은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 노동자보다는 덜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단순, 반복 노동으로 오히려 육체적 소모가 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이제 가정에서는 부부가 노동을 하고, 아이들은 탁아소,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맡기게 된다. 가사 노동에 관한 정당한 평가와 경제적 지불을 하지 않는 것은 자본의 전략이다. 가사 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약 8천만원의 임금에 해당한다는 보고가 있지만, 가사 노동을 주로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인정은 매우 미미한데, 이것은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제는 부부의 노동으로도 부족해서 고등학생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교육 문제로 들어가면 자본(가)이 얼마나 철저하게 계급화, 서열화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소위 명문고, 명문대를 규정한 것은 누구인가. 왜 사교육은 공교육을 앞지르고, 공교육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왜 대학에 진학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그리고 수 많은 탈락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물음은 곧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에 잇닿아 있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유치원'이라는 형태로 차별과 경쟁을 시작하면서 부모는 자식을 더 좋은 학교,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월한 경쟁 상태에 놓이도록 수입의 절반을 쏟아붓는다. 유치원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초등학교에서는 여러 개의 학원을 뺑뺑이 돌리며 선행 학습을 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일류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고액 과외와 쪽집게 과외를 시킨다. 그렇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한 해 무려 20조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소위 일류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95% 이상의 대학생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하다. 그들은 취업을 위해 취업고시 준비를 해야 하고, 대학등록금을 대출받은 학생은 사회에 진입하기 전부터 이미 빚더미를 안고 출발해야 한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25%가 넘는데, 이들 대부분이 청년이거나 노인들이다. 이들이 매월 내야 하는 임대료는 건물주의 수입이 되고, 가난한 사람을 더욱 착취하는 임대소득자에 대한 강력한 세금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토지와 건물을 소유한 자본가는 아주 적은 세금만 내고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는 구조가 바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 많은 사람들의 등에 빨대를 꼽고 피를 빨아먹는 소수의 거인이 있다고 보면 된다. 자본(가)은 그렇다고 노예제처럼 노골적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착취하지는 않는다.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세련한 문화예술의 힘을 빌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늘 행복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방송하고, 인터넷에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컨텐츠가 무료로 제공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꿈꾸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 다만 그들의 꿈과 희망은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나영석 피디의 의도
    나영석 피디의 의도 -스페인하숙을 보고 집에 텔레비전 없이 지낸 시간이 15년이다. 여기 집을 짓고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아예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무엇보다 광고가 너무 많아서 두 가지 면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현재 텔레비전에서 편성해 방송하는 내용들의 99.9%는 안 봐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내용일 뿐아니라, 오히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텔레비전 방송의 편성은 사회의 체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숫자는 많지만, 거기에서 방송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을 하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밥을 먹거나 여행을 한다. 그리고 광고를 한다. 시청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리모콘으로 어느 방송국을 선택해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홈쇼핑 방송은 마치 일반 방송처럼 상품 판매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하고, 사람들은 상업광고 방송을 보면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누른다.텔레비전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태도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할 수 있는 행위는 무언가를 먹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뜨개질은 할 수 있지만, 생각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는 못한다.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정보가 머리를 채우면,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여유가 사라진다. 뇌는 그 정보의 질을 판단하지 못한다. 정보가 고급인지, 쓰레기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이성'인데, '이성'의 발달은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결국 텔레비전의 대부분 쓰레기같은 정보가 뇌를 통해 들어오면, 뇌는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저장과 삭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쓰레기 정보가 들어가면, 그가 알게 되는 정보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텔레비전 대신 그 시간만큼 책-당연히 좋은 책-을 읽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1인당 독서량이 1년에 한 권이 채 안된다는 통계가 있는 걸 보면, 한국사람 대부분은 책을 읽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스페인 하숙'이다. 나영석 피디가 예전에 만들었던 일련의 프로그램들-삼시세끼, 윤식당-을 봤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그가 만들었다. 나영석 피디의 이 작품들은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 면이 있다. 나영석 피디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스페인 하숙'이 기존의 '삼시세끼'와 '윤식당'을 콜라보한 것이라는 세간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삼시세끼'의 성공은 프로그램 포맷이 신선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의 찰떡궁합이 빚어낸 환상의 조합 때문이었다. '스페인 하숙' 역시 차승원과 유해진의 콤비가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차승원이 만드는 요리와 유해진의 설비가 결합했으며,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부부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다시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차승원이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관행에 따르면 '여성' 또는 '주부'의 역할을 맡는다. 반대로 유해진은 주로 바깥 일을 하면서 '남성'의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남성이기 때문에 동성의 관계 즉 성소수자들의 역할 분담 같은 느낌도 주게 된다. 이것은 나영석 피디나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리얼리티 방송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요리와 설비가 내용의 핵심을 이루지만, 하숙집 있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것은 단지 순례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숙을 하겠다는 의도에서 확장해, '길을 떠나 낯선 곳에 서 있고자 하는 사람들 로망'이라는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기획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방송은 그런 많은 사람의 욕망을 반영하고, 상품(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판매(방송)한다. 떠나는 것에 대한 로망과 함께, 떠났을 때 생기는 향수병과 귀향의 욕망 또한 만만치 않으며, 사람은 이 이중의 감정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여기에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음식이 등장하거나, 낯선 사람들의 낯선 음식에 관한 반응은 그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영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선정적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에 담긴 시대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사회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사회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는 '마약'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뉴스나 여론은 분명 '마약'이 사회에 해로운 물건이고,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규정해 인신을 구속한다. 지금까지 마약은 부르주아 세계는 물론이고 서민의 삶에도 깊숙히 침투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마약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현대 이전에는 주로 '진통제'로 쓰였기에 마약이 큰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마약은 천연재료에서 추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학물질로 제조하면서 종류와 양이 급격히 늘어났다. 마약은 범죄집단에게 가장 큰 부의 근원이 되었다. 마약이 사람들 사이로 흘러들어가면서, 마약은 사람들의 정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범죄집단은 과거에 총과 칼 같은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돈을 빼았앗지만, 이제는 마약으로 더 쉽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마약 공급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마약 카르텔의 힘이 그 사회의 공권력을 능가할 정도가 되고, 마약 범죄집단을 소탕하려고 내전 수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약은 '적당히 즐기는' 수준으로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약은 반드시 중독을 일으킨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처음 마약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의지였겠지만-강제로 또는 모른 채 마약중독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중독이 된 다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 의견이다. 마약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도 끊임없이 유통되는 것은 그것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요를 만들어 내는 범죄집단의 의지와 의도 때문이다. 마약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마약은 일반 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즉,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생필품의 가격은 정부가 적절하게 통제하고, 경쟁의 원리에 의해 가격이 폭등할 확률이 매우 낮다. 하지만 마약은 'All or Nothing'이다. 마약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모 없는 물건이지만, 마약 중독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 반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약의 가격은 필요한 사람에게 무한대의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마약을 공급하는 쪽에서는 초기 투자를 통해 중독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일단 중독이 되면 반대로 중독자가 공급자에게 매달리는 현상을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법률은 마약의 제조, 유통, 공급,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그것이 불법일 경우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만큼 마약으로 인한 사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약김밥' '마약베개' '마약매트리스' '마약국수' 등 마약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물건이나 음식이 더 맛있거나 훌륭한 제품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광고라고 보기에는 몹시 위험한 현상이다. '마약'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면, 자라나는 세대는 마약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고, 마약으로 큰 돈을 버는 범죄집단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며, 마약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어떤 음식이나 물건 앞에 '마약'을 붙이는 순간, 그 광고는 거짓, 과장 광고에 해당한다. 그 음식이나 물건에 진짜 '마약'이 들어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 광고한 것이고, 사회에서 범죄로 규정한 마약을 '좋은 것'으로 포장한 왜곡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마약을 앞에 붙이는 단어를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출연하는 사람들이 종종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그들의 언행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별 생각 없이 말을 한다는 걸 반증한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라도 방송에서는 잘못된 언행을 바로 잡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해야 하는데도 방송국의 관련자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경우를 보기 드물다. 언어(말과 글)는 무의식을 반영한다. '마약00'을 별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마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각종 광고에서 '마약00'은 이윤을 위한 업자들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의도해서 드러내는 것이므로, 정부는 이런 광고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방송과 언론에서는 '마약00'을 쓰는 출연자를 제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며, 마약의 불법성, 중독성, 거대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아주 작은 틈으로 시작해 댐이 붕괴하듯,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단어가 마약 중독 사회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나친 걱정이라고? 그러면 좋겠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나는 누굴까
    나 이 글을 쓰는 나는 사회적 기준에서 평범, 평균보다 낮은 정도의 수준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고 평균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부족하고 어리석게 살았다. 그 기준을 두고 말하자면 꽤나 복잡하겠지만, 경제적인 면, 학벌이나 인맥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학력도 보잘 것 없고, 가난하게 자랐고, 그래서 사회의 인맥도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은 2003년 지금 살고 있는 시골로 내려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래서 평균 이하의 내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거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체로 봐서는 평균 이하지만 한두 가지는 평균보다 조금 웃도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글도 쓰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또 말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이라고. ‘나’의 본모습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는 나를 주관으로 보고 있고, 주위 사람은 나를 객관으로 보고 있다. 나를 바라보며 해석하는 것은 나 자신이거나 주위 사람이거나 모두 정확하게 보겠지만 일부만을 보고 있을 것이다. 50년 넘게 살다보니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이 첫 번째 인식이고, ‘나’의 존재에 대한 이중성, 불명확성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인식이다. 내가 ‘나’라는 것은 알겠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내용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내 경험이나 생각으로 미루어,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거나,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하기 난감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두려운, 거북한, 자존심 상하는 내용이기도 할 것이고, 말을 꺼내본들 다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절박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유별나고 중뿔나게 고민과 갈등과 속앓이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유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보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의식은 모두 유치하고 가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모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치가 있다고 해서 모두 알곡처럼 쓸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듯이 꼭 필요한 사람, 있으면 좋은 사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 필요 없는 사람 등으로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인간을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므로 사람의 가치를 낮게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어떤 사회에서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도 유형이 다양한데,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범죄자부터 단순한 잉여 인간까지 ‘쓸모없는’ 인간들은 필연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지만, ‘인간(人間)’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나이 들어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변한다. 나이에 따라 외모가 바뀌듯이,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눈으로 보는 사물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판단과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고, 늘 회의(懷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스무 살 중반에 시작한 공부로 인해 내 삶의 전반기와 후반기가 분명하게 갈리는 경험을 했다. 삶의 전반기가 유아에서 청소년의 시기였다면 후반기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첫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 단계가 서른 중반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얻은 것이라고 하겠다. 작은 단계로 나누면 더 많아지겠지만,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끊임없이 어리석음을 깨닫는, 어리석은 자신을 돌이키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짐하는 시간들이었다. 나이가 많아진다고 저절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력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현명하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상태로 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관없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이 들어도 어리석고 한심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개인의 삶이 높은 문화 수준을 영위하며, 지성과 예술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걱정하지 않고 지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의료, 교육, 주거가 그것이다. 몸이 아프면 누구나 걱정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할 수 있어야 하고, 4살부터 대학까지, 또는 평생 교육까지 입학금,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은행빚을 얻어 쓰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도 없어야 한다. 말하기 쉬워서 세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 세 가지를 해결하려면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즉, 현재의 착취구조형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행복은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글쎄...’하면서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잃을 것이 전혀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선뜻 옳다고 말하지 못한다. 너무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쇄뇌되어 왔기 때문에, 행복한 조건들이 눈앞에 있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고 있어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오면,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욕망 덩어리의 인간이자,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존재다. ‘개인’의 자유와 결정과 책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수의 사람들이 부자로 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난하게 사는, 공빈공락共貧共樂의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불편한 까닭
    불편한 까닭 '막노동 부모를 둔 아나운서 딸'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되는 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물론 나도 읽었다. 사람들은 이 글에 감동했다면서 공유하고, 글쓴이를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여성이 아나운서가 된다는 건,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전문직으로 사회에서 일하는 건 아나운서 뿐아니라 훨씬 폭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특히 도드라지는 여성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자란 자신(여성)이 '용'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그것이 막노동을 하는 부모의 덕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 이데올로기인 유교적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태도인데, 왜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걸까. 아나운서가 된 여성은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이 배우지 못한 분이고, 평생을 막노동을 하며 자식을 키우셨다고 했다. 그런 부모를 보며 여성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집안일을 하고,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좋은 직업과 신분의 상승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했노라고 말한다. 자신이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주변의 동료들 집안이 대개 의사, 교수의 부모를 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부모 직업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말한다. 글의 내용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다. 문제는 이 글을 쓴 의도에 있다.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의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전직 아나운서 여성은 자신을 키운 부모님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글에서 읽히는건, 자신의 부모, 그것도 배우지 못한 부모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스스로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지칭할 때, 그건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왜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의 부모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자신이 그 부모의 삶에서 많이 벗어나 '용'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도였을까. 자신의 부모는 비록 지금도 '개천'에 있지만, 자신은 그 '개천'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용'이 되어 더러운 개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니, 그런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서였을까.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무수히 많은 부모들이 '개천'에서 살고 있고, 그 분들은 여전히 한글도 잘 모르고, 말하고, 글쓰기를 잘 못한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산나물을 채취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그 분들에게는 그런 삶이 너무나 당연해서 자신들이 '개천'에서 사는 줄 조차 인식,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사는 삶이 '개천'에서 사는 삶이라는 규정은 누가 하는 걸까. 이 여성은 너무도 도식적이고 고정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개천'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삶에서는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포함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부모가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들이지만, 나는 내 부모가 '개천'에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학력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개천'과 '용'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그 여성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흑백으로만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자본주의 사회-이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그런 체제의 구조와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부모의 삶과 자기의 삶을 구분 짓고, '개천'과 '용'으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그 여성의 글이 불편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글은 반듯하고 올바른 전통사회의 이념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수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민중' 그 자체인 부모-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대상화하고 그 분들의 삶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부모부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지인, 친구, 친척들의 부모님 역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부모들 가운데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분들인데, 그들의 자식들은 거의 모두 부모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부모님만 특별한 경우도 아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온 것이 이 여성뿐만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삶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미화'한 글이 불편한 건 나만 그런 걸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천재 쇼트트랙 선수'라는 극찬을 받은 심석희 선수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비인기종목 스포츠인 동계스포츠 쇼트트랙에서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청년의 열정과 투혼을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얼음 위를 달리는 심석희 선수의 모습은 빠르고, 날카로우며, 부드럽고, 유연한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였습니다. 경쟁하는 선수를 앞지르며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달할 때의 그 환희와 벅찬 감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며 기뻐하고 환호했습니다. 엘리트 스포츠선수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심석희 선수는 여러 번 보여주었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했습니다.심석희 선수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의 팀워크와 동료애, 경쟁하는 팀과 선두를 다투는 전략과 전술의 흐름, 탁월한 기량으로 경쟁 선수를 앞지르며 달려나가는 놀라운 순발력은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심석희 선수가 지금까지 이룩한 수많은 신기록들은 나이 어린 선수가 해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고, 훌륭한 기록들입니다. 한국의 동계스포츠 쇼트트랙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졌지만, 심석희 선수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선수입니다.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청소년 올림픽, 주니어 세계선수권 등에서 금메달만 무려 21개를 획득했고, 지금도 여전히 기량이 성장하고 있는 놀라운 선수입니다. 심석희 선수는 한국의 보물입니다. 지금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이며, 미래의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니 심석희 선수. 앞으로도 한국의 빙상스포츠, 쇼트트랙의 미래를 위해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심석희 선수를 바라보며, 심석희 선수를 롤모델 삼아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 선수들을 위해 심석희 선수의 능력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심석희 선수가 보여준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그동안 겪었던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세상은 모두 심석희 선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심석희 선수의 아픔에 공감하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생각해보니, 심석희 선수는 제 아들보다 한 살이 많더군요. 심석희 선수처럼 훌륭하고 대견한 딸을 둔 부모님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믓하고, 대견합니다. 심석희 선수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딸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마음을 담아 응원합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19금 마리아
    19금 마리아 나귀를 끌고 하루 거리에 있는 아풀라에서 돌아온 요셉이 창고에 목공 도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못보던 어린아이가 찾아왔다. 요아킴이 보자고 전하랍니다. 그러잖아도 보름이나 나사렛을 떠나 있어서 돌아오는대로 곧 장인이 될 요아킴을 찾아갈 생각이었던 요셉은 일부러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 보자고 한 것이 의아했다. 요아킴은 점잖은 사람으로, 그의 딸과 혼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요셉은 내심 반가웠다. 창고 정리를 마치고,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은 뒤, 빵 한덩이를 가지고 요아킴의 집으로 향했다. 요아킴은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으로, 수십 마리의 말과 수레를 가지고 사람을 부려 나사렛은 물론 멀리 다마스커스, 예루살렘, 베르세바, 텔아비브까지 다니며 교역을 하는 상인이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없는 것을 두고 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요아킴 어르신, 평안하셨습니까. 요셉이 집안으로 들어서 인사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요아킴이 반갑게 일어났다. 어서오게. 이번에는 어디에서 일하고 왔나? 요아킴이 요셉을 반대편 소파로 안내하며 물었다. 네, 아풀라에서 다르한 씨 마굿간을 지었습니다. 이번에 말을 두 마리 더 샀는데, 마굿간이 좁아서 옆으로 늘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요아킴은 요셉의 말을 들으며 그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요셉은 요아킴이 따라주는 물을 마셨다. 물이 달고 맛있었다. 요셉은 낡은 옷을 입었지만 체격이 좋고, 근육이 발달했다. 그가 목수로 일하면서 단련된 단단하고 구릿빛으로 반들거리는 갈색의 피부를 가진 것이 보기 좋았다. 마을에서 목수 요셉은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가난한 목수였지만 요아킴이 자기 딸과 혼인시키기로 작정한 까닭이 그 이유였다. 요셉이 말을 끝내고 잠시 말이 끊겼다. 요아킴은 바닥을 바라보다 무겁게 고개를 들고 요셉을 바라봤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요셉은 내심 혼인에 관해 이야기할 것으로 짐작했다. 마리아가 임신했네. 요아킴의 말을 듣고 요셉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네에게 숨길 수 없는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딸을 바르게 살피지 못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으니, 나를 원망하게. 자네 얼굴을 볼 면목이 없네. 요아킴은 요셉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요셉은 당황해서 요아킴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황한 요셉은 마음 속에서 분노와 의아함이 들끓는 걸 참으며 물었다.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는 아시나요? 요아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요아킴이야말로 요셉보다 더한 마음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이고, 애지중지 기른 고명딸이어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은 아내 안나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요아킴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제가 마리아와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요셉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자네도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파혼을 하겠네. 죄많은 딸을 둔 애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면목 없을 뿐이네. 요셉은 안채로 들어가 마리아가 지내는 작지만 깨끗한 방 앞에서 마리아를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안나가 나왔다. 어서오게. 자네가 올 줄 알고 있었네. 지금은 자네가 몹시 화가 났겠지만, 마리아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길 바라네. 안나가 바깥채로 나가고, 요셉이 마리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마리아는 양털로 짠 러그 위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로 배를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버님에게 말씀들었소. 어찌된 일인지 내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요셉이 마리아를 보며 물었다. 마리아는 요셉을 잠깐 바라보고 다시 눈을 아래로 향했다. 거기 좀 앉으세요. 마리아가 말했고, 요셉은 마리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실내는 시원했다. 당신이 나와 혼인하지 않아도 좋아요. 나도 팔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혼인하고 싶지 않고요. 내가 임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가 누구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이 파혼하겠다면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은 끝나는 것이고, 나와 혼인하겠다면 내가 임신한 것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줘요.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겠어요.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처죽여도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요셉의 생각은 달랐다. 게다가 요아킴은 마리아와 혼인하면 지참금을 넉넉하게 주겠노라고 귀뜸했다. 요셉은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지참금이 필요했다.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를 잘 하기 바라오. 요셉은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날이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할 때, 요셉은 당나귀에 마리아를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새집을 짓는 일을 시작해서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야 한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면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 두려워서 멀리 떨어진 베를레헴으로 갈 것을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요셉과 다른 목수들 몇이 합류해 두 달 정도 집을 짓기로 했다. 요셉이 간단한 살림도구를 수레에 싣고, 양털로 짠 담요를 두른 마리아를 태우고 천천히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을 지날 때 마리아가 진통을 시작했다. 하늘은 흐리고, 눈발이 조금 휘날리고 있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몸을 풀 장소를 찾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고, 당나귀의 발걸음은 느렸다. 하는 수 없이 요셉은 길가에 있는 마굿간 앞에 당나귀를 세우고, 마리아를 부축해 마굿간의 짚더미 위에 눕혔다. 진통을 하던 마리아는 힘겹게 아이를 낳았는데, 쌍동이였다. 딸이 먼저 나왔고, 잠시 뒤에 아들이 나왔다. 요셉은 아이들을 받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있다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있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 과학에서는 '차원'을 말한다. 1차원은 점, 2차원은 선, 3차원은 면, 4차원은 3차원에 시간을 더한 것이다. 인간은 분명 4차원을 살아가고 있지만, 4차원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3차원을 이해한다. 아주 어린아이도 3차원의 삶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즉 바닥을 걷고, 벽을 구분하며, 공간을 입체로 인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은 태어나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유전자로 물려받은 공감각 능력이고 본능으로 알고 있다. 반면, 작은 곤충을 보면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인간이 보기에 매우 단순하고 의미 없는 행동을 할 뿐이다. 곤충류는 사람이 얼마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뻔히 보인다. 인간은 곤충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다. 같은 인간이라도 사람에게는 수준이 있다. 인간은 평등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존재'가 평등하다고 해서 개개인의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고, 바로 그 수준 차이 때문에 사회에 계층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층은 계급과는 다른 개념이고, 계급 사회에서도,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도 계층은 존재할 것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계층에 속한 집단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준 낮은 인간'이란 개인을 말한다. 그리고 수준 낮은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 존재한다. '수준이 낮다'는 개념은 논리적, 과학적 근거가 있는 표현일까. '수준이 낮다'는 문장만으로도 여러 종류의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사회적 합의에 필요한 논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다. 천천히 질문을 따라가보자. 우선, '수준'의 개념과 정의는 무엇일까. '수준이 낮다'고 할 때, 당연히 수준이 높은 상대적 개념이 있을테고, 높고 낮은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수준'의 개념은 개인의 세계관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다시 '세계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즉 '세계관'은 무엇이며, 세계관에도 높고 낮은 것이 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가치관'은 개인의 주관적 성격이 강하므로 사회에서 합의한 기준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가치관보다 넓고 다양한 개념으로 개인의 사상을 규정하는 것이 '세계관'이라면, '수준'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출생부터 부모의 성향, 성장 과정, 교육의 정도, 살면서 겪은 다양하고 결정적 경험들에서 만들어진다. 단 한 사람도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수준이 높은 사람과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갈린다. 또한 수준 차이는 언제나 상대적 개념이어서, 사회에 존재하는 수준 낮은 사람들을 솎아내면, 다시 전체 집단에서 일정 부분의 수준 낮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수준 낮은 인간이란, 바꿔 말하면 반민주, 비도덕, 비윤리적 인간이다. 즉 세계관이 건강하지 않은 인간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공동의 윤리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고, 정의보다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인다. 세계관의 기준이 '나의 이익'에 있기 때문에 이들 수준 낮은 인간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친일매국을 해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선택한다. 그들은 '양심'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수준이 낮은 인간은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 본능은 자신의 생존이다.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 옹호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가장 철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수준 낮은 인간이 볼 때, 가장 위대한 인간형은 '자본가'다.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이념의 화신이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가이며,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다.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사람은 주어진 환경-자본주의 체제-을 절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공산주의 사회나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가장 열렬한 체제옹호자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루쉰이 말한 '아Q'와 닮은 유형이다. 이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권력-부패한 권력-의 냄새를 맡는 본능이 있다. 부패한 권력에 기대는 심리는 자신의 내부가 단단하지 못해서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강한 힘에 의존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가난하게 자라서 배우지 못한 무지랭이 인민이 있고, 약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능력은 안 되는 어리석은 인민이 있고, 교육을 많이 받고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이지만, 뇌회로에 문제가 있어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민이 있고, 엘리트 집단의 일부는 자신이 반사회 범죄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거짓말과 조작을 하는 인민이 있다. 가장 단순한 예로, 공중도덕을 지키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집단이 약속한 이 최소한의 규율 조차도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 바로 수준 낮은 인간인 것이다. 거리에서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행위는 분명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필요없는 사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낮은 수준은 적은 사회적 비용만 치루면 되지만, 지식과 권력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뿌리를 썩게 만들고, 사회의 줄기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다. 지난 9년간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악하고 저열하며, 야비한 공작과 탐욕으로 나라를 이렇게 망가뜨린 것을 확인했다. 수준 낮은 인간은 우물안 개구리와 같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고작 우물 위 동그란 하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굴 속에 사는 원시인들과 본질에서 같다. 그들은 외부의 충격에 공포를 느끼며, 자신과 다른 모든 것에 두려움을 갖고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무지가 곧 공포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수준 낮은 인간의 특성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지함은 학교 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수준이 낮다는 건 천박하다는 뜻이고, 천박함은 학교 교육과 아무 관련이 없다. 촛불이 만든 정부를 헐뜯고 모함하는 야당의 국회의원들, 이명박, 박근혜를 옹호하는 수구꼴통들, 정부보조금을 자기돈처럼 마음대로 쓰는,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립기관의 기관장들, 하버드대학을 나온 어떤 인간, 방송국 기자로 인터뷰를 조작한 어떤 전 기자, 만화를 그리는 어떤 만화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헐뜨는 여자들 그리고 일베충들이 바로 수준이 낮은 천박한 것들이다. 문제는,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더 수준 낮은 인간을 국회에 보낸다는 것이다. 수준 낮은 인간들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발생하는 경로는 몇 가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 그것이 그의 탓은 아니지만, 뇌 활동이 부진하게 태어난 것이다. 이들은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태생적으로 지능과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성장 과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 학대당한 사람의 일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일부에서 수준 낮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이 황폐한 것을 외부에서 충족하려 한다. 그것이 파괴적이고 공격적 성향으로 드러나며, 자연히 민주주의, 자유, 평화, 평등과 같은 개념에 적대감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이 폄훼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의도적으로 천박한 역할로 돌아서는 사람이 있다. 김문순대나 이재오, 변모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명예욕과 권력욕이 큰 사람이지만 그것을 충족할 방법을 정상의 방법으로 찾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반대의 길로 들어섰다. 민주주의가 힘들고 위대한 점은, 이런 수준 낮은 인간들까지 다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국가라면 이런 인간들은 쉽게 처리할 방법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존중한다. 그래서 국가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매우 낮아서, 개인당 지출하는 비용대 효율이 낮다. 수준 높은 시민이 수준 낮은 인간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이재명은 개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재명은 개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화살을 막아내고 있다. '점'으로 대표되는 점부선, 점지영, 점용석 등의 합동 공격으로, 이것은 점부선이 '나는 이재명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떠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자발적이고 의도적으로 자기의 불륜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 숨기려고 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드러내서 자기에게 특별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그렇다면 점부선은 자신이 이재명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것이 현재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간통죄가 사라졌으므로 간통으로 인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지만, 현직 경기도지사인 이재명지사가 점부선과 간통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으로 결정타를 맞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점부선이 처음 그 주장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부인해 왔으며, 점부선이 내미는 지금까지의 주장과 증거자료들은 거짓과 가짜로 드러났다. 단 하나라도 간통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었다면 이재명지사는 이미 정치생명은 물론 인간 이재명으로도 끝장이 났을 것이다. 대단한 증거라도 있는 듯 떠벌이는 저 세 명의 점씨들은 온갖 추잡한 언행으로 이재명지사의 인격을 모욕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재명지사를 싫어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들이 똥파리처럼 달라붙어 동조한다. 다른 방향에서,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문, 극문 세력들이 이재명지사를 공격한다. 그들은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지사가 문재인대통령을 비난하고, 심하게 공격해 인격적으로 모욕했다고 생각하고 주장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이재명지사의 언행이 정도를 지나쳤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올바르지 않은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재명지사는 이런 지난 날의 언행과 처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도 잘못했으며 부끄럽고, 후회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간 이재명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언행이 가볍고, 말 실수를 할 때가 있으며, 스스로 후회할 행동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재명지사가 가진 몇 가지 단점들을 보완할 많은 장점이 있다. 그는 솔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며,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거나, 행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썩은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척 하면서 이재명지사를 비난하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자들의 정체는 수구반동집단이며, 설령 진짜 문재인대통령 지지자라 해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이다. 지금 전선은 문재인대통령을 중심으로 개혁 집단과 자유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반동매국집단의 전쟁이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편에서 서로 총질을 해대는 자는, 같은 편이 아니라 적의 간첩이거나 적군이다. 다른 방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날카롭지는 않아도 충격이 강하다. 가장 이윤에 민감한 재벌, 자본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재명지사가 아파트 가격 원가 공개를 비롯해 정부 입찰 담합, 페이퍼컴퍼니 단속 등 당장 경기도민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벌과 대기업, 토건호족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미 성남시장 때부터 해오던 이런 일련의 개혁을 경기도로 확대하는 것은 이재명의 정체성과 일치하며, 일관성 있는 추진이다. 그가 100만 성남시장에서 1300만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그의 업무의 중요도는 무려 13배가 더 커진 것이다. 그만큼 그가 움직이는 시간은 1시간이 무려 1300만 시간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있고, 중요한 자리다. 이재명을 비난하는 인간들 대부분은 스스로 썩었거나, 썩은 쓰레기들을 비호하거나, 이 사회가 지금처럼 계속 썩어 있기를 바라는 퇴행적이고, 부패한 인간들이다. 이재명의 존재 의미는 '개혁'에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그가 성남시장 때부터 일관하는 '개혁'을 부르짖고 있고, 개혁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고 외친다. 개혁은, 적폐를 청산하고, 합법과 상식이 통하는 투명한 사회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 가운데 기본인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기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원칙에 충실하고, 기본을 세우려는 이재명을 악의적으로 비난, 왜곡, 공격하는 자들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적폐세력이며, 민주주의의 적들이고, 수구반동매국노들이다. 이재명을 쓰러뜨리면 곧바로 문재인대통령에게 똑같은 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지금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장판교에 선 장비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혼자 막아내고 있다. 이재명 뒤에는 문재인대통령이 있으며, 문재인대통령 뒤에는 우리민족의 미래가 걸린 개혁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이 있다. 적들은 이재명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문재인대통령 뒤에 있는 개혁,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앞날이며, 우리 국민 대부분의 소망과 열망을 죽이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며, 적폐세력이 노리는 궁극의 목적이다. 적폐세력, 수구반동매국집단이 벌이는 이 악랄한 선동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재명 경기도자사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비루한 인간
    비루한 인간 점심을 먹고, 문호리에 있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각자 자기가 알고 있는 기이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인간 유형이 떠올랐고, 그건 지금 사회에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정리했다. 한 인간이 있다. 50대 초반의 남성이다. 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 임시직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 중견 기업의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연봉은 1억원 정도로 높은 편이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서 어느 지방도시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상위 5%이내에 들어갈 만큼 꽤 부유한 사람이라고 인정할만하다. 여기에, 좋은 대학을 나왔고, 외모도 멀쩡해서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좋은데, 그는 50대에 미혼이다. 밥을 먹을 때는 값싼 식당을 주로 찾고, 공기밥을 공짜로 주는 식당에서 밥을 두 그릇씩 먹는다.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자동차로 쓰는 돈이 아까워서다. 그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보고 결혼해서 결국 자기 재산을 뺐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가 가진 지식과 배경과 재산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는 무능하다.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는 의지도, 의욕도 없다. 그는 늘 업무에서 배재당하고, 좌천되어 지방으로 전전했으며, 회사가 좋아서 해고를 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정년까지 무능함으로 버틴다. 그가 받아가는 연봉이면 일을 아주 잘 하는 신입사원 세 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지만, 재산도 많은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 끝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또 한 인간이 있다. 그도 50대 초반의 남성인데, 강남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다. 그가 주무르는 돈만 몇 백억 단위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빌딩만 여러 채가 있다. 이 정도면 누구나 그가 한국에서 상위 0.1%에 속하는 자본가이자 부르주아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첫 인상은 노숙자다. 싸구려 나일론 잠바(점퍼라는 단어도 고급해서 어울리지 않는다)를 걸치고, 바닥이 닳은 낡은 신발을 신고, 싸구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동차도 물론 없다. 그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앞에 말한 남자와 똑같다. 여자가 자기의 재산을 강탈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여자를 만나지도 않는다. 이 두 인간형은 매우 비슷하다. 두 사람은 물론 어떠한 관계도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두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이런 인간 유형을 '비루한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비루한 인간은 무지하고 가난한 인간이 아니다. 위의 두 인간은 매우 부유하고, 경제적으로는 상위1% 안에 들어가는 인간이고, 대학을 나온(사채업자의 학력은 알 수 없다) 인간이지만, 그들에게서 나는 느낌은, 노숙자나 거지, 부랑자들에게서 나는 더럽고 역겨우며 구역질나는 냄새다. 즉, 이런 인간 유형은 천성적으로 비루한 인간으로 타고난 것이다. 나는 결정론을 믿지 않으므로 '천성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는 그가 태어나서 자랄 때의 성장 과정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루한 인간 유형 가운데 보통의 한국사람이라면(어린이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이명박이다. 이명박은 운이 좋아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비루한 인간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인데 비루한 인간이라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한국에서 재벌들을 보면, 마약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온갖 천박한 갑질을 하는 사건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자본가이긴 하지만, 그건 단지 자본을 많이 소유했다는 것일뿐, 그 자본가의 품성이 고결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루한 인간의 반대는 고결한 인간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착각하는 것이, 돈이 많거나, 많이 배운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다는 것과 고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다. 아주 드물게 부르주아에게서 그런 자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건 훌륭한 배경과 환경이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고결한 인간은 돈과 지식과 직접 관련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명박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근근이 자랐다. 그가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가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그가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풍요롭게 사용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나쁘지 않고, 그가 사회를 위해 돈을 쓴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이명박은 오로지 돈을 '모으기만' 했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돈에 환장하는' 집착은 정신적으로 심한 결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타인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즉 정서가 안정되고, 다른 사람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사랑'이 무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자랐다. 단지 가난 때문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가난해도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이 화목한 집안이 얼마나 많은가. 이명박은 4명이 개고기를 먹으러 가면 2인분을 주문해서 혼자 다 먹는다고 했다. 식탐 역시 돈을 탐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다. 그가 아주 적은 돈이라도 쓰지 않으려 하는 심리는,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아야만 마음이 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과정을 축재, 즉 돈을 모으는 데 쏟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쌓아놓으면서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내면도 천박하다. 배움이 짧고, 평생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기 때문에 지식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 말하려는 내용이 없고, 사용하는 단어와 어휘가 적다. 그가 개신교도로 교회에 열심으로 출석해 기도를 한 것은, 그가 신의 존재나 종교의 깊이를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의 지식인이 모여서 나누는 잡담을 5분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무식한 인간이고, 특히 과학, 자연, 환경, 역사, 철학 등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 무식한 인간이다. 결국 이런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의 전형을 이룬다.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일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간이 '비루한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가들 가운데도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진 것들만도 엄청 많지 않은가. 자식이 술집에서 싸웠다고 가죽장갑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자본가, 천박한 욕설과 말투로 고용한 사람들에게 생지랄을 떠는 자본가를 보라. 그들은 천성이 비루하고 천한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가운데 오히려 고귀한 인간들이 더 많다. 확률적으로도 그렇다.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비율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노동자와 서민은 90%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인간은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누군가 위험에 놓였을 때 서슴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자신의 이해와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 가진 것이 적어도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고귀한 사람들이다. 돈을 쌓아놓고도 쓸 줄 모르고,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자들이 비루한 인간이라면,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인간이다. 자본주의가 사라져야 할 많은 이유 가운데 비루한 인간이 오로지 돈만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도 한몫을 한다. 이제 비루하고 천박한 인간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도록 재배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꽁뜨-꼰대의 최후
    꽁뜨-꼰대의 최후 출근시간이 지난 2호선 전철에는 서 있는 사람이 드물고,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보고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의 흔들림과 정차하고 출발하는 전철역에서의 안내방송이 규칙적으로 들릴 뿐, 전철 안은 조용했다. 전철이 사당역에 멈추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사람들이 전철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고, 다시 전철이 움직였다. 조용한 공기가 찢어지듯 파열한 것은 전철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이도 어린 게 어른을 보면 일어나야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 있는 남자였고, 나이는 60대로 보였다. 그는 등산복 바지와 조끼를 입었고, 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었다.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어서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처진 입술, 더부룩한 수염, 꺼칠한 피부를 보면 그가 가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앞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그 여학생은 갑자기 자신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강압적인 목소리와 태도로 서 있는 늙은 남자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드럽던 전철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걱정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단 말이야. 늙은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그의 귀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학생은 그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고, 희미한 웃음을 띄면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보시죠. 여학생의 당돌하지만 똑부러지는 말에 늙은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몸짓이 보였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상체가 약간 뒤로 움직였다. 그건 전철의 흔들림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싸움에서 밀렸다는 반응일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 남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맞받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도리니까,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기본 예의이고, 상식이 아닌가. 늙은 남자는 자신의 논리적 주장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 옆에 앉아 있던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은 동방예의지국의 전통과 예의범절로 공격하는 늙은 남자의 주장에 패배해 곧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은 조금의 흐트럼짐도 없이 늙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방예의지국과 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제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직접적인 관련이 어디에 있는지 근거를 대보시죠. 이제는 자리에 앉을 거라고 기대했던 늙은 남자가 순간 휘청하는 느낌을 받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여자가 따박따박 말대꾸 하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수리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늙은 남자는 명치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너는 부모도 없냐.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이 앞에 있으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야지. 부모가 그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늙은 남자는 감정이 북받쳐서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제 전철 안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모를 수 없게 되었다. 늙은 남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에 경멸과 짜증이 묻어 있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여학생은 옆에 앉은 노인을 슬쩍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여학생이 졌다. 늙은 남자는 득의양양, 거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여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늙은 남자가 섰던 자리,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전철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여학생 옆에 앉았던 노인이 일어났다. 도착지가 되어 내리는 줄 알았던 노인은 조금 전 자리에 앉은 늙은 남자 앞에 섰다. 여학생은 노인이 일어난 자리, 늙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고, 여학생의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은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발을 툭 찼다. 늙은 남자는 순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노인은 다시 말했다. 조용하게. 아니, 노인장 내리시는 거 아니셨나요. 늙은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지만, 선글래스를 써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시커먼 안경 벗어.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른 앞에서 까만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어른에 대한 예의야.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노인은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늙은 남자는 당황한 몸짓을 숨기지 못했지만, 노인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노인께서 왜 시비를 거십니까. 그냥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되잖아요. 내 맘이야. 선글라스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 새끼야.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철 안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점잖게 생긴 노인의 입에서 저런 거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에이, 씨발, 늙었으면 곱게 늙을 것이지, 왜 시비를 걸고 그러는 거야. 늙은 남자는 이제 노인의 말에 반발하고, 물리적 대응을 각오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노인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르고 약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태극기가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상황은 곧 끝났다. 여학생이 다시 일어섰고, 노인은 자리에 앉았다. 늙은 남자는 득의만면, 자신이 이겼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고 느끼는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 날카로운 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여학생의 손바닥이 늙은 남자의 뺨을 풀스윙으로 때리고 허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번 빠르고 강하게 반복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남자의 뺨은 이내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에 늙은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그 사이 이번에는 둔탁한 타격이 턱과 가슴에 연거푸 퍼부어졌다. 너무 빠르고 강한 타격이었고, 갑작스러워서 늙은 남자는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타격으로 인한 통증이 양쪽 뺨과 턱, 가슴에서 폭탄처럼 터지자 본능처럼 벌떡 일어나 여학생을 공격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날렵했고, 유연했으며, 부드러웠다. 그의 손과 발은 마치 춤을 추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늙은 남자는 온몸에 타격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늙은 남자는 자기가 이렇게 비참하게 처맞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극기가 찢어졌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19금 장화홍련
    19금 장화홍련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버지라는 새끼는 내가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고, 계모라는 쌍년은 나를 죽이려고 벌써 몇 번이나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겨우 살아남았어. 나를 죽이면 동생 홍련도 죽일 게 뻔하지. 이제, 저 쌍년과 그 아들 새끼를 죽일 거야. 계모년은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을 해서 애까지 낳았다고 음해했지. 쥐를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그걸 내가 낳은 아이라고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집안 망신을 시킨 나를 죽여야 한다고. 씨발년. 내가 순순히 당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동안 그렇게 당하면서도 참았던건, 홍련이 때문이었어. 불쌍한 홍련이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이 없거든. 계모년이 데려온 애새끼 장쇠라는 놈은 더럽게 못 생긴 데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새끼로, 제 애미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따르는 놈이야. 그 새끼가 나를 강간하려고 했었고, 죽이려는 시도도 했지만, 다행히 옆집 할머니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 공포에 떨면서도 관아에 고발할 수 없었던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지. 그때부터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은가락지를 국에 넣어서 색깔이 변하는지 확인하고 먹지. 계모년에게는 애새끼가 셋인데, 모두 사내 새끼들이야.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이미 장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뒤로 둘을 낳았는데, 홍련이보다 어린 애들이지. 그 애새끼들에게는 안됐지만, 계모년은 이제 더 이상 밥을 처먹지 못할 거야. 나는 절대 그 쌍년을 용서할 수 없거든. 우리 엄마, 홍련이 낳고 죽은 우리 엄마가 홍련이를 낳을 때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달랐어. 엄마와 계모년인 허씨는 어려서 동무였다고 하더군.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를 질투하고, 시샘했는데, 그건 외모를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우리 엄마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대. 우리 엄마는 외모도 예쁘고, 몸가짐도 반듯하고, 바느질도 잘 하고, 음식도 잘 만드는 '양가집 규수'였던데 반해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남자들하고 어울려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던 년이라더군. 엄마가 결혼하고 나를 낳고, 3년 뒤에 홍련을 낳았을 때, 친정엄마가 없던 우리 엄마를 돌봐주겠다고 했던 게 허씨년이라는 거야. 감이 오지. 그 쌍년이 우리 엄마를 살해한 거야. 미역국에 독을 넣었을 수도 있고, 목을 졸라서 죽였을 수도 있겠지. 이 사실을 알려준 건 옆집 할머니였어. 할머니는 항상 우리 자매를 지켜보고 있었지. 나는 어려서 그 할머니가 조금 이상했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 내가 말귀를 알아 들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진실을 말해 주신 거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어. 이 비밀을 알기 전에도 나는 늘 생명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허씨년하고 그 아들놈이 우리 자매를 죽일 거라는 느낌말이야. 우리 자매를 죽여야만 아버지 재산을 전부 그것들이 차지하지 않겠어. 나는 홍련이와 함께 낮에는 거의 산에 가서 살았어. 집에 있으면 위험했기 때문이지. 산에 간 이유는 위험으로부터 도피할 목적도 있었지만, 홍련이와 함께 체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어. 우리는 산을 오르고, 무거운 바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스스로 훈련을 했어.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어지간한 남자들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근육과 체력이 단단해졌지. 늘 풍성한 치마를 입고, 몸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지. 어제, 허씨년이 쥐의 껍질을 벗겨서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버지는 나를 방에 가뒀어. 아마도 허씨년은 나를 그냥두지 않을 거야. 장쇠 새끼를 시켜서 나를 죽이려 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지. 그 쌍년놈들을 내가 먼저 본때를 보여주겠어. 헛간에는 시퍼렇게 잘 벼려둔 낫도 있고, 장롱에 숨겨둔 작은 손도끼도 있으니까. 이제 남자 옷으로 변복만 하면 돼. 엄마를 죽인 허씨년은 산 채로 팔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처넣고, 장쇠 새끼는 눈깔을 빼고,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릴 거야. 나와 홍련이를 건드리는 년놈은 누구를 막론하고 제 명에 죽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저 뒷산 우물 속에 처박힌 년놈이 몇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말이야.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꽁뜨-감옥에서 부친 편지
    꽁뜨-감옥에서 부친 편지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아들 시형 보아라 나는 이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하루 세 끼 잘 먹고, 성경도 날마다 읽으며 우리 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여기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성경 뿐이다. 생각할수록, 내가 주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지 않았다면 이 환란을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너도 교회 열심히 나가고, 성경도 매일 빼놓지 말고 꼭 읽기 바란다. 나는 이제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환란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오늘 세속의 법은 내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130억원과 15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내가 죄 없는 순진한 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70년 평생은 정직과 청렴의 세월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늘 순결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서울시장이었을 때는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나라를 하나님께 봉헌했다. 하나님의 세계를 이 땅에서 이룰 수만 있다면, 서울이든, 한국이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바칠 것이다. 내가 이 안에 있는 동안 어머니 잘 모시고, 가족들 두루 잘 돌보고, 너도 이제 가장으로서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란다. -동부구치소에서 애비가 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는 잘 있소. 나보다 당신이 더 고생이 많은 줄 잘 압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 하나님의 품안에서 신심을 다해 영적 부부로 거듭났으니 그 어찌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옥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오. 옛날 독립투사들의 아내가 드렇듯, 정의로운 길에는 늘 환란과 핍박이 가로 막고 있을 뿐이오. 당신과 내가 한평생 살면서 정직과 청렴으로 외길을 걸었지만, 세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구려. 예수님도 사막을 40일이나 헤매며 진리를 구했듯, 우리도 이 고난의 시간을 주 하나님이 주신 영광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는 값진 기회라 생각하고, 꿋꿋하게 견뎌 나갑시다. 나 없는 동안 당신이 집안의 가솔들 잘 돌보고, 무엇보다 당신 건강에 유의해서 머지 않아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지금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는 예수의 심정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내게 주어진 역사의 수난이라고 생각하고, 이 고난이 끝날 때, 우리에게는 더 큰 영광과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소.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당신도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길 바라오.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양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내려주소서. 이 좁은 골방에 갇혀 교도관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으면서 독방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생각나기는 개뿔, 아이 씨발 개좆같네. 아무 죄 없는 나를 15년이나 감옥에 가둬놓겠다는 저 빨갱이 새끼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나서지를 않는 거냐고. 내 덕분에 잘 먹고 살던 새끼들도 언제 봤냐는 듯이 아는 척도 안 하고, 배신 때리는 더러운 새끼들, 내가 나가면 너희들은 다 죽었어. 시형이, 이 새끼도 미국에서 미국 검찰 조사받는다는데, 옛날에 무성이 사위하고 마약 했다는 소문이 나돌던데, 미국에서 걸리는 거 아냐? 미국에서 탈세하면 국세청에서 탈탈 턴다고, 미국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국세청이라던데, 이제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너를 도와 줄 수도 없잖냐. 마누라는 발가락에다 다이아몬드 반지 끼워서 들어오다 들통나서 씨발, 있는대로 쪽팔리고, 대통령 마누라가 말도 천박하게 해서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당하고, 밀수한다고 뒤에서 욕이나 얻어먹고, 아이 진짜 씨발, 무슨 집구석이 이렇게 더럽고 추접하냐. 아무리 내가 돈이 많고 대통령까지 하면 뭐하냐고. 집안이 천하고 무식한 것들만 넘치는데. 저것들은 밖에서 잘 먹고 잘 살겠지. 씨발, 왜 나만 여기 혼자 들어와서 이 고생인지 진짜 개좆같아서 못 참겠다. 하나님인지 씨발, 그리스인지 그렇게 열심히 믿어도 아무 소용없잖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 좁은 독방이 왠말이냐고. 그 좋아하는 보신탕도 못 먹고, 아랫 것들에게 욕하면서 재떨이도 못 던지고, 테니스도 못 치고, 예쁜 여자가 있는 사우나도 못 가고. 아, 진짜 죽겠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노인의 날
    노인의 날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하다 오늘이 ’노인의 날‘인 걸 알았다. ’노인의 날‘이지만 특별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인들이 각양각색의 옷과 장신구를 하고 거리를 행진한다든가, 지역별로 노인이 주인되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를 연다든가 하는 행사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노인의 날‘을 제정했겠으나, 실속도, 형식도 보이지 않는 이런 날을 왜 제정했는지 의아하다. 한국도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노인 인구가 청년, 어린이 인구보다 더 많아지는 역피라미드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노인의 질적 구성이다. 이렇게 말하면 듣는 노인들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노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노인의 정치, 이념적 성향의 분류는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동하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노인은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분단, 군사쿠데타를 모두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세대다. 아직 노인이라고 말하기 이른 내 세대(50대)만 해도 저 모든 경험을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군사쿠데타를 두 개나 겪었고, 어린 시절을 독재사회에서 자랐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와 함께 병영문화, 일본 제국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격심한 남녀차별과 가부장의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우리 세대의 남성들도 무지와 미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하물려 우리 부모 세대인 지금의 노인들을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인 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비록 간접 경험일지라도 다양한 정보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노인 세대가 ’꼰대‘라고 멸칭을 당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이다. 즉, 스스로의 동굴 속에 갇혀 바깥에서 비추는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미개인인 것이다. 노인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도 분명 있다. 내 주위에도 얼마 전 돌아가신 어르신은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셨는데,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일상에서는 인자하고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분이셨다. 우리 뒷집 사시는 최교수님도 보수적이지만 마음이 열려 있고, 늘 대화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실수한 것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멋진 분이시다. 나는 지역의 일을 하면서 노인들을 자주 만나는데, 내가 만나는 노인들은 보수적이기는 해도 젊은 사람과 말이 통하는, 생각이 유연한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소위 ’태극기 부대‘의 주류를 이루는 노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정치적 확신에서 오는 자발적 행동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고립되어 마땅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기에 유일하게 받아주는 곳이 태극기 부대여서 그런지 궁금하다. 노인이 된다는 건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늙어가고 결국 죽지만, 몸은 비록 늙어가도 정신은 늘 청년처럼 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되면 삶의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도 젊어서부터 그런 삶을 지향한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일 뿐, 배우지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노인은 젊었을 때 쓰레기였던 인간이 다만 늙은 쓰레기가 될 뿐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 무지하고, 가난한 노인들은 정부가 보살피고 돌봐야 할 대상이다. 노인은 젊어서 열심히 살았고, 그들의 노동이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인이 벼슬은 아니다. 지하철도 무료, 노약자석도 지정, 거의 모든 공공 시설의 입장료도 무료로 노인을 우대하는 정책은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런 무료 정책을 좋아하겠지만, 올바른 생각을 하는 노인이라면, 자신이 누리는 그 무료의 혜택이 자식, 손자 세대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자신의 특혜를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옳은 태도다. 정부는 노인에게 생활비도 안 되는 연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지원하면서, 노인들이 지하철 요금을 비롯해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하던 시설에 대해 정당하게 할인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이 되어서 자존심과 자부심조차 내팽개치고 무조건 노인이니까 무료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노인 세대가 매우 고생을 많이 한 세대니까, 이제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노인 세대에게 고생을 떠맡기거나 떠넘기지 않았다. 노인들이 살아온 세상이 그랬던 것 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극심한 실업, 취업 문제에 대해 노인들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노인 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세대간 갈등은 더 격렬해질 것이고, 노인들이 존경받을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오히려 지금 노인은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고 경멸당하고,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태극기 부대‘의 노인들 아니던가. 노인이 앞장서서 양보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젊은 세대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취급을 당하는 것은 필연이다. 내가 속한 세대도 머지 않아 노인 세대에 편입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 불과 십여년 남았다. 우리가 노인이 되면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임산부에게 쌍욕을 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패륜을 저지르는 그런 천박하고 양아치 같은 늙은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문화 생활을 좀 더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고,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뒷집 최교수님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혼자서 어린이 놀이터에 나가 잡초를 뽑는 노인이 되고 싶다. 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하게 일상의 평안함을 만들어 가는 사람인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소확행'이 불편한 까닭
    '소확행'이 불편한 까닭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8포 세대에게 미래의 거창한 계획은 불가능한 꿈이기에 차라리 그런 꿈조차 무모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상의 작고 사사로운 것들에서 행복을 찾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조물주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건물주'가 초등학생의 꿈이 되어버린 세상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자본의 확장'에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한 질주의 레이스에 뛰어들게 만든다. 그 가운데 99.9%가 도태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뛰어든다.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는 사회 구조가 원인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자의 반, 타의 반-구조적 모순이 더 크다고 보는 나는 타의의 비중이 훨씬 높다고 보지만, 경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이 구조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죽음의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다. '소확행'은 두 가지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모순을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착취 구조를 모른 채,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하고 자본의 노예로 근근히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경우가 하나이고, 그런 행위 자체가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둘은 하나의 행동에서 발발하는 중의적 결과로 드러나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자본의 착취구조에서 가장 아래 속하는 피착취계급이며, 자본이 쉽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며, 자본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노예가 되는 어리석은 시민의 모습이다. '소확행'은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개인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사회적 계층구조가 너무 높아서 한 단계를 뛰어오르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고, 도약이 불가능하며, 그런 도약과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가 그러는 걸까. 누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걸까. 마치 '소확행'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이라고 치장하고 미화하는 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말에 쉽게 속는다.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선민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본의 착취구조가 엄연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분명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는 노예 상태를 무지해서 모르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발적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마치 발목에 감겨 있는 쇠사슬에 광을 내듯이 '소확행'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를 착취하고, 돈과 시간으로 옭아매고,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은 그러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근사한 레스토랑과 명품 매장과 따끈한 신제품과 맛집과 거대한 쇼핑몰과 예쁜 인테리어와 기능성 화장품과 유명 메이커와 브랜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소유하고, 소비하고픈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자본은 '돈'과 '시간'으로 통제한다. 원하는 것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개인의 욕망과 욕구를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피착취계급(90%의 노동자, 학생, 청년, 서민)은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람쥐 체바퀴 돌아가듯 한 자리만 맴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무한 경쟁이지만, 이제는 그런 경쟁에서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한다. 이런 행동은 논리적 깨달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경쟁을 멈춘 사람들은 최소한의 조건으로 살아가야 하므로 생존이 어렵지만, 무한 경쟁을 하다 죽으나, 가난하되 마음 편하게 살다 죽으나 결국 마찬가지 결과에 이른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 이것은 자본에게 위기의 순간이다. '소확행'은 마치 새로운 트렌드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청년 세대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자포자기 삶의 형식이다. 물질소비의 수준이 절대 비교에서 과거(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 온 청년 세대는 자본의 억압과 통제에 맞서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더욱 거세게 자본과 맞붙어 깨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균열이 커지면서 상대적 빈부의 체감은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지만, 절대 빈곤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근근히 먹고 살 수는 있으나, 자신들이 지하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빠져나올 수 없는 삶, 깊은 우물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삶을 떠올리면, 죽음 이외의 다른 삶은 오로지 고통 뿐이다.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하고, 현실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소확행'이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면, 그 사회는 무엇이든 꿈꾸고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지금의 현실은 자본의 억압과 착취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청년 세대의 자학적 반어법이 '소확행'이라는 걸로 이해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1 추석을 앞두고 형제같이 지내는 동무의 부탁으로 숙주나물 공장에서 일했다. 명절(추석, 설) 앞이면 늘 많은 물량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단 사흘만 일하기 때문에 일손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점도 있을 듯 하다. 첫 날, 아침에 두 동무를 만나 개군면에 있는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양평에서 약 30분 정도 달려 이천의 어느 한적한 마을 외곽에 자리잡은 숙주나물 공장에 도착했다. 판넬로 만든, 근처의 여느 공장들과 똑같이 생긴 푸른지붕의 공장은 그리 크지 않았고, 콘크리트가 깔린 마당은 깨끗했다. 숙주나물 공장의 사장이 동무의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장화로 갈아 신고, 장갑을 낀 다음-작업복을 갈아 입거나 하지 않고-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한 일은, 박스로 포장된 숙주나물을 공장 바깥에 쌓았다가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이었고, 이 일이 끝자자 공장 안으로 들어가 각자 주어진 일을 했는데, 나는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거의 대부분 숙주나물을 큰 통에 싣는 작업을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숙주나물 공장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공장 내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한 곳은 숙주나물이 자라는 공간이다. 가운데 작업 공간의 양쪽이 모두 숙주나물이 자라는 창고 같은 공간인데, 왼쪽에 두 곳, 오른쪽에 한 곳이 있고, 한 곳의 넓이는 약 50평 정도 되어 보였다. 설날 전에는 모든 공간에서 숙주가 자란다고 하는데, 추석 때는 두 곳에서만 숙주가 자라고 있었고, 예전보다 물량이 줄었다고 한다. 숙주는 녹두로 만든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녹두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 녹두를 먼저 살균 소독한 다음 배양하는데, 바닥에 놓인 녹두가 콩나물처럼 자라기 시작하면, 계속 위로 솟아올라 수 십 층의 두께로 쌓인다고 한다. 숙주가 자라는 공간은 어둡고, 사람 머리 위의 높이에서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장치가 되어 있어, 계속 물을 뿌려주기 때문에 숙주는 밤낮으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자란 숙주나물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밖으로 가져오면, 스테인레스로 만든 수조에 넣는다. 숙주나물을 가공하는 기계 설비는 매우 간단하게 되어 있다. 이 공장에서는 ㄱ자 모양으로 꺾인 기계 설비였는데, 이와 비슷한 콩나물 공장에 가보니, 더 간단한 일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숙주나물을 물 속에 담가 녹두 껍질을 제거하는데, 이때 계속 많은 물이 수조로 들어간다. 즉 지하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수조에서 숙주를 풀어헤치면 녹두 껍질이 먼저 가라앉고, 풀어진 녹두는 두 개의 철망을 지나면서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물기를 털어내는 바이브레이터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일정한 중량이 되면 비닐 봉투에 담기는데, 나는 바로 이곳, 비닐 봉투에 담기는 곳 옆에 서서 숙주 나물이 담긴 비닐 봉투를 다시 옆의 큰 통에 담아 놓는 일을 했다. 중량대로 담긴 숙주나물 비닐 봉투는 박스 포장을 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박스에 담긴 다음 곧바로 납품을 하게 된다. 숙주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은 상품을 '찍어 내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숙주 나물이 농산물(1차 상품)이긴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순간, 더 이상 '1차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닌, 대량 생산되는 '2차 상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숙주 나물을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은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곳이다. 이곳은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물량표가 붙어 있고, 그 물량에 따라 일정한 용량-1, 2, 3.5, 4, 5, 6, 8, 10kg-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이다. 용량이 작은 것은 약 3초마다 하나씩 상품이 나오고, 용량이 커도 15초면 하나의 상품이 나온다. 즉,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숙주 나물이 봉투에 담겨 나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 약 9시간 정도 꾸준히 나온다. 모든 과정은 지극히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어서 머리를 쓸 이유도, 필요도 없다. 1kg짜리 숙주 나물 100개, 3.5kg짜리 숙주 나물 50개, 10kg짜리 숙주 나물 80개... 무게는 자주 바뀌고, 그것을 세팅하고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을 체구가 작은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맡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산된 다양한 비닐봉투를 커다란 통에 담는 일을 했는데, 나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통에 담는 것도 몸을 빠르게 놀려야 했다. 통이 가득 차면 박스에 담는 곳에서 통을 가져간다. 비닐 봉투를 박스에 담는 작업은 베트남 남성 노동자가 맡아서 했는데, 박스를 접는 손이 매우 빨랐다. 박스 작업은 밴딩 기계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박스를 접고 비닐 봉투를 넣은 다음 곧바로 밴딩 기계에서 밴딩을 한 다음 수동 컨베어벨트 위로 밀어 놓으면 박스를 쌓는 사람들이 출입구 쪽에 박스를 쌓아두게 된다. 박스 작업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봉투에 넣는 작업이 박스 작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업 과정에서 조금씩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개입해 이러저러한 일들을 끊임없이 한다. 공장 청소도 매우 중요한데, 식품을 다루는 공장이라서 깨끗하긴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숙주 나물의 잔해와 박스, 포장끈 등 지저분한 것들이 생긴다. 작업하는 중간 중간, 이런 쓰레기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공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힘들다기 보다는 무엇보다 단순 반복의 지루함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집에 있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니, 한 시간, 아니 십 분이 지나가는 것도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공장에서는 일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냈다.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일을 시작하고, 11시 조금 지나면 간식 시간을 주었다. 빵, 토스트, 음료수, 과일 등이 매일 조금씩 바뀌면서 나왔고, 간식과 매 끼니 식사는 사장의 부인이 직접 만들어 주었다. 간식을 먹고 나서 점심은 오후 2시에 먹었다. 일의 성격을 보면, 이런 방식의 시간 배치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너무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노동자들이 몹시 지루하게 시간을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3 이주 노동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모두 네 명. 한국 노동자는 한 명. 현장에서 고정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섯 명이고, 그외 시간에 관계 없이 나타나서 일하는 사람이 두어 명 있었고, 상품(박스)을 물류 회사로 실어가는 트럭 기사가 있다. 즉, 생산을 맡은 노동자는 베트남에서 온 젊은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들은 이곳 공장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이 있다고 하는데, 명절처럼 바쁜 날이 아니면 통상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 또는 6시까지 노동한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간간이 들어보면, 이들은 회사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으로 약 12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를 받는 듯 하다. 베트남 노동자의 신분은 '산업연수생'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고, 정부에서 정해 준 월급의 기준이 있는 듯 하다. 월급 120만원이라면, 한국에서 최저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하겠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비용을 감안하면, 이들이 받는 임금 수준이 터무니 없이 낮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절대 임금 기준으로 보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는 낮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는 것은 분명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이주 노동자나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려는 영세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가)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 뛰어 드는 노동자들이 3D 직장을 싫어한다는 언론의 보도나 방송이 자주 나오는데,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정작 자본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노동자라 하더라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 임금 120만원이면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인데,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저임금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한국 노동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이 150만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하루 세 끼의 식사와 잠자리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면, 그 노동시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자본'은 국적이 없다. 따라서 '민족'이나 '인종'과 같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언어'에 의해 그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멕시코 노동자가 미국으로 이동하고,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한국과 일본 등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렇다. 이주 노동자의 활용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서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는 불안한 상황이 조성된다. 4 영세 자본가. 자본가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국적'과 '인종'에 관계 없이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자본가는 자본가들끼리 이윤을 놓고 경쟁한다. 특히 소규모 영세 자본가의 경우, 그들은 안팎으로 압박에 시달린다.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모든 기반 시설을 마련해야 하며, 임금, 복지, 사고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밖으로는 같은 영세 자본가와 경쟁해 시장을 확보, 확대,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고, 최대의 이윤을 위한 적정한 상품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숙주 나물 공장의 예를 들면, 공장을 마련하고,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즉 누구나 '영세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영세 자본가에게 '안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가 크던 작던, 자본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한다. 자본주의가 '이윤'을 토대로, '경쟁'을 매개로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며, '자본가'에게도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은 1%의 자본가는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 것이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1%의 '자본가'들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차 농산물인 숙주 나물을 한 명의 자본가가 생산하는 것이 몹시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농산물이라면 오히려 시골의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산하는 것이 훨씬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텐데, 자본의 힘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생산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영세 자본가'가 더 자주, 더 많이 출현하는 것은 '자본'이 주는 매력이 위험(리스크)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이 공장의 사장도, 자신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이익이 위험보다 크기 때문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장을 운영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정부의 정책, 시장의 변동, 거래처의 상황 등-에 의해 영세 자본가는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창업을 하는 영세 자본가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험을 극복하고 얻는 열매가 더 크고 달콤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5 공장에서 사흘 노동을 하고 나서, 근육통과 두통으로 조금 고생했다. 덕분에 몸무게도 조금 빠졌고,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많이 사용해서 저절로 운동을 했다. 하루 9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고, 단순 반복 작업으로 지루함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끔찍하다. 사람은 기계의 부품이 아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하루 16시간 노동부터 아동노동-심지어 4살짜리까지-과 위험한 노동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이 인간의 존재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단순 반복의 지루한 노동일수록 노동 시간을 짧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하는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하며, 인간의 삶에 기여해야 하며, 인간의 존재를 빛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노동'의 의미이자 가치인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나는 줄곧 주4일 노동과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주5일 노동이 현실인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금은 자본의 위세에 눌려 노동자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임에 틀림 없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주4일 노동,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해야 한다. '노동'의 주체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노동 시간을 일했지만, 한국 사람인 나는, 베트남 노동자보다 약 2배의 임금을 받았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들여다보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두고 아내가 걱정 담긴 얼굴을 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대상은 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다. 즉,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에서 나는 주로 상대방에게 실망 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심리적 태도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다. 그런 태도는 자존감이 낮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 우리집에는 세 마리의 소가 살고 있었다. 1913년의 아버지, 1925년의 어머니, 1961년의 나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실향민 아버지는 전처와 성장한 자식이 셋이나 있었고, 남편과 헤어지면서 두 딸까지 전남편에게 떠맡긴 어머니는 이웃의 소개로 나의 아버지를 만나 살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을 낳았다. 가난했던 늙은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과 맞지 않는 성격과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 걍퍅해진 성정으로 서로를 닥달하고, 비난하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가난은 그 자체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도시빈민의 문제는 빈곤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정서적 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려서 똑같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어도 시골이라는 환경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 생활을 하더라도 시골의 정서가 그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에 늘 절망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내 고향일 수는 없었다. 내가 살던 마포의 철둑 아래 무허가 판잣집은 물에 잠긴 다음 헐렸다.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이런 박탈감은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이어졌다. 도시빈민으로 자란 것은 선택의 여지가 매우 좁은 삶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조영학 형처럼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뛰어난 인물이 되는 분들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래서, 나의 현재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만 자랐다면, 정상적으로 학교 교육을 마쳤다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후회하거나, 과거를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우울과 연민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왜곡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경우, 아이는 심리적, 정서적 왜곡과 결핍이 발생한다. 그런 심리상태는 자신보다 어른에게 잘 보이고 싶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관심을 얻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마츠코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존감, 독립적 사고와 의지가 부족해서 결국 비참한 삶을 살지만,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성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비교적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우리의 삶이라는 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제외하면 껍데기만 남는 것이니, 내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빈곤, 소년노동자, 무학이라는 세 가지의 존재 조건은 나의 내면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생산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거의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대부분의 도움은 아내에게서 받았다. 아내는 연인이자, 친구이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이자 스승이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는 지금도 아내에게 빚지고 있다. 단호하지 못한 내 성격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가족에게는 데면데면하면서 남들에게는 호의적인 나의 모순적 태도 때문에 가족이 실망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당연히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마음 쓰지만,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청년기에 읽은 책 가운데 '케네디가의 가정교육'인가 하는 책에서, 중산층 이상의,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는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받을 때, '싫다'라거나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었다. 즉, 상대방의 제안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내용을 읽고나서 내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는데, 그 뒤로는 어디를 가서, 누군가에게 대접받을 일이 있으면 '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등으로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전인격이며, 살아온 환경과 그 사람을 둘러싼 부모, 형제, 자매, 친척,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나이 들수록 언행을 스스로 되돌아 살펴야 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내 인격의 그릇이 작다는 걸 안다. 종지만큼인지, 대접만큼인지 모르지만, 우물 속에서도 파란 하늘은 보인다. 그 보이는 만큼의 하늘이 내게는 세상의 전부겠지만, 더 이상 욕심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 오직 그 정도 아닐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프레임을 주도하라
    프레임을 주도하라 우리의 일상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는 주로 정치 쪽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가들의 말에 대해 비판, 비난하면서도 정치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직간접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대의정치가 이제는 거의 직접정치로 진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온라인으로 정책을 곧바로 발표하고, 공무원과 회의하는 것도 생중계로 내보낸다. 이것은 경기도민에 대한 직접정치에 다름아니다. 미국대통령 트럼프도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발표한다. 이제는 정치가 소수의 정치가들이 주무르는 전유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시민이 국회의원처럼 입법을 할 수는 없으니 한계는 있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개인의 발언은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합해지고 커지게 된다. 한국정치의 수준은 매우 미개한데, 그 미개함의 원인은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맞물려 있다. 해방 이후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친일, 매국노 집단이 권력을 잡은 이후, 군부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한국사회의 현대화를 억압했고, 김영삼,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부르주아 정당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군부독재 집단은 정치를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고, 국가를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국민의 수준이 낮아서 독재세력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의 탐욕을 눈감아 준 것도 한심한 노릇이지만,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비개인적이고, 비민주적인 인식의 틀이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모든 현상을 '이익'과 '손해'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므로 갈등의 요소가 없다. 독재 집단에서 이어온 정당과 정치인이 그렇기 때문에 늘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진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이익'이나 '손해'라는 즉물적 관점을 윤리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수구 집단의 말과 행동은 늘 치졸하고, 탐욕적이며, 즉물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촛불에 반대한 세력, 집단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미래를 가로막는 적폐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옳고, 역사적으로 정당한 판단이다. 그렇기에 수구 반동 집단이나 개인이 반동적, 패륜적 언행을 할 때는 그것을 참지 않고 가차없이 비판, 비난한다. 이때, 수구 반동 집단(개인)과 싸우는 진보 정당이나 정치인, 촛불 시민이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수구 반동 집단(개인)의 언행은 당연히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인식이나 가치관, 세계관이 퇴행적이고, 반동이며,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고, 촛불 시민이 이룩한 진보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구 반동 집단(개인)이 말하는 것을 반박하거나 비판, 비난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 수구 반동 집단(개인)의 언행은 반박하거나 비판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다. 예를 들어 자유당 홍준표나 김성태, 김무성 같은 대가리급의 말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그들의 말은 논리가 없기 때문에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힘만 뺄 뿐이다. 오히려 야비하고 악의적인 수구 반동 집단의 언행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 좋다. 비판이든 비난이든 상대방의 언어를 다시 말하는 것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는 가져온다. 김성태가 출산정려 정책으로 1억원을 준다고 말할 때, 그것은 두 가지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자유당이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선심성 발언을 통해 정당 홍보와 함께 지지율을 올리려는 것이고, 여당에 대해 정책의 우월성을 드러내 수구언론에게 스피커를 만들어 주려는 의도다. 둘째는 정부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를 만드는 것이고, 만에 하나, 정부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면 재정적으로 파산하게 되므로 정부의 무능과 정책 실패를 비난하기 위한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성태가 주장하는 내용을 비판, 비난하려면 김성태의 주장이 황당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김성태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악랄하고 야비한 계략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언어나 주장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과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적을 이기려면 적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우아함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인가
    우아함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인가 이 문장이 뜬금없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우아하다'와 '부르주아'가 동시에 떠올랐다는 건, 내 잠재의식 속에 부르주아의 세계는 우아하다고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봉건사회를 뒤엎고 자본주의 사회를 열어재낀 시대의 선구자였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이자 지배계급이다. 부르주아 내부에 자본가가 있으며, 자본가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에 속한다. 봉건 왕조를 폐기할 때의 부르주아는 진보적 집단이었으나, 자신이 사회의 주인, 지배계급으로 등극한 이후로는 급격히 보수화되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나온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경제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잉여 생산물을 이윤으로 만드는 구조적 기술에서 나온다. 즉,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노동자 계급의 피로 그린 명작인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우아함'이 진정한 '우아함'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해야 한다. 중세에도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 가문처럼, 금융과 제조업으로 돈을 번 귀족이 문화, 예술 분야에 집중 투자해 중세에서 르네상스의 번영을 일으킨 역할을 했던 경우도 있지만, 계급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서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귀족들이 만든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을 발전시킨 것이 노예와 농노를 착취해서 그 잉여의 부로 만든 것임을 알게 되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노예, 농노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착취한 부르주아가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몹시 회의적이다. 과거의 계급 시대에 노예, 농노를 지배했던 귀족의 문화가 기록되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 다수였던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더 널리, 더 오래 전통적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계급, 민중의 문화와 예술의 생명력이 훨씬 오래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중세에 주로 귀족을 위해 만들었던 음악을 현대에서는 '클래식'이라는 장르로 듣고 있다. 어느 지방이든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민중에게는 일과 놀이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와 음악과 춤이 있다. 귀족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작곡가, 연주가들 역시 그들의 출신은 노동자, 농민, 장인의 집안이었기에 음악적 영감은 민중의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귀족과 부르주아의 우아함이란, 물질 문명의 발전과 뗄 수 없다. 지배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화려한 의상, 장신구, 거대한 건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의례 등을 만들었다. 솜씨가 좋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고, 조각상을 만들며, 권력자 자신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시를 지어 낭송하도록 했다. 이런 행위의 근간에는 권력자와 왕족, 귀족, 부르주아들이 평민, 서민, 농노, 노예 즉 피지배계급과 차별화 하고, 뚜렷하게 구분 짓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런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이 피지배계급의 야만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은 우아하고 고귀하다는 자기만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중세까지는 귀족, 지배계급은 적어도 자기가 속한 집단, 지배계급의 우월함과 차별화를 위해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고급지고 세련한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것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한 결과였다 해도.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지배계급인 자신들과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과의 차별성, 차이,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화, 예술적인 투자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본(가)은 초기 자본의 축적 시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의 확대에 집중했다. 그 결과는 어린이 노동(심지어 4살짜리도 탄광에서 일했다), 여성노동은 물론 하루 16시간-18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18세기, 19세기 초반의 노동자 평균수명은 30세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일 때, 100달러짜리 지폐에 담배를 말아 피웠다. 겨우 한두 명의 자본가가 자신이 번 돈으로 미술품과 예술작품을 구입해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거나 정부에 기증해 미술관, 박물관을 설립하도록 도운 경우가 있다. 그것은 중세의 귀족들이 예술가들에게 직접 창작을 하도록 지원한 것과는 또 다른 경우이며, 그리 훌륭한 방식도 아니었다. '우아함'이 단지 생활 방식, 양식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금식기, 은식기에 노동자나 민중은 평생 한번 구경도 못한 식재료로 음식을 먹고, 최고급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넓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수십억 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전용 제트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이 '우아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본가는 가죽장갑을 끼고, 야구방망이로 돈없고 힘없는 노동자를 구타하고, 어떤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하며, 괴성을 지르고, 컵에 담긴 물을 끼얹기도 한다. 자본가나 부르주아의 인격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즉,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도 고매하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평균의 확률에 따라, 인간의 일정 비율로 사악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본가에게도 인간의 평균 비율에 맞는 사악한 인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돈과 권력을 갖게 되면, 그 사회적 힘을 휘두르게 된다. 자본과 권력은 개인에게 고유한 것이 결코 아님에도, 마치 돈과 권력과 자신(개인)을 동일하게 여기는 착각을 한다. 그것이 모든 권력적 비극의 근원이다. '우아함'은 오히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노동자와 민중에게서 찾아보기 쉽다. 그들은 대부분 천박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야비하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많다. 그럼에도 민중의 문화와 예술이 오랜 시간을 이어오고, 민중의 예술이 세련하게 다듬어지며 오늘날 전통문화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보면, 개개인의 천박함과 야비함, 폭력성보다 집단의 지성이 큰 줄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민족의 역사, 문화, 예술이든 그것을 만들고, 이어오는 것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 노동자, 민중이었다. 음악, 춤, 노래, 그림, 공예, 도자기, 목공, 건축 등 모든 분야를 살펴보면, 그것을 있게 한 것은 결코 귀족이나 왕족이나 지배계급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만 봐도 고려, 신라, 백제, 조선을 이어오며 만들고 다듬어 이어지는 전통은 매우 우아하고 단아하며 품격이 있다. '우아함'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 빼앗은 잉여물로 자신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지 몰라도, 면면히 이어오는 정신의 전통을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민중은 지배계급에게 무수히 빼앗기면서도 자신들의 정신을 이어오는 문화, 예술의 전통을 만들고, 다듬으며 발전시켰다. 진정한 우아함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음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지만, 나는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이 짧고,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고, 알고 있는 것 조차도 올바로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리석음'이 지식의 천박함, 가치관과 세계관의 부재, 자신의 존재에 관한 인식의 부조화, 알고 있는 객관적 지식, 사실을 실행하지 못하는(않는) 의지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어리석음은 기존의 학교 교육이나 지식의 많고 적음과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인다. 어리석다의 반대 개념은 슬기롭다, 지혜롭다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단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은 개인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각과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슬기롭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고, 주위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과 문제에 관해 그 현상이나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유형이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이렇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일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무지와 어리석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무지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은 대부분 무지하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어리석지 않은 것은 아니다. 머리에 든 게 많은 먹물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는 경우, 대개는 어리석음으로 드러난다. 지식인이 어리석은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닌, 탐욕과 이기심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지식인은 방향을 잘못 잡아서 자신이 가는 길이 어리석음의 길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다. 어리석은 자들이 모두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이다. 흉악범을 포함한 범죄자들은 저마다 동기가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만, 어리석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해도, 어리석은 자들은 슬기로운 사람들과 다른 모습-비상식, 비도덕, 비윤리적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드라진다. 어리석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으며,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이용당한다. 물론 슬기로운 사람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속지 않는다. 슬기로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마치 낙인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슬기로운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돈을 뜯어낸다. 많은 경우, 어리석거나 슬기로운 것과 관련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돈에 의해 노예처럼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바꾸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런 매카니즘을 이용해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그것은 철저히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 혈연, 지연, 학연만을 위해 추구하며, 돈과 권력을 향한 과정에서 방해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한다. 슬기로운, 지혜로운 사람이 모두 선량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악한은 아니다. 선량한 마음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슬기로운 사람 가운데도 악하거나 욕망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맹인이 어느 날, 망막 세포가 살아나 눈을 뜨고 사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귀가 들리지 않던 사람이 수술을 받고 보청기의 도움으로 세상의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배움과 경험을 통해 어리석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와 시간은 있지만,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므로, 미신, 종교와 같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만든 덫에 쉽게 걸려든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고,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역사는 느리게 나아지거나 빠르게 후퇴하기도 한다. 다행히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슬기로운 사람들-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그나마 든든한 기둥을 받치고 있지만, 그외의 분야에서는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돈과 권력을 목적으로 날뛰고 있어 슬기로운 사람들을 절망케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평범한 일상
    평범한 일상 오늘 전기 공사를 했다. 며칠 전, 거실과 서재의 천정에 크랙이 있던 곳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방수공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던 드릴이 전기선을 건드린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다행히 2층 전등 차단기만 떨어지고 있어서 조금 불편해도 며칠 참으며 지냈다. 어딘가에서 합선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기공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귀찮아서 하기 싫은 일이다. 양평에 있는 전기업체 여러 곳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올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알고 지내는 건축업자이자 같은 주민자치위원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자기가 아는 전기업자를 소개해 주겠노라고 했다. 처음 통화할 때 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오전에 집에 도착한 사람은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였다. 당시 분교였던 학교에 입학생은 여섯 명이었고, 세 명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전교생이 스물여섯 명이던 학교에 여섯 명의 신입생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고, 학교는 물론 마을 주민 모두가 기뻐했다. 쉬울 것 같던 전기공사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거실에서 합선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세 군데나 천정을 뚫었지만 합선이 일어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서재 입구의 등을 떼어내고 천정을 뚫어 확인하고서야 서재 쪽에서 합선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문제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서재를 제외한 2층 전체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공사는 여기서 일단 마무리하고, 둘이 가까운 식당으로 점심을 먹고 와서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석고보드로 된 천정을 뚫으면서 바닥은 석고보드 가루와 부스러기로 온통 지저분했다. 빗자루로 쓸어담고, 물걸레 청소기로 바닥을 닦은 다음,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러 갔다. 샤워를 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관해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무사, 무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일까. 곰곰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누군가 삶의 과정을 '평범'과 '비평범'으로 구분한 것은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한 부박한 인식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시간의 비늘들은 매순간 반짝거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때로는 절망, 슬픔, 우울, 고통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고, 기쁨, 행복, 즐거움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을 뿐이다. 존 덴버의 노래도 있듯이 '어떤 날은 돌덩이일 때도, 어떤 날은 다이아몬드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일상'은 나날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익숙한 일들의 연속을 말하는 거지만, 사람들은 매일 다르게 살아간다. 다를 게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일상도 매일이 다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늘 새롭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늘 같은 태양이어도, 아침에 뜨는 해가 늘 새롭듯이, 우리의 삶도 매일이 같은 것처럼 살아가지만, 사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힘겨운 노동으로 지친 노동자의 하루는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또 다시 힘든 노동의 하루가 되겠지만, 그 노동의 시간 속에서 노동자는 웃고, 울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불행하고, 절망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재벌이라해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누구의 삶이든 사회적으로 놓인 처지와 계급의 위치와 경제적 부의 많고 적음이 다를 뿐, 희노애락을 느끼는 순간은 모두에게 있다. 자본주의 체제처럼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인간의 행, 불행을 단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노동자와 빈민이 체제의 근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일상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의 삶은 집단과 체제, 구조 속에서 존재가 많은 부분 강제되고,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자식은 자본가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가 된다는 현실은, 개인이 무언가 되고자 하는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인류는 집단 생활을 시작하고 정착하면서부터, 정확히는 농업, 목축업 등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부터 계급 사회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한계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자체로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지배 권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지배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만들고, 폭력기구(군대, 경찰 등)를 운용하며, 언론을 통해 계급의 이익을 세뇌시킨다.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의 그런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 자체로도 이미 '평범한 일상'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이것이 '개인'의 단위로 내려가면 투사에서 반동까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경제적 부의 축적만을 두고 만족과 불만족을 표현한다면 재벌은 모두 만족해야 하겠지만, 그들에게도 불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사람은 경제적 부, 경력, 경험, 사회적 지위, 자신의 능력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도 등의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이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자기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자아도취에 빠졌거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비평범성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구조 속에 놓은 한계가 뚜렷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사는 사람도 있고, 날마다 조금씩 다른, 발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 삶은 중단되고, 소멸되겠지만 살아서 활동하는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심청전
    19금 심청전 아버지라고 믿은 내가 미친년이지. 어려서 동냥젖으로 나를 키웠다고, 맹인으로 살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어린 딸자식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아버지라는 인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에 자기 자랑을 늘어 놓으면서 부모 은혜를 갚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굳은살이 앉도록 떠드는 꼴을 그때는 몰랐지. 어떤 사기꾼 새끼에게 속아서 쌀 삼백석을 살 만큼의 돈을 뜯기고는 갚을 길이 없으니, 뱃놈들에게 나를 팔아 넘긴 아버지라는 인간을 대체 어째야 한단 말이냐. 사정 모르는 이웃들은 아버지 눈 뜨게 한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었다고 나를 효녀라고 말하지만, 씨발, 효녀는 무슨 개뿔이 효녀냐고. 이제 겨우 열네 살짜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청춘이 아버지 눈 뜨게 한다고 내 목숨 바치는 게 효녀냐고! 쌀 삼백석에 눈을 뜰 리도 없지만, 설령 눈을 뜬다 해도 다 늙은 인간이 자식 목숨값으로 눈을 뜨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좋겠냐고, 씨발. 중국을 오가는 상선에 개끌려가듯, 형장으로 가는 사형수가 뒷걸음질치듯 끌려가니 뱃놈들이 어린 여자라고 추근거리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보시나 하고 가라고 치마 속으로 그 더러운 손을 집어넣질 않나, 썩은내나는 주둥이를 뺨에 대질 않나, 정말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서러운 눈물만 흐르는구나. 깊은 밤, 이제 곧 죽을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갑판에서 선원들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인즉슨, 내 아버지 심학규는 봉사가 아니고, 맹인인 척 행세를 하며 살았다는 것이고, 쌀 삼백석은 도박을 하다 빚을 져서 빚대신 나를 팔아 넘겼다는 것이었다. 봉사가 아니면서도 봉사처럼 살았다면, 어려서 동냥젖을 먹일 때도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젖먹이는 걸 다 봤다는 것이고, 내가 방에서 옷 갈아 입는 것도 다 봤다는 말이 아니냐. 아버지라는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파렴치하고 야비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들리는 말이, 내 친엄마는 나를 낳고 죽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지어낸 말이고 이웃 마을에 사는 뺑덕이라는 여자가 내 친엄마라고? 뺑덕이네가 이미 남편이 있는데, 심학규하고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이가 바로 나라고? 아이고, 씨팔, 이게 왠 말이냐. 정말 구역질나서 못 듣겠네. 내가 그런 인간을 위해서 열 살부터 새벽에 일어나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고, 밥을 얻어와 아버지를 섬겼으니, 내가 미친년이구나. 그렇다면 사기를 당했다는 그 쌀 삼백석이 바로 뺑덕이네하고 같이 살려고 나를 팔아 마련한 돈이고, 자식 팔아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저 심학규하고 뺑덕이 같은 괴물을 부모로 둔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이냐. 이제 더 살고 싶지도 않고, 살아봐야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만 있을 뿐이로구나. 어려서부터 밑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품팔이에 동냥에 하루를 넘기기가 괴롭기 이를데 없었는데, 이제 편안히 저 바다에 빠져 죽으면 물고기 밥이라도 되어 좋은 일을 하겠구나. 세상에 태어나 부모 사랑을 이슬 한 방울만큼도 받지 못하고, 지지리 궁상에 뼈저린 노동으로만 십여년을 살다 가니, 내 인생도 가련타.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춘향전
    19금 춘향전 아이, 씨발. 변사또 새끼가 자꾸 수청들라는 걸 쌩깠더니 칼을 씌워서 감옥에 처박았네. 빈대하고 벼룩이 어찌나 물어뜯던지, 가려워 미치겠네. 오줌이 마려워도 방광이 터질 때까지 참아야 하고, 목물도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해서 냄새나고, 아 짜증나 씨발 진짜. 몽룡이 이 새끼는 출세해서 양반부인으로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한양으로 튀더니 씨발새끼, 일년이 지나도록 꿩궈먹은 소식이고, 향단이 년은 방자 새끼하고 눈이 맞아서 옥바라지는 커녕 애새끼를 가졌다고 배를 뒤뚱거리면서 끙끙대며 자세나 하고...믿을 년놈 하나 없는 신세가 처량하구나. 변사또 씨발놈, 나이는 환갑도 넘은 늙은 꼰대새끼가 밝히기는 더럽고 지저분하게 밝히고 지랄이야. 꼭 쥐새끼처럼 생겨가지고 눈깔은 희번득거리고, 혓바닥은 날름거리고, 목소리를 간사한 새끼가 뇌물로 전라감사 자리를 얻어차더니 본전 뽑으려고 양반, 중인, 상놈 가릴 것 없이 불러다 볼기를 치고 돈을 뜯어내는 꼴이 아무래도 제 명에 죽지는 못하리라. 아는 기생 언니가 변사또 새끼 수청들러 들어갔다가 변태짓만 한다고, 재수 옴붙었다고 하더니, 씨발새끼, 힘도 없는 놈이 예쁜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 변태 쓰레기 인증을 하는구만. 옥에 갇혀 있으니 하루가 길고도 길구나. 보리밥에 짠지로 하루 한 끼를 먹으니 살이 빠져서 좋긴 한데, 빈대피로 난을 친 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고역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지나간 세월을 되새기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괴로운 시간을 잊고자 하지만, 즐거움을 잠깐이고, 괴로웠던 시간은 길고도 오래구나. 몽룡이를 처음 만날 때의 설레이던 마음, 둘이 첫날 밤을 보내던 짜릿하고 쾌락으로 몸부림쳤던 밤은 잠깐이고, 몽룡이가 서울간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고 서러웠지만, 공부해서 출세할 몽룡이를 붙들고 내 행복만 추구한다면, 남자의 앞길을 막는 것도 옳지 못한 일이고, 나 자신의 삶도 그것만으로 행복하지는 않을 듯 했다. 몽룡이가 서울 가서 다시는 나를 찾지 않는다 해도, 나는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몽룡이와 동침한 것은 오로지 나의 의지였으므로 그것으로 몽룡이를 원망할 마음은 없다. 이제 날이 밝으면 또 변사또 새끼가 동헌 마당으로 끌고 나가서 옷 위에 물을 뿌리고 주리를 틀거나 볼기를 치겠지. 하얀 모시옷에 물을 끼얹으면 속살이 다 드러나서 벌거벗은 것보다 더 선정적으로 보이는데, 변사또 개새끼는 이런 내 모습을 노골적으로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직 이팔청춘 젊은 여자의 몸이라 피어나는 목련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내 몸은 내가 봐도 탐스럽고 아름다운데, 저 늙은 변태 새끼의 눈에는 얼마나 황홀하게 보일까. 몽룡이도 나에게 첫눈에 홀딱 반한 첫번째가 바로 내 풍만한 몸 때문이었음을 잘 안다. 나 역시 단오 때 그네를 타는 이유가 멋진 선비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걸 숨길 생각은 없다. 단오날이면 청포로 머리를 감고, 저고리도 일부러 짧게 만들어 속살이 언듯 비치도록 입고, 그네를 구를 때마다 속치마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도 의도한 바 있는 것이다. 몽룡이는 그런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 집까지 쫓아왔고, 나도 그에 관한 소문을 이미 들은 터라 싫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몽룡이는 양반의 자제이고, 이미 서울에서 공부하는 명문집안 자식이니 관기의 딸인 나를 보러 올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리라. 늙은 사또 새끼는 내 몸을 탐하고, 멀리 떠난 님은 기약이 없고, 나는 여기 옥에 갇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구나. 여자로 태어나 이렇게 남자 새끼들의 노리개로 수모를 당하다 제 명도 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구나. 여자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세상은 언제나 오려나. 오늘도 달이 휘영하구나.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화성
    화성 뜨겁고 후텁지근하고, 후끈거리는 낮시간이 지나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마치 고양이를 피해 쥐구멍으로 달아나는 생쥐처럼, 날카롭게 박히는 햇살을 피해 집안에서도 그늘진 곳을 골라 낮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었다. 달궈진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를 녹일 듯 후끈거렸고, 한증막에 들어앉은 듯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해야 겨우 뜨거운 하루를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찬물을 머리부터 쏟아붓는 샤워기 아래에서, 이렇게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열기가 식고,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열기가 계속 뿜어져 나와 열대야로 이어지겠지만, 다행히 내가 사는 시골 마을은 마을 주위로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이어서 해가 지면 온도가 낮아졌다. 마침 보름달이 뜨고, 뉴스에서는 오늘 화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로 불과 5천7백만 km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 지구의 둘레가 불과 4만km인걸 보면, 화성까지의 거리는 100배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숫자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화성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름달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작고 동그란 별이 화성이라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화성이 오늘은 눈으로 봐도 크게 보일만큼 잘 보였다. 무려 5천7백만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화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낮에 40도 가까운 열기에 비하면, 한밤의 시원함은 뜻밖의 선물처럼 반가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이는 보름달 아래 붉게 빛나는 화성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앞이 밝아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이 하얗게 밝았다. 아침인줄 알았으나 해가 뜬 것은 아니었다. 겨우 눈을 떠보니 밝은 빛 아래 낯선 물체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지만 밝은 빛과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인 것만 보였고, 내가 있는 곳이 낯설었다. 낯선 물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반투명 물체로, 나를 떠받치고 어딘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투명한 공의 내부에 갇혀 공중에 떠 있었다. 잠시 뒤, 나를 가둔 투명한 공은 어떤 물체의 입구로 들어갔고, 그곳은 움직이는 물체의 내부같았다. 나는 투명한 공 안에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내부는 마치 젤리처럼 부드러웠다. 투명한 공을 실은 물체 역시 투명해서 바깥과 내부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벽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나는 어두운 공간 속에 있었는데, 바로 아래 지구가 보였다. 내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꿈은 아니었고,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지구는 빠르게 멀어져갔고, 곧이어 달이 크게 보였다. 달 표면의 곰보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달도 곧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이내 작아졌다. 잠시 어둠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했지만 눈앞으로 붉고 커다란 별이 나타났다. 나는 직감으로 그 별이 화성임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왜 화성에 있는지, 어떻게 화성에 도착했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무신론자에, 미신이나 유령 따위도 믿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라고 자부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니 우주 공간에 떠있다는 상황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나를 싣고 떠다니던 비누방울 같은 투명한 공은 붉은 흙과 돌이 있는 땅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쉬고 있었고, 중력도 느끼지 못했다. 붉은 땅을 딛으며 텅 빈 공간을 걸었다. 그곳은 황량한 곳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낮은 언덕의 바위 아래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서 맞닥뜨린 것은 철문이었다. 철문 앞에는 벨이 있고, 벨을 누르자 천정에서 불이 켜지고, 파란 불빛이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스캔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철문이 갈라지듯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화성의 지하는 마치 지구의 어느 아름다운 계곡을 옮겨온 듯 했다. 녹색의 식물과 나무들,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과 협곡이 보였다. 강을 따라 작은 방갈로가 늘어서 있고, 허공에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화성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풍경은 꿈에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이 화성이라고 믿을 수 없었고, 아마 지구의 어디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가워. 내 별에 온 걸 환영해. 나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소년이었다. 그때, 그 깊은 밤, 중미산 도로에 나타났던 바로 그 소년. 나에게 '내 별에서 봐'라고 말하고 사라졌던 소년이었다. 그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있지 않았다. 어떻게 여길... 나는 놀라서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좀 피우고 본드 좀 빨았다고 아버지 새끼가 여기로 보냈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는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다른 별을 다니면서 이상한 놈들을 몇 놈 데려왔지. 자칭 왕이라는 새끼, 지식인이라는 새끼, 알콜중독자 새끼, 자본가 새끼, 늙은 노동자, 지리학자 새끼 등등... 다들 바쁘다는 놈들인데, 알고보면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들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군. 저 새끼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아저씨가 직접 보라구. 소년은 망토를 펄럭이며 앞장 서 걸었다. 방갈로마다 소년이 말한 사람들이 한 명씩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받아 TV도 보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주방에서 직접 밥도 해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겉으로만 보이는 생활이었다. 밤이 되고-지하공간에도 밤과 낮이 교대로 찾아온다-달이 뜨면, 채찍을 들고, 밧줄을 든 거대한 몸집의 악마들이 그들의 방갈로를 찾았다. 왕이라는 자, 지식인, 알콜중독자, 자본가, 지리학자들은 그 악마들에게 강간당했다. 밧줄에 묶인 채 채찍으로 맞으며 거대한 악마에게 강간당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영원히 회개해야 하고,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나는 저런 새끼들이 진짜 역겨워. 권력만 좇는 놈들, 지식 사기꾼 놈들, 자본가 새끼들, 국회의원 새끼들, 판사 새끼들... 저것들에게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줘야 했어. 아저씨도 죄를 지으면 저렇게 될 거야. 나는 속으로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떠올리려 했다.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나도 저들처럼 영원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어떤 아저씨를 만났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더군. 씨발, 아저씨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거든.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먼저 말하는 아저씨는 요즘 보기 드물어.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더군. 좀 병신같았어. 사람들이 오히려 그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하얀 국화꽃을 던지며 울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어. 나는 그 아저씨에게 물었지.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아내라고 하더군. 늙고 병든 어머니도 계시지만,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많이 고생했고,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아내는 동지이자 선배였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자기 아내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저씨는 본 적이 없어서 좀 이상했어. 소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절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아직 그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 아저씨를 좀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 아저씨는 좋은 곳으로 갔어. 내가 있던 B-612 행성에서 가까운 곳인데, 그곳에서는 지구가 잘 보여. 하루 두 번 해가 뜨고, 두 번 해가 지는 별이지. 그 아저씨는 첼로를 잘 켜더군. 첼로 소리에 따라 별이 켜지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어날 거야. 그러니 그 아저씨를 찾지 않아도 돼. 아저씨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그 아저씨를 기쁘게 하는 거야.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소년을 품에 안았다. 알았어. 그 아저씨를 잘 부탁해. 나도 그 아저씨가 살고 있는 별을 늘 바라볼께. 그리고 잊지 않을께. 첼로를 켜는 그 별에서는 별이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고 있다는 걸. 나는 다시 투명한 비눗방울을 타고 지구도 돌아왔다. 보름달 아래 작지만 커다란 화성이 빛나고 있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소년
    소년 몹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체 리듬이 깨지고, 정신이 흐트러지는 상태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더위는 육체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고, 육체 내부에서는 화학적 변화가 발생한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피가 끈적거리며, 피부에서는 분비물이 솟아나온다. 운전을 할 때도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데, 밤에 운전하는 건 더욱 그렇다. 엊그제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어올 일이 있었다. 평일의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나드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마침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이어서 도로에는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유일하게 밝은 빛이었다. 구불거리는 도로는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 멧돼지, 들고양이들이 있어 자칫 로드킬을 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속도를 올릴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은 로드킬을 즐기는 변태가 있었는데, 일부러 동물을 때려죽이지는 않아도 도로에서 동물을 발견하면 피하지 않고 자로 치어죽이는 놈이었다. 동물을 차로 깔아뭉갤 때의 그 느낌, 뼈가 부러지는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피가 튀는 장면을 듣거나 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한다고도 했다. 동물을 치어 죽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새끼라니. 싸이코 변태가 틀림없었다. 운전하면서 그런 싸이코 변태를 떠올리는 건 퍽 기분 더러운 느낌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인간이 떠올랐다. 아마 캄캄한 도로를 달리면서 로드킬을 걱정했기 때문이리라. 중미산 입구-한화콘도 입구-에서 40km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도로 중간에 과속방지턱까지 만들어 놔서 속도를 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작년에 이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외제차를 몰며 레이스를 하던 어떤 병신과 곡예운전을 하며 오토바이를 몰던 애송이가 정면으로 부닥쳐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난 뒤로 의정부 도로관리 사업부에서 과속방지턱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었다. 게다가 이 도로에서 나도 처음 고양이를 자동차 바퀴로 깔아버린 매우 불쾌하고 마음 아픈 기억이 있어서 여기를 지날 때마다 그때의 일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때는 산쪽에서 고양이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나는 차를 멈출 순간도 없이 고양이가 바퀴 아래로 깔리는 걸 몸으로 느끼고 말았다. 고양이는 차에 치었고,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나는 손이 떨리고, 마음이 흐트러져 진정하기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로드킬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중미산의 초입을 지날 때면 더욱 조심하게 된다. 사위는 고요하고, 짙은 어둠 속에서 불과 십여 미터 앞의 자동차 불빛만으로 산길을 오르는데, 상향등을 켜면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동물은 빛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도로에 동물이 있을 때는 상향등 때문에 동물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중미산의 중간쯤에서 도로가 직선으로 뻗은 곳에 이르렀을 때, 앞쪽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빛을 발견했다. 헤드라이트 빛에 반사해 반짝거리는 동물의 안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속도를 더 늦추고 모습이 보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작은 동물이 도로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비상등을 켰다. 사람의 눈은 밤에 안광이 나오지 않는다. 동물의 눈에서만 파랗게 안광이 보인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년 같은 사람은 눈에서 파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지만 체구가 작아서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공포가 뒤통수를 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칼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차는 멈췄고, 불빛에 드러난 작은 체구의 사람은 소년이었다. 눈에서 나오는 안광도 사라졌다. 소년은 조금 어리둥절한 듯 했고, 약간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소년을 조금 더 관찰했다. 낡은 옷을 입고, 오른쪽 손에는 장미꽃을 한 송이 들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약간 내리고 소년에게 물었다. 이 밤중에 너 혼자 여기에 있는 거니? 부모님이나 같이 다니는 사람은 없어? 소년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선뜻 차에서 내릴 용기는 없었다. 주위에 누군가 숨어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납치할 수도 있고, 저 소년은 그저 미끼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이 어디야? 근처에 놀러왔니? 소년이 울지 않는 것도, 어둠 속에서 놀라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평범한 소년이라면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정신이 나갔어야 할텐데 말이다. 소년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드리웠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야 할지 망설였다. 소년을 차에 태워야 하나? 경찰서로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 경찰을 불러야 하나?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건가?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소년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도망가야 하는 건 아닐까. 저 소년이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괴물인지, 귀신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어서 더욱 공포가 커졌다. 소년은 운전석 쪽으로 다가오더니 장미꽃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였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천천히 장미꽃을 잡았다.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별에서 봐. 소년은 차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서 사라졌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혐오 감정의 스펙트럼
    혐오 감정의 스펙트럼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특정 집단을 혐오하게 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그것을 의식할 수도 있고,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보면 '혐오하다'는 '미워하고 꺼리다' 또는 '싫어하고 미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 사람(개인)은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집단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혐오 감정을 그 대상자에게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혐오 감정의 시작은 '나와 다르다'에서 나온다. 이때 '나와 다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말한다. 가치관, 철학,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의 세계관은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되는데, 올바른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회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감정적 혐오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혐오 감정은 다분히 주관적(나와 다름)이고 감정적(기분나쁘다)인 멘탈을 바닥에 깔고 있으므로, 보통의 지식인이라면 이런 낮은 단계의 혐오 감정에 동의하거나 감정이입 하지는 않는다. 혐오 감정은 또한 상대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면, 혐오의 대상자 역시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문제는, 기득권(다수)과 소수자의 사이에 혐오 감정이 발생할 때, 지식인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소위 '태극기부대'라고 하는 극우세력이 있다. 이들은 소수집단이지만 매우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극우들은 세계적으로도 혐오의 대상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확신하는 세계관이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몰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소수이건 다수이건 상관 없이, 그들은 올바르지 못한 역사, 정치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숫자로는 남성과 여성은 지구에서 거의 절반씩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며 여성 개인이든, 사회속 여성이든, 한 가정의 여성이든 차별받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여성은 숫자와 관계 없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한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마초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은 남성에게 끊임없이 혐오대상자가 된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흐름과 동일하며, 폭력의 대상을 약자에게 돌리는 체제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이해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은 가해자이며,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도, 경계도 없으므로 남성 일반은 여성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남성 혐오'는 정당하며,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워마드'와 같은 패륜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접어두자. 여기 게이나 레즈비언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적어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자기 앞에 있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혐오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가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천부의 인권을 가진 인간인 이상, 그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혐오하거나 비웃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성애자가 다수인 세상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그들의 성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삼아 혐오하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으며, 반감을 드러내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고해서, 성소수자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패륜 페미니즘의 행동이 오히려 정당하고 건강한 여성운동을 파괴하는 극우적 행동이라는 것을 지적했지만, 성소수자들이 보여주는 일탈-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골적인 성 묘사-을 보면서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혐오 감정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며, 그들의 성적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벌이는 퀴어 퍼레이드가 보기 싫을 수 있는 것이다. 대낮에 음란한 외모와 행동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성소수자가 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와 주장에 동조, 동의해야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극우 집단의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 개개인의 성향을 들여다보면서 극우 집단의 몰역사, 반사회성을 비난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선량한 사람이 많겠지만, 더러는 사악하고 야비하며 폭력적인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관계 없이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성향의 다양성에 비추어 개인의 호불호를 판단한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 성소수자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그들의 인권은 물론이고-그들이 보여주는 '행위'가 불편한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동성애자 연락처를 적어 놓는 것이나, 화장실 벽에 구멍을 내서 그 구멍을 통해 동성애를 하는 짓이 '당연'하다고 보여지는가 말이다. 보기에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그걸 말하는 것이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이성애자와 성소수자의 차이이고 간극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성소수자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감정도 없다. 그냥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할 뿐이다. 내가 '홍석천'에 대해 갖는 감정이 보통의 남성을 보는 감정과 똑같은 것처럼. 다만 그들이 집단으로 보여주는 특정한 '행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고,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말조차도 '혐오'라고 한다면, 나는 지극히 당연하게 '혐오하는 사람'이 될 용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소수자(그것이 성이든 장애든)'에 대한 배려나 옹호도 '혐오'라고 말한다. 즉, 어떠한 비교도 '혐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인 나는(그리고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해 어떠한 '태도'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자신들이 '소수자'라고 강조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핍박과 억압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옹호하고, 배려하려는 사람들(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 여기서는 이성애자로만 국한하자)이 정작 지지, 배려, 옹호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수자를 차별한다고 하고, 성소수자가 하는 특정 '행위'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혐오'라고 주장할 때, 과연 누가 '소수자'의 입장에 설 것인지 의문이다. 극단적 페미니즘이 오히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극단적 입장은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성애자들로 하여금 경계를 하게 만들고, 심하게는 진짜 성소수자를 '혐오'하게 만든다. 적과 동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천박한 인식으로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군대폭력의 기원
    군대폭력의 기원 한국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다른 어느 나라 군대의 폭력보다 잔혹하고 악랄하다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준전방에서 30개월 군복무를 한 내 경험으로도 군대 폭력은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다. 한국 군대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일본강점기의 일본군대 영향이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 사실이다. 일본군은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인을 군대에 강제로 끌고가서 전쟁에 끌어들였다. 군대에서 조선인은 2등 국민으로 취급받았고, 폭언, 폭력을 휘둘렀다. 해방 후에도 이런 부정적 전통은 이어졌는데, 일본군대의 장교였던 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나서 일본군의 잔재는 고스란히 한국군으로 이어졌다. 일본군대에서 폭언, 폭력을 배운 조선군인들은 해방되고 한국군의 탄생에 깊이 관여했으며, 그들이 군대의 주요한 위치에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남한의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 미국 군정의 복합 요인이 한국 사회와 군대에서 친일파가 판치는 세상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군의 더러운 전통은 일본군대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군대의 폭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군대에서 폭력이 발생한 이유는 당연히 전투와 관계가 깊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투는 소총을 들고 싸워도 매우 원시적이고 미개한 방식이었다. 소총이 발명된 15세기 이후, 소총을 보유한 군대는 칼과 활을 든 적들과 싸워서 높은 승률을 유지했다. 소총의 사거리가 활보다 훨씬 길고,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소총부대는 당시 과학기술이 발달한 유럽의 일부 국가들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보유하고 있었다. 초기 소총은 '전장식'이어서 총알을 총구 쪽으로 넣어야 했다. 한 번에 한 발씩 사격할 수 있었고, 총을 한 번 쏜 다음에는 총열을 닦고, 총알을 넣어 장전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빨라야 20-30초였는데, 이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칼과 활을 가진 적들이 소총 부대를 향해 달려오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총부대는 2열, 3열로 서서, 1열이 총을 쏘고 재장전을 할 때, 2열이 다시 소총을 쏘고 장전을 하고, 3열이 소총을 쏘고 장전할 때 1열이 장전을 마치고 다시 발사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발사 속도의 간격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경험이 적은 나이어린 군인들은 소총을 한 번 발사한 다음 장전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적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을 쏘고,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는데, 코앞까지 달려오는 적을 보면서도 장전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전열을 이탈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렇게 전열에서 이탈하는 군인을 막기 위해 구타가 시작된 것이다. 즉, 군대에서의 구타는 봉건시대의 유물이다. 서양의 군대들이 봉건시대를 벗어나면서 현대 군대에서는 더 이상 병사에 대한 구타가 존재할 이유도 없고, 구타가 범죄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것은 인권의 신장과 함께 민주주의의 기본 인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근대, 봉건, 식민지의 군대 경험에서 벗어날 기회가 없었던 한국군은 일제군대의 경험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의 일본군에 대한 향수가 군대의 구타를 용인하고 존속하도록 했다. 결국 한국군은 지금도 전근대와 봉건, 일제군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과학, 역사, 철학, 예술
    과학, 역사, 철학, 예술 핀란드에서는 학교 교육과목을 모두 없앴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육과 관련해 늘 생각하던 내용을 조금 정리했다. 나는 현재의 학교 교육을 혐오한다. 한국의 학교 교육 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교과서 중심의 학습 내용을 증오한다. 나는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해서 오히려 제도교육의 억압을 덜 받은,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늦게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푸코의 지적처럼, 학교는 감옥과 같다. 근대의 집단시설인 병원, 감옥, 학교는 동일체라는 것을 푸코는 명징하게 증명한 바 있다. 근대(1700년대부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많은 것을 발명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개화하면서 인간의 삶은 옛날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분화하기 시작했다. 계급은 그 전부터 존재했지만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계급의 대립은 날카롭고 격렬하게 변화했다. 자본주의의 착취가 잔혹할 때, 그 속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탄생하고, 이념의 대립과 과학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무기화로 종종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로 농경사회였던 중세 이전의 시대에는 피지배계급, 착취당하는 자들은 문자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식인들이 곧 지배자였고, 문자를 아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무지렁이'들은 땅을 파고, 소, 돼지를 기르고, 물건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을 했다. 그들은 신의 대리인(교황)을 두려워했고, 봉건 영주와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이 아는 세계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기계의 도입과 대량생산, 노동자의 노동이 이윤의 핵심이었다. 노동자들은 배우지 못했고, 글도 몰랐으며, 매우 어리거나, 어리석은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기계를 움직이고, 설명서를 읽고, 작업지시서를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기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도 글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초의 학교는 노동자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결코 자본가의 시혜나 너그러움, 인류애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를 교육시킨 것이고, 공장 노동에 필요한 만큼의 지식만을 가르쳤다. 근대의 계몽주의는 무지와 몽매의 상태에 놓여 있던 민중이 스스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진보적 지식인과 시대의 요구-자본가의 이윤 추구와 과학기술, 이성의 발달-에 의해 폭넓게 확산하게 된다. 자본가에 의한 교육의 시작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진보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도 봉건제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와 자본가의 역할이 혁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파한 바 있듯이,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제도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아 읽고 쓰기가 가능해지면서 사회의 진보가 더 빠르고 넓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의 새로운 주인으로 떠오른 자본가는 구시대의 권력자들이었던 봉건 왕족들과 귀족, 종교집단의 권력자들과 같은 고민에 빠진다. 즉 민중을 억압하고, 그들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이윤을 위한 도구이자 소모품으로 쓰고자 하는 필요를 갖게 되는 것이다. 봉건시대 이전까지의 권력자들은 신정일치를 통해 민중을 어리석은 상태에 가두고, 비교적 수월하게 통제, 억압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에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봉건적 전통에 따라 봉건노예를 부리듯 하루 16시간의 노동과 아동노동, 여성노동이 당연했고, 노동자의 평균 생존연령이 30대를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으로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아동노동은 금지되었으며-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지만-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과잉노동의 시대다. 자본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학교에서, 자본가가 원하는 내용의 교육을 받고, 자본가가 필요한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이었다. 그와 함께 교육의 의미와 외연이 확장되어 갔고, 기초학문과 자연과학의 비중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학교는 정확하게 사회의 요구-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요구-만큼 교육 내용을 구성한다. 학교는 교과 과정도 그렇지만, 학교 자체가 자본주의의 축소판으로 작동한다. 즉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진학하고, 치열한 성적 경쟁을 통해 학교와 직업, 직장의 순위가 결정되도록 만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자본(가)의 일관된 요구이자 필연적 과정이다.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 자체로 감옥이며 자본의 노예를 생산하는 생산 공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자본주의적 요소가 존재하고, 반자본 운동의 영향이 학교의 영역을 확장하고, 자유와 반자본, 학문의 역할을 바로 잡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물고 소수의 영역에서만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는 대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학원이며, 대학은 취업을 위한 입시학원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뿐 아니라 여러 개의 학원을 전전하며 사교육을 받아야만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교육 시장 또한 거대한 자본시장이며, 그 시장에 돈을 빼앗기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이다. 즉, 자신들의 임금에서 많은 부분을 아이의 사교육 비용으로 지출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전혀 필요없는 비용이므로, 한국의 부모는 교육에서 이중 지출을 하는 것이다.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려면 관련 법을 많이 바꾸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자본의 앞잡이들인 입법기관의 국회의원들은 결코 그런 혁명적 과정에 동의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 경쟁과 착취는 자본의 기본이자 필수 요소다. 기득권자-자본가, 부르주아-는 물론 노동자 부모들도 자식이 경쟁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기를 기대한다. 즉, 부모의 욕망이 자본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 서민, 자영업자인 부모들의 의식이 낮은 단계에 있고, 계급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민중의 다수는 어리석다.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빠르게 후퇴할 때도 많은데, 민중, 쁘띠 부르주아들의 의식이 균일하지 않고, 진보적 태도와 보수적 태도가 상황에 따라 바뀌며, 기본적으로 지식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당장 가능하지는 않지만,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어리석은 부모라도 자신들은 물론, 자식들에게 종교를 믿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성인 이전의 청소년, 어린이에게 종교의 물이 들도록 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종교가 득세하는 사회는 무지와 몽매의 단계를 유지하려는 신정일치 사회와 자본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사교육은 물론, 공교육도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문제가 있다면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가 학교나 학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대안학교'가 현재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하지만 나는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또래 친구는 물론 다양한 사람을 사귈 수 있고, 그것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으므로 학교나 학원이 대안이 되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히되, 과학,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이 좋다. 공교육의 교과서는 사회의 규범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지식을 공통적으로, 표준화하여 가르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조직에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국가주의, 애국주의, 자본의 노예가 되는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제한하고, 일정한 틀에 가두는 부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공교육의 교과서가 아닌, 서점에서 파는 책 가운데 훌륭한 책을 가지고 주로 과학,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해 공부하고 기초를 다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론적 교육과 함께 어린이나 청소년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 교육으로 집안 살림, 목공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교육, 농사, 임업, 산과 숲, 들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이해, 과학 기술의 응용, 인터넷 기술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무려 12년(초중고) 동안 지옥같은 학교에서 경쟁과 비교를 당하며 끊임없이 모멸을 느끼고, 굴욕당하며, 수모를 견뎌야 하는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 봐야 한다. 어린시절, 청소년 시기는 한 사람의 삶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시간을 고통과 비참함으로 보내야한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하다. 청소년 자살율이 세계1위인 한국은, 여전히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근본적으로 학교를 철폐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예수
    19금 예수 어느날, 예루살렘에 양아치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자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을 하지는 않고, 동네 양아치 12명과 어울려 다니면서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했다.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는 어려서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동생들-야고보, 요셉, 유다 그리고 여동생 둘까지-은 모두 목수 요셉과 마리아가 낳았지만, 자신만은 나사렛 근처 외양간에서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주워 길렀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고아라는 것, 양부모가 나쁘진 않았지만 가난한 집안에 자신까지 부담을 주기 싫었고, 로마 군인들이 칼을 차고 다니며 유대인들을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매질하고, 잡아가는 것이 무섭기도 해서 열 두살에 가출했다. 그가 집을 나서서 정처없이 방랑하며 당시 유명했던 실크로드를 따라 갔는데, 문명이 발달한 페르시아를 지나 더 동쪽으로 가서 인도에 도착했다. 어린 예수는 상인 행렬에 끼어 상인들의 심부름을 해주며 밥을 얻어 먹고, 가끔 낙타 위에서 잠을 자며 몇 달이 걸려 도착한 곳이었다. 상인들은 앞으로도 더 동쪽으로 이동해 중국과 조선, 일본까지 갔다 온다고 했다. 그들은 주로 작지만 비싼 상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리로 만든 물건들이 많았다. 상인들은 동방에 한번 다녀오면 큰 돈을 벌었으므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예수는 인도에 들어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믿던 종교는 오로지 한 명의 신이었고, 그 신은 매우 잔혹하고 악랄한 심성으로, 인간을 잔인하게 벌하는 신이었는데, 인도에서는 인간들 만큼이나 많은 신이 존재하고, 그 신들은 대개 너그럽고 다정했다. 그 가운데 그는 '샤카족의 성자'가 남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며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자신이 전혀 상상도 못한 세계가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예루살렘에서나 인도에서나, 페르시아에서나 모두 똑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디에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있고, 그들이 군대를 움직이며, 군대는 자신처럼 가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설고 먼 외국에서 동냥과 노동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다니던 예수는 마침 갈라디아로 가는 상인단을 만나 역시 상인들 심부름을 하며 끼니를 얻어 먹으며 다시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예수는 스물 다섯 살 청년이 되었고, 페르시아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동네 청년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는데, 그건 예수의 외모가 출중하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경험했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신기하고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여행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과장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귀신을 쫓은 이야기,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밥을 먹은 이야기,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 등 허무맹랑하지만 신기한 이야기는 무지렁이 우물안 개구리들이었던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예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예수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냈다. 나사렛에는 예수 말고도 장사꾼들에게 자릿세를 뜯는 양아치들이 몇 있었는데, 예수 패거리들이 싹 정리하고, 자신들이 시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사꾼들은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동네 양아치들이 자릿세 명목으로 돈을 뜯어간다고 로마 총독에게 신고했고, 예수 패거리는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도망갔다. 예루살렘에서도 예수 패거리-그들은 예수를 제외하고 12명이었다-는 장사꾼들에게 돈을 뜯었고, 돈이 좀 있는 사람에게 밥과 술을 갈취했다. 예수의 동생 유다는 이런 형(친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은 형이었으므로)의 행동을 보면서 로마군에 저항하고 있는 비밀조직에 알렸다.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 비밀조직은 예수 패거리의 행동이 로마군의 강경한 물리적 행동을 유발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어떻게든 우두머리인 예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예수 패거리가 돈을 뜯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돈을 받거나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내서는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빈민들과 병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다주기도 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예수 패거리가 나타나면 모두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나와 기대하는 눈으로 예수 패거리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수레에 싣고 온 음식을 한 사람씩 나눠주며 '너희는 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질 것이고, 이웃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부모를 존경하라'고 설교했다.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여겼고, 그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예전에 인도에서 보고 들은 선행을 실천했다. 그것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고, 자신이 가난한 집안의 고아였다는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선행을 해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떠받드는 것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 총독부는 예루살렘에 나타난 유대인 패거리가 도시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여겼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사회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예수 패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마침 유다라는 자가 예수와 그 패거리가 사람들의 돈을 뺐고, 거짓말을 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고발하자 예수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유다는 예수의 동생이었지만 피가 섞이진 않았다. 유다는 유대인 비밀조직에 가입한 청년이었고, 예수가 패거리를 지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독립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유대인 기득권 세력-친로마파-이 예수 패거리를 반로마 집단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예수는 로마군에 잡혀 감옥에 갇혔고, 십자가에 매달렸다. 로마군은 예수의 양쪽 손목과 팔뚝을 밧줄로 묶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 발목을 모아 밧줄로 묶고 역시 대못을 박아 고정했는데, 체중이 아래로 쏠리면서 통증이 지속적으로 온몸을 강타했다. 예수 양쪽에는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매달렸는데, 그들은 빨리 죽여달라고 비명을 질렀고, 로마군은 창으로 도둑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낄낄거렸다. 예수는 죽기 전,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고, 자기를 버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 고아 의식은 심각한 컴플렉스로 남았고, 아버지를 찾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예수는 죽기 전, 그의 패거리 가운데 그나마 말귀를 알아먹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죽음을 남들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부모가 살아 있는지, 찾아보고, 자신의 죽음을 알리라고 부탁했다. 베드로는 그러마고 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열두명의 친구들을 통해 예수의 진짜 부모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친구의 친구, 가족, 친척, 이웃들의 입소문을 통해 예수의 진짜 부모가 마침내 밝혀졌고, 예수의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예수의 엄마는 미혼모로, 베니게 시돈에서 살던 어부의 딸이었는데, 10대 때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그녀는 임신했고,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다 나사렛의 한 외양간에서 아이들을 출산했다. 예수는 한 명이 아니고 쌍동이였고, 그녀는 외양간에 하나를 남겨두고, 다른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 아이도 조금 떨어진 다른 집 외양간에 두었고,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어린 미혼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베드로는 30년 전, 외양간에서 발견된 아이가 누구인지를 찾다가 두 명의 아이를 알게 되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예수와 일란성 쌍동이였고, 평범한 농민의 집에서 자라, 농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베드로가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동생(형일수도 있다)에게 당신의 형제가 지금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니 만나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예수가 죽고 십자가에서 내려 동굴에 임시 안치를 한 상태일 때, 예수의 쌍동이 동생이 나타났다. 예수를 따르던 패거리는 살아서 나타난 예수(의 동생)를 보고 경악했다. 외모, 말투, 습관까지 예수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들 패거리는 이 놀라운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예수가 살아났다고, 죽었다가 사흘 뒤에 살아났다고.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어린왕자
    19금 어린왕자 어려서 담배 좀 피고, 본드 좀 빨았다고 씨발, 아버지가 코딱지만한 B-612행성으로 보냈잖아. 거기서 바오밥 나무 싹을 캐는 노동을 하고, 화산 청소부 노릇도 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해가 열두 번도 더 지는 걸 바라보느라 정신병에 걸릴 뻔 했는데, 어디서 날아온 장미가 재수없게 시비를 붙더라구. 그 새퀴는 가시가 있어서 목을 조르지도 못하고, 말빨도 존나 쎄서 그냥 내가 철새 다리에 매달려 다른 별로 도망갔어. 그 장미 새퀴, 내가 물 안 주면 아마 말라죽을걸. 어느 별에 갔더니 늙다리 꼰대가 앉아서 '킹 오브 우주'라고 떠들고 있더라구. 아, 씨발, 자기가 왕이라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전부 다 왕이래. 혼자서 왕이라고 떠들어봐야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가만 보니 치매에 걸려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씨발, 가족이라도 지겨워서 떠났겠다. 혼자 왕 실컷 해처먹으라고 퍽큐를 날리고 다른 별로 갔지. 겉은 멀쩡하고 번지르르한 신사 새퀴가 얼마나 뻐꾸기를 날리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고, 자기가 졸라 멋장이 신사인줄 아나봐. 대가리에 든 건 젤리뿐인지 아는 것도 없는 새끼가 귀족 행세나 하고, 온갖 지식인 흉내를 내면서 품격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어떻고 하면서 떠들어대는 꼴이 면상을 한방 갈겨주고 싶더라니까. 졸라 병신같은 허영꾼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로 갔더니, 거긴 또 더 진상이 있네. 이 새끼는 하루 종일 술만 처먹는데-그 술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기하긴하다-잠깐 술이 깨면 술을 처먹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처먹는데. 이런 병신새끼가 있나. 술 처마시는 게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는 논리의 무한루프를 개발한 천재새끼네. 나잇살이나 먹었으면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알콜중독자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에 갔더니 임대업을 하는 자본가 새끼가 돈을 세고 있더군. 말을 붙여도 돈 세느라 곁눈질도 안 하는 돈귀신 자본가 새끼는, 자기 별도 아닌 수많은 별을 임대하거나 이윤을 붙여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데, 이건 봉이 김선달보다 더 나쁜 놈이야.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 새끼, 돈에 파묻혀 뒤져버려라. 자본가 새끼 낯짝에 침을 뱉고 다른 별에 갔더니, 잠도 못자고 죽도록 노동-가로등에 불을 붙이는-을 하는 늙은이가 있더군. 아, 이 병신같은 늙은 노동자는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거야. 별의 크기도 내가 살던 행성만큼이나 작았는데, 자전 속도가 빨라져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초단위로 바뀌니까 불을 켜고 끄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데,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것처럼 미친듯이 움직이더군. 불쌍한 늙은이. 노동자 늙은이는 아마도 지쳐 쓰러져 죽을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저 늙은이가 죽으면 또 다른 늙은 노동자가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나는 다른 별로 갔어. 지리학자가 앉아서 행성들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들에게 정보를 얻어 수많은 별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꼰대도 다른 사람들 말이나 듣고 소설을 쓰고 있는 거지, 과학자라면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지구에 떨어졌는데, 하필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졌네. 재수 옴 붙은 거지. 게다가 뱀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내가 '야, 너 존가 가늘고 웃기게 생겼다' 그러니까, 뱀이 '뭐야, 이 꼬맹이 새끼, 뒤지는 수가 있어'라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거 있지. 나는 막대기도 없고 해서 그냥 참았지. 그러다 여우를 만났는데, 요 앙큼하게 생긴 새퀴는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하더군. 나를 집사로 부려먹을 얄팍한 속셈이라는 걸 눈치 채니까, 여우 새퀴, 얍삽하게 실실 쪼개면서 사라지더라구. 사막에서 어떤 남자 어른을 만났는데, 자기는 조종사고,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하더군. 나는 여러 별을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했어. 뭐, 어른들이라는 게 다 그런 거잖아. 애새끼가 말하는 걸 마치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는 거지. 그 조종사는 비행기를 고쳐서 다시 하늘을 날아 사라졌고, 나는 사막에서 40일 동안 돌아다니며 음식도 먹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장미, 화산, 바오밥나무, 여우, 술주정뱅이, 자본가, 지리학자, 늙은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귀싸대기를 후려쳐서 다시 코끼리를 뱉어내게 할 것인지, 작은 상자에 갇힌 어린 양을 무사히 구출할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사막 끝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주님'이라고 하더군. 내가 왜 저런 무식한 머저리들의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열 두놈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꼬드기는데 넘어가고 말았잖아. 그때라도 그 사기꾼 새끼들하고 인연을 끊었어야 하는건데. 결국 사기꾼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매달려 로마군 병사의 창에 찔려서 죽었는데, 씨발, 아버지가 다시 별로 돌아오라고 하잖아. 하는 수 없이 지구를 떠나 코딱지만한 별로 돌아와서 지금도 하루에 47번씩이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말린 양귀비 잎이나 태우고 있는 거야. 인생 뭐 있어? 장미꽃 목이나 졸라야겠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작품명 : 시간의 풍경
    작품명 : 시간의 풍경 이 작품이 발견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잠깐 활동하던 막시무흐 리투어는 사진작가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풍경 사진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소수의 부자들이 소장하고 싶은 콜렉션이었다.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가까운 나쿠루에서 태어났는데, 백인인 그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상아 밀렵이 성행하던 당시 아프리카에서 밀렵꾼을 체포하는 밀렵감시단으로 활약했던 리투어의 아버지는 밀렵꾼이 코끼리를 도살하는 것을 막는 한편, 그 자신이 코끼리 무덤을 발견해 상아를 밀반출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리투어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랐고, 수 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아프리카의 후손으로 믿게 된다. 부자인 아버지 덕분에 사립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는 어른이 되면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리투어가 의사나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는 리투어의 재능이 예술 쪽에 있다고 믿었다. 리투어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지만, 그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상아를 밀반출하던 아버지가 밀렵꾼에게 살해당하고, 그가 저지른 범죄가 발각되어 재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살 수 없었기에 리투어는 그의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로 가게 된다. 리투어의 어머니는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의 친정 아버지가 리투어 모자를 거두어 줄 경제적 여유도, 가족의 따뜻한 정도 나눠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파리의 외곽에 방 한칸을 얻은 리투어 모자는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고, 리투어는 점원 생활부터 공사장 인부, 지하철 청소부 등 여러 잡일을 하면서 근근히 연명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인 라이카 카메라로 파리의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는 필름 살 돈이 없어서 카메라 셔터를 매우 신중하게 눌렀는데,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풍경이 눈에 띌 때만 그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그래서 필름 한 통을 다 쓰려면 1년 이상 걸릴 때가 많았다. 자연히 그의 작품은 아주 적었고, 그는 필름을 인화하는 것도 망설일 때가 많았다. 대부분 필름으로 보관하고, 마음에 드는 몇 작품만 인화해 자신의 단칸방 벽에 걸어 두었다. 어머니가 가난과 힘든 노동으로 병-폐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리투어는 고아가 되어 청년 시절을 보내야했다. 그는 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프리카는 너무 멀었고,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딱딱한 빵으로 보내야 했고,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친구가 생긴 것은 도로청소부로 일할 때였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을 때, 그에게 길을 물어 본 사람이 있었고, 그는 동양여성이었다. 낯선 이름의 나라 '꼬레'에서 왔다는 그 여성은 흰 브라우스-그 여성은 '저고리'라고 했다-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검정 치마를 입었고, 단발머리를 한 단아한 모습이었다. 리투어는 동양여자를 몇 번 봤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는 한눈에 그 여성에게 반했고, 그의 생애 처음으로 풍경이 아닌, 여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리투어는 그 여성이 찾고 있던 장소까지 직접 안내하며 데려다주었고, 자신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며 당신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리투어와 '꼬레'에서 온 여성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했다. '꼬레'에서 온 여성은 조국의 가족에게서 드물게 수표가 든 편지가 도착했지만 그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이름은 나혜석이라고 했다-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했다. 그 자신도 사진을 찍는-비록 아마추어이긴 해도-사진작가였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동양 여성은 더욱 신비롭고 놀라웠다. 두 사람은 사진, 그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투어가 쉬는 날이면 두 사람은 루브르박물관, 오랑주리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리투어가 나혜석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 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고, 나혜석이 다시 '꼬레'로 귀국한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 한 점을 선물했다. 바로 이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리투어의 작품은 그가 30대에 요절한 이후 집주인이 쓰레기로 버려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작품이 담긴 필름통이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만일 그 필름통이 발견되면 사진역사에 놀라운 소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혜석은 이 작품을 들고 조선에 돌아왔고,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혜석은 사망하고, 그가 소장했던 이 사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일본 교토의 한 벼룩시장에서 이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서명도 없고, 작품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 500엔에 팔렸다. 이 작품은 발견하고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리투어를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 역시 몇 안 된다는 뜻이고, 그의 작품을 실재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는 얼른 500엔을 주고 이 사진을 받아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단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으며, 작가를 알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우연이면서 필연은 아닐까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두 남자
    두 남자 1966년, 프라하의 나로드니가의 도로 옆에 있는 카페 루브르. 2층에 카페가 있는 건물은 고딕 양식의 7층 건물로 창문 주위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었다. 도로쪽 정면에서 보면 5층처럼 보이지만, 옆면에서 보면 7층 건물이었다. 건물 끝에서 도로가 갈라지고, 트렘이 건물을 따라 휘어돌아가고 있었다. 전쟁 중에도 건물은 비교적 온전했고, 도로를 따라 주변으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건물 앞 도로는 포석이 깔린 길로, 최초의 도로는 로마시대에 생겼다. 로마군은 지금의 체코를 점령하면서 가장 먼저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때 마차 두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너비인 4.9미터의 도로를 돌을 깔아 만든 것이다. 이후 도로는 조금씩 넓어졌고, 전쟁이 끝나고 지금처럼 자동차가 왕복하고, 양쪽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프라하 시내에서 주요한 도로가 되었다. 카페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좁고 긴 카페 내부는 작은 탁자들이 벽을 따라 놓여 있고, 가운데 줄도 탁자가 놓였다. 저녁시간이어서 식사를 하는 사람과 차를 마시는 사람이 반씩 섞여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중년의 사내는 카페에 들어서면서 빠르게 실내를 둘러봤다. 몸에 밴 습관인듯, 자연스럽고 빠른 행동이었다. 사내는 주변을 곁눈질하며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빈 자리에 앉았다. 그의 외투는 낡았고, 안경은 어색해 보였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을 때, 그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서툰 영어로 주문했다. 하지만 웨이터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사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이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주제넘지만,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노인의 영어도 유창하지는 않았다. 밝은 은발 아래로 깊고 어두운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아 보이는 표정의 노인은 가볍게 웃음을 물고 있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노인은 사내가 주문하는 내용을 웨이터에게 독일어로 통역해주었다. 사내는 노인에게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은 크고 맑았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시가케이스를 꺼내 열고는 시가 한 개피를 노인에게 권했다. "고맙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노인은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글을 쓰다말고 노인은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행을 오셨나보군요." 노인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고 있습니다." 웨이터가 식전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왔다. 검은빵과 흰빵이 각각 두 조각씩 들어 있고, 바질이 올려진 버터가 작은 컵에 담겨 있었다. 사내는 벌써 두 달 가까이 프라하에서 지내고 있지만, 늘 밥을 먹을 때마다 그의 고향 아르헨티나와 영혼의 고향인 쿠바를 떠올렸다. 그곳의 민중들은 감자조차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남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감정과 쿠바에서 피델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무장투쟁을 하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일상은 마치 부르주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마음이 편치않았다. 웨이터가 음식 접시를 들고 왔다. 월도프 샐러드, 굴라쉬, 스비치코바. 월도프 샐러드는 사과, 호두, 포도, 양배추를 마요네즈에 버무렸다. 스비치코바는 소고기 안심과 크네들리키 빵을 소스에 곁들어 먹는 음식으로, 빵이 부드럽고 소스는 잼처럼 달콤했다. 굴라쉬는 쇠고기 스프처럼 걸죽한 국물에 쫀득한 빵을 찍어먹는 음식이었다. 사내의 입맛에도 음식은 맛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대륙에서 먹던 음식과는 사뭇 달랐지만, 체코의 음식은 소박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사내는 밥을 먹으면서도 가끔 카페의 문쪽을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봤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웨이터가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쿠바산 시가를 피우자 사내는 비로소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는 다시는 쿠바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콩고에서 실패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든 곳이 프라하였다. 적어도 거의 모든 사람은 그가 콩고에서 사라져 프라하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내는 시가를 피우며 옆 자리의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커피를 조금씩 마시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노인께서는 글 쓰는 일을 하십니까?" 사내가 묻자 노인은 고개를 조금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저 취미로 쓰고 있다오. 평생을 보험회사에 다니다 퇴직하니 시간도 있고, 할 줄 아는 거라곤 젊어서부터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일이 전부라서 말이오. 선생도 소설 좋아하시오?" "네,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니 여기 프라하에 오니 랑게르의 소설이 생각나는군요. 그가 작년에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차페크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쓴 희곡에서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작가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카프카가 좋더군요. 제 고향에서도 카프카의 작품은 번역 출판을 했는데, '성'과 '소송', '실종자' 같은 소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인께서도 소설을 쓰시나요?" 사내의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떤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니 벌레로 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오. 그런데 선생은 고향이 먼 곳인가요?" "네, 아르헨티나가 고향입니다. 지금은 사업 때문에 아프리카에 왔다가 잠시 이곳에 들렀습니다. 작년에는 알제리에서 머물렀고, 올해는 콩고에 머물다 왔습니다. 떠돌이 장사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륙과 대륙을 옮겨다니다니,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그려. 나는 고작해야 유럽의 몇 나라밖에는 다니질 못했다오. 이제는 늙어서 그나마도 갈 능력이 안 되고 말이오. 고향이 아르헨티나라고 하니 생각납니다만, 몇 해 전에 쿠바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소.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하던데, 미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죠?" "미국은 쿠바 뿐아니라 남미 여러 나라에서 이미 악랄한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럽과는 차원이 다르죠.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을 지배하는 건 미국의 자본가들이니까요. 콜롬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처음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쿠바였고, 아프리카 노예와 중국, 일본, 한국에서 이민노동자가 밀물처럼 들어온 곳도 쿠바였습니다. 사탕수수로 돈을 번 미국자본가들이 빨대를 꼽고 단물만 빨아먹는 거죠. 게다가 쿠바의 호텔 카지노는 미국의 마피아가 지배하고 있고, 남미에서 생산한 마약을 쿠바를 거쳐 미국 본토로 실어나르는 중간기지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죠.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민중이 당하는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고,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세계 여러 나라의 혁명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건 아쉬운 점이죠." "역시 사업을 하는 분이라 세계 정세를 잘 알고 있군요. 나는 그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잘 모릅니다만, 쿠바 혁명으로 미국이 좀 곤란해진 듯 하군요. 코밑에 쏘련의 친구가 자리잡게 되었으니 말이오." "미국 뿐아니라 언젠가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혁명이 발발하고, 자본가를 끌어내려 다수의 민중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사내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은 이제 막 단편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끝냈다. 제목은 '변신'이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고양이, 외계에서 오다
    고양이, 외계에서 오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이제는 스스로 고양이의 '집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양이는 도도하고 건방진 태도로 자신의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집사가 마련한 음식을 먹는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스로 똥오줌을 잘 가리고, 늘 깨끗하게 자신을 돌보며,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즐, 일부러 돌봐주려 하지 않아도 되고, 방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생활이 풍요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시크한 눈빛과 태도는 강아지의 애틋한 눈빛과 달라서 오히려 매력으로 느낀다. 소리없이 다가왔다 사라지는 고요한 움직임, 밤이면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어둠에 묻혀 가만히 어둠을 응시하는 침묵, 창문 바깥으로 훌쩍 사라졌다 나타나곤 하지만, 정작 어디에 다녀왔는지 알 수 없는 신비함이 고양이를 더욱 매력있게 만든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정작 고양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존재인지는 알지 못한다. 고양이를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고양이과' 동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건 과학자들의 명백한 오류다. 고양이는 호랑이나 사자와는 완전히 다른 동물이자, 고양이는 '동물'이 아니다. 고양이가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양이는 인간들과 섞여 살고 있지만, 약 20만년 전 우주에서 지구에 도착한 생체로봇이다. 고양이를 지구로 보낸건 당연 다른 별에 살고 있는 지성이 있는 존재였는데, 목적은 지구 탐사였다. 이들은 지구에서 약 10광년 떨어진 은하계의 가장자리에 있는 별에 살고 있고,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보다 빠르게 진화했다. 그들의 과학기술이 다른 행성으로 탐사를 나설 정도로 발달하기는 했어도,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항성간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구를 발견했고, 지구에 생명이 살고 있을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지구의 대기는 그들이 호흡하기에는 위험할 정도로 산소농도가 높았다. 지구의 산소농도는 약 12%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였다. 산소농도가 가장 높을 때는 약20%였고, 이때 많은 생물이 멸종했다. 산소농도는 매우 급격하게 증가했다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어서 지구에서 진화는 산소농도가 높을 때는 거대생물체가 나타났고, 산소농도가 줄어들면서 생명체들의 크기는 조금씩 작아졌다. 외계 행성인이 살고 있는 별의 산소농도는 약 2%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대신 질소의 농도가 지구보다 높았다. 이산화탄소의 농도 역시 지구보다 훨씬 높아서 이 별의 생물은 크기가 작았다. 외계 행성인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별보다 나은 환경의 별을 찾기 위해 생체로봇을 개발했고, 작고 귀여운 동물을 만들었다. 그들은 작은 우주선에 생체로봇을 태워 지구로 보냈고, 지구에 도착한 아홉마리의 생체로봇-우리가 '고양이'라고 부르는-은 지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외계 행성인은 생체로봇에 발신기를 장착했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은 지구에서 외계 행성인이 살고 있는 별로 전해졌다. 그들은 약 20만년 전부터 인류를 관찰해 왔고, 생체로봇의 눈을 통해 인류의 진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깬석기시대의 미개인류부터 현재의 인류까지 관찰하고 있으며, 그 관찰 데이터는 그들의 '서버'(우리가 말하는 컴퓨터 서버와는 다른)에 저장되고 있다. 집안에서 고양이는 인간의 생활을 관찰하고, 그들의 모습을 전송하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가 CCTV를 보는 것처럼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어도 정작 인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생체로봇(고양이)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서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 전체에 퍼져나갔고, 그들이 수집하는 정보는 외계 행성인이 즐기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인류가 미개할 때, 수렵과 채취로 생존하던 때부터 인간들이 저지른 온갖 행위와 지극한 사생활까지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고양이라고 불리는 생체로봇이 자기 자신의 사생활을 외계인에게 생중계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외계인은 그 생방송을 보면서 재미있어 한다는 것을. 고양이가 낮에 잠을 자는 것은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함이고, 밤에 활동하는 것은 보다 많은 정보를 수집하려는 행동이다. 지구에서 전파탐지기에 잡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파의 정체가 바로 이들 고양, 아니 생체로봇들이 외계로 발신하는 전파라는 것을 히틀러 정권의 독일과학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미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자료는 모두 폐기되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극소수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고양이의 눈빛이 기분나쁘다고 말하는데, 고양이의 눈빛을 본능적으로 카메라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행성에서 10만년 전에 도착한 외계인으로, 지구인과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이들이 지구에 온 목적은 고양이와 같다. 지구에 미개인들이 살던 때부터 이들 역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고양이의 정체를 어렴풋 알고 있었다. 이들, 외계지구인들은 고양이가 자신의 정체를 다른 행성으로 전달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고양, 아니 생체로봇을 쫓아내거나, 고양이가 없는 곳으로 옮겨다닌다. 고양이는 지구에 완벽하게 적응했고, 번성하고 있으며, 인간을 매개로 지구 전역에 퍼져나갔다. 지구 환경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이미 충분히 외계 행성으로 전달된 지금, 외계인은 산소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머지않아 지구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들은 지구가 비교적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불과 수천 명에 불과했던 인간이 70억명으로 늘어난 것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인간의 증가를 조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구에 살 수 있는 적절한 인간 개체는 약 5억 명 정도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그것은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고양이의 숫자와 비슷한데, 고양이와 인간을 일대 일로 매칭해 관리할 수 있으며, 지구 환경의 컨디션이 최적을 유지하는 조건에 맞기 때문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김연아, 평창동계올림픽 그리고 문재인
    김연아, 평창동계올림픽 그리고 문재인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김연아 선수가 많은 노력과 고생을 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올림픽 유치는 한 나라 전체의 영향력 있는 기관과 협회, 정치인들이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동계스포츠의 최고 스타인 김연아의 등장은 화룡점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동계스포츠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관계자들은 김연아에게 큰 빚을 졌다. 초기에 나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반대했다. 이유는 한 가지였는데,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해 평창의 원시림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겨울 한 달도 안 되는 올림픽 때문에 수백년된 나무들이 모두 사라지고, 다시 복구하려면 수백년이 걸려야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또한 동계올림픽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확률도 매우 높았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2001년부터 추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계속 실패하다가 2011년이 되어서야 평창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니 동계올림픽 유치 자체를 두고 문제 삼을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추진된 과정을 보면, 강원도에서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이 거의 확실하고, 또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투입된 다음,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폐허로 변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스러웠기 때문이고, 그 우려는 지금도 여전하다.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도,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곤 한다. 가장 최근에 브라질의 하계올림픽이 끝나고, 경기장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한국은 동계올림픽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좋은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이번 개막식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한 것이 있는데, 만일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고 그대로 대통령이었다면, 동계올림픽 개막식 최종 점화자가 최순실과 최순실 딸이었을 거라고, 정유라가 말타고 점화했을 거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개막식 최종 점화자가 김연아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만일 김연아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최종 점화를 했다면 나는 그 이후로 평창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만큼 김연아는 동계올림픽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젊은 인재이자, 국민의 마음에 아로새겨진 아이콘이기도 하다. 평창의 자연이 망가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동계올림픽을 지지하는 것은 김연아와 문재인대통령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가장 많은 일을 하고, 그 일들이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매우 크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 올 것이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한국사람의 마음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한국의 동계스포츠가 세계 최고의 수준임을 널리 알렸다. 스포츠 선수로서 김연아는 뛰어넘을 수 없는 기록을 세웠고, 한국과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개인으로 김연아는 후배 선수를 키우고, 동계스포츠를 널리 알리며, 사회의 약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말과 행동으로 국민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고, 드러내지 않고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해 어려운 사람을 도왔으며, 한국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훌륭한 인재다.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를 파면하고, 국민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문재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문재인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동안 전 정권이 저지른 부정과 부패를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청산하고 있다. 마침 문재인 정부일 때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으니 우리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전 정권에서 올림픽을 치렀다면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극우, 수구집단은 문재인 정부와 김연아를 비난하고 있다. 그들의 발악은 극우, 수구집단의 입지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발악을 할수록 문재인 정부는 일을 잘 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우리 촛불 시민들이 청소해야 할 대상이 뚜렷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인해 강원도의 수백년 자연은 파괴되었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북한이 극적으로 교류하고,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평화, 통일과 자연의 훼손을 맞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평화, 통일을 선택할 것이다. 망가진 자연은 앞으로 더욱 복구에 힘쓰고, 우리 한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한국과 북한의 평화, 통일을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일본이다. 미국은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한국의 분단을 강제하고 있지만, 일본은 일본의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 통일을 방해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북한과 평화협상과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머지않아 일본과 전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한의 연대는 정치외교적으로도 필연적인 과정이다. 한국에서 김연아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세력은 오로지 극우, 수구꼴통들과 친일파들 뿐이다. 이들은 반민족, 반애국의 민족반역자들로, 철저하게 색출해서 처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잘못을 하겠지만, 지금은 비난이 아니라 적절한 비판이 필요할 때이고, 문재인 정부를 쓰러뜨리려는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할 때다. 한국에서 김연아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은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도록 모든 분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할 일이다. 학교 성적이나 수능, 대학 운운하는 후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천재는 틀 속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499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30년대, 70년대, 2천년대의 백수
    30년대, 70년대, 2천년대의 백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면 시대를 뛰어 넘어 비슷한 정서,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역사, 정치, 경제의 환경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개인에게는 시간을 뛰어 넘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면이 비슷한지 작품과 가사를 통해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1930년대를 살았던 작가 이상이 쓴 수필 가운데 '권태'의 한 부분이다. 이 수필을 쓸 때의 이상은 폐병으로 평안도의 배천(백천)온천으로 요양을 온 상황이다. 그는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쉬어야 하고, 병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몹시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온천 주변의 풍경과 자신의 처지를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된다. 방을 얻어 살고 있는 배천온천 마을은 한적한 시골이어서 외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농부들로 대개 무지한 민중이다. 지식인인 이상은 날마다 읽던 신문이나 잡지도 읽지 못하고, 라디오도 듣지 못해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일 것이다. 권태-이상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넓다란 백지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나는 최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 보다. 최서방의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열시나 지난 후니까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서방의 조카를 깨워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이기로 한다. 최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나는 개울 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 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내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다. 나는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유치한 곡예의 역을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 본다. 지구 표면적의 백분의 구십구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포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작가 이상의 시대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무능한 상태를 드러낸 것이라면, 그 이후 격렬한 정치 상황-해방, 분단, 한국전쟁, 군사쿠데타-이 지나고, 군부독재가 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어떤가를 천재 싱어송라이터 한대수는 자신의 삶-어마어마한 집안이지만 불행했던 가족사-과 시대를 관통하는 삶을 관조하는 가사를 써서 노래한다. 군부독재는 청년의 꿈을 짓밟고, 분단 상황을 악용하면서 병영국가를 유지하고자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 획일화된 잣대로 청년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억압하고, 규격된 틀에 넣어 군부독재를 찬양하도록 쇄뇌시킨다. 그런 독재 상황에서도 예술가는 의미 없는 노래를 부르는 듯 하면서 독재정권을 비웃는다. 하루아침-한대수 1. 하루아침 눈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11시 반 아 ! 피곤하구나 ? 소주나 한잔마시고 소주나 두잔마시고 소주나 석잔마시고 일어났다. 2. 할말도 하나없이 갈데도 없어서 뒤에 있는 언덕을 아 !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3. 배는 조금 고프고 눈은 본것 없어서 광복동에 들어가 아! 국수나 한그릇 마시고 빠문 앞에 기대에 치마 구경하다가 하품 네번 하고서 집으로 왔다 4. 방문을 열고보니 반겨주는 개미셋 안녕하세요 한선생 하고 인사를 하네 소주나 한잔마시고 소주나 두잔마시고 소주나 석잔마시고 잠을 잤다 독재자가 총에 맞아 죽고, 또 다른 독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일정한 수준의 민주주의 공간이 확보된 시기인 2천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군부독재의 억압에서는 벗어났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군부독재의 억압과 탄압은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만, 자본의 착취와 억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취업하기가 어렵고, 최저임금을 받아서는 생활할 수 없고, 월세는 비싸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장기하가 노래하는 것처럼 비참하다. 이 시대가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서 3만불을 향해 가는 시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싸구려 커피-장기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며는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히끄무르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건지 저거는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며는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진짜 라이브의 놀라움과 감동
    진짜 라이브의 놀라움과 감동 -우리동네음악회 166회 '라 보엠' 공연 내가 사는 양평의 서종면에는 시골의 면 단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랑거리가 몇 개 있다. '면 단위'라고 하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을테니 먼저 지역의 단위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시골의 '면'은 서울의 '동'과 같은 개념이다. 행정구역을 구분할 때, 시-군/구-읍면동의 순서로 내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종로구 혜화동'이라고 할 때, 혜화동에서도 통/반으로 다시 구분한다. 면에서 OO리로 나누는데, 통/리가 같은 개념이다. 대도시에서 '동' 단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적게는 몇 만 명에서 많으면 십만 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하나의 동에 살고 있는데, 시골에서는 '면' 단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내가 사는 서종면의 경우 전국에서 면 단위 인구로는 상위권에 속하는데도 인구1만 명이 채 안 된다. 이 가운데 최근 10년 전부터 외지-도시-에서 들어 온 사람들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 이제는 절반을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원래 살던 주민들은 점차 줄어들고, 유입되는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갑고 좋은 현상이다. 이것은 서종면이 있는 지리적 이점도 작용하고 있다. 서종면은 양평군에서도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양수리(양서면)과 함께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여기에 서울-춘천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머잖아 강남과 직접 연결되는 고속도로까지 개통할 예정이어서 양평 특히 서종면은 입지 조건이 좋은 곳에 속한다. 서종면은 인구 1만 명이 안 되는 적은 지역에서도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하기로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문화예술인의 숫자는 수백 명에 이르는데, 이는 인구밀도의 비례로 보면 전국 최고다. 이들이 모여서 '서종사람들'이라는 문화모임을 만든 것이 벌써 17년 전이었고, 이들의 노력으로 어제까지 모두 166회의 공연을 마친 '우리동네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다. 1년에 적게는 7-8회, 많으면 10-11회의 공연을 하는 '우리동네음악회'는 면 단위에서 진행하는 행사로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훌륭한 편이다. 나는 이 공연을 2003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40회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공연을 하는 예술가, 연주자들은 대부분 대도시의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이곳 시골의 작고 허름한 공연장에 왔는데, 그들은 초라할 정도로 작은 공연장에서도 최선을 다해 공연을 했고, 관객과 직접 교감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지금도 공연장은 같은 곳이지만, 초기의 공연장은 면사무소 2층의 강당 겸 회의실에서 무대랄 것도 없이 접이식 의자만 놓고 공연을 했다. 방음은 전혀 안 되었고, 조명, 음향 모두 형편 없었다. 하지만 연주자들과 공연을 하는 분들은 참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주민들 역시 열렬하게 호응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어서, 주민들의 꾸준한 참여가 '우리동네음악회'의 원동력인 것만은 틀림없다. 면사무소 2층 강당은 그 뒤로 꾸준히 리모델링을 하면서 좋아졌는데, 어제 공연을 가보니, 예전보다 확실히 좋아졌고, 많이 달라졌다. 무대, 조명, 음향, 방음, 냉난방 시설이 이제는 어느 정도 갖춰졌고, 소극장으로 손색이 없어보였다. '우리동네음악회' 공연의 특징은 좁은 공간이어서 따로 음향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몇 번 공연장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써야 할 정도로 넓은 공연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극장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쓰는 것은 오히려 공연을 망치게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공연은 별도의 증폭 장치가 없는, 공연자의 생생한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관객이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우리동네음악회'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어제 공연은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가운데 중요한 노래 몇 곡을 뽑아 오페라 가수들이 연기와 함께 노래했는데,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1미터 정도로 가까웠고, 눈높이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가수들의 호흡과 목소리, 표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생생한 라이브, 진짜 라이브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없을 것으로 안다. 대극장 공연에서는 마이크를 쓰기 때문에 가수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마이크를 통해 들어간 음이 앰프에서 증폭되어 스피커로 나오는 과정에서 진짜 목소리는 사라지고, 증폭된 목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즉, 그런 공연도 분명 라이브임에 틀림없지만, 가수나 악기의 소리를 가공하지 않은 완벽한 라이브는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우리동네음악회'의 공연을 '진짜 라이브'라고 부르고 싶다. 오랫동안 수련한 연주자의 목소리나 악기 소리는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어제 들었던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 소프라노, 바리톤의 그 오랜 시간 다듬어지고 훈련된 목소리의 연주는 오로지 피아노 반주만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었고, 좁은 공연장을 울리는 풍부한 성량과 매끄럽고 윤기가 흐르는 목소리의 결은 관객의 마음에 물결을 일으켰다. 오페라 '라 보엠'은 당연히 푸치니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공연했고, 관객은 가수가 노래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극소수의 사람은 이해하고 있겠지만) 하지만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어도, 가수가 노래하는 감정과 노래의 운율만으로도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으니, 음악이 갖는 놀라운 힘이 바로 공감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팝송이든 클래식이든 가사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도, 그 음악이 들려주는 감정은 관객에게 느낌으로 전달된다. 특히 이렇게 작은 무대에서 관객과 아주 가까이 만나서 들려주는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직접적이다. 여주인공 미미가 병으로 죽을 때, 미미의 그 슬픈 노래와 그의 연인 로돌포의 애절한 노래는 가사를 몰라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나도 이곳에서 여러 공연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러시아남성합창단의 공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관객은 적게는 70여명에서 많으면 200여명까지 공연에 따라 다르지만, 공연의 열기나 재미는 매번 다르다. 어제 공연인 '라 보엠'도 짧은 시간에 몇 곡 안 되는 노래였지만, 라 보엠 전체를 잘 축약해서 보여주었고, 오페라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460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shooting의 남성적 상징 의미
    shooting의 남성적 상징 의미 슛, 슈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하게는 총을 쏘다, 공을 차다 같은 일반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이 단어와 함께 동반하는 행위를 들여다 보면, 이 단어가 남성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고, 남성적 행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잠시 푸코의 의미체계를 살펴보자. 푸코는 말한다. 병원, 학교, 감옥, 군대는 모두 동일한 체계(시스템)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통찰은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감각이며,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논리다. 이렇듯, 서로 크게 상관 없을 것 같은 개념을 가져와 특징과 공통점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은 구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중요하다. 슈팅의 사회적 의미와 남성적 상징 의미는 어떻게 드러날까. 슈팅이라는 단어가 왜 남성적인 단어이며, 그것이 단지 남성적인데 그치지 않고 폭력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보자. 축구에서 공을 상대방 골대를 향해 찰 때 사람들은 '슛'이라거나 '슈팅'이라고 말한다. 사전적 의미다. 주로 구기 종목의 스포츠에서 득점을 하려고 골이나 바스켓을 향해 공을 차거나 던져 넣는 것을 말한다. 농구에서 골을 넣을 때도 '슛'이라고 한다.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경쟁과 투쟁을 합법화한 게임이니 오래 전부터 있었던 씨족, 부족 사이의 전쟁과 근현대의 전쟁을 순화해 스포츠로 경쟁하도록 만든 것이어서 '슛'이 살상 무기를 발사하는 것과 같은 단어임에도 스포츠에서는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총을 발사할 때도 '슛'이라고 한다. '슈팅 게임'이라고 할 때, '슛'은 총을 쏘는 것을 의미한다. 사격은 필연적으로 뭇 생명을 죽이는 행위다. 스포츠에서도 사격이 따로 있지만,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군인들은 총을 쏘고, 총알은 날아가서 사람들을 죽인다.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맞으면 '적군'을 사살했다고 좋아한다.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터에 군인으로 나가서 총질을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다. 고대 모계사회가 한동안 지속되다 인류의 정착, 농사의 발견,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부터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류가 벌인 모든 전쟁과 학살과 범죄는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슛'은 남성들의 폭력적 행위를 상징하는 단어가 된다. 단지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섹스에서 보여주는 태도 또한 그러하다. 남성은 튀어나온 성기를 가지고 있고, 성기에서 정액이 '발사'된다. 이때, 발사되는 정액은 '슛'으로 표현한다. 인류의 거의 모든 시기에서 섹스에 관해 남성은 능동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였고, 여성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것은 명백히 남여의 사회적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남성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성적 태도는 '슛'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방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고전적 의미-총을 쏘는-의 '슛'이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카메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행위가 '슛'을 대신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 자체로 총과 매우 비슷한 형태와 상징을 보유하고 있는 물건이며, 피사체를 겨냥한다는 점에서는 총과 똑같다. 다만 카메라는 피사체를 죽이지 않을 뿐이다.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셔터를 누르는 행위를 '슛'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쟁이나 스포츠를 거쳐 새로운 문화로 이전하는 남성적 행위의 변형된 상징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을 남성만 찍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남성성이 내재해 있는 행위를 여성이 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여성이 카메라로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것도 '슛'이며, 그 행위는 여성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남성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상징으로 굳어진 행위는 하나의 의미체계로 존재하기 때문에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슛'은 '쏘다'라는 의미처럼,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다. 남성의 공격성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데, 개인으로는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나고 집단으로는 하나의 패거리가 다른 패거리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경우, 국가 단위에서는 전쟁이라는 형태로 남성의 폭력성이 발현된다. 이때 이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모두 '슛'이다. 즉, 무언가를 향해 '쏘는' 행위인데, 남성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을 때는 살상이 일어나고, 스포츠일 때는 격렬한 경쟁과 아드레날린의 폭발이, 자동차를 탔을 때는 폭주와 난폭 운전으로 드러나게 된다. 도로에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려가는 자동차는 그 자체로 '슛'이다. 즉 어디론가 발사된 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성(성)은 매우 목적지향의 성향을 갖고 있다. 남성(성)이 인류의 진화와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 것임은 의심할 나위 없지만, 남성(성)의 일부는 부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태도가 그렇고,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발현되는 현상들-폭력성, 호전성, 편협함, 일방성, 야만성, 단순성-은 남성의 긍정적 역할과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인류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현대에서 '슛'은 거의 모든 남성에게 있어 인터넷과 게임으로 수렴하고 있다. 게임을 하는 인구의 다수는 남성이고, 남성들은 게임에서 온갖 무기를 사용해 게임 캐릭터를 죽인다. 즉 그들은 마우스와 키보드로 '슛'을 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의 본능과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이 게임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남성(성)을 강요-즉 폭력성을 강요-하고, 남성이 사회에서 받는 구조적 억압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방식으로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물리적 폭력, 성추행, 성폭력-은 오히려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는데, 남성들이 인터넷 게임에서 캐릭터를 사살하는 것이 남성의 폭력성을 완화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남성우월주의 사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체제는 남성에게도 강한 압박을 주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그 체제의 주인이고,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이지만 자본(가)은 또 다른 자본(가)과 강력한 경쟁을 해야 하므로, 그들끼리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즉,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남성들은 그 자체로 기득권이지만 남성들끼리의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그들 역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이런 기득권 세력의 경쟁과 스트레스를 약자들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어느 체제-자본주의든, 남성우월주의-든 피해자와 약자는 물론이고, 기득권자들도 그 체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슛'에 열광한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살육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약자들의 고통을 히히덕거리며 즐긴다. 스포츠 시합에서 경쟁을 즐기고, 섹스 산업에 깊이 참여하며, 여성을 대상화하고, 자기과시와 경쟁,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행위들, 카메라로 피사체를 찍으며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속에는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돌아온 탕자'는 용서해야 하는가?
    '돌아온 탕자'는 용서해야 하는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 가운데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부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지역으로 떠나 그곳에서 방탕하게 지내다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치기를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버지가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극진하게 맞이하여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큰아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니 집안이 잔치를 한다고 떠들썩해서 무슨 일인가 의아했는데, 동생이 돌아와서 소를 잡고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는 화를 냈지만, 아버지는 큰아들을 말리면서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라고 타일렀다. 이후 큰아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요즘 말로 하자면 '왓 더 퍽'이 되겠다. 아버지 재산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서 받아 나간 동생 새끼가 신나게 즐기다가 돈 떨어지니까 다시 집으로 기어들어온 것을 본 형은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온다. 자기는 동생이 나간 다음에도 줄곧 집안의 일꾼들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밭으로, 농장으로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일을 하고 돌아오는 생활을 했는데, 약아빠지고 교활한 동생 새끼는 재산을 받아서 신나게 즐기다가 뻔뻔하게 기어들어왔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나겠는가.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이야기가 야훼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 신에게 귀화하는 은유라고 말하고 있는데, 신의 자비로움과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비유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이 이야기와 매우 흡사해서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것이다. 어떤 교장에게 두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모두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학교 교장이던 엄마에게, 더 이상 학교에 가라고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증오했는데, 공교육 시스템의 핵심에 있던 교장은 그런 두 자식의 장래가 몹시 걱정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두 아이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게 된 원인이 바로 엄마인 교장에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아이들을 점수 기계로 만들면서 악랄하게 학대했다. 물론 자신이 아이들을 얼마나 학대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겠지만.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까지 강요하지 않는 요령을 배웠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 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그렇게 아이 둘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책으로 써서 냈다. 그것도 '반성문'이라는 제목까지 넣어가면서. 이런 책을 내는 의도는 '나는 이렇게 좋고 훌륭한 엄마다'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싶은 인정욕구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지난 태도를 반성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훌륭하게 자리 잡은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이 더 클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쓴 사람이 바로 '돌아온 탕자'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병신같은 탕자 즉 부자의 둘째 아들로 살아가다 죽는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멍청한지도 모른다. 자식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부모들이 바로 그들이다. 죽으나 사나 학교에 가야하고,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서울대학교를 가야 하고, 판검사가 되야 하는 것이 이들 '탕자' 같은 부모들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멍청하고 병신같은 부모들은 그대로 '탕자'로 살다 죽는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극히 일부가 바로 이 교장처럼, 한국 교육의 잘못된 시스템을 인정하고,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하면 언론에서는 그런 부모를 칭송하고 찬양한다. 바로 '돌아온 탕자'가 되는 것이다. 가장 열받는 것은-아니, 열받을 일도 없지만-늘 한국 교육 시스템의 왜곡을 비판하면서 독립적으로 자식을 키운 부모들이다. 이들은 '돌아온 탕자'의 형처럼, 늘 변함없이 자식의 삶을 지지하고 학교 교육에 연연하지 않으며,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실천하는 부모들과 학생들이다. 정말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데, 온갖 병신짓을 하던 인간들이 어떤 이유로 개과천선을 했다고 해서 마치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을 보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부모와 학생들이 보기에 한심하고 역겹기만 하다. 자식을 도구로 생각하던 부모가 마침내 개과천선을 해서, 그것도 자식이 죽겠다고 최후의 통첩을 날리고, 무수한 고통과 저항을 통해 부모의 의도를 무력화한 다음에서야 마지못해 자식을 인정한 다음에야 문제가 바로 자신(부모)에게 있다는 걸 깨달은 부모가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인양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은 역겨움을 일으킨다. 그가 변하게 된 것이 자식들의 저항에 의해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자식들이 만약 기존의 삶에서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갔다면 과연 새로운 삶의 방향에 대해서 눈꼽만큼이라도 생각을 해봤을까? 결국 타의에 의한 마지못한 깨달음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기 위해 마치 자기가 새로운 삶을 발견하고 깨달은 것처럼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다른 쪽에서 항상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458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민주노총과 전교조
    민주노총과 전교조 민주노총이 청와대의 초청을 거절한 것과 그 이유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며칠 상황을 지켜보다가 민주노총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어느 쪽의 잘잘못을 떠나 민주노총이 청와대의 초청에 응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노총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청와대의 초청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대중에게 충분히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조직의 논리가 우선일 수 있고, 노동계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생각을 의식할 이유도 없겠지만, 민주노총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적어도 페이스북에서는-조직의 논리에 함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민주노총이 한국 노동계를 대표하는 단체인지, 한국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 주역인지, 한국 노동계급의 혁명성을 추동하는 전위적 단체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이것은 현재 법외노조 상태인 전교조에게도 하는 똑같은 질문이기도 하다.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율은 10% 정도다. 전체 노동자의 10%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말이다. 노동인구가 2천만명일 때, 노동조합원은 약 200만명이다. 그 가운데 한국노총이 50%인 100만명, 민주노총이 40%인 80만명, 양대 노총에 미가입조합원이 10%로 20만명 정도로 대략할 수 있다. 즉, 한국의 노동자 2천만명 가운데 불과 80만명만이 민주노총의 조합원일 뿐이다. 불과 4%의 조합원을 가진 노동조합이 과연 한국노동운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숫자로만 본다면 이는 전혀 의미 없는 주장이지만, 민주노총은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진보적인 뿌리를 가진 유일한 단체라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대표성을 부여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1920년대 일제시대부터 발생한 노동운동의 성과를 이어받았고,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독재, 군부독재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계급적 모순의 해결과 한국의 정치, 사회상황의 민주주의적 개선을 위해 가장 앞장 서서 가열차게 싸워왔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사회사적으로 민주노총의 대표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민주노총은 예전의 계급적 투쟁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전체적으로 민주화의 진전을 보이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큰 문제 없이 자리잡으면서, 자본의 폭압 또한 시민민주주의의 힘에 의해 일정 부분 양보하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노동계와 노동운동이 사회의 변화와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가장 핵심의 역량이고 중심 노릇을 했지만, 이제는 시민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의식이 저변이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의 지도성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계급의 지도적 역량이 급격히 위축된 이유는 노동자와 대표조직인 노동조합이 시대의 흐름을 올바르게 읽어내지 못하고,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고립의 원인은 스스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 오만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학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이 배우려 하지 않고, 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교육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지 않아서 무식하고 무지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 노동운동의 퇴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무식하다. 단언컨대, 한국의 노동자들은 공부하지 않는다. 그들이 현장에서 단순조립을 하는 노동자건, 강남의 최고 좋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건 자신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노동자의 사회역사적 임무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노동자는 1%도 안된다는 사실을 장담할 수 있다. 최소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가 한 달에 한 권의 책만 사 읽어도 무려 200만권의 책이 팔리게 되고, 한국출판시장이 불황으로 허덕인다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퇴근하고 술집에 가서 몇 만원, 몇 십만원의 술을 마시면서도 한 달에 한 권 1만원의 책값은 지불하지 않는다. 하루 한 갑의 담배값으로 5천원씩 한달에 15만원은 아무 생각없이 지불해도, 한달에 한권 1만원의 책값은 지불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공부하지 않는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도 아니며, 변혁의 추동자도 아니며,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핵심 세력도 아니다. 그저 멍청한 자본의 노예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노총은 과연 노동자의 교육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 물어보기 바란다. 또 하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조합원들 가운데 권위적이고 부패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이 '노동귀족'이라는 말로 비판하는 수구집단의 주장에 대해 매우 모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알지만, 양대 노총이 '노동귀족'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분명히 있다는 것을 양대노총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의 하부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으로 가입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대의원으로 선출되자 더 이상 현장에서 노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회사에서 극진한 대우를 해 주고, 깨끗한 옷을 입고, 손에 기름때를 묻히지 않으며, 저녁에는 노동조합 간부나 회사의 관리직 직원들과 함과 함께 비싼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단지 단위 노동조합의 대의원일 뿐인데도 이런 대우를 받게 되니 그 노동자는 노동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으면서 다시는 현장노동을 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대의원과 노동조합 임원 선거 때가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돈과 술수를 쓰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명한 현실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상당부분 부패했고, 노동자들의 정신은 썩었다.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이런 비판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가와 수구집단이 민주노총을 공격하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도부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정파들이 갈라지고, 내부투쟁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노선투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의 투쟁으로 인해 계급투쟁과 사회변혁의 동력까지도 내부로 붕괴되는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민주노총이 산하 조합과 조합원들에게 노동계급의 의식을 고양하고,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변혁의 주체라는 것을 끊임없이 교육하려 하지 않고, 단지 조직의 논리에 매몰되어 임금인상 따위-여기서 '따위'는 계급투쟁에 비하면 지극히 낮은 수준이라는 비유다-에나 역량을 소비하는 태도가 몹시 마땅치 않다. 이번 청와대 초청 거부 상황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의 정치사에서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합법, 민주정부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들이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옳고, 청와대가 잘못했기 때문에 초청을 거부했다고 주장하지만, 대중은 결코 민주노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의 정서가 시대의 흐름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촛불혁명으르 보면서 배웠을텐데, 민주노총은 여전히 잘 모르는 듯 하다. 대중은 이렇게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오히려 몸을 낮추고 조용히 있다가 민주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기가 살아서 사사건건 훼방이나 놓고 있다고 말이다.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올바르지 않고, 왜곡되었으며, 몹시 분개할 내용이라 해도 이런 이미지가 대중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민주노총이 전략적으로 판단한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와 함께 손을 잡고 적폐세력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세력을 먼저 다 때려잡은 다음, 자본(가)을 압박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 올바른 과정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한때 한국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핵심세력이었고, 민주주의의 견친세력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단체는 역사적으로 올바른 일을 했고,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부패하거나 정파투쟁으로 동력을 소모하는 것은 그만큼 충분히 비판받아야 한다. 더구나 조합원의 낮은 의식수준은 시민 일반의 평균보다 낮은 지식과 사회성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변혁에 방해가 되고 있다. 노동자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자의 계급성을 각성하지 않고는 지금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아무리 강한 주장을 한들,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비난만 받게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450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비행기 좌석처럼 천민자본주의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도 드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런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차별은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돈의 많고 적음이 곧 계급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 벤츠를 타고, 누군가 마티즈를 탄다고 했을 때, 그 차이는 오로지 돈 한 가지 뿐이다. 거기에서 그 사람의 지식, 인격, 품성, 도덕성, 양심 등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같은 이유에서 아파트 평수가 그렇고, 유명 메이커의 소비가 그렇고, 문화의 향유가 그렇다.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자신의 무식과 천박함까지 세련되게 바꿀 수는 없다.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대개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세련된 문화를 익혀 오기 때문에 그들은 '돈도 많은 것들이 착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듣는다. 게다가 교양 있고, 품위까지 있어 보이니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사회를 이끌 '지도층'이 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자본가와 부르주아들은 천박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들이 발딛고 서 있는 바탕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성과 교양과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들이 '돈'을 바탕으로 서 있다는 전제와 역사적 배경에는 민중의 피를 빨아서 만든 부의 탑이 있다. 그것을 경제용어로 '착취'와 '이윤'이라고 말하고,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부의 원천을 '잉여노동'으로 봤다. 어떤 표현이든 자본가는 민중의 고혈을 짜내 그것으로 더 큰 집과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사치품을 소유하고, 그 돈으로 권력을 사거나, 권력을 향유한다. 상징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비행기 좌석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배, 피지배 계급의 존재임을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고, 비싼 자리에 앉아 가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우월감과 지배계급의 여유를 갖도록 하고,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무능력에 대한 자책을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 많은 사람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크고 넓은 좌석에 앉아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덩지가 큰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때려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무지하고 멍청한 말이다. 즉,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두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본질을 모르거나, 은폐하는 것이어서 어느 쪽이든 다 나쁘다. 한때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 가운데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비행기 표 가격을 더 받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때 '첫번째 계급'과 '사업용 계급'의 좌석은 예외였다. 즉 가장 가난한 좌석인 '경제적 좌석'의 표를 사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몸무게 비용을 더 받겠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자본의 일반적 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은 똑같은 목적지를 가는 비행기 내부에 세 단계의 차별 공간을 두어, 좌석, 서비스, 음식 등을 차별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서민용 좌석이 사람이 앉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는 데 있다. 항공사는 어떻게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좌석'의 숫자를 최대로 늘린다. 반면 이윤이 많이 발생하는 '첫번째 계급'의 좌석은 매우 넓고 쾌적하다.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경제적 좌석'에 비해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에 이른다는 걸 계산할 때,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 역시 그에 상응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에 맞는다. 항공사로서는 '경제적 좌석'의 사람들이 많은 것보다 '첫번째 계급'의 좌석이나 '사업용 계급'의 좌석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결국 자본의 체제, 자본의 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이런 차별과 계급성의 적나라한 풍경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형 비행기 안에 차별하는 좌석이 없이, 모든 좌석이 사람이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는 넓이로 만들어지고, 돈의 많고 적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의 목적지로 가는 모든 사람들이 우월감이나 수치심 없이 비행기에 앉아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결코 환상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을 사람들이 자각하고, 바로 그 '계급'을 소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부터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불합리한 제도와 차별과 불공평한 것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려보자. 앞부분부터 꼬리까지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생존열차에는 앞에서 말한 비행기와 똑같은 구조로 사람들이 계급에 따라 살고 있다. 그것을 '상상'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을 조금만 비약한다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전철에도 비행기 좌석과 같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10개의 전철 차량에서 앞부분 1개는 가장 비싸고 고급한 전철비를 받는 대신, 온갖 최고급 음식과 술, 음료수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 승무원이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여성비하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그 다음으로 2개의 객차는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하자. 나머지 7개의 객차는 '이코노미석'이라고 하자. 비행기는 왜 당연하고, 전철은 왜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전철이 너무나 서민적이어서? 아니면 전철은 너무 멀리 다니지 않고 도시 하나만 돌아다니니까? 그런 이유라면 충분한 반론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자본'에 대해 잘 모르거나 순진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들인데, '자본'은 이윤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사업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자본의 속성이 바로 이윤추구이기 때문이다. 전철을 돈에 따른 차별화 서비스로 만든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처음에는 웃긴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면 몹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정부(국가)는 돈이 되기만 하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담배 산업도 '독점'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들인다. 정부나 자본이 정의롭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은 무수히 많다. 전철의 차별화 서비스가 마땅치 않고, 기괴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비행기는 왜 그래야 하는가? 왜 비행기는 좌석을 차별화하고, 전철은 차별화하지 않으며, 극장의 좌석은 일률적이지만 공연장의 좌석은 왜 로얄석과 VIP석과 일반석으로 나뉘어 액수의 차이를 두어야 하는가. 공연장이 좌석의 위치에 따라 더 잘 보이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별을 두는 것이라면 극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비행기가 서비스(전체)의 차이에 따라 항공요금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면 전철도 같은 논리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자본'이 추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사회윤리나 도덕성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인다. 그것은 자본이 작동하는 논리가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 좌석에 차별을 두어 돈을 다르게 받는 것은 항공사의 이윤 추구 행위 때문이다. 항공사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좌석을 똑같은 비율로 만들고, 항공료를 똑같이 받으면 항공사는 적자가 발생한다. 즉 '첫번째 계급'과 '사업용 계급' 좌석을 만들어 이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경제적 계급' 좌석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이익이다,라고. 얼핏 들으면 맞는 소리로 들린다. 그것이 자본 시스템 속에서 굴러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하지만 이런 주장은 헛점이 많다. 비행기표를 구입할 때 제 값을 다 주고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좌석이든 할인을 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며, 항공사의 논리대로 좌석 차별과 항공료의 차별을 두지 않으면 항공사가 적자라는 논리는 쉽게 반박된다. 오히려 좌석을 넓히고, 차별 좌석을 없애고, 항공료를 합리적 가격으로 받으면 항공사는 적자를 면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훨씬 쾌적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좌석의 차별과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타는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훠스트 클라스를 타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체제 내적 적응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논리에 늘 이용당하거나 자기 중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비행기 좌석은 지금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인간성, 계급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높은 계급의 좌석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불만이 없겠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한줌도 안되는 것들이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430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노무현 대통령님께
    노무현 대통령님께 믿고 싶지 않습니다. 믿을 수도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했다는 말을 23일 아침,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당연히, 루머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제가 살고 있는 양평군의 군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습니다. 돌아가신 것을 믿지 않고, 마음에서도 떠나 보낼 수 없는 분이었지만, 더 늦으면 조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사흘, 인터넷에서, 거리에서 많은 시민들이, 네티즌들이 한 마음으로 마음 아파하고, 깊이 슬퍼하며 눈물 흘리고, 가슴을 치는 것을 보며,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만 봤습니다. 글을 쓸 수도 없었고, 음악도 들을 수 없었고, 웃을 수는 더욱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함이,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갑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오늘까지, 언론을 통해 알고 있고, 각종 매체에 나온 모습을 보며 그 참된 인간성만은 진실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극우 세력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비웃고, 깔보고,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고, 악다구니를 할 때도 ‘노무현’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극우 파시스트들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을 비웃고 있습니다. 김동길이라는 늙은이, 조갑제라는 인간사냥꾼을 비롯해 소위 권력과 금력을 가졌다는 자들은 ‘상고 출신’의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미 보았던 숭고한 죽음의 예를 들 때, 앞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포함될 것입니다. 1970년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 1973년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 마지막 순간에 권총으로 자살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록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극우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온몸을 던져 항거하신 것임을 잘 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인터넷에는 예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여러 사진과 동영상, 음성 등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진, 동영상, 음성은 하나같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 불의에 항거하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 지도자의 모습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따뜻한 웃음과 정이 넘치는 말,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유머, 권위를 버리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깊은 정, 무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 평범한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의지,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해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더욱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주의도 죽었습니다.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김영삼의 나라 망치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피투성이였습니다. 극우 파시스트들은 이 시기를 ‘좋았던 시절’이라고 말합니다. 국민들이 피를 빨리고, 가난과 사회적 고통 때문에 무수히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극우 파시스트들이 바로 그 서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을 죽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한 노무현 정부를 ‘좌익 정권’이라고 왜곡하며 끊임없이 딴지를 걸었던 바로 그 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인 것이고, 민주주의를 죽인 것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와 맞서 싸우기 전에 마지막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살아 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살아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이 나라에서 억압과 폭력과 통제가 판을 치는 한, 극우 파시스트 세력이 득세하는 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진보 진영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일부 불만스러운 내용이 있었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인간 노무현’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의지와 철학이 훌륭해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 노무현이 들어야 하는 비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외로웠을 것입니다. 더더욱 죄송하고 미안한 것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 봉하 마을로 돌아온 이후, 극우 파시스트들의 악랄하고 집요한 공격을 막아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책임은 아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이 세상을 떠난 지금, 너무도 깊이 후회되고 마음 아픕니다. 소위 진보 진영이라고 해서 ‘개량주의자 노무현’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본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데올로기를 떠나 우리는 인간과 인간으로,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먼저 맺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을 먼저 따지고, 이론화하고, 논쟁을 하고, 흑백을 가려야 하고, 선명성을 드러내야 하는 강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세계관이 다르다 해도,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온화한 웃음 속에 깃든 뚝심을 느끼며, 생각만 많고 말만 살아 있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것들과는 다른,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 민주주의도 떠나보내야 하는 비통함 때문에 더더욱 보내드리기 어렵습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먹먹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깊은 밤, 인터넷에서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릅니다. 정의로운 대통령, 서민을 위한 대통령, 인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대통령을 죽인 자들이 음침한 곳에서 웃고 있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죽음은 끝이지만, 시작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죽음은 현재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지만, 역사에서는 시작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기폭제가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마음이 덜 아픕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마음 깊이 빌고 빕니다. 출처: http://marupress.tistory.com/2314 [知天命에 살림을 배우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공기가 다르다
    공기가 다르다 5월 9일과 10일 사이에 세상에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숨쉬는 공기가 달라진 것이다. 그 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0년 전부터 엊그제인 5월 9일까지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질식할 것 같은 공기였다. 총체적 무능과 부패가 만연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이었는데, 어제부터는 공기가 싹 바뀌어서 왠지 상쾌하다. 우리의 일상을 내리누르는 무겁고 답답한 공기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내뿜는 타락한 오염의 공기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취하고,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권력자들 때문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왔다. 다행히도 지난 연말 대통령과 그 측근의 비리가 드러나고, 촛불시민이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모두의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 측근 가운데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인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진보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고, 직전의 두 대통령 이명박과 박근혜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인물이다. 한국정치사에서 손꼽을 수 있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고,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와 불평등을 상당부분 해소할 능력이 있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 그래서 아침이면 몸과 마음이 가볍다. 예전에는 마음 속에 묵직한 덩어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민이 아닌, 사회가 만든 깊은 우울과 절망의 덩어리였던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 역겨운 덩어리가 눈녹듯 사라졌다. 내 개인의 고민이나 아픔이야 혼자 감당하면 되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온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는 사건이 떳떳하게 밝혀지지 않고, 권력자가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을 오히려 음해하고, 온 세상에 억울한 국민들이 넘쳐나게 만드는 나라에서, 혼자 행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억울함과 슬픔은 국가가 보듬고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으려 노력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데,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그런 인간적인 정부를 만나지 못했고, 오로지 국민 스스로 슬픔과 고통을 삭여야 했다. 이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정부가 탄생했으니, 우리의 사회적 아픔과 억울함과 비통함은 정부에 맡기자. 그리고 우리는 보다 나은 세상의 청사진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마음을 모으자. 지난 적폐 정권을 여전히 지지하는 일부 어리석고 멍청한 국민이 있지만, 그들도 좋은 세상의 혜택을 입는 국민이 될 것이고, 정의와 진보는 모두에게 고르게 손길을 내민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만이 이 나라가 가야 할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