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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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어제 교수님 블로그에 올리신 '나는 왜 윤석열 후보를 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론이자, 공개 편지입니다. 서술의 근거는 교수님의 글을 기본으로 하고, 제가 가진 생각을 더해 주장을 개진하겠습니다. 공개 편지인 만큼 형식과 내용은 자유롭고 편한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은 물론,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보수' 진영에 계신 분들도 읽어보시길 희망합니다. 1 '존경하는 최교수님께'라고 쓴 인사말은 의례적 수식어가 아닙니다. 이웃 사는 저는 평소 최교수님을 자주 뵙고, 함께 식사도 하고, 산행도 하는 '동무'라서 교수님을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정치 성향은 '보수'가 틀림없습니다만,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셨고, 탄핵에 찬성하신 분입니다. 최교수님은 박근혜를 선택했지만, 박근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셨습니다. 최교수님은 스스로 노력해 많은 어려움을 딛고 대학교수가 되셨고, 정년퇴직하신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성실하고 겸손하며, 사회의 규범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로 대학교수가 되셨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2년을 복무했으며, 개신교도로 신앙생활도 신실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측은지심을 가지셨으며, 자신에게 향하는 쓴소리,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넓은 이해의 마음을 가진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최교수님 수준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분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보수'라면 좌우의 날개를 함께 펴고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면 '극우'에 가깝고, 과거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미치광이 수준입니다. '보수' 집회에 참가하면서 일장기를 들고, 일본을 찬양하면서 우리나라가 망해야 한다는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식 있는 시민들이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비웃고, 비난, 비판하는 근거는,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선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은 '정보'로 흘러넘치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편향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개신교 신자로서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하셨습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특정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신앙 때문에 정치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정치인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일 뿐이고, 그래야 합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일반화하려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나 있었던 미개한 폭력입니다. 자신의 신앙(종교)과 정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한 교수님과 ‘보수’의 안목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3 교수님은 글에서 '이승만은 반공, 박정희는 경제, 김영삼은 민주화, 김대중은 개방'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승만이 '반공'을 한 것은 맞습니다만, 이승만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와 패악에 관해서 침묵하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입니다만,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여준 행보, 말과 행동은 친일매국노이자 한국 정치와 사회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의 전형이었습니다. 1948년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정치 상황은 남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만, 남북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던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현실 정치인들을 암살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만들어 과거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가입시킨 다음, 전쟁이 한창일 때 국군특무대를 중심으로 보도연맹원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진짜 빨갱이'들이 아니었고, 한때 좌익이었거나,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배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설령 과거에 '좌익'이었다 해도, 단지 과거의 전력만을 보고 학살한다는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이승만은 이들이 최소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이 학살당하는 걸 묵인했습니다.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했고, 대통령을 영구집권하려는 망상을 가졌으며, 3.15부정선거의 당사자입니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과거 친일매국노를 관직에 앉히는 등 친일파를 옹호하고, '반민특위'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국이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친일매국노를 처단하라고 주장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반대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4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합니다. 박정희가 가난했던 한국을 구제했고, 보릿고개를 없앴으며,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합니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를 생각해 보면,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가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봅니다. 즉,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이 불쾌하고 마땅치 않은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인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젊었을 때 흘렸던 땀과 눈물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훌륭합니다. 그들은 굳이 박정희를 들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한국 사회를 일으킨 주역이며, 한국 사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그러니 박정희를 우상화하지 않아도 '보수'의 애국과 땀의 결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정체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원이었으며, 그의 형 박상희는 '보수'들이 말하는 '진짜 빨갱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상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당시 좌익,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는 대개 지식인이 많았고, 일제강점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 방법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역시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고,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보수'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저주를 퍼붓는 '빨갱이'가 바로 박정희와 그의 형 박상희입니다. 박정희가 전향했으니 그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박정희는 남로당원인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자 자신의 조직과 동료를 고발하는 대가로 살아남았습니다.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는 변절자, 배신자인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경력을 지우려고 더욱 강하게 '반공'을 부르짖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좌익, 공산주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지식인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수'만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보수'의 특징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지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없고, 올바른 역사관이 없으므로 눈앞의 현상만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역사의 물줄기, 역사에서 정의, 민주주의, 민중의 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지배자의 말을 믿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던 1960년을 전후해서, 제3세계-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군부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즉,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는 그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진 이 세계적 사건 가운데 '성공한 쿠데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쿠데타 자체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쿠데타는 성공했어도, 그 주역들이 시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쿠데타 세력의 종말이 모두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군부 쿠데타는 불법이며, 역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범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 의해 사살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재규가 역모를 한 것으로 치부하면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일본군가를 부르며 그걸 즐겼던 친일매국노였습니다. 일본과 일본군에 대한 향수를 끝까지 갖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한때 만주군에서 독립운동가를 '토벌'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걸 부끄럽거나 죄스러워하기는 커녕, 친일매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겠습니까. 박정희가 죽을 때도 주색잡기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무려 200여 명의 여성을 비밀 안가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채홍사 노릇을 한 부하가 직접 증언했고, 박정희의 마지막 순간에도 두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소위 '보수'에서는 이런 박정희를 두고 '남자라면'이라거나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라'거나, '대통령이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려 합니다. 대통령이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걸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그걸 옹호하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그건 최소한의 인간도 못 되는 되먹지 못한 양아치일 뿐입니다. 5 교수님께서는 이명박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택을 이제는 후회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죠. 이명박은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그가 개신교도에 교회의 장로라는 타이틀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교수님께서도 이제는 아셨을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교인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형교회의 목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습을 통해 철저한 자본주의의 물질만능 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보여주어야 할 선행과 이타심은 이미 사라졌고, 교회는 비즈니스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개신교가 얼마나 부패했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었는가는 개신교 전체가 보여주는 악행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과 역할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개신교 내부에서도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실한 목회자와 신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같은 사기꾼, 범죄자가 단지 '개신교도'라는 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이 되도록 한 수많은 개신교도들은 이제 자기 발등을 찍어야 합니다. 그런 통절한 자기반성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제 다시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를 선택하고, 다시 윤석열을 선택한다는 건,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에서 아무런 비판과 반성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직업별 성범죄 1위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매우 불명예스럽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공식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던가요? 말로는 사회의 소금이 되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나쁜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목사가 존재하는 '개신교'는 한국 사회 발전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이명박은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써먹은 악질 가운데서도 악질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32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사라졌고,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또 20조 원의 세금을 탕진했습니다. 이 국민의 돈은 이명박 측근에게 돌아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들여 환경을 망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고, 환경감수성이 무딘 것 또한 '보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6 교수님께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까닭은,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에서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인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찾아보시는 정보의 대부분을 소위 '보수언론'에서 얻고 있는데, 이런 편향이 정보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조선일보는 폐간시켜야 하는 대상입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친일, 매국을 했으며 ‘천황폐하 만세’,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른 반역자들입니다. 보수가 친일매국, 반공을 용인한다면 그것이 애국자이고 ‘보수’입니까? 윤석열을 두고도 객관의 사실을 외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 단지 문재인정부가 싫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간을 지지한다는 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윤석열은 그 자신도 이미 심각한 범죄혐의가 있고, 그의 아내도 논문 표절 문제와 경력 위조, 주가 조작 혐의 등 온갖 파렴치한 범죄혐의가 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장모는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법의 처벌을 받고 감옥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조국 교수의 가족에게 적용해 본다면, ‘보수’의 입장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악의적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조국 교수의 아내가 윤석열 아내와 같은 혐의를 가졌다면,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조국 교수의 장모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분통을 터트리겠습니까? 윤석열은 조국 교수와 그 가족을 멸문할 정도로 잔혹하게 학살한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을 객관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 내용을 보니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의 당원에게 큰 지지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심리를 살펴보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자 박정희와 육영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신들의 딸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심리적 동기화가 있었기에,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어도, 박근혜가 무능하고 불법을 저질러 탄핵당해 감옥에 갔어도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60대 이상 세대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이성적, 지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닌, 감정과 감성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반드시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나라의 미래를 넓고 멀리 바라본다면 이런 감정적 대응과 근시안적 판단은 분명 우리 사회, 성장하는 청년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7 교수님께서는 이재명 후보를 두고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안타까워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과거 대통령을 선택하신 것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안목-최소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그 증거이고, 교수님의 정치적 눈높이가 낮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몹시 가난한 화전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도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고, 국민학교를 마치고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어릴 적, 이재명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셨으니 이재명 후보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실 걸로 압니다. 반면 윤석열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줄곧 금수저로 자랐습니다. 사회학에서 '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부자와 지배자의 논리를 옹호)하는가'를 두고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오로지 먹고사느라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올바른 역사, 정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지한 상태에 머물 확률이 매우 높고, 무지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도 대학에 들어가 깨우치기 전까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광주5.18민주화투쟁'을 보고는 사회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서거'했다고 슬퍼하며 일기장에 쓴 걸 기억합니다. 그때 제 나이 불과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공장 노동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웅변을 듣고 인권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한 사람의 눈물겨운 생존의 분투기이자, 무지에서 각성으로 이어지는 올바른 역사 속 인간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엄격한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보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스스로 엄격하고, 부끄럼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삶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보수'보다는 '진보'가 교수님과 더 잘 어울립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돈과 권력을 향해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내용과 성남시장으로 당선되어 행정을 펼친 것, 경기도지사로 경기도의 행정을 펼친 것을 객관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시고 평가해 보시길 권합니다. 과거 성남시장이었던 자들과 경기도지사가 벌인 짓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를 망치고, 개인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뇌물을 받아 먹은 것은 현 '국민의힘' 쪽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객관적 증거와 자료를 외면하면서까지 훌륭한 행정을 펼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보수'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면,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루합니까. 8 이제 윤석열과 이재명의 실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사회를 개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고, 대통령의 실력과 능력이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이고, 대통령을 둘러싼, 즉 대통령이 임명한 가까운 인재들이 대통령의 행정 목표를 위해 실무를 집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한 나라의 틀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실질적 요소입니다. 윤석열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그 뒤로 약 26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회를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윤석열은 기본 상식과 지식,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이 거의 없는, 무지와 무식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 혼자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뽑아 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있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지 ‘권력’ 그 자체를 탐욕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갖습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가장 큰 차이는,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재명은 ‘권력’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마구 휘두를 생각만 하는 윤석열은 전두환, ‘광주민주화운동’ 발언 등을 종합할 때, 그 자신이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좌우의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자로, 오로지 한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역할을 엉터리로 했다면 지금 전국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윤석열 후보는 조국, 추미애 장관에게 항명하고, 검찰을 사조직화해서 징계를 받게 되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기존 정치인에게 식상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만큼 ‘보수’ 진영에는 능력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검사 26년의 경력말고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이나 정치력, 정치, 행정철학에 관해 최교수님께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윤석열을 객관적으로 검증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도 윤석열은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만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미 박근혜가 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될 때도 이명박과 경쟁하면서 이명박에게 졌고, 박근혜의 실력이 아닌,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불쌍한 자식’ 코스프레로 노인 세대의 감성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지한 박근혜는 최순실의 수렴청정의 허수아비, 괴뢰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고, 지금 감옥에 갔습니다. 윤석열은 그런 박근혜의 무지, 무식과 윤석열의 아내의 수렴청정, 전두환의 폭력적 독재가 결합해 박근혜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지지하시겠습니까? 9 최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보수’의 개념은 ‘건강한 애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보수’의 행태를 잘 보시면, ‘건강한 애국’이 아닌, 극우 파시즘과 천박한 양아치가 결합한 망나니의 모습인 걸 아실 겁니다. 교수님이 그런 집단을 지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보수’는 무엇보다 상식과 합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걸로 압니다.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성조기와 일장기, 이스라엘국기를 흔들며 문재인정부 타도를 외칩니다. 오로지 문재인정부가 싫다는 이유로 친일매국도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입니까? 대형교회 목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정부를 비난하고 직접 정치에 개입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들이 문재인정부를 ‘빨갱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건 아무 근거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부익부빈익빈, 강자독식, 권력과 금력이 결합한 강자카르텔, 부패카르텔을 형성해 사회의 부를 독식하려는 자들이 깨끗하고 합리적인 정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지하는 ‘보수’ 집단인 ‘국민의힘’의 역사적 태동과 성장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면 결코 그들을 지지하지 않으실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이미 어릴 때부터 개신교도로 성장하신 것이 교수님의 정체성을 구성했으므로, 그걸 부인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브로락사스의 알’처럼, 진정한 자기 개혁은 미몽의 세계에서 깨어나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합니다. 이승만 이후부터 박근혜까지 이어온 ‘국민의힘’의 과거는 독재, 쿠데타, 무능의 정부였습니다. 이건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런 정당의 후보로,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을 다시 공포와 독재,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함량 미달의 천박한 후보입니다. 교수님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성장, 발전시킨 집단이 누구입니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흐름이 ‘국민의힘’ 쪽 흐름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의 확대, 경제 성장, 인권, 환경, 복지, 예술의 성장을 이끌어 갈 적임자가 바로 이재명 후보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면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고,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면 미래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올바른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3-11-08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 1 오늘은 하루 온종일 쉰다. 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쉰다. '쉰다'는 '쉬다'의 현재형으로, 무언가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쉬는 날'은 일하지 않는 날을 뜻하며, '쉬는 곳'은 편하게 있는 장소를 말한다. '쉴 틈이 없다'는 매우 바빠서 한가한 틈이 없다는 말이고, '편히 쉬세요'는 몸으로 움직이는 행동(일, 노동) 뿐아니라 복잡한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기운을 부드럽게 다스리라는 뜻이다. 반면, '밥이 쉰다', '음식이 쉰다'처럼 음식이 부패하는 과정의 단계를 뜻하기도 하며, 소리를 많이 지르거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거칠거나 잘 나오지 않는 걸 '목이 쉬다'고 한다. 무엇보다, '쉬다'는 '숨을 쉬다'로 완결한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쉬는 것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며, 숨을 쉬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생명체의 정체성을 잃는다. 나도 지금 숨을 쉬고 있어,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생각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숨을 쉬는 건 살아가는 근원의 활동이지만, 한편 음식이 상하는 과정처럼, 생명 활동의 노화가 진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쉬다'의 활용이 생명 활동과 음식물이 상하는 과정을 함께 보고 있다는 점에서 선조의 지혜가 놀랍다. 2 페이스북에도, 대형 커뮤니티에도 온통 보기 싫은 내용만 올라온다. 크게 두 가지다. 굥, 콜걸, 그 일당이 저지르는 온갖 악다구니와 파렴치와 야비와 뻔뻔함이 그것이고, 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틀린 페미니스트의 갑질과 개혁을 비웃고 자기 개인의 출세와 영리만을 추구하는 양아치들이 벌이는 극도의 혐오스러운 행위가 그것이다. 그들의 욕망과 욕구와 탐욕과 이기와 질투와 비루함의 결과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들이 처참하게 (정치, 사법적으로) 학살당했고, 이제 개혁을 주장하는 최강욱 의원을 살해하고 있다. 실력도, 능력도, 상식도 없는 비루한 것들이 얄팍한 권력을 잡자 동료를 학살하고, 적들과 손을 잡고 개혁을 질식시키고 있다. 너무 혐오스러워 구역질이 나온다. 무능한 자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마치 어린아이가 총알이 든 총을 가진 것처럼, 자기 제어, 통제를 하지 못한다. 비로 직전의 정부가 많은 부분 잘 했고, 또 많은 부분 잘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악하거나 야비하거나 천박하지는 않았다. 지금 권력을 잡은 자들은 무능하고, 멍청하며, 사악하고, 야비하고, 천박하다. 올바른 역사관, 정치관, 세계관이 없으니 국가를 올바르게 운영할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하고, 주변 강대국의 전술에 휘둘리며 국가의 이익을 뺐기기만 할 뿐이다. 무능하고 멍청한 권력자에게서 권력을 뺐어야 한다. 마치 총을 든 어린아이에게서 총을 뺐는 게 당연하듯. 3 백수가 이렇게 피곤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힘든 나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하던 글쓰기 강의도 하나가 끝나고, 이제 마지막 강의만 남겨두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도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나, 참여하는 자체로도 신경 쓸 일이 있고, 즐거운 한편 힘들기도 하다. 여기에 끝이 없는 집안 일과 안팎으로 소소하게 신경써야 하는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런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간다. 이럴 때 부르주아가 부럽다. 돈이 많으면 돈으로 사람을 사서 내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나 자랐으니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해서, 자본가, 부르주아 아니면 노동자 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고, 확률통계상 90%에 해당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일테다. 내가 만약 10%에 속하는 자본가, 부르주아였다면 여기서 이런 한심한 말이나 늘어놓고 있지 않을텐데. 이상적 사회주의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루 4시간 사회를 위해 노동하고, 나머지는 나 자신의 창조적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 모두가 고르게 평등하고, 빈부가 사라지고, 문화, 예술이 꽃피우고, 자본주의 폐해인 경쟁, 이기, 착취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에서 연애, 오락방송이 아닌,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와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즐거운 토론으로 격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라면. 4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옳고 그름의 가치가 뒤섞이며, 상식과 윤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세상이다. 과거에도 그랬다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지금이 가장 심각하다. 경제 성장으로 나라와 개인의 부가 증가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산하고, 과거에는 무심코 넘어가던 인권의 문제가 매우 세부적으로 나뉘면서, 각 세대, 집단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건 바람직하고 당연한 역사의 발전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편협, 악의, 이기, 무지한 자들의 선동과 만행으로 고결한 가치가 훼손되고, 더럽혀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소수자 인권, 페미니즘이 약자의 무기로 작동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해치는 흉기가 되는 꼴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축소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옥석을 가려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사람이 너무 많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정확히 인지해야 하며, 그 방해물을 빠르게 제거하는 것도 개혁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5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세상이 역겨울 정도로 참담하고 한심할 때, 나는 조용히 침잠한다. 책 읽고, 영화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세상으로 난 문을 닫는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존재 의의가 있지만, 그 사회가 추잡하고, 역겨울 때는 잠시 몸을 숨길 필요가 있다. 다만, 몸을 숨길 수 없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힘들과 괴로운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카타르시스 방법이 있을 걸로 믿는다. 일상을 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건 지독한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집안 정리, 청소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당연하면서 치유의 시간이다. 마음 통하는 가족, 친구, 이웃과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수다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시간 외에 그저 조용히 침잠하는 나날이지 않을까. 정치가 개인의 삶을 옥죄고, 불행하게 만들 때, 과거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졌지만, 지금은 모두 두더쥐처럼 땅속으로 숨는다. 그런 비겁이 권력의 만행을 부추기고, 악행을 용인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는 이기적 인간들이 싫다. 다른 사람의 피와 땀에 기생하는 자들, 열매만 따먹으려는 이기적이고 야비한 자들이 싫다. 그런 자들을 위해 내 피와 땀을 흘리기도 싫다. 6 누리호 2차 발사를 생중계로 봤다. 누리호가 힘차게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에게는 우주가 있다.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살고 있는 미미한 존재다. 무엇보다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 칼럼
    • 백건우
    2023-01-08
  • 르네 마그리트의 '생존자'
    르네 마그리트의 '생존자' 이 그림만 보고는 어떤 작가가 그렸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나도 꽤 안다고 생각했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란 걸 알았을 때, 약간 충격 받았다. 이 작품은 보자마자 느낀 생각이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닌 듯하다 였다. 하지만 다시 보고, 조금 더 생각하니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품이었다. 피카소는 두 편의 '학살' 관련 작품을 그렸는데, 하나는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다.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는 선거에서 승리한 인민전선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프랑코는 독일 히틀러에게 도움을 청했고, 히틀러는 폭격기를 보내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곳이 바로 '게르니카'였다. 1937년 4월 26일, 게르니카는 독일 폭격기에서 쏟아부은 폭탄으로 소멸했고,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이때 학살당했다.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던 작은 시골 마을에 당시 독일에서 개발한 최신 무기를 실험하면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히틀러와 프랑코의 만행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당시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스페인 정부(인민전선)는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피카소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진 학살을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고, 이 참혹한 역사를 그림으로 기록하겠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게르니카'가 되었다. 또 한 작품은 '한국전쟁'과 관련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완성한다.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이다. 1937년 '게르니카'를 그릴 때 피카소는 공산당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고 공산당원이 된 피카소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반전을 주제로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그렸다. 이 작품이 '미군이 한국인을 학살'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카소도 후기 작품이 '초현실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피카소의 초기, 중기, 후기 작품들의 변화는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도 초기, 중기, 후기 작품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데, 두 사람의 작품의 변화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비슷한 면이 있다.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모두 공산당원이었으며, 피카소는 프랑스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공산당원이자 예술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이 '선전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고, 예술의 독창성, 작가의 자유로운 작품 세계, 제한 없는 창작의 영역과 시도를 그 어떤 작가보다 강렬하게 추구했다. '반제 반파시즘'과 '일당 독재(스탈린)'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던 사람이 조지 오웰이었고, 그가 '동물농장'이나 '1984' 같은 뛰어난 소설로 독재와 반지성을 비판했다면,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방식으로 현대(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작품은 'The Survivor', '생존자'라는 제목이다. 만약 이 그림에 제목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그림에서 어떤 걸 발견하고,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모든 창작물에서 '제목'은 또 하나의 '상징'이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그 자체로 철학과 언어학의 주제가 되었다. 미셸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작품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이 작품은 1950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전시회를 위해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이 전시되면서 평론가와 관객들 사이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배경은 벽이다. 그것도 어느 평범한 가정집의 거실 또는 안방 같은 공간이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는 전실일 수도 있다. 위쪽으로는 꽃무늬 벽지가 가지런하고 단아하게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는 양각한 나무 판자가 매우 엄격한 문양으로 반복하고 있다.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는 총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고,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오른쪽에 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개머리판이 있는 바닥은 원목마루가 깔려 있고, 총기에서 흘러내린 피가 마루에 흥건히 젖어들고 있다. 이 그림만 보면, '초현실주의'가 아닌, '리얼리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초현실'로 보이는 대상 또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리얼'한 작품에서 '초현실'을 느끼게 되는 요인은 무엇이고 왜일까. 우선, 평범한 일상-가정집의 벽면-에 비현실적 요소-피묻은 총기-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이 곧 '초현실'적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런 장면을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그림 또는 사진 또는 영상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의 재현이며, 따라서 현실의 초월한다. 또 하나, '생존자'는 누구인가. 관객은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작품 제목이 하나의 '상징'인 이유가 여기 있다. 관객은 작가가 부여한 작품 제목을 받아들이게 되고, 제목의 영향을 받아 자의적 해석을 한다. '생존자'는 누구인가. 이 총 자체가 '생존자'인가, 아니면 이 총을 가져온 어떤 사람이 생존자인가. 이 총은 사람을 상징하는 '의인화'한 대상은 아닌가. 저 피는 누구의 피일까. 이처럼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르네 마그리트는 자기 작품에 상징을 부여하는 걸 경계하고 경고했다. 즉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라는 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모든 '초현실주의'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호기심을 갖고, 현실에 관해 의문을 던지고, 질문하는 것은 관객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1차, 2차 세계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다 자살한 불우한 과거가 있지만, 좋은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나이 들면서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해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할만큼 진보적 태도를 가졌다. 그의 작품 세계에 트라우마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 작품 '생존자'는 세계 전쟁을 겪은 뒤 그가 가졌던 감정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3-01-08
  •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 대통령의 인식과 주관은 뚜렷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룬 공과 과를 잘 알고 있었고, 훌륭한 성과가 묻힌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걸 느꼈다. 원칙주의자이자 합리적 보수의 인식을 가진 대통령은 한편으로 주관적 확신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주길 바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살해당한 이후, 그 과정과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노무현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한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이명박은 대통령 재임시절 분명히 범죄(뇌물, 횡령)를 저질렀고, 지금 죄값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보다 더 나쁜 것들이 일부 정치검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할 때, 창밖으로 내려다보며 비열하게 웃던 검사들을 보면서, 저들이 대통령을 발가락의 때처럼 여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그런 정치 검찰을 때려잡고, 속시원하게 검찰 개혁을 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내정할 때, 비로소 검찰 개혁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상관인 법무부장관을 살해하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침묵할 때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했고, 특히 K-시리즈로 이어지는 팝, 영화, 춤, 패션, 음식 등 한국 문화 전반의 눈부신 성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 정치와 개혁 과제는 미진했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를 탄핵하고, 촛불정부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국정과제는 '개혁'이었다. 그것도 강력하고 단호한 개혁이었다. 가장 먼저 검찰을 개혁하고, 언론을 개혁하는 것을 촛불시민은 바랐다. 진심으로 바랐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정치 검찰과 그들의 개들에게 난도질 당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뒷전에서 침묵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믿었다. 분명 무언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한 차원 높은 수순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갈갈이 찢기는 와중에, 촛불시민들이 안타까움과 분노로 치를 떨며 다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고, '조국'을 지키는 것이 곧 검찰 개혁이라는, '조국'이 개혁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순간에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본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문재인을 과대평가했거나, 내가 가진 프레임에 맞춰 생각했거나, 나의 개혁의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사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점잖은 사람이고, 보수적 인물이며, 지극히 합리적 인물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증오에 가까운 복수심과 뿌리를 뽑아야 하는 개혁의 의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몰랐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노회찬 의원이 자살당하고, 박원순 시장이 자살당하는 걸 보면서, 적들에게도 똑같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해주길 바랐다. 자신의 오른팔인 조국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터이고, 검찰과 언론의 발호를 막을 계획을 세웠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의 오른팔이던 장군이 전장에 나가 적진도 아닌, 아군의 진영에서 무수한 배신자들에게 난자당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면, 그게 훌륭한 지도자일까. 오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는다. 그는 자신이 모시던 노무현 대통령의 비참한 죽음도 외면했고, 자기의 오른팔이던 조국 민정수석, 법무부장관과 그의 가족의 정치적 살해도 외면했다. 자신이 아무리 '원칙주의자'이고, '법치주의자'라고 강변해도, 우리 촛불시민이 바란 건, 그런 '원칙'과 '법치'가 아니었다. 칼을 든 범죄자 앞에서 '원칙'과 '법치'만 말하고, 당장 살해당하는 자기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고, 믿고 따르거나, 의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촛불시민이 대통령제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인 '대통령'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바란건 대통령이 권력을 휘둘러 날카롭고 확실한 개혁을 하길 바랐다. 경제, 외교, 문화를 잘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경제, 외교, 문화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반목과 불신과 증오와 폭력이 난무했다는 걸로 기억한다. 정치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을 살해했고, 노회찬 의원을 살해했으며, 박원순 시장을 살해했다. 그리고 이제 그 피묻은 칼날은 점잖기만 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할 것이다. 그때,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탄핵했던 시민들이 과연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줄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저렇게 난도질당할 때 침묵했던 문재인 대통령, 억울하게 살해당한 노무현 대통령의 원한을 갚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정치검찰과 쓰레기 언론을 개혁하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 나는 더 이상 문재인 대통령을 '존경'할 마음이 없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퇴임 후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자신을 믿고 따르던 장수들을 모른체 하는, 그런 대통령이 문재인이었다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존경의 마음을 철회한다.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 칼럼
    • 백건우
    2023-01-08
  •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층간 소음 한국은 독특한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나라다. 집단 주거시설인 아파트와 공동주택이 전체 주택의 77%에 이를 정도로 공동주택의 비율이 높다. 아파트 비중이 높은 이유는 1) 인구의 도시 집중화, 2) 주거 공간의 협소화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데, 여기에 한국에서 유독 특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자산 증식 가치'로써의 기능을 한다는 점이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고 심각한 현상이며, 부동산 가격의 폭등, 폭락은 집권 여당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힐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한국에서 산업화가 본격 시작된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부동산은 단 한 번도 가치가 하락한 적 없는 유일한 자산 가치여서 '부동산 신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정부는 물가 인상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은 통제하는데 실패했다. 물가 인상과 임금 인상율보다 훨씬 높은 상승율로 부동산 가격이 급증하면서, 주택 특히 '아파트'는 재산 증식 수단 가운데 가장 독보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주택 공급 공약은 모든 정부에서 핵심 공약으로 자리잡았고, 1990년 이후 해마다 10만 가구 이상 아파트를 공급했지만, 여전히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아파트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서울에서 신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만 해도 몇억 원은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건,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아파트) 정책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렇게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높은 경쟁을 통해 겨우 입주한 사람들의 주거 만족도가 입주 전보다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가족이라면 당연히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겠지만, 아파트의 여러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부가 서비스 등의 기능은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주지만, 그런 모든 장점을 한번에 상쇄하는 것이 바로 '층간 소음'이다. 층간 소음은 두 가지 심각한 사회 현상을 드러낸다. 실제 층간 소음으로 인해 아파트 주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과, 층간 소음을 해결하지 못한 부실 시공이 그것이다. 결론부터 보면, 층간 소음은 부실 시공의 결과다. 그 결과로 인해 입주민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고, 갈등이 심각해지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전국에 있는 수백만 채의 아파트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층간 소음 문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적어도 한번 이상은 겪어 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점이다. 평당 1천만 원부터 5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에 살면서 층간 소음으로 전전긍긍하고, 늘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다녀야 하며, 어린 자녀가 마음 놓고 걷지도 못하게 막아야 하는 불안함으로 생활하는 걸 참고만 있다는 것도 매우 이상하다. 그러다 아래, 위층에서 층간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기라도 하면 사소한 다툼이 점차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오해와 보복 심리가 발동하면서, 단지 아파트 분양을 받거나 매입하거나, 전월세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일 뿐이 이웃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만다. 층간 소음이 발생하도록 시공한 건설업체의 부실 시공도 문제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부의 방임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아파트를 짓는 업체의 시공 과정을 꼼꼼히 감리, 감시하고, 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건축 규격을 엄격하게 만들어, 건설회사가 그 규격을 지키도록 했다면 수많은 아파트 입주민이 고통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층간 소음은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이윤 추구의 극대화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따라서 층간 소음 문제는 아파트 입주민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아파트 사는 이웃끼리 얼굴 붉히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층간 소음의 본질적 문제에 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고, 이 문제를 다루는 기관, 단체가 거의 없는 것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원인이다. 층간 소음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해결 방안을 제시한 경우도 있고, 신축 아파트들은 과거 아파트보다는 층간 소음을 없애려는 정부의 규제와 과학적 방법을 도입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기도 하다. 층간 소음을 확실하게 없애려면 기존의 아파트 구조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바로 건축 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건설회사의 이윤이 줄어들게 되므로 건설회사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신공법을 빠르게 도입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각 층의 바닥(천정) 두께를 2005년부터 210mm로 의무화하고 있지만, 층간 소음을 보다 확실히 잡으려면 두께가 300mm는 되어야 하며, 여기에 별도로 완충재를 설치해야 한다. 완충재 위에 다시 기포 콘크리트 40mm가 깔리고, 그 위에 온수 파이프 배관과 몰탈 마감, 원목 바닥 마감재로 마무리한다. 오래 된 아파트는 바닥(천정) 콘크리트 두께도 얇고, 완충재도 설치하지 않아 층간 소음이 더 심한데, 이때 천정에서 흡음재를 설치해 층간 소음을 줄이는 기술도 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아파트 입주민들이 힘을 모아 정부와 건설회사를 압박할 때, 층간 소음 문제는 보다 빨리 해결될 것이다. 층간 소음은 구조적 문제지만, 당장 아래, 위층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날마다 부닥치는 심각한 일상이다. 정부의 해당 부처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건설회사와 함께 층간 소음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2-02-06
  • '생수'의 상품화 문제
    '생수'의 상품화 문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어리석은 양반을 놀리는 풍자의 재미라도 있지만, 인류 공동의 소유물인 지하수를 특정 기업이 뽑아 올려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이윤을 가져간다는 사실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능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상품화'는 자본의 유전자와 같은 것이고, '상품화'의 목적은 '이윤'에 있다. 즉, 자본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 - 물질, 서비스, 추상적 가치 등 - 을 '상품'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말은, 봉건제가 끝장난 원인도 기술의 발달에 있다는 뜻이다. 즉,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탄생하면서 그동안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던 섬유 가공 산업이 기계를 활용한 반자동화, 대량 가공화하면서부터 본격 '자본주의 체제'를 갖췄다고 경제학자들은 설명한다. 수공업 노동자들은 '길드'를 만들어 자영업자의 시작이 되고, 농촌에서 귀족 영주의 땅에 농사를 지어먹거나 양을 치던 농부 가족들은 '강제로' 도시로 이주해 공장노동자가 된다. 귀족 영주들은 더 많은 양을 키워 양털을 판매하는 한편, 스스로 면직 공장을 지어 섬유를 생산하는 자본가로 변신한다. '자본주의'는 몇 가지 현상이 이상적으로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발생한 특이한 현상인데,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관찰하면서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으로 발생하는 사회 체제라고 규정했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18세기는 유럽 뿐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19세기 시작 단계에서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이었지만 불과 100년 만에 두 배인 20억 명이 된다. 이것은 과거 1천 년 즉, 서기 1000년에서 서기 1800년 사이에 증가한 인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많은 숫자였다. 인구 증가가 갖는 의미는 거주 집단의 밀집, 대형화, 소비의 대량화로 특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거나 상업이 활발한 장소로 모이는데,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면 마치 원심력을 가진 것처럼, 도시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렇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 마침 '증기 기관'이 발명된 것이다. 기계, 기술의 발달은 18세기 이전부터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으나, '증기 기관'의 발명과 실용화는 '질적 전환'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다. 같은 시기에, 석탄이 주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탄광 개발과 탄광 노동자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증기 기관의 발명, 석탄의 주 연료화 같은 중요한 사회 현상이 우연히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기술 문명의 발달은 아주 조금씩 누적되어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도약하게 되는데, 증기 기관의 발명이 자본주의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전부터 자본주의 맹아는 싹 트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근원적 질문으로 돌아가서, '석탄'도 인류 공동의 자원인데 왜 소수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주고 캐낸 석탄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독차지하는 것일까, 질문할 수 있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적 폭력 - 전쟁, 식민지, 약탈, 노예 매매 등 - 으로 자본을 축적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나면 제조, 교역, 상업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이때 자본(가)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데, 유럽에서 봉건제 당시에 이미 왕족과 귀족, 종교 집단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으나,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문명이 충분히 열리지 않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개화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자본의 구성과 함께 '인신의 자유'가 있었다. 즉, 농노로 묶여 있던 민중의 처지가 자유로워지면서 '노동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는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전이었고, 자본가의 출현은 귀족, 부르주아, 길드의 자영업자, 상인 등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자본'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책을 썼다. '노동 시간'에서 이윤이 창출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때는 이미 수많은 자본가들이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한편,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경쟁자인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봉건왕조의 소멸과 근대국가의 탄생 사이에서 '자본가'가 출현하고, 이들은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먹고, 입고, 자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물론이고, 석탄, 기차, 선박, 도로 같은 국가 기간 산업에 해당하는 분야에서도 '자본'은 눈부시게 활약했다. '자본'은 국가와 다르게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며, 생산성이 높았고, 자체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상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양면성은 인류의 삶을 빠르게 향상시켰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있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지구 자원을 파괴하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추구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가 본격 가동하고 200여년 만에 지구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20세기 끝까지, 자본은 무한 경쟁,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최선이라고 주장했고, 대중 역시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혜택을 생활에서 느끼며, 밀려드는 상품의 물결을 환영했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빠르게 뿌리내리고,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강력한 동력은 '욕망의 자유'와 '경쟁의 보편화'라는 혁명적 시대 상황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자본주의의 선봉에 선 부르주아는 봉건제를 깨뜨리고, 농노를 해방하며, 경제 체제를 바꾼 혁명적 역할을 했다고 마르크스는 이들 부르주아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쏘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거나 경제 분야만큼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고도화하지 못한 상태 즉 봉건적 환경과 낮은 생산성,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제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려면 내적 모순이 폭발하기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 혁명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모순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봉건제 내부에서 발아해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봉건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면서 본격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에 불과하다. 인류가 하나의 체제를 뛰어 넘는 시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짧아지고 있지만, 봉건제 1천년에 비하면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한동안 인류를 지배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다시 '생수'로 돌아와서, 자본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기준은 '이윤'에 있다. 물과 공기처럼 인류 생존의 절대 요소를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아무리 물질의 화신인 자본이라 해도 정도를 넘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식수'를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근대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해야 할 의무다. 정부는 국민의 의식주를 기본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국가는 부여된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다.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제약이 있기도 하고,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정부와 자본(가) 집단의 힘겨루기 또는 담합의 결과에 따라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동차 도로를 건설할 때 정부는 국가예산만으로 하지 않고 민간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민간자본이 들어간 자동차 도로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통행료'를 부여하게 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그 도로를 다니면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예산을 적게 들이면서 도로 건설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민간자본의 투입을 허용하는 것인데, 그로 인해 지분을 투자한 민간자본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보장받게 된다. 어느 단계에서는 이렇게 정부와 민간자본이 함께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민간자본 참여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정부(권력)와 자본의 결탁일 확률이 높다. 생수의 판매도 같은 논리로 볼 수 있다. 식수가 매우 부족한 나라에서는 정부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 국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때 모든 가정에 식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일정 기간 대량으로 물을 공급하는 관정을 만들어 그 물을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생수'의 상품화는 식수의 오염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건 다시 정부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함에도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국민이 충분히 믿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안)하면서 불신을 자아낸다. 자본은 정부의 무능 또는 국민의 불신을 파고 들면서 생존의 절대요소인 '물'을 상품화한다. 이와 똑같은 논리로 '공기'도 상품화했다. 상식 있는 정부라면 자본이 획책하는 '물의 상품화'를 승인하지 않겠지만, 자본(가)은 한 국가의 체제를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의 총체여서 국가(정부)라 해도 자본의 공격을 방어하기 힘겨운데, 대개의 국가(정부)는 '자본위원회'(마르크스)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 권력은 자본(가)에 의해 장악된 경우가 많아 '상품화'의 파상적 공세를 막기 어렵다. '상품화'는 자본의 일방적 행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을 구매, 수용하는 소비자 대중이 존재하고, 그들이 '상품'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품화'는 완결된다. 이때 자본(기업)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마케팅'을 통해 대중에게 접근한다. 자본(기업)의 마케팅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국가권력이 인민을 향해 선전, 선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마케팅하고, 국가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선전, 선동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세계 생수 시장은 100조원이 넘었으며, 물의 양은 3,857억 리터가 넘는다. 자본(기업)은 물이 부족한 나라, 상수도 시설이 미약한 나라 등으로 진출하는 한편, 상수도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정부에서도 상수도와 차별화 전략을 통해 '건강한 물', '안전한 물'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자본(기업)은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의무를 가로 채, 생존의 절대요소이자 공공재인 '물'을 상품화함으로써,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것은 물론, 물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의 과다한 발생으로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민(대중)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싸고 품질 좋은 식수를 마시지 않고, 훨씬 비싼 금액을 지불하며 '생수'를 사 먹게 되면서 필요하지 않은 지출이 발생하고, '생수'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가해자가 된다. '생수'의 상품화는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 인정되어야 하며, 당위성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거의 대부분 '생수'가 아닌, 정부가 공급하는 상수도를 마실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자, 지구 환경을 지키는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본(기업)이 물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올리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상황이며, 오직 자본(가)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위일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12-31
  • 손석희를 떠나보내며
    손석희를 떠나보내며 한동안 칩거했던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오늘 MBC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앞으로도 '사장'에 준하는 직책으로 '순회특파원'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다고 하니, '특파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를 두루 돌아볼 예정으로 보인다. 오랜 동안 한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손꼽히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손석희는 과거 MBC의 언론노조에서 언론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의 선두에 섰던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손석희 씨를 알게 된 이후-1990년 무렵부터-줄곧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의 언론활동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는 '시선집중',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진행자였으며, 언론인의 귀감이자, 모범이고, 전범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손석희가 MBC를 떠나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그의 이적을 두고 사람들은 설왕설래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훌륭하게 JTBC에서 뉴스는 성공적이었고, 보도 내용도 중립을 유지하며, 바람직한 언론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끝날 때까지, 손석희와 JTBC는 한국의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서 그나마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손석희와 JTBC는 촛불시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손석희 개인도 크고 작은 스캔들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그때문인지 JTBC의 보도 내용도 점차 우려스러운 형태로 변질되어갔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되, 어떻게 변하는지, 중심을 잃지 않았는지, 시류에 영합하거나, 영혼이 타락했는지, 고루하거나 보수적으로 바뀌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하며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론인 손석희'를 그동안 봤을 뿐이고, '개인 손석희'에 관해서는 거의 모른다. '개인 손석희'는 후배 언론인과 술을 마시다 싸우고, 성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의 협박을 받고 돈을 송금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손석희가 과거와 달리 수구 꼴통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손석희라는 강력한 사회적 힘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영향력을 사회와 정의, 진보를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에 결정적 한방을 날렸지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당하는 박해와 수모에 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오히려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물결 위에 잠시 나타나는 물방울'일 수도 있고, 물결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가 끝나면 영웅도, 물방울도, 나뭇잎도 사라지게 된다. 손석희는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과 함께 타올랐다 사라지는 존재였다. 거기까지가 손석희의 사회적, 역사적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손석희는 여전히 JTBC에 몸담고 있으며, 월급을 받으며 세계여행을 할 것이고, 돌아와서 책을 쓰고, 대학강단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손석희는 어쩌면 '유시민'을 롤모델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유시민도 강하면 부러진다는 생각을 나이들면서 하게 된 사람이다. 유시민 같은 강성 운동권이었던 사람도,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손석희도 과거에는 언론 민주화 투쟁을 가열차게 했으나, 이제는 한국사회의 1% 기득권이 되었고, 세상이 더 이상 변하지 않아도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보수화한 것이다. 그런 손석희를 이제는 떠나보낸다. 그가 살았던 시대,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기였고, 민주화투쟁의 시기였으며, 경제가 발전하고,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경제적 발전이 중요하던 시기였다. 손석희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었으나 언론인이었고,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이름을 얻었으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그가 얻었던 크고 강한 이름을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쓰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깝지만,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마땅히 이해하게 된다. 이제 '개인' 손석희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시기 바란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종전 선언’ 효과와 국내외 반응 예상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체스코 교황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바란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프란체스코 교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견에 매우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는 2022년 5월 9일까지니까, 지금부터 꼭 6개월 남았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 선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공개했다.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과 관련해서는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시도한 바 있으며, 이때 미국과 중국이 반대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현재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전’과 관련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종전 선언’을 해도 남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종전’은 남북한 관계에 상징적 의미와 함께 평화 협정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종전 선언’과 관련해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정리했다. 이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 1. ‘종전 선언’ 자체 효과 1 ‘종전 선언’의 효과 두 가지는, 1) 남북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게 되고, 2)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임기 말까지 지속되어 레임덕 현상이 사라지는 것, 3) 종전과 북한 문제에 관한 프레임을 민주당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1)의 경우,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남북한 문제에 관한 깊은 논의를 한 바 있고, 남북한의 기본 인식을 확인했다. 즉, 남북한은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남북한 교류의 필요성을 공감했으며, 남북한이 평화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문재인·김정은 두 수뇌의 회담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것은 미국 국내의 정치 상황 변화 –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실패 – 와 미국 매파의 강경한 대북 입장의 고수, 한국 내부의 보수 진영에서 일어나는 반발 그리고 일본의 악의적이고 끈질긴 남북한 대화, 교류 반대 로비 등으로 지금까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많이 늦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 든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지금까지 남북문제의 연속선에서 중요한 화두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고, 실질적 효과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차기 정부-이재명 정부-에서 ‘종전 선언’ 카드를 이어받아 실질적 결실을 맺도록 포석을 까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의 경우, ‘종전 선언’ 카드가 아니어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칠 확률이 매우 높다. ‘종전 선언’은 레임덕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영향이 크고 효과 있는 대외 정책이다. 현 정부에서 ‘종전 선언’의 토대를 착실하게 다지는 것은, 다음 민주당 정부(이재명 정부)가 대북 정책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고,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3) ‘종전 선언’ 카드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남북문제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 북한과 관련한 의제, 논의, 협의, 선언, 뉴스 등이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로 북한에 대한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북한이 ‘한민족’이고, 함께 살아야 할 겨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노인 세대는 북한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고, 청년 세대는 북한에 무관심하거나 막연히 싫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북한에 관해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 정부에서 북한과 관련한 사업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는 ‘북한 바로 알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할 때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한 국민이 직접 만나도록 하는 것이다. 2. ‘종전 선언’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 2 ‘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정리하면 큰틀에서 다음과 같다. 1) 문재인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그 지지집단과 지지자들, 2) 반공 이념에 사로잡혀 북한과의 어떠한 교류도 반대하는 반공주의 강경파들, 3) ‘종전 선언’을 결사반대하는 일본과 일본을 지지하는 국내 친일매국노들, 4) 무조건 북한을 찬양하면서 북한의 무력을 신봉하는 정신나간 NL 멍청이들. 여기에서 1), 2), 3)의 집단은 교집합이 많아서 대부분 중복된 집단과 개체들이다. 즉, ‘국민의힘’은 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함께 북한과의 대립, 갈등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거,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비밀로 접촉해 북한 쪽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는 음모를 꾸몄는데, 권력을 차지하려 그들이 규정한 ‘적’과 내통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서슴지 않는 악랄한 행태를 보인 바 있다. ‘국민의힘’은 통일과 남북 교류를 반대하고, 북한과의 갈등과 긴장이 유지되길 바라는 반통일세력으로, ‘종전 선언’ 역시 악착같이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은 50대 이후의 구세대다. 그들은 박정희 독재 시대에 짙은 향수를 품고 있는 집단이며, 전쟁의 공포, 보릿고개, 새마을운동 같은 전근대 국민국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세대로, 이성과 논리, 합리성에 근거해 남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노력보다는 감정, 감성, 경험적 판단으로 북한과의 접점을 거부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이들 가운데는 전쟁(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하며, 설령 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도, 전쟁에 준하는 공포와 고통을 겪은 세대여서, 북한에 대한 근원적, 원초적 공포와 증오를 품고 있다. 여기에 1960년, 4.19혁명 이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후,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세워 공포정치를 한 것도 이들이 북한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다. 전후 20년 사이(1951-1971) 태어난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에 관한 이념을 주입 당했으며, 북한을 괴물로 만들어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키우도록 교육받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진학률은 30% 이하에 불과했고,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 노동운동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산화 이후라고 할 정도로 박정희 독재의 폭력은 한국 사회를 강하게 짓눌렀다.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의 주역들 역시 지식인 사회에서 시작했으며,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운동도 지식인들이 현장으로 뛰어들면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즉, 절대다수의 민중은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폭압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생존을 위해 반독재, 민주주의 투쟁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육 수준이 낮은 대중은 독재 권력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북한을 증오하는 교육만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의 50대 이후 세대는 북한의 실체를 모른 채 공포와 증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보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앞서 있었고, 이런 자신감으로 한국을 깔보고, 무장, 고정 간첩을 자주 내려보냈다. 북한은 무장 부대를 한국에 침투시켜 남한 사회를 교란하고, 박정희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며, ‘무력 통일’에 관한 희망을 70년대까지 버리지 않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전두환은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로 ‘반공’을 더욱 강하게 부르짖었고, ‘평화의 댐’ 같은 사기를 공공연히 벌인다.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은 외환 위기를 겪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지만, 이 어려움을 빠르게 극복하고 2000년대를 맞이한다. 이때부터 시민 의식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반공’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박정희에게 암살당하기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했고, 경제력으로만 보면, 1980년대 이후 한국은 비록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라는 정치적 한계 속에서도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무렵 세계 경제 흐름이 전반적으로 호황이었고, 수출주도 경제체제를 가진 한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기반으로 수출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70년대의 빈곤과 낙후함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김대중 정부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2000년 6월, 북한 김정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은 바로 직전의 정부였던 김영삼 정부에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이 안타깝게 불발된 것에 이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특징과,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남북한의 미래에 관한 밑그림을 그렸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무려 세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다.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역대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은 모두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국민의힘’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종전 선언’을 반대하는 집단 가운데는 ‘개신교’ 집단도 있다. 이들은 철저한 반공 이념을 내세우며, 남북통일을 반대하고, 북한과 교류하는 것도 가로막는 수구 집단이다. 이들의 행태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바탕이며, 한국 ‘보수’집단의 원천이자, 반개혁, 반민주주의 집단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걸림돌이 되는 존재다. 한국개신교의 뿌리는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로 시작한다고 봐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전파되는 경로와 과정을 보면, 평양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구한말 이후 개신교는 주로 교육 사업을 통해 선교 활동을 한다. 초기 개신교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친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망해가는 국가가 할 수 없는 복지 사업을 펼쳤다. 19세기에 들어온 구교(카톨릭)가 조선 정부에 의해 강하게 박해당한 것과 비교하면, 개신교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개신교의 주류 세력은 친일을 선택했고, 극히 일부 개신교도가 독립운동에 개별적으로 참여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북쪽으로 쏘련군이 진주하고, 남쪽에는 미군이 진주해 서로 다른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북쪽의 개신교 집단은 쏘련군과 김일성이 주도하는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북쪽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은 자신을 핍박한 쏘련군과 김일성 체제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고, ‘한국전쟁’은 개신교도들이 ‘반공’을 신념화하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도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단’이 남한의 좌익,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고, 때려잡는데 가장 앞장섰다는 사실만 봐도, 북한 개신교도 집단이 품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강렬한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도 ‘제주4.3항쟁’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고, 제주도민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주체였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이념 대립이 격렬해지고,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개신교 집단은 ‘기독교 정신’과는 반대로 국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집단이다. 지금까지도 개신교 단체는 한국전쟁 전후에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 만행에 관해 단 한 마디의 사죄를 한 적이 없는 것을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이때 대통령인 이승만도 개신교도였고, 경무부장 조병옥도 개신교도였다. 이들 극우 개신교 집단은 이후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를 지지했으며, 독재정권을 미화, 찬양했고, 전두환 군부쿠데타를 지지하고 찬양했다. 또한 서울시와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공공연하게 천명한 이명박과 황교안도 개신교도였다. 지금 광화문에서 태극기, 성조기, 일장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대의 앞장에는 개신교 목사가 있고, 개신교도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50대 이후의 노인들이 반공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어 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들쥐들처럼 쫓아다니고 있다. 4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자생적 북한 추종자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반공’ 대결이 격렬할수록 그에 반대하면서, 북한을 미화하고, 김일성을 우상으로 섬기는 개인 또는 집단이 있었는데,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민족해방(NL)’그룹으로 표출되었다. 북한과 김일성을 추종하는 개인, 집단은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나갔고, 한국(남한)에서는 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과 평등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또한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이 저지른 인권 탄압, 노동자, 학생의 민주주의 운동을 폭력으로 짓밟은 행위, 북한을 그대로 따라 한 ‘새마을운동’ 같은 사이비 사회운동, 일부 자본가, 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이로운 경제 개발 계획 등 박정희에 대한 반감, 분노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북한과 김일성에 대한 찬양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는 반정부 투쟁의 한 방법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김일성의 존재를 우상화하는 방식은 공포의 존재(박정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다른 대상(김일성)을 찾아 이상화하는 사회적, 집단 정신병의 하나다. 건강한 시민이라면, 박정희, 전두환 독재에 맞서 피를 흘리며 싸울지라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하지만 북한(김일성)을 찬양하는 자는 자기가 사는 사회(남한)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다가갈 수 없는(이상적 사회) 북한과 김일성을 이상화하는 것으로 자기의 불안과 공포, 분노를 정당화한다. 북한을 찬양하는 자들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전쟁에서 패한 이후, 남로당 계열의 공산주의자를 ‘미제의 앞잡이’라는 누명을 씌워 김일성이 모두 숙청했을 때도, 김일성이 옳다고 박수를 쳤다. 김일성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폐기하고, ‘주체사상’을 내걸었을 때도, 북한이 정통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봉건주의 국가로 퇴화하는 걸 보면서도, 무비판으로 북한을 찬양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무조건적 신앙’을 요구하는 종교의 신도와 같다. 종교, 신앙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신은 절대적 권위와 힘을 가진 존재이며, 아무 근거 없이 신의 말을 믿고, 신의 권위에 복종한다. 북한(김일성)을 추종하는 자들은 맹목의 종교 미신을 믿는 자들과 똑같은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군사력은 세계6위, 국가경제력은 세계10위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북한 체제가 우월하다고 믿으며, 북한이 한국(남한)을 무력으로 해방 시킬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말하는 ‘종전 선언’이 의미 없다고 주장하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이미 실질적 ‘종전’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은 군사력으로 28위에 불과해 재래식 무기로 한국군과 상대가 될 수 없는 수준이다. 남북한의 경제, 군사력 수준을 객관으로 볼 능력도, 의지도 없는 무지한 인간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것이다. 3. ‘종전’을 둘러싼 주변국 반응 5 ‘종전’은 남북한의 뿌리 깊은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었던 ‘한국전쟁’을 끝내는 상징적 행위다. ‘한국전쟁’도 단지 남북한의 이념 문제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유럽과 미국으로 대표하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쏘련과 중국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 팽팽하게 대립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쟁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충돌 지점이자, ‘냉전’이 실제 전쟁으로 표출한 이념 전쟁이기도 했다.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쏘련, 중국, 일본과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이 개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명백히 강대국의 대리전쟁이자 동북아 패권 전쟁이었으며, 자칫 3차 세계전쟁으로 확산할 수 있었던 심각한 전쟁이었다. 실제 미군을 포함해 UN군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는 무려 25개국에 이른다. ‘한국전쟁’ 발발 원인은, 김일성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일으킨 게 발단이었지만,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쏘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마오쩌둥을 만나 남한을 ‘공산화’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고,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다. 김일성은 남한을 공격하면 남한 내부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해 남한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북한군과 협력하여 남한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이승만은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지식인, 학생, 시민을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에 가입시켰고, 전쟁이 한창일 때, 이들을 모두 학살했다. 이때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에 이른다. 1951년부터 ‘휴전 협정’이 시작되었지만, 정작 한국은 휴전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전쟁은 한국에서 벌어졌는데, 휴전 협정에는 북한, 중국, 미국이 테이블에 앉아 회담을 했고, 주인공인 한국은 배제되었다. 이것은 이승만이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양도한 것에 따른 결과로, 이때 이미 한국은 미국에 복속된 존재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70년이 넘었다. 전쟁 직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군사력 세계 6위의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다. 너무 가난했던 과거 한국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한국은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휴전 협정’은 미국, 중국, 북한의 사령관이 합의했다면, ‘종전 선언’은 남북한 지도자의 결단으로 가능하다. ‘종전 선언’을 둘러싸고 한국의 주변국이 보일 태도에 관해서 알아보자. 6 일본은 2차 세계전쟁의 패전국이고, 핵폭탄을 맞은 유일한 국가다. 나라가 초토화되었다가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급속한 경제 회복, 경제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국의 애완견이 되어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한때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되기도 했다. 일본은 15세기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과 교역했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년, 정유년 전쟁’ 이전에 포르투갈로부터 화승총을 구입하고, 화승총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무력에서 조선을 앞서기 시작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호족들, 지방 토호 세력을 통일하면서, 내부의 불만을 바깥으로 표출시켜 정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과 당시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일본으로 몰려와 항구를 개방하고 교역을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으면서, 가장 가까운 조선을 침략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미 ‘임진년 전쟁’ 이전부터 일본 남부의 바닷가에 살던 토호 세력들 가운데 조선의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와 노략질하는 일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지만, 국가 단위의 전쟁은 ‘임진년 전쟁’이 최초였다. 일본은 명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길을 내달라고 요구했고, 당연히 조선 조정은 일본의 요구에 반대했다. 7년에 걸친 전쟁에서, 일본은 초기 전투에서 기세를 올렸으나, 곧 조선의 반격에 밀리기 시작하며 전쟁은 혼전 상태가 된다. 임진, 정유년 전쟁의 결과, 조선도 지배 계급의 몰락, 경제, 사회의 급격한 변화, 계급 구조의 약화 등 17세기에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원시적 태동과 상인 계급의 출현, 신분제 사회 구조의 변화 등을 겪지만, 조선 왕조는 끊이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 내부의 토호 세력들도 기세가 급격히 꺾이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게 된다. 일본은 조선과의 전쟁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렀으며, 쇼군들의 권력 투쟁으로 일본 사회는 몹시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은, 독일과 영국을 모델 삼아 근대국가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첨단 기술을, 영국에서는 정치와 사회 제도를 받아들여 일본 특유의 ‘천황제’에 근간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데, ‘천황제’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의 변형이며, 내각제를 바탕으로 한 수상이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하는 건, 독일의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 일본이 곧바로 군국주의로 탈바꿈하게 되는 바탕에는 독일의 ‘철의 수상’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의 존재를 본받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부터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폭력으로 점령하기 시작했고,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재화를 통해 일본 경제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는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남미 등의 국가를 침략해 식민지 침략으로 ‘원시적 자본’을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국가의 부를 축적한 일본은 더욱 야망을 키워 중국과 러시아까지 침공하게 된다. 2차 세계전쟁에서 독일과 함께 패전국이 된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한국과 북한의 이념 대립과 갈등 상황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는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 저렴한 상품으로 수출해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이것은 나중에 한국 등 후발주자이자 제3 국가의 성장 모델이 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조선, 대한제국, 한국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어떻게든 침략하거나 정치, 경제적으로 식민지 상태로 지배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은 ‘섬’이라는 지리적, 물리적, 지정학적 위치를 벗어나려는 강렬한 본능이 있으며, 그 본능의 밑바닥에는 일본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진, 화산으로 심각한 자연재해의 피해를 본 경험이 누적된 것도 있다. 한국과 북한이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곧바로 평화,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는 것도 일본에게는 불안하지만, 남북한이 경제공동체로 엮이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국가로 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이 한국에게 추월당하고,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뒤처지게 되는 현상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한국과 북한이 긴장과 갈등으로 군비 경쟁을 지속하면서, 나라의 재화를 낭비하고, 내부 문제에 신경 쓰느라 국제 관계에 소홀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일본에게는 가장 좋은 상황이다. 남북한이 전쟁하면, 일본은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오조의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선 선언’을 가장 반대하고, 싫어하고, 훼방을 놓을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할 것이며,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가동해 ‘종전 선언 반대’ 전략을 펼칠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 우파, 매파, 한국의 수구, 친일매국 집단 – 정당, 언론, 학계 등 –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7 미국은 보수, 우파, 매파 진영에서 남북한 ‘종전 선언’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무기 자본의 로비를 받는 매파 집단은 남북한 ‘종전 선언’을 극렬 반대하며, 북한과의 대화, 협상, 협의도 거부한 상태다. 미국은 과거 쿠바에게 했던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북한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으며, 북한을 말려 죽이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이 ‘종전 선언’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남북한이 화해하고,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이 사라진다. 이것은 미국에게 두 가지 이유에서 나쁜 징조인데, 1) 중국을 견제하는 완충지대로써 한국의 지형적 위치가 의미를 잃는 것, 2)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유지할 때 얻게 되는 무기 판매와 미군 주둔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사라진다. 과거 중국은 인구만 많을 뿐, 경제, 군사 분야에서는 미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스운 상대였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미국,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고, 경제력도 머지않아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뤘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역시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 되었는데, 군사 분야, 핵폭탄 보유, 과학 기술 분야 등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쫓아온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동맹으로 일본을 키웠고, 한국을 먹잇감으로 내놓는 것이 전략이었는데, 일본은 경제, 군사 분야에서 한국에 따라잡히고, 한국은 스스로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동북아시아 동맹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고,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미국이 바라는 그림은 아니지만, 한국이 자주적 전략을 펼칠 때, 강력하게 반대, 제재할 명분과 수단이 마땅치 않다. 과거에는 미국이 한국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경제(수입, 수출, 금융)적 압력을 썼지만, 한국의 수출 다변화 정책으로 미국과의 무역은 14.5%에 불과해서 예전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한국은 중국과 홍콩, 대만을 합해 약 35%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아진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입김은 약할 수밖에 없고, ‘종전 선언’을 반대할 명분도, 설득력도 약하다. 8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이 사회주의국가 체제를 유지하지만, 경제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국과 한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군사적 대립이나 긴장 관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중국과 북한은 ‘혈맹’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북한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중국이다.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 교류가 쉽고, 지린성(길림성)은 조선족 자치주여서 중국과 남북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중국공산당은 혁명 과정에서 한국(그때는 남북한 구분이 없었다) 공산당의 지원을 받았고, 한국 공산당원들은 중국 혁명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그래서 ‘한국전쟁’ 때 중국공산당은 ‘인민해방군’을 파병했으며, 김일성을 적극 후원했다. 1990년 이후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하면서, 중국은 거대한 경제시장이자 무역 상대국으로,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주창한 ‘흑묘백묘론’을 토대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원시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공장’, ‘세계의 굴뚝’이라는 말을 들으며, 중국 인민을 저임금 노동자로 경제시장에 방출했다. 남북한의 ‘종전 선언’이 중국에 어떤 형식으로든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불편하게 여기는 건, 미국이 남한(한국)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는 것이고,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압박 때문인데,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 쏘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 했을 때, 미국이 온통 발칵 뒤집혔던 사건을 돌이켜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턱밑에 있는 한국에 미국의 미사일 기지가 생기는 것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종전 선언’이 한편에서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즉, 남북한이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 교류를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가 사라지고, 이것은 곧 미국의 패권이 직접 작용할 원인이 제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남북한 ‘종전 선언’에 적극 찬성하지 않아도,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9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사회주의자로, 쏘련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며, 레닌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쏘련 영토로 이주했던 한국인들을 연해주로 강제 이주한 것과 대한항공 007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처럼 분명히 한국과 한국 국민에게 잘못한 점도 있었다. 한국은 러시아와 1990년에 국가간 수교를 맺었으며, 이후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구 쏘련 체제가 무너지면서 시장경제(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였고, ‘쏘비에트 연방’이었을 때보다는 국력이 훨씬 약해진 상태다. 1990년 이전까지 러시아는 ‘쏘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국가였고, 한국은 해방 이후 1990년 무렵까지 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노태우 정부에서 한러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은 러시아에 30억 달러를 빌려주는 등 경제 협력을 이어 나갔다. 러시아는 구 쏘련 시절 보유한 군사 무기 기술과 항공 우주 기술의 노하우를 한국에 제공하는 등 한국을 직간접으로 지원하면서 미국, 중국과는 또 다른 의미의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시베리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를 한국까지 연결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한국에서 출발하는 막대한 수출 컨테이너가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오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즉,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남북한 종전 선언’이 남북한 경제 교류 확대는 물론, 러시아에게도 직접 이익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데, 충분히 근거 있다고 본다. 4. ‘종전’ 이후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 10 ‘종전’이 확정되면, 남북한은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되며, 군비 경쟁과 군사적 긴장에서 놓여나게 된다. 70년 동안 남북한을 내리누르던 폭력과 증오의 먹구름이 걷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남북한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고, 국내적으로는 독재정권이 분단 상황을 정권 유지에 악용한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주변 국가-미국, 중국, 쏘련, 일본-의 압력으로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남북한은 더 이상 무력, 폭력에 의한 상호 침략이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가능한 대화를 통해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을 천명했다. 2000년 이후 남북한은 사실상 종전 상태였으나, 국제법에 따른 종전은 아니었고, 여전히 주변국의 견제와 참견으로 ‘종전 선언’은 명문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종전 선언’으로 남북한 관계가 하루아침에 급격히 달라지지는 않겠으나, 빠르게 변화할 부문이 있고, 남북한 정권의 의도와 다르게, 국민의 요구가 남북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바꿔놓을 수 있다는 예상도 할 수 있다. ‘종전’은 곧바로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70년 동안 남북한이 견원지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독재정권이 만든 이 악법은 민주정부에서는 사문화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포정치의 잔재로 남아 있다. 한국은 현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운용하고 있으며, 북한과 다양한 경로와 형태로 접촉할 수 있고, 남북한 주민의 직접 교류도 가능하다. ‘종전’이 되면, 보다 적극적인 남북교류 법령이 개정, 제정되어 남북한을 오가는 장벽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11 철도와 도로, 통신, 방송의 회복 ‘종전’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나는 구체적 효과는 막혔던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미 개성공단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로 복구는 빠르게 이뤄질 것이고, 철도는 남북한의 표준 규격이 맞지 않아, 현재 한국 기술자들이 북한에서 철도 규격을 통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곧바로 시베리아 철도, 만주 철도, 몽골 철도의 연결로 이어지며, 물류의 획기적 변화를 뜻한다. 수출입 물동량이 화물선이 아닌, 기차를 통해 이동하면, 물류 기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실이다. 북한 역시 한국에서 오가는 철도 물동량의 통관비만 받아도 막대한 수입이 되며, 이후 남북한 인적 교류가 시작하면, 한국 관광객이 북한은 물론 시베리아, 만주, 몽골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가면서 지불하는 통관비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남북한 철도 연결과 시베리아 철도까지 이어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은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럽행 기차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보다 위도가 아래쪽인 아시아 나라들은 유럽으로 가는 길이 여객선이나 여객기뿐이다. 기차를 타고 유럽을 간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한반도를 거쳐 러시아의 광활한 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여행길이 열린다면, 남북한은 물론 러시아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줄 것이다. 반대로, 유럽인들도 아시아로 오는 길이 기차를 타고 오갈 수 있다면, 비행기로 이동할 때 누릴 수 없는,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어 매력으로 여길 것이다. 한국(남북한)은 이렇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중심 국가, 포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지형적 조건을 갖춘 나라여서, 경제 성장은 물론, 지금 한국의 문화, 예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 물류, 여행 역시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통신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시작했고,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한국의 정보통신망 기술이 북한에 빠르게 설치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는 시골 구석까지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그때는 예산 낭비라고 야당의 비난을 받았지만, 이 정보통신 인프라가 결국 한국을 정보통신, IT산업의 첨단 국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것처럼,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북한의 시골 구석까지 꼼꼼하게 광케이블을 설치할 것이고, 초고속 통신망이 설치되면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정보의 격차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토목 공사 실력과 수준 역시 세계 최고인 한국 기업들은 북한의 모든 도로를 한국의 도로처럼 깨끗하고 안전하게 시공하고, 동서남북의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때 북한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통신망과 도로가 개설되면, 역시 세계 최고의 물류 산업인 택배가 북한 전 지역으로 흘러가면서 몸에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르는 것처럼, 북한 경제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우리는 북한 방송을 거의 못 보거나 볼 생각도 하지 않지만,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를 자주 본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문화가 수준 낮다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 예술적 완성도 등을 볼 때, 한국(남한) 문화가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전’ 이후 남북한 주민의 교류가 시작되면, 무엇보다 방송(라디오, TV)을 개방하는 과정이 필연이라고 본다. 즉, 남북한 주민 누구든 남한과 북한에서 방송하는 내용을 원하는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경우, 인터넷이 개방되면, 인터넷으로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의 동화 과정은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본다. 12 여행, 관광의 시작 ‘종전’ 이후 한국에서 가장 큰 기대 효과는, 북한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금강산 관광’처럼 초기에는 제한적 공간만 여행할 수 있겠지만,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당장 떠오르는 장소는 금강산, 개성, 백두산, 원산, 함흥 등 유명한 도시로 시작해, 동해안의 해수욕장을 개방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DMZ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이곳을 세계적 환경 지역으로 만들어, 입장료 수입을 엄청나게 올릴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은 남북한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 보호구역, 생태 탐방 지역으로 알려진다. 한국의 기업은 북한에 인프라 투자를 하고, 호텔, 리조트 같은 대규모 시설을 짓는다. 이렇게 관광, 여행, 위락 시설이 생기면, 북한 주민들을 고용해 남북한이 공동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생성된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지점은, 한국(남한)의 자본이 북한을 잠식하고, 북한은 노동력만 제공하고,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 착취당하는 구조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경제력은 매우 심한 편차라서 북한과의 경제 교류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 한국(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여행할 때도, 과거 동남아시아에서 보인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은 2등 국민도 아니며, 우리보다 열등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경제력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우리가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안 되는 한민족이다. 초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발생할 것이고, 상호 오해가 생겨서 티격태격할 경우도 있겠으나, 큰틀에서 한민족인 남북한은 자연스럽게 동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13 남북한 국민의 상호 왕래 ‘종전’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남북한 주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과정이 생긴다. 남북한 주민은 각자 여권을 가지고 국경을 통과할 수 있으며, 상대 국가에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미 방송과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에는 제약이 거의 없다. 이때는 이미 남북 이산가족은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하고 있고, 남북한 정치체제만 다를 뿐, 사실상 통일에 가까운 상태로 남북한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한다. ‘종전’은 남북한이 가야 할 필연적 과정이며, 한민족 역사의 회복이자, 분열과 고통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상징적 행위다. ‘종전’은 한민족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바탕으로 화합, 성장하는 계기가 되며, 한국이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종전’을 반대하는 집단과 개인은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는 어리석고 멍청한 존재이거나 악랄한 의도를 가진 내부의 적이며, 외부 세력이라면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반대하는 적대 세력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호혜, 협력한다는 기본 전제에 동의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 선언’을 하면, 다음 정부인 이재명 정부에서는 ‘종전’ 이후 북한과 공동 사업을 구체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게 된다. 남북한 상호 교류는 두 나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국방, 내수 산업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주변 국가의 반응을 살피지 말고, 남북한이 적극 상호 이익을 위해 ‘종전’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남북한 ‘종전’ 발표를 기다린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존경하는 최교수님께 어제 교수님 블로그에 올리신 '나는 왜 윤석열 후보를 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론이자, 공개 편지입니다. 서술의 근거는 교수님의 글을 기본으로 하고, 제가 가진 생각을 더해 주장을 개진하겠습니다. 공개 편지인 만큼 형식과 내용은 자유롭고 편한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교수님은 물론,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보수' 진영에 계신 분들도 읽어보시길 희망합니다. 1 '존경하는 최교수님께'라고 쓴 인사말은 의례적 수식어가 아닙니다. 이웃 사는 저는 평소 최교수님을 자주 뵙고, 함께 식사도 하고, 산행도 하는 '동무'라서 교수님을 비교적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정치 성향은 '보수'가 틀림없습니다만, 박근혜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셨고, 탄핵에 찬성하신 분입니다. 최교수님은 박근혜를 선택했지만, 박근혜가 잘못한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하셨습니다. 최교수님은 스스로 노력해 많은 어려움을 딛고 대학교수가 되셨고, 정년퇴직하신 지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진정한 학자이십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성실하고 겸손하며, 사회의 규범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로 대학교수가 되셨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2년을 복무했으며, 개신교도로 신앙생활도 신실하게 하고 계십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측은지심을 가지셨으며, 자신에게 향하는 쓴소리,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넓은 이해의 마음을 가진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최교수님 수준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분열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토론이 가능한 '보수'라면 좌우의 날개를 함께 펴고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보면 '극우'에 가깝고, 과거 파시즘을 신봉하는 어리석은 미치광이 수준입니다. '보수' 집회에 참가하면서 일장기를 들고, 일본을 찬양하면서 우리나라가 망해야 한다는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상식 있는 시민들이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비웃고, 비난, 비판하는 근거는,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선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걸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은 '정보'로 흘러넘치지만,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편향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2 교수님께서는 '개신교 신자로서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하셨습니다.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선택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특정 종교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신앙 때문에 정치 행위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정치인은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종교는 개인의 신념일 뿐이고, 그래야 합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일반화하려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나 있었던 미개한 폭력입니다. 자신의 신앙(종교)과 정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들이 대통령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으로 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한 교수님과 ‘보수’의 안목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3 교수님은 글에서 '이승만은 반공, 박정희는 경제, 김영삼은 민주화, 김대중은 개방'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승만이 '반공'을 한 것은 맞습니다만, 이승만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와 패악에 관해서 침묵하시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입니다만,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보여준 행보, 말과 행동은 친일매국노이자 한국 정치와 사회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의 전형이었습니다. 1948년 미군정이 끝나고, 남한 총선거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의 정치 상황은 남북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이승만이 '반공'을 '국시'로 삼은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만, 남북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던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이자 현실 정치인들을 암살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승만을 '국부'로 찬양한다는 것은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이라는 반공단체를 만들어 과거 '좌익'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가입시킨 다음, 전쟁이 한창일 때 국군특무대를 중심으로 보도연맹원을 학살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들은 '진짜 빨갱이'들이 아니었고, 한때 좌익이었거나,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배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설령 과거에 '좌익'이었다 해도, 단지 과거의 전력만을 보고 학살한다는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이승만은 이들이 최소 10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이 학살당하는 걸 묵인했습니다.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을 주도했고, 대통령을 영구집권하려는 망상을 가졌으며, 3.15부정선거의 당사자입니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과거 친일매국노를 관직에 앉히는 등 친일파를 옹호하고, '반민특위'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려 한국이 친일파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친일매국노를 처단하라고 주장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반대한 이승만을 찬양하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4 소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높게 평가합니다. 박정희가 가난했던 한국을 구제했고, 보릿고개를 없앴으며,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합니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의도를 생각해 보면,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가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봅니다. 즉, 자신이 피와 땀을 흘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현실이 불쾌하고 마땅치 않은 것입니다. 이는 자신과 박정희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인데, '보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젊었을 때 흘렸던 땀과 눈물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훌륭합니다. 그들은 굳이 박정희를 들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한국 사회를 일으킨 주역이며, 한국 사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 그러니 박정희를 우상화하지 않아도 '보수'의 애국과 땀의 결과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정체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원이었으며, 그의 형 박상희는 '보수'들이 말하는 '진짜 빨갱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상희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당시 좌익,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는 대개 지식인이 많았고, 일제강점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한 방법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역시 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고, 비밀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보수'들이 그렇게 싫어하고, 저주를 퍼붓는 '빨갱이'가 바로 박정희와 그의 형 박상희입니다. 박정희가 전향했으니 그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박정희는 남로당원인 것이 발각되어 체포되자 자신의 조직과 동료를 고발하는 대가로 살아남았습니다.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는 변절자, 배신자인 것입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빨갱이' 경력을 지우려고 더욱 강하게 '반공'을 부르짖었으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좌익, 공산주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지식인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수'만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보수'의 특징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지하고 무식하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없고, 올바른 역사관이 없으므로 눈앞의 현상만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따라서 역사의 물줄기, 역사에서 정의, 민주주의, 민중의 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지배자의 말을 믿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한국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던 1960년을 전후해서, 제3세계-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없이 많은 군부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즉,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는 그 시기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진 이 세계적 사건 가운데 '성공한 쿠데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쿠데타 자체가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쿠데타는 성공했어도, 그 주역들이 시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쿠데타 세력의 종말이 모두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군부 쿠데타는 불법이며, 역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범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부하에 의해 사살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재규가 역모를 한 것으로 치부하면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일본군가를 부르며 그걸 즐겼던 친일매국노였습니다. 일본과 일본군에 대한 향수를 끝까지 갖고 있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한때 만주군에서 독립운동가를 '토벌'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걸 부끄럽거나 죄스러워하기는 커녕, 친일매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분노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겠습니까. 박정희가 죽을 때도 주색잡기를 하던 자리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박정희는 죽기 전까지 무려 200여 명의 여성을 비밀 안가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채홍사 노릇을 한 부하가 직접 증언했고, 박정희의 마지막 순간에도 두 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소위 '보수'에서는 이런 박정희를 두고 '남자라면'이라거나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라'거나, '대통령이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본질을 회피하려 합니다. 대통령이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걸 비판하지는 못할 망정, 그걸 옹호하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 그건 최소한의 인간도 못 되는 되먹지 못한 양아치일 뿐입니다. 5 교수님께서는 이명박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선택을 이제는 후회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박근혜도 마찬가지죠. 이명박은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그가 개신교도에 교회의 장로라는 타이틀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교수님께서도 이제는 아셨을 겁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이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교인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형교회의 목사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습을 통해 철저한 자본주의의 물질만능 욕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보여주어야 할 선행과 이타심은 이미 사라졌고, 교회는 비즈니스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개신교가 얼마나 부패했고, 사회의 독버섯이 되었는가는 개신교 전체가 보여주는 악행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가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과 역할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개신교 내부에서도 진정한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신실한 목회자와 신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같은 사기꾼, 범죄자가 단지 '개신교도'라는 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이 되도록 한 수많은 개신교도들은 이제 자기 발등을 찍어야 합니다. 그런 통절한 자기반성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제 다시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를 선택하고, 다시 윤석열을 선택한다는 건,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에서 아무런 비판과 반성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직업별 성범죄 1위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매우 불명예스럽지만, 한국 교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공식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던가요? 말로는 사회의 소금이 되겠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나쁜 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르는 목사가 존재하는 '개신교'는 한국 사회 발전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이명박은 대통령의 권력을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써먹은 악질 가운데서도 악질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32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피같은 세금이 사라졌고,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또 20조 원의 세금을 탕진했습니다. 이 국민의 돈은 이명박 측근에게 돌아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들여 환경을 망치고,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악랄한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고, 환경감수성이 무딘 것 또한 '보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6 교수님께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까닭은,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에서 '피해자'라는 인식 때문인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찾아보시는 정보의 대부분을 소위 '보수언론'에서 얻고 있는데, 이런 편향이 정보의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조선일보는 폐간시켜야 하는 대상입니다.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친일, 매국을 했으며 ‘천황폐하 만세’,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른 반역자들입니다. 보수가 친일매국, 반공을 용인한다면 그것이 애국자이고 ‘보수’입니까? 윤석열을 두고도 객관의 사실을 외면하거나 알지 못하면서, 단지 문재인정부가 싫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간을 지지한다는 건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윤석열은 그 자신도 이미 심각한 범죄혐의가 있고, 그의 아내도 논문 표절 문제와 경력 위조, 주가 조작 혐의 등 온갖 파렴치한 범죄혐의가 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장모는 이미 범죄를 저질러 법의 처벌을 받고 감옥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조국 교수의 가족에게 적용해 본다면, ‘보수’의 입장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악의적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조국 교수의 아내가 윤석열 아내와 같은 혐의를 가졌다면,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분노하시겠습니까? 조국 교수의 장모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분통을 터트리겠습니까? 윤석열은 조국 교수와 그 가족을 멸문할 정도로 잔혹하게 학살한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을 객관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윤석열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투표 내용을 보니 윤석열 후보는 60대 이상의 당원에게 큰 지지를 얻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심리를 살펴보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복수심’이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자 박정희와 육영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신들의 딸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심리적 동기화가 있었기에,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어도, 박근혜가 무능하고 불법을 저질러 탄핵당해 감옥에 갔어도 측은지심이 발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60대 이상 세대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이성적, 지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논리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 아닌, 감정과 감성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반드시 이성적, 합리적 판단으로만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나라의 미래를 넓고 멀리 바라본다면 이런 감정적 대응과 근시안적 판단은 분명 우리 사회, 성장하는 청년 세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7 교수님께서는 이재명 후보를 두고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안타까워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과거 대통령을 선택하신 것이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건 교수님의 안목-최소한 정치인을 선택하는 안목-이 많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명박,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그 증거이고, 교수님의 정치적 눈높이가 낮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몹시 가난한 화전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도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고, 국민학교를 마치고 성남으로 이주해 소년노동자로 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어릴 적, 이재명 후보만큼은 아니지만 가난하게 사셨으니 이재명 후보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실 걸로 압니다. 반면 윤석열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줄곧 금수저로 자랐습니다. 사회학에서 '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부자와 지배자의 논리를 옹호)하는가'를 두고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오로지 먹고사느라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그들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올바른 역사, 정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지한 상태에 머물 확률이 매우 높고, 무지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이재명 후보도 대학에 들어가 깨우치기 전까지,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광주5.18민주화투쟁'을 보고는 사회 불순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거라고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저 역시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위대한 지도자가 '서거'했다고 슬퍼하며 일기장에 쓴 걸 기억합니다. 그때 제 나이 불과 스무 살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공장 노동자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웅변을 듣고 인권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은 한 사람의 눈물겨운 생존의 분투기이자, 무지에서 각성으로 이어지는 올바른 역사 속 인간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엄격한 삶을 사셨기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다는 걸 저는 압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시각에서는 '보수'라면 당연히 그렇게 스스로 엄격하고, 부끄럼 없는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삶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오히려 '보수'보다는 '진보'가 교수님과 더 잘 어울립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돈과 권력을 향해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내용과 성남시장으로 당선되어 행정을 펼친 것, 경기도지사로 경기도의 행정을 펼친 것을 객관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시고 평가해 보시길 권합니다. 과거 성남시장이었던 자들과 경기도지사가 벌인 짓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를 망치고, 개인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뇌물을 받아 먹은 것은 현 '국민의힘' 쪽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객관적 증거와 자료를 외면하면서까지 훌륭한 행정을 펼친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보수'의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수'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면, 자기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루합니까. 8 이제 윤석열과 이재명의 실력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사회를 개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했고, 대통령의 실력과 능력이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대통령은 행정수반이고, 대통령을 둘러싼, 즉 대통령이 임명한 가까운 인재들이 대통령의 행정 목표를 위해 실무를 집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한 나라의 틀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실질적 요소입니다. 윤석열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그 뒤로 약 26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회를 보셔서 아시겠습니다만, 윤석열은 기본 상식과 지식,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이 거의 없는, 무지와 무식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 혼자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를 뽑아 쓰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있으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로지 ‘권력’ 그 자체를 탐욕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갖습니다. 이재명과 윤석열의 가장 큰 차이는, ‘권력’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재명은 ‘권력’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윤석열은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그것을 마구 휘두를 생각만 하는 윤석열은 전두환, ‘광주민주화운동’ 발언 등을 종합할 때, 그 자신이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되고픈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입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행정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좌우의 이념이 아닌, 실용주의자로, 오로지 한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역할을 엉터리로 했다면 지금 전국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윤석열 후보는 조국, 추미애 장관에게 항명하고, 검찰을 사조직화해서 징계를 받게 되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문재인정부와 적대적 관계를 설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기존 정치인에게 식상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만큼 ‘보수’ 진영에는 능력 있는 인물이 없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윤석열 후보가 검사 26년의 경력말고 그가 보여준 행정 능력이나 정치력, 정치, 행정철학에 관해 최교수님께서 아는 것이 있습니까? 윤석열을 객관적으로 검증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도 윤석열은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만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미 박근혜가 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선택될 때도 이명박과 경쟁하면서 이명박에게 졌고, 박근혜의 실력이 아닌,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박정희, 육영수 딸이라는 ‘불쌍한 자식’ 코스프레로 노인 세대의 감성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능하고 무식하고, 무지한 박근혜는 최순실의 수렴청정의 허수아비, 괴뢰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고, 지금 감옥에 갔습니다. 윤석열은 그런 박근혜의 무지, 무식과 윤석열의 아내의 수렴청정, 전두환의 폭력적 독재가 결합해 박근혜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윤석열을 지지하시겠습니까? 9 최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보수’의 개념은 ‘건강한 애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보수’의 행태를 잘 보시면, ‘건강한 애국’이 아닌, 극우 파시즘과 천박한 양아치가 결합한 망나니의 모습인 걸 아실 겁니다. 교수님이 그런 집단을 지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보수’는 무엇보다 상식과 합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걸로 압니다.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성조기와 일장기, 이스라엘국기를 흔들며 문재인정부 타도를 외칩니다. 오로지 문재인정부가 싫다는 이유로 친일매국도 서슴치 않는 것이 ‘보수’입니까? 대형교회 목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문재인정부를 비난하고 직접 정치에 개입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들이 문재인정부를 ‘빨갱이’, ‘좌파’라고 비난하는 건 아무 근거가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부익부빈익빈, 강자독식, 권력과 금력이 결합한 강자카르텔, 부패카르텔을 형성해 사회의 부를 독식하려는 자들이 깨끗하고 합리적인 정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지지하는 ‘보수’ 집단인 ‘국민의힘’의 역사적 태동과 성장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신다면 결코 그들을 지지하지 않으실 걸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이미 어릴 때부터 개신교도로 성장하신 것이 교수님의 정체성을 구성했으므로, 그걸 부인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놓인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아브로락사스의 알’처럼, 진정한 자기 개혁은 미몽의 세계에서 깨어나 역사의 진실을 마주할 때 가능합니다. 이승만 이후부터 박근혜까지 이어온 ‘국민의힘’의 과거는 독재, 쿠데타, 무능의 정부였습니다. 이건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그런 정당의 후보로, 과거의 망령을 소환하고 있으며, 이미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을 다시 공포와 독재,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함량 미달의 천박한 후보입니다. 교수님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더 성장, 발전시킨 집단이 누구입니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흐름이 ‘국민의힘’ 쪽 흐름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의 확대, 경제 성장, 인권, 환경, 복지, 예술의 성장을 이끌어 갈 적임자가 바로 이재명 후보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윤석열 후보를 선택하면 대한민국은 과거로 퇴행하는 것이고,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면 미래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올바른 선택을 하실 거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12-13
  • 건강일기_007
    건강일기_007 석달 동안 7kg을 감량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게 감량했지만, 3개월 기간으로 보면 무리하지 않은, 정상적 감량에 해당한다. 처음 몸무게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76.5kg이었는데, 오늘 아침 몸무게는 69.5kg이었으니 60kg대로 내려온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하면 확실히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차이가 크다. 아직 의학적 검사를 하지 않아서 정확한 결과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체중이 빠지면서 뱃살이 조금 들어가고, 혈압이 조금 내려간 걸 느낀다. 뱃살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혈압은 가끔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러 가서 잰 기록을 보고 알게 된 것으로, 예전 몸무게로는 고혈압 판정을 받을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상 범주로 내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운동과 함께 음식도 나름 조심하면서 먹었는데, 과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점심 한 끼도 잡곡밥 위주로 먹고,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도, 어려움도 없었으며 가장 지키고 싶었던 원칙은 저녁7시 이후에는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음식물을 먹지 않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다만, 7kg을 감량했어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 뱃살은 여전히 나와 있고, 겉으로 보기에 많이 달라보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 특히 나이 들면서 체중 조절을 하지 못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음식을 적게 먹을 것, 꾸준히 운동할 것,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흡연을 하지 말 것,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 것 등 기본 상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건강한 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원칙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고, 체중 관리와 음식 조절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운동과 체중 조절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그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지금 건강이 나빠진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엊그제 냉장고 액정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냉동 기능이 안 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침내 고장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잘 썼지'라고 수긍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우리집에서 쓰고 있는 가전제품은 집을 짓고 모두 새 물건으로 장만한 것으로, 이제 17년째 쓰고 있다. 가전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지(LG)전자 제품이다. 나는 엘지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가전제품은 엘지전자가 가장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엘지 제품을 추천하는데,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엘지 제품이 17년만에 고장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우선 냉장고를 앞으로 조금 끌어낸 다음, 전기 콘센트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서 다시 끼웠더니 액정의 에러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상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정상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온라인 접수에서는 가까운 날짜가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가 8월 20일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신청을 해두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서비스 기사가 전화를 했다. 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의 상태를 물었고, 냉동실 안쪽 벽면에 성애가 끼었다면, 그 성애 때문에 냉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냉동실을 비우고, 하루 정도 말리면 냉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비스 기사의 말대로 하면 기사가 우리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기사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법이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서비스 기사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회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 기사에게,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해 달라고 했다. 냉장고는 다시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신청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공식적으로는 무려 10일 뒤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우리집을 방문한 기사는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 냉장고(냉동실)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고, 성애 때문도 아니고, 문이 약간 덜 닫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는 냉장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세탁기의 배수 장치를 확인해 주었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엘지전자 제품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없이 쓰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출장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기꺼이 출장비를 지불했다. 1만8천원. 어떤 사람은 이 돈도 비싸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출장비가 싸다고 생각한다. 1만8천원을 지불하면, 최고의 기술자가 산골까지 찾아와 고장난 제품을 고쳐준다. 지난번 에어컨(이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아니었다)이 고장났을 때는 몹시 급한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개인 수리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양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인 수리업자는 우리집에 와서 몇천 원 하는 센서 부품을 교체하고 5만원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엘지전자의 출장 서비스 기사도 개인사업자에게 위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서비스 기사가 엘지전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위탁회사가 있던지, 아니면 개인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최대한 많이 집집을 방문해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출장비와 부품비를 청구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며, 그 와중에 '친절함'에 관한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전자제품의 출장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출장비 받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늦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마구 항의를 하거나 크레임을 걸어서 서비스 기사를 못 살게 굴고,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 이건 음식 배달을 하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권위적이고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서비스 노동자를 괴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기술자, 전문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의 가치가 적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대우 역시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중요성, 노동의 역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합리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기술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전문직 기술자, 노동자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주로 '사'로 끝나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종을 높은 가치로 여기도록 학습하고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의 모든 직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은 곧 자기의 직업, 업무를 뜻한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객의 요구가 모두 달라서, 그 요구에 맞춰야 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나 직종이라 해도 그 일 자체가 하찮거나 쓸모가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 직종이 사회에서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는 사회적 지위나 대중의 직업 인식에서는 하위에 속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라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서 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도 역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발생하는 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수고를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노동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도록 가르치고,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대중 매체의 드라마나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천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노동' 그 자체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이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력, 경제적 부와 관계 없이 인성이 비뚤어진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이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일정 비율로 싸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건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노동자가 부당하게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신성하려면, 노동의 결과가 그만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대우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뿐이다. 즉, 노동의 의미도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성과 윤리, 도덕성마져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런 예의 하나인데, 물질만능, 화폐숭배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를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 정글의 논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많은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노동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다.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6
    건강일기-006 운동 방식을 바꾸다 6월 7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40일 정도를 매일 3,000개 이상 줄넘기를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줄이고, 밀가루와 튀긴 음식, 간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그 사이에 약 6kg이 줄어서 다이어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30일이 지나면서 몸무게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운동과 음식도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하거나, 근육 운동을 그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판단을 했다. 줄넘기는 유산소 운동이고, 복부의 내장 지방과 몸무게를 줄이려면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근력 운동에 관해 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들은 혼자 연구해서-물론,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봤겠지만-다이어트를 성공한 경험이 있어서 운동에 관해서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이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알려준 근력 운동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런지 25회 양 다리 2. 푸쉬업 적당히 가능한 만큼 (10 ~ 30회 중 선택) 3. 스쿼트 25회 4. 플랭크 1분 5. 복부운동 30회 이게 1 루틴. 루틴 하나를 1~2회 하면 됨 아들이 알려준 운동은 요즘 많이 하는 '홈트레이닝'의 여러 과정 가운데 근력 운동 부분이고, 여기에다 트레드밀에서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위의 과정에다 '풀업(턱걸이)'도 하려고 문틀 턱걸이를 주문했다. '풀업'은 최근 조국 교수가 SNS에 동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지지의 릴레이 풀업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팔 근육 운동에도 도움이 많이 될 듯 하고, 전체 근육 운동에서 비어 있는 부분 같아서 '풀업'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8일부터 줄넘기는 중단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준대로 런지, 푸시업, 스쿼트, 플랭크, 복부운동 순서로 했는데,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줄넘기 3천 번 한 것 만큼, 아니 그 이상 힘들었다. 줄넘기를 하면 숨이 차고 땀을 많이 흘리지만 샤워를 하고나면 몸이 개운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면, 이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처음 근육 운동을 해서 그런 듯 한데, 힘도 많이 들고, 근육을 더 많이 움직이는 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이 많이 나고, 숨이 차는 것도 줄넘기할 때 못지 않았다. 그만큼 근육 운동이 힘들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증거겠다. 이 운동이 좋은 점은 아주 덥거나 추운 날에도 집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넘기만 해도 늘 바깥에서 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어렵고 또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못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집안에서 근육 운동을 해보니 충분히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석달을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데, 두달 동안 나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운동했다. 7월 18일부터 근력운동을 했으니 오늘(8월 7일)까지 21일 동안 근력운동을 했다. 아래 식단표를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이 보이는데, 운동을 마치고 배가 많이 고파서 참외를 두 개 또는 작은 참외는 세 개를 먹었다. 다른 과일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참외를 가장 좋아하고, 참외를 먹으면 소화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있고, 참외는 칼로리가 낮아서 두 개, 세 개를 먹어도 칼로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점심은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었다. 다만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설탕과 당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 공장에서 만든 음식은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니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매우 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국수 종류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두 달 동안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먹었고, 튀긴 음식은 더욱 적게 먹었다. 하루 기초대사량이 대략 1600kcal 정도라면, 하루 두 끼를 먹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칼로리가 적은 음식과 소화가 잘 되고,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관건인데, 이런 음식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채소, 생선, 과일이다. 여기에 육류도 빼놓을 수 없는데, 고기를 먹더라도 구워서 먹는 것보다는 삶아서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근력운동을 시작한 7월 18일부터 8월 7일까지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운동량과 음식의 칼로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판단했다.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는 61kg 정도인데, 그럴려면 9kg을 더 감량해야 한다. 8월 말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4-5kg 정도를 감량할 계획인데, 그러자면 조금 더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저녁 6시 이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빈속으로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많이 나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이 그만큼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탐하려는 유혹을 얼마나 잘 견디는가와 근력운동을 비롯한 운동량과 시간을 좀 더 늘리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바깥 온도가 높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야외 활동이나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실내에서 근력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내부의 계급 이익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주로 수구 반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 은 특정한 정당 또는 후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비난하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큰틀은 크게 세 가지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윤석열과 최재형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면서, 현재 정부의 관료들이 가진 가치관,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으며, 자기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자들이 모인 정당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라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당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윤석열과 최재형은 그들이 속했던 관료 집단에서 수장을 했던 자들로, 그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즉, 한국의 관료집단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보수화, 수구화, 과거지향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표를 내고 뛰쳐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재부의 홍남기 같은 자 역시 수구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관료들의 사상적 기반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철저하게 '자본종속적'이라는 데 있다. 재정을 직접 다루는 홍남기의 경우, 그가 결사적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고, 끝까지 차등 지급을 고수하는 것은 정부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재정과 운용에 관해서는 이미 최배근, 정균승 교수 등 학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논파당했기 때문에 홍남기는 반론을 제기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은 홍남기류의 인간들이 정부 내부에서 문재인정부에 타격을 입히려는 정치행위인 것이다. 이들 무능하고 퇴행적 관료들과 국민의힘이 반개혁적, 반동적 행위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이 있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정부'를 싫어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의 형성과 축적 과정을 보면, 자본은 '착취'와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착취'와 '경쟁'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자본의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 즉,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자본'은 먹거리가 많아지고, 이윤을 축적하기 쉽다. 선진복지 국가의 좋은 예로 드는 북유럽 국가들도 '자본'이 존재하는데, 그러면 북유럽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민도가 높은 나라는 국민과 정부, 자본의 합의와 견제에 의해 '자본'이 '비교적 깨끗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자본'도 이윤추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한다. 즉,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자본'에 의한 범죄는 억제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지만, 과거 반민주, 반노동, 반인권 제도와 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30% 남짓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상징적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을 두고 정당끼리의 권력투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의힘은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뿌리이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열매이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인간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잎사귀들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가장 먼저 부정부패의 뿌리이자 과거 반민주, 쿠데타, 친일매국 세력인 국민의힘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최재형 같은 구체제 신봉자들이 집결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은 뒤에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의 힘이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국민의힘이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겨우 30% 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시민의 단결한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고위 관료 출신의 윤석열, 최재형은 국민의힘을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 것은 다행이며, 전선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적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자들이 있다.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같은 자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을 뿐, 국민의힘에 있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촛불시민은 민주당을 진보적 영역으로 견인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고 앞장 서 민주당의 개혁성을 이끌고 있고, 젊은 의원들이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이 사는 길은 국민의힘으로 대표하는 앙시앙 레짐, 수구반동, 자본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들과 싸워 피를 흘릴수록 촛불시민은 더욱 강하게 민주당을 지원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여전히 상당수 '수박'들이 존재한다. 이들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를 걸러내고,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민주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한국에는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다.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 같은 '진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데,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역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반자본주의 투쟁을 이끌 집단은 한국사회 내부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개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문재인정부가 최선이다. '문재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민주적 테제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뒤를 이을 정부는 반드시 문재인정부의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그보다 한발 앞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대통령은 몹시 신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라 적과의 싸움에서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다음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개혁과제 가운데 다음 정권에서는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바로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부동산개혁, 노동개혁이다. 이 과제는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다음 대통령은 온몸에 피칠갑을 할 각오를 하고 앞장서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도 안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내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그럴 정도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이재명이라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5
    건강일기-005 운동 시작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그나마 조심한 건 과식, 야식, 술이었다. 술은 체질이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지만, 아주 드물게 한 잔 마실 때가 있었다. 모임이나 집에서도 저녁에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전부인데, 간경변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내 오랜 식습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 것인데, 중간에 간식을 항상 먹었다. 계속 살이 찌는 원인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먹는 칼로리가 많기 때문인 건 상식이다. 먹는 것 이상으로 움직여서 칼로리를 소모하면 살은 찌지 않는다. 이런 상식을 알면서도 생활에서는 실행이 어려운데, 내 경우도 그렇다. 그나마 몸무게가 75-76kg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 신체 조건에서 적당한 몸무게는 60-65kg 정도인데, 최소 10kg에서 많게는 15kg을 줄여야 했다.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두 달 동안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불규칙하게 걷기를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식탐도 줄어들 줄 알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충분히 포만할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거지만, 그동안 나는 매 끼의 음식량이 많았고,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하지만 그 사이와 저녁에 간식을 먹는 것 때문에 절대 살이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끼를 먹을 때도 음식의 내용과 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싱겁게 먹고, 간식, 야식을 먹지 말고, 국물 음식도 가능한 먹지 말고, 밀가루 음식, 흰쌀밥도 가능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이 상황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건 내 의지가 약하기도 했고, 지금 약을 먹고 있으니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도 간 상태가 좋아지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다만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의식을 하면서 먹었다. 매일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데, 점심과 저녁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병원에서 두 달치 약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 기간 동안에 먹었던 음식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식과 야식이 줄어들긴 했다. 4월 말부터는 참외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참외를 퍽 좋아하는데, 해마다 참외가 나오기 시작하면 10kg짜리 참외를 주문한다. 단, 참외값이 비싸므로 '흠과'를 주문하는데, 이 '흠과'의 종류도 참외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뉜다. 나는 '대과'를 주문해서 먹는데, 기간에 따라 참외값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4월 말에 참외 10kg 흠과의 가격은 약 3만8천원이지만 가격은 점차 내려간다. 2만6천원이 되었다가 7월이 되면 1만6천원까지 내려가는데, 참외가 한창 많이 나올 때라서 똑같은 참외라도 값이 싸진다. 참외는 거의 나 혼자 먹는데, 작년(2020년)에는 여름 한철에 내가 먹은 참외가 60kg이었다. 4월에서 6월까지도 참외를 먹었다. 참외는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며, 포만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어서 밥을 좀 적게 먹을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가졌다. 몸의 변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체중을 확인하는 것이다.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따로 몸무게를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5월 말에 아산병원에서 채혈하고, 일주일 뒤인 6월 7일,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은 피 검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두 달 사이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처럼 들렸고,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의사선생님은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두 달 사이 내가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것이 없다는 건 분명했고, 그래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의사선생님은 다시 똑같은 약을 3개월치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활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자각을 했고, 운동과 절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운동은 줄넘기였다. 그 전까지는 주로 걷거나 트레드밀에서 뛰는 운동이 전부였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6월 8일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운동 목표는 하루 3,000개. 왜 3천 개를 해야 하는지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정도는 해야 운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 무조건 하기로 다짐했다. 첫날 줄넘기는 2,000번을 했는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몸이라 첫날 줄넘기는 엉망이었다. 한번에 넘는 횟수도 열 번을 넘기지 못했고, 무릎 안쪽, 허벅지, 종아리, 발 전체가 다 아팠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줄넘기를 할 때 요령도 몰랐고, 어떤 곳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몰랐다. 줄넘기를 하는 장소는 처음에 풀밭, 데크 등에서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집앞 도로가 아스팔트여서 그곳에서 줄넘기가 비교적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줄넘기를 할 때 복장과 신발도 어떤 것이 좋은지 몰라서 고생했다. 처음에는 달리기용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해봤는데, 자꾸 발에 줄이 걸려서 멈췄다. 그러다 바닥이 평평하고 운전할 때 신기 편한 가벼운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하자 줄이 걸리지 않고 좋았다. 줄넘기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첫 날은 2,000개를 하고, 둘째날부터는 계속 3,000개 이상을 했다. 일주일 동안 무릎 안쪽, 허벅지 등이 아팠지만, 처음 작정한 것처럼, 핑계 대지 않고 날마다 줄넘기를 했다. 운동하는 첫날 몸무게를 쟀을 때, 76.5kg이 나갔다. 몸은 무겁고, 배는 출렁거리고, 다리는 아팠지만, 나 자신에게 다시 실망하는 것보는 아픈 것이 나았다. 처음 줄넘기를 할 때는 열 개, 스무 개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차츰 발에 걸리지 않고 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백 번을 넘길 때는 감격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 스무날이 지나면서 줄넘기는 백 번, 이백 번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줄넘기 운동 시간도 처음에는 3천 번을 하려면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 약 80분 정도를 해야 마칠 수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단축되어 한 달 뒤에는 3천 번 줄넘기 시간이 약 40분대로 줄어들었다. 줄넘기와 함께 음식도 가능한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매일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아침에 운동을 하면 몸무게와 줄넘기 횟수를 기록했다. 점심은 여느 때와 똑같이 먹었고, 간식과 야식을 먹지 않았으며, 저녁은 적게 먹었다. 저녁을 적게 먹고 잠을 자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을 먹기 전까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흰쌀밥 대신 잡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밥은 늘 잡곡밥을 먹고, 배가 많이 고프면 참외 한 개를 먹거나, 참외로 저녁밥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줄넘기를 3천 개씩 하고, 잡곡밥을 먹고, 밀가루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인스탄트 음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도 거의 먹지 않으며, 저녁은 간단하게 먹으면서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하니 처음 며칠은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76.5kg에서 꼭 한 달이 지난 7월 7일에는 70.9kg으로 약 6kg이 줄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병원에 갈 동안인 3개월 사이에 몸무게를 적어도 10kg 이상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고, 목표 체중은 63kg으로 설정했다. 한 달이 지나서 6kg 정도를 줄였으니 3개월이면 이론적으로 18kg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몸무게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행인건, 내가 운동과 절식을 시작할 때, 가족 모두 나처럼 운동과 절식을 함께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에 동의하고, 점심은 잡곡밥을 중심으로 고기도 먹고, 저녁은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먹을 샐러드 재료를 구상했다. 양상추, 새싹, 방울토마토, 피망, 오이 등 채소를 준비하고, 단백질은 닭가슴살을 준비했다. 샐러드용 소스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인바디 체중계'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 날마다 체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체 지수를 측정하는데, 우리집 거실에는 체중계 두 개가 나란히 있어서, 체중계에 각각 올라가 몸무게의 변화를 확인한다. 몸무게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적게 나가는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몸무게 변화는 많게는 2kg까지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몸무게가 6kg쯤 빠졌지만 70kg 초반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정체기가 시작되었다.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4
    건강일기-004 두 달의 시간 채혈, 위내시경, CT 촬영을 하고 일주일 뒤에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에 긴장감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도 걱정이 되어 함께 왔는데, 나는 의사 앞 빈 의자에 앉았고, 아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앉아 있는 책상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고, 거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했다. 간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이미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간에 결절도 여러 개 보이는데, 이미지로만 보면 상태가 조금 나빠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약으로 치료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때까지 의사선생님은 간 상태에 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만 궁금했다. '간암은 아닌 거죠?'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간암은 아니고 간경변입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 삶에서 변곡점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와 다음 진료 일정을 잡았다. 두 달. 간경변 치료제 두 달치 처방전을 받아 나오면서,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는 '다행이다'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고, 오늘 검사 결과를 알기까지의 지난 일주일 동안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졸렬하게 살아왔는가를 반성했다. 나는 이기적으로 살았다. 내 존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부모에게 불효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큰 미련이 없었고, 죽음은 언제든 가까이 있으며, 가족에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들은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아무 존재감 없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약 60년을 살아오면서 남긴 것은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내와 아들은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가 둘이나 있고,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건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내 건강을 깊이 염려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은 만약 내가 간암이라면 자기 간을 이식할 거라고, 엄마에게만 몰래 말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지만, 가족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은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기 보다는 무심하게 대한다. 심지어 부모는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거나 반항한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미운 감정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서로를 끌어 안고, 단단하게 뭉친다. 내가 간경변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삶은 무난한 삶이었다. 내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까지 내 삶이 거친 황야를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결혼한 다음부터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한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건 아내 덕이었고, 나는 그걸 늘 기억하며 살아왔다. 결혼 초기에 직장 생활을 몇 년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이후 나는 줄곧 지역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했다. 지역에서 일한다는 건 봉사를 한다는 뜻이다. 돈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내 돈을 쓰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의 일이다. 나는 '주민자치위원'으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도 하고, 지역의 몇몇 단체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군 단위 전체 인구가 불과 12만 명에 불과하고, 내가 사는 면 인구도 1만 명인 작은 지역에서 일하는 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든든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럽게 생각한다. 나는 백수가 분명하지만, 시골에 정착하면서 늘 바빴다. 대부분은 내가 사서 고생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지만, 지방으로 내려온 이후 나 스스로 가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병설유치원, 시골의 분교를 거치고, 청년이 될 때까지 나는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진 별 것 아닌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골에서 한 20년쯤 사니 이제서야 지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사람들과도 낯설지 않게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보낸 시간은 지역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의욕이 앞서서 지역의 상황에 맞지 않는 제안이나 주장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보람된 일을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어서 그간의 시간이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면 단위 주민자치 소식지를 최초로 기획, 편집, 제작해서 지금도 발행하고 있고, 마을 홈페이지, 면 단위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어 자료를 올려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당시만 해도 너무 앞서나가서인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사라졌고, 현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내 본업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시골에 정착하고 소설을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 몇 달 동안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으로 작정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편의 장편을 쓴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써놓기만 하고 그만이었다. 스스로 삼류 작가라고 생각해서, 어디에서 '작가'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고, 누가 나를 작가라고 알아봐 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나마 2010년부터 시작한 페이스북이 밖으로 향한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 일주일 전,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던 날도 돌아오면서 쌀국수를 먹었다. 일주일 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면, 이번에는 안심하는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두 달치 약을 받았고, 내 일상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약을 전혀 먹지 않고 살았다. 퍽 건강한 편이었고, 내가 건강한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고 감사하며 살았다. 어머니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나는 네 살까지 어머니 젖을 먹었다고 했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니, 아마도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퍽 건강하게 살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마다 고맙다고 혼잣말을 한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예전처럼 일상을 보냈다. 다음 병원갈 때까지 두 달의 시간이 있었고, 그때가 4월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음식은 싱겁게 먹고, 운동하고, 체중을 좀 줄이고...'라고 했지만, 나는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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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3
    건강일기-003 아산병원 병원에 올 때까지 일주일 동안 늘 해오던 일상이 이어졌다. 가능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내가 이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를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오로지 내 책임이 맞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검사를 하는 날에도 혼자 가려했지만, 아내가 휴가를 내고 동행했다. 아산병원은 인연이 있는 병원이다. 병동도 낯익고, 우리 가족이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라 마음은 편했다. 오전9시에 도착해 진료 접수를 하고, 마을 내과에서 받은 진료의뢰서와 초음파화면을 담은 CD를 제출하고 '간담도센터'로 갔다. 담당의사 선생님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 면담을 할 때, 의사는 이미 내가 제출한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B형 바이러스 보균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20대라고 했고, 건강검진을 언제 했느냐는 질문에 꽤 오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화면에 보이는 작은 점과 흰색 띠를 짚어가며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면담 시간은 짧았고,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에게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줄곧 금식을 하고 있었고,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곧바로 원하는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검사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채혈은 오전에, 위내시경과 CT촬영은 오후에 하기로 했다. 곧바로 채혈실로 가서 채혈을 했다. 열흘 사이에 피검사를 세 번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키와 몸무게를 쟀고, 피를 뽑았다. 며칠 사이에 세 번 피를 뽑으면서 느낀 건,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주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곳도 비교적 아프지 않게 채혈했지만, 아산병원 간호사의 채혈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채혈하고 위내시경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남아서 병원 바깥의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마침 벚꽃이 활짝 피었고,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봄이 한창일 때, 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나처럼 뜻밖의 소식을 듣고 황망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이 흐린 하늘처럼 우울했다. 나와 아내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위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았다 떠나가고, 점심 무렵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 군대 동기 모임을 했다. 내년이면 만40년이 되는 군대 동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다섯 명이 모인다. 그 가운데 세 명이 양평에 살고 있어서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다. 평택에 살고 있는 동기가 내년이면 정년 퇴직을 하고, 올해는 휴식년을 보내고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삽교천에서 꽃게찜과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고, 당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당구를 치고,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전화한 동기는 내가 병원에 검사하러 온 걸 알고 있었고,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 동기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동기들 모두 건강했으나 최근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위내시경 검사하는 곳에 접수하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과정에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사람들도 많고, 필요한 처치를 해야 하고, 의료진이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으니 그만큼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팔에 주사를 맞았다. 위 운동을 둔하게 하는 약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던 곳에서는 이런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그만큼 큰 병원이 갖는 장점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료진이 시키는대로 했다. 먼저 입을 벌리면 입안에 뿌리는 마취제를 뿌렸다. 그리고 침상에 비스듬히 누우면 되는데, 나는 이번에도 '비진정 내시경'을 선택했다. 몹시 괴로운 건 알지만 수면내시경보다 시간이 짧고, 곧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시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이 나왔지만, 그 뒤로는 참을만 했다. 이것 역시 지난 건강검진 때보다 부드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십이지장까지 내시경이 내려갔는데, 처치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옆에서 설명해주면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구역질은 한번만 했고, 참을만 했다. 그렇게 위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CT촬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CT는 태어나서 처음 찍는다. 찍을 일이 없다는 건 운이 좋다는 뜻이었고, 지금 CT를 찍는 건 그 운이 다했다는 뜻이다. CT를 찍기 전에 조영제를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손등에 주사기를 꼽는다. CT를 찍는 문 앞에는 조영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CT를 찍기 전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순서를 기다리다 촬영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을 말하고-이 과정은 모든 처치 과정에서 항상 반복했다-기계의 침상에 누웠다. 헤드폰을 씌워주었는데, 그곳에서 CT를 조작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촬영을 하는 중간에 조영제를 주입했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CT를 찍을 때도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참고를 반복했다. 약 10분 정도 누워서 CT촬영을 하고 나오니 이날 해야 할 검사를 모두 마쳤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왼손 손등에는 주사바늘을 뽑아 지혈을 한 탈지면을 붙이고, 오른쪽 손목에는 검사를 받는 환자의 코드가 찍힌 팔찌를 낀 채 병원을 나왔다. 오후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서울의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 오늘 오후까지 만24시간이 넘도록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오늘 아산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퍽 운이 좋아서(?) 오늘 필요한 검사를 다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 들러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조금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병원에서 오후3시 무렵 올림픽대로를 따라 집으로 오는데, 서울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평일 아침 출근길보다 훨씬 많아서 도로가 차로 막혔다. 우리가 가는 길도 차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막히지 않고 잘 빠져나갔는데, 서종IC를 빠져나와 문호리 쪽으로 들어서자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현상이다. 이 행렬은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양방향으로 계속되었다. 벚꽃이 피어서일까.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이번 주말이 절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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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2
    건강일기-002 발병 오랜동안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다. 10대 중후반에 편도선염으로 몇 차례 몹시 고생했는데, 그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편도선염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편도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 심하게 오르고 목으로 물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럽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염증 부위를 찢은 다음 고름을 빼내고 약을 발라주었는데, 그렇게만 해도 곧바로 열이 가라앉고 살 것 같았다. 20대 이후로는 편도선염이 발생하지 않았고, 병원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 몸에 B형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은 젊었을 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B형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간경변으로, 간암으로 발전한다는 상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해서 약 6년 직장생활을 할 때, 건강검진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B형 바이러스 항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더욱 그 뒤로 안심하고 지냈다. 문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지금까지 중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내가 자발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는 많았으나 딱히 의심할 만한 증상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2021년 3월 25일, 건강검진을 받았다. 강남에 있는 KMI에서 했는데, 건강검진의 순서가 그렇듯 키, 몸무게, 혈압, 체지방 등을 확인하고, 피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순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복부초음파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던 중, 검사를 하던 분이 잠시 나갔다 다른 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분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나에게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간은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내 간은 울퉁불퉁하게 보였고, 곳곳에 하얀 점과 긴 크랙이 보였다. 이걸 '결절'이라고 했다. 검사를 하는 분이 신중하게 말했다.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 가능한 빨리 내과에 가보시라. 건강검진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위내시경할 때다. 보통 수면내시경을 하는데, 나는 비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비수면내시경의 괴로운 경험이 떠오르는 걸 보니 과거에도 이런 방식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입안에 마취제를 뿌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내시경이 목을 통해 위로 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매우 괴로운 시간이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해야 하고, 검사를 받고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그렇게 12시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고 말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가벼운 정도가 아니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분이 하는 말의 뉘앙스를 들어보면 간경변의 상태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하는 날, 오전과 오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 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이 굳어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태평하게 살았다. 그러다 검진을 통해 간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플라톤주의를 떠올린다. 나는 오전이나 오후나 변하지 않은 존재지만, 나의 의식은 오전과 오후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실재하는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아무 걱정 없던 오전의 나, 병변이 발견되어 온통 근심과 걱정,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나는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극명하게 나뉘는 존재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건 얄팍한 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은 길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매 순간 흔들리고, 출렁거리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람의 본성,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아내와 점심은 맛있게 먹었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은 KMI는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그 중간에 한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갈치조림을 먹었다. 오후에는 내내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 책을 고르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점에서 4시간 정도 책구경을 하고, 나와서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걸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사람도 많았고, 도로는 차로 가득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전동킥보드를 탄 사람들이 마구 질주했다. 걷다가 역삼역 근처에서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서울에 나오면 우리 마을에서는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 더 걸어가니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그냥 갈까 하다 매장에 들러 햄버거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로봇이 햄버거가 든 봉투를 싣고 와서는 주문번호를 번쩍거리며 알려준다. 기계에서 주문하고, 로봇이 가져다 주는 햄버거를 받아보니, 사람의 노동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저녁은 서울에서 구입한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노브랜드 햄버거를 먹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밤에 인터넷에서 '간경변'과 '간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서 읽었다. 단순한 '간경변'이라면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간암'은 차원이 달랐다.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하니, 다른 암과 비교해도 확률이 낮은 편이다. 3월 26일. 오전에 양평읍내 있는 내과를 찾아갔다. 우리 가족이 다 찾는 내과여서 의사선생님도 안면이 있다. 시골 읍내의 병원은 오전에 사람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 어제 건강검진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다시 피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B형 바이러스 보균자인지, 술담배를 하는지, 건강검진을 언제 했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면서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간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에는 깨끗하지 않은 표면이 보였고, 약간 하얗게 보이는 작은 점과 역시 하얀 긴 띠가 보였다. 그 화면은 내게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보였고, 백남준의 설치미술에서 보이는 작은 모니터의 전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속의 장기가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은 내 육체의 탈아날로그 이미지였으며, 그 화면에서 발견하는 병변은 육체를 좀 먹는 세포의 활동이었다. 그 세포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내 몸에서 태어나 자란 세포였다. 최초에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싸우던 세포들이 어느 순간 내 몸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초음파검사의 결과를 본 의사는 어두운 얼굴로 '간경변이 온 건 확실하고, 그보다 예후가 더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간경변인지, 간암인지 알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빨리 아산병원으로 연결해 줄테니 가보시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일어서서 나오는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의 말과 표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쁘다면 간암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에게 아산병원에 예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아산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아주었다. 4월 2일. 아산병원 가는 날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여전히 건강했고, 내 몸속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부조리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아침에 걷기를 했지만, 이제는 병변을 알았으니 게을러지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내 생각, 느낌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 내리는 길을 걸었다. 일요일이지만 비 내리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은 관념의 바다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 같은 것이어서, 방울이 튀어올랐다 다시 떨어져 형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도 무수히 튀어올랐다 사라진다. 나의 불성실한 태도로 건강을 잃었다. 앞으로 어려운 나날이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지극히 '현대적 인간'이자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리얼리즘'의 전형적 인물로 본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거대한 서사의 격랑에 휩쓸리며 신과 자연과 자신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존재라면, 카뮈의 인물들은 외부의 힘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데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개인)의 의지일 뿐이다. 그런 태도는 불교적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결과)은 과거에 내가 했던 행위들의 집적(원인)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총체적 삶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말처럼, 삶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조리한 삶이다. 카뮈는 그런 인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부조리한 삶을 살았고, 뫼르소의 감정에 완벽하게 동화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뒷집 사시는 어르신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이 그 병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였음에도.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선배가 작년에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내 나이였으며, 예후도 없이 갑자기 발병했고, 스스로 죽음을 판단했다. 두 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담담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의지의 표현인가를 알게 된다. 봄비는 뭇생명을 깨우고, 자연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생명 또한 의연하고 겸손한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1
    건강일기-001 들어가는 글 이 글은 수많은 투병환자가 쓴 투병기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서도 간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학적 변화와 함께 심정적 변화를 기록한 투병기다. 모든 사람은 '개별성'의 존재라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확률은 0%와 100%일 뿐이다. 나는 0%(건강한 사람)에서 '갑자기', '느닷없이' 100%(건강하지 못한 사람)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나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과 며칠 전, 병원에서 '간경변 환자'로 확진되었으며,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아서 '간암'의 확률을 예상해야 하는 '환자'다. 이제 막 병변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이 기록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기억이 생생할 때부터 기록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약물을 투여하며, 심각하면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정상'이었을 때의 기대수명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은 확실해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인 76세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지금도 날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나 자신을 객관으로 기술하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감정에 치우지지 않도록 노력하되, 나의 주관,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변화를 기록할 생각이다. 본격 투병을 하게 되면 글을 쓰지 못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글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발병부터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과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는 이렇게 완치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섣부른 희망이나, '투병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아는 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것이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 감정을 충실하게 기록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도 이 글(연재)이 길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최근 내가 겪은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이 글이 짧아질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한 분은 아흔 두 살의 어르신으로, 췌장암을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다른 한 분은 작년, 내 나이(60세)에 말기암이 발견되어 약 4개월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연세 많은 어르신의 단호한 결심은 존경스럽고, 갑자기 말기암으로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선배와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선배 역시 자신의 투병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만, 돌아가신 두 분처럼 단호하고 담백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렇게 지저분한 변명을 남기고 있다. 그건 어쩌면 마음 속에서 생존을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두렵다. 건강할 때도 '죽음'은 막연한 공포였지만, 건강을 돌보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죽음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를 가진 존재로 내 앞에 서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낭떠러지를 걷는 듯한 긴장과 매 순간의 절박함이다. 그 처절함은 어떤 말이나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며, 누구나 실제 눈앞에 닥칠 때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다고 병을 발견하고 투병을 하는 기간이 내내 죽음과 맞닥뜨리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일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으로 과거가 현재를 밀고 가는 시간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중첩하면서 투병하는 사람의 감정은 공포, 절망, 비관, 슬픔, 고통와 같은 비극의 감정과 눈 앞에 있는 현실에서 반응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 감정을 갖게 된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소견을 듣고, 처치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감정으로 괴롭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투병하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하면 슬그머니 희망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죽음까지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죽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게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일수록 살아야 할 나날이 많아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제 60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회에 조금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충격, 절망, 좌절, 슬픔 같은 감정이 밀려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쉽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걸 느꼈다. 이 뒤섞인 감정의 변화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경변 결과를 알기 전에 3회까지 써 놓은 글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현대판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의 시간]이 현재 판매 20만부, 인쇄 30만부를 넘어섰는데,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지 못한 분이 많아서 실질 판매부수는 오늘까지 이미 30만부가 넘은 것으로 보인다. (고일석 기자의 글 참조) 출판사는 종이 구하랴, 인쇄소 확보하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나는 예약판매를 구입했음에도 1판2쇄를 받았고, 어제 다시 추가 구입한 책은 1판 23쇄였다. 불과 열흘도 안 되어 23쇄였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쇄를 찍어내고 있으니 신기록을 쓰고 있다. 출판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표인 김언호 선생)는 이럴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조금 쓴소리를 한다면, 이럴줄 몰랐다면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과 기류를 올바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고, 촛불시민의 뜨거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니 좀 서운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이런 부족한 대응이 오히려 [조국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증폭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니 오히려 좋은 결과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도 [조국의 시간]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책이 초기에 많이 팔리고 관심이 줄어들기 보다는, 꾸준히 판매되어 베스트셀러는 물론, 스터디셀러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적들'은 [조국의 시간]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온갖 시비와 더러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을 비난, 조롱하는 것은 결국 조국 전 장관을 향한 것이므로, 이들의 비난, 조롱, 폄훼 같은 것들은 이미 짐작했던 바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대붕'이 등장한다. 대붕의 한쪽 날개만으로도 바다를 가릴 정도로 크고, 온힘을 다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조국 전 장관을 두고 벌어지는 '멸문지화'의 능욕은 '대붕'을 잡으려는 잡새떼의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사냥꾼 '검찰새'는 온갖 무기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공격했다. 그것들이 사용한 무기는 비유하자면 화살, 창, 도끼, 칼 같은 것들이고, 이것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붕의 날개를 찢으려 했다. 여기에 '기자새'들이 가세해, 한꺼번에 수십, 수백, 수천개의 펜촉을 날리는 공격으로 무려 100만 개의 펜촉을 날려 대붕의 날개를 꺾으려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당새'들은 '검찰새', '기자새'와 내통하면서 대붕이 가는 길을 알려주고, 곳곳에 함정을 파두었다. 그렇게 '적들'의 공격을 받은 대붕은 피를 흘리며, 날개가 꺾일 수도 있는 절망의 순간도 있었으나, 그들보다 더 많은 촛불이 바다로 향하는 길에 빛을 밝히며 대붕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대붕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촛불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적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들'은 악랄하고, 저열하며, 천박하고, 야비하다. 그들의 심성은 일찍이 비뚤어졌고, 오로지 세속의 돈과 권력을 탐하느라 눈이 멀었다. 그들은 시궁창에서 살며, 썩은 음식을 먹고, 죽은 쥐와 오물덩어리 사이에서 잠을 잔다.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를 죽이고, 폭행하고, 가진 것을 빼앗고, 뒤돌아서면 뒤통수를 때린다. '적들'은 대붕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귀하고, 깨끗한 대붕이 하늘을 날아가는 순간, 시궁창에 사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고, 더럽게 보이며, 참을 수 없이 비참하고,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온갖 더러운 오물 사이에 사느라 질병에 시달리고, 기괴하게 변형된 '적들'은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는 것이 비참하다. '검찰새'는 권력을 가졌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기자새'는 사실을 밝혀야 하지만 돈을 좇느라 눈이 멀고, '야당새'는 오래 전부터 사악한 집단에서 나온 것들이라 근본이 더럽고 야비하고 타락한 존재들이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권력도, 돈도 없었지만, 오로지 깨끗한 마음, 하늘을 날아오르는 대붕의 뜻에 공감하는 마음, '적들'에게 공격당하는 대붕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 하나는 약하지만,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은 어두운 밤을 밝히고, '적들'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런 촛불시민들이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면서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조국의 시간] 한 권은 하나의 촛불이다.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는 것은 한 조각의 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의 정의가 모여 정의로운 탑이 되고, 그 탑은 거대한 촛불처럼 불길이 타오르며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우리가 구입하는 한 권의 [조국의 시간]은 단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적폐', '적의 무리'를 짓밟아 올바른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책은 조국 교수가 썼으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촛불시민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박준영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박준영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그동안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막연하지만 답답했던 느낌을 방금 올라온 그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을 읽고서야 뚜렷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왕이면 같은 변호사인 분이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논리적으로 비판해주면 좋겠는데, 우선 내가 참을 수 없는 부분만이라도 언급하려 한다. 박준영 변호사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은 조금 긴 글인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만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김학의는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다. -피해 여성들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음에도 변명도 못했다. -긴급 출금 자체가 불법이다. -김학의는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부각'의 목적에 쓰여지는 '병약한 개'다.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김학의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형당했다. 이 내용 외에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몇 가지 적당하지 않거나 잘못된 예를 들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신영복의 '담론'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사례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김학의 주변 사람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 미안한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한 김학의 -별장 접대는 15년 전,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지탄, 실추된 명예, 가족과 주변 사람의 고통,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형사책임보다 가볍지 않다 -헌법재판관 조승형의 의견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 사회적 살인을 당한 김학의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이 갖가지 목적으로 김학의를 이용 -김학의의 1심 최종진술 박준영 변호사(이하 '박준영')의 글은 크게 두 가자로 구분할 수 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시각과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건 다시 '법 논리'의 시각과 '감성'의 시각으로 치환해도 동일한데, 이것이 박준영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몰역사적이며 감정에 치우쳐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박준영은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위의 정리한 내용에 모두 들어 있다. 먼저, 박준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법조항'에서 '공소시효'에 관해 말해보자. '공소시효'란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의 소추권 및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재판의 공정성', '처벌의 필요성', '공적 비용', '형벌권의 소멸시효' 같은 이론들이 이를 뒷받침 한다. 공소시효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존재하거나 사라지고, 기간도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등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박준영은 '공소시효'가 절대 기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그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직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소시효는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독일에서는 전쟁범죄자를 추적하고 처벌하는데 지금도 전담 부서를 두고 맹렬히 전범자의 뒤를 쫓고 있다. 이미 1천 명이 넘는 전범자들을 추적해 체포, 처벌했거나 그 과정에서 고령으로 사망하는 전범자들이 나오고 있다.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건 박준영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범죄에 준하는 인륜의 파괴하는 범죄는 한국에서도 공소시효를 없애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것 역시 박준영이 모를 리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소시효'를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옹색할 뿐 아니라 비겁한 태도인 것이다. 김학의가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결과를 원인에 꿰어 맞추는 견강부회의 논리다. 김학의는 '범죄자'다.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고, 구체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공직자의 윤리를 훼손한 비윤리적 공직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명확하게 법의 처벌은 물론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지탄도 함께 받아야 한다. 박준영이 말하듯, 김학의가 다른 조직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당하는 존재라는 건,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비논리적 연결이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다른 어떤 조직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이용하든 그걸 두고 김학의의 범죄를 변호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준영의 긴 글에서 법적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감정'이다. 변호사가 법적 논리로 김학의를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는 감정에 호소한다. 김학의가 '약자'라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포괄적 의미에서 '약자'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김학의는 학생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검사였고, 한국의 1% 안에 드는 최고 엘리트 계층이며, 고위 공직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다. 그런 김학의가 범죄를 저지른 이후 갑자기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니, 그 말이 과연 합리적인가? 박준영이 예로 들은 내용들은 적절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신영복이나 조승형의 글을 인용한다고 해서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가 가벼워지거나 사라지는가? 더구나 박준영은 김학의의 처지를 감정적, 감성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실추된 명예, 사회적 지탄, 사회적 살인 같은 문장으로 김학의의 처지를 옹호하고 있는데, 보자, 대체 이 모든 결과들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 원인이 어디에서 왔고, 원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김학의가 지금 놓여 있는 범죄자, 사회적 지탄, 실추한 명예는 과연 누가 한 행위의 결과인가? 박준영은 계속 결과론으로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주제에 관한 논거와 주장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김학의는 범죄를 저질렀고,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처벌받았으며,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고, 얼굴을 감추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도망다니듯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받은 사회적 지탄과 실추된 명예가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한 건 박준영이다. 누가 김학의를 사회적으로 살인했는가? 김학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당한 사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그것은 김학의가 과거 가졌던 막강한 검찰 권력의 비호 때문이었으며, 지금도 검찰은 선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박준영도 잘 알 것이다. 박준영은 '재심 변호사'로 알려졌고, 누구보다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나 역시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김학의와 관련해서 박준영은 경주마처럼 시야를 가린 채 뛰고 있는 '법 기술자'로서의 변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전제는 옳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에 의해 매우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김학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쪽에 서 있는 권력자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특정한 계급, 계층의 이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옳지만, 김학의보다 더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정의나 윤리나 도덕, 법률은 동시에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학의 같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보다는-김학의는 스스로 돈과 권력이 있으므로 알아서 잘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인권'을 더 챙기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박준영이 쓴 '인간의 존엄성 3'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전문 지식에 빠져 맹목이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낀다. 박준영은 분명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을 만들었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크메르 루즈가 자기 국민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준영은 '권력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인 '법'으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법'은 '법조문'만이 전부라고 판단하고 해석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다. '법'은 인류의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도구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이면서 인류의 양심과 정의, 도덕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든 하나의 '규칙'이며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가해자들을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과 신변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과정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를 우선 보호하고, 배려하고, 그의 입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 법의 정신에도 옳바르다. 피해자들이 과거의 폭력과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심할 정도의 사회적 배려가 있은 다음에,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숨어 지내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가해자인 김학의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을 박준영을 정말 모르는 걸까. 그 피해자들이 김학의에 대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학의가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살인'을 당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박준영은 가해자에게 실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폭력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은 '왜곡과 과장' 때문에 그들의 인권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닌가? 혹시, 박준영 자신이 김학의가 가진 권력에 과몰입해 '대리 권력자'로 감정 이입한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당연히 박준영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그가 한국의 '남성'이고 '변호사'인 것은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나는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그가 지금 김학의 사건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법'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일수도 있겠으나, 지금 가해자인 김학의를 옹호하는 주장은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한겨레신문의 천박하고 야비한 행태
    한겨레신문의 천박하고 야비한 행태 어지간하면 그냥 못본 척하고 지나가려 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할 때의 정신을 완전히 잃고, 이제는 수많은 '기레기'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것처럼, '가난한 조중동'인 '한겨레'를 두고 쓴소리를 해봤자 내 입만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한겨레' 논설위원 권혁철이 ['모병제는 진보' 도그마 경계해야]라는 논설을 읽고는 우선 한숨부터 나왔다. 한겨레 논설위원 수준이 이따위니까 그 밑에 기자들 수준은 말할 것도 없는 걸 알게 된다. 권혁철은 '모병제'가 진보진영이 찬성하고, 징병제는 보수 쪽에서 유지하기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우선 한국에 '보수'가 있는지부터 물어볼 일이다. 여기에 권혁철은 '모병제'가 '병역의 시장화 정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은 물, 전기, 가스,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시장논리를 반대하면서 왜 병역의 시장화 정책인 '모병제'에는 찬성하느냐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권혁철은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논리를 비튼다. 한국의 '신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시장화'했다. 전기, 가스, 교육, 통신 등이 이미 사유화 즉 '시장화'했는데,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권혁철이 똑바로 말을 하려면, '모병제'의 시장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화'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현실을 비판하고,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를 다시 원래의 공공재, 공공서비스로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우선이다. 권혁철은 '모병제'를 반대하는 논리로 현재의 '징병제'는 [재벌 아들, 장관 아들, 국회의원 아들, 골목 가게 주인 아들, 비정규직 노동자 아들 구분 없이 모두 죽거나 다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징병제'는 '무조건 평등하다'는 비현실적 전제를 들이댄 것이다. 권혁철은 한국의 '징병제'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진짜 모르는 걸까? 모른다면 신문사 논설위원씩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알고도 이런 말을 한다면 아주 악랄하고 야비한 인간이다. 지금 당장 국회의원 본인과 그 자식들의 병역 현황, 재벌들 본인과 그 자식들의 병역 현황을 살펴봐라. 평범한 서민과 그 자식들이 군복무를 한 것과 국회의원, 재벌과 그 자식들이 군복무한 통계를 보면,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온다. 권혁철은 마치 '징병제'가 '평등한 사회'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례처럼 말하고 있는데, 징병제인 한국사회에서 가장 불평등한 징병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변명을 할까. 아, 법으로는 평등하다고? 법이 평등하니까 평등한 거라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판사의 범죄는? 검사의 범죄는? 사실보도를 하지 않는 기자 쓰레기들의 범죄는 대체 뭐라고 변명을 할지 참 궁금하다. 여기에, 지금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 - 찾아봐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라가 있다 -은 그러면 전부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가? 아, 한국은 분단과 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서 징병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논리인가? 그렇다면 권혁철은 '북한'을 한국의 '주적'으로 보고 있는 건가? 그건 수구집단이나 하는 짓인데? 심지어 국방부에서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에서 제외했고, 한국의 국방에서 현재 '주적' 개념은 사라졌는데도 '징병제'를 해야 한다고? 게다가 한국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특히 어린이, 청년 인구 감소율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국방부에서는 군인의 숫자보다는 무기 체계를 자동화, 기계화하는 방향으로 편성하고 있어서 군인의 숫자가 과거 60만 명을 웃돌던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권혁철은 군인의 숫자가 50만 명이 넘어야 하는 이유를 들면서 미국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들이댄다. '1994년 여름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석달 내 국군 사상자를 49만 명으로 시뮬레이션했다'고 말한다. 미국의 발표나 한국 보수(극우) 집단의 남북한 전쟁 비교는 당연히 편향되어 있다. 이런 일방적 자료를 근거로 들이대는건 쓰레기 언론들이나 하는 짓인데, 한겨레의 논설위원이 따라하고 있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고, 한심할 뿐이다.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보다 단순비교로도 30배가 넘는다. 국방력은 다르다고? 무기의 숫자나 군인의 숫자는 북한이 더 많다고? 알리의 주먹 한 방과 어린이의 주먹 100개를 비교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권혁철의 수준 이하의 '논설'을 읽고서도 못 본 척했다. 그러다 오늘 백기철 칼럼 '그 반성문이 어색했던 이유'를 읽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백기철의 글도 일부러 찾아본 것이 아니고,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공유했기에 읽었다. 백기철의 글은 고등학생의 독후감 수준도 안 되는 천박하고 너절한 글인데, 왜 그런지 보자. 백기철은 글에서 '조국 사태'라고 단정한다. '조국 사태'라니? 대체 조국 전 장관이 뭘, 어떻게 했는데 '사태'라고 하는 건가? 백기철이 말하는 '사태'의 내용은 이렇다. '자녀들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 등은 형사 법정에서 면책된다 해도 도덕적, 역사적 책임에서까지 자유로울 순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든 개인이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뿐이다. 자녀들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무리수라니? 그게 대체 뭔 개 풀뜯어 먹는 소리인가? 자칭 언론인이라는 백기철은 명확한 근거도 없이 '무리수'라는 단어로 조국 전 장관을 비난하고 있는데,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게다가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니? 대체 어떤 처신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막연하고 두루뭉수리하게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말하면, 백기철은 언론인으로서 무리수를 두거나 부적절한 처신을 한다고 비판하면 뭐라고 대꾸할텐가? 백기철은 양비론을 들이댄다. '아마도 조국도 틀렸고, 윤석열도 틀렸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되먹지도 않은 양비론 따위를 들먹이면 자칭 진보적이고 균형잡힌 언론인으로 보이고 싶기는 한가보다. 윤석열 편은 들고 싶은데, 너무 노골적으로 편을 들면 안되니까 둘 다 비판하는 척 하면서 조국 전 장관을 떠 '까는' 거겠지.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에게 '결자해지'를 하라고 말한다. 조국 전 장관이 대체 뭘 잘못했다고 결자해지를 하라는 건가? 백기철의 이 문장을 받아서 조국 전 장관은 지난 2019년 8월 25일 '장관후보자 대국민 사과문'과 2019년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 내용, 2019년 9월 6일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을 통해 이미 충분하고도 넘치게 사과했다. 백기철은 조국 전 장관의 이런 사과의 내용을 알면서도 계속 추궁하고 비난하는 거라면 아주 저열하고 악랄한 인간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능한 기레기에 불과하다. 한겨레신문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나는 창간주주였지만, 한겨레신문과 인연을 끊었고, 무엇보다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던 선배 기자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는 현재의 한겨레신문 구성원들의 면면이 더 없이 너절하고 역겹기만 하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악의적인 언론의 보도와 검찰의 끊없는 괴롭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비상식적, 비법률적, 비인간적 행위임에도, 자칭 언론인이라는 것들은 검찰과 한몸이 되어 조국 전 장관과 가족들 죽이기에 앞장섰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언론사에서 언론쓰레기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추악한 게이트로 남게 될 것을 장담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2021 보궐 선거의 의미
    2021 보궐 선거의 의미 투표가 끝나고, 결과는 참담했다. 반민족, 반민주, 매국정당의 후보가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시장으로 당선되었고, 지자체의 시군의원도 15군데에서 13군데를 국민의힘에서 차지했다. 이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이 좋거나, 처음부터 지지했던 사람들이 투표한 것보다는 현 정권을 심판한다는 의미가 더 큰 걸로 보인다. 선거 결과에 관해 많은 사람들의 분석과 의미 부여가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해서 몇 가지 현상을 주목하며 이번 선거가 곧 있을 대통령 선거는 물론, 앞으로 한국사회에 끼칠 영향까지를 염두에 두고 정리했다. 1 민주당 민주당(열린민주당)의 초재선 의원 가운데는 꽤 훌륭한 재목이 있다. 당장 꼽아봐도 최강욱, 박주민, 고민정, 이재정, 김용민, 김종민, 손혜원, 백혜련 등이 있는데, 이들은 민주당에서도 유능하고 진보적 태도를 지니고 있어서 미래의 민주당을 끌어갈 인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 외에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의 요구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무려 180석을 몰아준 시민들은 민주당원이 아니거나, 민주당이 마냥 예뻐서 투표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 정치에서 아주 나쁜 놈보다는 덜 나쁜 놈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 뿐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왜곡된 양당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는 명백히 '미국식 민주주의'를 모방한 것이며, 이 모방은 애초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의 정치 간섭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양당제-다당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양당제-는 여당과 야당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완벽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따라서 적어도 '양당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공동의 이해 관계에 있으며, 이 체제의 수혜자라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한편, 양당제를 깨뜨리기 위한 군소 정당, 진보 정당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현실의 벽인 기득권 두 정당에 부딪쳐 아직까지 한국정치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군소 정당이 정치판을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물적, 인적 자원의 뚜렷한 한계와 공고한 기득권의 제도적 틈을 뚫을 만한 무기(조직, 정책, 인물 등)가 부족한 때문이지만, 지금까지 군소 정당의 탄생과 소멸을 보면, 외부적 조건의 영향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스스로 붕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양당제'를 비판하면서도 그 양당제를 깨뜨릴만한 동력이 유지되었는가를 보면, 대표적으로 지금 '정의당'이 보여주는 비관적 현실처럼, 특히 진보정당에서조차 부르주아 정당인 민주당보다 덜 개혁적이고 시민의 요구와 역사적 과제를 잃어버린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양당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얻은 결과에 만족하며 촛불 시민의 개혁 요구를 꾸준히 묵살해왔다. 촛불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무려 180석을 밀어주었던 촛불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오로지 개혁, 개혁만이 우리의 미래를 살리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박병석, 이낙연, 김종인 같은 인물들이 당의 지도부에서 개혁을 가로 막고 있었고,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일부 초선의원을 제외하고 침묵하거나 암묵적 동의로 개혁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했다. 이들 반개혁 민주당 의원들은 전형적인 부르주아 의원들로, 촛불 시민의 개혁 요구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한국사회의 기득권 -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의 기득권 -을 유지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자들이이다. 이들 반개혁 민주당 의원들은 본질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나라의 정의, 진보, 개혁, 보편적 복지 같은 촛불 시민의 시대적 요구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특권을 누리려는 지극히 부르주아적 이해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진보 성향의 촛불 시민은 딜레마에 놓여 있다. 민주당의 반개혁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그렇다고 매국정당인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는 없으며, 군소 정당 가운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이 있는가를 찾아보면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즉, 개혁의 대안이 되는 정당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몹시 안타깝고 답답하다. 개혁의 대안이 보이지 않는 정치 현실에서, 민주당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계속 패한다 해도, 민주당 의원들은 여전히 기득권을 누릴 것이며, 의석 숫자가 줄어들 뿐, 이들이 누리는 특혜는 변하지 않는다. 즉, 민주당 다수 의원들은 세상이 반동으로 변하든 말든 자기의 삶에는 큰 영향이 없기 때문에 촛불 시민이 그렇게 목이 쉬고, 피눈물이 나도록 외치는 개혁의 목소리를 어디서 개가 짖는냐고 딴청하는 것이다. 2 욕망의 부활 이번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서울과 부산에서 우연히 '성'과 관련한 문제로 시장이 자진 사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때문에 치뤄졌다. 부산시장 오거돈은 자신이 성추행했음을 명백히 밝히고 사퇴했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추행 혐의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두 시장이 모두 '성' 추문으로 물러났다고 공격하고, 그 공격은 일정 부분 대중에게 먹혔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결정적 패인은 '부동산' 문제였다. LH공사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빼돌려 개발 지역에서 땅투기를 하고,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본 것에 대해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부가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막으려는 정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자 이에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의 총공격이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인 부동산 정책을 집권 초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추진했어야함에도 미적거렸고, 그나마도 어정쩡한 상태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는 바람에 대중의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는 선거 과정을 통해 상당한 범죄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것은 과거 이명박이 전과14범이라는 타이틀을 갖고도 대통령에 당선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개혁 정부였던 노무현 정부가 반동, 수구, 기득권 세력의 공세에 밀려 개혁의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신의 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다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있었던 두 인물이 바로 이번에 서울시장, 부산시장으로 당선된 오세훈과 박형준이다. 이들은 이명박의 휘하에서 이명박이 출세하도록 적극 도운 사람이다. 두 사람의 거짓말은 이명박의 태도와 매우 흡사한데, 일부러 배우지는 않았겠지만, 세 사람은 서로의 심리가 '동기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심리적 동기화'는 자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고,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인지부조화 상태를 의식하면서 욕망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자아를 분리해서 욕망을 좇는 자아를 키우고, 정직한 자아를 말려 죽이는 행위를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천박하고, 저열하며, 교활하고, 악랄하고, 야비하며, 음흉하고, 포악하며, 신의가 없는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돈'이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이며, 주변의 인간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오, 박 두 사람 역시 이명박과 같은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자연인으로의 개인이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쌓인 친일, 친미, 매국, 매판, 사대, 천민자본주의의 아이콘이다. 이명박이 그 아이콘의 핵심이며, 두 사람은 이명박의 변형된 아이콘이다. 이명박, 박근혜가 감옥에 갇히고, 새 정부가 들어선지 불과 4년만에 대중은 이명박의 욕망을 다시 선택했다. 이명박과 그의 졸개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망을 채우기에 몰두했고, 부패한 관료, 언론이 그 욕망의 단맛을 즐겼으며, 무엇보다 이윤추구에 충실한 자본(가)이 이들을 끌어안았다. 개인의 욕망을 부추기고, 장밋빛 미래를 화려하게 늘어놓으며,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고, 사교육으로 일류대학에 진학하며, 모두들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미래를 찬송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여서 이들 가진자, 기득권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사회는 상위 1%의 강남 부자들과 그의 자식들에게나 해당하는 청사진일 뿐, '비강남'에 사는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도 볼 수 없는 암담한 미래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대중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거짓말이라도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말을 들으려 한다. 교육공무원이 대중을 개, 돼지라고 말해도 그 말이 옳다고 판사가 판결하고, 대중은 이제 당연하게 개, 돼지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개, 돼지라도 오로지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끝없는 욕망의 추구와 무한 경쟁으로 내가 잘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못 사는 걸 보는 것이 낫다는 악에 바친 경쟁의 증오심으로, 남이 잘못되는 꼴을 보면서 기뻐하는 야비하고 악의에 찬 타락한 인간이 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번 선거였다. 3 오염된 미래 이번 선거가 개혁으로 가는 길에서 일시적 반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그렇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명박, 박근혜를 겪었고, 그 시기에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더욱 심각한 건 가치관의 타락이었다. 즉,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얼마든지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으며, 자라나는 세대는 이명박, 박근혜의 집권을 보면서 민주주의, 정의, 예의, 상식, 도덕, 평등, 배려, 공동체, 복지 같은 중요한 가치를 버리고 거짓말, 사기, 범죄, 욕망, 배신, 탐욕, 이기심, 배금주의, 물질만능, 돈, 부동산, 아파트 같은 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하게 여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천박하고 역겨운 욕망의 추구가 이명박에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불과 몇 년만에 이명박의 아바타인 오, 박 두 사람이 서울과 부산 시장에 당선되었다는 것은 이명박의 욕망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의미하며, 오와 박이 시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과 부산은 다시 천박한 욕망의 도시로 타락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젊은 세대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기회를 잃는 것을 뜻하며,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협잡, 사기, 거짓말 같은 타락한 정신이라는 걸 말하고, 시대 정신이 오염되어 이 시기의 청년들 사상과 정신이 썩어가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올바른 매국노 청산을 하지 못했다. 일본 앞잡이로 부역했던 매국노들이 권력을 잡았고, 그들은 일본을 모방했으며, 일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승만은 친일매국노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했고, 박정희는 그 자신 일본군으로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였으며, 군사반란을 일으킨 반역자였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까지 군사반란으로 이어진 기간을 보면 1948년 이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는 1993년까지 무려 45의 역사가 친일, 친미 매국 반동 세력이 한국을 지배했다. 그나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정부가 과거를 청산하려 노력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김영삼 정부 말기에 터진 외환금융위기(IMF사태)로 한국의 경제는 '신자본주의' 체제에 포획되어 그때부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깊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단기직 노동자, 불안전 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정규직 노동자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곧바로 자본의 이윤으로 귀결된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은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고, 노동시장의 경쟁을 격렬하게 하는 원인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격차를 더 크게 만든다. 가난한 노동자, 서민이 돈과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추종하고, 그들의 권력 의지를 지지하는 것은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에 해당한다. 피해자인 노동자, 서민은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배를 불리는 자본가, 권력자, 부르주아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것은 명백히 멍청하고 어리석은 행위가 분명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서민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더 잘 살게 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또한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노동자, 서민보다 더 교육을 많이 받고, 세상을 잘 이해하며, 더 똑똑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배계급(자본가, 권력자, 기득권 집단(언론 등))의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은 입법을 통해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법을 만들었으며,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다. 노동자, 서민의 고통과 투쟁은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계급 갈등, 계급 투쟁,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착취, 권력과 자본이 벌이는 온갖 불법과 탈법, 범죄 행위는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자본의 논리 - 이윤추구 - 에 충실한 기득권 세력(자본가, 부르주아, 권력자, 언론)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카르텔을 만들며 지배 집단으로 공고한 세력을 구축한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가졌다. 돈, 권력, 스피커까지. 이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90%의 대중은 개돼지로 취급한다. 기득권 세력은 대중의 욕망을 부추기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망인 이기심과 경쟁을 사회의 기본 멘탈리티로 구조화한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부동산과 일류대학과 대기업 취업과 의사, 판사와 같은 '사'짜 직업군으로의 진출이다. 모든 방송의 드라마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운 청춘남녀로 등장하고, 강남 출신의 연예인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으며, 강남이 한국을 대표하고, 이들이 지니고 다니는 사치품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다. 가난한 청년들은 자신의 현실보다는 손에 잡을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인 이들 돈과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 청년을 롤모델로 삼는다. 현실은 시궁창이면서 욕망은 강남 부르주아를 꿈꾸는 이들 청년들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더욱 욕망으로 타락하고 오염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지금 오와 박의 당선으로 드러난 것이다. 4 혁신의 아이콘 문재인 정부 말기로 들어오면서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개혁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촛불 시민의 개혁 의지를 이어받아 탄생한 정권이었지만, 촛불 시민이 바라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 무려 180석이나 몰아주었지만, 개혁 입법은 극히 미미했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드러내지도 못했다. 이것은 명백히 촛불 시민의 요구를 무시했거나 무능해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 의지가 높았다고 보는데, 대통령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법을 만드는 건 국회의 몫이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개혁 의지가 부족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민주당 내부에는 반개혁 인물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고 판단하는데, 그건 민주당의 원래 속성인 '부르주아 정당'의 뚜렷한 한계이기도 하다. 현 시점 - 서울시장, 부산시장의 패배 - 에서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번 두 도시 시장 선거의 승리로 '국민의힘'은 강력한 동력을 얻었으며,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런 빌미를 준 것은 민주당의 무능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민주당을 욕하거나, 실의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에서 가장 개혁적 인물을 다음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지난 4년 동안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던 무능과 게으름과 어리석음의 역풍이었던 것이 분명한 만큼,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가장 개혁적인 인물을 앞으로 내세워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서 가장 개혁적 인물은 단연코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과거를 살펴보면 그는 단 한번도 개혁의 전면에서 물러선 적이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토하는 세력이 있고, 이재명을 시기, 질투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은 민주당 내부에서 세력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이며, 민주당의 계보에도 들어 있지 않다. 그가 인권변호사로 출발해 성남시장으로 성공적인 행정가를 증명해 보였으며, 그 결과 현재 경기도지사로 훌륭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는 것은 좋지만, 그들 내부의 더러운 권력투쟁으로 진정한 개혁가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토하거나 다음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은 더럽고 파렴치한 정당으로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을 경고한다. 지금 민주당이 실패한 부동산 정책, 주거 안정 정책, 일자리 정책, 기본 소득을 비롯한 경제, 복지 정책들을 성공시킬 수 있는 인물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유일한다. 지금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대중의 타락한 욕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 지도자가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이재명 경기도지사라는 점은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다. 나라의 근본인 정의, 자유, 평등,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 등을 올바르게 구현할 수 있는 경험과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이재명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개혁을 더욱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만이 더러운 욕망으로 타락한 한국사회를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페르소나
    페르소나 페르소나의 존재를 쉽게 알고 이해할 수 있는 분야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는 송강호 배우,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페르소나는 로버트 드 니로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는 하정우, 박찬욱 감독의 페르소나는 최민식, 송강호, 스티븐 스필버그의 페르소나는 톰 행크스처럼 감독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감독의 분신처럼 표현하는 배우를 말한다. 페르소나의 본래 의미는 '가면'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배우들은 가면에 극중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얼굴 표정을 그리고, 목소리의 확산을 위해 고깔을 붙였다. 가면은 썼다 벗을 수 있으므로, 실제 자신의 정체성과 드라마의 속의 인물을 연기할 때의 인물은 분명히 구분되지만, 어떤 경우에 이 분리가 실패하면서 개인의 실제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이 구분되지 않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지킬박사와 하이드' 또는 '배트맨'을 보면, 지킬박사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하이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배트맨의 부르스 웨인은 억만장자이면서 박쥐 옷을 입고 고담시티의 범죄자를 찾아 없애는 정의로운 인물이다. 이때 지킬박사와 부르스 웨인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 모두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들이 창조한 '하이드'와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순간 이들은 개인의 정체성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도 모두 의심받기 시작한다.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두 인물을 동시에 살아간다는 점에서 분열성을 내재하고 있는 반면, 서로 인격이 다른 두 사람일 경우에는 권력 관계의 서열에 따라 권력이 강한 자를 대리하는 페르소나가 탄생한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되는데, 이때 마이클은 자연인 마이클의 모습이 아니라 조직폭력집단의 두목인 아버지의 역할을 그대로 이어가는 아버지의 페르소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권력집단 내부에서는 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모습을 동경하거나 스스로 동기화해서 자신을 권력자와 동일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특히 이익집단에서 이런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국가의 행정수반으로 국민의 이익을 가장 우선해야 할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마치 사기업을 운영해 이윤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 이명박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명박은 한국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인물로, 그의 삶 자체가 탐욕으로 뭉친 인간이다. 그는 오로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인데, 이런 유형은 그의 내면에 무의식으로 자리잡은 강력한 컴플렉스와 대리 욕망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명박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와 가족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 유대, 행복, 연민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으며, 이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인간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마침 그 때 '욕망의 시기'를 건너고 있었으며, 어리석은 대중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당연히 불편하다. 독재자가 나서서 일방 밀어부치는 정치에 익숙했던 기성세대는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사회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여겼고, 여기에 기득권 세력-자본가, 수구 언론, 수구 반동 정치집단 등-이 민주주의 세력인 노무현 정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는 결국 좌초하게 된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좌초는 그 자체로 사라지거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민주주의를 위한 뿌리를 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어떻든, 이명박이 '신자본주의'의 기치를 들고, 대중의 욕망을 선동하며 나타난 이후, 국가는 이들 권력을 가진 이익집단의 손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간다. 이명박은 '4대강 사업'으로 대표하는 토목사업을 시작으로 '자원외교'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활동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 부를 빼돌린다. 이명박이 집권하던 당시 오세훈, 박형준은 그 밑에서 '시다바리'를 하고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오세훈이나 박형준이나 그 전에는 진보지식인, 진보적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변신은 과거 김문수, 이재오처럼 노동운동을 격렬하게 하다 극우로 돌아선 것과는 다르게, 이미 상부 기득권 엘리트로서 진보적 태도를 유지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사회적 존재의 이익과 합치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은 성장 과정에서 결핍되어 있었던 여러 요건들로 인해 물질적 탐욕을 추구하는 기괴하게 비틀린 인간이었지만, 오세훈, 박형준은 그보다는 오히려 '탐욕' 그 자체에 매몰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오세훈이나 박형준의 성장 과정에서도 그런 트라우마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잠재된 무의식과 현실적 욕망의 결합으로 더욱 단단한 욕망이 탄생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이 보여 준 강력한 집착-오로지 '돈', '부의 축적'-을 가까이서 지켜봤을 두 사람은 이명박이 온갖 거짓말과 야비한 행동을 하면서도 오히려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배운 도덕, 양심 같은 기존의 관습과 개념이 아무 쓸모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즉, 우리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 양심, 질서, 비폭력, 배려, 정의 같은 단어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약한 자에게 주입하는 세뇌였으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범죄자, 조직폭력배, 깡패, 양아치들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즉, 도둑질, 강도, 폭력, 사기, 살인 등 사회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함으로써 크게 두 가지 효과를 드러내게 된다.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에서 격리되어 불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은 곧, 사회를 구축한 기존 기득권 세력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다수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것도 교집합으로 성립한다. 기득권 세력은 다수 국민이 이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범죄는 그 자체로 분명 나쁘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범죄자 개인이 저지르는 사소한(?) 범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 죄의식 없이 저지른다. 그리고 그런 범죄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가져가는 것이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이명박은 그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였으며, 그 아래서 '시다바리'를 하던 오세훈, 박형준은 욕망의 극대화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명박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감옥에 갇혔지만, 오세훈, 박형준은 이미 이명박에게서 배울 것을 다 배우고, 이명박의 페르소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오세훈, 박형준이 이명박의 페르소나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건 좁은 의미에서의 페르소나였을 뿐, 이명박, 오세훈, 박형준은 보이지 않는 실체인 '욕망'의 페르소나라는 점에서는 헤어날 길 없는 존재들이다. 페르소나는 누군가의 대역이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존재다. 누군가의 페르소나인 인물은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하며 살아간다고 확신하지만, 그 확신 자체가 매우 어리석은 착각이다. 이명박은 자신이 결코 알 수 없었던 트라우마와 결핍을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물질에 집착했으며, 오세훈, 박형준은 좁게는 이명박의 페르소나로, 크게는 욕망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한국사회가 만든 천박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던 운 좋은 인물이었으며, 그 시스템의 내부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즉, 오세훈과 박형준을 만든 한국의 천민자본주의 체제는 이명박을 지지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바라던 사회였으며, 지금 그 두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명박을 지지했던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물질, 재화를 축적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의 기생충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일본이 가난해지는 원인
    일본이 가난해지는 원인 한 나라의 전체 부(재화)의 총량을 나타내는 지표가 '국내총생산'이다. 이는 나라에서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뜻한다. 1조 달러 이상인 나라는 16개 국가이고, 한국은 10위를 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국내총생산이 6조 2천억 달러로 최대치로 올라갔다가 2015년에 4조 3천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2018년에 4조 9천억 달러로 조금 올랐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총생산으로만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3배 많은데, 1인당 실질구매력으로보면 몇년 전부터 한국이 일본을 앞섰다. 한 해 예산만으로 보면 일본의 2021년 예산은 1,160조원이고, 한국은 558조원이다. 예산으로는 일본이 2배 규모로 크다. 여기에 인구를 대비하면 일본은 1억 2천만 명이고, 한국은 5천 2백만 명으로 일본이 2배 규모다. 단순한 비교로만 보면 일본은 국내총생산이 3배일 뿐, 인구수 대비로는 한국과 거의 같은 수준의 경제력이다. 여기에 중요 변수가 국가부채인데,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237%로 세계 모든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채 비율이 높다. 반면 한국은 37.9%에 불과하다. 일본은 국가채무로 인한 부채 상환에 쓰이는 예산이 한해 예산에서 20%가 넘는다. 일본 정부는 한해 예산을 정해 놓고, 정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한해 예산에서 그만큼을 떼야 한다. 인구 대비로 같은 금액의 예산이면서, 일본은 정부 부채가 많아서 국민 1인당 돌아가는 예산액이 한국보다 적은 것이 확실하다. 나라의 부는 국민 모두가 노력해서 키워나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나라의 부를 키워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극소수는 나라를 좀먹고 나라의 부를 축내기도 하지만, 한국은 큰 기복 없이 전쟁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발전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 재해가 적은 것도 큰 몫을 했다. 반면 일본은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등 온갖 자연 재해가 자주 발생해서 나라의 부를 깎아 먹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 이 현상을 조금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내가 1년에 1억 원의 수입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단독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월급을 받아서 기본 생활 - 의식주 -을 영위해야 하는데 들어가는 절대 필수 비용이 있다. 이 비용을 1억원의 30%인 3천만원으로 보자. 그리고 문화, 예술, 레포츠, 여행 등 여가 비용으로 20%인 2천만원을 쓴다고 하자. 이제 5천만원의 잉여금액이 남는데, 이 돈의 일부는 단독주택을 소소하게 수리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20%는 건강을 위한 비용으로 따로 떼어둔다. 그러면 순수한 잉여금은 3천만원이 남는데, 이 돈으로 주택을 수리하거나 가전제품을 새로 구입하거나 집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천재지변이 잦아서 폭우가 쏟아져 집에 물이 새고,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슬고, 보일러가 고장나서 바꿔야 하고, 전기 설비에 문제가 생겨 수리해야 하고, 집이 점점 낡아가면서 단열, 방수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자. 여기에 전혀 예상하지 않게 지진이 나서 벽이 갈라지고, 심지어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자. 그러면 집을 수리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써야 하는데, 2천만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게 된다. 지금 일본이 놓여 있는 상황이 위에 단순하게 비유한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에 속하며, 피해 규모 또한 커서 나라(국민)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질 확률이 높은 나라다. 즉 일본에서 지진이 한번 발생할 때마다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조 원까지 가지고 있는 돈을 써야 한다고 할 때, 한국에서는 그만큼의 돈이 계속 축적되는 것과 달리, 일본은 모아놓은 돈을 쓰게 되므로 나라의 경제는 궁핍해지게 된다. 극단적인 예로, 2011년 후쿠시마 지진 사태 때 동일본 전체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95년 발생한 한신대지진 때 일본의 경제적 피해는 GDP의 2.5%인 10조엔, 우리돈 120조원으로 추산했는데, 2011년 후쿠시마 지진 사태는 한신대지진보다 훨씬 강력하고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했으므로 보수적으로 잡아도 2배 이상이다. 2배만 해도 GDP의 5%, 20조엔이며, 우리돈으로 240조원이나 된다. 일본 정부의 추정 피해 금액은 31조엔으로 우리돈 370조원이다. 여기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피해 비용은 들어가지도 않았다. 핵발전소 피해는 수십년, 수백년 이어지는 심각한 피해로,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일본의 자연재해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즉, 일본은 단지 집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370조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피해가 앞으로도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마다 일본은 천문학적 숫자의 비용을 들여 집을 수리해야만 한다. 이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할 수 있거나, 견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집을 수리하는 비용은 결국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돈을 써야 하는 것이고, 이 돈은 국민의 삶과 복지, 건강, 교육 등 삶의 기본을 위해 필요한 돈이다. 이렇게 많은 돈을 집수리에 쏟아붓게 되면 국민 개인의 삶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집수리에 신경을 쓰다보면 다른 일 - 생산, 개발, 수출, 투자 등 -에 쏟을 여력이 부족하고, 그러면 수입이 줄어들어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일본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형적 단점으로 강제로 지불해야 하는 손실비용이 늘어나면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잃게 되고, 꾸준히 가지고 있는 부를 소모하게 된다. 일본은 2차 세계전쟁 이후 패전국으로 미국 앞에 납작 업드려, 미국의 도움과 한국전쟁의 특수로 이후 세계 경제 순위 2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고,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정점에 있던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은 해마다 추락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내적 모순을 지닌 채 경제가 성장한 기형적 구조를 가진 나라였으며, 후진적 정치제도와 자만, 경쟁국가-특히 한국-의 눈부신 성장 등으로 위기에 놓였는데, 결정적으로 일본을 무너뜨린건 일본에서 발생한 자연재해였다. 일본은 주기적으로 지진, 화산 폭발, 태풍이 발생하는데, 하나의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천문학적 복구 비용이 들어간다. 이것은 '생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어서, 장사로 말하면 월 매출에서 상가임대료로 12%가 먼저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그동안 운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어 저축도 많이 하고, 여기저기 투자도 해서 한동안은 버틸 수 있지만, 공룡이 쓰러지면 더 빠르게, 더 큰 충격으로 넘어지듯, 일본이라는 경제 공룡이 쓰러지는 건 생각보다 빠르고 강한 충격으로 쓰러질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세계 최고령 사회여서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인구 감소는 자연스럽게 경제 규모의 축소로 이어지게 되고,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심각한 나라는 복구비용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반면 한국은 북한, 중국, 동유럽에 있는 동포들을 흡수해 인구를 자연스럽게 늘리고, 경제 규모, 시장의 확보 등 대안을 마련할 여지가 많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세시봉’과 김진숙, 노동계급 지금 한진중공업의 크레인에 올라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글이 화제다. 먼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께 마음 깊이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설날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세시봉과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우리 세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들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인물 일게다. 나도 모처럼 70년대로 돌아간 듯 즐거운 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김진숙 위원은 이들 ‘세시봉과 친구들’의 공연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아무도, 누구도 말하지 않던 이야기다. 물론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세시봉’ 시대를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바라본 글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이 그만큼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노동계급의 입장을 말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그만큼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김진숙 위원을 좇아 ‘세시봉’ 시대와 당시를 살았던 사람으로, 노동자의 삶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세시봉’ 프로그램을 즐겁고 재미있게 봤다. 보면서 얼핏 70년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70년대의 그림자를 지웠다. 70년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시기의 엄혹했던 분위기, 힘겨운 나날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도 유쾌한 마음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지운다고, 머리에서 잊는다고 사라질 기억은 아니었다. ‘세시봉’을 보는 순간만큼은 좋은 기억들만 추억하고 싶었다. 진보 진영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으로 침잠한 강박이 있는 듯하다. 시대 상황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 시대의 아픔과 계급의 고통을 ‘개인화’, ‘내재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진보 진영이 계급적으로 뛰어나며, 도덕적으로 차별화를 갖는 것임에 틀림없다. 늘 역사를 의식하고, 나와 계급을 일체화하며, 개인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증폭하는 일은 ‘유물론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필수적인 항목이다. 특히 한국(남한)처럼 불행한 현대사를 가진 나라에서 소위 진보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현대사와 자신의 삶 전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80년대 이후 소위 ‘학출’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 사회주의’가 마치 우리의 미래인 것처럼 왜곡된 상황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지도’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노동계급의 조직과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세시봉’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존재한 음악다방이지만 김진숙 위원은 당시의 ‘순수’했던 청년문화 전체를 비판하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라는 말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고, 개인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으며, 무비판적인 사고방식, 체제순응적인 태도 등을 아우르는 상당히 모욕적인 단어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운동’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순수’라는 단어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경멸의 뜻을 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진숙 위원은 ‘세시봉’으로 표현되는 ‘순수의 시대’에 대한 경멸을 말하는 것일테다. 특히 70년대 노동자는 마치 불가촉천민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 70년, 전태일 선배의 분신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노동자의 처지에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노동현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텔레비전, 라디오는 연속극과 쇼쇼쇼와 사랑타령으로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사상계는 폐간하고, 씨알의 소리와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진보 진영은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였다.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노동계급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70년대를 고통과 시련의 시기로 기억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70년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정보화의 혜택을 노동자들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적은 차이겠지만, 근본에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다만, 진보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흔히 갖는 ‘경직성’ 만큼은 털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삶의 원칙과 경직성은 다르다. 우리는 변함없이 진보적 태도를 유지하고, 실천해야 하지만,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만으로 일관된 삶은 스스로도, 주위 사람도 피곤하게 만든다. ‘운동’이든 ‘변혁’이든, 심지어 ‘혁명’이라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하고, 기회주의적 삶을 살지 않는 한, 진보적인 삶은 결국 평생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생활’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에 정태춘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정태춘 씨는 초기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많이 받았으나 점차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시작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받아주지 않게 되고, 주로 집회나 소극장 공연을 통해 노래했다. 정태춘 씨는 자신의 초기 노래가 ‘순수’했다고 말하면서, 그 노래를 평가절하 했는데, 정작 ‘현장’에 있던 나는 그 초기의 아름다운 노랫말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 1970년대부터 노래한 정태춘의 노래 ‘촛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관념론자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70년대가 노동자에게 고통과 시련의 시기였기 때문에 ‘순수’한 노래를 부르고 즐긴 사람들을 ‘부르주아’로 매도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혁명가에게도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의 순간이 있는 것이고, 인간인 이상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순수의 시대’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을 뿐, 우리는 시대의 낭만과 역사적 과제를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판사 무용론
    판사 무용론 최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있는 직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미래가 불과 30년 이내라고 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요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대부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자동화에 기인한다.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측면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어떤 면에서는 인간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는 세계 전체의 바람직한 합의가 없는 한,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체제-지구 자원의 낭비와 인간 노동력의 착취-로 인한 파괴는 계속될 것이고, 그만큼 인류의 종말은 가까워질 것이다. 인간의 직업 역시 자동화, 기계화에 의해 무수히 사라지게 될 터인데, 그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없어져도 좋고,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직업이 바로 ‘판사'다. ‘판사'라는 직업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위를 ‘심판’ 하는 역할인데, 이 직업이 아직까지 유효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권위 있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 수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해 매우 미개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엊그제 뉴스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이 중국의 프로바둑 기사와 대국을 한 결과가 나왔는데, 인공지능이 프로바둑기사를 이긴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이 개발한 것이므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인간 두뇌의 특정한 활동-바둑-을 이기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도한 두뇌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어도, 미래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특정한 능력-바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프로그램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지능을 높여 나가는 방식인데, 인류의 상위 0.000000001%도 안 되는 초고도 두뇌를 가진 프로바둑기사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은 매우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인공지능이 그렇듯, 지능을 생성하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해당 분야-바둑, 법률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률은 바둑보다 훨씬 단순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도 쉬운 분야여서,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판사를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법체계에서 경찰과 검사는 필요하겠지만 판사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것은, 판사의 역할이 매우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해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결과를 내놓는 것은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인간 판사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편견과 부족한 지식, 무능으로 인한 오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권력자의 입김이 반영되는 경우에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언론이나 권력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판사는 보수적이고, 보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며,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게 판결을 받다니! 하면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률 자체가 매우 딱딱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오히려 합리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든 판례를 분석해 내놓는 인공지능의 결과가 훨씬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논리적이다. ‘심판관’은 고대 제사장의 역할에서 시작되었으며, 제사장은 무당이었다. 그들의 출현은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 잉여생산물이 확보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잉여생산으로 다양한 기능의 직업군이 생길 수 있었고, 신과 가장 가까운 무당은 제사장이 되어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판사’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법률을 토대로 인간의 행위를 판단한다. 법률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 사회질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보수적인 내용을 규정한 것이고, 법률에 규정하지 않은 모든 행위는 자유롭고, 처벌받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법률이 복잡하고, 사회의 구성원을 얽매는 내용이 많을수록 판사의 역할은 중요해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인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합하는 기재가 되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인민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진짜 감옥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왜곡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은 단순하고 적을수록 좋지만,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럴 가능성은 적어졌다. 복잡한 법률을 판단하는 데 있어 인간 판사의 능력보다는 인공지능의 판단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컴퓨터는 인간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큰 데이터에서 나오는 분석과 결과는 인간 판사가 내리는 결론보다 당연히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판사가 사라진 법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조서는 컴퓨터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고, 판결은 컴퓨터가 출력한 문서로 받아보게 될 것이다. 판사의 권위 따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어야 한다. * 2016년에 쓴 글입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안철수 당대표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충고합니다. 정치는 자기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오기를 부리며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정치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찾아보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몇 년 사이 안철수 대표에게 보내는 글 세 편을 썼습니다. 2015년에 쓴 글 (https://brunch.co.kr/@marupress/142)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안철수 대표에 대해 안쓰런 마음과 함께,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에 의문을 갖는다는 글을 썼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진정어린 마음은 믿지만, 함께 정치하는 사람들 속에서 안철수 정치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 진보적 테제와 개혁의 화두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러 2020년, 안철수 대표가 발표한 '특별 기자회견문'을 듣고 다시 글을 썼습니다. (https://brunch.co.kr/@marupress/852) 이때도 안철수 대표가 보여준 행보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전혀 개혁적, 진보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구태 정치인의 행보를 답습하는 걸 보면서 매우 실망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안대표님의 말과 행동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미숙하거나 어리석었습니다'라고 비판했는데, 이 말은 아직까지 고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이 글에서 저는 안철수 대표가 깔끔하고 담백하게 물러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11월에 쓴 글(https://brunch.co.kr/@marupress/863)에서는 제목부터 '안철수 씨, 정치 그만두시죠'라고 썼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안철수 씨는 행정 경험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는 '문외한'입니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도 마찬가지죠.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면, 정치와 행정에서 오래 경험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 씨는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죠. 그런데도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일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겠다는 욕심이며, 망상입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나온 지금,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 다시 안철수 대표에게 글을 쓰는 이유는,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국민의당' 김윤이 하는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김윤은 매우 악의적이고 야비한 말로 현 정부의 정책과 전 서울시장 박원순 씨를 모욕했습니다. 김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쌍욕이 나왔습니다. 대중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식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말을 가려 하는 것이 교양 있는 사람의 태도이고, 그런 교양과 품위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더욱 조심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수많은 대중이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김윤은 없는 사실을 단정하거나,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말하고, 고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더군요.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 대표로서, 당원이 공적인 자리에서 교양과 품위를 내던지고 천박한 말과 근거 없는 왜곡, 과장된 내용을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민의당' 당원들이 집권당인 민주당을 공격해서 민주당의 지지도를 낮출 수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당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권력을 쟁취하려고 하는 조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보다 나은 정책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고, 선거를 통해 지지를 얻어 국회, 지자체의 자리를 확보해서 자신들이 만든 정책을 펼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렇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정당에서 김윤 같은 천박하고 수준 낮은 사람이 방송에서 다른 정당을 야비하게 공격하고, 고인을 모욕한다면, 그 개인의 잘못만 지적하는 게 타당할까요? 아니면 그가 속한 정당의 수준과 내용을 비난하는 것이 마땅할까요? 반대로, 민주당에서 만약 어떤 당원 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다른 정당을 야비하게 공격하고, 천박한 말투를 사용하며, 고인을 모욕하는 말을 했다면, '국민의당'에서는 그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민주당' 전체의 잘못으로 비난할까요? 당연히 정당 정치인은 누구라도 그 정당을 대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방송을 들은 시민들은 '김윤'이라는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김윤이 속한 '국민의당'도 함께 비난하며, 그 당 대표인 안철수 씨도 싸잡아 비판, 비난하게 됩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에 입문한 것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1년, 전 서울시장 오세훈이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하며 서울시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했다가 너무도 당연하게 서울시장에서 탈락한 이후, 안철수, 박원순 등이 급격하게 서울시장 후보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씨는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서울시장은 물론 대통령 후보로서의 대중적 인기와 전국적 지명도, 지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의 행보를 보면, 안철수 씨는 한마디로 오락가락, 갈팡질팡, 횡설수설 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자기 중심을 세우고, 자기의 정치철학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단단하고 뿌리 깊은 정치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주위의 노회하거나 어리석거나 개인적 욕망에 불타오르는 덜 떨어지고 천박한 정치낭인들의 숲에서 자기 중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니, 안철수 씨가 '정치인'으로서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에, 자기 중심조차 갖지 못해 타인의 욕망에 휩쓸린 것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안철수 씨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돌아와서 2013년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민주당 계열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가 되었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다시 '국민의당'을 창당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국이 움직이지 않고, 안철수 지지 역시 미미하게되면서 2018년 하반기에 독일로 출국합니다. 자기 처지가 조금만 불안하면 무조건 외국으로 나가서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렸다 돌아오는 모습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2019년에 다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으나 역시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안철수 대표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철수 대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안철수 씨의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안철수 씨는 모든 선거에서 패했습니다. 딱 한번, '노원 병'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뿐입니다. 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씨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대중에게 존경받고, 사회 활동도 다채롭게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치인' 안철수를 보면,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당한 온갖 상처, 모욕, 불쾌함, 모멸감, 꺽인 자존심과 망가진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오기를 부리며 정치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라고요? 본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그런 의심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자신만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돈과 권력, 명예가 있다고 누구나 정치인이 되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잡아서 사리사욕을 취하고, 개인의 사적 욕구와 욕망을 위해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태입니다.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철학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자신의 포지션을 놓고 '중도진보', '중도', '중도보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중심이 없는 정치가의 불안정한 모습을 국민이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사회의 약자들 -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임시직, 특별고용직, 아르바이트 등 노동자들과 여성, 어린이, 노약자, 성소수자 등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고민과 발언을 한 적이 있던가요?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정책을 내 놓은 적이 있나요? 외교 문제에 대해 전략적 깊이를 보여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던가요? 한국의 농어민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까? 안철수 씨는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자기의 의지가 아니었고, 정치를 하려는 의지도, 목표나 목적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대개 철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해도, 정치를 시작한 이후에도 안철수 씨는 정치가 국민을 위한 철저한 봉사라는 것,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오로지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의 관점에서, 안철수 씨의 정치행보와 '국민의힘' 소속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거의 다르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즉, 안철수 씨는 자신이 '중도'라고 외치지만, 한국사회에서 수구반동 집단과 차별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굳이 안철수 씨까지 나서서 한국의 정치를 극우로 몰아가려는 행동을 할 까닭이 있을까요? 그러고 싶은 겁니까? 앞에서 쓴 세 개의 글에서 저는 내내 안철수 씨의 역할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개혁만이 대안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사회는 매우 폭넓게 썩었습니다. 정치, 언론, 검찰, 사법, 재계 등 부패하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국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들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면, 지금은 오히려 국민이 정치와 정치가를 걱정하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고, 반동, 매국 언론과 검찰, 사법이 정상 국가를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화가 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씨는 어떤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이 정부가 잘 하는 정책은 모른 척 하고, 꼬투리를 잡아서 침소봉대해 비난하는 것만 즐겨하는, 막말로 양아치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로 있는 당의 당원이 시중잡배 같은, '양아치'처럼 말하는 걸 보면서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안철수 씨가 대표로 있는 당의 정체성과 당 대표의 인성까지도 같은 종류로 판단하게 될 것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안철수 씨가 정치에 입문할 때 받았던 그 높은 지지도-약 60%-가 10년이 지난 지금 왜 형편없이 초라하게 쪼그라들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정부와 척을 지고, 비난하는 행동, 수구반동 집단과 비슷한 정치적 언행, 말과 행동의 불일치, 천박하고 야비한 당원의 행태 등이 안철수 씨와 '국민의당'을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안철수 씨를 응원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최소한의 희망도 갖지 않습니다. 안철수 씨는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의 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한번씩 낙선을 했던 경험이 있고, 국민은 더 이상 안철수 씨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걸 알기 바랍니다.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은 지난 10년 동안 안철수 씨가 보여준 행동에 있고, 국민은 그런 안철수 씨와 '국민의당'을 심판한 것입니다. 깨끗하게 승복하고 포기할 줄 아는 것도 군자의 품위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입니다. 서울시장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욕망은 서울시장이 되어서 서울시민의 삶을 향상시키겠다는 행정가로서의 의욕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픈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분명하지 않던가요? 서울시정 조차 잘 알지 못하고, 비전과 전략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불행의 구렁으로 몰아가는 매우 반국가적 태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경원 같은 사람이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것 -만약 나온다면 - 역시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 앞에서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뒤돌아 서는 것이 현명한 태도입니다. 정치인으로 자질도, 능력도 안 되는 인물이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망상하는 것이야말로 불행의 첩경입니다. 돈이 있으니 오기를 부려가며 정치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는 점점 더 비참해질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른 정치인들의 말로를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자기 욕망과 욕구를 위해 정치한 결과, 국민에게 비난, 조롱, 외면당하고 역사에서 더러운 이름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안철수라는 이름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나처럼 단순한 사람을 위한 정리
    나처럼 단순한 사람을 위한 정리 사회 현상을 이해할 때, 세부 항목을 모두 기억하거나, 기록해서 분석하는 건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나처럼 평범한 서민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높지 않으며, 설령 있다 해도 피상적이고 개념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건 여러 종류의 선거철에 대중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중은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인물론'이나 '정당론' 등의 여론에 따라 선택하는 후보가 달라진다. 물론 큰 줄기에서 옳고 그름이 판명되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거짓 정보와 미세한 차이로 갈리는 여론전 속에서 나처럼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옳고 그름, 지지와 반대를 가르는 기준을 두고 혼란할 수 있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단순하게 현재 상황을 정리해 봤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고,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한 것이므로 세부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큰 줄기에서 동의하는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적은 누구인가? 정치에서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를 보면, 현재 '국민의 힘'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적폐 세력이자, 반민족, 반민주, 친일매국노 집단이다. 즉, 어떤 명분이든 '국민의 힘'을 지지하는 건 반민족, 친일매국노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 이들은 독재와 매국에 뿌리를 두고 거둔 부와 권력으로 한국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했으며, 학계, 언론과 카르텔을 형성해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승만과 매국노, 매국경찰에 의해 정당한 법집행이 좌절되어 오늘날 매국, 독재의 뿌리가 자란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극우반동 집단인 '국민의 힘'과 그 카르텔을 박살내는 것이 민주시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것은 오로지 투표와 함께 현 집권 여당을 감시, 지지하는 한편, 시민의 여론으로 압력을 가해서 민주당이 개혁 입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떤가. 민주당도 기득권 부르주아 세력임에 틀림없지만 '국민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수정당'이다. 민주당은 보수정당이지만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한국에 좌파정당이 없는 현실에서 민주당이 그나마 대안이며, 70년대, 80년대, 90년대의 진보운동세력, 학생운동, 활동가들 일부는 민주당으로 들어가 개혁을 시도했다. 민주당 내부에는 극우에 가까운 인물부터 좌파에 가까운 인물까지 스펙트럼이 넓어서 일방으로 비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지만, 진보세력, 진보성향의 시민이라면 민주당이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실질적 힘(정당 의석 수, 조직력, 당원 수 등)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인정하고, 좌파 진보정당이 없는 한국현실에서 민주당을 압박하는 한편, 온건한 개혁부터 민생의 구체적 사업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을 견인하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의 역할이다. 종교에서 기독교 주류는 정치의 '국민의 힘'과 같은 무리다. 이들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의 친일기독교로 거슬러 올라가며,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제주도민 학살사건의 주범이기도 하다. 한경직 목사가 스스로 밝혔듯, 서북청년단의 모체는 평안도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에서 내려온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이들이 제주4.3에서 군인, 경찰과 함께 제주도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이다. 이후, 이들 기독교 세력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하며 세를 키웠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기독교도가 나라를 망치는 데 앞장섰다. 대표 인물이 이승만, 이명박이다. 같은 기독교라 해도, 가톨릭은 조금 다르다. 한국현대사에서 가톨릭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민주화 투쟁을 하는 청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현 문재인 대통령도 종교가 가톨릭이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개신교에서는 엄청난 확진자가 나오고, 사회를 혼란시켰지만, 가톨릭은 확진자도 거의 나오지 않고,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성범죄자 가운데 목사가 가장 많다는 보도(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6년 11월까지 성폭력 범죄로 검거된 전문직이 5,261명이고 이 중 종교인이 681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중에서도 성범죄를 가장 많이 저지른 전문직 직업군 1위가 바로 개신교 목회자였다. - 가스펠투데이)를 보면, 개신교가 얼마나 썩었나를 알 수 있다. 가톨릭도 미국을 비롯해 세계 전역에서 가톨릭 신부들이 성범죄-동성 아동 성착취-를 저지른 사례가 드러나고 있으니 개신교만 비난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사례에서는 가톨릭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악랄하다. 사실, 개신교의 목사나 교회를 일방 비난하기 어렵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나 도덕적 비난이 반복되는 것은, 그럼에도 꾸준히 그런 목사나 교회를 지지하는 신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회가 타락하는 원인에는 어리석고 무지하며, 멍청한 개신교도들이 수백만 명이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속이는 놈이 더 나쁘지만, 속는 놈도 결국 한통속이라는 뜻이다. 주류 언론은 거의 대부분 '자본'의 노예라고 봐도 좋다. 공생관계라고 말하지만, 재벌, 대기업이 광고를 하지 않으면 당장 밥줄이 끊긴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자본'은 이 사회의 주류이며, 정치와 경제를 양손에 잡고 흔드는 핵심 세력이다. 따라서 '자본'의 말을 거역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삼성 장충기에게 문자를 보낸 언론사 간부들, 판사들의 면면이 까발려진 적이 있다. 언론가 간부, 판사들도 장충기에게는 애완견에 불과한 것이다. 수구 반동들이나 '자본'이 부패한 권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부패하면 뜯어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때 기업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그때 권력자들과 그 주변의 하이에나들, 언론은 떡고물을 꽤 넉넉하게 얻어 먹었다. 지금 주류 언론이 민주당 정부를 공격하는 유일한 이유는, 떡고물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썩은 고기를 좋아하는 하이에나와 들개들이 몰려 다니며, 호랑이가 사냥한 먹이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 정부를 흠집내고, 권력을 빼앗아 수구 반동 세력이 가져가면, 그들끼리 서로 부패한 열매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악랄하게 민주당 정부를 물어뜯고, 민주당 정부에서 개혁적인 인물 - 조국, 추미애 등 - 을 인정사정 없이 물어뜯는 것이다. 사교육 시스템 - 정부의 입시 정책,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사설학원 -이 붕괴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의 보수적 정책과 사교육 시장의 이익이 같고, 여기에 천박한 시민들의 경쟁적 욕망이 결합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철폐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교육은 학생의 목을 조르고, 결국 한국의 미래를 질식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핀란드처럼, 교육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걸 주도할 정부가 없으며,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두고 서로 눈치만 볼 뿐이다. 기본적으로 수구 반동 세력에서는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을 옹호, 지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걸림돌이고, 민주당도 보수적이긴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고, 끊임 없이 경쟁하도록 만들어 결국 수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인간들은 전부 수구 반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서열화, 입시 학원화, 취업 학원화 하는 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현재의 공교육과 사교육은 아이들을 말려죽이고, 학교폭력을 조장하며, 어린이, 청소년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획일화된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70년대 초반에 핑크 프로이드의 'The Wall'에서 노예를 만드는 학교 교육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다. 교육 시스템을 혁명하지 않으면,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이 왜곡될 것이고, 사교육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며, 부모들은 경쟁 교육의 달리기에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 검찰총장 윤석렬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쿨했다'는 표현으로, 검찰의 본질을 드러냈다. 한국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한국 검찰만큼의 권력을 가진 검찰이 없다. 검찰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검찰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정부를 지지한다. 즉, 검찰에게 최대의 재량권을 부여하는 정부(권력)와 친한 관계를 유지한다. 현 문재인정부와 검찰이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는 민주정부가 검찰의 권력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검찰은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뺐긴다고 판단해 강력하게 반발하는데, 민주정부의 통제에 반발한다는 것만으로도 검찰은 개혁 대상이다. 그동안 검찰은 독재정권과 부패정부에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충실한 머슴 또는 사냥개 노릇을 해왔다. 검찰로서는 적당히 부패하고, 권력과 돈, 인맥으로 얽힌 기득권 집단에서 권력을 누리고, 향유하며 즐기다 변호사가 되어 전관예우로 몇 달 사이에 수십억 원의 돈을 벌 수 있었던 과거가 좋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 부패정권의 잘못을 끊어내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검찰로 만들기 위함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도 검찰 개혁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검찰에게 칼을 맞고 노무현 대통령이 참담한 죽음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노무현 정부를 잇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개혁은 단순한 개혁 과제가 아니라, 정권의 운명을 건 필사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법원의 상징은 판사다. 모든 법적 분쟁을 판결하는 위치에 있는 판사는 절대 독립과 중립의 원칙을 부여받고 있지만, 양승태 사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법원(판사)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삼성의 장충기에게 충성 문자를 보낸 판사도 있다. 판사도 진급에 신경을 쓰고, 평가를 받으며, 더 높은 직급의 관리에게 인사고과에 따른 불이익을 당한다. 그런 점에서 판사도 여느 직장인과 다름 없는 수직 명령체계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판사들 대부분이 문서에 있는 법조항과 현실의 법감정이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는 '유전무죄'가 적용되어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걸 시민들은 알고 있고, 사법부는 스스로 권위를 타락시키고, 돈과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을 적용하는데 있어 공평, 평등하지 않은 사회는 기본이 무너진 사회다. 한국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에 가깝지만, 검찰, 사법, 언론 등은 매우 후진 시스템이어서, 시민의 평균 상식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떤 죄를 짓든 결과는 형량으로 나타나는데, 수천 억원을 사기 친 범죄자, 살인을 한 범죄자와 라면을 몇 개 훔친 사람의 형량이 같다면, 그런 법을 과연 누가 믿을까. 돈과 권력에 자발적으로 굴종해 재벌의 사장에게 충성문자를 보내는 판사가 건재한 사회라면, 그런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법원이 과연 중립과 원칙을 지킬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법부가 돈과 권력의 자발적 노예로 전락해 기득권 집단의 범죄와 부정, 부패, 비리를 눈감아 주는 일이 계속되면, 그들에게는 좋은 세상일지 모르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결국 그들 - 부패의 카르텔 - 모두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흑과 백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옳고 그름은 있고, 아군과 적은 구분된다. 우리는 시민민주주의와 봉건 잔재가 뒤섞인 상황에서 매국노(친일, 친미)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우리를 짓밟은 나라를 찬양하고,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는 매국노다. 시민이 만든 민주 정부를 부정하고, 독재(박정희, 전두환)와 부패(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자는 우리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려는 민족반역자들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하는지 잘 들어보라. 적은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전태일과 체 게바라
    전태일과 체 게바라 -전태일을 모욕하는 자는 누구인가 어제(11월 13일) 많은 사람이 '전태일'을 언급했다. 그 무수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전태일'에 관한 말들이 내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기득권이며, '전태일'을 팔아서 호의호식 하려는 인간들이었다. 정작 '전태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 분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sns에 쏟아지는 '전태일'에 관한 글을 보면서, 그 말을 하는 자들의 면면이 야비하고, 천박하며, 가식과 파렴치,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좋은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전태일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분들도 있다. 극소수지만.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을 일으켰으며, 쿠바의 자본주의 체제를 뒤집고, 쿠바 사회주의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명백히 사회주의자이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혁명 활동을 하다 적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회주의자 체 게바라가 어느 때부터 가장 자본주의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착취에 반대하던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체 게바라의 혁명성을 돋보이게 하려고 그를 아이콘화 했다. 체 게바라는 분명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사회주의 혁명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아이콘으로, 선전선동의 대표 인물로 선정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착취에 저항하는 민중들 역시 성공한 혁명의 대표적 인물인 혁명가 체 게바라를 뜨거운 마음으로 끌어안았다. 시간이 흘러 체 게바라는 티셔츠, 모자, 노트, 신발, 후드티 등에 새겨졌고, 젊은이들 사이에 '쿨한' 아이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밥 말리처럼. 비틀즈를 소비하던 60년대, 70년대 세대에게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 퀸, 핑크 프로이드와 같은 개념으로 마르크스, 레닌, 체 게바라가 '대중화'되었다. 이제 체 게바라는 멋진 베레모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잘 생긴 배우가 되었고, 그가 남긴 일기는 멋진 오토바이 여행으로 기록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혁명가의 삶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고, 대중은 그런 혁명가를 소비한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태일'은 한국에서 금기였다. 그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전태일'은 '빨갱이'와 같은 이름이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은 독재정권에서 가장 강한 탄압을 받았으며, 불굴의 의지로 살아남았다. '전태일'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다. 그는 개인이었지만, 노동자 전체였으며, 노동자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무수한 '전태일'이 공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손발이 잘리고, 불구가 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었다. 전태일 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는 것은, 정권을 타도하자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독재정권과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을 떠올리는 것도, 이름을 말하는 것도 금지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역시 인간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아들의 뜻이 올바르고, 그 뜻을 따르는 무수한 '전태일'이 살아서 어머니를 따르고 있었기에, 어머니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에 등장하는 '어머니'처럼,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 서는 어머니가 된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하고 50년이 지났다. 엄혹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전태일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대학생 친구'가 되고자 노동자들 곁으로 몰려들었다. 노동자, 학생, 시민, 농민 등 기층 민중은 반독재투쟁과 민주주의 투쟁을 통해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를 확보했으며, 독재정권을 몰아냈다. 하지만 그 열매는 여전히 부르주아 우파 정권이 차지했고, 노동자는 지금도 소외당한 채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정규직,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실업자)로 경쟁시켜 분열을 조장하며, 노동자끼리 싸우도록 만들고 있다. 젊은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전태일'이 누구인지,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 모른 채, 비정규직으로, 임시직 노동자로,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살아간다. '전태일'을 소비하는 건 오히려 부르주아와 자본이다. '전태일' 이름을 팔아 마치 노동자와 노동조건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대중을 기만하고, '전태일'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 하며, '전태일' 이름을 팔아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나는 1988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상을 받은 이후 나는 더 이상 노동자로 살지 않았거나 못했다. 임금을 받거나 자유기고로 근근히 생활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였으나, 노동자라는 인식은 약해졌다. 그래서 더욱 노동운동에 관해 입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노동자로 일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도시빈민으로 자랐다. 나는 소년 노동자로 세상에 나왔으며, 사회주의를 공부했고, 적어도 '멍청한 노동자'로 남지 않았다. 나이 들어 임금노동자의 위치에서는 벗어났지만, 나는 계급적 자각과 계급의식은 여전히 노동자로 남아 있다. 현재 수많은 노동자는 자신이 임금노동자로 살면서도 '노동계급', '계급의식'이 없는 멍청한 임금노예로 살아간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멍청한 상태에 있도록 집요하게 방해한다.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계급의식에 눈뜨도록 하는 모든 활동은 국가와 기업의 물리적 폭력과 경쟁, 세뇌를 통해 저지한다. 전태일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대학생 친구'들은 반독재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왔다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거의 다 사라지고, 더 나타나지 않았다. 전태일의 친구인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더 어리석고 멍청하게 퇴보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연예인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거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하고,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걸 꿈꾸는 자본주의 욕망의 추종자로 변했다. 일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무식한 인간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가 노동자라는 자각도 하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자본가의 노예로 살다가 죽는다. 전태일이 바라던 세상은 노동자의 권리가 최소한으로 지켜지는, '근로기준법'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사회였다. 50년이 지났지만, 전태일이 바라는 세상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전태일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인간들은 늘어났지만, 그들에게 전태일은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는 외투에 불과할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는 오히려 전태일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것이 한국 노동계의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아티스트, 나훈아
    아티스트, 나훈아 올해 한가위는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나훈아 공연이 가장 큰 화제였다. 무려 160분 공연을 나훈아 혼자 이끌었고, 시청률은 30%에서 순간 최대 70%까지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번 공연은 나훈아 씨가 무려 15년 만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으로, 그에게나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훈아 씨는 출연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방송에서 광고를 내보내지 않았고, 공연 기획, 무대, 조명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지휘로 직접 준비했다. 예전에 부천의 한 체육관에서 그의 공연을 직접 본 이후, 그가 단지 노래만 하는 가수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으로 나훈아 씨는 기존의 팬들보다 훨씬 많은 대중에게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냈다. 이번 공중파 공연은 모두 3부로 구성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나훈아의 히트곡들이 앞쪽에 배치되었고, 2부와 3부에서 그의 신곡 가운데 몇 곡이 들어갔다. 나훈아 콘서트는 화려한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무대 뒤에 수십 명의 합창단은 기본이고, 타악, 국악, 댄스, 사물놀이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활용해 관객의 귀와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여기에 절묘하게 꺾이는 나훈아의 창법과 상남자의 외모에서 나오는 간드러진 노래, 외모와는 다른 조금은 푼수같은 멘트 등이 대중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1970년대부터 나훈아, 남진의 경쟁구도를 만든 것은 연예계와 언론이었는데, 대중가요계에서는 투탑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이때의 나훈아는 20대 중반의 청년으로, '노래를 잘 하는 가수'로 인기가 많고, 팬덤이 형성된 대중가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70년대는 정치, 사회적으로 엄혹한 시기였다. 독재자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노리고 있었고,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청년들은 청바지, 통기타, 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를 만들어가면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르가 새롭게 나타났다. 한대수, 김민기, 조영남, 송창식, 김도향,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양희은 등 당시 통기타 세대는 청년 문화의 바람을 일으켰고, 정부는 이런 청년 문화를 불순한 것으로 규정해 억압했다. 이들 1세대 통기타 가수들 가운데 한대수, 김민기는 '아티스트'다. '가수'와 '예술가(아티스트)'를 구분하는 것은, 주어진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작사,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대중 앞에서 부르는 건, 노래를 잘 부르는 기교만 있으면 되지만,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 소설가나 시인이 글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라면, 영화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연출해 만든 영화로 발언한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그렇다. 음악 역시 작사, 작곡, 노래를 자신이 직접 할 때 비로소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대수, 신중현, 김민기, 정태춘, 송창식 등은 수많은 가수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존재들이다. 70년대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 가수들의 노래는 주로 미국의 팝송을 가져와 번안해서 불렀고, 당대 한국의 현실이나 민중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한대수가 갑자기 나타났다. 한국 가요계는 한대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한대수의 등장은 한국가요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사, 작곡, 노래를 직접 하는 가수의 등장은 곧바로 그 시대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한대수 이후 자기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특징은 미국에서 생활하며 직접 영향을 받았거나(한대수), 미군부대에서 연주, 노래를 하거나(신중현), 당시 독재정권의 집권 상황에서 친일문화와 급격히 들어오는 외래문화(주로 미국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민중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삶과 노래를 일치하려는 노력(김민기, 정태춘, 송창식)이 만든 결실이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 장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트로트가 일본 가요인 '엔카'의 영향을 직접 받은 왜색이 짙은 노래라고 비판했으며,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해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청년문화에 직접 영향을 끼친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은 적었다. 그럴 것이, 미국에서 일어난 팝, 락음악은 당시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표현 도구로 쓰였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청년문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밥 딜런, 존 디아즈가 통기타 음악의 상징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비틀즈를 비롯해 수 많은 그룹이 기존 음악의 틀을 깨면서 새로운 세대를 열고 있었으며, 이 물결은 한대수에게 직접 영향을 끼쳤고, 한대수의 뒤를 따라 물밀듯이 미국 대중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나훈아는 '트로트 가수'로 출발해 '예술가'가 된 드문 경우에 속한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무수한 가수가 노래했고, 인기를 얻었으며, 스타가 되었지만, 그들 가운데 '예술가'로 불린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나훈아는 1968년에 데뷔한 이후, 오래지 않아 동료 가수 남진과 라이벌로 불리며 인기가 절정에 이른다. 라이벌 구도를 만든 것은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당시 방송과 언론이 인기가 많은 남진과 나훈아를 라이벌로 엮어 보다 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의 결과물이었고, 대중은 이런 라이벌 구도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호응했다. 나훈아가 '예술가'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건 그가 데뷔하고 10년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드러난다. 1981년, KBS에서 나훈아 100분쇼 스페셜을 방송했는데, 이때 나훈아는 자신의 노래는 물론, 전통 트로트를 부르는 한편, 우리 민요(양산도, 사발가, 닐리리야)를 구성지게 부른다. 100분 동안 혼자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말하며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고, 무엇보다 노래를 맛깔나게 불러 보는 사람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훈아가 민요를 부르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어려서 엄마를 따라 국악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고, 직접 민요를 배우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외항선 선원으로 집에 거의 없었고, 엄마는 나훈아의 손을 잡고 주로 국악 공연을 보러 다녔는데, 나훈아도 그때 국악을 배워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는 것을 엄마가 보면서 매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나훈아는 어려서 음악의 기초를 국악으로 쌓아왔다. 나훈아가 가수로 데뷔한 것도 우연한 기회였고, 그는 공부를 잘 하는 수재였다. 나훈아의 아버지는 아들이 의사나 판사가 되기를 강력히 바랐고, 가수가 된 나훈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는 나훈아는 목청이 이미 타고난 가수였으며, 그는 한때 성악을 할 생각도 진지하게 가졌다고 했다. 나훈아가 부르는 트로트에서 특유의 '꺾기'는 트로트 창법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꺾기와는 조금 다른데, 나훈아 스스로 밝혔듯, 트로트와 민요를 결합한 창법이 나훈아 창법이다. 성량이 풍부하고, 국악을 일찍부터 배워 트로트를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 것이 지금의 창법이 된 것이다. 국악으로 시작해 스타가 된 경우가 또 있는데, 경연대회를 거치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송가인이 그렇다. 송가인도 엄마가 소리를 하는 분이고, 어려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스스로 트로트를 독학으로 배워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타가 되었다. 송가인 역시 어떤 노래든 잘 부르고 폭넓은 성량을 자랑하는 것은 타고난 면도 있지만, 판소리로 기초를 탄탄히 다졌기 때문이다. 나훈아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 시기는 데뷔 이후 1980년대 말까지였다. 그는 이 시기에 텔레비전 가요 방송에서 '10대 가수', '최고 가수상' 등을 모두 받았으며, 단독 공연을 비롯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70년대 라이벌이었던 남진이 가수협회장을 하고, 방송에 자주 출연해 대중에게 모습을 보인 반면, 나훈아는 텔레비전 출연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그는 전국의 공연장을 돌며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때부터 나훈아는 텔레비전에서 소비되는 대중가수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면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함이 사라지고, 상품으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그 사이에 나훈아 개인의 삶은 밝지 않았다. 공연을 하는 도중, 괴한에게 테러를 당해 심하게 상처를 입었고, 결혼, 이혼, 결혼의 과정이 있었으며 콘서트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배우 김지미 씨와 결혼한 이후 김지미 씨에게 서예와 그림을 배웠는데, 나훈아 개인의 인격과 내적 성숙이 이 시기에 많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89년, KBS에서 방송한 나훈아 쇼특급에서는 이전보다 발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훨씬 많은 합창단과 무용팀이 나오고, 나훈아는 공연 끝부분에서 남북통일을 노래하고 있다. 1990년 '나훈아 스페셜'에서는 노래와 춤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장면을 직접 연출해서 그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를 '아티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번 KBS에서 방송한 '2020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이 결정적이다. 이미 2000년 이후 나훈아는 수 많은 콘서트를 통해 아티스트의 면모를 충분히 보였고, 그에게 '가황'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도 팬들이었다. 콘서트에서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기대나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국악, 국악기, 무용, 합창, 연주 등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동원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그가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작곡과 편곡은 전문 작곡가와 편곡가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작품의 내용과 수준에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으로 발언하며, 그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건 대중의 판단과 선택에 있다. 나훈아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이후 '엄니'라는 노래를 만들어 광주시민에게 헌정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2020년 신곡 앨범에 들어갔다. 노래를 들어보면, 저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노랫말과 음악이 애절하다. 가사에서는 광주민주항쟁에 관한 내용이 직접 들어 있지 않지만, 나훈아가 처음으로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를 부른 것, 엄니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누구나 이 노래가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것임을 알 수 있다. 헤비메탈 그룹 '블랙홀'이 부른 '마지막 일기'도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가 쓴 일기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가사에 넣지 않아도 대중은 상징과 은유를 충분히 해석하고 공감하게 된다. 엄니 엄니 워째서 울어쌌소 나 여그 있는디 왜 운당가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뭐 땀시 날 낳았소 한 많은 이 세상 어째 낳았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엄니 엄니 워째서 불러쌌소 눈앞에 나 있는디 어째 날 찾소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무등산 꽃 피거든 한 아름 망월동에 심어주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엄니 엄니 워째서 잠 못 자요 잠자야 꿈속에서 날 만나제 엄니 (엄니) 엄니 (엄니) 나 잠들고 싶은디 잠들게 자장가나 불러주소 들리지라우 엄니 들리지라우 엄니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인자 그만 울지 마시오 인자 그만 울지 말랑께 이 가사에서 '무등산 꽃피거든 한아름 망월동에 심어주소', '나 잠들고 싶은디 잠들게 자장가나 불러주소'는 아직도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가해자 전두환 일당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처참한 상황을 뜻하고 있으며, 전두환 일당을 처단하고, 광주항쟁을 역사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때, 광주항쟁의 희생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나훈아가 '예술가'로 인정받는 사건 가운데 한 재벌 회장이 불렀을 때, 오히려 자기 공연장에 와서 들으라고 말한 사건이 있었다. 대부분의 가수라면 그 재벌 회장의 생일에 초청받아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겠지만, 나훈아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만큼 나훈아는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의 직업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결코 돈에 팔려다니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예술가나 작가, 지식인이 돈에 팔려다닌다면 그건 이미 예술가, 작가, 지식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중가수는 노래로 인기를 얻는데, 노래는 가사와 음악으로 구성한다. 음악은 가사를 표현하는 동시에 멜로디 자체의 힘을 지니고 있다. 가사가 없어도 음악은 성립하고, 음악이 없어도 음악이 된다. 클래식 음악도 음악이고, 판소리도 음악이다. 대중가요는 가사와 음악이 대중의 정서에 호소하고,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중가요를 낮춰 말하는 사람은 클래식 음악이 더 '고급'하다고 믿는다. 이건 어처구니 없는 사대주의다.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쵸네도 대중가요다. 오페라는 당대의 대중이 즐기던 대중을 위한 공연이었다. 해학과 풍자, 은유를 내포한 작품을 만들 정도의 가수라면, 그 가수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신중현, 한대수, 정태춘 같은 가수를 예술가라고 부를 때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제 나훈아도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걸 말할 때가 되었다. 이번 '2020 대한민국 어게인' 공연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노래 '테스형'은 그가 예술가의 반열에 확실히 올랐음을 증명한다. 어느 예술 장르든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미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 상징미가 있기 마련이다. 대중음악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표피적인 내용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는 불가능하다.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생명이 매우 짧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가사에서 '테스형' 즉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 하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파격이지만, 가사에서 백미는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와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다. 이 가사는 50대 이하와 그 이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다를 것으로 안다. 흔히 유행가 가사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면 그건 내 이야기라고 한다. 50대 이상에서는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고, 눈물 많은 나에게 세상이 아픈' 것은 바로 내 이야기라서 공감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것은, 대단한 철학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도 사실 알고보면 우리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걸 말한다. 위대한 사람의 삶이나 평범한 사람의 삶이나 모든 삶은 비슷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삶은 희노애락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인생은 고행이지만, 그 고행을 알되, 삶은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불교적 관점을 말하고 있다. '턱 빠지게 웃다'가도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 것은 나이 든 사람이라면 절절하게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노래가 훌륭한 건, 노래 전체를 뒤집는 상징이 있다는 데 있다. '테스형'의 진짜 모습은 아버지였다. 즉 나훈아는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 앞에서, 힘들고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아버지에게 하소연 하는 내용인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하면서, 힘들고 외로운 내 처지를 아버지에게 넋두리 하면서, 정작 부르는 대상은 '테스형'인 것은, 그가 풍자와 해학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나이 들면서 꾸준히 발전, 진화하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 졸업 후 얻은 직장에서, 직책에서 수십 년 변하지 않으면서 점점 퇴화하는 것과는 달리, 늘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하며 삶의 지평을 확장해 온 태도만으로도 나훈아는 충분히 훌륭한 인물이다. 이번 KBS 공연도 그렇지만, 그는 콘서트를 할 때, 무대 기획부터 소품까지 스스로 꼼꼼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사람이다. 91년 한 방송에서 나훈아와 이상벽 씨가 같이 나와 대담을 하는 가운데, 이상벽 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나훈아 씨가 얼마나 완벽주의자인가를 알 수 있다. 그건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대의 완벽주의자라면 조용필을 떠올릴 수 있는데, 나훈아, 조용필 같은 최고의 스타들이 보여주는 결벽에 가까운 완성도에 대한 집착은, 그들이 성공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데뷔하고 이제 50년 넘는 세월을 무대에서 노래한 나훈아는 한국가요계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한국가요의 지평을 확장하고, '대중가수'에서 '예술가'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교과서 같은 인물이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멋지지만, 그는 여전히 청년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더욱 빛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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