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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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일기_007
    건강일기_007 석달 동안 7kg을 감량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게 감량했지만, 3개월 기간으로 보면 무리하지 않은, 정상적 감량에 해당한다. 처음 몸무게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76.5kg이었는데, 오늘 아침 몸무게는 69.5kg이었으니 60kg대로 내려온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하면 확실히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차이가 크다. 아직 의학적 검사를 하지 않아서 정확한 결과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체중이 빠지면서 뱃살이 조금 들어가고, 혈압이 조금 내려간 걸 느낀다. 뱃살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혈압은 가끔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러 가서 잰 기록을 보고 알게 된 것으로, 예전 몸무게로는 고혈압 판정을 받을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상 범주로 내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운동과 함께 음식도 나름 조심하면서 먹었는데, 과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점심 한 끼도 잡곡밥 위주로 먹고,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도, 어려움도 없었으며 가장 지키고 싶었던 원칙은 저녁7시 이후에는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음식물을 먹지 않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다만, 7kg을 감량했어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 뱃살은 여전히 나와 있고, 겉으로 보기에 많이 달라보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 특히 나이 들면서 체중 조절을 하지 못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음식을 적게 먹을 것, 꾸준히 운동할 것,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흡연을 하지 말 것,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 것 등 기본 상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건강한 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원칙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고, 체중 관리와 음식 조절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운동과 체중 조절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그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지금 건강이 나빠진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엊그제 냉장고 액정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냉동 기능이 안 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침내 고장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잘 썼지'라고 수긍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우리집에서 쓰고 있는 가전제품은 집을 짓고 모두 새 물건으로 장만한 것으로, 이제 17년째 쓰고 있다. 가전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지(LG)전자 제품이다. 나는 엘지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가전제품은 엘지전자가 가장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엘지 제품을 추천하는데,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엘지 제품이 17년만에 고장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우선 냉장고를 앞으로 조금 끌어낸 다음, 전기 콘센트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서 다시 끼웠더니 액정의 에러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상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정상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온라인 접수에서는 가까운 날짜가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가 8월 20일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신청을 해두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서비스 기사가 전화를 했다. 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의 상태를 물었고, 냉동실 안쪽 벽면에 성애가 끼었다면, 그 성애 때문에 냉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냉동실을 비우고, 하루 정도 말리면 냉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비스 기사의 말대로 하면 기사가 우리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기사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법이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서비스 기사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회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 기사에게,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해 달라고 했다. 냉장고는 다시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신청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공식적으로는 무려 10일 뒤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우리집을 방문한 기사는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 냉장고(냉동실)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고, 성애 때문도 아니고, 문이 약간 덜 닫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는 냉장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세탁기의 배수 장치를 확인해 주었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엘지전자 제품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없이 쓰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출장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기꺼이 출장비를 지불했다. 1만8천원. 어떤 사람은 이 돈도 비싸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출장비가 싸다고 생각한다. 1만8천원을 지불하면, 최고의 기술자가 산골까지 찾아와 고장난 제품을 고쳐준다. 지난번 에어컨(이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아니었다)이 고장났을 때는 몹시 급한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개인 수리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양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인 수리업자는 우리집에 와서 몇천 원 하는 센서 부품을 교체하고 5만원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엘지전자의 출장 서비스 기사도 개인사업자에게 위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서비스 기사가 엘지전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위탁회사가 있던지, 아니면 개인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최대한 많이 집집을 방문해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출장비와 부품비를 청구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며, 그 와중에 '친절함'에 관한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전자제품의 출장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출장비 받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늦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마구 항의를 하거나 크레임을 걸어서 서비스 기사를 못 살게 굴고,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 이건 음식 배달을 하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권위적이고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서비스 노동자를 괴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기술자, 전문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의 가치가 적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대우 역시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중요성, 노동의 역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합리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기술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전문직 기술자, 노동자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주로 '사'로 끝나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종을 높은 가치로 여기도록 학습하고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의 모든 직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은 곧 자기의 직업, 업무를 뜻한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객의 요구가 모두 달라서, 그 요구에 맞춰야 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나 직종이라 해도 그 일 자체가 하찮거나 쓸모가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 직종이 사회에서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는 사회적 지위나 대중의 직업 인식에서는 하위에 속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라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서 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도 역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발생하는 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수고를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노동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도록 가르치고,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대중 매체의 드라마나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천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노동' 그 자체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이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력, 경제적 부와 관계 없이 인성이 비뚤어진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이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일정 비율로 싸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건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노동자가 부당하게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신성하려면, 노동의 결과가 그만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대우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뿐이다. 즉, 노동의 의미도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성과 윤리, 도덕성마져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런 예의 하나인데, 물질만능, 화폐숭배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를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 정글의 논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많은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노동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다.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6
    건강일기-006 운동 방식을 바꾸다 6월 7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40일 정도를 매일 3,000개 이상 줄넘기를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줄이고, 밀가루와 튀긴 음식, 간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그 사이에 약 6kg이 줄어서 다이어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30일이 지나면서 몸무게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운동과 음식도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하거나, 근육 운동을 그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판단을 했다. 줄넘기는 유산소 운동이고, 복부의 내장 지방과 몸무게를 줄이려면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근력 운동에 관해 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들은 혼자 연구해서-물론,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봤겠지만-다이어트를 성공한 경험이 있어서 운동에 관해서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이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알려준 근력 운동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런지 25회 양 다리 2. 푸쉬업 적당히 가능한 만큼 (10 ~ 30회 중 선택) 3. 스쿼트 25회 4. 플랭크 1분 5. 복부운동 30회 이게 1 루틴. 루틴 하나를 1~2회 하면 됨 아들이 알려준 운동은 요즘 많이 하는 '홈트레이닝'의 여러 과정 가운데 근력 운동 부분이고, 여기에다 트레드밀에서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위의 과정에다 '풀업(턱걸이)'도 하려고 문틀 턱걸이를 주문했다. '풀업'은 최근 조국 교수가 SNS에 동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지지의 릴레이 풀업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팔 근육 운동에도 도움이 많이 될 듯 하고, 전체 근육 운동에서 비어 있는 부분 같아서 '풀업'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8일부터 줄넘기는 중단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준대로 런지, 푸시업, 스쿼트, 플랭크, 복부운동 순서로 했는데,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줄넘기 3천 번 한 것 만큼, 아니 그 이상 힘들었다. 줄넘기를 하면 숨이 차고 땀을 많이 흘리지만 샤워를 하고나면 몸이 개운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면, 이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처음 근육 운동을 해서 그런 듯 한데, 힘도 많이 들고, 근육을 더 많이 움직이는 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이 많이 나고, 숨이 차는 것도 줄넘기할 때 못지 않았다. 그만큼 근육 운동이 힘들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증거겠다. 이 운동이 좋은 점은 아주 덥거나 추운 날에도 집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넘기만 해도 늘 바깥에서 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어렵고 또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못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집안에서 근육 운동을 해보니 충분히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석달을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데, 두달 동안 나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운동했다. 7월 18일부터 근력운동을 했으니 오늘(8월 7일)까지 21일 동안 근력운동을 했다. 아래 식단표를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이 보이는데, 운동을 마치고 배가 많이 고파서 참외를 두 개 또는 작은 참외는 세 개를 먹었다. 다른 과일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참외를 가장 좋아하고, 참외를 먹으면 소화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있고, 참외는 칼로리가 낮아서 두 개, 세 개를 먹어도 칼로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점심은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었다. 다만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설탕과 당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 공장에서 만든 음식은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니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매우 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국수 종류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두 달 동안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먹었고, 튀긴 음식은 더욱 적게 먹었다. 하루 기초대사량이 대략 1600kcal 정도라면, 하루 두 끼를 먹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칼로리가 적은 음식과 소화가 잘 되고,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관건인데, 이런 음식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채소, 생선, 과일이다. 여기에 육류도 빼놓을 수 없는데, 고기를 먹더라도 구워서 먹는 것보다는 삶아서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근력운동을 시작한 7월 18일부터 8월 7일까지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운동량과 음식의 칼로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판단했다.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는 61kg 정도인데, 그럴려면 9kg을 더 감량해야 한다. 8월 말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4-5kg 정도를 감량할 계획인데, 그러자면 조금 더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저녁 6시 이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빈속으로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많이 나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이 그만큼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탐하려는 유혹을 얼마나 잘 견디는가와 근력운동을 비롯한 운동량과 시간을 좀 더 늘리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바깥 온도가 높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야외 활동이나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실내에서 근력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내부의 계급 이익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주로 수구 반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 은 특정한 정당 또는 후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비난하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큰틀은 크게 세 가지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윤석열과 최재형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면서, 현재 정부의 관료들이 가진 가치관,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으며, 자기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자들이 모인 정당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라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당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윤석열과 최재형은 그들이 속했던 관료 집단에서 수장을 했던 자들로, 그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즉, 한국의 관료집단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보수화, 수구화, 과거지향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표를 내고 뛰쳐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재부의 홍남기 같은 자 역시 수구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관료들의 사상적 기반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철저하게 '자본종속적'이라는 데 있다. 재정을 직접 다루는 홍남기의 경우, 그가 결사적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고, 끝까지 차등 지급을 고수하는 것은 정부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재정과 운용에 관해서는 이미 최배근, 정균승 교수 등 학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논파당했기 때문에 홍남기는 반론을 제기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은 홍남기류의 인간들이 정부 내부에서 문재인정부에 타격을 입히려는 정치행위인 것이다. 이들 무능하고 퇴행적 관료들과 국민의힘이 반개혁적, 반동적 행위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이 있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정부'를 싫어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의 형성과 축적 과정을 보면, 자본은 '착취'와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착취'와 '경쟁'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자본의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 즉,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자본'은 먹거리가 많아지고, 이윤을 축적하기 쉽다. 선진복지 국가의 좋은 예로 드는 북유럽 국가들도 '자본'이 존재하는데, 그러면 북유럽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민도가 높은 나라는 국민과 정부, 자본의 합의와 견제에 의해 '자본'이 '비교적 깨끗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자본'도 이윤추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한다. 즉,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자본'에 의한 범죄는 억제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지만, 과거 반민주, 반노동, 반인권 제도와 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30% 남짓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상징적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을 두고 정당끼리의 권력투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의힘은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뿌리이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열매이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인간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잎사귀들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가장 먼저 부정부패의 뿌리이자 과거 반민주, 쿠데타, 친일매국 세력인 국민의힘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최재형 같은 구체제 신봉자들이 집결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은 뒤에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의 힘이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국민의힘이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겨우 30% 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시민의 단결한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고위 관료 출신의 윤석열, 최재형은 국민의힘을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 것은 다행이며, 전선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적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자들이 있다.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같은 자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을 뿐, 국민의힘에 있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촛불시민은 민주당을 진보적 영역으로 견인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고 앞장 서 민주당의 개혁성을 이끌고 있고, 젊은 의원들이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이 사는 길은 국민의힘으로 대표하는 앙시앙 레짐, 수구반동, 자본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들과 싸워 피를 흘릴수록 촛불시민은 더욱 강하게 민주당을 지원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여전히 상당수 '수박'들이 존재한다. 이들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를 걸러내고,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민주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한국에는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다.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 같은 '진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데,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역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반자본주의 투쟁을 이끌 집단은 한국사회 내부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개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문재인정부가 최선이다. '문재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민주적 테제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뒤를 이을 정부는 반드시 문재인정부의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그보다 한발 앞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대통령은 몹시 신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라 적과의 싸움에서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다음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개혁과제 가운데 다음 정권에서는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바로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부동산개혁, 노동개혁이다. 이 과제는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다음 대통령은 온몸에 피칠갑을 할 각오를 하고 앞장서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도 안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내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그럴 정도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이재명이라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5
    건강일기-005 운동 시작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그나마 조심한 건 과식, 야식, 술이었다. 술은 체질이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지만, 아주 드물게 한 잔 마실 때가 있었다. 모임이나 집에서도 저녁에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전부인데, 간경변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내 오랜 식습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 것인데, 중간에 간식을 항상 먹었다. 계속 살이 찌는 원인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먹는 칼로리가 많기 때문인 건 상식이다. 먹는 것 이상으로 움직여서 칼로리를 소모하면 살은 찌지 않는다. 이런 상식을 알면서도 생활에서는 실행이 어려운데, 내 경우도 그렇다. 그나마 몸무게가 75-76kg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 신체 조건에서 적당한 몸무게는 60-65kg 정도인데, 최소 10kg에서 많게는 15kg을 줄여야 했다.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두 달 동안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불규칙하게 걷기를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식탐도 줄어들 줄 알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충분히 포만할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거지만, 그동안 나는 매 끼의 음식량이 많았고,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하지만 그 사이와 저녁에 간식을 먹는 것 때문에 절대 살이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끼를 먹을 때도 음식의 내용과 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싱겁게 먹고, 간식, 야식을 먹지 말고, 국물 음식도 가능한 먹지 말고, 밀가루 음식, 흰쌀밥도 가능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이 상황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건 내 의지가 약하기도 했고, 지금 약을 먹고 있으니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도 간 상태가 좋아지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다만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의식을 하면서 먹었다. 매일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데, 점심과 저녁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병원에서 두 달치 약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 기간 동안에 먹었던 음식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식과 야식이 줄어들긴 했다. 4월 말부터는 참외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참외를 퍽 좋아하는데, 해마다 참외가 나오기 시작하면 10kg짜리 참외를 주문한다. 단, 참외값이 비싸므로 '흠과'를 주문하는데, 이 '흠과'의 종류도 참외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뉜다. 나는 '대과'를 주문해서 먹는데, 기간에 따라 참외값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4월 말에 참외 10kg 흠과의 가격은 약 3만8천원이지만 가격은 점차 내려간다. 2만6천원이 되었다가 7월이 되면 1만6천원까지 내려가는데, 참외가 한창 많이 나올 때라서 똑같은 참외라도 값이 싸진다. 참외는 거의 나 혼자 먹는데, 작년(2020년)에는 여름 한철에 내가 먹은 참외가 60kg이었다. 4월에서 6월까지도 참외를 먹었다. 참외는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며, 포만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어서 밥을 좀 적게 먹을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가졌다. 몸의 변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체중을 확인하는 것이다.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따로 몸무게를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5월 말에 아산병원에서 채혈하고, 일주일 뒤인 6월 7일,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은 피 검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두 달 사이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처럼 들렸고,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의사선생님은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두 달 사이 내가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것이 없다는 건 분명했고, 그래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의사선생님은 다시 똑같은 약을 3개월치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활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자각을 했고, 운동과 절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운동은 줄넘기였다. 그 전까지는 주로 걷거나 트레드밀에서 뛰는 운동이 전부였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6월 8일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운동 목표는 하루 3,000개. 왜 3천 개를 해야 하는지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정도는 해야 운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 무조건 하기로 다짐했다. 첫날 줄넘기는 2,000번을 했는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몸이라 첫날 줄넘기는 엉망이었다. 한번에 넘는 횟수도 열 번을 넘기지 못했고, 무릎 안쪽, 허벅지, 종아리, 발 전체가 다 아팠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줄넘기를 할 때 요령도 몰랐고, 어떤 곳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몰랐다. 줄넘기를 하는 장소는 처음에 풀밭, 데크 등에서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집앞 도로가 아스팔트여서 그곳에서 줄넘기가 비교적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줄넘기를 할 때 복장과 신발도 어떤 것이 좋은지 몰라서 고생했다. 처음에는 달리기용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해봤는데, 자꾸 발에 줄이 걸려서 멈췄다. 그러다 바닥이 평평하고 운전할 때 신기 편한 가벼운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하자 줄이 걸리지 않고 좋았다. 줄넘기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첫 날은 2,000개를 하고, 둘째날부터는 계속 3,000개 이상을 했다. 일주일 동안 무릎 안쪽, 허벅지 등이 아팠지만, 처음 작정한 것처럼, 핑계 대지 않고 날마다 줄넘기를 했다. 운동하는 첫날 몸무게를 쟀을 때, 76.5kg이 나갔다. 몸은 무겁고, 배는 출렁거리고, 다리는 아팠지만, 나 자신에게 다시 실망하는 것보는 아픈 것이 나았다. 처음 줄넘기를 할 때는 열 개, 스무 개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차츰 발에 걸리지 않고 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백 번을 넘길 때는 감격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 스무날이 지나면서 줄넘기는 백 번, 이백 번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줄넘기 운동 시간도 처음에는 3천 번을 하려면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 약 80분 정도를 해야 마칠 수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단축되어 한 달 뒤에는 3천 번 줄넘기 시간이 약 40분대로 줄어들었다. 줄넘기와 함께 음식도 가능한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매일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아침에 운동을 하면 몸무게와 줄넘기 횟수를 기록했다. 점심은 여느 때와 똑같이 먹었고, 간식과 야식을 먹지 않았으며, 저녁은 적게 먹었다. 저녁을 적게 먹고 잠을 자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을 먹기 전까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흰쌀밥 대신 잡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밥은 늘 잡곡밥을 먹고, 배가 많이 고프면 참외 한 개를 먹거나, 참외로 저녁밥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줄넘기를 3천 개씩 하고, 잡곡밥을 먹고, 밀가루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인스탄트 음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도 거의 먹지 않으며, 저녁은 간단하게 먹으면서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하니 처음 며칠은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76.5kg에서 꼭 한 달이 지난 7월 7일에는 70.9kg으로 약 6kg이 줄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병원에 갈 동안인 3개월 사이에 몸무게를 적어도 10kg 이상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고, 목표 체중은 63kg으로 설정했다. 한 달이 지나서 6kg 정도를 줄였으니 3개월이면 이론적으로 18kg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몸무게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행인건, 내가 운동과 절식을 시작할 때, 가족 모두 나처럼 운동과 절식을 함께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에 동의하고, 점심은 잡곡밥을 중심으로 고기도 먹고, 저녁은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먹을 샐러드 재료를 구상했다. 양상추, 새싹, 방울토마토, 피망, 오이 등 채소를 준비하고, 단백질은 닭가슴살을 준비했다. 샐러드용 소스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인바디 체중계'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 날마다 체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체 지수를 측정하는데, 우리집 거실에는 체중계 두 개가 나란히 있어서, 체중계에 각각 올라가 몸무게의 변화를 확인한다. 몸무게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적게 나가는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몸무게 변화는 많게는 2kg까지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몸무게가 6kg쯤 빠졌지만 70kg 초반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정체기가 시작되었다.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4
    건강일기-004 두 달의 시간 채혈, 위내시경, CT 촬영을 하고 일주일 뒤에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에 긴장감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도 걱정이 되어 함께 왔는데, 나는 의사 앞 빈 의자에 앉았고, 아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앉아 있는 책상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고, 거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했다. 간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이미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간에 결절도 여러 개 보이는데, 이미지로만 보면 상태가 조금 나빠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약으로 치료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때까지 의사선생님은 간 상태에 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만 궁금했다. '간암은 아닌 거죠?'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간암은 아니고 간경변입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 삶에서 변곡점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와 다음 진료 일정을 잡았다. 두 달. 간경변 치료제 두 달치 처방전을 받아 나오면서,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는 '다행이다'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고, 오늘 검사 결과를 알기까지의 지난 일주일 동안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졸렬하게 살아왔는가를 반성했다. 나는 이기적으로 살았다. 내 존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부모에게 불효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큰 미련이 없었고, 죽음은 언제든 가까이 있으며, 가족에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들은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아무 존재감 없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약 60년을 살아오면서 남긴 것은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내와 아들은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가 둘이나 있고,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건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내 건강을 깊이 염려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은 만약 내가 간암이라면 자기 간을 이식할 거라고, 엄마에게만 몰래 말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지만, 가족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은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기 보다는 무심하게 대한다. 심지어 부모는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거나 반항한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미운 감정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서로를 끌어 안고, 단단하게 뭉친다. 내가 간경변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삶은 무난한 삶이었다. 내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까지 내 삶이 거친 황야를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결혼한 다음부터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한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건 아내 덕이었고, 나는 그걸 늘 기억하며 살아왔다. 결혼 초기에 직장 생활을 몇 년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이후 나는 줄곧 지역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했다. 지역에서 일한다는 건 봉사를 한다는 뜻이다. 돈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내 돈을 쓰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의 일이다. 나는 '주민자치위원'으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도 하고, 지역의 몇몇 단체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군 단위 전체 인구가 불과 12만 명에 불과하고, 내가 사는 면 인구도 1만 명인 작은 지역에서 일하는 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든든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럽게 생각한다. 나는 백수가 분명하지만, 시골에 정착하면서 늘 바빴다. 대부분은 내가 사서 고생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지만, 지방으로 내려온 이후 나 스스로 가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병설유치원, 시골의 분교를 거치고, 청년이 될 때까지 나는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진 별 것 아닌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골에서 한 20년쯤 사니 이제서야 지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사람들과도 낯설지 않게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보낸 시간은 지역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의욕이 앞서서 지역의 상황에 맞지 않는 제안이나 주장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보람된 일을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어서 그간의 시간이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면 단위 주민자치 소식지를 최초로 기획, 편집, 제작해서 지금도 발행하고 있고, 마을 홈페이지, 면 단위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어 자료를 올려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당시만 해도 너무 앞서나가서인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사라졌고, 현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내 본업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시골에 정착하고 소설을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 몇 달 동안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으로 작정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편의 장편을 쓴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써놓기만 하고 그만이었다. 스스로 삼류 작가라고 생각해서, 어디에서 '작가'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고, 누가 나를 작가라고 알아봐 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나마 2010년부터 시작한 페이스북이 밖으로 향한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 일주일 전,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던 날도 돌아오면서 쌀국수를 먹었다. 일주일 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면, 이번에는 안심하는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두 달치 약을 받았고, 내 일상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약을 전혀 먹지 않고 살았다. 퍽 건강한 편이었고, 내가 건강한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고 감사하며 살았다. 어머니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나는 네 살까지 어머니 젖을 먹었다고 했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니, 아마도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퍽 건강하게 살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마다 고맙다고 혼잣말을 한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예전처럼 일상을 보냈다. 다음 병원갈 때까지 두 달의 시간이 있었고, 그때가 4월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음식은 싱겁게 먹고, 운동하고, 체중을 좀 줄이고...'라고 했지만, 나는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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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일기_007
    건강일기_007 석달 동안 7kg을 감량했다.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게 감량했지만, 3개월 기간으로 보면 무리하지 않은, 정상적 감량에 해당한다. 처음 몸무게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76.5kg이었는데, 오늘 아침 몸무게는 69.5kg이었으니 60kg대로 내려온 것만으로도 50%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하면 확실히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 운동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차이가 크다. 아직 의학적 검사를 하지 않아서 정확한 결과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체중이 빠지면서 뱃살이 조금 들어가고, 혈압이 조금 내려간 걸 느낀다. 뱃살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혈압은 가끔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하러 가서 잰 기록을 보고 알게 된 것으로, 예전 몸무게로는 고혈압 판정을 받을 정도까지 올라가 있었다면, 지금은 정상 범주로 내려온 걸 알 수 있었다. 운동과 함께 음식도 나름 조심하면서 먹었는데, 과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점심 한 끼도 잡곡밥 위주로 먹고,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음식을 적게 먹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도, 어려움도 없었으며 가장 지키고 싶었던 원칙은 저녁7시 이후에는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음식물을 먹지 않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다만, 7kg을 감량했어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 뱃살은 여전히 나와 있고, 겉으로 보기에 많이 달라보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꾸준히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 분명하다. 특히 나이 들면서 체중 조절을 하지 못하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음식을 적게 먹을 것, 꾸준히 운동할 것,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흡연을 하지 말 것,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 말 것 등 기본 상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건강한 몸이 아니어서 특히 이 원칙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고, 체중 관리와 음식 조절을 평생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운동과 체중 조절을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그건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다. 그러니 지금 건강이 나빠진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엊그제 냉장고 액정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냉동 기능이 안 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침내 고장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잘 썼지'라고 수긍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우리집에서 쓰고 있는 가전제품은 집을 짓고 모두 새 물건으로 장만한 것으로, 이제 17년째 쓰고 있다. 가전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지(LG)전자 제품이다. 나는 엘지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가전제품은 엘지전자가 가장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엘지 제품을 추천하는데,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엘지 제품이 17년만에 고장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우선 냉장고를 앞으로 조금 끌어낸 다음, 전기 콘센트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서 다시 끼웠더니 액정의 에러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상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정상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온라인 접수에서는 가까운 날짜가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가 8월 20일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신청을 해두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서비스 기사가 전화를 했다. 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의 상태를 물었고, 냉동실 안쪽 벽면에 성애가 끼었다면, 그 성애 때문에 냉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냉동실을 비우고, 하루 정도 말리면 냉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비스 기사의 말대로 하면 기사가 우리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기사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법이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서비스 기사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회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 기사에게,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해 달라고 했다. 냉장고는 다시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신청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공식적으로는 무려 10일 뒤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우리집을 방문한 기사는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 냉장고(냉동실)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고, 성애 때문도 아니고, 문이 약간 덜 닫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는 냉장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세탁기의 배수 장치를 확인해 주었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엘지전자 제품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없이 쓰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출장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기꺼이 출장비를 지불했다. 1만8천원. 어떤 사람은 이 돈도 비싸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출장비가 싸다고 생각한다. 1만8천원을 지불하면, 최고의 기술자가 산골까지 찾아와 고장난 제품을 고쳐준다. 지난번 에어컨(이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아니었다)이 고장났을 때는 몹시 급한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개인 수리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양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인 수리업자는 우리집에 와서 몇천 원 하는 센서 부품을 교체하고 5만원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엘지전자의 출장 서비스 기사도 개인사업자에게 위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서비스 기사가 엘지전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위탁회사가 있던지, 아니면 개인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최대한 많이 집집을 방문해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출장비와 부품비를 청구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며, 그 와중에 '친절함'에 관한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전자제품의 출장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출장비 받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늦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마구 항의를 하거나 크레임을 걸어서 서비스 기사를 못 살게 굴고,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 이건 음식 배달을 하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권위적이고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서비스 노동자를 괴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기술자, 전문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의 가치가 적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대우 역시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중요성, 노동의 역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합리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기술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전문직 기술자, 노동자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주로 '사'로 끝나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종을 높은 가치로 여기도록 학습하고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의 모든 직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은 곧 자기의 직업, 업무를 뜻한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객의 요구가 모두 달라서, 그 요구에 맞춰야 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나 직종이라 해도 그 일 자체가 하찮거나 쓸모가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 직종이 사회에서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는 사회적 지위나 대중의 직업 인식에서는 하위에 속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라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서 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도 역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발생하는 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수고를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노동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도록 가르치고,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대중 매체의 드라마나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천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노동' 그 자체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이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력, 경제적 부와 관계 없이 인성이 비뚤어진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이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일정 비율로 싸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건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노동자가 부당하게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신성하려면, 노동의 결과가 그만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대우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뿐이다. 즉, 노동의 의미도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성과 윤리, 도덕성마져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런 예의 하나인데, 물질만능, 화폐숭배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를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 정글의 논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많은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노동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다.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6
    건강일기-006 운동 방식을 바꾸다 6월 7일부터 7월 17일까지 약 40일 정도를 매일 3,000개 이상 줄넘기를 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줄이고, 밀가루와 튀긴 음식, 간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그 사이에 약 6kg이 줄어서 다이어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30일이 지나면서 몸무게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운동과 음식도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몸무게가 줄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이 부족하거나, 근육 운동을 그동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판단을 했다. 줄넘기는 유산소 운동이고, 복부의 내장 지방과 몸무게를 줄이려면 유산소 운동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근력 운동에 관해 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아들은 혼자 연구해서-물론,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찾아봤겠지만-다이어트를 성공한 경험이 있어서 운동에 관해서는 나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이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들이 알려준 근력 운동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런지 25회 양 다리 2. 푸쉬업 적당히 가능한 만큼 (10 ~ 30회 중 선택) 3. 스쿼트 25회 4. 플랭크 1분 5. 복부운동 30회 이게 1 루틴. 루틴 하나를 1~2회 하면 됨 아들이 알려준 운동은 요즘 많이 하는 '홈트레이닝'의 여러 과정 가운데 근력 운동 부분이고, 여기에다 트레드밀에서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위의 과정에다 '풀업(턱걸이)'도 하려고 문틀 턱걸이를 주문했다. '풀업'은 최근 조국 교수가 SNS에 동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지지의 릴레이 풀업 영상을 올리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팔 근육 운동에도 도움이 많이 될 듯 하고, 전체 근육 운동에서 비어 있는 부분 같아서 '풀업'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 18일부터 줄넘기는 중단하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준대로 런지, 푸시업, 스쿼트, 플랭크, 복부운동 순서로 했는데,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줄넘기 3천 번 한 것 만큼, 아니 그 이상 힘들었다. 줄넘기를 하면 숨이 차고 땀을 많이 흘리지만 샤워를 하고나면 몸이 개운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면, 이 운동을 하고 나면, 온몸의 근육이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처음 근육 운동을 해서 그런 듯 한데, 힘도 많이 들고, 근육을 더 많이 움직이는 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땀이 많이 나고, 숨이 차는 것도 줄넘기할 때 못지 않았다. 그만큼 근육 운동이 힘들다는 것이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는 증거겠다. 이 운동이 좋은 점은 아주 덥거나 추운 날에도 집안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줄넘기만 해도 늘 바깥에서 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어렵고 또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못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집안에서 근육 운동을 해보니 충분히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석달을 목표로 운동하고 있는데, 두달 동안 나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운동했다. 7월 18일부터 근력운동을 했으니 오늘(8월 7일)까지 21일 동안 근력운동을 했다. 아래 식단표를 보면 조금 특이한 부분이 보이는데, 운동을 마치고 배가 많이 고파서 참외를 두 개 또는 작은 참외는 세 개를 먹었다. 다른 과일을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참외를 가장 좋아하고, 참외를 먹으면 소화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이 있고, 참외는 칼로리가 낮아서 두 개, 세 개를 먹어도 칼로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점심은 칼로리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었다. 다만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설탕과 당류가 많이 들어간 음식, 공장에서 만든 음식은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밀가루 음식을 제외하니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매우 적다는 걸 새삼 느꼈다. 국수 종류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두 달 동안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먹었고, 튀긴 음식은 더욱 적게 먹었다. 하루 기초대사량이 대략 1600kcal 정도라면, 하루 두 끼를 먹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칼로리가 적은 음식과 소화가 잘 되고,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관건인데, 이런 음식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채소, 생선, 과일이다. 여기에 육류도 빼놓을 수 없는데, 고기를 먹더라도 구워서 먹는 것보다는 삶아서 먹는 방식으로 바꿨다. 근력운동을 시작한 7월 18일부터 8월 7일까지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운동량과 음식의 칼로리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판단했다. 내 키에 적당한 몸무게는 61kg 정도인데, 그럴려면 9kg을 더 감량해야 한다. 8월 말까지는 무리하지 않고 4-5kg 정도를 감량할 계획인데, 그러자면 조금 더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저녁 6시 이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빈속으로 있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많이 나는데, 이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내 몸이 그만큼 건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탐하려는 유혹을 얼마나 잘 견디는가와 근력운동을 비롯한 운동량과 시간을 좀 더 늘리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바깥 온도가 높기도 하고,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야외 활동이나 야외 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실내에서 근력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자본, 앙시앙 레짐, 반동의 총공격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내부의 계급 이익을 둘러싼 신경전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회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주로 수구 반동을 지지하는 사람들 - 은 특정한 정당 또는 후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서 비난하는 경향이 많은데, 지금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큰틀은 크게 세 가지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윤석열과 최재형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면서, 현재 정부의 관료들이 가진 가치관,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정당이다. 국민의힘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단 한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으며, 자기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자들이 모인 정당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매국반동쿠데타토착왜구라는 걸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당에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윤석열과 최재형은 그들이 속했던 관료 집단에서 수장을 했던 자들로, 그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즉, 한국의 관료집단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보수화, 수구화, 과거지향적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표를 내고 뛰쳐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재부의 홍남기 같은 자 역시 수구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관료들의 사상적 기반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철저하게 '자본종속적'이라는 데 있다. 재정을 직접 다루는 홍남기의 경우, 그가 결사적으로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고, 끝까지 차등 지급을 고수하는 것은 정부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재정과 운용에 관해서는 이미 최배근, 정균승 교수 등 학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논파당했기 때문에 홍남기는 반론을 제기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들이대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는 것은 홍남기류의 인간들이 정부 내부에서 문재인정부에 타격을 입히려는 정치행위인 것이다. 이들 무능하고 퇴행적 관료들과 국민의힘이 반개혁적, 반동적 행위를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자본'이 있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정부'를 싫어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의 형성과 축적 과정을 보면, 자본은 '착취'와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착취'와 '경쟁'이 쉬운 환경을 만들어야 자본의 이윤을 확대할 수 있다. 즉,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자본'은 먹거리가 많아지고, 이윤을 축적하기 쉽다. 선진복지 국가의 좋은 예로 드는 북유럽 국가들도 '자본'이 존재하는데, 그러면 북유럽 국가들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국가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국민의 민도가 높은 나라는 국민과 정부, 자본의 합의와 견제에 의해 '자본'이 '비교적 깨끗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자본'도 이윤추구를 위해 범죄를 저지를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한다. 즉,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을수록 '자본'에 의한 범죄는 억제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지만, 과거 반민주, 반노동, 반인권 제도와 인식이 상당히 남아 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30% 남짓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상징적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갈등을 두고 정당끼리의 권력투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민의힘은 구체제(앙시앙 레짐)의 뿌리이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열매이며,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인간들은 그 부패한 나무의 잎사귀들이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가장 먼저 부정부패의 뿌리이자 과거 반민주, 쿠데타, 친일매국 세력인 국민의힘을 뿌리채 뽑아버려야 한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최재형 같은 구체제 신봉자들이 집결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그 성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은 뒤에서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시민의 힘이 정권을 창출하고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정도로 커졌다. 국민의힘이 '자본'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겨우 30% 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시민의 단결한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고위 관료 출신의 윤석열, 최재형은 국민의힘을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간 것은 다행이며, 전선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민주당은 내부의 적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가운데 국민의힘과 정체성을 같이 하는 자들이 있다. 이낙연, 정세균, 박용진 같은 자들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민주당에 몸을 담고 있을 뿐, 국민의힘에 있어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촛불시민은 민주당을 진보적 영역으로 견인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재명, 추미애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고 앞장 서 민주당의 개혁성을 이끌고 있고, 젊은 의원들이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이 사는 길은 국민의힘으로 대표하는 앙시앙 레짐, 수구반동, 자본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들과 싸워 피를 흘릴수록 촛불시민은 더욱 강하게 민주당을 지원할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는 여전히 상당수 '수박'들이 존재한다. 이들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를 걸러내고, 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민주당이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한국에는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다.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 같은 '진짜'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데,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 역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경제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더 이상 반자본주의 투쟁을 이끌 집단은 한국사회 내부에는 없다고 판단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개혁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문재인정부가 최선이다. '문재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중심으로 민주주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민주적 테제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뒤를 이을 정부는 반드시 문재인정부의 정체성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그보다 한발 앞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대통령은 몹시 신중하고 강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라 적과의 싸움에서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다음 대통령은 손에 피를 묻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개혁과제 가운데 다음 정권에서는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 바로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교육개혁, 부동산개혁, 노동개혁이다. 이 과제는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다음 대통령은 온몸에 피칠갑을 할 각오를 하고 앞장서야 한다. 이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도 안 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내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그럴 정도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이재명이라고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5
    건강일기-005 운동 시작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그나마 조심한 건 과식, 야식, 술이었다. 술은 체질이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지만, 아주 드물게 한 잔 마실 때가 있었다. 모임이나 집에서도 저녁에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전부인데, 간경변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내 오랜 식습관은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 것인데, 중간에 간식을 항상 먹었다. 계속 살이 찌는 원인은 소비하는 칼로리보다 먹는 칼로리가 많기 때문인 건 상식이다. 먹는 것 이상으로 움직여서 칼로리를 소모하면 살은 찌지 않는다. 이런 상식을 알면서도 생활에서는 실행이 어려운데, 내 경우도 그렇다. 그나마 몸무게가 75-76kg에서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 신체 조건에서 적당한 몸무게는 60-65kg 정도인데, 최소 10kg에서 많게는 15kg을 줄여야 했다. 4월 초에서 6월 초까지 두 달 동안은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불규칙하게 걷기를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식탐도 줄어들 줄 알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충분히 포만할 때까지 먹었다. 나중에 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거지만, 그동안 나는 매 끼의 음식량이 많았고,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하지만 그 사이와 저녁에 간식을 먹는 것 때문에 절대 살이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끼를 먹을 때도 음식의 내용과 질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의사선생님은 '싱겁게 먹고, 간식, 야식을 먹지 말고, 국물 음식도 가능한 먹지 말고, 밀가루 음식, 흰쌀밥도 가능한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이 상황이 바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건 내 의지가 약하기도 했고, 지금 약을 먹고 있으니 음식을 조절하지 않고도 간 상태가 좋아지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다만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의식을 하면서 먹었다. 매일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데, 점심과 저녁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기록하고 있다. 병원에서 두 달치 약 처방을 받아 약을 먹는 기간 동안에 먹었던 음식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간식과 야식이 줄어들긴 했다. 4월 말부터는 참외를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나는 참외를 퍽 좋아하는데, 해마다 참외가 나오기 시작하면 10kg짜리 참외를 주문한다. 단, 참외값이 비싸므로 '흠과'를 주문하는데, 이 '흠과'의 종류도 참외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뉜다. 나는 '대과'를 주문해서 먹는데, 기간에 따라 참외값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다. 4월 말에 참외 10kg 흠과의 가격은 약 3만8천원이지만 가격은 점차 내려간다. 2만6천원이 되었다가 7월이 되면 1만6천원까지 내려가는데, 참외가 한창 많이 나올 때라서 똑같은 참외라도 값이 싸진다. 참외는 거의 나 혼자 먹는데, 작년(2020년)에는 여름 한철에 내가 먹은 참외가 60kg이었다. 4월에서 6월까지도 참외를 먹었다. 참외는 칼로리가 낮고, 소화도 잘 되며, 포만을 느낄 수 있는 과일이어서 밥을 좀 적게 먹을 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가졌다. 몸의 변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체중을 확인하는 것이다. 약을 먹는 두 달 동안 따로 몸무게를 측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몸무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5월 말에 아산병원에서 채혈하고, 일주일 뒤인 6월 7일,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은 피 검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두 달 사이에 변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처럼 들렸고,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의사선생님은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 두 달 사이 내가 건강을 위해 노력한 것이 없다는 건 분명했고, 그래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의사선생님은 다시 똑같은 약을 3개월치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생활이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는 자각을 했고, 운동과 절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 날부터 운동을 시작했는데, 내가 선택한 운동은 줄넘기였다. 그 전까지는 주로 걷거나 트레드밀에서 뛰는 운동이 전부였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6월 8일부터 줄넘기를 시작했다. 운동 목표는 하루 3,000개. 왜 3천 개를 해야 하는지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 정도는 해야 운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지 않고, 무조건 하기로 다짐했다. 첫날 줄넘기는 2,000번을 했는데, 운동을 전혀 하지 않던 몸이라 첫날 줄넘기는 엉망이었다. 한번에 넘는 횟수도 열 번을 넘기지 못했고, 무릎 안쪽, 허벅지, 종아리, 발 전체가 다 아팠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줄넘기를 할 때 요령도 몰랐고, 어떤 곳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몰랐다. 줄넘기를 하는 장소는 처음에 풀밭, 데크 등에서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집앞 도로가 아스팔트여서 그곳에서 줄넘기가 비교적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줄넘기를 할 때 복장과 신발도 어떤 것이 좋은지 몰라서 고생했다. 처음에는 달리기용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해봤는데, 자꾸 발에 줄이 걸려서 멈췄다. 그러다 바닥이 평평하고 운전할 때 신기 편한 가벼운 신발을 신고 줄넘기를 하자 줄이 걸리지 않고 좋았다. 줄넘기를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첫 날은 2,000개를 하고, 둘째날부터는 계속 3,000개 이상을 했다. 일주일 동안 무릎 안쪽, 허벅지 등이 아팠지만, 처음 작정한 것처럼, 핑계 대지 않고 날마다 줄넘기를 했다. 운동하는 첫날 몸무게를 쟀을 때, 76.5kg이 나갔다. 몸은 무겁고, 배는 출렁거리고, 다리는 아팠지만, 나 자신에게 다시 실망하는 것보는 아픈 것이 나았다. 처음 줄넘기를 할 때는 열 개, 스무 개를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차츰 발에 걸리지 않고 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백 번을 넘길 때는 감격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 스무날이 지나면서 줄넘기는 백 번, 이백 번을 한 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줄넘기 운동 시간도 처음에는 3천 번을 하려면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 약 80분 정도를 해야 마칠 수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단축되어 한 달 뒤에는 3천 번 줄넘기 시간이 약 40분대로 줄어들었다. 줄넘기와 함께 음식도 가능한 적게 먹으려 노력했다. 매일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고, 아침에 운동을 하면 몸무게와 줄넘기 횟수를 기록했다. 점심은 여느 때와 똑같이 먹었고, 간식과 야식을 먹지 않았으며, 저녁은 적게 먹었다. 저녁을 적게 먹고 잠을 자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을 먹기 전까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흰쌀밥 대신 잡곡밥으로 바뀐 것이다. 밥은 늘 잡곡밥을 먹고, 배가 많이 고프면 참외 한 개를 먹거나, 참외로 저녁밥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줄넘기를 3천 개씩 하고, 잡곡밥을 먹고, 밀가루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인스탄트 음식,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도 거의 먹지 않으며, 저녁은 간단하게 먹으면서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하니 처음 며칠은 변화가 없던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76.5kg에서 꼭 한 달이 지난 7월 7일에는 70.9kg으로 약 6kg이 줄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다음 병원에 갈 동안인 3개월 사이에 몸무게를 적어도 10kg 이상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고, 목표 체중은 63kg으로 설정했다. 한 달이 지나서 6kg 정도를 줄였으니 3개월이면 이론적으로 18kg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몸무게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행인건, 내가 운동과 절식을 시작할 때, 가족 모두 나처럼 운동과 절식을 함께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에 동의하고, 점심은 잡곡밥을 중심으로 고기도 먹고, 저녁은 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먹을 샐러드 재료를 구상했다. 양상추, 새싹, 방울토마토, 피망, 오이 등 채소를 준비하고, 단백질은 닭가슴살을 준비했다. 샐러드용 소스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었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우연히 '인바디 체중계'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 날마다 체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신체 지수를 측정하는데, 우리집 거실에는 체중계 두 개가 나란히 있어서, 체중계에 각각 올라가 몸무게의 변화를 확인한다. 몸무게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적게 나가는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몸무게 변화는 많게는 2kg까지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몸무게가 6kg쯤 빠졌지만 70kg 초반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정체기가 시작되었다. 문제가 생겼다고 느꼈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4
    건강일기-004 두 달의 시간 채혈, 위내시경, CT 촬영을 하고 일주일 뒤에 담당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기 직전에 긴장감이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도 걱정이 되어 함께 왔는데, 나는 의사 앞 빈 의자에 앉았고, 아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앉아 있는 책상에는 모니터 두 대가 보였고, 거기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면서 설명했다. 간의 표면이 울퉁불퉁한 것은 이미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것이다, 간에 결절도 여러 개 보이는데, 이미지로만 보면 상태가 조금 나빠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약으로 치료하면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때까지 의사선생님은 간 상태에 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만 궁금했다. '간암은 아닌 거죠?'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네, 간암은 아니고 간경변입니다.' 그 말 한 마디를 듣는 것이 내 삶에서 변곡점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와 다음 진료 일정을 잡았다. 두 달. 간경변 치료제 두 달치 처방전을 받아 나오면서,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내는 '다행이다'라며 깊은 숨을 내쉬었고, 오늘 검사 결과를 알기까지의 지난 일주일 동안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노라고 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졸렬하게 살아왔는가를 반성했다. 나는 이기적으로 살았다. 내 존재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부모에게 불효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 큰 미련이 없었고, 죽음은 언제든 가까이 있으며, 가족에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들은 내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아무 존재감 없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약 60년을 살아오면서 남긴 것은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아내와 아들은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가 둘이나 있고,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건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내 건강을 깊이 염려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들은 만약 내가 간암이라면 자기 간을 이식할 거라고, 엄마에게만 몰래 말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지만, 가족에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을 하기 어렵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족은 서로에게 살갑게 대하기 보다는 무심하게 대한다. 심지어 부모는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고,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거나 반항한다.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미운 감정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은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가운데 누군가 고통을 당할 때 서로를 끌어 안고, 단단하게 뭉친다. 내가 간경변 진단을 받기 전까지의 삶은 무난한 삶이었다. 내 삶은 결혼 전과 후로 나뉜다. 결혼 전까지 내 삶이 거친 황야를 떠도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결혼한 다음부터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한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건 아내 덕이었고, 나는 그걸 늘 기억하며 살아왔다. 결혼 초기에 직장 생활을 몇 년하고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이후 나는 줄곧 지역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했다. 지역에서 일한다는 건 봉사를 한다는 뜻이다. 돈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내 돈을 쓰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의 일이다. 나는 '주민자치위원'으로 시작해 내가 사는 마을의 이장도 하고, 지역의 몇몇 단체에서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군 단위 전체 인구가 불과 12만 명에 불과하고, 내가 사는 면 인구도 1만 명인 작은 지역에서 일하는 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투입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든든한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럽게 생각한다. 나는 백수가 분명하지만, 시골에 정착하면서 늘 바빴다. 대부분은 내가 사서 고생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지만, 지방으로 내려온 이후 나 스스로 가진 생각 가운데 하나는, 지역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병설유치원, 시골의 분교를 거치고, 청년이 될 때까지 나는 지역에서 일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가 가진 별 것 아닌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골에서 한 20년쯤 사니 이제서야 지역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사람들과도 낯설지 않게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보낸 시간은 지역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었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의욕이 앞서서 지역의 상황에 맞지 않는 제안이나 주장을 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 보람된 일을 하고, 좋은 결과를 만든 적도 몇 번 있어서 그간의 시간이 낭비였던 것은 아니다. 면 단위 주민자치 소식지를 최초로 기획, 편집, 제작해서 지금도 발행하고 있고, 마을 홈페이지, 면 단위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어 자료를 올려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당시만 해도 너무 앞서나가서인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사라졌고, 현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일을 해나가고 있다. 내 본업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시골에 정착하고 소설을 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활동이 거의 없는 겨울 몇 달 동안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으로 작정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편의 장편을 쓴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써놓기만 하고 그만이었다. 스스로 삼류 작가라고 생각해서, 어디에서 '작가'라는 말을 꺼내지도 않고, 누가 나를 작가라고 알아봐 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나마 2010년부터 시작한 페이스북이 밖으로 향한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 일주일 전,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갔던 날도 돌아오면서 쌀국수를 먹었다. 일주일 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면, 이번에는 안심하는 마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두 달치 약을 받았고, 내 일상에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약을 전혀 먹지 않고 살았다. 퍽 건강한 편이었고, 내가 건강한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고 감사하며 살았다. 어머니 생전에 들었던 이야기로, 나는 네 살까지 어머니 젖을 먹었다고 했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으니, 아마도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퍽 건강하게 살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할 때마다 고맙다고 혼잣말을 한다. 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와 예전처럼 일상을 보냈다. 다음 병원갈 때까지 두 달의 시간이 있었고, 그때가 4월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음식은 싱겁게 먹고, 운동하고, 체중을 좀 줄이고...'라고 했지만, 나는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3
    건강일기-003 아산병원 병원에 올 때까지 일주일 동안 늘 해오던 일상이 이어졌다. 가능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내가 이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를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오로지 내 책임이 맞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검사를 하는 날에도 혼자 가려했지만, 아내가 휴가를 내고 동행했다. 아산병원은 인연이 있는 병원이다. 병동도 낯익고, 우리 가족이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라 마음은 편했다. 오전9시에 도착해 진료 접수를 하고, 마을 내과에서 받은 진료의뢰서와 초음파화면을 담은 CD를 제출하고 '간담도센터'로 갔다. 담당의사 선생님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 면담을 할 때, 의사는 이미 내가 제출한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B형 바이러스 보균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20대라고 했고, 건강검진을 언제 했느냐는 질문에 꽤 오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화면에 보이는 작은 점과 흰색 띠를 짚어가며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면담 시간은 짧았고,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에게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줄곧 금식을 하고 있었고,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곧바로 원하는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검사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채혈은 오전에, 위내시경과 CT촬영은 오후에 하기로 했다. 곧바로 채혈실로 가서 채혈을 했다. 열흘 사이에 피검사를 세 번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키와 몸무게를 쟀고, 피를 뽑았다. 며칠 사이에 세 번 피를 뽑으면서 느낀 건,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주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곳도 비교적 아프지 않게 채혈했지만, 아산병원 간호사의 채혈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채혈하고 위내시경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남아서 병원 바깥의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마침 벚꽃이 활짝 피었고,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봄이 한창일 때, 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나처럼 뜻밖의 소식을 듣고 황망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이 흐린 하늘처럼 우울했다. 나와 아내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위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았다 떠나가고, 점심 무렵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 군대 동기 모임을 했다. 내년이면 만40년이 되는 군대 동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다섯 명이 모인다. 그 가운데 세 명이 양평에 살고 있어서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다. 평택에 살고 있는 동기가 내년이면 정년 퇴직을 하고, 올해는 휴식년을 보내고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삽교천에서 꽃게찜과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고, 당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당구를 치고,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전화한 동기는 내가 병원에 검사하러 온 걸 알고 있었고,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 동기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동기들 모두 건강했으나 최근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위내시경 검사하는 곳에 접수하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과정에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사람들도 많고, 필요한 처치를 해야 하고, 의료진이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으니 그만큼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팔에 주사를 맞았다. 위 운동을 둔하게 하는 약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던 곳에서는 이런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그만큼 큰 병원이 갖는 장점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료진이 시키는대로 했다. 먼저 입을 벌리면 입안에 뿌리는 마취제를 뿌렸다. 그리고 침상에 비스듬히 누우면 되는데, 나는 이번에도 '비진정 내시경'을 선택했다. 몹시 괴로운 건 알지만 수면내시경보다 시간이 짧고, 곧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시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이 나왔지만, 그 뒤로는 참을만 했다. 이것 역시 지난 건강검진 때보다 부드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십이지장까지 내시경이 내려갔는데, 처치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옆에서 설명해주면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구역질은 한번만 했고, 참을만 했다. 그렇게 위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CT촬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CT는 태어나서 처음 찍는다. 찍을 일이 없다는 건 운이 좋다는 뜻이었고, 지금 CT를 찍는 건 그 운이 다했다는 뜻이다. CT를 찍기 전에 조영제를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손등에 주사기를 꼽는다. CT를 찍는 문 앞에는 조영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CT를 찍기 전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순서를 기다리다 촬영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을 말하고-이 과정은 모든 처치 과정에서 항상 반복했다-기계의 침상에 누웠다. 헤드폰을 씌워주었는데, 그곳에서 CT를 조작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촬영을 하는 중간에 조영제를 주입했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CT를 찍을 때도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참고를 반복했다. 약 10분 정도 누워서 CT촬영을 하고 나오니 이날 해야 할 검사를 모두 마쳤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왼손 손등에는 주사바늘을 뽑아 지혈을 한 탈지면을 붙이고, 오른쪽 손목에는 검사를 받는 환자의 코드가 찍힌 팔찌를 낀 채 병원을 나왔다. 오후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서울의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 오늘 오후까지 만24시간이 넘도록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오늘 아산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퍽 운이 좋아서(?) 오늘 필요한 검사를 다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 들러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조금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병원에서 오후3시 무렵 올림픽대로를 따라 집으로 오는데, 서울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평일 아침 출근길보다 훨씬 많아서 도로가 차로 막혔다. 우리가 가는 길도 차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막히지 않고 잘 빠져나갔는데, 서종IC를 빠져나와 문호리 쪽으로 들어서자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현상이다. 이 행렬은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양방향으로 계속되었다. 벚꽃이 피어서일까.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이번 주말이 절정이지 않을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2
    건강일기-002 발병 오랜동안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다. 10대 중후반에 편도선염으로 몇 차례 몹시 고생했는데, 그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편도선염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편도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 심하게 오르고 목으로 물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럽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염증 부위를 찢은 다음 고름을 빼내고 약을 발라주었는데, 그렇게만 해도 곧바로 열이 가라앉고 살 것 같았다. 20대 이후로는 편도선염이 발생하지 않았고, 병원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 몸에 B형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은 젊었을 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B형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간경변으로, 간암으로 발전한다는 상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해서 약 6년 직장생활을 할 때, 건강검진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B형 바이러스 항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더욱 그 뒤로 안심하고 지냈다. 문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지금까지 중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내가 자발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는 많았으나 딱히 의심할 만한 증상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2021년 3월 25일, 건강검진을 받았다. 강남에 있는 KMI에서 했는데, 건강검진의 순서가 그렇듯 키, 몸무게, 혈압, 체지방 등을 확인하고, 피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순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복부초음파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던 중, 검사를 하던 분이 잠시 나갔다 다른 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분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나에게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간은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내 간은 울퉁불퉁하게 보였고, 곳곳에 하얀 점과 긴 크랙이 보였다. 이걸 '결절'이라고 했다. 검사를 하는 분이 신중하게 말했다.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 가능한 빨리 내과에 가보시라. 건강검진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위내시경할 때다. 보통 수면내시경을 하는데, 나는 비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비수면내시경의 괴로운 경험이 떠오르는 걸 보니 과거에도 이런 방식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입안에 마취제를 뿌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내시경이 목을 통해 위로 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매우 괴로운 시간이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해야 하고, 검사를 받고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그렇게 12시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고 말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가벼운 정도가 아니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분이 하는 말의 뉘앙스를 들어보면 간경변의 상태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하는 날, 오전과 오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 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이 굳어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태평하게 살았다. 그러다 검진을 통해 간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플라톤주의를 떠올린다. 나는 오전이나 오후나 변하지 않은 존재지만, 나의 의식은 오전과 오후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실재하는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아무 걱정 없던 오전의 나, 병변이 발견되어 온통 근심과 걱정,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나는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극명하게 나뉘는 존재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건 얄팍한 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은 길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매 순간 흔들리고, 출렁거리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람의 본성,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아내와 점심은 맛있게 먹었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은 KMI는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그 중간에 한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갈치조림을 먹었다. 오후에는 내내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 책을 고르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점에서 4시간 정도 책구경을 하고, 나와서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걸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사람도 많았고, 도로는 차로 가득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전동킥보드를 탄 사람들이 마구 질주했다. 걷다가 역삼역 근처에서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서울에 나오면 우리 마을에서는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 더 걸어가니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그냥 갈까 하다 매장에 들러 햄버거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로봇이 햄버거가 든 봉투를 싣고 와서는 주문번호를 번쩍거리며 알려준다. 기계에서 주문하고, 로봇이 가져다 주는 햄버거를 받아보니, 사람의 노동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저녁은 서울에서 구입한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노브랜드 햄버거를 먹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밤에 인터넷에서 '간경변'과 '간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서 읽었다. 단순한 '간경변'이라면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간암'은 차원이 달랐다.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하니, 다른 암과 비교해도 확률이 낮은 편이다. 3월 26일. 오전에 양평읍내 있는 내과를 찾아갔다. 우리 가족이 다 찾는 내과여서 의사선생님도 안면이 있다. 시골 읍내의 병원은 오전에 사람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 어제 건강검진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다시 피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B형 바이러스 보균자인지, 술담배를 하는지, 건강검진을 언제 했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면서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간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에는 깨끗하지 않은 표면이 보였고, 약간 하얗게 보이는 작은 점과 역시 하얀 긴 띠가 보였다. 그 화면은 내게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보였고, 백남준의 설치미술에서 보이는 작은 모니터의 전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속의 장기가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은 내 육체의 탈아날로그 이미지였으며, 그 화면에서 발견하는 병변은 육체를 좀 먹는 세포의 활동이었다. 그 세포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내 몸에서 태어나 자란 세포였다. 최초에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싸우던 세포들이 어느 순간 내 몸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초음파검사의 결과를 본 의사는 어두운 얼굴로 '간경변이 온 건 확실하고, 그보다 예후가 더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간경변인지, 간암인지 알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빨리 아산병원으로 연결해 줄테니 가보시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일어서서 나오는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의 말과 표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쁘다면 간암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에게 아산병원에 예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아산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아주었다. 4월 2일. 아산병원 가는 날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여전히 건강했고, 내 몸속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부조리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아침에 걷기를 했지만, 이제는 병변을 알았으니 게을러지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내 생각, 느낌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 내리는 길을 걸었다. 일요일이지만 비 내리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은 관념의 바다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 같은 것이어서, 방울이 튀어올랐다 다시 떨어져 형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도 무수히 튀어올랐다 사라진다. 나의 불성실한 태도로 건강을 잃었다. 앞으로 어려운 나날이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지극히 '현대적 인간'이자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리얼리즘'의 전형적 인물로 본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거대한 서사의 격랑에 휩쓸리며 신과 자연과 자신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존재라면, 카뮈의 인물들은 외부의 힘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데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개인)의 의지일 뿐이다. 그런 태도는 불교적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결과)은 과거에 내가 했던 행위들의 집적(원인)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총체적 삶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말처럼, 삶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조리한 삶이다. 카뮈는 그런 인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부조리한 삶을 살았고, 뫼르소의 감정에 완벽하게 동화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뒷집 사시는 어르신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이 그 병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였음에도.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선배가 작년에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내 나이였으며, 예후도 없이 갑자기 발병했고, 스스로 죽음을 판단했다. 두 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담담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의지의 표현인가를 알게 된다. 봄비는 뭇생명을 깨우고, 자연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생명 또한 의연하고 겸손한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건강일기-001
    건강일기-001 들어가는 글 이 글은 수많은 투병환자가 쓴 투병기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서도 간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학적 변화와 함께 심정적 변화를 기록한 투병기다. 모든 사람은 '개별성'의 존재라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확률은 0%와 100%일 뿐이다. 나는 0%(건강한 사람)에서 '갑자기', '느닷없이' 100%(건강하지 못한 사람)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나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과 며칠 전, 병원에서 '간경변 환자'로 확진되었으며,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아서 '간암'의 확률을 예상해야 하는 '환자'다. 이제 막 병변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이 기록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기억이 생생할 때부터 기록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약물을 투여하며, 심각하면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정상'이었을 때의 기대수명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은 확실해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인 76세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지금도 날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나 자신을 객관으로 기술하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감정에 치우지지 않도록 노력하되, 나의 주관,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변화를 기록할 생각이다. 본격 투병을 하게 되면 글을 쓰지 못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글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발병부터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과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는 이렇게 완치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섣부른 희망이나, '투병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아는 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것이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 감정을 충실하게 기록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도 이 글(연재)이 길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최근 내가 겪은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이 글이 짧아질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한 분은 아흔 두 살의 어르신으로, 췌장암을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다른 한 분은 작년, 내 나이(60세)에 말기암이 발견되어 약 4개월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연세 많은 어르신의 단호한 결심은 존경스럽고, 갑자기 말기암으로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선배와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선배 역시 자신의 투병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만, 돌아가신 두 분처럼 단호하고 담백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렇게 지저분한 변명을 남기고 있다. 그건 어쩌면 마음 속에서 생존을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두렵다. 건강할 때도 '죽음'은 막연한 공포였지만, 건강을 돌보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죽음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를 가진 존재로 내 앞에 서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낭떠러지를 걷는 듯한 긴장과 매 순간의 절박함이다. 그 처절함은 어떤 말이나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며, 누구나 실제 눈앞에 닥칠 때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다고 병을 발견하고 투병을 하는 기간이 내내 죽음과 맞닥뜨리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일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으로 과거가 현재를 밀고 가는 시간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중첩하면서 투병하는 사람의 감정은 공포, 절망, 비관, 슬픔, 고통와 같은 비극의 감정과 눈 앞에 있는 현실에서 반응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 감정을 갖게 된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소견을 듣고, 처치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감정으로 괴롭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투병하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하면 슬그머니 희망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죽음까지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죽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게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일수록 살아야 할 나날이 많아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제 60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회에 조금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충격, 절망, 좌절, 슬픔 같은 감정이 밀려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쉽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걸 느꼈다. 이 뒤섞인 감정의 변화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경변 결과를 알기 전에 3회까지 써 놓은 글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연민과 공감 그리고 정의 현대판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의 시간]이 현재 판매 20만부, 인쇄 30만부를 넘어섰는데,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지 못한 분이 많아서 실질 판매부수는 오늘까지 이미 30만부가 넘은 것으로 보인다. (고일석 기자의 글 참조) 출판사는 종이 구하랴, 인쇄소 확보하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고, 나는 예약판매를 구입했음에도 1판2쇄를 받았고, 어제 다시 추가 구입한 책은 1판 23쇄였다. 불과 열흘도 안 되어 23쇄였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쇄를 찍어내고 있으니 신기록을 쓰고 있다. 출판사(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표인 김언호 선생)는 이럴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조금 쓴소리를 한다면, 이럴줄 몰랐다면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지금의 현상과 기류를 올바로 읽지 못했다는 것이고, 촛불시민의 뜨거운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니 좀 서운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출판사의 이런 부족한 대응이 오히려 [조국의 시간]에 대한 관심을 증폭하고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니 오히려 좋은 결과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도 [조국의 시간]을 한꺼번에 주문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책이 초기에 많이 팔리고 관심이 줄어들기 보다는, 꾸준히 판매되어 베스트셀러는 물론, 스터디셀러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적들'은 [조국의 시간]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온갖 시비와 더러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조국의 시간]을 비난, 조롱하는 것은 결국 조국 전 장관을 향한 것이므로, 이들의 비난, 조롱, 폄훼 같은 것들은 이미 짐작했던 바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대붕'이 등장한다. 대붕의 한쪽 날개만으로도 바다를 가릴 정도로 크고, 온힘을 다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조국 전 장관을 두고 벌어지는 '멸문지화'의 능욕은 '대붕'을 잡으려는 잡새떼의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사냥꾼 '검찰새'는 온갖 무기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을 공격했다. 그것들이 사용한 무기는 비유하자면 화살, 창, 도끼, 칼 같은 것들이고, 이것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붕의 날개를 찢으려 했다. 여기에 '기자새'들이 가세해, 한꺼번에 수십, 수백, 수천개의 펜촉을 날리는 공격으로 무려 100만 개의 펜촉을 날려 대붕의 날개를 꺾으려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당새'들은 '검찰새', '기자새'와 내통하면서 대붕이 가는 길을 알려주고, 곳곳에 함정을 파두었다. 그렇게 '적들'의 공격을 받은 대붕은 피를 흘리며, 날개가 꺾일 수도 있는 절망의 순간도 있었으나, 그들보다 더 많은 촛불이 바다로 향하는 길에 빛을 밝히며 대붕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대붕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촛불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적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들'은 악랄하고, 저열하며, 천박하고, 야비하다. 그들의 심성은 일찍이 비뚤어졌고, 오로지 세속의 돈과 권력을 탐하느라 눈이 멀었다. 그들은 시궁창에서 살며, 썩은 음식을 먹고, 죽은 쥐와 오물덩어리 사이에서 잠을 잔다. 그들은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를 죽이고, 폭행하고, 가진 것을 빼앗고, 뒤돌아서면 뒤통수를 때린다. '적들'은 대붕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귀하고, 깨끗한 대붕이 하늘을 날아가는 순간, 시궁창에 사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고, 더럽게 보이며, 참을 수 없이 비참하고,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기 때문이다. 온갖 더러운 오물 사이에 사느라 질병에 시달리고, 기괴하게 변형된 '적들'은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는 것이 비참하다. '검찰새'는 권력을 가졌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기자새'는 사실을 밝혀야 하지만 돈을 좇느라 눈이 멀고, '야당새'는 오래 전부터 사악한 집단에서 나온 것들이라 근본이 더럽고 야비하고 타락한 존재들이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권력도, 돈도 없었지만, 오로지 깨끗한 마음, 하늘을 날아오르는 대붕의 뜻에 공감하는 마음, '적들'에게 공격당하는 대붕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촛불 하나는 약하지만,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촛불은 어두운 밤을 밝히고, '적들'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런 촛불시민들이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면서 '낙양의 종이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조국의 시간] 한 권은 하나의 촛불이다.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는 것은 한 조각의 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한 조각, 한 조각의 정의가 모여 정의로운 탑이 되고, 그 탑은 거대한 촛불처럼 불길이 타오르며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우리가 구입하는 한 권의 [조국의 시간]은 단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적폐', '적의 무리'를 짓밟아 올바른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책은 조국 교수가 썼으나, 역사를 만드는 것은 촛불시민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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