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아버지의 노래


김금숙 작가 작품.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태어난 1970년의 농촌 마을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지배하던 시기였지만 전통적으로 조선의 농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시골이다. 농촌 마을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를 겪고, 곧 이어 전쟁까지 겪으면서 격렬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도 농업의 근간을 잃지 않은 뿌리깊은 전통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작가는 농사를 하는 부모님과 아홉 형제의 막내로 자란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가족 사이에서 자란 것을 작가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던 부모가 농사를 포기하고 서울로 이주하기로 작정한 것은, 70년대의 커다란 흐름과 관계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이후 경공업의 활성화와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농업 위주의 나라에서 산업국가로 이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자본가들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값싼 노동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었으며, 여기에 10대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 투입되었다. 이들은 가난한 시골의 여성들로, 학교는 국민학교 졸업 또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여성들로, 집안의 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한 어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 심지어는 철야로 일을 하며 노동력을 값싸게 공급했고, 자본가는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 시골의 젊은이를 도시로 불러오도록 하는 정책은 농촌을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방식이었으며, 가장 핵심은 쌀값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낮은 쌀값은 농민의 생계를 위협했고, 농민 특히 대지주가 아닌 빈농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부모님도 농업만으로는 먹고 살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식들의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면 거의 전부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취업은 곧 집안을 일으키는 것과 동일한 인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낸다고 '우골탑'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작가의 부모님은 이미 서울에 살고 있던 작가의 큰외삼촌(엄마의 남동생)에게 땅 판 돈을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지만 외삼촌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작가의 가족은 큰 어려움을 겪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도시 이주와 관련해 수많은 비슷한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가족의 배신으로 고통을 겪는건 언제나 분노를 일으킨다.

작가의 부모는 과일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힘들고 고생이 많은 나날이지만 대가족을 이루고 있던 작가의 가족은 서로 힘을 합해 어려움을 이겨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미 어른이 된 오빠와 언니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로 한다. 어지간한 집안에서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막내였던 작가는 부모와 형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고,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발생하는 괴리로 인해 정신적으로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불만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 재능을 살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작가가 한국을 떠나는 것은 가족과의 연대를 끊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는 성장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고, 애틋하고 안쓰러운 가족의 아픔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그늘지지 않고 밝고 쾌활하게 자랐음을 알 수 있는데, 가난해도 부모의 깊은 애정과 형제들의 우애가 이들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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