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팔로우하고 있는 '재수의 연습장' 작가가 어제 올린 그림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잊어버렸다. 오늘 보니, 이 그림을 두고 엄청난 반응이 쏟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 그림 아래 달린 댓글과 오늘 작가가 다시 올린 해명과 그 글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가능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해봤다.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두 컷으로 나뉜 그림은 대사가 없는 윗 그림과 대사가 있는 아래 그림으로 나뉜다. 상황은 딱 한 가지가 달라졌다. 윗 그림에서 작가 부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이 아래 그림에서 얼굴과 상반신이 약간 돌아간 상태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마스크를 한 채 뛰고 있다. 이들이 이미 한참 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근거는, 아래 그림에서 독자의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온 여성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숨이 내뱉고 있음을 보여주는 입김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반팔 티셔츠에 바지는 어두운 계열의 운동복을 입었는데, 이 하의가 요즘 여성들이 많이 입는 '레깅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복이 편해야 하므로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를 입는 것이 상식으로는 맞다. 따라서 여기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이 입은 옷, 특히 하의는 어느 정도 몸에 붙는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라고 전제하자.


아래 그림에서 대사를 하는 사람은 작가 부부다. 행위(몸을 움직이고 시선이 바뀌는 행위)는 중년 남성(개저씨 또는 할저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단어의 선택은 명백히 의도된 것으로, 혐오를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남성들이 된장녀, 김치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이 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한 것은 작가 부부다. 이때, 우리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제3의 주체에 관해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해석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달리기를 하는 두 명의 여성이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은 주위 사람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거나, 알고 있어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젊은 여성이고, 몸의 굴곡이 보이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뭇남성의 시선을 받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는 것도 오늘 처음이 아닐 것이고, 이미 한국에서 젊은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물적,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초, 매순간마다 그것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큰틀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분명 사회적 문제라는 명제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 순간,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서 작가 앞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두 여성은 앞에서 다가오는 중년 남성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그 남성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그 남성 뒤에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우산을 쓰고 따라오고 있어서 신변에 위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자연스럽게 중년 남성과 작가 부부의 옆을 달리면서 지나간다. 이때 작가 부부 앞에 있던 중년 남성의 시선이 달리던 두 여성을 향해 움직인다. 중년 남성은 '객체'다. 즉, '주체'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고, 본래의 의지 - 여기서는 앞으로 쭉 걸어가는 것이 중년 남성의 본래 의지다 - 와는 상관 없는 행동을 하게 되므로, 중년 남성은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반응하는 '객체'로써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스트루프 효과'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1)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의도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2)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이며 의도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있는데, 이것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려는 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 중년 남성은 왜 '스트루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여성(남성)을 바라보면 자동으로 시선이 돌아가는 이유와 원리는 무엇인가? 단순히 남성(여성)들이 여성(남성)을 '성적 대상화'하기 때문일까?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분석을 하기 전에 먼저, 아래 그림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중년 남성은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을 따라가며 보고 있다. 이 남성의 시선으로 보자면, 저기 앞쪽에서 두 여성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때부터 줄곧 두 여성을 보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20미터 앞쪽에서부터는 여성들의 몸매가 보이기 시작할테니 적어도 중년 남성이 고개를 돌리기 몇 초 전부터 여성들을 보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후 두 여성이 중년 남성의 곁을 지나쳐 갈 때 중년 남성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여성을 쫓아갔고, 그래서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이해할 것이다. 이제 중년 남성의 '행위'를 두고 해석 가능한 주장을 펼쳐보면 아래와 같다.


 1.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남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사람은 1번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고, 단지 시선이 머물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혐오하는 것 자체가 남성혐오, 세대혐오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번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자리에 상반되는 인물을 놓아봄으로써 우선 '상식'의 선에서 이 문제의 반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즉, 명제를 아래처럼 바꿔보면 이렇다.


 1. 

중년 여성이 젊은 남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여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앞에서 1번에 동의한 사람이라면 이 명제에서도 당연히 1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2번에 동의한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2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1.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2.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20대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위의 명제에서 중년 여성과 20대 여성은 정우성을 '시선강간'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며 '성추행'을 한 것인가?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중년 남성의 시선을 '시선강간' 또는 '성추행'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체'나 '객체'가 아닌 '제3의 주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순간, '주체'와 '객체'는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낙인 찍힌다.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을 보면, '객체'의 행위만으로 '객체'의 존재를 비난한다. 근거는 오직 '객체'의 시선이 움직이는 '행위'뿐이다. 과연 '제3의 주체'는 '객체'의 행위만으로 그를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객체'가 동성애자라면? '객체'가 지나가는 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은 전적으로 '제3의 주체'의 심리적 반응이고, 그것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중년 남성' 일반 또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에 대한 적대적 고정 관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3의 주체' 가운데 남성은 이 그림의 작가로 보여지는데, 아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동조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1)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는 것과 2)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내의 말을 존중하기 때문에 동의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작가(남성이다)는 아내의 발화 내용 또는 아내의 일방적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왜곡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있거나, 왜곡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아내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비주체적 인물이다.


이제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내용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는 '중년 남성'이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상황으로 특정되어 있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은 곧잘 고개를 옆으로 돌려 - 각도의 차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5도, 10도, 15도...180도까지 -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시선을 '시선강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달리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내 딸하고 나이가 비슷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마스크를 하고 달리려면 숨쉬기가 힘들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도 극렬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만든 용어로, 남성들의 시선이 불쾌함을 넘어 '눈으로 하는 강간'이라는 매우 폭력적 표현으로 '남성 시선'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 '시선강간'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지속성(시간), 표현(특정 부위, 위, 아래로 훑는 듯한 시선)인가에 따라 '시선희롱', '시선추행', '시선강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여성이 남성을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사람(특히 남성)이 사람(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심리적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 남성은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2) 성적인 독점욕을 가지고 있으며, 3) 젊고 건강한 이성을 선택하려 하고, 4)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로 규정할 수 있다.[D. 시먼스, <섹슈얼리티의 진화>]


남성은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독점하고 싶어하는 경향'과 함께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욕구도 있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근거로 아래 그림의 '객체'인 중년 남성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리 상태나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분명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단지 고개를 돌려 달리는 여성들을 바라본 행위만으로 잠재적 또는 실질적 성범죄 가해자로 예단하는 '제3의 주체'의 발화 내용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내용-진화심리학 이론-을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알고 있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개가 돌아갔을 수 있다. 그렇게 '180도' 고개를 꺾어 뛰어가는 여성을 보는 남성이 반드시 그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보통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가서 바라본 대상은 그만큼 빨리 잊혀지기 때문인데, 우리가 보통 '성적 대상화'라고 할 때,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왜곡이고 비틀린 주장이다.


누군가가 '성적 대상'이 되려면 시선을 포함한 물리적 접촉과 함께 '성적 행위'의 매개 또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진화심리학의 4)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가 곧 모든 것이 '성', '섹스'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단계에서 남성은 주로 수렵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1), 2), 3)의 내용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내용은 앞의 맥락이 삭제되어 있고, '객체'인 중년 남성의 의도가 배제되어 있으며, '제3의 주체'가 가진 명백한 확증편향과 선입견, 예단 그리고 중년 남성에 대한 편견으로 혐오 발언을 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직 '시선강간'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는 만큼이나 못 생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간과 기회도 많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즉, 남성은 꼭 아름다운 여성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못 생긴 여성도 여성이니까 '성적 대상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건 그냥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짐작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시선강간'을 하려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극히, 매우 극히 드물게 그런 변태 남성도 있겠지만, 대부분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고 곧바로 자기가 갈 길을 가며, 자기가 바라본 여성에 대해서도 곧바로 잊는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두 컷 만화는 특히 '중년 남성'의 시선으로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성추행'이라는 뉘앙스로 남성 혐오 발언을 하고 있고, 이것은 명백하게 '제3의 주체'가 주관적 판단 오류 내지는 악의적 왜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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