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제목 : 문밖의 사람들

작가 : 김성희, 김수박

출판 : 보리


1988년 무렵에 나는 구로공단에 있는 영세한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삼미금속'이라는 회사였는데, 도금 공장이었다. 일당을 많이 벌려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고, 군대 입대 전에는 3년 정도 배관공으로 일을 한 경력도 있어서 나는 공사현장이나 매형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노동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중동 건설 붐이 일고 있었고, 몇 년만 다녀오면 집을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여서 인기가 높았다. 나는 그런 기회를 잡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중동에 가지 못했다.

구로공단의 영세한 공장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내 밥벌이도 있었지만, 그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알게 된 독서회는 번성했고, 내가 살던 지역에 새로운 독서회가 생기면서, 그곳에서 선배,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 가운데 극소수가 따로 '스터디'를 했는데, 사회과학 공부였다. 나는 정규 학교를 다닌 것이 국민학교가 전부였으므로 이때만큼 열심히, 깊이 있게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대학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니었으므로 '위장취업'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노동자였고, 이미 몇몇 공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조립하는 공장, 텔레비전 케이스에 필름을 씌우는 공장 등을 거치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와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이 제1회 전태일문학상에 당선되었고, 나는 '노동자 작가'가 되었다. 그래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올림픽이 열린다는 그 해에도 도금 공장에 다니며, 삶은 어둡고 무거웠다.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노동자의 의식은 낮았고, 회사의 감시는 심했다.

도금공장에는 황산, 염산 원액과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심지어 시안화나트륨은 작은 흰색 덩어리인데, 드럼통으로 가득 우리들이 옷을 갈아 입는 탈의식에 놓여 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청산가리를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염산, 황산, 시안화나트륨,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을 취급하면서도 우리는 고무장화와 고무장갑만 끼었을 뿐, 보호안경도 없었다. 그 용액이 눈에 튀어 들어가면 물로 씻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노동자들은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쉬는 날 등산도 하고, 가끔 야근을 하지 않을 때는 저녁도 먹으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슬쩍 떠봤지만, 그들도 이 공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영세한 공장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지금, 경제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파견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노동자 등으로 더 잘게 쪼개져 차별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정치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정부로 진보했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수출이 세계 10위권이고, 국민총생산, 국가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 등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의 소득도 증가하고, 절대 빈곤에서는 벗어났으며, 개인의 절대적 삶의 환경도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이 성장하고,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가져가는 부의 크기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몫은 상대적으로 더 작아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즉, 사회의 부가 커지면 거의 대부분을 소수의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차지하고, 다수의 노동자는 아주 적은 몫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이것을 서양 자본주의에서는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은 특히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이 깊어졌다.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 등으로 세분화한 것도 외환 위기 이후부터였다.

이렇게 노동자의 고용 환경이 나빠지면서 노동자의 삶은 더 불안정하고, 임금 격차는 커지게 되었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고,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다. 

이 작품에서 메탄올 독성으로 실명하게 된 여섯 명의 청년 노동자들도 자본의 이윤 추구에 소모품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민주주의로 발전하면서 인권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인권의 확대로 인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각종 차별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으며, 노동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주5일 노동, 최저임금제 등 노동자의 권익이 향상되는 것도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서양의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노동자의 처지가 매우 열악하고, 자본의 착취가 악랄한 현실이다. 자본가의 범죄는 가볍게 처벌되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파업은 무겁게 처벌된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이 고전적 형태의 자본 축적에 관한 해석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의 진화로 자본의 축적은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노동자의 착취도 세련되게 바뀌었다. 여기에 노동자도 인간으로의 욕망을 가진 존재라서 이기심, 경쟁 같은 자본주의의 특성에 쉽게 빠지게 된다.

괴물이 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의 통제와 제도적 장치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자본(가)의 범법 행위를 미리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자본가가 범죄를 저지르면 강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드는 등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지만, 그런 일을 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자본이 매수하는 방식으로 길들여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사법부까지 매수하면서 자본은 모든 권력을 길들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은 자본가다. 그들은 막강한 자본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는 다수지만 가진 것은 오직 '머릿수'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가와 힘겨루기를 하지만, 사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하며,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을 통해 끝장난다는 것이 고전적 혁명이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존재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동등한 존재임에도 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인류의 역사가 불평등과 차별의 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 보편의 평등과 인권이 확대되고, 부의 집중과 편향도 줄어들어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과 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위험한 공장에 취업하고, 파견노동자가 된다. 공장은 하청, 재하청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생산단가가 깎이고, 영세공장의 자본가는 최소한의 임금에서 이윤을 남기려고 독극물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쓰게 된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돕는 단체의 일꾼들 역시 열악한 처지에 있지만, 이들은 한결 같이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와 함께 한다. 올바른 국가라면 이들 일꾼들이 하는 일은 모두 정부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최저 임금 이하의 '생존비'를 받으며 일하면서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만 기대야 하는 걸까.


한국 그래픽노블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놓치지 않고 천착한다는 점에서, 김성희, 박수박 작가를 비롯한 그래픽노블 작가들의 성과가 놀랍고, 대단하다. 다른 장르보다 그래픽노블이 갖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화 장르가 기존의 '오락물'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깊이 있고 진지한 장르일 수 있다는 걸 그래픽노블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만화는 현실을 조금 떨어져서 보는 효과가 있다. 소설은 상상을 통해,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리얼리즘을 구축한다. 만화는 단순화한 선으로 사물을 표현하기에 실제 현실 세계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비현실성은 독자가 작품 속 세계와 현재(실제 세계)의 중간에서 작품과 현실을 오가며 비교, 판단할 수 있는 거리를 두게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금, 현재 일어난 사건이지만 마치 1970년대, 1980년대 일어난 사건처럼 보인다. 그만큼 비정상적 사건이라는 뜻이다. 내용에도 나오지만, 후진국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미개한 수준의 사건이라는 뜻인데, 자본가와 관리자들이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본의 기본 조차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원인은 오로지 '단가'를 맞추기 위한 것이며, '단가'를 맞춘다는 것은 영세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비현실적 사건과 상황을 표현하는 김성희 작가의 그림은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단순한 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듯 보이는 그림은 오히려 실사화보다 작품의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 장면에서는 디테일이 살아난다. 67쪽과 89쪽에 등장하는 박근혜의 그림은 다르다. 같은 인물을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하게 그리거나, 만화화 해서 표현하는 것은 작가가 그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픈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노블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기능도 있다. 이 작품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 전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김성희, 김수박 작가는 밀도 있는 취재를 통해 사건의 시작, 피해 노동자 개인의 삶, 노동자를 돕는 단체와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영세기업과 대기업의 태도 등 이 사건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린 학생들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수업 재료로도 훌륭한 교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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