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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으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 작가지만, 참으로 부럽고, 대단한 작가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에도시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떠돌다 정착한다. 사무라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진검이 아닌 대나무검. 진검이자 보검인 쿠니후사는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의 살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노릇을 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세노 소이치로는 잠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연쇄 살인이 발생하면서 도읍은 긴장감이 흐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한국에 번역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반드시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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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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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와 만화
- 부조리와 만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 [괴물들] 예술은 현실의 부조리를 어떻게 표현하며, 어느 수준까지 담아낼 수 있고, 얼마나 강력하게 발언할 수 있을까. 수 많은 예술가들이 당대의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고, 작품을 통해 발언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 같은 작품은 작가의 신념과 작품의 사실성이 직접 드러난 경우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1980년 한국에서 크게 일어났던 '민중문학', '민중미술', '민중음악'이 같은 사례에 든다. 이 시기-19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참여 예술은 문학, 미술, 음악 등 전방위에 걸쳐 펼쳐졌으며 그때만 해도 '민중만화'라는 규정은 없었으나 만화의 형태로 현실을 반영, 고발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어느 사회든 정치적 억압이 강한 독재 정권일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같은 크기로 일어난다. 1970년대 칠레에서 군부독재가 철권 통치를 하면서 수많은 학생, 노동자, 지식인을 살해할 때,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던 빅토르 하라는 군부독재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학생, 청년, 노동자, 지식인들이 감옥으로 끌려가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투쟁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때 예술가들이 쓰고, 그리고, 불렀던 예술 작품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진전하면서 점차 '독재 시기의 특성'으로 남게 되었고, 오늘날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예술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1970년대, 1980년대에 활약했던 민중 예술가들의 작품을 1세대라고 한다면, 90년대를 지나 현재의 예술가들은 2세대, 3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제3세계'로 불리던 나라들은 대개 비슷한 민주주의 경로를 걷고 있는데, 군부독재의 출현과 몰락 역시 비슷하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의 부조리는 민주주의의 직접적 파괴-쿠데타, 독재-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하고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왜곡된 정치와 '신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로 불리는 자본주의의 첨단 기법이 국민을 얼마나 심하게 착취하고 있는지, 부의 극단적 편중과 빈익빈 부익부의 편차로 인한 사회 갈등, 민족과 인종, 종교가 달라서 오는 갈등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볼 때, 만화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작가가 '조 사코'와 ‘박건웅’이다.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근현대사의 비극, 가해자의 논리로 위장되어 있는 진실을 탐구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만화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 박건웅 작가는 일관성 있는 작품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 속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다. '괴물'은 박건웅 작가의 신작이다. 그가 오랜 시간 그렸던 단편을 모았다.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외국의 작가들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높다. 그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데, 한국현대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격동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격렬한 과정을 겪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대개 70년대, 80년대에 태어나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있었으며,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부패, 권력자의 오만과 폭력을 눈으로 보며 자랐다. 여기에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사회에 나와 시민운동을 경험하면서 정치의식이 발달하고, 민주주의 학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작가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작가의 경험은 작품세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특히 그래픽노블이 갖는 장르적 특성은 작가의 자기 서사가 강하고 깊다는 데 있는데, 박건웅을 비롯해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한국현대사와 자기 서사를 일치하는 경향이 많다. 이건 퍽 우연이지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노블 작가는 강하고 깊은 자기 서사와 함께 개성 있는 그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자나 기호보다는 이미지가 그래픽노블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가 핵심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건웅 작가의 그림은 다른 그래픽노블 작가들과 분명한 변별을 보여준다. 강렬한 흑백의 이미지와 판화 같은 날카로운 선이 있는가 하면, '바람이 불 때'처럼 무채색 유화의 분위기가 나는 그림도 있다. 전체적으로 흑백의 강렬함 속에서 날카로운 풍자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의 형식이 완벽하게 결합한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박건웅 작가가 소재로 삼는 작품들 가운데는 읽기 불편하고, 힘든 작품이 꽤 많다. 이건 물론 작가의 책임이 아니라, 한국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참혹하고, 잔악하며, 끔찍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 작가는 그런 역사의 비극을 이미지로 그려야 하므로, 독자보다 오히려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보는데, 그래서 독자는 박건웅의 작품을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작품 '문신'은 단편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고통스럽다. 한 칸, 한 칸의 이미지가 마치 칼날처럼 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일본군이 조선의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은 인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범죄였다. 이런 내용을 심각한 논문이 아닌, 그래픽노블로 본다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작품집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작품과 관련해 그린 것과, 당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 보면서 만든 작품을 모았다. 단편이지만, 마치 연작처럼 작품의 내용과 수준이 일관되고,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만화비평지 [지금, 만화] 12호에 실린 저의 만화비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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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 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팔로우하고 있는 '재수의 연습장' 작가가 어제 올린 그림을 보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잊어버렸다. 오늘 보니, 이 그림을 두고 엄청난 반응이 쏟아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 그림 아래 달린 댓글과 오늘 작가가 다시 올린 해명과 그 글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가능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을 해봤다. 어디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 두 컷으로 나뉜 그림은 대사가 없는 윗 그림과 대사가 있는 아래 그림으로 나뉜다. 상황은 딱 한 가지가 달라졌다. 윗 그림에서 작가 부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이 아래 그림에서 얼굴과 상반신이 약간 돌아간 상태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마스크를 한 채 뛰고 있다. 이들이 이미 한참 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근거는, 아래 그림에서 독자의 방향으로 가까이 다가온 여성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숨이 내뱉고 있음을 보여주는 입김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반팔 티셔츠에 바지는 어두운 계열의 운동복을 입었는데, 이 하의가 요즘 여성들이 많이 입는 '레깅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복이 편해야 하므로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를 입는 것이 상식으로는 맞다. 따라서 여기서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이 입은 옷, 특히 하의는 어느 정도 몸에 붙는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라고 전제하자. 아래 그림에서 대사를 하는 사람은 작가 부부다. 행위(몸을 움직이고 시선이 바뀌는 행위)는 중년 남성(개저씨 또는 할저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단어의 선택은 명백히 의도된 것으로, 혐오를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남성들이 된장녀, 김치녀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이 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한 것은 작가 부부다. 이때, 우리는 주체와 객체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제3의 주체에 관해 각자의 입장과 주장을 해석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달리기를 하는 두 명의 여성이다. 달리기를 하는 여성은 주위 사람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거나, 알고 있어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젊은 여성이고, 몸의 굴곡이 보이는 옷을 입었기 때문에 뭇남성의 시선을 받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는 것도 오늘 처음이 아닐 것이고, 이미 한국에서 젊은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물적,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매초, 매순간마다 그것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큰틀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분명 사회적 문제라는 명제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 순간, 두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서 작가 앞을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두 여성은 앞에서 다가오는 중년 남성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그 남성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그 남성 뒤에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우산을 쓰고 따라오고 있어서 신변에 위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은 자연스럽게 중년 남성과 작가 부부의 옆을 달리면서 지나간다. 이때 작가 부부 앞에 있던 중년 남성의 시선이 달리던 두 여성을 향해 움직인다. 중년 남성은 '객체'다. 즉, '주체'가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고, 본래의 의지 - 여기서는 앞으로 쭉 걸어가는 것이 중년 남성의 본래 의지다 - 와는 상관 없는 행동을 하게 되므로, 중년 남성은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반응하는 '객체'로써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스트루프 효과'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1)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의도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2) 무의식적이고 수동적이며 의도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있는데, 이것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려는 작용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 중년 남성은 왜 '스트루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여성(남성)을 바라보면 자동으로 시선이 돌아가는 이유와 원리는 무엇인가? 단순히 남성(여성)들이 여성(남성)을 '성적 대상화'하기 때문일까?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분석을 하기 전에 먼저, 아래 그림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중년 남성은 달리기를 하는 두 여성을 따라가며 보고 있다. 이 남성의 시선으로 보자면, 저기 앞쪽에서 두 여성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 때부터 줄곧 두 여성을 보고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20미터 앞쪽에서부터는 여성들의 몸매가 보이기 시작할테니 적어도 중년 남성이 고개를 돌리기 몇 초 전부터 여성들을 보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후 두 여성이 중년 남성의 곁을 지나쳐 갈 때 중년 남성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여성을 쫓아갔고, 그래서 고개가 돌아간 것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이해할 것이다. 이제 중년 남성의 '행위'를 두고 해석 가능한 주장을 펼쳐보면 아래와 같다. 1.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남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년 남성을 비난하는 사람은 1번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고, 단지 시선이 머물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거나 혐오하는 것 자체가 남성혐오, 세대혐오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번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자리에 상반되는 인물을 놓아봄으로써 우선 '상식'의 선에서 이 문제의 반대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 즉, 명제를 아래처럼 바꿔보면 이렇다. 1. 중년 여성이 젊은 남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폭력이며 '성추행'이다. 2. 중년 여성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앞에서 1번에 동의한 사람이라면 이 명제에서도 당연히 1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2번에 동의한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2번에 동의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자. 1.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2. 정우성이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20대 여성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위의 명제에서 중년 여성과 20대 여성은 정우성을 '시선강간'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며 '성추행'을 한 것인가?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중년 남성의 시선을 '시선강간' 또는 '성추행'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체'나 '객체'가 아닌 '제3의 주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순간, '주체'와 '객체'는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낙인 찍힌다.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을 보면, '객체'의 행위만으로 '객체'의 존재를 비난한다. 근거는 오직 '객체'의 시선이 움직이는 '행위'뿐이다. 과연 '제3의 주체'는 '객체'의 행위만으로 그를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객체'가 동성애자라면? '객체'가 지나가는 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3의 주체'가 발화한 내용은 전적으로 '제3의 주체'의 심리적 반응이고, 그것은 그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중년 남성' 일반 또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중년 남성'에 대한 적대적 고정 관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3의 주체' 가운데 남성은 이 그림의 작가로 보여지는데, 아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동조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재하고 있는데, 1)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는 것과 2) 아내의 발화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내의 말을 존중하기 때문에 동의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작가(남성이다)는 아내의 발화 내용 또는 아내의 일방적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므로 왜곡된 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있거나, 왜곡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아내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비주체적 인물이다. 이제 '스트루프 효과'의 진화심리학적 내용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는 '중년 남성'이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상황으로 특정되어 있지만,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은 곧잘 고개를 옆으로 돌려 - 각도의 차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5도, 10도, 15도...180도까지 -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시선을 '시선강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달리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내 딸하고 나이가 비슷한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마스크를 하고 달리려면 숨쉬기가 힘들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선강간'이라는 단어도 극렬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만든 용어로, 남성들의 시선이 불쾌함을 넘어 '눈으로 하는 강간'이라는 매우 폭력적 표현으로 '남성 시선'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 '시선강간'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정도의 지속성(시간), 표현(특정 부위, 위, 아래로 훑는 듯한 시선)인가에 따라 '시선희롱', '시선추행', '시선강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여성이 남성을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사람(특히 남성)이 사람(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심리적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 남성은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고, 2) 성적인 독점욕을 가지고 있으며, 3) 젊고 건강한 이성을 선택하려 하고, 4)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로 규정할 수 있다.[D. 시먼스, <섹슈얼리티의 진화>] 남성은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독점하고 싶어하는 경향'과 함께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욕구도 있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근거로 아래 그림의 '객체'인 중년 남성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리 상태나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분명한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단지 고개를 돌려 달리는 여성들을 바라본 행위만으로 잠재적 또는 실질적 성범죄 가해자로 예단하는 '제3의 주체'의 발화 내용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내용-진화심리학 이론-을 아래 그림의 '중년 남성'이 알고 있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개가 돌아갔을 수 있다. 그렇게 '180도' 고개를 꺾어 뛰어가는 여성을 보는 남성이 반드시 그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보통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가서 바라본 대상은 그만큼 빨리 잊혀지기 때문인데, 우리가 보통 '성적 대상화'라고 할 때,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라고 말하는 건 명백한 왜곡이고 비틀린 주장이다. 누군가가 '성적 대상'이 되려면 시선을 포함한 물리적 접촉과 함께 '성적 행위'의 매개 또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진화심리학의 4)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가 곧 모든 것이 '성', '섹스'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단계에서 남성은 주로 수렵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이 오늘날,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1), 2), 3)의 내용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래 두 컷 만화에서 '제3의 주체'가 발화하는 내용은 앞의 맥락이 삭제되어 있고, '객체'인 중년 남성의 의도가 배제되어 있으며, '제3의 주체'가 가진 명백한 확증편향과 선입견, 예단 그리고 중년 남성에 대한 편견으로 혐오 발언을 하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직 '시선강간' 한 가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는 만큼이나 못 생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간과 기회도 많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즉, 남성은 꼭 아름다운 여성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못 생긴 여성도 여성이니까 '성적 대상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건 그냥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짐작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것은 '시선강간'을 하려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극히, 매우 극히 드물게 그런 변태 남성도 있겠지만, 대부분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고 곧바로 자기가 갈 길을 가며, 자기가 바라본 여성에 대해서도 곧바로 잊는다. 그런 점에서 아래의 두 컷 만화는 특히 '중년 남성'의 시선으로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시선강간'이고 '성추행'이라는 뉘앙스로 남성 혐오 발언을 하고 있고, 이것은 명백하게 '제3의 주체'가 주관적 판단 오류 내지는 악의적 왜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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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비평으로 보는 두 컷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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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 제목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작가 : 조 사코 출판 : 글논그림밭 만화책이지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이 만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정면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는 중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 무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과 우리의 접점이 약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 심하게 미국과 유럽 쪽 역사에 편향된 교육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동 뿐이랴. 아프리카의 역사는 어떤가. 우리가 수단이나 나미비아, 탄자니아 같은 나라들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강자의 역사, 승리한 자의 기록, 편향과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일 뿐임을 새삼 깨닫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역사를 말할 때도 우리는 미국의 '백인'들이 기록한 역사를 읽고, 판단한다. 미국인-주로 백인-들이 가장 충격적인 책으로 꼽는 것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인데, 미국인의 주류인 백인들도 '미국민중사'에서 말하는 역사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그렇듯, 어느 나라의 역사든 기록은 왜곡되고, 편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는 어떤가. 심지어 자기나라의 역사조차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려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사라니. 결국 이런 역사 공부를 하려면 혼자 책을 찾아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기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는 '역사'를 올바르게 공부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거나 배우지 않거나, 잘못 배우면, 그 위에 쌓는 지식은 모두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 만화책에서 작가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억에서 멀어진 1956년의 학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든다.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사람, 남자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 놓고,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인데, 이런 처참한 학살 행위가 UN보고서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1947년 이후 오늘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나라들도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돕지 못하거나, 않는 이유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즉,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집권층이 존재하는 나라는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고, '반미, 반유럽'을 외치는 나라들은 미국에 의해 '테러국가'로 낙인 찍히고 미군의 침략에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운명을 갖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는 추상적이지만, 이렇게 개인의 운명을 다루는 미시적 역사 기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떨까.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떨까. 저항하다 죽는 것과 굴종으로 살아가는 것, 오로지 그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당신은. 조 사코는 '코믹 저널리스트'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다. 만화(그래픽노블)라는 형식에 시사(국제문제, 정치, 경제, 인종, 분쟁 등)를 담아 기록한 것으로, 기존의 글로만 기록했던 저널리즘의 지평을 확대하고, 대중에게 하나의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역시 '가자 지구'에서 1956년 11월 12일에 발생한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시점과 과거 상황을 오가며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형식은 만화지만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도 될 만큼 형식미도 뛰어나다. 작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어렵게 만난 학살생존자 또는 그의 가족, 친척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를 재현한다. 1956년 11월 12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지만,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은 간단치 않다. 이 시점(1956년)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이스라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들어와 점령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유대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은 2차 세계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가운데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가 유대인을 적극 지지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을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유대인들에게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한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 1948년이고, 이때부터 중동 지역에 분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중동의 대부분 국가는 이슬람을 종교로 갖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종교인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어서 종교적 갈등과 함께 영토 분쟁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집트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슬람 패권주의, 이집트와 영국, 프랑스, 미국 사이에 벌어진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 이집트 내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정치적 긴장, 범 이슬람 진영과 범 친미 진영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양상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에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고, 여기에 이스라엘은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업고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전쟁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자신들이 살던 땅을 유대인들에게 뺐긴 것도 억울한데, 이집트와 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군에 쫓겨 어쩔 수 없이 가자 지구로 들어온 사람들은 허허벌판에서 움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마치 한국에서 남북한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땅에서 거지처럼 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은 자신의 집, 재산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맨손으로 가자 지구로 들어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마져도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통제, 예측할 수 없는 학살로 인한 공포 속에서 늘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극우파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주변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보다는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56년 10월 29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고, 11월 2일 가자 지구를 침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 남성들을 밖으로 끌어내 아무 이유 없이 집단 학살을 시작했고, 학살당한 사람은 최소 수백 명에 이른다. 생존자의 증언, 생존자 가족, 친지, 이웃의 증언, 학살당한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의 증언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한다. 조 사코는 팔레스타인인 아베드와 함께 다니며 50여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그때의 생존자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을 최대한 면밀히 기록한다. 그가 조사와 취재를 위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있을 때도 역시 이스라엘군에 의한 침탈과 학살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0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한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 1,417명이 죽었는데, 이 가운데 352명은 어린이였다. 5,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미쳐날뛰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니고,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함에도, 이스라엘은 폭력으로 이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유대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을 고려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저 미치광이의 태도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1956년에 일어난 가자 지구 학살 사건만 해도, 유대인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히틀러에게 당한 집단학살의 트라우마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도, 유대인들은 독일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만큼이나 악랄한 집단 학살을 저지른다. 대체 왜? 분쟁의 불씨를 만든 것은 미국과 영국이었고,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닌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물리적 형태의 '국가'가 절실했다. 결국 피해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었고, 멀쩡한 자기 집을 어느 날 갑자기 뺐기고, 자기 집에서 쫓겨난 황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8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이 점령지를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거주지는 극적으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948년에 비하면 1/1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영역에서, 그것도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태로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강제된 분단의 처지에 놓여 있고, 가자 지구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곳은 이스라엘군이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어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이 지금 서울 면적에 한국인 5천만 명을 집어 넣고, 서울 외곽 경계에 높은 담장을 두르고, 서울에서 나가거나 들어올 때마다 검문, 검색을 하며, 아무런 통지 없이 출입문을 닫아 걸고 몇날 며칠을 통행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필품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는 엄청나게 높고, 경제 활동이랄 것도 없어서 거의 대부분이 실업자가 되고,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빈곤층이 90%에 이르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거의 원시상태에 가까운 삶이라면, 폭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본군과 싸우고, 자살폭탄테러를 하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놓여 있는 현재의 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사회 즉 제국주의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몸부림을 '테러'로 규정한다. 그리고는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분쟁'을 하고, 전쟁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다. 현실은 이스라엘의 일방적 폭행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무수히 죽어나가고 있으며, 지난 60년 동안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왜곡,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유대 민족처럼 '국가'가 없고,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민족이어서 지금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해자 이스라엘의 악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팔레스타인 현실은 실재하는 지옥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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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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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 제목 : 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작가 : 김홍모 출판 : 창비 7년,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걸까. 정부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의 사실을 밝히라는 시민의 비통한 목소리를 폭력으로 탄압하고, 언론과 정치권 역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시민들(일부를 제외하고)이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 유가족을 끌어안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오로 7년을 버텼다. 무능하고 천박하며, 악랄하고 야비한 박근혜 정부를 촛불로 끌어내린 시민은 문재인 정부를 세우고, 국회의석도 민주당에 180석을 밀어주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집권하고 무려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명백히 촛불시민에 대한 배신이며, 역사의 정의를 거스르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생존자 김동수 씨와 그의 가족, 다른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서 완성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세월호 참사 관련 영상과 자료를 거의 모두 찾아봤으며, 시나리오를 완성할 때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세월호 참사 이후 그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참사는 기억하되 참사의 디테일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희생자의 얼굴을 바라보면, 나 역시 그 깊은 고통과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알리려고 스스로 그 고통과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와 사실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이며 많은 시민에게 희망을 주는 행동이다. 1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학생과 시민을 구한 '민용'의 증언을 토대로 한 내용. 민용은 세월호에 트럭을 싣고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는 트럭기사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남아 학생과 시민을 구한 의인이다.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민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민용은 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민용에게 세상은 단순하다. 거짓말 하는 것은 나쁘고, 어려움에 놓여 있는 사람은 도와주어야 하며, 특히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최선을 다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며, 대통령과 장관, 공무원은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대통령을 비롯해 공무원, 경찰, 언론 등 정부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서 거짓말과 회유, 협박을 하며 민용을 압박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그는 정부의 존재가 거대한 악마의 모습 그 자체였다. 2부 민용의 딸 안나는 고등학생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오던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2학년이었고, 그 학생들을 구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아버지 민용을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자책과 트라우마로 우을증을 앓고, 자해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안나는 친구들과 함께 '세월호 기억 플래시몹'을 준비한다. 안나와 친구들은 고3으로 수험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의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제주신성여고, 제주여고, 중앙여고, 제주일고, 대기고 학생들과 연합해 플래시몹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대학에 진학한 안나는 언니 나연과 같은 '응급구조학과'를 전공한다. 언니 나연이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안나가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세월호에서 많은 학생, 시민의 목숨을 구한 것이 안나는 많이 자랑스럽다. 3부 세월호 생존자 민용과 그의 가족, 아내와 두 딸(나연, 안나)은 민용을 지켜보며 함께 괴로워한다. 민용은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 번의 자해를 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안전하게 구하라는 말을 하지만, 정부와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민용을 비난한다. 희생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의 삶도 세월호 참사 당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의 사실을 밝히고,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치료가 절실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그들을 '빨갱이' 취급했으며, 패륜집단인 '일베'는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를 모욕하고 조롱하는데도 정부는 그걸 방관하고, 심지어 조장했다. 그것이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이런 패륜집단과 악랄한 반인륜 발언을 하는 자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의 역사에서 그 전과 이후를 가를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이 완전하게 사실이 드러나고, 원인을 제공한 자들, 가해자들이 모두 처벌받고,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이 납득할 만한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않는 한, 절대 끝날 수 없는, 끝나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김홍모 작가의 '홀'이 나온 것이 세월호 참사의 사실을 밝히는 데 작은 밑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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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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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들
- 제목 : 문밖의 사람들 작가 : 김성희, 김수박 출판 : 보리 1988년 무렵에 나는 구로공단에 있는 영세한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삼미금속'이라는 회사였는데, 도금 공장이었다. 일당을 많이 벌려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고, 군대 입대 전에는 3년 정도 배관공으로 일을 한 경력도 있어서 나는 공사현장이나 매형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노동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는 중동 건설 붐이 일고 있었고, 몇 년만 다녀오면 집을 한 채 마련할 수 있을 정도여서 인기가 높았다. 나는 그런 기회를 잡았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중동에 가지 못했다. 구로공단의 영세한 공장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내 밥벌이도 있었지만, 그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알게 된 독서회는 번성했고, 내가 살던 지역에 새로운 독서회가 생기면서, 그곳에서 선배,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 가운데 극소수가 따로 '스터디'를 했는데, 사회과학 공부였다. 나는 정규 학교를 다닌 것이 국민학교가 전부였으므로 이때만큼 열심히, 깊이 있게 공부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지만, 선배들은 대학보다는 현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니었으므로 '위장취업'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노동자였고, 이미 몇몇 공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조립하는 공장, 텔레비전 케이스에 필름을 씌우는 공장 등을 거치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와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이 제1회 전태일문학상에 당선되었고, 나는 '노동자 작가'가 되었다. 그래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고, 올림픽이 열린다는 그 해에도 도금 공장에 다니며, 삶은 어둡고 무거웠다.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노동자의 의식은 낮았고, 회사의 감시는 심했다. 도금공장에는 황산, 염산 원액과 시안화나트륨(청산가리),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심지어 시안화나트륨은 작은 흰색 덩어리인데, 드럼통으로 가득 우리들이 옷을 갈아 입는 탈의식에 놓여 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청산가리를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염산, 황산, 시안화나트륨, 시안화칼륨 등 독극물을 취급하면서도 우리는 고무장화와 고무장갑만 끼었을 뿐, 보호안경도 없었다. 그 용액이 눈에 튀어 들어가면 물로 씻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렇게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노동자들은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쉬는 날 등산도 하고, 가끔 야근을 하지 않을 때는 저녁도 먹으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슬쩍 떠봤지만, 그들도 이 공장에서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영세한 공장에서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가 지금, 경제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파견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노동자 등으로 더 잘게 쪼개져 차별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정치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정부로 진보했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수출이 세계 10위권이고, 국민총생산, 국가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 등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노동자의 소득도 증가하고, 절대 빈곤에서는 벗어났으며, 개인의 절대적 삶의 환경도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이 성장하고,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가져가는 부의 크기에 비하면, 노동자들의 몫은 상대적으로 더 작아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즉, 사회의 부가 커지면 거의 대부분을 소수의 자본가와 부르주아가 차지하고, 다수의 노동자는 아주 적은 몫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이것을 서양 자본주의에서는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은 특히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빈부의 격차는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이 깊어졌다. 정규직, 비정규직, 하청, 파견 노동자 등으로 세분화한 것도 외환 위기 이후부터였다. 이렇게 노동자의 고용 환경이 나빠지면서 노동자의 삶은 더 불안정하고, 임금 격차는 커지게 되었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본능이고,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노동자의 죽음을 하찮게 여긴다. 이 작품에서 메탄올 독성으로 실명하게 된 여섯 명의 청년 노동자들도 자본의 이윤 추구에 소모품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민주주의로 발전하면서 인권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인권의 확대로 인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각종 차별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으며, 노동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주5일 노동, 최저임금제 등 노동자의 권익이 향상되는 것도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서양의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보다 노동자의 처지가 매우 열악하고, 자본의 착취가 악랄한 현실이다. 자본가의 범죄는 가볍게 처벌되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파업은 무겁게 처벌된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이 고전적 형태의 자본 축적에 관한 해석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의 진화로 자본의 축적은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노동자의 착취도 세련되게 바뀌었다. 여기에 노동자도 인간으로의 욕망을 가진 존재라서 이기심, 경쟁 같은 자본주의의 특성에 쉽게 빠지게 된다. 괴물이 된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건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의 통제와 제도적 장치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자본(가)의 범법 행위를 미리 감시하는 구조를 만들고, 자본가가 범죄를 저지르면 강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드는 등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지만, 그런 일을 하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자본이 매수하는 방식으로 길들여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사법부까지 매수하면서 자본은 모든 권력을 길들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도록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은 자본가다. 그들은 막강한 자본으로 국가를 장악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노동자는 다수지만 가진 것은 오직 '머릿수'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본가와 힘겨루기를 하지만, 사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전진기지 역할을 해야 하며,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을 통해 끝장난다는 것이 고전적 혁명이론이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존재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동등한 존재임에도 노동자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인류의 역사가 불평등과 차별의 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 보편의 평등과 인권이 확대되고, 부의 집중과 편향도 줄어들어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과 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위험한 공장에 취업하고, 파견노동자가 된다. 공장은 하청, 재하청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생산단가가 깎이고, 영세공장의 자본가는 최소한의 임금에서 이윤을 남기려고 독극물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쓰게 된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을 돕는 단체의 일꾼들 역시 열악한 처지에 있지만, 이들은 한결 같이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와 함께 한다. 올바른 국가라면 이들 일꾼들이 하는 일은 모두 정부의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최저 임금 이하의 '생존비'를 받으며 일하면서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에게만 기대야 하는 걸까. 한국 그래픽노블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놓치지 않고 천착한다는 점에서, 김성희, 박수박 작가를 비롯한 그래픽노블 작가들의 성과가 놀랍고, 대단하다. 다른 장르보다 그래픽노블이 갖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화 장르가 기존의 '오락물'이라는 선입견을 떨치고, 깊이 있고 진지한 장르일 수 있다는 걸 그래픽노블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만화는 현실을 조금 떨어져서 보는 효과가 있다. 소설은 상상을 통해,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리얼리즘을 구축한다. 만화는 단순화한 선으로 사물을 표현하기에 실제 현실 세계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비현실성은 독자가 작품 속 세계와 현재(실제 세계)의 중간에서 작품과 현실을 오가며 비교, 판단할 수 있는 거리를 두게 만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금, 현재 일어난 사건이지만 마치 1970년대, 1980년대 일어난 사건처럼 보인다. 그만큼 비정상적 사건이라는 뜻이다. 내용에도 나오지만, 후진국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미개한 수준의 사건이라는 뜻인데, 자본가와 관리자들이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본의 기본 조차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고, 그 원인은 오로지 '단가'를 맞추기 위한 것이며, '단가'를 맞춘다는 것은 영세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비현실적 사건과 상황을 표현하는 김성희 작가의 그림은 디테일이 많이 생략된 단순한 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듯 보이는 그림은 오히려 실사화보다 작품의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 장면에서는 디테일이 살아난다. 67쪽과 89쪽에 등장하는 박근혜의 그림은 다르다. 같은 인물을 실제 인물과 매우 비슷하게 그리거나, 만화화 해서 표현하는 것은 작가가 그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픈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노블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기능도 있다. 이 작품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실제 내용 전체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김성희, 김수박 작가는 밀도 있는 취재를 통해 사건의 시작, 피해 노동자 개인의 삶, 노동자를 돕는 단체와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영세기업과 대기업의 태도 등 이 사건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린 학생들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수업 재료로도 훌륭한 교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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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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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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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자
- 제목 : 레드 로자 작가 : 케이트 에반스 출판 : 산처럼 80년대,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몰랐다. 시간이 지나서 '레닌보다 뛰어난 이론가'였던 로자의 평전을 읽었다. 로자의 비범함은 물론이지만, 당시 유명한 사회주의자들의 비겁한 태도를 보면서, 유럽에서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로자가 살던 시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로자는 1871년, 폴란드의 도시 자모시치에서 태어났다. 이 도시는 폴라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국경 쪽으로 붙은 도시였고, 유대인들이 전체 주민의 약 30%를 차지할 만큼 많았다. 현재의 자모시치 구 시가지는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자모시치 시는 폴란드의 귀족이었던 얀 자모이스키가 16세기에 세운 도시로, 서유럽과 북유럽을 연결하는 무역로에 세운 도시다. 도시 설계는 이탈리아 건축가 베르난도 모란도가 했으며,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양식을 적용한 아름다운 도시로 이름이 있다. 로자는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부모는 자유롭고 진보적인 성향이어서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폴라드인'의 정체성을 갖도록 자식을 키웠으며,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식들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였다. 그런 부모에게서 막내로 태어난 로자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다. 하지만 다섯 살 무렵, 그는 한쪽 다리가 뒤틀리며 키도 자라지 않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았다. 로자는 여성, 장애인, 유대인이라는 여러 겹의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그의 지성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에 자기의 사상을 널리 알릴 만큼 뛰어났다. 로자가 세 살되는 해, 1873년에 로자의 가족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이주한다. 바르샤바 역시 유대인 인구가 전체의 약 30%에 이를 정도로 많았고, 로자는 중산층 집안에서 자유롭게 성장했다. 로자가 성장하던 바르샤바는 폴란드, 독일,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뒤섞인 복합적인 도시였으며, 유대인 공동체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자의 부모는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특정한 종교나 정파에 소속하지 않은, 진보적 시민으로 살아갔다. 이런 환경에서 로자는 폴란드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까지 네 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 이런 재능은 로자의 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육체적 장애로 인한 제한된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로자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우연의 일치지만,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도 1871년, 로자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그는 천식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을 평생 앓았다. 마르셀도 육제적 장애를 지닌 채 글을 쓰기 시작했고,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겼다. 재능 있는 사람은 스스로 빛을 낸다. 비록 육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해도, 지성까지 장애를 갖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들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로자는 불과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독일어로 쓴 시와 산문들을 번역하고, 자신의 글을 써서 바르샤바에서 발행하는 어린이 잡지에 실린다. 1881년 3월 1일, 러시에서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인민의 의지파' 단원들에게 암살당한다. 이들 무정부주의자들 가운데 폴란드인 '이그나치 리니에비에드츠키'가 있었다.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 있었던 폴란드인들은 속으로 환호했지만,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암살단원 가운데는 러시아 여성 '소피아 페로프스카야'도 있었고, 그녀는 이 그룹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재판을 통해 이들은 모두 사형당하고, 로자는 그들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 들으면서, 여성 혁명가의 삶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로자가 중학생이던 1883년 무렵, 처음으로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시기에도 '프롤레타리아 당'에서 활동하던 혁명가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특히 여성 혁명가의 체포와 죽음은 로자에게 특별한 충격을 주었다. 1885년에 '프롤레타리아 당' 당원이자 혁명가인 여성 두명, 19살의 마리아 보후스제비치와 로살리아 펠센하르트가 경찰에 체포되어 죽고, 188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당' 지도부 네 명이 바르샤바 성채에서 교수형을 당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로자는 자신도 뭔가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15살 무렵 '프롤레타리아 당'에 가입한다. 로자가 '혁명가'의 삶을 선택한 것은 시대적 소명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인으로 러시아 제국에 압제를 당하는 조국의 현실, 수많은 진보 지식인, 학생들의 반제국 투쟁, 로자가 다니는 학교에서 겪었던 차별, 여성의 사회적 제약,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의 고통 등 여러 겹의 구조적 모순이 로자를 내리 눌렀고, 로자는 그런 차별과 억압에 정면으로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6살의 로자는 이미 차르 경찰의 '요시찰 대상'이 되었으며, 그는 이때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적을 읽기 시작했다. 비밀 조직이었던 '프롤레타리아 당'과 나중에 결성한 '폴란드 노동자 연맹' 등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지고, 1888년, 17살이 된 로자는 여권을 만들어 스위스로 탈출한다. 불과 5년 전,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사망했다. 로자는 취리히대학 철학과에 등록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수강한다. 마르크스의 저작은 물론,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해 수학, 생물학 등 과학 분야의 지식을 쌓아간다. 사회주의자가 가져야 할 덕목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분야가 바로 '과학'이다. 과학과 철학은 철저하게 이성적 활동이며, 과학은 특히 객관적 근거가 증명되어야 하는 엄격한 분야여서 논리와 분석, 구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자, 사회주의자라면 반드시 배워야 할 학문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에는 이미 정착한 선배 혁명가들이 많았고, 그는 폴란드 혁명가들은 물론, 러시아, 독일의 유명한 혁명가들의 흔적을 찾았고, 그들을 만나 교류했다. 그는 1893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제3차 대회'에서 발언하며 선배, 동료 혁명가들로부터 진짜 혁명가로 인정받는다. 1898년, 독일사회민주당에 가입했고,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바르샤바로 가서 혁명에 동참했다. 이때부터 로자의 고난이 시작된다. 러시아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혔으며, 1911년에는 인터내셔널 사회주의국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1915년에는 다시 독일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된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경찰의 감시를 받는 '보호관찰' 대상자였음에도 급진 좌파 단체인 '스파르타쿠스'의 지도부로 참여하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레닌의 지도로 성공하면서 1918년에는 독일공산당 창립 총회에서 연설하고, 1919년, 운명의 그해에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배후로 체포되어 학살당한다. 혁명의 시기,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깃발을 내걸고 투쟁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당대를 가장 앞서 가는 지성인들이었다. 다수의 민중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목숨을 걸로 투쟁했으며, 그들이 살았던 당대는 제국주의 폭력이 세상을 망치고 있었다. 진보적 지성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당연히 반제국주의였으며, 사회주의 이론은 그들의 무기였다. 로자는 독일 야경단에 잡혀 살해당하기 전까지 네 권의 책을 썼다. '자본의 축적'은 1913년에 쓴 저작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설명하고 있는 자본의 축적 과정을 자본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러시아 혁명' 등의 저작을 남긴 로자는 유대인, 여성, 장애인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난 사회주의자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그가 가진 불리함 때문에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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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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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기
- 제목 : 악마의 일기 작가 : 박건웅 출판 : 우리나비 잠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어제는 막 도착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몇 페이지만 읽으려다 그만 다 읽고 말았다. 80년대 중반 그러니까 20대 중반에 선배들과 사회과학 공부를 할 때 정치, 경제, 철학, 역사를 집중해서 공부했는데, 한국근현대사도 그때 기본을 배웠다. 한국 역사-통사-를 처음 배울 때, '민중사'의 관점으로 배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지배자의 관점으로 쓴 역사이거나, 친일 역사의 관점으로 쓴 역사를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정치와 뗄 수 없으며, 정치는 경제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는 걸 바탕에 깔고 공부해야 한다. 특히 한국 근현대사-1984년 동학혁명부터 1987년 노동자대투쟁까지-를 올바르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결코 일베충이나 친일매국노가 될 수 없다. 지금 일베충과 친일매국노, 민족반역자들이 날뛰는 건, 그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학교 교육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학교 교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 건 영어, 수학 따위가 아니라 역사여야 한다. 일제강점기 시기 친일매국노의 범죄와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항쟁, 해방 이후 이승만 도당의 독재와 만행을 가르치지 않았기에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가진 일베충과 매국노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은 아직도 전체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이승만 정권의 최대 학살 사건이자 한국현대사에게 가장 비극적인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에 벌어졌지만, 이 학살 사건과 한줄로 연결되는 또 다른 학살 사건인 '제주4.3'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1947년 3월부터 시작된 제주4.3 봉기는 제주 경찰이 3.1만세운동 기념식에서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쏴 학살한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제주도에는 인구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던 제주도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1947년 무렵 약 30만 명에 이르렀던 제주도민 가운데 당연히 다양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공산주의자, 남로당원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에서 남로당을 '토벌'한다는 목적을 갖고 군대를 투입했고, 이건 다시 1948년 '여수, 순천 사건'으로 연결된다. 즉, 1950년 6월 25일, 공식적으로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던 한국전쟁과 그 직후 벌어졌던 '보도연맹 학살 사건' 이전에 이승만과 극우집단은 대구10.1 사건(1946년), 제주4.3(1947년), 여수, 순천 사건(1948년) 등 일련의 조선노동당과 공산주의자,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들이 일으킨 봉기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만 명의 공산주의자, 노동자, 지식인은 물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전력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남한에서 좌익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보도연맹'을 조직한다. 보도연맹을 기획, 관리한 자들은 한때 좌익 활동을 하다 전향한 배신자들과 극우, 친일매국노, 북한에서 내려온 개신교도 단체인 '서북청년단' 등이 주도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예비 검속'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체포해 감옥이나 큰 건물에 몰아 넣었고, 그렇게 잡아온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학살했다. '악마의 일기'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그린 그래픽노블이다. 이 작품의 원작은 박만순 선생님의 저작 '기억전쟁'임을 작가가 밝히고 있다. 작품은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다락방 해방 창고 이름 목총 닭 귀신 외무덤 삼형제 두 얼굴 굴 호환 만세 순이 만남 기억 증언 작품의 형식을 보면, 작가는 그림 형식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창고'부터 '순이'까지는 의도적으로 어린이가 그린 듯한, 서툰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 부분은 실제 학살 장면이 등장하고,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의 만행이 잔혹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많아서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림을 서툴게 표현함으로써 공포를 누그러뜨리지만,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는 듯한 솔직함으로 이승만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학살했는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창고'에서 '순이'까지 보도연맹 학살의 직접 내용은 한 소년의 일기처럼 기록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림일기를 쓴 형식을 따라 윗부분에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는 내용을 적는 형식이다. 그림은 단순하고, 내용은 짧고 간략하게 생략되어 있지만, 독자는 오히려 그 간략한 형식의 그림과 짧은 내용만으로도 사건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앞부분 '다락방'과 '해방'에서는 주인공 '육삼이'의 이야기와 그가 '악마'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일제강점기 시기, 어린이였던 육삼이는 햇볕을 보면 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는 병이 있어 다락방에서 지낸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자,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몸에 666 문신을 새기고 나왔다고 해서 부모도 그를 '악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육삼이는 가장 친한 친구 필순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행복한 시기를 보내지만, 자기 뜻과는 상관 없이 보도연맹 가입자들 속에 묻혀 들어가 군인에게 학살당하고, '악마'로 부활한다. 그리고 그는 '창고'부터 '순이'까지 이승만 정부가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목격하고, '만남'에서 전쟁이 끝나고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을 찾아간다. 이승만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박정희 군사쿠데타, 전두환 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가 압축되어 나타나고, 1987년 민주항쟁이 그려진다. '기억'에서는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이 나오고, 세월호 참사가 기록된다. 악마가 된 육삼이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에 가 보지만, 고향은 골프장으로, 아파트로, 모텔로, 대형 교회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육삼이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666이 사실은 999 즉 '은하철도 999'의 철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의 보금자리였던 다락방 속으로 들어가 엄마를 만난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영혼으로 사라진 육삼이를 보도연맹 발굴단이 학살당한 사람들이 묻힌 곳을 파헤쳐 육삼이의 유골을 발견한다. '증언'에서는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학살한 당사자 가운데 용기 있는 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단순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이승만 정권에서 치밀하게 기획하고 실행한 계획된 학살 사건이라는 것을 밝힌다. 박건웅 작가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꾸준히 그래픽노블로 작업하고 있다. '꽃' '노근리 이야기' '홍이 이야기' '어느 혁명가의 삶' '짐승의 시간' '그해 봄' '제시 이야기' '예안송' '아리랑' 그리고 이 작품 '악마의 일기'까지 어느 한 작품 소홀할 수 없는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을 그리고 있다. 나는 박건웅 작가의 작품을 초, 중, 고등학교 역사 교재로 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역사책을 읽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픽노블로 만든 작품들은 청소년이 읽기 쉽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정식 교재로 쓰지 못한다면, 보조 교재로 청소년들이 꼭 한번씩은 읽을 수 있도록 학교도서관에 배치하고, 선생님들이 추천해서 - 사실,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야 한다 - 청소년들이 이 일련의 작품들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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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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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의 화학적 결합
- 만화와 영화의 화학적 결합 -이동은, 정이용의 《환절기》, 《당신의 부탁》 만화는 영화보다 훨씬 오래된 예술형식이다. 영화는 현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예술이지만, 만화는 원시시대부터 있었던 그림에서 나왔다. 현대만화의 시작은 19세기 초반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과장, 축소, 비약, 간략화 한 이미지는 이미 그 자체로 만화적이다. 늦게 출현한 영화는 서사에서 만화와 소설에게 빚지고 있는데, 그건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서사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서사의 다양성, 양적 측면에서도 영화는 만화나 소설을 따라가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영화의 탄생 이후 수 많은 영화가 만화와 소설을 원작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나왔으며, 이럴 경우 관객은 원작 만화(또는 소설)와 영화를 비교하거나 다르게 해석한 부분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다. 영화가 특히 만화와 더 가까울 수 있는 건, 영화도 문학의 한 갈래인 희곡(시나리오)을 거쳐 스토리보드(만화)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화는 이미 서사(시나리오)를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가 스토리보드로 기능하기 때문에, 만화를 영화로 옮기는 것이 훨씬 쉽다. 그런 면에서 작가 이동은, 정이용의 작품은 만화의 영화화에 매우 친근한 작품들이다. 원작 만화의 글을 쓴 작가이자 두 영화의 감독인 이동은은 영화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한 작가여서, 이 두 원작 만화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영화적 관점으로 그려지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 만들 때, 별도의 시나리오 작업이 거의 필요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시나리오이자 스토리보드가 된다. '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도 학생 때 학보에 만화를 그렸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드로 옮긴 것을 보면, 만화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만화와 영화는 '스토리보드'라는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두 작품에서 영화는 원작 만화의 줄거리를 거의 비슷하게 따라가지만, 시간의 흐름을 조금씩 바꿔 놓았다.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작동하지만 짧게 등장하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생략되기도 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서사를 강하게 압축해 놓았고, 이것을 아주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독자(관객)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여백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런 장치는 만화에서 장점이 된다. 어차피 만화는 정적인 예술이고, 칸과 칸 사이를 메우는 것은 독자의 상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가 영화로 옮겨오면 상황은 달라지고, 달라져야 한다. 만화의 한 컷, 한 화면이 상징하는 의미는 영화에서 똑같이 반복하기 어렵다. 영화는 필름일 경우, 1초에 24프레임이 움직이고 있고, 대사와 음악, 효과음 등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만화 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많은 영화들이 때로 성공하거나 실패하는데, 그건 원작의 성공 여부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영화는 자신의 언어와 문법이 있음을 의미한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만화 원작의 모티프를 보다 강렬하게 '영화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환절기》 이야기는 미영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미영의 아들 수현은 고등학생이고, 어느 날, 그는 친구 용준을 집으로 데려온다.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배경과 상황이 있지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미영은 외아들 수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실 그의 남편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수현이 사고를 당하고 드물게 한국에 오지만, 그에게는 이미 필리핀에 다른 여자가 있다. 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살이에 초연한 사람처럼, 위자료만 주면 이혼해주겠다고 말한다. 미영의 남편도 미안해 하기는 해도 미영의 제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기와 아들을 배신한 남편이지만 뺨 한 대도 때리지 못할 정도로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이 미영이다. 미영은 아들 수현이 교통사고로 코마 상태가 된 것이 용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용준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미영이 놓여 있는 상황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 아들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까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걸 모두 견뎌야 하는 미영은 누구보다 괴로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미영은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낸다. 그가 강한 사람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놓여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을 둘러싼 고통과 괴로움이 견딜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다.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건 곧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는 것이므로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미영은 남편을 놓아주고, 용준을 용서하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아들 수현이 동성애자라는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용준과 함께 한 시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고, 마음이 움직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용준은 미영의 친아들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용준은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부모가 불화하고, 결국 엄마는 자살하고, 아버지와는 혈연을 끊게 되고, 가족들과도 멀어지게 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성 정체성으로 가족 모두가 불행해지는 걸 보고 겪으면서, 그 모든 상황과 결과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현까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놓이면서 용준의 죄책감은 커졌고,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하지만 용준은 자살보다는 다시 살아서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갚으려 한다. 그의 노력은 결국 미영의 마음을 움직이고, 용준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가족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등장인물 가운데 미영 말고는 모두 남성이고, 미영의 남편, 아들 수현, 용준 등은 미영의 '타자'이자 미영의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이면서, 미영이 돌봐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약한 존재들이다. 미영은 남자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이자 자기 자신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운전도 배우고, 끊임 없이 사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프로메테우스형 인물이다. '엄마'는 불완전한 존재인 자식을 돌보면서 힘들고 괴롭기도 하지만, '자식'의 존재만으로 근원적 기쁨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미영은 미숙한 남자들을 돌보면서 그것이 단순한 고통, 괴로움이 아닌,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수현이 기적처럼 깨어나면서 미영의 삶도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온다. 수현의 사고 이후, 수현과 용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느낀 불편함도 수현이 깨어난 이후, 미영과 용준의 관계는 어느새 엄마와 아들의 관계로 바뀌고, 수현과 용준은 오히려 서먹해진다. 두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열려 있다. 중요한 건, 미영이 아들을 하나 더 얻었다는 것이다. 불쑥 청년인 아들을 얻은 것처럼, 미영도 용준을 만나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진정한 '엄마'로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신의 부탁》 어느 날, 효진에게 시동생이 찾아와 죽은 남편과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할머니와 살던 종욱은 할머니가 치매로 병원에 입원하자 오갈 데가 없어지고, 결국 종욱은 효진의 집으로 들어간다. 종욱은 생모를 찾지만, 생모를 만나서는 생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종욱의 생모는 죽었고,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사람은 계모였다. 종욱도 자기가 찾는 '엄마'가 생모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린 자기를 두고 떠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적어도 여섯 살의 종욱에게는 그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족을 이루는 방식은 모두 우연처럼 찾아온다. 효진에게 종욱이, 종욱에게는 여자친구의 뜻하지 않은 임신이 그렇다. 이들은 혈연이 아니지만, 기꺼이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 효진은 죽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혈육은 아니지만 종욱을 받아들인다. 종욱의 상황에서 보면, 생모는 얼굴도 모를 때 죽었고, 기억하는 엄마는 생모가 아닌 계모였으며, 그 계모마져도 여섯 살 때 자기를 떠났다. 종욱의 아버지 즉 효진의 남편은 종욱을 자기 어머니에게 맡기고 효진과 결혼해 살았으니, 이 가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종욱과 그의 할머니인 걸 알 수 있다. 종욱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기를 버리고 떠난 계모를 어떻게든 만나고자 한 것도 생모가 아님을 알면서도, 어린 자신을 떠난 이유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고아 의식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효진은 그런 종욱의 마음을 헤아리고, 종욱도 효진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종욱이 여자친구의 임신과 출산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그런 트라우마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종욱이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출산한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렸을 때 종욱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만, 효진이나 《환절기》에서 미영도 고등학생 남자아이를 아들로 받아들인다. 고등학생 청소년은 곧 성인이 되는 경계에 있다. 이들은 이미 성인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성인 흉내를 내며,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미숙한 면이 많아서 자주 세계와 충돌한다. 어른들이 만든 강고한 세계 - 사회질서와 구조 - 에 저항하는 한편,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청소년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프로락사스와 같은 존재다. 종욱이 여자친구가 낳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만,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갓난아이의 입양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렇다. 현실은 냉정하고 무섭게 타산적이다. 종욱이 가진 낭만적 이상이 현실과 충돌하면서, 좌절하는 과정은 곧 그가 사회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자, 이상과 낭만이 깨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종욱에게 합리적 조언을 하는 효진과 자기 아이를 입양시키는 종욱의 여자친구는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응하는 능력이 있다. 무모하고 낭만적이지만 종욱은 '책임'이라는 의무를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자신의 트라우마도 있지만, '남성성'의 한 특징으로 보인다. 효진이나 미영이 의도하지 않은 '아들'을 만나고, 모자의 인연을 만들지만, 이들은 오래지 않아 다시 헤어져야 할 인연이거나 이미 따로 살고 있다. 혈육이든 아니든 가족도 '개인'의 집합이며, 독립해 살기 시작하면 가족은 분화한다. 효진이 종욱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 종욱이 곧 성인이 되어 독립할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두 작품의 주인공 미영과 효진은 처음부터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에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고,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그 상황을 거부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 '수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여성성' - 이걸 '모성'이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하다 -의 발현이고, 다른 하나는 가부장사회 체제에 길들여진 여성의 순치된 모습이다. 이 두 상황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형태로든 두 모습은 혼재되어 있어서, 여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영이 수현과 용준의 동성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용준의 아버지가 끝내 용준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된다. 용준의 가족은 용준을 버리지만, 미영은 용준을 아들로 받아들인다. 효진 역시 죽은 남편이 전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아들로 받아들인다. '가족'은 피를 나눈 혈연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가부장사회의 혜택을 직접 받는 '남성(아버지)'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의 피해자인 여성(엄마)이라는 점에서, 미래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유연한 '여성성'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미영과 효진은 낯선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서 자신의 삶을 확장하고, 성장한다. 서사의 흐름만 보면 미영과 효진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그건 마치 물이 사물을 포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감싸안는 것과 같다. 자연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듯, '여성성'이 가진 본성도 그런 것이 아닐까. 약하고, 가여운 존재를 포용하고 감싸안는 따뜻함을 통해 자기의 외연을 확장하는 유연함을 두 작품은 잘 그리고 있다. 만화나 영화의 서사는 다시 문학과 만난다. 우리는 칸으로 나뉜 그림(만화)과 움직이는 그림(영화)의 이야기를 보면서 감동하는데, 표현 형식만 다를 뿐, 서사는 기본적으로 '문학'이다. 즉, 프랑시스 라까생의 표현대로 문학은 '쓰여진 문학', 만화는 '그려진 문학'이고 여기에 영화는 '움직이는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동은, 정이용의 작품에서 문학을 느낄 수 있는 건, 서로 다른 형식에서 '문학'의 본질을 느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프랑시스 라까생(1998), 《제9의 예술만화》, 하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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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혁명가 김산의 이야기
- 제목 : 아리랑 작가 : 박건웅 출판 : 동녘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영웅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시대에 조응하는 인간이며, 역사에 온몸을 내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산은 열다섯 살에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떠난다. 지금의 중학생 정도의 어린 소년이 조국의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고 혁명가가 된다. 소년이 일본경찰과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 조선공산당이 1921년에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김산의 행동은 자생적 공산주의자 1세대에 해당한다. 김산은 당시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이 판단하고 있던 것처럼, 중국공산당의 혁명과 함께 해야만 조선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크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로 갈라졌으며 그 안에서도 여러 분파들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장투쟁 계열에서도 개별적 테러를 활용했던 민족주의 계열과 군대를 양성해 일본과 전쟁을 하겠다는 전투부대 조직은 목적은 같았으나 행동이 달랐고, 그들도 중국공산당과 쏘련공산당으로 각각 협력 세력이 나뉘었다. 아무리 간단하게 요약해도 당시 독립운동의 갈래는 매우 복잡했으며, 각 파벌의 갈등은 동지가 아닌, 적과 같은 미움과 증오를 띄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으로 숨어든 일본의 조선인 밀정이 독립운동가를 납치, 살해하는 경우도 많았고, 멀쩡하게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일제의 앞잡이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국의 독립에 대한 확신과 자신의 사상의 굳건함을 잃지 않고, 혁명가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잊지 않고 일관된 투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서양에서는 체 게바라를 대표적 혁명가로 손꼽지만, 김산의 삶은 체 게바라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 혁명과 독립을 위해 싸웠다. 쿠바 혁명을 비롯한 남미의 혁명이 미제국주의와 자본을 뒤엎는 혁명이었다면, 김산이 살았던 시대의 혁명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띈다. 한국의 일제식민지 상황에서 독립하는 절대 과제와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혁명까지 이뤄야 하는 공산주의 혁명의 의무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산은 중국 곳곳에서 장제스를 비롯한 중국 군벌들과 싸우며, 크고 작은 도시에서 일시적으로 혁명에 성공해 해방구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중국공산당은 언제나 열세에 있었으며, 군벌에 쫓기고 있었다. 이 시기에 중국공산당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패퇴하면서 대장정을 시작한다. 대장정을 시작할 때 10만 명이던 사람은 연안에 도착했을 때 90% 가까이 사망하게 된다. 30년대 중반의 중국공산당은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연안에서 다시 터전을 다진 중국공산당은 마침내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한다. 김산은 중국혁명의 성공도, 한국의 독립도 못 본 채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삼십대의 짧은 살았던 한 혁명가의 삶은 님 웨일스의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님 웨일스의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진짜 혁명가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쟁을 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 혁명가들이 남북한의 분단과 체제로 인해 인정받지 못하거나, 왜곡되는 현실이다.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혁명가의 삶을 인정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민족주의 계열, 남조선노동당, 중국공산당과 협력했던 혁명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결국 만주와 중국, 쏘련에서 활동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역사에서 잊혀졌거나 지워진 상태다. 약소국의 혁명가는 시작부터 비극적 운명을 내재하고 있다. 조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에서 큰 나라의 혁명을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은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들 혁명가는 현실의 고난을 피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신화와 창작에서 영웅은 고향을 떠나 고난의 길을 따라 모험을 하고, 더 성장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현실의 혁명가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전전하며 끝모를 고통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다. 그리고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혁명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억울하게 죽은 혁명가들은 기록에도 남아 있지 못하다. 님 웨일스의 남편 에드가 스노우는 모택동을 만나 '중국의 붉은 별'을 써서 서양에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알린 인물이고, 님 웨일스 역시 한국공산주의자이자 중국공산당원 장지락(김산)을 인터뷰해 당시 한국공산주의자들과 혁명에 관한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지만 한국에서는 한때 금서였다. 독재정권은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인 장지락(김산)의 일생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제는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나 사람들은 과거의 혁명가를 잊어버렸다. 박건웅 작가는 활자에 갇혀 있던 혁명가 김산을 깨웠다. 박건웅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흑백 판화 기법의 그림은 강렬한 내용처럼 강한 이미지로 당대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김산의 삶은 스스로 혁명가로서의 자각과 오랜 훈련으로, 보통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고통을 극복하며 살아가지만, 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혁명가라도 인간적인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고, 평범한 행복을 누릴 기회도 있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이미 결심한 김산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조차도 부담스러워한다. 그 누구도 김산의 삶을 강제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스스로 선택한 혁명가의 삶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높은 도덕성과 신념, 의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다루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하지만 이름 없이 스러진 수많은 혁명가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북한의 분단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의 자취까지 분단되는 부작용을 만들었으며, 역사에 기록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훌륭한 독립운동가와 혁명가들이 많다. '아리랑'은 정부나 단체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닌, 님 웨일스와 장지락이 만나 대화를 하며 기록한 내용이라 공인받지 못한 기록이지만, 개인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기록하고, 당대의 세밀한 묘사가 풍부하게 살아 있다는 점에서 높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 님 웨일스의 글을 읽기 부담스럽다면, 박건웅 작가가 그래픽노블로 그린 이 작품을 권한다. 글만 읽을 때보다 훨씬 이해도 잘 되고 재미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삶과 중국의 혁명 과정까지 알 수 있어 독립운동사 자료로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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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혁명가 김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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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어진 기억
- 제목 : 엉클어진 기억 작가 : 사라 레빗 출판 : 우리나비 가족 가운데 누군가 치매(알츠하이머)를 앓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치매를 앓아도 그 고통과 괴로움을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사라 레빗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그림과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픽노블에서 작가가 자기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흔하다. 작가는 개인적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그 경험은 재해석되고, 보편화한다. 작가는 엄마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기록을 시작한다. 작가의 엄마는 불과 52세에 치매가 진행되는데, 모든 검사를 하고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통 알츠하이머는 뇌 속에 이상 단백질(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또한 21번 염색체에 있는 아밀로이드 전구단백질(APP) 유전자에 돌연별이가 있다면, 65세 이전에 치매가 나타나며, 이것을 '조발성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작가의 엄마가 바로 이 병(조발성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14번 염색체에 있는 PS1, PS2 유전자의 돌연변이도 같은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뇌조직 검사가 있었지만, 작가의 가족은 그 검사를 포기한다. 어떻게도 엄마의 치매 진행을 막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의 변화만 따라가면, 인간이 아무리 지성과 이성의 동물이라도 물리적으로 뇌가 망가지는 병에 걸리면, 지성과 이성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이 '동물'로서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날 때는 뇌의 퇴화가 진행하면서다. 이성과 의지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게 될 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 존재했던 과거는 분명하지만, 뇌의 퇴화는 과거와 (치매를 앓고 있는) 현재를 단절한다. 연속성이 사라지고, 가족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그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사회적 기준으로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건 우리가 잘 아는 '좀비'와 비슷하다. 좀비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이성과 지성이 사라지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좀비'를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형체는 인간이되, 존재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한다. 자기 의지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자신을 짧은 순간, 정신이 온전할 때 알아채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질병은 치매(알츠하이머)가 유일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조차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기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작가의 엄마는 전형적인 진행을 보이는데, 처음에는 기억이 사라지고, 언어가 사라지며, 근력도 사라지고, 시력은 정상이어도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며, 시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판단력이 사라지며, 망상에 시달리고, 우울증이 나타나고, 감정의 변화가 급격하고, 밤이 되면 더욱 난폭해지고 가출한다. 치매를 앓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 겪는 고통 역시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걸 지켜보는 건 어쩌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일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르'에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는 식물인간이 된 제자를 코치가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이다. 서양에서 먼저 '안락사'와 '존엄사'를 논의하기 시작한 건, 동양의 가족주의보다는 좀 더 개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인데, 작가의 가족은 최대한 가족이 함께 지내며 돌보다 마지막 순간에 요양원 입원을 결정한다. 이들도 환자를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비인간적이고, 책임을 떠넘기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오래 병을 앓고 있거나, 치매로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요양원에 맡기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작가의 가족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간병인이 도와준다. 간병인이 있어 가족은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치매(알츠하이머)는 단지 뇌 질환이 아니라, 육체 전체가 기능이 떨어지고, 퇴화하면서 서서히 죽는 병이다. 작가의 엄마도 병이 발견되고 불과 6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 시간동안 가족들은 아내가, 엄마가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가 나빠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픔, 고통, 비탄, 분노, 좌절, 절망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늘 우울하거나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고, 순간, 순간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엄마가 운명하고 나서도 투병 기간의 기억이 가족을 더 가깝고 깊게 유대감을 갖도록 작용한다. 인간성이 파괴되는 병을 앓아야 하는 건 비극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거나 객관화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병을 앓는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만, 자신에게 내재화하지 못한다. 이 거리는 가족의 사랑으로 좁힐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피를 나누고,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해도, 개별적 존재가 갖는 자기 정체성과 독립성이 있고, 이들은 독립적 존재로 다른 환경과 생각, 가치관,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성인이 된 가족은 서로에게 타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시간과 사건을 그렸다. 독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감정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이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실은 작품보다 훨씬 고통스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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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어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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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즈 예게른
- 제목 : 메즈 예게른 작가 : 파울로 코시 출판 : 미메시스 오스만 투르크(터키)가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은 의외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15년에 일어난 이 학살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세계사적 범죄였음에도 그동안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터키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터키가 '한국전쟁' 때 한국에 참전해서 함께 싸웠기 때문에,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터키는 아르메니아인을 무려 150만 명이나 학살한 이후, 어떠한 사과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한국군은 베트남 인민을 학살했다. 학살한 증거는 너무 많아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한국정부는 여전히 '공식 사과'와 그에 따르는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약소 민족이나 인종을 차별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국제사회의 관례'라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미개하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휴머니즘이나 도덕성, 양심 등에 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과 그 일당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했던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터키 정부도, 시간이 얼마가 지났던-올해가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자신들이 저지른 학살 범죄를 공식 인정하고, 아르메니아인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범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나 터키라는 나라가 소멸되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른 민족, 국가의 노예로 전락한 상태라면 모를까, 주권을 가진 나라라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터키를 전혀 '형제'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독일보다 더 질이 나쁜 학살국가로 인식하고, 터키에 대한 태도를 부정적으로 견지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사죄가 없는 이상, 한국 역시 학살국가로 인정하는 것처럼. 이 학살 만행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된 사건과 관련 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항제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아가 세르비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가혹한 요구조건으로 최후 통첩을 보낸다. 그 요구조건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모든 반(反)오스트리아 단체를 해산할 것. 암살에 관련된 모든 자를 처벌할 것. 반(反)오스트리아 단체에 관련된 모든 관리를 파면할 것. 여기에 관련된 당사자를 조사하는 데 오스트리아 관리가 세르비아로 들어가 도울 것을 허용할 것. 오스트리아로서는 보스니아가 이 조건을 다 들어준다해도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보스니아의 주장을 오스트리아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황태자 암살사건을 계기로 보스니아를 침공해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히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의 국지전에 머물지 않고, 독일이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은 것은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만 트루크(나중에 터키공화국)였다. 이때 아르메니아인은 터키 남동부와 러시아 영토에 걸쳐 살아가고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령과 러시아 제국령에 걸쳐 살아가던 아르메니아 사람들 가운데 오스만 제국령에 있었던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이 학살당하게 된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스만 제국이 독일,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으면서 러시아는 적대국이 되었고, 러시아 령과 오스만 령에 걸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위해 러시아를 도울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오스만의 지배자들이었고, 가뜩이나 자국의 영토에서 살아가던 아르메니아인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그 핑계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한국에서도 전쟁 기간에 양민학살이 많았지만,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극우 권력이 진보 성향의 인민을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지금도 진상규명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진보 성향의 시민을 체포해 학살했다. 그들이 잠재적 적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은 민족대 민족이었지만, 한국의 보도연맹 학살은 같은 민족이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지른 만행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광기가 민족이나 이념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터키가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두고, 히틀러도 지적했다. 세계의 누가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그것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동기와 합리화를 제공했으며,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유럽과 미국 등의 백인 중심국가에서도 소수민족이자 약자인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에 관해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학살 장면을 재현하지 않는다. 물론 잔혹한 장면이 있지만, 참혹함을 소비하거나 관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살의 배경을 들여다본다. 터키의 '청년 쿠르드당'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세 명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이들이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지휘했고, 동맹국인 독일마져도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항의할 정도였으나, 터키의 권력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르메니아인 여성, 아이까지 모두 사막으로 내몰아 잔악하게 학살하고 강간 살해한다. 인류의 집단 학살은 인류 초기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처음에는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살육을 저질렀지만, 이후 전투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을 노예로 삼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종교적 이유, 이념의 이유, 인종의 이유만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인류는 동족을 대량 학살하는 잔혹한 동물이다. 인류가 이성과 지능을 가진 고등동물이라고 말하지만, 맹목으로 기울어진 광기와 편집증은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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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즈 예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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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제목 :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작가 : 김금숙 출판 : 서해문집 이 작품은 정철훈이 쓴 '소설 김알렉산드라'를 바탕으로 김금숙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남문화재단'과 '성남시'에서 지원하는 웹툰 작업의 하나였으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다음 웹툰'에 여러 작가가 연재하고 있다. 이 작품도 '다음 웹툰'에서 연재한 내용을 모두 볼 수 있다. 원작자인 정철훈은 1996년에 '김알렉산드라 평전(필담)'을 먼저 펴냈고, 이후 2009년 실천문학사에서 장편소설로도 발간했다. 러시아의 하바롭스크에서 김알렉산드라는 특별한 존재로 알려졌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하바롭스크 마르크스가 24번지에 있는 그의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17~1918년 이 건물에서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이 일하였다. 그는 볼셰비키당 시위원회 사무국원이며 하바롭스키시 소비에트 외무위원이기도 하였다. 1918년 그는 영웅적으로 죽었다. 김알렉산드라는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볼쉐비키였으며, 역시 한국인 최초로 레닌과 면담한 공산주의자이다.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시작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발발한 직후, 자생적-여기서 '자생적'이라는 단어는 온전히 독자적으로 조직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과 일본공산주의 활동의 영향을 조선의 진보지식인들도 알고 있었고,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 으로 공산주의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기로 보면, 김알렉산드라는 조선에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기 전에 동북지역에서 활동한 최초의 공산주의자였으며, 그의 활동은 쏘련공산당에도 도움이 되었다.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는 조선에서 최초의 공산주의자이면서도 그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 하바롭스크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상해에서 활동하는 임시정부 그룹,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그룹,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그룹인데, 임시정부에서는 공산주의자와 결별해 민족주의의 길을 걷고, 만주 지역에서도 무장투쟁으로 나아간 그룹과 민족주의 계열로 갈라진다. 무장투쟁을 선택한 그룹은 공산주의자가 되거나, 공산주의와 협력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독립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반면 김알렉산드라는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힘겹게 살아온 김알렉산드라의 아버지와 그녀 자신의 삶은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차별과 억울함을 당하는 동포들을 보면서, 조선의 독립은 물론, 인간 해방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다. 김알렉산드라의 운명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닮았다. 로자 역시 유대인과 여성,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공산주의자로 활동했으며, 그의 이론과 의지는 레닌을 능가할 정도로 위대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녀의 최후는 비참했다. 두 여성 공산주의자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두 여성이 공산주의자로서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유능했고,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김알렉산드라가 나라를 잃은 조선의 가난한 노동자의 딸이었다면, 로자는 폴란드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김알렉산드라는 로자보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그녀의 삶 자체가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이었고, 로자는 그가 의용대에게 암살당하기 전에 이미 세 권의 뛰어난 책을 쓸 정도로 훌륭한 지성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산주의자로 오래 활동하지 못했다. 김알렉산드라는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기간이 불과 2년에 불과했고, 로자도 암살당할 때의 나이가 47세였다. 그럼에도 두 여성이 공산주의 역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는 훨씬 크다. 여성이 억압과 차별을 당하던 시기에,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고 유능하게 활동한 여성 공산주의자들이 많겠지만, 당시 한국에서 김알렉산드라의 존재는 한국역사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기록해야 할 인물이다. 아래는 '시사저널'에 실린 내용으로, 김알렉산드라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 다음은 이인섭씨의 알렉산드라 김 전기 첫회로, 사형 장면과 유년 시절부터 10월혁명 전후 시기까지의 부분이다. 적 · 백군 내전 시기의 활동, 체포 및 재판 장면은 제217호에, 연해주 빨치산 조직표와 명단은 제218호에 싣는다<편집자> 사형 1918년 9월(조선력으로 8월15일 추석) 피로 물든 것 같은 아무릎 강이 옆으로 흐르는 하바로프스크 공원. 높다란 모자를 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외투를 입은 키 큰 칼므이크인들(칼뫼코브가 이끌던 코사크 부대의 부대원들)이 모인 가운데 백군 사형집행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지도자들로 소비에트 · 당 간부들, 그리고 우수리 전투에서 포로가 된 적군 병사들과 전에 이 공원에서 연주를 하였던 음악인들, 이만역 준투에 가담하였던 수십명의 소비에트 애국자들을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하였다. 칼므이크인 사형집행인들은 혁명가들의 눈을 흰헝겊 조각으로 가리고 절벽에서 총살한 후 아무르 강에다 집어던졌다. 그때 총살된 치쉰, 벨로우스, 네페로프 등 동지들 속에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 동지도 있었다. 집행인이 알헥산드라의 눈을 가리자, 그는 눈에서 흰 천을 벗겨내고 선 다음과 같이 소리높여 이야기했다. “나는 35분간 연설할 권리가 있다. 나는 자기 조국을 훔치거나 배신한 자가 아니다. 나는 공산주의자이며 조선의 혁명이다. 내 스스로 죽을 장소를 고르겠다. ”(이 이야기는 알렉산드라의 두 번째 남편 B.B. 오가이의 큰 딸 올가바실리예비치 오가이에 의해 알려졌다). 그는 천천히 todrr에 잠겨 열세 걸음을 걸었다. 무라비요프의 동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벽에 멈추어 서서 사형에 대한 공포의 기색도 없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조용히 몸을 돌렸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동지들 남성들 여성들 노인과 젊은이들이여. 오늘 우리늬 적이 많은 우리의 애국자들과 나의 전우들과 그리고 나의 생명을 앗아가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수행하던 과업은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조선의 후손들이여 ! 지금 내가 걸음은 바로 조선의 열세 개의 도입니다. 각각의 도에 공산주의의 씨앗을 뿌리고, 모든 장애 · 바람 · 폭풍을 극복하여 프롤레타리아에게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 주며, 자본가들과 지주들에게는 죽음을 가져다 주는 기적의 꽃을 피워라. 조선 13도의 젊은이들이여, 그 꽃을 손에 들고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성취하여라. 그것은 그대들의 자랑이 되리라. 여러분 모두는 우리의 후예들이 조선을 해방시키고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하는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조선독립 만세 ! / 소비에트 만세 ! 볼셰비키당 만세 !/ 세계 혁명 만세 !” 총성이 울렸고,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의 시신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투쟁을 호소하던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던 절벽 아래로 떨어져 아무르 강에 잠겼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은 두려움을 몰랐다. 그의 대단함은 조선 청년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 대단함은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에게강한 인상을 주었고 우리의 적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칼므이크인 집행인 율리네스코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조선의 영웅이자 극동위원회의 위원이며 개화된 여성이었던 그는 죽었다. 전세계 근로자들의 자유를 위한 활동 때문에 사형집행인의 총 한방에 죽었다.”(선집《극동에서의 혁명》, 모스크바, 1923,160항 참조).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사, 소련공산당 고참당원, 우랄노동자동맹(1917)의 조직자, 재소 조선의 사회주의자 당원이었다. 유년시절 알렉산드라는 1888년 (3월1일께) 극동 연해주 수이푼의 포크롭스키 라이온(면)의 시넬니코보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나게 영리했고, 용감하고 온화한 성품이었다. 두 살 때인 1890년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그는 계모 밑에서 학대를 받다가, 다섯 살 때인 1893년 하얼빈의 아버지에게로 가 같이 살게 되었다. 아버지 페트로비치 김은 북만주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중국군사철도 건설 현장에서 한국어와 중국어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자이자 그들의 성공적인 투쟁의 지도자였다. 아버지 표트르 김은 사랑하는 딸 슈라(알렉산드라의 애칭)에게 늘 다음과 같이 얘기하곤 했다.“사랑하는 딸아, 네가 커서 일을 하게 될 때 나처럼 항상 노동자 편에 서서 일을 해야 한단다.”아홀살 때인 1897년 하얼빈 시에서 소학교에 다닐 때 그에게 커다란 슬픔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죽었던 것이다. 표트프 김이 죽자, 그를 존경하던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 수천의 노동자가 파업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어버지가 죽은 뒤 알렉산드라는 폴안드인 마르크 이오시포비치 스탄케배치의 집에서 살다가 열 살 때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오빠 추푸로프 페트로비치 김에게 갔다. 그곳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시립 학교를 마쳤다. 그는 학교 도서과에서 체르니세프스키 · 게르첸 · 도브롤류보프 · 플레하노프 그리고 다른 혁명적 작가들의 저작을 공부하였다. 젊은 시절 열여섯살 때인 1904년 알렉산드라는 동창생인 폴란드인 마르크 아오시포비치 스탄케이비치에게 시집을 갔다. 이 일은 조선인 사회에 많은 소문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그가 외국인과 결혼한 최초의 조선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 마르크 이오시포비치는 무위도식에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인간이었다. 결국 스무살 때인 1908년 남편과 이론한 알렉산드라는 그 행에 태어난 아들 비야체슬라프 마르코비치를 데리고 하얼빈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스물한살 때인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러시아어 교사였던 바실리 바실리예비치 오가이와 재혼했다. 1910년 두 번째 아들 보리스가 태어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늘 혁명 활동을 꿈꾸었다. 남편 오가이는 아내를 가사에서 해방시켜 혁명 활동을 위한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정치 활동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전쟁에 가담한 제정 러시아는 노동대중을 동원하였다. 도시와마을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등 노인과 여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징집되었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김병학이라는 비열한 청부업자가 있었다. 이 자는 선금으로 1만루블을 받고 조선인 노동자 1천여 명을 고용하여 우랄 지방의 나제즈진 벌목장으로 데려갔다. 하얼빈에서도 3천~4천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바로 이 나제즈진 벌목장에 동원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알렉산드라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고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다고판단한 것이다. 스물여섯살 때인 1914년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남겨두고, 우랄 지역 노동자들의 통역을 자원해 벌목 현장으로 떠났다. 우랄 지역 노동자들은 아버지아 일했던 중국군사철도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도시 바깥으로 출입하거나서신 연락이 철저히 금지되었다. 중국인 용병 가운데서 뽑힌 경비병들이 노동자들을 감시했고, 파업이 일어날 경우 물자공급 중단, 심지어는 대량 학살까지 자행했다. 알렉산드라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고, 사민당의 볼셰비키와 관계를 맺게 되어 그 당원이 되었다. 그는 볼셰비키파의 비합법적 저작물을 읽었으며, 그리하여 오로지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차를 체제타도 그리고 자본가와 지주 등 착취 계급을 박멸하는 것만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수 있다고 더욱 굳게 확신했다. 알렉산드라는 일본의지배를 증오하는 젊은 조선인 애국자들이 볼셰비키 당원이 되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들로 일단의 정치 조직을 결성하는 일은 적적하다고 판단하였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인 1917년 2월27일(신력으로 3월12일) 부르조아 민주혁명이 제정을 무너뜨렸다. 이 혁명의 결과 러시아에는 두 개의 권력이 나타났다. 하나는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 확립을 지향하며 전쟁을 계속 수행하려는 멘셰비키와 사외혁명당이 이끄는 임시정부의 권력이었고, 또 하나는 전쟁을 중지하며‘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 아래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일소하여는 노동자 · 농민 · 병사 대표자 소비에트의 프롤레타리아 권력이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우랄을 비못한 각 지방에서도 2월혁명에 고무되어 대중 집회와 시위가 벌어졌다. 조선인 여성 알렉산드라는 1만여 명의 주민에게 계급투쟁과 민중해방운동을 호소하는 연설을 행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우리 5천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은 오늘부터 더 이상 제정러시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자 · 농민 · 병사 대표자 소비에트가 권력을 쥔 국가의 국민이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청부인들과 차르 권력 사이세 밎여진 불공정한 계약의 이행을 무조건 거부합니다. …” 그의 모든 말은 노동 대중의계급적 단결을 공고하게 하였고, 기업가들과 멘셰비키에 대한 적개심를 불러일으켰다. 이 날부터 전우랄에서 권력 쟁취를 위한 볼셰비키와 멘세비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는 저명한 볼셰비키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서 가장 정력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많은 기업 · 공장 · 노동현장을 다니면서, 지하에 숨어 있었던 당의 사업을 합법화했고, 당세포들을 조직하였다. 그는 노동조합에 가입을 권유하는 사업과 노동 조합에 당 세포를 조직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부행하였다. 1917년 3월게 볼셰비키 조직인 우랄노동자동맹이 결성되었다. 이 동맹에는 중국인도 가입하여싸. 노동조합이나 지방 소비에트 회의, 볼세비키 지도자 선출을 위한 투표에서, 5천여 명이나 되는 조선인 · 중국인 노동자들읜 많은 투표권을 가졌으나, 러시아어를 몰랐기 때문에 항상 알렉산드라가 찬성표를 던지면 따라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우랄에서 알렉산드라 동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알렉산드라는 1917년 두 번이나 모스크바에 페테르부르그를 방문한였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무엇 때문에 그가 그곳을 다녀왔는지 관심 없었으나, 지금 추측컨대 그는 당 중앙위원회를 방문하여 레닌을 만났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또 누구를 만났으며, 어떠한 과제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1917년 7월에 알렉산드라는 옴스크로 가서 10일간 보냈다. 이 기간에 나는 그와 함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강령과 규약 그리고<동산당 선언>을 러시아어에서 조선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조선어로 불렀고 나는 받아 적었다. 알렉산드라는 우랄노동자동맹이라는 볼세비키 조직을 만들어내었고, 그후 극동으로 떠났다. 나는 그의 위임을 받아 당의 강령과 규약을 조선어로 중국어로 번역하였고 시베리라의 여러 도시에서 사회주의 조직을 만들었다. 10월혁명 전후의 활동 당시 조선인들사이에는 포크롭스키 라이노(면)출신 조선인 여성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청부인 김병학이 팔아넘긴 노동자들을 해방시켰다는 소문이 벌써 돌고 있었다. 모든 조신인들은 알렉산드라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반겼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이 조선인 마을에서 발행되던 조선인 신문 <조선인신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벌목자의 고통스러운 작업으로부터 수천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노동자들을 해방시킨 수에 우랄에서 돌아온 알겍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은 우리 편집국을 내방하였다. 조선인 볼세비키인 그는 남자들보다 더 용감했으며, 조선의 민족해방운동이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바뀌어 나가도록 호소하고 있다.” 알렉산드라는 남편 오가이로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저명한 조선인 혁명가 이동휘가 자유 아무르 주의 감옥에 구금되어 있으며, 사할린을 거쳐 일본으로 호송될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그는 남편과 함께 이동휘의 석방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알렉산드라는 오성묵과 다른 이들과 함께, 러사아와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인 이민들과의 관계 설정에 노력하였다. 동시에 그는 볼세비키들과 긴밀히 접촉하면서 활동하였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다음의 사실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알겍산드라는 아무르 역(현재의 라조역)의 당조직가인 무라비요프에 의해 선출된 대표로서, 1917년 10월18일(5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지구(크라이) 당협의회에 참가했다. 그해 10월 사회주의대혁명 승리 후에 하바로프스크에 극동 노동자 · 농민 · 병사 대표자 소비에트가 결성되자, 알렉산드라는 외교부장으로, 동시에 하바로프스크에 잇는 러시아사회주의노동당 한 조직의 서기로 선출되었다. 이 사실은 조선인 여성인 그가 러시아인 볼세비키들과 함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소비에트 극동 집행위훤회의 외교부장에 선출된 사실은, 극동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들에게는 대단한 기쁨이 되었으며, 또한 그들 사이에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알렉산드라는 조선인들에겍서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는데,이는 그가 그들을 솔직하게 대했개 때문이었으며, 그가 중국어를 자유로이 구사 할 수 있어 모든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는 외교부장으로서 헝가리인 · 독일인 등 외국인에 대한 여권발급제도를 간소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항상 그에게 고마워했다. 알렉산드라는 서른살 때인 1918년 2월(러시아의 구력으로는 3 · 1운동이 2월에 일어난 것으로 된다)에 일어난 조선의 민족해방운동에 따라 혁명가들의 회합을 열기로 결정하였다. 회합에는 이동휘 양기탁 모동열 이동녕 등 조선 민족해방운동의 저명한 지도자들과 조선과 중국과 극동에서 온 수십명의 혁명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회합에서는 조선 혁명운동의 정세와 장래 과제들을 토론하였다. 이 모임에서 알렉산드라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입장에서 함렌파(이동휘, 김닙 혹은 김립), 평양그룹(유동렬, 양기탁) 그리고 경성그룹 (이동녕) 등 조선민족해방운동에 존재하는 파벌주의를 비판하였다. 그의 연설이 있은 후 사적인 간담회에서 모든 이들은 분파싸움을 중지하자고 약속하였다. 그 후 조선 민족해방운동 문제를 계속하여 토론하던 중 참석자들의 일부(이동녕과 그으 지지자)가 ‘정의당’이란ㄴ 이름의 민족해방조직을 결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글나 다른 일부는 조선해방운동을 사회주의운동으로 바꿀 것을 호소하였다. 3월28일 하바로프슼에서이동휘 유동열 이하녕 오성무(오성묵의 오기라고 여겨짐) 등이 한인사회당(조선인사회주의당)을 조직하였다. 이것은 조선혁명가들의 단결과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첫걸음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사건들은 알렉산드라가 민족해방투쟁에 관한 마르크스 이론에 얼마나 정통해 있었는가,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을 사회주의운동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실천적으로 훌륭하게 실현시켰는지 확고하게 말해 주고 있다. 한인사회당은 소비에트 권력으로부터 비용를 할당받았다. 조직의 할동가 등은 현금 급룔ㄹ 받았고 <자유종>이라는 신문을 발간하였다. 군사학교가 설립되었다. 위훤회의 의장은 이동휘었다. 군사학교장 겸 군사부장은 유동렬, 부위원장은 오가이, 청년부 의장은 오성묵,<자유종>의 편집인은 김 립이었다. 나는 재정담당이었다.(계속)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이번 호 알렉산드라 김 전기 2부에는 적백내전 기간의 전투에서부터 체포되어 재판 받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소련당국에 알렉산드라 김의 전기를 제출하고 난 뒤, 이인섭씨는 당시 소련 정부 당국자로부터 주요 부분에 대한 보충 질의를 받게 된다. 이에 대한 이인섭씨의 답변 문서 가운데 특히 그가 알렉산드라 김과 관련한 자료를 추적하게 된 과정이 부속 기사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 이인섭시 전기 이후 밝혀진 새로운 사실을 중심으로 알렉산드라 김의 가족과, 그의 사상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준 요인들을 작가 鄭棟柱씨가 분석했다. <편집자> 시민전쟁 한인사회당 창설 1주일 뒤인 1918년 4월5일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국제 간섭군이 상륙했다 백위군이 봉기한 것이다. 시민전쟁이 시작됐다. 알렌산드라가 맨 먼저 무기를 들었다. 그는 영어·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한국어 그리고 러시아어로 무장간섭군에 대한 정항을 호소하였다. 자국과 전세계 근로자들에 대한 호소와 계급 투쟁 호소, 그리고 조국을 수호하자고 외치는 전단을 썼다. 그는 선전 활동을 정력적으로 벌였고, 각 지방으로 동지들을 파견하였는데, 중국인 순취우, 러시아인 벨로우스와B.골리온코 등이었다. 알렉산드라는 주민들을 적군으로 동원하는 일과, 사람들을 전선으로 보내는 일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알렉산드라는 과?성이 있었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신중하며 용감했다. 그는 시작한 모든 일을 끝까지 해내었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고 동지들을 존중하였다. 항상 매우 열심히 일을 하여 동지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그들의 활동력을 끌어올렸다. 한인사회당 당원들은 순서에 따라 의무적으로 전선으로 향하였다. 많은 노동자, 일용 농부, 어부들이 자원해서 러시아인 동지들과 함께 전선으로 나아갔다. 조선 청년 1백명 이상이 우수리 전선에서 전사했으며, 조선인 적군 부대는 고립되어 싸운 게 아니라 러시아인 동지들과 함께 싸웠다. 많은 조선인이 이만과 비야젬스키 역의 격렬한 전투에서 전사했다. 일본 간섭군과 벌인 여러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 중 반이상이 조선인이었다. 18년 9월초 빨치산 부대가 ‘붉은 강’의 후퇴선에 주둔했을 때 조선인들은 겨우 10명 남짓했다. 알렉산드라의 지휘아래 중국인 둥지 순취우는 중국인 독립부대를 조직하였고, 이 부대는 만주의 하오헤 지구와 비야젬스키 역 지구에서 활동하였다. 19년 9월 하바로프스크 시는 전면 포위되었다. 붉은 강까지 이르는 우수리 전선은 일본군·백위군·체코슬로바키아군에게 점령되었다. 일본군이 스바보드느이 시와 니콜라예프스크나아무르 시를 점령하고 있었고, 블라디보스토크는 메르쿨로프가 장악하고 있었다. 중국 군사철도와 하얼빈은 백위군 장군인 호르바트가 장악하고 있었다. 코사크 대장 세메노프는 치타를 지배하고 있었다. 로프스크 시립공원 회의실에서 소비에트 및 당 활동가들의 회합이 열렸다. 이 회합에 소비에트의 아무르 주 집행위원회 의장인 무힌 동지가 참석하였다. 회의에서는 하바로프스크에서 전투 없이 철수할 것과 부대를 숲으로 이동해 빨치산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철수하는 소비에트와 당 활동가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도시를 빠져나가기로 하였다. 첫번째 그룹은 육로로 아무르 주와 보도이보를 거쳐 모스크바와의 연락을 회복하기로 하였고, 두번째 그룹은 아무르 강을 따라 배로 아무르 주와 보도이보를 거쳐 모스크바와의 연락을 회복하기로 하였고, 두번째 그룹은 아무르 강을 따라 배로 아무르 중와 몽고 증부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나가서 모스크바와의 연락을 회복하기로 하였다. 회합 참석자들 중 일부가 백군을 화약고로 유인하여 화약고를 폭파할 것과, 우리 부대가 아무르 철교를 건넌 후에 철교를 폭파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이 제안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야만 한다. “적을 죽이기 위해 주민에게 고통을 주면 안되다” 알렉산드라는 연설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말하는 동안 강당은 조용했고 사람들은 줄곧 그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지들, 우리는 시를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철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에서 펄수한 뒤에 우리 적들이 거주하게 되겠지만 인민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만약 화약고를 우리가 폭파하면 적들은 죽이겠지만, 주민들에게 고통을 줄것이며, 건물로 부서지게 됩니다. 전투 없이 시에서 퇴각한다는 우리 의 의도는 무익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아무르 강의 철교는 극동의 장대한 건설물이자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그것을 파괴하면 내일 우리가 다시 건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폭파해야 합니까.” 알렉산드라의 제안에 따라 철교와 화약고는 파괴하지 않았다. 두번째 남편인 B.B. 오가이의 큰 딸 올가 바실리예브나의 말에 따르면, 오가이는 알렉산드라 김이 시를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조선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 가발로 조선 여자들의 머리 모양을 하여, 멀리 떨어진 조선인 마을에서 온 여자처럼 위장하라고 권하였다. 알렉산드라 김은 그 충고를 거절하였다. “소비에트 극동 집행위원회의 책임 간부로서 어떻게 그렇게 대중들로부터 도망갈 수 있겠습니까?” 알렌산드라 김은 오가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알렉산드라는 3백~4백명이나 되는 적국과 함께 ‘바론 코르프’호를 타고 하바로프스크를 떠났다. 이튿날 블라고베첸스크를 지나 거류지 예카테리노-니콜스크에 이르렀을 무렵 혁명을 배반한 아무르 소함대의 군함 두 척이 바론 코르프를 정지시키고 부장해제했다. 정박 통보가 없었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매수당한 바론 코르프흐 선장은 예카테리노-니콜스크측에 배를 넘기고 밤중에 도망하였다. 혁명의 배신자들에게 속은 승무원과 승객 들은 백군 코사크들에게 체포되었다. 조선인들과 함께 체포된 알렉산드라는 학교 건물에 구금되었다. 내가 이 학교를 지나가게 되었을 때, 체포된 조선인 중 한 사람이 내게 소리질렀다. “인섭아, 자네 어딜 가는가? 우리는 모두 여기 있네.” 이 말 때문에 나도 체포되었다. 나도 잡혀서 모두 함께 마당에 앉아 있었다. 김 립과 유돌렬이가 낙담하여 “우리는 보기 드문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알렉산드라는 “당신들은 정말 맹렬하게 일하지 않았는가. 직접 조선의 혁명을 보고 싶다. 괜찮지 않은가. 우리의 사업은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조선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이룰 수 없다면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룰 것이며, 그들이 못해낸다면 손자 손녀들이 해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후손들의 힘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우리는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나, 인섭은 그 때 장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나는 연해주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나는 그것을 말릴 수 없지만, 당신에게 더 큰 규모의 일, 동반구에서의 넓은 활동 영역을 맡기겠다. …총알 하나는 단 한 사람을 죽이지만 한장의 삐라는 적의 모든 군사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나는 선전 삐라와 조선어로 번역한 정치문서를 조선으로 보내는 것이 훈련되지 못한 활동가들을 지휘하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사흘간 우리들은 그와 함께 창고에 있으면서 파업을 하달받았다. 나는 그에게 맡겨준 일을 꼭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체포된 지 나흘째 되던 날 알렉산드라는 다른 장소에 따로 구금되었다. 우리는 그 마음에 14일간 감금되어 있었다. 그 후 하바로프스크로 이송되었다. 알렉산드라·타쉰·네페도프 등은 각각 따로 호송되었다. 우리를 호송해온 배는 3일간 하바로프스크 부두에 정박해 있었는데 그곳으로 주민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부두는 일본군 소대가 지키고 있었다. 체포된 러시아인 둥지들은 칼므이크인 백군 부대로 인도되어 시내로 호송되었다. 체포된 조선인 12명은 부두에 남았다. 코사크들은 우리 12명을 어떤 보상금이나 사례를 받고 일본군 손에 넘기려 하였다. 이 12명 가운데 조선에서 일본 군국주의와 싸우던 세 사람의 정치적 망명자가 있었다. 김 립, 이단열 그리고 나였는데 우리에게는 심각한 위험이 닥쳤다.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상 사태가 벌어졌다. 백군들이 일본군 소대장에게 우리 12명을 접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 때 일본군 소대장은 부두의 질서를 안정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에 바빠 백군의 제의는 예기치 못한 것이었고 불쾌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는 여권을 검사해 일본이 발급한 것이 아니면 체포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증명서를 제출하였다. 그것은 중국 여권이었다. 그러자 일본 소대장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렇지, 우리 여권을 발급받은 자가 어떻게 볼셰비키가 되겠는가.” 그리고 일본어로 백군들을 욕하였다. “바카 ! ” 백군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나는 일본말로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슬그머니 해안으로 내려가 중국인들 사이에 숨어버렸다. 남은 두 조선인은 러시아인 동지들이 감금된 곳으로 보내졌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러시아인 동지들과 함께 나중에 석방되었다. 재판, 그리고 총살 백군들은 감옥에 격리수용되어 있던 알렉산드라 · 타쉰 · 네페도프 동지와, 당과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다른 지도자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알렉산드라는 법정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군사재판정을 공산주의 선전장으로, 적들을 고발하는 무대로 바꾸어 버렸다. 군사재판장은 알렉산드라에게 “당신은 조선인이므로 러시아의 국사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당신을 석방하겠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분개하여 “인정하고 뉘우치라고? 나는 조선인 혁명가로서, 만약 조선 인민이 러시아 불셰비키와 함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달성한다면 조선 민족도 자유와 독립을 얻을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당신은 내가 조선 출신으로서 이 전쟁에 참가한 것으로 여기는가 본데, 나는 러시아 영내에서 태어나 자랐다. 적군 병사들과 함께 이 전쟁에 참가한 수백명의 조선인은 모두 노동자·농민, 조선 애국자들이다. 그들은 소비에트 권력을 방어하는 것이 조선 민족을 해방에 이르게 해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이 전쟁에 참가한 것이다. 몇 달 후면 당신들은 만주에서, 조선에서, 극동 전역에서 손에 무기를 든 조선인들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체포되었지만 내가 해온 혁명 사업은 어디서나 언제나 전개되고 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당신이 말하는 대로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나는 혁명을 배신하고 2천만 조선 민족 앞에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한 재판관이 “만약 여성으로서 당신이 재판관들에게 자기 범죄를 뉘우친다고 호소한다면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당신의 표현은 나뿐만 아니라 이 세계 인구의 반을 점하는 모든 여성을 모독하고 있다. 당신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계급 투쟁에 나뿐만 아니라 수만 명의 여성이 참여하고 있다. 당신은 그 모든 여성에게 자기의 활동을 뉘우치라고 얘기할 수 없다. …몇년 뒤에 극동에서 조선에서 중국에서 전세계에서 여성들이 남자들과 나란히 인간 사회의 모든 생활에 걸쳐 사회주의 혁명 운동에 참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해오던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만의 여성 가운데서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만약 이 세계의 억압받는 여성과 남성들이 자유를 위해서 봉기하여 승리를 거둔다면 전세계는 통일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그리고 사이 좋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의 말대로 여성으로서 자기의 범죄를 뉘우친다면,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배신하고 전세계 여성 앞에 죄를 범하는 게 될 것이다.” 재판관들은 모두 알렉산드라가 인정하고 뉘우치도록 강요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알렉산드라는 짐승 같은 고문을 당하고 가슴과 얼굴에 흉측한 상처를 입었다. 사형 집행후 일본 영사 다쿠치는 사법기관에 알렉산드라의 총살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였다. 이 일은, 적국인 일본 당국도 알렉산드라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그의 활동에 대하여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사건 이후에 하바로프스크 주민들은 그 지역의 아무르 강에서 고기를 낚지 않았다고 한다(이 부분은 올가 바실리예비치 오가이가 이야기한 것임).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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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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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박건웅 단편집
- 제목 : 괴물들 작가 : 박건웅 출판 : 보리 박건웅 작가의 신작이다. 그가 오랜 시간 그렸던 단편을 모았다.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외국의 작가들보다 일반적으로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향이 높다. 그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데, 한국현대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격동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격렬한 과정을 겪었던 것도 한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대개 70년대, 80년대에 태어나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있었으며,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부패, 권력자의 오만과 폭력을 눈으로 보며 자랐다. 여기에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사회에 나와 시민운동을 경험하면서 정치의식이 발달하고, 민주주의 학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작가의 작품에 스며들었다. 작가의 경험은 작품세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특히 그래픽노블이 갖는 장르적 특성은 작가의 자기 서사가 강하고 깊다는 데 있는데, 박건웅을 비롯해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한국현대사와 자기 서사를 일치하는 경향이 많다. 이건 퍽 우연이지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 모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픽노블 작가는 강하고 깊은 자기 서사와 함께 개성 있는 그림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자나 기호보다는 이미지가 그래픽노블의 주제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가 핵심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건웅 작가의 그림은 다른 그래픽노블 작가들과 분명한 변별을 보여준다. 강렬한 흑백의 이미지와 판화 같은 날카로운 선이 있는가 하면, '바람이 불 때'처럼 무채색 유화의 분위기가 나는 그림도 있다. 전체적으로 흑백의 강렬함 속에서 날카로운 풍자를 드러내는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주제와 이미지의 형식이 완벽하게 결합한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박건웅 작가가 소재로 삼는 작품들 가운데는 읽기 불편하고, 힘든 작품이 꽤 많다. 이건 물론 작가의 책임이 아니라, 한국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참혹하고, 잔악하며, 끔찍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 작가는 그런 역사의 비극을 이미지로 그려야 하므로, 독자보다 오히려 더 큰 트라우마를 겪을 것으로 보는데, 그래서 독자는 박건웅의 작품을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게 된다. 작품 '문신'은 단편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고통스럽다. 한 칸, 한 칸의 이미지가 마치 칼날처럼 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일본군이 조선의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은 인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범죄였다. 이런 내용을 심각한 논문이 아닌, 그래픽노블로 본다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작품집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작품과 관련해 그린 것과, 당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 보면서 만든 작품을 모았다. 단편이지만, 마치 연작처럼 작품의 내용과 수준이 일관되고,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은 자가 돌아왔다 보름달이 뜨던 날 오래전에 죽었던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죽은 사람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놀라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들에게 자기 피를 주고 달콤한 빵을 얻어먹다 보니, 점차 피가 모자라게 된다. 죽은 자는 썩어서 흙이 되어야 하지만, 살아 돌아왔다는 것으로 이미 역사의 퇴행을 의미한다. 죽은 자가 산 자의 피를 마시고 생기를 찾을 때, 산 자들은 과거의 역사,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죽은 자가 내미는 빵은 과거의 유산이다. 빵을 먹는 것은,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미래로 나가기를 거부하는 퇴행의 의지를 드러낸다. 과거의 유산이 달콤할수록 불투명한 미래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한다. 죽은 자들이 살아오고, 죽은 자가 마을의 대표가 되고,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이 공급하는 달콤한 빵에 만족할 때, 마을은 쇠퇴하고 사람들은 유령처럼 변한다.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죽은 자들이 마을을 점령한다. 죽은 자와 타협하는 것은 곧 과거로의 퇴행이자 소멸의 시작이라는 걸, 작가는 우화처럼 말한다. 전해 내려오는 모든 우화는 시대의 본질을 담고 있으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며, 우화는 항상 새롭게 해석된다. 넋 사람들이 쌍굴다리 밑에서 모여 있다. 목이 마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는데 동굴 입구에 미군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굴에서 나갈 수 있는지 물어본다.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을 답사하고 그린 작품이다. 한 두 페이지를 넘겼을 때, 노근리 사건 이야기임을 알았다. 작가는 이미 '노근리 이야기'를 두 권으로 펴냈고, 이 단편은 노근리 학살 현장으로 답사를 다녀와서 그린 작품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노근리 철길 아래는 여전히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고, 죽은 넋은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하는 것, 살았어도, 죽었어도 끊임없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목이 마르고, 잘려나간 팔다리를 보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한다. 어둡고, 춥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절망 속에서 이들은 누군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나타난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낯선 말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나타나고, 고통과 절망으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웃는 그들은 군복을 입은 해골이다. 자신들을 죽인 그 미군들이 죽어서 해골이 되어 나타나 다시 그들을 죽이려 한다. 그들은 페인트를 가져와 벽을 지운다. 그들이 쏜 총알이 벽에 무수히 박혀 있는 자국을 감추려 했던 것처럼, 죽은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지우려 하는 것이다. 미군은 죽은 자들을 다시 죽이고, 그들이 남긴 흔적을 지우고, 역사에서도 지우려 한다. 바람이 불 때 1980년 봄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로 헤어진다. 그 뒤 한 사람은 버스에 탄 시민으로, 다른 한 사람은 버스에 총을 쏘는 군인으로 만난다. 5.18 광주에 투입됐던 어느 공수부대원의 증언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5.18 광주민중항쟁 시기에 있었던 비극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광주에 살던 청춘 남녀는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남자는 군에 입대한다. 공수부대에 배치된 남자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고, 부대원들이 광주 외곽을 지나가는 버스에 집단 난사를 해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 모두를 학살한다.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한다는 연인은 버스를 타보라는 남자의 말을 듣고, 남자를 면회가기 위해 멀미를 참으며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 그날, 그 버스에 남자의 연인이 타고 있었다. 이 사건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을까. 작가는 공수부대원의 증언으로 재구성했다. 연인들이 시민과 군인으로 만났다면, 그 군인은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고,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상관의 말을 믿었다면, 총을 쏜 군인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모르고 저지른 학살이라도 학살자의 죄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현대사사의 비극 가운데 가장 큰 비극은 대부분 해방 이후에 국내에서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 많다. 그 군부의 상급자들은 거의 대부분 일제시대에도 군인이었으며, 친일파들이었다.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차지하고, 국민을 학살했으며, 독립운동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학살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거인 캄캄한 굴 속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만났던 귀족과 거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을 사람들은 거인이 모든 것을 다 해 줄 것이라는 귀족의 유혹에 속아 넘어가고, 마을의 강은 점차 죽음의 강으로 변해 간다. 소박하게 살아가던 마을 주민에게 귀족이 찾아온다. 귀족은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가)이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많다. 귀족은 지배자일 수도 있고, 엘리트일 수도 있으며, 이명박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순박한 마을 주민을 꼬드기고, 욕망을 부추킬 때, 사람들은 그 욕망을 좇는다. 어리석고 무지한 대중은 그 자체로 죄악이다. 사기 치는 놈은 당연히 나쁘지만, 멍청하게 그 사기에 동조하고, 보이지 않는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 역시 사기꾼의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다. 민중이 언제나 옳거나 지혜롭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거의 대부분 어리석고 멍청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어리석은 민중은 조금씩 깨어났고, 지혜로워졌다. 욕망의 부추김에 수없이 속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무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귀족이 데려온 거인은 탐욕과 욕망의 현현이다. 탐욕과 욕망은 추구할수록 커진다. 그것은 끝도 없이 자라며, 더 많은 것을 삼키고, 더 많은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 거인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에서 잠들어 있다. 언제든 어리석은 인간이 깨울 날을 기다리며. 거인과 소인 오래전부터 소인들은 거인에게 음식과 재물을 바치며 평생 살아왔다. 어느 날 더 바칠 것이 없어지자 거인은 소인들의 자식도 바치라고 요구한다. 결국 소인들은 모두가 힘을 합쳐 거인을 물리치고 새로운 왕을 뽑아 새로운 왕국을 만들지만, 왕은 또다시 거인이 되어 나타난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존재는 스스로 작아진다. 거인과 소인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존재다. 그것은 상대적이며,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 거인은 권력자다. 아니, 권력자를 거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스스로 소인으로 만든다. 권력의 유무에 따라 인간의 존재가 거인과 소인으로 나뉘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걸 의미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규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을 준 것은 다수의 인민이지만,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권력과 '자기'를 일체화한다. 권력과 존재의 일체화는 개인을 권력의 화신으로 만든다. '개인'이 작아지지 않는 방법, 권력을 가진 자가 거인으로 보이지 않는 방법은 올바른 투표 뿐이라는 걸 작가는 우화로 말한다. 괴물들 아버지는 사막 너머에 괴물들이 살고 있으며 호시탐탐 마을을 위협하기 때문에 괴물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괴물을 잡으러 사막 너머로 가, 괴물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그 자식을 인질로 데려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괴물을 잡으러 가자고 말한다. 괴물들은 작고 약했지만, 거대한 아버지는 그 괴물을 죽이고, 사로 잡아 마을로 데려온다. 그런데, 마을의 주민들과 잡아 온 괴물의 모습은 같다. 마을 주민들은 괴물을 잡아온 거인을 '나리', '아버지'라고 부른다. 나리가 잡아온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배자는, 권력자는 자기가 다스리는 마을 사람과 똑같은 사람을 두고 '괴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때로 '빨갱이'이며, '종북'이며, '반미'이며, '친북'이며, '친중국'이며, '장애인'이며,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이며, '성소수자'이며, '사회적 약자'들이다. 나리는 이런 소수자들을 '괴물'이라고 말하고, 이들을 혐오하도록 부추기고, 이들을 때려잡고, 이들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정작, 평범한 사람을 '괴물'이라고 말하는 '나리'는 눈이 하나인 진짜 '괴물'이다. 봄섬 태준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어려운 집안 환경 속 고민을 친구들에게 털어놓는다. 밤하늘의 별은 반짝이는데 그 순간, 태준이는 어떻게 이 섬에 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를 기록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의 이야기는, 한국현대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과 맥이 닿아 있다. 제주4.3, 노근리, 광주5.18로 이어지는 학살의 주범은 늘 권력이었고, 동족을 참혹하게 살해했다. 노근리는 외국군(미군)이 피난하는 민중을 학살한 사건이었지만, 그것 역시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 탓이었으니, 이 땅의 민중은 늘 그렇게 죄없이 죽임을 당하는 존재였다. 세월호 참사는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그 모든 학살 사건의 정점이자, 마지막 사건이다. 이 사건을 만든 박근혜 정권의 뿌리는 저 멀리 일제강점기의 일본 관동군 소좌 박정희로 거슬러 올라가고, 독립군을 때려잡았던 조선일본군 박정희와 백선엽으로 시작해서, 해방 이후 조선의 민주주의자들을 암살하고, 때려잡던 일제 앞잡이 군인과 경찰로 이어지며, 친일파를 앞세워 나라를 망가뜨린 이승만을 거쳐 제주4.3에서 제주도 민중을 '어린아이도 모두 학살하라'고 명령한 이승만과 조병옥이를 비롯해 학살의 주범들이 권력을 쥐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좌우의 이념을 선택한 박정희는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 수없이 많은 민주주의 시민과 학생을 학살했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것은 필연이었다. 학살자를 아버지로 둔 박근혜는 대를 이어 권력을 잡았지만,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인간 허수아비였고, 최순실의 노리개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렸다. 국민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권력은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해경은 학살 현장을 방조, 동조했다. 이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로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진실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고, 학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아파트 새로 지은 아파트 벽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주민들은 누가, 왜, 어떻게 시체로 발견되었는지보다 당장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걱정부터 하는데…. 그 비밀을 추적하던 9층 남자는 마침내 아파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파트공화국에 대한 통렬한 풍자. 아파트를 세우는 사람들은 노동자다.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으로 공사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는다. 이렇게 죽는 노동자들은 거푸집에 버려져 콘크리트와 함께 묻히고, 비싸고 화려한 아파트가 준공되어, 은행빚을 왕창 얻은 중산층은 아파트를 사면 곧바로 2배, 3배 아파트 값이 뛸 것을 기대한다.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사람의 생명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파트 벽에 사람의 시체가 드러나도 '예술작품'이라고 견강부회하며 오히려 아파트의 가치를 높인다고 말하는 목사의 말은, 아파트 가격이 지상 최고의 가치이자, 욕망의 절정이라는 걸 잘 드러낸다.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시체를 꺼내 국을 끓여 먹고, 살아 있는 사람도 잡아 먹는 지경에 이른다.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사회는 인간의 윤리, 도덕, 염치, 사랑이 사라진 사회다. 오로지 돈, 물질, 가치, 욕망이 전부인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명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반 평범한 국민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 70%가 아파트라고 하니, 아파트 가격의 오르내림은 이들에게 목줄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아파트 가격의 80%까지 은행에서 빚을 얻어 매입하고, 매달 이자를 내고 있으니,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면 이들은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이다. 이들,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욕망에 매달리도록 만든 것은 권력과 자본이다. 인간의 이기와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는 사람의 생명보다 아파트 가격이 더 중요하도록 만들었다. 서로를 잡아 먹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의 잔혹함은 주민들이 또 다른 주민을 잡아 먹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식인'은 단지 오래된 관습이 아니라,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을 통해서만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낸다. 천국과 지옥 1 죽은 자들은 천국의 문 앞에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된다. 하나님을 믿고 십일조를 해야만 천국으로 갈 수 있고, 돈 없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시간이 흘러 천국은 부패한 사람들로 가득해 살기 힘들어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천국 사람들은 결국 지옥으로 향한다. 한국 개신교를 신랄하게 풍자한 내용. 천국과 지옥은 흑과 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개신교의 맹점을 드러낸다. 세상이 오로지 천국과 지옥으로만 존재한다는 이 멍청하고 한심한 생각은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든다. 조 아무개를 닮은 천사는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갈 지, 지옥으로 갈 지 선별한다. 예수를 믿은 사람,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회개했다는 사람, 돈이 많아서 뇌물을 바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가난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 천국은 범죄자들, 사기꾼들,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지옥은 가난한 사람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산다. 천국에서는 온갖 범죄가 일어나고, 서로를 죽이고, 악행이 벌어지면서 천국에 살던 사람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지옥으로 탈출한다. 차라리 지옥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천국은 타락하고, 멸망한다. 그렇게 지옥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지옥이 너무 평화롭고, 살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옥은 화염이 불타고, 악마가 창과 칼로 사람들을 난도질 하는 것이었지만, 이 지옥은 가난하지만 오손도손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타락하고 멸망한 천국을 버리고 지옥으로 내려 온 조 아무개 천사는 지옥에 다시 거대한-천국을 찌를 만한-교회를 짓고 신도를 모으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교회에 관심이 없다. 교회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지옥은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진짜 '예수'가 살고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지옥으로 내려 온 예수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유령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유령이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 학생, 노동자가 계급으로 인식되는 학원 풍경 속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유령이 아닌 사람으로서 권리를 되찾으려 한다. 청소노동자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고용으로 고통당하는 청소노동자는 현장에서도 유령 취급을 받는다. 누구도 아는 척 하지 않고, 무시하는 하찮은 존재. 그들이 누구건, 교수, 대학생, 사무직 노동자들 모두, 청소노동자를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자신도 노동자이면서 청소노동자를 마치 벌레처럼, 노예처럼 여기는 그들의 시선은 천박하게 비뚤어져 있다. 신분제 사회는 인간을 차별하고, 등급화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주인이고, 노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인 것이 당연하지만, 여기에 다시 신분제가 자리 잡는다. 교수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분명하지만,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은 대부분 미래의 노동자가 되지만, 청소노동자를 외면한다. 노동자도 대기업 정규직, 대기업 비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중소기업 비정규직, 하청업체 비정규직 등등 무수히 많은 차별과 차등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혐오한다. 청소노동자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신분의 노동자다. 그런 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순간, 유령이었던 청소노동자는 존재를 찾게 되고, 다른 노동자와 동등하게 노동자의 위치를 갖게 된다. 노동자는 단결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고, 실존의 인격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죄와 벌 술을 먹고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가고, 성범죄 피해자는 사람들의 눈총과 속앓이로 더 움츠리고 숨어 지내야 하는 현실을 대비하여 보여 준다. 한국에서 성범죄는 매우 가볍게 처벌한다. 성범죄자의 95% 이상이 남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법부는 성범죄를 남성 범죄로 규정해도 좋은데, 남성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의 법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성범죄를 부추기고, 남성의 성범죄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것은 결국 사법부가 성범죄자인 남성들을 옹호하고 보호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에는 소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뒤집어 보면, 성범죄 피해자의 95%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사법부까지 피해자인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현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남성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사회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국과 지옥 2 지옥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아가던 예수가 지상이 살기 힘들다는 기도를 듣고 지상으로 향한다.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교회의 부조리함을 알게 된다. 지옥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예수는 자기를 팔아서 먹고 사는 목사와 대형교회를 보면서 절망한다. 특히 한국의 개신교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예수를 팔아서 무지한 신도들의 등을 처먹는 목사와 교회가 매우 많고, 어리석은 신도들은 그런 목사와 교회를 아무 생각없이 추종한다. 신도들은 '신' 또는 '하나님' 또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믿고, 목사의 말을 진리로 믿는다. 어리석은 신도와 탐욕에 찌든 목사가 만나서 소돔과 고모라의 막장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살아서 한국에 오면 노숙자 소리를 듣고, 사기꾼 소리를 듣게 된다. 예수를 등처먹는 목사가 나타나고, 예수는 목사에게 이용당하고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신'이라는 예수마져도 하찮게 만드는 한국 개신교의 탐욕과 욕망의 크기는 초대형 크기의 교회로 등장한다. 세계 최고 크기의 교회를 짓는 한국의 개신교는, 목사가 대를 이어가며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고, 교회를 부동산 가치로 계산하는 철저한 물신주의를 따른다. 문신 열세 살 소녀는 어느 날 일본군에게 끌려가, 혜산시 군부대 막사에서 다른 소녀들과 함께 성노예로 지내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이토 다카시가 40년 동안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흑백의 단순한 형태로 그린 만화지만, 차마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일본군이 저지른 이 참혹한 만행은 필설로 표현하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잔혹하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주인공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온몸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다. 일제의 만행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일본은 한국의 성노예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 일본은 자기 나라 국민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일본군이 저지른 이 잔혹하고 악귀의 행위를 은폐하는 것만으로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일본의 만행을 더 널리 알리고, 성노예 피해자를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 세균 지구에서 가장 하등한 동물로 취급되는 세균. 어느 날 이 세균을 믿기 힘들 정도 귀하게 대접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세균을 통나무에 넣고 이런저런 실험을 자행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잊히지 않는 실험이 있다. 일본군 731부대의 만행을 그린 내용. 일본군은 세균전을 준비하기 위해 세균실험을 하는 특수부대를 만들어 조선인과 중국인을 잡아와 생체실험을 했다. 그 내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참혹해서 필설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731부대에서만 일본군의 실험대상으로 약 1만 명의 중국인, 조선인, 러시아인, 몽골인이 죽었고, 731부대가 개발한 세균을 중국에 투하해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세균 감염으로 죽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것부터, 그들이 저지른 악행은 나찌가 저지른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가스 학살보다 훨씬 더 잔혹한 행위였다. 일본은 끝내 이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서 만들어진 자료는 미군이 가져갔다. 미군 역시 731부대의 만행을 알았지만, 자료를 넘겨 받는 조건으로 전쟁범죄를 문제 삼지 않았으므로, 강대국의 논리는 정의보다는 자국의 이익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동안 긴 밤이 올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밤이 상당히 길기 때문에 대통령은 모두가 긴 잠을 자야 한다고 대국민연설을 한다. 어느 날 모두가 잠든 피난소에 괴물이 나타나 사람 피를 빨아 먹는데, 그 모습을 잠들지 못한 소녀가 보게 된다. 침묵하는 대중은 권력에 잡혀 먹힌다. 권력은 낮은 밤으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으며, 밤이 되면 모습을 바꿔 괴물이 된다. 그들은 대중의 피 - 재산은 물론 가족, 이웃, 친구, 우정, 정의, 민주주의, 연대, 우애, 윤리, 도덕, 사랑 - 를 먹고 사는 존재다. 괴물을 막으려면 대중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서 행동하는 시민, 단결하고, 힘을 모으고, 합심해 괴물을 막겠다는 의지를 가진 대중은 괴물(권력)에 잡혀 먹히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번 괴물에게 잡혀 먹혔던 기억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이명박 사기꾼, 박근혜 등 사악하거나 멍청한 권력에게 빛을 빼앗기고, 오랜 시간 잡아먹혔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대중은 깨어났고, 서로 힘을 모아 괴물을 물리쳤다. 촛불 집회가 그 생생한 기록이자 증거다. 우리는 촛불을 들어 어둠을 밝혔고, 괴물(권력)을 쫓아냈으며, 마침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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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박건웅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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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 제목 :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작가 : 유디트 바니스텐달 출판 : 미메시스 가족이 겪는 아픔과 슬픔을 잔잔하면서도 감동 있게 그려낸 그래픽노블.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버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이 시작하기 전에 가족 관계도를 보여준다. 이 관계도를 보여주는 작가의 의도는, 이 가족이 어떻게 맺어졌는가를 독자가 미리 알기를 바라는 것이고, 이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작품에는 모두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이 나오지만, 작품에서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은 네 명이다. 루이즈는 너무 어려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귀여운 아기로만 등장한다. 주인공 다비드는 1946년생으로, 여행서적 전문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혼한 전처 율리아와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지만 둘 사이에서 낳은 미리암과는 가깝게 지낸다. 다비드는 파울라와 재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이 차이가 열일곱 살이어서 딸 미리암과 새엄마는 불과 열세 살 차이여서 엄마라기보다는 언니 같은 느낌이다. 미리암은 혼자 아이를 출산하는데, 미리암의 딸 루이즈가 2000년 생인데, 다비드와 파울라의 딸 타마르는 1992년으로 불과 여덟 살 차이나는 이모와 조카 사이가 된다. 미리암과 타마르는 이복 자매면서 열여섯 살 차이가 난다. 이런 가족 관계를 바탕으로, 작품은 네 사람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다비드는 친구인 의사 조르지 앞에서 자신이 후두암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직 어린 딸 타마르였다. 어린 딸을 두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다비드는 진한 슬픔이 차오른다. 다비드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유모였다. 유모는 쓰러진 다비드에게 나타나 용기를 주고, 희망을 심장에 넣어준다. 미리암 미리암은 2000년 4월,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에서 혼자 아이를 출산한다.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서 루이즈를 낳는다. 미리암의 출산 방식은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 또는 제왕절개술로 출산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미리암의 자연분만, 그것도 물속에서 아이를 낳는 방식은 특별하면서 아름답게 보인다. 아빠와 새엄마, 이복동생은 모두 미리암이 아기를 낳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아이를 낳고 미리암은 루이의 전화를 받는다. 루이즈의 아빠이기도 한 루이는 미리암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만났다. 그때 이미 루이는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미리암도 사랑한다고 했고, 두 사람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랑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걷는데, 루이는 목수로 일을 하는데, 나무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미리암은 보도사진 작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코소보 전쟁에 종군기자로 갔었다. 여기서 잠깐, 미리암이 갔던 코소보 전쟁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코소보 전쟁은 내전의 성격이었지만 미군과 나토군이 개입하면서 국제전쟁으로 확산한 전쟁이다. 1998년 2월에 시작해 1999년 6월에 끝난 전쟁으로 알바니아계 준군사조직인 코소보해방군과 유고슬라비아연방공화국 정부군이 상대였다. 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발상지로 세르비아 영토였으나 오스만 제국에게 전쟁에서 패하고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무슬림계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에 살기 시작하면서 알바니아인 비율이 높아졌고, 1974년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유고연방 내 자치주로 승격했다. 1980년, 티토가 죽고나서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세르비아 공화국에서 집권하자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의 성지라는 이유로 코소보의 자치를 박탈한다. 이 조치에 분노한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1995년 코소보해방군을 결성해 무장투쟁을 시작한다. 1998년 3월, 코소보해방군이 먼저 지역을 순찰하던 세르비아 경찰을 사살했고, 세르비아가 주세력이었던 유고연방은 정부군을 코소보로 파견해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미리암은 이 전쟁에 종군기자로 들어갔지만, 아이까지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보면서 트라우마가 생겼고, 더 이상 전쟁 사진을 찍지 않게 된다. 미리암이 루이즈를 낳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 다비드를 만났을 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빠에게 그 말을 듣는 미리암의 손이 떨리고, 자러 들어갔던 타마르도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울면서 나온다. 미리암은 새엄마 파울라에게 아버지의 암 이야기를 꺼내지만, 파울라는 미리암에게 화를 낸다. 남편 다비드나 미리암 모두 너무 과묵해서 마음을 나누지 않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바싹 마른 아버지의 모습에서 해골이 된 아버지의 환영을 보고, 죽음의 사신과 춤을 추는 꿈을 꾼다. 타마르 타마르는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5일 동안의 여행이지만 옆집 친구 맥스와 헤어지는 건 더 오랜 시간처럼 느껴진다. 타마르의 엄마 파울라는 남편에게 왜 같은 장소로만 여행을 하느냐고 묻지만 다비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마 지난 5년의 세월이 다비드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 시기에 지금의 아내 파울라를 만났고, 둘 사이에 타마르가 태어났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 그 여행지에서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다비드가 딸 타마르와 단 둘이 그 여행지로 떠나는 것도, 어린 딸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소박한 소망은 아닐까 생각한다. 호수에 도착해 다비드는 낚시를 하고, 타마르는 수영을 한다. 물속으로 잠수한 타마르는 인어를 만난다. 타마르는 인어에게 멀리서 낚시하고 있는 아빠를 보여주며, 자기를 낳아준 사람이라고, 하지만 곧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타마르는 아빠와 장을 보러 가고, 배를 타고 낚시로 물고기를 낚아 배에서 직접 구워 먹는 소소한 일상을 누린다. 맥스가 쓴 편지를 파울라가 풍선에 묶어 보내면, 호수 여행지에 있는 다비드가 받아서 요트 돛대 기둥에 묶어 놓고 타마르에게 편지가 왔다고 알려준다. 물론 진짜 편지는 우편을 통해서 오지만, 아이들의 꿈을 살려주는 어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는 것도 정겹다. 타마르가 잠든 밤, 다비드는 선착장에 홀로 앉아 유모가 심어준 희망을 조금씩 꺼내보면서 기운을 잃지 않으려 하지만, 어린 딸을 생각하면 암으로 아픈 것보다 더 마음이 아리다. 타마르는 아빠와 둘이 배에서 잠을 자며, 별들이 쏟아질 것같은 하늘을 바라보다 묻는다. '영원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세상은 모두 죽는다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타마르는 호수의 인어와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와 맥스를 만난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맥스와 놀고 있던 타마르는 아빠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는다. 타마르는 작업실에 있던 엄마를 부르고, 구급차에 실려 다비드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다. 파울라 병원에 입원한 다비드의 상태를 보던 파울라는 주치의이자 다비드의 친구인 의사 조르지에게 남편의 상태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다비드의 후두암은 이미 온몸으로 퍼져 있었고, 앞으로 남은 기간이 길어야 6개월이라는 말을 듣는다. 퇴원한 다비드를 돌보며 자기 일-패브릭 디자이너-을 하는 파울라는 헬싱키에서 닷새간 객원 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다비드나 옆집 맥스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며 헬싱키에 다녀오라고 말하지만, 남편이 언제 죽을까 애태우는 파울라는 다비드에게도, 맥스 엄마에게도 화를 낸다. 그는 슬프면 화가 난다고 했다. 다비드가 죽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파울라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헬싱키로 떠난다. 그는 호텔에 도착해 호수가 있는 곳으로 산책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 노인에게 남편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노인에게서 건강했을 때 남편에게서 맡았던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파울라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타마르는 이제 아홉살이 되었다. 파울라가 작업실에서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가족이 모두 사라졌다. 맥스 엄마는 모두 병원에 갔다고 말한다. 파울라가 병원에 도착해 다비드 병실에 들어섰을 때, 타마르 홀로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파울라는 다비드의 마지막 순간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다비드 몸 상태가 조금 좋아질 때면 딸 타마르와 놀아주지만 그보다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약에 취해 깊이 잠들거나 통증으로 괴로워한다. 다비드는 이제 헛것을 본다. 딸 미리암이 헤어진 아내 율리아로 보인다. 다비드와 미리암의 대화를 들어보면, 다비드의 전 아내 율리아도 일찍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암 종양이 식도를 누르자 조르지는 후두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후두를 제거하고, 말을 할 수 없는 다비드는 종이에 연필로 필담을 한다. 통증으로 몹시 괴로워하는 다비드. 마지막으로 가족 모두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비드는 친구 조르지에게 자신의 삶을 끝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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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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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땀-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 제목 : 바늘땀 작가 : 데이비드 스몰 출판 : 미메시스 작가의 자전적 성장 이야기. 여섯 살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집을 나올 때까지의 시간에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주인공 소년과 가족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여섯 살 아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데이비드는 방사선과 의사인 아버지 에드와 전업주부 엄마 베티, 형 테드, 넷이 한 식구로 살아가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막내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중산층 가족으로 보이지만, 소년의 눈에 보이는 부모의 모습은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엄마는 웃는 모습이 드물고, 한번 화가 나면 일주일, 한달씩 집안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곤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퇴근하면 지하실에 매달아 놓은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형 테드는 드럼을 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막내인 데이비드는 우울한 집안 분위기와 화를 참지 못해 난폭한 행동을 하는 엄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꾀병을 앓았다. 데이비드는 대개 혼자였으며,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밖에서 혼자 놀거나,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의 마법사'에서 앨리스가 되는 꿈을 꾸며 앨리스 흉내를 내다 동네 아이들에게 게이, 호모, 변태, 기지배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봄방학 때, 아버지는 형 테드와 친가로 떠나고, 데이비드는 엄마를 따라 외가를 방문했다. 가족이 이렇게 갈라져서 각자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것도 신기하다. 어린 데이비드는 정확히 몰랐지만,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달랐다. 다정다감하지도 않았고, 데이비드를 살뜰하게 보살피지도 않았다. 게다가 외가가 있는 인디애나 남동부까지 가는 동안 엄마는 마치 남의 집안 이야기처럼 당신의 가계에 관해 데이비드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내용은 겨우 아홉살 아이가 듣기에는 잔인한 내용이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댄스파티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사랑했고, 외할머니가 임신하자 결혼하려 했지만 외할아버지의 부모님(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머피 부부)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두 사람은 집을 나와 집안 소유의 땅에 있는 오두막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아이(데이비드의 엄마)를 낳았지만, 아이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었다. 데이비드의 엄마가 열 살 때 외할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사망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증조할머니의 구박과 핍박이 심해지자 사유지를 떠나 코너스빌로 이사했고, 할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다 재혼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배수관 세정제를 마시고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성대가 타버려 목소리를 잃었다. 시간이 흘러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을 때, 집안에서 그녀가 훔친 물건이 쏟아져 나왔다. 포목점에 들를 때마다 물건을 훔쳤는데, 포목점에서는 증조할아버지에게 전화했고, 증조할아버지는 곧바로 돈을 지불했다. 데이비드가 기억하는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린 데이비드가 엄마를 따라 외가를 방문했을 때, 외할머니는 재혼해 존과 살고 있었다. 존 할아버지는 장의사에서 일했고,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었다. 반면 외할머니는 괴팍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이상한 노인이었다. 데이비드는 엄마에게 할머니가 미친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데이비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태도와 엄마의 태도는 매우 비슷했다. 데이비드가 열한 살이 되었을 때, 집에서 병원 부인회 친목회가 열리곤 했는데, 외과의 남편을 둔 딜런 아주머니가 데이비드의 눈길을 끌었다. 딜런 아주머니가 방문할 때는 늘 우울하던 엄마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무렵, 데이비드의 목에 혹이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에서 목에 생긴 혹을 검사하고, 열네 살에 혹 제거 수술을 받는다. 이 무렵은 데이비드의 아버지도 승진하고 수입도 많아져서 새 차를 구입하고, 집안 가구도 새 것으로 바꾸는 등 데이비드의 부모는 비교적 행복하게 지낸 것으로 보인다. 수술은 간단하다고 했지만, 두 번을 했고, 첫 수술에서는 목소리가 잘 나왔지만, 두 번째 수술을 받고나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의 한쪽과 편도선이 사라진 것이다. 집안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고, 가족들은 모래알처럼 따로 놀았으며, 목소리를 잃은 데이비드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치 유령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우연히 자기가 받은 혹 제거 수술이 사실은 후두암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 누구도 그 혹이 암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수술을 받고 나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살았지만, 어쩌면 후두암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여전히 데이비드에게 냉랭했고, 가족들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다. 데이비드는 학교에 가지 않고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며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의 차를 훔쳐타고 도망가다 잡혀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고, 부모가 기숙학교에 강제로 전학시켰지만 세 번이나 탈출하다 퇴학당했다. 열 다섯 살이 되는 해, 데이비드는 문제 학생이 되어 심리상담을 받게 되는데, 그때 만난 상담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 선생님-헤럴드 데이비드슨-은 데이비드에게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한다. "네 어머니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 말을 들은 데이비드는 충격을 받고,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응어리를 헤럴드 선생에게 풀어 놓는다. 데이비드는 부모에게 '방치형 학대'를 당했던 것이다. 부모의 학대는 자식에게 여러 형태로 드러나는데, 폭력을 쓰지 않는 학대도 있다는 걸 부모도, 아이도 모르는 상태로 지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심리상담을 하는 헤럴드 선생을 만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지만, 그의 가족은 서서히 그러나 그동안 쌓였던 불만, 부정, 냉대, 위선이 드러나면서 붕괴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가 어느 날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의 침실에서 그가 좋아했던 딜런 아주머니를 발견한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엄마의 냉랭한 시선과 마주치면서 그동안 겪었던 엄마의 냉대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를 느낀다. 뒤 이어 외할머니가 존 할아버지를 지하실에 가두고 집에 불을 질러 주립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는 데이비드의 목에 암이 생긴 것은 자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아버지는 데이비드가 어릴 때 필요 이상으로 방사선을 많이 쬐어 암이 발생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쩌면 죄책감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데이비드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고백했을 것이지만, 진실은 알 수 없었다. 데이비드는 열여섯 살이 되자 집을 나와 따로 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디트로이트 외곽의 폐가에서 지냈는데, 이곳에는 집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몰락해서 내몰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데이비드는 학업과 함께 그림을 열심히 그렸고,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예일 예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뉴욕의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엄마를 만난 것은 서른 살이 되던 해, 엄마가 위독하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엄마는 아무 말없이 눈을 감았고, 데이비드도 애달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린 데이비드는 어려서 정서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이걸 알게 된 것은 그가 열 다섯 살, 문제아로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헤럴드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였으니 어린 데이비드가 겪었을 심리적 고통을 생각하면 독자의 마음도 먹먹하고 답답해진다. 정서적 학대를 한 사람이 엄마와 아버지 모두 였을 걸로 생각하는데, 특히 엄마는 자신도 어려서 정서적 학대를 당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결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의 외할머니는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지는데, 외할머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시부모(데이비드의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구박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그때 외할머니는 임신한 상태였고, 임산부는 평상보다 훨씬 정서적, 육체적으로 민감하고 여린 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임산부를 더 따뜻하고 안락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이 할 일이지만, 외할머니의 시부모는 오히려 자식 내외를 거부하고, 구박하며, 못 살게 굴었다. 그렇게 나쁜 인성을 보였던 증조할머니는 결국 상습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그의 도벽은 역시 그의 집안 환경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집안 내력에 속된 말로 '나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외가 쪽으로 이렇게 좋지 않은 환경이 이어지면서 데이비드의 엄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어른들이 보이는 기이한 행동이 어린 데이비드에게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데이비드의 엄마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아마 오래 전-어쩌면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는 여성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 당할 각오를 해야하므로 평범한 여성으로는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데이비드의 엄마 베티는 자신이 레즈비언으로 있을 때-딜런 아주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정상'의 인물로 돌아온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인할 때는 행복했던 것이다. 베티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에 남편도, 자식도 모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삶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 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았는지, 끝내 몰랐는지 작품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그 질문을 끝내 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 아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부부라면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부는 아이를 낳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가족,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베티가 죽은 다음에도 에디는 재혼해서 여든 네 살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정서적 학대를 당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원만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은데, 데이비드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고, 과거의 자신, 과거의 가족을 객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당시의 상황과 심리를 이해하고,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다는 것, 그림을 매우 잘 그려서 그것으로 직업을 삼고, 학업을 마치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어려서 정서적 학대를 당한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을 감안할 때,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면서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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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땀-정서적 학대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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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그림자
- 제목 : 세 개의 그림자 작가 : 시릴 페드로사 출판 : 미메시스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맞닥뜨렸으나, 그 운명을 거부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신화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가족-루이, 리즈, 조아킴-에게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이 나타난다. 이들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그저 멀리서 가족을 지켜볼 뿐이다. 루이는 성실한 농부로 부지런히 농사 짓고 가족을 지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평범한 사람이다. 아내 리즈도 남편과 아이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집을 돌보고, 살림을 맡아 하는 살뜰한 여성이다. 좋은 부모를 둔 조아킴은 구김살 없이 나날이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보낸다. 평화로운 풍경, 아름다운 자연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부족함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가족에게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세 명은 누구일까. 루이와 리즈는 그들이 아들 조아킴을 데리러 온 사신이라고 믿는다. 루이는 그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려 대결을 펼치고 싶지만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리즈는 마을에 사는 주술사를 찾아가 부적을 써 오지만 역시 효험이 없다. 루이가 아들 조아킴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집을 떠나 죽음의 사신이 쫓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는 것 뿐이다. 다가올 운명을 피해 길을 떠나는 것은 전형적인 영웅의 서사이기도 하다. 영웅은 운명과 맞닥뜨려 운명과 싸워 이기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하지만, 운명과 맞서 싸워 처절하게 몰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닥쳐올 운명을 알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운명을 피해 도망하는 것이겠다. 그렇게 루이는 아내 리즈를 집에 남겨둔 채, 아들 조아킴을 데리고 세 개의 그림자를 피해 길을 나선다. 그 길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길이라는 걸 이들도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이들의 아늑한 생활은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순간 깨졌고, 미래는 불안과 두려움이 지배할 것임을 예감한다. 신화적으로 본다면, 루이와 리즈는 인류의 앞선 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세 개의 그림자 즉, 죽음, 자연, 질병에 맞서 후손의 생존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루이는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내놓고 배를 탈 수 있는 탑승권을 구입한다. 재산을 다 내놓고라도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멀리 도망쳐야 하는 절박함이 드러난다. 그 절박함은 곧 조아킴을 지키려는 굳건한 마음이기도 하다. 사흘을 건너야 하는 거대한 호수는 바다처럼 넓어서 비바람이 거세게 불고, 태풍이 몰아친다. 루이는 세 개의 그림자를 따돌렸다고 생각하지만, 배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루이는 살인자로 지목되어 조아킴과 함께 감옥에 갇힌다. 태풍으로 배가 가라앉고, 루이와 조아킴은 겨우 살아나는데, 두 사람을 구해 준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두 사람을 극진하게 구명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루이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세 개의 그림자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서로 떨어져 고생하는 것보다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루이가 이미 건너온 호수를 다시 되짚어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자신을 구해준 노인은 조아킴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하겠다고 제안한다. 루이는 자신의 목숨과 조아킴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한다. 노인은 루이의 심장을 꺼내고, 조아킴을 지킬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부여한다. 이 장면은 신화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루이의 심장 즉 '생명'의 상징을 꺼내는 것은 하나의 삶이 끝나는 걸 뜻한다. 루이가 한 명의 개체로서의 영웅이든, 어느 집단을 상징하든 그 집단, 세대, 영웅은 소멸하고, 그가 가진 힘과 권위가 다음 세대를 지키게 된다. 노인은 '절대자'이며, 앞선 세대를 끝내면서 뒤이어 오는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부여한다. 앞선 세대의 희생에 의해 후손은 살아갈 여지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뒤이어 루이와 조아킴을 뒤따라오던 세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악, 재앙, 폭력, 질병과 같은 부정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시간, 행복, 슬픔 같은 것이어서 그렇게 공포에 떨 만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루이가 세 개의 그림자 정체를 일찍 알았다면 과연 그렇게 가족과 헤어지면서까지 힘겨운 길을 떠났을까. 심장을 내준 루이는 거대한 불멸의 존재로 변하고, 조아킴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는 자신의 몸도 지키지 못하고 쓰러진다. 루이는 인류의 역사를 의인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인류가 만드는 역사의 한 가운데를 지나며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인류의 생존 과정을 드러낸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조아킴(인류의 후손)은 세 개의 그림자와 함께 떠난다. 결국 인류가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것들은 인류의 힘으로 저지하기에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다. 세 개의 그림자가 공포, 두려움, 재앙이든 시간, 행복, 슬픔이든 인류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결국 루이는 집으로 돌아가 리즈를 만나 두 딸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환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루이가 말하는 동양의 격언, '일어서서 버텨라. 그리고 삶이 있는 곳에 머물러라.'는 말은 현실의 삶,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이 인류 본연의 모습임을 깨닫게 한다. 작가의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그림은 이 이야기를 납득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흔히 사용하는 펜과 잉크가 아니라 붓펜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세필붓으로 매우 가는 선으로 그리고 있는데, 붓선은 펜선보다 부드러우면서 선의 굵기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펜선으로는 톤의 느낌을 내기 어려운 반면, 붓선은 선의 강약과 얇고 두꺼움을 통해 짙거나 옅은 선과 면을 그릴 수 있어 톤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붓선은 선의 외곽 뿐아니라 면을 그리는데도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그리는 선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어 실력이 출중하다는 걸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한 경력만 봐도 실력은 검증이 되었지만, 이야기와 그림이 잘 어울리고 있어서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한국어 번역판에서 말풍선 안에 들어가는 대사의 글꼴도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손글씨 글꼴을 쓰고 있어서 작품의 품질을 높였다. 만약 말풍선 안의 활자를 보통 인쇄체 글꼴로 썼다면 그림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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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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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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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 제목 : 포르투갈 작가 : 시릴 페드로사 출판 : 미메시스 잘 만든 양장본에 두툼한 두께의 이 그래픽 노블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이자 장점인 그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그래픽 노블을 선택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림이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이 수준 이하라면 보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내용은 별로인데 그림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래픽 노블에서 최우선 요소는 역시 그림이다. 지은이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고, 이후 만화가로 전업하면서 유명한 만화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책만 봐도 말할 필요 없이 최고의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삼부작으로 구성되었고, 주인공 시몽 뮈샤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만화가지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고, 삼대로 이어지는 집안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시몽 이야기 주인공 시몽은 만화가로 작품집도 발표한 작가지만 심각한 슬럼프 상태에 있다. 그는 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세상 일이 심드렁하고, 삶의 의지도 박약한 상태로 침체되어 있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의 애인 끌레르는 집을 사서 한 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몽은 정착할 마음이 없어 갈등을 일으킨다. 시몽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작은 만화축제에 참가한 다음, 포르투갈과 자신의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왔던 시몽에게 포르투갈에 자신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할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포르투갈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사실로 다가오고, 마음이 끌리는 걸 느끼게 된다. 그동안 가족들과도 소원하게 지내온 주인공은 사촌의 결혼식을 계기로 프랑스를 벗어나 포르투갈에서 한동안 지낼 생각을 하게 되고,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모든 일에 의욕도 없고, 미래를 설계하지도 않는 시몽을 보면서 끌레르는 결국 시몽의 곁을 떠난다. 시몽의 태도는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끝없이 외로움을 느끼며 정서적, 정신적으로 결핍 상태에 놓어 있으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는 심리상담을 하지만, 그것도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상담사도 포기한다. 시몽은 감정, 정서적으로 자기애가 과잉인 상태로 보인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자신도 모른다. 부모를 잃은 결핍인지, 고향이 없어서 겪는 디아스포라적 삶에 관한 원초적 슬픔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존재 자체에 관한 허무 때문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장의 이야기 장은 시몽의 아버지다. 둘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 형의 딸(조카) 아네스의 결혼식에 가는 걸 두고도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결국 참석하기로 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퍽 낯설다. 가족의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참석하는 걸로 생각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이들은 철저히 자기의 삶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 걸 볼 수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은 아들 시몽과 함께 조카 아네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르고뉴를 찾는다. 사돈댁은 부르고뉴에서 포도농장을 크게 경영하고 있었고, 와인을 생산하는 넉넉한 집안이었다. 결혼식의 하객은 주로 신랑 쪽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신부 쪽은 몇 명에 불과했다. 장은 조카의 결혼식에서 형과 누나를 만난다. 장의 형제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장과 그의 누나는 부모님이 장남인 장의 형을 편애했다고 기억한다. 결혼식을 계기로 남매들이 만나서 이야기 할 기회를 갖게 되고, 이들이 계획에 없던 소풍을 나가면서,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장나고, 비까지 내려 차 안에 갖힌 상태로 오래 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함께 따라간 시몽은 큰아버지, 고모,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시대와 할아버지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 된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양하게 들을 기회를 맞는다. 시몽은 끌레르와 헤어지는 것을 인정하고, 두 사람은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벨의 이야기 시몽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지금도 그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포르투갈로 간다. 그곳에서 사촌의 집에 머물며 의뢰받은 작업도 하고, 할아버지의 고향과 그곳에 살고 있는 친척들을 만나며 천천히 자신의 뿌리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사촌이 묵으라고 한 집은 오래 전, 할아버지 아벨과 그의 동생 마뉴엘이 직접 지은 집이었고, 지금도 '무샤' 성을 가진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시몽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프랑스 사람으로, 언어도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지만, 자신의 뿌리가 포르투갈이라는 것, 포르투갈어가 낯설지 않다는 걸 느낀다. 할아버지 아벨을 잘 알고 있는 마을의 노인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집앞 텃밭을 가꾸는 아주머니에게서도 할아버지의 동생 마뉴엘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가 그는 결정적인 내용을 알게 된다. '무샤' 집안의 뿌리는 스페인에서 온 무사들이 어린 아이를 마을에 놓고 떠난 사건에서 비롯했으며, 그 이름 모를 아이가 자신을 '무차초'라고 말해서 '무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무샤' 집안의 시작이 된 그 아이는 이름도, 고향도 알 수 없었고, 오직 스페인에서 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아벨이 포르투갈을 떠난 것은 1930년대로, 포르투갈이 정치적으로 독재 상황이었고,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려운 시기여서 아벨과 마뉴엘은 먹고 살기 위해 프랑스로 일을 찾아 떠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벨은 프랑스에 그대로 남고, 동생 마뉴엘만 고향으로 돌아와 이후 고향을 지키며 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시몽의 일상에서 시작해 점차 가족, 집안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점층적 서사를 보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친절한 설명은 없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관계, 감정, 살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시몽과 그의 아버지를 비롯한 남매들은 자신들이 디아스포라적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포르투갈에 있고, 시몽의 할아버지대에 포르투갈에서 프랑스로 이주해 정착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드물게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에게도 '호적등본'을 떼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서 '외국인' 즉 '타자'로 보이게 되는 상황을 드러내며 복잡한 마음이 된다. 포르투갈은 프랑스에서 멀지 않지만, 중간에 스페인이라는 큰 나라가 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처럼 보인다. 포르투갈도 중세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기에는 강력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유럽에서는 힘이 많이 빠진 중진국이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쇠퇴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여건이야 어떻든 이 만화에서는 포르투갈의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진국 수준이지만 이들은 소박하고 낙천적인 성향으로 낯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 시몽은 자신의 할아버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집안의 역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사촌들과도 쉽게 한 식구처럼 가까워진다. 이런 현상은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따뜻한 환대와 열린 마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 덕분이기도 한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한 분위기가 시몽의 태도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시몽의 할아버지는 형제가 프랑스로 취업 이민을 위해 고향 포르투갈을 떠났고,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시몽의 할아버지인 아벨은 프랑스에서 사망한다. 아벨의 동생이자 시몽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인 마뉴엘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고, 두 집안은 그때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주인공 집안인 무샤의 집안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알려주는 전설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전쟁을 하던 시기에 포르투갈의 한 마을에 스페인 기사들이 찾아오고, 한 아이를 재워달라고 부탁하고 기사들은 떠나간다. 그 아이는 혼자 남게 되고, 그 마을에서 자라 농부가 되는데, 그가 바로 '무샤' 집안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로만 본다면 '무샤'집안의 뿌리는 스페인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마지막 이야기는 퍽 낭만적이고 애틋해서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감동이 더하는 이 그래픽 노블은 여러 번을 봐도 좋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그림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다. 작가 시릴 페드로사의 그림은 한컷 한컷이 뛰어난 일러스트 작품일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뛰어나다. 작품은 모두 채색이며, 수채화 작업으로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채색의 특징은 이야기의 구성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과거, 회상, 현재, 감정에 따라 채색의 톤을 달리해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채색의 톤은 약간 어둡게 가라앉아서 차분하고 우울한 느낌이다. 이것은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들의 마음을 채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이 주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어, 탈색된 느낌으로 채색을 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섬세한 펜선으로 꼼꼼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그 위에 여러 겹의 채색으로 배경을 입혔다. 작품에서 시몽과 그의 가족이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포르투갈어를 외국어로 표기한 것은 작가가 의도한 역설이다. 포르투갈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외국인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라 외국어인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한국인을 부모로 둔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한국을 방문해 한국어를 들었을 때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모국어와 자신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를 이 작품에서도 시몽과 그의 사촌이 나누는 대화에서 볼 수 있다. 이때 개인의 정체성은 물리적 공간(지역)에 있는 것인지, 혈연(핏줄)에 있는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작품을 다 읽으면 시몽이 초반에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방황을 이해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가 보인 행동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는데, 관계의 파탄은 오로지 시몽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의 삶과 생각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어떤 행동, 행위의 결과만을 두고 판단할 뿐이다. 시몽이 보였던 행동은 어리석고 멍청하게도 보이지만, 그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삶의 경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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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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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만들어진 역사
- 제목 : 중동, 만들어진 역사 작가 : 장 피에르 필리유/디비드 베 출판 : 다른 한국(사람)은 미국과 유럽의 역사는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중동,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의 역사는 잘 모르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지적(知的)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과 유럽이 강대국이고,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과도 정치, 경제에서 긴밀한 관련이 있기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에 정치,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한편으로 치우쳐 있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미국의 시각'으로 편중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약 80%는 중동에서 오고 있다. 한국은 70년대 중동의 건설현장에 진출해 많은 기업과 노동자가 뜨거운 사막에서 땀흘려 일해 나라의 부를 키웠다. 한국도 강대국 틈새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있지만, 중동 지역은 유럽 열강과 미국 등 패권국가들 틈새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굴욕적 위치에 놓여 있다. 중동이 평화롭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곧바로 한국에도 영향이 미친다. 제3차 중동-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자 원유 가격이 급등했고, 한국의 휘발유, 경유 가격이 폭등했던 전력이 있었다. 우리가 중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중동의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원유 가격 뿐 아니라, 중동 여러 국가가 과거의 우리처럼 약소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의 폭압 아래 36년 동안 지배당한 기억을 잊지 않듯 중동의 여러 나라도 강대국의 폭압으로 부족과 민족이 서로 갈등하고 적대 관계가 되고, 증오하도록 만든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중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대국의 논리를 따라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그래픽노블은 3부작으로 구성했다. 추천사(김재영 프레시안 기자)에도 썼듯이 이 책의 내용은 1)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이 중동지역에 개입했고, 2) 중동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어떻게 중동 독재자와 손을 잡았으며, 3)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가 어떤 문제와 갈등을 낳았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과 전쟁해서 독립한 직후부터 중동 지역의 분쟁에 개입해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과정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였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도 이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침략사는 미국이 독립한 직후부터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이다. 1부 1783~1953년, 열강이 만든 중동 1. 옛날이야기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해지는 서사시를 다루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로 알려진 이 오래된 이야기는 수메르의 도시 국가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의 영웅담을 그리고 있다. 길가메시는 신과 인간이 섞인 초인이다. 그는 강력하지만 백성을 억누르는 독재자였다. 이를 보고 천신 아누와 모신 아루루가 엔키두라는 강력한 인간을 만들지만, 길가메시는 엔키두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고,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는 원정을 떠나 마침내 훔바바를 죽이고 돌아온다. 길가메시는 여신 아슈타르의 유혹을 뿌리치자 아슈타르는 아버지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징벌하기 위해 '하늘의 황소'를 내려달라고 요청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하늘의 황소'도 죽인다. 그러자 신들이 엔키두를 죽였고, 길가메시는 충격을 받고 길을 떠나 영생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인간 우트나피시팀과 그의 아내를 찾아나서서 그들을 만나 대홍수에 대해 듣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다시 우르크로 돌아온다. 수메르의 전설은 기독교 설화에도 도입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기독교에서 '노아의 방주'로 알려진 대홍수 이야기는 수메르 전설로 알려졌으며, 내용도 거의 같다. 이라크에서 발견한 수메르 유적 가운데 석판이 있는데, '독수리 전승비'라고 불리는 이 석판의 한쪽에는 적들의 시체를 쌓아 승리를 기념하는 그림이 있는데,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국 병사들이 이라크 정치범을 쌓아놓고 사진을 찍어 크게 문제된 적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2. 해적과의 싸움 15세기 이후 이슬람 진영은 유럽의 기독교 세력과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치르는데, 기독교 쪽에서는 이것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말하고, 이슬람 쪽에서는 '지하드 전쟁'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쪽에서 '십자군 전쟁'이라고 명명한 것은 18세기에 등장하는데, 기독교(가톨릭) 집단이 이슬람 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초부터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가톨릭 쪽의 내부 상황은 단지 이교도나 이단의 토벌 뿐 아니라 가톨릭 내부의 갈등과 긴장, 위협 요소를 바깥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여기에 귀족과 시민 계급의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경제적 이익을 보기 위한 가톨릭과 각 나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었다. 기독교 세계(유럽)에서는 11세기부터 16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암흑시대'라고 했는데, 그 말은, 가톨릭의 위세가 너무 강해서 종교적 억압이 유럽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과학, 문화, 예술,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가 발달하지 못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반면, 이슬람은 그리스의 발달한 과학, 수학, 철학을 받아들여 문명의 꽃을 피우던 시기였고, 영토도 확장되었다. 십자군은 11세기 초 기독교도로 구성한 정예 군대가 출전한 것을 제외하면, 이후 15세기까지 점차 약탈을 목적으로 온갖 부랑자, 범죄자들이 병사로 나섰다. 더 이상 종교적 명분은 성립하지 않았고, 영토 확장과 약탈이 주를 이루었다. 중세 이슬람 진영과 기독교 진영은 바다에서도 격렬하게 전쟁을 했는데, 양쪽 모두 포로로 잡힌 사람들은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일을 하거나 농장에서 농사를 짓는 노역을 했다. 19세기 초가 되면서 두 진영은 평화조약을 맺어 더 이상 해적이 상대 배를 침탈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해군력이 약한 덴마크,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은 이슬람 해적에게 인질로 잡혀 몸값을 지불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미국이 독립한 직후, 영국은 미국이 영군 해군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제리에 알렸고, 알제리(이슬람 진영) 해적은 미국 상선을 나포해 막대한 몸값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 직후에 발생했으며, 미국은 인구가 불과 30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였다.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었다. 미국은 인질로 잡힌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트리폴리의 특사와 회담을 했다. 이때 참석한 미국 대표는 존 애덤스(영국 주재 미국대사), 토머스 제퍼슨(프랑스 주재 미국대사)였다. 하지만 이 회담은 결렬되었다. 1785년에 이어 1796년에도 이슬람 해적은 미국 선박을 나포해 선원을 노예로 삼았다. 1797년 존 애덤스가 미국대통령(제 2대)이 되자 미국 정부는 국가 전체 예산의 20%에 해당하는 돈을 이슬람 해적에게 주고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801년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슬람 진영에서 요구하는 돈의 액수가 커지자 평화조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미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트리폴리의 파샤(지배자)를 처단하겠다며 함대를 출전했다. 미국이 세계 전쟁에 나선 시작이었다. 1803년부터 시작한 미국 함대의 트리폴리 공격은 무려 네 차례나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자연스럽게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 권력자의 내분 때문이었다. 1793년 알리 카라만리가 죽으면서 장남 하산을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셋째 아들 유스프가 맏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다음 둘째 형 하메트를 추방하고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하메트는 이집트로 도망가서 미국 정부에 왕위를 찾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미국은 하메트와 함께 트리폴리로 진격했지만 유스프와 협상을 통해 평화조약을 맺고 전투를 끝냈다. 이후에도 미국 선박은 알제리 해적에게 여러 번 나포당했고, 1812년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시작해서 1815년 정전협정을 했다. 이후 미국은 1815년 알제리를 침략해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는다. 19세기 초부터 미국은 대륙의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당시 영국령, 프랑스령, 스페인령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거나 돈을 주고 매입하면서 땅을 확장했으며, 해군은 중동을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아시아 진출은 1844년 청나라와 불평등 통상조약을 맺었고, 1854년 일본과 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했다. 조선은 1866년 평양 대동강을 거슬러 온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우고 미국 선원을 처형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1871년 신미양요가 발생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1871년 한국 군사작전, 미-한 전쟁, 조선 원정 등으로 부르고 있다. 3. 석유의 시작 미국은 19세기부터 중동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했지만, 중동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중동과 아프리카는 유럽 여러 나라가 식민지를 만들거나 천연자원을 약탈하고, 그보다 앞서서는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폭력으로 끌고와 노예로 팔았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1939년 석유개발권을 협의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온 원유가 최초로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복잡하고 격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하고 이븐 사우드가 초대 국왕이 되었다. 사우디는 미국이 정권과 나라의 안위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고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1945년 2월에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호수에 미국 구축함 USS 머피호에서 미국대통령 루스벨트와 이븐 사우드 사우디 국왕이 비밀 회담을 벌였고,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동의 여러 나라-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리비아 등과 미국이 긴장 관계, 적대 관계를 반복했던 것과 달리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확고한 친미 국가로 존재한다. 4. 쿠데타가 남긴 것들 1901년 오스트리아의 사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는 페르시아(이란)에서 원유 탐사를 시작했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앵글로 페르시아 석유회사(APOC)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이후 영국 국영 석유회사(BPC)가 된다. 1914년 영국 정부는 APOC 지분의 51%를 확보했다. 영국은 이란의 남쪽, 쏘련은 이란의 북쪽 지역을 점령해서 각각 채굴권을 확보했다. 이란 왕은 채굴권을 팔아 돈을 벌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란에는 영국, 쏘련, 미국 등 강대국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주둔했다. 이란의 민족주의자 모사데크가 총리로 등장하면서 원유 개발을 국유화했다. 그러자 외세(영국, 미국 등)는 모사데크를 축출하려 했지만 두 번이나 실패하자 미국은 이란의 왕에게 접근해 모사데크를 해임하라고 압력을 넣지만 샤가 회피하자 이란 내부 분열을 일으키는 공작을 벌인다. 이 사태로 이란은 심각한 분열이 발생하고, 나라는 폭동이 일어나고 내전이 발발하는 사태에 이른다. 미국은 정보기관과 군대를 동원해 이란의 정부를 전복했고, 마침내 모사데크를 몰아냈다. 2부 1953~1984년, 미국이 만든 중동 5. 6일 전쟁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쏘련은 연합군이었다. 쏘련은 독일의 침략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영웅적인 전투를 치렀고, 독일군을 궤멸했다. 전투는 쏘련이 치렀고, 전쟁물자는 미국이 상당 부분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가 재편되면서, 미국은 강대국 쏘련이 중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려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쏘련이 중동 여러 나라들과 협력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중동에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집트의 가말 나세르는 1952년 쿠데타를 일으켜 군주제를 폐지하고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대통령이 되었다. 아랍 민족주의는 요르단, 시리아 등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영국과 미국은 반 나세르 세력을 지원해 각 나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내전이 일어났다. 미국 석유회사와 유대인은 나세르의 아랍 민족주의를 강하게 반대했고, 나세르는 쏘련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1945년 이후 유대인 시오니스트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했지만 한편으로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핵무기를 도입했다. 1967년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막대한 전쟁무기를 제공했고,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집트를 선제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전투기로 이집트를 급습해 이집트 전투기 대부분을 폭격했고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의 공군도 공격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공격했고, 불과 6일만에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쏘련이 이스라엘에 최후 통첩을 보내고서야 겨우 전쟁은 끝났다. 6. 두 전쟁 사이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요르단에서 점령한 땅에 살던 주민을 쫓아내고 자신들이 차지했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은 여전히 이집트가 쏘련과 가깝게 지낼 것이라 판단해 이집트의 영향력을 줄이고, 중동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이집트의 나세르가 죽고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고,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가 권력을 잡아 반 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제4차 중동 전쟁이 발발했고, 미국의 닉슨은 이집트에 휴전을 제안했지만 사다트가 거부하자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했다. 쏘련도 이집트와 시리아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했다. 중동의 전쟁 상황과 미국, 쏘련의 개입을 두고 보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왕은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다른 중동 여러 나라들도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세계는 심각한 석유 파동을 겪게 된다. 유엔은 이스라엘에 휴전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전쟁을 계속할 의지를 보였다. 그러자 쏘련이 무장하기 시작했고,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보였다.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스라엘을 강하게 압박했고, 이스라엘은 휴전 협정을 맺었다. 7. 1979년 미국은 이미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쓰라린 기억이 있었고, 중동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중동의 평화가 유지되길 원했다. 이 시기에 미국대통령은 지미 카터로 그는 이집트의 사다트와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를 미국으로 불러 비밀협상을 벌였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혁명이 발발했다. 호메이니는 시아파 종교지도자로, 팔레비에 반대했다 쫓겨나 터키로 망명했으며 외국에서도 계속 목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이란으로 들여보내 이란 혁명을 일으켰다.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학생들이 이란의 미국대사관을 습격해 미국인 인질 66명을 붙잡아 행진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 있는 이란 자산을 동결하고, 이란에서 석유 수입을 중단했다. 인질들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하는 날 풀려났다. 이 해에 여러 이유로 쏘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다. 쏘련은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자를 교체했지만, 반 쏘련을 외치는 민족주의 성향의 반란군(지하드)이 등장했다. 미국은 이 반란군을 지원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빈 라덴이 이때 파키스탄에 들어와 아프가니스탄 반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8. 레바논 내전 레바논은 중동에서도 특이하게 이슬람보다 기독교 세력이 큰 지역이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원래 레바논 땅보다 더 넓은 지역-시리아 땅을 포함한-을 국경으로 설정했는데, 이것이 내전의 원인 가운데 한 요소로 작용했다. 여기에 초기에는 기독교도가 51%였던 지역이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30%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슬람교도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종교적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1975년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베이루트의 교회를 습격해 기독교도를 살해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앞세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게릴라, 레바논까지 공격하도록 했다. 이스라엘,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두고 미국, 프랑스, 쏘련이 협상을 벌였고, 1982년 전투는 멈췄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레이건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공격하길 희망했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의 난민촌을 습격해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해 중동 지역을 분쟁과 전쟁 지역으로 만들었고, 쏘련도 시리아 뒤에서 반미, 반이스라엘 투쟁을 하는 아랍 민족주의 집단을 지원했다. 3부 1984~2013년, 새로운 질서와 싸움 1990년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미국은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도 침공할 것을 두려워했고, 곧바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 공격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가 반발하고,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에 맞서 이라크를 지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연합국을 결성했는데, 중동지역에서는 시리아, 모로코, 이집트가 미국 편을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는 후세인을 반서구, 반미에 맞서는 영웅으로 칭송했다. 미국은 50만 명의 군인을 이라크에 투입했고, 그 전에 공중 폭격으로 이라크 전역을 폭격했다. 이라크군은 궤멸당했고, 후세인은 휴전협정에 싸인했다. 후세인은 전쟁에서 졌지만, 이라크에서는 반란군이 봉기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끝까지 저항하자는 결의를 다진 강경파 집단이 반란을 주도했다. 하지만 후세인의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했고, 이때 많은 쿠르드족이 터키로 도망했다. 쿠르드족은 자기 민족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미국을 도왔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는 오슬로에서 비밀 회담을 열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인정하는 협약을 했다. 하지만 하마스(팔레스타인 이슬람 저항운동단체)는 이 협약을 거부하고, 대 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고, 수단에서는 빈 라덴이 알카에다를 구축하고 있었다. 1998년 8월 빈 라덴은 케냐와 탄자니아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공격했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도 빈 라덴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미국 본토를 공격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미국의 클린턴은 성추문이 터지자 여론을 이라크로 돌렸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폭탄 테러가 발생했고, 미국은 빈 라덴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빈 라덴을 쫓는 한편,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을 체포, 처형했다. 이후 오바마 정부에서 빈 라덴을 추격해 끝내 빈 라덴도 사살했다. 중동 지역의 분쟁과 내전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장한 면이 많다. 여기에 중동 지역의 복잡한 상황-종교, 인종, 국경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석유가 나오는 지역이라는 특수성까지 결합해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시리아는 내전을 치르고 있으며, 같은 종교인 이슬람교도임에도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학살하고 있다. 종교적 극단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내전이라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터키, 러시아, 이스라엘 등 주변 국가들까지 끼어든 상황이다. 중동 지역에 언제 평화가 정착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너무 오랫동안 분쟁 지역이었고, 강대국의 먹이로 버려진 약소국가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도 '한국전쟁'이라는 참담한 경험을 이미 했으니,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것을 이 그래픽노블을 통해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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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만들어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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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이야기
- 제목 : 홍이 이야기 작가 : 박건웅 출판 : 새만화책 박건웅의 만화는 무겁다. 아니, 무거운 주제를 선택한다. 그 무게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박건웅의 그림은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그림이다. 마치 박수근의 그림을 보는 듯한, 무채색의 굵은 선은 언듯 판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이 모두 어두운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다루는 작품에서는 늘 무겁고, 어둡고, 무채색으로 낮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그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들 - 제주 4.3 항쟁, 한국 전쟁, 이념적 인간형 등 - 이 모두 무겁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만화의 한 컷, 한 컷이 마치 작품처럼 완성도를 높였고, 짧지만 강렬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짧은 이야기로, 본문이 불과 36쪽에 불과하다. 이 작품의 이야기 소재는 작가의 후배(제주도가 고향인)가 제공했다. 후배가 쓴 이야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슬픈 내용이어서 이런 사건이 실제 벌어졌는지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봉화가 오르고, 제주도의 좌익 진영은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봉기했다. 미국은 친일파보다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좌익의 존재를 더 껄끄럽고 두렵게 여기고 있었기에, 친일파를 앞세워 좌익을 척결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제주4.3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이 작품의 뒷부분에 박찬식 제주4.3연구소장님이 글을 썼다. 박건웅 작가의 그래픽노블과 함께 박찬식 소장님의 글을 읽으면 제주4.3과 관련한 큰 줄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홍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홍이는 마을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마을 앞 작은 오름에 올라 바깥에서 노란개(군인)나 검은개(경찰)가 쳐들어 오는지 온종일 지키고 있다. 이들이 오면 홍이는 깃대를 쓰러뜨리고, 나팔을 분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깊이 숨어 안전하다. 홍이가 사는 중산간 마을은 미군정의 군인과 경찰이 좌익을 토벌한다고 자주 드나들었고, 죄 없는 홍이의 이웃 아저씨, 삼촌들이 잡혀가 죽어서 시체만 돌아오곤 했다. 드물게 산에서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깊은 밤을 도와 내려오기도 했다. 그들은 마을 주민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먹을 것을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홍이가 동생 영이와 오름에 올랐고, 홍이는 배고픈 동생을 위해 먹을 것을 찾다 그만 노란개와 검은개가 마을로 들이닥치는 걸 놓치고 말았다. 노란개와 검은개는 닥치는대로 마을 주민을 학살했다. 영이도, 홍이의 부모도, 이웃 아저씨와 아주머니, 삼촌과 어린아이들까지. 그리고 홍이도 나팔을 불지 못하고 소리는 저 멀리 하늘로 퍼져나갔다. 이 작품은 김금숙 작가의 '지슬'(오멸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원작)과 맥을 같이한다. '지슬'에 등장하는 중산간 주민들도 정부군과 경찰 토벌대에 쫓겨 더 깊은 산의 동굴로 들어간다. 당시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단은 좌익 무장투쟁단이 아닌, 평범한 마을주민들도 모두 '적'으로 규정해 학살했다. 이것은 명백히 전쟁범죄이며, 동족학살범죄였지만 아직도 제주민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만화계에서 박건웅은 작가주의 만화가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미 그가 생산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역사의식과 사회성은 어떤 작가들보다 강렬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의 초기 작품들이 절판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책들이 재출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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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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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
- 제목 : 경성을 쏘다 작가 : 박건웅 출판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은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였다. 올해는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정부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독립만세운동과 독립운동가의 삶을 널리 알렸다. 극히 일부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의 일대기를 교육하고, 강조하는 것을 지겨워한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놈들에게 억압, 차별, 수난, 모욕을 당한 사실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유대인을 보라. 그들은 아우슈비츠로 상징하는 대학살의 기억을 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유대인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영화, 소설, 만화 등 대중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르에서 유대인이 나찌 독일에게 핍박당하고 학살당한 사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세계에 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어 7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당한 수난과 고통의 총체적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1945년에 해방은 되었지만 매국노를 처단하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매국노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면서, 현재 한국에는 친일매국노의 뿌리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고, 그들이 돈과 권력을 갖고 친일매국노 청산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30여 년의 세월은 한국이 민주주의를 확립해 나갈 시기였지만, 오히려 친일매국노, 군부독재의 폭력으로 민족정기가 위축되고 기운을 펴지 못했다. 일본특무경찰이 해방되고도 독립운동가의 뺨을 때리는 처참하고 참담한 나라가 된 것은, 매국노들의 발호와 권력의 비호 때문이지만, 민중이 어리석고 정치적 상황이 성숙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아주 느리지만, 시민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는 성숙하고 우리는 친일매국노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고,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는 것이 왜 필요한가도 깨달았다. 우리는 비록 36년 동안 일본의 폭압에 시달렸지만, 모두가 숨죽이고 있지 않았다. 3.1만세운동은 아시아 식민국들의 해방운동이 되는 도화선이었고, 곧바로 해외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한 매우 드문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리고 있다. 김상옥 열사는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니 그의 독립운동 공적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한데, 그를 다룬 책은 2014년에 '김상옥 평전'과 '경성을 쏘다' 두 권에 불과하다.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삶이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작품은 이성아 작가가 쓴 '경성을 쏘다'를 바탕으로 한국역사와 인물을 그래픽노블을 그리고 있는 박건웅 작가가 재해석해 그렸다. 소설과 그래픽노블은 형식과 내용에서 많이 다르지만, 상호보완의 관계다. 소설은 문자 기호로 이야기를 만들고, 추상적 관념의 소설을 이미지로 전환하면서 공감각의 지평을 확장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문자는 고도의 추상적 이미지다. 이성아 작가의 소설은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 작품 속 세계 역시 높은 추상적 밀도를 갖는다. 그래픽노블에서는 소설의 추상적 묘사가 이미지로 전환한다. 그래픽노블의 이미지는 공간을 분할해 각각의 칸이 소설의 문장을 이미지화한다. 만화에서 인물의 대사는 소설보다 생생한데, 축소, 생략, 과장한 캐릭터는 독자의 감정에 인물(캐릭터)과의 동일시, 동질감, 감정이입의 여지를 풍부하게 남긴다. 박건웅 작가의 작품은 형식미가 뛰어나고, 기법이 독특하며 개성 있다. 드로잉이지만 철저하게 계산된 판화처럼 그린 이미지는 두꺼운 외곽선으로 더욱 강렬하게 보인다. 한국의 그래픽노블 작가들 그림은 외국 작가들과 분명 다르다. 나라마다 작가들의 그림선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보이는데, 한국 그래픽노블 작가들은 외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듯, 자기 색깔이 분명한 그림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박건웅 작가의 그림은 도드라져 보인다. 판화 기법의 작화는 단순하면서 강렬하다. 이런 형태의 그림은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효과가 있다. 박건웅 작가가 줄곧 역사와 사회적 인물을 다루는 것은 자신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소재라는 점에서, 작가의 작품성을 발휘하기 적합한 소재를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그래픽노블로 재창조하는 작업은 어떤 면에서 오리지널 창작보다 어렵다. 소설 원작일 경우, 문장으로 묘사하는 풍경, 배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할 경우 더욱 힘들다. 따라서 원작을 그대로 압축 또는 재구조화를 통한 작업이기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하되 만화작가의 해석을 거친 새로운 작품으로 창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작품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정부지원자금으로 창작, 제작되었으며 한글,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그 나라의 주요 기관과 도서관 등에 배포한다. 이렇게 좋은 작품은 값을 낮게 책정해 많은 사람이 쉽게 사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많은 사람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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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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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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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생각나
- 제목 : 자꾸 생각나 작가 : 송아람 출판 : 미메시스 미메시스의 그래픽 노블. 만화책을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만화가 예전과는 다른 갈래가 나왔다는 것을 말한다. 만화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며 창작물이지만, 그동안은 수준이 낮은 장르로 여겨왔다. 이것은 만화에만 국한한 것은 아니다. 소설도 흔히 삼류소설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준이 낮은 모든 창작물은 비주류로 묶여 천대받아왔다. 그러던 만화가 언젠가부터 '그래픽 노블'로 분류되면서 당당하게 고급한 예술작품으로 팔리고 있다. 같은 만화임에 분명하지만 소위 말하는 '대본소 만화'나 '공장 만화'가 아니라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래픽 노블은 특히 유럽에서 창작이 활발하다. 미국여행 때, 서점에 들러서 그래픽 노블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기대보다' 종류가 많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유럽과 한국, 중동,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의 그래픽 노블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어서, 나처럼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아닐까 한다. 그래픽 노블의 장점은 소설과 만화의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이야기)의 구조와 만화(그림)의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수준이 낮으면 그래픽 노블의 자격을 잃게 된다. 모든 만화가 다 '그래픽 노블'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야기와 그림의 수준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에서 핵심은 '그래픽' 즉 그림이다. 그림과 이야기가 모두 훌륭해야 하지만, 그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 말이 필요없다. 그래픽 노블 작가는 만화가와 소설가를 섞어 놓은 듯한, 그 둘의 장점을 모두 갖춘 부러운 존재들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래픽 노블 작가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들의 능력이 퍽 부럽다. 이 만화는 송아람 작가의 장편 그래픽 노블이다. 웹툰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그래서인지 만화의 특징인 네모칸이 없다. 게다가 무려 6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만화지만 읽기가 만만찮다. 내용은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주인공들이 만화가라는 점에서 자전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고 진지한 시간들이겠지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독자인 내 눈에는 찌질해 보인다. 청춘의 찌질함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리려 했다. 생각해보면, 청춘의 지난 날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어리석고 찌질한 부분도 많지 않던가. 자의식 과잉과 편견, 심각한 자기애, 오해와 독단 등의 감정이 분출되었고, 감정적으로 미숙했던 시기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우습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작품은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인다. 즉 솔직한 감정 표현들이 민망하고 불편하지만 그런 감정과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청춘들에게는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이 작품에는 여섯 명의 청년이 등장한다. 만화가 최도일, 백승태, 만화가를 지망하는 장미래, 최도일의 애인 유명지, 장미래의 애인 정상인, 백승태를 좋아하는 김겨자가 그들이다. 주인공은 장미래와 최도일로 두 사람의 만남과 감정의 얽힘, 헤어지고 만남의 반복이 드라마의 중심을 이룬다. 장미래와 최도일 모두 애인이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다. 장미래의 애인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으로, 건실하고 모범적인 청년이다. 장미래가 최도일에게 끌리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애인 정상인과 비교했을 때, 성격과 태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최도일은 미래가 불안정한 만화가지만, 장미래에게는 자기 작품을 출간한 '작가'이고, 만화가를 꿈꾸는 장미래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최도일은 건실하거나 모범적인 정상인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연애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최도일과 유명지는 같은 집에서 산다. 최도일은 자기가 살던 집과 작업실의 보증금을 까먹고 유명지의 집으로 들어와 월세를 부담하며 살고 있는데, 유명지와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고등학교 이후 사귀기 시작한 '오래된 커플'이다. 유명지는 최도일과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최도일의 변심에 충격 받는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장미래가 최도일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고, 최도일이 장미래에게 비밀 메시지를 보내면서 두 사람이 만나는데, 장미래를 만나는 자리에 최도일의 후배 백승태가 나타나면서, 세 사람의 관계가 살짝 복잡해지지만, 백승태가 장미래에게 집적거리는 건 연애를 시작하는 젊은 남성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미시적이고 디테일한 개인의 생활과 감정을 깊이 천착하고 있어 독자가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기 좋은 작품이다. 독자의 시각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말과 태도는 독자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것이 보기 좋거나, 바람직하다기 보다, 숨기고 싶고, 답답하고, 짜증나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 창작에 몰입하는 이유는,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작품과 창작물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의 위치, 시각, 가치관, 세계관으로 해석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 작품이 청춘남녀의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연애를 하는 청춘남녀라면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 사회적 입지를 다지지 못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한편으로 복잡한 연애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추면서, 존재의 불안과 삶의 고민, 자아의 분열과 타자를 의식해야 하는 분열적 감정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은, 주인공들이 가진 불안과 불투명한 삶, 미래를 보여준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바닥이 흔들리던 청년의 삶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단단해지고, 생활인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며 한편으로 안도하고, 한편으로 삶의 단조로움, 삶의 지겨움, 삶이 구질구질함을 떠올리며 한숨 쉴 때도 있을테다. 어떤 사람은 성공할 것이고, 누구는 여전히 단조로움 삶과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것이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단칸방 월세에서 전세로, 아파트로 옮겨가며 중산층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멀지 않은 미래'가 다가오기 직전의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를 숨쉬고 있고, 자신의 예술행위를 '경제적 가치'로 인정받아야 하는 삶을 살지만, 그것을 의식하지는 못한다. 모든 문제는 '개인적'이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개인주의'는 '민주주의'와 같은 정도로 중요하며, 이 순간만큼은 체제나 구조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여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Sur-reslism)'의 면모를 보인다. 청춘은 이루지 못할 꿈을 꾸며, 구체적 현실을 감각하지 않고, 이상과 꿈을 좇아 달리는 추상적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육체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지만, 청춘의 이상과 꿈은 비현실의 세계에 머문다. 작가는 리얼리즘을 구현하려 했으나, 작품 속 세계는 현실을 초월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주인공들은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작가와 결별하는 지점을 건너간다. 훌륭한 작품일수록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데,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전에 작품을 끝낸다. 이제 주인공들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고, 결정할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이 열려 있는 상태로 끝나는 것은 작가가 만든 주인공들의 운명에 더 이상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래는 최도일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최도일과 연애를 하면서 달라지는 모습에서 내면의 성장이 보인다. 질투와 초조함으로 자기 중심을 잃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도일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오히려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출간한 작가'라는 이름으로 외부에서 자기를 찾으려던 장미래가 멀고 먼 길을 돌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때, 장미래는 성장한다. 이제 장미래는 연애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 작가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뿌리를 내린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존재가 자기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새로운 길에 서는 모습을 보인다. 독자는 장미래가 걸어갈 미래를 응원하고, 희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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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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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아트?
- 제목 : 와이 아트? 작가 : 엘리너 데이비스 출판 : 밝은세상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는 그래픽노블이다. 제목부터 독자에게 질문한다. '왜 예술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도 아니고, '왜 예술인가?'라고 묻는데, 독자는 당연히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미셀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두고 작은 제목으로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비평을 썼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파이프 그림 아래 필기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있는데, 그림보다 이 글씨가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푸코도 그림으로의 '파이프'보다는 텍스트로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텍스트는 이미지 기호로 작동하는가, 아니면 문자 기호로 작동하는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파이프 그림과 글씨는 완전히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기호이며, 둘 사이의 관계는 실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러니와 알레고리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지로써 파이프는 관객에게 '파이프'라는 시각적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관습과 경험에 따라 관객은 그 이미지를 '파이프'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파이프'가 더 이상 '파이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사물은 낯설어지고, 기존의 상식과 개념은 파괴된다. 이 책(와이 아트?)도 시작이 난해하다. '왜 예술인가'에 답하기 전에 예술 작품의 종류를 알아보자고 하면서, '색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림은 흑백이다. 분명 주황색, 파란색, 주황&파란색을 말하지만 실제 그림은 흑백이다. 이것은 역설(irony)이다. 뒤이어 크기에 따른 작품, 가면, 가면, 거울, 먹는 것, 감추기, 끔찍함 등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아홉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돌로레스, 리처드, 마이크, 주롱, 소피아, 마케일라, 트와이스투, 제니퍼, 호세는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퍼포먼스를 하는 돌로레스는 사람들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관객은 그 말에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들이 생기고, 작품의 진실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돌로레스는 관객을 피해 여행을 떠나고, 상어에게 한쪽 팔을 잃지만, 다시 상어를 쫓아가 잡아먹자 팔이 자라고, 상어이빨이 생긴다. 이것은 분명한 은유(metaphor)다. 돌로레스의 팔을 뜯어 먹는 상어는 '예술'을 상징하며, 잃어버린 팔은 '예술성' 또는 작가의 창작욕, 상상력이다. 돌로레스가 상어를 잡아먹자 팔이 자라고, 상어이빨이 생겼다는 것은, 고갈된 작가의 창작성과 상상력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아홉 명의 작가가 모였을 때, 이들은 전시 준비를 한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전시장의 작품은 망가진다. 지붕과 벽이 바람에 날아가고,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와 집을 들어올린다. 모두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마이크가 작은 섀도박스를 들여다보고, 이들은 극적으로 구출된다.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 도착한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돌로레스는 작은 인형을 만들기 시작하고, 다른 작가들도 작은 집 안에 들어가는 인형과 물건을 만들어 넣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전시장의 작품을 작게 만들어 배치한다. 그 작은 인형-작가 자신의 아바타-들은 스스로 움직이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이때, 돌로레스가 갑자기 그 작은 집의 지붕을 열고, 바람을 일으키고, 물을 뿌리고, 작은 집을 들어서 흔든다. 그리고는 작은 인형들을 향해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줘'라고 말한다. 소설 형식에 '액자 소설'이 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이 액자소설로 알려졌는데, 액자 소설은 보통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 작품처럼 이야기가 순환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순환적 액자소설'로, 이야기가 무한반복할 수 있는 구조다. 순환구조를 갖는 이야기는 주로 '시간'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시간 이동(time slip)을 통해 같은 환경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작가가 앞에서 '왜 예술인가?'를 말하면서 작품의 분야와 종류를 설명했는데, 작품 속 아홉 명의 작가가 경험하는 것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운명이었고, 자기 작품을 망친 거대한 힘이 사실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창조와 파괴가 서로 다르지 않은 일련의 창작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었다. 아무 연락 없이 책이 도착해서 조금 의아했는데, 내가 그래픽노블 비평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출판사에서 알았나보다.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로 리뷰를 쓴다. 이런 기회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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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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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개뿔
- 제목 : 평등은 개뿔 작가 : 신혜원, 이은홍 출판 : 사계절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이 '만화책'이 페미니즘 교과서로 채택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 '만화책'으로 기초, 기본수업하고,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은 요즘 페미니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교재가 부족할 걱정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리뷰하기 위해서 책을 따로 인용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책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를 잘 드러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작가 두 사람은 나와 같은 세대-몇 살 적다-를 살아온 사람이어서 내가 페미니즘을 배운 경로와 경험이 두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봐도 좋겠다. 작가 부부는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진보적 삶을 살고 있었고, 한국사회에서는 0.1%에 속하는 부자, 아니 '평등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대학에서 '운동권'이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보, 합리, 이성의 태도를 갖춘 청년이었다. 그들이 결혼하고도 이런 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 다짐하지만, 현실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남성인 이은홍은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진보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지만, 알고보니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사회의 관습에 길들여져 기득권의 공기를 숨쉬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도 80년대 중반-군대에서 전역하고-부터 선배들과 함께 사회과학 공부를 했다. 그때 정치경제학, 유물론철학, 민중사학 등을 깊게 배웠지만 '페미니즘'은 따로 공부하지 못했다. 지금도 소위 '386 운동권 세대'가 비판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투쟁했지만, 정작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가부장, 남성우월주의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내 선배들도 그랬다. 그들은 누구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었고, '언드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그래서 경찰의 수배를 당해 하루가 멀다하고 도망다니던 투사들이었지만, 그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매몰된 사람들인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들도 이론적으로는 남녀평등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체화하지 못했다. 일상에 녹아들지 못하는 이론이나 주장은 오히려 독이 된다. 80년대에는 '페미니즘'을 배우고 싶어도 마땅한 교재도 부족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책이 바로 아우구스트 베벨의 '여성론'이었다. 이 책은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였지만, 아마 읽지 않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의 저작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고, 여력이 없던 때였으니, '여성론'을 읽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여성론'을 읽고 페미니즘의 기초를 배웠으며, 이후 페미니즘 이론을 스스로 공부했다.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성이론'이나 '여성학'이라고도 했는데, 어떤 이름이든 남녀평등에 관한 저서나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 같은 책도 번역되어 나오고 있었다. 남성으로서 페미니즘 이론을 배우는 것이 '진보적 태도'라고 한다면, 나는 이론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체득했다. 내게는 누나가 있는데, 처음에는 한 명이었다가 내가 결혼하고 나서 누나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우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내게는 세 명의 배다른 형과 두 명의 누나가 있는데, 부모가 살아계시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을 돌보고, 살 수 있도록 온갖 힘을 쓴 건 누나였다. 큰 누나는 나와 13년 차이가 나는데, 실질적으로 '엄마' 노릇을 했다. 나는 자라면서 늘 엄마와 누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고, 남자로, 장남으로 아쉬움 없이 생활했다. 우리집은 매우 가난했음에도, 나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밥하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온갖 시시콜콜한 집안 일에서 해방된 상태로 지낸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큰 특혜였는지 전혀 몰랐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어머니가 모든 집안일을 했고, 어머니는 내가 50살이 될 때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결혼을 하고도 집안일은 어머니 차지였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직장을 다녔고, 지금도 다닌다. 반면 나는 결혼 전부터 프리랜서였고, 결혼하고 나서 직장에 취직했다가, 그마져도 몇 년 지나서 다시 백수가 되어 집안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내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 역시 무려 50년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며, 온갖 혜택만 받고, 살림은 해본 적이 없어서 서툴렀다. 게다가 내 의식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문제 일반에 관해서는 비교적 평등하고 진보적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생활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성우월주의자, 가부장사회의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나를 이해해주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아내가, 집안일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일은 내가 맡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다. 내가 지금도 늘 마음에서 누나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것은, 누나들이 동생인 내게 베푼 것에 아무런 보답을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누나들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사회적 존재로 인해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이중, 삼중의 억압과 불평등, 착취를 당하며 살았다. 내 아내도 여성이면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는 어머니, 누나, 아내의 삶을 보면서, 세상을 실제로 이끌어 가는 것은 여성인데, 여성이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불평등한 위치에 있으며, 남성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야 하는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을 성(sex) 대결로 몰고가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 학교교육이 근본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교육이라면, 어릴 때부터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으로서의 '젠더'를 구분해서 가르쳐야 하고, 성과 제더에 관한 어떠한 편견과 차별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이 현상-여성혐오-을 좀 더 본질에서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회구성원을 분리하고, 경쟁과 대립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가족제도를 해체하고, 여성의 사회참여-이 문제는 여성의 삶에 있어 장단점이 다 있다-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사회화하면서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값싼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며,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로 이어지는 해체의 과정은, 노동자의 개별화, 파편화를 통해 결집하지 못하도록 하고, 실업예비군(실업자)을 유지하면서 노동자 서로가 경쟁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남녀의 성(sex) 대결이 아니라, 남녀가 평등함을 지향하고, 서로 연대하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놓고 토론하고, 남녀의 문제보다 더 절박한 계급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이 여성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이라는 점에서, 노동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을 부르짖는 계급운동과 본질에서 같다. 다만 (노동자)여성은, 같은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남성에게 차별당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은 노동계급 내부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계급의 단결을 목표로 할 때, 페미니즘은 남녀평등과 계급평등을 함께 달성해야 하는 막대한 임무를 띄게 된다. 여전히,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는 '페미니즘'에 관한 전선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은 무지개보다 더 다양해서, 최초 페미니즘이 백인여성의 인권을 향상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처럼, 여성 내부에서도 계급, 인종, 민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남녀평등은 물론 인종, 민족의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착취-자본가의 착취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착취든- 없는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거대한 적인 '자본(가)'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남성은 사회구조의 기득권자로 분류되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남성도 자신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여성은 남성이라는 기득권세력과도 맞서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런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착취구조인 자본의 억압과도 싸워야 하는 이중의 고난을 겪고 있다. 많은 남성이 여성의 동지로 함께 싸우고 있지만, 강력한 체제권력(자본)을 움직이는 세력은 여전히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의 수호를 위해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있으며, 현실을 호도하고, 일부 남성을 끌어들여 여성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봉건시대에는 '유교'라는 지배논리를 통해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옹호, 유지해 왔으며, 자본시대에는 형식적으로 남녀평등을 말하면서도 제도와 의식은 여전히 봉건제에 머물러 있는 남성들로 인해 여성은 현대 민주주의체제에 살면서도 실질적 삶은 봉건제적 억압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 만화는 한국 현실에 맞는 페미니즘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적어도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나라에 사는 부부들과는 다른 인식을 갖고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덜 '개인주의적'이며, 덜 '민주주의적'이고, 집단주의와 유교의 찌꺼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물론, 남성까지도 자유롭지 못하게 옭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부부, 남녀의 평등을 가로 막는 체제의 힘은 곧 남성지배권력과 '자본'의 결합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곧바로 거대한 남성지배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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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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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상상과 현실의 모호함
- 제목 : 여행 작가 : 에드몽 보두앵 출판 : 새만화책 '새만화책'에서 펴낸 작품. '새만화책'은 나에게는 '로망'이다. 꿈을 꾸지만 이룰 수 없는, 영원한 신기루와 같다. 나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고, 무엇보다 만화를 그리고 싶지만, 그것은 그저 소망이고, 욕망일 뿐, 현실은 다르다. 만화를 그릴 능력이 없어서 만화를 좀 더 깊이 읽었고, 만화비평을 하게 되었다. '새만화책'에서 나오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글과 그림은 결코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범주에는 활자만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 이후 문학은 '문자'로만 형상화되었다. 고대는 물론, 근대까지도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지식인이었고, 지배계급에 속했음을 생각한다면, '문자'를 다루는 행위는 극소수 지식인과 지배계급의 행위였고, 이것은 다수 민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었다. 문자 이전에 이미지가 소통 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언어와 문자가 없던 시기에도, 인류는 자연의 모습을 흉내낸 이미지를 그렸고, 자연을 숭배하는 행위,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 사냥을 잘 하길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도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미지는 인류에게 친숙한 대상이자 도구였으며, 문자 이전에는 중요한 소통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초기의 문자는 '표의 문자'가 대부분으로, 문자 하나가 하나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자들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이미지가 점차 '표음 문자'의 등장으로 분리되면서, 이미지는 문자와 언어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별개의 영역-예술-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미지가 문자로 바뀌는 과정은 인류의 지성이 발달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고, 문자의 확대는 지식의 보편을 이뤘다. 문학이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문자로 기록을 남기고, 대중의 삶에 깊숙히 스며들었다면, 만화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창작되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이미지는 문자보다 더 익숙한 매체였고, 실제 다양한 이미지가 창작되었으나 만화의 형식이 탄생하기까지 물적 토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석기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인류가 그려 온 무수한 그림은 대개 단일한 이미지였으며, 만화처럼 칸과 프레임을 쓰면서 그림이 연결되고, 이야기가 있는 방식의 이미지는 이미지와 문자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각각의 이미지와 문자로 창작된 방식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였다. 만화는 기존의 이미지가 표현하지 않거나, 못했던 방식으로 대상과 상황을 표현했다. 고전적 의미의 이미지는 어떤 한 순간을 고정시키지만, 만화는 이미지의 한 순간을 고정시키는 방식은 같아도, 그것을 과장, 축소, 왜곡, 변형시키면서 연속으로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만화는 다시 카툰, 코믹스, 그래픽노블 같은 여러 장르로 나뉘는데, 그래픽노블은 카툰, 코믹스보다 가장 늦게 나타난 장르다. 그래픽노블과 코믹스는 형식에서 차이가 없지만, 그래픽노블이 작가의 의도와 의지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작가주의 만화'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예술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로 불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책 '여행'은 프랑스의 작가 에드몽 보두앵의 작품인데, 무엇보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훌륭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주인공 시몬이 가족과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에 가서 겪는 새로운 경험과 시간의 흐름, 시몬의 의식의 변화를 몽환적인 기법과 함께 그린 만화인데, 붓으로만 그린 선이 마치 동양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행'이 실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메타포로써의 여행'이라고도 했다. 즉, 작가의 상상이라는 말인데, 작품에서도 사실묘사보다는 환상, 환각의 장면이 처음부터 나온다. 작품의 시작부터 45쪽, 올리비에를 만날 때까지 주인공은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이미지는 지극히 환상적이며, 비현실적인 풍경과 주인공이 환상에 시달리는 장면으로만 그려진다. 이때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픽노블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한데, 지문 없거나 극히 최소한만 사용하면서, 이미지로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것은 문학(노블)과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 작품에서 '노블'은 '그래픽'만큼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주인공 시몬은 가족과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 형상이 바뀐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머리 위에 올라간 것으로 보이지만, 이내 머리에 철창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는 시몬의 머리에 쓰인 철창을 볼 수 있지만, 만화 속 인물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2차원 이미지로 드러낼 수 있는 한계이자, 독자와 만화의 인물을 구분하는 상징적 장치다. 시몬은 집을 나와 회사로 출근한다. 그가 거리를 걸을 때, 도로의 이미지는 시몬의 머리와 연결된다. 건물, 비둘기, 하늘, 나무, 지하도의 천정, 지하철의 천정 등 그의 머리는 마치 열려서 기이하게 변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 전철 안에서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들이 모두 죽은 사람으로 보이는 환각을 겪는다. 그의 머리에서 해골이 쏟아져나오고, 사람들의 머리가 해골로 바뀐다. 시몬은 지하철을 뛰쳐나와 회사로 들어가지만, 이내 뛰쳐나온다. 그는 거리를 걷다 센느강으로 나와 우연히 어떤 여성을 만나 고양이가 죽었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자는 고양이가 없다고 말하고, 오늘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남편, 딸, 개, 일, 모두. 그러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몬은 이 여자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냐고 묻는데, 여자는 '사랑이 뭐'냐고 되묻는다. 시몬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왜 뜬금없이 처음 만난 여자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냐고 묻는 걸까. 여자와 헤어지고, 시몬은 다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직원인 프랑수아즈에게 '나랑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느냐고 다시 묻는다. 이것은 작품의 뒷부분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는 걸로 보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몬의 충동은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요소이거나, 시몬의 피폐한 정서가 자신을 방기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인데, 이건 오로지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시몬은 홈리스 노인을 만나 그에게 돈을 준다. 노인은 여행 떠나기 좋은 날이라며 자신은 술을 마시는 것이 곧 여행이라고 말한다. 시몬은 거리를 방황하다 열차를 타고 낯선 곳에 내린다.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난 올리비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게 되고, 이때부터 시몬과 올리비에는 '정상적'인 대화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뛰쳐나왔다. 올리비에도 우여곡절을 겪고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인형극을 하고 다닌다. 시몬도 올리비에를 도와 인형극 조수로 일하며 며칠을 보내다 올리비에의 친구인 마르크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마르크의 여동생 레아를 만나고 첫눈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이제 이야기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처음 시몬이 환상과 환각을 보면서 시작했던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장소와 환경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시몬이 놓인 환경-가족, 직장, 도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마르크는 시몬에게 자신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고 제안하고, 시몬은 동의한다. 두 사람은 바다를 항해하고, 마르크가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걸 시몬이 저지한다. 마르크는 애인 이자벨이 폭풍우에 휩쓸려 죽은 장소에서 죽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마르크는 살았지만 곧 날씨가 거칠어지면서 배가 침몰하고, 시몬이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상황에서 마르크가 다시 시몬을 살린다. 이런 극적 장치는 작위적으로 느껴져 진정성이 떨어지는데, 작가는 시몬이 죽을 고비를 넘겨 새로운 삶을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작위적인 설정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시몬은 마르크와 헤어져 선술집에 갔다가 시비가 붙고, 거리에서 습격 당해 얻어맞는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고, 곧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제 시몬의 공황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시몬은 우연히 홈리스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은 파리에서 봤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이 평생 한번도 이 마을(라로셀)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라로셀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400km 떨어진 항구 마을로 인구는 약 8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빈털털이 시몬에게 노인은 적선을 베풀고, 한 노인을 소개한다. 시몬은 소개받은 노인의 집을 찾아가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노인은 방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한다. 노인은 요정의 친구로 평생 아름다운 사랑을 했고, 사랑을 멈추자 갑자기 늙었다고 했다. 시몬은 다시 레아를 만나고, 두 사람은 노인이 빌려준 방에서 섹스를 한다. 레아는 시몬에게 산에 오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산을 올라 다시 섹스를 하고, 레아가 먼저 산을 내려간다. 레아는 시몬에게 산에 조금 더 오래 남아 있기를 권하는데, 혼자 산에 남은 시몬은 아주 멀고 먼 과거, 지구가 생기고, 공룡이 뛰어다니고, 원시인류가 사냥을 하고, 시간이 거슬로 오면서 중세, 근대, 현대의 역사 속을 경험한다. 시몬의 환상은 그가 자신의 삶을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역사 속에 투영, 투사하는 것은 자기를 성찰하는 자세이며,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자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시몬은 산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이것도 작위적인 느낌이다. 이미 바다에서 빠져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다시 산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위험을 그려 넣은 것은 작가의 치기가 보이는 장면이다. 산을 내려온 시몬은 올리비에를 만나고, 그와 고성에서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낯선' 집으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구조는 좋지만, 주인공 시몬이 겪는 상황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가 회사와 집을 단조롭게 오가는 것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가족과의 단절과 회사에서의 매너리즘이 모두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이기적이다. 결국 회사에서 무작정 뛰쳐나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목적지도 없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이동 인형극장 일을 하는 올리비에를 만나 그의 집까지 가고,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누군들 이런 여행을 꿈꾸지 않을까. 시몬만이 특별한 사람도 아닐테고, 그의 가족들도 온통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마치 자신만이 유독 특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듯한 과도한 설정이 조금 불편하다. 여기서는 주인공 시몬 한 사람의 시각과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의 가족 아내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시몬의 아내와 아들은 갑자기 사라진 남편과 아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또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입장도 뒷부분에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독자는 시몬의 상황은 이제 충분히 보고 이해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시몬의 아내와 아들 피에르에 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 아버지의 존재는 자신에게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하게 되고,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부재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모자의 삶은, 정작 사라지길 원했던 시몬보다 더 절실하고 안타까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시몬이 가족을 떠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려고 할 때, 그는 집과 가족을 '낯선 집'이라고 말한다. 시몬에게 가족은 이미 피붙이의 애틋함이 사라진, '관계'로서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관습적이고 당연한 클리셰이다. 너무 익숙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 '가족'을 낯설게 느낀다는 건, 자기 존재와 가족을 분리하고, 객관화하며,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고, 또한 몽환적이었던 것처럼, 주인공 시몬이 실제로 여행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시몬의 상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시몬이 겪었던 모든 시간과 공간이 오로지 '상상'이었더라도 시몬은 가족과 일정한 거리가 벌어진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시몬 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작품은 훌륭한 그림과 함께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 기법의 독특함으로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펜이 아닌, 붓으로 그린 그림은 부드럽고, 선은 거친 듯 하면서 미려하다. 한 페이지에 여섯 칸을 기본으로 하고, 다양한 변형을 주었는데, 선의 굵기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여백과 생략을 과감하게 하면서, 드러내야 할 부분만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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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아우슈비츠의 참혹함과 생존자의 고통을 그리다
- 제목 : 쥐 작가 : 아트 슈피겔만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이 만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태인이 겪은 비참한 상황을 ‘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는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으로 그의 가족, 그의 아내와 아내의 가족이 겪은 비극에 대해 구술한다. 수십명의 가족, 친척들이 모두 죽고 결국 극소수의 형제와 부부만 살아남은 가운데 노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유태인의 삶에 대해서도 현실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만화를 13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며 그렸고,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구겐하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래픽노블의 역사에서도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가 역시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만화를 그리는데 앞장 선 인물이다. 이 만화의 특징을 몇 개의 주제로 분석했다. 먼저 줄거리를 요약했다. 작가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은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으로, 부유한 집안의 여성 안나 질버베르그를 만나 결혼한다. 이후 장인의 도움으로 직물공장을 운영하며 부유하게 살다 히틀러의 나찌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폴란드군에 징집되었고, 독일군에 잡혀 전쟁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한동안 머물다, 독일 공장의 노동자로 자원한다. 땅을 파는 노동자로 몇 달을 보낸 다음, 갑자기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나찌는 형식적으로 전쟁포로를 석방한 다음, 독일 영토로 끌고가 학살하고 있었다. 블라덱은 근처에 사촌이 있다고 말하고, 뇌물을 주어 무사히 수용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살던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아내를 만난다. 하지만 나찌의 탄압은 더 심해지고, 1939년이 되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가스실의 정체가 유태인들에게도 알려지지만 대부분의 유태인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블라덱의 처가는 부유한 집안이어서 나찌에 협조하고 있는 유태인 위원회를 매수해 탄압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지만, 결국 살던 집에서 쫓겨나 게토로 옮겨가고, 이후 진행되는 과정은 은거, 도주, 체포, 도주, 은거를 반복하면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어간다. 폴란드인 가운데 선량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태인 가족을 숨겨주었지만, 블라덱 가족은 헝가리로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다. 나찌의 유태인 분류에 따라 블라덱의 대가족은 뿔뿔히 흩어진다. 대부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들어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944년 3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블라덱은 카포(유대인 관리자)의 개인 영어교사로 차출되어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 다음에는 함석공으로, 제화공으로 옮겨가며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공사장 노동자로 돌아가서 극심한 고생을 하게 되고,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을 직접 보고 기계 설비 일부를 해체한 목격자가 된다. 이후 소련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까이 접근하자 독일군은 유태인을 독일 국내로 끌고가기 위해 열차에 태워 오랜 시간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유태인이 사망한다. 블라덱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다카우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다 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포로교환으로 스위스까지 가는 기차를 타게 되고, 이곳에서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독일군이 패퇴하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살아남는다. 이후 블라덱은 나찌에게 잡혀갈 때 살고 있었던 소스노비에츠로 돌아가 기적처럼 아내 아냐를 만난다. 쥐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그렸다. 유태인을 쥐로 설정한 것은 작가의 오리지널이 아니라, 이미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 나찌는 유태인을 쥐로 묘사하고 있었다. 나찌가 유태인을 쥐로 묘사할 때, 독일 국민을 비롯한 모든 유럽의 비유대인은 왜 반발하지 않았을까. 유태인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결코 모르지 않았을텐데, 극우 나찌가 권력을 잡고, 유태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폄하하고, 절멸해야 할 대상으로 찍었을 때, 비유태인들이 눈감고, 외면하고, 모른 척 한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1938년 상황부터 시작한다. 작가의 아버지가 결혼을 앞두고 만났던 여성과의 갈등과 새로운 여성과의 만남, 결혼부터. 작가의 부모는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겪는 산후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체코로 휴양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나찌의 철십자 깃발을 본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미 유태인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학살당하거나 추방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히틀러는 극렬한 반공주의자이자 반유태주의자였다. 히틀러의 가계에서 유태인의 피가 흐른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드러내려 했고, 유태인이 열등한 인종이며, 절멸시켜야 할 인종이라며 혐오했다. 이런 극단적 혐오의 감정이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유태인은 왜 히틀러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걸까. 히틀러는 권력을 차지하고, 권력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유태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점찍었을 뿐이다. 이미 유태인은 유럽 전체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작가가 유태인을 쥐로 묘사한 것은 히틀러의 나찌가 유태인을 묘사한 것에 대한 반발의도와 자기비하를 통한 동정얻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아니, 작가가 의도적이지 않았다 해도 독일군을 고양이로 그린 것에서 그런 의도는 분명해진다. 애초 쥐와 고양이를 비롯해 동물의 의인화 작업은 진보적 만화가들의 주제 가운데 하나였고, 아트 슈피겔만은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먼저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흑인도, 백인도 아니어서 흑백 인종차별에 관해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유태인이고, 부모가 아우슈비츠 생존자라는 것은 곧바로 유태인과 독일군의 관계로 이어졌고, 처음 몇 페이지짜리 만화로 시작해 장편 그래픽노블이 될 때까지 무려 13년의 시간을 이 만화에 투자했다. 쥐와 고양이는 그 자체로 천적이며, 약한 자와 강한 자를 상징하고, 전복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 톰은 분명 강자이면서도 늘 약자인 쥐 제리에게 당한다. '심슨 가족'에서 호머의 가족이 보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이치와 스크래치는 '톰과 제리'의 패러디이면서, 더 과장하고 왜곡된 형태의 '톰과 제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한 '톰과 제리'의 패러디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에서 유통되고 있는 '톰과 제리'의 상징과 이미지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가를 비트는 패러디다.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고, 독일군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쏘련은 곰 등 민족마다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쥐는 인간이 혐오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유태인이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쥐를 유태인의 상징으로 그린 것은 작가의 탁월하면서 필연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태인이 쥐로 그려진 것은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상황이었고, 이후 유태인은 다른 민족인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고양이로 변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태인의 이중성과 아이러니를 드러낼 수 없다. 유태인 유태인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아이러니다. 그들이 믿는 신이 세계의 절반 가까이 지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그 신의 아들이라는 인물을 부정한다. 유태인이 믿는 신과 기독교의 구교, 신교, 이슬람교의 신은 동일하지만, 신의 아들인 예수를 부정하는 것은 오로지 유태교 뿐이다. 유태인들은 유일신 야훼를 믿으며, 자기 민족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는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자신과 다른 모든 민족과 인종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기초가 된다. 2천년 전부터 기독교가 로마에서 국교로 인정받고, 로마의 힘을 따라 유럽 전체로 퍼져나갈 때도 유태인은 자신이 믿는 신과 구분했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를 성삼위일체로 받아들인 기독교는 유태인들의 배타적 태도와 행위가 거슬렸고, 그들의 선민의식이 아니꼬왔다. 유태인은 역사 속에서 소수집단이었으며, 한때 자신의 국가를 세우기도 했으나 외세의 침략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들의 디아스포라가 끝난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라를 이뤄 살고 있던 지역을 침탈해 '이스라엘'을 세웠다. 종교적으로 유일신을 숭배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강한 선민의식을 가진 집단이었던 유태인은 수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를 통해 유럽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이들은 소수민족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며,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금융업을 개발하고, 유통업 등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유태인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는 말은, 그들이 대대로 교육-집단윤리와 종교-을 통해 자녀를 훈육하고,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이 혹독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일신 야훼의 존재와 선민의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고, 그런 자기중심의 세계관이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탄압당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니, 유태인의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인 것이다. 봉건시대 이전까지의 유태인은 다른 인종-영국, 독일, 프랑스 등을 만드는 앵글로색슨, 게르만, 노르만, 이베리안, 켈트, 스코트 등 유럽의 주류 인종-에 비해 소수인종이었으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디아스포라 민족이어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생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류 인종들에게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으며,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존재들이었다. 유태인 뿐아니라 '집시'를 비롯해 소수 유랑민족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이들 소수민족, 인종은 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경제체제가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이행하고, 정치적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17세기 이후 유태인은 소수민족이지만 부와 권력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졌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갖는 다수민족, 인종은 이런 유태인을 보며 시기, 질투를 하게 된다. 이념적으로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유태인 가운데 뚜렷하게 드러나는 인물이 있어 유태인을 탄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유럽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태인이었던 것은 분명하고, 특히 러시아 혁명에서 공산주의자 그룹의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수-약4%-가 유태인이었다고 추정한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극렬하게 혐오하고, 그들을 절멸하려했던 가장 큰 이유로 이념 전쟁을 들기도 한다.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자로,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었고,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는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레닌이 권력을 잡았을 때, 볼쉐비키 그룹에는 유태인 공산주의자들이 많았고,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 중에 러시아 혁명 소식을 듣는다. 전쟁에서 진 독일은 승전국들이 요구하는 과도한 전쟁비용에 고통당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전후 불안과 경제적 빈곤, 강대국의 억압 등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이것은 곧 파시즘의 대두와 소수인종의 탄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받아들여, 반공, 순혈주의 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갔고, 소수인종, 민족인 유태인과 집시 등은 절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생존자 히틀러가 유태인을 절멸하려는 이유로 '인종'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유태인 절멸을 통해 세 가지 이익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내세워 독일국민을 단일하게 통합할 수 있는 명분을 세우고, 유태인을 공격함으로써 파시즘의 정당성을 획득하며, 히틀러에 대한 지지, 충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다. 유태인은 공장, 상가, 기업을 소유하고, 보석 유통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상업을 하고 있었다. 유태인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그들의 재산을 독일정부가 몰수했다. 그들이 게토로 이동하거나, 수용소에 갇힐 때까지 가지고 있던 짐은 대부분 압수되었고, 몸에 지닌 모든 장신구, 시계, 반지, 목걸이, 보석 등도 몰수당했다. 유태인의 집에는 값비싼 미술작품을 비롯해 금고에는 돈, 금괴 등도 많았기에 나찌는 유태인의 집에서 압수한 이런 물건을 극소수만 아는 창고를 마련해 숨겨두었다. 전쟁 막바지에 미군이 히틀러의 요새를 점령해서 발견한 물건들 가운데 미국으로 반출된 것이 매우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유태인을 절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은 것은, 전쟁 막바지로 가면서 자포자기한 측면도 있고, 학살의 과정이 시스템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유태인을 죽여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부자 유태인 가족이 사라지면 그들의 재산이 모두 누군가에게로 옮겨갔고,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다. 비유태인이 유태인을 증오할 이유는 수백, 수천가지도 더 되었고, 유태인은 결코 정직하거나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었으며, 그들의 존재, 말과 행동, 신념, 종교가 증오를 부르는 원인의 일부였다. 그리고 시대상황은 유태인에게 매우 불리하게 움직였고, 많은 유태인이 가스실로 들어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유태인은 말한다. 왜 우리가 증오의 대상이 되고, 학살당해야 하는가라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거나, 살아남은 유태인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시대의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일 뿐이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작가의 어머니는 1968년에 자살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지만, 살아 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이 참기 어려울 정도의 강박증세를 보인다. 작가의 아버지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수용소의 경험을 책으로 남긴 프리모 레비의 증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없었다. 프리모 레비도 결국 자살하는데, 불과(?) 10개월의 수용소 경험이 한 인간의 존재 전체를 뒤흔들고, 다시는 과거의 '존엄성을 유지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유태인 개개인이 겪은 학살의 트라우마는 집단화한다. 융이 말한 것처럼, 집단무의식은 민족의 염원으로 드러나고, 다시는 같은 참혹함을 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와 강렬한 의지가 시오니즘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유태인의 선민의식이 결합한 시오니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물리적으로 소수그룹인 유태인은 가장 강력한 집단인 미국을 등에 업기로 결정한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투사하면, 자신도 가장 강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약했기 때문에 당했으니, 약한 자는 당해도 싸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은 아우슈비츠에서의 트라우마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며, 집단무의식의 발현이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미국을 등에 업고 자신이 유럽에서 당한 따돌림과 폭력을 같은 소수민족인 팔레스타인을 향해 퍼붓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만화의 형식 이 작품은 한 페이지에 여덟 칸을 기본으로 하고, 칸의 변형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긴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칸 하나의 밀도는 매우 높아서, 그림과 글이 꽉 차 있다. 만화에 여백이 없거나 드문 것은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가 많거나, 스토리에서 여유를 부릴 만한 심리적 편안함이 없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칸에 글과 그림이 빼곡하다. 대사와 지문은 너무 많아서 만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 작가가 선택한 주제와 아버지의 과거 경험, 현재 아버지와의 관계 등이 작가의 작품에 생생하게 녹아들기 때문에 그만큼 해야 할 말, 하고픈 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아버지의 증언을 토대로 그림 작업을 했지만, 그림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증언이나 적은 기록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3년간 작업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도 아니고, 엄살도 아니다. 작가는 사실에 가까운 묘사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고,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의인화를 제외하고 시대 배경-건축, 의상 등-을 최대한 당대에 가깝게 재현했다. 책 1권 90쪽에 유태인들이 디엔스트 스타디움에 모이는 장면이 있는데, 반페이지 칸에 수백 명의 유태인을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스타디움 앞 광장에 동상과 전차, 자동차까지 배치해 현실감을 높였고, 계속 진행하는 장면들에서도 군중 씬에서 유태인들이 입은 옷과 게쉬타포가 입은 군복에서도 작가의 고증은 꼼꼼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작가는 스크린톤을 쓰지 않고 모든 선을 직접 펜으로 그렸는데, 당연하면서도 신선하다. 스크린톤은 일본과 한국만화에서 쓰이는 특징인데, 그래픽노블에서는 스크린톤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스크린톤은 일본에서 개발되어 주로 '공장만화'에 쓰이다 한국으로 넘어왔고, 한국에서도 만화가가 여러 명의 보조 인력을 데리고 일하면서 대량으로 만화를 생산하는 체제를 갖춘 곳에서 주로 쓰였다. 작가가 인종에 따라 동물로 형상화하면서 발생한 문제(?) - 작가가 분명 의도한 것이라고 보는데 - 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문제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면서, 모든 유태인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즉, 개인의 '퍼스낼리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돼지로 표현한 폴란드인이나, 고양이로 표현한 독일인처럼, 그들이 인종대 인종으로써 학살하고, 학살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려 했다. 집단 학살 앞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며, 생존자는 오로지 '우연'과 '행운'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현재의 아버지와 과거의 아버지를 번갈아 만나는 방식이다. 여든이 넘어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용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아내의 자살이 자기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아들인 작가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민감한 문제인데, 현재의 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는 말라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라 역시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블라덱의 아내(작가의 어머니) 안나가 자살하면서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묵시적으로 남편을 비난하는 것으로 읽힌다. 안나 역시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가 극심해서, 그 결과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 블라덱의 행동이 수용소 이전과 이후에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볼 때, 안나는 달라진 남편의 말과 행동을 견디기 어려웠고,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남편의 달라진 행동으로 인한 불안과 실망, 좌절이 겹쳐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버지를 만나며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발화로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작가가 개입하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에서 발생하는 사고, 사건은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고, 현재의 '괴팍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과거에서 찾는다. 이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하는데, 작가는 아버지가 회상한 과거를 녹음했고, 녹음을 들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과거는 아버지의 기억에서 소환되거나, 아버지의 발화를 통해 기록되어 작가의 작품으로 옮겨간다. 이 만화는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지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충분하게 전하고 있다. 독일군-나찌-의 잔학함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분을 느끼게 하고, 유태인들의 무저항에 대해서도 어리석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문제는, 아트 슈피겔만처럼 별 ‘악의없이’ 자신의 가족사를 그리는 사람마져도 유태인의 전략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조직적으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끊임없이 여론을 환기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그 자신이 유태인의 피가 흐르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태인의 수난사에 대해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돕고 있고,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면서 재생산하고 있다. 유태인 학살을 거론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된다. 인종을 말살하려는 인종우월주의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인류는 존재의 의의마져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유태인은 소수라고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그것은 그들이 2천년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배운 지혜의 결과겠지만, 그들의 생존을 위해 예전의 자신들과 같은 다른 민족을 말살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찌들에 의해 독가스 등으로 학살 당한 유태인의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그보다 더 잔학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것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유태인’의 문제는 한 종족의 문제가 아닌,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우익 강경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미국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방향으로 중동의 중심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태인이 자기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소리치는 것도 이제 귀가 아플 정도가 되었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고발 장면-영화, 소설, 만화, 다큐멘터리 등-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촘스키와 같은 동족-유태인-이 이스라엘의 파시즘화를 노골적으로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자기 종족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유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친일매국노’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핍박받은 상황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유태인들처럼 집요하면서도 사실적인 증언과 복원의 결과물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고통받은 사람들의 증언이 영화, 만화, 소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목소리가 사회에 크게 울려야 한다. 아직도 친일매국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반민족행위자들이 출세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소위 진보를 말하는 자들이거나, 양심있는 자들은 ‘유태인’처럼 우리가 당한 수난의 역사를 우물처럼 자꾸 퍼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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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아우슈비츠의 참혹함과 생존자의 고통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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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욕망하는 여자
- ‘엄마’, 욕망하는 여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분명 누군가의 ‘엄마들’이지만, ‘엄마’는 이들의 정체성이 아니다. 이들의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거나, 남편과 이혼(또는 사별)해서 따로 살고 있는 여성들이다. ‘엄마’와 ‘어머니’는 같은 기혼 여성 가운데 자식을 둔 여성을 지칭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마영신 작가는 왜 ‘어머니’여야 할 자신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들을 ‘엄마들’이라고 했을까. 작가는 남성이고, 자신이 바라보는 ‘엄마’는 ‘어머니’이고 싶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엄마들’은 작가가 ‘아들’이자 ‘남성’의 시각을 투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엄마’는 남성(아들)의 시각에서, 늘 자기를 보살피고, 다정하고, 욕구-먹고, 입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뒷바라지 하는 모든 것-를 해소해 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어머니’는 보다 형식적이면서 존재가 분명한 이성(理性)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식이 나이 들어도 여전히 ‘엄마’로 부르려는 것은 단순한 친밀감의 표현이 아니라(그렇다 해도), 그들이 어렸을 때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지만 ‘엄마’도 인간이고, 여성이다. 엄마도 나이 들면서 변하고, 달라진다.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이타적으로 행동한 존재이며, 사회는 ‘엄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퍼뜨려, ‘엄마’의 역할을 고정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회적 억압이다. ‘엄마’의 역할을 고정하려는 사회적 의도와 압력은 곧 여성 일반의 사회적 역할을 고정하고 억압하려는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의 연장선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영신 작가는 ‘엄마들’이라는 감성적 제목과는 완전히 다른 ‘엄마’이자 욕망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은 표지부터 남다르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의도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하고 좋은 방법은 표지그림인데,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한국적'인 표지그림은 이 작품이 아마도 최초가 아닐까. 표지그림은 그 자체로 역설이다. '엄마들'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보편으로 인식된 '엄마'라는 따뜻하고 편안하며 행복한 이미지의 추상이지만, 그 아래 두 중년 여성이 서로 머리칼을 움켜쥐고 악을 쓰는 모습은 '엄마'라는 기존의 아름다운 추상적 이미지를 산산이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바탕의 빨강색은 중년들이 좋아하는 색깔로 알려졌는데, 빨강의 강렬한 색감과 흑백의 인물이 강조되면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예사롭지 않은 사연을 풀어놓을 거라는 기대를 일으킨다. 주인공은 이소연이다. 중년의 여성이고, 아직 독립하지 않은 성인 아들과 함께 사는데, 자기 이름으로 남은 유일한 재산은 연립주택 가운데 한 채다. 소연은 스무 살에 중매로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셋이나 낳아 길렀지만, 남편이 도박에 빠져 집안을 망치고 빚만 늘어나자 소연은 빚을 갚기 위해 평생 가난과 노동에 허덕였다. 그러다 결국 이혼을 하고 지금은 건물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집안을 망치고, 가족을 괴롭힌 것은 남성(남편)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 고생하는 것은 여성(아내)이 되는 구조는 ‘사회적 스톡홀름 신드롬’에 해당한다. 가부장사회,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다. 여성은 늘 자신이 억압당하는 상태에 있음을 느끼고, 성폭행, 성추행, 폭행, 차별, 억압 같은 공포를 겪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남성(사회)의 요구에 동의,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연 역시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평생을 힘겨운 노동으로 보냈다. 이런 여성의 행동을 가부장 사회에서는 ‘현모양처’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한다. 이런 장치를 통해 여성의 욕망은 소거되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다. 소연에게는 애인 종석이 있는데 술집 웨이터로 일하는 남자다. 종석의 아내는 다단계에 빠져 빚이 많은 데다 종석의 동창하고 불륜 관계여서 사실상 이혼한 상태로 생각하고 있다. 소연은 애인인 종석이 3년 전부터 꽃집 여자를 만난다는 말을 듣고는 종석에게 욕을 하며 헤어지지만, 이들의 삼각관계는 이어진다. 꽃집 여자 명희는 소연에게 종석과 헤어지라고 말하고, 소연은 '내 남자와 연락하지 말라'고 카톡을 하다 새벽에 길거리에서 만나 육탄전을 벌인다. 작품 속 엄마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성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엄마'라는 이름에 가려진 그녀들의 모습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사회적 약자, 가부장제, 남성 우월주의 체제 속에서 억눌린 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피억압자의 모습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대개 부자도 아니지만, 많이 배우지 못한 여성들이어서 자기들의 삶이 왜, 어떻게 망가져 왔는지 깊이 성찰할 능력은 없다. 남자(남편을 포함한 애인까지)들이 저지른 일을 뒤치다꺼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면서도 자신보다 남자, 자식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던 여성이 바로 '엄마'다. 하지만 '엄마'도 나이 들면서 자기 욕망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오랜 시간 너무나 많이 참았고, 남자(남편과 애인)와 아이들에게 시달렸고, 자신의 행복을 유예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춤을 배우고, 나이트클럽과 콜라텍에서 낯선 남자들과 춤을 추고, 애인을 사귀고, 삼각관계에서 질투와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엄마들'의 다른 모습은 '여성 노동자'다. 그것도 비정규직의 불안한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한다. 소연은 빌딩 청소를 하는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는 소연과 비슷한 나이와 처지에 있는 여성들이 함께 일하고 있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용역업체의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여성 노동자로 빌딩 청소를 하는 ‘엄마’는 그들이 집에서 살림하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바로 그 모습을 빌딩 청소라는 다른 형태로 반복하고 있다. 즉, 여성 노동자로서, 엄마로서 가정과 사회에서 그들의 처지는 늘 낮은 곳, 가장 열악한 곳, 가장 힘들고,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조적으로 억압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 노동자이자 ‘엄마들’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욕망을 발산하고,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을 건설한다.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해 달라고 소장을 찾아가 이야기를 한 옥자 언니는 성추행을 당하고 해고된다. 옥자 언니는 여성가족부도 찾아가고 노동운동을 하는 여성도 찾아가지만,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용역업체 소장-남성-은 반장을 시켜 어용노조를 만들도록 하고, 16명 가운데 12명이 어용노조에 가입하고, 4명이 된 소연과 동료들은 따돌림을 당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여성)들이 어용노조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 자기들만 고용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보면서 소연과 동료들은 배신감을 갖지만, 12명의 여성이 왜 권력의 그늘로 순순히 들어갔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은 드러나지 않는다. 동료와의 연대까지 외면하면서 더 중요한 건 ‘일자리’고 ‘임금’이기 때문이다. 빈곤은 동료 노동자와의 연대와 협력을 방해한다. 일자리를 잃게 되면 곧바로 들이닥치는 생존 문제는 이들이 노동착취와 차별에 저항하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소연은 라디오 방송에 나가 일하는 회사에서 부당 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고발한다. 라디오 방송의 파급 효과가 있어 소장은 소연을 비롯해 모두 해고될 거라고 협박하지만 결과는 용역업체와 소장이 바뀌고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남았는데, 소연과 연정 언니는 해고된다. 소연은 옥자 언니와 다른 업체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 예전 업체에서 반장을 했던 사람이 들어온다. 떡값을 빼돌리다 들통나서 해고되자 우연히 소연이 일하는 곳으로 취업한 것이다. 소연은 삼각관계였던 명희와 친구가 되고, 연순은 만남 어플로 연하의 남자를 만나고, 명옥이는 기자 애인과 계속 만나고, 연정은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고, 경아의 남편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모두 여전히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개혁할 여력도, 능력도 없지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공모한 만화평론에 가작 당선한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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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욕망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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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 프롤레타리아, 욕망의 리얼리즘
- 룸펜 프롤레타리아, 욕망의 리얼리즘 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발현하는가를 들여다보면, 좁게는 개인을 둘러싼 좁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낮은 차원에서 사회의 구조를 아우르는 거대한 관계망까지 영향을 끼치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사회적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개인의 욕망이 일치할 때, 그것을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입신양명’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보편적 욕망은 자신이 놓인 삶의 물적 토대에 근거하며, 욕망의 크기도 개인의 환경에 비례한다. 욕망의 진화 역시 사회의 구조적 선택압을 받게 되며, 구조는 마치 거대한 계단처럼 개인의 욕망을 가로막는다. 욕망은 변증법적으로 진화하며, 질적 변화를 일으킬 때, 계단을 뛰어넘는다. 사람은 저마다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간다. 대개는 ‘욕망’과 ‘희망’ 또는 ‘욕구’를 구분하지 않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객관적 조건과 거리가 먼 황당한 기대를 당연한 듯 품고 살기도 한다. 마영신의 ‘아티스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신득녕, 곽경수, 천종섭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이자 예술가로 자처하는 인물이다. 작가는 이들이 가진 욕망의 발현을 ‘권력’이라는 배경에 투사해 해부한다. 한국사회에서 40대 남성은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진 존재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인정받지 못했거나, 중심에서 멀어져 소외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의 존재가 ‘기득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주인공들은 자신이 한국사회의 기득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예술가이며, 주변부에서 소외된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계급으로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이며, 본질에서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진 집단에 속해 있다.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집단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개인의 욕망을 비판하지만, 표현은 결코 말랑하지않다. 작품에서 ‘계급’, ‘모순’, ‘갈등’, ‘대립’, ‘억압’ 같은 사회과학 용어가 등장하지 않을 뿐,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과 과정, 몰락에 이르기까지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숨 쉬는 (자본주의)체제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루지 못한 꿈(천종섭, 곽경수)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과 더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하는(신득녕) 인물이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내면에서 인지부조화의 갈등을 일으키는 초반은 이들의 본성이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난다. 지식인(인텔리겐챠)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이건 하나의 명제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식인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학연과 스승, 동료, 제자로 이어지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식을 자본화한다. 지식 자본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세 가지 요소-토지, 공장, 노동력-처럼 토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들-인텔리겐챠-의 발밑은 단단하지 않다. 지식 자본은 원래의 ‘자본’에서 파생한 것이므로, ‘자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많은 경우, 지식 자본은 ‘자본’에 복종하며, 자본의 용병으로 복무한다. 따라서 지식 자본을 보유한 인텔리겐챠는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적 속성을 내재하고 있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경수, 득녕, 종섭은 남성 예술가 모임 ‘오락실’에서 만난 또래들이다. 각자 두 살 터울이지만 형, 동생의 위계를 지키는데, 이건 특히 한국의 병영 문화가 낳은 폐해를 드러낸다. 이들이 형, 동생으로 부르지만, 실제로 나이 먹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 먹어서 한심하다고 경멸할 때, 이들의 위계는 본질을 드러낸다.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남성인 것은 작가가 남성이기 때문도 아니고,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내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의도는, 한국사회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40대 남성 가운데서도 노동자가 아닌, 인텔리겐챠이면서 룸펜 프롤레타리아인 이들이 ‘예술가’로 자처하지만, 실제 ‘예술가’의 정체성이 있는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요절한 젊은 가수의 작품성을 폄하하고, 인간성까지 비난하며, 죽어서 대중에게 스타 대접을 받는 것까지 질투한다. 뮤지션 천종섭은 저작권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신득녕에게 다른 가수의 음원을 불법으로 복사해 달라고 말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기득권 남성의 멘탈리티를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같은 ‘오락실’ 멤버 가운데 가수로 성공한 사람, 영화로 성공한 사람을 두고 실력도 없으면서 어쩌다 성공했다고 폄하하며, 조금 유명해졌다고 사람이 달라졌다고 비난한다. 이들의 비난은 근거가 없다. 그들의 일방 주장일 뿐이다. 그러면서 곽경수는 말한다. ‘우리 세 사람은 누가 잘 되면 무시하지 말고, 서로 진심으로 위하면서 살자’고. 이 대사는 이미 자기들이 무시당하는 걸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고, 누군가 성공했을 때, 서로 진심으로 위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드러낸다. 작품의 초반에 나오는 이 대사는 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 것임을 예고한다. 작품의 발단에서 이들이 보이는 태도는 전형적인 룸펜 프롤레타리아다. 세 명 모두 일정한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았고, 지식 자본을 갖추었으나 그것을 상품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소외된 상태에 있으며, 그렇다고 노동시장으로 편입하려는 의지도 드러내지 않는다. 세 명 모두 가족과의 유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득녕은 34세에 소설집을 출간한 작가지만, 집안에서 모두 득녕이 작가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가족들과 멀어졌다. 득녕이 종섭의 에세이집 출간을 적극 돕는 이유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명이 우연히 만나 어울리며 가깝게 지내게 된 배경에는 ‘예술’을 향한 그들의 고집이 집안의 반대로 현실의 벽에 부닥쳤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세 명은 자발적으로 가족 단위에서 스스로를 해체한다. 가족의 범위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개념에서 벗어난 이들은 ‘오락실’이라는 남성 예술가 모임에서 만나 유사 가족을 구성한다. 이들은 각자 독립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자주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공통의 화제를 찾아 이야기한다. 보통의 가족도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며, 밥을 먹을 때는 주방에, 텔레비전을 볼 때는 거실에 함께 모인다. 이런 생활 방식은 약간의 물리적 거리만 있을 뿐, ‘오락실’의 남성 예술가들이나 기존의 가족 형태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세 명이 나이에 따라 위계를 갖추는 것 또한 한국 병영 문화의 하나이면서, 유교 전통에 따르는 보수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보수적 위계와 유사 가족의 결합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경우가 바로 득녕이 종섭을 위해 책 출간을 적극 돕는 것으로 나타난다. 득녕은 어려서 부모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득녕을 폭행했고, 엄마는 득녕을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득녕은 부모와 가족의 부정적 교육에서 벗어나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종섭이 뮤지션이면서 글도 잘 쓴다는 것을 발견하고, 종섭이 글을 꾸준히 쓰도록 지원하며, 출판사를 섭외하는 등 자발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욕망의 발현은 구체적인 물적 토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이들이 드러내는 욕망의 크기는 자신이 이룩한 사회적 성공만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거대한 세계라고 그들은 착각한다. 득녕의 도움으로 책을 출판한 종섭은, 예상치 않은 성공으로 어리둥절한다. 인세나 받아서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정도였던 에세이집은 크게 성공하고, 종섭은 하루아침에 스타 작가가 된다. 종섭이 자신의 전공분야로 생각하는 음악이 아닌, 글을 써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은, 이들의 사회적 성공이 개인의 재능이나 철학과는 깊은 관련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즉, 자신을 ‘예술가’라고 말하지만, 추구하는 예술을 향한 치열한 노력이나 열정은 보이지 않고, ‘예술’을 도구나 지렛대로 활용해 사회적 욕망의 크기를 키우려는 주인공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종섭과 마찬가지로 경수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미술 작품으로 사회적 욕망을 발현하는 것이 아닌, ‘통합예술진흥원’에서 중간 관리자가 되어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 것에 만족한다. 득녕 역시 문학작품으로 상을 받은 이후, 잡지사를 만들어 문학계에 영향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체성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원하던 돈과 명예, 권력을 누리지만, 그들의 본질인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저급한 인식에서 질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추락하게 된다. 여기서 필연적 배경은, 주인공들이 사회적 욕망에서 배제(소외)된 상태였을 때 스스로 성찰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았던 요소들 즉, 남성 우월주의 사회, 남성가부장제의 한계, 남성 기득권의 문제, 인텔리겐챠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한계, 자신이 속한 예술 분야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 성 감수성과 페미니즘의 몰이해 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기 세계를 만들기도 전에 사회적 욕망의 토대에 올라 돈과 권력을 휘두르면서, 이들이 착각하는 것은 자신의 재능으로 이룬 성공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들은 자기 전공이라고 여기는 예술 분야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고 전투적인 태도를 보인다. 종섭이 음악하는 누나의 앨범 발매 축하연에서 만난 래퍼 ‘빅 라이스’와 자존심 대결을 하는 장면이나, 경수가 미술하는 선후배 모임에서 자격지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아집과 열등감이 폭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전공 분야’라는 것도 처음에는 구체적 꿈으로 열정을 갖고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이들이 쌓아 올린 탑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에서 구축한 이미지라는 점에서, 이들은 구체적으로 실천하거나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을 좇는 관념적 인간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세 명의 주인공은 두 가지 성공을 거둔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드러난 ‘명예’로 종섭은 수필집을 출간하면서 스타 작가로 대접받으며 돈과 인기를 끌어모은다. 경수는 ‘통합예술진흥원’의 중간 관리자로 일하기 위해 원장 후보자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새로운 원장을 위해 개처럼 충성한다. 득녕은 마침내 문학상을 받는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열등감과 과잉 자의식이 해소되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사회적 성공보다 내적 갈등의 해소가 더 중요하지만,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 한다. 라캉은,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대개 상징계-이미 구성되어 있는 세계-에서 머물며, 실재계-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징의 세계-는 다다를 수 없는 ‘균열 없는 충만한 세계’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고 했는데, 세 명의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상징계가 곧 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즉, 이들은 룸펜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적 존재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예술’이라는 다다를 수 없는 차원을 꿈꾸다 파멸한다. 이들이 얻는 것은 지극히 작은 권력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지킬 수 있는 훈련된 내면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낯설어한다. 이들은 유사 가족이지만, 모두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유치하고 치졸한 말과 행동은 세 명이 서로 상대방을 거울로 인식하고, 그 거울에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즉, 거울에 비친 모습이 유아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일 때, 그것을 모방함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난다. 세 명의 주인공은 누군가 한 사람이 우연이든, 노력에 의해서든 세속적 성공을 이루자 그것을 모방하려 한다. 이들의 모방은 질투와 시기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망의 실현이다. 따라서 본능에 가까운 욕망 즉 불안을 해소하려는 의지는 이성의 세계인 도덕과 윤리의 의지보다 강렬하다. 종섭이나 경수가 보이는 타락은 이성보다 강한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종섭은 득녕의 도움을 받아 출판을 하고, 스타 작가가 되지만, 인터뷰에서 득녕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득녕이라는 거울을 모방했지만,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의 존재가 여전히 유아적이라는 걸 인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종섭이 획득한 권력-명예, 돈, 호감-을 주로 여성의 육체를 탐닉하는데 소모한다. 종섭은 스타 작가가 되자 곧바로 12살 차이 나는 여성을 선택하고, 음원저작권 협상을 주도하는 권력을 위임받은 다음, 어린 신인가수에게 접근해 육체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다시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을 성추행하다 발각되고, 무릎을 꿇고 사과할 때조차 권위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결정적으로, 강남에서 치과병원을 하는 의사의 딸이었던 애인에게도 결별 선언을 듣고, 종섭은 자신의 졸렬함과 비열함을 드러낸다. 경수는 추잡한 스캔들을 터뜨리겠다고 협박해 문화단체의 중간 관리자가 되지만, 방탕한 생활과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해 결국 자리에서 쫓겨난다. 종섭과 경수는 자신이 획득한 욕망을 지키지 못했다. 욕망은 어차피 다른 사람의 욕망이었으며, 자신이 추구하던 욕망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욕망의 결과만을 누리려 했던 두 사람은 자신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추락한 것이다. 득녕은 종섭과 경수와는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처음-룸펜 프롤레타리아 시절-부터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정도의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고,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필요한 도움을 주는 공동체 의식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득녕은 소설로 데뷔해 문학상을 받고 성공의 문턱에 오르지만, 그는 오히려 창작보다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프로듀서의 능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득녕은 자기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애인인 성희와 문학잡지를 만들 때부터 더 이상 창작-소설쓰기-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기존의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협동조합 체제로 잡지 출판을 시작하고, 이 시도는 좋은 작품을 발굴하면서 사업으로도 성공한다. 이타적이고, 자기객관화가 뛰어나며, 헌신적인 데다 머리까지 좋은 득녕은 마침내 자기가 원하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종섭이 인기 작가의 명맥을 유지하지만, 글쓰기나 음악 모두 아무런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면, 경수는 조직에서 쫓겨난 이후 처음 등장했던 바로 그 위치-룸펜 프롤레타리아-로 돌아가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다 미국 만화 캐릭터를 그려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저작권을 위반하는 것도 알지만, 경수는 영세사업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고집을 부린다. 이들과 다르게 득녕은 잡지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잡지는 문학계에서 힘을 갖게 된다. 득녕이 종섭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아내 성희와 나누는 대화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희는 종섭의 인터뷰에서 ‘천재작가’라는 타이틀은 지나친 표현이며, 그런 표현으로 종섭이 오히려 위축되어 작품 활동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득녕은 성희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 하며, 외부의 규정에 얽매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말은 모두 합리적이다. 그러나 득녕이 노린 것은 과연 ‘합리적’ 선택일까. 종섭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는 독자들이 종섭을 대중 작가에서 ‘예술가’로 격상하는 상찬을 하기 때문에, 당장 종섭에게 유리하고 이로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정작 종섭은 ‘천재작가’라는 타이틀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경수에게도 잡지 표지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탁하지만, 정작 경수가 그린 그림은 표지로 사용하지 않는다. 경수의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겨울비’를 표절했고, 표절이 이유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경수의 그림을 실을 의도가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경수는 자신의 그림으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득녕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보복과 파괴의 욕망은,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조건 없이 헌신해서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던 노력을 종섭이 무시했다는 기억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종섭이 성공한 상업 작가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될 수 없다는 것을 득녕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고, 종섭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종섭을 오히려 ‘예술가’의 반열로 올려야 한다는 것을 득녕은 계산하고 있었다. 득녕이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하던 잡지사는 내부 반발이 발생하고, 득녕을 ‘문화권력’으로 규정한다. 득녕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신이 권력 지향적인가,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나, 욕망이 자신을 삼키지는 않았나. 득녕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지만, 그는 대학교 정교수 자리를 거절한다. 그리고 10년 뒤에 문화부장관이 되어 있을 거라고 아내 성희에게 상상을 주입한다. 득녕은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말은 이미 거짓말이다. 득녕은 스스로를 기만한다. 자기가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합리화하지 않으면, 이미 인연이 끊긴 종섭과 경수처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때 비슷한 처지에서 서로 자기를 합리화하는 거울의 역할을 했다. 그러다 우연이든, 실력이든 세속적 성공-욕망의 현현-을 이루자 곧바로 타락한다. 종섭과 경수의 몰락은 성공의 근원이 외부에 있었다는 것, 자신의 욕망을 직접 투사하지 못하고, 타자의 욕망을 욕망했다는 것, 욕망의 부피를 다룰 역량이 없었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종섭과 경수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로 인한 불안이 욕망을 잠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득녕은 두 사람과 달리 성공의 근원이 내부에서 추동한 것으로, 득녕 자신의 주체적 욕망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무엇보다 유일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종섭과 경수와는 다른 존재다. 세 사람은 유사 가족으로 묶여 있었지만, 욕망의 발현-세속적 성공-추락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자아를 깨닫는다. 이들의 존재는 여전히 룸펜 프롤레타리아지만, 그들의 정신세계는 거울을 모방하는 유아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느슨한 인연을 유지하겠지만, 과거의 가부장적 질서, 유교적 위계 관계, 남성 중심의 기득권 유지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다. 세 사람이 겪는 사건들 가운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성추행, 성희롱, 위계에 의한 성폭력 등 범죄에 가까운 행위가 있었고, 종섭과 경수가 몰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더 이상 남성 기득권을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호흡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그들의 ‘예술’과 ‘아티스트’라는 존재 의의는 사회적 몰락과 함께 잊혀지게 된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이자 나약한 인텔리겐챠의 한계를 드러내는 필연적 결말이기도 하다. * 이 글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공모한 만화평론에 가작 당선한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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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 프롤레타리아, 욕망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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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 제목 : 지슬 작가 : 김금숙 출판 : 서해문집 이 작품은 오멸 감독의 작품인 영화 '지슬 2'의 내용을 그래픽노블로 창작한 것이다.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영화와 만화는 느낌이 다르다. 먼저, 김금숙의 그림은 거친 붓을 사용한 형식미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투쟁 가운데서 죄 없는 제주의 가난한 백성들이 총칼로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과정이 김금숙의 그림을 통해 필연적으로 융합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하기 어렵다. 예전에 어린이 잡지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에 '꼬갱이'를 연재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 그림과 이 작품의 그림이 같은 작가의 것인줄은 몰랐다. 김금숙과 같은 작가가 한국 만화계에 등장한 것은 만화계의 축복이자,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고도 즐거운 소식이다. 작가 김금숙은 전라남도 고흥 출생인데, '지슬'의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집안 역시 한국 전쟁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깊은 듯 하다. 아직까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진 않고 있는 듯 한데, 그의 작품 가운데 '아버지의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지만, 한국전쟁의 참담함을 본격 다루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앞으로 작가의 집안 이야기가 창작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면, 아마도 '지슬'과 같은 무겁지만 아름다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원작 소설이나 원작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재창작하는 것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 소설을 만화로 재창작하는 것은 활자의 상상력을 구체화, 사실화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높이고, 캐릭터와 배경, 사물을 익숙한 이미지로 만나게 되어, 독자는 활자를 읽고 상상하던 것을 시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는 활자만으로 된 내용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독자와 그래픽노블 작가의 해석이 다를 때는 오히려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실망할 가능성도 있다. 영화는 약 2시간 동안, 초당 24프레임으로 끊임 없이 상영된다. 이것을 5초당 1프레임으로만 바꿔도 1분이면 12프레임, 1시간이면 720프레임, 2시간이면 1440프레임이 된다. 만화는 한 페이지에 1-8컷 정도를 나누는데, 평균 5컷으로 계산하면 300쪽 만화는 1500컷으로 연출할 수 있다. 영화의 프레임과 만화의 컷을 이렇게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보면, 영화의 내용은 거의 다 담을 수 있겠지만, 만화는 정지된 장면들의 모음이기 때문에 영화보다는 세부 묘사와 동작의 섬세함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래픽노블이 영화보다 좋은 점 몇 가지가 있다. 만화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장면을 이미지화 할 수 있다. 영화는 끊임 없이 장면이 흘러가지만, 만화는 수 많은 장면들 가운데, 중요한 장면을 이미지화하면서, 한컷, 한컷의 상징성을 만들어간다. 이 작품의 표지는 영화포스터와 같은 이미지로 보이지만, 영화포스터의 사실적 이미지와는 또다른 울림을 준다. 군인이 아무 죄 없는 주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은 민족의 분단과 분열, 이념으로 갈린 내전과 학살을 상징한다. 영화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통해 그때의 비극 상황을 재연하지만, 만화는 생략과 과장을 통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픽노블 작가의 그림은 그 자체로 회화 작품이고, 폭력과 공포, 죽음을 드러내는 거친 붓선과 먹의 농담으로 제주도 민중이 겪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제주4.3을 펜선이 아닌, 붓과 먹으로 그렸다는 것도 이 작품이 주목받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수묵화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회화였으며, 그림은 물론 글도 붓과 먹으로 썼다. 화가들은 일상의 풍경을 담은 세속화를 많이 남겼고, 조선의 민중은 수묵화를 퍽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수묵화는 조선(한국) 민중에게 친숙하고 낯익은 표현도구이며, 우리의 정서와 감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제주4.3의 희생자 대부분은 제주 민중이고, 이들은 이념 전쟁에서 억울하고 참혹하게 죽는다. 제주 민중을 수만 명 학살한 서북청년단과 경찰, 군인은 공산주의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북한에서 쫓겨내려 온 기독교도들 가운데 극우주의자들이 복수를 위해 결성한 단체-서북청년단-를 통해 이념적 복수를 제주 민중을 향해 저지른 것이다. 작가 김금숙은 이들 우익이 저지른 학살 만행의 참혹함을 수묵화로 표현하고, 그 표현 기법은 그래픽노블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뛰어난 방식이다. 수묵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그린 그래픽노블이 많겠지만, 이렇게 내용은 참혹해도 형식은 아름다운 수묵화 그래픽노블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혹한 내용을 아름다운 형식으로 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희생자와 그 가족인 제주민중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것을 그래픽노블이라는 이미지 작업을 통해 기억하는 것을 기껍게 생각할 것이다. 참혹한 짓을 저지른 것은 가해자인 서북청년단, 경찰, 군인이고, 제주민중은 피해자였다. 참혹함과 반인륜, 반지성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무엇보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아픔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작가 김금숙의 작품은 형식미에 있어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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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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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 제목 : 예쁜 여자 작가 : 권용득 출판 : 미메시스 권용득의 만화는 처음이다.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미안하고 그래서 더 반갑다. 만화를 읽다 보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세밀한 묘사와 감정의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순간, 영화감독 홍상수와 그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권용득 작가가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만화와 영화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니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홍상수의 영화를 만화로 그린다면 권용득의 만화가 되고, 권용득의 만화를 영화로 만들면 홍상수의 작품이 된다.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대화, 어색하고 기분 나쁜 상황에서 대처하는 모습, 소심함과 비겁함 따위의 사사로운 감정 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민낯의 얼굴이 많이 닮았다. 짧은 단편들은 모두 작가의 1인칭 주관적 시점의 경험담을 그리고 있고, 고향을 방문하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친구와 동기, 선후배를 만나고, 예전의 짝사랑했던 여자를 만나고, 그렇게 다시 이야기가 얽히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런 찌질함은 어찌보면 20대, 30대 남자들의 특권(병신짓도 특권이라면 특권이다)임에 틀림 없다. 이 나이의 여자들은 절대로 이런 짓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권용득의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기들이 찌질이라는 것을 모른다. 모두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다른 사람을 흉보고, 욕하고, 비웃는다. 하지만 그런 모욕은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깨닫게 된다. 시간이 흘르고 나이가 들어 어느날, 잠자리에 들었을 때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발로 이불을 차고 싶도록 스스로가 쪽팔리고 한심했던 때가 있을 것이다. 없다고? 당신은 인생을 헛살았다. 얼굴이 화끈하도록 쪽팔림을 느낀다면, 당신은 성장한 것이다. 어리석은 찌질이에서, 세상을 조금은 알게 된 어른으로. 그러니 괜찮다. 이 만화를 보고 씁쓸하게 웃는다면 당신은 그때보다는 조금쯤 나아졌다는 것을. 마지막 단편 '예쁜 여자'를 보고 울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앞길이 막막할 때, 어디에고 기대고 싶을 때가 있고 그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은 자란다. 엄마와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미워할 수 없는 가족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해와 공감은 사랑의 기본 조건이다. 이 작품집은 여덟 편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작가의 말에도 있듯이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하지만 작가도 '사랑이 뭘까요?'라고 묻고 있듯이, 사랑이 무언지 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머지의 진실]에서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문자를 받는다. 그것을 본 여자는 그 여자가 누구냐고 다그친다.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난, 문자를 보낸 그 여자(이기쁨)는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였고, 두 사람은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진다. 택시를 타고 떠나는 여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짜증이 났거나, 기분 나쁜 표정이다. 조금 전까지 술을 마시면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자의 마음이 상한 이유는 뭘까. 남자에게 온 전화를 남자는 받지 않았고, 그것은 당연히 남자의 애인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가 이 남자와 사귀던 때에도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옛날 애인을 만난 남자를 보면서 여자가 울고, 남자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할게'라며 말한다. 이런 무신경과 뻔뻔함은 남자만의 전유물일까, 아니면 극히 일부 '멍청한' 남자들의 특수한 경우일까, 궁금하다. 옛날 애인을 '후배'라고 속이는 것도, 앞으로 들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뻔한 거짓말인데, 남자는 뻔뻔해서 그렇다해도 여자는 왜 속아주는 척하는 걸까,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단편 속 한 컷에는 권용득 작가의 아내이자 작가인 송아람의 작품 '자꾸 생각나'를 홍보하는 컷이 있다. 제목 위에 팔을 걸치고 있는 남자는 역시 작가이자 '새만화책' 대표인 김대중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이 단편이 2005년 7월 [계간만화]에 실렸던 것을 고려하면, '자꾸 생각나'가 레진코믹스에 연재하고 있을 때로 추정한다. 두번째 작품 [영원히 안녕]는 애인과 다투고 졸업한 학교의 축제에 온 남자가 옛날 애인 민주를 만나 '어쩌다' 함께 밤을 보내고 헤어진다. 남자는 여전히 옛날 애인 민주에게 마음이 있고, 그녀와 결혼하고픈 마음도 있지만, 지금 애인도 포기한 건 아니다. 남자의 마음은 갈대처럼 움직이고,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고, 옛날 애인 민주가 찾아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민주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고, 민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그리고 다시 다퉈서 잠시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한다. 남자는 민주의 결혼식장에서도 마지막까지 농담처럼, '나에게 시집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남자의 분열적 감정이 담겨 있는데,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질투와 원망이 담겨 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두고 비아냥과 투정을 하는 것이다. 그건 퍽 유치하고 감상적인 심리로, 남자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와나카의 추억]은 남자가 잠시 뉴질랜드 와나카에서 지낼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남자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엄마와 전화를 하면서 알게 된다-친구가 있는 뉴질랜드로 간다.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지만, 딱히 할 일도, 하고픈 일도 없는 남자는 바에서 늙은 주민을 만나 서로 빗나가는 대화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남자는 바에서 만난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구입한 낚시면허증을 주려하지만, 통화는 실패로 끝난다. 바에서 만난 늙수그레한 주민은 결혼도 한 적이 없는 듯하고, 살고 있는 와나카 바깥을 나가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뉴질랜드가 천국이라고 말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살고, 외롭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으며,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걸 남자는 깨닫는다. [그만한 돈]은 만화가 용득권과 김응응이 만나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고료를 조금 더 달라는 용득권은 잡지사의 변명이 불쾌하고 짜증난다. 두 사람은 대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김응응은 '자갈마당'에 가자고 말하며, 용득권에게 '자갈마당'에 가봤는냐고 묻는다. 용득권은 두 번 가봤으며, 우연히 같은 여자를 만났다고 말한다. 여자가 있는 곳은 여관처럼 낯설고 지저분한 곳이 아니라, 여자가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여자의 일생 속으로 들어간 용득권은 낯설지만 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여자에게 돈을 주고 섹스를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용득권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다시 찾아오라고 하지만, 용득권은 다음에 한 번 더 갔을 뿐, 더 이상 여자를 찾아가지 않는다. 이유는 죄책감이 들어서라고, 용득권은 말한다. 그가 성매매 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희생물로 전락한 성매매 여성의 처지를 얼마나 깊이 아는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막연하게 느낀 죄책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를 생각하면, 많은 남성들이 본능적으로 여성의 성상품화, 성매매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금 상황-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 체제-에서 남성은 '남자다움'과 체화된 가부장제 의식으로 여성의 성상품화, 성매매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똑똑똑]은 친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수도관이 얼지 않도록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의미하지만, 더 내밀한 곳에서는 엄마에 대한 안부인사와 방석집에서 만난 동향의 여자의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로 들린다. '나'는 옥탑방에 누워 꼼짝하지 않는데, 안부전화를 한 엄마와 다투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때 친구가 찾아오고, 멀리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다. 가진 돈을 다 쓰려고 친구는 '좋은 데'를 가자고 택시기사에게 말하고, 그들은 철거 직전의 허름한 방석집에서 옷을 모두 벗고 '맥주와 섹스'를 두당 10만원에 거래한다. 그곳에서 만난 여자는 '나'와 동향이고, 무엇이든 만화로 그린다는 말을 들은 여자는 이런 장면은 그리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독자는 그렇게 말하는 내용까지를 포함해 그곳에서 오간 대화를 '관음'한다. 그렇게 친구는 쓰던 밥솥을 남기고 떠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며 섹스를 한 술집여자와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슬퍼서 약간 눈물을 흘리는데, 그건 '나'의 복잡하고도 서글픈 마음을 드러내는 진심으로 보인다. [막차]는 막차 시간을 다르게 알려준 여자 후배와 얽힌 이야기다. 서울에 살던 영수는 월세로 살던 집에서 월세가 밀려 보증금까지 날리고 잠시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그는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형편이 좋지 않다. 학교 후배인 정태와 어울리며 졸업한 대학도서관에서 만화 작업을 하는데, 우연히 후배 선미를 만난다. 공대에서 여학생이 드물기도 하지만, 선미는 미인이라 인기가 많다. 세 사람은 자주 어울리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데, 하루는 정태가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가고, 영수와 선미는 술을 마신다. 막차는 밤 11시라고 선미가 알려주고, 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도 막차 버스가 오지 않자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간다. 영수는 선미에게 키스를 하지만 선미는 거절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정태는 영수가 선미와 술을 마셨다는 걸 알고 '형은 씨발놈'이라고 욕하고 싸운다. 영수는 치킨집을 처분한 엄마에게서 돈을 받아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가끔 선미에게 연락하지만 선미에게서는 답이 없다. 영수는 선미를 사랑한 걸까, 아니면 선미의 육체만 원한 걸까. 남자는 사랑과 섹스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또는 일시적인 충동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태의 말대로, 영수는 서울에 애인이 있으면서도 선미를 집적대는 것이다. 이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고, 선미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선미는 그걸 느꼈고, 다시는 영수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국화차와 소주] 만화가 영수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우연히 블로그를 방문한 팬이라는 여성 구외영을 알게 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구외영은 영수에게 일을 부탁한다. 두 사람은 인사동에서 만나 국화차를 마시고, 술을 마신 다음, 구외영의 집에서 술과 함께 섹스를 하려 하지만, 구외영이 사귀는 남자와 전화를 하는 사이 영수는 집으로 돌아온다. 영수의 여자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던 영수를 추궁하고, 구외영과 있었던 일을 미루어 짐작한다. 영수의 친구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영수는 오래 전 사귀었던 첫사랑 민주를 떠올리고, 민주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두고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구외영에게서 전화가 오고, 혼자 다짐했던 마음과는 달리 택시를 타고 구외영을 만나러 간다. 두 사람은 섹스를 하고, 영수는 지금의 애인과 구외영과 구외영이 만난다는 유부남을 떠올리며 자괴감에 빠진다. 애인 앞에서도 비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영수는 친구 결혼식에 가는 길에 첫사랑 민주의 연락을 받는다. 자기는 참석하지 못하니 대신 축의금을 내달라는 말이었다. 결혼식에서도 영수는 구외영에게 연락을 하지만, 끝내 구외영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첫사랑 민주 이름으로 한 축의금을 돌려받지 못했으며, 그의 애인과는 결혼을 했고, 이 모든 일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화하지 않은 영수의 일상은 창작이자 고백이다. 독자는 물론 영수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받아들이고, 작가 역시 영수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지고, 사랑하는 감정, 미워하는 감정이 냉온탕처럼 오가는 것은 욕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욕망은 비단 나이가 젊기 때문은 아니다.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을 보면, 50대의 엄마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욕망의 퍼레이드는 나이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게 된다. [예쁜 여자]는 구외영의 시각이다. 모텔에서 몰래 빠져나간 영수를 모른 체하는 구외영은 출판사에서 기획회의를 하며 편집장과 대립한다. 편집장은 유부남이고, 그와 내연관계지만, 남자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출판사에 임시직으로 들어갔다가 정식 사원이 된 것도 편집장의 배려였고, 편집장은 출판사 사장의 아들이며, 그 남자는 다른 남자와 달라보였다. 그건 물론 구외영의 착각이지만, 구외영은 자신을 합리화한다.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만나러 고향으로 내려간 구외영은 집에서 숨겨놓은 엄마의 일기를 발견하고, 과거를 떠올린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던 어린 시절, 제멋대로 사는 아버지와 자기 몸을 더듬던 오빠의 손길, 늘 고생하는 엄마의 삶이 지겨워 집을 떠나 서울로 왔지만, 그 역시 삶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온 엄마의 인생, 유부남인 편집장의 노리개처럼 전락한 자신의 삶이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비참한 숙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극복할 의지도, 최소한의 디딤돌로 없는 구외영으로서는 슬픔과 비애만을 느낄 뿐이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구외영은 출판사에 사직서를 내고,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기로 결심한다. 부모의 삶도, 자신의 삶도 비난하거나 비난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누구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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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