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를 떠나보내며
한동안 칩거했던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오늘 MBC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앞으로도 '사장'에 준하는 직책으로 '순회특파원'이 되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다고 하니, '특파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를 두루 돌아볼 예정으로 보인다.
오랜 동안 한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손꼽히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손석희는 과거 MBC의 언론노조에서 언론민주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의 선두에 섰던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손석희 씨를 알게 된 이후-1990년 무렵부터-줄곧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의 언론활동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그는 '시선집중', '100분 토론' 같은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진행자였으며, 언론인의 귀감이자, 모범이고, 전범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손석희가 MBC를 떠나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그의 이적을 두고 사람들은 설왕설래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는 훌륭하게 JTBC에서 뉴스는 성공적이었고, 보도 내용도 중립을 유지하며, 바람직한 언론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끝날 때까지, 손석희와 JTBC는 한국의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서 그나마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손석희와 JTBC는 촛불시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손석희 개인도 크고 작은 스캔들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그때문인지 JTBC의 보도 내용도 점차 우려스러운 형태로 변질되어갔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되, 어떻게 변하는지, 중심을 잃지 않았는지, 시류에 영합하거나, 영혼이 타락했는지, 고루하거나 보수적으로 바뀌지 않았는지 스스로 경계하며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언론인 손석희'를 그동안 봤을 뿐이고, '개인 손석희'에 관해서는 거의 모른다. '개인 손석희'는 후배 언론인과 술을 마시다 싸우고, 성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의 협박을 받고 돈을 송금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손석희가 과거와 달리 수구 꼴통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손석희라는 강력한 사회적 힘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영향력을 사회와 정의, 진보를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에 결정적 한방을 날렸지만,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당하는 박해와 수모에 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오히려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물결 위에 잠시 나타나는 물방울'일 수도 있고, 물결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 같은 존재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가 끝나면 영웅도, 물방울도, 나뭇잎도 사라지게 된다. 손석희는 박근혜를 탄핵한 촛불과 함께 타올랐다 사라지는 존재였다. 거기까지가 손석희의 사회적, 역사적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손석희는 여전히 JTBC에 몸담고 있으며, 월급을 받으며 세계여행을 할 것이고, 돌아와서 책을 쓰고, 대학강단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손석희는 어쩌면 '유시민'을 롤모델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유시민도 강하면 부러진다는 생각을 나이들면서 하게 된 사람이다. 유시민 같은 강성 운동권이었던 사람도,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손석희도 과거에는 언론 민주화 투쟁을 가열차게 했으나, 이제는 한국사회의 1% 기득권이 되었고, 세상이 더 이상 변하지 않아도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보수화한 것이다.
그런 손석희를 이제는 떠나보낸다. 그가 살았던 시대, 우리가 살았던 시대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기였고, 민주화투쟁의 시기였으며, 경제가 발전하고,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경제적 발전이 중요하던 시기였다.
손석희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청년이었으나 언론인이었고,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이름을 얻었으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그가 얻었던 크고 강한 이름을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쓰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고 안타깝지만, 자신의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마땅히 이해하게 된다. 이제 '개인' 손석희로 돌아가 편안한 삶을 누리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