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피가 흐르는 곳에 - 스티븐 킹




해리건 씨의 전화기


크레이그는 아버지와 함께 작은 시골마을에서 산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지만, 그의 마음에 깊은 슬픔이 일렁이고 있다. 스티븐 킹은 어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줄곧 형과 엄마, 세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 소설에서는 엄마로 바꿨을 뿐, 그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레이그는 마을에 이사 온 엄청난 부자로 은퇴한 해리건 씨를 알게 되고, 그의 집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소설이 독특한 점은, 그동안 IT와 관련해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스티븐 킹이 아이폰, 아마존을 비롯한 첨단 정보산업과 미국 투자회사와 관련한 정보를 나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리건 씨가 은퇴하기 전 투자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배경에 깔아놓는다.


해리건 씨는 크레이그에게 일 년에 네 번 카드를 보내는데, 그 속에 복권을 함께 넣었다. 우연히 그 복권이 당첨되었고, 해리건 씨는 당첨금을 애플 주식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이때 애플에서 막 '아이폰'이 나오기 시작했고, 크레이그는 생일선물로 '아이폰'을 받았으며, 해리건 씨에게 '아이폰'을 선물한다.


크레이그의 성장소설이면서, 해리건 씨와의 인연으로 발생하는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을 담고 있지만, 스토리는 진부하다. 다만 그동안 스티븐 킹의 놀라운 이야기 솜씨처럼, 이 소설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매우 핍진하게 담겨진 에피소드는 서사의 사실성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아이폰'의 등장, 억만장자의 죽음과 상속, 크레이그가 유산의 일부를 물려받는 행운, 물려받은 유산으로 '아마존'에 투자하는 내용 등에서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유머'는 다 읽을 수 있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는 조금 낡아버린 이야기가 되었다.


또한 크레이그가 해리건 씨의 장례식에서 죽은 해리건 씨의 옷에 그의 '아이폰'을 몰래 집어 넣은 다음, 시간이 지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충격적이지는 않다.


크레이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크레이그는 그것이 죽은 해리건 씨가 영적인 힘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지만, 그건 미스터리로 남겨 둔다.




척의 일생


독특한 형식의 소설. 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척 크란츠'의 짧은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단편소설 세 편의 연작으로 구성했다. 각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공통점이 없으며, '척 크란츠'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마티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강력한 지진으로 캘리포니아의 아래쪽이 떨어져 나가면서 인터넷과 전기가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도시에도 거대한 씽크홀이 생기고,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듯한 분위기에서 도시의 광고판과 텔레비전, 인터넷에 모두 '척 크란츠'를 애도하는 광고가 뜬다.


'척 크란츠'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의 없다. 그럼에도 '척'은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마티는 고등학교 선생이고, 이혼한 아내 펠리샤와 잘 지내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지진이 발생해 대륙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하고, 지구 전체가 불안정한 상태로 그려진다.


두 번째 작품에서, 재러드 프랑크는 길거리 공연으로 드럼을 친다. 사람들이 거의 반응 없이 지나가고, 재러드가 조금 실망하고 있을 때,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든 '척'이 그 앞을 지나가다 재러드를 보고 걸음을 멈추고 드럼 연주를 듣는다. 그러다 '척'은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조금씩 걸음을 멈추고 '척'의 춤과 재러드의 드럼 연주를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구경을 하던 재니스가 '척'의 춤 상대가 되어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완벽한 춤을 추며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이 장면은 삶의 한 순간,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을 그린 것으로, '척'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세 번째 작품에서, 척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된다. 그는 친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며 학교에서 춤동아리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회계사가 되어 살아간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걸 지켜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깊은 슬픔의 시간을 보낸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상실감, 안타까운 감정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그들의 내면에 일렁이는 슬픔의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본질의 감정이기에, 해결할 수 없고, 해소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작품은 공포, 스릴러, 호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담담하고 담백한 내용으로, '척'의 일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삶에 슬픔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피가 흐르는 곳에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언론계의 관용어에서 온 제목. 중편이라기에는 긴 편이고, 거의 짧은 장편 길이인데, 이야기는 단순하다. 한 초등학교에 소포가 배달되고, 그 소포에는 폭탄이 들어 있었으며,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의 어린이가 죽고 다치게 된다.


당연히 모든 방송국과 언론사에서 학교 앞으로 취재를 나오고, 치열한 보도 경쟁, 속보 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사립 탐정인 홀리 기브니는 텔레비전에서 리포트를 하는 체트 온도스키를 본다. CCTV에 찍힌 범인의 얼굴이 공개되고, 현상금이 걸리지만, 범인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홀리는 우연히 발견한 리포터 체트에게서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참사 현장에서 보도하는 그의 태도나 현장을 중계하면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에서 그가 참사를 '즐기고' 있다는 기괴한 느낌인데, 처음에는 홀리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트가 폭탄을 배달한 범인과 같은 인물이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전혀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발상이었지만, 홀리는 그 의심을 갖고 체트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참사에 체트가 현장에 있었으며, 그가 참사를 일으켰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전직 경찰이자 범인의 몽타쥬를 그리는 일을 오래 했던 노인을 만나면서, 그 노인이 수십 년 동안 체트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가 모은 구체적 자료를 보면서 홀리의 직감이 옳았다는 걸 확인한다.


체트 온도스키는 분명 '인간'이지만, 그는 인간 이상의 존재이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가는 체트 온도스키가 어떤 생명체인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제2의 인간'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종류의 인간은 자기 외모를 바꿔가면서 평범한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산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온 인간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외계에서 온 전혀 다른 생명체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체트가 외모를 바꾸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오는데, 물리적인 몸뚱아리가 출렁거리며 외모를 바꾼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인간종일 수 있고, 외계 생명체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체트 온도스키라는 한 인간이 동시에 여러 사람으로 변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저지른 범인이라는 점이다. 크고 작은 폭탄 폭파 사건,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아닌, 인간과 다른 종이라는 설정에서 이 소설은 환타지 소설로 분류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를 보도하며 '즐거워 하는' 언론사의 본질을 비판한 것으로 본다. 


즉, 언론은 '피가 흐르는 곳에'서 자기들의 먹이가 많다고 좋아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애통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참사 보도는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뉴스를 좋아하며, 시청률이 높아지면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광고가 많아지면 방송사, 언론사는 돈을 더 많이 벌게 되고, 언론 자본은 부자가 되며, 그곳에서 일하는 언론 노동자는 더 많은 임금, 보너스를 받는다.


사회에서 비극이 더 많이 발생할수록 상대적으로 언론은 행복해지는 이 아이러니를 스티븐 킹은 '괴물'로 표현한 것이다.





드류 라슨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단편소설을 여섯 편 쓴 작가다. 그의 단편소설이 '타임'에 실릴 정도로 괜찮았는데, 장편소설을 쓰지 못한 컴플렉스가 있다. 그는 곧 안식년을 맞이하게 되고, 과거에 장편소설을 쓰려다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어 불안하지만, 어느 날, 문득 완벽한 장편소설 이야기가 떠오른다.


드류 라슨은 아내와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버지 때부터 쓰던 별장으로 가서 장편소설의 앞부분을 쓰기로 작정한다. 별장은 몹시 외진 곳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잡화점이 20km 떨어진 곳에 있고, 전화와 전기는 들어오지만 휴대전화는 사용할 수 없으며, 전기와 전화도 언제 끊길 지 알 수 없는 산골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작가인 스티븐 킹이 이미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샤이닝'이 있고, '미저리' 역시 그렇다. 작가는 '글쓰기'가 곧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행복한 반면 그만큼의 무게로 공포와 두려움도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류 라슨은 지난번 장편소설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이번에는 좋은 작품을 쓰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는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산골 오두막에서,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한 소설의 이미지를 글로 옮긴다.


모든 것이 훌륭했고, 드류 라슨 자신도 이렇게까지 글이 잘 써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소설은 처음부터 훌륭하게 시작했다.


그러다 폭풍이 몰려오고, 집 주위 나무가 쓰러지면서 창고를 덮치고, 드류 라슨은 문앞에서 기절한 쥐를 발견한다. 쥐를 멀리 내던질 수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드류 라슨은 쥐를 벽난로 앞에 놓아둔다. 그리고 다음 날, 쥐는 사라지고, 나흘 뒤부터 드류 라슨은 글쓰기에 문제가 생긴다. 처음 장편소설을 쓸 때처럼 트라우마가 작동한 것이다.


그때 쥐가 나타나 드류 라슨에게 제안한다. 소설을 완성하도록 돕겠다. 단, 소설을 완성하면 네가 좋아하는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 그래도 하겠는가. 드류 라슨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소설을 완성하고픈 욕심에 쥐와 거래한다.


작가의 욕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보다 크다는 걸 작품은 말한다. 사실 이런 소재는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평범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대단히 드라마틱하지도, 공포와 호러와 피가 튀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심심하다.


차라리 외딴 집에서 겪는 공포를 다룬 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말하는 쥐와 거래한다는 내용은 동화처럼 읽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을 잃는 건 우연이었지만, 드류 라슨은 죄책감을 갖는다. 삶은 그런 우연과 죄책감이 동시에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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