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의식의 흐름을 따라 


1

오늘은 하루 온종일 쉰다. 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쉰다.

'쉰다'는 '쉬다'의 현재형으로, 무언가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쉬는 날'은 일하지 않는 날을 뜻하며, '쉬는 곳'은 편하게 있는 장소를 말한다. '쉴 틈이 없다'는 매우 바빠서 한가한 틈이 없다는 말이고, '편히 쉬세요'는 몸으로 움직이는 행동(일, 노동) 뿐아니라 복잡한 마음까지도 내려놓고 기운을 부드럽게 다스리라는 뜻이다.

반면, '밥이 쉰다', '음식이 쉰다'처럼 음식이 부패하는 과정의 단계를 뜻하기도 하며, 소리를 많이 지르거나,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거칠거나 잘 나오지 않는 걸 '목이 쉬다'고 한다. 

무엇보다, '쉬다'는 '숨을 쉬다'로 완결한다. 모든 생명은 숨을 쉬는 것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며, 숨을 쉬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생명체의 정체성을 잃는다. 나도 지금 숨을 쉬고 있어,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생각하며, 이렇게 글을 쓴다.

숨을 쉬는 건 살아가는 근원의 활동이지만, 한편 음식이 상하는 과정처럼, 생명 활동의 노화가 진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쉬다'의 활용이 생명 활동과 음식물이 상하는 과정을 함께 보고 있다는 점에서 선조의 지혜가 놀랍다.


2

페이스북에도, 대형 커뮤니티에도 온통 보기 싫은 내용만 올라온다. 크게 두 가지다.

굥, 콜걸, 그 일당이 저지르는 온갖 악다구니와 파렴치와 야비와 뻔뻔함이 그것이고, 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틀린 페미니스트의 갑질과 개혁을 비웃고 자기 개인의 출세와 영리만을 추구하는 양아치들이 벌이는 극도의 혐오스러운 행위가 그것이다.

그들의 욕망과 욕구와 탐욕과 이기와 질투와 비루함의 결과로 조국 전 장관과 가족들이 처참하게 (정치, 사법적으로) 학살당했고, 이제 개혁을 주장하는 최강욱 의원을 살해하고 있다.

실력도, 능력도, 상식도 없는 비루한 것들이 얄팍한 권력을 잡자 동료를 학살하고, 적들과 손을 잡고 개혁을 질식시키고 있다. 너무 혐오스러워 구역질이 나온다.

무능한 자들이 권력을 갖게 되면, 마치 어린아이가 총알이 든 총을 가진 것처럼, 자기 제어, 통제를 하지 못한다. 비로 직전의 정부가 많은 부분 잘 했고, 또 많은 부분 잘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악하거나 야비하거나 천박하지는 않았다. 지금 권력을 잡은 자들은 무능하고, 멍청하며, 사악하고, 야비하고, 천박하다. 올바른 역사관, 정치관, 세계관이 없으니 국가를 올바르게 운영할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하고, 주변 강대국의 전술에 휘둘리며 국가의 이익을 뺐기기만 할 뿐이다.

무능하고 멍청한 권력자에게서 권력을 뺐어야 한다. 마치 총을 든 어린아이에게서 총을 뺐는 게 당연하듯.


3

백수가 이렇게 피곤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힘든 나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하던 글쓰기 강의도 하나가 끝나고, 이제 마지막 강의만 남겨두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도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나, 참여하는 자체로도 신경 쓸 일이 있고, 즐거운 한편 힘들기도 하다.

여기에 끝이 없는 집안 일과 안팎으로 소소하게 신경써야 하는 일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런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간다.

이럴 때 부르주아가 부럽다. 돈이 많으면 돈으로 사람을 사서 내 시간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세상에 태어나 자랐으니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해서, 자본가, 부르주아 아니면 노동자 계급에 속할 수밖에 없고, 확률통계상 90%에 해당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하게 된 건 당연한 결과일테다. 내가 만약 10%에 속하는 자본가, 부르주아였다면 여기서 이런 한심한 말이나 늘어놓고 있지 않을텐데.

이상적 사회주의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루 4시간 사회를 위해 노동하고, 나머지는 나 자신의 창조적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 모두가 고르게 평등하고, 빈부가 사라지고, 문화, 예술이 꽃피우고, 자본주의 폐해인 경쟁, 이기, 착취가 사라지고, 텔레비전에서 연애, 오락방송이 아닌,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와 문화, 예술 프로그램과 즐거운 토론으로 격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라면.


4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옳고 그름의 가치가 뒤섞이며, 상식과 윤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세상이다. 과거에도 그랬다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지금이 가장 심각하다. 

경제 성장으로 나라와 개인의 부가 증가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확산하고, 과거에는 무심코 넘어가던 인권의 문제가 매우 세부적으로 나뉘면서, 각 세대, 집단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건 바람직하고 당연한 역사의 발전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편협, 악의, 이기, 무지한 자들의 선동과 만행으로 고결한 가치가 훼손되고, 더럽혀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소수자 인권, 페미니즘이 약자의 무기로 작동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해치는 흉기가 되는 꼴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축소하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옥석을 가려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사람이 너무 많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정확히 인지해야 하며, 그 방해물을 빠르게 제거하는 것도 개혁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5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세상이 역겨울 정도로 참담하고 한심할 때, 나는 조용히 침잠한다. 책 읽고, 영화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세상으로 난 문을 닫는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 속에서 살아갈 때 존재 의의가 있지만, 그 사회가 추잡하고, 역겨울 때는 잠시 몸을 숨길 필요가 있다.

다만, 몸을 숨길 수 없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힘들과 괴로운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카타르시스 방법이 있을 걸로 믿는다. 

일상을 무심히, 묵묵히 살아가는 건 지독한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다.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집안 정리, 청소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당연하면서 치유의 시간이다.

마음 통하는 가족, 친구, 이웃과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며 수다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시간 외에 그저 조용히 침잠하는 나날이지 않을까. 정치가 개인의 삶을 옥죄고, 불행하게 만들 때, 과거에는 거리로 뛰쳐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졌지만, 지금은 모두 두더쥐처럼 땅속으로 숨는다. 그런 비겁이 권력의 만행을 부추기고, 악행을 용인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나는 이기적 인간들이 싫다. 다른 사람의 피와 땀에 기생하는 자들, 열매만 따먹으려는 이기적이고 야비한 자들이 싫다. 그런 자들을 위해 내 피와 땀을 흘리기도 싫다. 


6

누리호 2차 발사를 생중계로 봤다. 누리호가 힘차게 우주를 향해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하다. 우리에게는 우주가 있다.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살고 있는 미미한 존재다. 무엇보다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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