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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시간
- 소년의 시간 넷플릭스 시리즈. 엄청난 작품. 강력 추천. 고작 4부작이지만, 시나리오, 연출, 배우들의 연기 모두 완벽할 뿐 아니라 드라마가 다루는 주제도 신선하다. 4부작이면서 한 편마다 독립적 서사가 있고, 완결성을 갖추면서 네 편 전체에 흐르는 거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맞춰진다. 열세 살 소년 제이미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게 체포된다. 완전무장한 경찰기동대가 문을 부수고, 총을 겨냥한 채 가족들을 엎드리라고 소리치고, 소년의 방으로 들어가 체포하는데, 소년은 겁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싼다. 경찰은 매우 심각한 상황처럼 행동하는데, 고작 소년 한 명을 잡으려고 자동소총에 중무장을 한 기동대가 출동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지나쳐 보인다. 1편은 소년이 체포되는 장면부터 경찰서에 연행되어 필요한 조사를 받고 임시 구금되는 과정까지를 그린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매 순간과 과정이 핍진하고 치밀해서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장면이 이어진다. 경찰은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범죄자를 대하는 메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는 게 드러나고, 소년을 체포한 이후 경찰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미성년이면서 범죄용의자인 소년을 대한다. 경찰은 강력범죄 용의자로 제이미를 체포했지만, 그가 미성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곧바로 보호자를 붙여주고, 아버지가 모든 조사에 참석하도록 한다. 그리고 간호사와 변호사를 불러 제이미에게서 채혈하고, 변호할 권리를 보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과장 없이 건조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보여지는 영국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경찰과 이런 문화를 만든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면으로 보면, 영국 경찰이 한 행동은 지나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고작 열세 살 소년을 체포하려고 경찰기동대까지 투입하는 건 누가 봐도 지나쳐 보인다. 그저 사복 경찰 두 명이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소년은 안심시키면서 경찰서로 데리고 와도 아무 문제 없을 걸로 보이는데, 너무 매뉴얼에 얽매여 행동하는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미성년이라고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강력범죄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가 일관하지 않게 되고, 매뉴얼에 따르지 않는 체포 절차는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제이미의 가족은 국선변호사를 선택한다. 가족변호사가 없다는 걸 확인한 경찰이 제이미의 가족에게 제안하고, 가족이 받아들이면서 국선변호사가 오는데, 발 빠르게 도착한 국선변호사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제이미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입회해 도움말을 준다. 이때 국선변호사가 제이미의 가족에게 하는 말 가운데, 아무리 강력범죄 용의자라 해도 미성년자에게는 채혈이나 지문 채취, 신체 검사 등을 다 하지는 않는데, 이런 검사를 다 하는 걸 보면 경찰이 강력한 증거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경험 많은 국선변호사는 제이미가 미성년자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잘 알고, 그가 받는 조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이미 알고 있다. 제이미는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부인하는데, 경찰은 구체적 증거를 하나씩 보이면서 제이미가 자백하도록 만든다. 인스타그램에서 오고간 제이미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과 댓글들, 사건이 발생한 날 CCTV에 찍힌 제이미의 동선과 장면들이 하나같이 제이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제이미는 끝까지 모른다고 말한다. 결국 경찰은 CCTV에서 확보한 동영상을 제이미와 변호사, 동석한 제이미의 아버지 앞에서 공개한다. 그 영상은 충격적이면서 제이미가 자기 행동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제이미는 끝까지 자기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하지만 제이미의 아버지, 국선변호사는 그 장면을 보고 제이미가 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라는 걸 분명하게 인지한다. 그럼에도 제이미가 범행에 쓴 흉기인 칼이 발견되지 않았고, 제이미가 '친구'라고 보이는 케이티를 살해한 '동기'를 알 수 없는 경찰은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다. 제이미는 경찰서 유치장에 일시 갇히게 되는데, 제이미는 가족과 멀어지면서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감정은 제이미의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부모와 누나는 큰 충격을 받고, 불과 열세 살 아이가 '살인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2편은 수사 담당 경찰인 배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가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미 구체적 물증을 확보했지만, 범행에 쓴 흉기인 칼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칼의 행방과 제이미가 저지른 범행의 동기를 알아보려고 학교를 방문한 두 경찰은 학교의 도움으로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제이미의 학급이나 친구들에게서는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다. 2편에서 두 명의 경찰이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단지 제이미의 친구들을 만나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제이미는 지역의 공립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끔찍한 냄새가 나고, 학생들(청소년)은 끊임없이 떠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선생들은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고, 학생들을 윽박지른다. 이런 모습이 마치 편집되지 않은 필름처럼, 롱테이크로 이어지며 학교 건물 곳곳을 끊이지 않고 움직이며 보이고, 선생과 어른에게 대들고, 모욕하는 한편 자기들끼리로 패거리를 지어 약해 보이는 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인다. 청소년들은 어른을 믿지 않는다. 선생도 어른이고, 부모도 어른이지만 그들 모두 청소년들의 시각에서는 자기들을 짓밟고, 억누르고, 억압하는 나쁜 존재들로 비친다. 학교에서 따돌림은 당연한 일상이고,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은 누구에게도 이런 고통을 말하지 못한다. 그런 내용을 어른들 - 선생님, 부모님 등 - 에게 말하면, 그 다음에는 더 큰 괴롭힘과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배스컴 경위의 아들 애덤도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지만 학년은 두 학년이 높아서 제이미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애덤 역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였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못)는다. 배스컴 경위와 애덤의 에피소드는 2편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깊은 감동을 준다. 배스컴에게 애덤은 친자식이 아니었고, 청소년인 애덤과 친밀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부자 사이였지만 늘 어색한 사이였던 배스컴과 애덤은 제이미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진다. 배스컴이 학교에서 제이미의 친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하지만 실패하는데, 그건 배스컴을 비롯한 어른들이 청소년 문화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애덤이 배스컴을 따로 불러 청소년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애덤이 알려주는 청소년 또래 문화는 제이미 부모들도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고, 배스컴도 애덤이 알려줘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애덤의 이야기를 듣고 배스컴은 자신이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자식인 애덤에게 얼마나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고, 무관심했는가를 깨닫는다. 배스컴이 하교하는 애덤을 기다려 함께 밥 먹자고 하는 장면, 애덤이 '중국집에 가, 거기 맛있는 바비큐 소스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늘 성장하고, 그 자체로 훌륭하다. 다만 부모, 어른들이 아이들의 진심을,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청소년 시기는 길들지 않은 야생마처럼 목적 없이 질주하는 때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도 호르몬 작용이 왕성하고,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중간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시기라는 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3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노드라마다. 제이미는 '청소년 보호훈련센터'에서 지내고, 체포된 지 7개월이 지났다. 교도소는 아니지만 미성년 범죄자들이나 여러 검사를 통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을 수용해 상담과 교화를 하는 곳인데, 제이미는 이 곳을 '정신병원'으로 인식한다. 제이미는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는데, 상담사는 임상 심리학자가 맡고, 상담 내용은 재판에서 판사에게 제출되어 판결의 근거로 쓰인다. 따라서 제이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매우 중요하고, 임상 심리학자는 제이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제이미를 찾은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이미 제이미를 네 번 만났고, 이제 다섯 번째 만남이다. 애리스턴은 제이미가 좋아하는 핫초코와 치즈샌드위치를 건네며 우호적으로 대한다. 애리스턴이 묻고, 제이미가 대답하는 형식이지만, 애리스턴이 하는 질문은 제이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이미는 여전히 자기가 케이티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끝까지 그 사실을 부인하는데, 그건 제이미가 자신이 한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게 두렵고 끔찍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애리스턴은 질문을 던지면서 제이미가 케이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제이미가 생각하는 여성의 의미, 이성을 대하는 태도, 제이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데,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제이미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버지와 관계가 어떤지, 아버지의 취미, 친구들과 지내는 일상까지. 청소년인 제이미가 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이성이 있는지, 데이트는 했는지, 성 지식은 있는지, 이성과 성적 접촉은 어디까지 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묻는다. 제이미는 이런 질문들이 낯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당황하기도 하고,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나 자기가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에 짜증을 폭발하기도 한다.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보통 체구의 여성으로, 제이미가 위협적인 행동을 할 때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지만, 제이미의 돌발행동과 위협을 보고 느끼면서, 제이미가 또래 여자에게 느꼈던 감정과 심리 상태를 미루어 짐작한다. 즉 평소에는 온순하고 평범한 소년이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폭발하는 청소년의 이상 심리상태를 보이고, 제이미에게는 그런 과잉 심리를 자극한 계기가 있었다는 걸 대화를 통해 알아낸다. 2편에서 배스컴 경위가 아들 애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낸 것처럼, 제이미가 말하는 학교에서 따돌림 특히 이성(여성) 사이에서 80대 20의 법칙이 작동하고, 한 번 배제된 남자 청소년은 그 집단에서 영원히 배제된다는 그들 사이의 따돌림 문화와 제이미의 잘못된 판단이 결합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제이미는 집에서나 학교에서 조용한 학생이고, 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지만, 그의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과 욕구, 불안한 정서, 집단 속에서 소외당하는 괴로움과 이성(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못 생겼다는 가스라이팅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제이미 내면에서 자라는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태도, 폭력에 의지하려는 강압적 태도 등이 범행을 저지른 또 다른 동기라는 걸 상담을 통해 드러낸다. 제이미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임상 심리학자 애리스턴은 제이미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제이미의 아버지에 관해 질문할 때부터 불편한 모습을 보인 제이미의 심리를 읽는다. 제이미가 드러내는 폭력성은 그가 보고 자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으로 알 수 있다. 제이미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가족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지만, 자주 화를 내고, 기물을 부수는 행동을 통해 폭력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폭력에 위축된 상태였고, 학교에서는 무시당하고, 이성에게는 배제되는 존재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복합적 심리 상태에서 자기를 무시하고 집단 따돌림을 주도한 케이티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돌아오는 건 냉정하고 모욕적인 비웃음 뿐이었다. 4편은 제이미 가족의 이야기다. 다시 몇 달이 흐르고, 제이미는 곧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 생일날이고, 에디의 아내 만다는 에디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하지만 에디의 차에 누군가 페인트로 '강감법'이라고 써 놓았고, 가족의 평온은 깨진다. 세 식구는 철물점으로 가서 페인트를 구입해 차에 쓴 낙서를 지우는데, 이때 철물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이 에디에게 제이미와 가족을 응원한다며 힘내라고 말한다. 좁은 지역사회에서 제이미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이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 청년들로, 이들은 '인셀' 문화가 80대 20의 법칙을 통해 80%의 남성들은 여성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여성들이 집단으로 남성을 따돌리는 문화에 분노하고 있다. 제이미는 그런 남성으로, 자신을 대신해 여성을 응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제이미를 옹호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만다는 차라리 여기를 떠나 리버풀로 돌아가자고 에디에게 말하지만, 에디는 돌아가면 오히려 더 힘들고 나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에디의 생일을 축하하려던 하루는 불쾌하게 시작하지만 가족들은 철물점을 다녀오는 차안에서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제이미가 전화해 유죄를 인정하겠다는 말을 한다. 운전하며 스피커폰으로 가족 모두가 듣는 제이미와의 통화는 곤혹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제이미였는데,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제이미가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면 - 인정하지 않더라도 - 최소한 몇십 년에서 최고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눈앞에 있다. 에디, 만다, 사라는 저마다 비통한 심정이지만 일상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할 계획이었지만 포기한다. 에디와 만다는 제이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자기만의 벽을 만들고, 자신의 세계에 부모가 간섭하거나 침입하는 걸 경계하며 분노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에디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으며 자랐다고 말한다. 심지어 허리띠로 채찍처럼 맞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더욱 자신이 아이를 낳으면 절대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에디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물리적 폭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다의 눈에 에디는 제이미의 우상이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아들의 우상이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아버지가 아들이 바라는 그런 멋진 모습이 아니었을 때,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이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걸 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아이라서, 설명할 수도 없을 때, 아버지도 절망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말하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른다. 아버지가 되는 것도 처음이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것도 처음이기에,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또는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에디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는 노력했고, 애썼지만 아들 제이미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되었다. 에디는 스스로 부끄럽다. 잘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은 당연했고, 자신은 더 나은 아버지, 가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영국의 중하층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에디는 배관공이 되었고, 나름 성실하게 살고 있다. 그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가장이 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는 사람이다. 딸은 이제 대학에 들어갔고, 아들은 중학교에 다니고, 먹고 살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무난한 일상을 영위하는 에디의 가족이었지만, 아들 제이미가 살인을 저지르고 어쩌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에디는 아들 제이미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한다. 더 다정하게, 더 따뜻하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놀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걸 후회한다. 그가 울음을 삼키며 흘리는 눈물에는 아들을 향한 진한 사랑과 통한의 피가 섞여 있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특히 아버지라면 이 드라마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몰입하게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봤다. 내가 지금도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과 마음 깊은 곳에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 내가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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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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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2
- 배심원 #2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2024년 11월 개봉이니 최신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고전 걸작 영화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두 영화 모두 법정 영화이면서 12명의 배심원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유죄라고 판단했던 용의자에 대한 판단이 한 사람의 배심원이 제기한 의문으로 시작해 판단이 달라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데, 영화의 알레고리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는 배심원 가운데 누구도 용의자와 관련 있는 인물은 없다. 다만, 배심원 가운데 8번 배심원이 처음부터 용의자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유죄를 의심한다. '배심원 #2'에서는 제목처럼 2번 배심원이 유죄 평결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에 개봉한 흑백 영화이고, '배심원 #2'는 2024년에 개봉한 영화로 무려 67년의 간극이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등장하는 12명의 배심원은 모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걸 볼 수 있는데, 1950대 미국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반면 '배심원 #2'에는 오히려 백인 남성이 소수자로 등장한다. 여성, 흑인, 아시아인이 고르게 등장하고, 배심원장도 경험이 많은 여성이 맡는다.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 형식을 보여주지만, 주제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배심원이 고민하는 단 한 가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결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로 정의할 수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는 18살 멕시코인 청년이다. 즉, 백인 주류 사회에서 백인들이 유색인종이자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을 단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18살 청년은 죽거나 살거나를 선택당하게 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인 청년은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 그의 존재는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만 그려지고, 다른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배심원 #2'에서 피고인은 비가 내리는 늦은 밤, 술집에서 싸우고 먼저 나간 여자 친구를 뒤따라가 살해한 남자 친구이면서, 과거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품행이 나쁜 청년으로 그려진다. '배심원 #2'에서 배심원들은 재판에 참여하며 피고인의 과거를 듣는다. 담당 검사는 다가온 선거를 통해 다시 선출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검사는 피고인이 여자 친구를 살해한 정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술집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싸우고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았고, 어떤 손님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놓은 증거가 있어, 유죄의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고의 변호인(국선변호인이다)은 검찰이 구체적, 물적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며,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를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한다.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법정에서 물적 증거가 없이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물증 없이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범죄를 판결하고 유죄를 선고한 재판이 있었는데, 그때의 정황은 '상식'을 가진 평범한 시민이라면 100%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정황 증거라서 가능했다. 반면 '배심원 #2'에서의 정황 증거는 매우 모호하다. 폭우가 퍼붓는 저녁 시간에 비를 맞으며 술집에서 나간 여성이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고,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이틀 뒤 도로 옆 개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또한 그 여성이 술집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남자 친구가 여성을 따라 나가는 걸 많은 사람이 보았고, 밖에서 두 남녀가 싸우는 장면, 여성이 길을 따라 걷는 장면, 남성 역시 그 뒤를 따라가는 장면이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정황만으로도 검사는 피고인을 살인범으로 단정한다. 배심원 모두 물적 증거가 없어도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배심원 #2'가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다른 지점은 배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이는 내용이 있어서다. 2번 배심원 '저스틴'은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출산을 며칠 남기지 않은 만삭의 임산부 아내와 살고 있다. 그는 한때 알콜중독 상태였고, 중독에서 벗어나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가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건이 일어난 날, 같은 장소의 술집에서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주문하고 앉아 있었으며, 여성과 남성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술집을 나와 빗속을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 그는 운전하다 둔탁한 충격을 받고 차를 멈추지만, 사슴과 부딪쳤다고 생각하며 찌그러진 자동차를 수리한다. 그의 아내에게도 사슴과 부닥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스틴'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기 차에 부닥친 '무엇'인가가 사슴이 아니라, 술집에서 먼저 나간 여성이 아닐까 의심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기 눈으로 여성이 차에 치었거나, 자기가 여성을 쳤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에, 의심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저스틴'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평균 또는 그 이상이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고,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변호사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고 법적 조언을 얻는다. 배심원의 평결 논의에서는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데, 저스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물적 증거의 불충분한 조건 등을 내세워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스틴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이며, 배심원으로 올바른 태도로 보인다. 다만, 저스틴의 태도는 복합적 층위를 갖는데, 자기의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 진짜 범인은 피고인도, 자신도 아닌 제3자일 수 있다는 판단, 자기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모순적 태도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배심원단이 평결을 쉽게 내리지 못하면서, 재판은 기일이 늘어나고, 지방 검사 선거가 촉박한 상태에서 검사는 최대한 빨리 평결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배심원단은 예외적으로 범행 장소를 답사하고, 배심원단 가운데 형사로 퇴직한 사람은 따로 증거를 수집하면서, 이 살인 사건이 사람 대 사람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차에 치인 뒤 유기된 사건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수집된 증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알게 된 저스틴은 갈등한다. 하지만 물적 증거들이 있어도, 그 증거들이 결정적으로 저스틴이 뺑소니를 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으며,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과정으로 죽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고인은 검사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여자 친구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피고인의 태도를 보는 관객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감옥에 갇힌 피고인이 여성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을 살해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감옥에 있는 용의자가 1순위이며, 배심원인 저스틴은 자기가 경험한 사건 당일의 경험에 근거해 자신의 범죄를 의심하는 상황이고,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 즉 여성의 살해 사건에서 경우의 수는 세 가지가 되며, 지금 누구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배심원이 해야 할 결정은 사건과 직접 관련 있는 용의자에 국한하므로, 두 가지의 경우 - 저스틴과 전혀 알 수 없는 사건이 있을 거라는 상황 - 는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결국 증거의 헛점을 찾아 용의자가 무죄라는 걸 입증하면서 배심원 사이의 날카로운 공방을 마무리하는 반면, '배심원 #2'에서는 배심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오가면서도 결국 평결에는 합의한다. 여기서 배심원 저스틴이 갖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와 함께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함께 드러낸다. 피고인이 유죄 평결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그가 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완벽한 증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과거의 행동이 원인이 된다. 즉, 어떤 범죄 용의자가 중요한 사건에서 범인으로 체포되고, 용의자로 지목되었을 때, 그 사건의 직접 증거가 없을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이 그의 현재를 규정하게 된다. '배심원 #2'에서도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되고, 그가 반사회적 태도와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적개심을 갖는다. 이건 실제 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배심원의 평결에 결정적 단서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모두 묵인하면서도 인정한다. 우리가 '저스틴'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저스틴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범죄가 일어났던 그날 밤에 있었던 사고를 자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용의자는 피해 여성의 남자 친구와 저스틴 두 사람이 될 것이고, 사건은 보다 폭 넓은 시각으로 전개되어, 사건의 실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스틴은 오늘 내일 출산할 아내가 있고, 그 전에 이미 저스틴 부부는 쌍동이 아이를 잃었다. 부부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과거가 있고, 지금 새로 태어날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 부부의 지난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누구도 저스틴에게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경찰에게 자백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저스틴은 스스로 자백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지금 체포되어 재판받는 살해 또는 사고로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가 범인으로 확정되어 평생(무기징역)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모든 상황은 딜레마다. 피고인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누구도 믿지 않고, 저스틴은 그날 밤 차에 무언가 부닥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물체가 죽은 여성이었는지, 사슴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백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심지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기소한 검사까지도 마지막 평결에서 전혀 기뻐하지 않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검사가 판단하기에도 물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황 증거로만 살인 범죄의 범인을 확정했다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죄책감으로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드러낸다. 사건의 실체가 모호하고 객관적 증거가 없을 때, 양심은 찔리지만 앙금을 남기며 현실을 외면해야 하는 경우는 누구나 겪는다. 평범한 사람도 하루에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때 거짓말은 의도했거나 악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통의 방법으로써의 거짓말이다. 즉, 가족, 동료, 이웃, 지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태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저스틴이 겪는 갈등은 어쩌면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진짜 범인은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이며,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자기가 한 행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사건이 일어난 날,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괴롭고 두려울 수 있다. 그건 피고인이 만에 하나, 진짜 범인이 아닐 때, 죄도 없이 억울하게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교도소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온전히 누명으로 수 년,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통계가 있고,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도 많다. 현대의 형사 재판에 모순이 많다는 건 당연하고, 모든 나라에서 인종 차별, 성 차별, 돈과 권력의 여부에 따라 범죄의 유무, 형량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세상이기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찰, 검사, 판사 모두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다는 사실을 안다. 배심원들도 그 사실을 알지만, '때론 진실이 정의가 아니라는 걸 안다'고 말하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정의'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심지어 '정의'를 외면하고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선택하는 일도 발생한다.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누군가 '개인'은 무고한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처럼, 16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며 마침내 탈옥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배심원 #2'에서 저스틴의 집을 찾아온 검사의 얼굴 표정과 저스틴의 표정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지난 사건의 재판, 재판의 종결은 모두 하나의 과정이며,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아주 짧은 장면이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진실은 알 수 없고, 정의는 구현되지 않을 것이며,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수의 판단이 옳을 수도, 그릇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억울하게 죽어갈 수도 있다. 세상의 모순을 합리화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모순과 불합리에서 우리가 애써 노력해야 할 객관적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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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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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 - FURY
- <영화> 퓨리 - FURY 2015년에 본 첫 영화. 별 네 개. 브래드 피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홍보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는 그동안의 전쟁 영화들 가운데서도 걸작의 반열에 들 듯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린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즉, 뛰어난 리얼리티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지 '전쟁영화'를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 즉,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무리 미화해도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지나치게 과장해도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와 참혹함은 지나치지 않는다.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전쟁영화를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든 과장, 미화, 왜곡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심지어 다큐멘터리도 왜곡을 한다-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수준의 과장, 미화, 왜곡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 뿐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연합군이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런 영화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완전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고,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상황에서 기갑부대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탱크'라는 물체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함께 기거하는 집이자, 무기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즉, 탱크라는 공간과 물체를 통해 심리적 위안, 가족애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워대디' 돈 컬리어 중사는 탱크 FURY를 움직이는 지휘자이자, 동승한 대원의 부모 노릇을 한다. 그리고 네 명의 병사는 '워대디'를 믿고 따르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이것은 가족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전우의 관계는 가족처럼 혈연 이상의 결속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게된다. 탱크의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다. 영화의 장면 속에서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다.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뒹굴고,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구덩이에 시체들이 파묻힌다. 신참 병사 노먼이 처음 전투병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피묻은 전차 내부를 닦다 발견한 전우의 사체를 보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평상의 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도의 혐오와 잔인함이 전쟁터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병사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과장 없이 그려낸 영화. 전쟁 영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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