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상품화 문제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어리석은 양반을 놀리는 풍자의 재미라도 있지만, 인류 공동의 소유물인 지하수를 특정 기업이 뽑아 올려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이윤을 가져간다는 사실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도 이해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가능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제가 작동한다. '상품화'는 자본의 유전자와 같은 것이고, '상품화'의 목적은 '이윤'에 있다. 즉, 자본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 - 물질, 서비스, 추상적 가치 등 - 을 '상품'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말은, 봉건제가 끝장난 원인도 기술의 발달에 있다는 뜻이다. 즉,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탄생하면서 그동안 오로지 인간의 손으로만 만들던 섬유 가공 산업이 기계를 활용한 반자동화, 대량 가공화하면서부터 본격 '자본주의 체제'를 갖췄다고 경제학자들은 설명한다.
수공업 노동자들은 '길드'를 만들어 자영업자의 시작이 되고, 농촌에서 귀족 영주의 땅에 농사를 지어먹거나 양을 치던 농부 가족들은 '강제로' 도시로 이주해 공장노동자가 된다. 귀족 영주들은 더 많은 양을 키워 양털을 판매하는 한편, 스스로 면직 공장을 지어 섬유를 생산하는 자본가로 변신한다.
'자본주의'는 몇 가지 현상이 이상적으로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발생한 특이한 현상인데, 마르크스는 이 현상을 관찰하면서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으로 발생하는 사회 체제라고 규정했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는 18세기는 유럽 뿐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19세기 시작 단계에서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이었지만 불과 100년 만에 두 배인 20억 명이 된다. 이것은 과거 1천 년 즉, 서기 1000년에서 서기 1800년 사이에 증가한 인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많은 숫자였다.
인구 증가가 갖는 의미는 거주 집단의 밀집, 대형화, 소비의 대량화로 특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거나 상업이 활발한 장소로 모이는데,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면 마치 원심력을 가진 것처럼, 도시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렇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기에 마침 '증기 기관'이 발명된 것이다. 기계, 기술의 발달은 18세기 이전부터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으나, '증기 기관'의 발명과 실용화는 '질적 전환'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다.
같은 시기에, 석탄이 주 연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탄광 개발과 탄광 노동자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 증가, 증기 기관의 발명, 석탄의 주 연료화 같은 중요한 사회 현상이 우연히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기술 문명의 발달은 아주 조금씩 누적되어온 인류의 지식과 지혜가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질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도약하게 되는데, 증기 기관의 발명이 자본주의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전부터 자본주의 맹아는 싹 트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근원적 질문으로 돌아가서, '석탄'도 인류 공동의 자원인데 왜 소수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주고 캐낸 석탄을 팔아 막대한 이윤을 독차지하는 것일까, 질문할 수 있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적 폭력 - 전쟁, 식민지, 약탈, 노예 매매 등 - 으로 자본을 축적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나면 제조, 교역, 상업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이때 자본(가)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는데, 유럽에서 봉건제 당시에 이미 왕족과 귀족, 종교 집단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으나,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문명이 충분히 열리지 않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개화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자본의 구성과 함께 '인신의 자유'가 있었다. 즉, 농노로 묶여 있던 민중의 처지가 자유로워지면서 '노동자'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시기는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전이었고, 자본가의 출현은 귀족, 부르주아, 길드의 자영업자, 상인 등에서 빠르게 나타났다.
'자본'은 본능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자본'의 본질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책을 썼다. '노동 시간'에서 이윤이 창출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때는 이미 수많은 자본가들이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한편,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자신들의 경쟁자인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봉건왕조의 소멸과 근대국가의 탄생 사이에서 '자본가'가 출현하고, 이들은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먹고, 입고, 자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물론이고, 석탄, 기차, 선박, 도로 같은 국가 기간 산업에 해당하는 분야에서도 '자본'은 눈부시게 활약했다.
'자본'은 국가와 다르게 매우 효율적으로 움직였으며, 생산성이 높았고, 자체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상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자본'의 양면성은 인류의 삶을 빠르게 향상시켰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있었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 지구 자원을 파괴하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추구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가 본격 가동하고 200여년 만에 지구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20세기 끝까지, 자본은 무한 경쟁,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최선이라고 주장했고, 대중 역시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혜택을 생활에서 느끼며, 밀려드는 상품의 물결을 환영했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역사에서 빠르게 뿌리내리고,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강력한 동력은 '욕망의 자유'와 '경쟁의 보편화'라는 혁명적 시대 상황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자본주의의 선봉에 선 부르주아는 봉건제를 깨뜨리고, 농노를 해방하며, 경제 체제를 바꾼 혁명적 역할을 했다고 마르크스는 이들 부르주아의 역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쏘련과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되거나 경제 분야만큼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고도화하지 못한 상태 즉 봉건적 환경과 낮은 생산성,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체제에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려면 내적 모순이 폭발하기 직전에 이르러야 한다. 혁명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모순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가 봉건제 내부에서 발아해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봉건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면서 본격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에 불과하다. 인류가 하나의 체제를 뛰어 넘는 시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짧아지고 있지만, 봉건제 1천년에 비하면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한동안 인류를 지배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다시 '생수'로 돌아와서, 자본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기준은 '이윤'에 있다. 물과 공기처럼 인류 생존의 절대 요소를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아무리 물질의 화신인 자본이라 해도 정도를 넘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식수'를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은 근대국가에서 권력을 가진 정부가 해야 할 의무다. 정부는 국민의 의식주를 기본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국가는 부여된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다.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제약이 있기도 하고,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정부와 자본(가) 집단의 힘겨루기 또는 담합의 결과에 따라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자동차 도로를 건설할 때 정부는 국가예산만으로 하지 않고 민간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이렇게 민간자본이 들어간 자동차 도로에는 일정한 구간마다 '통행료'를 부여하게 되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그 도로를 다니면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 예산을 적게 들이면서 도로 건설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목적으로 민간자본의 투입을 허용하는 것인데, 그로 인해 지분을 투자한 민간자본은 투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보장받게 된다. 어느 단계에서는 이렇게 정부와 민간자본이 함께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민간자본 참여는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정부(권력)와 자본의 결탁일 확률이 높다.
생수의 판매도 같은 논리로 볼 수 있다. 식수가 매우 부족한 나라에서는 정부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 국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때 모든 가정에 식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면, 일정 기간 대량으로 물을 공급하는 관정을 만들어 그 물을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생수'의 상품화는 식수의 오염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그건 다시 정부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함에도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는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국민이 충분히 믿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안)하면서 불신을 자아낸다.
자본은 정부의 무능 또는 국민의 불신을 파고 들면서 생존의 절대요소인 '물'을 상품화한다. 이와 똑같은 논리로 '공기'도 상품화했다. 상식 있는 정부라면 자본이 획책하는 '물의 상품화'를 승인하지 않겠지만, 자본(가)은 한 국가의 체제를 규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의 총체여서 국가(정부)라 해도 자본의 공격을 방어하기 힘겨운데, 대개의 국가(정부)는 '자본위원회'(마르크스)라고 불릴 정도로 국가 권력은 자본(가)에 의해 장악된 경우가 많아 '상품화'의 파상적 공세를 막기 어렵다.
'상품화'는 자본의 일방적 행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을 구매, 수용하는 소비자 대중이 존재하고, 그들이 '상품'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상품화'는 완결된다. 이때 자본(기업)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마케팅'을 통해 대중에게 접근한다.
자본(기업)의 마케팅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국가권력이 인민을 향해 선전, 선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본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마케팅하고, 국가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더 공고히 하려는 목적으로 선전, 선동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세계 생수 시장은 100조원이 넘었으며, 물의 양은 3,857억 리터가 넘는다. 자본(기업)은 물이 부족한 나라, 상수도 시설이 미약한 나라 등으로 진출하는 한편, 상수도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정부에서도 상수도와 차별화 전략을 통해 '건강한 물', '안전한 물'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자본(기업)은 정부가 해야 할 기본 의무를 가로 채, 생존의 절대요소이자 공공재인 '물'을 상품화함으로써,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는 것은 물론, 물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의 과다한 발생으로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국민(대중)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싸고 품질 좋은 식수를 마시지 않고, 훨씬 비싼 금액을 지불하며 '생수'를 사 먹게 되면서 필요하지 않은 지출이 발생하고, '생수'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가해자가 된다.
'생수'의 상품화는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 인정되어야 하며, 당위성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거의 대부분 '생수'가 아닌, 정부가 공급하는 상수도를 마실 수 있도록 체제를 갖추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자, 지구 환경을 지키는 기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본(기업)이 물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올리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상황이며, 오직 자본(가)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