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18(목)
 

제목 : 내 가족의 역사
작가 : 리쿤우
출판 : 북멘토


중국 만화가 리쿤우의 작품.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중국의 그래픽노블이 한국에 소개된 경우가 적어서 유럽의 그래픽노블보다는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이 작품은 한 중국인이 발견한 귀한 자료를 바탕으로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의 잔학함과 중국인의 희생이 얼마나 참담했던가를 밝히는 내용이다.
작가 리쿤우는 (나는 잘 모르지만) 중국에서 유명한 만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한다. 리쿤우는 1955년에 태어나 중국군으로 복무한 다음, 신문사에 입사해 디자이너,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지금은 만화창작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은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골동품 시장을 둘러본다. 그러다 어떤 골동품 장사와 손님이 다투는 장면을 보게 되고, 골동품 장사가 말다춤을 하는 가운데 '애국주의 국보'라는 말을 한 것을 주인공이 듣고는 골동품 장사에게 그 물건이 어떤 물건이냐고 물어본다. 골동품 장사는 '청일전쟁'에 관한 그림 자료라고 말하고, 주인공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물건을 보관한 창고로 데려가 그 자료를 보여준다. 청일전쟁 관련 자료는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1894년에 만든 한 장짜리 화첩이었다. 주인공이 그 자료를 구입하려 하지만 너무 비싸게 불러 구입하지 못하게 되고, 대신 골동품 장사는 그 자료를 주인공에게 돈을 얼마간 받고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빌린 화첩을 주인공은 컬러 스캔으로 복사를 하고 돌려준다. 그러면서 골동품 장사에게 사실대로 말을 하고, 나중에 원본을 비싸게 부른 값을 다 주고 사겠다고 말한다.
골동품 장사는 그 자료보다 훨씬 더 귀한 자료가 있다고 주인공에게 말하고, 그 사진 자료를 보여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주인공은 그가 말한 자료가 어떤 자료인지 궁금해서 날짜를 정해 두 사람은 마을 외각의 빈민가로 향한다. 그곳에는 골동품 장사의 스승이 살고 있는데, 옥탑방에서 매우 궁핍하게 살고 있는 노인을 찾아간 주인공은 골동품 장사가 어렵게 꺼내온 화보집을 보고는 몹시 놀란다. 
그 자료는 일본군이 '중일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으로, 일본군이 중국에서 활약한 내용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사진집이었다. 주인공은 당장 그 자리에서 카메라로 화보집을 찍고, 찍은 사진을 일본어를 잘 아는 후배에게 보낸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정리한 사진을 보며 화보에 찍힌 사진의 의미를 살핀다. 그가 찍은 화보를 소유한 노인은 죽어도 그 화보를 팔지 않겠다고 했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장소에 간 주인공은 빈민촌이었던 마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 빌딩이 들어선 것을 알고는 난감해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자료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가 발견한 화보집은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이라는 제목의 화집인데, 1939년에 발행한 책이다. 1937년에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중국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그것을 자신들의 승리의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어서 화보로 만들어 홍보했다.
중국에서 '중일전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만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주인공이 발견한 화보집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정도를 넘어서는 호들갑을 떤다는 느낌이 강했다. 주인공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말한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은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다. 일본은 '중일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홍보하기 위해 중국 뿐아니라 당시 조선에서도 같은 화보집을 출판했는데, 주인공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대단한 자료를 발견한 것처럼 생각한다. 
1939년에 부산일보사에서 발행한 자료로 '지나사변과 무적황군'이 있다. 이 만화에서 대단한 자료로 언급한 바로 그 화보집이다. 그러니 이 만화에서 언급한 자료의 가치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물론 그들 중국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수 있다-생각이 들었다.
이 만화가 기대 이하였던 것은, 주인공이 발견한 자료의 가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만화의 절반 이상을 이 화보의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자료가 역사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 사진을 그대로 만화에 실었다고 생각하지만, 만화의 절반 이상을 사진으로 채우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 리쿤우가 중국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위상이 높은 작가인지 알 수 없지만, 만일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즉,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절반 이상을 사진으로 채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면-나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작가의 안일하고 무능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따위를 만화로 그리고 있는지 한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화보 사진을 만화의 절반 이상 그대로 싣고는 그걸 자기 작품이라고 출판하는 태도가 용인되고, 또 그것이 마치 훌륭한 작품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예술 수준이 어떤가를 알 수 있고, 중국의 그래픽노블 수준의 천박함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만화는 만화도 아니고, 작품은 더더욱 아니며, 추천할 만한 책도 아니고, 만화의 수준도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이 만화가 의미는 있겠지만, '그래픽노블'로서의 작품성은 인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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