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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풍선
    빨간 풍선 작가는 '빨간 풍선'이라고 써 놓고, 영어 제목은 'The Purple Balloon'이라고 썼다. 의도한 것일까? 이 작품집에 들어 있는 내용은 삶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쉽게 잊어버리기는 어려운, 삶의 찌꺼기, 잔해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만화가는 소설가가 갖지 못한 위대한 장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소설가는 글로만 자신의 상상을 표현하지만, 만화가는 소설가의 글솜씨와 그보다 더 멋진 그림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구축하기 때문에, 내게 만화가는 소설가보다 더 위대한 존재다. 내가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이유는, '만화'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표현하고, 공감을 얻는 창작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소설만이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심심했을까. 물론 소설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세계가 충분히 있다는 건 알고 있고, 나 자신, 소설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소설보다 만화가 더 좋다고 고백을 하는 건 조금 굴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그래픽 노블'을 쓰고 그리는 만화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만화는 한국의 많은 '만화작가'들 가운데 한 명인 김수박 작가의 작품집이다. 이 만화에 실려 있는 만화는 만화가게에서 무협지를 넘기듯 1초에 한 장씩 넘기는 그런 만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수박 작가의 만화 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든 '그래픽 노블' 작가들의 작품은 작품 전체를 아울러 깊이와 철학을 발견하는 재미로 천천히, 한컷 한컷 글과 그림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번째 작품인 '개변기'는 상황 자체가 끔찍하다. 이 만화는 개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드러내고 있어서 동물보호단체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다면-그런데, 이 만화를 그런 사람들이 안 봤을 리 없을텐데,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결코 지나치지 않을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를 혐오하는 나'가 아니라, '개와 같은 인간을 싫어하는 나'이기 때문에, 여기서 변기에 빠진 개는 우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 같은 인간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는 그 '개와 같은 인간들'을 변기에 쓸어 넣고, 온갖 화학물질을 들이부어 잔인하게 없애버리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화학물질을 투입해 막힌 변기가 뚫리는 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변기에 쓸려 내려간 개에 대해 일말의 연민도 없다는 점에서 '나'는 싸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개같은 인간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 아니던가. 일곱번째 작품인 '첫사랑'은 사랑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역겨운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모든 첫사랑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첫사랑의 풋풋하고 애틋한 감정이 시간이 지나 그것을 다시 마주했을 때, 예전의 시간에 갇혀 있던 '첫사랑'과 시간이 흘러 지금 많이 변한 내 모습에서 오는 심한 괴리감이 구토를 일으킬 정도가 된다. 여기서, 변한 것은 '첫사랑'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변한 것을 모르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첫사랑'과의 만남이 결국 '섹스'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도했던, 생각하지 않았던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역겨운 현실이라는 것에 '나'는 자기환멸을 느낀다. 만화를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다. 만화를 많이 좋아하는 나는 이런 '그래픽 노블'이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볼 만한 만화책이 없어서 고민이 아니라, 너무 많은데 사볼 돈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도바리
    도바리 1980년을 배경으로 주인공 대학생이 경찰에 쫓기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수배자가 되어 도망다니는 '운동권 대학생'을 이 책의 제목처럼 '도바리'라고 했다. 물론 운동권 대학생 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수배자가 되었고, 잡히지 않으려 '도바리'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은 '광주민주화운동'이 공식 인정된 명칭이지만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던 그때는 '광주사태'라고 했다. 모든 언론에서는 광주에 무장간첩이 내려와 시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새빨간 거짓뉴스를 퍼뜨렸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것이 바로 그때의 언론이었고, 그 언론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 물론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도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만화의 주인공 김인권은 운동권 학생으로 수배자가 되어 남쪽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그는 '소설가'라고 말하고 작은 마을에서 민박을 하거나, 마음 좋은 노인을 만나 '조카' 노릇을 하며 일도 하고 밥도 얻어먹는다. 그가 찾아다니는 시골의 작은 마을들에는 대개 선량하고 순박한 주민들이 많았지만, 조금 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온갖 타락한 인간관계와 권력구조가 개인과 작은 집단을 억압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결국 거대한 악인 군부쿠데타 세력을 없애면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던 김인권은 자신이 보고 느낀 현실에 절망하고, 경찰에 체포당한다. 80년대 '운동권'은 그때로는 비장하고 고결한 정신으로 적(쿠데타 세력)과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한없이 유치하고 비뚤어진 태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운동권 세력-은 적어도 군부쿠데타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이 나라를 다수의 민중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80년대는 여전히 전근대와 봉건의 의식이 많이 남아 있었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마르크스, 레닌을 부르짖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봉건적,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질서에 젖어 있던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운동권)은 민주주의의 시민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군부쿠데타 세력과 싸워야 했고, 모든 역량은 '반독재, 민주화'의 깃발 아래로 모여야 했다. 결국 전두환이 장기집권의 꿈을 포기하고, 노태우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88년 올림픽이 열리고, 김영삼이 3당 합당으로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을 세울 때까지, 막연하지만 온몸을 던져 싸운 그때의 20대 청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수배자로 도망다니면서 민중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폭력을 보며 좌절하는 한편, 후배인 우광진이 전남도청에 남아 쿠데타 세력과 마지막 전투를 치를 때까지의 일기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당대(80년대)의 역사적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탄핵한 것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고, 우리가 직접 만들어 냈다는 것을 가슴 절절하게 느끼는 것처럼, 80년대의 청년들 역시 자신들이 지금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묵직하게 느끼고 있었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피부색깔 꿀색
    피부색깔 꿀색 입양아의 자전적 이야기. 이 만화를 그린 주인공 전정식은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스웨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서, 과장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가능한 있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지금도 어린이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는 나라이고, 외국의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은 많은 이야기들이 한국에 알려지고 있다. 입양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입양아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아니면 내가 잘 모르고 있거나) 입양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 가운데서도 소수의 문제라 사회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어쩌다 외국에서 입양아로 성장한 사람이 유명해지는 경우는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입양아가 갖게 되는 심리적 혼란과 자아 정체성의 불안에 관해서는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깊고 끈질기게 자신의 삶을 끌어당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도 구체적으로 뿌리가 뽑힌 자신의 모습을 여러 번 그리고 있는데, '엄마'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는 그 사람의 온 생애를 불안하게 만든다. '엄마 부재'에 관한 불안은 나도 어렸을 때 느낀 적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먹을 것은 없었고, 낡은 찬장에는 신김치만 한 그릇 있었다. 신김치를 먹고 물을 바가지로 들이키고 나서 동네에 뛰어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다 들어와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혹시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뱃속에서 설움이 복받쳤고,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서러움이 복받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책의 저자가 가졌을 막막함과 서러움과 불안과 허무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백인 사회에서 백인 부모를 둔 동양인 아이의 삶이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혹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선진국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한국에서 고아로 자랐을 때 받았을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거라 위안을 삼을 수는 있겠지만, 뿌리가 없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입양아들이 그렇듯, 주인공도 나이가 들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방문한다. 어머니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을 간직한 채 희미한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입양아들 가운데는 친엄마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만화는 더욱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고, 입양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질문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부모 밑에서 자란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주인공이 겪는 뿌리 없는 삶의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팔레스타인 - 조 사코
    팔레스타인 - 조 사코 한 권의 만화로 팔레스타인의 삶을 이렇게 깊이 있고 절절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소설이나 논문, 사회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독자를 끌어당기기 어려운 심각하고 진지한 현실을 객관으로 바라보면서도 고통, 슬픔, 분노, 웃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공감을 얻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수구반동 집단이 집회를 할 때 미국국기와 이스라엘국기를 들고 나타난다. 이들은 특정한 종교를 교조주의적으로 신봉하는 미개한 존재들인데, 이스라엘이 '반기독교'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무지하고 멍청한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봐도 좋다. 하여간, 그런 이스라엘이 제2('이'라고 읽으면 안 되고, '투'라고 읽어야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다.)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미국과 유럽의 비호, 특별히)영국의 비호 아래 지금의 땅을 점령해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웠는데, 문제는 이미 그 땅에서 오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폭력으로 쫓아냈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꼴이고, 그들이 그렇게 당했다고 사방팔방 떠들어 대던 '유대인 학살'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자본을 동원해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반면, 정작 진짜 피해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할 힘조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 그들이 놓여 있는 처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유대인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만화에서, 유대인의 폭력은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하고 전쟁범죄이며 반인륜의 행동이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여성과 어린이처럼 사회적 약자가 이중, 삼중의 억압과 폭력을 당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된 타도의 대상은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이 무시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진보진영 내부의 봉건잔재와 가부장적 폐해, 남성우월주의가 또다른 폭력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대인과의 전쟁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부의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건 전형적인 억압사회의 태도다. 이슬람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봉건적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지 이스라엘과의 전쟁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얽혀 분열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뒤에 국제깡패 미국이 총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팔레스타인이 해방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전체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필수 요건이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이든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든 현재의 분쟁을 있게 한 것은 결국 종교 때문이다. 그들은 동일한 신을 믿으면서도 서로를 학살하지 못해 안달하는 중이고, 거의 대부분의 학살은 '신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보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한, 이런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할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제목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작가 : 박건웅 출판 : 북멘토 박건웅은 작품은 대개 충격적이고 놀라운 작품들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가, 시사만평을 그리는 것도 아닌데, 유독 한국현대사의 핵심만을 다루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다. 게다가 박건웅의 작품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그의 그림과 표현 방식은 많은 경우 판화적 표현 기법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흑백 판화는 표현의 강렬함과 함께 이미지가 드러내는 상징성이 탁월한 기법이다. 흑백 그림은 박건웅의 작품에서 특히 '흑과 백' 즉 '선과 악'의 구도이자 '적과 아군'을 상징하며, '생과 사'를 드러내는가 하면, '옳음과 그름'을 판단하게 하고, '지옥과 천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흑백 그림은 잔혹하고 처참한 사실적 묘사를 지우는 대신, 역사와 진실에 더욱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최용탁의 단편소설을 만화로 표현했는데, 원작의 생생한 언어들을 장면마다 살려내는 박건웅의 그림은, 세계의 많은 그래픽 노블 가운데서 특히 역사를 다루고 있는 그래픽 노블 가운데서는 가장 탁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계의 현대사에서 학살과 관련한 사건은 무수히 많고, 그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건의 양민학살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다. 이 만화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남한에서 발생한 이 학살은 친일극우정권이 벌인 극악한 범죄의 일부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있으며, 친일(사실은 매국)정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감추기 위해 가능한 역사교과서에서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비틀고 있다. 사실이나 진실을 들여다 보는 것은 때로 고통이다. 그저 모르고 살거나, 되도록 기억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괴로운 역사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하고, 친일매국노들과 수구반동 집단이 권력을 잡으면, 이런 양민학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남한과 북한은 분단된 상태로 '휴전' 중이며, 사상 탄압은 변하지 않았고, 반대파를 '빨갱이'로, '좌익'으로 매도하고 그들을 폭력으로 단죄하는 것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이 만화는 과거의 참혹함을 되새기자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한국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할 것을 경계하는 뜻도 담고 있다. '정적(정치적 반대자)'이라는 이유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파리를 죽이듯 양민을 학살하는 정권이 여전하지 않은가.
    • 문화
    • 만화
    2021-09-24
  • 우리, 선화
    제목 : 우리, 선화 작가 : 심흥아 출판 : 새만화책심흥아 작가의 첫 번째 작품. 첫 번째 작품에 이 정도 뛰어난 수준이라면, 작가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솜씨 또한 탁월하다.작가주의 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톤'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것인데, 심흥아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톤'을 쓰되 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만 사용했다. 또한 톤을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고, 명암을 표현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이 작품에 관한 소개를 보자.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지만 속은 다른 봉선화와 봉우리, 그리고 할아버지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나이 드신 아빠, 이렇게 세 사람이 봉씨네 식구이다. 창문이 있고, 장마에 물 들어올 걱정 없고, 세탁기를 놓을 정도 크기의 화장실이 있고, 개수대가 두 개인 싱크대가 놓인 집에 살아 보는 것이 큰딸 선화의 소망일 정도로 소박한 살림살이이다.더 나을 것도 없는 셋집으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던 봉씨네는 쌍둥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이사를 또 하게 된다. 마을버스 기사인 아빠가 안면 있는 승객인 스님의 제안으로 정착할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집으로 사는 곳을 옮기기로 한 것인데, 새초롬한 성격의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못마땅하다. 그렇게 절집 사람들과 식구가 되어 3년째를 맞이한다.선화는 자기 환경을 껴안고 견디며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고자 하고, 언제고 집을 벗어나리라 마음먹고 있던 우리는 계획한 대로 상고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사이 아버지는 드디어 절집에 들어갈 때의 생각대로 온 가족이 모여 살 만한 집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선화와 우리는 쌍동이 자매지만, 선화가 언니 노릇을 하고, 그래서인지 속이 깊다. 하지만 동생인 우리에게서 따뜻한 자매애를 느끼면서, 쌍동이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이야기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선화의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담담하면서 나즈막히 가라앉은 나레이터, 선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집을 떠나 독립하려는 우리가 선화에게 준 선물, 브래지어를 하면서, 본 적도 없는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난다.선화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지만,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먹고 살 준비를 한다. 고생 끝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을 떠났던 동생 우리가 돌아오면서, 삶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선화처럼, 나도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이미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 작품 속에서 선화 아버지는 마을버스 운전을 하며 집안을 이끌어 가는 능력자였지만, 내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백수 노릇을 했다.선화는 엄마의 얼굴을 모르지만, 나는 어머니와 줄곧 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내가 치렀으니, 그런 면에서는 선화보다 조금 운이 좋았다고 할까, 엄마의 그리움을 덜 느낄 정도라고 할까.어린 선화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 독자의 마음까지 성장하도록 만드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 문화
    • 만화
    2021-07-30
  •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책>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으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 작가지만, 참으로 부럽고, 대단한 작가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에도시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떠돌다 정착한다. 사무라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진검이 아닌 대나무검. 진검이자 보검인 쿠니후사는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의 살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노릇을 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세노 소이치로는 잠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연쇄 살인이 발생하면서 도읍은 긴장감이 흐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한국에 번역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반드시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 문화
    • 만화
    2021-07-30
  • 퓨리 - FURY
    <영화> 퓨리 - FURY 2015년에 본 첫 영화. 별 네 개. 브래드 피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홍보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는 그동안의 전쟁 영화들 가운데서도 걸작의 반열에 들 듯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린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즉, 뛰어난 리얼리티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지 '전쟁영화'를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 즉,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무리 미화해도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지나치게 과장해도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와 참혹함은 지나치지 않는다.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전쟁영화를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든 과장, 미화, 왜곡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심지어 다큐멘터리도 왜곡을 한다-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수준의 과장, 미화, 왜곡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 뿐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연합군이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런 영화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완전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고,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상황에서 기갑부대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탱크'라는 물체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함께 기거하는 집이자, 무기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즉, 탱크라는 공간과 물체를 통해 심리적 위안, 가족애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워대디' 돈 컬리어 중사는 탱크 FURY를 움직이는 지휘자이자, 동승한 대원의 부모 노릇을 한다. 그리고 네 명의 병사는 '워대디'를 믿고 따르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이것은 가족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전우의 관계는 가족처럼 혈연 이상의 결속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게된다. 탱크의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다. 영화의 장면 속에서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다.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뒹굴고,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구덩이에 시체들이 파묻힌다. 신참 병사 노먼이 처음 전투병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피묻은 전차 내부를 닦다 발견한 전우의 사체를 보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평상의 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도의 혐오와 잔인함이 전쟁터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병사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과장 없이 그려낸 영화. 전쟁 영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 문화
    • 영화
    2021-07-30
  • 홍까오량 가족 - 모옌
    <책> 홍까오량 가족 - 모옌 읽는 내내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도 그렇고, 그 내용을 표현한 문장도 읽는 이의 심장과 영혼을 뜯어내는 듯한 충격과 격렬함 때문에,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했고, 한 번에 오래 읽기도 어려웠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만 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 대륙의 현대사를 자신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 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일반화, 보편화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고통과 끈질긴 생명력에 관한 기록이며, 작게는 자신의 개인사적 사건이자 중국 현대사와 맞물린 거대한 물줄기를 관통하는 중국민중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모두 다섯 편의 중편을 묶은 것으로, 중편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로도 충분히 읽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붉은 수수밭'은 이 책의 첫번째 중편 '붉은 수수'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붉은 수수'도 매우 강렬한 피빛이지만, 뒤에 나오는 '고량주', '개들의 길', '수수장례식', '이상한 죽음'은 더욱 강렬하고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빛이다. 이 작품을 읽고 머리에 남는 것은 '끈적끈적한 피'의 이미지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피이며, 중국 대륙을 적시는 고통받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의 피이며, 인간이 흘린 피이기도 하고 중국 역사가 흘린 '고통의 시간'이라는 피이기도 하다. 그 핏물을 먹고 자란 수수는 붉은 빛으로, 저녁 놀에 더욱 새빨갛게 피빛으로 빛난다. 광활한 붉은 수수밭은 마치 뜨거운 피가 일렁거리듯, 강렬한 색채로 번쩍거리며, 그 속에 살아가는 중국 민중은 압제와 어리석음 속에서 잔혹하게 죽어간다. 같은 시기-중국 근현대사의 초기인 198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루쉰은 중국 민중을 '아Q'에 빗대었다. '인간의 고기를 먹는 미치광이'들로도 표현했다. 중국 민중은 어리석고, 멍청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의지도, 지혜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강렬하게 비판했다. 반면, 모옌은 루쉰의 '아Q'적 인간관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빛으로 물든 중국 민중의 삶을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침략자 일본에 대항하는 중국 민중은, 당시 정부나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그들 스스로 일본군과 싸운다. 우리도 일본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경험이 있지만, 중국 민중이 당한 고통과 아픔과 슬픔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그것을 모옌은 매우 강렬하고 직설적이며,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은 결코 일본의 악행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경고가 이 작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에서 이 정도의 강렬함과 잔혹함을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 모옌은 자기의 조국, 중국의 민중이 당한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장면은 충격과 공포이며, 잔혹함과 슬픔이고, 짙은 피비린내와 격렬한 분노를 동반하고 있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최근의 현실이었음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모옌의 작품은 한국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 굵은 묘사와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그는 중국의 신화, 역사, 민간신앙을 총동원해서 중국 인민이 처한 상황을 직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 모옌과 같은 작가가 없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이다.
    • 문화
    • 독서
    2021-07-30
  • 듀마 키 - 스티븐 킹
    <책> 듀마 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스티븐 킹이 죽음 직전까지 간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이 매우 심했던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사고의 후유증에 따르는 고통-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묘사는 실제 당했던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매우 세밀하고, 감정적이며, 깊이 있는 내용이어서, 읽는 사람마저 그 고통을 느낄 정도로 치열하다.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 에드거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그가 살았던 과거의 삶과, 죽음에서 겨우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아내와의 이혼, 삶의 터전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그러다가, 이야기는 점차 새로운 영역,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주인공에게 생긴 초능력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오래 된 실종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사건. 호러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호러' 자체가 '안티 리얼리티'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모든 호러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유령이나 귀신의 존재가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개인과 가족, 친구, 친지, 이웃)들의 삶이다. 즉, 초자연적인 존재를 내세워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 호러 작품의 진짜 목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스티븐 킹이 돋보이는 것은, 뒷부분의 크라이막스가 아니라, 그가 풀어나가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삶에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삶에서 상처 입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초현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끌어들여 그들이 겪는 아픔이 현실을 초월하는, 현실에서는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와 아픔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한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비현실적 존재들-유령, 귀신, 외계의 존재 등-은 스티븐 킹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상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가 작가이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그런 '당연한' 존재들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경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호러 작가 스티븐 킹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현실적 충격이 정신적, 감정적 충격으로 그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스티븐 킹의 경험은 평범한 개인이 겪었던 것보다는 훨씬 심각하고 다양했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것들'은 그의 잠재의식과 불안에서 발생한 것들이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스티븐 킹은 호러소설을 선택한 것이 어쩌면 필연일 수 있다. (그가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고나면 아내를 향해 돌아눕는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소설은 특히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받은 물리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매우 심각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운(적어도 이런 정도의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작가일 확률은 매우 낮으므로) 고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을 것이다. 결국, 스티븐 킹의 시도는 성공했고, 그는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소설로 기록했다. 우리는 스티븐 킹의 묘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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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2021-07-30
  • 클린트 이스트우드
    <책> 클린트 이스트우드 지은이 : 마크 엘리엇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13년 2월 25일 분량 : 616쪽 개요 이 책은 마초 이미지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감독,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 모델로 추앙받는 세계적인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평전이다. 50여 년간 출연하고 만들어 온 영화와 뒷이야기는 물론,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과 불륜, 각종 소송에 대한 비화, 그리고 아이스크림콘을 거리에서 먹지 못하게 하는 시 당국의 조례 제정에 분노하여 카멜의 시장에 선출되는 의외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용직을 전전하던 목표 없는 청년에서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난 80년간의 일대기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영화사(史) 학자인 마크 엘리엇이 수많은 자료와 다양한 취재원들을 동원하여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생생하고 상세하게 그 드라마틱한 삶을 전달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가난한 떠돌이 부부에게서 태어난 5.15kg의 우량아, 군 복무 시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행운아, 혼외정사로 네 명의 아이를 낳은 바람둥이 할리우드 스타. 이 모두가 대스타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다양한 모습이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생활과 그가 찍어 온 영화들로 대표되는 공적 생활이 어떻게 조응해 가는지 추적한다. 기존의 평전들이 놓친 최근 10년간의 황금기를 상세히 밝힐 뿐만 아니라, 찬양과 비판 사이에서 시종일관 객관적 거리를 견지하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대한 스타의 명과 암을 조명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철학, 연출 스타일, 배우와 감독으로서 다다른 성숙함, 공인으로서의 자기 관리 능력,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할 것이다.-<출판사 책소개> 독후감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가 미국총기협회를 대표해 영화배우 찰튼 헤스턴을 인터뷰했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만일 마이클 무어가 내 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고,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마이클 무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인터뷰를하지 않았다.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으니, 40년 세월이다. 당시 우리 꼬마들은 이소룡 흉내를 내며 골목을 뛰어다녔고, 동네에 있는 두 개의 극장에서는 수많은 영화 간판들이 바뀌어 걸렸다.이소룡 다음으로 인기 있었던 영화는 당연히 서부극이었고, 우리는 보난자의 보안관이 되어 머플러를 휘날리며 적과 등을 맞대고 열 걸음을 걸은 다음, 재빠르게 쌍권총을 뽑아 적을 쓰러뜨렸다.가난했지만, 우리에게는 꿈이 있고, 우상이 있었다. 콧물을 흘리며 뛰어다닐 동무가 있었고, 골목길이 있었으며, 공부하라고 머리를 쥐어박는 어른도 없었다.우리는 지칠 때까지 놀았고, 땅거미가 지고도 한참 지나 어두워질 때까지, 아니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칠 때까지 줄기차게 놀았다.영화 뿐 아니라 당시로는 귀했던 흑백 TV에서도 서부극은 단골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시가를 씹으며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장화 끝에 박차를 매단 총잡이와 보안관을 사랑했다.그들은 마초였으며, 외톨이였지만 결코 고독하지도, 연민에 사로잡히지도 않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은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존 웨인도 있었지만, 우리는 마카로니 웨스턴에 더 가까운 꼬마들이었고, 도대체 웃지 않고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독한 총잡이가 모든 적들을 쓰러뜨리고 황혼의 사막 위로 사라지는 모습은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 논리를 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진영 논리에 의해 움직이지도 않는다. 보수, 진보라는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양심’이고, 잘 훈련된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아무리 진보주의자라 해도 ‘개인주의’ 훈련이 덜 된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믿는 이념의 정반대편으로 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웠던 양심, 도덕, 염치, 인내, 배려, 사랑, 존중 등과 같은 덕목은 이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이념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들이고, 가치 기준인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런 기본적인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든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보수성’은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에 가깝다. 즉, 미국의 보수집단 가운데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보적 보수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인간(사회)의 중요한 덕목들-양심, 도덕, 존중, 배려, 자유 등-을 누구보다 충실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생활에 있어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사회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진보적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그래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결혼을 한 이후에도-결혼 전은 말할 것도 없고-단 한 순간도 아내 외에 다른 여자가 없었던 적이 없는, 말하자면 바람둥이, 플레이보이, 난봉꾼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음에도 스스로는 도덕적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그는 자신의 삶과 영화배우나 감독으로서의 삶을 분리하려 했지만, 어찌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개인은 평생 영화에 종속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배우로서도 성공했지만, 특히 감독으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그를 인간적으로는 싫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걸작들을 만들어 왔다.이 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배우, 감독과 그의 작품들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도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부러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객관적으로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일대기를 쓴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이 단점일 수 있지만,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문화
    • 독서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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