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이윤길의 시집 두 권


      주문진, 파도 시편    




지금은 아니지만, 30년 전쯤, 한때 '시인'이라는 '것들'을 경멸한 적이 있었다. 내가 소설을 써서 그런 것은 아니고, 내 주변에 서성거리던 자칭 '시인'이라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덜 떨어지고, 현실 감각도 없었으며, 비루하고, 남의 눈치나 보며 살던 수준 낮은 인물들이었던 까닭이다.




그들이 끄적이던 '시'라는 것도 건강하지 못했으며, 밤낮 서로 몰려다니며 으슥한 술집에서 마담 몸이나 더듬는 파렴치한 종자라고 - 그들의 말을 들어 - 여겼기 때문이다. 더 역겨웠던 건, 그들이 '시'를 쓴답시고 예술가, 작가를 자처하며 자기들끼리 '아무개시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자라, 이름 없는 잡지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시로 '등단'했다고 명함에 '시인'이라고 명토박아 다니는 꼴불견이었다.




그때 이미 문단에 '시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무려 5만 명이 넘었는데, 동네 개가 물고가도 모를 만큼 길거리에 널린 것이 소위 '시인'들이었다. 이들 자칭 '시인'들의 특징이 있는데, 남자들은 도리우찌를 쓰고, 스카프를 목에 감았으며, 여자는 짙은 화장에 선글래스를 쓰고 다녔다. 전형적인 룸펜프롤레타리아와 유한마담이었으며, 그런 인식이 나에게 너무 강하게 들어박혀, 지금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고정관념이 생기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노동시를 썼으며, 노동운동과 노동문학 쪽에서 피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글을 읽어왔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 언어유희나 해대는 룸펜프롤레타리아와 유한마담의 '시'라는 것이 몹시 역겨웠고, 거슬렸다.




물론, 그때도 이미 존경하는 시인들은 여럿 있었고, 그들의 시집은 지금도 내 의자에서 가장 가까운 책장에 꽂아놓고 틈틈이 읽는다.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인'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는 소설과 달라서, 문학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우습게 생각하기도 한다. 시는 짧은 글이고, 누구나 적당히 끄적이면 시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문학의 정수다. 소설처럼 설명하지 않고, 곧바로 독자의 심장을 찌른다. 시인이 쓰는 언어는 날카롭게 벼린 무기이며, 언어의 칼로 독자의 마음을 베는 것이다. 정지용, 이육사, 신동엽, 김수영, 김남주, 신경림 같은 시인이 위대한 것은, '언어'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깃발처럼 휘날리며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시인이 시 쓰기를 포기하는 순간, 그의 운명 역시 소멸한다. 박노해, 김지하가 시를 쓰지 않으면서, 살아 있어도 이미 죽어버린 존재가 된 것처럼.




이윤길은 '시를 쓰는 뱃사람'이 아니라, '뱃사람으로 살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즉, 머리(관념)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현실)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모두 노동시이자 생활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현실 같은 원양어선의 현실, 남극바다와 유빙, 지구의 종말이 온 듯한 폭풍우와 파도를 직접 겪으며, 땀방울과 눈물로 얼룩진 손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새긴 것이 '파도 시편'이다.




60편의 시에는 한결같이 '파도'처럼 철썩이는 삶이 담겨 있다. 파도는 '어머니 눈물들(파도 9)'이며, '나의 참혹한 무덤(파도 12)'이다. 이윤길에게 삶은 '파도 넘어가는 뱃머리가 무저갱(파도 35)'이며, '시퍼런 악귀(파도 42)'다. 그는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녔다. 바다는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수구'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바다의 별에서 그는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다, 바닥이 단단한 땅을 딛으면 오히려 몸이 기울어지는 배사람이다.




그에게 땅(육지)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임시 기착지이며, 중간 기항지이자, 불안정한 삶의 근거지다. 그 역시 거의 모든 사람처럼,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의 고향은 바다다. 그가 태어난 주문진은 땅이라기 보다는 바다이며, 바다에 기대어 살고, 바다에서 주는 것을 받아먹으며 산다.




그의 기억은 땅보다는 바다에 더 가깝고, 그의 발길은 항구와 방파제와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배들로 향한다. 주문진 어항, 골목, 낮은 담장, 낡은 건물들 모두 그의 기억과 함께 하는 고향이다. 그는 가난한 고향의 배고픔과 고생을 기억하며, 세월이 흘러 달라진 주문진의 향수를 추억한다. 




한번 바다로 나가면 몇 년씩 돌아오지 못하는 고향, 파도와 폭풍우와 빙하와 물고기와 처절한 싸움을 겪고 탈진해 돌아온 고향은 조금씩 달라지고, 그는 주문진이 달라지는 만큼 외로워진다.




시인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운명이다. '모비딕'에서 이스마엘이 에이해브 선장의 최후를 목격하고, 기록한 것처럼. 이윤길은 파도에 담긴 선원의 삶을 기록하고,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의 풍경을 기록한다. 그것은 누구도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대개의 사람에게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겠지만, 이윤길에게는 그것이 곧 삶이고, 눈물이고, 감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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