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깊이에의 강요




[좀머 씨 이야기]를 발표하고 5년 뒤인 1996년에 발표한 이 작품의 원제목은 [세 가지 이야기와 하나의 명상]인데, 한국에서는 [깊이에의 강요]로 출간했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 그리고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 각 작품의 제목이다.


'깊이에의 강요'는 예술가와 평론가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본질에서는 작가의 자존감에 관한 내용이다. 전시회를 하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에게 평론가가 칭찬의 말을 하면서 마지막에 '그렇지만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평론가의 말은 신문의 기고문으로도 실리고, 그 신문을 본 사람들은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볼 때마다 작품이 훌륭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렇지만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는 말을 작가 뒤에서 은밀하게 주고 받았다. 작가는 그 말을 듣고 자기에게 '깊이'가 없다는 걸 느끼고, 어떻게 하면 '깊이'가 생길까를 고민하고, 공부하지만, 정작 '깊이'가 무엇인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작가는 창작을 멈추고, 자신에게 '깊이'가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결국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젊고 아름다우며 재능 있는 작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일까. 평론가의 악의적인 평론일까. 표면으로는 작가가 평론가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왜 평론가의 말에 그렇게까지 집착해야 했을까. 


작가가 특별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보면 누구나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들은 한 마디 말이 평생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는데, 작가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고 본다. 이 작가는 평론가의 말을 듣고, 마지막 문장이 불쾌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렸을 수 있겠지만, 그걸 무심하게 넘겼어야 했다. 대부분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거나, 부식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작가가 평론가의 마지막 문장을 되새기는 건,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하나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창작하는 예술가에게 '깊이가 없다'는 말처럼 치명적인 말은 없지만, 단지 한 사람의 평론가가 한 말이 절대적일 수 없고, 때로 많은 사람들은 '깊이가 없는' 작품을 선호하기도 한다.


작가는 분명 창작의 영혼에 상처를 입었고, 다른 어떤 말로도 그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 평론가는 자기가 느낀대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고, '깊이'를 극복하지 못한 건 온전히 작가의 의무이므로,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작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고,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다.




'승부'는 길거리에서 동네 사람들이 하는 체스판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다. 동네 정자에 노인들, 아저씨들이 모여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장소처럼, 시골 마을 광장 한쪽에 있는 정자에서 막 체스 경기가 시작되는데, 한 노인은 마을 주민으로, 마을에서는 이길 사람이 없는 고수였고, 상대방은 젊은 사람으로,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그가 체스의 고수를 넘어 천재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두 사람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 - 거의 다 아저씨거나 노인들이고, 체스 고수 노인이 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 이 두 사람의 체스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며 마음으로는 낯선 청년을 응원한다. 수십 년, 마을 최강자로 군림한 노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청년은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한 수를 두며 고수 노인을 당황하게 만든다. 거침 없는 행보와 도발적인 행마, 좌충우돌하는 청년의 말들이 체스판을 날뛰고, 고수 노인은 청년의 공격을 막는 한편, 허점을 찾느라 골몰한다.


청년의 공격은 무모했으나, 그를 지켜보는 마을 주민들도, 고수 노인도 청년에게 무언가 감추고 있는 최후의 필살기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체스판 위에 청년의 말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킹, 퀸, 비솦만이 남은 상태에서, 청년은 킹을 쓰러드리고 자리를 떠난다. 실망한 마을 주민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고수 노인만 남아 체스판을 챙기며, 청년과 두었던 체스를 머리에서 복기한다.


노인은 청년의 당당한 태도에 주눅들고 겁먹었다. 청년은 체스 천재가 아니고, 초심자에 불과한 실력이었는데, 노인은 단지 상대의 태도만 보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노인은 지나치게 신중했고, 상대의 의중을 읽지 못했다. 체스는 이겼으되, 그는 청년에게 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는 체스를 두지 않겠노라고 결심한다.


이 작품은 '깊이에의 강요'와 비슷한 맥락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상대방 또는 주위의 시선에 경도되거나 매몰되어 자신을 지키지 못한 노인의 이야기다.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깊이에의 강요] 주인공이 재능 있는 작가라는 것과 같지만, 노인은 시골 마을의 고수일 뿐, 자신의 실력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기에, 외부에서 온 청년의 실력을 모르면서 고수일 거라고 믿는다.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한다는 강박이 노인을 겁에 질리게 만든 것이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중세를 배경으로, '픽션 히스토리'를 만든 작품이다. 작가의 특기이자 전공이기도 한 중세역사는 이미 그의 전작 [향수]에서 탁월하게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중세식 농담' 같은 작품이다. 장인 뮈사르는 금은 세공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사람으로, 나이 들어 시골에 장원을 꾸미고,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려는 성공한 인물이다.


그가 정원을 손질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조개로 인해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다른 지역에서도 돌조개가 발견되는지 확인하다, 나중에는 지구 표면 전체가 돌조개로 뒤덮여 있으며, 인류는 머지않아 돌조개로 뒤덮여 멸망할 거라고 확신한다. 


여기서 뮈사르가 발견한 돌조개는 명백히 메타포(은유)다. 세상이 돌조개로 뒤덮인 것은 메말라가는 세상의 풍속과 인심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점점 경직되고, 보수적으로 변하고, 각박해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돌조개가 생기면서 즉 돌조개병이 들면서 몸과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돈도 많고, 명예까지 얻은 뮈사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고, 가난한 금세공사에서 수많은 하인을 부리는 영주가 된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뜨게 된 걸까.


뮈사르는 '실존적 존재'에 관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개인과 자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이론적, 논리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못한 시기였고, 개인의 존재론적 고민, 존재의 철학적 고민에 관해 깊이 있는 공부나 토론을 할 수 있는 바탕이 거의 없었다.


뮈사르는 가난하게 자라서 많은 고생을 하고, 금공예사가 되어 귀족들, 왕족들을 위해 일하며 큰돈을 벌었고, 신분 상승을 위해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면서는 귀족들과 연회를 주최하면서 다양한 지식과 토론을 위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한 덕분에 그는 귀족들도 인정하는 부와 명예를 갖게 된 것이다.


뮈사르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졌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성공한 그의 삶에서도 만족하지 못한 것이 '실존적 고민'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존재하며, 자기가 성공한 이유가 단지 자신의 노력만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는 '인간들'의 계급적 분리, 빈부의 격차,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사는 농도들과 삶을 낭비하는 귀족, 왕족들을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에 접근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누구도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뮈사르에게 돈과 명예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의문과 질문에 답을 얻으려 세상 곳곳을 다녔고, 노력했으나 결국 아무 성과도 없었다. 그는 절망했고, 살아간다는 것이 더 이상 의미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고찰'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인데, 글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게 공감할 내용이다. 범위를 좁혀서, 글 쓰는 사람들은 적어도 어려서부터 지금 - 50대 - 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어떤 책을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그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잊어버린다. 


책을 읽을 때는 기억해야 하거나, 참조해야 할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 옆 여백에 메모도 한다. 그렇게 책을 읽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는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연히 책장을 보다 어떤 책 - 잊고 있다가 우연히 발견했지만, 예전에 퍽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 책 - 을 꺼내 읽다가 누군가 밑줄을 그은 구절을 발견한다. 그 옆의 메모도 본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자신이 오래 전에 했던 밑줄과 메모라는 걸 떠올린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은 스러지고, 우리가 읽고, 배운 것은 형해화한다. 그러므로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작가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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