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좀머 씨 이야기




이 작품은 전작 [비둘기]를 발표하고 다시 3년이 지나서 발표한 작품이다. 제목과 달리 주인공은 소년이다. 소년의 눈으로 본 '좀머'라는 중년 남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나'는 열 살 무렵부터 열여섯 살까지 자신의 성장 이야기와 좀머 씨의 삶을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 1945년 이후의 독일 작은 도시의 마을에서 보이는 평범한 풍경도 좋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소년의 이야기도 담담하면서 따뜻하다. 독일은 패전국이었으나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고 있었다. 


소년은 나무타기를 좋아하고, 호수 가장자리 숲에서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 나이 또래에는 동무들끼리 어울려다니며 말썽도 부리고, 또래 집단에서 사회성을 키워야 하지만, 소년의 생활은 오히려 단조롭고 외로워 보인다. 그것이 소년 자신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또래 집단에 낄 수 없는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소년의 처지와 좀머 씨의 행동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이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누군가의 방해를 받기 싫어한다는 것, 혼자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소년에게는 다섯 살 많은 형도 있고, 누나도 있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늘 혼자 다닌다.


소년의 가족이 딱 한 번, 빗속을 걸어가는 좀머 씨를 태워주려 했으나, 좀머 씨는 '그러니 그냥 날 좀 내버려 두시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 일을 두고 소년의 가족은 좀머 씨가 '밀폐공포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몸에 경련이 일어나 걸을 때만 경련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항상 걷는 거라고 말한다.




좀머 씨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전쟁이 끝난 직후니까 1945년 하반기나 1946년 무렵이겠다. 좀머 씨는 아내와 함께 작은 방을 빌려 살았고, 살림은 아내가 책임지고 했다. 좀머 씨는 날마다 도시와 호숫가를 걸어다녔는데,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좀머 씨는 아마 독일군으로 복무했고, 패전하면서 소련군이나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다 풀려났을 수 있다. 아니면, 수많은 전투를 겪으며 그가 극심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를 겪는 사람일 수 있다. 군인이 아니었다면, 그가 전쟁 기간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어떻든 그는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떠돌아 다닌다. 


사람들은 좀머 씨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지만, 모두 뜬소문일 뿐, 누구도 좀머 씨에 관해 아는 사람은 없다. 소년은 성장하고, 애틋한 사랑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 놓치고, 엄마의 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우고, 괴팍한 할머니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 사이, 소년은 몇 번 좀머 씨를 가까이 볼 기회가 있었다. 거리에서, 숲속에서, 호수에서. 하지만 단 한 번도 좀머 씨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좀머 씨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아예 말을 붙이지도 못하게 늘 바쁘게 걸어다녔다.


소년은 짝사랑하는 카롤리나에게 차이고 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져 죽으려 작정하는데, 마침 좀머 씨가 숲속으로 들어오는 걸 발견한다. 그렇게 소년은 좀머 씨의 출현으로 죽으려는 마음을 고쳐먹었고, 이후에도 거리에서, 호숫가에서 늘 바쁘게 걸어다니는 좀머 씨를 발견한다.


좀머 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일상이자 풍경이며, 습관이다. 어디에서나 좀머 씨는 발견되지만, 누구도 좀머 씨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없다. 좀머 씨는 존재하지만 또한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다. 좀머 씨에게 생활은 있었을까. 아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안 일을 하고, 장작을 쪼개거나 석탄을 나르고, 삐걱거리는 가구를 수리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따위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은 좀머 씨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좀머 씨는 살아 있지만 동시에 죽은 존재다.




소년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마을에는 텔레비전을 들여 놓은 집이 많아지고, 부자들 몇몇은 이미 자가용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소년은 형의 자전거를 물려 받아 선수처럼 잘 타게 되었고, 소년의 삶도, 소년 가족 모두의 삶도 평범하지만 평온하고 행복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좀머 씨를 풍경처럼 인식하던 어느 날,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 소년은 밤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체인이 벗겨져 수리를 하고, 손 닦을 낙엽을 주으러 숲으로 들어가다 호숫가에 서 있는 좀머 씨를 발견한다.


좀머 씨는 망설임 없이 호수 가운데로 걸어들어가고, 소년은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리고 좀머 씨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돌고, 경찰이 수배 전단지를 돌리고, 수소문을 하지만, 누구도 좀머 씨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소년만 제외하고.


소년은 좀머 씨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소년 자신도 왜 그래야 했는지 분명하게는 몰랐지만, 좀머 씨의 마지막 모습을 말하는 것은, 좀머 씨를 모욕하는 거라고 느꼈다. 좀머 씨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소년은 머리보다 마음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서 소년도 성장한다. 몸 뿐아니라 마음도. 이 작품은 소년의 성장 소설이면서, 독일 현대사의 비극을 몸으로 안고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좀머 씨의 삶에는 비극적인 독일현대사가 있으며, 좀머 씨는 비극적 운명 속에 스러져간 이름 없는 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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