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비둘기




[콘트라베이스](1981년)를 이어 장편소설 [향수](1985년)를 발표하고 3년 뒤 발표한 작품.


30년 동안 정확하게 집과 직장만 오가며 생활하던 조나단 노엘에게 어느 날,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문앞에 비둘기가 앉아 있던 것이다. 이 상황이 왜 이상하느냐고 묻는 건 당연하지만, 조나단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가 된다.


조나단은 50대 중반의 사내로, 파리 시내의 한 은행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20대에 군복무를 마치고 은행에 저금해 둔 돈을 모두 꺼내 파리로 오기까지, 그의 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어느 날 갑자기 조나단의 어머니가 사라지고, 뒤이어 아버지도 사라진다. 말 그대로, 부모가 갑자기 사라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나단과 여동생은 멀리 떨어진 친척의 집에서 자라고, 조나단은 친척의 중매로 결혼했지만, 아내는 결혼 4개월만에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한다.


조나단은 3년간 군 복무를 하고 돌아오고, 여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그곳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지내다 불쑥 파리로 올라온 것이다. 조나단의 어머니는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했다. 조나단의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었는지, 아니면 어머니만 유대인이었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앞부분에서 건조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조나단의 과거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자, 조나단의 행동을 이해하는 전제가 된다. 어릴 때 갑작스러운 부모의 실종으로 남매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고, 조나단은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익명으로의 삶을 선택한다.


그는 가진 돈으로 파리의 임대 건물 7층, 엘리베이터는 상상할 수 없는 좁은 계단과 건물 골목, 한 층에 하나뿐인 공용 화장실이 있는 작은 방에 세들어 산다. 길이 3.4미터, 너비 2.2미터의 작은 방은 2평 조금 넘는 넓이로, 그가 혼자 살아가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조나단은 30년 동안 살았다. 조금도 불평 없이, 혼자만의 삶에 만족하며.


조나단에게 이 작은 방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외롭게 살아가는 조나단에게 늘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면서, 이곳에 있을 때만큼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방은 마치 조나단의 연인, 아내처럼 의인화한다.




문앞에서 비둘기를 발견한 조나단의 행동은 극단적이지만, 그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떠올리면, 이 비둘기의 출현이 그의 내면에 잠재된 의식을 건드린 것으로 추측한다. 사실 파리에는 비둘기가 많다. 어디든 흔하게 보이는 날짐승이고, 비둘기는 더 이상 '야생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인간의 생활과 매우 가까이 있다. 그런 비둘기를 봤다고 마치 금방이라도 인생이 끝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조나단의 행동이 이상하지만, 비둘기는 하나의 상징이다.


나도 조나단 만큼은 아니지만, 비둘기를 몹시 싫어한다. 누군가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비둘기를 표현하지만, 흉칙한 눈, 아무 곳에서나 똥을 싸대는 지저분하고 더러운 행동을 보면서 비둘기가 아름답기는 커녕 혐오스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조나단은 비둘기가 혐오스럽고 무서워서 마주치지 못한 것일까. 조나단에게 비둘기는 어떤 의미일까. 조나단은 30년 동안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시골에서 파리로 오는 순간 과거는 모두 잊었으며,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파리에서 새로 태어났고,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생활이 좋았으며, 좁지만 아늑한 자기의 방에 있는 것이 늘 행복했다. 즉 스스로 고립되고, 유폐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30년을 살았지만, 그의 내면, 잠재의식에 자리잡은 '자유'는 어떤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었다.


조나단이 비둘기를 발견했을 때, 그의 잠재의식이 깨어났고, 그는 비둘기를 보며 벌벌 떨면서 트렁크에 짐을 싸서 집을 나온다. 즉, 비둘기로 인해 촉발된 '자유'라는 잠재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조나단은 은행 근처의 값싼 호텔에 들어가 다시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그가 안온하고, 평온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지난 30년의 시간은 스스로 삶을 가둔 시간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조나단에게 '자유'란 끔찍한 것이다. 비둘기를 봤을 때 들었던 끔찍한 느낌은, 그가 '독립적 인간',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비둘기는 어디로든 훌쩍 날아갈 수 있다. '자유'는 개인의 육체에 묶이지 않고, 어떤 생각이든, 어디로든 공간과 시간을 제약을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의지를 말한다.


조나단은 50년 넘게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자유'가 눈을 뜨는 순간 그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유'의 충동에 떠밀려 짐가방을 싸고, 호텔로 들어왔으나 그는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에게 가장 편한 곳은 30년 동안 살아온 작은 방이고, 그 방은 그에게 연인이자, 아내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나단이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문앞에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자유'의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호텔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내일 자살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작은 방' 앞에 도달하고, 비둘기가 보이지 않자,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좋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는 과연 자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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