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여성의 시선으로 해체하는 부조리 가정극




-마선숙의 작품들




글쓰기는 탈출구이자 자가 치료 요법이다. 정작 창작하는 젊은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지만, 알고 모르고가 중요하지는 않다. 모든 창작하는 작가나 예술가는 어느 순간 계시를 받아서 시작하지 않는다. 마치 오솔길을 걸어가다 샘터를 발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작가들도 처음부터 걸작을 써낸 것은 아니다. 스티븐 킹은 아홉 살부터 형이 만든 동네 잡지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출세작 '캐리'는 쓰레기통에 버린 걸 아내가 다시 주워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물론, 예술가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 몇 살에 시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예술가의 재능은 나이와 관계 없이 어느 순간 드러나기도 한다. 박완서도 마흔 살이 넘어서 장편소설로 데뷔했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건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꾸준함이다. 특히 소설은 엉덩이를 의자에 진득하게 붙이고 있어야 하는 절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마선숙 작가는 55세에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했고, 그 전에 이미 주부로 30년 가까이 4대가 사는 큰 집의 주부, 엄마, 며느리로 살았다. 시동생, 시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일 때 교과서를 닥치는대로 읽었고, 결혼 전 가졌던 창작의 불씨는 오랜동안 타오를 기회가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근대화'를 몸으로 겪은 세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서적 트라우마를 겪는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족쇄와 가부장의 폭력 아래, 여성은 더욱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였으나 마선숙 작가는 4대가 살아가는 집안에서 30년 동안 자기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마선숙 작가와 비슷한 연배의 누나와 나보다 몇 살 위의 누나가 있다. 내가 마선숙 작가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두 누나의 삶을 피상적으로라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누나들은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극빈의 삶을 살면서 학교도 가지 못했고, 어려서 노동자가 되어 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했으며, 결혼하고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 살림에 허덕여야 했고, 자식을 키워야 했다. 




그런 누나들의 삶은 그 시대를 살았던 거의 모든 여성의 삶이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고생과 고통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노동과 고통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마선숙의 소설집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등장하는 남성들이 가부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몸이 먼저 먼 곳으로 갔다]에서는 50대에 명예퇴직한 군인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갑작스럽게 가출하고, 찾아간 섬(더 이상 섬이 아닌)에서 역시 혼자 떠나온 남자를 만난다.




[즐거운 우리집]에서는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 물려 받은 경기도의 땅을 팔아 30억 원을 받지만, 자린고비에 이기적 태도를 보여준다. [스콜]에서도 서인의 남편 강민은 금수저로 자란 남성으로, 뭇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남자면서 가난한 발레리나 서인을 아내로 선택한다. 강민이 서인에게 가하는 정서적 폭력은 남성 작가의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감하기도 어려운데, 마선숙 작가는 정서적 폭력을 과장하지 않고 그려낸다.




[하얀 고무신]에서 90대 부부 순녀와 노식은 젊어서 4.19혁명 때 큰아들을 잃는데, 어머니의 가슴에는 평생 아들이 살아 있지만, 남편 노식은 자신의 욕망에 더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흑백사진의 집]에서 며느리인 주인공의 남편은 전형적인 룸펜이자 쁘띠부르주아이며 가부장 남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가부장에 폭력적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작가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집의 여성 주인공들은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늘 어떤 경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건 단편의 한계이면서, 작가의 의식의 한계로 보인다.




여성 주인공들은 자신을 온전한 인간, 통합된 하나의 인격체로 인지하지 못하고, '배우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즉, 여성 주인공의 의식은 현실과 내면이 분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실과 이상이 일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의식이 고통을 견디기 어려울 때, 자아를 분리하는 '다중인격'의 초기 모습처럼 보인다.




작품의 소재는 젊은 작가가 다루기 어려운, 삶의 오랜 경험과 핍진한 고민을 다루고 있어서, 작가보다는 한참 후배지만 이제 막 60의 문턱에 들어선 내게 [저녁의 시] 같은 작품은 절절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영화 [아무르]의 다른 버전을 보는 듯 했는데, 노인이 되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고, 피해가기 어려운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작가의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재와는 별개로, 소설의 기법이나 미학적 부분에서 아쉬움도 보이는데, [즐거운 우리집]에서 자식들을 따라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공항에 내렸을 때, 아무런 리액션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추운 한국을 떠나 몇 시간만 가면 갑자기 더운 나라로 이동하는데, 공항에서 후끈한 열기를 느끼지 못했는지, 이국적 풍경에 낯설음을 느끼지 않았는지 하는 세부적 묘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작품들은 무엇보다 쉬운 단어, 쉬운 문장을 쓰고 있어서 읽기 편하다. 다만, 문장이 쉽게 읽히는 것과, 묘사의 핍진성, 문장의 철학성, 다른 말로 문장의 깊이를 탐구하는 작업은 작가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작가'의 이름을 걸고 있지만, 여기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들이 서로 격려하고, 건강한 비판을 주고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선숙 작가는 꾸준히 발전하는 작가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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