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조기 평전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글쓰기 방식이 '조기 평전'과 같은 형식이다. 하나의 주제를 갖되, 그 주제가 드러내는 모든 요소를 날실과 씨실을 엮듯, 즉 그물을 엮듯 엮어가면서 점차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런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은 괴롭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매우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작가는 박물학적, 백과전서적 지식을 섭렵해야 하며, 그렇게 얻은 지식과 자료와 정보를 면밀하게 계산해서 글로 풀어야 한다.


이 책 '조기 평전'은 조기 한 마리로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제주도 서남쪽에서 시작해 서해 바다의 근해를 따라 이동하면서 압록강 근처 철산 용암포까지 올라갔다가 회귀하는 조기의 이동은 우리 민족의 삶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문명사, 경제사, 어업사, 인류사에 포함된다.


서해 바다에서 조기를 잡았다는 기록은 고려 때도 있었으니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서해에서 조기 잡이는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서해의 남쪽부터 무수히 많은 섬들과 그 섬에서 사는 민중의 삶은 물고기를 잡아 곡식으로 바꿔 먹는 삶이었고,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민중 역시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서해 남쪽의 섬 가거도부터 만재도, 흑산도, 안마도, 송이도, 위도, 개야도, 죽도, 연도, 어청도, 삽시도, 호도, 녹도, 외연도, 횡견도, 궁시도, 난도, 격렬비열도, 덕적도, 선갑도, 백아도, 울도,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초도, 대화도까지 한반도 서쪽의 육지에서 가까운 섬들은 모두 조기 잡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역사적으로 조기는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목 가운데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 조기는 흔한 생선이었다. 또한 조기의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커서 소금에 절인 조기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맛도 좋아 인기 있는 생선이었다.


조기잡이는 일제강점기부터 구체적인 자료를 남기기 시작했는데, 조기잡이 배들이 들어오는 어항의 객주들이 조기를 사들이는 양과 금액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조기철이 되면 남해안의 어선은 물론이고 멀리 일본에서까지 조기를 잡으로 올 정도였으니 어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해도 조기의 어획량은 엄청났다.


조기와 관련해 펼쳐지는 이야기에는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과 신하들의 상황, 한양까지 내려온 청나라 황제 앞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어야 했던 굴욕의 역사, 그리고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임경업 장군의 전설과 신격화가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임경업 장군이 '조기의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 과정은 곧 억압받는 민중의 한과 정서가 당시 임경업 장군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신격화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칠산파시, 연평도파시 등 조기철 어업이 성황을 이루고, 각 섬과 포구에 조기가 넘치게 되면 덩달아 사람과 돈도 넘쳐흘렀다. 지나가던 개도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흥청거렸을 정도라고 하니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에서 설명하는 '파시'의 일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다.


1930년대 중기의 일간지 기사에는 연평도의 파시풍을 현장감 있게 다룬 것들이 보인다. 우리 나라 3대 어장 중의 백미(白眉)로 유명한 연평도 조기어장에는 조기 안강망 어선 약 1,000척과 운반선 및 상선 약 1,000척이 몰려와 장관을 이루었고, 육상에는 성어기(盛漁期)의 어부의 상륙을 노려 급히 문을 연 요리점 30호, 카페 1호, 음식점 53호를 비롯하여 이발관 9호, 목욕탕 3호, 대서소 2호, 여인숙 5호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기와 함께 연평도의 명물인 낭자군(娘子群)에서는 예기(藝妓) 5명, 작부 95명, 여급 3명, 합계 103명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조기를 쫓는 어부와 어부를 쫓는 낭자군이 뒤범벅이 되어 광복 후에도 조기어업은 주요 어업의 하나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지 않고 있었고, 파시도 예나 다름없이 열리고 있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파시(波市))]


지금 우리가 먹는 조기는 예전에 비하면 작은 크기다. 지금도 팔리고 있는 조기는 1cm 단위로 가격이 엄청나게 큰 차이를 보인다. 즉 큰 조기는 훨씬 비싸게 팔린다. 조기가 작은 이유는 오랜 남획 때문이며, 수탈 어업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조기 한 마리에서 우리는 역사를 관통하는 민중의 삶과 변화, 발전하는 어구, 조업 방식, 조기를 가공하는 방식, 조기를 비롯한 물고기의 생태와 상품(식품)으로의 유통과 식재료, 음식으로 끼친 영향 등을 배울 수 있다.


'조기 평전'은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박물학적 지식이 가득한 책이다. 역사, 신화, 민담, 영웅서사까지 다양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을 많은 분이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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