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양망일기




지은이 하동현 선장이자 작가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하동현 작가와 우연히 겹치는 인연이 있다. 우리는 같은 해에 태어났고, 하 선장이 배를 탈 무렵, 나는 군대에서 전역하고 '현대해양'에 입사했다. 이 책이 '현대해양'에서 연재한 글이라는 것 역시 우연이다.


'현대해양'에서는 짧은 기간 일했지만, 그때 나는 우리나라의 바다 관련 정책과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우리는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땅을 가지고 있지만, 해양 관련 정책과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해양 관련 산업은 대중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다양하고 중요하다. 현재 한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1위이며 기술과 수주 실적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바다 산업에는 원양어업과 연근해어업이 있고, 양식업이 있다. 또한 바다를 활용하는 해양레저, 스포츠 산업도 중요하다. 여기에 바다를 의지해 살아가는 많은 어민들의 삶이 있고, 바다에서 나오는 먹거리는 우리 양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 없다.


이렇게 중요한 바다 관련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과 예산, 제도는 많이 부족하고, 어민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낫게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생각보다 느리다. 이런 큰 흐름이 문화, 예술에서도 나타난다. 바다, 해양의 중요성이 높음에도 대중의 관심이 적은 이유는 정부의 지원과 홍보가 부족하고, 언론도 중요하지 않게 여기며, 바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바다, 해양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드물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런 가운데 드물지만 훌륭한 성과를 보이는 현장 작가들이 나타나는데, 소설 '남극해'를 쓴 이윤길 선장과 이 책 '양망일기'를 쓴 하동현 선장이 바로 그들이다.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며 조업을 하고, 세계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 이들 뱃사람들이 남긴 기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영역의 예술 세계다. 이 책 '양망일기'는 하동현 선장의 산문집으로, 그가 바다에서 생활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을 유려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다 생활의 기록만으로도 신기한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즐거움이 크다. 바다와 해양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상식도 많이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 선장이 겪은 많은 에피소드가 마치 소설처럼 신기하고 놀랍다.


이 책은 하 선장의 개인적 경험과 기록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한국 해양산업의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은 한때 한국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었다. 1960년, 1970년대는 한국의 경제가 경공업 위주로 편재되어 있었고, 노동력을 집중하는 산업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때 이미 한국은 수출 위주의 산업 구조를 확정하고, 노동력 집중 산업인 섬유, 전자, 건설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었다. 원양어업도 이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이때 독일에 간호사, 광부들이 파견되었고, 중동 지역에 건설노동자들이 파견되어 외화를 벌었다.


80년대 이후 중화학 공업에서 백색 가전, 반도체, 첨단 IT 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 집약적 산업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고, 이들이 한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첨단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역이다. 다른 분야 산업이 위축되고 하향길을 걸어도 '바다'와 관련한 해양 산업은 첨단 IT 산업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사실 역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양망일기'는 독자를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육지에 사는 사람이 막연하게 동경하는 바다, 수평선이 보이고,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파도가 철썩이고, 바다 낚시를 하고, 해녀들이 바다 밑에서 건져올린 해산물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낭만이 아닌, 진짜 바다, 거칠고 두려운 파도가 일렁이고, 빙하가 살아 움직이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무더위와 갈증을 견뎌야 하고, 바다 위,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 위에서 몇 달을 견디며 생활해야 하는 진짜 바다를 이야기한다.


항구와 공항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 벌어진 칼부림, 해양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와 그 유래,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며 겪은 낭만과 음식, 부족한 물을 아껴쓰는 지혜, 바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일반인들의 편견과 무지를 대하는 태도 등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해양산문'이라는 분야도 한국문학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하다. 문학의 다양성과 폭넓은 영역을 포괄하기 위해서라도 해양, 바다와 관련한 글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발표되기를 바라는데, 단지 '해양문학'이라는 고정되고,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바다와 해양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제 농업과 어업의 역사를 잃어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IT사회로 발전, 이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우리의 뿌리가 되는 농업과 어업을 소홀하게 여길 수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첨단으로 발전해도 우리의 근원이자 뿌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는 우리의 삼면에 있고,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며, 산업면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바다와 관련한 더 많은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작가가 꾸준히 배출되기를 바라며, 해양문학으로는 1세대에 해당하는 하동현 작가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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