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뜻밖의 생


여든의 현역 작가는 드물다. 물리적으로도 여든의 나이는 창작을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여건임에 틀림없다. 김주영 작가는 비교적 늦게 문단에 데뷔했고, 데뷔한 이후 곧바로 줄기차게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단편이었고, 내용은 풍자와 우화였다. 그리고 몇 편의 통속 장편소설을 쓰고 나서, 작가는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길 작품 '객주'를 집필하고, 그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물론 작가가 아끼는 작품이 꼭 '객주'가 아닐 수는 있다. 그가 쓴 역사소설은 '객주' 말고도 '화척', '활빈도', '야정'과 같은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들은 모두 기존의 역사소설을 뛰어넘는 작품들이었으니 말이다.


70년대 말부터 쓰기 시작한 역사소설은 '객주'를 이어 한동안 계속되었고, '야정'을 끝으로 더 이상의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호흡이 길고, 묵직한 주제와 민중의 언어로 기록된 문학이 흔치 않은 한국문학계에서 김주영 작가의 역사소설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놀라운 결과물이다.

대하 역사소설 이후 김주영 작가의 작품들은 다시 문학의 초기 세계로 돌아가는 듯 하다. '아라리 난장'을 비롯해 그가 쓴 2000년대 이후 일련의 소설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다. 또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는데, '엄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엄마'를 읽으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실제의 삶과 똑같지는 않지만, '문학적'으로 채색한 그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 '뜻밖의 생' 역시, 작가의 삶에서 얻은 경험과 흔적이 많이 묻어난다.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한 어릴 적 기억, 박복한 떠돌이의 삶, 외롭고 슬픈 인생, 늘 밑바닥을 전전하는 풍천노숙의 생활, '행복'이 무엇인지 실체를 느낄 수 없었던 나날들, 학대와 비참함으로 가득한 공간.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도 결국 삶에서 일정하게 해탈하는 경지에 이른다. 아무 것도 가져 본 적이 없고, 배운 적 없는 한 사람이 오로지 시간과 경험만을 통해 뼈저린 각성을 한다는 것은 흔치 않지만,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소설만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젊은 소설'은 아니다. 주인공들은 과거를 바라보고, 과거에 묶여 있으며,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드라마틱 하지도 않고, 회상으로 일관하는 빛바랜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주인공 박호구는 어릴 때와 이십 대의 과거 외에는 그 이후의 삶은 드러나지 않는다. 박호구와 만나게 되는 여성 최윤서의 삶 역시 드러나는 것은 거의 없다. 그가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의 신산한 삶에 관한 자세한 묘사는 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당나귀는 박호구와 함께 어울렸던 개 칠칠이를 말한다. 칠칠이가 보여 준 박호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잊지 못하고,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박호구는 칠칠이를 찾아 전국을 떠돈다. 그가 찾는 것은 실체로서의 '칠칠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일 것이다. 불교에서도 '소를 찾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구도의 길임을 뜻하지 않던가. 

BEST 뉴스

전체댓글 0

  • 79353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뜻밖의 생 - 김주영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