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제목 : 메즈 예게른

작가 : 파울로 코시

출판 : 미메시스


오스만 투르크(터키)가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은 의외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15년에 일어난 이 학살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세계사적 범죄였음에도 그동안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터키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터키가 '한국전쟁' 때 한국에 참전해서 함께 싸웠기 때문에,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터키는 아르메니아인을 무려 150만 명이나 학살한 이후, 어떠한 사과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한국군은 베트남 인민을 학살했다. 학살한 증거는 너무 많아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지만, 한국정부는 여전히 '공식 사과'와 그에 따르는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

약소 민족이나 인종을 차별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국제사회의 관례'라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미개하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휴머니즘이나 도덕성, 양심 등에 관해 더 이상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과 그 일당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했던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터키 정부도, 시간이 얼마가 지났던-올해가 터키가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자신들이 저지른 학살 범죄를 공식 인정하고, 아르메니아인에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범죄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나 터키라는 나라가 소멸되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른 민족, 국가의 노예로 전락한 상태라면 모를까, 주권을 가진 나라라면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터키를 전혀 '형제'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독일보다 더 질이 나쁜 학살국가로 인식하고, 터키에 대한 태도를 부정적으로 견지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국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사죄가 없는 이상, 한국 역시 학살국가로 인정하는 것처럼.


이 학살 만행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된 사건과 관련 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항제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아가 세르비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가혹한 요구조건으로 최후 통첩을 보낸다. 그 요구조건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모든 반(反)오스트리아 단체를 해산할 것.  

    암살에 관련된 모든 자를 처벌할 것.  

    반(反)오스트리아 단체에 관련된 모든 관리를 파면할 것.  

    여기에 관련된 당사자를 조사하는 데 오스트리아 관리가 세르비아로 들어가 도울 것을 허용할 것.  


오스트리아로서는 보스니아가 이 조건을 다 들어준다해도 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보스니아의 주장을 오스트리아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고, 황태자 암살사건을 계기로 보스니아를 침공해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문제는, 이 사건이 단순히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의 국지전에 머물지 않고, 독일이 러시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유럽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은 것은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만 트루크(나중에 터키공화국)였다. 이때 아르메니아인은 터키 남동부와 러시아 영토에 걸쳐 살아가고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령과 러시아 제국령에 걸쳐 살아가던 아르메니아 사람들 가운데 오스만 제국령에 있었던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이 학살당하게 된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스만 제국이 독일,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으면서 러시아는 적대국이 되었고, 러시아 령과 오스만 령에 걸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위해 러시아를 도울 수 있다는 가정 때문이었다.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오스만의 지배자들이었고, 가뜩이나 자국의 영토에서 살아가던 아르메니아인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그 핑계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한국에서도 전쟁 기간에 양민학살이 많았지만, 특히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극우 권력이 진보 성향의 인민을 적게는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지금도 진상규명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진보 성향의 시민을 체포해 학살했다. 그들이 잠재적 적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은 민족대 민족이었지만, 한국의 보도연맹 학살은 같은 민족이 단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지른 만행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광기가 민족이나 이념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터키가 저지른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두고, 히틀러도 지적했다. 세계의 누가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그것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동기와 합리화를 제공했으며,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유럽과 미국 등의 백인 중심국가에서도 소수민족이자 약자인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에 관해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학살 장면을 재현하지 않는다. 물론 잔혹한 장면이 있지만, 참혹함을 소비하거나 관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살의 배경을 들여다본다. 터키의 '청년 쿠르드당'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세 명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이들이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지휘했고, 동맹국인 독일마져도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항의할 정도였으나, 터키의 권력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르메니아인 여성, 아이까지 모두 사막으로 내몰아 잔악하게 학살하고 강간 살해한다.

인류의 집단 학살은 인류 초기부터 있었던 현상이다. 처음에는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살육을 저질렀지만, 이후 전투에서 이긴 부족은 진 부족을 노예로 삼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종교적 이유, 이념의 이유, 인종의 이유만으로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인류는 동족을 대량 학살하는 잔혹한 동물이다. 인류가 이성과 지능을 가진 고등동물이라고 말하지만, 맹목으로 기울어진 광기와 편집증은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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