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제목 : 와이 아트?

작가 : 엘리너 데이비스

출판 : 밝은세상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보여주는 그래픽노블이다. 제목부터 독자에게 질문한다. '왜 예술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도 아니고, '왜 예술인가?'라고 묻는데, 독자는 당연히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 미셀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두고 작은 제목으로 작은 책 한 권 분량의 비평을 썼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파이프 그림 아래 필기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있는데, 그림보다 이 글씨가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로 푸코도 그림으로의 '파이프'보다는 텍스트로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텍스트는 이미지 기호로 작동하는가, 아니면 문자 기호로 작동하는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파이프 그림과 글씨는 완전히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기호이며, 둘 사이의 관계는 실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푸코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분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러니와 알레고리에 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지로써 파이프는 관객에게 '파이프'라는 시각적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관습과 경험에 따라 관객은 그 이미지를 '파이프'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파이프'가 더 이상 '파이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사물은 낯설어지고, 기존의 상식과 개념은 파괴된다.


이 책(와이 아트?)도 시작이 난해하다. '왜 예술인가'에 답하기 전에 예술 작품의 종류를 알아보자고 하면서, '색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림은 흑백이다. 분명 주황색, 파란색, 주황&파란색을 말하지만 실제 그림은 흑백이다. 이것은 역설(irony)이다. 

뒤이어 크기에 따른 작품, 가면, 가면, 거울, 먹는 것, 감추기, 끔찍함 등에 관한 설명이 나오고, 아홉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돌로레스, 리처드, 마이크, 주롱, 소피아, 마케일라, 트와이스투, 제니퍼, 호세는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퍼포먼스를 하는 돌로레스는 사람들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관객은 그 말에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는 관객들이 생기고, 작품의 진실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돌로레스는 관객을 피해 여행을 떠나고, 상어에게 한쪽 팔을 잃지만, 다시 상어를 쫓아가 잡아먹자 팔이 자라고, 상어이빨이 생긴다. 이것은 분명한 은유(metaphor)다. 돌로레스의 팔을 뜯어 먹는 상어는 '예술'을 상징하며, 잃어버린 팔은 '예술성' 또는 작가의 창작욕, 상상력이다. 돌로레스가 상어를 잡아먹자 팔이 자라고, 상어이빨이 생겼다는 것은, 고갈된 작가의 창작성과 상상력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아홉 명의 작가가 모였을 때, 이들은 전시 준비를 한다. 하지만 비가 쏟아지고, 전시장의 작품은 망가진다. 지붕과 벽이 바람에 날아가고,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려와 집을 들어올린다. 모두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마이크가 작은 섀도박스를 들여다보고, 이들은 극적으로 구출된다.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 도착한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돌로레스는 작은 인형을 만들기 시작하고, 다른 작가들도 작은 집 안에 들어가는 인형과 물건을 만들어 넣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전시장의 작품을 작게 만들어 배치한다. 그 작은 인형-작가 자신의 아바타-들은 스스로 움직이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 바람직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이때, 돌로레스가 갑자기 그 작은 집의 지붕을 열고, 바람을 일으키고, 물을 뿌리고, 작은 집을 들어서 흔든다. 그리고는 작은 인형들을 향해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줘'라고 말한다.


소설 형식에 '액자 소설'이 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이 액자소설로 알려졌는데, 액자 소설은 보통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이 작품처럼 이야기가 순환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순환적 액자소설'로, 이야기가 무한반복할 수 있는 구조다. 순환구조를 갖는 이야기는 주로 '시간'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시간 이동(time slip)을 통해 같은 환경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작가가 앞에서 '왜 예술인가?'를 말하면서 작품의 분야와 종류를 설명했는데, 작품 속 아홉 명의 작가가 경험하는 것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운명이었고, 자기 작품을 망친 거대한 힘이 사실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창조와 파괴가 서로 다르지 않은 일련의 창작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었다. 아무 연락 없이 책이 도착해서 조금 의아했는데, 내가 그래픽노블 비평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출판사에서 알았나보다.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로 리뷰를 쓴다. 이런 기회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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