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18(목)
 

제목 : 영순이 내 사랑

작가 : 권용득

출판 : 새만화책


영순이는 남자다. 게다가 무섭게 생겼다. 게다가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하다. 그의 친구는 미국이다. 미국이는 혼혈이고 기타를 잘 친다. 좋아하던 여자 정자는 미국이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월세는 밀리고, 돈을 벌 방법은 모르겠고, 세상은 답답하다. 죽는 것 조차 한심하다. 맨주먹에 열정 뿐인 젊은이들은 세상과 맞서 싸우려 하지만, 그 대상은 모호하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열심히 살려고, 뇌물까지 줘가며 애를 쓰지만 돌아오는 것 사기와 비웃음뿐.

청춘이 아름답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지만 진짜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더 비참하니까.

권용득의 첫 장편 만화인 이 작품은 제작지원금을 받아 창작되었고, 이 만화를 계기로 권용득은 진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작가 스스로 말한다). 

이 작품과 비슷한 수준의 외국 그래픽 노블이 한국에 소개되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보다는 훨씬 많은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외국의 그래픽 노블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으며, 오히려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작품이지만 단지 한국의 만화가라는 이유 때문에 홀대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권용득 뿐 아니라 박건웅, 김한조, 앙꼬, 심흥아 등을 비롯해 많은 작가주의 만화가들이 놓인 현실이기도 하다. 

만화를 그려 배를 곯지 않는 것이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화를 그려서 갑부가 되는 일본처럼까지는 아니어도, 직장인들보다는 수입이 많아야 할 것이고, 그런 사회가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이며,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권용득은 이 작품에서 '톤'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만화가라면 누구나 쉽게 톤의 유혹을 받을 것이고, 그것이 작업도 빠르고, 보기에도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용득은 펜만을 사용했다. 무수히 많은 선이 들어가는 작업에도 펜으로만 작업했기에 드러나는 손맛이 보인다.

공장 만화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작가주의 만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국은 만화를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지만, 이렇게 좋은 작가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어 감사하다.


이 작품은 2부로 구성되었으며, 1부 3편, 2부 5편으로 모두 8편의 단편 연작으로 구성하고 있다. 1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영순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순이는 인상이 험악하다. 머리는 빡빡 밀었고, 체격도 크다. 사람들은 영순이가 말하면 경계하고, 겁을 먹는다. 그건 영순이가 바라는 바가 전혀 아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영순이를 무서운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영순이의 인상이 험악하다며 영순이를 해고하는 편의점 사장의 인상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고,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도 욕을 먹는다. 월세가 밀려서 쫓겨나기 직전이고, 사귀던 정자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영순이에게는 총체적 난국이 닥쳤다. 길에서 할머니 젖가슴을 훔쳐봤다는 누명을 쓰고 할머니에게 얻어 맞기까지 하면서, 영순이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1부의 시작만으로도 이 만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작가의 펜선의 핍진함과 굉장한 밀도는 인물의 대사-말풍선-뿐 아니라 그림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는 힘이 있다. 이별하자는 정자는 머리를 모히칸 머리로 깎았고, 입고 있는 티셔츠에 PISS라고 새겨 있다. 이 단어는 '오줌'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이 단어가 들어가는 용법으로 pissed off,  piss someone off, piss off 등으로 쓰는데, '빡치다', '빡치게 하다', '꺼져' 같은 의미를 갖는다. 작가가 정자의 티셔츠를 클로즈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풍자일 수 있고, 정자가 좋아한 사람이 정작 영순이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면, 이 단어는 영순이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인다.

2화 '외계인 등장'에서 영순이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와 친구 미국이와 함께 살고 있다. 영순이는 할아버지를 '우리 용득이'라고 부른다. 어린아이같은 할아버지는 밥 달라고 칭얼거리고, 기저귀에 똥을 싼다. 영락 없는 아기다. 영순이는 미국이를 찾다가 옷장에서 벌거벗은 미국이와 정자를 발견한다. 영순이는 충격을 받아 집을 뛰쳐나가고, 어느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자살하려 하는데, 그때 자신을 영희라고 불러달라는 외계인을 만난다. 그 외계인은 평범한 여자로 보이고, 영순이가 가수라는 걸 알아주고, 응원한다. 영순이는 조금 전 죽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고 노래한다.

3화 '영순이와 미국이'는 집을 뛰쳐나간 영순이를 걱정하며 미국이와 정자가 헤어지고, 미국이가 과거를 회상한다. 영순이 애인이었던 정자를 처음 만났을 때, 셋이 항상 어울려 다니며 놀지만, 어느 날, 정자는 머리를 모히칸처럼 깎고 나타나 미국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섹스를 하다 영순이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옷장 속으로 숨는다.

정자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이는 골목 담벼락에 서 있는 영순이를 만나고, 영순이도 자신이 질투심 때문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두 사람은 다시 친구로 돌아오고, 마침 첫눈이 나린다.

2부에서는 본격 사건이 펼쳐진다. 1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월세가 밀린 영순이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써놓고 나간다. 영순이와 미국이는 고부장이 소개한 '벌떼촌 성인 나이트클럽'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지만, 락과 펑크도 구분 못하는 클럽 부장에게 쫓겨난다. 실망한 두 사람은 터덜거리며 거리로 나서고, 미국이는 기타를 영순이에게 맡기고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하고, 영순이는 월세 걱정을 하며 집에 돌아오는데, 정작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월세는 이미 영순이 애인이 다 냈다고 하면서. 영순이는 애인이라면 정자가? 하면서 방으로 들어오는데, 거기에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말한 영희가 할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

여기부터 미국이가 고부장을 찾아가서 벌어지는 사건과 영희가 영순이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영순이가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미국이의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장면이 몽타주 기법으로 펼쳐진다. 미국이는 자신들을 속이고 비웃는 고부장을 패죽이고 싶었지만 참는다. 그러다 고부장에게 변기뚜껑으로 맞아 쓰러지고, 영순이는 노래를 절절하게 부르고, 영희는 사라진다. 영순이가 부른 노래 Creep은 노래 가사가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서, 이 가사를 음미하는 것은, 영순이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네가 내게 다가왔을 때

너의 눈을 볼 수 없었어

너는 마치 천사같아

너의 살결은 날 눈물짓게 해

넌 깃털처럼 떠다니지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내가 특별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는 특별해

하지만 난 병신이지

난 이상한 놈이야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난 이곳이 어울리지 않아

상처가 된다해도 상관없어

자제를 할 수 있엇으면 좋겠어

난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난 완벽한 영혼을 갖고 싶어

네가 알아챘으면 좋겠어

내가 주변에 없더라도 

넌 정말 특별해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병신이야

난 이상한 놈이야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난 이곳이 어울리지 않아

그녀가 도망친다

그녀가 또 도망치고 있어

그녀는 도망가네

널 웃음짓게 하는 모든 것

넌 정말 특별해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이상한 놈이야

난 병신이야


노래 가사는 영순이의 처지와 심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영순이는 영희가 외계인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아름답고, 자신을 이해하는 영희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만, 감히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니다. 자신은 외모도 험상궂고, 가진 것도 없으며,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한심한 백수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영희와 자신의 거리가 너무 멀어 마음이 아프다. 절절하게 부르는 영순이의 노래는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움직인다.

2화 'Raging 영순'에서 영순은 영자가 달려와 미국이가 응급실에 있다고 알려주고, 둘은 미국이가 입원한 응급실로 달려간다. 미국이가 혼수상태인 걸 본 영순이는 고부장을 찾아가고, 그 자리에 조사장과 함께 있는 고부장에게, 미국이에게 사과하라고 말하지만, 고부장은 비웃기만 한다. 배경 설명은 없지만, 이 자리에 고부장, 조사장과 함께 강회장 심부름꾼도 등장하는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이들의 존재감과 역할이 커진다. 영순이는 화가 치솟고, 고부장을 창밖으로 밀어버린다. 사건이 본격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화 '외계인의 행방(1)' 미국이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영순이가 갔던 나이트클럽에서는 여러 명이 죽은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는 CCTV를 보면서 영순이가 여러 명과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영순이는 미국이와 영자를 만나 고부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순이 마음은 고부장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때 불쑥 나타난 영희가 영순이의 살기를 잠재운다. 실제 고부장을 죽인건 강회장 심부름꾼이라는 해결사였다.

4화 '외계인의 행방(2)' 경찰은 영순이 집을 찾아와 치매 할아버지와 실랑이를 하다 결국 영순이를 체포한다. 경찰은 강회장을 찾아가 고부장이 횡령한 장부를 보여준다. 강회장은 해결사에게 전화해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명령한다. 경찰에 잡혀가던 영순을 구한 건 미국이었다. 미국이는 꾀병을 부려 영순이를 구하고, 영순이는 현장 목격자인 영희를 찾으러 나선다.

5화 '다시, 사노라면' 영희를 찾아다니던 영순은 경찰을 만나고, 경찰의 설득으로 함께 경찰서로 가려는 순간, 해결사가 나타나 경찰을 때려눕히고 영순과 싸운다. 칼을 든 해결사와 죽음의 사투를 벌인 영순은 해결사를 쓰러뜨리고 자신도 정신을 잃는다. 영순은 영희를 만나고, 잘 참고 살아온 영순을 격려하고 떠난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영순은 진범을 잡고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게 된다. 밀린 월세를 내준 것도 영자였고, 두 사람은 '사노라면'을 부르며 새로운 날, 그러나 달리 바뀔 것이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  


영순이와 미국이는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청년들이다. 그들이 술집에서 노래를 하는 것도 직업이라고 보긴 어렵다. 영순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인상이 험상궂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당한다. 20대 청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겠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매우 불평등하고, 자본의 착취가 격렬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청년들이 집단으로 사회에 저항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청년의 권리를 쟁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지만, 그건 나이 먹은 사람의 바람일 뿐, 변화는 청년 내부에서 일어나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영순이와 미국이, 영자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닥친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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