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19금 어린왕자


어려서 담배 좀 피고, 본드 좀 빨았다고 씨발, 아버지가 코딱지만한 B-612행성으로 보냈잖아. 거기서 바오밥 나무 싹을 캐는 노동을 하고, 화산 청소부 노릇도 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해가 열두 번도 더 지는 걸 바라보느라 정신병에 걸릴 뻔 했는데, 어디서 날아온 장미가 재수없게 시비를 붙더라구. 그 새퀴는 가시가 있어서 목을 조르지도 못하고, 말빨도 존나 쎄서 그냥 내가 철새 다리에 매달려 다른 별로 도망갔어. 그 장미 새퀴, 내가 물 안 주면 아마 말라죽을걸.

어느 별에 갔더니 늙다리 꼰대가 앉아서 '킹 오브 우주'라고 떠들고 있더라구. 아, 씨발, 자기가 왕이라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전부 다 왕이래. 혼자서 왕이라고 떠들어봐야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가만 보니 치매에 걸려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씨발, 가족이라도 지겨워서 떠났겠다. 혼자 왕 실컷 해처먹으라고 퍽큐를 날리고 다른 별로 갔지.

겉은 멀쩡하고 번지르르한 신사 새퀴가 얼마나 뻐꾸기를 날리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고, 자기가 졸라 멋장이 신사인줄 아나봐. 대가리에 든 건 젤리뿐인지 아는 것도 없는 새끼가 귀족 행세나 하고, 온갖 지식인 흉내를 내면서 품격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어떻고 하면서 떠들어대는 꼴이 면상을 한방 갈겨주고 싶더라니까.

졸라 병신같은 허영꾼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로 갔더니, 거긴 또 더 진상이 있네. 이 새끼는 하루 종일 술만 처먹는데-그 술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기하긴하다-잠깐 술이 깨면 술을 처먹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처먹는데. 이런 병신새끼가 있나. 술 처마시는 게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는 논리의 무한루프를 개발한 천재새끼네. 나잇살이나 먹었으면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알콜중독자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에 갔더니 임대업을 하는 자본가 새끼가 돈을 세고 있더군. 말을 붙여도 돈 세느라 곁눈질도 안 하는 돈귀신 자본가 새끼는, 자기 별도 아닌 수많은 별을 임대하거나 이윤을 붙여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데, 이건 봉이 김선달보다 더 나쁜 놈이야.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 새끼, 돈에 파묻혀 뒤져버려라.

자본가 새끼 낯짝에 침을 뱉고 다른 별에 갔더니, 잠도 못자고 죽도록 노동-가로등에 불을 붙이는-을 하는 늙은이가 있더군. 아, 이 병신같은 늙은 노동자는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거야. 별의 크기도 내가 살던 행성만큼이나 작았는데, 자전 속도가 빨라져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초단위로 바뀌니까 불을 켜고 끄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데,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것처럼 미친듯이 움직이더군. 불쌍한 늙은이.

노동자 늙은이는 아마도 지쳐 쓰러져 죽을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저 늙은이가 죽으면 또 다른 늙은 노동자가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나는 다른 별로 갔어. 지리학자가 앉아서 행성들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들에게 정보를 얻어 수많은 별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꼰대도 다른 사람들 말이나 듣고 소설을 쓰고 있는 거지, 과학자라면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지구에 떨어졌는데, 하필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졌네. 재수 옴 붙은 거지. 게다가 뱀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내가 '야, 너 존가 가늘고 웃기게 생겼다' 그러니까, 뱀이 '뭐야, 이 꼬맹이 새끼, 뒤지는 수가 있어'라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거 있지. 나는 막대기도 없고 해서 그냥 참았지. 그러다 여우를 만났는데, 요 앙큼하게 생긴 새퀴는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하더군. 나를 집사로 부려먹을 얄팍한 속셈이라는 걸 눈치 채니까, 여우 새퀴, 얍삽하게 실실 쪼개면서 사라지더라구.

사막에서 어떤 남자 어른을 만났는데, 자기는 조종사고,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하더군. 나는 여러 별을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했어. 뭐, 어른들이라는 게 다 그런 거잖아. 애새끼가 말하는 걸 마치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는 거지. 그 조종사는 비행기를 고쳐서 다시 하늘을 날아 사라졌고, 나는 사막에서 40일 동안 돌아다니며 음식도 먹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장미, 화산, 바오밥나무, 여우, 술주정뱅이, 자본가, 지리학자, 늙은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귀싸대기를 후려쳐서 다시 코끼리를 뱉어내게 할 것인지, 작은 상자에 갇힌 어린 양을 무사히 구출할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사막 끝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주님'이라고 하더군. 내가 왜 저런 무식한 머저리들의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열 두놈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꼬드기는데 넘어가고 말았잖아. 그때라도 그 사기꾼 새끼들하고 인연을 끊었어야 하는건데. 결국 사기꾼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매달려 로마군 병사의 창에 찔려서 죽었는데, 씨발, 아버지가 다시 별로 돌아오라고 하잖아. 하는 수 없이 지구를 떠나 코딱지만한 별로 돌아와서 지금도 하루에 47번씩이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말린 양귀비 잎이나 태우고 있는 거야. 인생 뭐 있어? 장미꽃 목이나 졸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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