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모비 딕' 원작소설과 그래픽노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한국에서 완역해 출판한 것은 2011년이다. 그 전까지 출판한 책은 전부 일본어 중역이거나 축약본이었다는 말이다. '완역본'이 출판되는 건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출판의 양과 질적 수준에 있어 한국출판계는 2000년 이후 그 전과 차원이 다른 도약을 했다고 본다.


출판하는 책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물론, 다양성, 깊이,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출판계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더 나은 출판을 위해 노력한 출판인들의 피땀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비딕' 완역본은 7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그것도 19세기 영어로 쓴 소설로, 미국 낭만주의 소설의 걸작 가운데 하나였지만, 100년 동안 인정받지 못한 '저주받은 걸작'이었던 소설을 완역한 것이다.


19세기 소설의 특징은 소설의 길이와 문장이 길고, 설명하려 들며, 백과전서식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찰스 디킨스부터 도스또예프스키 심지어 카프카까지도 만연체 문장을 쓰고 있다.


허먼 멜빌은 그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는데,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소설에 반영하고 있다. 그는 포경선에서 일반선원으로 일했고, 해군에서도 복무했으며, 남태평양의 섬으로 탈출해 식인 원주민들과도 생활한 경험이 있다. 


'모비 딕'에서도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이스마엘('이슈메일'이지만 구약에 나오는 이름이어서 '이스마엘'로 쓴다)이 선원이 되고자 뉴욕 넨터컷에 도착한 때부터 '피쿼드'호의 선원으로 계약하고 배가 출항할 때까지 무려 21장(142페이지)을 할애한다. 경장편 소설 한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는 '고래'에 관한 사전적 기록과 여러 문헌에서 발췌한 고래의 기록을 보여준다. 그가 고래에 관해 공부하고, 참조한 자료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비 딕'은 고래 '모비 딕'과 그를 쫓는 에이해브 선장의 집념을 그린 작품이다. 형식적으로는 바다, 고래, 선장, 선원, 뱃사람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의 알레고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번역자 김석희도 썼지만, 이 작품은 기독교 구약성경의 인물들을 차용하고 있다. 허먼의 집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 집안이라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허먼이 사용한 등장 인물의 이름은 물론, 배 이름 '피쿼드'호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하녀 하갈에게 태어난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녀 하갈과 통정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게 되자 이스마엘은 집에서 쫓겨나 사막으로 간다. 사막에서 천사를 만난 모자는 이후 번성한다는 약속을 받고, 이스마엘은 현 아랍인의 조상이 되며, 이슬람의 쿠란에서도 초기 선지자로 기록하고 있다.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 역시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인데, 소설 속에서 '에이해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그의 부모가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었다고 한다. '에이해브'는 구약성경의 '열왕기'에 나오는 '아합'의 영어 이름인데,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이면서, 유대민족이 섬기는 신이 아닌, '바알'신을 섬기고 있었다. 결국 '아합'은 전쟁터에서 부상 당해 죽는다.


'피쿼드'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이름이다. 유럽에서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이후 불과 14년이 지난 1637년, 백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최초의 전쟁이 발생했고,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면서 서쪽으로 진출했는데, 그때 가장 먼저 절멸당한 부족이 '피쿼드' 부족이었다. 수천 명의 피쿼드 부족을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고 학살한 것은 백인들과 다른 인디언 부족이다. 허먼은 이런 백인의 범죄를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고, 자신의 작품 속에 '피쿼드'라는 이름을 새겼다. 




원작 소설에서 허먼은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 대해 자세한 묘사와 설명을 한다. 1인칭 화자인 '이스마엘'의 시각으로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까이 지낸 '키퀘그'는 남태평양의 섬에서 온 '식인종'으로 그려지지만, 뛰어난 작살잡이인 키퀘그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점이 많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은 성실하고 이성적인 인물로, 다혈질이자 복수에 불타는 에이해브 선장이 전적으로 믿는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커피 회사 '스타벅스'는 바로 1등 항해사 '스타벅'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허먼은 소설에서 '고래학'이라는 소제목으로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식 정리를 하고 있는데, 곳곳에 당시의 통계와 구체적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많은 부분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데, 미국의 포경업, 포경선의 구체적인 항해와 고래잡이, 향유고래를 잡아서 해체하고, 기름을 끓이고, 그렇게 모은 향유고래 기름을 팔아서 돈을 버는 구조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때, 포경선의 선주, 선장, 선원이 나누게 되는 수입의 비율부터, 포경선이 한번 출항할 때 드는 비용과 벌어들이는 수입의 총액으로 정상적인 포경선이 수십 명의 선원과 함께 고래잡이를 하고 돌아오면 적어도 몇백만 달러를 벌게 된다는 포경업의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이 소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19세기 낭만주의 소설의 특징인 만연체와 길고 장황한 설명 때문이지만, 서사가 단조로운 것이 더 큰 이유다. 7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이스마엘이 키퀘그를 만나서 포경선에 올라 항해를 하고, 고래를 잡으러 가는 과정과 모비 딕을 만나 마지막 결투를 벌이는 것이 전부다. 그 과정에서 선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즉,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평면적이고 발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설로써의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크리스토프 샤부테의 그래픽노블 '모비 딕'은 원작 소설과는 다른 작품이다. 원작의 서사를 가져오되, 19세기의 풍경을 상상이 아닌, 실재 이미지로 재현한다. '모비 딕'을 읽는 독자는 원작에서 오로지 모든 풍경과 인물을 상상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그래픽노블 '모비 딕'에서는 작가 샤부테가 재현한 이미지 속에서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기만 하는 편안함이 있다.


원작 소설과 그래픽노블은 서로 완전히 다르면서,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원작 소설에서 길고 장황한 묘사와 서술은 그래픽노블에서 몇 컷의 이미지로 설명한다. 소설에서 중요한 장면들이 그래픽노블에서 선택되며, 주요 인물의 운명을 쫓아간다. 그래픽노블 '모비 딕'만 읽어도 큰 줄기에서 서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풍요로움은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두 작품은 서로 보완의 관계이며, 두 작품을 다 읽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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