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음식의 제국


이 책은 음식으로 살펴보는 세계 문화, 역사, 문명, 식품의 역사다. 말하자면, 세계 문명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 것과 같다. '음식의 제국'이라는 제목 때문에 기대를 한 책이지만, 결과는 좀 실망스럽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은, 내가 이 책의 의도와 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저자들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가 이 책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맞겠지만, 그럼에도 내 수준에서 드는 의문은 이렇다.


저자들은 왜 '음식' 또는 '식품'을 '주체'로 상정했을까?


이 의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기가 매우 불편했다. 이 책이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수메르 제국(기원전 7천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약 1만년의 역사다. 그리고 중국,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대륙, 중동, 아시아를 아우르는 지구 전체의 역사를 크거나 작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미시사'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거시사'와 함께 지역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내용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고 있다.


'음식' 또는 '식품'을 주체로 상정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명백한 오류라는 생각이다. 이유는, 그로 인해 역사를 '결과론'으로 시작해 '결과론'으로 끝내게 되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이런 함정을 모르지 않을텐데, 왜 역사를 '결과론'으로 몰고 가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저자들의 오류를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저자들은 중세 유럽에서 농업의 혁명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수도승들이 농업에 종사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품종을 만들면서 잉여 농산물이 생겨나고, 그것은 곧 수도원 주위의 농토를 매입하고, 농부들을 소작농으로 만들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역사의 극히 단편만을 묘사한 것이다. 중세는 갑자기 생겨난 시대도 아니고, 이미 그 이전 시기부터 쌓여 온 역사의 한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중세의 농업 혁명-신기술의 발달-을 수도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절대 왕권과 종교의 위세에 눌려 살면서도 농업생산성을 키워온 그 시대의 농부들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순서라고 생각한다.


'음식' 또는 '식품'을 역사의 주체로 상정한 순간, 거기에는 '인간'이 배제되고 소외된다. 음식을 만들고, 식품을 가공하고, 농어업, 축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농부, 어부의 노고는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노동하는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또 하나의 의문은 '무계급성'이다.


적어도 역사를 다루는 저자라면, 인간의 역사는 곧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마르크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계급투쟁 이론'이나 '사적 유물론' 또는 '변증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유사 이래의 역사가 계급으로 분화하고, 계급 사이의 갈등이 사회와 세계를 바꿔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음식이나 식품을 다루는 문제 역시 지극히 당연하게도 '계급성'은 어느 한 순간도 배제할 수 없는 핵심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폭력은 말하지 않고, 중세나 현대에서도 자본가와 노동자 또는 자본가와 농민의 갈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을 '식량폭동'이라고 격하한다.


식량이나 식품에 관한 생산성의 증대는 많은 부분 착취와 관련되어 있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노예 노동이나 농노를 통한 생산성 증대는 말할 것도 없이 계급적 폭력의 결과였다. 이런 내용들이 이 책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전자 조작 식품(GMO)에 관한 것이다. 저자들이 의도적으로 빼놓은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다루기에는 이 책의 내용이 적당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음식의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당연히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다뤘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실망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유전자 조작 식품을 다루지 않음으로 해서, 이 책은 반쪽짜리 책에 불과하고, 명성이 있다면, 스스로 먹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다루지 않으려면, 이런 책도 쓰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용기도 없이 음식으로 보는 세계문명사를 다루겠다고 나선 것이라면 만용이거나 사기에 불과하다.


이 책은 나름대로 배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책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아는 내용을 집대성한 것으로, 이 책만이 갖는 훌륭한 장점을 추려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책의 구성이나 집필 내용이 너무 산만하고 복잡하게 되어 있어,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책을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무려 24쪽에 달하는 미주가 있지만, 그 많은 참고 문헌이 있음에도 내용은 뛰어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식품 제국'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저자들이 말하는 '식품 제국'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BEST 뉴스

전체댓글 0

  • 1390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음식의 제국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