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낭비와 욕망


대도시에 가끔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물질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물질이 이제는 필요 이상을 넘어서 사람의 삶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과잉'을 주제로 글을 쓰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 책이 지은이는 '쓰레기'를 중심으로 사회를 읽었다면, 나는 '물질의 과잉'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했다. '물질의 과잉'은 필연으로 '쓰레기'를 발생한다. 즉 '과잉 생산'과 '쓰레기'는 분리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면이며, 지금 인류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잉여'의 생산물은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고, 곡물을 재배하면서 정착 생활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생산력이 높아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즉 한 단위의 씨족이 먹고 남을 정도의 식량이 생산되고, 가축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남을 정도가 되면서 비로소 인간은 잉여의 생산물을 바탕으로 '교환경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화폐로는 조개껍질, 돌 등이 있는데, 초기에는 단순한 물물교환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를 사용했음을 알수 있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인류는 18세기까지 '과잉'이나 '쓰레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즉 봉건제 사회까지의 생산력은 무언가를 지나치게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음을 뜻한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호화한 생활을 하고, 풍성한 식탁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겠지만, 그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서민은 직접 농사 지은 쌀과 밀, 감자, 옥수수 등을 주식으로 삼았으며 육식의 비율 역시 매우 낮았다. 육식의 경우,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남아 있는 인간의 치아를 보면, 약 15%만이 육식과 관련 있는 치아라고 하니, 인류의 육식 섭취율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잉여 생산물'은 기술의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17세기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한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는 그 이전부터 전세계를 상대로 유럽의 여러 국가가 달려 든 '원시 자본축적'에 이어 점차 봉건제에서 농노로 살았던 민중을 임금노동자, 임금노예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마르크스의 '자본'에도 나와 있듯이, '자본'은 이윤을 발생할 때만 존재의 의의가 있기 때문에, 이윤의 발생을 위해 '자본'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하게 된다. 여기서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다룰 수는 없으니 생략하고, 자본이 '상품'을 과잉으로 생산하게 되는 것이 '경쟁'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만을 말해 두자.

'자본'은 원자재와 기계(및 건물) 그리고 노동자의 노동을 결합해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한다. 따라서 자본의 이윤추구는 무제한이며, 경쟁 또한 무제한이다. 문제는 자본이 사용하는 원자재가 주로 자연에서 가져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고, 자본의 무제한 경쟁과 상품생산은 자연 환경을 필연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옛날에는 쓰레기가 아닌 것들이 오늘날에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경우는 매우 많다. 물자가 귀할 때는 아껴쓰고, 재활용으로 쓰고, 고쳐 쓰고, 나눠 쓰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단지 디자인이 바뀌어서, 유행이 지나서, 싫증나서, 더 좋은 제품으로 바꿔서 쓰지 않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은 일부 재활용이 되지만 곧바로 쓰레기로 변해 버려지게 된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하필 생산력이 급증하던 시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서 지구 자원을 낭비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과잉 생산하고, 쓰레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게 된 것인지는 따로 연구해야 할 과제지만, 분명한 것은 물질의 과잉, 자원의 낭비, 쓰레기의 과다 처리는 분명 자본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일회용품을 쓰고 있고, 한 번 쓰고 버리면서 별다른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요즘에는 심지어 한 번 입고 버리는 종이옷까지 나왔다고 한다. 많은 생활용품들이 일회용으로 바뀌고, 그만큼 많은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은, 어디선가 그만큼의 원재료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입고 쓰는 물건이 과연 얼마나 될까. 꼭 필요한 만큼이라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많은 '과잉'의 세상에서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말하는 것은 공상주의자이고, 잠꼬대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소비하면서 존재한다. 생산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어들면 자본주의는 존립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지나친 소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체제 역시 옳지 않음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환경운동이니 지구살리기 운동 따위의 구호를 부르짖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물론 그들의 구호가 자본주의 체제에 경고를 줄 수는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근본의 운동은 되기 어렵다. 모든 (상식적인) 시민사회운동-체제를 옹호하는 일부 시민운동을 제외하고-이 올바른 성과를 내려면 자본주의 체제로는 더 이상 바뀔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빈부의 격차는 물질의 과잉, 쓰레기의 대량 배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빈부의 격차가 클수록 물질의 과잉 현상과 쓰레기의 대량 배출은 커지게 마련이다. 부자는 1인당 물질의 소비가 가난한 사람 1인당 물질 소비보다 적게는 수 십배에서 많게는 수 천만 배까지 늘어난다. 이런 상황은 통계로도 나타나는데, 지구 전체에서 상위 0.2%의 사람이 가진 부가 전세계 인구 40%가 가진 부와 같다고 한다. 

물질 과잉의 사회라지만, 또 한쪽에서는 여전히 궁핍과 빈곤에 시달리며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연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이가 굶어죽는 숫자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경제선진국에서 비만으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는 반면, 가난한 나라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이 생기는 이유 역시 자본주의 체제가 원인이다. '이윤'과 '경쟁'을 바탕으로 존립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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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와 욕망 - 쓰레기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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