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평범한 일상


오늘 전기 공사를 했다. 며칠 전, 거실과 서재의 천정에 크랙이 있던 곳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방수공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던 드릴이 전기선을 건드린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다행히 2층 전등 차단기만 떨어지고 있어서 조금 불편해도 며칠 참으며 지냈다.


어딘가에서 합선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기공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귀찮아서 하기 싫은 일이다. 양평에 있는 전기업체 여러 곳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올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알고 지내는 건축업자이자 같은 주민자치위원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자기가 아는 전기업자를 소개해 주겠노라고 했다. 처음 통화할 때 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오전에 집에 도착한 사람은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였다. 당시 분교였던 학교에 입학생은 여섯 명이었고, 세 명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전교생이 스물여섯 명이던 학교에 여섯 명의 신입생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고, 학교는 물론 마을 주민 모두가 기뻐했다.


쉬울 것 같던 전기공사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거실에서 합선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세 군데나 천정을 뚫었지만 합선이 일어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서재 입구의 등을 떼어내고 천정을 뚫어 확인하고서야 서재 쪽에서 합선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문제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서재를 제외한 2층 전체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공사는 여기서 일단 마무리하고, 둘이 가까운 식당으로 점심을 먹고 와서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석고보드로 된 천정을 뚫으면서 바닥은 석고보드 가루와 부스러기로 온통 지저분했다. 빗자루로 쓸어담고, 물걸레 청소기로 바닥을 닦은 다음,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러 갔다. 샤워를 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관해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무사, 무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일까. 곰곰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누군가 삶의 과정을 '평범'과 '비평범'으로 구분한 것은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한 부박한 인식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시간의 비늘들은 매순간 반짝거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때로는 절망, 슬픔, 우울, 고통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고, 기쁨, 행복, 즐거움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을 뿐이다. 존 덴버의 노래도 있듯이 '어떤 날은 돌덩이일 때도, 어떤 날은 다이아몬드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일상'은 나날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익숙한 일들의 연속을 말하는 거지만, 사람들은 매일 다르게 살아간다. 다를 게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일상도 매일이 다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늘 새롭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늘 같은 태양이어도, 아침에 뜨는 해가 늘 새롭듯이, 우리의 삶도 매일이 같은 것처럼 살아가지만, 사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힘겨운 노동으로 지친 노동자의 하루는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또 다시 힘든 노동의 하루가 되겠지만, 그 노동의 시간 속에서 노동자는 웃고, 울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불행하고, 절망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재벌이라해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누구의 삶이든 사회적으로 놓인 처지와 계급의 위치와 경제적 부의 많고 적음이 다를 뿐, 희노애락을 느끼는 순간은 모두에게 있다. 자본주의 체제처럼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인간의 행, 불행을 단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노동자와 빈민이 체제의 근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일상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의 삶은 집단과 체제, 구조 속에서 존재가 많은 부분 강제되고,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자식은 자본가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가 된다는 현실은, 개인이 무언가 되고자 하는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인류는 집단 생활을 시작하고 정착하면서부터, 정확히는 농업, 목축업 등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부터 계급 사회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한계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자체로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지배 권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지배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만들고, 폭력기구(군대, 경찰 등)를 운용하며, 언론을 통해 계급의 이익을 세뇌시킨다.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의 그런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 자체로도 이미 '평범한 일상'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이것이 '개인'의 단위로 내려가면 투사에서 반동까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경제적 부의 축적만을 두고 만족과 불만족을 표현한다면 재벌은 모두 만족해야 하겠지만, 그들에게도 불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사람은 경제적 부, 경력, 경험, 사회적 지위, 자신의 능력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도 등의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이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자기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자아도취에 빠졌거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비평범성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구조 속에 놓은 한계가 뚜렷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사는 사람도 있고, 날마다 조금씩 다른, 발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 삶은 중단되고, 소멸되겠지만 살아서 활동하는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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