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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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시간의 풍경



이 작품이 발견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잠깐 활동하던 막시무흐 리투어는 사진작가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풍경 사진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소수의 부자들이 소장하고 싶은 콜렉션이었다.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가까운 나쿠루에서 태어났는데, 백인인 그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상아 밀렵이 성행하던 당시 아프리카에서 밀렵꾼을 체포하는 밀렵감시단으로 활약했던 리투어의 아버지는 밀렵꾼이 코끼리를 도살하는 것을 막는 한편, 그 자신이 코끼리 무덤을 발견해 상아를 밀반출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리투어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랐고, 수 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아프리카의 후손으로 믿게 된다. 부자인 아버지 덕분에 사립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는 어른이 되면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리투어가 의사나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는 리투어의 재능이 예술 쪽에 있다고 믿었다.

리투어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지만, 그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상아를 밀반출하던 아버지가 밀렵꾼에게 살해당하고, 그가 저지른 범죄가 발각되어 재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살 수 없었기에 리투어는 그의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로 가게 된다. 리투어의 어머니는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의 친정 아버지가 리투어 모자를 거두어 줄 경제적 여유도, 가족의 따뜻한 정도 나눠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파리의 외곽에 방 한칸을 얻은 리투어 모자는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고, 리투어는 점원 생활부터 공사장 인부, 지하철 청소부 등 여러 잡일을 하면서 근근히 연명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인 라이카 카메라로 파리의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는 필름 살 돈이 없어서 카메라 셔터를 매우 신중하게 눌렀는데,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풍경이 눈에 띌 때만 그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그래서 필름 한 통을 다 쓰려면 1년 이상 걸릴 때가 많았다. 자연히 그의 작품은 아주 적었고, 그는 필름을 인화하는 것도 망설일 때가 많았다. 대부분 필름으로 보관하고, 마음에 드는 몇 작품만 인화해 자신의 단칸방 벽에 걸어 두었다.

어머니가 가난과 힘든 노동으로 병-폐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리투어는 고아가 되어 청년 시절을 보내야했다. 그는 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프리카는 너무 멀었고,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딱딱한 빵으로 보내야 했고,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친구가 생긴 것은 도로청소부로 일할 때였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을 때, 그에게 길을 물어 본 사람이 있었고, 그는 동양여성이었다. 낯선 이름의 나라 '꼬레'에서 왔다는 그 여성은 흰 브라우스-그 여성은 '저고리'라고 했다-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검정 치마를 입었고, 단발머리를 한 단아한 모습이었다. 

리투어는 동양여자를 몇 번 봤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는 한눈에 그 여성에게 반했고, 그의 생애 처음으로 풍경이 아닌, 여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리투어는 그 여성이 찾고 있던 장소까지 직접 안내하며 데려다주었고, 자신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며 당신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리투어와 '꼬레'에서 온 여성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했다. '꼬레'에서 온 여성은 조국의 가족에게서 드물게 수표가 든 편지가 도착했지만 그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이름은 나혜석이라고 했다-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했다. 그 자신도 사진을 찍는-비록 아마추어이긴 해도-사진작가였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동양 여성은 더욱 신비롭고 놀라웠다. 두 사람은 사진, 그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투어가 쉬는 날이면 두 사람은 루브르박물관, 오랑주리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리투어가 나혜석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 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고, 나혜석이 다시 '꼬레'로 귀국한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 한 점을 선물했다. 바로 이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리투어의 작품은 그가 30대에 요절한 이후 집주인이 쓰레기로 버려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작품이 담긴 필름통이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만일 그 필름통이 발견되면 사진역사에 놀라운 소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혜석은 이 작품을 들고 조선에 돌아왔고,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혜석은 사망하고, 그가 소장했던 이 사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일본 교토의 한 벼룩시장에서 이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서명도 없고, 작품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 500엔에 팔렸다. 이 작품은 발견하고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리투어를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 역시 몇 안 된다는 뜻이고, 그의 작품을 실재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는 얼른 500엔을 주고 이 사진을 받아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단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으며, 작가를 알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우연이면서 필연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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