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타오르는 마음 - 이두온


한국소설, 특히 최근 발간한 소설은 퍽 오랜만에 읽는다. 나도 소설을 쓰는 자칭 3류 소설가지만, 한국소설에 희망이 있을까,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과거의 작품(192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문학)에 익숙해 있어서 현대문학 즉 20대, 30대 작가의 작품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 낯섦을 긍정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런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의 기준으로 봐서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예전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익숙하며, 그 문학에서 배웠다. 문학은 시대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표현이며,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 당대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80년대 문학을 시작했고, 그 시기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였다. 한국문학은 시대별로 해방문학, 전쟁문학, 분단문학, 개발문학, 노동문학 등의 분류들이 있고, 어느 시기에 활동한 작가인가에 따라 작품의 성향이 드러났다. 

90년대 이후 나타난 작가들은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운 상상을 바탕으로 창작물을 내놓기 시작했고, 탈이념, 탈권위, 탈민족, 탈집단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상황이지만, 작가의 자유와 창작의 무제한, 상상의 확대는 90년대 이후에서야 겨우 자리잡기 시작했다. 

창작의 자유가 확대되고,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하며, 모든 억압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작가의 창작물이 높은 수준을 보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과거의 문학이 거둔 성과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문학 작품에서 한국현대문학의 최고 작품을 손꼽을 수 있다고 믿지만, 40대 이하, 청년들이 보는 한국현대문학의 기준은 다를 것으로 본다. 이런 기준으로 이두온의 작품을 읽었다.


나는 스티븐 킹의 작품을 대부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다면성, 혼재성, 다중성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독자로 하여금 감동하고,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악인의 내면은 공포와 악으로 가득하지만, 이걸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등으로 분석하면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수많은 정신적 문제의 다면성이 드러난다. 즉, 작품에서 인물의 행동에는 반드시 정신적 활동의 결과이며, 정신적 활동의 내면에는 그가 살면서 겪은 깊은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독자는 알게 된다.

이두온의 작품은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장르 소설'이다. 이런 분류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런 분류를 유지했던 과거 문학의 기준은 오늘날 비판하고 극복해야 한다. 과거 '순수문학'이나 '참여문학'으로 나누고, SF소설, 스릴러소설, 탐정소설, 추리소설 등은 소설의 주류로 인정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문학평론가들도 이런 작품들을 평론하지 않았고, '주류문학'을 주도하는 계간지에서도 '장르문학'에 해당하는 작품은 취급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철저히 소외당해왔다.

반면, 일본에서는 추리소설, 스릴러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추리소설, 스릴러소설, 하드보일드소설 등이 편견 없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었다. 이런 외국 작품들이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한국독자는 문학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고, '장르문학'이 결코 변두리, 주변부 문학이 아닌, 본격 문학 작품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세계문학을 봐도 셰익스피어가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의 작품 역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작품이며, 과학 소설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들은 문학 뿐아니라 영화, 과학 분야까지 폭넓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다. 한국처럼 문학을 협소하게 규정하는 나라는 없을 듯하다. 한국문학에서 장르문학을 차별하는 건 문단 내부의 권위적 태도와 권력 관계, 차별을 통해 권력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태도의 결과다.


이두온의 작품-타오르는 마음-의 배경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작품 속 세계가 모호한 것은 작가의 의도한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 세계와 유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현실세계에 구축하는 작품과 비현실세계에 구축하는 작품은 장단점이 분명한데, 모호한 세계는 그곳,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즉, 장소나 세계보다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국적을 알 수 없는 이름이다. 위도, 밴나, 나조, 오기 같은 이름은 국적이 불분명하다. 이름의 모호함 역시 그 개인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이들은 세상에 있는 누구를 대치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결국 작품 속 세계는 지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모호함'은 보편성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개별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이 작품의 많은 장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고, 알고 있으니 내가 느끼는 단점과 아쉬움을 중심으로 보자면, 무엇보다 인물의 개성, 정체성의 핍진함이 부족하다.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행동이 극단적일수록 이유는 더욱 선명하고 확실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인물이 현재 보여주는 행동은 과거의 원인으로 인해 아주 느리게 변화하다가 어느 순간 질적 변화가 발생하는 순간이 있으며, 그 계기를 통해 이전과 이후 인물의 존재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때 작가는 인물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련의 흐름이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해 온 것이라는 걸 독자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이 장황하지 않아도, 독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독자의 공감을 충분히 끌어낸다. 즉, 개인 서사의 축적과 중첩을 통해 독자의 기억을 속이는 것이다.


위도가 사불을 보는 것이나 밴나가 오기를 보는 것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작은 마을에서 발견된 여섯 구의 시체와 이들을 죽인 연쇄살인마가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연쇄살인마를 찾는 것은 일종의 맥거핀이다. 이 작품은 위도와 밴나의 싸움이 핵심인 듯 보이다가 어느 순간 마을의 거대한 음모가 드러난다. 이 구조는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틀이다. 그렇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이 진자' 또는 윤태호의 '이끼'에서 볼 수 있었던 구조와 비슷하다. 서사의 핍진함과 개인 서사의 축적이 균형을 이루며 완벽한 조화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작품이라면, 이두온의 작품에서 인물의 성장은 핍진성이 떨어진다. 조금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등장인물들은 뒷부분의 사건을 위해 소모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도나 밴나는 캐릭터 자체로 매력적인데, 이들 인물의 서사를 핍진하게 축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또한 주변 인물로만 드러나는 밴나의 아버지나 고모부 등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더 많이 드러내고, 삶의 구체성을 띄어야만 마지막 부분에서 마을 전체의 음모가 설득력이 생길 것으로 보는데, 마을 전체의 욕망은 드러내지만, 주민 개개인의 욕망이나 탐욕, 갈등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건 서사의 축적이 부족했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생각하는 단점들은 이 작품의 장점에 비하면 지극히 지엽적이고 부분적이다. 한국문학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나도 데뷔작은 노동소설이었지만, 첫 장편은 인터넷 해커를 다룬 작품이었으며, 그 뒤로도 '장르소설'로 불리는 소설을 쓰고 있다. 이제 이런 구분에서 자유롭고, 독자들이 이런 장르를 구분하지 않으며, 재미있는 작품을 찾는다는 건 바람직하다. 다만, 작가는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문학'의 본령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좀 억지스러운 비유를 들자면, 같은 나체를 찍거나 그릴 때, 그것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작가의 세게관, 철학에 의해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고, 포르노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문학'이라는 것 역시 작가의 세계관, 철학에 따라 '문학'이 될 수도 있고,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하는 예전의 문학 작품과는 분명 다르지만, 한국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젊은 작가의 창작욕구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한다. 문학의 낯선 형식은 위험한 도전이지만,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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