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책] 스페인 내전 - 갈라파고스


많은 경우,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은 마치 하나의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으며 연쇄적으로 퍼져나간다.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나온 '스페인 내전'을 읽으면서 다른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게 된다. 이 책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알라딘 서점에서 '스페인 내전'으로 검색하면 쓸만한 책은 앤서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교양인)과 갈라파고스에서 출판한 '스페인 내전'이 있을 뿐이다. 

애덤 호크실드가 쓴 '스페인 내전'은 앤서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과는 각도가 약간 다르다. 앤서니 비버가 '통사적'으로 접근했다면 애덤 호크실드는 미국 출신의 자원병들에 관해 보다 깊이 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미국인으로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가한 국제주의자들 가운데 생존자를 만나거나 그의 친구, 가족,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그들이 남긴 자서전, 회고록, 전기를 비롯한 출판물들을 찾아서 미국인들이 스페인 내전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싸우다 죽었는지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작업들이 조금 더 일찍 시도되었다면 보다 생생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을 다룬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최근의 수작들은 물론이고 이미 70년대부터 헐리우드에서는 수 많은 전쟁영화를 만들면서 미국 군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영웅적으로 싸웠는가를 널리 알리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한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곳에 가서 공화파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 하다. 그나마 헤밍웨이가 직접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를 써서 널리 알린 것이 거의 유일할 정도로 미국은 스페인 내전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진보적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몰려 온 국제여단 사람들의 구성은 출신이나 신분에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막 세계경제공황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자본의 악랄함과 잔인함을 몸으로 느낀 사람들이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자본의 힘도 강력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던 때, 스페인 내전은 제국주의화 하는 독일로 대표되는 자본과 파시즘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동양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고(중일전쟁),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며,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를 침략해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미국에서는 1929년 촉발한 경제공황으로 자본의 수탈로 인한 노동계급의 착취가 극심하던 시기였는데, 이때 미국언론에서는 '사람들이 빌딩에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범이 바로 '자본(가)'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언론과 권력은 숨기고 있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패배한 독일과 주변 승전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전후 보상금 문제를 비롯한 승전국의 요구에 독일 국민은 파시즘의 출현으로 대답했다. 유대인과 관련한 사안이 파시즘의 대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 전역에서 당시 유대인을 핍박한 것은 단지 히틀러 정권만이 아니었고, 유럽인 대부분이 유대인에 대한 경멸과 분노의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현대 사회에서 최초의 '이념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페인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왕당파를 비롯한 수구집단-왕정 옹호론자, 가톨릭 집단, 자본가, 군부, 부르주아 등-은 공화파와의 권력 다툼에서 근소한 차이로 진다. 수구집단은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는데, 이미 수십 차례의 쿠데타가 실패한 상황에서,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쫓겨나 모로코에 있다가 군대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킨다. 프랑코를 지원하는 세력은 스페인 내부의 수구집단은 물론이고 영국, 프랑스 등 주변 국가도 노골적이지는 않아도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프랑코 군부를 지원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는 것을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는데,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던 1936년 무렵에 이미 히틀러는 독일을 장악하고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자기들의 새로운 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많은 무기와 군인을 지원했으며, 이 시기를 통해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불간섭 원칙을 지켰는데, 그 이유가 미국 내부의 보수집단-자본가, 가톨릭 세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불간섭 원칙이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의 패배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 쏘련 역시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스페인의 공화파를 지원하지 않았는데,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등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스탈린의 의도는 자신의 집권 초기 쏘련 내부에서 정적들을 굴복시키고 숙청을 감행해 자신의 권력 기초를 다지기 위한 계산이 내포되어 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전선은 이런 세계적 정세를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수구집단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패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자원한 국제여단 참전군인은 약 7천 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약 2천5백 명 정도에 이른다. 

내전에서 패배한 인민전선은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공산당과 무정부주의자 그룹, 마르크스통일노동자당(POUM) 등 주요 세력들이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구사하고, 일사분란한 연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에 각 정파들이 이념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세우고, 갈등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스페인 공산당은 쏘련의 지원을 받기 위해 스탈린의 요구를 들어야 했는데, 그것이 무정부주의 집단에게는 심각한 폭력이었다. 스페인 정부의 공식 권력은 인민전선, 무정부주의 집단에서 가지고 있었지만 스페인 공산당은 조직되어 있고, 쏘련과의 연계로 내전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쏘련의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스페인 공화파 내부에서는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결국 세계 정세도 파시즘이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스탈린은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으며 공산주의의 국제화 전략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가 패배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세계 모든 나라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지만, 내전에 참가한 인민전선과 국제여단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빛바래지 않는 기록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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