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책] 100 디스커버리


나는 과학책 읽기를 좋아한다. 과학과 수학을 다루는 책들은 어지간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책을 본격 읽기 시작하던 70년대 중반부터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나의 책읽기도 변했는데, 초기에는 소설과 기초 교양(철학)이 전부였다면 80년대 중반부터는 사회과학 책들을 많이 읽었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과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본업이 글을 쓰는 것이라 문학과 관련한 책은 시대와 관계 없이 꾸준히 읽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과학책 읽기에 쓰고 있다.

과학과 수학과 역사를 다루는 책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관념적이고 혹세무민하는 세상 속에서 이성의 불빛을 꺼지지 않도록 하는 연료는 다른 어떤 것보다 과학의 신선한 이론들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으로 기존의 이론을 뒤엎고, 보다 날카롭고, 보다 정교한 이론으로 탈바꿈한다. 그 과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화의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최근에 읽은 책들도 거의 과학책인데, 그 가운데서 이 책은 앞부분을 읽다 중단했다. 앞부분에서 '도예술의 발달'이라는 제목으로 도자기의 역사가 나오는데, 지은이는 도자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일본 죠몬 시대의 토기가 가장 오래 되었으며 기원전 1만1천년 전에 일본에서 토기의 역사가 인류 최초로 시작되었다고 썼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직감으로 이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요즘은 어지간한 내용이라면 아주 간단하게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검색을 해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일본 죠몬토기(縄文土器)

일본도자의 역사는 세계 최고(最古)의 토기라고 일컫는 죠몬토기(縄文土器) 에서 시작된다. 죠몬토기의 이름은 오모리카이즈카(大森貝塚)의 발굴로 알려진 E.S.모스가 사용한 Cord marked pottery에서 유래된다. 방사성탄소(C14) 측정에 의하면 최고(最古)의 것은 약 1만2천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만년이상 계속된 죠몬토기는 그 기형의 변화에 의해 크게 6개의 시기구분(초 창・조기・전기・중기・후기・만기)으로 나눠지고,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상세하게 편년되어 있으며 한마디로 죠몬토기라고 해도 그 실체는 가지각색이다. 초창기의 두채문토기(豆粒文土器)와 융선문토기(隆線文土器), 중기의 화염형토기(火焰形土器), 후기의 카메가오카식토기(亀ヶ岡式土器), 거기에 중기부터 만기에 걸쳐서 토우(土偶)등이 대표적이다. 죠몬토기는 일반적으로 흙타래를 쌓아 올려 만드는 방법이 채용되어 있으며, 가마를 구축하지 않은 노천가마에 의한 번조방법으로 800~900도 전후에서 구워졌다.


이 내용만 보면, 죠몬토기가 세계 최초의 토기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도자기의 역사는 중국이 최초다.


중국도자의 시점

중국 도자기는 1만년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8,000-15,430년 전.  원뿔형 솥.

중국 호남성 옥섬암 동굴에서 발굴된 고대의 토기 파편들이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솥은 두께가  아주 두꺼운데,  발이 거칠고 부드러운 흙으로 빚어져 낮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졌다. 토기의 흙에는 작은 자갈도 꽤 많이 섞여 있었다.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에 의하면 이런 파편들이 18,000-15,430년 전 것으로 밝혀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16,000년 전의 토기보다 더 앞선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양사오仰韶문화기에는 채도(표면에 색깔을 넣어 구운 도자기), 홍도紅陶, 백도白陶가 제작되었고, 용산龍山문화기에는 흑도黒陶가 번성하였습니다. 상商왕조에는 원시청자라고도 불리는 회유도灰釉陶가 등장합니다. 춘추전국시대 말부터 전국시대에는 인문경도(印文硬陶,도장같은 걸로 무늬를 찍어서 나타낸후 질이 딱딱한 도기) 와 회유도가 제작되었습니다.


중국도자기의 역사가 '인류 최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도 세계 4대 문명발상지 가운데 하나이니 토기의 역사 역시 인류 최초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다른 지역일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그러면 왜 저자는 일본의 죠몬토기를 인류 최초의 토기라고 단정하고 글을 썼을까. 그것은 그가 본 자료가 그렇기 때문이다. 죠몬토기를 세계 최고의 토기라고 했던 사람은 일본 학자가 아니라 미국 학자 모스가 주장한 것이다. 영어로 된 자료를 읽을 수밖에 없었던 저자는 모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여 일본의 죠몬시대 토기가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일본 죠몬 시기에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 전반에서 발견되는 것이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주장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인류의 이동이 중국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토기의 역사 역시 인류의 이동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일본에서 토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결국, 이 책은 앞부분에서 과학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주장을 하는 내용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물론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제외하고 다 맞는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자 다른 것들도 의심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번역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았고, 편집한 출판사 역시 이 내용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서의 내용을 충실하게 옮기는 것은 좋지만, 출판사 차원에서 이런 오류는 바로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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