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인생


위화의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허삼관의 인생관을 자주 떠올리게 되고, 그의 삶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위하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무지랭이 백성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어떤 지식인보다 배울 점이 많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에서, 역사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았던 근현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중국 인민의 삶을 위화는 고통의 바다에서 유머의 배를 띄우는 것처럼 보여준다. 

같은 작가로 모옌의 경우, 중국 인민의 삶을 웅장하고 거대한 중국의 역사와 대륙적 스케일로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보여준다. 마치 인민들이 영웅처럼 역사의 서사를 이루어나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모옌이 보여주는 서사적 역사성을 담보한, 영웅화된 인민의 모습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리고 민중의 힘은 역사에서 늘 영웅적이기도 했다.

반면 위화는 인민의 삶을 개인의 고난과 비극적 삶을 통해 역사를 드러낸다. 너무나 평범해서 자신들이 역사를 바꿔간다는 것조차 모른 채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다수의 인민들은 마치 풀과 같아서 바람이 불면 먼저 눕고, 비가 내리면 피하지 않고 맞으며 삶의 굴곡을 넘는다.

이 소설 '인생'은 화자인 '나'가 어떤 노인을 만나서 하루 종일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려진다. 논에서 소를 모는 노인은 평범한 노인이지만, 그가 입을 열자 구구절절한 과거의 이야기, 살아왔던 시간의 진한 피눈물이 터져나온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행복보다는 슬픔과 고통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푸구이'라는 노인의 삶을 통해 중국현대사를 살아 온 중국인민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국공합작, 국민당 군대, 중국공산당, 대약진 시대, 문화혁명 등 중국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마다 푸구이의 삶은 요동친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원치 않는 군대에 끌려갔다가 중국공산당에 의해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소작인이 되어 농사를 짓다가 홍수와 가뭄으로 극심한 굶주림을 겪는 사연, 아들과 딸, 아내를 차례로 떠나보내야 했던 사연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

다만, 위화의 작품이 전작을 포함해 리얼리티와 무게가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은 있다. 스토리가 약간 작위적이고, 인물들의 성격이나 묘사가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런 면에서 위화의 작품은 오히려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작가들은 공산주의형 인물과 배경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과거가 봉건체제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한 것과,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은연 중에 스며들도록 하는 일종의 의무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나는 중국 작가들이 체제의 우월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태도가 오히려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했다는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며, 북한이나 여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가들이 보여주는 탈이데올로기나 극도의 우상화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의 자유'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작가는 자신이 놓인 사회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체제에서 살아가든, 체제를 찬양할 수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바람직한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나 극도의 봉건체제(북한) 보다는 공산주의 체제가 인민에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이라는 것을 중국 작가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는 여전히 경제와 정치가 분리되고, 인민의 삶이 피폐하게 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고, 공산당의 부패가 심각한 사회,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작품이 낭만적이라는 비판 역시 달게 받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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