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2-26(토)
 

별도 없는 한밤에-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첫번째 탐정 추리소설이라고 광고한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고 나서 그의 중편집을 읽기 시작했다. 네 편의 중편이 들어 있는 이 소설집의 첫번째 작품은 <1922>. 충격과 공포, 스티븐 킹의 진짜 모습이 바로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라면, <1922>는 스티븐 킹이 보여주었던 공포와 기괴함이 뒤섞인 그의 본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을 읽고 나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러브 크래프트'와 '애드가 앨런 포우'였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 <1922>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의 확장판 변주곡이었다.

러브 크래프트의 음울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 분위기와 잔혹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애드가 앨런 포우의 소설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것이 바로 스티븐 킹의 소설이다.

이 중편소설은 이 책에 들어 있는 네 편의 소설 가운데서 가장 '독하다'. 그래서 책을 온전히 읽기 위해서는 마음의 각오를 조금 해야 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에 너무 몰입하거나 상상력을 지나치게 발휘하면 원하지 않는 고통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주인공 제임스는 평범한 농장주인이었지만, 그의 아내가 친정아버지에게 상속받은 땅 40만 에이커를 팔겠다고 했을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시골 농장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고, 도시로 나가 가게-양품점-를 내고 싶어했다. 대대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 온 제임스는 그런 아내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고, 평범했던 농장주인은 어느 순간 살인마로 돌변한다. 소설의 내용은 개연성이 부족하지만, 끔찍한 공포를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제임스보다 그의 어린 아들이 변해가는 과정은 더욱 기괴하다. 그것은 인간이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마치 진화론처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의 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인간은 단지 악마일 뿐인가, 아니면 제임스의 다른 얼굴인가.

이 경우, 악마의 다른 이름은 탐욕이다. 탐욕은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 뿐 아니라, 어린 자식까지도 악마로 만들고 말았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이며, 나쁜 짓에는 결과가 따를 뿐이다.


<빅 드라이버>는 여성 작가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독서토론회에서 강연을 하고 수고비를 받는 것이 짭짤한 수입인 작가 테스는 집에서 하루 안에 다녀올 수 있는 도시로 강연을 하고 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고, 타이어가 펑크나면서 고립된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나타나고,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다음 으슥한 도랑에 버려진다.

끝까지 죽은 척을 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던 테스는, 그 사건 이후 달라진다. 여리고 조금도 폭력적이지 않았던 테스는 자신이 당한 사건을 경찰에 알리지 않고 직접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 방법도 작가적으로 풀어나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데스 프루프'가 생각났다. 여성들이 탄 자동차만을 테러해서 죽이는 살인마는 자신의 의도대로 네 명의 여성을 잔인하게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여성들이 탄 자동차를 공격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여성들의 반격에 살인마는 처절하게 죽게 된다.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통쾌한 복수다.

이 소설 역시, 연약한 여성만을 노리는 연쇄살인마에게 당한 여성이 통쾌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테스의 복수극이 아니라, 두 명의 아들을 살인마로 키운 그의 엄마에 대한 궁금증이다.

공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는 여성이 살인마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살인을 하도록 모든 준비를 해주는 것 역시 바로 그 엄마였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살인마의 아버지가 오래 전에 자살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자살과 관련해 그의 아내 즉 살인마의 엄마와 그 아들들이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는 나오지만 자세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아들에게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죽이라고 부추기고, 여성을 그쪽으로 데려가는 엄마와 젊은 여성을 강간하고 살인하는 아들의 관계라면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신병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었고, 누가 봐도 어엿한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치광이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 틈에 섞여 성실하고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다른 소설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공정한 거래>는 비교적 짧은 소설이다. 암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주인공 스트리터는 어느 날, 우연히 도로 옆 노점상을 만나게 되고, 그와 '수명을 연장'하는 계약을 한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앓고 있는 암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야 하는데, 그것은 '가장 미워하는 인간'이어야 했다. 스트리터는 가장 미워하는 인간으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꼽았다.

은행의 중견간부로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던 스트리터에게 암은 곧 죽음이었고,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것은 가장 큰 고통이자 불행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증오의 대상이 바로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노점상과 '연장 계약'을 하고 나서, 스트리터의 암은 사라지고, 친구 톰의 가정에서는 연이어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트리터보다 훨씬 부자이고, 출세했으며, 훌륭한 자식을 두었던 그래서 질투와 미움으로 치를 떨었던 바로 그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친구와 반대로 좋은 일만 생겼다. 암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은행에서 승진했고, 아들과 딸이 모두 성공했으며 아내 재닛과도 신혼부부처럼 다정했다. 반면 친구 톰은 아내가 암으로 죽었고, 큰아들이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으며 둘째 아들은 며느리가 죽었고, 딸이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와 임신한 아이를 사산했다. 게다가 톰의 사업체도 망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진행되었다.

악마와 거래를 하고 나서, 친구의 불행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복을 보장하는 '악마의 계약'이 어떻게 구체화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반전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악마와 계약을 한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 끔찍하기는 하지만-그것을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보다 강렬한 마지막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20년 가까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좋은 남편으로 살았던 남자가 알고 보니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늘 다정하고 따뜻한 남편이기만 했던 사람이 어떻게 끔찍한 연쇄살인마일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주인공 다아시와 그의 남편 밥은 평범한 미국 백인의 중산층 가정을 이룬 부부였다. 밥은 회계사였고, 부업으로 희귀동전 거래를 하는데 출장이 잦았다. 남편이 출장을 간 어느 날, 우연히 차고의 비밀창고에서 피해자의 물품을 발견한 다아시는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남편이 돌아와 그 사실을 눈치챘고, 다아시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다아시는 너무도 무섭고 끔찍했지만 아들과 딸을 위해 남편의 요구-한번만 용서해달라는-를 들어주고 다시 정상적인 가정생활로 돌아간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미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분명했고,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도 없었다. 겉으로는 별다르지 않게 정상적인 가정이었고 부부였지만 다아시의 내면은 폭풍우가 치는 바다처럼 고통스럽게 뒤집혔다.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경찰에도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다아시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문제를 해결한다. 자식들에게는 여전히 좋은 아버지였고, 남편 밥의 직장과 동료, 이웃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서도 더 이상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의 삶은 끝내게 되는 해법. 

싸이코패스의 전형을 그린 이 소설은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싸이코패스의 아내에 초점을 맞췄다. 그 아내가 어리석거나 사악한 인물이었다면 소설은 엽기적이고 공포로 가득한 내용이 되었겠지만, 평범한 여성 다아시는 상식적이고 현명한 사람이어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잭 런던은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써서 잡지사에 기고를 하는데, 그때 잭 런던이 생각한 포맷이 있었다. 즉, 짧은 시간에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기본 포맷을 설정하고, 그 포맷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이야기를 만들면 빠른 시간에 다양한 단편소설을 여러 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잭 런던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단편을 써서 잡지사에 기고했고, 원고료를 받아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원고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의 소설에도 그런 '기본 포맷'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후기에서 스티븐 킹은 소설의 모티브,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후기를 읽지 않아도 이 소설들에는 스티븐 킹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미국 메인주의 도시 이름과 풍경들, 지명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가 읽고 도움을 받았을 러브 크래프트나 애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들이 떠오르고, 작가로서의 경험-강연회-과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에피소드 등이 소설에 등장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의 말대로, 독자들은 재미있는 소설을 읽기 좋아하고, 그렇기 위해서 자신은 두꺼운 소설을 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두껍지만 술술 잘 읽히는 이 소설들은 깊어가는 겨울밤을 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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