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제목 : 쥐

작가 : 아트 슈피겔만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이 만화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태인이 겪은 비참한 상황을 ‘만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는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으로 그의 가족, 그의 아내와 아내의 가족이 겪은 비극에 대해 구술한다. 수십명의 가족, 친척들이 모두 죽고 결국 극소수의 형제와 부부만 살아남은 가운데 노년을 미국에서 보내는 유태인의 삶에 대해서도 현실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만화를 13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며 그렸고, 이 책으로 퓰리처상과 구겐하임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래픽노블의 역사에서도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가 역시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만화를 그리는데 앞장 선 인물이다. 이 만화의 특징을 몇 개의 주제로 분석했다. 먼저 줄거리를 요약했다.


작가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은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으로, 부유한 집안의 여성 안나 질버베르그를 만나 결혼한다. 이후 장인의 도움으로 직물공장을 운영하며 부유하게 살다 히틀러의 나찌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폴란드군에 징집되었고, 독일군에 잡혀 전쟁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한동안 머물다, 독일 공장의 노동자로 자원한다. 땅을 파는 노동자로 몇 달을 보낸 다음, 갑자기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나찌는 형식적으로 전쟁포로를 석방한 다음, 독일 영토로 끌고가 학살하고 있었다. 블라덱은 근처에 사촌이 있다고 말하고, 뇌물을 주어 무사히 수용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살던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아내를 만난다.

하지만 나찌의 탄압은 더 심해지고, 1939년이 되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가스실의 정체가 유태인들에게도 알려지지만 대부분의 유태인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블라덱의 처가는 부유한 집안이어서 나찌에 협조하고 있는 유태인 위원회를 매수해 탄압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지만, 결국 살던 집에서 쫓겨나 게토로 옮겨가고, 이후 진행되는 과정은 은거, 도주, 체포, 도주, 은거를 반복하면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어간다. 폴란드인 가운데 선량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태인 가족을 숨겨주었지만, 블라덱 가족은 헝가리로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다. 나찌의 유태인 분류에 따라 블라덱의 대가족은 뿔뿔히 흩어진다. 대부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들어가서 살아남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944년 3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블라덱은 카포(유대인 관리자)의 개인 영어교사로 차출되어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 다음에는 함석공으로, 제화공으로 옮겨가며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공사장 노동자로 돌아가서 극심한 고생을 하게 되고,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을 직접 보고 기계 설비 일부를 해체한 목격자가 된다. 이후 소련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까이 접근하자 독일군은 유태인을 독일 국내로 끌고가기 위해 열차에 태워 오랜 시간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유태인이 사망한다. 블라덱은 끝까지 살아남았고, 다카우에서 수용소 생활을 하다 티푸스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포로교환으로 스위스까지 가는 기차를 타게 되고, 이곳에서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마침내 독일군이 패퇴하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살아남는다. 이후 블라덱은 나찌에게 잡혀갈 때 살고 있었던 소스노비에츠로 돌아가 기적처럼 아내 아냐를 만난다.


작가는 유태인을 쥐로 그렸다. 유태인을 쥐로 설정한 것은 작가의 오리지널이 아니라, 이미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 나찌는 유태인을 쥐로 묘사하고 있었다. 나찌가 유태인을 쥐로 묘사할 때, 독일 국민을 비롯한 모든 유럽의 비유대인은 왜 반발하지 않았을까. 유태인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결코 모르지 않았을텐데, 극우 나찌가 권력을 잡고, 유태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폄하하고, 절멸해야 할 대상으로 찍었을 때, 비유태인들이 눈감고, 외면하고, 모른 척 한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1938년 상황부터 시작한다. 작가의 아버지가 결혼을 앞두고 만났던 여성과의 갈등과 새로운 여성과의 만남, 결혼부터. 작가의 부모는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겪는 산후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체코로 휴양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나찌의 철십자 깃발을 본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이미 유태인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학살당하거나 추방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히틀러는 극렬한 반공주의자이자 반유태주의자였다. 히틀러의 가계에서 유태인의 피가 흐른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히틀러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드러내려 했고, 유태인이 열등한 인종이며, 절멸시켜야 할 인종이라며 혐오했다. 이런 극단적 혐오의 감정이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유태인은 왜 히틀러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걸까. 히틀러는 권력을 차지하고, 권력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유태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점찍었을 뿐이다. 이미 유태인은 유럽 전체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작가가 유태인을 쥐로 묘사한 것은 히틀러의 나찌가 유태인을 묘사한 것에 대한 반발의도와 자기비하를 통한 동정얻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아니, 작가가 의도적이지 않았다 해도 독일군을 고양이로 그린 것에서 그런 의도는 분명해진다. 애초 쥐와 고양이를 비롯해 동물의 의인화 작업은 진보적 만화가들의 주제 가운데 하나였고, 아트 슈피겔만은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먼저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흑인도, 백인도 아니어서 흑백 인종차별에 관해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유태인이고, 부모가 아우슈비츠 생존자라는 것은 곧바로 유태인과 독일군의 관계로 이어졌고, 처음 몇 페이지짜리 만화로 시작해 장편 그래픽노블이 될 때까지 무려 13년의 시간을 이 만화에 투자했다. 쥐와 고양이는 그 자체로 천적이며, 약한 자와 강한 자를 상징하고, 전복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 톰은 분명 강자이면서도 늘 약자인 쥐 제리에게 당한다. '심슨 가족'에서 호머의 가족이 보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이치와 스크래치는 '톰과 제리'의 패러디이면서, 더 과장하고 왜곡된 형태의 '톰과 제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한 '톰과 제리'의 패러디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에서 유통되고 있는 '톰과 제리'의 상징과 이미지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가를 비트는 패러디다.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고, 독일군은 고양이, 폴란드인은 돼지, 쏘련은 곰 등 민족마다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쥐는 인간이 혐오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유태인이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쥐를 유태인의 상징으로 그린 것은 작가의 탁월하면서 필연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유태인이 쥐로 그려진 것은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상황이었고, 이후 유태인은 다른 민족인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고양이로 변한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태인의 이중성과 아이러니를 드러낼 수 없다.


유태인

유태인의 존재는 역사적으로 아이러니다. 그들이 믿는 신이 세계의 절반 가까이 지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그 신의 아들이라는 인물을 부정한다. 유태인이 믿는 신과 기독교의 구교, 신교, 이슬람교의 신은 동일하지만, 신의 아들인 예수를 부정하는 것은 오로지 유태교 뿐이다. 유태인들은 유일신 야훼를 믿으며, 자기 민족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는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자신과 다른 모든 민족과 인종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기초가 된다.

2천년 전부터 기독교가 로마에서 국교로 인정받고, 로마의 힘을 따라 유럽 전체로 퍼져나갈 때도 유태인은 자신이 믿는 신과 구분했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를 성삼위일체로 받아들인 기독교는 유태인들의 배타적 태도와 행위가 거슬렸고, 그들의 선민의식이 아니꼬왔다. 유태인은 역사 속에서 소수집단이었으며, 한때 자신의 국가를 세우기도 했으나 외세의 침략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들의 디아스포라가 끝난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라를 이뤄 살고 있던 지역을 침탈해 '이스라엘'을 세웠다. 

종교적으로 유일신을 숭배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강한 선민의식을 가진 집단이었던 유태인은 수천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를 통해 유럽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이들은 소수민족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며,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금융업을 개발하고, 유통업 등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유태인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는 말은, 그들이 대대로 교육-집단윤리와 종교-을 통해 자녀를 훈육하고,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이 혹독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일신 야훼의 존재와 선민의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고, 그런 자기중심의 세계관이 또한 다른 민족들에게 탄압당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니, 유태인의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인 것이다.

봉건시대 이전까지의 유태인은 다른 인종-영국, 독일, 프랑스 등을 만드는 앵글로색슨, 게르만, 노르만, 이베리안, 켈트, 스코트 등 유럽의 주류 인종-에 비해 소수인종이었으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디아스포라 민족이어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생존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류 인종들에게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으며,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존재들이었다. 유태인 뿐아니라 '집시'를 비롯해 소수 유랑민족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이들 소수민족, 인종은 늘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경제체제가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이행하고, 정치적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17세기 이후 유태인은 소수민족이지만 부와 권력을 획득할 기회가 많아졌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갖는 다수민족, 인종은 이런 유태인을 보며 시기, 질투를 하게 된다. 

이념적으로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유태인 가운데 뚜렷하게 드러나는 인물이 있어 유태인을 탄압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유럽의 공산주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태인이었던 것은 분명하고, 특히 러시아 혁명에서 공산주의자 그룹의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수-약4%-가 유태인이었다고 추정한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극렬하게 혐오하고, 그들을 절멸하려했던 가장 큰 이유로 이념 전쟁을 들기도 한다.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자로, 공산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었고,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는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레닌이 권력을 잡았을 때, 볼쉐비키 그룹에는 유태인 공산주의자들이 많았고,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 중에 러시아 혁명 소식을 듣는다. 전쟁에서 진 독일은 승전국들이 요구하는 과도한 전쟁비용에 고통당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전후 불안과 경제적 빈곤, 강대국의 억압 등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이것은 곧 파시즘의 대두와 소수인종의 탄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받아들여, 반공, 순혈주의 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갔고, 소수인종, 민족인 유태인과 집시 등은 절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생존자

히틀러가 유태인을 절멸하려는 이유로 '인종'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유태인 절멸을 통해 세 가지 이익을 보게 되는데, 하나는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내세워 독일국민을 단일하게 통합할 수 있는 명분을 세우고, 유태인을 공격함으로써 파시즘의 정당성을 획득하며, 히틀러에 대한 지지, 충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다. 유태인은 공장, 상가, 기업을 소유하고, 보석 유통 등 부가가치가 높은 상업을 하고 있었다. 유태인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그들의 재산을 독일정부가 몰수했다. 그들이 게토로 이동하거나, 수용소에 갇힐 때까지 가지고 있던 짐은 대부분 압수되었고, 몸에 지닌 모든 장신구, 시계, 반지, 목걸이, 보석 등도 몰수당했다. 유태인의 집에는 값비싼 미술작품을 비롯해 금고에는 돈, 금괴 등도 많았기에 나찌는 유태인의 집에서 압수한 이런 물건을 극소수만 아는 창고를 마련해 숨겨두었다. 전쟁 막바지에 미군이 히틀러의 요새를 점령해서 발견한 물건들 가운데 미국으로 반출된 것이 매우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유태인을 절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학살을 멈추지 않은 것은, 전쟁 막바지로 가면서 자포자기한 측면도 있고, 학살의 과정이 시스템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유태인을 죽여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부자 유태인 가족이 사라지면 그들의 재산이 모두 누군가에게로 옮겨갔고,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도 많았다. 비유태인이 유태인을 증오할 이유는 수백, 수천가지도 더 되었고, 유태인은 결코 정직하거나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었으며, 그들의 존재, 말과 행동, 신념, 종교가 증오를 부르는 원인의 일부였다. 그리고 시대상황은 유태인에게 매우 불리하게 움직였고, 많은 유태인이 가스실로 들어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유태인은 말한다. 왜 우리가 증오의 대상이 되고, 학살당해야 하는가라고.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거나, 살아남은 유태인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시대의 광기에 희생된 사람들일 뿐이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까.

이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작가의 어머니는 1968년에 자살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지만, 살아 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이 참기 어려울 정도의 강박증세를 보인다. 작가의 아버지처럼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수용소의 경험을 책으로 남긴 프리모 레비의 증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없었다. 프리모 레비도 결국 자살하는데, 불과(?) 10개월의 수용소 경험이 한 인간의 존재 전체를 뒤흔들고, 다시는 과거의 '존엄성을 유지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유태인 개개인이 겪은 학살의 트라우마는 집단화한다. 융이 말한 것처럼, 집단무의식은 민족의 염원으로 드러나고, 다시는 같은 참혹함을 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와 강렬한 의지가 시오니즘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유태인의 선민의식이 결합한 시오니즘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물리적으로 소수그룹인 유태인은 가장 강력한 집단인 미국을 등에 업기로 결정한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투사하면, 자신도 가장 강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약했기 때문에 당했으니, 약한 자는 당해도 싸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은 아우슈비츠에서의 트라우마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며, 집단무의식의 발현이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미국을 등에 업고 자신이 유럽에서 당한 따돌림과 폭력을 같은 소수민족인 팔레스타인을 향해 퍼붓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만화의 형식

이 작품은 한 페이지에 여덟 칸을 기본으로 하고, 칸의 변형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긴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칸 하나의 밀도는 매우 높아서, 그림과 글이 꽉 차 있다. 만화에 여백이 없거나 드문 것은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가 많거나, 스토리에서 여유를 부릴 만한 심리적 편안함이 없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칸에 글과 그림이 빼곡하다. 대사와 지문은 너무 많아서 만화를 읽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 작가가 선택한 주제와 아버지의 과거 경험, 현재 아버지와의 관계 등이 작가의 작품에 생생하게 녹아들기 때문에 그만큼 해야 할 말, 하고픈 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아버지의 증언을 토대로 그림 작업을 했지만, 그림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증언이나 적은 기록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작가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3년간 작업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도 아니고, 엄살도 아니다. 작가는 사실에 가까운 묘사를 위해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분석하고,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의인화를 제외하고 시대 배경-건축, 의상 등-을 최대한 당대에 가깝게 재현했다. 책 1권 90쪽에 유태인들이 디엔스트 스타디움에 모이는 장면이 있는데, 반페이지 칸에 수백 명의 유태인을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스타디움 앞 광장에 동상과 전차, 자동차까지 배치해 현실감을 높였고, 계속 진행하는 장면들에서도 군중 씬에서 유태인들이 입은 옷과 게쉬타포가 입은 군복에서도 작가의 고증은 꼼꼼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작가는 스크린톤을 쓰지 않고 모든 선을 직접 펜으로 그렸는데, 당연하면서도 신선하다. 스크린톤은 일본과 한국만화에서 쓰이는 특징인데, 그래픽노블에서는 스크린톤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스크린톤은 일본에서 개발되어 주로 '공장만화'에 쓰이다 한국으로 넘어왔고, 한국에서도 만화가가 여러 명의 보조 인력을 데리고 일하면서 대량으로 만화를 생산하는 체제를 갖춘 곳에서 주로 쓰였다. 

작가가 인종에 따라 동물로 형상화하면서 발생한 문제(?) - 작가가 분명 의도한 것이라고 보는데 - 는 '개인'보다는 집단의 문제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유태인을 '쥐'로 표현하면서, 모든 유태인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즉, 개인의 '퍼스낼리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돼지로 표현한 폴란드인이나, 고양이로 표현한 독일인처럼, 그들이 인종대 인종으로써 학살하고, 학살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려 했다. 집단 학살 앞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며, 생존자는 오로지 '우연'과 '행운'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현재의 아버지와 과거의 아버지를 번갈아 만나는 방식이다. 여든이 넘어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용소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아내의 자살이 자기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아들인 작가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민감한 문제인데, 현재의 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는 말라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라 역시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오래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블라덱의 아내(작가의 어머니) 안나가 자살하면서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묵시적으로 남편을 비난하는 것으로 읽힌다. 안나 역시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가 극심해서, 그 결과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 블라덱의 행동이 수용소 이전과 이후에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볼 때, 안나는 달라진 남편의 말과 행동을 견디기 어려웠고,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남편의 달라진 행동으로 인한 불안과 실망, 좌절이 겹쳐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아버지를 만나며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발화로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작가가 개입하면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에서 발생하는 사고, 사건은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고, 현재의 '괴팍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과거에서 찾는다. 이 작품 속에서 아버지는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하는데, 작가는 아버지가 회상한 과거를 녹음했고, 녹음을 들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과거는 아버지의 기억에서 소환되거나, 아버지의 발화를 통해 기록되어 작가의 작품으로 옮겨간다. 


이 만화는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지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충분하게 전하고 있다.

독일군-나찌-의 잔학함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분을 느끼게 하고, 유태인들의 무저항에 대해서도 어리석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문제는, 아트 슈피겔만처럼 별 ‘악의없이’ 자신의 가족사를 그리는 사람마져도 유태인의 전략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조직적으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끊임없이 여론을 환기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그 자신이 유태인의 피가 흐르는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태인의 수난사에 대해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를 만듦으로써 돕고 있고,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가를 지원하면서 재생산하고 있다.

유태인 학살을 거론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역사는 잊어서는 안된다. 인종을 말살하려는 인종우월주의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인류는 존재의 의의마져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유태인은 소수라고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그것은 그들이 2천년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배운 지혜의 결과겠지만, 그들의 생존을 위해 예전의 자신들과 같은 다른 민족을 말살하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찌들에 의해 독가스 등으로 학살 당한 유태인의 고통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그보다 더 잔학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것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

‘유태인’의 문제는 한 종족의 문제가 아닌, 세계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우익 강경파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미국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방향으로 중동의 중심에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태인이 자기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소리치는 것도 이제 귀가 아플 정도가 되었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고발 장면-영화, 소설, 만화, 다큐멘터리 등-도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촘스키와 같은 동족-유태인-이 이스라엘의 파시즘화를 노골적으로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자기 종족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유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친일매국노’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핍박받은 상황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유태인들처럼 집요하면서도 사실적인 증언과 복원의 결과물들이 훨씬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고통받은 사람들의 증언이 영화, 만화, 소설,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야 하고, 그런 목소리가 사회에 크게 울려야 한다. 아직도 친일매국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반민족행위자들이 출세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소위 진보를 말하는 자들이거나, 양심있는 자들은 ‘유태인’처럼 우리가 당한 수난의 역사를 우물처럼 자꾸 퍼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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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아우슈비츠의 참혹함과 생존자의 고통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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