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서비스 비용과 노동의 가치


엊그제 냉장고 액정 화면에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냉동 기능이 안 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침내 고장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래, 이 정도면 오래 잘 썼지'라고 수긍했다. 냉장고를 비롯해 우리집에서 쓰고 있는 가전제품은 집을 짓고 모두 새 물건으로 장만한 것으로, 이제 17년째 쓰고 있다.

가전제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엘지(LG)전자 제품이다. 나는 엘지전자와 아무 인연이 없지만, 가전제품은 엘지전자가 가장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도 망설임 없이 엘지 제품을 추천하는데,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엘지 제품이 17년만에 고장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우선 냉장고를 앞으로 조금 끌어낸 다음, 전기 콘센트에서 냉장고 전원을 빼서 다시 끼웠더니 액정의 에러 메시지는 사라지고, 정상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정상인지, 고장인지 알 수 없어서 온라인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온라인 접수에서는 가까운 날짜가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가 8월 20일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신청을 해두었는데, 이틀이 지나서 서비스 기사가 전화를 했다.

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냉장고와 냉동실의 상태를 물었고, 냉동실 안쪽 벽면에 성애가 끼었다면, 그 성애 때문에 냉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능하다면 냉동실을 비우고, 하루 정도 말리면 냉동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서비스 기사의 말대로 하면 기사가 우리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기사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방법이고, 나에게는 더 좋은 일이다. 서비스 기사는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음에도 그 기회보다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서비스 기사에게, 그래도 시간이 되면 방문해 달라고 했다. 냉장고는 다시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신청을 하고 이틀이 지나서-공식적으로는 무려 10일 뒤에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우리집을 방문한 기사는 냉장고를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니, 냉장고(냉동실)는 고장난 것이 아니었고, 성애 때문도 아니고, 문이 약간 덜 닫혀서 발생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기사는 냉장고 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문제가 없는지 물었고, 세탁기의 배수 장치를 확인해 주었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우리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엘지전자 제품이고,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 없이 쓰고 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기업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는 출장비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기꺼이 출장비를 지불했다. 1만8천원. 어떤 사람은 이 돈도 비싸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출장비가 싸다고 생각한다. 1만8천원을 지불하면, 최고의 기술자가 산골까지 찾아와 고장난 제품을 고쳐준다. 지난번 에어컨(이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아니었다)이 고장났을 때는 몹시 급한 상황이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개인 수리업자에게 부탁했는데, 양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인 수리업자는 우리집에 와서 몇천 원 하는 센서 부품을 교체하고 5만원을 받았다. 물론, 나는 그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엘지전자의 출장 서비스 기사도 개인사업자에게 위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과거에는 서비스 기사가 엘지전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위탁회사가 있던지, 아니면 개인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아는데, 그들은 최대한 많이 집집을 방문해 고장난 제품을 수리하고, 출장비와 부품비를 청구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며, 그 와중에 '친절함'에 관한 평가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전자제품의 출장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출장비 받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만 늦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마구 항의를 하거나 크레임을 걸어서 서비스 기사를 못 살게 굴고, 불이익을 받도록 만든다.

이건 음식 배달을 하는 음식점과 배달 서비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고객이 왕'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몹시 권위적이고 '갑'의 위치에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물론, 이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서비스 노동자를 괴롭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가치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기술자, 전문서비스를 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이 하는 노동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고 있으며,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노동자의 가치가 적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대우 역시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큰 문제가 된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중요성, 노동의 역할,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합리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기술자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전문직 기술자, 노동자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으며,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주로 '사'로 끝나는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직종을 높은 가치로 여기도록 학습하고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외의 모든 직업과 기술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제외하면 모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의 종류와 강도가 다를 뿐,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은 곧 자기의 직업, 업무를 뜻한다.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그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객의 요구가 모두 달라서, 그 요구에 맞춰야 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기는 직업이나 직종이라 해도 그 일 자체가 하찮거나 쓸모가 적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 직종이 사회에서는 더 귀하고, 소중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는 사회적 지위나 대중의 직업 인식에서는 하위에 속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올바른 사회라면 사회의 구성원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서 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는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노동도 역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 발생하는 건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수고를 고맙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노동을 단지 수단으로만 여기도록 가르치고, 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는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어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공연하게 대중 매체의 드라마나 커뮤니티에서 발언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노동을 바라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천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노동' 그 자체와 노동자를 대하는 인식이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학력, 경제적 부와 관계 없이 인성이 비뚤어진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들이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일정 비율로 싸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성이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건 교육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복지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다. 다만, 이런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서, 노동자가 부당하게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사회적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한다. 노동이 신성하려면, 노동의 결과가 그만큼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대우에 따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뿐이다. 즉, 노동의 의미도 자본주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인간성과 윤리, 도덕성마져도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범죄를 저질러서 부자가 되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런 예의 하나인데, 물질만능, 화폐숭배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는 사회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어도 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사회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를 강화하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 정글의 논리가 옳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고 많은 우리의 이웃을 존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고, 노동하는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을'의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다. 가족이 다른 사람에게 '갑질'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다른 노동자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다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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