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건강일기-003


아산병원


병원에 올 때까지 일주일 동안 늘 해오던 일상이 이어졌다. 가능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과거에 내가 이래서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후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를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고,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은 오로지 내 책임이 맞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검사를 하는 날에도 혼자 가려했지만, 아내가 휴가를 내고 동행했다. 아산병원은 인연이 있는 병원이다. 병동도 낯익고, 우리 가족이 도움을 많이 받은 곳이라 마음은 편했다.

오전9시에 도착해 진료 접수를 하고, 마을 내과에서 받은 진료의뢰서와 초음파화면을 담은 CD를 제출하고 '간담도센터'로 갔다. 담당의사 선생님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 면담을 할 때, 의사는 이미 내가 제출한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B형 바이러스 보균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20대라고 했고, 건강검진을 언제 했느냐는 질문에 꽤 오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화면에 보이는 작은 점과 흰색 띠를 짚어가며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면담 시간은 짧았고,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와 간호사에게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나는 어제 오후부터 줄곧 금식을 하고 있었고, 오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곧바로 원하는 검사를 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다.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검사 시간을 확인해 주었다. 채혈은 오전에, 위내시경과 CT촬영은 오후에 하기로 했다.

곧바로 채혈실로 가서 채혈을 했다. 열흘 사이에 피검사를 세 번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키와 몸무게를 쟀고, 피를 뽑았다. 며칠 사이에 세 번 피를 뽑으면서 느낀 건, 간호사의 숙련도에 따라 주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다른 곳도 비교적 아프지 않게 채혈했지만, 아산병원 간호사의 채혈은 조금 더 부드러웠다.

채혈하고 위내시경을 할 때까지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 남아서 병원 바깥의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마침 벚꽃이 활짝 피었고,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봄이 한창일 때, 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나처럼 뜻밖의 소식을 듣고 황망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고, 세상이 흐린 하늘처럼 우울했다. 나와 아내는 별다른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주위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았다 떠나가고, 점심 무렵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 군대 동기 모임을 했다. 내년이면 만40년이 되는 군대 동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다섯 명이 모인다. 그 가운데 세 명이 양평에 살고 있어서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다. 평택에 살고 있는 동기가 내년이면 정년 퇴직을 하고, 올해는 휴식년을 보내고 있어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는 삽교천에서 꽃게찜과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고, 당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는 당구를 치고, 저녁까지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전화한 동기는 내가 병원에 검사하러 온 걸 알고 있었고,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  동기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동기들 모두 건강했으나 최근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위내시경 검사하는 곳에 접수하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과정에 최소 한 시간은 걸린다. 사람들도 많고, 필요한 처치를 해야 하고, 의료진이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으니 그만큼 기다리는 건 당연하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팔에 주사를 맞았다. 위 운동을 둔하게 하는 약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하던 곳에서는 이런 주사를 맞지 않았는데, 그만큼 큰 병원이 갖는 장점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고, 진료실에 들어가 의료진이 시키는대로 했다. 먼저 입을 벌리면 입안에 뿌리는 마취제를 뿌렸다. 그리고 침상에 비스듬히 누우면 되는데, 나는 이번에도 '비진정 내시경'을 선택했다. 몹시 괴로운 건 알지만 수면내시경보다 시간이 짧고, 곧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시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구역질이 나왔지만, 그 뒤로는 참을만 했다. 이것 역시 지난 건강검진 때보다 부드러웠다. 더구나 이번에는 십이지장까지 내시경이 내려갔는데, 처치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옆에서 설명해주면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구역질은 한번만 했고, 참을만 했다. 그렇게 위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CT촬영하는 곳을 찾아갔다.

CT는 태어나서 처음 찍는다. 찍을 일이 없다는 건 운이 좋다는 뜻이었고, 지금 CT를 찍는 건 그 운이 다했다는 뜻이다. CT를 찍기 전에 조영제를 주입하려는 목적으로 손등에 주사기를 꼽는다. CT를 찍는 문 앞에는 조영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CT를 찍기 전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순서를 기다리다 촬영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름, 생년월일을 말하고-이 과정은 모든 처치 과정에서 항상 반복했다-기계의 침상에 누웠다. 헤드폰을 씌워주었는데, 그곳에서 CT를 조작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촬영을 하는 중간에 조영제를 주입했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CT를 찍을 때도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참고를 반복했다. 약 10분 정도 누워서 CT촬영을 하고 나오니 이날 해야 할 검사를 모두 마쳤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왼손 손등에는 주사바늘을 뽑아 지혈을 한 탈지면을 붙이고, 오른쪽 손목에는 검사를 받는 환자의 코드가 찍힌 팔찌를 낀 채 병원을 나왔다. 오후의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서울의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했다.


어제 점심을 먹은 이후 오늘 오후까지 만24시간이 넘도록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았다. 오늘 아산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서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나는 퍽 운이 좋아서(?) 오늘 필요한 검사를 다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호리에 들러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조금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병원에서 오후3시 무렵 올림픽대로를 따라 집으로 오는데, 서울 바깥쪽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평일 아침 출근길보다 훨씬 많아서 도로가 차로 막혔다. 우리가 가는 길도 차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막히지 않고 잘 빠져나갔는데, 서종IC를 빠져나와 문호리 쪽으로 들어서자 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시작했다. 평일 오후에 자동차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는 현상이다. 이 행렬은 우리가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양방향으로 계속되었다. 벚꽃이 피어서일까. 벚꽃이 피기 시작했고, 이번 주말이 절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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