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건강일기-002


발병


오랜동안 '건강검진'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다. 10대 중후반에 편도선염으로 몇 차례 몹시 고생했는데, 그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져서 편도선염이 여러 번 발생한 것이다. 편도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 심하게 오르고 목으로 물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럽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염증 부위를 찢은 다음 고름을 빼내고 약을 발라주었는데, 그렇게만 해도 곧바로 열이 가라앉고 살 것 같았다. 20대 이후로는 편도선염이 발생하지 않았고, 병원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 몸에 B형 바이러스가 있다는 말은 젊었을 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B형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간경변으로, 간암으로 발전한다는 상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해서 약 6년 직장생활을 할 때, 건강검진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B형 바이러스 항체가 생겼다'는 말을 들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더욱 그 뒤로 안심하고 지냈다. 

문제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이후 지금까지 중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내가 자발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는 많았으나 딱히 의심할 만한 증상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2021년 3월 25일, 건강검진을 받았다. 강남에 있는 KMI에서 했는데, 건강검진의 순서가 그렇듯 키, 몸무게, 혈압, 체지방 등을 확인하고, 피검사를 비롯해 몇 가지 검사를 순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복부초음파 검사실에서 검사를 받던 중, 검사를 하던 분이 잠시 나갔다 다른 분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 분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나에게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간은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내 간은 울퉁불퉁하게 보였고, 곳곳에 하얀 점과 긴 크랙이 보였다. 이걸 '결절'이라고 했다. 검사를 하는 분이 신중하게 말했다.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 가능한 빨리 내과에 가보시라.

건강검진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위내시경할 때다. 보통 수면내시경을 하는데, 나는 비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비수면내시경의 괴로운 경험이 떠오르는 걸 보니 과거에도 이런 방식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한 것이 기억났다. 입안에 마취제를 뿌리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내시경이 목을 통해 위로 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은 매우 괴로운 시간이다.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해야 하고, 검사를 받고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그렇게 12시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간경변 소견이 보인다'고 말할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도 가벼운 정도가 아니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분이 하는 말의 뉘앙스를 들어보면 간경변의 상태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하는 날, 오전과 오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 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이 굳어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태평하게 살았다. 그러다 검진을 통해 간이 굳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 심각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나의 태도는 플라톤주의를 떠올린다. 나는 오전이나 오후나 변하지 않은 존재지만, 나의 의식은 오전과 오후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 실재하는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아무 걱정 없던 오전의 나, 병변이 발견되어 온통 근심과 걱정,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나는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극명하게 나뉘는 존재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건 얄팍한 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은 길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며, 매 순간 흔들리고, 출렁거리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람의 본성,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아내와 점심은 맛있게 먹었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은 KMI는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었고, 그 중간에 한식당이 있어서 우리는 갈치조림을 먹었다. 

오후에는 내내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었다. 책을 고르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점에서 4시간 정도 책구경을 하고, 나와서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걸었다. 퇴근 시간 무렵이어서 사람도 많았고, 도로는 차로 가득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전동킥보드를 탄 사람들이 마구 질주했다. 걷다가 역삼역 근처에서 '서브웨이'에 들러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서울에 나오면 우리 마을에서는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금 더 걸어가니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그냥 갈까 하다 매장에 들러 햄버거를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로봇이 햄버거가 든 봉투를 싣고 와서는 주문번호를 번쩍거리며 알려준다. 기계에서 주문하고, 로봇이 가져다 주는 햄버거를 받아보니, 사람의 노동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저녁은 서울에서 구입한 서브웨이 샌드위치와 노브랜드 햄버거를 먹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우울했다. 밤에 인터넷에서 '간경변'과 '간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해서 읽었다. 단순한 '간경변'이라면 희망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간암'은 차원이 달랐다. 5년 생존율이 20%에 불과하니, 다른 암과 비교해도 확률이 낮은 편이다.

3월 26일. 오전에 양평읍내 있는 내과를 찾아갔다. 우리 가족이 다 찾는 내과여서 의사선생님도 안면이 있다. 시골 읍내의 병원은 오전에 사람이 많다. 한참을 기다려 의사를 만나, 어제 건강검진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피검사와 초음파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다시 피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B형 바이러스 보균자인지, 술담배를 하는지, 건강검진을 언제 했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면서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간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화면에는 깨끗하지 않은 표면이 보였고, 약간 하얗게 보이는 작은 점과 역시 하얀 긴 띠가 보였다. 그 화면은 내게 오래된 흑백 영화처럼 보였고, 백남준의 설치미술에서 보이는 작은 모니터의 전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몸속의 장기가 디지털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은 내 육체의 탈아날로그 이미지였으며, 그 화면에서 발견하는 병변은 육체를 좀 먹는 세포의 활동이었다. 그 세포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고, 내 몸에서 태어나 자란 세포였다. 최초에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싸우던 세포들이 어느 순간 내 몸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초음파검사의 결과를 본 의사는 어두운 얼굴로 '간경변이 온 건 확실하고, 그보다 예후가 더 나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간경변인지, 간암인지 알려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빨리 아산병원으로 연결해 줄테니 가보시라'고 말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일어서서 나오는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의 말과 표정을 미루어 짐작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쁘다면 간암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에게 아산병원에 예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간호사는 아산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아주었다. 4월 2일.


아산병원 가는 날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여전히 건강했고, 내 몸속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부조리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부터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도 아침에 걷기를 했지만, 이제는 병변을 알았으니 게을러지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겼다. 내 생각, 느낌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 내리는 길을 걸었다. 일요일이지만 비 내리니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적한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은 관념의 바다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 같은 것이어서, 방울이 튀어올랐다 다시 떨어져 형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도 무수히 튀어올랐다 사라진다.


나의 불성실한 태도로 건강을 잃었다. 앞으로 어려운 나날이 계속될 것으로 짐작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지극히 '현대적 인간'이자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인정한 '리얼리즘'의 전형적 인물로 본다.


도스또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거대한 서사의 격랑에 휩쓸리며 신과 자연과 자신의 관계로 괴로워하는 존재라면, 카뮈의 인물들은 외부의 힘과 관계 없이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데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개인)의 의지일 뿐이다.


그런 태도는 불교적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결과)은 과거에 내가 했던 행위들의 집적(원인)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닌, 나 자신이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총체적 삶이기 때문이다.


카뮈의 말처럼, 삶은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조리한 삶이다. 카뮈는 그런 인간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결과는 쿨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부조리한 삶을 살았고, 뫼르소의 감정에 완벽하게 동화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뒷집 사시는 어르신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이 그 병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였음에도.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선배가 작년에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내 나이였으며, 예후도 없이 갑자기 발병했고, 스스로 죽음을 판단했다.


두 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담담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의지의 표현인가를 알게 된다.


봄비는 뭇생명을 깨우고, 자연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생명 또한 의연하고 겸손한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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