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건강일기-001


들어가는 글


이 글은 수많은 투병환자가 쓴 투병기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서도 간 건강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학적 변화와 함께 심정적 변화를 기록한 투병기다. 모든 사람은 '개별성'의 존재라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확률은 0%와 100%일 뿐이다. 나는 0%(건강한 사람)에서 '갑자기', '느닷없이' 100%(건강하지 못한 사람)로 바뀌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나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과 며칠 전, 병원에서 '간경변 환자'로 확진되었으며, '간경변보다 예후가 나쁠 것'이라는 암시를 받아서 '간암'의 확률을 예상해야 하는 '환자'다.


이제 막 병변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기록을 시작한 것은, 이 기록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기억이 생생할 때부터 기록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약물을 투여하며, 심각하면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정상'이었을 때의 기대수명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은 확실해서, 한국남성의 평균수명인 76세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았고, 지금도 날마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열심히 쓰는 편이다. 나 자신을 객관으로 기술하는 작업은 쉽지 않지만, 감정에 치우지지 않도록 노력하되, 나의 주관,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변화를 기록할 생각이다.


본격 투병을 하게 되면 글을 쓰지 못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글은 결국 미완으로 남게 될 것이지만, 발병부터 치료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과 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는 이렇게 완치했다'는 말은 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섣부른 희망이나, '투병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아는 척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할 것이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내 감정을 충실하게 기록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도 이 글(연재)이 길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최근 내가 겪은 두 분의 죽음을 보면서, 이 글이 짧아질 수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한 분은 아흔 두 살의 어르신으로, 췌장암을 발견하고 병원에 입원했으나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다른 한 분은 작년, 내 나이(60세)에 말기암이 발견되어 약 4개월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연세 많은 어르신의 단호한 결심은 존경스럽고, 갑자기 말기암으로 돌아가신 선배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 선배와 거의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놀랍고, 기이하다. 선배 역시 자신의 투병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지만, 돌아가신 두 분처럼 단호하고 담백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렇게 지저분한 변명을 남기고 있다. 그건 어쩌면 마음 속에서 생존을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죽음은 두렵다. 건강할 때도 '죽음'은 막연한 공포였지만, 건강을 돌보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때, 죽음은 더 이상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체를 가진 존재로 내 앞에 서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낭떠러지를 걷는 듯한 긴장과 매 순간의 절박함이다. 그 처절함은 어떤 말이나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며, 누구나 실제 눈앞에 닥칠 때만 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렇다고 병을 발견하고 투병을 하는 기간이 내내 죽음과 맞닥뜨리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일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왔던 관성으로 과거가 현재를 밀고 가는 시간과 현재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중첩하면서 투병하는 사람의 감정은 공포, 절망, 비관, 슬픔, 고통와 같은 비극의 감정과 눈 앞에 있는 현실에서 반응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 감정을 갖게 된다.

검사를 받고, 의사의 소견을 듣고, 처치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비관적 감정으로 괴롭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투병하기 전과 같은 생활을 하면 슬그머니 희망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만 죽음까지 얼마나 만족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달라진다. 죽음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게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천수를 누리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젊은 사람일수록 살아야 할 나날이 많아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제 60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회에 조금은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 충격, 절망, 좌절, 슬픔 같은 감정이 밀려오는 건 당연하다.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쉽지 않고, 복잡한 감정들이 변덕스럽게 바뀌는 걸 느꼈다. 이 뒤섞인 감정의 변화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경변 결과를 알기 전에 3회까지 써 놓은 글입니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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