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박준영 변호사가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어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그동안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막연하지만 답답했던 느낌을 방금 올라온 그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을 읽고서야 뚜렷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왕이면 같은 변호사인 분이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논리적으로 비판해주면 좋겠는데, 우선 내가 참을 수 없는 부분만이라도 언급하려 한다.

박준영 변호사의 글 '인간의 존엄성 3'은 조금 긴 글인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만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김학의는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다.

-피해 여성들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음에도 변명도 못했다.

-긴급 출금 자체가 불법이다.

-김학의는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부각'의 목적에 쓰여지는 '병약한 개'다.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김학의는 사회적 존재로서 사형당했다.


이 내용 외에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몇 가지 적당하지 않거나 잘못된 예를 들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신영복의 '담론'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사례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김학의 주변 사람들도 의심의 대상이 되어서 미안한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한 김학의

-별장 접대는 15년 전,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지탄, 실추된 명예, 가족과 주변 사람의 고통, 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형사책임보다 가볍지 않다

-헌법재판관 조승형의 의견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 사회적 살인을 당한 김학의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이 갖가지 목적으로 김학의를 이용

-김학의의 1심 최종진술


박준영 변호사(이하 '박준영')의 글은 크게 두 가자로 구분할 수 있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시각과 보통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이건 다시 '법 논리'의 시각과 '감성'의 시각으로 치환해도 동일한데, 이것이 박준영의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몰역사적이며 감정에 치우쳐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박준영은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근거는 위의 정리한 내용에 모두 들어 있다. 먼저, 박준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법조항'에서 '공소시효'에 관해 말해보자. 

'공소시효'란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의 소추권 및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재판의 공정성', '처벌의 필요성', '공적 비용', '형벌권의 소멸시효' 같은 이론들이 이를 뒷받침 한다. 

공소시효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존재하거나 사라지고, 기간도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등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박준영은 '공소시효'가 절대 기분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그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직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소시효는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독일에서는 전쟁범죄자를 추적하고 처벌하는데 지금도 전담 부서를 두고 맹렬히 전범자의 뒤를 쫓고 있다. 이미 1천 명이 넘는 전범자들을 추적해 체포, 처벌했거나 그 과정에서 고령으로 사망하는 전범자들이 나오고 있다.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건 박준영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쟁범죄에 준하는 인륜의 파괴하는 범죄는 한국에서도 공소시효를 없애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것 역시 박준영이 모를 리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소시효'를 근거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옹색할 뿐 아니라 비겁한 태도인 것이다.

김학의가 검찰 개혁, 여성 운동,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의 표본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결과를 원인에 꿰어 맞추는 견강부회의 논리다. 김학의는 '범죄자'다.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고, 구체적으로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공직자의 윤리를 훼손한 비윤리적 공직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명확하게 법의 처벌은 물론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지탄도 함께 받아야 한다.

박준영이 말하듯, 김학의가 다른 조직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당하는 존재라는 건,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비논리적 연결이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다른 어떤 조직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이용하든 그걸 두고 김학의의 범죄를 변호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준영의 긴 글에서 법적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감정'이다. 변호사가 법적 논리로 김학의를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김학의가 '형사 사법 분야'와 '인권 분야'에서 '약자'라는 감정에 호소한다. 김학의가 '약자'라는 말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포괄적 의미에서 '약자'라는 주장 역시 타당하지 않다.

김학의는 학생 때부터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검사였고, 한국의 1% 안에 드는 최고 엘리트 계층이며, 고위 공직자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다. 그런 김학의가 범죄를 저지른 이후 갑자기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니, 그 말이 과연 합리적인가?

박준영이 예로 들은 내용들은 적절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신영복이나 조승형의 글을 인용한다고 해서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가 가벼워지거나 사라지는가? 더구나 박준영은 김학의의 처지를 감정적, 감성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평소에 얼굴을 감추고 다닌 김학의, 이사를 여러번 한 김학의, 실추된 명예, 사회적 지탄, 사회적 살인 같은 문장으로 김학의의 처지를 옹호하고 있는데, 보자, 대체 이 모든 결과들을 만든 것이 누구인가? 

원인이 어디에서 왔고, 원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이며, 김학의가 지금 놓여 있는 범죄자, 사회적 지탄, 실추한 명예는 과연 누가 한 행위의 결과인가? 박준영은 계속 결과론으로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주제에 관한 논거와 주장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김학의는 범죄를 저질렀고,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처벌받았으며,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이고, 얼굴을 감추고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도망다니듯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받은 사회적 지탄과 실추된 명예가 '사회적 살인'이라고 말한 건 박준영이다. 누가 김학의를 사회적으로 살인했는가? 김학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당한 사법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그것은 김학의가 과거 가졌던 막강한 검찰 권력의 비호 때문이었으며, 지금도 검찰은 선별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걸 박준영도 잘 알 것이다.


박준영은 '재심 변호사'로 알려졌고, 누구보다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나 역시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김학의와 관련해서 박준영은 경주마처럼 시야를 가린 채 뛰고 있는 '법 기술자'로서의 변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전제는 옳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에 의해 매우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김학의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쪽에 서 있는 권력자다. '인권'은 보편적이며 특정한 계급, 계층의 이해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옳지만, 김학의보다 더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정의나 윤리나 도덕, 법률은 동시에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학의 같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보다는-김학의는 스스로 돈과 권력이 있으므로 알아서 잘 자신을 변호할 것이다-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인권'을 더 챙기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나는 박준영이 쓴 '인간의 존엄성 3'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이든 자기의 전문 지식에 빠져 맹목이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느낀다. 박준영은 분명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을 만들었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크메르 루즈가 자기 국민 수백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준영은 '권력자'는 아니지만, 자신이 배운 전문지식인 '법'으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법'은 '법조문'만이 전부라고 판단하고 해석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진다. '법'은 인류의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도구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이면서 인류의 양심과 정의, 도덕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든 하나의 '규칙'이며 보편적 상식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김학의 사건에서 가해자들을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또한 그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과 신변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과정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피해자를 우선 보호하고, 배려하고, 그의 입장에 귀 기울이는 것이 법의 정신에도 옳바르다. 피해자들이 과거의 폭력과 피해에서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안심할 정도의 사회적 배려가 있은 다음에,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숨어 지내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가해자인 김학의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을 박준영을 정말 모르는 걸까.

그 피해자들이 김학의에 대해 사실 관계를 왜곡하고 과장했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학의가 지난 10년 동안 '사회적 살인'을 당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박준영은 가해자에게 실제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폭력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은 '왜곡과 과장' 때문에 그들의 인권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닌가?


혹시, 박준영 자신이 김학의가 가진 권력에 과몰입해 '대리 권력자'로 감정 이입한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당연히 박준영은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그가 한국의 '남성'이고 '변호사'인 것은 한국사회에서 기득권, 권력자의 위치에 있다는 걸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나는 박준영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그가 지금 김학의 사건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 '법'을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일수도 있겠으나, 지금 가해자인 김학의를 옹호하는 주장은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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